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os, joy and surprise: 박근혜

 

 

나의 매년 1월은 크리스마스 ‘후유증’, 새해를 맞이하는 ‘고민’, 식구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가까운 친지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mid-Winter classic 등으로 다른 달에 비해서 조금 머리가 산란해 지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항상’ 나를 즐겁게 하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연례 다보스 경제 포럼, Davos World Economic Forum(WEF)이다. 이 행사를 stream media로 보고 있으면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내가 흡사 ‘세계적인 인물’이 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 유명인사들을 바로 옆에서 보며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행사가 그래서 그렇게 매력적인가.. 아닐 것이다. 이곳을 통해서 일년에 한번 씩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특히 경제적으로 변하는 세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배경으로 ‘멋지고, 힘있는’ 인물들의 열띤 토론과 행적을 보는 것..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올해의 forum은 나의 방심으로 며칠을 늦게 따라가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로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감개가 무량할 수 밖에 없을까.. 나는 모국의 정치 풍토나 뉴스에 거의 무관심하게 살고 있지만 어찌 박근혜의 얼굴을 보고 감정이 일지 않겠는가? 우리 시절과 그렇게 가까웠던 (좋던, 싫던) 박정희의 장녀, 부모를 모두 정치적 비극으로 잃은 비극의 가족을 초인적으로 극복하고 아버지의 염원을 계승한 여성.. 참 자랑스럽다. 그 박근혜가 드디어 Davos에 한 나라의 원수 자격으로 등장하고 forum chairman과 일대일로 대담, 영어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니 코가 찡~해지기도 한다.

그녀의 영어 연설도 아주 ‘정석형’으로 잘 전달하였다. 약간의 Korean accent는 애교로 참 잘 어울렸다. 연설의 내용도 아주 직설적이고 호소력이 있었다. 그녀가 신봉하는 듯한 대한민국의 ‘발전 전략’, 거의 digital entrepreneurism에 관한 것인데.. 아마도 현 정권의 경제 청사진인 듯 들렸다. 100% 경제적인 주제의 연설이었지만 연설 후 사회자, forum 의장 (Dr. Klaus Schwab) 과의 대담에서 그는 빼놓지 않고 ‘북한 문제’를 꺼내었고, 박 대통령은 조금은 ‘판에 박힌 듯’한 (너무나 정치적이라서?), 예상적인 대답을 하였다.

1968년 1월 21일, 김일성의 김신조 무장공비 31명이 ‘박정희의 목을 따러’ 청와대로 침입한 것을 박근혜 씨는 기억을 하고 있을까? 1974년에는 김일성이 사주한 재일교포 빨갱이가 자기 어머니를 죽인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까? 빨갱이들이 (심지어 천주교 계까지) 득실거리는, 완전히 갈라진 현 대한민국..그녀는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헤치고 나아가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것인가.. 참 나의 머리도 복잡해진다.

나의 첫성탄 12일..

My first ever, 12 days of Christmas.. 제목은 거창하지만 글자 그대로 나는 인생 처음 12일간의 2013년도 성탄 시즌을 보낸 경험을 하였다. 여기서 12일은 성탄절부터 시작되어 1월 5일 경까지 계속되는 기간으로 세속적이건 종교적이건 전통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더욱이 12일 째인1월 5일은 우리 큰 딸 새로니의 생일이 있어서 더욱 이 성탄 12일에 의미가 실린다.

‘상업적 소비자 문화’ 가 뿌리를 잡기 훨씬 전에는 이런 성탄 이후 12일 간의 기간이 더 의미가 있던 기간이었다. 그것이 ‘성탄 기분을 이용한 상업주의’ 가 성탄 훨씬 전부터 ‘북을 치기’ 시작해서 성탄절 그날 모든 것이 끝을 내는 괴상한 유행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올해는 견디기 힘들게 괴로웠다.   이번 성탄시즌은 글자 그대로 ‘탈 세속적’으로 보내려고 노력을 했던 기간이었다. 이렇게 보낸 것은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의도적인 측면이 많았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다는 ‘차분한,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나는 그 동안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성탄시즌이 오면 나는 사실 기분이 쳐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고, 이것이 바로 ‘세속병’일 것이라는 의심도 많이 해왔다. 그저 가족적 선물교환이나 휘황찬란한 shopping mall, 일년의 나라 경제를 좌우하게 된 미친듯한 상업성.. 한마디로 지겨웠다. 그 중에서도 나를 제일 괴롭힌 것은: 점점 이른 ‘성탄 경기’의 시작과 12월 25일이 지나자 마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일 순간에 모든 ‘성탄 열기’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12월 달이 점점 싫어지기도 했다. 나이를 먹음을 느끼게 되는 연말연시의 냄새까지 곁들여서 더욱 싫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언가 너무나 잘 못 되었음을 절감하게 되고, 그것을 올해 성탄시즌은 ‘계획적’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holiday season을 심각하게 보내려는 것은 조금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심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는 ’12일간의 성탄절’.. 성탄절 거의 2달 전부터 떠들어대는 모든 잡음을 ‘절대로 무시’하고, 성탄은 성탄의 의미로 12월 24일 밤 미사로 부터 시작해서 12일 정도 더 축하하며 지내기로 했다. 이것은 거의 ‘반 세속적’인 것으로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100%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는 no turning back의 각오로 앞으로도 계속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성탄절 불과 며칠 전에야 Christmas tree가..
성탄절 불과 며칠 전에야 Christmas tree가..

이런 나의 의도를 처음에는 가족들이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는 체념을 하고 이해를 하는 듯 했다. 제일 큰 문제가 Christmas tree를 언제 장식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평소에는 12월도 되기 전에 했지만 올해는 아슬아슬하게, 의도적으로 성탄 3일 전에야 세워 놓았다. 그것도 아주 조그만 것으로.. 이런 장식물들은 또한 의도적으로 거의 1월 중순까지 유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기도 전에 쓰레기 버리듯 치워버렸지만 나는 그것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성탄절 이전의 축제분위기를 거의 없앤 대신에 교회력 ‘대림절’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변한 만큼 효과가 적지 않았다. 감상적인 carol을 가급적 피하였고, 대신 성탄 주제의 가족적인 movie들을 보기도 했다. 인간은 역시 오감에 너무나 좌우됨을 이번에 실감하게 되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의외로 간단했다. ‘사랑’이었다. 그것을 왜 그 동안 그렇게 모르고 살았을까? 의외로 의미 있는 성탄 영화들이 꽤 있었고, 거의 모두 Youtube에서 찾았다. 그 중에 3편은 이번 성탄시즌에서 최소한 10번 이상을 공부하듯이 보았다.

모두 대주제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천상적인 사랑.. agape‘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아마도 내년에도 같은 식으로 10번 이상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세파에 휩쓸리고, 깊은 생각 없이 남들을 쫓아가고, 주위의 인정을 받으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한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도 사실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올해 나는 무슨 ‘신들린 듯’ 진리를 찾게 된 것이다. 이런 나의 노력이나 변화가 그저 우연일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두드리면 열리는, 찾으면 찾아지는 그런 진리일지도 모른다.

 

성탄 12일에 즐기며, 공부하며 보았던 Christmas 영화들

 

The Christmas Box

Richard Thomas, Maureen O’hara 주연의 이 family movie는 1980년대의 비교적 오래된 영화이지만 주제는 불변의 진리인 ‘성탄은 사랑’이라는 것을 주인공인 Thomas가 빌려 사는 으리으리한 저택의 여주인인 O’hara로부터 배우게 되는 과정이다. ‘성탄이란 과연 무엇이냐?’ 라는 간단하고 바보스러운 질문에 곤혹을 치르지만 결과적으로 딸을 가진 가장으로서 이 성탄의 진리를 찾아내는 감동적인 storyline.. 6번 정도 볼 때에 나도 그 수수께끼를 찾게 되었다.

The Christmas Wish

역시 1980년대 holiday family movie로 뉴욕에 거주하는 어떤 일류대학 출신 앞날이 밝기만 한 청년이 성탄 즈음에 조그만 고장 고향을 찾았을 때 자기의 할머니 성탄절 소망에 대한 얘기를 받아들여 서서히 자기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며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히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역시 ‘성탄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The Christmas Hope

비교적 최근 영화, 10여 년이 조금 넘은 것이지만 역시 ‘성탄은 사랑’이라는 주제다.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눈물을 자아내는 사랑을 향한 이야기들.. waitress로 일을 하며 singer가 되려고 애를 쓰는 어떤 single mom, 성탄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죽고 홀로 남은 ‘밝기만 한’ 어린 딸.. 아동보호 시설 담당자 여자가 임시로 맡게 되지만 그녀 역시 얼마 전 교통사고로 10대 아들을 잃은 고통으로 시달리는 입장이다. 그런 고통으로 거의 이혼 직전까지 갔던 그 부부는 기적적으로 그 엄마를 잃은 어린 딸을 자기집으로 입양하기로 비장한 결정을 하며 성탄전야를 맞는다. 사랑을 잃었지만 결국은 더 큰 사랑을 찾는 것.. 이것도 ‘성탄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A Christmas Without Snow

이 영화는 1980년대 초에 나온 것으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이미 TV에서 본 적이 있었고, 그 이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잊고 살았다. 이번에 우연히 Youtube에 나온 것을 보게 되었고 이제야 ‘확실한 줄거리’를 알게 되었다. 그 옛날에 잠깐 보았을 때의 기억은,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는 ‘고약한 성질’의 할아버지와 성가대 대원간의 갈등 정도였다. 제목부터가 요상해서 ‘눈이 없는 성탄’.. 이것은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주인공인 이혼녀가 눈이 강산처럼 싸이는 Nebraska주에서 눈이 전혀 없는 San Francisco로 이사를 와서 맞게 되는 성탄절 풍경을 그린 것이다. 사실 눈 보여야 성탄절 영화..라는 공식을 완전히 깨어버린 영화가 되었고, 특이하게 교회(신앙)를 배경으로 ‘성가대’가 주제가 된 것도 특이했다. 성가대 지휘자인 John Houseman은 당시 The Paper Chase란 영화로 인기가 있던 원로급 배우로서 나도 참 좋아했다. 또한 여기 성가대원으로 나오는 ‘동양 여자’는 각본에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배우 이름도 Kim이었다. 문제는 first name인 Daisietta였다. 한국출신 여배우라면 이런 이름은 너무나 생소하다. 과연 이 배우는 한국출신일까.. 이 영화에서 그것이 나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훌~쩍 지나간 2013년..

그렇다.. 훌~쩍 2013년이 사라졌다. 아까운 느낌도 들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연연히 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마 희망적으로 새로운 이경우의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 것, 지나가는 것을 조금 더 건강하게 생각하고 간직하고 ‘즐기자’. 예년 매년, 이맘때면 겪는 야릇한 고통의 느낌, 아련히 느끼는 외로움..등등 이런 기분이 항상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주위의 사람, 연숙에게는 괴로운 나의 우거지 상 일지도 모른다.

올해, 아니 지나간 성탄 시즌.. 그렇다.. 나는 작은 ‘금자탑’을 세우며 건강한 ‘축제시즌’을 만들고 보냈다. 나는 자부한다. 올해는 나의 근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사실.. 거창한 듯 들리지만 사실은 웃기게 왜소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성탄을 느끼고 지낸 2013년 성탄절이었다.

왜 이번에는 그렇게 유별난 생각을 했을까? 이것도.. 이것도..it’s now or never의 맥락이다. 나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전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저 ‘실행’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성탄이란 무엇이었을까? 11월 중순부터 요란한 carol과 그것에 대한 추억, 감상에 젖으며 대림절을 지내고 막상 성탄이 가까워 오면 나는 거의 겁을 먹은 상태로 stress를 받는다. 성탄절 바로 그날로 모든 것이 완전히 깜깜하게 꺼지는 듯한 이 세속적인, 상업적인 축제분위기와 문화들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12월 25일 저녁이면 ‘완전히’ 사라지는 성탄의 분위기.. 어떻게 세상이 그렇게 변했을까? 나는 완전히 100% 세속적인 성탄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이것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하며 ‘건강하게’ 준비를 한 기분이다. 우선 축제의 분위기를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인 일정에 맞추려고 노력을 해서 나라니의 냉소를 참아가며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tree를 장식하였고 carol같은 것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하였다.

더 큰 각오는.. 성탄절을 교회의 전례에 따라서 최소한 Epiphany까지.. 그러니까 12 days of Christmas를 따르기로 했고, 더 나아가서 진짜 가톨릭 관례대로 예수세례축일 전까지 지키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피상적’인 것들 모두 성공을 하였다. 나는 크리스마스 날 부터 모든 ‘성탄절’의 것들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Youtube에서 가정적인 영화들을 download해서 즐겼고 오늘까지도 즐기고 있다 너무나 너무나 생각할 것을 많이 주는 영화들..

그러니까 이것이다.. 성탄이란 ‘사랑’인 것이다. 의미는 100%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었다. 65 평생에 처음으로 이것을 가슴속으로 느끼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대림절과 성탄절이 아닐까? 이제.. 이제.. 내년부터는 자신이 있다 절대로 holiday stress에 시달리지 않으리라!

Guest Blog: 김인호의 조갑제 컬럼 3

제2차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2014.01.10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첨단과학기술교육기관이 되라고 국민세금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서조차도 그 머리 좋은 잠재인재들을 모아다가 이 파생금융상품을 전공하는데 대부분 매달리게 하는 꼴을 보면 참으로 기가 차고 아연실색해지기도 한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긴급경보: 2차 금융핵폭발(核爆發) 임박!

 필자는 2008년 이명박(MB)정부출범 바로 이틀 후인 2008년 2월 27일에 한국경제신문에 ‘파생상품에 대하여 주목하는 이유’라는 칼럼을 그리고 2013년 5월 14일 인터넷경제지 데일리안에 재차 ‘파생금융상품 망국론’이라는 칼럼을 통해 파생금융상품의 사기성을 지적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바 있다.

물론 2008년 필자의 경고성칼럼에 대해 관심을 두는 이는 별로 없었으나 경고 후 7개월 뒤 9월에 월가붕괴(Wall Street meltdown)라는 금융 핵폭탄(核爆彈)이 터졌고 그 낙진(落塵)피해는 5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여전히 심각할 정도이며 더 심각한 것은 2008년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초강력 파생금융시한폭탄이 찰각찰각 폭발을 향해 재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를 알리기 위해 2013년 5월 필자가 두 번째 경고성 칼럼을 썼던 것인데, 6개월쯤 지난 11월에 조선일보와 하나은행 사보에서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특집을 통해 한국의 파생상품시장이 너무나 왜소하여 이대로 가다간 한국금융이 도태될 것이라는 우려와 경고에 가까운 입장을 피력하면서 이제부터라도 금융규제를 확 풀어서 파생금융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펴는 것이었다.

이는 아마도 금융파생상품을 염두에 둔 듯한 그간의 주장들, 특히 이제부터는 수출중심의 제조업대신에 규제를 확 풀어 관광, 교육, 의료, 소프트웨어와 금융을 함께 묶어서 내수중심의 서비스산업을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먹고 살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이명박 정부의 출범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출범초반에 또다시 펴는구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정부 출범초반에 맥킨지(McKinsey)는 성장공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이제는 규제를 확 풀어서 금융선진화를 이루고, 금융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바 있는데 이제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조선일보와 하나은행에서 특집을 꾸민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불쑥 들었던 탓이다.

더욱이 2008 월가붕괴 직전에 한국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리번 브라더스를 인수케 하려는 획책을 꾀했던 세력이 있었던 사실이 떠오르며 결국 외국금융사와 컨설팅사들이 한국에서 파생상품시장을 키워 한탕 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게 필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론은 맥킨지의 비(非)전문성을 제대로 간파 못하고 오랫동안 그들의 컨설팅을 받아 오다가 낭패를 맛본 LG가 ‘맥킨지,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는 자극적 반응에서도 확인될 수 있었다. 그런데 LG의 이런 반응은 우리나라로 봐서는 시기상 절묘하게도 다행한 일이라 여겨졌다. 왜냐하면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절묘한 시기에 맥킨지를 앞세운 경제정책결정 근처에 있는 관료와 언론인과 정치학자(polyfessor)들이 여기저기서 서비스산업을 키워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밑도 끝도 논거도 빈약한 말을 입에 올리는 꼴이 눈에 뜨일 뿐만 아니라 서비스라는 말에 담긴 금융서비스에는 필히 파생상품이 숨겨있음이 보이기에 말이다.

필자는 이런 배경에서 파생상품기사를 다룬 조선일보 기자에게 연락을 했더니만 자본시장연구원의 모 박사가 쓴 것이라며 뺑뺑이 돌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 기사의 내용에 대해 일체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그 모 박사에게 연락하여 미안하지만 금융파생상품에 대해서 뭘 좀 아느냐고 했더니만 자기네 연구원엔 파생상품전문가 여럿이 한 팀을 이루어 파생상품을 연구하고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필자는 이분들의 무지를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지만 어떻게 모르면서 그런 기사를 다루는지에 대해 새삼 놀랐다.

허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첨단과학기술교육기관이 되라고 국민세금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서조차도 그 머리 좋은 잠재인재들을 모아다가 이 파생금융상품을 전공하는데 대부분 매달리게 하는 꼴을 보면 참으로 기가 차고 아연실색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한마디로 금융전문가라는 분들조차도 금융파생상품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파생상품에 대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아는 척 하는 사이비가 되다 보니 미국 금융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로 우리도 따라가면 되는 줄로 알 수밖에.

주식투자나 채권투자는 기본적으로 실물(實物)에다 투자하는 것인데 반하여 파생금융상품은 미래가치나 약속이라는 허상(虛像)에 투자할 수 있게 19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에서 허용한 법적투기(legal bet)다. 이는 마치 어떤 이가 여행을 하면서 주말에 어느 축구팀이 승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투기하는 것이나 앞으로 이자율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에 대해서 투기하는 것이나 이후 어느 금융기관이 채무불이행할 것인가에 투기하는 것이나 심지어는 앞으로 물가지수나 주가지수나 날씨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투기하는 것과 똑같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격의 완벽한 투기다.

사이비 금융전문가 중엔 파생금융상품에도 순기능이 존재한다고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무지에 기초한 억지다. 그들은 파생금융상품은 위험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줌으로 경제에 유익을 주는 순기능(virtuous circle)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최초(最初)의 선물(先物) 이후의 파생금융상품은 ‘나의 위험을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큰 수익을 기대하는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투기도구로서 본질상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역기능의 투기수단일 뿐이다. 

 

(1) 파생금융상품은 본질적으로 제로섬의 비생산적 활동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그 유지비용만큼은 항상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는 negative-sum의 비생산적 활동이다.

(2) 위험관리의 이론적 기초인 재무 포트폴리오 이론(portfolio theory)에 의하면 분산투자를 통해서 관리가 가능한 위험은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과 비체계적 위험(un-systemic risk) 중에서 비체계적 위험뿐인데 파생금융상품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몇 개의 상위 글로벌 금융기관에 집중되어 있어 거기에서 오는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은 이론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도저히 관리할 방법이 전무(全無)한 금융상품에 불과하므로 위험을 헤지(hedge)해 주는 금융상품일 수가 없다.    

(3) 위험을 쪼개서 파는 파생상품의 특성상 팔고 사는 과정에 미결재 부채(outstanding debts)가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약간 사기를 치거나 시장을 조작하거나 가격을 소폭 교란시킬 경우일지라도 연결고리를 타고 투자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대량살상 재무무기(financial weapon of mass destruction)로 작용하여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 투기상품이다.

(4) 돈이 일단 파생상품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오지 않는 불랙홀(black hole)로 작용하여 실물경제는 점점 줄어 들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경기침체나 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한마디로 zero-sum인 도박이며 그 시장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만큼은 사회에 부담을 주는 negative-sum의 도박수단이라는 점과 도박은 도박인데 다른 도박들과는 달리 크게 문제될 수 있는 건 그 엄청난 파생상품시장규모와 파생상품거래의 불안정성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파생금융상품은 1980년대부터 조금씩 선을 보이다가 1997년부터 급작스레 급증하면서 월가는 그간 누구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면 그 어떤 것에든 투기하는 거대한 카지노(Casino)장으로 바뀌어 버렸고 그러다가 드디어 2008년 월가붕괴를 맞았던 것이다.

2008년 월가 붕괴 당시 미국의 GDP는 11조 억불임에 반하여 파생상품의 미결재 부채규모는 263조 억불로 GDP의 25배가 넘는 규모에서 2008 미국 발 월가붕괴가 터졌고  그 충격은 곧 지구촌 전역으로 그 폭발 피해를 증폭시켜갔던 것이다.

2008 월가붕괴 후 파생금융상품문제는 일단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하나의 희생양으로 외형적으로는 일단락된 듯 했지만 세계최대 보험회사인 AIG도 바로 이 금융파생상품투기에 걸려들어 파산지경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었고 MF Global 실패와 60억불을 날린 JPMorgan Chase의 경우도 다 파생상품으로 생긴 사건 사고였다. 최근 국내에서 터진 금융권 사고들, 예컨대 무슨, 무슨 저축은행, D그룹 H그룹의 금융파탄사건, 모 증권사의 파산, 유수그룹 회장단들의 비자금사고 등등은 모두가 파생상품과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2014년 현재 초강력 시한폭탄으로서 파생금융상품의 본질적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계속 지속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2008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2013년 12월 현재 US의 GDP는 15조억불인데 파생상품시장규모는 660조 억불로서 GDP에 대한 배수가 44배로 2008년의 25배보다도 엄청 커졌다는 사실이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도 파생상품시장이 1,500조 억불로서 GDP 70조 억불의 20배가 넘다 보니 한번 삐끗하면 글로벌 전체를 날려버릴 핵폭탄임을 절감케 하며 그 폭발장소는 역시 미국이 될 것임을 쉽게 알게 해준다.

파생금융상품의 폭발가능성에 관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바로 실물이 아닌 허상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93%가 미국 상위 4개 금융기관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며 미국산업의 81%가 파생금융상품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잠시 미국 상위 4개 은행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이 들은 아마도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를 신봉하며 무모한 투기를 계속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이 만들어져 규제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들은 미국경제 전체는 물론 글로벌 경제전체를 집어 삼킬 정도로 무모한 투기를 아무 제약 없이 지속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2008년의 경우보다 훨씬 더 악화 일로에 있어 이제는 마치 암이 몸 전신에 퍼져 암을 죽이려면 몸 전체를 죽여야 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른 양상이 되었다.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에 의하면

  1. JPMorgan Chase는 1.8조 억불 자산에 파생상품 69조 억불로 허상인 빈 껍데기가 자산의 38배이며
  2. Citibank는 1.3조 억불 자산에 파생상품 52조 억불로 자산의 40배이고
  3. Bank Of America는 1.4조 억불 자산에 파생상품 44조 억불로 자산의 31배이며
  4. Goldman Sachs는 0.11조 억불 자산에 파생상품 41조 억불로서 자산의 372배다.

이들 숫자를 보면 직감적으로 턱이 빠질 지경의 한계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진다. 특히 골드만색스는 밑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고공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형상인데 머지않아 곧 일을 낼 것 같은 직감이 든다.

결국 파생금융상품이 일을 낼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다만 그 시기가 얼마나 빠를 것이냐에 대한 논란만이 있을 수 있을 뿐 글로벌 패닉을 초래할 초강력 금융핵폭탄임에는 틀림없고 머지않아 폭발이 임박했음도 부정할 길이 없다.

필자는 국부(國富)창출과 이익(利益)추구와 관련하여 다이나믹 매니지먼트(Dynamic Management)라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을 주창해 오면서 어떤 경우든 혁신의 효과를 추구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것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으며 혁신은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조립산업, 부품산업, 소재산업)과 건설업 중심의 산업구조 위에서 서비스산업이 고부가치화 될 때 일국의 경제체질이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왔다.

같은 맥락에서 혁신의 효과가 없는 금융서비스는 실물경제를 지원해주는 바탕 위에서만 금융업 본연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부여 받는다는 사실과 실물경제와 맞물려 돌아가는 금융경제가 아닌 금융활동은 결국은 거품만 키운다는 점을 강조하여 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운용과 관련하여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서도 정부관여가 불가피하다는 케인즈(Keynes)의 주장과 시장에 전적으로 일임해야 한다는 하이에크(Hayek)의 주장은 보편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혁신효과의 유무와 그 강약의 견지에서 혁신효과가 큰 경우엔 시장에 맡기고 혁신의 효과가 미미한 경우엔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점을 또한 강조하여 왔다. 

이런 정책판단기준을 따른다면 외국 특히 미국에서 어떻게 하든 우리는 실물경제에서 니즈맞춤혁신(needs-focused innovation)으로 창조경제를 실현시키는데 전력해야 하며 금융선진화 금융전략산업화 금융허브육성이라든가 하는 실체가 없는 데에 힘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negative-sum인 파생금융거래는 즉시 전면 금지시키며 금융기관들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단 미국 발 2차 금융핵폭발이 터지면 아무도 그 엄청난 피해를 아예 피해 갈 길은 없겠지만 얼마나 핵폭발 반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그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가 준거해야 할 중력법칙(gravity law)의 자연 질서로서 혜안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미리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 라서 이제부터 국내금융기관들의 경영 제1목표는 이익확대가 아니라 생존을 도모하는 일이며 생존을 추구하는 바탕 위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지표가 추구되어야 한다. 적어도 머지않아 터질 파생금융상품의 폭발과 그 패닉이 지나갈 때까지는.

이것이 지혜로운 금융기관의 경영방식임을 금융인들은 미리 깨달아야 한다. 특히 주인이 없는 대형금융기관일수록 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지금은 글로벌 금융핵폭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긴급경보가 발해진 상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미물인 개미도 태풍이 오면 미리 알고는 부랴부랴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거늘,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금융핵폭발을 미리 대비하거나 덜 피해 입는 지혜를 왜 발휘할 수 없겠는가? 우리 모두 선견력(先見力)이 요구되는 이 시대의 주역임을 잊지 말자!

메주고리예, Medjugorje 2014

메주고리예.. 비공식 성모님 발현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계속, 아직도 정기적으로 발현이 되는 곳이다. 1981년 6월 26일 첫 발현 후 현재까지 계속 이곳에 성모님이 발현을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며 놀랍기만 하다.

내가 처음으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을 안 것은 1989년 6월 인디애나 주 노틀담 대학(Notre Dame University,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린 성령대회에 가족이 참가했을 당시 그곳 전시장에서 정말 우연히 보고, 구입하게 된 책, 메주고리예 발현 화보였다.

 

메주고리예 발현 화보, 1989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천주교 영세를 받은 지 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던 시절.. 하지만 자세히 생각을 하니 1981년 경 뉴스를 통해서 들은 기억은 정말 희미하게 나는 듯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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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현 당시 6 visionaries 들 모습

메주고리예의 위치가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였기에 소련 연방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곳의 소식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련이 무너지면서 순례자들이 그곳을 방문하면서 점점 자세한 소식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나는 사실 그런 놀라운 발현 소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성모발현’이란 것을 심각하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3~4년 전부터 나의 신심적 르네상스를 거치며 비로소 나는 이 ‘믿기 힘든’ 성모발현을 믿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조금 복잡했지만 간단히 말해서 지금은 이 성모님 발현이 나의 신심을 굳건히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에게 사도 토마 같은 ‘의심’이 조금이라도 들면 나는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생각하며 나를 달래곤 한다.

역사상 성모님 발현은 ‘수 없이’ 많지만 ‘공식화’ 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과달루페, 루르드, 파티마 같은 classic한 것은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된 곳이지만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이 있고, 대부분 신빙성이 아주 높은 case들이다. University of Dayton에서 설치된 세계 마리아 학회의 website (Mary Page)를 보면 아주 매일 일기예보를 하듯이 전세계에서 보고되는 발현 소식을 ‘모조리’ 기록해 두고 있다.

medju-3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한마디로 놀랍기만 하다. 1981년부터 현재 까지 33년 동안 ‘계속’ 발현을 하기 때문이다. 성모님이 전하는 얘기는 한결같이 간단하고 성서적이다. 발현 목격자 중에 Mirjana 에게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달 2일에 발현을 하는데 이 발현은 비록 사적인 것이지만 미리 예고가 되었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성모님을 못 보지만 같이 참석하고 있다. 이런 광경이 이제는 인터넷의 힘으로 편안히 집에서 같이 볼 수가 있지만.. 과연 어떨까.. 믿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천주교 교리에 의하면 성모님은 비록 인간이지만 인간 중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성인 중에서 으뜸가는 성인이라고 할까.. 성모님의 그런 위치는 ‘전구자(우리의 기도를 예수님께 전하는)’의 역할을 하는데, 왜 그렇게 33년 동안 특별한 목격자들에게 계속 나타나는 것일까? 정식으로 인정이 보류된 상태에서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유(발현하는)를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어가고 있다. 근래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아주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보이는 비디오는 2014년, 주로  Mirjana에게 발현하는 성모님에 관한 것이다. 이런 비디오는 대부분 메주고리예와 가까운 이태리 순례자들이 주관해서 만드는 듯하고 여기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태리에서 온 듯하다. 발현이 끝나면 곧 이어서 성모님의 message를 각국어로 번역을 해서 발표를 하곤 한다.

 


2014년 12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10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Dear children, with motherly love I implore you, love one another. May there be in your hearts, as my Son desired from the very beginning, love for the Heavenly Father and for your neighbour in the first place — above everything of this world. My dear children, do you not recognise the signs of the times? Do you not recognise that all of this that is around you, all that is happening, is because there is no love? Comprehend that salvation is in true values. Accept the might of the Heavenly Father, love him and honour him. Walk in the footsteps of my Son. You, my children, my dear apostles, you are always gathering around me anew, because you are thirsty. You thirst for peace, love and happiness. Drink out of my hands. My hands are offering to you my Son who is the spring of clear water. He will bring your faith back to life and purify your hearts, because my Son loves pure hearts and pure hearts love my Son. Only pure hearts are humble and have firm faith. I ask for such hearts of you, my children. My Son told me that I am the mother of the entire world. I ask of those of you who accept me as such to help me, with your life, prayer and sacrifice, for all of my children to accept me as a mother—so that I may lead them to the spring of the clear water. Thank you. My dear children, as your shepherds offer you the Body of my Son with their blessed hands, always in your hearts give thanks to my Son for the Sacrifice and for the shepherds that he always gives you anew. ”

 

2014년 9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8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7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6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message

 

2014년 5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4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3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2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근래에 보기 드물게 ‘실내’에서 발현 하신 것이 특이하다

 

 

2014년 1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12월 중순이 넘어가는 날

¶  12월의 중순이 완전히 넘어가는 날, 12월이 기울어가고 성탄을 코앞에서 기다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질 2013년,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던 세월이었는지 조금씩 정리해야 한다는 심정이 나의 목덜미를 잡는다. 오래 전의 표현을 기억하면 ‘세모歲暮’라고 했던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표현한 그 말.. 참 느낌이 좋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과히 반갑지 않다고 느끼며 산 세월도 짧지 않았다. 숫제 그 ‘세모’란 것이 지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부터는 ‘의지적, 나아가 신앙적’으로 담담하게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산다. 그러니까 조금은 편해진 기분도 느낀다. 어떤 현상이 자연적인 것이면 그것을 자연의 주인에게 맡기자.. 그것이 내가 보는 세상의 순리인 것이다. 순리에 너무나 도전하는 것..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문제를 만드는 case가 얼마나 많았던가? 오너라, 세월아.. 지나가라 세월아.. 그것이 진리요 순리라면 얼마든지 편하게 받도록 노력을 하리라!

 

¶  올해의 초겨울 날씨 – 아직 공식적인 겨울의 시작, 동지가 이틀 남았지만 현재까지 보아서 올해의 winter season은 지극히 지극히 ‘고전적인 겨울’의 모습들이다.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의 느낌이 오래 전에 느꼈던 그런 겨울의 느낌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 한정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올해의 장기예보가 맞아가는 듯 하다. 평년보다 ‘조금 낮은’ 기온일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예년에 자주 입지 않았던 비교적 따뜻한 옷들을 입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눈 같은 포근한 것은 없었어도 ‘겨울다운 겨울’ 은 너무나 신선하고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이 지역의 추위는 사실 1월부터 3월까지가 진짜인데 이미 이렇게 싸늘했으니 그때는 과연 어떨까.. 지나간 여름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에 맞는 따뜻한 겨울을 예상했는데 어찌된 일인가?

 

¶  레지오 남자들.. 레지오 마리애 남성 단원을 간단히 레지오 남자라고 부른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이 단어가 자주 쓰이고 해서 조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했다던 레지오 마리애, 기도와 봉사를 목표로 군대처럼 모인 곳이다. 진짜 군대의 근처도 못 가보았던 내가 인생이 저물어가는 이때에 규율과 조직의 힘을 신선하게 느껴보며 살아간다. 이런 조직의 힘이 나에게는 생수와 피처럼 필요하다고 느낀다. 레지오 마리애가 나를 필요로 한 것 보다는 내가 ‘살아 가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교회내의 어느 신심단체, 조직들 정작 일이 필요한 곳은 거의 전부가 ‘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자매님’들이 궂은일, 시간 걸리는 일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남자들 중에서도 제일 활동적일 수 있는 40~50대들.. 분명히 ‘먹고 살기 위해서’ 신심활동,봉사 등은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60대는 어떤가?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마도 ‘즐기는데’ 너무나 바빠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때늦게 절감, 통감한 교훈적 사실은.. 이러한 ‘높은 수준의’ 활동이 그들이 그렇게 시간을 쏟고 있는 경제,사회활동에서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덤의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진리’를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형제님’들은 일단 ‘성공’한 삶을 살며 마칠 수 있다고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  의미 있는 Blogging의 절묘한 힘을 며칠 전에 ‘또’ 깨닫게 되었다. 가끔 찾아오는 이런 ‘절묘한 순간’들 때문에 귀찮더라도 계속 ‘쓰게’ 되나 보다. 간단히 얘기해서 내가 2년 전 여름에 불평의 마음으로 쓴 blog, ‘알피 램 생애를 읽으며’ 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연세대 전기과 동문을 알게 되었고 그 내가 불평했던 책의 새 번역본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에서 신화적, 전설적인 인물인 ‘알피 램’의 전기에 해당하는 그 책의 첫 번역본은 너무나 실망적인 것이었고, 은근히 다시 써주기를 바라며 쓴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기적奇蹟적으로 해결이 된 것이다.

게다가 새 번역을 한 사람이 바로 나의 연세대 전기과 ‘거의 동기’인 ‘김형기 스테파노’ 동문이어서 더욱 이채로웠다. 알고 보니 스테파노 동문은 1967년 가을학기를 나와 같이 공부한 것으로 밝혀져서 한참 반세기전으로 시간여행을 하며 그 당시를 추억하게도 되었다. 김 동문이 어떻게 레지오 마리애에 관한 책을 번역하는 입장이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하고 만약에 레지오 활동에 깊숙이 관여가 되었다면 서로 좋은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적인 희망의 나래를 펴 본다.

 

친구 정교성의 성탄카드, 너무나 멋지다.¶ 일주일 전쯤.. 캐나다에 거주하는 오랜 친구, 중앙중고 동창 정교성으로부터 성탄 카드가 도착하였다. 이 친구는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매년 이맘때쯤 카드를 보낸다. 비교적 일찍 보내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본지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그저 늙어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할 정도지만 일부러 그를 찾아 갈 여력을 찾지 못한다. 인연이 있으면 ‘죽기 전에’는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정도다. 요새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정착이 되어간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친척, 친지.. 어찔할 것인가.. 나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하며 생각하며 살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도 멀어져 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는가? 어떻게 그렇게 되어갈까? 최소한 나는 가까운 마음을 간직하는데 상대방이 꼭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슬프고 무섭기조차 하다. 고국에 있는 그렇게 다정했지만 긴 세월 떨어져 살았던 인생들.. 아예 나만의 상상으로 다정했던 세월들만 간직하며 나의 인생을 보낼까..

 

¶  갑자기 장례미사, 연도 소식이 잇달아 들어왔다. 작년 여름에 하루가 멀다하고 겪었던 장례, 연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어서 이대로 ‘무사히’ 올해를 보내나 보다 했지만 결국은 올해의 마지막 달, 어제와 오늘 연세대 이원선 도밍고 동문의 93세 어머님의 선종으로 연도와 장례미사가 잇달아 있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사실은 93세라는 나이도 있고 어느 정도 예측이 된 것이라 크게 놀랄 사실을 아니었지만 이 동문의 나와 비슷한 환경: 홀 어머님, 외아들 등등으로 나의 경험을 되새기며 하느님 품으로 가신 영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동문의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보다 2살이 아래였는데 육이오 전쟁에서 군인이던 남편을 잃으셨다고 했고, ‘강철같은 의지’로 4남매를 모두 대학엘 보내셨다고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그런 여건 (아버지를 잃은) 의 가정이 수도 없이 많았고 대부분 어머니들은 ‘뒤를 봄이 없이’ 자식들을 키워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를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 다 다른 눈물겨운 이야기들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생존이 제일 우선이고, 나머지 것들은 사실 희생이 되어야 했다. 우리들은 가끔 그런 사실을 깜빡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완고한, 고집불통) 만으로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앞뒤를 잘 못보는 불공평한 논리인 것이다. 이원선 동문도 이제는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나간 사실을 이번 어머님의 타계로 실감을 할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 완전한 부모’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을 예상해 본다. 한 세대가 완전히 흘렀다. 다음은 우리들이 갈 차례인 것이다.

레지오 총 친목회가 끝나고..

¶  12Scan10035월 1일, 2013년도 레지오 총 친목회 (Legion of Mary, Reunion)가 2013년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Advent)의 시작과 함께 멋지게 어울리며 결과적으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내에서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season의 막을 제일 먼저 올리는 역할을 해냈다. 12월 1일에 성탄의 공기를 느끼기에는 조금 이른 듯도 하지만 요새의 ‘세속적 secular, 상업적 commercial’인 흐름을 보면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닌 듯 싶다. 이미 지난 주부터 크리스마스 carol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고 Thanksgiving 날 부터 아예 shopping season이 ‘요란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친목회 프로그램의 하나인 합창 공연에서 참가자 모두가 빨간 산타크로스 모자를 써서 더 그러한 성탄절의 기분을 풍긴 듯 싶다.

 우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총 친목회는 결과부터 보면 예상보다 잘 치러 진 느낌을 받았다. 꾸리아에서 공식적이고 전체적인 review를 해 보면 더 자세한 것을 알겠지만 친목회의 진행이 비교적 매끄러웠고, 지루한 느낌도 거의 없었다. 참가자나 연기하는 단원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보며 그런 것을 나는 느꼈다. 아틀란타 지역 한인 성당이 2개로 나누어지며 필연적으로 꾸리아 소속 단원 수가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서 참가자의 수는 아마도 예년에 비해서 ‘많이’ 줄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지역 쁘레시디움 (Columbus, Augusta 같은)에서 장거리의 불편을 무릅쓰고 참가한 것은 보기가 좋았고, 참가 단원들의 참여 태도는 ‘수우미양가’ 에서 아마 ‘우’에 속하지 않았을까?

나와 연숙1은 올해 꾸리아 level에서 이 행사를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며 한가지 각오를 하고 임했다. 그것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라는 조금은 진부한 표현의 각오였다. 물론 결과는 충실하고 진지한 과정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너무나 결과에 집착하며 아무래도 모든 것들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친목회의 제일 큰 목적이 잘 모르는 단원들과의 친교 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친목회 자체는 불과 1~2시간 정도의 친교시간을 주기에, 도저히 그 자리에서 의미 있는 친교는 힘들다. 게다가 친목회 자리에서조차 평소에 모이고 있는 단원들끼리 모이게 된다는 현실을 알면 더욱 친교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친목회에서 열리는 각종 프로그램에 서로 소속이 다른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연습, 참여를 하며 그곳에서 시간을 두고 친교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결책이었다. 실제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평소에 겨우 얼굴 정도나 알던 단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나에게 이 친목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도 조금 생각을 하며 이날을 맞게 되었는데, 아마도 나의 ‘깊어가는’ 나이를 더 의식하지 않았을까? 이런 것도 세월이 깊어 갈 수록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그런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한 ‘최선’을 다해서 참여를 하자는 각오를 가지고 임했다. 특히 대다수가 여성 단원들인 우리 레지오에서 나 같은 남자단원들이 가질 수 있는 외로움, 소외감, 위축감 등등을 어떻게 이런 기회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가도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러한 ‘요새 남자들의 문제’는 이곳만이 아닐 것이고 전반적인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나, TV를 보나, 영화를 보나.. 요새는 여자들만 보이는 것 같고, 남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레지오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사회적, 문화적 흐름을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특히 나이 먹은 남자들에게는 더욱 뚜렷하다.

 이런 우울한 남자들을 생각해서 작년 총 친목회 때 의도적으로 남자들만의 시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 두 남자가 sing-along 을 lead 한 것인데, 결과는 별로였을까.. 올해는 아예 다시 해달라는 요청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친목회 2주를 남겨두고 연습 진행상태가 별로였는지 급작스럽게 sing-along team을 다시 만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작년의 2명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맞추게 되었는데 올해는 조금 욕심을 부려서 ‘숨어있는 남자 인재’를 찾아 보려고 하다가 결국 예상을 뒤엎고 3명의 남자를 ‘발굴’ 해 내었다.

이 남자들은 몇 년 동안 그저 얼굴만 간신히 아는 정도였는데 운 좋게 ‘의기투합’이 된 것이고, 이중에 2명은 끝 무렵에 연숙에게 ‘걸려서 등을 떠밀려’ 온 case였다. 그래도 그들도 정말 오랜만에 ‘목청’을 쓰는 듯 신기해하며 동참을 했고 우리의 의도인 ‘친목도모와 즐기자’ 라는 것을 잊지 않고 결국 친목회에서 남자 5명의 sing-along team이 debut를 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올해 총 친목회의 추억이 될 것이다.

올해도 여흥순서의 사회를 연숙이 맡았는데,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나이도 그렇고, 3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어찌 안 그렇겠는가? 다른 사람을 계속 찾아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인재’가 없다고 푸념들만 하는 모양인데, 참 알 맞는 사람이 없기는 해 보인다. 연숙의 부단장 직이 내년 중에 끝이 나기에 그때만 기다리는 모양이지만, 그것이 끝 나도 글쎄.. 작년에는 청년 단원들이 중심으로 강남스타일을 요란하게 멋지게 보여주었는데, 올해는 완전히 스타일이 바뀌어서 엄숙하고 느린 모습의 body worship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많은 단원이 참가한 합창은 기대 이상으로 멋진 화음을 연출하였고, 참가 인원이 적어 고민하던 ‘춤’ team 도 아주 귀엽고 신선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제일 시끄럽고 신명 나고 신났던 것은 역시 우리부부가 다 참가했던 난타가 아니었을까? 이 프로그램은 연습기간과 참여도가 제일 우수했던 것이어서 결과에 상관없이 대 성공을 이룬 case가 되었다. 국악을 전공한 자매님이 열성적으로 2달에 걸쳐서 지도한 열매였다.

 이 행사로써 올해 레지오의 주요 행사는 다 끝났고, 이제는 조용히 대림절 4개의 초가 하나씩 켜지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고, 그 후에는 또 한 해를 다 보낸다. 비록 구세주 탄생은 기쁜 것이나 이제는 솔직히 이 나이가 되니 내년 이맘때 다시 한번 친목회에 참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곁들여서 그런지, 한 해가 가는 이 시점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그야말로 미묘한 기분의 12월인 것이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레지오 합창 team

 


베토벤 바이러스, 윤도현 아리랑 – 난타 team

 


Group Game – 참가자 모두

 


사랑으로‘ , 고 김수환 추기경 애창곡 – finale, 모두가

 

  1. 나는 현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서기로 있고 연숙은 같은 쁘레시디움의 단장인 동시에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의 부단장으로 모두 꾸리아에는 직접 간접으로 깊이 관련이 되어있다.

소까나.. 12월인가..

소까나~ 소까 소까 そうかそうか.. 참 이렇게 일본말이 다정하게 느껴지니.. 이럴 때, 그래, 그래 보다 소까 소까도 잘 어울린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일본을 조금이라도 알고 죽자’ 라는 이상한 느낌에 끌려서 이제까지 거의 7년이 지나고 있다. 비록 몇 년 전부터 조금씩 slow-down이 되고 있고 새로 나오는 드라마 video가 없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동안 쌓였던 그 수많은 어떤 것은 classic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의 좋은 이야기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짧은 단어 정도는 알아 듣지만 그 이상은 아마도 무리 무리.. 조직적으로 배울 의욕과 생각도 사실은 없다. 이 정도면 나의 욕구를 채웠다고 생각하니까.. 최소한 이질감과 거부감 없이 그들의 ‘언동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래.. 12월이 벌써 6일로 접어든다.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다음에 눈을 깜빡 뜨고 달력을 보면 분명히 중순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정말 정말 어떨 때는 한 달이 오래 전의 하루와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60대에서 60마일로 달린다는 ‘병신 같은 표현’이 그렇게 적절한 듯 느껴진다니까.. 조금은 슬프다. 내가 70대를 산다면 10마일이 더 빨리.. 그러니까 한 달이 아마도 8시간 정도의 느낌으로? 와.. 싫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순리와 진리를..

조그만 폭풍이 지난 듯한 느낌으로 며칠째 시간을 보낸다. 그 폭풍이란 물론 우리 부부가 ‘거세게 개입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였다. 성탄의 기분을 내기에는 너무나 빠른 12월 1일에 우리가 제일 먼저 성탄기분의 선두주자인 듯 tape을 끊은 것이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정말 이를 악물고 악물고 ‘즐겁게 준비하고 즐겁게 치르자’ 라는 결심을 하고 지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비교적 stress를 잘 조종하며 보냈다. 덕분에 얼굴로만 알던 단원들과 지척에서 어울릴 수도 있었고 특히 남자 단원들이 더 값지게 다가왔다. 전 요셉, 김 빠찌피코, 한 그레고리오 형제 같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다 작년부터 알게 된 박 대건 안드레아 형제까지 5명이 친목회 lower stage에 서게 된 ‘큰 일’을 한 것이다. 나도 노력했지만 연숙의 pushy함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sing-along을 잘 주도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선례를 남겼고, 새롭게 서로들이 만났으니 말이다. 난타 program도 마찬가지.. 우리부부 정말 열심히 참가하고 즐겼다. 거의 2달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으니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해도..

Thanksgiving prayers, 2013

best ever.. roasted, 2013
best ever.. roasted, 2013

Thanksgiving prayer.. 추수감사절 기도..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이날을 맞곤 했지만 만찬 식사 table에서 가족 ‘기도’에 관한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명색이 가톨릭 크리스천이었지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앉아 turkey를 앞에 놓고 한 마디도 못하곤 했다. 언젠가 ‘가장’으로 기도를 하라는 연숙의 말에 깜짝 놀라 한마디 했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어불성설’ 같은 넋두리였고, 아이들도 속으로 웃는 것처럼 들렸다.

가톨릭 신앙인으로 내가 가톨릭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자유 기도를 잘 못해도 괜찮은’ 묘한 전통에 있었다. 최소한 개신교인 들에 비해서 그렇다. 그들, 개신교인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도’ 잘하고 길게도 한다. 몇 년 전 동창회 모임에서 어떤 개신교 자매님의 식사 전 기도가 거의 30분을 끈 것을 보고 나는 그런 확신이 생겼다. 개신교인들은 자유 기도의 귀재 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 주님’ 하며 남들이 보이게 지나치게 긴 통성기도를 하는 그들을 보면 성경에서 그런 모습의 바리사이 Pharisees 를 질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개신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비과학적인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의 기도 ‘실력’의 1%도 미치지 못할 듯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도를 말로 하건 속으로 마음으로 하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에게 들리는 기도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또다시 강조하지만, 개신교 형제, 자매들은 ‘기도와 성경’의 실력에서 99% ‘본 고향’인 천주교를 완전히 앞지른다. 의식과 전통을 경시하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사실 성경과 기도일 것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한다.

올해, 오늘 추수감사절 식사는 단촐 하기만 한 우리 식구만 모여서 지난 일년의 ‘은총과 은혜’를 감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모이기 전에 연숙이 나보고 꼭 식사 전 ‘가장’ 기도를 하라고 귀 띰을 한다. 또 우물거리며 넘기려던 나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올해는 조금 예년과 다르게.. 이것 이것.. 한번 도전해 보자 라는 오기가 조금 생겼다. 이것도 근래 3년간 겪고 있는 나의 faith renaissance 중에 하나인지는 모르지만 작년과 다르게 나의 머리가 굴러가고 있었다. 시간은 2시간.. 어떻게 ‘작문’을 할 것인가.. 차츰 머리가 굳어짐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가 머리가 번쩍! 하였다. 아하! 우리 천주교에는 주옥과도 같은 ‘염경念經’ 기도문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예전 같으면 이런 ‘알려진 기도문’은 책에서 찾아야겠지만 요새는 internet이 있어서 쉽게 ‘감사기도문’을 찾을 수 있었다. 항상 감사하며 살라는 성경의 말씀은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 18) 로 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자유기도에서 성경을 인용하기는 조금 무리였다. Thanksgiving Day 에 하기 알맞은 것을 찾아내었다.

 

Thank you Father, for having created us and given us in all our joys and sorrows, for your comfort in our sadness, your companionship in our loneliness.

Thank you for yesterday, today, tomorrow and for the whole of our lives.

Thank you for friends, for health and for grace.

May we live this and every day conscious of all that has been given to us.

We pray through Christ our Lord, Amen. +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절대로 bilingual은 아니기에 우리들이 태어났을 때 얻었던 우리 말로 하는 기도도 필요하였다. 짧고 단순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내가 ‘만든’ 것이다.

 

주님, 올해도 저희 가족들에게 건강과 평화를 주심에 저희 모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우리 옆에 없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주신 것, 감사 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Deep November

¶  11월 26일, 이천 십 삼 년.. 이천, 이천, 2000 을 연상하며 문득 아~~ 지금은 2000년 대였지.. 하는 자괴감이 젖어 든다. 왜 천 구백.. 1900 이 아니고 2000인가.. 그러니까 나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천 구백이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충분히 오래 산 ‘늙은’ 인간이다.

그것도 11월이 주는 을씨년스런 느낌 또한 나를 움츠려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아주 깊은 11월, 깊도록 깊은 가을의 느낌, 나는 이런 진한 색깔의 나날을 어떻게 감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작년과 비교하고 5년 전과도 비교하고 심지어 20년 전도 돌아본다. 작년과는 거의 비슷할 듯하지만, 5년 전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일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앞도 방향도 잃고 살았고, 지금은 최소한 앞도 보이고 방향도 제대로 잡은 것이다. 물질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이제는 믿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한 달.. 계속 그런 희망의 심정으로 살고 싶기만 하다.

 

¶  겨울 같은 느낌의 올해 가을, 이곳 지방 deep south의 첫 눈발이 예보가 되었다. ‘아주’ 추울 것이라는 북 미주 동부지방 장기예보에 눈에 대한 것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snow flurries란 말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역시 하늘에 지천으로 깔린 습기 때문이 아닐까? 기온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는 그 ‘물’이 하늘에 항상 떠 있는 상태가 올해 이곳 기상의 특징이었으니까.. Thanksgiving Day가 이틀이 남은 지금, 차갑게 내리는 비가 오늘 밤, 내일 아침 사이에 ‘분명히’ 눈발이 날리는 날씨로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내려도 곧 녹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서 하얀 ‘떡 가루’ 들이 내려 온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교통상 지장은 제로 일 것이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심리적은 효과는 대단할 듯 하고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요란하게 선을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공동체적 심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듯 하다.

올해 우리 집의 Thanksgiving Day는 어떨까 했지만.. 역시 조금 게으르기로 작정하고 우리 식구, 작기만 한 네 명만 모이기로 했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무언중에 ‘피곤할 듯’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린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 꼽을 정도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노력을 해면.. 식구가 너무나 적은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최소한 ‘비행기가 필요 없는’ 곳들에 살고 있어서 궂은 날씨도 큰 상관이 없어서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작년부터는 엄마가 주 요리인 turkey와 stuffing같은 것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나머지 side dish들을 모조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는 크게 할 일이 없다. 유일한 것이 mashed potatoes 정도일까. 그저 먹어주기만 하면 되니, 조금은 편한 하루가 될 것이다. 물론 조금 힘이 들어가는 dish wash는 주로 나의 담당이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으니 별 다를 것은 없다. 그저 그저, 평화스럽게 올해의 100% 일어난 일들에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만 빌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 아닌가 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  First white stuffs & ‘Kenny G‘ time again.. 하루 종일 세차게 뿌리던 비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하얀 물체로 변해서 풀밭이나 deck, 차의 유리창에 얹혔다. 아주 이른 아침 세찬 바람소리에 깨어서 어두운 밖을 살펴보니 무언가 하얀 것들이 보였고 곧바로 아하~ 올해 첫 white stuff임을 알았다. 바뀌어가는 계절의 상징들.. 어찌 이 나이에 조금은 철학적, 더 조금은 신앙적으로 안 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무섭게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6.25 직후의 서울의 ‘덜 난방 된’ 온돌 방에서 화로 불에 이불을 쓰고 모여 앉았던 어린 가족들의 걱정 없었던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연상 시키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었다. 작년 보다 더 빨라진 holiday in the air.. 일 주일 안으로 다가온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 연습의 바쁜 움직임에서 느끼는 이른 12월의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결국은 또 Kenny G season이 온 것이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Kenny G의 saxo.. 너무나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Winter classic, Kenny G

My Winter classic, Kenny G

What A Wonderful WorldKenny G

 

 

눈 나리는 buckeye stadium

우연히 TV(on pc)를 보니 Ohio Stadium이 보이고 football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turf에는 눈이 조금 쌓인 것이 보였다. 아.. 그랬지.. midwest 의 그 추운 밤이었다. 그것이 30년도 훨씬 넘었을 적이었지. 다른 channel을 보니 이곳은 또 다른 midwest인 Norte Dame football의 광경이고 여기도 눈발이 세차게 날린다. 같은 지방이니까 같은 눈이 나리는 것이다. 또 역시 깊은 추억에 잠기고 고뇌를 느낀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고뇌 속에, 그래도 그때 나는 ‘젊었었지’ 하는 환상적인 기쁨이 교차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빠지고 젊은 외모가 그렇게 그리워짐은 나이가 먹는 과정에 따르는 고문일까, 쓸데없는 걱정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이것도 ‘독특한’ 나이기 그렇게 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가장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무섭게 피하고 싶은’ still picture, 나의 사진.. 옛날 이동준씨가 그렇게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할 때 의아했던 심정, 내가 그 꼴이 되었다. still picture의 요술.. 지난 20년 동안 마음에 드는 모습의 사진은 거의 없지만 있었다면 그것은 나를 며칠이고 황홀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몰골’이 나를 도망가게만 했다.

가을 시 3선

불과 한 주일 만에 완전한 ‘진짜’ 가을의 풍경으로 변했다. 그 전에는 사실 가을로 부르기에는 주위가 너무나 ‘파~란’ 모습들이었지만, 며칠 전 ‘썸머 타임, Daylight Saving Time‘의 해제로 하루아침에 너무나 어두워진 저녁 6시의 냄새와 더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가을 임을 나 자신의 ‘생애의 가을, Autumn of my life‘과 연루시키며 묘한 감상에 젖어 들고, 낙엽 탄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것 같은 ‘fireplace의 따뜻한 연말 휴일’ 의 공기마저 느껴진다.

유별나게 시원하고 축축했던 올해의 여름은 정말 행복할 정도였고, 하늘의 은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년에 한두 번씩 나타나는 hurricane이 하나도 없는 대신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이 또한 유난히도 지루하고 길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교대하는 기간이 길었던 것인데 그것이 이제 작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예년에 흔히 느끼던 전형적인 ‘가을의 감상’ 을 많이 놓치는 듯 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대부분의 ‘감상적’ 시간은 남이 보기에, 내가 보아도 조금은 유치할 것처럼 보이니까..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인가 할 정도로.. 이맘때면 꼭 생각나고 기억나는 가을의 시는 역시 도종환 시인의 ‘가을 시 3선’ 이다. 시인은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해서 나도 10대의 감상에 흠뻑 젖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시를 감상한다.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늦가을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날 살아야 할 이 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깊은 가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부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 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Ugliest websites ever..

I have been a long-time viewer of news websites: msnbc.com and npr.org until now. But late total redesign of their sites were truly double whammy for me, too severe to tolerate. It’s so sad for me have to not look at those ugliest sites. Overblown pictures, ugly typography, without scrolling can’t see the 2nd articles, etc etc.. Right after the Obamacare website’s fiasco, what’s going on with these ‘too-progressive‘ web designers? Looking at these two ‘weird-looking’ sites, I can’t help but concluding the two sites were designed by the ‘progressive’ designer. Now, I have to love the New York Times web-look more than ever.

 

msnbc-1Surprise! Goodbye msnbc.com..

 

npr-1Had to look different so bad?

 

 

첫 추위, 살아난 ‘고물’, 묵향전

2013-10-25 16.21.28-1¶  올해 들어서 첫 ‘계절 추위‘가 선을 보였다. 이 지역 장기 예보는 분명히 올해 평균 이하의 겨울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그렇게 쉽게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통계와 확률에 바탕을 둔 것이라 무시할 수도 없지 않은가? 북미주 동쪽의 거의 전부가 늦가을 같은 첫 추위를 느꼈고 이곳 아틀란타 지역도 만만치 않게 빙점에 가까운 온도와 바람까지 동반된 것으로 ‘명절, 휴일’ 기분까지 나게 하는 약간은 반가운 느낌도 들었다.

작년에 애용했던 radiant space heater를 꺼내어 따뜻한 빛과 열을 처음으로 보고 느낀다. 아직도 새파란 숲들이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10월 31일(10월 마지막 날)이 오랜 전통의 Halloween day.. 관련된 색깔은 pumpkin(호박)의 진 주황색이라 역시 본격적으로 ‘떨어질’ 낙엽을 그린다, 이 날이 다가오면 우리 애 들이 어린 시절 동네를 돌며 trick-or-treat 시키던 기억과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을 느끼며.. 아, 우리가 이곳에서 오래 살았구나 하는 야릇한 감상에 젖는다.

칠흑같이 깜깜해진 아침 6시 45분경 2층의 난방이 가동을 하면 나는 조심스레 어둠 속을 헤치고 나의 서재로 간다. 우리 집 잠꾸러기 10살짜리 개 Tobey(토우비)는 포근한 자기 침대에서 완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자동 프로그램이 된 아래 층 전깃불들로 아래층은 이미 밝지만, 때 맞추어 고장이 난 난방시설(gas furnace) 덕분에 냉장고처럼 냉랭하다. 아래 층의 주인인 7살짜리 고양이 Izzie(이지)는 벌써 활동개시.. 활발히 돌아다닌다.

거의 zombie처럼 어둠 속에서 나는 아침의 즐거움인 hand-drip coffee를 커다란 mug에 담아 서재로 올라온다. 그때부터 8시까지 나만의 소중한 1시간이 시작된다. 이런 routine이 이제는 일년도 넘게 ‘완전히 고정’ 되어서 거의 robot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조금 있으면(11월 3일, 11월 첫 일요일 새벽) Daylight Saving Time(DST, summer time)이 끝이 나며 아침이 조금은 더 밝아지고(대신 저녁은 더 일찍 깜깜해짐), 그것이 시작되는 날 한 시간 더 잠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어김없이 정직하게 또 계절은 바뀌고 있다.

 

¶  지난 주 첫 추위가 왔을 때, 아래층 gas furnace가 문제가 생겨서 ‘가동’을 못 했고 부랴부랴 아래층은 각종 electric space heater들을 동원해서 난방을 하는 귀찮음을 겪었다. 30년 넘은 ‘고물’이 드디어 숨이 넘어감을 느끼며, 수 천불이 들지도 모르는 이것 한번 더 내가 손을 보았는데 다행히 그것의 심장 격인 heat exchanger는 문제가 없었고 fan control system인 전기 쪽에 문제를 발견하고 부랴부랴 그 부품을 order를 해서 오늘 그것이 도착하였다. 요새는 거의 모든 것들이 electronic 그것도 microcontroller를 사용해서 온도를 조정하지만 30년 전에는 ‘완전히 기계식’이었다. digital, analog 이전의 100% mechanical control인 것이다.

이것의 장점은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보는 것이 전부였던 그 옛날이 다시금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온도를 감지하는 bimetal boom의 길이가 원래의 것 보다 조금 짧았지만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furnace 속의 온도가 4″ 정도의 거리에서는 거의 같기 때문이다. 한 시간 걸려 망가진 것과 바꾸어서 power switch를 켜는 그 순간.. 언제나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순간이다. 세상에 100%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랜 만에 난방 system의 blower fan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아마도 최소한 $350은 절약했을 것이다. 이것이 ‘공돌이’ 들이 느끼는 자부심이다.

 

2013-10-28 14.04.49-1‘shiny brand new’ furnace blower fan controller

 

¶  지난 이틀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제4회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이 열렸다. 몇 년 전에 연숙이 이곳에 가입을 해서 토요일 마다 땀을 흘리며 배워왔고 매년 이맘때 쯤 회원전을 열곤 했다. 나도 따라 다니며 보곤 해서 이제는 아주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나보고 해보라고 하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하지만 보는 것은 조금씩 눈이 열리는지 많이 나아졌다. 내가 그렸던 것은 50년 전에 그렸던 만화가 전부여서 나는 사실 미술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이런 동양화 쪽은 더 그렇다. 하지만 그리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조그맣게 시작한 이곳 묵향회, 이제는 회원들도 늘어났고 그것에 비례해서 출품 작도 많이 늘었다. 거의 50 점이 넘게 전시가 되었고, 많은 회원들이 ‘호’를 받고 그것을 새긴 ‘인’ 도 찍고 해서 아주 ‘프로’의 맛을 보여준다. 성당에서 전시를 하기에 신부님도 나와서 참관을 했는데, 3년 전의 것을 기억을 하시는지.. 처음보다 너무나 나아졌다고 논평을 했고, 솔직히 처음에는 모두 ‘습작’ 수준이었다고 해서 모두들 웃었다. 이곳 교민 인구가 제법 불어나서 이제는 이런 취미 모임들도 큰 무리 없이 유지가 됨을 보고 참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개막이 되던 날은 새로니, 나라니도 이곳을 찾아 주어서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2013-10-26 17.06.47-1 제4회 아틀란타 묵향회회원 작품전 개막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2013

한글로 된 레지오 공인 교본을 보면 ‘연차 총 친목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꾸리아는 가능한 한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 축일‘(12월 8일)에 가까운 날에 모든 단원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연차 총 친목회를 열어야 한다. 이 행사는 필요에 따라 성당 안에서의 의식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 행사에는 친교의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만일 성당 내 의식 때에 레지오의 기도문을 바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뗏세라의 기도문을 보통 회합 때처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바쳐야 한다.

연차 총 친목회의 참가 범위는 레지오 단원으로 한정시키는 것이 좋다. 여흥 순서에 곁들여 레지오와 관련된 이야기나 글을 발표하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단원들이 너무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많은 단원들이 참석하고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 행사의 취지는 참석한 단원들이 모두 서로 낯을 읽히고 친숙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원들이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순서를 짜야 한다. 진행을 맡은 사람들은 단원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단원들이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있게 되면 레지오 가족의 단결과 우애의 정신을 북돋우려는 이 행사의 취지를 살릴 수 없게 된다.

 

‘연차 총 친목회’라는 레지오 용어의 ‘원어’는 사실 The Annual General Reunion 이다. Reunion을 ‘친목회’로 번역한 것은 의역(의미를 옮긴 것)이고 그런대로 의미가 잘 전달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reunion이라는 단어의 맛은 역시 ‘오랜 동안 떨어져 있던 친구,동창을 일년에 한번 다시 만나는 행사’ 라는 것이 아닐까? 레지오 활동의 중심점에 있는 꾸리아 산하에는 사실 지역적으로 떨어진 쁘레시디움들도 있을 것이니까 서로 얼굴도 모르기에 일년에 한번 이렇게 ‘모두’ 모여서 ‘친교’를 이루자는 뜻의 행사일 것이다.

우리가 속한 꾸리아1의 사정은 비교적 대다수의 쁘레시디움이 같은 본당 소속이어서 그런대로 얼굴 정도는 조금 아는 정도이지만 그것이 전부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온 단원들은 더 눈에 잘 띄어서 더 익숙하기도 하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 행사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은 각 쁘레시디움 단위로 이루어져서 이것을 통한 통 넓은 친교를 이루기는 무리였다. 그러니까 일년 내내 같은 방에서 보는 사람들과 ‘더 친하게 되는’ 기회만 제공한 셈이었던 것이다. 그런 단점을 알고 작년부터는 쁘레시디움 단위의 프로그램을 완전히 없애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정하고 그곳에 가급적 모든 쁘레시디움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합창, 춤 같은 프로그램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서로 모르던 다른 쁘레시디움의 단원들도 조금은 알게 되는 기회를 얻는 것이고, 사실 효과적이어서 나 자신도 ‘잘 모르고 지내던’ 단원 몇몇을 사귀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작년 12월 초 총 친목회의 추억이 마치 한달 전 같이 느껴지는 가운데 ‘벌써’ 2013년 ‘연말’ 총 친목회를 준비하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합창, 춤 그리고 난타의 세가지가 계획되고 희망하는 단원들이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에 나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다른 남자 단원과 함께 듀엣으로 3곡의 노래를 불렀고 올해도 ‘요청’만 들어오면 다시 한번 할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작년에 우리가 한 것이 별로였는지..하는 실망감도 없지 않다. 올해 나는 연숙과 같이 난타 라는 ‘두드리는’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현재까지 4번 연습을 하였다. 알고 보니, 이 ‘난타’라는 것은 부엌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마’를 두드리는 모양이다. 다른 것으로는 ‘통, bucket’ 을 뒤 엎어놓고 치는 것과, 국악에서 쓰는 ‘북’이 있는데 대부분 여성들은 도마와 ‘통’을 치고 나는 북을 치는 그룹에서 북을 치게 되었다. 배경 음악은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경쾌한 것과 우리 민요를 바꾼 ‘윤도현의 아리랑‘인데 박자감각만 있으면 우선은 견딜 수 있는 것이고, 연습하고 나면 기분도 좋았다.게다가 잘 모르는 다른 쁘레시디움들의 단원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도 되어서 레지오 교본에 나오는 행사의 의미도 되새기게 되었다.

 

UPDATE, UPDATE!
12월 1일에 열린 총 친목회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12/9/2013

 

베토벤 바이러스

 

윤도현의 아리랑

 난타 연습용 북과 북채집에는 큰 북이 없어서 이렇게 ‘장난감’ 북과 북채로 연습을 한다

 

  1.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Clunker’ furnace fires up, then..

30+ year old clunker furnace
30+ year old clunker furnace

10월 20일, 2013.. 드디어 그날이 왔다. 매년 가을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이 ‘점화’되는 그날이.. 올해는 평년에 비해 며칠이 늦었을까.. 확실치 않지만 그럴 것이다. 일주일 전쯤 아침 기온이 떨어짐을 느끼고 thermostat를 winter mode1로 바꾸어 놓았고, 아래층 furnace(gas heater)의 pilot light도 ON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래층의 pilot light는 올해부터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아예 꺼놓았다. 여름 동안 ‘공연히’ thermocouple, pilot light를 ‘달구어’놓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래층 furnace의 ‘점화’ system이 바로 classic system으로 pilot (gas) light를 ‘항상’ 켜 놓아야 heater가 가동되는데 이제는 조금 귀찮게 느껴진다. 2층의 system은 electronic system이라 ‘전기’만 있으면 언제고 점화가 된다. 근래의 거의 모든 natural gas system이 electronic firing인데 이렇게 ‘고물, clunker‘들이 문제인 것이다.

pilot light는 글자 그대로 ‘항상’ 아주 작은 ‘불’을 켜 놓고 점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많지는 않지만 natural gas 를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제일 귀찮은 것은 이 pilot light가 꺼질 때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thermocouple이 오래 되면 이것이 저절로 꺼진다. 안전을 위한 장치인데.. 이럴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어둡고 축축한 crawl space를 ‘기어들어’ 가야 하는 고역을 겪는데.. 이런 것들을 여자 특히 ‘노인’ 혼자 살게 되면 어떻게 감당을 할까? 아마도 분명히 handyman에게 전화를 거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2 아직도 그래서 여자건 노약자건 혼자 사는 것은 ‘비싼’ 선택이거나 운명인 듯 하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 아래층 pilot light를 ‘분명히’ 지난 주에 점화를 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 아래층이 ‘썰렁하고’, heater가 켜지지 않고, 조용했으니.. 분명히, 아마도.. 그것이 무슨 이유에선가 ‘꺼졌을’ 것이다. 또 ‘기어들어’ 가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여유 있는 추측은 빗나갔다. 예상했던 thermocouple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 gas가 안 나옴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gas valve를 control하는 24V AC power가 안 나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transformer 문제일까? 하지만 a/c (에어컨)를 켜보니 그것은 잘 나온다. 그렇다면 transformer는 OK인데.. 그렇다면 무엇일까? ‘아깝기만 한’ service call을 할 시간이 다가오나? 하지만 아직 빙점까지는 아니고, 문제가 난 곳이 아래층이니까, 그렇게 급할 것 없다. 조금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기어 나왔다.

 

30+ year old clunker furnace 본격적인 service mode, controller와 blower가 노출이 되었다

 

머리 속이 다시 ‘detective‘ research mode로 완전히 전환이 되며 열심히 googling을 하며 해답을 찾았는데.. 나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이번에 ‘공부’한 것으로 확실히 알게 된 것 중에 우리 집 아래층 furnace가 놀랍게도 30년이 조금 넘어가는 그야말로 ‘고물 중의 고물, clunker 중의 clunker’ 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선 와~~ 이것이 정말 오래 전에 우리들이 느꼈던 Made In USA의 perfect case가 아닐까.. 하는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큰일 났다, 드디어 꽤 많은 돈3을 써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교차하는 심정. 그러니까 우리 집이 처음 건축될 당시4에 설치했던 heating system이 이제까지 거의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24VAC transformer & fan relay한때 의심을 받았던 24VAC transformer와 blower relay

 

지금 나에게 Internet이 없었고, googling 이 없었다면 여기서 나의 story는 끝 났고, ‘아마도’ HVAC5 guy의 truck을 기다리며, 얼마나 수리비가 들어갈까 고민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정보의 홍수’ 도움으로 조금은 걱정이 줄어들었다.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가는 내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1981년에 설치된 우리 집의 이 clunker가 어떤 종류인지 알았고, 어떤 ‘부품’이 쓰였는지도 조금씩 들어난다.

Brand name은 Premier Furnace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어떤 커다란 ‘공장’6에서 사다가 자기의 상표를 붙인 case였다. 1981년의 기술적인 수준은 electronic control은 전혀 쓰이지 않았던 그런대로 ‘간단한 기계식’이어서 부품만 찾으면 내가 손수 고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어떤 부품이 현재 망가지고, 그 부품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의 값은 얼마인가.. 나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Honeywell Fan limit switchwhole system을 정지 시켰던 장본인, Honeywell Fan limit switch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heater를 켰을 때, thermostat의 relay click 소리가 난 후에, 암만 기다려도 잠잠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fan(blower)소리도 안 나고, 더운 공기도 안 나온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바람이 안 나온다는 것은 100% blower(fan)이 안 도는 것이고..blower가 망가졌거나, 그곳의 power가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Fan은 manual control로 test하면 잘 들어온다. 그러니까 blower가 아니고 그것을 control하는 24VAC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공부를 해 보니 heating mode에서만 쓰이는 또 하나의 blower control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fan limit switch란 것이었다. Honeywell에서 만든 것으로: 이것이 바로 furnace의 온도에 따라서 fan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Thermostat에서 heat demand 신호가 갔을 때, gas valve가 열려서 점화가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furnace내부의 온도가 오르며 fan switch가 켜 지고 난방이 시작되는데.. 지금은 이 switch에 문제가 생겨서 그대로 온도는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에는 ‘너무 뜨거워져서’ system이 자체로 shutdown이 된다.

결국, 수 천불을 들여서 이 ‘고물’을 교체하는가 했지만, Honeywell fan limit switch를 $70 정도로 order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마도 며칠 뒤에 이것이 도착하면 아래층 겨울은 그런대로 ‘무사히’ 지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끝 난 것이 아니다. 올해가 지나면 우리 집 아래층 system은 한 살을 더 먹는 셈이고.. 우아.. 32살이 되나.. 나의 관심은 이 clunker가 과연 언제까지 돌아갈까 하는 것이다. 나도 늙어가고 이것도 늙어 가고.. 이 ‘고물’은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떠한가?

 

  1. 최고 68F, 최저 62F
  2. 아마도 이런 것도 최소한 $100를 받지 않을까?
  3. furnace자체 값만 최소 $1000, installation 을 더하면 최소한 수천 불?
  4. 우리 집은 1982년에 건축되었다.
  5. 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아마도 우리말로 ‘냉열’ 쯤 되지 않을까?
  6. Consolidated Industries, 당시에 무지 큰 회사였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9

노벨경제학상 수상할 경영이론 과연 나올까?

2013.10.16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누군가가 앞으로 경영학분야에서 노벨경제학상 을 탈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타야 할 것인가를 필자에게 묻는다면 아무래도 2008 미국 발(發)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관련하여 그 해법을 제공하는 사람이거나 부(富)창조 동인인 혁신과 관련하여 설득력 있는 독자이론 주창자라야 할 것이라 답할 것 같다. 물론 이들을 동시에 설명해 주는 기업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the firm)이라도 나온다면 그게 당연히 노벨경제학상 감이라고 답하리라고 본다.

다이나마이트(dynamite) 개발로 세계 부(富)를 긁어 모은 스웨덴의 노벨(Alfred Nobel), 그의 유훈에 따라 제정된 노벨상은 1901년부터 2012년까지 물리, 화학, 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에 대해 주어져왔는데 1969년부터는 경제학상이 추가되어 그간 555회에 걸쳐 863의 개인과 기관이 수상하였고, 이중에서 경제학수상은 43회에 걸쳐 50여명 웃도는 사람들이 수상하였는데, 이번 2013 노벨경제학상을 끝으로 2013 모든 노벨상 수상자는 정해졌다. 경제학과 경영학 경계를 규정짓는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제껏 경영학분야에서는 단 3명만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첫 번째 분은 경제학에서 빌려 온 최적화 (optimization) 방식을 경영학 배태기 때부터 오랫동안 기업의사결정에 준용해 오던 때인 1950-60년대에 이와 다른 새로운 관점의 만족화(satisficing) 방식을 개척한 공로로 1978년에 수상한 사이몬(Herbert A. Simon)이다.

 두 번째 수상자는 1991년 로날드 코스(Ronald H. Coase)인데 그는 경제제도의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과 재산권(property right)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명확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였다.

 세 번째 수상자는 2009년 기업의 경계(boundaries of the firm)를 분석하여 경제 지배구조(economic governance)를 다룬 공로로 수상한 올리버 윌리암슨(Oliver E. Williamson)이다.

그런데 경제학과 경영학은 경제, 산업, 기업 간의 관계를 어떻게 연관 지어 보느냐에 따라서 그 구분이 물론 달라질 수 있는데 이익(이윤) 추구의 생산경제주체인 기업 본연의 성격을 강조한다면 두 번째 및 세 번째 수상자는 경영학자라기 보다는 미시경제학자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이먼 만이 경영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실 사이먼도 경영학자라기보다는 경영학분야에서 심리학을 가르친 심리학 분야의 석학이다.

경제학에서의 의사결정은 언제나 최적화를 지향하는데 최적화란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목적하는 바를 극대화 또는 극소화시키는 의사결정구조를 다루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최적화(optimization)는 인간을 합리적・경제인(rational economic man)으로 전제하고 또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는 전지의(omniscient) 상황에서 특정 문제에 대한 모든 해결대안을 탐색하고 평가하여 최선을 선택하는 의사결정방식으로 완전한 합리성(perfect rationality)을 전제한다. 수리적으로는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와 목적함수에 포함된 결정변수(decision variables)의 값을 제약하는 제약조건(constraints)들을 충족시키면서 목적함수의 값을 극대화 또는 극소화시켜 주는 결정변수의 집합(이를 최적해: optimal solution 라고 함)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최적화에서는 우선 문제(problem)에 대한 모든 해결대안(all alternatives)을 열거하고 각 대안에 대한 예상결과를 평가한 후 최선의 것을 규범으로 선택하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의사결정방법임에 틀림없지만 문제와 문제해결대안 및 각 대안의 예상결과에 대하여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는 전지(全知)한 경우에만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실제로 많은 경우,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이런 배경에서 사이먼은 최적화(最適化)와 다른 각도에서 만족화(滿足化)를 주창했다. 사이먼은 1950년대에 의사결정구조(decision-making structure)면에서 합리적 경제인・완전한 합리성을 전제로 최적화를 추구하는 경우와 달리, 사회인(social man) ․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전제로 만족화(satisficing)라는 의사결정과정(decision-making process)을 다루면서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s)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확립하였다.

 만족화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할 때 모든 대안을 탐색하는 대신에 가능한 대안들만을 탐색하고 이들을 욕망수준(level of aspiration)에 기초하여 평가를 행하다가 욕망수준을 충족시키는 첫 번째 대안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즉, 만족화에서는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욕망수준을 설정하고 대안을 탐색하고 평가해 나가다가 욕망수준을 능가하는 대안이 발견되면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만족화에서는 제한된 합리성만이 추구될 뿐이다.

만족화의 철학은 실제세계에서 최적해를 얻기에는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과 상충요인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것보다 좋으면서 그 정도면 족(足)하다는 욕망수준을 주관적으로 정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결대안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때 그 채택대안은 최적해(最適解)는 아니지만 현실적인 만족해(滿足解)라고 인식한다.

 만족화는 보다 현실에 가까운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최적화보다 실제적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의사결정에 있어서 욕망수준이라는 주관적, 심리적 요소가 도입됨으로써 단순히 의사결정과정을 기술(記述)할 뿐, 의사결정에 있어서 규범성을 제시 못하는 한계를 물론 지니게 된다.

 아무튼 사이먼은 오랫동안 경제학 영역의 최적화방식을 원용해 오던 기업세계에 독자적인 의사결정방식으로 만족화(satisficing)모델을 제시하고 행동과학이라는 학문세계를 열어 온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혁신주체인 기업을 축으로 한 경영학 이론과 관련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다음주자는 과연 누구일까? 아마도 기업과 산업과 경제에 있어서 경제성장발 전의 동인/동력에 관해 명쾌한 틀과 논거에 기초하여 연구한 학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필자에게 그 선발권을 준다면 필자는 혁신이나 기술변화가 경제성장・발전의 원동력임을 설파한 슘페터(Schumpeter, 1934)와 넬슨 ・윈터(Nelson and Winter, 1982)을 우선 추천하고프다. 그런데 슘페터는 이미 타계했음으로 고려 밖이고, 넬슨・윈터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다만 한 가지 미심 쩍인 것은 그들이 주류경제학자가 아니다 보니 실제로 수상여부를 갈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함에도 1980년대에 행한 그들의 연구가 기술경쟁이 심화되는 21세기에 더 돋보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잠시 이들의 연구업적을 살펴보자. (이 대목에서는 아무래도 개념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함으로 다소 난해할 수도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진화경제이론(evolutionary economic theory)은 변화과정의 관점에서 생태생물학에서의 변이・유전・도태의 개념을 빌어 사회․경제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으로 구조(structure)보다는 과정(process)을 중시한다. 이 이론의 기초는 슘페터의 혁신이론(1934)과 기업의 성장과정을 이론화한 펜로즈(Penrose, 1959)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이론의 효시는 아무래도 1980년대 들어 생태생물학에서의 경쟁이론을 경제・경영에서의 경쟁현상에 적용을 시도한 넬슨과 윈터의 An Evolutionary Theory of Economic Change(1982)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기술변화(혁신)를 돌연변이로, 지식보유체로서의 기업을 변이유전으로 보고 시장을 도태의 장으로 구체화한 진화의 틀을 개념화하였다.

넬슨과 윈터는 기업을 이익추구자이며 기업역량과 의사결정룰(decision rules)을 가지고 행동하는 주체로 인식한다. 즉, 기업은 단순히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대안만을 통해 이익극대화(profit maximization)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기업은 실제로 서로 다른 경로(path)를 지니며, 다른 기업역량과 의사결정 룰(decision rules)을 가진 이질적(heterogeneous) 존재로서 기업의 탐색활동(search)을 통해 기술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술환경과 시장환경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전제한다. 이런 배경에서 진화경제학의 철학적 배경은 요소환원주의(reductionism)가 아닌 전일주의(holism)에 기초한다.

 그리고 기업역량과 의사결정 룰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제해결노력과 예기치 않았던 사건에 의해 수정・보완되는 경로의존적(path-dependent) 지식기반이 루틴들(routines)을 형성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루틴들이란 예측 가능한 기업의 행동패턴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주어진 시점에서 기업의 외부요소(시장 상태)와 내부요소에 대한 의사결정기능의 집합을 말한다.)

한편 기업성과는 기업외부의 기술변화(technological change)에 대해서 기업이 루틴으로 어떻게 적응하느냐의 선택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즉, 루틴을 통해 기술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수익성 있는 기업은 선택되고 수익성이 없는 기업은 도태되는 자연선택원리가 작동하는 장소를 시장으로 인식하며 시장에서 보다 수익성이 좋은 기업들이 선택되게 됨에 따라 경제전반의 성장이 도모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routines 변화요소가 성장 동인으로 중시되다 보니 기술변화, 투자, 진입강도, 노동시장, 시간에 따른 산업의 투입-산출, 기업의 경로 등 기업레벨이 자연히 중시되게 된다.

 그런데도 진화경제학은 실제로 신(新)다윈주의(Neo-Darwinism)에 기초하여 적자생존(survival of he fittest)이 아닌 적합관계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ing)의 관점에서 기업레벨보다는 산업레벨에서의 산업진화에 더 관심을 둔다. 따라서 넬슨과 윈터 이후 그간 변이의 유전(보전)과 관련한 적응・학습・탐색・경로의존성 등 기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개념들을 포함하는 진화적 사고를 적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음에도 여전히 기업레벨에 대한 구도가 미흡한 것이 진화경제학의 현 수준이며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진화경제이론은 주로 내용(content)지향의 정태적 측면을 주로 다루는 기존의 이론들과는 달리 과정(process)지향적이라는 동태적 측면을 다루며, 또 기술변화와 시장진화를 경제발전의 원동력과 산업간 차이의 동인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장을 선택(選擇)과 도태(淘汰)의 장으로 인식하는 점에서는 대단히 호소력 있는 이론임에 틀림없다.

한편 시대상황의 관점에서 보면, 슘페터 혁신이론이 등장한 193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 진화경제학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까지 약 50여 년간은 대량생산체제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속되어 왔는데 1970년대 후반에 2차 오일쇼크(1979)로 초(超)경쟁상황이 전개되고 거의 같은 시기에 디지털화 혁명(digitalization revolution)을 비롯한 기술변화가 분출되는 상황에서 진화경제학이 배태되다 보니 진화경제학에서는 자연히 공급자간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따라서 시장/고객니즈 측면을 소홀히 다루는 한계를 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진화경제학에서는 기업이 시장고객을 주도하고 고객은 동일한 니즈를 갖고 있거나 동일제품/서비스를 원한다는 묵시적 전제를 깔고, 산업레벨의 기술변화에 기업레벨에서 어떤 루틴으로 적응할 것이냐에 주로 관심을 두어왔고, 혁신과 관련해서는 기업이 시장고객을 주도한다는 전제에서 시장환경과 기술환경의 공진화(coevolution)를 다루고 있어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유효하다는 한계를 보인다.

자, 그렇다면 고객이 기업보다 더 힘을 쥐고 있으며 고객의 니즈진화가 빈발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이론이 유효할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구축된 것이 바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이다.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한마디로 니즈진화에 적응하는 혁신경영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니즈맞춤혁신・니즈진화・적응우수성을 key words로 한다. 여기서 적응이란 니즈진화를 선도하거나 니즈진화에 편승하는 행위 모두를 포괄한다.

 요컨대 니즈맞춤혁신을 통해 니즈진화에 적응하며 지속번영을 도모하는 경영이 다이나믹 매니지먼트인데, 이는 특히 2000년대 인터넷/스마트혁명 이후 고객의 니즈가 까다로워지고 니즈진화가 빈발하는 비선형(非線型)세계에 부합하는 경영패러다임이라 할 것이다.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는 크게 세 가지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레벨에서 시장의 고객니즈와 니즈진화를 설명해주는 현시니즈이론(explicit needs theory)과 기업레벨에서 이익추구 동력을 나타내는 기업파워이론(firm power theory) 그리고 산업레벨에서의 니즈진화와 기업레벨에서의 전략행동을 연결시켜주는 니즈맞춤혁신전략(needs-focused innovation strategy)이 그것이다.

현시니즈이론에서는 구매력을 지닌 고객집단인 수요가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수요 중에서도 지불의향(willingness to pay: WTP)을 지닌 현시니즈/현시수요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기업파워이론에서는 시장의 현시니즈/현시수요로부터 이익을 캐내는 기업의 힘 곧 기업파워(firm power)는 성장벡터(growth vector)에 부합하는 혁신(innovation)에 좌우되고 성장벡터는 또한 고객의 니즈진화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니즈맞춤혁신이야말로 기업성과의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기업파워이론은 기술변화(혁신) 요소를 강조하는 진화경제학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첫째 정태적으로는 니즈맞춤혁신으로 기술(공급)요소와 시장(수요)니즈가 연결된다는 점, 둘째 동태적으로는 니즈맞춤혁신전략으로 니즈진화와 기업의 혁신활동이 연결되며 니즈맞춤혁신전략의 유효성 정도에 따라 제품적합성(예상수익지표)과 공정적합성(예상비용지표)이 좌우되면서 예상이익이 얻어지는 혁신과 이익실현과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다.

2013년 10월 14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13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주식 채권 및 주택 시장 등의 추세 연구 방법을 개발한 공이 있는 미국의 유진 파마(Eugene F. Fama), 라스 피터 한센(Lars Peter Hansen) 및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 교수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효율적 시장가설과 비효율적 시장가설이라는 서로 상반된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세 수상자들이 자산 가격에 관한 현재의 최고 이론에 기초를 놓았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의 투자 방식을 변하게 한 점을 높이 사서 수상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수상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식이나 채권 가격의 단기적 등락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3년 이상의 장기 변동 추세를 예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이들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근거에 대해 전문영역이 다른 필자가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또 그럴 만한 전문성을 필자가 물론 갖고 있지도 못하다. 다만 이들의 수상과 관련한 주제가 자산 가격의 예측 특히 주식과 채권가격의 등락을 다룬 것이란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연구가 1960년대부터 2008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란 점에서 아무래도 금융파생상품과도 밀접할 것이며 그래서 2008 Wall Street Meltdown과도 직결될 것이란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두 가지의 사념(思念)이 필자 머릿속에서 강하게 떠올랐다.

첫 번째 사념은 2011년 San Diego에서 열린 세계전략학회(Strategic Management Society) 특별회의에서의 일이다. 필자가 논문 발표 후 개별적으로 필자와 더 토론을 원하는 어느 핀란드 교수와의 대담을 끝내고 나서 시간이 어중중하지만 흥미로워 보이는 한 발표세션에 들어갔는데 발표논문이 4개였는데도 발표자들을 제외한 청중은 오직 필자뿐이었다.

그 세션의 발표논문은 금융재무와 관련한 실증연구들이었는데 연구기간(research span)이 모두 2008 월가 발 금융위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한참 자기네들끼리 묻고 대답하더니만 필자에게도 질문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 논문마다의 이론모델과 가설 및 그 검증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관심을 벗어난 것임을 밝히고 다만 연구기간과 그에 따른 데이터의 성격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생각해 보았느냐는 질문을 특별히 와튼 스쿨(Wharton School)에서 온 교수라는 분에게 던졌다.

 그 분의 발표논문요지는 금융파생상품을 다루는 월가 금융사들을 다양한 금융상품을 다루는 다각화 추구의 금융사와 덜 다각화를 추구한 금융사로 대별하여 경영성과를 비교했더니만 더 다각화를 추구한 금융사의 경영실적이 더 우수했다는 내용을 다룬 것이었다. 그래서 교수님이 연구에 사용한 1980-2009년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실물경제에 있어서는 세계최대 채권국이었던 미국이 1985년을 기점으로 세계최대채무국으로 전환된 시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또 이어지는 실물경제의 쇠락과는 반대로 금융파생상품이 증가해 오다가 미국의 무역적자가 마치 산사태를 맞은 듯 급증하기 시작한 1997년부터는 금융파생상품이 초거대화 되며 미국경제의 활황을 주도하다가 결국 2008 금융위기를 초래한 패닉(panic)도 연구기간에 포함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런 비정상적 특성을 지닌 데이터를 가지고 행한 금융사의 전략행보 차이에 대한 연구결과가 과연 유의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가 라며 다소 예의에 벗어난 듯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 당시 그 특별회의에는 전략경영 여러 분야에서 소위 세계석학이란 70여명이 초청되었는데 그때 그 세션 발표자들의 연구문제 의식과 연구 감각이 너무나도 미시적이고 시대흐름을 읽는 안목이 결여된 탓에 다소 거칠게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왜 2008 월가붕괴가 터졌는가를 구명(究明)하는 게 오히려 더 시급한 연구주제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었는데 웬일인지 그 때의 그 일이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접하는 순간 문득 필자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사념은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핵심내용인 주식・채권 가격등락에 대한 예측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주식이나 채권 가격의 단기등락에 대한 예측은 곤란하지만 3년 이상의 장기 변동 추세를 예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는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과학에서의 메시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자를 감쌌다.

국내시장이건 글로벌 시장이건 주식・채권을 다루는 금융자본시장은 대단히 가변적이고 취약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는 하나의 복잡시스템(complex system)으로 이해되는데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과학은 복잡시스템의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그 예측이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는 그 예측이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단지 하나의 패턴으로만 이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과학이 전하는 메시지와 이렇듯 상반된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결과는 과연 금융자본시장에는 자연 질서와 반대로 움직이는 어떤 고유한 특성이 존재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노벨 수상자들이 이 점을 몰라서 자연 질서와 반하는 연구결과를 주장하는 것인지 또 아니면 복잡시스템을 연구하는 방법론이 아직 덜 확립된 탓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는 필자로서는 전혀 모를 일이며 다만 만년에 필자에게 연구주제 하나가 더 추가되고 있다는 느낌일 뿐이다.

글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Fast Secure Contact Form, crazy..

This is just crazy. This even looks like ‘fake update’ just for getting more ‘download count’, I hope not. Here I’m talking about a small CAPTCHA ‘contact form’ plug-in for WORDPRESS which I’m using for some time. While I really appreciate for the authors’ effort giving us fair quality ‘free’ plug-in, it’s very annoying having to update every other day for months. This not only points to their sloppy and crazy software design practice, but also makes me suspect their intention, higher and higher download count. Why not just wait a month doing more careful design instead of 2-3 day debugging cycle? Maybe, it’s time to look around other alternatives out there.

 


Just take a look at their latest ‘release’ cycle to see my point.

Changelog

4.0.15

  • (12 Oct 2013) – allow HTML in “Your message has been sent, thank you.” custom label.
  • Bug fix: the attrubutes setting was not working on name, email, subject, fields.
  • Bug fix: schedule a meeting button could show when not activated.

4.0.14

  • (11 Oct 2013) – Bug fix: view /print button did not work with some plugins.
  • Bug fix: schedule a meeting button user preference default problem.
  • updated German (de_DE) translation.

4.0.13

  • (08 Oct 2013) – Bux fix: some forms would fail to import when label had some Non-US-ASCII or Chinese characters.
  • Bug fix: Form save error when tag had some Non-US-ASCII or Chinese characters.
  • Bug fix: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did not always work correctly.

4.0.11 & 4.0.12

  • (06 Oct 2013) – Improved placeholder text to work on older browsers.
  • Added new style setting for “Placeholder text” so you can change placeholder text color if you want.
  • Note: if you are using the External CSS setting you should import the new placeholder css, click “View custom CSS” on the Styles tab to see it.
  • added new setting to Advanced tab “Enable to have the email labels on same line as values”.
  • updated German (de_DE) translation.
  • Bug fix: copy styles was not copying all of the style settings.
  • Bug fix: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did not work correctly.

4.0.10

  • (03 Oct 2013) – Bug fix: Activation generates “unexpected output” notice to admin.
  • Bug fix: Could not select “Block spam messages” for Akismet.
  • Bug fix: Field Regex was always validating as if required.
  • Bug fix: Atachment file types, and file size labels were not working properly.
  • Bug fix: Field default text was not showing in form.

4.0.9

  • (02 Oct 2013) – Bug fix: PHP method of calling form display was not working.
  • Bug fix: time validation did not work on 24 hour format.

4.0.7 & 4.0.8

  • (01 Oct 2013) – Added a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for those who might be troubled by an import failure.

  • Bug Fix: fixed a couple problems with importing settings from 3.xx version.

  • Bug fix: none of the language translations were working.

  • Bug fix: there were some ui image 404 errors from includes/images

  • Bug fix: vCita setting error.

  • other minor bug fixes.

 

Tool Time

드디어 ‘hardware, 쇳덩이’ 들을 조금씩 만지기 시작했다. computer가 세상에 오기 전의 진짜 hardware들, 대부분이 tool, 기계 공구, 연장들.. 요새 나는 이것들과 참 멀리 지냈다. 거의 몇 년이 되어가나? 마지막 본격적으로 이런 것들을 만지며 지내던 때가 2010년 경 flooring work을 할 때였다. 아래층 laminate flooring을 할 때, 앞쪽 문 아래 마루 아래 framing을 termite 와 water damage로 인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고친 것과 ‘시로도’의 기술로 IKEA Tundra 와 싸우며 몇 개월을 보냈던 그 때, 그리고 ‘심심해’ 보이는 조그만 deck에 귀여운 pergola(arbor), picnic bench를 만들어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번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그러니까 거의 3년의 동면에서 깨어나는 셈이 된다. 움직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거의 4개월 전에 Costco에서 sale로 산 kitchen faucet 의 설치를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염치’가 없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것을 하려니 이런 저런 plumbing tool들이 필요한데.. 이것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것들을 찾을 ‘용기’조차 나지를 않다가 이제 ‘대대적’으로 tool ‘cleanup’ time을 선언한 것이다.

나의 tool collection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고른 싼 것 중에서 조금은 믿을만한 것들이다. 나의 공구 구입의 첫 번째 우선 순위는 ‘값이 저렴‘해야 한다는 철칙이다. 이것으로 나는 연숙과 항상 말다툼을 하곤 하지만, 서로의 ‘구매 철학’이 다를 뿐이다. 연숙은 조금 더 비싼 것을 사서 ‘안심하고 오래’ 쓰자는 것이고 나는 ‘더 싼 것으로 더 많이’ 사고, 일찍 망가지면 ‘할 수 없다‘는 주의다. 결과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펑 펑’ 쓸 돈도 없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나의 구매 철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대신.. 살 때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는 것이 나에게 준비되어 있다. 철저한 ‘계산’을 하는 것이다. 공구나 기계의 구조나, 내구성 등을 연구하고 사는 것이다. 공구 분야, 특히 ‘미제 공구’는 대부분 프로들을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그렇게 비싸고 오래 견디는 것이지만 ‘가끔’ 사용하는 나에게 그것은 사치요 낭비이기도 하다.

빨갱이 짱깨, a.k.a 중공, 지금은 중국’ 이 1980년 이후에 값싼 공구를 만들기 전까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탱크 같은 미제’를 써야 했지만 이제는 나의 수준에 맞는 것들을 골라서 값싸게 사게 되었기에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공구들의 맛을 보게도 되었다. 이런 나의 습관은 비록 나의 철학을 만족은 시켰지만, 대신 연숙의 ‘코웃음‘ 을 많이 사기도 했다. 일찍이 망가진 공구들이 꽤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찍 죽는 공구’의 대부분은 사실, 제품의 ‘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의 ‘최악’의 after-care 습관 때문임을 나는 잘 안다. 공구들을 쓰고 나서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두곤 했고, 그것들이 일찍 죽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한 주요 원인도 나는 잘 안다. 고된 일이 끝나면 사실 그것들을 다시 ‘정리, 보관’하는 힘이 거의 없기에 그런 것이다. 그것이 프로와 나의 차이였다. 그들은 시간 관리를 잘 하고 훈련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나는 ‘하고 싶으면 쉬지 않고 하는’ 그런 지독히도 ‘시로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들과 비슷하게 고된 일이 끝나도 모든 기기, 공구들을 잘 보관 정리했었다면 대부분의 Chinese-made공구들.. 훨씬 오래 썼을 것이다.

내가 고된 일이 끝나고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기어들어올 때 더 힘든 이유가 나의 습관에도 있지만, 다른 이유는 그 공구, 기재들을 임시로 넣어 둘 open (rain) shelter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그 공구들과 ‘잡동사니’들을 급하게 비를 대비해서 치우는 작업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이다. 비록 몇 년 전에 만든 shed가 하나 있지만 그것 조차 ‘잡동사니’로 그득 차 있어서 거의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tool time을 reboot하는 첩경은 임시로 비를 피할 open shelter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비가 자주 왔던 올해에는 더 그랬다.

그래서 드디어 손을 털고, ‘공구를 거의 쓰지 않는’ 방식1 으로 이틀 만에 ‘번개처럼’ open shed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급하게 비를 피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치울 필요도 없는 그런 곳이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서 조금씩 필요한 작업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우선 할 일은 ‘쓰레기’로 가득 찬 ‘진짜’ shed 내에 있는 필요한 ‘값싼’ 공구들을 찾아서 정리하는 일이다. 이것이 다른 project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open shed framing 1open shed: all 2×4 no-cut, screw-only  framing stage #1: 3 posts up

 

open shed framing 2open shed: all 2×4 no-cut, screw-only framing stage #2: 6 posts up

 

open shed framing 3open shed: rafters and roofing trials

 

open shed framing 4Yeah! annoying rain pain no more..

  1. standard lumber, 대부분 2×4 stud, 를 하나도 자르지 않고 screw driver만 사용했다.

Guest Blog: 박계형 ‘netizen’ 컬럼

 오랜만에 인호 형에게서 email이 도착, 아하.. 따끈따끈하게 새로 ‘구워낸’ 김인호 칼럼이 나왔구나..하고 보니 이번은 인호 형의 인생 동반자 박계형 작가님의 ‘조갑제 netizen column’ 에 관한 것이었다. 작년에 여사님께서 손수 보내주신 친필로 쓰여진 멋진 글과 다수의 논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처음 보게 된 것이라 아주 반가웠다. 논제는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고 진부할 수도 있지만 왕년의 실력으로 아주 설득력 있게 다가온 글이었다. 암만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중의 으뜸이 아닐까, 이 진실과 정직이라는 것이. 거짓이 새로운 진실로 태어나는 것이 new normal이 되어가는 이 세상에 진실의 등불은 더욱 그 빛이 밝게 느껴진다. 그 ‘진실의 원천’은 무엇일까? 나는 100%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한다. 다만, 다만, 지나친 흑백논리에 빠지는 함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피해야 하는 다른 ‘진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진실(眞實)의 가치(價値)

정치가가 가야 할 길도 첫째가 정직이고, 기업가가 가야 할 길도 우선 정직이다.

박 계 형(朴啓馨) 소설가

 

PARK-GYEHYUNG몇 해 전인가, 해외나들이를 위해 공항에 나가 서류를 적을 일이 있었는데, 미리 가이드가 나에게 여행목적 란에, – 관광이라고 적지 말고 다른 이유를 쓰라고 가르쳐 준다. 관광이라고 쓰면 무슨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법이 아직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수입을 만들어 국내관광지를 개발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던 방안인 모양이다.

  가이드의 충고는 고마웠지만 거짓말을 써야 한다는 게 찜찜해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관광을 나가는 길이니까 그냥 사실대로 쓰겠다, 고 말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마치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 아주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엇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곧이곧대로 쓰겠다, 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알고 보니 그 세금이라는 게 겨우 만원이었다.

  하마터면 나는 돈 만원에 진실을 팔아버릴 뻔 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만은 진실이란 것이 1만 원짜리 한 장과 바꿀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값싼 것은 아니다. 사실 진실의 가치를 따지자면 무한대다. 돈 만원이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일시적인 쾌락이나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논하고 있으면서도 진실의 가치에 대해선 자주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하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정직을 심어주는 일엔 등한히 하고 있다. 혹시나 우리는 비겁하게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워낙 세상이 거짓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우리아이들만 정직했다간 세상에서 손해만 보고 쫓겨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겁이 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들에게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정직만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다고 날뛰고 실제로 대단한 짓들을 하고 있지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결국은 그 밑에서 살고 있듯이 빛은 반드시 어둠을 이기고 만다는 섭리의 육중한 힘을 우리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이니 소가 미치지 않는가.

  지금은 미국도 타락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 때 전 세계인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어 부와 힘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 안의 정직의 정신 때문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인들을 가장 노하게 하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liar(거짓말쟁이)와 coward(비겁자)라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거짓말쟁이라고 하면 더욱 화를 내고 심하게 표현해 결투를 신청할 정도로 참지 못한다. 불과 몇 백 년 전만해도 수풀더미에 묻혀있던 미국을 전 세계위로 솟아오르게 만든 것은 그들의 기독신앙 안에서 피어났던 정직의 정신이었다.

  정직한 나라, 정직한 정치가, 정직한 기업인만이 결국은 이 땅 위에서도 흥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건강식품을 파시는 어떤 분에게서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자기가 양심을 속여 물건을 조금 적게 가지고 가면 거의 어김없이 사는 편에서 저울로 달아보고 적발해 내는 바람에 결국 속인 것이 들통 나 고객이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었다. 

비록 콩나물장사를 하더라도 한군데에서 손님을 속이지 않고 오래 하다 보면 그 사람은 거기서 사람들의 신임과 지지를 얻어, 결국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내 친척동생뻘 되는 여자 하나가 시집을 갔는데, 신랑이 간신히 지방대학은 나왔지만, 체격이 너무나도 왜소하고 인물도 변변치 못해, 직장이라고 얻은 것이 작업환경도 열악한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계 만지는 일이어서, 나를 찾아왔을 땐 이미 손가락 하나가 조금 잘린 상태였다. 그 모습이 너무 딱해 지인을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겨우 입사시험을 치르게 하였는데 성적이 하도 형편없어 우리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중견 증권사였는데 간신히 취직을 시키긴 했지만 그곳에서 과연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회사의 높은 분을 만났더니 그분이 하시는 얘기가 그 사람이 지금 고객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아본 즉, -고객들이 와서 증권을 사자고 하면 지금 사면 안 되고, 이것을 사면 손해를 보고, 등등의 구실을 붙여 고객을 돌려보내기가 일쑤인데 계약 고를 많이 올려 회사에 득을 주어야 할 직원으로서 손님을 쫓고 있는 형상이니 말도 안 되는 짓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약삭빠르지 못하고, 일면 어리석어 보이는 그의 진실성이 오히려 고객들의 신뢰와 호감을 당하여, 모두 그에게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사례이다.

  그의 장모인 나의 아줌마가 죽어서 그 장례식에 갔었는데 마당에 가득한 자가용 행렬을 보고 나는 하도 오랜 만에 좋은 것을 보곤 마음이 너무나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었다.

안튼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나는 우리를 기쁘게 하여 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로 이 이야기를 늘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나 보 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의 힘인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보다 더욱 정직하게 산다면, 이 사람이 얻은 것보다 더욱 큰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처세술과 대인관계법 등이 연구되고 있지만 정직보다 더 앞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정직처럼 쉬운 처세법도 없다. 따로 머리를 굴리고 계략을 짜내려고 골치 아프게 궁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치가가 가야 할 길도 첫째가 정직이고, 기업가가 가야 할 길도 우선 정직이다.

  정직의 성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반드시 나타나고 만다. 세상에서 보라. 씨가 떨어져 열매를 맺기까지는 반드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가 뿌린 정직의 씨도 그렇게 언젠가는 반드시 풍성한 좋은 열매를 맺어 우리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설령 우리가 정직을 택함으로써 많은 손해를 본다 해도, 슬퍼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갚아주실 분이 계시다!

  진실을 행하는 자는 혼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진실 안엔 반드시 동행하시는 분이 계시다.

  진실이 이기고야 마는 이유도 간단하다. 전능하신 분께서 진실 안에 반드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박 계 형(朴啓馨) 작가 소개

1943년 서울에서 출생
1961년 수도여고 졸업
1965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동양방송(현 KBS 2의 전신)개국(開局) 현상문예소설 50만원 당선작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어떤 신부(神父)]
1999년 조선일보 선정 [한국을 이끈 5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힘
2002년 [자랑스러운 고려대인(高麗大人)상] 수상
현재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겸임(兼任)교수, 성 어거스틴 회(St. Augustine Society) 대표

주요저서:
A Life(임종의 영문판), Troubador 출판사 출간, 영국, 2007>
<留すりたかった瞬間の數數(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일어판, 新宿書房 출간, 2005>
<정(情)이 가는 발자국 소리>, <해가지지 않는 땅>, <사랑의 샘>
<자유를 향하여 날으는 새>,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어느 투명한 날의 풍경화>, <회귀(回歸)>, <환희, 구(舊)임종(臨終) 1,2>
<朴啓馨 全集> 외 약 6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