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 57회 동기회에서 또 결혼식 소식이 날라왔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확실한 통계는 물론 없다. 그저 느낌일 뿐이다. 아마도 동기녀석들의 반수 이상이 이미 할아버지가 되지 않았을까. 아~~ 세월이여. 이번의 결혼식 소식은 조금 나에게 의외의 느낌을 주었다. 주인공이 심인섭인데.. 심인섭의 차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왜 의외의 느낌을 주었느냐 하면, 이 친구의 소식을 1965년 졸업 이후 처음 듣게 되어서 그렇다.
물론 친구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동창회에도 나왔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지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이제 처음 그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혹시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해 보았다. 도대체,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나타났을까? 그의 이름은 연락처, 주소록 등등에 전혀 없었다. 고2때 같은 반이었다. 경주 수학여행 때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것보다도 이 친구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고2때 교지에 실렸던 그의 시 때문이었다. 시의 제목이 <실비아>였다. 제목도 독특하고 이국적이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천주교신자의 세례명일 수도 있을 그런 이름의 시.. 하지만 그 시의 내용은 기억을 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 “사라진” 친구가 홀연히 딸의 결혼식 소식과 같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은, 결혼식 장소만 있지, 연락처가 없다는 것..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이 친구는 ‘신비’적인 인상을 주는 것일까. 정말 나도 모르겠다. 그 긴 세월, 어떻게 살았을까, 참 궁금하다. 그 친구는 아직도 시, <실비아> 를 기억하고 있을까? 좌우지간,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며칠 전에는 또 한번 googling의 덕을 보았다. 이건 내가 googling을 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googling을 해서 나의 site를 찾은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발견이었다. 고국 과천시에 사시는 이종환씨, 평창이씨 익핑공파 29세 되시는 분이니까 나의 족보가 맞는다면 항열로 내가 이분의 아버지벌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나와 같이 가족이 모두 천주교 신자였다. 사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뿌리 찾기 노력에 대한 성모님께 드린 기도에 답을 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비약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분의 할아버지가 ‘모’자 돌림이라고 하셨고, 나의 아버님이 이정모, 모자 돌림.. 너무나 반가웠다. 더구나 현재 익평공파 최근의 족보를 소장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러면 혹시 나의 직계 조부님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꿈과 상상의 나래를 다시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