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년 이란다. 양의 해.. 우리 어머님이 양띠 셨다. 1919년은 기미년, 그 때 어머님이 태어나셨다. 12×8 = 96 .. 96년 전에 어머님은 태어나셨고 살아 계셨으면 96세.. 엄마, 어머니 우리들은 이제 완전한 ‘역사적’인 사람들의 나이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저는 67세가 됩니다. 67세면 별로 크게 인상적인 나이는 아니겠지만 아마도 70세에 더욱 다가간다는 의미만 크게 느껴집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같이 옆에서 살았던 시절이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성탄주일을 작년에 이어서 12 days of Christmas의 정신을 살려서 올해도 결사적으로 탈세속적으로 보내려 안간힘을 쓰며 보냈다. 조금은 미흡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성공했다고 보고 싶다. 내년 (만약 내년이 있다면)은 더 단단하기 자리를 잡으리라 희망을 해 본다. 최소한 12월 25일 날 느끼는 ‘공허와 허무, 외로움’ 같은 잡상들은 많이 자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마련했던’ 그 주옥 같은 성탄 video들.. 올해 다시 ‘그대로’ 다시 본다. 어쩌면 그렇게 같은 느낌들이 오는 것일까? 어떤 것은 작년에 못 느꼈던 것들,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도 있었다. 아마도 내년에도 같은 것을 그대로 보게 되지 않을까? 특히 Christmas Box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올해는 비록 성탄절 ‘인사’를 제대로 못한 듯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향’과의 연락이 이렇게 뜸해진 것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쓰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하는 한탄만 나온다. 나보다 더 신경을 안 쓰는 연숙을 보면 어떨 때는 한심하기도 하다. 어쩌자고 저렇게 사는가.. 나를 끌고라도 그 극성스런 모습을 이곳에서는 발휘하지 못하는가.. 모순 투성이..를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떤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르다면 나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살지는 않는다는 것 뿐이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간 성탄절 앞뒤.. 100% 조촐한 가족의 며칠인가.. 하지만 교회를 ‘완전히’ 떠난 듯한 두 딸을 보면 신경이 쓰이기만 한다. 내가 그런 꼴이었던 사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야멸차게 말하는 나라니에게는 연민과 안쓰러움까지 느껴진다. 나라니야.. 조금만 엄마, 아빠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래도 이제는 고정 행사가 된 가족들의 성탄 전야 미사는 빠지지 않고 가족 전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우선 만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성탄절과 새해벽두는 완전한 가족들이 모이는 기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 속 깊은 곳에 고여있는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렸다. 어머님, 누나와 같이 살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어떻게 그것을 숨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조금은 ‘건강하게’ 그런 감정을 처리한다는 차이는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매일미사, 묵주기도’ 같은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고’ 하는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성모님과 성령님이 주님께로 나를 인도하시는 덕택일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나의 ‘이론’이 정립이 되어간다. 성모님께 느끼는 개인적인 유대감정.. 이것도 올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 중에 하나다. 영상적으로도 나는 어머님과 성모님이 나를 흙탕 개울가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상상, 보기도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점점 믿고 싶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교황님 집전의 성탄미사를 보며.. 생각한다. 다음 성탄 때에 우리 부부가 로마에 갈 수 있다면.. 불가능일까.. 예전 같았으면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머리 속으로 즐길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되었다. 이것이 요새 우리 부부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가? 그것도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것들은.. 과달루페와 메주고리예, 로마, 루르드, 파티마.. 성모님.. 저희를 당신이 계신 곳으로 인도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