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et Day, Church Regulars, Honest Barron
올 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정든 베이지색 골덴’ corduroy jacket을 입고 성당엘 갔다. 아~ 이제 서늘한 날들이 예외가 아닌 보통인 그런 season이 된 것인가? 가히 요새 같은 날씨는 너무나 보내기가 아까운 정말 ‘완전한 날씨’에 속한다. 아~ 이런 날씨가 다음에 오는 세상에도 있을까? 없다면 나는 죽는 것이 조금 싫어질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이런 날씨보다 훨씬 멋질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의 사람들과 일단 작별하는 것,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오늘 아침미사 싸늘했던 탓인지 참례 신자들의 조금 적은 듯했다. 하기야 거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래 senior라고 하자. 이런 날씨에도 빠짐없이 미사에 오는 regular들, 신부님도 언급했지만 인상적이고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크리스천의 본보기가 아닐지… 오늘은 모처럼 ‘동포’ R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 반가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한 세대의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인사성도 없고 정다운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재미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본격적’으로 보게 된 video는 이미 download를 해 두었던 1983년 추억의 TV miniseries The Winds of War (7부작), 추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예외 없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3년 2월 초에 방영된 것이어서 이때의 추억과 함께 보고 싶다. 새로니가 태어난 바로 직후가 아닌가? 나는 학교 Ohio State 에서 일생일대의 고전 苦戰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괴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 다시 ‘좋은 쪽’으로 바꾸어 ‘수정된 역사’를 남기면 어떨까?
이제는 조금 넓어지고 높아진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미국이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이 나라를 super power로 만든 2차대전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것, 멋진 것 아닐까?
오늘 Word On Fire email, Bishop Barron의 ‘성녀 소화 데레사 책 소개’는 나에게 신선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것, 그것도 책을 나는 별로나 실망, 심지어 싫다고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좋은 예, 그리고 또 있다면 Thomas Merton의 자서전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이 아닐까? 나는 남들, 아니 아예 일반적으로 극찬을 얻은 명작들이 나는 정말 실망인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첫 번의 시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시 읽는다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I will confess that when I first read Story of a Soul, I was not particularly impressed. Like many others, I found it overly sentimental, and as a post-Freudian, I was only too willing to see in its girlish spiritual enthusiasms evidence of neuroses and repressions. But then I noticed that a number of great intellectuals loved Thérèse. Among her cultivated admirers were Dorothy Day, Edith Stein, Thomas Merton, John Paul II, and Hans Urs von Balthasar.
When I was a doctoral student in Paris, I attended a seminar conducted by my thesis director, Fr. Michel Corbin, a brilliant Jesuit specialist in medieval thought. Corbin commented that the French do not refer to Thérèse of Lisieux as “the Little Flower,” as Anglophones do, but rather as la petite Thérèse (the little Thérèse), in order to distinguish her from la grande Thérèse (the great Thérèse—that is, Teresa of Avila). But then he added, “After many years of reading both saints, I realize that Thérèse of Lisieux is really la grande Thérèse.” I knew then that I had to take a second look.
– Bishop Robert Barron 10/1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