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ama’s Charity, Javert
며칠 전부터 예고 되었던 ‘그 소식’이 현실화 되었다. 이 소식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미국에 ‘불법’으로 5년 이상 체류해 오던 시민권, 영주권자 자녀를 가진 부모 들에게 3년간 제한적이지만, 합법적인 신분을 부여한다 것을 국회를 통한 이민법이 아닌 정부자체의 행정명령으로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생각을 한다. 과연 이것이 고국 (a.k.a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적용이 되며 도움이 될까..하는 것이다. 이런 뉴스는 이곳에서 발행되는 한글로 된 신문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식 중에 하나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정도의 뉴스면 아마도 front page 제일 위에 실릴 만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이민법’에 관한 것은 우리 같은 minority community에게는 민감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할까?
일년도 훨씬 전에 이미 상원에서 comprehensive immigration bill이 통과 되었지만 하원에서 거의 ‘초 죽음이 된 상태로 아사餓死 되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있다. 그 당시 통과된 법안은 ‘범법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불법체류자’를 구제하는 것이 골자였다. 오래 전(Reagan era)의 일방적인 ‘사면 amnesty’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기한의 제한이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것을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은 ‘인정머리 하나도 없는 공화당 Republican 패거리’의 인간들이었지만 Obama 도 머리만 굴렸지 별로 ‘타협이나 설득’을 못하는 졸렬한 정치력으로 일관을 해서 궁극적인 책임은 바로 그에게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희생자는 오랜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힘없고 지친 그들 (거의가 undocumented Mexican)이었다.
오랜 전에 나는 이들 undocumented 들의 ‘신세’에 큰 관심이 없었고 그저 ‘불법’이니까 ‘합법’으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 하는 naive한 생각만 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이것은 ‘기술적 technical‘한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까 서류상의 문제’가 아닐까. 그것을 그렇게까지 야멸차게, 비인간적 대우, 차별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9/11 사태로 모든 ‘서류’들이 중요해지고 거의 필수적인 것이 되어가며 이들의 일상 생활은 점점 ‘지옥처럼’ 변해가고 급기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들이 속출하며 생각이 바꾸었다. 법이나 그에 따른 ‘서류, 종이조각’이 인간의 기본권의 위에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명제가 된 것이다. 나의 생각과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머무르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Victor Hugo의 Les Misérables, 우리에게는 쟌발잔Jean Valjean 으로 알려진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나는 다시 이 쉽지 않은 문제를 조명하기도 했다. 범법자가 법을 어긴 사람들이 회개한 후에 어떤 처우를 받아야 하는가, 배가 고파 훔친 빵으로 강제노동 형을 받았던 주인공과 그를 ‘법’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일생’을 쫓아다니는 형사.. 극과 극의 입장에 있지만 과연 그럴까? 나중에 나는 그 형사Javert가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인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성서에서도 ‘사랑보다는 법’을 먼저 따지는 ‘바리사이 파’들을 질타하는 예수님을 본다. 이것과 현실은 물론 차이가 많지만 따지고 보면 맥락은 비슷하다. 현재 ‘법과 정의의 사자’로 자처하는 ‘공화당 극우파’들이 바로 그 형사 ‘Javert, 자베르’나 ‘바리사이 파’ 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쟌발잔은 바로 힘없이 쫓기는 undocumented들일 것이고.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쩌면 그렇게도 그들, 공화당 기회주의자들, 인정머리가 없는 것일까? 정치적인 입장으로 그런다면 조금은 이해를 할 여지도 있지만 ‘진정으로 인정머리가 없는 본심’의 인간들이라면 역시 그들이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Obama란 인물, 처음에는 Bush를 몰아낸 ‘공신’으로 좋아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며 하나 둘씩 껍질이 벗겨지며 속의 실체를 보고 실망의 연속이었다. 속에 들은 것이 기대보다 텅 비었던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tactic과 speech같은 것은 능할지 몰라도 미국 대통령의 vision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하나 humanism하나면 다 통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심지어는 ‘동성결혼’을 지지하던 해괴한 언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정치적 trouble은 아마도 이런 빈, 텅 빈 character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그가 이런 ‘행정적 용단’은 어떻게 밀어부친 것일까? 아마도 그가 신봉하는 humanism이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비록 원래 원했던 법은 아니더라도 일시적 3년이나마 이렇게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햇빛을 비춘 것은 너무나 다행스럽다. 그는 비록 ‘신앙적, 영적’ 믿음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해도 이런 용단은 우리 천주교의 입장과도 100%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이런 ‘자비’는 그에게 점수를 주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