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ly June Miscellaneous
기침을 하지 않고 지난 밤 잠을 잤다. 일주일 만에 처음이 아닌가? 어제 저녁에 나라니가 준 기침약의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날 때가 되었는지도… 개운한 목의 느낌이 날라갈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몸 깊숙한 곳에 가래침이 고여있음도 느낀다. 오늘은 저녁 자기 전에 그 물약을 복용하고 자면 어떨지…
습관적으로, 작년과 재작년의 일지달력에서 요즈음 6월을 살핀다. 역시 느낌은 마찬가지… 작년과 올해는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재작년은 정말 아득~한 옛날 옛적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그렇게 거대한 변화가 있었을까? 우리의 십 년이 넘어가는 교회 성사, 봉사 생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작년이었다면 올해는 없어진 레지오 활동, 봉사는 물론 심지어 성사, 본당생활에서 멀어진 올해의 우리의 모습들이다. 절대로 자랑스럽지 않다.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는지는 몰라도 결과는 형편이 없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다시 ‘활동, 활기’의 느낌과 보람찬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비교적 흐리고 시원한 날씨, 이럴 때 바깥일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 둘은 아직까지 ‘기침감기 휴가’를 잠정적으로 즐기고 있기에 선뜻 나가기가 귀찮다. 하지만 일단 잠깐 나가서 집 앞쪽의 paint 계획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야만 조금은 마음의 평정과 안도감을 얻는데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video나 보면서 마음껏 노는 것으로 끝날 것이고, 후회는 안 한다.
이 며칠간은 무엇인가 남기고 싶고 그것을 쓰고 싶어서 무척 글을 긁적거리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처럼 문장을 많이 쓰는 사람, 특히 남자들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주위를 보아도 그런 사람 별로 없는 듯하고 연숙도 의외로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이 사실 생소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10 여 년에 걸쳐서 그런대로 문장을 만들며 살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중에 멋지고 값지고 남길만한 멋진 글은 사실 하나도 없다. 일기체의 글에서 솔직함만 있어서야 남길만한 것일까? 하지만 공개할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항상 존재한다.
연숙이 점심 식사 전에 지혜네 집 미장원엘 다녀온다. 가정 집에서 하는 거의 ‘허가 된’ 사설 미용실이지만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 문제가 없다. 나는 이발소엘 항상 ‘못’ 가지만 연숙은 문제가 없다. 참, 나도 별난 인간이라서 이발소엘 안 가고 일생을 살았으니… 나도 기인열전에 오를 만 할 것인가. 하기야 지금은 이발을 해야 할 머리가 별로 없으니 큰 문제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아쉽고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나이 먹음의 슬픔 중에 하나일 것이다.
별로 할 것이 없는 것을 즐기는 오늘, 그 표시로 couch에 잠깐 누웠다. 물론 잠이 올 리는 없지만 쉬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돌돌 말아먹는 김밥, 맛있게 먹고 desk에 앉으니 밖에 깜깜해진다. 와~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초여름의 한 날씨 type이다. 습도는 높지만 온도가 시원한 그런 날에 깜깜한 구름이 몰려오는 그런 모습을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 게다가 조금 있으니까 바람이 없는 비가 얌전하게 내린다. 초목들이 얼마나 시원할까~ 이런 날이 매일이면 싫증이 날 터이지만 가끔 이런 것은 지독히 매력적이다. 문학소년이 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인 것이다. 아~ 나는 무엇을 쓰고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성모님, 성모님…
연운경, 양재성, 정운용: ‘어떤 모정’이라는 80년대 [드라마 게임] episode를 편하게 본다. 여기 나오는 연운경이라는 탈렌트도 마음에 들고, 상대역 남자 이름이 무엇인가… 맞다, 양재성, 이분도 참 인상이 좋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옛날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도 ‘기인 형’ 의 하나일까? 문제 없다. 그러면 어떠랴… 나의 인생인데…
비가 그치고 흐린 초저녁을 맞는다. 아~~ 궂은 비가 주룩주룩 계속 내리면 얼마나 좋으련만… 초저녁에 다시 서녘으로 기우는 햇살을 보는 것, 나는 항상 싫어했다. 하지만 이것을 내 뜻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희망사항이다. 오늘도 ‘일’이란 것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까 쉬는 것이다. 이렇게 쉬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는 없다. 무엇을 하고 결과가 보이고 보람까지 느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할 텐데… 요새는 그런 ‘일’들이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고 없어지고 있음이 솔직히 나를 초조하게도 한다. 어떻게 하면 보람된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요새 신경을 쓰는 ‘그것, 그일’도 사실은 정말 중요한 일에 속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능동적인 일’은 아니고 나의 원죄의 여파에 생긴 괴로운 일이기에 정말 기쁜 감정은 없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다.
오늘도 binge watching, “list repeat random” mode로 계속된다. 대부분이 KBS문학관, 드라마 게임 episodes들이지만 간혹 HD version 들이 걸리면 조심스럽게 몇 초를 보다가 다시 SD [사실은 VHS class] video로 돌아가 버린다. 그곳이 편하기 때문인가? HD version은 자연히 대부분 2000년대 이후이기에 나는 아직도 불편하고, 생소하고,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나의 병, 나의 고집인가? 1990년대 이후의 video들은 아직도 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해괴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나의 목적지 산봉우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향한 나의 목표는 과연 언제나 이루어질까?
늦은 저녁에 다시 한번 바람기가 없지만 세찬 비가 내린다. 무조건 고맙고 반갑고 기쁜 소리가 바로 밤에 내리는 빗소리가 아닐까? 오늘은 그런 기회를 몇 번이나 맞았던가? 비록 진한 coffee향과 어울리는 빗소리는 아니었어도 괜찮다. 여름에 맡게 되는 coffee향은 다른 계절에 비해서 볼품과 매력이 떨어지니까 그것은 가을을 기다려보자. 내일은 숨차게 다시 로난 녀석baby sitting 을 하는 날이구나. 조금 숨은 차지만 기왕 하는 것,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면 된다. 몸이 성할 때, 할 수 있을 때…
카톡이 정말 조용하다. 나도 잊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심전심 같이 느껴진다. 모두들 나를 잊고 사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잊고 살고 있으니… 조금 서글프고 외로워진다. 그저 그저 이런 때도 있는 거야 하며 위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럴 때 부담 없이 소식을 날리던 교성이가 그리워진다. 나는 큰 친구를 잃은 것은 아닌가? 언젠가는 다시 우리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아~ 정말 슬프고 섭섭하다, 교성아… 너의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 다시 아찔해진다.
요새 매일 보는 KBS문학관 series에서 가끔 보는 얼굴이 있다. 그 talent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지만 얼굴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 talent를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이 옛날 옛적 시카고에서 같은 apt에서 살았던 서충일 형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아니 똑 닮을 수가 있을까? 그의 연기도 사실 나에게는 호감이 가는 정도인데 주로 1980년대에 활동했던 연기자인 모양이다.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면.. 지금 보는 것, 제목이 김동리 원작, ‘역마’, TV문학관 제19화 (1981년 8월 29일 방영) 에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름이 무엇인가? 드라마 시작, 처음으로 보이는 서영진, 조남경 두 이름 중에 하나일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