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人生의 黃昏期로…

장마처럼 온통 흐리고 빗방울이 이슬처럼 가끔 뿌리는 그런 날씨가 계속된다. 분명히 덥지는 않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겨드랑이가 땀으로 고이는 것은 싫다. 빠삭한 그런 건조한 공기를 느껴본 지도 몇 달이 지난 듯하다.

비록 어제 두 군데의 곳으로 나의 건강에 도전하는 것들을 해결하러 갔었기에 아직도 머릿속은 평안하지 않다. 한가지 커다란 결론은 이것이다. 나는 분명히 인생의 황혼기로 정확한 속도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도 100% 건강한 것이 절대로 아니고 그저 평균, 보통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경고… 이것은 냉정한 이성을 요구한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감정적, 감상적으로 빠지면 안 된다. 과학적, 이성적, 상식적으로 우선 대응하면 된다.

새벽 6시 이후의 어두움 속에서 나는 정말 불안, 우울을 느꼈고 결국 stick coffee로 손이 가고, ‘한번 만’ 하고 전처럼 잔을 들고 desk로 왔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맛을 잠깐 보고 갖다가 버렸다. 이런 조그만 것에서도 나는 현재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다. 불쌍한 나, 시라소니 병신…

 

오늘은 레지오 화요일, 참 세상 많이 변했다. 아침 9시 반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drive하던 것이 이제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아침 online 미사까지 하고 편하게 각자 집에 앉아서 카톡의 음성채팅으로 주회합 ‘흉내’를 낸다. 하지만 이 모임은 아주 심각한 것이다. 어디에서 모이건 상관없다. 우리 위에서는 사령관 성모님에 내려다 보시기 때문이다. 오늘로써 8월의 4번 주회합을 완료하였다. 조금씩 경험들이 생겨서 편해졌다. 이대로만 가도 큰 발전이다. 어떻게 하면 더 실감나게 할 수 있을까… 주일마다 활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 시련이고 도전이지만 불가능은 절대로 없다!

 

오랜만에 새로니가 Ozzie를 데리고 온단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나의 머리를 또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는 촉매가 될 것으로 바라고 있다. 절대로 가만히 앉아서 같은 생각으로 골머리 썩히면 나는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비가 잠시 가벼워진 때에 우리 둘이서 Ozzie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우산을 쓰고 갔지만 이 녀석은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신나게 뛰듯이 곳곳의 냄새를 맡는다. 우리 집은 이제 완전히 자기의 집같이 느끼는 모양이다. 고마운 일이다. 이 녀석 참 주인 잘 만나서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그래 편히, 신나게, 행복하게 살다가 그곳에서 다들 다시 만나면 얼마나 좋겠니, Tobey도 같이… 미안하다..미안해… 다른 영혼들도.

 

Ozzie the dog

Ozzie the dog

진짜 영성체, 성모님 감사합니다!

 

영성체,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잔뜩 긴장하며 찾아간 우리의 영적인 고향,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 주일 아침 8시30분 ‘진짜 onsite’ 미사,  Pandemic 이후 5개월이 넘는 긴 세월의 가뭄을 깨고 ‘진짜 영성체’를 하였다. ‘신영성체’가 아닌 ‘영성체’였다. 손에 성체를 받아 나의 입으로… 이런 것에 무덤덤한 나도 별 수가 없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의 손길!

모든 분위기가 좋았다. 당장 생각에 이 정도면 매주 이 시간에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성급한 결정까지 내린다. 물론 연숙도 대 찬성이고… 또한 8시 반에 온다는 조시몬 형제까지 곁들여서 일요일 오전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몇 명의 아는 얼굴들을 보고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역시 그 동안 알건 모르건 간에 정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 나온다고 하던 헬레나 자매가 늦잠을 자서 못 나왔다고… 이것으로 나는 이 가정에 평화가 조금씩 깃들인다는 성급한 진단까지 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온 김에 내쳐서 ‘운동, 운동, 운동’을 결심하는 연숙과 동네를 걸었다. 걷는 길에 B 선생 댁에 잠깐 들려 과일 box를 드리고 왔다. 며칠 전에 수박을 주시고 간 일,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 가정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희망은 아직도 줄지 않고 있다.

 

오늘은 정말 정말 오랜만(한 달?)에 조금 들뜨며 평온한 마음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제일 큰 이유는 나의 눈 앞의 광경들이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서 그랬던 것… Pandemic 전 일상적인 외출 후에 귀가하던 때의 느낌이었을까?

가회동 성당, Birdie Apartment

 

대한민국의 평화방송 online 매일미사에 낯익은 단어가 보인다. ‘가회동’이란 단어다. 이날 평일미사를 가회동 성당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놀랍고 반갑고 흥분이 안 될 수가 없다. 이 성당의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거의 즉각적으로 추억의 물결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의 가회동 성당의 입구에서 본 ‘서양인 성인상’들의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던 꿈도 있었던, 어린 시절의 고전적인 가회동 성당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값비싼 느낌’이 요란한 조화를 자랑하는 건물이 보인다. 그야말로 추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의 한옥은 무엇이고 오른 쪽의 갤러리, 화랑 같은 구조는 무엇인가? 내가 가서 직접 보기 전에 이런 원색적인 평가를 하는 것, 물론 의미가 없다. 그저, 그저 나는 1950년대의 베이지색 고딕성당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을 청소하러 work desk를 의식적으로 피하며 몸을 움직이는 일을 이곳 저곳에서 찾는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머리 속에 한가지가 머물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고 싶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골머리를 썩히지 말자. 덕분에 Birdie nest 9개가 완성되어서 기둥 위 하늘로 높여지고 이제는 오래 전 우리 집을 떠난 Eastern Bluebird의 파아란 생명의 모습을 기다려 본다.

 

Eastern Bluebird Apartment

Under construction

오래 전에 카펫을 제거한 후 노출된 흉한 모습의 중앙계단 main stairway를 결국 현재 편리하게 계속 쓰고 있는 whiskey barrel 이라는 재미있는 색깔로 (이미 porch 와 birdie nest에서도 썼던)  paint하기로 했다. Stain을 하려고 생각도 했지만 너무나 일이 많고 비용도 그렇기에 오래 전에 준범이 엄마가 권한대로 ‘paint하면 되요’라는 말에 힘을 입어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하기 전에 squeaky nail 문제를 screw로 단단히 고정을 시켰더니 훨씬 나아졌다. 자…이제는.. 페인트를 칠하자… 부디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cable/wire 잡동사니들…  결국 오늘 wire/cable rack을 설치,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던 그 수많은 비비 꼬인 wire/cable 들을 걸어 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무언가 되는가 봅니다.

 

조시몬 형제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레지오 협조단원 권면 생각이 들어서 거의 ‘장난 삼아’ 제안을 했더니 의외로 수락을 하니… 참, 세상이 이렇게 멋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레지오 (봉사) 권면 얘기만 나오면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인데… 참, 예전에 나도 그랬지만…  이곳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이 형제님,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도 매력적인 idea가 아닌가? 이 신심 좋고 성실한 형제가 레지오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나의 가슴속 깊은 곳의 평화의 샘에 혼란이 올 때, 머리를 식히거나 다른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고 할 때, 역쉬~~~ ‘classic’ TV drama 를 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임을 경험한다. 3년 전 ‘레지오 미친년’ 사건 때, 일본드라마 ‘하늘을 나르는 타이어’가 나를 살려주었다. 현재 나는 계속 이 평화교란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때에 나는 ‘하나무라 다이스케 花村 大介’ 라는 변호사 TV 드라마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우선 가볍고, 유머러스하고, 끝 맛이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 이런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Mortality, Blood Pressure Scare

지나간 여름 이즈음 때가 왜 그렇게 자꾸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 당시도 사실 걱정과 분노가 없었을 리가 만무한데… 참 세월은 묘하다. 지나가면 다 아름답게 보이니까… 임기를 모두 마치고 귀국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그래서 더욱 눈물겹도록 그리워지나 보다. 요사이 읽고 있는 구약의 예언서들이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드나… 어쩌면 그렇게 비극중의 비극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일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는 그런 것인가?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야 되는 것인가? 말을 들으면 되지 않나?

 

 

연숙의 혈압을 그렇게 ‘비웃던’ 내가 정통으로 한방을 맞았다. 내가 고혈압이라고? 말도 안 된다. 말도… 하지만 ‘과학적인 느낌’은 그것이 아닌 모양이니 문제다. 왜 이렇게 혈압이 올랐을까?  Dr. 안젤라,  귀여운 젊은 여의사[MD가 아니고 사실은 NP] 말이, 이런 상태가 꽤 시간이 끌었던 것 같다고.. 심리적인 것이 아니면 심장내과를 찾으라고 하니, 당황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 전혀 증상이 느껴지지 않으니 문제인가? 이것이 더 무섭다고 하는데… 좌우지간 일주일 약을 먹어보며 지켜보기로… 그때까지 차도가 없으면?

혹시 내가 염려했던 대로 2개월간의 치과의 도전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조금 챙피 해서 고백을 못했다. 그것이 원인이라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하여튼, 나도 나이의 도전을 하나 둘 씩 받기 시작한 모양… 치과부터 시작해서… 하지만,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는 건강하다!’ 라는 외침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혈압에 의한 나의 작은 shock mode는 시작단계이지만 어쩔 것인가? 이것도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를 하나? 우선 매일 test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오늘 것은 170대 선에서 약을 먹은 전후가 거의 같았다. 앞으로 월요일까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것도 역시 선배들이 많이 있으니까… 밝은 쪽을 생각하자. 그래 연숙이 말대로 나는 생각을 너무나 많이 하는 편이고 그것도 대부분 부정적인 쪽, 안 되는 쪽에 너무나 골몰하는 것, 나도 인정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습관들도 고칠 수 있을까?

이것과 연관해서 식습관에 조금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걸리는 것, coffee 같은 것을 우선 줄이거나 멀리하기로 거의 결정을 했다. 대신 물을 많이 마시자. 그리고 양이 점점 늘어나는 우리의 식사량, 연숙의 말대로 줄이는 것도 좋을 듯 하고, 내가 좋아하는 알코올 류는 가끔 하는 정도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이것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 볼 것이다.

결국 나도 ‘노인성’ 고혈압인가? 갑자기 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느껴지는 듯하다. 결국은 나도, 결국은 나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나는 심각한 것인가? 연숙이 역시 수호천사처럼 나를 돌본다. 고마워…. 연숙의 생각에는 아마도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물론 나는 인정 안 할 수 없다. 지독하게 지독하게 아프고, 고민하고, 슬프고 우울했었으니까. 그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어찌할 것인가? 약을 먹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통설인 것이고 변수도 많을 것이다. 약을 먹으면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관건은 나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내가 control할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는 제일 큰 과제요, 어려움이다. 근본적으로 근본적으로 나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어떻게 더?

Assumption & Liberation

 

¶  8월 15일, [대한민국]광복절,  [가톨릭] 성모승천 대축일…  하지만 근래에는 나에게 광복절보다 더 중요한 날이 되었다. 이날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의 삶이 끝난 후 육신이 하늘[천국]로 부르심을 받은 날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의무 대 축일이다. 올해는 [pandemic] 사정상 대성전 참례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online 대축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수동적인 참례라도 큰 걱정 [건강, 경제 등]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할 듯하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  교황의 무류성 [papal infallibility]을 배경으로 교회 교의 敎義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교회가 이렇게 선포한 것으로 우리들은 안심하고 교회 안에서 성모님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1 매일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묵주기도, 그 중에서 오늘을 맞아 영광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 올리심을 묵상합시다’ 의 의미를 더욱 일깨운다.

We proclaim and define it to be a dogma revealed by God that the immaculate Mother of God, Mary ever virgin, when the course of her earthly life was finished, was taken up body and soul into the glory of heaven.

오늘 live streaming으로 참례한 순교자 성당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참 좋았다. 큰 기대를 안 하면 이렇던가? 우선 이 방문신부님, 콧수염이 안 보이니 훨씬 보기가 좋았다. 미사 강론을 들으며 나는 눈물까지 흘렸다. 성모님의 고난 중의 희망, 코로사 사태를 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본받을 귀감 중의 귀감이라는 것, 가슴 속 깊이 그 성모님의 용기가 나를 일깨운다.

 

¶  어젯밤에는 밖에서 무언가 내리는 듯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과연 나가보니 약간의 이슬비가 내린 것이 보인다. 소낙비를 바랐건만 어째 이렇게 가랑비를… 아주 조금… 그래도 땅이 축축한 것은 정말 반갑다. 하늘도 모처럼 구름이 잔뜩 끼어서 비록 기온은 높더라도 시원한 느낌이다. 하루 종일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알고 보니 오늘 기온은 요사이의 그것에 비해서 무려 10도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늘이 말복 末伏인 것을 감안해서 분명히 최악의 더위는 서서히 우리를 떠날 것이다.

 

¶  S 아오스딩 형제, 참 줄기차고 변함없는 사람, 아침에 카톡 메시지를 보니, 운동하러 Stone Mountain Park에 가니 오늘 무슨 시위가 있다고 문이 닫혔다고 쓰여있었다. 참, 요즈음 들어서 이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주위의 시선에 상관없이 하며 사는 친구…  그래서 요새와 같은 pandemic 하에서는 이 친구가 사는 방식이 나보다 더 심리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닐까, 부러운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삶의 방식을 터득했을까, 이제 어떤 부분은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다.

 

¶  뜻밖에 집 뒤쪽에 사시는 고국동포 B 선생님 부부가  우리 집 앞문까지 와서 커다란 수박을 주고 가셨다. 물론 처음에는 귀찮아서 door bell 을 무시했는데 또 역~쉬 연숙의 기지와 용기로 큰 실례를 피할 수 있었다.  귀찮은 sales person일 것으로 생각을 했기에 그런 것이지만 가끔 이런 예외도 있긴 하다. 참, 앞 뒷집으로 산지 거의 30+ 년이 가까워 오는 이 인연, 하지만 참 멀게 살아온 야릇한 인연인가? 언제나 나는 이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훨씬 가깝게 인생말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는 후회가 남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하며 생각하지만 당장 눈 앞에 안 보이고 잊게 되는 정말 이상한 관계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술도 같이 하고 식사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 기다린다.

 

  1. 개신교 형제들, 무조건 반발하기 전에 심각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대화를 하면 어떨지…

우리에게 실존적 레지오 마리애는…

머릿속이 아주 혼란한 새벽 잠을 잤는데,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면서 조금 안정이 되었다. 레지오와 우리의 인연, 관계, 의미 등을 역사적으로 회고할 기회가 되었는데 과연 지금이 큰 변화가 온 그때인가 그것이 괴로웠다. 이 정도면 과분하게 은총을 많이 받았다고 자부하는데, 그것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 온통 받은 것 투성이인데, 이대로 그대로 영원히 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용서 못할 두 인간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고,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우리에게도 평화가 있어야 하니까..  레지오에게 받은 것 정말 많고, 그 만큼 우리도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으니까 후회를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끝을 내는 것,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우리의 그리스도 신비체인 성당공동체에서의 모습이다. 신앙적인 뿌리가 약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레지오와 못지 않게 우리를 이끌어 줄 ‘더 나은’ 신심활동거리가 그렇게도 없는 것일까? 우리가 너무 레지오 속에서 근시안이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정치적인 마찰이 가장 적은 곳, 그런 곳을 찾으면 어떨까?

우선 요새의 사태로 레지오가 모이는 기회가 적으니까, 연말까지 큰 결정을 하는 것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성경통독을 하면서 나의 머리를 일깨웠다. 그렇다. 우선 시간을 벌어보자. 연말 즈음 꾸리아 단장 선거까지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성모님이시여,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드디어 결정의 시간이 왔다. 꾸리아 부단장 선거에 ‘그 인간’이 들어올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니, 우리가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전부터 그 인간의 얼굴을 다시 꾸리아 간부자리에 앉게 되는 사태가 오면 그때가 레지오를 쉬거나 완전히 나올 때라고 …. 이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모르겠으나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는 큰 후회가 없다.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이 제일 가슴이 아프다.

성모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신 듯하다. 오늘 연숙의 우려를 이기고 R 자매가 안정적으로 간단하게 ‘인간’ W 를 뿌리치고 당당히 부단장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거취는 조금 여유를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연숙에게는 너무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비록 지독히 더운 하루였지만, R 자매의 결정적 승리로 우리는 오랜만에 가볍고 흥분되고 기쁜 마음으로 저녁기도까지 ‘반납’하고 이날을 축하하며 보냈다. 왜 이 정도로 우리는 기뻐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위상, 실존적 의미, 가치가 그만큼 심오하게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자신도 놀랄 정도니까… 문제는 언제까지… 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성모님 자신이 아실 것이고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그날까지 그날까지 뒤를 안 보기로 한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서서히 돌아오는 묵주기도

 

산뜻하고 건조한 느낌의 이른 아침, 전날의 그 끈적거림이 어쩌면 밤새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이것이 이런 한여름을 건너가게 하는 비밀인 듯하다.

어제는 정말 정말 오랜만에 묵주기도 20단을 달성하였다. 책상에서 하는 15단과 저녁 가족기도 5단! 이것이 오래 전에 우리가 하던 올바른 생활의 원동력 비결이었다. 그 동안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던 이 ‘삶의 비결’이 레지오 주회합 재개 再開 의 도움으로  결국 우리 앞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이제는 가급적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으면….

 

가끔 주고받는 카톡, 특히 그 동안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의 ‘문자 통화’, 요새는 정말 서서히 맥이 빠지는 듯한 것이다. 며칠 전 이 목사의 ‘짧고 퉁명스러운’ 한 마디의 회답은 실망적이었다. 그 양반의 성격과 됨됨이는 잘 알지만 어쩌면 그렇게 목사인 사람이 퉁명스럽고 차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그에 비하면 사귄 역사도 짧은 임형제의 문자는 참 정이 넘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비록 응답이 꽤 늦기는 하지만…

 

어제 porch floor painting의 여세를 몰아서 조금 더 tool shed를 정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 머리를 굴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 나에게는 별로 큰 효과가 없다. ‘무조건 손을 대는 것’ 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거의 3년이 지나가고 있는 desk 옆에 있는 main bookshelf, 아직도 정리는 고사하고 손을 댄 적도 없다. 이것이 정리가 되면 조금 기분도 달라질 것 같아서, 오늘 불현듯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과는 미지수지만…

레지오 주회합 재개

 

드디어 8월 첫 화요일이 되었다. 화요일, 화요일, 레지오 화요일… 5개월 이상 잊고 살았던 화요일아침의 성당행 drive.. 하지만 오늘부터는 편하게 집에서 카톡 음성채팅으로 ‘약식 주회합’을 시도했다. 우선 ‘가상 주회합’, 이런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커다란 심리적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주안점이다. 활동 내역 보다는 모두 음성으로나마 성모님 군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확인하는 데에 큰 의미를 두자. 과연 어떻게 이것이 진행될 것인가.. 사실 나 자신도 궁금하기만 했지만…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우리 자비의 모후, ‘약식’ 주회합, 서로의 음성을 느끼며 실제로 모여서 하는 것에 못지 않은 기쁨으로 무사히 기도를 나누었다. 특히 신 단원 카타리나 자매가 있었고, 안나 자매님이 묵주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첫 번째가 이 정도로 큰 문제가 없어서 앞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큰 걱정을 안 해도 될 듯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는 가가 제일 큰 관심사다. 이제는 화요일에 이런 중요한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조금 생기가 나고 사는 맛도 느끼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

이제 불현듯 중지 되었던 것, 레지오, 그것이 일단은 정상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나으면 나았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고 일주일 우리의 생활에도 조금 활력소가 가미 되리라 희망한다.

온라인 미사 유감

오늘 평화방송의 매일 online 미사, 누구의 탓인가? 양쪽 모두 문제가 있나? 어쩌면 미사를 그렇게 장례미사를 연상하게 하는, 괴로울 정도로 느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미사해설자는 마치 우리의 폐활량 훈련을 시키는 양 ‘기록적’으로 느리게 느리게,  집전신부님은 그것에 맞추었는지, 아니면 경쟁이라도 하는지 정말 정말 쳐지고 느리고…  정상적이면 25분이면 끝나는 것이 35분이 훨씬… 도대체 미사란 것이 무엇인가? 영어로는 흔히 celebration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장례식처럼 하는가? 그렇게 엄숙하고, 가라앉는 기분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매일 매일 각종 모습, 말투, 언동의 집전자를 경계하면서 마음을 졸이지만,  그것을 미리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한마디로 ‘정말 사람들 예의, 배려, 감각이 없다’…

어제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online 주일미사, 이제는 구면인 방문신부가 집전을 한 것은 큰 뉴스가 아닌데, 나는 미사에 집중해야 될 머리 속에서는 갑자기 무엇인가 다르게 보이는 집전자의 ‘얼굴모습’ 으로 차있었다. 원래 이 신부의 hairstyle에 대한 거북함이 일었는데 이번에는 난데 없이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 허~~ 또 다른 잡념이 머리를 흔든다.  함께 머물고 있는 거주신부의 ‘해괴한’ 영향을 받았나…  콧수염이 잘 어울리면 큰 문제가 아닌데… 암만 보아도 이것은 distraction의 모범 case인 것이 문제다.

이천이십 년 팔월을 시작하며…

오월 초부터 성경통독 일정표를 online 주보에서 clip & print 를 하던 것도 벌써 4 개월 째? 1월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읽는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의 ‘성경통독’, 이제는 습관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도 생애를 통해서 한번도 읽지 않았던 구약의 구석 구석 부분을 매일 읽는다는 것, 그렇게 싫지도 귀찮지도 않지만 즐겁지도 않다. 그저 덤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 그리고 올해 말이면 그래도 배당된 것을 읽었다는 것, 하지만 누가 아랴? 한 문장, 한 글자에 나의 지치고 굳어진 깊은 속에 그 무엇이 던져질지?

8월 1일, 이제부터는, 몇 개월째 주회합을 못하고 있었던 레지오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너무나 방심, 무심, 무관심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게을렀고 귀찮고 그런 것이 더 큰 이유였는지도… 다른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형식적으로나마 계속 주회합을 한다고 어제 연숙이 꾸라아 단장과 전화 후에 알려주었다. 조금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왜 없었으랴? 어떻게 다시 주회합, 활동 등을 재개하는가 하는 것, 우리에게 알맞은 방법이 나오겠지.

지난 주말에 ‘선언’했던 우리의 ‘여름휴가’가 어제로 끝나고 오늘부터는 정규 스케줄을 따른다. 그것이라 봐야 평화방송 매일미사, 매일 저녁 가족기도, 동네산책, 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대단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한결 하루가 쉬었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무슨 변화’를 느낀 것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만 추구하며 살 수는 없다.  할 것은, 중요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해야 한다.

아침 일찍 땀나는 것을 각오하고 앞 뜰의 잔디를 깎았다. 날씨가 덥긴 해도 습기가 조금 가시고 바람이 산들거리고 있어서 일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고 덜 피로하였다. 무섭게 정글처럼 자란 잡초들을 치우고 보니 집이 조금은 덜 피로해 보인다. 거의 끝 무렵에 결국 string trimmer의 rotor cover가 닳아 떨어졌다. 약간 panic을 했지만 (왜 나는 이렇게 이런 쪼잔한 것에 연연, 걱정을 하는가?) 곧바로 replacement part를 Amazon.com 에서 찾아서 order를 하려 한다.

송승환, 한진희, 정윤희, 또 두 명… 와~ 어떻게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고 알고 있었던 2명의 talent의 이름을 잊었단 말인가? 알았다, 한 명! ‘이일웅’! 또 한 명은? ‘미스터 파지’라는 별명은 기억이 나는데…이들은 나의 기억 시대의 후반부 (이일웅+ 제외하고)의 유명인들이다. 나의 시대는 역시 1966년부터 1973년 까지니까… 그 이후는.. 또 기억이 났다! ‘이낙훈’! 이낙훈이다. 이 두 명은 물론 내 시대의 인물들이다. 송승환은 아역 때, 정윤희, 한진희는 기억의 후반의 유명인이다. 이들이 나오는 KBS 문학관 ‘어떤 여름방학’을 본다. 편하게… 편하게… 시원하게..

Echinopsis

오늘, 여덟 개의 꽃 중에 여섯 개가 만개를 하고 있다… 어제 핀 두개는 다시 동면으로…

 

올해도, 기다리던 꽃이 피었다. 일년초가 아닌 바로 올망졸망한 귀여운 선인장 무리의 꽃이. 지나간 2년 동안 간신히 힘겹게 하나의 꽃을 안간힘을 쓰며 피워내던 그 꼬마 선인장이 올해는 무려 여덟 개의 꽃봉오리를 우리에게 선사를 하고 있다. 그 고맙고 귀여운 선인장의 이름이 Echinopsis 과 科 genus의 일종임을 이번에 알게 되어서 더욱 친근감과 정이 흠뻑 간다. 

Wikipedia에 의하면 (믿을만한 source)  이 선인장의 학명이 아닌 속명으로는: hedgehog cactus, sea-urchin cactus, Easter lily cactus임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재롱을 부리며 피어난 귀여운 선인장도 이 이름을 가진 것 중에 하나일 듯하다.

나는 아주 흔한 꽃 이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이쪽으로는 무식한 편인데 ‘뜰의 기운’을 너무나 좋아하는 연숙의 영향으로 조금씩 관심도 갖고 알게도 되었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수준 이하라고 자인을 한다.

하지만 이 선인장은 조금 달랐다. 나의 관심이 유별나게 간 것이다. 2년 전에는 사진까지 찍어 놓았고, 작년 것은 나의 website: serony.com 의 summer 용 head art로까지 쓰게까지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시대, 세대, 그리고 환경의 동물인 모양이다. 내가 이런 것에 눈이 열린 사실을 보면…

 

작년 8월 중에 유일하게 하나의 꽃이…

 

그러던 차에 COVID-19,  STAY-HOME curse의 철퇴를 맞게 되고,  더욱 주위의 자연환경에 눈이 가게 되던 차에… 다시 그 선인장에 꽃봉오리가 기지개를 피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둘은 ‘복권 추첨’을 바라보는 양, 매일 매일 보게 되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활개를 친다고 해도, 이 선인장은 반발이라도 하듯이 하나가 아니고 무려 여덟 개나 되는 귀여운 봉오리를 위로 밀고 있어서, 아마도 주문진의 말린 오징어처럼 처져가는 우리들에게 사기를 돋구어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선인장의 역사를 연숙에게 알아보니, 역시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누어주는 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을 흠뻑 받고 우리 집에 선물로 온 것, 역쉬~~~  우리의 한국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고참, 바울라 자매님이 개인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면서 꽃 관리에 정성을 쓰는 연숙에게 선물로 주신 것. 참 새 주인을 잘 골랐다는 느낌이다.

이 선인장을 학명으로 추적을 하면, 이 과에는 무려 128 종류가 있고,  특별하게 꽃이 피는 시기가 따로 없고, 그저 ‘조건만 좋으면’ 수시로 필 수도 있다고 한다. 원산지가 남미 쪽이고 비교적 건조한 조건에서 자라지만 우리 쪽의 환경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고운다습’한 편이라 이렇게 일년에 한 번 정도 애들 태우며 기다리게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시로, 쉽게 피면 이렇게까지 귀하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예년의 기억으로 며칠 (아마도 하루?) 정도 잠깐 멋을 부리다가 곧바로 지는 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 기다리고, 고맙고, 아쉬운 모양이다. 이제는 내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의 세상(COVID-FREE) 에서 살게 될지…

 

올해, 무려 여덟 개의 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

꽃 망울이 거의 피기 직전…

첫 두 송이의 꽃이 선을 보였고…

Yesteryear, July

 

Yesteryear…  요새는 가끔 지나간 해의 달력일지를 훔쳐본다. 지난해 이즈음에는 과연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이런 것도 요새처럼 시간이 넘칠 때는 time killer로 으뜸가는 것 중에 하나다.

이것들을 보며 예상보다 훨씬 격심한 변화가 있었음을 절감하며 한숨을 쉰다. 올해의 대부분이 너무나도 개인적이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변해버린 것, 물론 어두운 쪽으로 변해버린 것. 비록 현재의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조금 더 위에서 바라보니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의 일상을 보니, 비록 거의 고정적인 일상 routine이었지만 엄청 바쁜 세월들을 보냈음을 알게 된다. 일주일을 너무나 짧게, 바쁘게, 보람 있게 살았던 것, 그때가 그리워진다.

주일인 일요일에는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성당에서 ‘진짜 미사’를 보고, 우리들의  성당 친목 모임 ‘등대회’에서 동년배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레지오]특강도 있었고 모든 주일일정이 끝나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성당근처의 단골 집들, ‘동네방네 [한식점]’ 나 운동장처럼 널찍하고 시원한 Mozart Bakery에서 향기로운  coffee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마감하기도 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고정된 스케줄이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동네성당 Holy Family CC의 아침미사,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Sonata CafeYMCA gym workout이 있었고, 화요일은 절대로 예외 없이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30분 드라이브, 레지오 주회합이 있었고 그날 정오에는 그곳에서 정오미사. 그 후에는 자주 채 형제님, 신 자매님댁, 손 형제님댁으로 봉성체 봉사를 했었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Rosewell Nursing Center 방문을 해서 Parkinson 병으로 고생하시는 두 자매님들을 만나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거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시계처럼 돌아가는, 거의 정해진 ‘과제’들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은총의 시간’이다.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봉사, 선교, 친교’의 시간들은 현재 우리 주임, 이영석 신부님이 주장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 인 것이다. 이것도 ‘중독성’이 있는데, 물론 세속적 의미의 중독과는 정 반대쪽의, 사실은 은총이다.

그것들이 지금 거의 5개월간 완전히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우리도 이 참에 좀 쉬자’ 라는 자세로, 심지어 즐기는 기분으로 지났지만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신경질이 나기 시작하고, 현재는 약간 우울감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다. 제일 관심사는, 내가 게을러졌다.. 라는 자책감이 과연 정확한 진단인가 하는 것이다. 제일 괴로운 것은, ‘언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하는 불확실성이다.  기도와 묵상,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일상생활, 그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참, 어쩌다가…

 

Crashed Website, 괴로운 여름…

터줏대감 Izzie, 삼복더위에 오수를 즐기다가…

Crashed Web: 귀찮고, 골치 아픈 경험을 한 며칠이 되었다. 나의 website가 start가 안 되는 것이다. Serony.com site에  critical error가 나오는 것이다.  2014년에 한번  이런 일이 난 것을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처음이다. 이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어디에서 출발을 해야 하는가?  밤새 잠을 설쳤다.  결론적으로 WORDPRESS memory allocation problem으로 시작된 것이라서 고치는 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이번 사태를 보고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것들 이제 조금씩 싫증이 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이런 것들과 씨름을 할 능력이 있겠는가? 예전처럼 debugging, repair하는 것 보람도 없고 능력도 떨어진다. 그저 머리가 돌아갈 때까지 노력할 뿐이다.

이번에 일어난 과정을 정리해 보면:

  1. ‘serony.com/ken’의 main landing screen이 crash, frozen 되었다.
  2. Youbube의 hint, tip들을 보고, 모든 wordpress plugins들을 reset했지만 소용이 없음.
  3. Set-> @wp-config.php: set ‘define(‘WP_DEBUG’, true);
  4. Now, start screen shows: Fatal error: Allowed memory size of 41943040 bytes exhausted (tried to allocate 1056768 bytes) in /home/serony5/public_html/ken/wp-includes/wp-db.php on line 2024
  5. Set->@wp-config.php: set add ‘define(‘WP_MEMORY_LIMIT’, ‘256M’) (right after define(‘WP_DEUB’, false);
  6. Now, main startup page opens correctly! Yeah!
  7. Reset ‘define(‘WP_DEBUG’, false);

 

습기로 가득찬 대기,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로 밭에 물을 주어도…

비록 억지 여름휴가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신선하게 즐겁게 둘이서 걸었다. 올해 여름의 기억은 아마도 ‘물 water’ 밖에 없을 듯… 어쩌면 이렇게 습기가 하늘에 차있는 것일까… 올해야 말로 a/c가 없으면 잠을 못 잘 듯하고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어제가 중복이었고 이제는 입추를 향한 행군을 기다려보자.

연숙과 둘이서 오랜만에 걷고 들어오니 마음의 평정이 서서히 돌아온다. 역쉬~~ 우리 어머님과 성모님이 우리의 손을 잡고 계시고 있지 않은가? ‘힘든 일, 골치 아픈 일’을 피하려고 나는 계속 Bishop Barron’s whitebook에 매달리고 있다. 이렇게 편안하게 읽혀지리라고 2년 이상을 미루어 왔던가? 이번에는 필사 typing 를 하며 읽기에 보람이 더 크다. 이것도 하루나 이틀이면 다 끝난다. 정리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여름의 어느 날…

내일이 중복! 시원한 아침을 맞는다. 풀밭은 촉촉하고 하늘에는 습기가 거의 안 느껴진다. 내일이 중복이란다. 그래 우리는 여름의 한 가운데를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8월이 코앞에 다가온다. 그래 이것이 인생이고 삶이다. 항상 들뜬 기쁨이 계속되는 것은 환상이다.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또 올라가고…

일주일의 ‘여름휴가’를 나 혼자 일방적으로 선언을 했지만 무엇을 쉬어야 할지 참 나도 웃음이 나온다. 별로 없다. 기껏해야 저녁기도와 매일미사, 산책하는 것 정도다. 그것을 쉬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실 큰 변화니까 휴가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갑자기 먼~~ 곳으로 차를 타고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Smokey Mountain도 생각했다가 갑자기 겁도 나고, 가까운 곳, Redtop Mountain 도 생각하고… 하지만 여기서 생각이 멈추어 선다. 그 정도로 나는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질 못하다. Stone Mountain을 수시로 ‘산책’ 간다던 임형의 부지런함이 부러워진다. 이제 곧 사람들과 만나야 할 것이 생각되면 우선 움츠려 든다.  그 동안 너무 편한 삶에 젖어버렸나? 10년 전 내가 연숙을 따라 성당에 다시 나오기 시작할 당시가 자꾸 생각나고… 결과는 거의 기적에 가까웠지 않았던가? 상기하자… 그때를… 다시 일어서서 나가보자..

 

Overhead Lighting위치를 맞추는 것, 정말 시간이 필요한,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꿈 속에서 그리던 모습, 이제 실현이 되었다… 만세!

거의 30년 가까이 우리 가족에게 바람을 service했던 ‘일제’ ceiling fan, Thanks a lot!

Desk Lighting: 결국은 desk light를 달긴 달았고 현재 익숙해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결과는 생각만큼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쓸만하긴 하다. 책상 위가 넓어졌으니까..  다음 task는 물론 fan이 없어진 자리를 어떻게 다른 light로 채우느냐 하는 것, 목표는 $$를 안 쓰거나 최저로 하고 나의 ‘재주’를 쓰는 것, 그것이다. 빠른 속도로 fan light자리의 lighting을 구상, 설계, 조립하고 있다. 원래의 fan은 하도 깨끗해서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모두 해체를 해서 사살상 폐기하게 되었다. 역쉬~~ 일본 아해들이 만든 것… 잘 만들었다. 우리 집 family room을 굳건히 지켜온 것, 아쉽지만 family는 이제 다 자랐다. 나의 study room에 맞게 살면 된다.

 

Get a Life! 이 말이 왜 오늘 떠오른 것일까? 연숙이 모처럼 나보고 들으라고 Youtube 의 한국 열창가요를 틀어주었다. 나보고 요새 고국의 것, 너무 좋다고 누누이 강조하는데, 나는 물론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린다. 나는 과연 open mind인가 closed, retarded인가? 왜 그렇게 요새 것을 나는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피하는 것일까? 나는 요새의 세상을 절대로 제대로 감상하고, 즐기며 살지 못한다. 나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그것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싫은 것, 계속 피하는 것, 과연 옳은 것이 아닐까?

교성이로부터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어찌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그 녀석 정말 나한테 화가 난 것일까? 이번엔 나도 화가 나서 대화를 당분간 끊어 버리고 싶다. 왜 내가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한 것일까?  교성이의 ‘해괴한’ 짧은 말끝에 나는 마음이 너무나 상한 모양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늘을 우러러 보고 생각해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 그런데… 나의 느낌이 무언가 그 녀석의 심사를 뒤틀리게 해 놓은 죄책감이 괴롭힌다. 너무나 아는 체를 했는가,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었나? 잊자, 그래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있으니까,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

 

늙어감을 느낄 때: 나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역시 나는 늙어가고 있고 아니 늙었다는 자괴감,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잘 모르는 나의 모습, 어떨 때는 희망도 솟고 하지만 대부분 내 상상 속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련다. 어쩔 수가 없다. 나의 거울은 연숙이다. 연숙이 불쌍하게 안 보면 그것으로 OK다. 

초복과 중복의 사이에서…

초복이 지난 습기찬 한여름… 뒷뜰의 모습은 너무나 평화스럽고 한가한가…

 

정교성 파스칼!  드디어 교성이와  5년 만에 통화가 되었다. 그 동안 왜 연락이 두절되었는지 추궁을 하려던 나는 그 녀석의 얘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잊었던 것이다. 얼마 전 사진으로 본 바에 의하면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사실을 알고 보니 몇 번의 수술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것, 게다가 현재도 근육무력증으로 거의 못 걷는다고… 20가지의 약을 매일 먹는다고…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이혼을 해서, 현재는 작은  딸 집에서 산다고… 이거, 드라마 연속극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이런 무시무시한 소식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교성이의 음성을 나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망망하기만 했다. 동정을 하나, 놀라기만 하나, 위로를 해야 하나… 지난 5년 동안 그런 엄청난 일들을 겪었을 줄이야… 문제는 지금의 상황인 듯, 몸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듯하고, 더 나아질 가능성은 불투명하니…

지난 5년간 너무 힘들어서 주위 사람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같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중앙고 동창 이희진과는 연락을 끊지 않았다고… 과연 이 녀석의 건강상태는 어떤 것인지 확실치 않다. 생활이 불편한 정도인지, 심각한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얘기에 의하면 후자인 듯한데.. 목소리와 사진모습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연락하는 것과 기도 밖에는 현재 없다.  이런 때, 오늘 성경통독은 시편 23편이었다. 이럴 때 이 구절은 조금 위안을 준다.  교성아, 힘내!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초복 初伏이 지나고:  요즈음 나는 ‘의도적 게으름’을 즐긴다. 움직여서 땀이 나는 것을 나는 가급적 피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yardwork도 포기한 셈이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양반 축에 속한다. 오후 2시 반에 90도가 안 된 것이 이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확실히 물기가 덜한 공기를 느낀다. 초복이 언제였나, ‘국산 달력’이 없으니… 아하, 레지오 수첩을 보면.. 그곳에도 없다. 어차피 순교자 성당 달력에나… 아니다 연세대 달력에 있다. 지난 16일이 초복이었고, 26일이 중복, 그리고 8월 7일 입추, 8월 15일이 말복이다. 이제 서서히 가을이 먼 곳에서 나를 기다린다.

 

초복과 중복 사이의 특유한 즐거움, 마가리타!

Overhead Lighting:  2017년 가을부터 나의 진지 陣地가 된 곳이 아래층의 family room, 지금은 나의 서재, study가 된 곳이다. 이곳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게다가 이제는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들이 쌓여간다. 특히 pet dog Tobey를 하늘로 보내던 것을 포함해서… 단, 이곳에 문제가 있다면 desk lighting이다. 지금 것은 원래의 ceiling light인데 desk을 잘 비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나의 머리 바로 위에서 비추는 것 hanging light다.  그러면 현재의 desk stand light를 치우고 그 자리를 내가 더 쓰면 좋은 것이다. 이런 idea를 몇 년이나 끌었던가… 드디어 지금 거의 그 일을 끝낼 준비가 되었다. 

 

KBS 문학관, Big Download: 지루하지만 기대감이 넘치는 작업, Big YouTube download! 그 중에서 지금은 얼마 전에 발견한 ‘거대한 시리즈, KBS 문학관’이란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있다. 이것은 문학이란 제목과 맞게 문학작품 그러니까 소설을 드라마화 한 것이다. 놀라움은 거의 10년 동안 매주마다 방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나 그 이전의 한국문학작품이 소재이며, 80년대의 대표적인 TV 탤런트, 배우들이 총망라된 것이라 나에게는 다른 의미를 준다. 우선 80년대 당시, 이전의 한국문학의 얼굴을 보며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연예계, 배우들을 다시 보거나 새로 보게 되는 등, 나에게는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의 대한민국 80년대 문화사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거의 200여 편의 drama video file을 download하는 것, 과연 보람이 있을까?

 

 

반갑다, 정교성 파스칼! 평창이씨 울진종친회

어제 내가 만든 breakfast, 이제는 이 정도는 눈을 감고도…

잘 하면 캐나다의 오랜 ‘형 같은’ 친구 교성이1와 다시 연락이 될 듯했다.  고교, 대학 동창 양건주의 배려로 다른 친구 김원규가 다리를 놓아서 교성이 email을 알아 냈기 때문이다. 그 녀석 예전에는 그렇게 컴퓨터, 인터넷이라면 두드러기가 돋더니 별 수가 없이 이제는 email 을 쓰는 모양이다. 이번에 다시 연락이 되면 어떤 소식들을 들을 수 있을까… 소식이 끊긴지 도대체 몇 년이나 되어가고 있나?

그러던 차에 드디어 교성이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역쉬~ 그 녀석의 연락처가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전화, email 아마도 주소도 변했겠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녀석 나의 연락처가 변했다고 우기는 것은 아니겠지. 이제는 digital tool을 제법 쓰는 느낌이 들어서 기대가 된다. 한글 카톡을 잘 쓸 줄 안다면 금상첨화겠지…

 

아침에 email Inbox를 보니, 평창 이씨 관련 글이 들어와 있었다.오래 전,  내가 평창 平昌 이씨 李氏를  공부하던  중에 발견했던 ‘울진종친회’ website 와 그 site에 있던 ‘Excel format 족보’에 관한 것인데… 그것을 만드신 분의 아드님이 보낸 것으로, 그 아버님께서 우체국에서 은퇴한 후에 손수 만드신 것이라는 사연이었다. 그 Excel format의 족보는 후에 자주 참고하던 중요한 자료였다.  이 ‘아버님’은 짐작에 나이가 우리 정도나 아니 나보다 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꾸 평창 이씨 라는 글자를  다시 보게 되는 것, 정말 나는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천주교 선조 이승훈 베드로 할아버지, 나의 뿌리, 나의 아버님들…..  나는 자랑스런 평창이씨의 후손임을 새삼 감사한다.

 

드디어 알았다! 그 놈의 귀찮은 French & European Accents! 불어, 독일어 글자만 보면 우선 typing을 하기가 싫어졌고,  그 이유는 우선 발음을 하기가 거북하고, 전혀 모르는 spelling에다가 설상사상 수시로 튀어나오는 요상한 accent 기호들… 이것들 어떻게 typing을 하는가? 귀찮게 symbol search로 시간이 걸려 넣을 수도 있지만 한 마디로 피하고 싶은 것… 하지만  Windows 10의 IME 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soft keyboard가 있었고 그 중에서< International English> , ‘not <US English>’ 대부분의 기호들이 two keys 로 해결이 되었다. 이 Windows의 language input 쪽을 더 공부하면 아마도 다른 언어를 typing하는 것도 훨씬 쉬울 듯하다.

 

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방문신부님[이름이 뭐더라?]  집전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난 주중 매일 미사를 이틀이나 ‘개인적 사정’ 으로 못했던 원인이 궁금했었는데, 역시 예외적인 것이었다. 놀랍게도 Duluth소재  자매 성당에 코로나 감염자가 생겨서 사제관 사제들이 모두 검사를 받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 역시 이것은 비상적, 응급적인 상황이었다. 사제관 [사실은 개인주택]에서 모두들 같이 거주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니~ 그곳은 한 “별난 신부”가 유별나게 조심한다는 소문이었는데 어찌 된 것인가? 이제 그 유명한 바이러스가 우리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온 것을 느끼게 되었다.

 

냉면으로 포식을 한 후의 낮잠, 그리고 일어나 ‘달콤, 고소’한  stick coffee..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요새의 잠은 전과 다른 것이 있다. 비록 고통이 사라지고 꿈이 돌아온 것은 좋은데… 오래 전과 같은 그런 ‘깊은 잠 의 느낌이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이 정상일까? 하지만 상관 없다. 편하게 잠을 ‘잤다’는 것에 만족하면 된다.

  1. 중앙고 동창, 4.19이후 대한민국 제2공화국 총리 장면박사가 외삼촌 인 관계

한 여름 밤의 꿈

 

어제 새벽녘에 꾼 긴 꿈,  Ohio State U. 시절의 유근호 형도 보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았다. 그들은 누구들일까? 그곳은 어디였을까? 그 가까이 보았던 여자들을?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그저 ‘그립다’라는 생각만 나는 꿈을 꾼 것이다. 확실히 나는 꿈을 다시 꾸기, 즐기기 시작하고 있다. 좋은 것이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혹시 나를 살려준 성모님도 보게 될지 누가 알랴?

 

요새 하늘을 가득 채운 무서운 습기가 조금 가신 아침, 문제는 바람이 전혀 없다. 공기가 그야말로 ‘정체, 침체’된 것을 본다. 이래서 끈끈하고 습하구나.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 들어간 Water tank를 흔들어 보니…와~ 드디어 확인한다. 무거운 것이다. 물이 꽤 많이 찬 모양… 그리고 아직 그렇게 많이 새고 있는 흔적이 없다. 이런 상태로 water recycling을 할 수도 있겠다. Pump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ain water와 a/c water를 재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현재의 water tank는 사실 조금씩 물이 새던 것이다. 그래서 replace를 한 것이고… 하지만 조금씩 새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어떻게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큰 $$ 쓰지 않고, 나의 시간 적당히 이용하고…

오늘은 아마도 올해 들어서 제일 불쾌지수 heat index가 높았던 날이 아닐까? 기온이 92도가 넘고 상당히 높은 습도는 아마도 100도의 ‘불쾌지수’, 아니 요새는 ‘체감온도’라고 하던가? 아~ 더워도 좋으니 ‘빠삭빠삭 마른’ 느낌을 그립다. 하지만 그쪽으로 너무 가게 되면 ‘땅이 갈라지는’ 모습도 싫다.

요새의 극단적인 습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가? 좀 적응은 되었다만, 그래도 나는 신기한 듯 느낀다. 아~ 이것이 그 옛날 고향에서 느끼던 장마성 날씨, 그리고 농가에서 마루에서 잘 때 느끼던 그런 풍경들 을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 않다. 특히 1966년 경 여름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흥도에 피서 갔을 때의 추억도 삼삼하게 살아나오고… 그래 젊음은 그런가, 그 때는 정말 불편함을 몰랐으니까… 다 신났으니까…  아~ 왜 또 나는 이렇게 ‘날씨’에 연연하는 것일까? 아마도 요사이 내가 너무나 육신의 고통이 없는 평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다, 좋아…

 

COVID-19의 봄 여름을 가며 동네는 유난히 조용한 모습이다

Pandemic 동안, 아예 집 앞에다 tomato를 심는 사람들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은 일찍 동네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물론 ‘아침잠’의 연숙이 도깨비처럼 일찍 일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이 이른 아침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어서 그것을 못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David King의 7월 달 Georgia Bulletin column을 읽고 또 읽는다. 이 양반의 세상을 보는 눈이 흥미롭다. 현재의 pandemic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번에는 두 프랑스 미술 거장, 고흐 Gogh와 고갱 Gauguin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필자는 영화, 문학 외에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두 미술가의 경우는 ‘비극적’인 것으로 끝이 났지만 현재 필자는 그런 것들을 보며 ‘서로 사랑하는 자세’로 이 시국을 살아간다는 것… 하지만 반드시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빈센트 starry starry night, 를 배경으로 그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는데, 나에게 결여된 분야인 예술 그것도 미술 쪽에 조금이라고 가까이 하는 기회는 역시 COVID-19 의 ‘덕분’이 아닐까?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Don McLean

건주가 정교성 근황 사진을 보내 주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아주 건장하게 서서 집에서 수확된 채소, 야채들 앞에서 폼을 재고 있는 사진, 그럼 그렇지 그 녀석이 어딜 가겠나?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사연을 알면 다시 카톡이 연결되어 사연을 더 들을지도 모르겠다.

 

A Day in Covid Summer

다시 습기가 돌아온 나날이 시작된다. 아침의 기온을 보면 알 수 있다. 70도 이상이면 습한 것이다. 따가운 햇볕대신 끈끈한 촉감과 계속되는 a/c 소음… 그것이 한 여름의 모습이다. 괜찮다… 이제는 몸이 잘 적응을 하였으니까…  한 여름의 즐거움, 아~ 이 빗소리.. 아무리 90도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평화의 천사가 있고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는 이런 순간 순간들이 나의 70대 인생을 이끌고 있다. 나의 인생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맡기자, 맡기자 모든 것을 ‘절대’에게 맡기자.

After-Dentist-Visit Effect,  한 달 예정으로 매주 가는 치과, 그 이후 날라가는 새로운 느낌과 심지어 행복함을 맛 볼 수 있는 며칠이 또 계속된다. 이럴 때 밀린 일들을 해 치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나는 대신 1940s 시대의 Charlie Chan movie 나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부터 해 치워야 하는 것인가? 하도 할 것들이 많은 듯 우려 속에서 헤매는 느낌 뿐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끝을 내고 다음 것으로 가면 되는데…

요사이 본당 성경통독, 구약성경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당황함을 조금 풀어줄 길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요사이 읽고 있는 Bishop Robert Barron의 책,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나의 궁금증들이 비교적 자세히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하기야, 이제는 이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래서, Barron’s ‘white’ book,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actually mostly by John Allen) 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나의 독서 전통과 기호를 따라 결론 쪽으로부터 읽기 시작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다. 8장부터 시작해서 7장이 오늘 끝났고, 오늘 6장을 시작한다. 8장, 7장을 읽으며 놀랍게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이 거의 자연히 풀려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우연이지만 놀라움이다. 언제 어디선가 이렇게 해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오늘부터는 prayer & supernatural에 관한 것, Barron의 이 주제에 대한 논평, 의견은 이제까지 조금 짐작은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배우게 되었다.

이 책에서 Bishop Barron의 Bible 론 을 읽으며 조금 구약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는 듯 하다. 이 머리 좋은 ‘젊은’1 주교의 말은 내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다. 거의 언제나, 언제나… 그래서 내가 영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주교님과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Water tank rain barrel, a/c condensate water recovery 등등이 갑자기 나에게 활기를, 기분은 좋게 한다. 이것도 역시 electronics, microcontroller 가 관련이 되어 나의 발은 잡는다. 어젯밤 a/c에서 흘러나온 ‘공기 중의 물’이 무려 full bucket이 된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요새의 날씨가 기온보다는 습도가 유별나게 높은 것을 느꼈는데 이 사실을 완전히 실제로 나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어제 한 ‘바깥일’은 ‘공기중의 물’을 ‘다시 쓰는’  재활용, 그것이 목표였다. 전에 쓰다가 남겨둔 water heater tank에다가 a/c 의 condensate water를 저장하는 일이다.  Water pressure가 걱정이 되었지만 water tank 의 높이까지는 안전한 듯하였고, test를 해서 거의 확인을 하였다. 그 hose를 그대로 water tank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고, water hose를 꽂아서 꽃밭에다 주면… 와~~ 이것 멋진 것이다! 더 나은 idea는 그 옆의 rain gutter의 빗물까지 그곳으로… 저장, 근사한 idea가 아닌가?

 

레지오 월례통보가 왔는데 8월  9일 단장만 참석하는 월례회의를 하고 부단장 선출을 한다고… 와~ 이런 이야기 듣든 것 ‘몇 년’ 만인가? 부단장이라… 그 벌써 3년이 되었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머리가 안 돈다. 레지오 월례회의는 물론이고 주회합 조차… 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멀어졌단 말인가?

 

 

7월 6일에 세상을 떠난 이태리 Spaghetti Western music composer였던 Ennio Morricone 의 이름을 본 후 곧바로 추억이 나를 사로 잡았다. 1968년 가을, 겨울을 가며 담배연기 자욱한 해양다방에 앉아서 듣던 The Good , the Bad, and the Ugly의 주제곡… 그것도 ‘이선화’씨와 같이 들었던 멋진 추억으로 남았던 것…

 

 

 

  1. 사실은 60세가 넘은

Absurdity & Me

 

지난 유월 초에 발행된 아틀란타 대교구의 격주간지 Georgia Bulletin 에서 나의 눈을 끌었던 기사,  정기 column이 하나 있었다. 제목이 조금 길었다. Absurdity and Hemingway’s ‘The Old Man and the Sea’. Absurdity 란 단어는 근래에 나의 눈길과 관심을 끄는 말 중에 하나이고, 그 다음은 물론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1952년 단편소설에 관한 것이다.  왜 absurdity와 The Old Man and the Sea 가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 기사를 쓴 저자 professor David King, Ph.D,  이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Kennesaw State University 대학의 English, Film Studies 의 교수인 동시에 같은 지역 Holy Spirit Church에서 가톨릭 교회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반을 책임 담당하는 [director of RCIA] 교우이기도 하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이 column을 읽어 왔는데, 대부분 그의 전공인 문학, 영화를 통한 [가톨릭]영성 추구가 주제여서 내가 즐겨 읽는 기사 중에 하나였다.

왜 absurdity란 말이 나왔는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요사이 코로나 사태와 인종분규, 역기능적인 정치판도 등에 의한, 한마디로 위아래가 완전히 뒤집힌 듯한, ‘말도 안 되는’ 세상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20세기 이후에 세상을 풍미했던 ‘세상은 부조리 투성이’란 한탄의 전형이라는 뜻. 그 유명한 20세기 초 Kafka의 소설,  ‘심판, the trial’ 의 absurdity는 사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근래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내, 레지오 마리애 에서1 몇 번 겪고 나서 이것이 fiction의 영역만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런데 왜 ‘노인과 바다’ 소설이 함께 이곳에 언급된 것일까. 이 기사의 저자는 이 단편 소설에서 노인이 겪는 세상의 경험도 역시 absurd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의 그것이 것이라는 뜻. 특히 무려 84일 동안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 구사일생으로 한 마리, 그것도 대어 marlin 를 낚았지만 결국은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에게 잃어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 하지만 이 노인은 끝에서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일말의 희망이라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희망은 반드시 있다라는 것이 바로 궁극적인 희망이다.

 

우리에게 이 노인이 겪은 84일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사회적 변화부터 시작해서 인종사태, 정치적 기능상실, 경제적 불안감.. 등등 절망적으로 열거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들과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도 예외가 아니다.  직업, 경제난에 대한 불안감, 정치에 대한 절망감,  이제는 무감각해진 엄청난 숫자의 코로나 희생자들의 비극 등, 이런 것들이 ‘부조리의 극치’임을 말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것 이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나의 84일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은 118일이다. 지난 3월 17일부터 오늘까지가 118일인 것이다. 그 3개월 동안 우리는 성체성사를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 ‘신영성체’라는 궁여지책 대안이 있었지만 그것이 신부님이 축성한 실제의 성체와 같을 수는 없다. 설상 가상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완전히 중단이 되었다. ‘기도와 봉사’의 둘 날개가 완전히 떨어진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연령행사, 장례미사, 연도 등이 정지 되었다. 이 연령행사는 비록 고인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내가 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끔이나마 죽음의 이별을 통해서 다시 보는 삶의 의미, 세상의 교훈, 공부를 할 기회가 118일 동안이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absurdity중의 absurdity가 아닐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곳, 역시 정치적인 영역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완전히 불능상태에 빠진 정치체제에서, 오늘과 장래의 희망을 주어야 할 지도자가 자기 관심을 끄는데 온갖 관심을 두고 있고, 이런 인간을 관망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발견되는 놀라움 역시 absurdity중의 극치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아니 우리 후세들에게 어떤 희망은 있는가? 물론 희망이 없을 리가 없다. 그 ‘노인’에게도 꿈이 있었다. 문제는 언제 그 희망이 실현되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해답은 ‘초월적’인 곳에 있다. 한 단계 위, 안 보이는 그곳을 향하여 보면 의외로 쉬운 문제가 아닐까?

 

 

  1. 무려 세 번을 겪었다.  그 모두가 세 명의 ‘문제 있는’ 여자들에 의한 것, 아직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Father & Esperanto Friends

50년만에 다시 보는 아버지, 평창이씨 이정모. 제일 아랫줄 오른 쪽 끝에서 세 번째의 ‘작은 체구’

 

아버님, 아버지, 아빠 그리고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Esperanto Esperanto Esperanto friends..  감사합니다!

아마도 50년도 넘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사진, 우리 아버님의 모습을 이 사진에서 보았을  때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보던 ‘조선 에스페란토 학회 단체사진’  한 장이 digital format으로 오늘 나의 Email InBox에 들어와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분명히,  나의 뇌리 속에서 ‘우리 아버지’라고 알고 살았던,  ‘앞 줄에 앉는 사람 중 제일 작은 남자’ 가 있었다.

이 사진은 연락이 두절된 우리 누님 집에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세월이 이렇게 깊어지면서 아마도 나는 생전에 다시는 아버지 사진을 못 볼 듯이 살아왔다.  하지만 에스페란토가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다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친구들…

올해 2020년은 대한민국 에스페란토 창립 100주년이 되어서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작년부터 관계자 분들이 연락을 주셨었다. 6.25 전까지 에스페란토 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아버지, 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버지 ‘이정모’ 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연락이 된 것은 나의 2011년 8월,  ‘회상’ 블로그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계기가 되었다. 그 블로그는 생전 한 번도 못 보았던 아버님의 그림자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의 사그라져가는 기억력과 싸우며 개인, 가족, 특히 아버지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지만 6.25 발발 후에 홀연히 납북이 되신 아버님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가상적인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어오던,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그 당시 집에서 보았던 각종 자료 (주로 학회지)등과 어머님의 말씀 등을 시작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해서 아주 기본적인 사실들을 찾을 수 있었다. 최소한 아버지의 이름이 이기 저기서 보인 것이다. 그곳에서 6.25때 납북 되신 분들의 이름들이 보였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에스페란토 역사에 남기고 싶었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가 막막했는데, 하늘이 도와서 나의 블로그 가 인연이 되어서 연락이 되어 이렇게 아버님의 사진을 다시 ‘찾게’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사진에 앉아 계신 아버지, 그 당시는 서울 경기고등학교 영어 교사였을 것이다. 이 사진은 에스페란토 정사에도  있듯이 ‘8월에 KEI 제5회 강습회가 개최되었는데 약 30명이 참가하고 서병택, 석주명, 이정모가 지도하였다‘ 라는 구절의 바로 그 역사적 사진이었다. 1949년 8월이니까 일년 뒤에는 민족반역자 김일성 무리들에게 납북되실 운명을 짐작이나 했을 수가 있을까? 한 개인과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산산이 조각이 났는데, 아직도 그 반역자 세습무리 들이 북녘에서 설쳐대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의 극치’ 가 아닌가?

100주년 기념을 준비했던 관계자 분들, 역시 다른 ‘부조리’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실제적 기념대회는 무산이 되고 10월에 Online Conference로 대치하는 모양이다.  세계 전체가 불안하게 보이는 이 때에, 세계 평화를 갈망하던 에스페란토 창시자의 꿈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