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tonian Reflector, 10 Years Later..

오늘 일할 것 중에, 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계획한 것이 있었다면 역시 Orion Newtonian [reflector telescope]을 밖으로 ‘끌고 나가서’ fine tuning, adjustment를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지만 과연 밤하늘이 되었을  때에 이것이 어떤 도움을 줄 지는 오늘 밤에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목표는 목성 Jupiter와 토성 Saturn 인데 혹시 예쁜 달님이 나타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아~ 하지만 오늘 Moonrise는 자정 직후 12시 21분으로, 오늘은 틀렸다. 거의 반달 상태로 보이는 이즈음 [Waning Gibbous]이 제일 좋을 때인데…

오늘 fine tuning은 B선생 댁 쪽의 제일 높은 소나무의 위쪽 끝 부분 솔가지였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결론은 이 망원경의 general optics의 상태는 10년 이후에도 별 이상이 없다는 것. Now, go for stars!

 

 지난밤 처음 눈을 떴을 때 시계가 [자정]12시 어쩌구~ 하는 것의 공포[앞으로 6시간을 더 자야 하는데]를 느끼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도 깨지 않고 자서 6시 30분 전에 편안히 깨어나서 일어났다… 아~ 감사합니다. 화장실로 갈 필요도 없었던 것도 다행이고, 어제 이른 저녁에 Chicory coffee[cheapo old coffee]를 마신 것도 수면 건강에 큰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알 수가 없다.

어젯밤 늦게까지 a/c가 간간히 오락가락 했는데 역시 아침도 그렇게 싸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shorts wear들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나의 옷을 철 따라 내가 나의 마음에 맞게 정리를 하고 싶은데… 아직도 의지를 하며 ‘이를 가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그래, 내가 하면 되지 않겠니… 내가, 누가 그런 일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머리를 싸매냐, 병신아?

‘Come September’가 벌써 다 갔다고? 야~세월아, 좀 봐주라…봐 달라고, 나는 할 일이 적지 않단 말이다~~~~  9월을 나는 어떻게 보냈던가, 큰 일도 못하고 작은 일도 못한 ‘성취감이 없는 듯’한 불쾌한 느낌 밖에 없으니, 왜 그럴까? ‘생각 좀 덜하고 살자~ 병신아~’ 라고 중얼거리고 싶다. 웬 자질구레한 불필요한 걱정,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 말이다!

 

Get Busy! 이것이 오늘 오랜만에 TV ABC morning show,  interview에서 본 [former Pres, a great black] Obama의 충고였다. 하도 속이 상하고 불안할 때는 그저 바쁘게 하라는 것, 어찌 동감이 가지 않겠는가? 그가 언급한 ‘속상하고 불안하고’ 는 십중팔구 ‘개XX'[aka Donald]의 미치고 해괴한 짓, 에서 비롯된 미국의 심장부를 찌르는 듯한 그 1/6/21의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울할 때, 슬플 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경험적으로 그의 말은 99.9% 맞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알면서도 못할 때가 많은 것이 문제다. 나를 밀어내어서 바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모처럼 지나가는 9월 한달 간 나의 private daily journal을 천천히 다시 보게 되었다. 확실히 ‘모습 자체’가 다르다. 이곳 저곳에 picture들이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삶의 기록의 운명이 조금 슬픈 것이다. 내가 저 세상으로 간 후에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분명히 보는 눈이 어디엔가 있을 것임을 아니까…

이제 9월 달 내 삶의 모습을 모두 훑어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대로 열심히 산 것을 안다. 게을렀던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항상 보람차고 기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순간 순간 괴로운 때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니까.  사실 그것이 순교자 성당의 안정호 신부님 말대로 인생의 진정한, 솔직한 모습인 것이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거의 무엇에 홀리듯이, 아니면 밖의 광경을 안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느꼈던지, 무조건 나갔다. 계획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거의 포기한 후 나는 손과 눈이 가는 곳으로 가면 거의 자동적으로 일거리가 보이고 그때부터는 몸이 하자는 대로 맡기면 모든 것이 제일 능률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은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한, 그러니까 settling하고 있는 lumber rack의 level을 맞추는 작업, 그리고 아직도 조금씩 비가 새는 tool shed roof 를 살펴보았다.

요즈음에는 이곳 저곳에 ‘고전적[기하학적]인 거미줄’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거미라면 질색인 연숙은 그것을 치우느라 고생이지만 나는 사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게다가 이제는 그런 생물체, 살아있는 것을 절대로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언제부터인가 생명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한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괴롭기조차 할 때도 있었다. 거미도 그 중에 하나, 비록 집은 치워야 할 때에도 거미는 안전하게 rake로 감아서 다른 곳으로 ‘안전한 이사’를 시켜 주었다.

거미줄을 치우려 접근을 하니 거대한 거미줄의 위쪽으로 잽싸게 옮겨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는 거미, 미안하다. 다른 곳에다 새로 집을 지어주렴, 사람 손이 안 가는 곳으로… 미안, 미안…

 

아하~ 갑자기 생각이 난다. 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숙제 reading을 못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며칠이나 되었나? 느낌에 몇 주일이라도 되었을 듯한데 사실은 일 주일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읽을 분량이 늘어난 탓도 없지는 않다. 오늘 재개를 하지 않으면 나는 또 ‘청강자격’ 조차 없어질 지도 모른다. 읽고 또 읽자… Thomas Berry!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로 기억을 하고 싶다. 머리 속이 갑자기 ‘우주적 평화로움’ 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나 할까, 설명하기에 나의 조잡한 문장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머리 속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제대로 못 옮기는 고통과 고문拷問, 나날이 더 깊이 실감한다. 멀고 높고 넓은 곳으로 나의 높이를 옮기며 나의 주변을 보는 지혜, 이것은 신앙적, 영성적인 것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것일까…  하지만 이것이 현재 나를 지탱시켜주는 커다란 도움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것과 더불어 Thomas Berry의 초 거시적 우주, 세계관은 나를 생의 다음 단계로 올려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나를 ‘기쁨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도 성령의 작용, 도우심인가…

오늘 밝디 밝고 시원하며 청명한 하늘아래서 나는 산뜻하고 감사하는 기분으로 일의 결과대신 그 과정을 마음껏 즐겼다. 나의 눈에 들어온 거대한 소나무의 정상 솔가지들의 영상이 10여 년이 지나고 있는 3″ Newtonian reflector mirror에 떠오를 때 나는 진정한 희열을 느꼈고, 맑을 대로 맑은 머릿속을 진정시키려 오지도 않는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평화의 온건한 강물이 귀속에서 흐르는 것, 그것을 나는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Beautiful Sunday Morning After…

6시 30분에 눈이 떠지고 곧 일어났다. 4시 경에 꿈에서 깨어난 것을 기억한다. 잡다한 꿈들 중에는 Teilhard & Berry의 영향을 받은 듯한 것이 있어서 흥미롭고, 성당교우 레 자매의 얼굴이 보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요새 저녁기도에서 환자명단 제1순위에  대건 안드레아 형제가 있는데 그것과 상관이 있었는지…. 어떻게 개인적, 사적, 조그마한 기적은 없는 것일까?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날이라고… 더운 것이 아니고 따뜻한… 참 이렇게 온도의 느낌이 하루아침에 바뀌니…  지구 생성될 때,  ‘사고, 잘못’으로 태양으로부터 23도 이상이나 삐뚤어진 자전 축, 우연[아니면 계획된]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이렇게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I-285 freeway drive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기대를 넘치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미사 후 ‘하얀풍차[하풍]’ coffee & bakery에서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다. 미사에서 의외로 만나 오랜 시간 회포를 풀게 된 박[교수]선배님 부부, 의외의 놀라움과 반가움이 겹친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8시반 미사에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반가운 것이었다. 카톡 연락처도 받았기에 다시 그 옛날 [1990년대] 시절의 추억과 함께 앞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정말 오늘은 반가운 주일이 되었다.

특히 선배님은 이임하신 이영석 신부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면서 신부님의 책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고 했는데.. 무슨 책인가?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이라는 책이라는데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와~ 이 신부님의 그런 분이었구나…  조기 이임의 주요 원인도 어머님 간병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선배님으로부터 알게 되어서 가슴 속이 아련해 옴을 느낀다. 교수직 때문에 일방[이기]적으로 퇴임, 귀국한 것으로 알고 섭섭해 하기도 했는데, 역시…

특히 오늘 ‘하풍’ 내부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8시반 미사 regular 교우들이 우리 옆자리에 대거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았고 서로의 눈인사는 나를 ‘편하게, 안심하게, 기쁘게’ 하기도 했다.

 

당신은 어떤 멋진 일, 웃긴 일,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놀라워할 때,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에게 장난을 치시는 표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약간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이 당신을 그저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엘리슨이 종종 독자들에게 상상해 보라고 권유하듯이, 하느님이 당신을 ‘좋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우리에게 그만 진부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일단 벽에 바르고 나면 다시는 의식하지 않는 방의 벽지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생각합니다. “음, 물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셔. 그건 하느님이라면 당연한 일이요.” 하지만 우리를 ‘좋아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생각은 이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 말의 어감에는 전혀 다른 활력이 있습니다. 즉 놀랍고 유쾌하고 인격적입니다.

– “성자처럼 즐겨라!” – James Martin,  p202

위의 글을 필사하며 100% 동감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 표현… 사실 ‘너무나 많이 들어서’ 심하게 말하면 지겹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둔감 정도가 아니라 전혀 감정이 일지를 않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래서 어쨌다고?’라는 비꼬인 반발감을 유발할 때도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 ‘아’와 ‘어’ 가 다르다고, 그래 하느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신다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친구처럼 나를 속속들이 아는 선배처럼 나를 보면 웃으며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는 정다운 모습이 하느님이라면…

 

앞으로 ‘비 구경’은 기대하지 말라는 장기예보를 듣고 간사하게 다시 비가 그리워진다. 촉촉히, 잔잔한 소리를 동반한 가을비, 그것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Youtube(ambience music)에서 보는 이 ‘환상적’인 desk가 있는 방의 창문 밖의 풍경, 이것이  이 즈음의 천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정말 멋진 모습이어라….

 

불현듯 잊기 전에 living room의 한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잠을 자고 있는 2011년 1월 ‘아이들이 준 생일 선물 ‘초보자 용’ x70 천체 망원경을 나의 desk 옆에다 갖다 놓았다. 이제는 조금 자신을 가지고 이것을 갖고 놀려는 희망이 생겼던 것. 하지만 역시 걸림돌은 그 놈의 알 수 없는 viewfinder EZ-Finder라는 괴물이었다. 암만 조작을 해도  lens 가운데 ‘red mark’가 보이지 않는 것, 이런 상태로 10년 간 가끔 사용하면서 실망감을 안고  거의 포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Google의 힘으로 그 문제의 정체를 밝힌 후 완전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역쉬~ 이 것도 [빨갱이] 짱깨 들이 만든  ‘불량품’인 것이었다. 이제는 그 동작, 사용 원리도 알게 되었다. 이 viewfinder를 다시 사려면 $40 씩이나 하는 것인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선 대강의 위치를 새로 산 x10 쌍안경 binoculars로 찾은 후, 끈기를 가지고 정확한 위치로 ‘총 쏘듯이’ 조준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밤하늘을 쳐다 볼 준비가 서서히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번에는 부디 가깝고 커다란 행성 몇 개[금성, 목성, 토성 등] 는 볼 수 있게 되기를…

No big news, Cherbourg, Barnes & Noble

머리맡에 있는 alarm clock의 가느다란 찌르르르~ 소리에 깨어났다. 이것은 아침 7시에 맞춘 것으로, 나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연숙을 위한 것인데, 내가 오늘 이 소리를 들은 사실은 나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나는 분명히 무슨 잡스러운 꿈으로 이른 새벽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 지난 밤에는 며칠 만에 다시 ceiling fan을 밤새 켜놓고 잤다. 밤늦게까지 조금 더운 듯해서 그랬지만 사실은 필요가 없었던 지도 모르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해지고, 시원하고 더욱 어두컴컴해 지는 밤… 아~ 좋다~~~

아침 7시부터 요란하게 시작하는 ‘network TV (over antenna)’ morning shows, 돌아가는 세상의 맥박과 온도를 거의 ‘즉시’에 감지할 수 있는 이곳,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big news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정치적인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기후관련, Pandemic관련 뉴스도 여전같이 과장된 느낌이 없다. 비교적 평온한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물론 7시 첫 부문을 놓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Barnes & Noble, 허~ 이곳이 아직도 있나? 뉴스에 그곳의 모습이, 그것도 요새의 것,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이곳이 business를 한단 말인가? 그리워진다. 어디에 있나? 이 지역에도 어디엔가 있는 모양? 다른 지역에, 특히 대도시에는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한번 가보고 싶다, 그 많은 찬란한 모습의 책들 속에 묻히고, 서서, 앉아서 하루 종일 뒤져보며 읽고 싶다. 아~ bookstore의 추억이여~~ 그곳의 광경, 분위기를 잊은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요란하게 ‘조중동’ 중에서 ‘조동’의 link 까지 애써서 만들어 놓고 잠시 나도 ‘한국 통’이 될 수도 있다는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했는데 1주일 후에 결과는 어떤가…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곳을 아직도 피하고 있고, 아예 생각을 피하기도 한다. 15년 ‘탈 고국 뉴스’ 세월의 관성을 어찌 며칠 만에 풀 수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고국 뉴스에 대한  ‘불안과 초조’  때문인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이다..기다려보자..

 

The Umbrellas of Cherbourg, 영화 셀부르그의 우산… NYT newsletter ‘부고 란obituaries’ 에 귀에 익은 말이 보였다. 아하~ 그 유명한 영화주제곡이었지… 남자 주인공, 이탈리아 출신 배우가 타계했다는 것, 1960년대의 프랑스 영화, 당시는 영화보다는 유행가에 더 관심이 있었던 때, 이 영화 주제곡 음악, I’ll wait for you는 독특하게 감미로운 것이었고…  Cherbourg라는 말이 ‘곳, 장소, 도시이름’이라는 사실과 1944년 6월의 D-Day이후에 이곳은 allied force의 전진기지로 모든 전쟁물자들이 이곳으로 집결되어 유럽, 특히 나치독일 쪽으로 운반되었던 것 등을 알고 나니, 그 romantic한 주제곡이 잔잔히 깔린 영화와 추억의 꿈에서 깨어나는 듯 하다.

 

오늘도 Ozzie와 집 주변을 무려 한 시간 반 이상을 큰 문제없이 거뜬히 걸었다. 비록 최고기온이 88도의 더운 날이지만 오전 중이라서 그런지 시원한 날씨였다. 지난번처럼 full course, 그러니까 Spring Creek subdivision과 Sope Creek Apartment  주위의 반 정도를 걸은 셈이다. 원래는 아예 더 나아가서 그 옆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Kroger 가 있는 shopping center 까지 가볼까 했지만 오늘은 Ozzie가 뒷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불편한 모습을 보여서 포기하고 말았다. 진작 이런 길들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부터 가을과 겨울의 멋진 날씨의 덕분으로 최소한 일주일 2번 정도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대가 된다.

 

옆 동네 Spring Creek 산책을 하고 tennis court옆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아~ 은혜로운 모습이여~ 조금 더워도 청명한 늦여름, 초가을 하늘의 느낌이…

 

갑자기 피곤한 듯 보이는 Ozzie를 달랠 겸 푹신한 풀밭 위에 앉았다가, 그래 하늘을 또 보자, 누워버렸다. 옆을 보니 Ozzie고 눕니다. 아~ 이곳이 중앙고 3학년 때 주왕산 선생님 고문, 국어시간에 들었던 ‘무릉도원 武陵桃源’ 이 아닐까…

우리의 Subdivision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오랜 전통의 apartment complex, Sope Creek Apt. 뒷길은 우리 subdivision의 옆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깊숙한 작은 골짜기와 creek이 원시림 속에 숨어있다. 이것을 얼마 전에 발견한 후 이곳을 잊지 못해 찾아와 둘이서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모처럼 김밥을 말아서 셋이서 ‘시원하게’ 즐겼다. ‘지지고 볶는’ 것이 없어서 시원한 것이고 먹는 데도 열을 느끼지 않으니 시원한 이것, 한식 snack의 비결이라고 할까… ‘간식’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정식 점심역할을 했다. 유나도 옆에서 방긋거리며 웃기도 하고, 세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한가하게 환담을 나누는 이 시간, 너무나 아깝기도 하고 해서 오늘 밖의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날씨가 시원해진다고 하니 늦을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시간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사치를 부려도 되는 시점에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늘은 비교적 차분하게 desk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다. 주위에서 나를 간섭하거나 시간을 빼앗는 일들이 거의 없기도 하였지만 나의 의지도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나 web contents 을 시원하게 중단 없이 읽고 생각하고 싶었다. 특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은 앞으로 내가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는 apologetic classic이 될 것 같다. 그 외 대부분 James Martins의 글들도 현재 내가 직면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의 방황’ 시기를 절도 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Came September…

확실히 기온이 떨어짐을 느낀다. 그렇게 습도가 높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게 잠을 잔 것이다. 6시 반에 일어났지만 잡스러운 꿈을 기억하느라 누워있었다. 7시를 전후해서 아침 routine을 시작한 날, 오늘은 어떤 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덤덤하게 이끌려 가지 말고 내가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오늘은 9월의 첫날, ‘명색이 가을’의 느낌을 주는 단어가 9월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기분학상으로도 써늘한 피부의 느낌과 thermostat에 보이는 70도라는 숫자, porch door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 등등이 가을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래 나는 올 가을의 ‘갈색’을 그렇게 기다렸지…

완전히 개인 날씨일 뿐 아니라 바람까지 산들산들 부는 여름 들어서 제일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날이 아니었을까?  85도 정도에 비교적 건조한 대기는 상쾌한 것이었다. 9월의 시작을 시원하게 맞는다.

 

A Coursera course:  Journey of Universe specialization No 2, conversation을 힘차게 시작하였다. 첫 번째 것의 반복도 포함 되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것으로 나는 ‘과학+종교’의 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테이야르 샤르댕의 공헌이 지대했을 것이다. 진화론을 그리스도교에 완전히 이론적으로 접목하는 그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학식이 나왔을까?

늦게 손에 잡힌 책이 작년 3월 Pandemic이 선포되던 때 산 Capra (with Luisi)의 The Systems View of Life, a unifying vision.. 왜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물론 현재 ‘청강’하고 있는 Journey of the Universe 코스의 영향이다. 오늘 이 코스에서 새로 찾은 석학 Thomas Berry의 유명한 저서 The Dream of Earth 중에서 New Story 란 부분을 필사를 하면서 이미 인문학, 과학, 종교 등이 서서히 대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실감을 못한 것이다. 특히 진화론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 가톨릭 교리의 영향, 정말 편견, 편협한 생각이란 것 등… 눈을 떠간다, 나는 점점, 거대한 그 무엇을 향하여..

그 다음에 나의 눈은 2014년2월에 사서 읽을 책, The Language of God,  그 유명한 BioLogos 창시자 Francis S. Collins를 알게 해준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해박한 과학철학종교 론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나는 너무나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처럼 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