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5일 자비의 모후 성모님, 저희들  레지오를 떠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이 상식이고 거의 진리에 속한다. 10년 동안 레지오 활동단원으로 ‘뛰고, 기도’하던 때는 사실 거의 한번도 이곳을 떠날 때가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물론 가끔 떠나고 싶었던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가슴 속 깊은 속에서는 언제나 ‘떠나기 싫지?’ 하는 성모님의 잔잔한 음성을 느끼곤 하고, 마음을 바꾸곤 했었다.

10년이라는 숫자, 나의 나이, 가정상황의 변화.. 등 요소들도 레지오를 떠날 결심을 하는데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나, 사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10년간의 레지오 활동은 우리의 삶의 이유와 의미, 그리고 활력소를 주었던 것인데, 무엇이 우리를 ‘지금이 바로 떠날 때’라는 결론을 짓게 되었는가?

2017년 봄과 가을, 자비의 모후에는 두 가지 서로 연관이 없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가을의 사건은 후에 ‘가해자’의 억지사과로 끝맺음이 있었다. 하지만 봄의 사건은 정 반대로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승승장구 레지오에 곳곳에 흔적을 남기더니 얼마 전에는 급기야 꾸리아 간부로 입성을 하게 되었다.  2017년 봄 사건 이후 우리는 ‘만약 이 인간을 다시 공적으로 보게 되면, 그때가 바로 떠날 때다’ 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런 ‘절묘한 일’이 일어난 것이고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그 인간이 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가 있었는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도저히 우연이 아님을 나는 확신했다. 이것은 필연이라는 생각, 아하~ 총사령관 성모님이 우리보고 ‘그 동안 수고했다’ 하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추측이지만 가슴 깊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다음 장 章으로 넘어가라는 성모님의 계시인 듯 한 것이다.

10년의 세월은 짧은 것이 아니라서 당분간은 무언가 허전할 것이다. 레지오 이름으로 봉사하던 시절도 가끔은 그리워질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남는 여유 시간을 다른 곳에 더 현명하게 쓰는데 주력하며 살 수 있게 성모님의 도움을 청할 것이다.

 


2020년 10월 19일  Anniversary, 10th YEAR!

2020년 10월 19일, 내가 처음으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에 문을 두드린 지 10년째가 되는, 나에게는 무척 의미가 엄청난 날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날은 내 개인역사의 ‘초 현대사’가 시작된 날로 꼽는 날로 삼는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된 자비의 모후 주회합에 참석을 한 그날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07년 부터 협조단원으로 ‘가끔’ 기도를 바치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성당공동체로 다가오던 3년은 솔직히 신앙의 재발견에 해당하는 적절한 준비시간들이었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정말 오랜만에 맛보았던 때.. 서서히 얼어붙었던 가슴이 서서히 녹아감을 느끼기도 하던 때, 드디어 ‘나를 바꾸어야겠다!’ 라는 충동감이 솟구치던 때, 연숙이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단원 입단을 언급했다. 물론 기대는 거의 안 하면서… 하지만 이때는 달랐다. ‘무조건 YES!’를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는 ‘항복합니다, 항복합니다, 내가 졌습니다…’ 라고 되뇌면서…

‘자비의 모후’, 정식 입단과 주회합 참석으로 시작된 향후 10년은, 오늘날까지 한마디로 ‘뒤를 안 보고 앞만 보며’ 달렸던 은총의 세월’이 되었다. 1982년 입교, 영세 이후 모르고 살았던 수많은 가톨릭의 진수를 닥치는 대로 배우고, 감탄하고, 응용하고, 실행할 수 있었던 10년의 세월, 도대체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참 삶이란 이런 거의 우연한 순간들이 오고 가지만 나에게는 거의 생의 마지막에 받는 성모님의 후한 선물, 은총인 듯 느껴지기만 한다.

 


2020년 5월 28일  Sky has fallen.. Where are you, Mother?

세상살이는 어떨 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제도 해가 뜨고 오늘도 해가 뜬다. 내일도 뜰 것은 거의 분명하다. 보는 것만도 지겨운 인간들이 주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도 큰 변화가 없다. 무엇인 변하는가? 나이를 먹는 것, 언젠가는 ‘반드시, 100%’ 죽는 것, 세금은 꼭 내야 하는 것…등등

그 중에서 갑자기 변하는 것은 흔치 않다. 내 인생에서 겪었던, 피부로 가까이 느꼈던 것,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scale이 컸던 것을 거의 모든 인류들이 겪었고 현재도 겪는 것, 코로나바이러스, 아니 빨갱이 짱깨들의 선물,  ‘우한바이러스’.. 그것으로 성사생활은 물론이고 불똥이 레지오에까지 튀었다. 완전 정지, 완전 stop된 레지오 활동…

일주일 마다 모여서 성모님께 경과, 활동보고를 하던 그 멋진 일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군대처럼 모여서 군대처럼 ‘멋진, 보람된’ 봉사활동을 하던 모습이 완전히 없어졌다. 이런 쓰나미, 지각변동, 하늘이 떨어지는 경험을 어느 누가 일생에서 겪었을까?

매달 마다 도착하는 꾸리아의 월례통보, 추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본당 내 모임은 없다고, 활동은 단장의 재량에 달려있다고 밝힌다. 미사가 제한적으로 시작은 되었지만 단체활동은 아직도 미지수다. 아마도 몇 주가 더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마스크를 쓰고 6 feet 떨어져 앉아서 주회합은 가능할까?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진정한 문제는 ‘활동’이다. 활동이란 거의 person-to-person 인데, 6 feet를 떨어져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어떻게 찾는가?

우리들이 하던 양로원 방문은 현재로는 NO NO NO…   Senior 아파트에 사는 환자 방문도 현재로는 알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활동인가? 그것은 레지오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지금은 ‘비상시국’이니까, 꾸리아에서 그것을 승인하면 ‘법적’인 문제는 없을 듯하다.

참~ 오래 살았다… 오래 살았다… 우한 바이러스를 선물한 빨갱이 짱깨들에게 다시 한번 눈을 째려보고 싶다. 지겨운 빨~갱~이~ 들아, 지구상에서 사라져라!!!!!!!!!

 

2020년 2월 15일  Looking back…  Exit, now thinkable…

레지오 입단선서를 한지 9년이 되었다. 2010년 10월에 입단을 하고 그 다음해 2월에 선서를 한 것이 사실 아주 오래 전이라는 느낌보다는 입단 이후 내가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더 분명하고 지배적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참 나의 많은 것들이 변했고 따라서 내가 보는 이 세상, 실재관, 세계관.. 그러니까,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 관점도 따라 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린 ‘레지오 영향, 효과’의 요점이다.

It’s now or never, Just do it, Don’t look back, Don’t think twice… 등등 참 많은 ‘구호’들이 나의 머리를 지배하였던 시절들이었다. 나 자체도 그렇지만 주위의 환경도 따라서 크게 변했을 것이다. 모두 모두 ‘좋은 쪽’으로..  그렇다, the ‘much’ better version of myself..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런 ‘좋은 것’들을 이제 조금씩 뒤로하려는 생각을 가끔 즐길 때가 있다. 성모님도 인간에게 있어서  ‘세월의 마력’ 이 어떤 것인가를 모를 리가 없을 듯하지만, 이에 대한 묘책은 없으신 듯하다.

부부가 한 조가 되어 열심히 뛰었던 지난 10년에 가까운 시절들, 이제는 추억이 되고 있는 듯한 슬픈 심정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지만,  그것이 성모님의 숨은 뜻이라면 순명 할 각오도 되어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떨칠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사이 신입단원 지망생이 나타나면 반드시 상기시켜 주는 ‘덕담’이 있다. 소위 말해서 ‘레지오 단원이 갖는 10가지 혜택과 은총’ 이라는 것, 어디선가 보고 이제는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에 비추어 나를 다시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레지오 단원이 갖는 10가지 혜택과 은총: (I would miss you…)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고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5.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6.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7.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8.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9.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10.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음.

 

내가 몸소 경험한, 생각한 혜택과 은총은…

1번, 조금은 추상적인가.. 진정한 구원이란 것이 사후의 것이라면 솔직이 아직 자신은 없다. 현세의 구원이라면 자신이 있다.

2번, 내가 남을 위해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은 거짓말처럼 보람을 주는 생애를 준다. 이 보람이라는 것보다 더 활력소역할 을 하는 것이 이세상에 또 있을까?

3번, 물론이다.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을 보며 받는 위로와 용기는 그것보다 큰 것임을 늦게야 깨달았다.

4번, 거의 무관심으로부터 시작해서 묵주기도, 성경공부, 대인활동을 통한 올바른 성모신심의 역할은 최소한 나에게는 99.9% 효과적인 생활방식임을 깨우쳐 주었다.

5번,  레지오 활동은 한 마디로 대인관계의 연속이고 필수적 사항이다. 나는 99% 외톨이 신세에서 벗어나 ‘사람 속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은총의 기회였다.

6번, 직장 같은 조직생활에 대한 거부감으로 점철된 나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내가 그 당시에 이런 ‘군대적 조직’의 매력을 느꼈다면 나의 인생은 아주 달랐을 것이라 확신한다.

7번, 매일 매일이 기쁨과 감사는 비록 아닐지라도 거의 그쪽을 향한 생활 흐름의 연속이었다.

8번, 깊이 있는 성모신심을 가지게 되는 흔치 않은 ‘조직적 방법’이 바로 레지오 신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9번, 이것은 기본적인 레지오 정신이 가져다 주는 분명한 결과다. 영성적, 정신적인 건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있다. 기도를 바탕으로 하는 ‘활동’, 이것이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10번, 그렇게 피하며 살았던 ‘죽음의 명제’, 언제까지 이것을 미룰 수 있는가… 레지오의 기본적인 ‘연령활동’이 이 난제를 철저하게 풀어주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을 몸으로 느끼고 이해하려면 죽음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레지오는 가르쳐 주었다.

 


2019년 12월 10일  another chapter, down-turning…

한마디로 피곤하다. 지난 10월 중순으로 나는 레지오 입단 10년 차 단원이 되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10년이란 세월, 조금은 ‘서서 주위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가끔 엄습해오는 피곤하다는 불길함은 떨칠 수가 없다.

지나가는 10년, 사실 뒤를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리려고 했고, 결국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는 뒤도 좀 보고 앞날을 더듬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내가 이렇게 한 가지 활동을 오래 지속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이것은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손길이 작용했다고 굳게 믿고 싶다.

하지만 어떠한 것, 특히 ‘유기적인 것들’에는 흥망성쇠, 생로병사가 있는 것이 하느님이 부여하신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나의 사랑하는 자비의 모후 Pr. 도 그런 ‘진화의 과정’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10여 년이란 세월은 짧지 않았기에 이제는 우리, 나의 몸과 마음의 일 부분이 된 느낌도 들기에 내가 만약 이곳에서 만약 떨어져 나가게 된다면 나의 친가족의 이별에 버금가는 커다란 슬픔일 듯…

하지만 여러 가지 ‘하늘의 징조’을 일부러 무시할 수는 없다. 올 초부터 안간힘을 쓰며 ‘젊고 참신한 단원’을 입단시키려 부단히 신경을 쓰고 노력을 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한 마디로 ‘참담’ 그 자체다.

올해가 저물어 가면서 다시 우리 자비의 모후는 ‘비상사태’를 선언할 정도의 사태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아무런 추호의 의심 없이 ‘믿었던’ 열심한 신新 단원의 실질적 퇴단, 이것은 나에게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를 놓치는 격이 되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가정사정을 어찌 모르랴마는, 어떻게 그렇게 그 동안 상황을 조정하지 못했을까 할 정도로 나는 실망을 넘은 분노감, 그것도 성모님께 대한 불만까지 느끼게 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주위를 아무리 돌아 보아도 ‘자격을 가진 입단 후보’가 안 보이는 12월 대림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2019년 10월 5일 hopes’ still alive…

성모님의 손길을 강하게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며 지나다 보니 벌써 10월, 지나간 12개월간 우리의 레지오 활동을 총결산을 하는 때를 맞는다.  레지오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지나간 해를 자세히 되돌아 본다. 한마디로,  ‘살려고 발버둥 친’  우리 ‘자비의 모후’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일주일 후 꾸리아 월례회의에서 우리가 발표를 하게 되어있는데, 일년간의 활동에 대한 모든 데이터 들은 이미 입력이 되었고 마지막 것, ‘쁘레시디움 운영상황 나눔란’ 만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마지막 글이 그렇게 힘든 것이 되었다. 마지막 일의 20% 가 전체 소요시간의 80%  가 든다고 하는 말이 맞는 듯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결정해야 할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내가 단장직을 맡은 직후에 작성한 보고서의 운영상황란에는 나의 주장으로 우리 쁘레시디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두 명의 현, 전 단원들에 대한 깊은 언급이 있었다. ‘전前’ 단원은 사건 이후 퇴단을 했어야 했지만 다른 사건의 당사자,  ‘현現’단원은 당시 꾸리아 간부였고 현재는 놀랍게도 ‘잘 나가는’ Pr.의 단장을 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 자비의 모후는 이 두 명에게 심한 상처를 받고 비틀거리며 거의 2년을 지내오고 있음을 알기에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아니 잊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남아있다. 사건 당시 거의 즉시 퇴단한 일명, ‘미친X’은 현재 우리의 관심권 밖으로 나갔기에 별 문제가 없지만, 다른 한 명은 언제라도 우리 레지오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간이기에 나는 언제나 주시하며 벼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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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뒤 레지오 사업보고를 마친 후:

 

윗글을 쓴 2주 뒤에 꾸리아 월례회의에서 우리 ‘자비의 모후’ 사업보고가 예정대로 완료가 되었다. 나의 예감대로 나는 마지막 순간 보고서 print을 하기 전까지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연숙의 충고대로 나는 ‘공식적으로 잊기로’ 결정하였다. 이제부터는 공적으로는 이 두 ‘인간’들에 대한 것을 언급하는 것은 안 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2년 동안 나는’복수의 칼’을 버리지 못하며 살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즐거운 일도 아니고 이제는 뒤 보다는 앞을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완전히 그 사건들을 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최소한 ‘복수의 칼’은 던져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대로 밝은 소식이 있다면, 지난 해의 활동에 예년에 비해서 덜 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우리들의 봉사활동은 전 해에 비해서 늘어났다. 거의 최소한의 단원수로 이런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10명일 때의 것과 4~5명 때의 활동강도가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예전의 우리 Pr. 의 대다수 단원들이 거의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충격적인 사실, 오합지졸들의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의 시각으로  현재 우리 꾸리아 소속 Pr.을 둘러보면 사실 예전의 우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대다수의 단원들, 어떤 각오와 자세로 ‘레지오 단원’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교본을 읽고 읽어도 소용이 없는 듯이, 레지오를 ‘사교모임’을 생각하며 외로움을 달래려 끈질기게 나오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믿음에 바탕을 두지 못한 탓도 없지 않고,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2019년 2월 18일  a glimmer of hope,  uncharted territory

“이제는 갈 때까지 간 것인가..”  지난 몇 주 동안 나의 머리 속에는 이런 ‘조용하지만 절박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도 밑바닥이 안 보이는 것인가..”  하며 다시 고개를 들고 보니, 아하! 드디어 바닥을 쳤다.. 하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결국, 지난 주에 그 ‘밑바닥’으로 ‘연착 延着 soft landing’을 한 것이다.

현재 상황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조촐한 ‘활동단원 3명’인 ‘자비의 모후’가 된 것으로, 규정상, 기술적으로 말하면 현재 우리는 문을 닫아야 하는,  ‘비 정상적’인 상태다. 이런 상태로 단장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지난 6개월 동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 消盡 켰던 ‘구역장 임무’ 때문에 나는 우리 자비의 모후에 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이제 구역장 사임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러한 다른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비의 모후를 살릴 수 있는 것인가? 신단원을 입단 시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구역장과 단장이라는 쉽지 않은 임무를 겁 없이 수락한 것부터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임무가 아니었다. 모두 ‘하느님과 성모님’을 위한 단체가 아니던가?

우리 ‘자비의 모후’를 다시 뒤돌아보면 한마디로 ‘시한폭탄적’인 그런 그룹이었음을 안다. 시한폭탄을 지닌 몇 ‘독성이 가득한 단원’들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는 그것을 잘 몰랐을 뿐이다. 그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그것이 최악의 치명타가 된 것이다.  몇 주전에 ‘야멸차게’ 떠난 2명의 단원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성모님의 군대로 행동을 했을까?  그들을 보며 정말 ‘믿을만한, 성실한, 진실된’ 사람들이 너무도 요새 찾기 힘듦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슬픈 현실이다.

지난 9월초 단장직을 시작한 이후 나의 머리 속은 사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간 장본인( 한 명은 최악의 주범 일명 ‘레지오 미친년’ 이고 다른 한 명은 거의 공범격인 일명  ‘왕 마귀’) 들을 탄핵 (주범은 제명, 공범은 공개사과) 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름대로 승산이 있었는데, 나의 실책이었는지, 더 이상 그것들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고 현재는 거의 보류 중에 있다. 하지만 단장 임기 중에 나는 ‘탄핵’을 결사적으로 성사시키리라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뒤를 안 보기로 했다. 앞만 보며 나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자비의 모후 는 ‘절대로, 절대로’ 살릴 뿐만 아니라 우리 꾸리아에서 제일 모범적이고, 젊은 피를 받은’ 그런 건강한 성모님의 군대로 만드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레지오의 기본임무인 ‘기도와 활동’을 통해서  step by step, 한 사람 한 사람 찾고 찾는 것이다.

현재 그런대로 ‘여명’을 느끼고 있다. 꾸리아에서 긴급수혈 방식으로 파견해  준,  우리와도 친근한 카타리나 자매가 부단장 직을 맡게 되면 우선 단원구성상 결격 문제는 조금 완화 될 것이다. 게다가 현재 예비자 교리반에서 부활 세례를 기다리고 있는 자매님, 때가 되면 입단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내가 보아도 거의 기적과도 같은 timing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젊은 후보자’들이 주위에 보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성모님의 도우심에 달렸다.

 


2018년 10월 15일  탄핵 제 1탄, 공문서로..

지난 9월 초 자비의 모후 단장이 된 이후 나는 어제 꾸리아 월례회의에서 첫 연례사업보고를  끝마쳤다. 모든 것이 나에게 첫 경험이라 조금은 긴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같이 ‘이유 없이’ 불안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나이로 보아 늦었지만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인 듯 느낀다.

올해의 사업보고는 새로 서기가 된 연숙이 거의 다 했고, 나는 총체적인 흐름과 의미를 찾기에 힘을 기울였다.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가 되지만 나는 그 숫자가 주는 느낌, 기억,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작년에 겪었던 911 style attack의 영향은 단원의 숫자, 영성활동 등의 격감에 역력히 들어났지만 제일 중요한 ‘활동’의 성과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힘든 상황에서 그래도 쉬지 않고 ‘뛴’ 것이다.

올해 보고서에는 특별한 사항이 추가되었다. 평소에 쓸 필요가 없었던 “쁘레시디움 운영 상황: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내용이나 나누고 싶은 내용” 난이 가득 찬 글로 채워진 것이다. 이 글귀는 ‘전략적’으로 내가 쓰고 공식문서화 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작년에 우리가 겪었던 ‘엄청난 사건’의 끝맺음을 위한 ‘탄핵 제1탄’ 의 첫 포문이 열린 것이다. 이것으로 내가 현재 시도하고 있는 두 사건의 두 주범들의 탄핵, 징계, 제명 그리고 궁극적인 ‘화해, 끝맺음,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 의 첫 발걸음이 띄어졌다. 이제는 ball은 꾸리아 쪽으로 나른 것이고 그들의 결단에 모든 것이 달렸다. 성모님은 절대로 방관만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쁘레시디움 운영 상황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내용이나 나누고 싶은 내용:

“저희는 지난 한 해, Pr. 설립 이후 처음으로 매일매일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특히 작년 8월 말에 일어났던 큰 사건 이후 몇 주간은 거의 혼수상태로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태는 비록 약해질 대로 약해졌지만 안정세에 들어섰고 기도와 활동도 거의 위기 전의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20년 역사의 자비의 모후 Pr. 을 거의 파멸상태까지 가게 했던, 서로 연관이 없는 두 사건들(특정 꾸리아 간부와 자비의 모후 Pr. 단원에 의한)을 통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이제 천상 은총의 모후 소속 레지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단원의 숫자보다는 진정한 레지오 정신으로 교육을 받은 정예단원들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저희가 겪었던 고통스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꾸리아의 특단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 8월 31일   1,000차 주회합, 새로운 도전들..

8월 초에 대망의 자비의 모후 1,000차 주회합을 맞이하였다.  작년 이즈음에 절체절명 絶體絶命의 위기를 넘긴 후 어려운 일년을 보냈지만 불시의 습격으로 가슴에 비수를 맞았던 성모님은 결국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해내셨다. 어려운 일년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정말 정중한 표현에 불과하고 우리가 겪었던 ‘실존적 위기감’은 죽기 전까지 생생하게 남을 것이고 이 모든 파괴적 행위를 자행했던 독의 뿌리 같은 ‘인간, 일명 레지오 미친년‘은 영원한 ‘악의 표본’으로 남을 것이다.

20여 년 역사의 자비의 모후, 지나간 창단 시절의 단원님들도 같이 오셔서 정말 뜻 깊고 감동적인 주회합을 한 것, 그리고 몇 주 동안 축하 미사봉헌,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미사 중에 신부님은 특별히 자비의 모후가 살아 남았음을 특별히 감안하신 듯,  모든 단원들의 손을 들게 했다. 이것이 우리 자비의 모후 1,000차 생존 자축의 절정이 되었다.

그 암울했던 절체절명 위기의 절정에서 침묵과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던 꾸리아는 이번엔 1,000차 기념에는 조금 신경을 쓴 것이 보였지만, 한마디로 ‘늦었다, 늦었어..’ 라는 비웃음만 흘러나왔다. 그 미친년 사건 후의 꾸리아의 반응과 처신은 한마디로 miserable 한 것으로 사실 기대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간부들은 ‘왕마귀 사건’과 더불어 ‘직무유기’에 가까운 기록을 남겼기에 ‘언제까지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군더더기 살이 완전히 빠진 자비의 모후의 상태는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체중이 너무 빠졌기에 힘이 약해진 것은 어쩔 수가 없기에 활동 하는 것도 지장이 많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면서 단원 수를 한두 명 늘리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내가 곧 3년 임기의 새 단장이 되기에 사실 조금은 신선한 기분으로 활동계획을 세우는 것, 감회가 새롭다. 8년 만에 자비의 모후를 이끄는 중책을 맡은 것,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닐 것이다. 나의 단기적 목표는 더욱 더 안정적인 그룹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활동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밖으로 비쳐지면 분명히 ‘정신건강’한 신선한 새 단원들이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2018년 6월 5일  1,000차를 향한 시지프스…

서기 회의록을 작성하며 ‘자비의 모후’ 주회합이 990차를 넘는 것을 본다. 10차 정도 지나면 그 신비스러운 숫자 1,000을 회의록에 쓰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주위에서 1,000차 자축을 하는 것을 보았고 미사 중에 신부님이 언급까지 하신 것을 안다. 1,000차가 되는 것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1,000차면 해수로 얼마나.. 끔찍하게 긴 세월이 아닌가? 나의 세월도 만만치 않게 7년을 넘어서지만 그래도 그 전의 세월이 만만치 않다. 그 동안의 단원님들,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얼마나 돌아가시고 얼마나 건강들 하신가? 얼마 있으면 우리도 그 ‘통계’에 들어갈 것이지만, 그런 감상에 젖는 것, ‘총사령관, 대장님’ 성모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다.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주어진 일, 하루 하루 묵묵히 ‘해 치우며’ 나가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우리의 전초 분대, ‘자비의 모후’,  작년 8월 말에 겪었던 ‘숨어있던 악마의  치명적 공격’으로 심한 위기를 맞기도 했고, dysfunctional한 꾸리아 레지오의 조직은 도움은 커녕.. 쓰라린 기억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 이후 거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1,000차를 향한 ‘시지프스’의 행군은 계속되고 있다.

레지오가 나에게 가르쳐준 교훈과 삶의 지혜는 수없이 많다. 아무리 평화가 없는 고통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무언가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보람, 은총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고통이 오면 이것 혹시 그 뒤에 오는 은총을 예고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이 레지오와 일반 사회봉사단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초자연적, 영적’인 backup이 든든히 있는 것이다.

1,000차의 milestone을 지나면 나에게는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 나와 연숙 모두 단장, 서기 6년 임기가 완전히 끝나는 것인데, 현재의 실정으로 신 단원을 가능성이 많지 않기에 서로 자리를 바꾸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면 내가 단장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이런 임무가 떨어질 것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다시 안 해볼 수는 없다. 내 나이와 우리 부부의 앞으로의 단기적 계획, 모든 것들이 간단한 것이 아닌데… 이것도 ‘순명’일 수 밖에 없는가?

개인적으로 모든 것에서 서서히 손을 놓아야 할 나이에 ‘구역장’을 맡았고 거기다 단장까지 하는 것,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일단 맡게 되면 ‘흐지부지’ 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평화롭게 쉬는 것’의 유혹을 어찌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도 결국은 ‘결단의 고통’을 통해야 하는 것인가? ‘총사령관님’, 이번에도 제가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018년 3월 12일  Problem: Asset or Liability…

지난 2월 초 나는 레지오 행동단원 입단선서한지 7년이 되었다. 7년 전 2011년 2월 1일, 나는 ‘엄숙한’ 단원선서를 성모님과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들 앞에서 바쳤고 곧 바로 영적 신부님으로 주회합에 들어오셨던  안정호 이시도로 신부님께로부터는 친히 강복까지 받았었다. 그 당시에는 사실 긴장은 했지만 조금 어떨떨~ 한 마음이었다. 이 ‘성모님께 대한 선서’의 의미를 과연 내가 1%라도 이해했었을까… 아닐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선서 만은’ 일상적, 통상적, 의식적, 형식적이 아닌 ‘진짜 진짜 선서, 약속’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죽기 전까지’ 꼭 지키기로 한다는 것, 그럴 자신이 있다는 것.. 같은 생각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내 개인 역사 속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레지오 교본을 제2의 성경, 나침반, 북극성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살면 남은 여생을 사는 데 큰 혼란은 없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방향과 등대는 ‘항상’ 보이지만 발끝에 걸리는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닌 것, 대부분 주위에 적지 않은 ‘쓰레기 같은 인간 (최소한 3명의 빠가온나)‘들 때문이고 무시하며 나아가면 되겠지만 나도 역시 ‘죄인’이기에 정말 도전이고 도전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이 도전은 2017년 사순절 3월 중순부터 서서히 시작되어서 지난 해 8월 말에 절정에 도달해서 현재까지는 내림세를 유지하며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이 시점에서 우리 ‘자비의 모후’는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는’ 상태로 희망 이외에는 찾을 것이 없다. 이때야 말로 ‘총사령관’의 ‘초자연적’ 도움을 기대해 볼 그런 시점이라는 믿음이 확실히 든다.

중병 환자가 2명이라는 최악의 handicap을 견디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성공하게 되는 셈이다. 교본의 정신을 100% 잊지 않고 먼 곳에 보이는 희미한 등대의 불빛에서 시선을 띠지 않는다면 우리는 문제가 없다. 결점과 허점 투성이의 ‘인간적 단원들’의 모임, 누가 asset이고 누가 liability일까? 제발 제발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고 짐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다가오는 다음 결정적 단계는 ‘서기의 임기’가 끝나는 8월 말, 나의 앞 날을 다시 조정해 볼 때가 서서히 다가 오기에 깊은 생각을 해야겠지만 아직은 조금 시간이 있다. ‘절대적 충성’을 약속한 2011년 2월의 레지오 선서는 죽을 때까지 유효하고 구속력이 있다. 그 사실만 잊지 않고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것.. 그것이다.

 


2018년 1월 15일 Question: To Be or Not To be…

내가 2010년 가을 자비의 모후에 입단하고 2011년 2월 초에 단원선서를 했으니까, 올해로써 나는 행동단원 7년 차를 맞이하게 된다. 7년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으나 7년 전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7년이란 세월은 그야말로 길었던 은총의 세월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10여 년 전에 시작된 레지오 협조단원, 묵주기도의 세월들, 3년 여 뒤에 시작된 행동단원의 나날들, 그것들과 더불어 (우연이 아닐 듯한) 5년 여 전에 시작된 매일 미사 참례, 이 모든 것들은 사실 ‘간단한’ 묵주기도로 시작이 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변화의 겉 모습들이었다.

나의 진정한 변화는 사실 ‘깊숙한’ 곳에, 안 보이는 곳에 있었지만 아마도 겉으로 그것이 숨겨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나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안 갔을 것이다. 큰 것으로는 나의 ‘거시적 우주관’이 완전히 바뀌었고, 물론 그것에 따른 나의 세계관은 180도 바뀌어버렸다. 이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을까?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그 무엇의 가운데에는 항상 성모님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가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나에게 당면한 제일 큰 문제가 되었다.

입단 시 ‘성모님께 대한 선서’, 그것이 문제일 줄이야. 나는 그 ‘정식 선서문’ 이외에 개인적인 선서를 성모 마리아께 바쳤었다. 절대로 ‘죽을 때까지’ 당신의 ‘사업’을 돕겠다는 선서였다. 그것도 레지오 마리애 라는 조직 안에서.. 그러니까, 나는 사실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레지오에 몸을 담고 죽어야 한다.

그것이, 2017년에 들어서 최대의 시련으로 다가왔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이전까지는 그런대로 ‘환경’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노력에 달려 있었다. ‘활동, 기도’를 슬기롭게 조절하며 일주일을 보내는 나날들… 참 행복한 세월이었다. 보람 있고 ‘내가 살아 있다’라는 희열감, 성모님을 의식하는 초자연적인 ‘초월감’..  이런 것은 아마도 다른 신심단체에서는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2017년에 두 번씩이나 다가온 거대한 시련은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2017년 초에 벌어진 해괴한 사건, ‘순명을 강요하며 소리치는’ 꾸리아 간부의 순방. 원래가 그런 인간이라고 무시할 수 있었지만, 정말 밥맛이 떨어지는 해괴한 Kafka를 연상시키는 기분 나쁜 사건이었지만 이것이 2017년 장차 다가올 어려운 시련의 omen이었음을 당시에 아무도 몰랐다. 그 인간을 잘 몰랐던 탓에 나의 놀라움은 사실 숨기고 싶을 정도로 극에 달한 것이었다. 외부(a.k.a Curia) 의 도움이 필요한 이 시점에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가는’ 조직에 이런 ‘깡패, 조폭’을 보냈을까.. 당시에 그런 사건에 대해 상급조직에서 책임지는 ‘인간’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암적 cancerous 인 표적으로 보이기만 했다. ‘사과를 할 수 없다’는 그들의 태도, 그때 그 무능한 leadership의 정체를 알아 보았어야만 했다.

8월 말에 벌어진 ‘내부의 미친년 난동사건’은 사실 모든 악행의 절정을 이룬다. 성모님을 정면에서 도전한 것이다. 놀라움, 실망, 분노, 슬픔 모든 것이 용광로처럼 끓게 했던 그 사건은 아직도 여운이 깊게 남는다.  와해 직전의 이 성모님의 조직,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탓인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모든 문제는 조직의 간부가 책임을 진다고 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한 마디로 너무나 억울한 것이다. 왜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우리들이 책임을 진단 말인가? 가해자가 뻐젓이 ‘살아서’ 돌아다니는데… 조직상 이런 사태는 자체처리로는 부족하다. 그러면 누가? Curia? ‘쉬쉬하며 좋은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그들의 공식이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런 사태를 proactive 하게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권한이고 의무’가 아닌가? 영적 지도자는 어디에 계신가?

당시 나는 극단적인 방법을 밀어 부치려 생각도 해 보았지만 역시 그 leadership의 역량이나, 태도를 보니.. 이건 말도 안 되겠다는 자괴감뿐.. 이렇게 ‘쉬~쉬’ 끝난 사건은 모든 관련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래도 남은 희망은 얼마 남지 않았던 leadership의 임기였지만, 그 인간은 끝까지 철저히 실망을 주며 나갔다. 이번에는 특유의 incompetence뿐만 아니라 ‘사랑이 철저히 결여된 야비한 모습’를 보여 주었다. 이때 나는 또 다른 ‘놀라움’을 겪어야만 했다. 3년간을 이런 leadership속에서 우리 레지오가 있었으니..

성모님께 개인적 선서까지 한 나는 현재 인생 최대의 시련의 갈림길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선택, 선택, 또 선택.. 이것이냐, 저것이냐.. 죽느냐, 사느냐.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조직의 주회합은 사실 도전 중의 도전일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암만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혼자 참석하는 월례회의엘 가니, 참 보기 싫은  ‘그 인간들’의 설치는 목쉰 소리들이 들려온다. 다시 초월성을 불러본다. 이런 모든 시련에는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나를 시험하시는 것인가? 그 ‘좋은 사람들’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왜 이렇게 깡패 조폭 같은 인간들이나 철저히 의욕상실증에 걸린 인간들만 주위에서 맴 도는 것인가?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는 ‘생각의 장난’을 즐긴다. 나에게 레지오 활동이 없다면, 퇴단을 한다면? 나의 성모님께 대한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떤 excuse를 해야만 하나? 한마디로… 두 마디로… 이제는 피곤하고 지친다. 성모님, 제게 응답을 해 주소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17년 10월 23일  Queen of Mercy, phoenix rises again..

미친 X, 전 前 단원‘ 의 bizarre 광란 狂亂 으로 일시에 9/11 ash에 쌓여 한 동안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20년 역사의 ‘자비의 모후’, 서서히 불사조 phoenix의 날개가 움직이며 비상 飛上 을 하고 있다. 서서히..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건강하게 날고 있다. 1000차 주 회합의 희망이 다시 멀지 않은 곳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최소한 정족수가 넘었다는 안도감, 성모님의 손길이 분명히 느껴지고 있다는 확신, 100% detox가 되었다는 후련함..  모든 toxic member가 완전히 빠져나갔다는 청결감.. Ash속에서 일어나서 보니 완전히 다른 group으로 우리는 변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이 원하셨던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렇게 우리의 심각했던 문제를 일시에 풀어주셨구나..

이제는 postmortem을 할 시기인 듯 하다. ‘논공행상’ 정도라면 좀 값싼 느낌도 들지만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인 것이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엄격한 군법이 있는 ‘성모님의 군대’인 것이다. 군법회의는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육체적인 firing squad’는 없다고 하지만 ‘영적인 firing squad‘는 분명히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 주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은 역시 총사령관 성모님께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어머니시여.. 현명한 길을 보여 주소서!

 


2017년 9월 11일 ‘자비의 모후’ 의 9/11, NDE continues..

Nine Eleven, NDE: Near Death Experience.. 모두가 sad & scary한 느낌을 주는 말들, 9/11/2001의 처절했던 추억이 온통 나를 전율케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피난처였던 성모님의 소대 小隊, ‘자비의 모후’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자비의 모후 Twin Tower’가  ‘악마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꽤 오랜 동안, 겉 멋으로 도배질을 한, ‘천사의 탈’을 쓰고 있던 한 인간이 하루 아침에 ugliest monster로 돌변, 며칠 내에 group 자체가 wipe-out 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몸부림 치고 있는 2017년의 9월 11일, 우연의 일치일까?

지금 성모님이 100% 안 보이는 이 깜깜한 dark night  시간들, 그야말로 surreal한 느낌, 심지어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의 모든 단원들의 경험도 그렇지만, 나로써는 생전 처음 겪는 ‘희한하고 비웃음까지 나는’ 그런  유치한 것, let it pass, let it pass, let it pass… tomorrow’s another day..

이런 surreal한 경험은 사실 70년의 긴 인생의 여정을 생각하면 아주 드문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최소한 나, 우리에게는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것이라 죽는 그날까지 독특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지만 절대로 빨리 잊고 싶은 것이다.

‘골목깡패’ 수준의 정신상태를 가진 이 불쌍한 영혼, 암만 암만 머리를 굴리고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해 보아도 그 기이한 ‘난동’은 그 인간의 정신상태가 절대로 정상일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일어난 ‘난동’의 어이없는 유치함, 심각함을 볼 때, 앞으로 이 인간과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의 최선책은 무엇인가… 가능하다면.. 무조건 잊는 것이다. strike out ‘every form of memories about the monster’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조직이 다시 twin-tower와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치명적 pre-emptive strike를 분명히 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체면도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것, 평화스러운 것, 조용한 것만’ 찾고 살았던 나 였지만 이제는 ‘더러운 것, 싸우는 것, 시끄러운 것’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것이다.

 

제일 슬픈 것은 비록 monster로 돌변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영혼이 사실은 제일 불쌍한 희생자라는 사실..  겉만 보면 chronic, dormant  mental problem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경험상으로 이것은 거의 분명) 사실은 이 인간의 ‘영적’ 내부에서 ‘선과 악’이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음을 이제는 느낀다. 한 동안  조용히 있었던 ugly demon이 ‘갑자기’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해결책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다시 한번 1973년 cult classic film  ‘The Exorcist‘ 에서 악마에게 고통을 받는 불쌍한 소녀, Regan의   배 腹 위에 써있던 ‘Help Me..’라는 text message를 기억에 떠 올리며.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이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 惻隱之心을 다른 각도에서 시도할 수는 없을까.. 하지만, 불가능 해, 어려워, 잊어.. 하는 탄식만 나온다.

 

믿는다, 더 높은 곳을.. 이런 일들,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언가 너 높은 뜻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우리들을 단련시키고 다음 단계로 이끄신다는 것을. 무언가 우리를 안 보이는 손으로 이끌고 계시는 어머님이 보며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commander-in-chief , 성모 마리아께서 원하시고 있다는 사실들을… Long Live, 자비의 모후!

 


2017년 8월 8일  ‘자비의 모후’, 속 빈 강정 (쌀 과자의 일종)?

요새 우리 단원들(나를 포함한)과 레지오 주회합을 보면 어떨 때는 글자 그대로 ‘속 빈 강정’ 이란 느낌을 받는다. 아니 속 빈 것만이 아니라 겉으로 보더라도 완전히 부셔져 나가는 과자 조각 같은 위기감도 같이 느낀다. 이것은 (레지오) 조직의 진화과정인가 아니면 무슨 ‘굿’이라도 해야 풀리는 고질적인 문제인가? 얼마 전 주회합 교본공부에서 “레지오의 성패여부는 레지오 간부의 역량에 달려있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현재 우리  문제도 간부들 때문일까?

이런 것에는 다음과 같은 짧지만 ‘역동적’인 역사가 있었다. 지난 해 말에는 우리와 가깝게 지내던 같은 구역의 크리스 자매님이 입단을 해서 오랜 우리의 숙원을 풀었고, 올해 초에는 bonus로 뜻 밖으로 다른 ‘젊은’ 자매님까지 입단을 해서 아주 안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게 되어서,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의 여지가 있는 ‘전입 단원’ 의 출현은 순항에 도움이 안 되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을 만들어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0명의 단원 숫자면 아주 이상적인 그룹일 수도 있지만 그 10명의 단원들의 개개인적인 요건, 여건은 만만치 않는 것으로 단장을 비롯한 간부의 역량을 100% 가 넘어도 모자람을 느꼈다. 이런 때 leadership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비록 ‘안 보이는’ leader는 성모님이 위에, 뒤에 계셨지만 항상 개입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불을 꺼야 할 급한 것은 모두 mere mortal들의 몫이 아닌가?

Higher leadership(a.k.a curia)의 철저한 부재가 피부로 느껴지는 이런 때, 갑자기 짧은 기간 내에 불거져 나오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갈등, 오해, 편견, 미움 등등은 레지오 입단 후 처음 목격한 것으로 놀라긴 했지만 다른 쪽으로 ‘아하, 인간들이 모은 곳의 정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인정도 하게 되었다.

이럴 때, 내가 알아야 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 그룹은 세속적 소그룹이 아니고 ‘성모님이 계시는 초월성을 가진’ 그룹이라는 사실이고, 모자란 인간들이 어떻게 성모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가슴과 마음을 열고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배우는 가 하는 놀라운 사실이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후에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눈에 안 보이는 손길’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희망이 다시 솟는다. 절대로 절대로 우리는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라는 희망인 것이다.

도전과 대응을 반복하는 이런 단체에 도전은 항상 우리 앞에 놓여있다. 바로 앞의 도전은 위의 열거한 것들이 주된 것이지만 코앞에 다가오는 것도 있다. 꾸리아 간부 선거들이 올해 줄줄이 있는데 제1차 전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다음 것이 만만치를 않다. 제2차전에 뽑을 간부에 만약에 우리가 꼽는 ‘기피인물 (persoana non grata)’이 되는 날이면 이것이 바로 doomsday scenario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기에 더욱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최악의 사태의 피난처는 성모님과 Mr. Frank Duff 께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레지오를 떠나는 option인데.. 이것이야 말로 doomsday option이지만 이것도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것,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2016년 5월 24일  호사다마 好事多魔 의 연속 편 連續 編인가..

 

지난 번 ‘레지오와 나’, 2015년을 결산하던 때 나의 음성은 아주 맑고 경쾌한 것이었다. 9명 완전한 숫자의 레지오 Presidium 조직이 된 자비의 모후는 순항하는 쾌속정 이었다. 든든한 단원 세력을 만들었기에 이제는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기대할 단계이기도 했다. 그렇게 희망에 찬 2016년을 맞이한 우리 자비의 모후는 그 이후 보이지 않는 ‘악의 손길’에 눌리는 듯한 몇 개월을 지내야 했다. 

작년에 ‘들락날락’하던 자매님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이 전출로 ‘깨끗이’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레지오 교본의 ‘경고성’ 글: ‘문제 있는 단원들.. 99.9% 자진해서 나간다.’ 새삼 맞음을 알게 되었지만 올해에는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다양한 문제들을 보게 되었다. 근래에 모두 4명의 ‘새 단원’들이 등장을 했는데, 문제는 결과적으로 2명으로 압축이 되었다. 웃기는 사실은, 놀랍게도 미리부터 걱정을 했던 2명과 너무 많이 믿었던 2명의 행방이 완전히 뒤 바뀌었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니까.. 2명은 아주 활동적, 모범적인 단원으로, 다른 2명은 거의 낙오에 가깝고 그나마 그 중 한 명은 뒤도 안보고 퇴단을 감행해 버렸다. 이런 것을 보면서 느끼고 또 느낀다.. 어떤 자세로 입단을 했는가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이런 파도를 ‘교본의 정신’에 의지하여 넘고 넘는 단장이 어떨 때는 처량하고 불쌍하게도 보이지만 그것은 또 나에게는 다른 의미의 교훈이요 경험을 주게 하는 ‘사건의 연속’들이다. 배우고 배운다는 자세만 있으면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현재는 약간의 소강 小康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지만, 언제나 불안한 요소는 잠재하고 있다.

현재의 당면한 문제는 1명의 ‘초보 단원’.. 이 자매를 보며 나는 나의 참을성을 test하는 기회로 삼는다. 평균적 단원들의 의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너무한 표현일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이 단원이 mainstream 에 동참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 멋진, 영웅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의 chance는, 하지만, 너무나 적다.

입단 6년 차 되는 나에게 레지오는 과연 무엇인가? 내 몸, 아니 우리 둘의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조직’은 과연 우리 인생 후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너무나 우리와 가까운 이 조직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하며 Irish Frank Duff의 ‘영웅적 선견지명’에 탄복을 하며, 주회합에서 자주 기도하는 ‘시복 청원 기도’가 성취되는 ‘기적’을 기대해 본다.

 


2015년 12월 31일  지나가는 해를 돌아보며…

 

2015년 자비의 모후 Pr.,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모두들 열심히 뛰었다. 열심히 뛰기도 했지만 그만큼 성과도 좋았다. 지난 9월까지의 1년 총 결산을 10월 꾸리아 회의에서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눈에 띄는 성과는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무사히 병상에서 하태수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 달 후에 선종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case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는데.. 레지오 교본에 나온 ‘달릴 곳은 끝까지 달려야 한다’ 라는 말을 실감한 것이다.

항상 불안하던 한 간부직의 자매님, 작년에 퇴단, 재입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일주일전의 예고도 없이 다른 곳으로 전출해 버렸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단장의 고뇌를 볼 수 있었다. 문제가 있는 단원을 올바르게 인도, 다루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지난 9월 경에 거의 모든 간부의 임기가 끝났는데 결과는 모두 유임하는 것으로 끝났다. 단원 중에는 나보고 단장을 해 보라고 제의도 했고,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심사숙고 끝에 반려를 하고 연숙에게 다시 단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할 의지와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이 풍부한 연숙에 비하면 턱 없이 모르는 것 투성이고, 현재 우리 Pr.이 충분히 안정이 되지를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에 나는 입단 5주년을 맞았다. 이건 솔직히 말해서 기적에 가깝다. 내가 이렇게까지 레지오에 애착까지 가지면 뛴다는, 그것도 5년을 거의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이 솔직히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초자연적인 은총은 아주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도움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분명히 나는 도움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6명까지 단원 수가 떨어지며 조금은 위기감과 의기소침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그런 와중에 ‘문제의 단원’은 매몰차게 예고도 없이 전출해 버렸다.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몇 년 동안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나갔을까? 하지만 교본의 말들은 다 맞는다. 문제 있는 단원은 자연적으로 나가게 된다고.. 그러다가 다시 ‘갑자기’ 단원들이 들어오기 시작, 순식간에 9명으로 안정적으로 되었는데.. 사실 우리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별 큰 활동이 없었던 간부 한 분, 갑자기 ‘영웅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간부 덕분에 2명이나 입단을 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높은 평균 연령으로 불안하던 것이 이번에 갑자기 평균 나이가 뚝 떨어지게 된 것..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잠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단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죽어도 원칙고수’를 좌우명으로 삼는 단장의 요지부동한 leadership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내가 본 5년 동안의 우리 자비의 모후, 해가 가는 이 시점에서 사실 제일 안정되고 화기애애한 그런 분위기가 된 듯하다. 물론 시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계속 쌓여가는 경험으로 무난히 그런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10월 6일  지난 해 총 결산을 할 때..

또 레지오 달력으로 우리 쁘레시디움의 일년을 결산하는 시기가 되었다. 모든 쁘레시디움은 일년에 한번씩 일년간의 활동을 총 정리해서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대부분 서기가 작성한 회의록에 의해서 하지만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서기 회의록은 일주일에 한번씩 지정된 form에 작성을 하지만 이것에서 ‘의미 있는’ data를 찾아서 일년 52주간의 총 정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job인 것이다.

내가 서기가 된지 3년째 되어가므로 올해가 3번째 하게 되는데.. 이제야 조금 ‘감’을 잡는 듯하니.. 레지오는 역시 ‘경험과 연륜’을 무시 할 수가 없는 단체인 듯 싶다. 레지오 입단 4년 기념일이 다가오지만 솔직히 처음 몇 년간 보다 지금이 더 ‘모르는 것’이 많아진 듯하다. 알면 알 수록 고개가 숙여 진다고 했지만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이제야 조금씩 조금씩 모든 것들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이해가 된다.

단장과 서기가 부부인 관계로 일년 총 정리를 할 때 효과적인 면이 많이 있다. 서로 지난 해의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총 정리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지난 해는 과연 우리는 어떻게 ‘활동’을 했고 우리 쁘레시디움은 어떤 ‘변천’을 거쳤을까..

한마디로 ‘성모님이 보시기에’ 힘든 때가 많았다. 일반 세속적인 단체였으면 아마도 벌써 와해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속적인 인간’이 모여 만든 ‘비세속적인 단체’는 그래도 보이지 않는 ‘은총’의 덕을 보게 되기에 모든 것은 예측하기 힘들지 않을까?

세속적인 군대와 같은 ‘규율’이 엄존하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단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 군대와 같이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있는가? 기도와 참을성으로 ‘정치적’으로 해결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디나 ‘비 상식적’인 사람은 있다. 그렇게 그들도 줄기차게 묵주기도로 도움을 청하지만 세속에 사는 삶의 제한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겠다고 나온 이상’, 최선은 다 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하루아침에 간부직을 내 동댕이 치고 퇴단을 선언하였다가 몇 주 후에 다시 들어오겠다는 case. 오직 집에서 ‘외출’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인 단원들.. 이제는 남에게 도움을 주는 쪽이 아니라 받아야 할 처지가 된 단원들.. 비록 영세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입단을 해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렵지만 조금만 참을 성을 가지고 견디면 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신영세자 단원.. 이런 모든 것들을 보면서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래도 실망의 모습을 감추고 ‘꿋꿋이’ 진행을 해야 하는 간부 단원들.. 존경스럽기만 하다.

이번 달은 나의 레지오 입단 4주년 anniversary도 겹친다. 벌써 4년이 되다니.. 몇 달이나 붙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느낌이 다르게 희망적이었고, 역시 세속적인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4년을 무사히 아니 힘차게 달려 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것이 나의 의지 때문만이 아님을 이번에는 안다. 이것은 거창하게 말해서 내가 받고 있는 ‘은총’일 것이다. 이제는 자진 ‘퇴단’을 하거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 이곳에 내가 ‘뼈를 묻을 곳’임을 나는 자꾸 느끼고 있다. 내가 필요한 곳은 ‘몽상하는 곳’이 아니고 ‘몸으로 뛰는 곳’이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21일 신영세자 입단, 총 단원 9명!

그 동안 자비의 모후는 2명의 새 단원을 맞았다. 작년 말에 원로간부 단원이신 70대의 ‘혈기왕성’하신 자매님이 입단을 하셨고, 며칠 전에는 이번 부활절 세례를 받는 50대 자매님이 ‘전격적’으로 입단을 해서 아주 희망적인 부활절, 봄을 맞고 있다. 한때 12명의 왕성함을 보여 주었지만 그 이후 한 동안 쓸쓸함을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불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부사건’을 겪기도 해서 레지오란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음도 절감을 하던 터였다.
비록 아직도 내가 유일한 남성단원이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하느님의 시계는 우리의 시계와 다르지 않은가? 또한 99.9%가 여성단원이라고 해도 이제는 큰 이질감과 문제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를 ‘여자’로 취급하는 부드러움과 내가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마음 가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느님을 찾고, 신앙을 전하며, ‘여성 총 사령관 성모 마리아’ 의 적극적인 도움아래 ‘남녀, 성별’은 큰 차이가 없음도 알았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수 많은’ 여성단원들에게 인생처음으로 느끼고 배우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님도 알게 되었다. 사치하고, 게으르고, 입방아 놀리고, 생각들이 낮은.. 그런 나의 여성관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남자 단원들의 체취가 그리울 때는, 꾸리아 회의나 행사에서 만나게 되는 남자들과 어울릴 수도 있어서 사실 큰 문제는 없다. 어디 가나 ‘사라지고 있는’ 남자들.. 이곳도 마찬가지인가.. 사실 그들이 레지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서 희소한 우리 남성 단원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남자이기에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도 우리 자비의 모후에도 한두 명 정도 남성이 늘었으면 하는 가느다란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다만.. 다만.. 전처럼 ‘문제가 되는’ 사람만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다.

 


2013년 8월 8일 총 단원 7명의 자비의 모후

현재 우리 자비의 모후 Pr (쁘레시디움)의 단원 수는 총 7명이다. 한때 12명이었었던 적을 생각하면 조금 실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잠재적으로 우리 Pr에 아주 고통을 줄 수 있는 ‘이상한 부부'(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가 퇴단을 해서 이것은 결과적으로 big plus가 되었고, 나머지 4명은 사실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지만 대신 그 1명을 채워 준 훨씬 젊은 1명의 자매님이 입단을 해서 더 장래성에 보탬을 주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꺼번에 전 간부진이 다 바뀐 것이다. 전(前) 단장이 사랑의 정신으로 힘을 쓰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규율과 기강이 느슨해진 것도 문제였는데, 연숙이 단장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Pr을 이끌어 가면서 그런 문제들을 풀어 나갔다. 바른 길로 이끈 것은 분명히 옳았지만 너무나 심하고 급하게 바꾼 그런 방식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때 40대의 아주 젊은 자매가 자발적으로 입단을 해서 우리의 평균 연령을 더 내려 주었지만 최근에 다시 자발적으로 걸어 나가서 우리들에게 조금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세대적인 차이인지는 몰라도 사고방식이 아무래도 단체적인 것 보다는 개인적인 것으로 느껴짐도 피할 길이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그 자매가 ‘퇴단’을 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다니는 미국성당 레지오의 Pr로 전출을 갔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곳에서 ‘미국을 배우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았기에 어찌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에 성공적으로 끝이 난 레지오 ‘침묵피정’.. 별로 휴가 없이 살았던 우리 부부에게는 모처럼의 100% ‘피정’의 기회였다. 꾸리아 간부로서 쉴 기회가 거의 없었던 연숙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수록 나는 ‘나라도 더 건지자’라는 노력을 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참 많은 것을 얻고 느끼며 돌아왔다. 연숙은 아니지만 나는 일생 일대의 최초의 ‘진짜 피정’의 맛을 본 것이다. 첫날 보여준 ‘사랑에 관한 짧은 film‘이라는 폴란드 영화를 시작으로 간결하고 조직적이지만 아주 심도 깊은 강의를 하신 하태수 신부님, 그이 ‘진면목’을 다시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올해 나에게 제일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있다면 이번의 레지오 피정이 우선순위의 상위권이 속할 것이다.

 


2012년 11월 27일 레지오 입단 2주년

우리(나와 연숙)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성모님 군단의 최전방 소대,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지난 몇 개월 동안 많이 변했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많이 변했다고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sea-change라고 부를 수 있고, 그것은 바로 perfect storm을 뚫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중에 제일 큰 변화, 그것도 충격적인 것은 역시 우리의 사랑하는 단원, 친구, 영적 선배.. 은효순 요안나 자매님.. 영웅적인 암 투병을 하시던 용감하고 멋진 여성, 결과적으로 성모님은 그녀를 더 심한 고통에서 구해 주셨을까, 한창 더울 때였던, 7월 26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 솔직히 우리들은 ‘흔치 않은’ 기적을 바라고 있어서 그랬을까.. 끝까지 더 오랜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 조금은 충격적인 떠남이었다.

그 자매님은 우리, 특히 우리에게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작별을 하는 가 하는 특별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야지’ 하는 말을 하였다. 그 짧은 말이 이 자매님이 마지막 순간들을 살아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아닐까?

나로써는, 2년 전 레지오에 입단을 안하고 살았으면 이런 ‘귀중한 체험’들은 사실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서, 생각하면 할 수록 나를 이, ‘진리와 행동’의 집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으로 이끌어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특히 연숙) 머리가 숙여지는 감사가 이어진다.

요안나 자매님의 선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단원 자매님의 (미국인) 남편께서 선종을 하셨다. 비록 지난 몇 달간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timing이 참 놀라웠다.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던 것이다. 미국인 남편이어서 장례미사, 연도의 절차가 우리들과 달라서 조금 더 신경이 쓰였겠지만, 모든 것들이 비교적 잘 마무리를 지었고, 특히 그 무더운 날씨에도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정성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완전한 폭풍’ 같은 일들이 끝나자 마자 우리 단원들은 다시 단장, 부단장이 떠나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것도 사실은 몇 개월 전부터 알고, 예상하던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사실 생각만큼 부드럽지 못했다. 간부진들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조금 더 매끄럽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간부들, 그것도 제일 핵심인 단장 부단장이 떠난다면 그 뒤에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인가? 당연히 새 간부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 그런 변화의 준비가 비록 위에 말한 폭풍과도 같은 시련들이 있었다고 해도 별로 되고 있지 않았다. 만사가 바쁘기만 한 단장님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들었던 곳에 조금 더 세세한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남는다.

그런 과정에서 연숙이 단장, 내가 서기로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승진’ 했던 것은 충분히 예견이 되었고 큰 무리는 없다고 하지만 나머지 부단장, 회계 직을 채우는 과정이 참.. 기가 막히게 어렵고, 심지어 놀라움과 실망의 연속이었다. 우리 부부는 최소한 ‘순명과 사명’의 의식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놀라웠던 사실은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던 부부단원이었던 분들의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예상도 못했던 언행과 반응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한마디로 small Kafka moment로 이름을 지었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놀랐던 것이다. 레지오 선서, 순명의 정신 같은 것들을 벌써 잊어버렸나 할 정도의 언행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음은 ‘차가운 현실’을 느끼게 하는 실망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damage control 로 이어졌다.

12명까지 불어나 ‘승승장구’하던 우리 레지오가 거의 몇 주일 만에 6명 이하로 떨어지는 쓸쓸한 공기로 휩싸이고, 심지어 적막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bible, 레지오 교본들에 언급된 ‘경고’ 들을 실감하게 되었다. 조그만 시련기인 것이다. 군대와 같은 조직인 레지오에서 leadership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 절감하게 되는 첫 시련기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조직과 다르게 우리는 ‘사령관’인 성모님이 계시고 보호한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우선 매주간 동안 살아 남아야 하는, survive하는 급박한 문제는 우리들이 풀어야 하는 것들이 아닌가? 군대에서 군인의 숫자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거의 치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그것도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상대적으로) 여성 단원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 단원이 씨앗이 되어서 다른 예비단원들의 입단도 어렵지 않게 꿈꾸게도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레지오 입단, 역사적인 2주년을 맞게 되었고, 지난 2년간 나의 ‘변화’를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참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세속적인 자질구레한 습관들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식구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심지어 놀라워한다. 특히 연숙은 크게 나타내지는 않지만 (거의 의도적으로) 간접적으로 나의 변화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서 Out of closet같은 느낌.. 이제와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는 2년 간이었다. 그전에는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할 정도였다. 급기야 그런 나의 변화를 연숙은 공개적으로 평신도 주일 강론에서 밝히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2년은 어떻게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나의 레지오와 연관된 세월들은 참으로 귀중하고 길었던 경험의 연속이었다. 단적인 예로 새로 알게 된 성모님과 성모신심(Marian Devotion)은 나에게 새롭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궁극적인 진리인 성삼위로 향하는 지름길, 안전한 길을 제공하는 우리의 어머님, 보호자를 찾게 된 것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비교적 안전한 것, 묵주기도.. 그것의 진실과 참 뜻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레지오 2년 생의 초보자이지만 남은 여생의 한계를 생각하면 남보다 10배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며 ‘월반’을 꿈꾸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지난 8월 15일에 끝이 난 “33일 봉헌” 과정 이후에 나의 우주,세계관은 아주 폭풍과도 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제야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 짐작하게 되었고, 아.. 이것이 바로 진리, 진실이었구나 하는 생각, 왜 이런 사실들을 1982년 영세 후 30년이 지난 지금에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제는 최소한 뒤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는 사실이다.

 


2012년 6월 12일 변화조짐의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모든 것은 변한다. 하느님을 제외한 것은 ‘절대로’ 언젠가는 변한다.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보이던 우리 Pr(내가 속한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가 조금씩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일까 하는 데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동안 연배가 있으신 두 자매님이 ‘퇴단’을 하셨고, 대신 상대적으로 ‘젊으신’ 자매님이 한 자리를 채워주셨다. 또한 암 투병을 계속하시는 자매님께서, 실제적인 참석을 못 하시고, 회계직을 내 놓으셔서, 내가 맡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예상되던 것들이다. 나 자신으로써는 ‘간부직’을 맡으며, 조금 더 레지오 ‘안’ 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지만, 우리 Pr.은 밖으로 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 단장, 부단장이 ‘곧’ 우리 Pr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대 변동’은 사실, 조직 자체를 흔드는 큰 event가 될 수도 있지만, 오랜 전부터 예상이 되었던 것이라, 부드럽게 처리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들었던 두 분의 ‘중책 간부’가 떠나게 되는 것은, 이곳 아틀란타 지역 한인성당이 하나 더 생겼고, 그 분들의 거주지역이 그곳에 속해서 ‘의무적으로’ 옮겨야 하게 된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큰 문제를 삼지는 않지만, 간부 두 명이 ‘없어지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큰 문제가 있다. 레지오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쌓이고 쌓인 해답들도 많이 있다. 한마디로 ‘성모님이 주신, 경험적 해답’인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레지오 초보로써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가 속한 꾸리아에는 그런 지혜가 있을 것이다.

나는 2010년 가을에 입단을 하면서 참 ‘부러운 환경’ 이라는 도움을 참 많이 받고 열심히 레지오를 배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러운 환경’이 조금씩 도전을 받게 되는 것 같고,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따뜻한 ‘누에고치’ 속에 안주하지 않고 폭풍이 몰아칠지도 모르는 현실과 맞대면을 해야 한다는 ‘예감’이 든다. 새로 맡게 된 회계직은 사실, 실제적 부담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그 ‘직책’이 주는 overhead는 비교가 안 되게 의미가 있고, 심각할 수도 있는 것이라, 이것을 통해서 ‘조직의 비결’을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된다. 또한, 나에게 무슨 ‘사명’이 떨어지면 우선은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것이 내가 레지오에 참여하면서 배우게 된 ‘레지오 101′ 이다.

 


2012년 2월 10일 레지오 선서 일주년

지난 2월 1일은 내가 레지오 정식단원 선서를 한 일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월의 빠름은 새삼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짧게 느낄 수도 있는 지난 일년이 예전과 같이 짧게 느껴지지 않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무언가 내가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았다는 ‘좋은’ 뜻이 아닐까? 오랜 만에 ‘레지오와 나’를 쓰게 되는데, 그 동안 무엇이 변했을까? 어쩔 수없이 ‘레지오 수첩’을 보아야 생각이 날 듯하다.

지난해 11월 경에 우리 단원 중 2명의 자매님들 (바울라, 실비아)이 대망의 유럽 성모성지(프랑스의 루르드 포함)로 순례여행을 다녀오셨다. $3000이상의 비용이 드는 큰 여행, 우리부부는 참 부러웠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곳에 다녀올 수 있을까.. 해답은 하나다.. 죽기 전에, 여행 다니기 더 힘들기 전에..

12월 4일에는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예정대로 열렸다. 나는 그 전해에 예비단원으로 한번 참가를 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은 조금 다른 것이, 나는 정식 단원이 되고, 연숙은 한 단계 위로 꾸리아의 부단장이 되어서 참가를 했다는 사실이다. 조금씩 어깨가 조금은 무거워졌다고나 할까..

이 행사를 위해서 우리 쁘레시디움 은 5년 전에 한 적이 있다는 ‘거지 각설이 타령‘을 준비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참가를 하였다. 최선은 다 했지만, 단원 평균 연령이 높은 탓에 조금 힘든 것이어서, 다음 해부터는 조금 덜 힘든 것, 예를 들면 ‘부드러운 합창’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인 행사는 얼마 전에 새로 뽑힌 단장, 부단장(이영숙, 이연숙)이 신선한 분위기로 대부분 무리 없이 매끈하게 진행을 하였고, 참가자들도 그런 분위기에 만족을 했는지, 대부분 끝까지 남아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새해가 되기 전에는 이마리아 자매가 정식으로 퇴단을 하셨다. 그 동안 뜨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던 것이 조금은 주춤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퇴단 이유는 ‘쉬고 싶은’ 그런 것이다. 왜 안 그렀겠는가, 그렇게 오래 꾸준히 하셨는데, 이제 연세가 그렇게 되신 것이다. 그래도 화요일 마다 자주 미사에 오셔서 점심도 같이 참석하시고 하셔서 건강한 모습을 뵐 수가 있어서 좋다.

나는 레지오의 사명으로 전산팀의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전과 다르게 거의 수동적인 입장이고, 시간을 보아서 완전히 탈퇴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전력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 이것이 아니고, 협조단원을 모집하는 등의 ‘선교’활동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일들임을 알기에 큰 결정과 결심이 필요한 상태인 것이다. 1년이 지나도록 나는 협조단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이것은 ‘머리를 굴려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사람을 만나고, 전화를 하고, 봉사를 해야 하는’ 그런 힘든 일임을 어쩌 내가 모르랴? 그야말로 man-to-man 활동이 나에게 필요한데.. 나는 아직도 용기가 없는가?

 


2011년 10월 26일 로사 부단장님 생일축하 단체회식

어제는 우리 쁘레시디움 부단장님이신 안 로사 자매님의 생일축하 점심 회식이 있었다. 이번이 조금 특이했던 것은, 평소와 달리 ‘멋진 곳’ 에서 모였기 때문이다. 자매님 아드님이 한달 전에 개업을 하신 “Latin-Asian” restaurant에서 모였는데, 생각보다 넓고, 깨끗하고, 멋진 곳이었다. 점심이 바로 지난 시간이라 더 넓게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바쁜 시간이었으면 ‘젊음의 활기’ 로 가득 찾을 듯한 그런 곳이랄까? 전혀 모르는 음식일까 봐 조금 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사장님이 오늘 주인공의 아드님이시라서 별로 큰 불편 없이 골라주신 것들을 모두들 맛이게 즐겼다. 이곳의 맛은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대표적인 fusion style이 아닐까.. 그러니까 누구라도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다. 식당의 위치가 Atlanta downtown에서 멀지 않은 Peachtree Road 에 있어서 사실 찾기 쉬운 곳이지만 우리들은 그런 곳에 많이 가지를 않아서 모두들 조금은 신경을 쓴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그런 ‘멋진’ 곳을 언제나 가겠는가?

어제의 회합에는 다른 쁘레시디움에서 방문한 자매님 두 분이 계셨다. 나는 꾸리아에서 방문하는 간부들은 보았어도 우리와 같은 ‘단원’의 방문은 처음 보았다. 이것도 의미가 있을지도.. 같은 평 단원으로부터 듣는 ‘비판’은 조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은 거의 없었고, 주로 ‘칭찬’ 아닌 칭찬을 듣게 되었다. 단원 수가 조금 많다는 것, 기도의 ‘열기’가 너무나 높다는 것.. 등등.. 모두 수긍이 가는 평가였다.

레지오 본당협조에 대한 나의 계획에 조금은 차질이 생길 듯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현재 나와 제일 궁합이 맞는 곳이 ‘전산’ 계통일 수밖에 없어서, 별 생각 없이 일년 정도 ‘봉사’를 하고 있지만, 이것 조차 ‘맘 놓고’ 봉사를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런 100% 기술적인 분야에 웬 놈의 ‘정치성’을 느껴야 할까? 이런 일에서 나는 ‘레지오’만 생각하며 그저 눈과 귀를 막고 봉사만 하면 된다고 굳게 결심을 하지만, 이제는 조금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을 위해서 ‘싸워야’ 할 것인가, 못 듣고, 못 본 척하며 현상유지를 할 것인가, 최악에는 포기할 것인가의 기로인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이 ‘인간’들이 현상유지 조차 하기 힘들게 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어찌할 것인가? 레지오 교본을 다시 읽는다..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2011년 10월 17일 레지오 입단 일년..

10월 19일이면 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자비의 모후 레지오 입단 1주년이 된다. 이렇게 ‘무사히’ 1년이 된 사실은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사실은 무언가 ‘위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연숙의 10년이 훨씬 넘는 경력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니까.. 1년 차 단원의 바람직한 경험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지만, 내가 어렴풋이 생각한 ‘이상적인 1년 차 단원’에는 훨씬 못 미친다. 아직 소극적인 단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무’는 우선 하려고 노력을 무진 하였다.

지난 토요일, 10월 15일에는 오랜 만에 본당 은총의 모후 꾸리아의 연례 간부피정 행사에 ‘도우미’로 반나절 ‘봉사’를 하였다. 물론 연숙의 ‘정식’ 요청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나의 레지오 실적에도 반영이 되는 것이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결국은 기꺼이 하게 된 것이다. 남자단원의 여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열세라서 역시 도우미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내가 맡은 일은 사무장이 보통 하는 일일 사진기자의 역할이었다. 실내의 좁은 곳, 조명이 그렇게 좋지 않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point-and-shoot camera라서 완전히 망치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멋진 사진’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일은 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라서 조금 실망을 했다

이런 행사를 가 보는 것은 레지오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간부들의 역할을 어떻게 충실히 하는가에 대해서 분과 별로 공부를 하는데, 그 바쁜 단원들, 적지 않은 나이 등에도 불구하고 많이 참석을 한 것을 보는 것도 나에게는 교훈, 공부가 안 될 수가 없다. 꾸리아 부단장을 불시에 맡아서 동분서주하는 연숙을 보면, 역시 ‘일이 즐거운’ 성품을 다시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다른 신심단체에서 마음고생을 한 후라서 더욱 현재의 일에 충실 하려는 듯 느껴진다. 마음 속으로 이번에는 자신을 너무 고생시키지 않고 즐겁고 보람된 일로 끝맺음이 되기를 기도하고 싶다.

레지오 단원 생활 1년 동안, 연도를 통해서 세상을 떠나는 적지 않은 형제, 자매님들을 뵙게 되었다. 죽음이 영원한 곳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우리는 배운다. 그렇게 믿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는 과정을 더 ‘성’ 스럽게 도와주는 것은 정말 레지오만의 자랑스럽고, 보람된 의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그렇게 피하고 싶던 ‘망자와의 이별’ 이 조금은 덜 슬퍼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도 반드시 우리는 희망을 생각하기 때문일까? 내일은 그런 망자와의 이별인 ‘연도’가 두 차례나 예정되어있다. 두 형제님들, 두 분 다 나보다 나이가 젊다. 그래서 다른 때에 비해서 조금 더 신경이 쓰이고 슬프기도 하다. 61세와 48세의 형제님들.. 어찌 그렇게 빨리 가시게 되었습니까? 부디 명복을 빕니다.

 


2011년 9월 13일 새 행동단원 부부 참석

오늘 정기 화요일 주 회합에 지난주에 이미 예고가 있었던 새 행동단원 부부님이 참석을 하셨다. 이렇게 부부가 함께 레지오 단원이 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도 비록 부부단원이긴 하지만 이분들처럼 함께 입단 한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떤 분들은 ‘부러워’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오늘 새로 오신 이 부부는 우리보다 훨씬 더 부러운 부부가 아닐까? 그렇게 부부가 신앙적으로 같이 보조를 맞추어 나간다는 것은 역시 보기에 참 좋다.

이 부부는 우리 쁘레시디움의 부단장이신 안 로사 자매님이 데리고 오셨는데, 우선 본인들이 원하셨다고 해서, 어떻게 보면 비교적 쉽게 입단 권유 성공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안 로사 부단장님이 큰 일을 하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가 입단한지 1년이 가까워오지만 단 한 건도 성사를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사실 내가 제일 ‘자신이 없는’ 활동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활동이 레지오에서는 제일 ‘값진 것’ 이다. 나도 그것을 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감’도 없지 않다. 과연 그날이 언제인가?

더욱이 새로 오신 부부는 나와 나이가 거의 같다. 이것도,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어쩐지 이곳에, 나의 주위에 왜 그렇게 나와 비슷한 나이의 형제, 자매님들이 안 보이는지.. 육이오 동란을 거치면서 많이 없어져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나의 세대를 ‘단까이(團塊)’ 세대라는 말로 역사적인 위치를 만들어 놓았지만 아마도 우리나라 1948년을 전후한 세대는 이름조차 없을 것이다. 별로 큰 의미가 없는 시기여서 그런가? 해방 후의 혼란기와, 민족의 비극 육이오 동란의 사이에 있어서 이름을 붙이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형제님의 생일이 재미있었다. 양력으로 5월 16일이고, 음력으로는 4월 19일 이란다. 얼마나 외우기 쉬운가?  좌우지간 이 부부는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앞으로의 활동에 여러 가지로 희망적인 상상을 해 본다.

 


2011년 9월 1일 아틀란타 꾸리아 임원진 변동

얼마 전에 아틀란타 천상의 모후 꾸리아 회의에서 갑자기 공석이 되어버린 부단장 선출이 있었다. 나의 조그만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연숙이 그만 부단장에 피선된 것이다. ‘숙명적’이 아니라면 둘이서 조금 편하게 레지오 활동을 하고 싶었다. 나와 연숙도 같은 생각이었고, 지난번 다른 신심단체인 CLC의 임원을 맡아서 할 당시 그녀의 ‘사람들과 겪던 고통’을 옆에서 보아온 나로써는 ‘절대로, 절대로’ 몇 년 동안 ‘편하게, 평범하게’ 하는 신앙생활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갑자기 꾸리아의 부단장이 임기도 마치기 전에 그만 두었냐는 것이다. 전혀 예상문제에서 없었던 시나리오가 나온 것이다. 그 부단장 형제님께서는 맡은 일이 너무나 많았다고 들었고, 아마도 그것이 이유였을 것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임기는 채워야 하지 않았을까? 부단장이라는 직책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모든 일들이, 하려고 하면 많아지는 법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저, ‘출마를 강요당하면’NO 라고 하라고 부탁, 부탁을 하였다. 연숙도 나의 이러한 생각에 100%동의를 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성모님의 뜻이던가.. 상황이 전혀 다르게 흘러서 ‘결국은’ 피선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앞으로 ‘평화가 조금은 깨어질’ 그녀의 생활도 우려가 되었지만, 이미 업 지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 맡으면 ‘즐김’ 보다는 ‘열심’에 너무 에너지를 쓰곤 해서 사실 그런 것의 부작용도 무시 못한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말도 중요하다는 것을 더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레지오 교본에 간단하지만, 분명히 부단장의 권한과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사항들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어떻게 자기만이 가진 재능을 꾸리아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는 전혀 노력하기에 달린 것들이다. 나는 그녀가 앞으로 할 일의 ‘질과 양’에 별로 의심을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결과와 유종의 미’에 더 중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년 6월 12일 아틀란타 꾸리아 연차 봉쇄피정
Simpsonwood Retreat Center
Simpsonwood Retreat Center

6월 10일부터 오늘 12일(일)까지 3일간 아틑란타 천상의 모후 꾸리아 주최 연차 봉쇄피정이 있었다. 올해의 피정장소는 Atlanta Metro에 있지만 거의 시골 같은 느낌의 Simpsonwood retreat center에서 열렸다. 이곳은 개신교 전통을 가지는 곳이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지만 역시 종교적 단체를 배려한 곳이라 정말 느낌이 좋았다.

우리 쁘레시디움의 전원이 참가하는 자랑할만한 기록을 가지고, 나도 그 일원으로 가게 되어서 아주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느낌에 내가 입단을 하면서부터 우리그룹은 아주 ‘잘나가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단원끼리 너무 똘똘 뭉치는 것도 아주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레지오 교본은 경고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가 아닐까. 이것은 단원들의 사생활이 너무 많이 서로 얽히게 되어서 활동에 지장이 가는 것을 우려한 것일 것이다.

난생처음 가는 ‘피정’이란 것.. 느낀 것이 많았다. 한마디로 나 개인적인 결과는, 성적이 A였다. 완전한 ‘성공’인 것이다. 그렇게 많은 레지오 단원들과 거의 3일간 단체생활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거의 놀라운 체험에 속한다. 거기에다 ‘죽음’이란 심각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 피정의 흐름이 흔히 체험하기 힘든 기억과 추억을 남겼다. 비록 모든 것을 다 소화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될 수가 없다. 몇 %만 얻어도 그것은 너무나 큰 것이니까.

이번에 이런 큰 행사를 보이지 않게 뒤에서 준비하고 수고하는 임원들의 노고를 보고 느끼게 된 것도 수확이다. 불평을 하기 전에 꼭 이런 수고를 먼저 생각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다만 수고에 감사하고 더 개선한 것들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면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죽음이란 어려운 명제를 놓고 공부하고, 사색을 했고, 유서를 작성하고, 결국은 죽음을 제일 쉽게 보여주는 ‘관(棺)’을, 그것도 2개나 보고 모두들 들어가게 되었다. 죽는 연습을 한다고 나 할까..이미 마음의 준비가 많이들 되었는지 거의 예외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결국 ‘작은 사탄의 도움’으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 유일한 후회로 남아있다. 하지만 관, 그것도 2개의 관에 모든 형제,자매들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부활의 상징을 많이 보게 되어서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게도 되었다.

아틀란타 본당 주임신부 안정호 신부님의 강의도 알맞게 좋았다. 이분의 강의는 그 깊이와 정도가 정말 알맞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분이 이런 주제를 깊이 알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렵게 설명을 한다는 것은 본인이 이해한 정도에도 문제가 있으니까.

이제는 추억의 3일이 되었지만, ‘문제’가 없는 한 내년에도 또 가보고 싶고, 아니 갈 것이다. 가벼운 쪽으로, 이번에 꾸리아의 단장, 부단장님의 ‘여흥’ 솜씨를 보게 되어서 좋았다. 그런 죽음의 무거운 화제를 만회라도 하듯이 손쉽게 나오는 노래와 춤의 솜씨들.. 내가 그런 것들에 자신이 없으니 부럽기도 하다..

 


2011년 5월 24일 단장님 생일축하 단체회식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는 생일을 맞는 사람이 생일이 있는 달에 단원들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조금은 독특한 ‘제도’가 있다. 흔히는 생일을 맞는 당사자를 대접하는데 이것은 반대인 것이다. 오늘은 우리 단장님의 생일 축하로 성당 옆의 우리의 단골 ‘동네방네’ 한국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회식을 했다.

사실은 지난 1월말이 생일이었는데 시간이 계속 맞지를 않아서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참 자주 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는데,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던 나에게는 참 기분이 좋은 시간들이었다. 흔히들 말 하듯이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친교의 방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것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하던 내가 이제는 조금 즐기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레지오가 나를 살려 준 것이다.

대부분 신앙, 인생선배들이라서 나는 그저 듣고 배우고 싶은데, 문제는 모두 자매님들이란 사실이다. 인생의 지혜와 신앙에 대한 것을 배우는 것은 그렇게 문제가 없을 듯 하지만 나머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분명히 남자와 여자는 다르니까. 이것은 내가 풀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2011년 5월 17일 어느 레지오 화요일

처음 레지오 회합에 참석한 날부터 딱 7개월이 되는 ‘레지오 화요일’을 맞았다. 그러니까 반년이나 지난 것..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변했을까? 만약 전혀 변하지 않았다면 조금 문제가 아닐까?

사실은 내가 변했다는 것 보다는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했을 것이다. 맞다.. 그것도 변했다면 변한 것이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에 따른 새로운 삶을 사는 방법도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 3개월은 대기단원으로 열심히 교본공부를 실컷 하였다. 너무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혼자나 둘이서 하던 ‘개인 묵주기도’에서 그룹이 바치는 묵주기도가 첨가 되어서 다른 ‘맛’도 느끼게 되었고, 사실 보이지 않는 성모님의 손길을 느끼는 기분도 들게 되었다.

정식단원이 되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노력들이 이제는 ‘기록’화 되니까 조금은 더 노력을 한다고 나 할까.. 조금은 나의 일주일간의 ‘실적’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묵주기도는 잘 하면 100단까지 갈 정도가 되어서 조금은 안심이지만 실제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선교’의 사명인데, 사실 이것이 제일 ‘무섭고, 어려운’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의 적성에 잘 맞지를 않는 것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선교라.. 내가 선교를.. 아직은.. 그래도 마음가짐은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다. 옛날 같지않다. 이것도 그렇게 미룰 만큼 나의 인생도 길지도 않다. 이것을 잘 하려면 나 자신의 믿음이 튼튼해야 함을 느낀다. 내가 약하면서 어찌 남에게 믿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쁘레시디움 자매님들.. 나를 든든하게 이끌어주는 분들.. 항상 속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몸이 불편하신 분들, 서로의 성실한 기도로 힘과 위로를 받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태어나서 내가 그렇게 진심으로 어떤 특정인물을 위해서 기도한 것도 처음이지만 이런 모든 것은 레지오 마리애 특유의 영성적 조직에서나 ‘쉽게’ 가능한 것을 나는 느낀다.

 


2011년 3월 20일 일요일, 전 레지오 단원 교육

아틀란타 본당 “천상 은총의 모후” 꾸리아 산하 전 레지오 단원에 대한 교육이 오후를 걸쳐서 안정호 신부님을 모시고 있었다. 주제는 “봉성체와 대세“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봉성체는 미국성당에서 실제로 보았고 대세는 한번도 목격을 한 적이 없다. 레지오 입단 이후 처음 받는 ‘레지오 교육’이라 나는 거의 ‘무조건’ (빠진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이) 연숙과 같이 참가를 하였다. 이런 모임에 참가하는 것은 “거의 무조건” 나에게 유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레지오 전우’들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게 된 다는 그런 시간과 자리가 참 나를 가볍게 흥분시키고, 유익한 자극도 받기에 더 기꺼이 가게 된 것이다.

그 많은 단원들이(자매님 단원이 훨씬 많음) 한꺼번에 드리는 묵주기도는 참 하기도, 듣기도 좋다. 혼자 하는 것 보다 둘이 하는 것이 더 좋고, 매주 쁘레시디움에서 10명 남짓 단원들이 하는 것은 더 좋은데 이렇게 우렁차게 ‘군단’ 급의 묵주기도는 참가 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못 느낄 것 같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조금 나를 어색하게도 하게 느끼지만 그래도 이날은 내가 소속된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10명의 단원이 다 오셨다. 이런 것을 나는 무언 중에 배운다. 무조건 ‘순명’인 것이다.

봉성체란 것은 성당에서 영성체를 못 받는 사람들을 방문해서 신부님 대신 성체를 주는 일인데.. 그것에도 엄격한 절차와 의식이 따른다. 이것은 이해할 만 하다. 원래는 신부님의 일이었지만 그것이 요새는 참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허가를 받은 ‘봉사자’가 대신 신자를 방문해서 영성체를 하게 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안신부님은 ‘성체’에 관한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해석해 주신다. ‘믿음’이 없는 성체는 이미 성체가 아니고.. 너무 ‘의식, 절차’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씀, 참 그분다운 쉽고도 실제적인 해석이다. 대세라는 것은 레지오 신자 수첩에서 잠깐 읽었던 것이다. ‘비상시’에 일반 신자가 세례를 주는 것.. 대세 (대신해서 세례를 준다는 뜻), 이것은 사실 봉성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가? 세례를 주는 것이니까. 이것의 가장 중요한 point는 역시 ‘비상’이란 것에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 편히 가시도록 하려는데 있지 않을까? 천주교는 이런 것도 다 대비해서 ‘형식, system’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이것도 역사적, 경험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일요일을 거의 하루 종일 ‘성당 근처’에서 보내게 되었다. 따로 다른 일을 한 것이 없이 정말 평화스러운 일요일이 되었다. 그것도 나는 정말 만족한다. 더 필요한 일들.. 나머지 6일이 또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네 번째 쁘레시디움 회합 참석

오늘의 회합에는 고참 단원이신 이마리아 자매님께서 불참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허전한 분위기랄까. 이래서 단원의 불참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준다는 레지오 교본의 말이 이해가 간다. 왜 빠지셨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유고’가 아니란 것이다.

레지오 교본을 신들린 듯 빠르게 읽어서 많은 부분을 읽은 셈이지만 정독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의도는 빨리 전체적인 줄거리를 머리에 넣으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내가 모든 책을 읽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필요하면 능률적은 아닐지 몰라도 여러 번 읽은 것이다. 현재 거의 20장으로 다가가고 있어서 많은 궁금증이 풀리고 있다. 참, 이 교본이란 것이 원 저자도 그렇지만 한국어로 번역도 참 기가 막히게도 잘 해 놓았다. 간결하지만 절대로 필요한 것은 빠지지 않고 기술해 놓았다는 인상이다.

레지오의 활동, 나는 명색이 ‘활동단원’이니까, 에 조금씩 신경을 쓰고 있다. 내가 어떠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가두선교..같은 것은 사실 나에게는 절대로 무리다. 하지만 본당을 뒤에서 돕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결실을 맺어서 어제는 성당 전산팀의 첫 모임에 나갔다. 나는 거의 저녁 이후에 외출을 안 하는데, 어제는 그런 습관을 용감하게 깨버린 셈이다. 나와 같은 새로운 멤버(자매님들)가 둘이나 참가를 했고, 현재 현역 멤버들.. 한창 뛸, 젊은 나이의 사나이들..보기가 신선하고 좋았다.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는데 마침 성당의 website가 새로 단장을 하고 (face lifting?) 며칠 후에 선을 보인다고 한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세 번째 쁘레시디움 회합 참석, 첫 연도 참가
레지오 마리애 영성, 최경용 신부
레지오 마리애 영성, 최경용 신부

정기적인 회합이었다. 암이나, 병중에 있는 형제,자매를 위한 지향 묵주기도가 많이 바쳐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도 이제부터는 더 지향적인 묵주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교우 분 <> 자매님을 위한가 정오 미사 후에 곧바로 이어졌다. 나는 처음 해 보는 연도라 조금은 서툴렀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바쳤다. 아하.. 이런 것이 천주교 의식의 연도로구나.. 우리의 어머님들도 언제가 한번 이렇게 본당에서 연도를 바치리라 생각을 해본다. 레지오 단원들이 이런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참 보람차 보인다.

현재 내가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 레지오 교본을 정독하는 것이다. <>이라고 해서 무척 어렵고, 딱딱할 것으로 우려를 했는데 결과는 정 반대였다. 최소한의 수식어구로 아주 객관적이고 간결한 서술로 필수적인 것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놓았다. 현재 15장까지 일사천리로 읽고 transcribing (with keyboard)을 하였다. 한번 읽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주로 다시 읽으면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아무래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경용 신부가 지은 <<레지오 마리애 영성>>이란 걸작이 이럴 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어려운 책으로는 <>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란 책이 있는데 사실 이 책이 레지오 운동의 신학적 근거를 받들고 있어서 어렵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야 것 같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두 번째 쁘레시디움 회합 참석, 월례 생일축하 점심식사

무사히, 두 번째 회합에 참석할 수 있음을 특별히 성모님께 감사. 비록 선서전의 대기단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회원과 똑 같은 의무와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려고 노력을 한다. 지난 주에 못 뵈었던 고레따 자매님과 처음 인사. 이제는 모든 단원들과는 구면이 되었다. 그렇게 친절하게 환영을 해 주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다. 유일한 남자단원으로서의 체면도 있고 해서 나는 조금은 긴장이 된다. 여럿이 함께하는 묵주기도는 참 힘차게 느껴진다. 지난 주의 실적보고가 나에게는 제일 관심이 가는 것.. 이것들은 지금부터 내가 본 받아 해야 하는 것들이니까. 현재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향적 묵주기도 (위에서 내려온 것 포함)와 본당의 여러 가지 일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놓은 idea가 나올 것을 확신한다. 본당을 돕는 일로서 <> 팀에 가입하는 것이 있다. 담당자들을 일단 만나 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매달마다 단원간의 친목을 위한 생일 점심식사가 있었다. 그 달에 생일이 있는 단원이 나머지 단원에게 점심을 사 주는 것이다. 생일을 맞은 단원이 대접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이것도 재미있는 idea가 아닐까? 성당근처에 있는 “아틀란타에서 밥맛이 제일 좋은” 식당 <동네방네>에서 모든 단원들이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가입을 하다

나는 2007년 초봄부터 아내 연숙의 제안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협조단원으로 가입을 했고 그때부터 밤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연숙과 같이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생활을 시작했다. 말이 협조단원이지 사실 교회의 레지오 조직과의 연관성은 거의 못 느끼며 그저 나의 묵상의 도구로 묵주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저 무언가 나는 바뀌어야 한다는 무거운 생각에 시작은 했지만 사실 크게 무엇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이 맞는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의 조금은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묵주기도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레지오의 모임(회합)에 나간다는 생각은 그저 먼 훗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활이 거의 4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주 소극적인 협조단원.. 하지만 조금씩 묵주기도의 맛을 느끼며 무언가 신비한 경험도 한 그런 나날들.. 하지만 나도 느꼈다. 내가 정식단원이 되어야 할 날이 가까워 온다는 사실을..

나는 성모님께 조금은 장난스러운 제안을 하곤 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들을 들어주시면 레지오 회합에 나가겠습니다.. 하는 식이었다. 처음 협조단원의 제안을 받았을 때 물론 나는 대답을 미루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부탁’을 성모님께 하고 그것을 협조단원이 되는 ‘조건’으로 혼자 정해 버렸다. 그런데 그 부탁의 응답이 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겠지 했지만 그렇게 또 도망가는 것이 조금은 내가 뻔뻔스러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협조단원을 하게 된 것과 그로 인해서 묵주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조그만 사건’들이 배경에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나로써는 참 기적적인 개인적인 체험도 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못된 습관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받던 괴로움, 그런 것이 천천히 물처럼 녹아 없어져버린 것이다. 지속적으로 묵주기도를 비치게 된 것은 이러한 조그만 아주 개인적이고 기적적인 체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나는 성모님이 도와주시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했다.

이번 여름에 에어컨이 말썽을 부릴 때 그런 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성모님께 약속을 한 셈이 되었다. 곧 레지오에 정식단원으로 가입을 하겠다는 그런 약속.. 이것을 어찌 어길 수가 있겠는가? 사람과의 내기도 아니고 이건 성모님이 아닌가? 나갈 날짜를 생각할 즈음에 연숙이 나가는 자비의 모후에 한 남성단원이 오신다는 얘기를 하며 나보고 이제 더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그 동안에 내가 가입을 미루는 이유는 그 회합에 남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남자분이 오시지 못하게 되었다. 나도 그것을 핑계로 가입을 미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일련의 이런 ‘사건’들을 나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지금이 바로 내가 나갈 때로구나! 더 이상 미루면 영원히 다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It’s Now or Never..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나간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연숙으로 부터 들었던 귀에 익었던 자매님들의 이름하며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울어 나오는 환영도 받았다. 굳디 굳은 나의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3개월의 ‘대기’ 기간이 주워지고 나서 문제가 없으면 선서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뜸을 들이고 나갔는데 무슨 큰 문제가 있으랴. 레지오 마리애 교본과 단원수첩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대원으로써 실적을 얻고 기록을 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묵상을 하던 시간을 지난 것이다. 그 동안 등 너머로 듣기만 했던 성모신심을 정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이제야 조금씩 성모존재의 신비가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낀다.

교본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제일 효과적인 공부의 방법은 이 교본을 ‘필사’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필사’ 겠지만 요새는 keyboarding (typing)이 조금은 더 편리하고 빠르다. 교본을 읽으며 (천천히), 생각을 하며, typing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처음에는 보기보다 쉽지를 않았다. 대부분 typing에서 문제가 생기면 생각과 묵상의 고리가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이곳에 있는 <>인 것이다. 나로써는 먼 옛날 고려시대, 몽고가 침입을 할 때 고려인들이 정성스럽게 나라를 지키려고 “깎은” 고려대장경을 계속 생각하며 쓰고 있다. 나에게 성모신심과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이 올바르게 판각이 되도록 빌며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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