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보내며..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지금 조금씩 영원의 세계로 가고 있는가? 작년 11월 이후 이 자매, 그 가족들과 우리는 묘한 인연으로 알게 되었고, 연숙의 지극정성으로 3월에는 세례를 받기도 했고,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역시 무리인가? 이 자매를 보면.. 참 인생의 역정은 모두 독특하게 다름을 느낀다. 작년에 남편이 거의 같은 병으로 가시고.. 어찌 운명의 장난인가 이 자매마저 이런 운명의 길을 걷고 계신가? 한때 독특한 고집을 가진 이 자매를 나는 오해할 정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어떤 분인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좋게 보아야 하지만 조금은 ‘이기적’인 듯한 ‘덜 겸손한’ 태도가 나를 실망케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일까? 하지만 내가 그 처지라면 조금은 조금은 더 ‘겸손’하도록 노력하리라는 자신을 추스른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나는 최악의 겸손으로 내려 앉는다. 내가 누구를 탓하거나 겸손을 운운할 수 있는가? 이 자매를 보며 나는 나의 엄마를 어떻게 보냈는가 절감을 하며 실망, 고통, 후회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얼마나 당신의 외아들, 편치 않은 누나를 걱정하며 눈을 감으셨을까.. 나는 사실 이런 상상의 근처도 가기 싫었고, 그런 광경을 애써 잊으려, 없는 것처럼 미화, 청소하며 살았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비열한 수법임을 내가 어찌 모르랴..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나 있었던가?

오늘, 내일 하며 선종기도를 바치고 있는 배 자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오빠 형철 형제가 어쩔 수 없이 동생의 곁을 떠났다. 그 운명하는 동생의 모습을 어찌 더 볼 것인가? 이해를 한다. 결국은 기진맥진한 두 아들, 특히 큰 아들 호구.. 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인가? 레지오의 조직을 우리는 한껏 이용해서 이 자매를 천주교로 이끌었지만 나의 역할은 아무래도 미미한 것인지도.. 물불 안 가리고 노력하는 연숙이를 어찌 당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돌파력, 지구력, 조직력 등은 정말 가상하다. 누구도 못 따라갈 것이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처음으로 장례의 과정을 우리는 경험할 듯 하다. 비록 식구들이 있다고 하지만 성당과의 관계는 우리가 유일한 연결점이니까.. 어떤 역할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자. 그것이 나의 현재 조금 긴장되지만 담담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