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촉촉한 단비를..

아~~ 4월도 20일이 되었는가.. 어제가 4.19 사일구 아~~ 내가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 때.. 가 이제 56년 전이었다니.. 너무하다 너무하다.

요새 습관이 된 듯한 ‘작년의 desk calendar’를 쉽게 보는 것.. Holy Family 성당 에서 준 조금은 ‘조잡하고 간단한’ 달력,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달력이고,  한반도에서 나온 달력이 오히려 이상하게 복잡하고 비싼 것이다. 좌우지간 그것을 나의 daily journal로 쓰기 시작한 것이 3년 째.. 몇 년 전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은 레지오 수첩과 더불어 이것이 생명선이다.

‘고물’ Android Samsung smartphone의 camera record도 다른 중요한 나의 인생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calendar와 더불어 나는 근래 몇 년간의 삶의 모습은 그런대로 기억을 하며 살게 되었지만.. 과연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내가 조금은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쪼잔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모른다.

작년의 camera picture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비가 쏟아지는 날 front door에서 찍은 것.. Tobey가 밖을 보며 평화스럽게 누어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나를 그렇게 ‘천국’에 있게 하는 것인가. 4월의 모습이, 이상적인 4월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제발 잔잔한 비여.. 나를 다시금 즐겁게 만들어주라!

찐한 extreme peace를 가끔 경험하는 요새.. 비록 식사시간이 괴롭긴 하지만 (my tooth, my tooth!) 이것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살게 되었다.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평화를 지키고 싶다. 왜 평화가 우리 집에 왔을까? 우연일까? 물론 이제 생각에는 ‘아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모든 곳에 내리는 절대자 주님, 하느님의 자비의 비를 나는 조금씩 맞으며 느끼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그곳으로 돌리니까 보이며 그 단비를 맞게 된 것이다.

3월 달의 보나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은 참 역사적인 것이다. 주위의 ‘귀여운’ 자매님 천사들과 같이 기도하며 정성을 들여서 보나 자매님을 천국으로 보내는 그 과정.. 당시에는 바쁘고 슬프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잔잔해진 시간에 생각을 한다. 비록 하느님을 맞는다는 자세로 가진 않았지만 그것이 큰 상관이 있을까? 그 자매님 우리를 고마운 심정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도 정성을 다 했으니까.. 여한이 없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작년 이맘때의 ‘사건’들.. 배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들이 달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참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의 불쌍한 영혼들을 보았지만 그것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한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나와 연숙이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 어떨까.. 지나친 자부심일까?

그제, 새로니가 school break에 우리 집에 왔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나는 항상 걱정을 하는가.. 조금은 불안한 심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나가 소심한 탓일 것이다. 어찌 우리 딸이 오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가? 조금은 성숙한 새로니.. 아직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를 계속하지만.. 그래도 그날 새로니는 나의 99점을 받는 시간을 보내 주었다. 우리 차도 ‘정성스레’ 닦아 주었고, Einstein Bros의 lunch 와 wine과 함께..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제사정’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조언을 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엄마와 같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이성적이고, 솔직하게’ 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 아니면.. 성모님.. 우리 어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19 아침인가..

아침에 달력을 보니 4월 19일.. 화요일, 물론 4.19라는 숫자는 56년이나 지났어도 어제처럼 느껴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만큼 비록 세월의 깊이에 맞게 뇌의 깊숙한 곳에 잠겨있어도 아주 ‘큰’ 세포에 간직된 것이라 그럴 것이다. 그리고 화요일.. 이었다. 1960년의 4월 19일도.. 99% 화요일이었다는 기억. 5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을 함은, 그 세월이 그렇게 역사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긴 세월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 일제 36년, 유럽의 100년 전쟁.. 등에서 느꼈던 그 햇수는 너무도 길었던 것이지만 내가 이런 56년을 어제처럼 기억하게 살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도 짧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등골이 오싹한 것이다.

'전투' 대학생, 고대 형님들의 절규의 함성, 국회 의사당 앞에서

‘전투’ 대학생, 고대 형님들의 절규의 함성, 국회 의사당 앞에서

당시의 데모 열기 함성과 카빈 소총 소리, 어는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수 많은 군중들.. 그렇게 찬란한 4월의 계절은 소음과 정적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새카만 교복의 물결, 심지어 대학생 형님들까지도..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뛰고, 트럭을 타고, 소방차를 타고 서울의 중심가를 돌고 도망가고 숨고 쓰러지던 그 때.. 모습들.

우리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공격을 받던 날 우리 중학교 1년생의 혼란한 심정.. 누가 누구를 쫓아가고 쫓겨가던가.. 누가 우리의 역적이던가? 우리들은 그저 놀란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들려오던 요란한 카빈 소총 소리들.. 종로 경찰서 지붕에 설치된 만화에서만 보던 ‘기관총’들.. 곧 이어 아스팔트 길에 우람한 바퀴자국을 내며 웅장하게 들어오던 탱크의 무리들.. 4월 달.. 4월 달 ,1960년의 찬란한 꽃이 만발하던 4월 달이었다.

쓰러진 형님, 누나들.. 그렇게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우던 그들.. 지금은 다 어디에 가셨는가? 그들은 과연 그들이 싸우던 목적을 이루며 살았던가? 혹시 그들도 나중에는 ‘역적’들과 같은 무리를 닮아가지는 않았던가?

 

Axis of Power, 권력의 축: 이승만, 프란체스카, 이강석, 이기붕, 박 마리아

Axis of Power, 권력의 축: 이승만, 프란체스카, 이강석, 이기붕, 박 마리아

이승만, 이기붕, 이강석, 프란체스카, 장면, 윤보선, 허정, 그리고 장도영, 박정희..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억의 열차에 남았던 역사 속의 그들.. 모두 어디에 있는가? 젊으셨던 우리 어머니, 그래도 이승만의 잘못을 지적하시던 지성을 가지고 침묵으로 우리를 가르치셨고, 우리는 아직도 그 말의 뜻을 새기고 감사하며 산다. 역사는 돌고 돌지만 그것에서 배우고 최소한 되풀이 하지 않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기에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2016년 4월 19일, 싸늘한 아침에 머리를 맴도는 넋두리, 이렇게 정리를 하지만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음을 안다. 그것이 정상이다.

J. Christopher, Curia Monthly

J-Christ-1

 

¶  J. Christopher’s, Expect the unexpected: 2016년 4월 11일 월요일, Monday morning stress (even disease), 이제는 거의 잊고 살게 되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 그 ‘싫은 월요일 아침’,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Monday Monday..

허.. 4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돌진? 점점 weekly routine이 고정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다른 쪽을 생각하면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위안감도 없지 않다. 무언가 폭풍우가 지난 후의 평온 감이라고나 할까..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게 피로하고 낮에도 잠이 쏟아지고 몽롱한 느낌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보통 이른 봄에 느끼는 그런 것이겠지 했지만 오늘 확실한 증상을 잡았다. ‘미열’이 느껴지는 것이다. 머리가 아뜩아뜩한 것도 그것이 이유였다. 그러면 왜 ‘미열’이? 99% 이것은 감기나 몸살 나아가서 독감의 초기증상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전혀 깨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월요일 regular workout day 의 routine인 Sonata Cafe snack 준비로 시작해서 아침 미사 (along with the Miraculous Medal novena), 엘 갔었다. 미사가 끝나면 곧바로 Sonata breakfast snack을 먹고, YMCA workout을 하게 되는데.. 오늘은 예외가 생겼다. 같은 구역, 엘리사벳 자매가 자기 남편이 (외국에서) 잠깐 들리러 왔으니까 아침을 같이 먹자는 것.. 근래 morning daily mass regular가 된 크리스티나 자매까지 해서 오랜만에 남자가 하나 더 늘어난, 5명이 우리는 처음 가보는 J. Christopher breakfast & lunch 란 곳에 가서 찐~한 구수한 내음새의 coffee를 ‘무한정’ 즐기며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 집 바로 근처에도 있는 J. Christopher’s, 처음에는 Panera Bread 가 없어진 이후로 우리의 regular place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던 곳인데 이번에 와 보게 된 것이다. ‘색다른’ 곳으로 연상을 했지만, 물론 McDonald’s 와는 ‘차원’이 다른, 대부분 menu가 under $10 정도로, 얼마 전에 없어진 Einstein Brother’s 와 비슷한 model 인 곳이었다. 이 정도면 McDonald’s를 대신해서 더 자주 들려도 될 듯하다.

여기서 마리에타 2구역의 현황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듣게 되었다. 결국 공식적으로 구역이 2반으로 나뉘고, 기준은 전에 제안이 되었던 zip code에 의한 것, 처음에는 예외를 둔다는 정도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특기사항은 과연 어떤 누가 어떤 ‘반’으로 갔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평소에 같이 buddy-buddy 모이던 사람들끼리 같은 ‘반’에 모이게 된 것이고 그것이 사실 대부분이 원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그룹의 ‘덩치’가 반으로 줄어들어서 모이는 것이 쉬워지고 food, parking etc, 더 이상 분열되는 동기도 줄어들고, 한마디로 자연적인 해결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런 변화가 훨씬 전에 시도가 되었으면 여러 가지 불필요한 소음과 불미스러운 소문들이 훨씬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Legion-1

 

¶ Curia Monthly Sunday, 꾸리아 월례회의: 어제는 모처럼 (나로서는 3주 만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를 참례하게 되었다. 부활절 미사는 나의 불찰로 빼먹었고 (고해성사 깜이다!), 지난주 주일 미사는 ‘모처럼’ Holy Family 성당으로 갔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일 business 이 없으면 ’15분 drive 거리, 정든 동네성당’, Holy Family 로가는 것이 rule이 되었지만 통계적으로 한 달에 2번 정도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주일 미사엘 가게 되니까 그런대로 우리는 공평하게 반/반으로 미국/한국 성당 주일미사 참례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 참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차피 우리는 bi-cultural 환경으로 오래 살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역시 편한 것이다.

어제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 간 것은 물론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Curia 월례회의가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 월례회의도 레지오 간부들 의무 중에 으뜸이기에, 잠재적으로도 ‘절대로 가는 것’이 rule이 되었다. 이제는 이 월례회의에 출석하는 것, 익숙해졌고, 나아가 편해지기도 했다. 그만큼 그 동안 (거의 3+ 년?) curia business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월례회의에 가보면 요새 사회적으로도 ‘남자들의 신세’가 어떤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평의원 중에 눈에 뜨이는 ‘형제’님.. 거의 없을 정도다. 역시 이곳에서도 나는 좋건 싫건 간에 ‘꽃 밭’에 앉아 있는 셈이다. 이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외로운 느낌이 없는 것도 아니다. 1년 전만해도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가 항상 이곳에 버티고 있어서 반갑고, 덜 외로웠다. 다른 형제님, 한때 노래도 같이하며 알고 지냈지만 이곳에서 다시 보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역시 mutual interest 가 별로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1시간 반 정도의  ‘월례회의’는 사실 우리 본당 레지오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평의회, council ‘로 사실상 레지오의 ‘정부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power와 responsibility가  큰 것이다. Rules & regulations 같은 것보다는(그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활동의 예와 모범case’를 이곳에서 나누며 ‘배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회의를 끝내고 나오며 이런 아쉬운 감을 떨칠 수 없다.

싸늘한 4월 초에..

glorious April rain showers..

glorious April rain showers..

싸늘한 4월 초순..  재 빠르게 우리를 떠나려고 한다. 계절적인 날씨에 조금은 둔감해지려고 노력을 한 덕분에 요새는 날씨가 주는 감상적 말에도 둔감해진 듯하다. 하지만 다시 절감한다. 날씨가 우리의 ‘많은 것’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나의 지나간 blog을 가끔 보면 ‘날씨’라는 tag을 포함한 posting이 꽤 많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월의 날씨는 한 달이 지나갔어도 머리 속에는 ‘거의 미친 3월’로 남는다. 3월 중순 쯤 일 주일이 훨씬 넘는 끈적거림의 ‘불쾌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밤에 잘 때 보이지 않는 ‘여름 잠옷’을 찾는 고역을 겪었던 기억.. 이런 날씨가 3~4일 정도라면 ‘정상’이지만 이건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 속에 기억 된 ‘4월초의 찬란한 싸늘함과, 4월 말의  소리 없는 Spring Rain’을 그리곤 했다. 또한 April Showers Bring May Flowers..라고 종알대던 어렸을 때 우리 딸들도 연상을 하곤 했다. 그러면 99% 나의 불쾌함은 멋지게 사라지곤 했다.

그리곤 영락없이.. 왔다.. 4월 초의 청초한 싸늘함.. 거의 빙점 near-freezing 까지 떨어지는 ‘멋진 4월’을 현재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구석으로 밀려난 space heater가 다시 반갑고, desk 밑에 아직도 있는 electric foot-warmer가 어찌 그렇게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질까?

계절 곳곳마다 흠뻑 젖어있는 각종 좋건 나쁘건 간에 추억들의 각각 페이지들을 ‘원하기만 하면’ 들춰볼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노년만 가질 수 있는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부터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나이가 먹는다는 것..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 우습기만 하다. 이런 것들이.. 전에는 거의 느낄 수 없었던 ‘황혼기’의 즐거움이다.

 

4-gallon pancake..

4-Gallon, 125 PSI Pancake Compressor, Harbor Freight, Central Pneumatic: Model 38898:

pancake-comp-1내가 가진 tool 공구들 중에 나를 제일 자랑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이 air compressor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각종 air tool들을, air hose로 끌고 다니며 pro같은 소음을 내는 것..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 동안 나를 즐겁게 해 준 것은 바로 Harbor Freight (a.k.a., Chinese made)의 4 gallon pancake모양의 아주 귀여운 물건이었다. 50 pound정도의 무게도 편하지만 4-gallon tank size는 내 정도의 수준에는 사실 과분할 정도인 것이다.

제일 큰 job은 framing nail gun을  쓸 때인데 큰 무리 없이 ‘아주 긴’ 못들이 잘도 lumber에 꽂히곤 했다. 간혹 tire에 바람이 빠질 때 이것으로 즉시 해결이 되었고, 가끔 녹슨 bolt/nut도 impact wrench로 쉽게 빠지곤 했다. Flooring을 할 때 base-trim, moulding같은 것 이것을 실내에 놓고 brad-nail-gun을 쓰면 ‘순식간’에 끝난다. 

이렇게 나를 잘 serve해 준 이것.. 얼마 전부터 어딘가에서 ‘바람이 새는’소리가 나더니 결국 tank에 air가  남기도 전에 다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큰 고장인가.. 고칠 수 있는 것인가 하며 이것을 산 날짜를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2006년 6월이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10년을 쓴 것이다.

아무런 문제없이.. ‘짱 깨’들의 제품이 그 값에 그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재수가 좋았던 것일까? 하긴 버려도 아깝지 않다고 체념을 하는데.. 생각을 해 보니.. 바람이 새는 곳이 ‘속’이 아니고 바깥의 어떤 plastic tube connector쪽이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compressor pump자체나 electric motor가 아닌 것이다. 아하~~ 버리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이 서고.. 즉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떨지.. 이것이 성공하면 최소한 $50은 save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Sonata Cafe

소나타 카페, 내가 ‘명명 命名’한 이 말, 단어가 지금 생각하니 아주 멋진 말이 되었다. 여기서 Sonata란 것은 2009년 가을부터 우리의 든든한 발 足이 된 Hyundai Sonata 를 말하고 Cafe는 글자 그대로 ‘간단한 snack 정도를 음료와 함께, 이야기 하는 장소’ 를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 차 Sonata에서 무언가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 된다.

2009 Hyundai Sonata, 4 doors sedan

2009 Hyundai Sonata, 4 doors sedan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우리 둘 다 확실히 기억을 못하지만 ‘아마도’ 2년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문제는 아침에 운동을 하러 YMCA를 갈 때 아침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아침 미사가 9시에 시작이라 미리 먹고 갈 수가 없고, 미사가 끝나고 집에 다시 와서 아침을 먹고 YMCA를 가려면 너무나 늦는다. 제일 좋은 것은 미사 후에 어떻게든 아침을 해결하고 YMCA를 가는 것이다. 오래 전에는 간단히 아침을 먹는 곳이 근처에 있었다. Panera Bread 가 있었을 때 그곳은 단골이었지만 없어진 지도 수 년이 넘는다. 다른 곳, Atlanta Bread Company가 있었지만 그곳은 아예 문을 닫았고, 새로 생긴 J. Christopher’s란 곳이 아침 점심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만 우리와는 class와 flavor가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라 아예 생각도 안 했다.  물론 McDonalds 는 갈 수가 있겠지만.. 글쎄 그런 것을 먹고 바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idea, 아예 집에서 먹던 아침 menu를 조금 간단하게 ‘싸 가지고 (도시락처럼)’ 차에서 먹는 것은 어떤가? 내가 우리 집의 아침을 만든 지도 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눈을 감고도’ standard breakfast를 만들 수 있게 되었기에 도시락 style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더욱 간단하다. 삶은 달걀, 굽지 않은 ‘식빵’에 적당히 creamy butter와 strawberry jam을 바르고, banana, tomatoes같은 fruit을 넣고, drip/pour-over coffee를 보온병에 부으면 끝이 난다.

실제로 미사 후에 우리 차에 앉아서 이 ‘값싼 아침’을 먹는 맛과 멋이 not bad!  이때 듣는 ‘차동엽 신부님‘의 성경강의 같은 것이 더욱 cafe의 분위기를 격조 있게 만든다. 우리의 오랜 ‘동네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East Cobb의 노란 자위 넓은 공간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기에 그 속에서 아침을 먹는 것.. 사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과 꽃, 새들.. 이것보다 더 낳은 아침 식사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시작되고 굳세게 계속되는 Sonata Cafe.. 과연 언제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도적으로 그만 둘 의향도 거의 없다.

Divine Mercy, Harbor Freight

Divine Mercy.. 하느님의 자비.. 작년 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께서 자비의 희년, Divine Mercy Jubilee year를 선포한 이후 ‘하느님의 자비’라는 말을 참 많이 듣게 되었고, 급기야는 ‘자비의 주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사실 자비의 주일 Divine Mercy Sunday는 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St. John Paul II께서 2000년 부활절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폴란드 출신으로 성인 품에 오른 성녀 파우스티나 께서 생전 1930년대 에 개인적으로 발현하신 예수에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주위의 의심과 질시를 견딘 그녀가 남긴 일기 ‘자비는 나의 사명’에 그 예수발현과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만 그녀 생전에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고 살아 남는가.. 그녀의 ‘동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끈질긴 노력으로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었고 세월이 갈 수록 이 ‘자비의 신심’ 열기는 높아만 가고 있고 현 교황은 급기야 ‘자비의 해’까지 선포를 한 것이다.

오늘 Vatican YouTube를 보니 자비주일의 ‘전야’라고 할 수 있는 성대한 기도집회가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것을 본다. 엄청난 군중이 그곳에서 성녀 파우스티나를 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한다. 하느님의 자비란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하면 ‘사랑’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에 비한 것일까.. 하느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낸 자비심을 보여주신 것일까? ‘자비는 나의 사명’이란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를 보면 하느님의 자비는 원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한다. 이것도 은총의 하나일까, 아니면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일까? 그러면 예수님 부활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자비의 극치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구약시대, 유다인들에게 그렇게 무섭던 하느님이 어떻게 예수시대에 와서 자비의 하느님으로 변하셨을까..

 

¶  오늘 아침에 벼르고 벼르던 shopping을 ‘혼자서’ 하였다. 오랜 동안 Internet으로 shopping을 했던 tool retailer, Harbor Freight Tools, 몇 년 전에 서서히 이곳에 하나 둘씩 retail store가 생기더니 요새는 엄청난 기세로 이곳 저곳에 생기고 있는 ridiculously ‘low’ price tool retailer, 이곳은 사실 나를 ‘살려준’ 곳이다. 이곳이 없었으면 나는 pro들이 쓰는 tool들 하나도 못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짐작에.. 어떤 Asian immigrant가 Chinese source와 ‘결탁’해서 직수입한 junk tool들을 파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물론 99.9999% Made in China는 분명히 맞지만, 우려한 대로 직수입해서 그대로 파는 방식이 아니고 이곳에 따로 Quality control 을 책임지는 lab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품질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Owner도 white 미국인이지만, Home Depot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싼 것이 좋은 것‘이란 철학으로 밀어 부치는 경영철학.. 싸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것.. good enough.. 철학이다. 사실 Home Depot에가서 쓸만한 tool들을 보면 눈이 나올 정도로 비싸기만 한다. 전통적인 미제 품질을 고수하기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들.. pro들 에게 좋지만 weekend handyman같은 사람에게는 overkill인 것이 태반이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weekender 나 조금 돈이 없는 pro들을 겨냥한 것이다. 얼마 전에 드디어 고장인 난 (바람이 새는) 4-galllon air compressor를 대신한 것을 찾던 차에 오늘 가서 직접 만져 보기도 하니 참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Internet으로 order하면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이곳의 위치가 사실은 편한 곳이 아닌 north Cobb, Kennesaw 라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오늘 가서 본 인상이 괜찮아서 급하고 덩치가 큰 것들은 이곳에 와서 ‘만져보고’ 살 생각도 했다.

feast of flowers

내가 예전에 알았고 사귀었던 그 모두들 어디로 갔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특히 그들이 완전히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모두들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나에게 보이지 않게 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 그들이 나의 옆에 없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이다. 이것은 Charles Dickens의 holiday classic, A Christmas Carol 에서 Scrooge가 Spirit of Christmas Past를 따라서 자기의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이라고나 할까?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사실 모두들 그런 경험을 조금씩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은 역사 고금을 통해서 짧지 않은 과거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라면 다들 겪을 듯 싶지만 나는 더 예민하게 느끼는 모양인데 이런 경험과 생각들이 때로는 아주 괴롭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과 비슷한 ‘내용,가사’를 가진 folk song이 있다. 그것이 바로 Pete Seeger의 1960년대 초 hit song인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이란 노래다. 처음에 2절이던 곡이 나중에 3절이 더해져서 무려 5절이나 되는 긴 노래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구성’이다. 처음에 flowers로 시작되어 마지막도 flowers로 끝난다. 그 동안 이 flowers가 주인을 옮기는 과정이 5절에 걸쳐 나온다. 처음에 flowers가 young girls로, young girls가 husband(man)로, husband(man)이 soldiers로, soldiers가 grave yard로, grave yard가 결국 flower로 돌아온다는.. 불교의 윤회설을 연상시키는, 인생의 여정을 생각하게도 만드는 곡으로 1960년대에는 월남전과 어울려 반전 反戰 곡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불후의 classic이 되었다.

내가 이 곡을 알게 된 때도 바로 1960년대의 war protest song 시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pop chart에 올려놓은 Kingston Trio의 경쾌한 곡으로 들었지만 나중에 이 곡의 원조인 Pete Seeger의 banjo 반주로 된 것을 듣고 역시 그의 것이 이 곡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수 많은 국제적인 가수들이 불렀고 record로 취입을 했다. 그 중에도 Johnny RiversSearchers 것은 완전히 Go go style로서 옆에 있으면 춤이라도 추어야 할 듯하게 경쾌하기만 하다. 나머지 것들은 그 가수 나름대로 ‘해석’을 잘 한 듯해서 모두 천천히 감상을 하면 이 곡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뽑으라면.. 글쎄 아마도 60년대 대표적 folk, rock stars 였던, Kingston TrioJohnny Rivers 가 아닐까..

 

 

 

 

 

 

 

Dark Easter

2016년 부활절, Easter day가 어둡게 시작되어서 어둡게 저문다. 요새 매일 틀리는 일기예보, 예보되었던 thundershower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조용한 이슬비가 간간이 뿌린다. 기후적인 느낌은 비록 완전한 봄의 것이지만 그 이외의 나의 모든 것들은 모두 아직도 끌려가는 듯한 겨울의 그것이다.

어제 늦은 밤까지 진행된 ‘피곤한’ 부활성야 Easter Vigil mass를 마치고 힘들게 집에 들어오면서.. 아마도 다음 날 아침의 ‘진짜’ Easter ‘main’  mass는 빠질지도, 못 갈지도 모른다는 쳐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기분이 현실이 되었다. 거의 10년도 넘게 처음으로 나는 ‘진짜’ 부활절 미사 참례를 못 한 것이다. 미안합니다.. 성모님, 어떻게 이런 일이? 암만 생각해도 이것은 추악한 것이다. 최고 내가 믿는 신앙의 절정의 시간이 가장 밑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오늘의 날씨와 같이 ‘어두운 부활절’을 남기고 간다.

무거운 성 금요일.. 어쩔까?

40일의 사순절 내내 잠재적으로 머리에 그려지던 광경, 성 목요일 최후만찬, 세족례, 뒤에 어두운 대성전에 앉아 새벽 1시나 2시까지 수난감실 성체조배 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 아니 우리의 모습들.. 어김없이 그 시간은 다시 우리를 찾아왔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Good Friday의 답답하게 쩨쩨할 만큼 조금의 비를 뿌린 대기는 답답한 느낌만 주며 다시 ‘더운’느낌을 예고하는 내가 싫어하는 시간을 예고한다.

지난 2년간의 이 성삼일은 너무나 fresh하고 holy한 느낌을 주었기에 올해는 은근히 기대를 너무나 하였는지.. 역시 expectation game에 내가 눌리고 지고 있는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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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성금요일 아침, 이날 새벽 1시~2시의 수난감실성체조배를 ‘무사히’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늦은 잠을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서 쓴 모양이다. 성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부활절 미사를 예상하며 쓴 글이었지만 끝맺음이 없었다. 올해는 이렇게 조금은 무언가 끝맺음에서 문제가 있는 모양인가?

이제 성삼일도 일주일이나 훨씬 지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3월도 지나고 4월이 넘어가고, 내일은 4월 3일 Divine Mercy Sunday까지 코 앞에 다가왔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놀라고 놀라고 놀란다..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68 마일의 시간 흐름인가.. 아니면 요새 나의 생활 style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나 정도의 인생을 살았으면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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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성삼일..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 사순절은 거의 매년 나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나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오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연숙이 한 말을 다시 음미한다. 나의 요새 모습이 오래 전에는 정말 기대할 수가 없이 살았다고.. 절망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사실 큰 기대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물론 기분이 좋아짐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도 이런 나의 현재 모습을 나의 지난 자신이 자꾸 보며 놀라는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릴 수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변할 수가 있었을까? 놀랍다. 놀랍다.

올해의 성삼일은 사실 성공작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 부활 성야미사 토요일 것..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미치게 화나게’ 만들었나? 우선 답답하고 숨막힐 듯 더운 공기, 성전이 그렇게 느껴져서 나는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오랜 미사는 은근히 예상은 했지만.. 나는 우선 답답했고..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요셉’이라는 남자.. 이렇게 표현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아니 그 인간은 나와 무슨 연고가 있는지.. 참.. 보게 된 세월도 꽤 오래 되었지만 어쩌면 그 ‘인상’은 그렇게 나를 차갑게 만드는 것일까? 좋게 생각하려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 ‘묘하게 차가운’ 느낌의 얼굴과 행동을 나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날 미사 전에 만났을 때의 무표정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표정은 아직도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오래 오래 전..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듯한 ‘꼰대’들의 모습을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성야미사를 나는 완전히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S 형제의 딸.. Mary .. 이미 나의 가슴은 닫히고.. 그 애의 무표정한 모습이 나를 다시 불쾌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날 밤 ‘작은 악마’에게 시달린 꼴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근세사 처음’으로 부활절 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반항적인 자세로 미사를 빼먹은 것이 끝내 나를 슬프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성모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Palm Sunday 2016

오랜만, 오랜만에 나의 electronic note인 OneNote를 연다. 지난 1월이 지나며 조금씩 note를 남겼지만 제대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거의 두어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이곳에는 unfinished bits of note들이 패잔병처럼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고, 흡사 한 달의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착각이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 무언가 무언가 많은 일들이 나를 지나간 느낌이지만 거의 정리가 안 된듯한 ‘따끈따끈’한 fresh한 것들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깜짝할 사이에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의 찬란한 꽃들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과, 2016년 부활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Palm Sunday도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Trump의 ‘ugly 머리통’이 보기 싫어서 dumb TV를 완전히 떠난 지도 꽤 되었다. 나의 피난처는 역시 다른 곳에 있는 평화로운 것이었지만 오늘 아침 아주 우연히 유럽의 CNN격인 France24를 엿보니 다른 세상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Brussels 의  terror attack news가 live로 나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terror’가 정치적으로 ugly Trump를 도와 줄 것이 분명한 이런 news는 나로 하여금 다시 dumb or smart TV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높은 진리’을 떠난 secular humanity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일들.. 어찌하여 그들은 모를까.. 답답하기도 하다.

안녕, 보나 자매님..

보나 자매님과의 ‘생각하기 싫었던’ 작별시간은 시계처럼 어김없이 왔고 사랑하던 가족, 열심히 보살피던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연도, 장례미사, 운구, 장지동행 등이 모두 큰 차질 없이 끝났다. 허탈감, 피로감, 아쉬움, 슬픔 등이 뒤섞였던 며칠이 오늘로 다 막을 내렸다. 끈질긴 기도와 몇 개월에 걸친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의 정성스런 방문도, 끊임없는 카톡의 chatter도 오늘로 다 끝이 났다. 또 한 명의 영혼이 저 세상, 하느님의 영역 domain 으로 간 것이다.

언제였나.. 약 1년 반 전 한참 찌듯이 덥던 한여름이었나.. 그 보나 자매님을 처음 만났던 것이.. 하 미카엘 본당신부님과 연숙이 보나 자매님 댁 병자성사 주러 처음 방문했었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의 비 非 규칙적인 봉성체 방문이 시작되었다. 병자같이 않게 항상 재잘거리고 명랑하고 지나치게 순진하게만 보이는 ‘젊은’ 자매님이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치명적’인 두 가지 병고를 10년도 훨씬 넘게 짊어지고 살았는지 솔직히 상상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들의 견디기 어렵게만 보이는 간병 노고도 너무나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런 상황,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어떨까? 자매의 남동생까지 몇 년 전에 병으로 타계를 했다고 들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어머님이 계시지만 가까이 살지를 못해서 그저 전화만 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든 간병은 남편 형제님과 남매 자녀가 운명처럼 여기며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욥기가 생각이 날 정도로.. 왜 이 영혼들에게 이런 고통이 왔을까..

이 요한 본당신부님의 push로 레지오에게 정기 환자 방문 ‘도우미’ group이 3개월 전에 구성된 이후 운명하던 날까지 매주일 2~3회 ‘도우미 자매님’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말동무와 간단한 식사 등을 보살펴 주었다. 금전적인 도움이 금지된 레지오의 봉사는 아무래도 ‘신앙대화’, 그러니까 영혼을 간호하며 돌보는 일인데,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 자매님.. 절대로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언급이나, 대화를 못했던 것이다. 조금은 예외적인 case라고도 생각이 되었지만, 생각을 해 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쉰 살도 안 된 나이에 쉽게 죽음을 대할 용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저 세상,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런 approach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 기회가 되기도 했다.

거의 단장 급의 간부 자매님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모두 다른 인생, 다른 기술, 다른 성격을 가진 관계로 항상 매끄러운 teamwork은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참 ‘멋진 노력’을 했다고 나는 보았다. 운명 시에 신부님도 재빨리 모셔와서 보나 자매님 정식으로 사제의 전대사를 받으며 평화스럽게 임종을 했다 (우리는 traffic jam에 길이 막혀서 2시간 뒤에나 도착을 하였지만.) 관심을 많이 쏟으신 관계로 신부님의 ‘다정스런’ 장례미사도 잘 끝날 수 있었다.

오랜 기간을 예상할 수 없는 중병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느끼는 것..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놀라움.. 암만 짐작을 해도 누가 운명의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표정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노력은 참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주위의 가족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어쩔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동안 정이 들었던 자매님.. 숨겨놓은 눈물을 더 이상 감출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자매님의 영혼, 평화로이 받아주소서..

 

 

Nearer, My God, to Thee – André Rieu

 

야~~ 미치겠다..

십 년도 넘는 옛날 한국드라마를 보던 때,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 프로그램을 본 당시.. 어쩌면 그렇게 옛날과도 같을까? 나는 그런 것들을 완전히 지난 10년도 넘는 세월을 그렇게 살았구나.. 하지만 그것이 point가 아니다.. 그 드라마에서 한 남자가.. ‘야~~ 미치겠다~‘ 하고 절규를 하던 그 모습과 언동이 현재 나의 심정과 잘 맞기에 그것을 기억한 것이다.

정말.. 정말.. 이런 때가 싫고 싫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면 인생은 이런 것들을 겪는 것이 정상이라는 위로 같은 생각. worst scenario가 현실화 되었다. 내 몸의 한 부분처럼 굳어진.. proxmox ve가 드디어 crash한 것이다. 내가 거의 ‘매일’ 쓰고 있는 몸의 일부분 같은.. kvm-vista, kvm-xampp, 그리고 piaf (pbx in a flash) home pbx.. 이것의 중요성은 이것이 진짜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기 보다는 ‘무의식’ 중에 이것이 몸에 배었다는 사실이다.

Virtual Machine의 마력과 매력에 흠뻑 젖어 살아온 지난 10여 년이었다. 나의 technical showmanship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이것들은 나를 지탱시켜 주었던 practical toy들이었다. 이것과 싸우고 어루만지고 시간을 죽여주었던 멋진 것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것이 all stop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것과 씨름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에 내가 완전히 의존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단순히 살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것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간단히, 단순히 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에게 주는 기쁨과 보람 또한 쉽게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pc box가 하나씩 하나씩 망가져가며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그런 iron box에 시간을 쏟고 돈을 쏟고 있는 것.. 성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것들.. 과연 세속적인 것일까요? 이런 것들이 성모님의 사업에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요?

Jubilee of Mercy at Monastery

(Extraordinary) Jubilee of Mercy, (특별)자비의 희년 喜年 2016년 (2015년 12월 8일 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 작년 말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께서 발표했던 것, 올 들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화두 話頭 talking point’ 가 되었다. 처음에 이 ‘뉴스’에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비의 희년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신을 다해서’ 나는 ‘한때 거의 버렸던’ 가톨릭 믿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제는 자신까지 얻었다고 조심스런 안심까지 했지만, ‘이런 생소한 말’들에 접하며 다시 ‘나는 역시 아직도 무식하구나1‘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는지 확실치 않은 이런 ‘희년’이란 말도 그렇고 게다가 ‘자비의 희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다 ‘전대사 全大赦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 들어보았던 단어들이지만 확실한, 자세한 의미는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글, 사진에서 고 김수환추기경 사진의 설명에, ‘2000년, 대희년 great jubilee 의 추기경’이란 말을 기억한다. 이 ‘대희년’이란 또 무슨 말인가? ‘큰 희년’이란 말인데..

이러한 나의 ‘교리, 전승, 가톨릭 신심 문화에 무식한 배경’ 속에서 올해 ‘진짜’ 희년의 소식을 코 앞에서 접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예전처럼.. 속으로 ‘아~ 그렇구나..이런 것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한번 알고나 죽자’하고 ‘무조건’ 덤빌 것인가? 결과적으로 근래2 나의 mottos가 된 ‘It’s now or never,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를 다시 한번 발동해서 나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아보는 (study)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노력의 백미 白眉 는 3월 14일, 화창하고 써늘했던 조용한 월요일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님들(2쌍 부부 포함)과 함께 방문했던 아틀란타 교외 Conyers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자비의 문 doors of mercy‘ 통과에서 이루어졌다.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이번 우리들의 ‘Conyers trip 쾌거’는 사실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차원 ‘공식 활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다수의 찬성에도 힘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또한, 이번 기회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의 반포배경과 그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희년 들의 역사적 배경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무식 ignorance stupid point’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었다.

 

평화스러운 수도원

평화스러운 수도원

 

이번의 자비의 희년은 Extraordinary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이유는 정기적으로 25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과 달리 특별하게 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 자비의 희년은 로마 바티칸 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각 교구마다 지정된 성전, 역사 깊은 성당에 ‘자비의 문’이 설정이 되었다. 이 자비의 문을 통과하면 전대사 全大赦를 받을 수 있는데 부수 조건은: (1)  교황님의 지향기도, (2) 고해성사, (3) 영성체, (4)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등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교황이 선포하는’ 전대사 같은 것에 큰 의미나 흥미를 느낀 적이 사실 없었다. 솔직히 핵심 교리적인 것 빼놓고는 믿어지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리의 한가지는 믿고 다른 것은 안 믿는다는 것 cafeteria Catholic 은 어불성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으려면 다 믿고 안 믿으려면 차라리 믿는다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조건’ 믿는다. 전대사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제까지 ‘쌓였거나, 남아있는’ 나의 죄는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전대사를 받은 우리들, 반응은 확실치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양도’를 하였다. 전대사를 남에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양도를 하였고 연숙은 작년에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께 양도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연숙은 우리 자신이 전대사를 못 받은 셈이 되었나.. 하지만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 것이니까…

3월의 어느 평화스러운 월요일, 신앙과 사명감으로 뭉친 레지오 단원 그룹이 이렇게 자비의 해에 선포된 자비의 문을 ‘통과’ 하려고 유서 깊은 Conyers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오에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의식에도 참여를 했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월요일 하루, 너무나 좋았다.

  1. 나 말고도, 이런 가톨릭 전통, 신심들에 무식한 교우들 참 많이 있을 것이다.
  2. 최소한 6년 전부터, 특히 레지오를 시작하면서부터..

Growing pain

Growing pain, size matters, evolution, exclusive, divide & conquer, tribalism.. 이런 말들이 머리 속을 맴돌던 (마리에타 2) 구역모임이었다. 중대한 논의와 결정이 필요하니 ‘꼭’ 참석하라는 ‘신 新 구역장’ 클레멘스 형제의 말을 상기하면서 참석을 한 모임이라 조금은 기대, 회의, 우려, 걱정 등이 교차하는 시간을 예상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시원스럽고, 무언가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구역모임의 특이한 점은 ‘잔칫집,상가집을 연상케 하던’ 식사와 술 마시는 시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주 ‘가벼운 스낵 류’와 술 맛이 ‘거의’ 안 들어간 음료들.. ‘지지고, 볶고, 부어라 마셔라’ 하던 분위기가 아주 차분하게 가라 앉은 이 모습은 사실.. 믿을 수가 없는 모습..속으로 ‘자신 없다던’ 구역장.. 거침없이, 필요하고 기대하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것을 보고 ‘당분간’은 이 모임에 큰 문제가 없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결과적으로 구역문제 중 제일 심각한 ‘불어난 덩치’ 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금 쉽게 manage할 수 있는 반쪽 크기, 둘로 나누자는 것으로 ‘표결’이 났다. 본당의 ‘사무, 행정적 문제’를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현 구역 system은 그대로 두고 ‘반 공식적’으로 1반, 2반으로 나누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이 제일 쉽게 이행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나누는 방법과 절차가 신경이 쓰였지만, 우선 ‘투표’로 결정이 났기 때문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인데.. 이것은 분명히 ‘진화적’인 변화라고 볼 수 밖에 없고, 사실 왜 ‘문제가 되기 전’에 이런 결단을 못 내렸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간 ‘미친 듯이’ 불어난 덩치를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던 것인가. active하게 참여를 못한 우리는 사실 할 말이 없지만.. 한가지 의문은..어찌해서 이 ‘조용하고, 평화스럽고, 한가했던 동네’에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오는가.. 하는 것이지만.. 알 수가 없다.

우엉 차 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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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 차, 언젠가 이 말을 들어보았다. 우엉으로 만든 차 茶. 그런데 우엉이 확실히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모르고 솔직히 본 적, 먹어 본 적도 없다. 이것이 우리 식탁에 등장한지 얼마나 되었나, 아마도 한 달 정도가 넘었을까? 그러니까 근래 들어서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연숙이 어디에선가 (분명히 인터넷) 듣고 보고 구한 것이고 이것을 ‘우려서’ 차 비슷하게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효능 같은 것은 잘 모르고 그저 식사 후에 물 대신 맛이 괜찮기에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조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이런 것들을 과대 보도하거나 선전을 하는 것을 누가 모르랴마는 우리가 직접 마셔보고 기대치도 않은 효과를 보고 나서, 모든 것들이 다 과대 보도는 아니었구나 하는 미안한 심정도 들게 되었다.

이것을 마시기 시작하고 나서 우리들의 irregularities  (변비의 고상한 표현) 문제가 거의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를 않던 것이 거의 하루에 한번씩 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엉 차의 영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을 해서 효과는 분명히 떨어질 것이지만, 다시 끊고 시작하는 등 변화를 주면 다시 몸이 적응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아마도 우엉을 말리거나, 잘게 써는 방식 등이 우리의 것과 다른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체질에 따라서 다른 것인가.. 알 수 없다. 이것도 그러니까 한방재료, 한약에 속할 것이고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특히 나는 이것으로 몸이 가벼워진 듯 느껴짐은 물론이고, 가벼운 치질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7 Daffodils, 봄은 어디에..

out backyard daffodil

out backyard daffodil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신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 Narcissus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Brothers Four의  folk hit, Seven Daffodils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Pope Francis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Laudato Si (부제: On Care For Our Common Home,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신학적인 명제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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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

 

 

꽃밭 속에 꽃들이..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ere have all my flowers gone?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양희은, 김민기의 ‘젊은’ 목소리가 회상되는 노래 구절이다. 없는 꽃을 기다리는 이 곡은 분명히 정치적 angle을 내재한 것이겠지만 현재 나의 꽃밭에는 멋진 꽃들이 만발함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꽃밭 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여자, 여성들, 그러니까 ‘자매님’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니 과연 나의 집안이 꽃밭이었다. 나 자신의 family가 생기기 전부터도 나는 100% 꽃밭 속에서 자란 셈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삼촌이나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롭기만 한 외아들(父先亡 單代獨子), 남자 친척도 거의 없이 6.25 동란 와중에 자라난 세대.. 거리에 나가 앞뒤를 보아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시절,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고  萬古의 역적, 김일성 개xx 와 싸우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아버지 삼촌 오빠 등 남자가 없던 가정이 ‘거의’ 정상이던 그 시절에 자란 나의 주위는 모두 엄마, 아줌마, 누나, 게다가 가난에 시달려 시골에서 올라온 ‘무단 상경’ 식모 누나들.. 그러다 급기야는 훗날 내가 ‘만든’ 가족들 조차도 모두.. 여자들.. 와~~ 이러니 내가 꽃밭에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이성 異性’으로 느끼는 어떠한 종류의 감정들도 많이 둔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곳, 나의 가정의 이런 꽃밭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적’인 engineers들의 환경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여성들에게 개방이 되어가고 1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곳 중에 하나가 기술직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환경들을 무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말년에 ‘별 수 없이’ 다시 ‘가족의 꽃밭’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하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비록 천천히 진행이 되긴 했지만, 나의 coming home (to church & faith), 신앙적인 귀향은 뜻밖으로 ‘다른 종류’의 꽃밭을 선사해 주었다. 건전한 신앙적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멋진’ 자매님들의 꽃밭이었고2 그것은 너무나 신선하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異性적 여성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1. 거의 다수가 나보다는 인생을 덜 살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나이이고..
  2. 대부분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나 경험, 경륜은 훨씬 선배들이고..
  3. 절대 소수 minority인 나를 거의 차별하지 않은 듯 하고..
  4. 나를 opposite-gender 의 angle로 보는 듯 하지도 않는 듯..

 

결론적으로 그들, 꽃들은: 비슷한 세계관, 내세관, 가치관을 가진 ‘진정한 친구’로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5년 정도의 intensive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참 인생이란 것.. 예측하게 힘든 숨은 즐거움이, 찾으려고 노력만 하며 어디엔 가에 숨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꽃들과의 스스럼없는 친교와 대화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한다. ‘성숙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생각, 습관, 나아가 가치관’을 가졌고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싶다.

 

 
Best Rendition: Kingston Trio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 어떤 것들은 조금 웃기는 현상이지만..
  2. 이 post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제와 오늘 계속 함께했던 ‘꽃’들과 가졌던 impromptu dining 에 있었다.

무언가 안정이 안 된듯한..

¶ 오늘은 무언가 안정감을 못 느끼는 날로 끝나는 모양이다. 가끔 이런 날이 있긴 하지.. 하루의 반 정도는 무언가 의욕적으로 할 것들을 list로 만들며 모두 ‘끝낼 것’ 같은 희망에 쌓였다가.. 갑자기 일들이 틀어지고 예상을 빗나가는 그 사실에 화가 나며 의욕이 떨어지고 끝내 ‘아무 것도 못한 하루가 되었다’ 라는 실망감이 젖는 그런 것이다.

이런 pattern들은 대부분 computer를 가지고 ‘놀다가’ 생기는 것이 태반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갑자기 많아진 pc들을 만지며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home system을 구상하는데.. 결국은 $$$을 최소한으로 절약하는 쪽으로 나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고.. 그것도 사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되었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나의 자랑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자부감을 항상 무시하는 것 같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손에 불이 붙기 시작한 soldering으로 pc power supply의 SATA connector 를 assemble해서 얼마 전에 ‘죽어버린’ home file server FS  대신 임시로 그 역할을 하게 된 나의 dadpc를 다시 찾기 위해서 kitchen-pc를 개비해서 FS로 쓰려고 하던 계획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지만 여기저기서 예기치 않던 문제들이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예상이 몇 시간이면 끝날 듯하던 것이 하루 종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결국, 오늘 해야 할 묵주기도를 놓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나를 조금은 쳐지게 한다.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묵주기도 20단 이상을 못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신경을 쓰는 나 자신을 보며.. 참 나.. 많이 변했다는 놀라움이다. 좋은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 나를 현재 살려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묵주기도, 성모님이기 때문이다.

 

¶  최근에 들어서 우리의 레지오 활동은 예전보다 조금은 더 발전을 했다고 할까.. 우리 생활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이 활동이 있고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곳으로부터 나올 정도가 되었다. 솔직히 우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한 이곳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아니 못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생활에서 느끼는 보람과 평화는 정말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변화를 보고 내가 계속 매일매일 놀라는 것..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런 생각도 요새 나의 머리에서 맴도는 것이다. 현재 내가 레지오를 비롯한 ‘신앙생활’에서 대부분 대하는 사람들은 99% 이상이 자매님들이라는 사실.. 지난 성탄 고해성사에서 결국은 신부님께도 말했지만.. 혹시 내가 자매님들과 이렇게 어울리는 것이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렇지 않는가.. 나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남자들 보다 여성들이 더 편해지고.. 대화도 잘 되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한 것.. 바람직한 것인가? 혹시 이상한 것은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론은 사실.. 내가 사람들을 대부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도 그런 것 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내가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이고 만나는 대부분이 자매님들이니.. 그들도 ‘좋아하게’ 된 ‘인간’들이기에..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성모님..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Lunch at Don Quixote

돈키호테 점심식사Atlanta Metro, 도라빌 Buford Highway Korea tow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Don Quixote 돈키호테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원래 잘 알려진 일본식 분식점이었고 전통적인 돈카츠를 위시한 일본식 경양식 전문이었지만 지금은 owner가 바뀌어서 주문형 도시락을 전문으로 하는 ‘가벼운’ 한식점으로 바뀌었다.

위치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1 우리는 전혀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바로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된 것이고, 그것도 이(요한) 주임신부님과 함께였다.

이날 늦은 아침에 우리(부부)는 L 바울라 자매님의 요청으로 이 신부님을 모시고 아틀란타 공항 서쪽에 위치한 어떤 깨끗한 suburban house로 한 시간여를 drive해서 S 안나 자매님 (할머님) 병자성사를 주러 갔었고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이곳에 들려 같이 점심식사를 하게 된 사연이다.

‘비상적인’ 성사 (sacramental emergency)를 철저히 챙기시는 우리 주임신부님, 사실 확인여부를 떠나서 요청이 들어오면 거의 무조건 나서시는데.. 그 중 99%는 정말로 비상일 텐데.. 이번의 case는 나머지 1%에 속한 것으로 ‘다급한 비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 우리가 미리 들은 바에 의해서 예상한 것은:  “거의 죽음을 앞에 놓고, 아무도 정성껏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외로운 삶을 마감하는..” 등등의 scenario를 무언중에 생각하고 갔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본 것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 반짝이고 널찍한 저택에 ‘어떤 할머니들’보다 더 수려하고 건강하게 보이시는 분이 우리를 맞아준 것이다. 중간에 서서 ‘병자성사’를 주선하신 자매님.. 겉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당황하셨으리라.. 곧 숨이 넘을 듯한 절박감과는 서울과 부산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바울라 자매님 왈.. 이 자매님과 전화만 하면 ‘너무 외로워서 오래 못 살 것 같다.. 신부님 좀 모시고 와라..’ 고 하신다니..  신부님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 밖인 상황에 조금은 ‘실망 아닌 실망’일까.. 말이 별로 없으시다. 하지만 기왕 간 김에 전대사를 위시한 병자성사를 확실하게 주시고 오게 되었으니.. 그 S 안나 자매님 안심하시고 하루하루 보내시게 되었다. 사실 우리도 중간에 서서, 진실 확인 여부를 떠나서 조금은 바쁘신 신부님 시간을 빼앗은 결과에 잘잘못을 떠나서 점심식사가 생각보다 덜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럴 때..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나도 없다.. 누가 ‘신부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모시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니까.

  1. 바로 근처에 adult entertainment shop이 도사리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