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 기형도

기형도 산문집

 

 

1981.3.9

 

지금은 약간 편안하다. 일곱 개의 수강표 중 세 개를 철회하였다. 현대 서약 국제정치사, 정치학 방법론, 고대 중세 정치사상. 흰색 수강표가 가져다 주는 안도감의 이유는 무엇인가. 굳이 철희의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입 軍을 위한 정리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대학생활에 남은 관례적인 나의 흔적을 완벽히 없애고 싶었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공허 아니 진공상태에 빠진 환자 患者의 심리상태였던 것 같다. 장학금 25만원이 주는 경제적 유혹이, 그러한 소속감 없는 불안상태와 결합하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진희의 설득에 따라 수강신청을 한 후, 다음날로 휴학계를 냈던 나였다. 수강한 날 밤 나는 몹시 후회했다. 후회는, 오랜 시간의 결정 혹은 비슷한 결심이 순간적 충동에 의하여 그 시간적 경과를 쉽사리 부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 다시금 시간과 법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자 더욱 커졌고, 급기야 다음날로 부랴부랴 휴학계를 냈던 것이다. 지금은 이지 나의 시간이 아닌 서정갑 교수의 정치학 방법론 시간이다.

전부터 정외과 과우들에게 내가 느꼈던 ‘속물근성’이라는 속성은 조금 수정, 아니 묵살되어야 함을 느낀다. 그것은 속물근성이 아니다. 일종의 단순성이랄까. 아니, 그것도 모두 나의 주관적, 아니면 나의 연구 콤플렉스, 더 깊이, 나의 승부근성에서의 패배주의의 논리적인 합리화에 가까웠던 그릇된 선입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애초부터 내가 포기했던 고시 考試라는 구체적 사실에 접근해 볼 때 나의 승부 콤를렉스에 대한 보상으로써, 처음부터 원했던 문학 文學으로 더 역성을 쏟았던 듯 싶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속물근성’으로 몰아부친 것은 나의 이기 利己이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과우들에게 내가 휴학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는 일언반구도 없었음에도.

아아, 사실 소속감이 없다는 것(어쩌면 이 말 자체도 나의 주관이다. 여기엔 바로 내가 그 소속감을 나에게 부여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인다)은 참으로 불쾌한 일이다. 그저께 응춘 군 집에 가면서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내가 외로움을 무서워 한다는 사실이다. 아닌데, 외로움을 잘 견디는 ‘편’이다. 외로움 속에 있을 때는 오히려 나는 외로움을 방해하려는 요인을 배격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외로움의 상태로까지 가는 과정을 두려워 한다는 결론이다. 그건 사실이다. 어쩌면 보편일 것이다. 인간의 ‘적응성’이라는 것이 이 말을 입증한다. 사람들이 탈선이나 파행 跛行,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은 그러한 세계의 속성 때문이 아닌, 그러한 차원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이 나에게 하나의 안도감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다시 위의 보편이라고 결정해버린 논리를 부정한다. 나의 외로움 그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외롭지 않았을 때의 즐거움이나 쾌락에 대한 보상적 요소가 나의 외로움 속에 숨어 있다. 책이나 잠, 고민 등이 그것이며, 고통이 따르는 외로움의 보상은 인간에게 숨어있는 매저키즘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정말이란. 아니 내가 무서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아 수정하자. 사람들은 전혀 보상행위가 없는 다른 상태의 공포에 대한 예비공포를 그 이행과정에서 느낄 뿐이다. 사실 보상행위가 있는 ‘혼자있음'(외로움의 의미보다 정확한 뜻인 것 같다)의 과정은 약간의 망설임이 있을 뿐 그렇게 무섭지 않다. 문제는 그 보상이다. 나의 휴학, 소속감 상실에 따르는 심리적 보상은 무엇인가. 막연한 기다림인가. 생명조차 자아에서 타아로 전가하고 지극히 유물론적인 기계로의 변이 그것인가.

원재길군에게서 내가 자주 느끼듯 이 나의 생활, 앞으로의 생활을, (재길군이나 나는) 문학을 위한 직접적 접촉을 통한 경험, 즉 단적으로 말해 ‘소재’로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김용배씨와 함께 군대와 방위 관계로 밤새도록 이야기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다소 감상 感傷 적이었지만 방위를 마다하고 굳이 군입을 주장했던 이유는 비교적 확연한 것이었다. 골자는 ‘적의’ ‘무력한 학업 상태’와 ‘지친 학구요’ ‘현실도피’ ‘남아근성’ ‘노동으로 얻는 정신적 휴식’ (물론 나의 Ego를 거의 완전히 포기할 각오는 서 있다)’ 활력습득’ ‘정상적 한국인으로서의 성장’ 등의 이유를 내세웠었지만, 도 하나 감추었던 이유는 문학적인 것으로서 여러가지 확인, 문학의 소재로서의 병사의 절망, 집단과 개인, 나의 인내와 그 한계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비논리적인 객기일 수 있으며, 이것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 나를 느끼는 김용배씨의 ‘치기’로서의 이해가 나는 두려웠었다.

지금은 밤 11시 30분이다. 오후 4시경까지 문학실에서 신입생들과 얘기를 나누었고 원재길군과 함께 ‘캠퍼스’에 들렀다. 예상대로 봉희, 진희, 재길, 병탁, 석제, 경준을 만났다. 탁구를 치고 재길, 병탁과 신촌시장 ‘형제집’에서 소주 한 병, ‘대화’다방에서 커피, 재길과 비교적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말했다. “형동이란 자기 확인이야. 자신의 관념을 실체로써 확인하려는 것이지.”

재길, “그 행동이 거짓일 수도 있어.”

나, “그것은 자신의 진실 문제야. 그러나 행동은 언어보다는 비교적 진실해.”

이야기 도중에 병탁이 말했다.

“형도는 훌륭했어. 상황에 비해서.”

물론 시점은 대학 1년부터 지금까지이다. 상황?

나는 문득문득 내가 다분히 여성적 사랑관(통념상으로)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며 익히려고도 하지 않으며 다만 사랑받기 위한 본능적인 치장(이것은 심리적으로 정신적 美化와 통할 것 같다)만 갖추려는’ 사람인지 모른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내 맘에 드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대개의 경우의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보편일까? 성석제군은 이런 나의 속성을, 자신의 예민한 판별력을 자만하며, 나에게 유년시절 열등의식이 있었다고 성급히 판단을 내린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는 대신 너무 일원론적이다. 열등의식의 의미를 방대히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면 가능하지만 그것은 성급하다. 이 문제는 차츰 생각하기로 하자.

독산동에서 거의 마지막 388번 버스가 왔다. 뛰어 올랐다. 시각은 10시 40분경으로 추정. 안내양 낯이 익다. 그저께 토요일 정오 무렵 기아대교에서 독산동까지 388번을 탔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난 점심 대용으로 ‘보름달’빵 (정가 150원)을 버스안에서 먹었다. 독산동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 서서 65원을 내고 앞 좌석 남자의 팔목을 흘끔 보았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간 가르쳐 드려요? 12시 55분예요.”

안내양이 웃으면서 나의 시선을 가로챘다. 웃어서 눈이 날 안 보였다.

“집이 여기 아니세요?”

“왜요?”

“왜 식사를 빵으로 하시죠?”

“…….”

“안녕히 가세요.”

그 안내양이었다. 차비를 받으러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65원을 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앵무새처럼 따라하며 중심을 잡으려 주춤거리며 승강구로 가더니 곧 되돌아 왔다. 웃지 않으려 애쓰며 그녀는,

“차비 안 받을 께요.” 했다.

“왜요?”

“그냥요?”

그녀가 60원을 내밀고 이번에는 반듯하게 안내양석으로 되돌아 갔다. 나는 되돌아 오지 않는 5원의 상징적 의미를 추적하다가 곧 포기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추적이었으므로. 안내양은 날 사랑하는 걸까? 얼굴만 좀 예쁘면 연애 걸 수도 있겠는데.

사랑의 방법,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내 스스로 거부한 ‘자괴적인 내 상황에서의 작위적 주관적 패배’가 아니었을까. 승부를 걸기 이전에 패배하고 있는 페시미스트 pessimist? …. 휴학 (3월 6일 금요일) 은 나에게 무중력 상태를 몰아왔다. 그것은 불안하면서 홀가분하다. 엄마가 방금 잠에서 ‘손 안 가득 개구리가 쥐어 있었다’고 묘한 아프리즘 적 묘사를 하시곤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잠들었다.

 

 

 

1982.6.1

 

— 또 하나 내 청춘의 필름이여. 유리컵 속으로 곧게 뿌리를 내린 둥근 파의 유약함이여 —

기차소리여, 나는 아예 네 앞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캄캄한 정전의 필라멘트였지. 아니 하나의 전율로서 소스라치는 일년초 식물이었는지 몰라. 언제나 곁에는 셀로판지처럼 구겨지는 나의 어깨를 무겁고 쓸쓸한 너의 소리가 장중히 손바닥을 짚을 때마다 나는 왜 그리 슬프고 황량한 마음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의 선천적인 소극성 때문이었으리라. 처음부터 떠나기 저어했던 나는 가장 힘없고 곤고한 자에게 마지막 탈출의 기회를 적재하던 너를 나의 한가지 궁핍으로서 나아 있어야 하는 역설적 변명으로 시도하며, 나의 유약함을 흔들어 네가 멀리 골목을 돌아 굴다리를 스쳐 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후에야 조용히 귀로 하던 내 오랜 습성을 너는 알리다.

지금은 오히려 나를 가두는 것이 외부적 굴레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고마와하며 필연을 합리화하는 낡은 수단은 나의 해묵은 방어적 폐쇄성을 극복하는 변명으로 방풍림을 치고 있다. 아, 안개 가득한 선변 옆으로 온통 무채색으로 휘날리는 (유채색도 무채색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알겠지) 코스모스 더미 곁으로 질주하던 나의 희미한 심상. 그리하여 오랫동안 꾹꾹 눌러 참아 온 나의 눈물의 끝. 그 감상을 조심스럽게 펄럭이며 산보할 뿐이었지. 떠남의 정의 定義. 그것은 누구에게나 간절한 상식의 굴레. 진부한 일상에서 결별을 선언하는 일 밖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가난한 패배주의자에게 허용되는 순간적 환상이리라. 그렇다면 떠남이란 또 다른 착지 着地, 미지의 세계와의 우연한 해후. 그것을 바라는 여행자의 감상 感傷.  그 당연한 상식의 간절한 깊이. 황량한 역사 앞으로 거대한 물결처럼 뒹굴어가는 낯 설은 군상과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속절없이 나부끼는 휴지조각의 역 광장에 섰을 때 우리는 우리가 기대한 운명과의 만남이 싸늘한 추위와 그 환멸이라는 사실을 짓씹어야 하리라. 또 다른 우리의 비극주의에 배반당하는 핏빛각인 – . 나는 지금 석수동 철로 변에 잇는 시장 통 안의 ‘희망’ 다방 안에서 이상하게도 한 컵의 희망을 마시고 있다. 미지의 미스 리(나는 그녀가 李)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성을 가졌어도 무방하리라. 나 역시 아무런 주저 없이 그렇게 불러 줄 것이므로)는 달걀 노른자만큼의 희망의 덤을 서비스 한다. 덤. 희망은 무수한 안개꽃 망울마다 하나하나 가볍고 경쾌한 바람의 낱알처럼 피어 오르는 것인가. (아, 마침내 나는 영락하였다. 마침내 영락하고 말았다. 끝없는 자폐증에의 오랜 기다림. 그 매저키즘의 몽상이여. 금치산자처럼 허우적거리며 방황하는 현자의 어리석은 꿈이여.)

이 다방은 너무 조용하다. 그만큼 쓸쓸하다. 쓸어내리면 주루루 흙이 쏟아질 것 같은 종이벽하며, 가느다란 링게르 병의 호스를 통해서 떨어지는 한 방울씩의 증류수처럼 공허한 전자오락의 울림, 스산한 대화 對話. 좁고 더러운 테이블. 낡은 의자의 네 개의 다리. 세상에 대한 나의 총포는 무엇인가. 나의 허약한 논리와 철학은 은어비늘 한 개만큼의 각질도 아닌 부스럼 같은 더러운 것이었고 또한 나의 이 선험적인 감상은 무수히 은빛 갈기를 칼날처럼 번득이는 수만 평 갈대밭을 헤쳐나가는 빈자의 허기만큼의 값어치도 없는 것을. 문학이 나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도 요원하고 아득한 수평선임을. 또한 나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기에는 아으, 나보다 먼저 읊고 있는 두뇌와 영감의 판관들에게 굴복 당하고 ‘탄생치 않음의 인정’을 용납해야 하는 나의 기가 막히는 자존심 따위. 그렇다면 나의 문학적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절망…. 세상에 대한 내부의 복수심? 만약 그렇다면 오 나의 유년, 사춘기의 아득한 절망과 그 서열의 약 藥. 이 단단한 세상에 대한 나의 대리석 같은 가면과 그 대리석 기둥 속에서 마모되어지고 균열되어지는 낡은 판화조각[石版] 같은 나의 약점에 대한 반발의 덮개는 무엇으로 설명될까. 끝없는 비상, 환상과 상상력 속으로 도피하는 백치의 모습이여. 어쩌면 그것은 18세기 영국풍의 안개 낀 세인트 폴 광장의 검은 박쥐우산 속의 해쓱한 청년의 잿빛 눈 빛 혹은 호밀분 날리는 광막한 겨울 러시아 평원을 달리는 두툼한 외투속에서 희미한 향수의 빛을 뿌리는 젊은 백작의 마상 馬上의 얼굴.

— 다른 얘기, 미스 리 (후에 나는 그녀가 미스 장이라고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한 권 시집 속에 담긴 내 젊은 날 20대의 무분별한 영혼의 편린을 건네줄 때)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또한 그것이 우연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캘빈(Calvin)의 조우속에서 적극적으로 손길을 건네는 동작이라면 인간의 운명이란 분명히 다소 양자의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념의 충동적 속성을 띠고 있는 법. 나는 운명에 끌려왔다. 고? 운명을 기피하는 비등점도 등점도 아닌 상태의 안타까운 수액으로 떠돌았던가. 빗방울처럼 아아, 이 우울하고 음침한 북구의 하늘 같은 나의 몽상이여. 공원의 낡은 목조 팔걸이 의자위로 힘없이 뒤집히는 신문지 조각 같이 서럽게 또 다시 천천히 땅의 동맥을 관통하며 지나는 기적소리여. 나는 언제부터 이따위 시시한 감상주의자였을 건가. 이 둔감한 나의 지성과 딱딱한 빵껍질처럼 굳어 더 이상의 탄도를 일고 쓰러진 용수철 같은 완고한 철학과 언어여. 공격적 성품 오우, 펜촉이 날카로운 이유를 나는 왜 납득하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운명과 사내를 기피해온 일 개 무숙주의자였으며 현명한 무숙주의자가 되기엔 또 얼마나 현실적 사고의 그라프에 따라 좌표를 이동하였던가. 아아, 나는 마침내 또다시 영락하고 말았음을 확인하였다.

귀로, 또다시 꿈의 빗장을 여는 미망의 문이여.

이제는 다시 떠나든 잠들든 해야 할 때이다. 그런 뜻에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기 시작했던 신석기시대 이래 우리는 누구에게나 각자 생존 양태에 따라 신델릴라 콤플렉서 (외부의 규제가 내부의 저항을 압도적으로 능가할 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무저항적 귀소본능이라고 정의를 내려보는 것을 허용한다면)을 갖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각자의 한 쪽 유리구두는 쓸쓸한 거리에 눈뜨고 있으리라) 내가 그것을 알고 있음에랴, 그대가 그것을 또한 느끼고 있음에랴. 누가누구를 긍휼히 여길 수 있으며 누가 누구의 생애를 경배하여 왔을 것이며 또한 진실로 경배해 갈 것이냐.

 

 

 

1982.6.16

 

– 전정 剪定: 그 찬란한 합리주의자의 가장 비합리적 모순이여.

 

I. 전정: [농] 과수재배에 있어서 균일한 발육과 수형 수형의 정리를 목적으로 가지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 trimming

 

II. 네 번째 참회: 나는 이 짧은 글에서 병준의 군입(軍入, 6.14)과 관련된 나의 격리(잠적)에 대하여 잠시 언급하려 한다. 언젠가 다시 나의 잠적에 대하여 자세히 정리할 일이 있겠지만 우선은 전정(가지치기)과 맥락을 잇는 비유적 추상수법의 한 단명으로서 다룬다. 참회의 대상자는 일단 준으로 가정한다.

 

III. 준. 드디어 자네는 군에 입대하였구나. 네가 떠나버린 동숭동에는 이제 어떠한 의미가 남겠는가. 6월 13일 한낮 내내 너의 집 부근 마로니에 광장에서 마른 빵을 헝겊처럼 구겨 넣으며 바람으로 자꾸만 꺼지는 담뱃불을 그어대며 배회했던 일을 자네는 알고 있었을까. 그 동안 너와 나의 언쟁의 촛점이었던 10개월(81. 8. 15~82. 6. 15)동안 너의 심경의 추이와, 네가 끝끝내 유추로써만 파악했고 성급히 네 주관으로써만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상해진 우리의 종식적 관계를 또 다시 부활시키려 했던 자네의 배려에 나는 조용히 감사드린다. 전정이라는 말을 언젠가 한 적이 있다. 과수재배에 있어서 균일한 발육과 수형의 정리를 목적으로 가지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일이 그것이다.

인간에게도 누구나 잎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서너 개 이상 있다. 그 개별적 가지들은 시간의 묶음이며 그 시차의 공간인 가지 안에는 석은 잎부터 부활해가는 잎, 돋는 잎 등이 달려있다. 그 잎들은 나무의 물관 체관의 관다발로부터 양분및 수분을 공급받으며 도 외적인 요소 즉 햇빛을 이용하여 녹색동화 작용을 일으켜 내적 에너지를 확충한다. 고로 잎은 나무 [自我]와 햇빛 [外界]의 유기적 매체 媒體 이다. 개별인간과 보편세계의 이질성을 이어주는 것은 ‘동일인으로서의 인칭’이다. 우리는 그러한 인칭을 흔히 2인칭화 (사랑, 친구, 가족) 한다. 그러나 과수뿐 아니라 인간의 사육 기간 중에서 우리의 관계들 속에는 엄연히 칼날 같은 전정이 가해진다. 그것은 소극적으로 타의에 의한 단절의 전정과 적극성(주관성) 전정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소극적(피동적) 규제 전정은 ‘나’의 의지로서 대개는 극복되거나 외부로의 투사과정을 통해 제거, 전위 傳位된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 가하는 능동적 전정은 스스로에게 일반적 매저키즘으로 작용되는 일테면 ‘상쾌한 허무’ 끝에 오는 ‘맑은 힘’을 사랑하는 가학성 변증상태로서 스스로의 관계함정에서 벗어나오지 않는 한 전정 부분의 모든 기억이나 가치는 일시적이든 혹은 영구적으로 소멸되어진다. 나는 그러한 매저키즘의 일환으로 군입대의 잠적을 감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상쾌한 허무를 맛 보았던 것도 같고…. 내가 먼저 쉽게 느낄 수 있었던 관념의 복병은 상식적 권태의 늪이었는데 그것은 안양 ‘수리’인의 만남으로 외형적으로 손쉽게 극복되었다. 그 다음으로 내게 다가 온 것은 (사실 나는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외형적 관계단절로써 내면적 자기 감정 통제로 이어지는 무감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나의 전정은 합리적으로 내면 통제하는 주관적 ‘환상’ 즉 관념의 유희뿐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러한 환상과 부딪칠 줄 예견했었고 그 환상이란 ‘마치 오른팔이 잘린듯한 환상으로 몇 십 년을 산 후에 정작 오른 팔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이용되어 나는 나의 주관적 심리적 의지로서 나의 환상(백 보 양보 했을 때) 전정을 무감각화함으로써 신경마비 된 나의 환상의 가지를 불 수 있으리라는 관념상의 방패를 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꺾이지 않고 오히려 자가동력으로 점점 살이 쪄 오르는  가지들이 내게 보여준 실상은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관계상의 믿음이나 관심같이 소중한 것들이었다. 병준, 상현, 곧 이어 석제로 이어지는 부활의 전정 하나 하나마다 나는 무심결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나는 부분 노출 후에도 상당히 그들에 대한 발악과도 같은 무감각에의 지향적 민감성을 다족류 곤충처럼 보여왔었다. 그러면 나의 전정에 있어서 수형 정리는 실제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오, 나는 실상 신촌으로 부활해야 하는 필연성이 있었고, 따라서 수도승이나 온자처럼 24개월 만큼 망각을 요구함으로써 내적인 충일과 변모, 그리고 그때 가서의 외적인 일그러진 변형간의 충격과 신선한 긴장을 요구한 것이리라. 지속의 지속성은 부분간의 불연속선, 그 긴장의 구멍이 필요하다고 나는 보았으므로 지속의 연속은 지겨웠다. 병준, 네가 걸핏하면 얘기했던 기형도 그는 이미 내 절망 안의 한 부분이다, 라는 이유와 내가 너의 떠 벌인 “진열장 유리가 달린 내부의 속, 그 역 逆의 개념으로 ‘서로가 흔하지 않은 동료임을 확인할 때 (수긍), 그 관계는 운명적인 것이어서 그 지속이 증오든 사랑이든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낭만주의적 견해”는 나의 역설과 혼돈 속에서 왕래하던 합리주의자의 가장 비 합리적인 환상 전정임을 너는 윤곽이나마 짚고 있었는지.

(잠시, 하루 지났다. 6. 17. 김대규 선생과 ‘신화 신화, 사조 사조, 그 속에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길모퉁이 카페서 담화. 순창, 재복, 동석) 분명하다. 병준 내가 네게 느낀 하나의 빈 공간 (쓸쓸함의 원규)은 너는 너의 제1의 사랑의 여력으로 즉 사랑의 여과된 감정상의 찌꺼기로 나를 대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감이었고 가끔씩 네가 진실로 던진 애착의 시위는 나의 자존감이나 교만이라는 습성적 바리케이드를 뚫지 못했음을 느낀다.

또한 네가 언제나 소망했던 나의 정열에의 기대는 나의 기질성의 재고기질이나 중요한 부분은 숨기는 유약성(따라서 가끔은 오발탄처럼 우습거나 감상적으로 부분 노출됨)이었음에 또한 나의 그러한 ‘식음’의 결핍증은 언제나 신경안정제처럼 풀어져 나는 너에게 권태를 이식했고 냉정과 오만을 주사했으며 너는 나에게 지겨운 정열이나 습한 애정의 부산물을 던져왔음. 오오, 얼마나 눈물겨운 일이냐. 느끼면서 서로 충분히 급부의식의 정당성을 알면서 상황을 핑계 삼아 반대급부의 착란 속으로 왔던 우리의 역설. 이제는 너도 떠나고 내가 좀 더 시간이라는 냉정한 판관 앞에 가깝다. 완벽한 외형적 분리 속에서 나는 우리 사이 얽힌 끈의 매듭을 풀어야 하리라. 나는 이제 내 환상전정의 끝을 분명히 보았다. 땅에 톱밥과 같이 떨어지는 가지보담 먼저 급속도로 돋는 새 순의 아픔.

자네가 보여준 믿음이나 우려는 정말 갑진 것이므로, 너와의 가지는 나의 전정이 환상 그 밖으로의 소명임을 내가 인식함으로써 톱날의 부위에서 벗어나야 함을 안다. 이러한 또 하나 나의 성찰이 순간적 긍휼이나 동정의 잔해로써 기억되지 않아야 함을 기원한다. 병준. 자네는 나의 절망의 한 부분이며 이미 살아 온 내 짧은 생애 속 따뜻한 한 개의 나이테 눈금으로 새겨져 있음에랴. 그것을 네가 그리고 내가 안다면 우리 말대로 서로는 가장 비슷한 개별언어 종족임을 확인하고 확인 받아야 되리라.

 

 

1982.6.26

 

권진희씨에게 전화. 반가웠다. 첫마디가 ‘네가 나를 현혹시켜 놓고 입대한지 1년 하고도 얼마냐.’

여전히 숨이 막히듯 아슬아슬한 웃음의 이어짐.

조성용형. 올 여름 바다에서 자살 自殺 했다는 소식 듣고 우울.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걸맞았던 형의 행동반경. 어른스럽던 형이었기에 내가 1학년 때 무척 따라다녔던 생각.  대천 수양회의 추억. 비지스 Bee Gees. 당구장. 포항. 밤바다. 모래. 문득 ‘햇빛의 숯’ 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처음 입대하고 온 펴지 서두가 ‘나는 지금 막 죽음으로 탈출한 한 젊은 전우의 몸을 알콜로 씻어내고 흰 시트를 그의 전신에 덮어 주었다’로 시작되었댔다. 안녕히. 형의 죽음이 나의 생활에 단순히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간직되어질 수 있는, 혹은 예술적 체험세계의 확장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녕히. 진실로 명복을 빈다. 올 여름에는 너무도 많이 헤어지는구나. 아, 그만큼 너무도 쉽사리 없어지는 사람들.

 

 

1982.8.27

 

제대병. 나는 비로소 제대하여 민간인 민간인 으로 복귀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비참한 기분은 내 일생 몇 번 되지 않는 독특한 감동으로 기억되리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추억들. 또한 보병 제51사단 포병연대 예민과원들(예민과장 최용달 휘하 부사수 김기홍, 고영호 이병 등)에 대한 나의 심려 역시. 그러나 참아내리라. 시련이다. 그것은 너희들 일생을 좌우하는 것들, 중의 하나, 즉 프론티어리즘 frontierism 으로 작용할 것이다. 해제증을 받아 들고 위병소를 내려오다 부대 진입로 앞에 앉아 허리를 꺾고 약간 눈물을 흘렸다. 이제 안녕히. 나의 성숙도 또 하나 자양분으로 쌓여있을 군대생활이여. 떠남이란 것이 허무하면서 또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은 속박에서의 탈출이 빚어내는 암울한 자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치 새장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새와 같다. 어느날 주인집 꼬마 소녀가 장난 삼아 (오! 운명이란 것이란) 새장 문을 열고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날아야지. 오, 아뿔사. 이미 나는 날으는 법을 잃어버린 새였다.’  혹은 ‘어쩌면 미국 남부 켄터키주 쯤의 농장에서 노예로 있는 검둥이. 드디어 계약이 끝나고 사슬을 풀고 목책을 지나 광활한 평원을 바라볼 때 문득 뒤돌아 본 철문 닫히는 소리와 그 은은하고 쓸쓸한 석양 그 막막한 자유!’  – 부대를 나와 ‘태양’다방에 들렀다. 계급장과 부대 마크는 위병소에서 떼어버리고, <제대병>이란 시 한 편 완성. 오후에 양석이 이병과 함께 제대기념 환송회를 ‘샘물’ 술집에서 가졌다. 기쁜 일은 장장 19명이 나와 주었다. (훗날의 기쁨을 확인하기 위해 기록: 나, 양석이, 윤여백, 고영호, 김기홍, 백종화, 엄윤명, 남건현 하사, 박재옥 병장, 최종진 일병, 인사과 이희정, 박병철, 방동수, 원호승, 정작과 서호석, 김민호, 562BN 백승오, 강동기, 김신철).

나는 좀 과음 (소주 1병)했고 다소 감상적이었다. 그들에게 마지막 막 유언(?) 시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 軍에서의 인내심이란 개성이나 자존심의 붕괴과정을 내면적으로 다스리는 힘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싸워 이여야 할 그 긴 타율적 시간과의 지리한 싸움에서의 극복의지’라고… 허망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 허망한 비참성이 단순히 내 젊음의 한 토막을 호계동 부대에 끊어 주고 나온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알고 있다. 단지 나는 이러한 비참성이 ‘잠재적 기쁨의 자유’가 스스로 ‘슬픔이란 감동의 굴레’를 쓰고 미화하는 사치품이 아니기를 논리적으로 되묻는 자세만을 생각하였다. 떠남이 허망할진대 만남 또한 허망하다는 단세포적 논리는 지극히 염세주의적인 황폐한 것이라고 되묻는 자세만을 생각하였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마주침. 먼 훗날 다시 내부에서 희미한 윤곽으로만 정리될 제대 유감 有感을 감상적이지만 솔직하게 기록해 본다.

 

 

1982.8.28

 

– 시화전 ‘안개는 들이 아래로’ 시작.

00 과 만나 이별의 암시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가 대했던 많은 대화들에 대하여 그녀의 슬픔이라는 몇 줄의 눈물로 보상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 또 이렇게 되었다.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 통나무집에서 그녀가 키스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신같은 계집애.

‘먼 훗날 당신의 첫 남자가 깨끗한 추억으로 서 있기를… 당신의 성숙기에 한 개의 방향표지처럼 서 있는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다. 어차피 헤어질 우리라면 네가 가까이 올수록 나를 접근할 수 없다고. 나에게서 네가 어떠한 확신 (키스거나 밀어)을 얻으려는 너의 태도는 네가 아주 자신감이 없거나 성급히 우리 관계의 어떠한 결말을 재촉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혐오감과 동정심.

 

지난 81년 겨울 ‘하얀집’ (라면집)의 김 00 시가 생각났다. 나에게 파카를 벗어 준 머리가 길고 담배를 즐겨 피우던 키 큰 여자. 추호의 더러움도 느낄 수 없는 여자. 추워서 남쪽으로 내려왔다던 여자. 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 가겠다던 여자. 그리고 그 해 겨울이 막 시작할 때 (12월 20일경) 말없이 라면집을 그만 둔 여자. 그래서 내가 그 후로 못 만난 여자.

“옷 주셔야죠?”

“아, 그렇군요. 너무 따스해서 나는 내 살인 줄 알았어오.”

그 여자. 내가 지금 추억 만으로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상현 달 같은 여자.

 

 

1982.9.1

 

시화전, 어제로 끝. 재복 탈퇴. 집에서 돼지 우리 손질. 상-하수도 공사로 9월 한 달은 집에서 은둔생활 해야겠다. 판넬 <삼촌의 죽음>은 내 사랑하는 부사수 고영호 군에게, <포도밭 묘지>는 훗날 누구든지 주려고 내가 집에 들고 왔다.

 

 

1982.9.4

 

병준. 카투사에서 외출. 만나서 술 한잔. 대구 카투사 이삿짐 센터로 보직 받았다고. 호텔 버금가는 군인 아닌 군인. 반가왔다. 정말. 니힐리스트 는 그 기대치를 언제나 최소한으로 추정한다. 너는 너무 요구하는 것은 아니냐? 우리는 한 사람이 어떠한 기대를 가졌을 때 우리가 그 기대를 메워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결국 병준은 사람 하나 하나 만나 기대를 충족시켜 가고 그 대상의 사람들 (나 역시) 도 다른 사람들에게 병중을 인계하고 (내 경우는 K에게 바턴을) 하경 下京, 좀더 튼튼해지길 바란다. 성장이란 외로움을 타개해 나가는 속에서 슬기를 얻어 나가는 과정이리라.

 

 

1982.9.22

 

어제는 응춘군 방문.

오늘 연세문학회 방문.

새로운 확인. 나의 완벽 콤플렉스에 대한 스스로의 공포. 재확인해 버린 자폐증 환자. 신촌에 내리는 것. 정문 들어설 때, 아는 사람 만날까 봐 무서웠다. 내적으로 자기 방어기제가 약하거나(대인공포증) 지나칠 정도의 결벽주의. 무곤이 시 詩가 좋아졌고 재길군의 권위주의 (다소 완곡해진) 에도 좀 지겨웠다. 나는 시종일관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일관했고 문학회 신입생들은 모두 바보 같았다. 좀더 나 스스로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겠다. 나의 전통적 수비형 의식 상태 재확인. 나의 이러한 이율배반적 충동심리(누군가에게 눌려 논리나 감성면에서 나를 능가하여 내가 비울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의식과 내가 우월감을 동원하여 지도하고픈 욕망, 즉 이 양자가 마찰을 일으켜 두 개의 의식 모두 불투명하고 허약한 내면적 아노미 상태)의 근거는 내가 지극히 경쟁적 심리를 선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듯한 까닭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경쟁 심리를 버리고 추종 심리에 서서 그 상대를 대립에서 제거시켰을 때 나는 다소 그들의 권위나 논리에 대하여 순응하거나 동조하는 보수주의자였던 것 같다. (혹은 그러한 순응 뒤에서 나의 비판력이 그들의 허약한 권위를 내면적으로 눌러버릴 때 은밀히 기뻐하는 행위도 엄밀히 경쟁 심리일지도. 그렇다면?) 예외적으로 석제가 있는데 그는 나와 약간 예외적인 경우로 경쟁도 추종도 얕봄도 아닌 공준 상태라 생각한다. 가끔 그의 시니컬이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는 내가 가끔씩 상실하는 장황하고 유장한 사변력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에 나는 그가 허술히 보존하는 치밀한 감각과 냉철한 감수성이 살아 있다고 확인한다. 물론 서로가 논리나 감수성 면에서 수준 이하는 아니므로 적어도 나는 석제와 서로를 약간씩 존중해 주는 (경멸치 않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석제와 봉희(선배이면서도 언제든지 공박할 수 있는)가 그리워졌다. 문학회 후배들에게 ‘선배를 이용’ 하라고 뻥 큰소리쳤지만 솔직히 귀가 도중 내가 계속 연세문학회를 전같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져버렸다. 언젠가 석제의 편지에서처럼 ‘그들(문학도)이 추구하는 예술적이라고 착란하는 언어조립 상태가 갖는 함정 – 즉 사이비 문학으로써 – 삶의 허약성을 환상적으로 보상하는 수단으로써의 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본질의 문제와 감동의 문제가 계속해서 내 가슴을 쳤다. 나는 요즈음 엘리어트 (T.S. Eliot)의 주지적-계몽성이 기교와 문체로서 은닉되어진 삶의 처절한 음성을 그리워 하거나 워즈워드 (Wordsworth)류의 낭만적 신비적 목가주의의 유연하고 풍요로운 감성 感性을 사랑한다.  시詩란 본질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人間]에게 생의 비밀이나 투시력 혹은 인간을 선 善하게 이끄는 온갖 에스프리, 생을 풍요롭게 하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일인 바 감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계몽적 생명 (생활 – 리얼리즘+인상주의 -로서의) 유파에 빠져있다. 대학생들의 아카데미즘이나 귀족주의 aristocratism, 혹은 언어 심미주의, 사이비철학 변용주의 등을 혐오한다. 또 하나, 기형도 자네는 말을 아끼라. 너의 감상感傷은 시詩로써 족하다. 왜냐하면 시적 감상 詩的感想 은최소한 적어도 절제로써 은폐된 것으로 감동을 위한 매개체이므로. 허나 대화에 있어서의 감상은 그 발언자의 허약성이나 진지함에 대한 회피가 될 수 있음으로 하여 사회학, 심리학, 미학, 문예사조, 정치학 등 폭넓게 공부하고 산재해 있는 나의 잡화상같은 지식 따위에 좀더 체계적 정리가 필요하다. 나의 문학은 어디로 갈 것이뇨? – 오, 분명한 것은 나는 지극히 둔재라는 말이고 둔재라는 말에 의심을 품을 경우에는 진실로 그 언어에서 풀려나지 못하리라.

 

 

1982.9.25

 

밤 1시. 시詩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문愚問이다. 구원할 수 ‘있다’ 혹은 ‘없다’의 구분은 이미 시詩에 기능이나 효용의 틀을 뒤집어 씌운다.  따라서 어떠한 예술장르가 최초에 성립되었을 때 본연적으로 갖는 기능이란 두 말할 필요 없이 ‘있음’에 귀착한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은 그 질문이 던져져야 하는 상황과의 투쟁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시’의 왜소화, 편협화, 무기력화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일 것이다. 한때는 시가 공동 집단의식의 대변언어로서 회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시의 기능은 분화되어 고도의 예술성(문학주식회사 내에서 통용 가능한 악화 惡貨이나 천박한 감상주의) 등으로 쪼개져 모든 인간에게 부수적 수요자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시詩가 갖는 본래적인 기능이 다른 예술, 이니 틀렸다, 다른 사물에게 치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詩가 ‘구원’으로서 군림해야 할 지금의 위치는? 그 설정방향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따분하고 졸리울 뿐이다. 그런데 평자들이나 고고한 시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지식에, 논리에 굶주린 bulldog 같다) 사회학적, 철학적, 심리학, 심지어 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시는 시다. 그리고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얘기하고 듣는다. 그리고 감동한다. 감동?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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