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p me, Albert!
Einstein’s back (to the rescue!)… 아인슈타인(독일어), 아이스타인(영어).. 한 동안 잊고 살았던 환상적 상대성 이론(물리) 과학자, 20세기 최고의 평화적, 심지어 영웅적 인물로 꼽혔던 물리학자가 요사이 나를 구하러 다시 나타났다.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그리스도교적) 진리들, 특히 (성서적) 말씀들과 그것을 전해주는 인간들이 요즘 들어서 조금씩 ‘지겹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 한마디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근래에 나의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시달리면서 잡스럽고, 괴로운 시간을 낭비하는 나 자신이 정말 싫어진다. 어떻게 이런 slump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납득할만한 (상대적인 것도 포함하는) 절대적, 나아가서 (자연) 과학적 진리를 포함한..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때때로 완전히 사라지는 하느님 현존의 느낌들, 그것을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절대 진리 를 신학적, 철학적, 형이상학 적, 심지어는 신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googling으로 거의 모든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요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끝부분이 서서히 보이는 우리들에게도 무리무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속적) 세상, ‘만져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5감을 통한 현상, 현실 reality’ 의 관점에서 본 진리, 그것이 바로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 요새 말로는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간단히 과학 science’ 이라면 17세기 천재 ‘자연철학자’ Isaac Newton 뉴턴 은 하느님이 전혀 필요 없는, 삼라만상이 ‘저절로’ 생기고 돌아가는 ‘시계 같은 기계적 세계관, 우주관’ 을 우리들에게 주었다.
내가 평생을 통해 알고 있던 세상은 사실 뉴턴의 시계처럼 돌아가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모든 것이 ‘원자 atom’ 로 보이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들, ‘물질적’인 것이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는 세상과 우주. 이런 차가운 공간에 과연 사람의 의식이나 의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식은 이런 거대한 기계적인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의식도 ‘원자’로 만들어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비과학적’으로 대답을 하면 점점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초초 超超 현대는 바로 scientism, 그러니까 materialistic science가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진리일까?
이런 의미에서 초현대의 자연(물질)과학은 흥미롭기만 하다. 초월적 존재인 전지전능한 창조원인인 하느님, 믿고 안 믿고는 개개인의 자유이겠지만, 무섭게 바뀌는 ‘과학이론’을 어떻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큰 교훈이 될 것이다. 17세기 이래 ‘인간 지혜의 승리’로 등장했던 뉴턴의 100% 기계적 사상, 3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상대성이론에 압도를 당했고, 같은 시기에 출현한 양자역학 또한 모든 기존의 이론을 앞지르게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지금의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아마도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할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절대’가 아닌 것이다. 계속 변하는 것.. 지금은 실용적으로 믿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진리’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 ‘사상’을 조명하면 한마디로 우리, 피조물들은 절대로 ‘겸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다시 아인슈타인에 접근을 하며 그의 일반상대성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적 우주론 cosmology를 접하면 원자보다 더 작은 지구 상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는 인간들의 의미는 한마디로 웃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깊은 winter slump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