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day afternoon

A dark day afternoon.. 대신, dog day afternoon 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이 나오는 날의 오후가 되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훨씬 넘어선 것을 보며 7년에 가까운 짧지 않았던 세월을 회상한다.

이런 꼴 다시 보지 않으려면 떠나자, 떠나자.. 란 말만 나온다. 어제는 한 마디로 darkest day 였다. Solar eclipse도 아닌 날에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며칠 전까지 존댓말을 쓰던 ‘불쌍한 영혼’ 한 레지오 단원이, 식당 회식자리에서 ‘청천벽력’ 으로 단장 (a.k.a my wife)에게 반말로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각종 욕설을 퍼붓는 광경에 나는 외계인처럼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이 수십 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option이 있는가? 별로 많지 않았다. 식당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같이 맞서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monster로 돌변한 이 ‘인간’은 이미 상식적, 통상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비이성적이고 미친 듯한 인간을 대하는 방법은 그런 상황을 빨리 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나의 머리 속은 sick & tired, sick & tired, sick & tired of …’Legion of Mary’  로 가득 차고, 서서히 demonic rage가 나의 머리를 사로 잡았다. 이제는 내가 demon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demon은 나도 겁이 날 만한 무서운 욕설로 그 인간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옥의 끝까지 쫓아가리라.. 그리고, Nuclear Option이란  생각까지 다다르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생시였다. 일어난 일, 엎질러진 물, 다시 되돌일 수, 담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으로 Love to Hate (a human being) 란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darkest day를 나는 지금 맞고 있는 것이다. 이때, 평소 나를 인자하신 눈으로 내려보시던 성모님의 존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인가?

 

Room No 2. flooring, DONE!

 

일주일 여의 준비 끝에 지난 8월 17일에 시작된 This Old House의 2층 flooring renovation job 중에서 guest room 2개의 flooring & trimming job이 비오 듯 등으로 쏟아지는 땀 내음 속에 끝을 맺었다. 비록 ‘작은 방’에 속하지만 closet과 closet furniture (cloth hanger & chest)까지 포함되고 아주 복잡한 door jam 주변의 cutting geometry는 한마디로 굳어져가는 나의 머리가 마비될 정도였다. 육체적인 노동의 정도도 만만치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고, 수시로 plank cutting을 해야 하는 단조로움까지 골고루 ‘괴롭히는’ 것들과 싸우고 나면 한마디로 ‘녹초’가 된다. 이 나이에 이것과 싸우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을 많이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이 70에 가까운 몸으로 이런 simple labor를 한다는 것,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의미이고 우리 집의 value는 그만큼 올라간 것.. 왜 이것이 그렇게 힘들다고만 할 것인가?

Old carpet 대신에 반짝반짝 ‘딱딱한’ 바닥의 느낌은 사실은 mixed feeling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2층은 조금 안락한 느낌이 필요한데, 비록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은 주지만 carpet의 포근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문제는 오래된 carpet의 지저분함 또한 장난이 아니었기에 비록 area rug을 사더라도 hardwood flooring으로 간 것이다.

Carpet에 오랫동안 적응되었던 우리 집 pet, 특히 Torbey의 얼굴을 보니 괴롭고 신경질적인 모습이다. 재빨리 뛰어 갈 수가 없고 자꾸만 미끄러지니..  미안해 Tobey… 시간이 약이란다.

2층 floor를 모조리 바꾸려면 아마도 2~3주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가을바람이 솔솔 불 것이고, 일하는 것, 지금같이 땀으로 목욕하는 괴로움은  덜 할 듯 하다. 게다가 끝나고 나면 ‘완전히 변한 느낌’을 주는 방들은 우리에게 가을 같은 신선함을 주지 않을까?

 

AFTER

I’M SO SORRY, TOBEY…

 

BEFORE

 

봉헌을 위한 33일을 마치며..

2017년 8월 15일,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은 치욕적인 36년간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날, 광복절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빛을 다시 보는’ 그런 날이 되었다. 33일 간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여정이 끝나고 그 봉헌식이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정오 미사 중에 있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그 더웠던 삼복더위 중에 33일간의 긴 여정과 함께 했지만, 33일에서 3일 모자란 30일째 포기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언가 나를 유혹한 것임을 알기에 올해 광복절을 향한 여정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올해도 3일 정도를 앞두고 다른 형태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지만 결사적으로 나는 빠져 나왔다. 이것은 아주 감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작년에 경험했던 것을 journal로 남겼기에 나는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journal을 남겨 두어서 이곳에 남기기로 하였다. 아직은 기억이 생생한 편이지만 아마도 수년 후에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고 내가 그 동안 어떤 변화를 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는 금메달 같이 소중한 스카풀라와 봉헌초

 


매일 드리는 기도문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 빛이시여, 우리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모든 이로운 없으리.

허물을 씻어주고 마른 주시고 병든 고치소서.

굳은 풀어주고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묵상 기도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령의 짝이 시요, 예수님의 어머니시며

저의 어머니 시요, 주인이시며,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당신을 통해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여 있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부터 제게 영광과 힘을 간구하여 주시고

세속 정신으로부터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안에 세속적인 정신을 없애주소서.


아멘.

 

 

바다의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 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 지이다.

 

 

33일 매일 실천 사항

 

  1.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날의 주어진 내용들을 주의 깊게 읽고 그날의 주제에 따라 묵상하도록 한다.
  2. 그날의 주제에 따른 자기 성찰을 철저히 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덕을 닦도록 노력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
  3. 해당 주간에 매일 드릴 기도 중 ‘성령송가’와 ‘바다의 별’을 제외하고는 매일 드리지 않아도 된다.
  4. 대죄는 물론이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범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
  5. 될 수 있는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6. 묵주기도를 매일 바친다.
  7.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은 이 봉헌 준비에 할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거나 텔레비전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봉헌 준비에 필요한 기도와 묵상시간을 마련하는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한다.
  8. 그날의 묵상 내용이나 성찰한 것들과 결심사항 등을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9. 자신의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끊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절제, 흡연과 음주의 절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의 출입을 삼가 함).

 


2017년 7월 12일 저녁, 이것이 나에게 조용히 하루 전에 다가왔다. 우연 반, 필연 반.. 왜 성모님은 나에게 이것을 권하시는 것일까? 왜 이곳으로 부르시는 것일까? 성모님, 저는 이미 이 길이 하느님께 가는 최선의 방법이란 것을 배웠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봉헌을 하게 되면 2번째 봉헌갱신을 하게 된다. 작년 같은 때에 시도한 것, 정말 순조로웠지만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 3일을 남기고 포기를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 기억을 하려고 해도 자세한 상황이 가물거린다.. 나의 자제력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후회도 안 했던 기억까지 나니.. 성모님, 무슨 악이 나를 덮쳤습니까?

올해는 사실 별로 큰 생각을 안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것을 해야겠다, 아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시 봉헌을 위한 노력을 하면 또 다른 진리를 찾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생긴다. 귀찮은 생각이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 이번 2017년 복더위를 이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이 찾아낸 마리아의 진리를 찾으며 이겨보자!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첫 12일 동안 자신 안에 있는 세속 정신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세속에 대한 인식을 구하고, 세속을 지겨워 하며, 자기부정, 가난을 사랑, 침묵, 은둔, 겸손, 순결, 정직, 절제, 순명의 을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가장 완전하고 빠른 길은 성모님에게 우리가 온전히 봉헌되는 것이다.

 

 

독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 24)

 

1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

예수를 따르는 누구나 를 당신의 제자라고 부른다면, 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용기와 결단성 있는 영웅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모든 일을 참아 받기로 결심한 사람..

이러한 결심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벗 가운데 있을 자격이 없다

 

2 “자기를 버리고

가난과 십자가의 굴욕과 고통만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교만, 지식과 재능, 위대한 철인, 자유사상가 모두 멀리해야 한다

거만한 신심가나 세속주의자, 모두 쫓아내야 한다.

 

3 “ 십자가를 지고

나 만에게 맞추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나만의 십자가에서

무게는: 매일 겪어야 하는 물질적 손해, 굴욕, 고통, 질병 정신적 고통 등이다.

길이는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병으로 눕고, 동냥할 처지가 되고 유혹과 냉담과 마음의 권태,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날의 연속.

넓이는: 친구들, 가족들, 친척들로부터 받는 냉대와 괴로움.

깊이는: 주님이 주신,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내적 괴로움.

 

4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정복자의 무기와 왕의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 보다 더 필수적이고 유익하면서도 감미로운 것이 없고 영광스러운 것이 없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 8, 12)

그리스도의 생활과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듣고 맛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일생을 그리스도와 맞추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묵상과 생활실천: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통을 따르라는 첫 날의 주제는 사실 매력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광을 위한 현세의 고통, 하지만 현재도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것을 미워하라는 말을 해석하는 것, 나는 아직도 거부감이 드는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세속적인 것을 전부 버리라는 것도 그렇다. 그만큼 나는 세속적이기에 그런 충격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하! 이 고통이란 바로 세속적인, 쾌락적인, 달콤한 것들을 멀리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이다. 세상사 만이 고통이 아니다. 이것이 고통이다. 아니 고통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하고 있는 일상적인 신심활동 이외에 더 활동을 늘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대로 친교를 이루거나, 여흥을 하거나 놀러 다니거나 (그런 것이 거의 없는 우리들은?) 하는 것들을 더 줄이라는 것인가? 예수님, 성모님, 과연 무엇입니까?

 


제 2일, 양 진영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진영, 선 善 과 루치펠의 진영, 악 惡 중에서 나는 어느 진영에 서있는가?

 

독서:

구원의 문은 좁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의 적은 권세, 세력의 악신들, 암흑세계의 지배자들, 하늘의 악령 들이다. 이에 진리와 정의로 무장, 복음과 믿음의 방패를 잡고, 성령의 칼을 쥐어야 하며,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과 세상의 편:

나의 잔치, 천국의 월계관, 에 자리를 같이 하겠다는 벗들은 많으나 내 십자가, 고통과 굴욕, 와 함께 하겠다는 벗은 적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순수하여야 하며, 한번도 위안을 못 받는다고 하여도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고 항상 감사하여라.

 

묵상과 생활실천:

선과 악의 세계, 분명히 알고, 보이고 존재하는 것들..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 중간은 없나? 9/11 직후 Bush의 경고: Either You’re with us or against us.. 이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오늘의 말씀들도 어제의 것들과 거의 같은 것인가. 쾌락적, 육감적 같은 세속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길인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충족한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감상에 젖고 그것을 즐기는 것도 세속적인 것인가?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말씀을 믿으며 실천하고, 영생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것, 나는 이제 조금은 자신이 있다.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나는 모두 믿으며 아니.. 믿고 싶다.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나는 하느님의 ‘물리적 현존’ 과 역사적, 신학적인 예수님의 존재를 믿으며 믿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를 세속적인 인간으로부터 믿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나의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제 3일, 결단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한 여름 오수 午睡, book club 그리고 난타

¶  일요일 New York TimesSunday Review Opinion 기사 중에 The Glory of a Summer Sleep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Trump stress 에 시달리는 세월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여름이 주는 계절성 opinion은 반갑기 그지없다. 백두산 천지에 홀로 떠 있는 조그만 배를 연상시키는 삽화도 나를 나른~하게 하고 summer sleep이란 말도 나를 relax하게 하니 ‘언어의 위력’은 무섭다.

삼복 더위가 시작된 이 마당에 이런 ‘게으름의 사치’는 나를 너무나 즐겁게 한다.

이 필자도 나와 비슷한 즐거움, 즉 오후의 낮잠에 대한 예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A wanton slumber on a hot afternoon offers the luxurious expanse of wasted time. The world can keep turning without us for a while.

 

그렇다..  나른한 더운 오후의 낮잠을 a wanton slumber라며 사치스럽게 낭비된 시간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이 정도면 무더운 여름의 낮잠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의견에 절대로 수긍을 한다. 내가 바로 이 낮잠을 즐기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고 그 즐거움과 심지어 깊은 의미까지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이 곁들인 낮잠은 그 사치스러움이 더욱 극에 달한다. 거기다 포만감을 한껏 느끼는 배부름 에다 가급적 인상적인 꿈까지 포함되면 그날은 완전한 성공이다. 아무런 주위의 도움 없이 즐거운 하루가 되고 심지어 그 이후 며칠간은 ‘룰루 랄라’ 가 계속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했기에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  Book Club: 몇 개월 전 순교자 성당 주임신부와 면담한 적이 있었고 (아마도 판공성사 때문에) 그 때 여담으로 우리 성당에도 book club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신부님도 이런 idea에 대 찬성이었다. 당시에 성당에 그런 것이 없었기에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이전에 성당 사목회 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프란치스코 형제( Ohio State alumni)를 도서실에서 만났을 때 지나가는 말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도 심각하게 생각 중이라는 답을 들었다. 성당 도서실의 책 구입 등을 그가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 집에 갑자기 생긴 kitten emergency로 이것을 완전히 잊고 살다가 한달 여 전에 성당주보에 독서클럽이 발족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결정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것에 참여를 하려면 ‘정기적으로’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엘 가야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주일 활동’을 하려면 우리의 미국본당 주일 미사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참 결정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주일에는 ‘한번 가 보자, 될 대로 되라, it’s now or never‘ 라는 심정으로 그곳엘 가게 되었고 그날 모이는 ‘영적 독서 클럽’엘 갔는데.. 프란치스코 형제가 group leader라는 것은 짐작이 갔는데 나머지는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거의 모두 안면이 있거나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오로지 한 사람, 어떤 형제님만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7월 달 선정된 책은 전원 신부가 쓴 ‘그래, 사는거다!‘ 라는 조금은 비영성적 느낌을 주는 제목의 책이었다.  물론 나는 그 책을 본적도 읽은 적도 없으니 거의 한 시간 동안 member들의 ‘독후감’을 듣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생긴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group leader를 포함해서 누구도 처음 들어간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원래 그런 loose, unorganized, free-style을 목표로 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serious한 member가 늘어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book club 인상은 한마디로 lousy한 것이었지만 8월 달까지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하니 그 때 한번 더 try해 보고 진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  난타 Redux: book club을 급히 빠져 나온 후 시계를 보니 아직도 연숙이 교리반을 끝내려면 시간이 한참 남아서 망설이는데 한 쪽 방에서 신나는 ‘난타’ 소리가 들렸다. 아하.. 오늘부터 내가 속한 구역에서 10월 초 본당의 날에서 선 보일 ‘난타 공연’을 위한 연습이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닫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미 연습은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사실 내가 속한 구역에서 하는 이런 모임에 참가한 것은 일년도 넘는 듯하다. 그러니까 일년도 넘게 모임에 안 간 것이다.  오늘 그곳에 들렀던 것은 난타연습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시 구역모임이 나갈 까 하는 생각이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안 나가야만 했던 ‘이유’가 얼마 전에 ‘깨끗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암만 생각해도 성모님의 손길을 안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안 나가야만 했던 이유는 ‘기다리면 없어 질 것’이라는 나 나름대로의 응답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4년 전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함께 Beethoven Virus에 맞추어 신나게 난타 연습, 공연을 했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면 홀가분한 심정으로 난타 소리를 대하니.. 참 작은 기적이란 이런 것인가.. 

 

중복 中伏 단상 斷想

2017년 7월 22일, 레지오 수첩에 있는 달력을 보니 ‘중복’이라고 쓰여있다. 내가 가진 모든 달력 어디에도 이 ‘복’ 절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초, 중, 말복’ 만은 집고 넘어가야 할 ‘진짜’ 여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90도 (섭씨 32도 정도가 되려나..) 를 절대로 넘지 못하던 올 여름도 중복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짜 여름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 시작해서.. 비록 더위는 반갑지 않지만 ‘진짜 여름’은 반가웠다. Fakeness가 신나게 판을 치는 요사이 인간사회에서 그래도 진짜 같은 이 자연적인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제는 96도까지 치솟아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아~ 덥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온도가 아니라 습도였는데 아마도 heat index(불쾌지수?) 는 족히 100도가 훨씬 넘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날씨는 오밤중, 새벽이 되어도 더위가 가시지를 않는다. 흡사 sauna탕에 들어간 기분인데, 에어컨이 없던 시절 같았으면 아마도 밤새도록 cold shower를 하며 밤을 새웠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영리한 인간들 이런 자연적인 고통을 벗어나려는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머리를 굴리며 편안함을 찾는다. 이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집이 하도 덥게 산다고, 가끔 찾아오는 두 딸들이 이구동성으로 항의하는 바람에 용감하게 올해는 3-month-kittens 들을 이유로 1도를 내려 보았다. 와~~ 이것은 우리에게는 Seattle (Washington) 과 Miami (Florida)의 차이처럼 느껴졌으니..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아예 춥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비록 이번 여름 electric bill에서 승부를 가리게 되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으니까..

ever raining Seattle

언제부터였던가..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버릇이 생겼다. 나를 괴롭히는 날씨, 예를 들면 ‘재미없이 매일 똑같거나, 지독히 마른 땅, 습하게 더운 날, 너무나 청명해서 눈을 뜰 수 없는’, 이럴 때 나는 우리 집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Internet PBX (NerdVittles’ IncrediblePBX) 에  dial 4871 (I-V-R-1) 을 돌린다. 거기서 6번을 누르면 미국내의 zip code를 넣으라는 음성이 나오고 나는 98125란 code를 찍는다. 이 ZIP은 Seattle, Washington인데, Atlanta, Georgia와는 너무나 다른 외계의 날씨가 이곳에서 나온다. 지난 초봄에 들었던 것은 거의 3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는 눈과 비에 관한 예보였다. 웃기는 사실은, 그곳의 날씨가 내가 사실 꿈에 그리는 그런 것이라는 것.

요새 들어보면.. 그곳의 최고 기온이 70~80 도 정도인데.. 어떻게 미국 내에 이런 환상적인 곳이 있을까? 나는 이것으로 날씨에 대한 불만을 해소한다. 이 사실을 안 이후에 나는 기분이 쳐지면 연숙에게 ‘농담으로’ 우리 Seattle로 이사를 가면 어떨까.. 하며 숨을 죽이고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답은 즉시 Hell, No! 라는 무언의 답을 듣긴 하지만…  이런 대화를 하는 순간 만이라도 나는 ‘비 내리는 싸늘한 그곳’을 연상하며 이미 기분이 훨씬 나아짐을 느낀다. 또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언젠가는 그곳에 갈 수 있게 되기를..’ 하는 작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Bye bye kittens: mission accomplished!

PAWS-ATLANTA 입구, Van 이 보인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집(가족)에게 monumental day라고 불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태양이 작열을 하는 전형적이고 통계적으로 아주 정상적인 뜨거운 복 伏 날씨에, 나와 연숙은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를 바쁘게 해오던 마지막 3마리의 정든 kitten들을 kitten carrier에 넣어 차의 backseat에 태우고,  ‘침울하지만 차분한’ 심정으로 PAWS ATLANTA (a NO-KILL animal shelter & pet rescue) 가 있는 metro Decatur west-end로 거의 한 시간 drive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8마리와  kitten 들과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괴로웠을 때, 피곤 했을 때, 눈물이 났을 때’등을 서로 회상하였다. 한마디로: Mission Accomplished! 란 말이 저절로 나왔고 우리 둘은 big high Ten으로 자축하면서 눈언저리가 시려옴을 느끼기도 했다.

 

Cat’s dormitory, 이곳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모여서 산다

지난 6월 초에 나 혼자서 2 마리의 feral mommy cats(8마리 kitten들의 mom & grandma)들을 fix (spaying & neutering, 불임수술) 하러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시설 (LifeLine Animal Project) 에 왔던 것 보다 더 먼 곳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설들이 우리 집과 정 반대 쪽에 있는 곳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곳들을 찾아 내고 ‘이용’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이 작은 딸 나라니 였는데.. 그 애가 Decatur에 있던 Agnes Scott College에 다녔었고 이 지역의 animal shelter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west metro의 Cobb county지역에도 이런 시설들이 있을 듯 한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한 시간 drive를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8마리의 kitten들이 모두 개인가정에 adopt되는 것이었지만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3마리는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초조하던 차에 마지막 희망인 이곳 paw-atlanta를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adopt가 될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맡아서 보호해 주는 곳이고 website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3 마리, 이곳에 안착하자마자 주위를 탐색하고 있다

 

나머지 3마리, 우리도 놀란 것이 너무나 정이 많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사람 못지않게 끈끈한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었다. Kitten들은 물론 우리와 헤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친구들과 즉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입양이 되기만을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울리게 했던 녀석, 꼬마.. 어디에 가던지 잘 살아다오..

 

세 마리 중에 우리의 가슴을 쓰리게 했던 ‘놈’이 ‘꼬마’인데,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신경을 쓰던 녀석이었다. 매일 매일 젖과 먹이를 먹일 때마다 그 녀석의 유난히 가느다란 뒷다리를 주시하기도 했는데, 정성을 드린 것이 효과를 보아서 나중에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아주 활발한 kitten으로 자랐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연숙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좋은 곳으로 입양만 되기를 기도하며 기도한다. 

희망적인 news는 이런 어린 kitten들은 비교적 빨리 adopt가 된다고 한다. 모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원하기에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든 kitten들이 떠난 그들의 보금자리,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뛰어 놀았다

 

expected but sudden and sad..

마지막 남은 3 마리super cute kitten들과 작별인사를 할 순간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o-Kill Animal Shelter: PAWS-ATLANTA에 일단 가서 입양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슬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도 놀란 것이, 불원간 이별할 것을 알고 같이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온 것이 사실을 그저 잊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잊고 살았던 끈끈한 ‘정 情’ 이란 것이다. 70평생 살면서 그것도 잊고 살았단 말인가?

8마리 모두가 함께 딩굴며 행복했던 시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의 손에서 자란 8 마리 (3 마리는 낳아준 엄마 품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 우리가 길렀다) 각자 모두 특징이 있는 8마리 형제 자매들 중에서 5마리는 이미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모두 ‘좋은 가정’으로 adopt 가 되었다. 8마리에서 5마리가 빠진 3마리, 처음에는 그렇게 쓸쓸하기까지 보이더니 우리도 애들도 잘 적응해서 전에 비해서 훨씬 ‘편하게’ 2층 독방에서 잘 놀며 자라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예상은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3마리를 잘 기르는 것은 사실 무리 (이미 1 dog, 1 cat이 우리 집에 있기에) 였고, 애들도 모두 반대를 하곤 했다.

요새는 동물, 특히 pet animal 들과 정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제는 그곳에 가서 하루 빨리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봉헌 33일 시작, dementia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정신에 따른,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2017년 8월 15일 성모승천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대축일에 봉헌이 되는 그 준비 33일의 첫 날이 조용히 다가왔다.

작년 이 맘 때를 기억한다. 나름대로 성실한 준비를 하다가 봉헌 3일 전에 포기를 했던, 결과적으로 쓰라린 추억을 만들었고 분명히 나의 주위에는 시기심에 가득 찬, 성모마리아를 증오하는 악마의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왜 그에게 져야만 했을까.. 아직도 후회를 한다. 이 ’33일 봉헌’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살다가 일 년 뒤에 나에게 조용히 나타났고, 불현듯 ‘다시 시도를 하자’ 로 정해 버린 후 마음이 홀 가분해 졌다. ‘이번만은..’ 하는 각오를 하며..

2012년 8월에 첫 봉헌을 했고 2014년 3월 25일에 봉헌갱신을 했었다. 이번의 봉헌은 그러니까 2번째 봉헌갱신이 되는 셈인가.. 총 3번째 루도비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는데, 같은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개개인에게 같을 수는 없다. 나 자신이 그 동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번의 준비를 하며 나는 “매일 묵상일지 daily journal”를 Microsoft Office, OneNote format으로 남겨 두었기에 다시 그것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당시에 했는지 알 수가 있기에 조금은 흥미롭기도 하다.

첫 시작은  12일간 계속되는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첫날이 된다.  이 12일 동안 묵상은 모두 현세의 표준 가치관(권력 명예, 육욕, 지성, 집단 성, 쾌락, 거짓, 위선, 무절제한 자유, 불안, 근심, 죽음 같은 것들) 이 된 모든 것들을 뒤 엎는 것이라서 조금은 거부감을 받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하나하나씩 분석하며 묵상을 하면 ‘신기하게’ 서서히 받아들여 지는 것..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해 보는 이 묵상들이 이런 작은 기적들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무더운 한 여름에,  신기하고 시원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  Dementia: 90도를 육박하는 7월 중순 전형적인, 알맞게 더운 날,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 3명 (단장, 서기, 자매 단원)은 약속이 된 대로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시설을 방문하였다. 나와 연숙은 이미 몇 차례 방문한 곳이지만 오늘은 단원 중 집이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도제제도 apprenticeship’ 를 따른 것인데 경험 단원이 경험이 덜한 단원과 같이 활동을 하며 배우게 하는 것이다.

이 역사가 깊은 시설은 상당히 덩치가 큰 곳인데 거주하는 많은 분들이 고령의 dementia, Alzheimer 환자나  재활치료 환자들이다. 우리가 찾는 분은 80세가 넘으신 할머님이신데 흔히 말하는 ‘중증 치매’ 환자다. 가족사진을 보면 대가족으로 참 보기가 좋지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시설로 보냈을까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레지오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환자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을 보아 왔지만 이 자매님이 나에게는 처음 대하는 ‘중증 치매’ 인 case다.  각종 질환으로 고통을 받지만 이렇게 ‘망각증 dementia’ 까지 겹친 분들을 대하면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어떻게 이런 가혹한 (환자나 가족친지 들에게) 고통이 있을까?

가벼운 망각증인 분도 많이 찾아 보곤 했고 비교적 대화를 하는데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치매’인 case에는 사실 대화의 의미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찾는 이유는 혼자 계시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낳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런 시설, 그것도 ‘지하층’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지만, 어쩔 것인가? 우리의 희망에 사람을 조금이라도 보는 것이 그 망각의 세계에서도 위안이 되리라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이 분들의 머리 속에 있는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 나는 그곳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Early July, muggy but under 90

 

¶  2017년 (처음에는 천구백..으로 쓰기 시작을 했는데, 역시 나는 아직도 나의 잠재의식은 20세기에 머물고 있는지..) 7월 상순 上旬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시 올해 아틀란타지역의 날씨에 감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끈끈하지만 시원한.. 그러니까 muggy but cool.. 바로 그런 날씨인데 신기하게 magic number 90도를 넘은 적이 거의 없다. 요새 이 지역에서 90도 이하로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평균 이하인 것이 거의 분명하다. 특히 오후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소낙비의 매력은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는 ‘불청객’ 3마리 너무나 귀여운 2달 된 kitten들 때문에 thermostat를 1도나 내린 덕분에 우리도 시원하게 지내지만, 이렇게 은혜로운 mother nature덕에 생각만큼 a/c 가 힘들게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내일이 ‘초복’이니까.. 분명히 muggy & hot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는 받은 ‘인자한 날씨’만도 감사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어제는 2주일 만에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본당’엘 갔었다.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기에 간 것이지만 2017년도 예비신자 교리반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서 나에게는 다른 choice가 없었다. 집 근처 동네 미국본당과, 20마일 떨어진 한국본당을 번갈아 가며 가는 것, 이제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흡사 2중 생활, 2중 국적, 겹치기 출연.. 그런 말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레지오 이외에도 이제는 낯익은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여서 이곳 본당도 정이 든 기분이다. 7년 전쯤 다시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연숙을 빼고는 ‘하나도’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참 많은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발점은 역시 성모님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에 적을 두기 시작한 것, 내 인생 후반기에 대 전환점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날 꾸리아 월례회의에서는 예고한 대로, 꾸리아 회계선거가 있었다. 회계라는 직함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는 나의 촉각이 곤두서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로 뽑혀서는 안 되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

부정적인 상황을 안고 임한 투표는 ‘하늘이 도와서’,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새 얼굴, 새 피’가 선출이 되었다. 희망은 ‘현재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라는 논리인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꾸리아 간부들의 상황.. 절망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총사령관 commander-in-chief’ 성모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우리 레지오의 ‘실질적’ 최상급 평의회는 꾸리아 이기에 이것의 중요성은 강조를 아무리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실제로 레지오의 기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진단한 현재의 상황은: uninspiring, stagnant… 더 no-nonsensical, proactive한 꾸리아 간부들과, 평의회 의원들(쁘레시디움 간부들)이 나오기만 기대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꾸리아 부단장 선거가 예정이 되어 있어서 당분간은 조금 신경이 쓰일 듯 하지만 이것도 역시 ‘초자연적인 손길’ 성모님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  꾸리아 월례회의에 ‘희귀동물’, 중장년 남성단원이 하나 더 늘었다. 한 때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daily mass regular 였던 P 카타리나 자매님 부부가 평의회 단원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 남편 형제님은 레지오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지만 벌써 서기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부와 똑 같은 상황이어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장인 wife ‘밑’에서 서기를 맡고 있는 것, 나는 벌써 5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들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부부가 같이 단원, 간부 등을 맡으면 이점이 상당한 것이었다. 제일 자명한 사실은 우선 ‘부부간의 대화’에 많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고, 이것의 추론은: 부부 관계, 가족 관계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놀라운 사실. 또 한번 진부한 표현을 빌리면: ‘아~ 내가 이 사실을 10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본당에서 오랫동안 음양으로 봉사를 해 왔던 고대출신 남편 형제님, 건장한 체격과 인상 등으로 나보다 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의 2살 선배 격이었다. 3년 전 ‘구수한 인상의 돼지띠 형제님’ 전요셉 형제 이후, 오랜만에 우리 또래를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도 business에 시간을 쓰고 있지만 곧 retire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 후에 할 것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당근처 ‘널찍한’ bakery shop Mozart에서 부부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전공이 기계공학이었고 관심이 나와 아주 비슷하였다. 쉽게 말하면.. Science & Religion 분야라고 할까.. 이 ‘상극으로 보이는’ 두 분야가 서서히 최근 30년 동안 접근을 하는 것에 ‘환호’를 하였다. 무섭게 변하고 있는 물리적 접근방식을 주목하며 역시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등 정말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  팔순 八旬: 예전에 팔순이라면 사실 제대로 실감을 못하기도 했다. 그저 아~ 오래 사셨구나.. 하는 가벼운 탄성 같은 것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칠순과 연관이 되려는 이 시점에서 팔순의 느낌은 그렇게 ‘오랜 인생’ 같지는 않다. 환갑이 한 물 간 이후 칠순조차 별 큰 뜻을 느끼지 못함은 역시 나이에 비해서 모두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일까?

우리 레지오 단원 중에 팔순 생일을 맞이하는 단원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냥 단순한 생일회식에서 벗어나 생일카드와 birthday cake을 준비한 팔순 기념회식을 치렀다. 본인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회식에 참여했고 단원들도 축하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나이가 제일 많은 이 팔순의 자매님이 다른 단원들에 비해서 훨씬 건강한 편에 속한 것, 물론 좋은 일이지만 건강은 나이와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

 

sleepwalking on the 4th..

Sleepwalking? 몽유병? 허..  난생 처음으로 이것을 몇 시간 전에 경험을 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몽롱한 머리 속을 청소하고 오늘이 무슨 날이며, 오늘 아침의 일과는 어떤 것인가.. 정리를 하는데.. 그렇다, 오늘은 ‘미국이 사랑하는’ 요란한 holiday, the Fourth of July.. 아직도 나는 이 난생처음의 경험을 분석하며 정리 중이다.

오늘 새벽 나의 모습이..

우선, 생각에 아~ 나도 오래 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다. 이런 ‘현상’ 만은 이제까지 이해하기조차 힘이 들었던 것인데 나에게까지 찾아 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하기도 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본 몽유병은 사실 별 것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복잡한 것이 아니니까. 수면상태가 깊지 않을 때 생긴다고 하는데, 일리는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난 나의 경험은 이렇다.

어느 집.. 혹시 vacation home이 아니었던가.. 그곳에 놀러 갔던 느낌도 든다. 우리 집이 아닌 곳, 2층 같은 곳의 bedroom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이것은 꿈 속도 그렇고 실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니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해서 손으로 더듬으며 걷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아닌 ‘놀러 온 집’의 방이니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비틀거리며 낮은 쪽, 구석 진 쪽으로 걸었는데… 너무나 앞 뒤를 알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침대로 오려고 했지만 화장실이 너무나 급해져서 그대로 전진을 했는데.. 이곳은 어떻게 무언가 잡동사니가 많은지.. 게다가 계단까지 있어서 내려가느라 비틀거리고, 도대체 이 집에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 고민까지 하는데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진다.

그때 나는 완전히 ‘몽유병’에서 벗어났다. 그곳은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 침실에서 garage로 나가는 조그만 계단 아래 laundry  machine이 있는 조그만 통로의 automatic ceiling light가 켜진 것이다. 그때야.. 아하~ 우리 집이었구나.. 그리고 나는 꿈을 꾼 것이구나.. 하며 부지런히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것이 나의 난생 처음 sleepwalking의 경험이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면, 잠에 대해서만은 100%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도 결국은 이런 disorder를 경험하게 되니.. 모든 것이 시간문제라는 자괴감도 들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오감(five senses) 적인 인생을 살았던 나에게도 이런 예외적인 경험은 색다르고 신기하고, 심지어 다시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경험하고 싶으니..

 

끝내주는 초여름, 2017

¶  Green backyard: 와~~ 내가 꿈을 꾸고 있는가? 멋지게 상상하던 모습들이 100% 아니 200% 그대로 눈과 코로, 피부로 그대로 느껴지는 2017년 초여름.. 재빠르게 지나가며 dog day가 멀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이제까지 받았던 날씨, Mother Nature의 은총은 두고두고 음미하며 나를 즐겁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나간 2017년 6월 달은 나의 기억에 아마도 wettest June 이 아니었을까? 폭우로부터 시작해서 해가 전혀 안 보이며 24시간 내리는 줄기찬 비, 가랑비, 보슬비.. 흡사 Seattle, Washington을 연상케 하는 그런 ‘멋진 나날’들이었다. 끈끈해도 시원한, 구차스럽게 a/c 소음을 듣지 않아도 시원한 그런 밤과 낮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90도를 넘어본 적이 없었던 global cooling 의 초여름..  앞으로 2개월 정도 찌는 듯이 더워도 이제는 불평을 할 용기가 전혀 없다.

 

 

¶  Independence Day가 내일로 다가왔다. 올해는 화요일, 조금 특이하게 우리 부부에게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 회합이 있는 날이 아닌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이 이날 아예 문을 닫는단다. 아니 왜 성당이 세속적인 휴일에 문을 닫는가? Universal Church의 미사가 휴일로 문을 닫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이 안 가는 것이다. 원래 성당이 월요일 날 문을 닫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화요일까지.. 본당은 비록 주임신부의 재량이겠지만 최소한의 guideline은 교구청의 것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America, still the beacon, hope..

 

다행히도 우리의 정든 ‘동네본당’ Holy Family Church는 변함없이 미사로 모이고 분명히 America, the BeautifulGod Bless America를 부르지 않을까.. 하지만 주일미사에는 성가대 service가 없으니까 그것은 무리일 듯 하다. 작년에 비해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속한, 나의 나라라는 것,  과연 한 인간, 피조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생각을 한다. 정답은 없는 듯 하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소박한 답은 가지고 있다.

올해 Independence Day, 우리 핵가족은 모이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니는 해외휴가여행, 나라니는 Luke네 lake house에서의 그들 가족모임과 매년 참가하는 Atlanta 4K marathon엘 가니까.. 결국은 우리는 역시 2명의 우리밖에 없다. 1명과 2명의 차이는 우주처럼 크지만 2명과 그 이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명언을 실감하니까.. 그래 우리 둘 만이라도 무언가 ‘굽고’, Heineken beer로 기분을 내어보자.

 

¶  3 MORE Kittens adopted out: 이틀 전, 지난 토요일.. 슬픈 날이 되었다. 비록 예정되었던 것이지만 미리 알고 있어도 사람의 감정이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애지중지 키워오던 2개월이 넘어가는 8마리의 kitten들 중에 2차로 무려 3 녀석이 adopt되어 나간 것이다. 1차는 이미 6월 20일경 sweet Velvet가 어떤 young couple에게 adopt되어서 떠났는데.. 그때도 이상야릇한 감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나서부터 젖을 먹여 키웠던 ‘애’들이라서 완전히 사람 같은 느낌으로 우리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8마리에서 7마리가 되었을 때 그 느낌도 조금은 조용해 진 듯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3마리가 빠진 4마리의 방은 그야말로 처음으로 정적이 휩싸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adopt된 3마리: ‘BB: 왕방울’, ‘Jack’, ‘Pink’ 는 사실 그 중에서 제일 애교들이 많았던 애들이어서.. 연숙은 눈물을 참느라고 애를 썼는데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다는 말이: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다고..’ 나라니가 동부서주하며 찾아 준 adopt family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안심이 되었고 가끔 Internet으로 근황을 전해 주는 등.. 모두들 행복한 삶을 살리라 기도를 한다. 나머지 4마리는 언제 adopt가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계속 노력 중이다.

 

Velvet renamed to Dax

Jack & Pink

BB – 일명, 왕방울

 

 

싸늘한 6월 26일 아침에..

어제는 a/c (에어컨)의 소음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정말 믿기 힘든 시원한 가을 같은 평화스러운 일요일이었다. 시원한 자연의 공기를 만끽하려고 밤에 잘 때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았는데 아침에 어둠 속의 공기는.. 그야말로 싸늘한 50도 대의 기온이 아닌가? 어제 일기예보를 안 보았기에 놀란 것이지만 이것은 나에게는 자연의 은총 중에 으뜸가는 은총에 속한다.

오늘의 예보를 보니.. 이제는 ‘물기’는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진 모양으로 UV 치수가 아주 높은, 그러니까 건조한 공기를 예고하고 있다. 최고가 82도, 건조한 날씨.. 나는 자동적으로 창문을 닫고 a/c  switch를 킬 것인가, 그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오후를 맞이할 것이나 계산하기에 바쁘다. 이것은 이제 습관이 되어서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다. 이제는 ‘감’으로 우리 집안의 공기를 control할 수가 있는 것인데..  예전에 비하면 이것도 ‘나이 듦’에서 나오는 자연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집 small animal kingdom에는 10 마리의 ‘동물’들이 머물고 있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챙길 것 투성이다. 지난 4월 성목요일에 뒤뜰에서 ‘아슬아슬’하게 태어난 8마리 baby kittens들 중에서 한 마리 Velvet은 좋은 주인을 만나서 얼마 전에 adopt가 되어 이별을 했고, 현재 7마리의  2개월을 훨씬 넘은 건강한 kitten들은 비록 foster-care지만 이제는 정이 들어서 완전히 우리의 ‘자식’ 처럼 되어서 가능하면 adopt 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오래 된(10+ 년) 우리의 고양이 Izzie, 개 Tobey가 있고 새로니가 해외 휴가여행을 가면서 2주 이상 머물기 시작한 개, Ozzie..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우리 집은 summer animal kingdom이 된 것이 틀림이 없다. 이것들을  care하는 것은 이제 익숙하게 되어서 크게 힘이 들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것..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연숙과 함께 실감을 한다. 덕분에 ‘절대로 지루한’ 그런 시간은 ‘절대로’ 없다는 것.. 역시 좋은 것이다.

 

그렇구나, 또 육이오가..

전쟁 발발 직후 피난민들이 남하를 시작, 수원 근교를 지나가고 있다 – 1950년 7월 11자 Life magazine

 

육이오, 융요..유기오.. 6.25.. 1950년,  도대체 몇 년 전인가? 이것도 이제는 쉽지 않구나. 반세기도 모자라서 67년 전이란 말인가? 나에게 이 날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집, 가족의 형체를 철저히 망가뜨린 동족상잔의 시작인 날은 분명하고, 나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인가? 머리 속의 깊은 속에서는 분명히… “김일성 이 X새끼야, 내가 지옥까지 너를 찾아내서 다시 한번 더 확실히 죽여 버릴 거다!!!!”라는 절규가 울리고 있다. 100% 동감하는 나의 심정이다. 6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저주의 정도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빨갱이들과 민족화해라고.. 허.. 정말 죽여주는 말이다.

 

아.. 압록강으로 올라가던 MacArthur가 이 개새끼를 잡았더라면, 역사는..

 

6.25 사변이 정전armistice 으로 끝났던 어렸을 적에는 물론 ‘반공, 멸공,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우리 할아버지’를 따라서 무조건, 무의식적으로 반공, 역적 개새끼 김일성을 외쳤지만 같은 구호를 외치며 경제개발을 시작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재’ 덕분에 한때는 반공보다는 반독재의 고함소리에 솔깃했고,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젊은 피가 인생, 삶의 피로 바뀌기 시작한 그 이후의 오랜 인생여정, 내가 살던 지리적 여건으로 ‘탈 脫 사상 思想’ 의 변화의 시기들도 있었다. ‘잊자, 조국’, 대한민국 무관심의 세월이었나? 그 후에는 조국도 변하고 나의 나이도 진전을 해서 세상이 변했던가.. 하지만, 시간의 irony는.. 결국은 ‘박정희 향수’에 젖은 기분도 느낀 것이다.

이런 ‘복잡한’ 나의 조국관 祖國觀 을 정리해서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아마도 많은 노력일 필요할 듯 하다. ‘국가’란 것이 과연 인간에게 무엇인가, 하는 단계까지 내려간다. 이런 ‘정치적 인간, 인생’의 차원은 어느 정도 ‘높은’ 것인가?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어떤 세상이 보이는 것인가?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나의 고뇌는 이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해괴하기까지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정국, 멀쩡하던 여자 대통령이 갑자기 수의를 입고 나타나고, 그것을 보며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멀쩡한 군중들’.. 이것이 어떤 나라인가? 아마도 현재 조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민주주의의 이상형이 바로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며 박수를 치는’ 그런 것인가? 세상에 유례가 없는 선진형 민주주의라고? 유례가 없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advanced, vibrant democracy인지는.. 글쎄올시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이런 분석이 모두 내가 피부로 느끼는 ‘추측’이라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으로 바라보았던 그쪽의 정확한 사정을 나는 알지 못하기에 이런 논평 자체가 ‘실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나 ‘빨갱이’란 말이 연계가 되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6.25 를 연상할 수 밖에 없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된 소위 말하는 ‘progressive 한 정권’은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

6.25를 맞으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속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이것도 물론 나의 제한된 지식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extreme, mass narcissism에 빠진  ‘집단적 자기 도취’에 빠진,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나의 ‘코끼리 만지는 장님’ 식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1980년대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원화 평가절상 후 세계를 돈으로 석권하며 자기도취에 빠진, 이제는 지구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더 배울 것이 없어진 것을 애석해 하던 그들. 그 이후 30년 어떻게 그들은 변했던가? 이제는 당시의 ‘일류 日流’가 ‘한류’로 바뀐 것 뿐.. 그것에 환호하며 ‘자기들이 뽑아놓은’ 현 대통령을 감방으로 보내는 것에 ‘아이들까지 환호’하는 그런 나라.. 가.. 나는 정말 싫다.

통일, 그러면 통일은?  나를 포함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김일성 X새끼가 소련제 tank로 ‘쉽게’ 통일을 하려던 바로 그것, 어떨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듯 보인다. 아주 고차원적인 초월적인 도움, 아주 먼 옛날로 갈 필요가 없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민주화’되고 독일이 통일되었던, 그것도 1980년대 이후를 공부해 보면 무언가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야 말로, 초자연적인 도움1 이 필요한 바로 그런 것이다.

 

  1. Fatima의 성모님이 예견하고, Saint John Paul Second, Ronald Regan, Gorvachev 등이 주도 했던 소련 붕괴

Mothers.. I’ve sinned..

Mothers (my own mother & the virgin mother)..  I’ve sinned especially today on Mother’s Day…  2017년의 Mother’s Day 오늘 나는 뜻 밖의 고뇌와 함께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오늘의 큰 죄는 ‘고의적, 아니 죄를 안 지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죄’ 였기에 더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죄’, 바로 오늘 ‘사랑의 본질인 어머니 날 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역한 죄를 지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나는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기가 막힌 사실이다. 어떤 교활한 악마가 나를 휘어 잡았는가?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가야만 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 무심코 들어가 앉은 그곳에서 나는 ‘그 사제’를 또 봐야 했다. 몇 번째 이던가?  ‘피할 수도 뛰어 나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  근래 더욱 자주 보게 되는 방문 신부, 무엇이 나에게 문제인가?

메주고리예 Medjugorje  에서, visionary중의 하나인 미르야나 Mirjana 에게 개인적으로 발현하신 동정 성모님, 분명히 천명을 하셨다. 사제를 단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큰 죄’라고..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심판을 하신다는 뜻인 모양이다. 우리 같은 일반신자들의 사제(단) clergy 에 대한 ‘비판, 비방, 심판’은 아마도 아주 아주 나쁜 죄에 속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사제도 한 인간이고 일반 신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 어쩔 것인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 사제의 지나친 showmanship한 행동과, 내가 생각하는 사제의 ‘일반적인’ 관행에서 훨씬 벗어나는 ‘파격적’인 언사, 언행(특히 offensive comments) 이다. 보기에 따라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친근한’ 것으로도 보일 수는 있지만 암만 내가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 사제는 전형적인 ‘How did he become a priest?’ 중에 하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나 자신이다. 이런 ‘싸움’에서 나의 말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이 없거나 극히 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마도 해결책은 없을 듯하다.

 

뜻 밖의 이틀간..

불편할 정도로 끈끈하던 지난 밤은 전형적인 여름의 그것이었는데 기분에 분명히 하늘에 주체할 수 없는 energy가 모이고 있음을 느꼈는데 결국은 이렇게 늦은 오후에 thunderstorm 과 heavy rain을 편한 기분으로 만끽하게 되었다. 

이번 주 초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틀간의 mourning 이 몇 시간 전에 모두 끝이 났다. 이것이 인생이다. 예정된 것 사이사이에 이렇게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이제는 느낀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의 하루하루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최동명 종합보험 대표, 최동명 James (야고보) 형제, 3일 전인 5월 9일 오후에 선종하였다. 심장에 관계 된 병의 결과는 예측을 할 수가 없기에 모두들 그저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제의 장의사 연도와 오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장례미사 그리고 ‘funeral lunch‘ at 한일관’으로 모든 공식 절차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짧았던 충격은 이제부터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소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우선 viewing을 할 수가 없어서 실감이 아직도 가질 않는다. ‘이제까지 웃던 얼굴, full of life‘의 60대 중반의 가장이 조그만 urn속의 한 줌의 재가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번처럼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경험도 없을 것이다.

가족장을 원한다던 직계유족의 바람이 아닌 완전히 공적인 장례식이었다. 연도와 장례미사로 이어진, 다만 viewing과 coffin이 없었던 것이 색다른 것이었다. 직계가족, 특히 아들 딸의 ‘오열’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siblings 과 연로하신 어머님은 부러울 정도로 침착한 표정들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부럽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었을까? 대가족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보험 사무실에서 만났던 Charlie P도 오랜 만에 식사 때 만났다. 전보다 살이 빠져서 보기가 좋았던 그, 내가 방문할 때마다 James ‘사장님’과 나를 포함해서 같이 담배를 피었는데 들으니 ‘사장님’이 자기와 같이 금연에 성공을 했는데, 1년 뒤부터 다시 피기 시작했다고 들려 주었다. 심장병의 원인 중에 흡연도 있었기에.. 그 때 완전히 담배를 끊었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아쉬운 것은 사실 그것이 아니고, 내가 알기로 이 James 형제가 신앙생활로 부터 떨어져서 살아온 것이다. 항상, ‘옛날에 열심히 했다’고 하는 것이 변명이었다. 그것은 사실 그의 형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했던 것이 그렇게 지금 큰 상관이 있을까? 아무리 바빠도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었으면 결과는 아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평소에 stress를 많이 받으며 사는 그의 life style에, 마음의 평화가 주는 ‘stress의 해독제’ 역할을 그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타계, 이제는 조금씩 그의 삶과 죽음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천천히 음미할 차례다.

 

연도 煉禱, 뜻밖의 부음 訃音

¶  이제 나에게 연도는 생소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아니, 익숙해졌다고 생각을 한다. 하면 할 수록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곡 哭’ 도 연도 말고 어디 있을까? 너무나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있는 연도. 연옥의 영혼을 위한 기도, 가톨릭의 장례 형식이지만, 연옥을 믿지 않는 개신교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오늘,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어떤 자매님의 연도가 오늘 정오 미사 후에 있었다. 고인의 향년 91세가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지만 다른 때보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연도를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들었던 ‘소문’, 성령운동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어떤  사제가 옷을 벗고 결혼을 한 case 였다. 그 ‘환속’의 과정과 이유는 잘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느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오늘 연도 고인의 사위가 바로 그 ‘전 前’ 사제라고 하는데 소문에서만 듣다가 오늘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이 전부인데.. 지나고 보니 왜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갖고 연도에 참석했을까 나 자신이 조금은 당황하게 되었다.

 

¶  너무나 놀라운 부음 訃音을 오늘 늦게 접하고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험 전문인인 James형제, 서울 외대출신, 오랜 친분을 가진 ‘최형’의 바로 밑 동생, James (Choi) 로 알게 되었고 2004년 경부터 한 동안 그의 insurance agency의  computer system을 보아 주면서 자주 만나기도 했던 그가 오늘 ‘갑자기, 예고도 없이’ 심장마비로 타계를 한 것.. 칠순도 되지 않는 나이에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

근래에는 통 만날 기회가 없어서 거의 잊고 지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간접적으로 최형을 통해서 어쩌다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오래 전에 심장 검사에서 담배를 줄이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다고 듣기도 했지만 아마도 철저한 금연을 못 한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면 ‘꼭’ 담배를 피러 사무실 밖으로 나오곤 했고 나도 오랜 만이라고 같이 피웠던 기억도 있으니.. 흡연으로 인해 혈관이 막혀서 생긴 불운의 결과가 아닌가 짐작을 한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 분밖에 없는 형님네와 관계가 그렇게 원만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도 알기에 이렇게 갑자기 떠난 것이 가슴이 아프다. 그런 것 다 아시는 그의 어머님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고, 최근에 가까이 알고 지냈던 누님과는 각별한 사이였다는데 얼마나 애석할까. 어머니도 없고 형제도 없는 나로써는 최형네의 대가족이 항상 부러웠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연도나 장례미사에서나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James 형제, 부디 편안히 쉬기를..

 

¶  오늘은 레지오 주 회합에 절반의 단원들이 결석을 하였다. 10명에서 5명이 되니 조금 생소한 느낌을 들었지만 다른 쪽으로 조금은 한가하고 편한 느낌도 있었다. 레지오 단원의 의무 중에 제일 으뜸이 주 회합에 출석을 하는 것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지만, 완벽하게 이것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습관성인가 아닌가 하는 것인데, 나는 이제 이 결석하는 pattern을 보고 거의 그 사람의 character를 짐작할 수도 있게 되었고 그 사람의 ‘다른 면에서의 성공여부’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 단원들의 결석 이유를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시간 관리를 철저히 못 한 것, 단순히 심각한 생각이 없는 것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나의 옛 모습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분발을 못하는 단원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뒤에서 기도나 응원을 할 정도 밖에..

 

¶  문재인, 어떤 인간인가? 거의 40년간 ‘조국의 정치’를 외면하고 살았던 내가 이번에는 왜 이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나도 잘 모른다. 젊은 시절 나의 정치무관심은 이해가 가지만 50-60대에 들어와서도 변치 않았던 것은 나도 놀란다. 하지만 정치와 나이는 조금 비례 관계가 있는가? 이제 조금씩 ‘ political actor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을 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작년 말의 미국 Trump disaster이후에 더 그런데 왜 그런가? 결론은 근래 미국과 유럽의 추세가 extreme and populism 의 전성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9/11  이후 미국 정치철학의 극단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아 왔고 그 결과가 monster Trump를 탄생시킨 것. 

‘우리세대의 대통령’ 박정희. 그의 딸 박근혜가 그런 모습으로 사라진 것으로 이제는 ‘우리 세대의 모든 것이 사라졌구나’ 하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요새 그곳 정치인들을 나는 전혀 모르기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세대적인 세계관’ 을 따라 그들을 평가하는 정도. 모두들 ‘문재인이 되면 큰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다. 뭐가 큰일인지는 간단하다. 그가 빨갱이라는 것, 그것 하나였다.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잠에서 깨는 나에게 그 말은 ‘올바른 판단’ 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의 선택은 ‘정당한 선거에 의해서 뽑힌’ 그를 인정하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제발, 제발.. 북쪽에 일방적으로 ‘퍼다 주는 인상’만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싸~늘~ 한 5월 초, 성모의 밤

¶  싸늘한, 아니 아예, 이른 봄의 꽃 시샘 추위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5월 달 첫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는 급히 ‘강제로’ 70도에 hold했던 2층 thermostat로 말미암아 central heating 이 밤새도록 ‘겨울의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웬만하면 bed blanket warmer로 견디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층 small bedroom 구석에서 3주 째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5마리의 kittens들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히 이런 ‘추위’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주일들, 초여름의 끈끈함을 느끼게 하는 ‘무더위’의 맛을 보여 주더니 역시 자연은 공평한 것인가.. 기억 속의 5월, 언젠가는 이렇게 unseasonable 한 음산한 추위를 꼭 보여 주었다. 역시 한치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성모성월의 벽두에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하루 종일 내리며 ‘5월의 추위’ 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주에 그렇게도 덥게 느껴지던 날 올 처음으로 아래층 마루 아래  crawlspace에 들어갔다가 central furnace의 pilot light를  아예 꺼버리고 나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래층의 central heating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속단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설마 다시 추위 질까?’ 하며 그렇게 한 것인데 오늘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건 완전히 냉장고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kitchen에 남겨둔 toy같은 space heater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아마도 이번의 싸늘함이 올 여름 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 이제부터는 cooling system에 온통 신경이 쓰일 계절이 아닌가? 아~ 이제는 우리의 ‘고철’ a/c (air conditioner)가 올해는 무사히 견디어 줄까.. 하는,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자괴감에 젖는다.

 

¶  레지오 피정, 성모의 밤: 2017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주관  2일간의 ‘연’ 피정이 숨가쁘게 바쁜 스케줄로 피곤한 우리를 맞이했다. 한 동안(1~2 년간?) 피정이란 곳에 못 가보아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난 4~5년 동안의 내가 가보았던 레지오 피정의 느낌들이 만족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본 것들은 대부분 ‘집을 떠난, 진짜 피정’ 들이었지만 이번은 본당에서 하는 ‘편하지만.. 느낌이 덜 한’ 그런 것이고 이틀 째 날의 스케줄은 조금은 아찔한 것. 아침부터 밤 9시를 넘어가는 숨이 찬 하루였다.

피정 둘째 날의 그 바쁜 스케줄은 사실 피정과 상관없이 본당의 다른 행사인 ‘성모의 밤’ 이 저녁 늦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꼭 참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비교적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안동교구 정희욱 ‘원로사제’ 신부님이 주도한 피정 자체는 첫날밤의 slow start로 조금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끝 마무리가 활기에 찬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grade B+ 정도는 될 것이다. 내가 본 이번 피정 강론의 문제는 이것이다. 성모신심을 ‘체험’으로 강조한 것은 만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깊이가 결여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성모신심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일반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에게는 잘 맞는 정도의 message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이런 정도의 신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피곤한 긴 하루를 마감했던 ‘성모의 밤’.. 이것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의 밤.. 작년 같이 성모동산 앞 주차장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실내인 대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가 정확히 예고한 대로 부슬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랜 만에 들어보는 ‘생음악’, GounodAve Maria, violin 연주(piano와 duet) 는 성모님의 청순함을 아낌없이 느끼게 하는 그런 연주였는데 그 violin 자매님, violin연주의 ‘백미 白眉’를 들려준 것 같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이재욱 요한 본당신부님의 모습도 좋았고, 성모님께 바치는 ‘시적인 글’도 너무나 좋았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참여하여 우렁차게 바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평소에 하던 때의 느낌을 훨씬 넘는 그런 장엄했던 것. 레지오 연피정 주제인 ‘성모신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성모의 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피조물, 성모 마리아’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음미하여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베로니카, 2주기

2014년 온 세상이 찬란한 amber color로 변해가던 깊은 늦가을 우리와 첫 인연을 맺었던 베로니카 자매님이 하늘로 떠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 바로 오늘 5월 2일이었다. 첫 해는 그런대로 길기 느껴진 세월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무섭게 빠른 세월을 맞을 것이다. 그러면 기억도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떠나신 돼지띠 동갑 배 베로니카 자매님..  만난 지 비록 반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진한 만남들을 경험하였다.

오빠와 동생들의 염원을 따라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으로 병상에서 세례까지 받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한 자매님, 올해도 우리는 자매님의 공원묘지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두 아들이 함께하지 못 하였다. 양친을 2년 만에 모두 잃은 외로운 형제 아드님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의 희망은 언젠가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찾아 성당에 나오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현 시점에서는 tall order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1st of May, 2017

2017년 ‘우리들의 5월 1일’이 되었다. 친구들이여, 지난 한해 잘 살았던가? 아니.. 큰 변화는 없었던가? 창희는 물론 교회를 맴돌며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을 것 같고, 용현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전혀 idea가 없구나. 나와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살았던 듯하다.

우리들의 5월 1일은 어제였던가? 아마도 1970년부터 1973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경제발전의 서막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들 모두 생의 진로를 놓고 방황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잊고자 발버둥 치지 않았던가?

당시에 느꼈던 우리들의 세상은 아무리 아무리 하늘이 어두웠어도 그 저쪽에는 밝은 태양이 맴돌고 있었지 않았던가? 젊음의 선물인 ‘이유 없는 희망’, 바로 그것을 우리들은 만끽하며 길게만 느껴지던 몇 해를 보냈지.

그 ‘어린’ 나이에 세계관이 변할만한 신앙을 찾았던 창희, 당시에 ‘우리 들’은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었다. ‘신나고 멋지게 오래 오래 살자’ 가 전부였던 나이였기에 ‘죽음’의 세계는 우주의 저~ 편으로 느끼던 20대 초.. 그런 느낌의 세월들이 우리들의 5월 1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거의’ 사라져 가고 있구나.

비록 3총사가 뿔뿔이 흩어져서 소식도 모르며 숨어 살고 있지만 이런 추억으로 인한 꿈속의 세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구나. 이런 pace로 세월이 흐른다면 이제는 서로 죽는 날도 모르고 뜨겠다는 자괴감에 젖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제나 작은 기적이 있다는 경험을 가지며 살고 있으니까.. 내년 5월 1일, 다시 보자.. 멋진 친구들이여!

 

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Mass, romantic..

몇 년 전부터인가.. 내가 YouTubeVatican programming을 보기 시작한 것이.. 최소한 2~3년 정도는 되었지 않았나? 처음에는 중요한 행사, 그러니까 시복, 시성식 같은 것 아니면 가톨릭 전례력으로 아주 중요한 날들,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것을 high definition video로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자랑 삼아(주로 Facebook-type people)’ 하는 부류들은 분명히 그런 때마다 Vatican city로 날라가서 현장의 분위기를 만끽할 것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재력$’이 없기에 YouTubeVatican streaming video를 감지덕지 感之德之 하며 머리 숙여 감사할 따름이다.

Italy 동북부의 소도시, Carpi 본당 앞 piazza 에서 거행된 교황집전 미사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고 생소하기도 했던 교황님 집전의 Latin Mass들이 이제는 거짓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하나도’ 짐작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그냥 몇 년을 ‘계속’ 본 탓인지는 몰라도 짐작으로 ‘거의 다’ 이해를 하게 되기도 했다. 반세기 전에 그 잘 나가고, 알량한 WordPower라는 책으로 영어단어들의 역사와 어원을 따지며 공부했던 그 말들, ‘배움의 위력’을 유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배워두어서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현대 영어는 물론 Latin어에서 나온 다른(나라) 말들, 짐작으로 거의 때려 맞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의 매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교황 Francesco

 

대부분의 Vatican video programming들 중에서 가끔 ‘생소’한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오늘의 주제인 romantic mass가 그 중에 하나다. 교황님, 가끔 (아니면 자주?) Italy 국내의 성당들을 방문하곤 하시는데 그 중에 조그만 본당들도 있다. 2017년, 4월 2일에 방문한 곳 Carpi 라는 도시의 본당이다. 이 ‘사목적 방문’의 이유는 지진에 의한 고통을 위로하시러 가신 듯하다. 지진으로 무너진 본당의 건물이 다시 세워진 것에 맞추신 듯 한데 확실한 것은 모른다.

 

 

그 때 찍은 ‘공식’ video, 누가 찍었는지 ‘참으로 멋진 coverage’라고 감탄을 했다. 처음에는 무심코 생소한 것을 본 듯이 보았지만 두 번째 보게 되었을 때는 더 자세히 그곳의 풍경,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조그만 도시라서 그런지 그곳의 사람들, 신자들 보통 생각하는 ‘멋진 이탈리아 fashion‘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평범한 소도시의 simple 가톨릭 신자들.. 어쩌면 그렇게 소박, 경건하고도 생동감 있는 미사를 드리던지..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의 교황님을 중심으로 그 많은 사람들 혼연일체가 된 모습들.. 인상적이었다.

 

 

더 나아가 이 미사의 video를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된 이유는 조금 우스운 것인데.. 성가대의 어떤 젊은 여성 lead singer의 모습 때문이었다. ‘서양여자’의 나이는 조금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이 여성은 쉬운 case로서,  아마도 upper teen 아니면 early 20s  나 되는지.. 나이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요즈음 정말 오랜만에 성형왕국 대한민국의 수 많은 똑같은 복제품 같은 여성들에 비해서, ‘칼을 대지’ 않은 ‘처녀성 얼굴’이었고, K-pop 가수들처럼 100% artificial 한 화장기가 전혀 없었던 바로 그 얼굴..  거기다가.. 그 청순하고 단순한, black gospel song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전통 가톨릭적 음성의 정수 精粹 를 보여주었다. Romantic한 감정까지 느끼며, 이런 저런 생각의 끝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손녀 같은 나이의 이 여성에 맞는 나이였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런 ‘찬사’가 그대로였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것이 나이 듦의 비밀일 것이다.

 

 

심지어 ‘야릇한, romantic’한 감정을 갖고 교황님 미사를 ‘경청’하면서 이 programming을 찾고, 보고, 느끼게 되는 것, 전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요새는 모두 그런 식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지 않을까… 필연적인 것은 아닐까? 그러면 그 필연의 first mover는 과연 누구일까? 이래서 인생의 황혼기도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한 것이 아님을 실감하고, 또한 그저 감사,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