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평화에 관심이 없는 나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아니 막연한 수동적인 관심이 아니라 사랑과 공감에 의한 구체적인 사랑의 결심, 행동이 부족한 나만의 평화”, 그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 반성, 묵상을 하던 며칠을 보낸다. 5월 말에 있었던, 이제는 거의 무감각해진 비극적인 인종적 사태, 나는 거의 일부러 ‘영상적’인 뉴스를 피하며 살고 싶다. 그것은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피해망상증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이후 나의 정신건강 유지에 지대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인간의 얼굴만 보아도 혈압이 뛰는’, 그런 4년 간의 괴로운 시절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지만 이런 도전은 끝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인간이 성경을 들고 성당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할 말을 잃는다. 그것은 위선 중의 위선, 그것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최악의 문제다.
각자, 각 가정, 각기 공동체 community, 나라마다 역사적인, 고유하고 독특한 난제 難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마도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흑백, 인종문제가 그것이고 우리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아마도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김일성 왕조로 이어지는 빨갱이 문제가 그것인가? 두 곳 다 이 난제로 급기야 동족을 서로 죽이는 전쟁까지 했기에, 진정한 화해는 오랜 세월이 필요한데 사실 이 문제는 나아지기는 하고 있지만 완전히 끝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이런 문제는 피조물의 본성적 결함으로 사실 인간적 두뇌만 가지고는 해결하기가 힘들기에 결국은 아주 높은 차원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Hatred, 사랑과 정반대 쪽에 서있는 인간적 감정, 증오심은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 속에서 머무는 증오가 아닌 행동으로 나온 것, 그것이 진정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