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이 간다…

그제는 조금 예상 밖의 하루가 되었다. 80도를 넘고 습기가 찬 열대성 공기 때문에 그랬는가? 여름 옷차림으로 땀까지 오랜만에 흐린 것,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을의 노래를 그리다가 무안을 당한 느낌이었다.  (묵주)기도도 모두 거르고, 특별한 일도 없었던 것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할 것은 다 했다. 성경통독, 아침식사, 점심 혼자 해 먹기, Deck floor 를 모두 고친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나 할까? 하지만 묵주기도를 전혀 못 했던 것이 나를 실망케 한다.

가끔 재는 혈압, 연숙은 의외로 너무나 높아서 실망, 나는 그런대로 큰 변화가 없었디. 과연 이런 혈압수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모른다. 그것이 문제다. 그저 현재 살고 있는 방식대로 건강하게 살면 충분하지 않을까?

레지오 주회합, 다시 시작을 했고 계속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솔직히 한심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실망시키는 단원들이 아직도 나를 쳐지게 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이것을 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이것을 놓칠 수는 없다. 인자하신 성모님의 얼굴을 의식하려고 발버둥을 치며 나는 살고 있으니까…

9월이 거의 다 지나간다. 8월 초부터 블로그에서 도망 갔던 것만 기억이 나서 2개월 째라는 것은 확실히 기억을 한다. 2개월은 나에게 어떤 시절이었는가? 정말 입안의 느낌의 변화가 제일 기억에 남을 것이고, 내 몸의 건강과 목숨의 가벼움을 가까이 느끼면 살았던 것,  조금씩 기억을 남기자.  현재 가회동 모습의 놀라움도 남기고…

아쉬움은 많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문명의 이기, 카톡’으로 레지오 단원들이 모인다는 사실,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나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나와 비슷한 신선한 만족과 행복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니까.  Key West, Florida 로 놀러 간 카타리나 자매, 그곳에서 주회합에 참여 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주위의 ‘시끄러움’은 성가시긴 했지만 다른 각도로 보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주회합이 아닌가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기온, 이것을 보니까 지난 며칠보다 무려 20도가 떨어졌다. 또 하루아침에 긴 팔, 긴 바지가 필요한 것이다. 귀찮지만 싫지는 않다. 지난 며칠 ‘열대성 하늘’이 싸늘한 가을비의 하늘로 바뀐 것을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는가?

 

아~ 흑백의 아름다움이여~~

건주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나의 모습이 있는 조금은 희미한 흑백사전. 그것은 건주 wife, 황인희씨가 서독으로 취업 차 출국하던 김포공항의 사진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또렷했으나 나는 그 정확한 시기를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확실히 1972년이란 것, 옷차림으로 이름 여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건주가 제대한 것이 1972년 봄이었다고 해서 알게 된 것. 거기에는 신언경씨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사진, 나의 촌스러운 모습… 재미 있기도 하고, 가슴이 찌릿하기도 하고… 1972년 경이면 나는 ‘할 것이 없어서’ 유학시험을 보답시고 학원에도 다니던 시절이 아닌가. 1971년부터 출국하기까지 나는 이렇다 할 사진도 일기도 없기에 나에게는 거의 신비로운 미지의 세월이다. 이제는 아마도 그런 시기로 남아있게 될 승산이 크기에 이 사진은 더욱 의미를 주게 된다.

함께 온 사진은 건주가 입대하기 전에 백양로에서 찍은 사진인 모양이다. 이 사진의 사연을 나는 전혀 모르지만 1969년 3월이라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사연이 있다 나도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지 않은가? 나의 연세대 시절 추억의 절정을 만들어가던 해, 바로 그 시절이었구나… 3학년 거의 기타에 심취되었던 것, 4학년 거의 등산에 빠졌던 것… 그것에 대한 대가는 그 이후부터 일생을 걸쳐서 치러야 했지 않았던가?

건주의 연세대 1969년 백양로의 추억이여..

하루 종일 음산하고 써늘하고 어둑거리는 날이었다. 오전의 레지오 주회합을 끝낸 것의 여파를 타고, 오랜만에 불고기(갈비)로 배를 채운 후 아득하고 포근한 늦은 낮잠을 연숙과 둘이서 잔 것은 너무도 꿀맛이었다. 불면증의 불안을 떨치듯 깊은 잠을 자는 듯한 소리에 나도 꿈을 꾸듯 말듯한 한 시간여를 즐겼다.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넉넉히 남아있을까… 감사합니다, 성모님이시여…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는 video가 일본 TV 드라마, ‘내가 걷는 길’이었다. 왜 그것을 보게 되었는지 우연 중 우연이지만, 기분은 다시 상쾌하고 깨끗하고 추억적이다. 이런 일본 것을 보았던 시절 10년도 훨씬 전인데, 이것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 한 것이 조금은 슬프다. 한때 나를 그렇게 도피처와 위안처를 마련해 주었던 주옥 같은 ‘일본애’들 것, 역사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 당시 나의 피난처 역할을 멋지게 해 주었다.

 

9월의 마지막 날이 결국은 나에게 떨어졌다. 9월도 다 가고… 내일은 10월의 멋진 날들이 시작될 것인가? 아~ 나는 왜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민감한 것일까? 내일이 고국의 추석이라고 한다. 이날을 체감으로 잊고 산 지가 거의 60년에 가까워옴은 나를 조금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가 알고 지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하지만 느낌은 거의 잊었다고나 할까. 예외는 가회동 198번지 골목을 다시 보며 99% 그날의 느낌은 되살아 나온다. 얼마나 기적적인 추억의 힘인가? 감사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가회동 嘉會洞 198번지

꿈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생생한 사진으로 나에게… 우리들의 소굴, 골목이 여전히..

거의 6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20세기 1960년대 중반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집 골목, 그곳의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가까이서 보는 기적을 체험한다. 솔직히 이것은 거의 꿈, 기적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time machine을 탄 기분인 것이, 머리 속에 각인된 기억의 사진과 지금 보는 사진이 거의 비슷한 것이다. 집의 위치들은 변함이 없지만 개량되고 말쑥해졌다. 우리들이 모여서 자치기, 다마[구슬]치기, 딱지치기, 골목야구, 다방구, 찐뽕, ‘왔다리 갔다리’, 말타기, 칼싸움, 술레잡기 등으로 시간을 소일하던 그 찻길과 골목길에는 흙이 전혀 안 보이지 않게 포장이 되어있다. 어쩌면 이런 기적이… 상전벽해 桑田碧海라고 그 자리들이 모조리 ‘도시계획’에 의해서 없어질 수도 있는 강산이 6번 변할 수도 있는 세월이 지났는데 거의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나의 추측에, 아마도 가회동 근처지역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특수구역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거의 60년 이상 같은 모습을…  또한 다른 기적을 바란다면, 죽기 전에 한번 다시 그 골목을 거닐며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늙어가는 손으로 땅을 만져보고 싶은 것 뿐이다.

6.25 동란 발발 직후 아버지는 3살도 채 안된 나, 누나, 엄마 셋을 남겨놓고 납북, 영영 소식이 없었다. 원산이 고향이셨던 어머니는 거의 혈혈단신 서울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당시 우리는 원서동 ‘병세네 집’ 의 단칸방에 숨어서 휴전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원서동의 추억으로 시작된 우리는 재동국민학교의 인연으로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 뒷문 쪽에 위치한 가회동 집으로 이사해서 중앙고등학교 1학년 초 때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제일 재미있는, 즐거운, 개구쟁이 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셈이다.  따라서 그때의 추억은 생생하게 나를 오랜 세월 나를 포근하고 행복하게 했다.

 

땅과 흙에서 놀았던 골목이 완전히 돌덩어리로 포장이… 이곳의 애들은 어떻게…

가회동의 추억, 오래 전,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 내가 이곳에 남긴 블로그의 제목이었다. 그 당시 나의 기억력은 그런대로 평균이상으로 꽤 많은 어릴 적의 추억을 거의 사진처럼 그릴 수 있었고, 외롭거나 슬픈 감정이 들면 그 머릿속의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 보며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기억력도 나이에 비례해서 급속히 쇠퇴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가회동의 추억이라는 나의 기억은 지금 읽어봐도 아주 상세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결국은 이것은 남이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갈 것이었다.

가끔 ‘가회동’이라는 keyword로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나의 추억을 거의 같이 공유한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우리가 살던 집 ‘주인집 누나’의 현재 소재지까지 알고 있던 분도 있었다.  가회동과 재동학교를 나보다 더 자세히 기억하기도 했는데 특히 재동학교 지하실에서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도시전설을 알려주던 어떤 형제님… 정말 꿈을 꾸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가회동 같은 골목 자락에 살았던, 재동학교, 중앙중고등학교 10년 후배, 이민우 후배가 연락을 주었다.  이번 case는 그야말로 grand slam격이어서 며칠 동안 나는 행복한 추억을 다시 즐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지냈던 동네 꼬마들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야구꼬마 오자룡, 막다른 골목의 윤표네 집 등 이들과는 같은 시절에 놀았던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시절보다 10년 정도 뒤에 그곳에서 추억을 만든 경우다. 오자룡은 자기 형과 친했다고 하고… 게다가 골목 막다른 집에 살던 ‘홍윤표’ 란 아이가 나를 따르던 애였는지, 아니면 그 동생인지.. 그 애가 머리가 좋아서 경기, 서울의대, 성형외과의사, 뜻하지 않게 타계를 했다는 소식들.. 정말 이건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느낌들이다.

나와 개인적인 연락이 되어, 지난 밤에 이 가회동 골목 후배의 답신을 받고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며 그 동화 같은 시절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것도 향수 鄕愁의 마력 중의 하나다.  홍윤표, 준표 이름을 듣고 당시 그 애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들은 특히 엄마들은 그 골목에서 꽤 오래 남아 살았고 모두들 친하게 지낸 모양이다. 우리나 우리 어머니는 사실 그런 처지가 못되었음을 나는 당시에 실감을 못하며 산 거, 다행인가 아쉬움인가? 그러니까, 내가 알던 추억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정주부들, 말 그대로 일을 안 하는 엄마들, 그 당시에는 거의 모두 집에 있었으니까, 그들만의 그룹을 가지고 있었겠지. 우리는 그런 것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어찌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일을 하러 하루 종일 밖에 계셨던 엄마를 다시 그려보면…  참, 우리도 너무 철이 없었고, 나이가 먹어서도 하나 나아진 것이 없었으니 울고 싶다…

 

골목 왼쪽 2층집, 198번지.. 이층 위로 거대한 전망대가 올라 섰구나…

이 활달한 느낌의 이민우 후배가 이번에는 사진과 짧은 video file을 보내 주었다. 사진은 high resolution 가회동 골목의 모습을 담았고, 비디오는 ‘북촌계동’ 으로 중앙중고가 있던 계동골목의 모습을 보여준다.  ‘북촌계동’ 비디오, 계동입구부터 중앙중고 교문근처까지 천천히 걸으며 찍은 것이다. 교문부근은 그런대로 알아 보았지만 계동입구는 100% 내가 기억한 모습이 아니었다. 100% 변한 것이다.

핵심은 역시 골목사진,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너무나 고화질의 사진이라서 거의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자세하기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민후 후배가 살았던 집, 195번지는 아마도 이희천 3형제가 살았던 그 집인 듯하다. 그 다음 집이 심술 맞은 수학선생 집 이원영이 살던 집을 것이다. 우리가 살던 집 198번지는 거대하게 2층 양옥으로 고급화 된 듯하고, 바로 앞의 한옥, 오자룡의 집은 전과 거의 같은 모습, 막다른 집의 홍윤표가 살던 집도 예전과 거의 비슷하고….. 와! 이런 기적이…

지난 밤에도 머리만 깨어있으면 가회동 골목의 사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time machine을 탄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 골목이 그대로 건재해 있을까? 그곳에서 보내던 그 세월들이 그대로 살아나는 환상에 빠지고 깨어나고 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진의 size [high resolution]가 워낙 크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골목 끝자락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아~ 역시 세월의 흐름은… 그곳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상가의 간판들이 보이고,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2층집은 거대한 구조물로 치솟아 있었다. 유일한 추억의 위안은 앞 쪽으로 남아있는 ‘전통한옥’들 뿐이었다.  궁금한 것 중에는 이곳에는 현재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옛날부터 계속 살았던 사람들은 없었을까…  이런 추억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나도 참 못 말리는 인간이 아닐까?

시원한 초가을, 카톡 레지오 주회합은…

초가을의 뒷뜰은 벌들이 가득히 모여들고…

아직도 파아란 이런 모습은 과연 언제까지…

예보처럼 아침은 빗방울이 떨어질 듯 말듯, 결국은 떨어지는 시원한 초가을 아침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많이 어두워진 이른 아침, 연숙은 역시 어제부터 잠으로부터의 고통이 계속되는지 못 일어난다. 불면증이란 것, 은근히 겁이 나지만 나는 어쩌면 이것에는 조금 자신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모습의 독특한 레지오 주회합은 언제까지 갈까

오늘 레지오 카톡 주회합, 조금은 기운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 아가다 자매의 건강에 대한 생각, 치매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듯한 느낌.. 시간문제는 아닐까? 그러면 따님까지 2명이 빠지게 되면? 허~ 다시 원점으로…

조금 더 편하고 음질 좋은 레지오 주회합을 위하여, 어제부터 부리나케 설치한 4년 전에 샀던, 멋지게 생긴 podcast, recording용 mic-audio system을 만지작거린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노는 것’ 역시 즐거움일 수밖에 없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갑자기 그 동안 편하게 쓰던 usb mic를 연숙에게 주고 나서, 그 동안 아깝게 방치되었던 studio 용 XLR mic를 꺼내 쓰게 되지 않았는가?  누가 알리오, 손에서 멀어진 기타를 다시 잡고 70/80 style oldies 취입을 하게 될는지?

 

오랜만에 ‘일단 살았다!’ 하는 안도감을 느끼는 소식이 왔다. Dr. S cardiologist  심장 전문의 심장 테스트 결과가 전화로… 은근히 걱정은 했지만 사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의 느낌이 그렇듯이 결과는 ‘전혀 문제 없다’는 것, 일단 전화로 들은 것이지만 우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순병원에서 염려를 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들은 좀 지나치게 과잉진단을 한 것은 아니었나? 일단 이것으로 오늘은 ‘즐거운 날’이 되었다. 자세한 결과는 뒤로 미루고…. 그래, 이제는 고혈압만 control하면 된다.

오늘도 혈압약 2알을 먹고, 깡으로 instant ‘stick’ coffee도 즐겼다. 그래, 내가 어떻게 그렇게 소심하게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전문가의 말은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현명하게 해독할 줄 아는 임형이 더욱 부러워져서 그에게 짧은 text message를 보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느즈막한 친구’를 잘 고른 것은 아닐까? 연숙도 부러워하는 눈치던데… 그럴까, 과연, 이 나이에?

Nine Eleven 19주년 하루 전

Nine Eleven 19주년 하루 전, 날씨는 그야말로 습기가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진, 따사하고 건조한 가을의 모습이었다. 지나간 몇 달은 99% 물기로 가득 찬 그런 불편한 시간들이었는데… 갑자기 잊고 살았던 이런 은혜로운 공기의 느낌에 다시 한번 자연의 은사, 그런 것을 느끼고 감사하기도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속으로 이틀째 가을아침 같은 날씨가 계속되는가? 진정 가을은 올 것이지만 거의 잊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건조한’ 대기권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흐르는 그런 여름, 올해 여름은 사실 다른 종류로 나를 괴롭힌 셈이다.

 

계속 필사를 하며 읽는 소책자, ‘연옥실화 煉獄實話’, 비록 어체가 고어 古語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지만 내용자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연옥의 존재 여부는 물론이고 연옥영혼에 대한 것이다. 실체, 실재, 실제로 나에게 다가오는데, 어떤 것은 ‘정말 이것이?’ 라고 반문을 계속하게 되지만 솔직히 이제는 큰 장애 없이 믿으며 따르고 싶다. 연도의 의미도 더욱 확실해지며, 우리 조상, 부모님을 위시한 가까운 영혼들이 더욱 가깝게 피부로 느껴진다.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싶고, 또한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

그 동안 거의 잊고 살았던 Teilhard Chardin의 이름을 우연히 다시 찾고, 지나간 몇 년간 심취했던 ‘희망의 영성적 논리’를 다시 더듬는다. 나를 기쁘게 하고, 살 맛나게 하는 미래적인 과학적 영성가, 떼이야르 샤르댕… 다시 한번 그분의 발자취와 철학에 심취해보면 어떨까…

오늘은 전 보다 갑자기 머리끝이 아찔해지는 blackout증상이 조금은 덜한가? 보통 정오가 넘기도 전에 이미 증상은 느꼈지만 전보다 덜한 느낌이 자꾸 든다. 벌써 deck repair를 시작했고 진행 중인데도 어제보다는 덜 피로한 듯하기도 하고… 어찌 된 일인가? 혈압약을 한 알로 줄여 먹기 시작했던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을 보면 몸이 적응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모른다. 모른다…

 

Rotten beam,, 완전히 떼어내고…

New 2 x 8 beam, sistering 되어서…

앞으로 10년은 걱정 없게…

 

얼마나 오래 잤던가? 오랜만에 깊은 늦은 낮잠을 잔 것.. 분명히 덜 느끼는 그 기분 나쁜 증세의 도움이었을 것이다. 조금 안심을 했는가? 사실 지난 며칠 나의 mortality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단 안심을 해도 되겠는가? 오늘 갑자기 deck repair하는 것이 손에 잡혀서 일사처리로 일단은 끝을 냈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idea, 든든하고 안전한 post를 더한 것이 아주 기분이 좋다. 웬만한 load stress도 이제는 걱정이 없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DPS (영화 Dead Poet Society] moment, 보는 시간과 위치가 평소의 것과 바뀌었을 때 느끼는 신기함, 신선함, 심지어 신비함..  오늘 아침은 시간이 바뀌었을 때의 case가 되었다. 난데 없이 7시에 일어난 연숙, 곧바로 산책을 하지고… 나는 다른 때보다 늦게 일어난 셈이어서 나의 아침 routine의 body clock에 혼란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로등이 꺼지지 않고, 햇빛이 구름에 가려있던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영적인 신비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순간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도 좋을 듯하다.  곧바로 연숙은 Sam’s Club으로 shopping을 간 극성을 보여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신비스럽고 아련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가로등이 아직도 안 꺼진 산책길의 느낌은…

Harbor Freight,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Japanese style hand saw 하나를 order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물건 한가지가 두 개나 온 것이다. 분명히 이들이 잘못한 것은 알겠는데,  가만히 있자니 조금 마음이 걸린다. 길에서 돈을 주웠을 때의 심정이라고 할까… 도로 보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쳐서는 결국 포기를 한다. 그것은 너무나 귀찮은 일이 아닌가? 아예 이것을 남에게 거저 주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줄까… 생각나는 것은 두 사위 Richard 아니면 Luke 밖에 없는데…

 

오늘도 조심스럽게 혈압약 부작용을 지켜보았는데 결국 잠깐 스쳐 지나간 듯하다. 그 여파로 deck의 일을 계속하려 했지만 엄청 자란 앞쪽의 잔디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전번에 order했던 edge trimmer string pack을 처음 test하는 기회도 되고 구름이 낀 날씨의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정신 없이 ‘모조리’ 청소를 한 셈인데… 조금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땀이 폭포처럼 등에서 흘러내린 것도 그렇고, 너무 피곤한 듯 느껴져서 쓰러져 Izzie (cat)를 옆에서 쓰다듬으며 골아 떨어졌다. 지난 며칠 연속으로 이런 깊은 낮잠은 느낌이 좋은 것이다. 나의 몸이 지난 몇 개월을 거치며 조금씩 밝은 곳으로 나오는가… 제발, 더 이상 건강문제로 고민하고 싶지 않은데… 내일은 또다시 기분이 안 좋은 ‘심장’쪽 test를 하러 가게 되었으니…

 

요사이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어느 지인 형제의 딸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남편에게 drug 문제가 있었다고…  2년 전 결혼식 때에 느낀  ‘사치스런  show’ 같았다는 것, 그 느낌은 그 이후에도 떨쳐버릴 수가 없던 사실이다.  또 다른 어떤 지인의 딸의 이혼과 더불어 어째 이렇게 ‘혼인성사’가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며,  우리 애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부럽게 보이던 이들 지인 모범 가정들이 알고 보면 우리 딸들에게 느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감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고 심지어는 우리가 더 성숙된 느낌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남편이 drug 문제가 있었던 것 말고도  신부는 친구의 남편과 일찌감치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이 되었다는 정말 삼류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이것은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사실이어서 웃음도 안 날 지경이다. 완전한 재연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과 우리 딸들에게 조금은 더 감사를 하게 되는 씁쓸함과 안도감이 뒤범벅이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그 동안 우리가 느꼈던 은근한  ‘부러움’ 같은 것,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좌절감이 남게 되었다.

이런 shocker로 인해서 우리 두 딸들에게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뀐다. 그래, 잘 자라 주었고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조금은… 비록 우리의 기대를 따르지는 못했어도, 이제는 그렇게 상관을 할 수 가 없구나… 특히 이런 놀라운 소식들을 감안한다면…

돌아온 생일과 잊고 싶은 추억은…

Come September! Rain shower… 올해는 단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3년 전 2017년 8월 29일에 일어났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 기념일이 또 지나갔다. 그 충격적인 사건이 이제는 정말이지 태고 太古의 느낌이 드는 이유는, 분명히 현재의 상황 Pandemic 까지 곁들인 탓일 것이다. 어쩌면 나의 경험적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을까? 올해와 내년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가톤 급 경험의 놀라움: dentistry,  annual physical checkup 등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내년에는 우리를 조금은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희망적인 것이 기다리고 있지만 더 이상 우울한 경험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카톡 레지오 주회합’을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이것은 조금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 정도라도 실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성모님께 조금은 덜 부끄럽다. 하지만 역시 진정한 레지오 다운 활동이 없는 것, 아직도 계속이 되고 있으니…

 

9월 1일, 연숙이 생일, 요란하게 아침에 걷자고 하더니 역시 불면증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생일을 맞아 그래도 큰 딸이 남편(아직도 생소한 표현)과 같이, Ozzie를 데리고 와서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 날이 가면 갈 수록 두 딸들이 자랑스러워진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이렇게 딸들이 엄마 생각을 하는 것,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고마운 것이다. 사위 Richard와 얘기하는 것, 화제를 탐색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공통화제를 찾게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사위’들을 대하는 것, 어색하기만 할 듯하다. 별 수가 없다. 그저 식구로 대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우리의 Primary doctors, 순병원의 젊은 여의사, 알고 보니 직함이 MD가 아니고 NP였다.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지냈지만 그 동안 의료계의 직함이 참 많이 늘어난 듯하다. 의사의 숫자가 모자라서 그런가…  한마디로 MD 와 RN의 가운데 위치한 의료인이다. 웬만한 primary care는 이들이 거의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약 처방부터 간단한 진료, 건강 check는 다 할 수 있다고…. 현재 나의 심장진단을 이 여자 ‘간호사/의사’가 했기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혹시 경험부족이나 훈련부족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이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지나간 몇 개월 동안 잊고 사는 것,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조용히 사라진 것. 사과의 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치통으로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치과의 부담’이 일단은 물러갔다는 사실을 자축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매일 새로운 입안의 경험들에 민감한 것도 ‘다 괜찮아지리라..’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요새 또다시 ‘어지러움’을 체험한다. 11시 이후가 되면 찾아오는 것, 어지럽다기 보다는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이것은 거의 분명히 현재 먹고 있는 혈압약의 부작용일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것 처음 경험하는 것이고 timing이 맞기 때문이다. 혈압을 재면 역시 110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까… 지켜보는 수 밖에…

 

요사이 ‘영적 독서’에 문제가 생겼나? 그 놈의 ‘바오로딸 출판사’ 탓인가? 이제는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나의 눈앞에 제일 가까이 나타난 것이  아것이다. 2016년에 나에게 들어온 4권의 책: Spitzer’s Quartet!

당시에 난독 random reading 으로 읽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언젠가는 꼭 ‘정독’을 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이 책들은 겉 표지만 옆에서 보아도 나에게 희망을 줄 정도로 나는 보물로 여긴다.

이번, 아니 오늘부터 새로 시작을 해 보자.

  1. Volume 1: FINDING TRUE HAPPINESS
  2. Volume 2: THE SOUL’S UPWARD YEARNING
  3. Volume 3: GOD SO LOVED THE WORLD
  4. Volume 4: THE LIGHT SHINES ON IN THE DARKNESS

자! 제1권, FINDING TRUE HAPPINESS, 로 시작을 해 보자!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도와 주소서, 꼭 이번에 이것을 모두 정독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