千の風になっ – A Thousand Winds.. – 秋川雅史(아키가와 마사후미) – 2006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Mary Elizabeth Frye – 1932
천 갈래의 바람으로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십시오.
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잠든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천 갈래로 부는 바람입니다.
나는 흰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나는 여무는 곡식 위에 비친 햇살입니다.
나는 조용히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그대가 아침의 고요에서 깨어날 때
나는 하늘을 고요히 선회하다가
갑자기 비상을 감행하는 새입니다.
나는 밤하늘에 부드러운 별빛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십시오.
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니까요.
얼마 전 아내 연숙으로부터 류해욱 요셉 신부님의 ‘그대는 받아 들여졌다’ 라는 책자를 건네 받았다. 류 신부님은 비록 나와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어도 간접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신부님이다. 내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2010년대 이전에 한때 주임신부님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진’도 보았고 연숙, 많은 교우들로부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몸이 아프시다는 소식과 레지오에서는 ‘병자기도’의 요청도 들어와 많은 단원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기도 하다.
‘중풍’같은 stroke으로 쓰러지셨다는데 어떻게 또 이런 책이 나왔을까? 친필로 sign이 책 안에 보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떨리는 필체’였다. 아직도 ‘마비 증상’에서 못 벗어나신 것일까? 나이는 나보다 한참 밑이라고 알고 있는 ‘젊은’ 신부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고생을 하시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류신부님의 책 번역 솜씨는 가희 내가 제일 좋아하는 style중의 하나다.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러운’ 번역을 하는지.. 이것은 번역 사이에 있는 2가지 언어를 거의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직역 체와 의역 체의 거의 중간에 있는 거의 완전한 번역인 것이다. 특히 시어체의 번역은 더욱 그러하다.
이번에 접하게 된 책은 ‘51편의 묵상 잠언‘이라는 부제가 있는 대부분 시와 묵상들을 저자의 소견을 곁들여 간결하지만 깊이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중에는 신부님이 이전에 ‘이미’ 갑상선 암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었고, 건강에 신경을 쓰는 탓인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나보다 거의 10년이 ‘젊은’ 것을 생각하면 조금 ‘가소롭게’도 느껴지지만 어떻게 느껴지는 나이를 직접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칼릴 지브란의 시가 많이 실린 것으로 지브란의 시를 좋아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지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A Thousand Winds로도 알려진 Don’t stand at my grave and weep이라는 Mary Elizabeth Frye의 1932년 경의 시였다.
이 ‘나의 무덤에서 울지 마세요’로 시작되는 시는 내용적으로 추측해서 아메리칸 인디안 (native Indian)의 구전에 의한 것으로 추측을 했지만 사실 지금은 저자가 ‘완전히’ 밝혀진 것으로 1932년에 미국 Baltimore에 살고 있는 Mary Elizabeth Frye라는 여성의 시로 확인이 된 것이다. 내가 신뢰하는 Wikipedia에 의하면 오랜 세월 동안 비밀의 veil에 쌓였던 이 ‘감동적’인 시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32년 경 Frye여성은 같은 집에 독일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에 온 유대인 여성과 그녀의 남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독일 나치 치하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그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는 것을 알게 된 Frye여성은 거의 즉흥적으로 그녀를 위로하려고 shopping bag 누런 종이에 생각이 나는 대로 시를 적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전에 시를 써본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슬픔에서 고통을 받는 것을 위로하려고 거의 ‘본능적’으로 쓴 그 시가 그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같은 슬픔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로하게 된 것이다. 이 시는 Frye여성의 친지, 주변에 천천히 알려지게 되고 ‘장례행사’같은 곳에서 낭송이 되었고 서서히 세계적인 시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누구의 시인지 모르며 애송을 하여서 작자 미상으로 남게 되었고 심지어 American Indian의 전통적인 시로 추측이 되기도 한 것이다. 후에 본격적인 ‘저자 찾기’ 노력이 이루어 졌는데 저자인 Frye여사가 94세로 세상을 떠나며 자신이 저자임을 밝힌 사실이 미국 신문의 컬럼 Dear Abby로 잘 알려진 Abigail Van Buren 의 추적으로 확인이 되었다.
저자인 Mary Elizabeth Frye는 이 시에 저작권을 요구 않았기에 완전한 public domain에 남아서 누구라도 인용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가히 모든 사람의 ‘장례식 애송시’가 될 수 있었다. 이 시를 조용히 가만히 읊으면.. 사랑하는 가족, 친지와 이별을 해 본 사람이면 엄청난 위로를 받게 됨을 느낀다. 큰 재난 때마다 낭송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2007년 경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나의 무덤에서..’ 가 아니고 ‘천 갈래의 바람.. a thousand winds’로 나에게 다가왔다. 2006년 말 일본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NHK의 연말 가요 홍백전에 이 시를 classic style로 부른 아키가와 마사후미 에 의해서였다. 처음 들을 때, 나는 이 노랫말이 일본 것인 줄 잘못 알았다. 센~노 가제 (천千의 바람)라는 제목이 붙은 이 classic style 곡은 곧바로 일본 최고의 인기 곡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곡이 작자미상인 것도 몰랐다. 이 시는 당시의 일본 TV drama 였던 ‘어른들의 여름휴가(おとなの夏休み)’ 에도 나온다. 주인공 여성의 병 간호를 하는 할머니가 애송하던 시집이었다. 곧 바로 세상을 뜨는 할머니가 아마도 자기의 죽음 앞에서 울지 말라는 뜻이었을 듯 하다. 당시 그것을 보면서 나는 이 시가 왜 여기에도 나오는 가.. 일본인들과 무슨 큰 관계가 있는가 의아해 했었다.
결국은 류해욱 신부님의 신간인 ‘그대는..’ 에 의해서 나는 완전히 이 시를 알게 되었고 나를 매료시켰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나는 류 신부님처럼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이 시는 세상을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이 남겨 두고 온 슬픔에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로한다. 거꾸로 된 것이다. 무덤 옆에서 먼저간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인 것이다. 가슴을 깊이 울리는 아름다운 정경들을 배경으로 죽은 이가 산 이를 위로한다. 나는 죽지 않고 남겨둔 너를 항상 바라 보고 있다고. 영혼의 불멸을 믿게 된 나는 이 시어들을 이제는 100% 실감나게 믿는다. 그래서 더 나에게 ‘산’ 의미가 있다. 어떤 곳에서 세월호 비극 때에 이 노래가 번역이 되어서 불렸다고 들었다. 아마도 일본이라는 거부감 없이 슬픔에 고통을 받는 산 이들이 위로를 받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