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년 선종 善終, 돼지띠 자매

¶  다른젊은엄마의 장례미사: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는 ‘뜻밖의, 급작스러운’ 연도와 장례미사가 있었다. 모든 죽음이 어떤 면에서는 뜻밖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의 죽음은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느낌’을 주는 Camilla 자매님의 죽음이었다. 지난 3월 사순절 막바지에 오랜 투병을 끝내고 선종을 한 다른 ‘젊은 엄마’ 보나 자매님의 기억이 생생한 이 마당에 또 한 명 자매님의 선종은 예기치 않았던 글자 그대로 ‘급작스런’ 죽음인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 같았다.

한창나이 쉰 을 갓 넘은 ‘젊은 엄마’의 죽음.. 불과 3일 전, Mother’s Day 하루 전에 급작스러운 엄마의 타계..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로써는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학생나이의 두 따님의 심정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사연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고향’같을 수도 있는(견진성사를 이곳에서 받았다기 에) 순교자 성당에서, ‘해맑은’ 한 토마스 신부님의 ‘젊지 않게 깊이 있고, 자상한’ 고별강론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으리라..

비교적 앞 자리에 앉아서 고별미사 내내 나는 고인의 사진을 응시하며 생각을 한다. 60/70년대 통기타 folk singer였던 박인희씨를 연상시키는 그런 ‘청초’한 모습, 저렇게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떠나는 것.. 본인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의 놀라움과 슬픔을 한동안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 부부가 그런 처지를 당하면.. 상상을 한다. 그런 제로가 아닌 가능성을 매 순간 생각하며 살면 비록 피곤은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사랑스런 말이나 표정’으로 서로를 대할 것 같지 않을까?

고인의 큰 따님(순교자 성당 종교학교 교사였다고 함)이 사실 불과 일 주일 전 마지막 고인을 보았을 때 별로 좋은 않은 감정으로 헤어졌다고 후회를 했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찌 안 그렇겠는가, 아마도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날 다음날이 Mother’s Day임을 생각할 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비록 평소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교우 자매의 고별식이었지만 뜻 밖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레지오 화요일’ 오후가 되었고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가족들끼리 틈이 날 때마다 ‘We love you라는 message를 교환하자고 하기도 하였다.

 

¶  돼지띠 프란체스카: 장례미사가 끝나고 ‘실로’ 오랜만에 가보는 ‘본가 설렁탕’이란 순교자 성당에서 아주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뜻 밖에도 20년 지기 知己, 최형 (a.k.a.진희 아빠)의 누님인 프란체스카 자매님를 만나게 되어서 합석을 하게 되었다. 참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오는가.. 최형은 비록 ‘전통적’인 가톨릭 교우이지만 Sunday Catholic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비해 누님인 프란체스카 자매는 매주 화요일 레지오 주회합 우리 바로 옆 방에서 모이는 다른 레지오의 부단장을 하는 비교적 활동적인 교우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최형의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 가끔 볼 정도로 잘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주일 마다 얼굴을 보게 되기도 하고 꾸리아 월례회의에서도 우리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 등 가까워진 느낌까지 들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자매님, 비록 ‘누님’ 격으로 통했지만 나와 띠가 같은 ‘돼지띠’였다. 최소한 나와 동갑인 셈이 아닌가? 깎듯이 누님으로 대하던 것이 조금은 어색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식사까지 하게 되니 이제는 동갑친구 같은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돼지띠를 만나거나 보게 되면 나는 이상할 정도로 정이 가는 것은 왜 그럴까? 2년 전까지만 해도 ‘전요셉’ 형제가 돼지띠 동갑으로 사귀게 되어서 나를 기쁘게 했지만 사귀자 마자 ‘영구귀국’을 해 버려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차에 돼지띠 ‘누님’이 나의 앞에 등장한 것이다. 친구누님으로 대할 것인가 돼지띠 동갑친구로 대할 것인가.. 조금은 혼란스럽기까지 하지만 이날 동석으로 식사를 하면서 ‘말이 통하고, 재미있는 자매’임을 느끼고 안심을 하였다. 동생 최형과 같이 서울 덕수국민학교 출신 임도 알게 되었는데, 나와 정확히 같은 해에 같은 서울 하늘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으니..

이날 같이 합석을 한 ‘자매님’들은 같은 레지오 단원들인데 우연히 이들 group이 몇 년 전 최형과 같이 기타 강습을 받았던 것을 알았는데,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나보고 가르쳐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글쎄..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잘 모를 텐데, 꼭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으로 짐작을 하였다. 우선 생각을 해 보자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의 guitar솜씨로 남을 가르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의 기타 솜씨는 완전히 ‘등 넘어 배운’ 정도인데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 배우며 살고 싶은 건강하고 멋진 자매님들이 레지오에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기쁘기까지 했던 명랑했던 장례미사 후의 식사시간이 되었다.

 

성모성월, 성모의 밤, 그리고 어머니..

 
교황님 2016년 5월 지향기도

¶  성모성월:   Vatican Youtube에는 이제 매달마다 교황님의 ‘매달 지향기도 monthly prayer intention‘ video가 실린다.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이제는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짧지만 아주 심도 있고 호소력이 있는 교황님의 ‘구수한’ Italian comment는 영어자막이 곁들여져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농부들’ 에 관한 것이고 이달은 ‘별로 인정 못 받고 고생하는 세계의 여성들’에 대한 기도이다. 참 계절적으로 알 맞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5월과 여성, 특히 성모님은 어쩌면 그렇게 느낌이 일치하는 것일까? 그래서 Mother’s Day,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모성월, 성모의 밤.. 등등이 모두 5월에 함께 모여있는 것일까?우리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음이 한동안 나를 슬프게 했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니 이런 포근한 기분의 5월에 있음이 조금은 나를 위로하는 셈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첫 한가로운 느낌의 더위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재수가 좋으면 (나쁘면?) space heater를 켜야 할 정도의 싸늘한 아침도 이때에 꼭 있다. 지난 주말 경에 사실 아침에 central heating 이 요란하게 나온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올 여름 전에 ‘마지막’ 난방의 소음소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첫 A/C (air conditioner)의 소음 소리를 들을 때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의 office에는 ‘돗자리’가 자리를 잡았고 80도 이상을 웃도는 늦은 오후에는 pet dog, Tobey 와 함께 ‘오수 午睡’를 즐길 때가 되었다. 이런 5월의 모습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  성모의 밤: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성모의 밤 행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경험이 되었다. 내가 우리가 몇 년 동안 보았던 성모의 밤은 대개 5월 말 쯤에 있어서  거의 여름 기분으로 바뀐 시점으로 조금은 싱그러운 5월의 향기가 희미해진 느낌이었고, 본당 대성전 안에서 ‘경직된 행사’를 하는 느낌으로 했었는데, 올해는 ‘정식으로’ 본당 성모 동산 앞, 그러니까 야외, outdoor에서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된 것이다. 커다란 가정집 mansion 뒤뜰에서 결혼식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거기다 시간적으로 어두움이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향기로운 5월의 공기까지 성모동산을 신비롭게 감싸는 것, 정말 느낌이 새로웠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열을 지어서 행진하는 장미꽃, 촛불들의 행렬의 위에 인자로운 미소로 내려다 보시는 성모님.. 머리 속으로 ‘분명히’ 성모님께서 지금 이 시간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그리며 그린다. 비록 본당주최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성모신심의 본향인 레지오 단원들의 정다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고, 특히 예년에 비해서 더 레지오에 관심을 보이시는 본당신부님들의 모습도 다정한 어머님의 눈길과 더불어 더 5월 초의 향기로운 저녁 하늘을 포근하게 느끼게 했다. Never too late라고 이제나마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해 주신 성모님께 다시 한번…

 

¶  나의 어머니 날:  2016년 5월 8일, Mother’s Day, 어떻게 올해는 오래~전 어머니 날과 날짜가 같을까? 5월 8일.. 나의 시절에는 어머니 날이었지 어버이 날은 기억에 없었다. 이날은 여러 가지가 겹친 날이기도 했다. 2번째 일요일,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날이라 오랜만에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하게 되어서 비록 몇 주만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본당을 둘러보고 성물방의 도서실도 기웃거리고, 이제는 낯익은 담당 자매님에게 레지오 행동단원 입단도 권유해 보는 등, 기분을 새로이 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예의 낯익은 얼굴이 분명히 몇 분이 꼭 있어서 예전에 비해서 마음이 덜 불편하게도 되었다.옆 동네, 마리에타 1구역 담당의 $3 점심도 비록 한 그릇이었지만 맛은 아주 감칠맛나게 좋았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화창한 날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끌려서라도’ 주인공인 ‘돼지 엄마’를 ‘모시고’ classy한 곳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겠지만.. 글쎄.. 이제 모두들 ‘늙었나..’ 움직이는 것 귀찮다는데 거의 동의한 단계가 되었다. 올해는 idea가 바닥이 난 아이들을 ‘구제’하려 내가 volunteer를 해서 집에서 나의 ‘특기 요리’로 이날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나의 특기요리는 평소에 ‘돼지 엄마’가 좋아하는 ‘lots of, lots of vegetable & ground beef stir fry‘ 라고 내가 이름을 붙인 이제는 거의 classic이 된 나만의 요리이다. 그저 ‘재료만 많으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 오늘의 main dish가 되었다. 아이들은 red wine, 손수 만든 chicken wing을 밖에서 grill하고, Doraville H-mart에 있는 ‘빵집’에서 사온 ‘덜 달고, 덜 큰, 알맞은’ cake등으로, 그런대로 ‘초 간단 超 簡單, 초 저가 超 低價’ 였지만 만족스런, 즐거운 Mother’s Day late luncheon이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들의 엄마인 ‘돼지 엄마’겠지만 나의 머리 깊숙한 곳에는 나의 heroine, 나의 어머니가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화창한 5월 8일 어머니 날이 되었다.

 

무거운 성 금요일.. 어쩔까?

40일의 사순절 내내 잠재적으로 머리에 그려지던 광경, 성 목요일 최후만찬, 세족례, 뒤에 어두운 대성전에 앉아 새벽 1시나 2시까지 수난감실 성체조배 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 아니 우리의 모습들.. 어김없이 그 시간은 다시 우리를 찾아왔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Good Friday의 답답하게 쩨쩨할 만큼 조금의 비를 뿌린 대기는 답답한 느낌만 주며 다시 ‘더운’느낌을 예고하는 내가 싫어하는 시간을 예고한다.

지난 2년간의 이 성삼일은 너무나 fresh하고 holy한 느낌을 주었기에 올해는 은근히 기대를 너무나 하였는지.. 역시 expectation game에 내가 눌리고 지고 있는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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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성금요일 아침, 이날 새벽 1시~2시의 수난감실성체조배를 ‘무사히’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늦은 잠을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서 쓴 모양이다. 성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부활절 미사를 예상하며 쓴 글이었지만 끝맺음이 없었다. 올해는 이렇게 조금은 무언가 끝맺음에서 문제가 있는 모양인가?

이제 성삼일도 일주일이나 훨씬 지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3월도 지나고 4월이 넘어가고, 내일은 4월 3일 Divine Mercy Sunday까지 코 앞에 다가왔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놀라고 놀라고 놀란다..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68 마일의 시간 흐름인가.. 아니면 요새 나의 생활 style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나 정도의 인생을 살았으면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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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성삼일..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 사순절은 거의 매년 나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나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오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연숙이 한 말을 다시 음미한다. 나의 요새 모습이 오래 전에는 정말 기대할 수가 없이 살았다고.. 절망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사실 큰 기대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물론 기분이 좋아짐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도 이런 나의 현재 모습을 나의 지난 자신이 자꾸 보며 놀라는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릴 수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변할 수가 있었을까? 놀랍다. 놀랍다.

올해의 성삼일은 사실 성공작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 부활 성야미사 토요일 것..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미치게 화나게’ 만들었나? 우선 답답하고 숨막힐 듯 더운 공기, 성전이 그렇게 느껴져서 나는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오랜 미사는 은근히 예상은 했지만.. 나는 우선 답답했고..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요셉’이라는 남자.. 이렇게 표현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아니 그 인간은 나와 무슨 연고가 있는지.. 참.. 보게 된 세월도 꽤 오래 되었지만 어쩌면 그 ‘인상’은 그렇게 나를 차갑게 만드는 것일까? 좋게 생각하려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 ‘묘하게 차가운’ 느낌의 얼굴과 행동을 나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날 미사 전에 만났을 때의 무표정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표정은 아직도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오래 오래 전..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듯한 ‘꼰대’들의 모습을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성야미사를 나는 완전히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S 형제의 딸.. Mary .. 이미 나의 가슴은 닫히고.. 그 애의 무표정한 모습이 나를 다시 불쾌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날 밤 ‘작은 악마’에게 시달린 꼴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근세사 처음’으로 부활절 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반항적인 자세로 미사를 빼먹은 것이 끝내 나를 슬프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성모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안녕, 보나 자매님..

보나 자매님과의 ‘생각하기 싫었던’ 작별시간은 시계처럼 어김없이 왔고 사랑하던 가족, 열심히 보살피던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연도, 장례미사, 운구, 장지동행 등이 모두 큰 차질 없이 끝났다. 허탈감, 피로감, 아쉬움, 슬픔 등이 뒤섞였던 며칠이 오늘로 다 막을 내렸다. 끈질긴 기도와 몇 개월에 걸친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의 정성스런 방문도, 끊임없는 카톡의 chatter도 오늘로 다 끝이 났다. 또 한 명의 영혼이 저 세상, 하느님의 영역 domain 으로 간 것이다.

언제였나.. 약 1년 반 전 한참 찌듯이 덥던 한여름이었나.. 그 보나 자매님을 처음 만났던 것이.. 하 미카엘 본당신부님과 연숙이 보나 자매님 댁 병자성사 주러 처음 방문했었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의 비 非 규칙적인 봉성체 방문이 시작되었다. 병자같이 않게 항상 재잘거리고 명랑하고 지나치게 순진하게만 보이는 ‘젊은’ 자매님이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치명적’인 두 가지 병고를 10년도 훨씬 넘게 짊어지고 살았는지 솔직히 상상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들의 견디기 어렵게만 보이는 간병 노고도 너무나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런 상황,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어떨까? 자매의 남동생까지 몇 년 전에 병으로 타계를 했다고 들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어머님이 계시지만 가까이 살지를 못해서 그저 전화만 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든 간병은 남편 형제님과 남매 자녀가 운명처럼 여기며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욥기가 생각이 날 정도로.. 왜 이 영혼들에게 이런 고통이 왔을까..

이 요한 본당신부님의 push로 레지오에게 정기 환자 방문 ‘도우미’ group이 3개월 전에 구성된 이후 운명하던 날까지 매주일 2~3회 ‘도우미 자매님’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말동무와 간단한 식사 등을 보살펴 주었다. 금전적인 도움이 금지된 레지오의 봉사는 아무래도 ‘신앙대화’, 그러니까 영혼을 간호하며 돌보는 일인데,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 자매님.. 절대로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언급이나, 대화를 못했던 것이다. 조금은 예외적인 case라고도 생각이 되었지만, 생각을 해 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쉰 살도 안 된 나이에 쉽게 죽음을 대할 용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저 세상,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런 approach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 기회가 되기도 했다.

거의 단장 급의 간부 자매님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모두 다른 인생, 다른 기술, 다른 성격을 가진 관계로 항상 매끄러운 teamwork은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참 ‘멋진 노력’을 했다고 나는 보았다. 운명 시에 신부님도 재빨리 모셔와서 보나 자매님 정식으로 사제의 전대사를 받으며 평화스럽게 임종을 했다 (우리는 traffic jam에 길이 막혀서 2시간 뒤에나 도착을 하였지만.) 관심을 많이 쏟으신 관계로 신부님의 ‘다정스런’ 장례미사도 잘 끝날 수 있었다.

오랜 기간을 예상할 수 없는 중병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느끼는 것..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놀라움.. 암만 짐작을 해도 누가 운명의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표정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노력은 참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주위의 가족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어쩔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동안 정이 들었던 자매님.. 숨겨놓은 눈물을 더 이상 감출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자매님의 영혼, 평화로이 받아주소서..

 

 

Nearer, My God, to Thee – André Rieu

 

Jubilee of Mercy at Monastery

(Extraordinary) Jubilee of Mercy, (특별)자비의 희년 喜年 2016년 (2015년 12월 8일 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 작년 말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께서 발표했던 것, 올 들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화두 話頭 talking point’ 가 되었다. 처음에 이 ‘뉴스’에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비의 희년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신을 다해서’ 나는 ‘한때 거의 버렸던’ 가톨릭 믿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제는 자신까지 얻었다고 조심스런 안심까지 했지만, ‘이런 생소한 말’들에 접하며 다시 ‘나는 역시 아직도 무식하구나1‘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는지 확실치 않은 이런 ‘희년’이란 말도 그렇고 게다가 ‘자비의 희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다 ‘전대사 全大赦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 들어보았던 단어들이지만 확실한, 자세한 의미는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글, 사진에서 고 김수환추기경 사진의 설명에, ‘2000년, 대희년 great jubilee 의 추기경’이란 말을 기억한다. 이 ‘대희년’이란 또 무슨 말인가? ‘큰 희년’이란 말인데..

이러한 나의 ‘교리, 전승, 가톨릭 신심 문화에 무식한 배경’ 속에서 올해 ‘진짜’ 희년의 소식을 코 앞에서 접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예전처럼.. 속으로 ‘아~ 그렇구나..이런 것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한번 알고나 죽자’하고 ‘무조건’ 덤빌 것인가? 결과적으로 근래2 나의 mottos가 된 ‘It’s now or never,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를 다시 한번 발동해서 나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아보는 (study)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노력의 백미 白眉 는 3월 14일, 화창하고 써늘했던 조용한 월요일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님들(2쌍 부부 포함)과 함께 방문했던 아틀란타 교외 Conyers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자비의 문 doors of mercy‘ 통과에서 이루어졌다.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이번 우리들의 ‘Conyers trip 쾌거’는 사실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차원 ‘공식 활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다수의 찬성에도 힘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또한, 이번 기회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의 반포배경과 그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희년 들의 역사적 배경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무식 ignorance stupid point’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었다.

 

평화스러운 수도원

평화스러운 수도원

 

이번의 자비의 희년은 Extraordinary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이유는 정기적으로 25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과 달리 특별하게 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 자비의 희년은 로마 바티칸 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각 교구마다 지정된 성전, 역사 깊은 성당에 ‘자비의 문’이 설정이 되었다. 이 자비의 문을 통과하면 전대사 全大赦를 받을 수 있는데 부수 조건은: (1)  교황님의 지향기도, (2) 고해성사, (3) 영성체, (4)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등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교황이 선포하는’ 전대사 같은 것에 큰 의미나 흥미를 느낀 적이 사실 없었다. 솔직히 핵심 교리적인 것 빼놓고는 믿어지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리의 한가지는 믿고 다른 것은 안 믿는다는 것 cafeteria Catholic 은 어불성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으려면 다 믿고 안 믿으려면 차라리 믿는다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조건’ 믿는다. 전대사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제까지 ‘쌓였거나, 남아있는’ 나의 죄는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전대사를 받은 우리들, 반응은 확실치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양도’를 하였다. 전대사를 남에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양도를 하였고 연숙은 작년에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께 양도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연숙은 우리 자신이 전대사를 못 받은 셈이 되었나.. 하지만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 것이니까…

3월의 어느 평화스러운 월요일, 신앙과 사명감으로 뭉친 레지오 단원 그룹이 이렇게 자비의 해에 선포된 자비의 문을 ‘통과’ 하려고 유서 깊은 Conyers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오에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의식에도 참여를 했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월요일 하루, 너무나 좋았다.

  1. 나 말고도, 이런 가톨릭 전통, 신심들에 무식한 교우들 참 많이 있을 것이다.
  2. 최소한 6년 전부터, 특히 레지오를 시작하면서부터..

두 번째 날리는 눈발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드디어 올 겨울에 와야 할 것이 드디어 두 번째로 아틀란타 지역에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이것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작은 개인역사에 남게 되었고 은근히 이것을 걱정하게도 되었지만.. 사람 심리는 묘해서.. 이것이 올 때쯤에 실제로 안 오니까.. 조금은 기다리게도 되었다. wintry mix.. ice storm같은 것들은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게 되었어도 제 때에 못 보니까 조금은 섭섭한 것이다. 이것 사실 전형적인 ‘어린이 심리’가 아닐까? 이런 것으로 ‘비상사태’가 와서 내일 아침에 학교에 안 가게 되는 꿈.. 같은 기대감.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직장에 안 가도 되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것들은 간단히 말해서 깊이 쌓여가는 경험에 의한 향수 같은 것이다.

오늘 화요일, 도라빌 소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 ‘죽었다 깨어나도 빠질 수 없는‘ 모임이라 이날의 겨울 날씨는 항상 신경(차의 트렁크에는 비상도구를 가지고 다닌다)이 쓰이는데.. 왜 하필 이날 일기예보가 그렇게 애매한 것일까? 분명히.. wintry mix가 예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stay home하라는 말이 전혀 없으니까. 학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Closing이란 말이 전혀 없다. 무언가 wintry mix가 내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퇴근 후로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집을 떠날 때부터 눈발이 나리기 시작했고, 우리와 비슷한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하는 단원 실비아 자매, 무서워서 못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나중에 회합이 시작되자마자 ‘용감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올해, 오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였고, 우리가 다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2년 전의 악몽이 서려있는 I-285 West를 달려서 집에 무사히 왔고, 거의 즉시로 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와~~ 이번의 예보 정확하구나.. 시간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때, 문제가 안 되는 양 정도 내린 셈이다. 집에 goal-in을 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창 밖을 보니.. 아름답게만 보이는 white stuff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한 때의 폭설에 대한 악몽을 제치고 잠깐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린 하아~얀 눈발은 1950년대 어린 시절, 서울 원서동에서 보던 그런 포근하기만 한 눈발을 다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진 시간이 되었다.

‘독거 사 獨居死’ 연세대..

순교자 성당 성모님, 형제님을 인도하소서..
순교자 성당 성모님, 형제님을 인도하소서..

며칠이나 되었나.. 거의 일주일 전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정오 미사에 봉성체 준비 차 참례를 했을 때, 집전하신 한민 토마스 신부님, ‘어떤 연로하신 형제님이 돌아가셨다’는 짧은 comment를 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어르신의 타계, 선종’ 정도로 알았지만 그 다음날 Buford에 있는 서 베드로 형제 댁으로 그의 어머님을 위한 가족연도에 갔을 때 조금 더 확실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거기 온 분들 모두 이 소식을 알고 있어서 들어보니.. 타계하신 형제님은 나도 알 정도의 낯익은 ‘키가 크신 분, 이 필립보 형제님’ 이었다.

미사 중에 ‘거양성체’를 할 때면 ‘항상’ 무언가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리셔서 사람들이 모를 수가 없을 터였고, 분심이 들 때도 있었다. 별로 오래 전이 아니었을 때 그분과 짧은 지나가는 대화를 한 기억도 있다. 나는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형제님에 대한 ‘소문’이 적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힘든 ‘digestive gas’ 조절 문제도 그 중에 하나였고, 괴짜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또한 성지순례로 다니시고, 레지오 단원도 하셨다는 것, 성실한 신자생활을 하셨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충격적인 사실은 혼자 사시는 senior apartment에서 아무도 모르게 운명을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몇 달 전에 New York Times기사에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식구들로부터 ‘버려진 독거노인’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보도된 것을 읽고 놀랐지만, 그런 일이 성당 근처의 우리의 코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독거 사’가 아닌가?

문제는 역시 그 형제님의 ‘가족문제’에 있었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가족’이 없이 사신 것 같았다. 자세한 사연을 현재 알 수가 없지만, 대강 짐작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원만한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지 못하시고 사신 인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추측.. 또한 오래 전에 San Francisco에 사실 때에는 그쪽 성당의 회장도 하셨다고 듣기도 했지만, 진짜 놀란 것은 이것이다. 그 형제님이 연세대 ‘대선배’라는 사실, 고등학교는 서울고 출신인 고등교육을 받으신 형제님 이었다는 사실이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그런 ‘인텔리 인상’을 강하게 풍기지 않았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학벌’좋아하는 서울고 출신 C형, 그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고, 사실은 몇 달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필립보 형제님, 연세대 시절 대학 농구 팀의 선수였다는 얘기도 있었고, 당시 유명했던 신동파 선수 와 함께 뛰었다는 등등.. 어느 것이 사실인지, 과장인지, 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틀 전에 있었던 식구가 참석을 못한 성당연도에는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역시 서울고 동창들과는 잘 어울리셨는지.. 그쪽 ‘학벌 좋아하는 그룹’ 이 걸맞지 않는 성당연도를 함께 했지만 내가 아는 한 연세대 동창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레지오의 이요셉 연세대 선배님께 물어보니.. 2년 정도 선배이시지만 동창회에서는 전혀 모르는 ‘동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고등학교 동창들과는 조금 어울렸던 모양이지만, 그것이 전부였던 모양이었다.

열심한 신자였고 레지오까지 하신 경력으로 성당 연령회에서 모든 것을 도맡아서 연도와 장례미사를 준비하는 수고를 하는데, 장례미사는 가족들과의 연락문제로 내년 1월 5일에 있다고.. 하기야.. 그렇게 가족들과 연락 없이 사셨으니.. 장성하고 성공적인 자녀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들이 연말 휴일이 겹쳐서 장례미사에 오는 일정에 문제가 있었지 않을까? 제 때에 장례식을 못하게 된 것이 누구 탓이겠는가 생각해 보지만 머리만 아파질 뿐이다.

이번 일로 본당 주임신부님,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주위에 사는 ‘독거 노인’들을 더 잘 보살피자고 부탁을 하셨다. 근래에 들어서 봉성체 관계로 독거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어르신들을 집으로 찾게 되었지만 대부분 가족들이 ‘대기하고, 보살피는’ 모습을 보았기에 이렇게 ‘완전히 혼자’ 계시는 분들이 당면한 문제를 실감하지 못했다. 나의 세대는 우리들 부모세대를 보았고 기억을 하기에, 삼대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따뜻하게 어르신들을 보내드리는 그림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지금에는 누가 보아도 완전히 꿈이고 그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저 가족들에게 “필요이상의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것이 제일 최상의 꿈이 되었다.

Two Candles, ‘Legio’ Re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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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대림 초

대림2주일로 들어서는 아침이 밝아온다. 나의 올해, 2015년  대림주간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별로 묵상도 못하고’ 지낸 첫 대림주가 될듯하다. 아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 그럴 것이고, 그 다른 것이란 ‘육체적 고통’이다. 사순절이라면 고통을 느끼고 묵상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겠지만, 희망과 기다림이 주제인 대림절에서 말초적인 고통 감은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Thanksgiving Holiday를 비교적 무절제하게 ‘외도’했기에 당한 self-inflicted damage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3개의 초가 남아있다. 희망은 있고 다시 겸손, 절제하는 생활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각종 ‘해괴한’ 것들이 news media에 흘러 넘치는 이 세상.. 어떨까? 암만 생각해도 유일한 희망과 해답은 ‘절대적 선(善)’이신 하느님, 구세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맞다.. 모든 근초적인 악의 원인은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고 사랑의 원천은 하느님이라고 보면 해답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 아닐까?

 

¶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5

참.. 세월도 빠르지.. 작년 ‘연총: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의 기억이 어제같이 생생한데 어떻게 벌써 올해 또 이렇게 같은 곳에 모두 모였던가? 작년 것이 생생하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생생하게 몸으로 우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작년에는 우리들과 나이가 비슷한 ‘평화의 모후’와 같이 합작해서 karaoke style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를 신나게 불렀었다. 그때에 연세대 선배님과 가까이 알게 되는 친목회의 목적이 달성되었다. 친목회의 목적은 지난 일년 동안 잘 모르고 지내던 단원들과 친교를 이루는 것으로 ‘레지오 교본’에 명시가 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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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갑자기’ 늘어난 단원 수에 힘을 입어서 대담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였다. 연숙에 오래 전에 관여 되었던 ‘탈춤’을 ‘흉내’ 내 보기로 한 것이다. 예전부터 나는 그녀로부터 이 탈춤에 대한 추억의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글쎄..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힘들 것이다’라는 우려를 하고 연습을 하면서 신도 별로 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예술’은 딱 질색이라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순명’을 제일 덕목으로 삼고 있는 ‘성모님의 군단’의 ‘장교’로서 단체행동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고.. 빠지지 않고 연습을 했지만 결국은 마지막 단계에서 허리통증과 부차적인 고통으로 ‘공연’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연총’ 은 작년 때와 거의 완전히 같은 format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이 있었다. 교본의 정신을 따라서 ‘사치스럽고, 게걸스러운 음식’들이 자제되었고, 각종 ‘경품’ 같은 것도 사라졌다. 그러니까 performing group에 거의 모든 focus가 맞추어져서.. 어떨까.. 이것이 이상적인 연총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비록 탈춤공연에 참가는 못 했어도 오늘 하루 온전히 이 연례행사에 참가를 해서 오랜만에 ‘방관자’의 여유로 장기자랑(공연)과 행사의 진행을 만끽하였기에 예년과 다른 색다른 각도로 보고, 생각하는 뜻 깊은 기억을 만들었다.

‘Giving Thanks’ 2015..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Thanksgiving Holiday 2015, 올해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누구에게 giving thanks를 해야 할 것인가? 연일 뼈가 시려오게 내리는 가랑비의 하늘은 다시 ‘기가 막히게’ 멋진 낙엽을 바라보는 드높은 가을 하늘로 변했다. 지금 seasonal holiday의 상징인 pumpkin color로 온통 주변이 덮인 이곳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올해는 어떤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상투적인 관례로.. 가족 친지들이 모두 건강했던 것.. 물론 제일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것들 이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안다. 아하…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어떤 ‘사건’ 이, 사실은 올해를 the best year of my life, our lives로 만들었다. 어떨까.. 그것이 우리의 노력이나 그저 행운의 chance로 말미암은 것이었을까? 분명히 아니다. 어떤 ‘안 보이는 손’이 우리 뒤에 있었음을 절대로 확신을 한다.  안 보이는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거리낌없이 밝히고 싶다.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시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내가 한국어미사 공동체인 그곳으로 서서히 복귀를 하며 이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예수회 사제로부터 무척 깊은 것을 배우고 소화를 시키려 했다. 그와의 3년은 나에게 무척 깊은 묵상자료가 주워졌던 시기였고, 오래 잊고 살았던 것, 안 믿었던 것, 확실치 않았던 것들에 서서히 빛이 비추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깐깐한 성격을 감안한다 해도 이 사제는 나에게는 ‘은인, 구원자’임에 틀림이 없고, 이곳을 이미 떠난 사실이 나를 허전하게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 예리한 사제에게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하 신부님 뒤를 이어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 예수회 사제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도 빼놓을 수 없는 감사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 사제를 사귀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취미’이지만, 본당 사목 차원의 사귐은 나에게 그렇게 이상할 것 없다. 이신부님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선 개인적인 친근감이 사제적인 후광에 앞 서서 느껴진다. 오시자 마자 쉴 틈도 없이 ‘봉성체 환자’를 찾아 나신 것.. 그것이 우리와 같은 차를 타게 만들었고 아주 가까운 입김을 느끼게 되고 이 젊은 사제의 사사로운 따뜻한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지성의 하 신부님을 대신해서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우리 성당을 3년간 감싸 주시리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친지 중에 이동수 목사님을 빼놓을 수가 있을까?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잊지 않을 정도로 우리 부부들끼리 만나지만, 만나면 농도가 짙고, 심도가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거리를 전혀 느끼지 않는 허심탄회한 자세로 말하고 듣는데,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이야기들의 깊이는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의 체험적인 신앙, 영성은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이 진실하고 공감이 가는 것들이었다. 그리 건강하지 못한 것이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항상 밝게 살아가는 이 ‘아틀란타 한국학교’ 선생님 (한때 우리 부부는 같이 그곳에서 주말에 일을 한 적이 있다), 올해도 감사 드리고.. 부디 몸이 더 건강해 지기를 기도한다.

아차 하면 빼놓을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것은 내가 만 5년 째 몸담고 있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레지오 이다. 5년 전에 입단한 것,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5년이 지났다. 소박한 동기로 입단 활동을 시작했고, 99%가 자매님들인 이곳에서 내가 과연 몇 달을 버틸까 생각도 했지만 나의 부질없는 걱정은 완전한 걱정으로 나타나.. 이제 5년을 넘게 되었고, 이곳은 내가 몸이 불편하거나 ‘강제로’ 퇴단을 당하기 전까지는 큰 무리, 저항 없이 몸을 담고 싶은 ‘신비로운 단체’가 되고 있다. 신비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누가 알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로 성당 공동체 구석구석을 위해 봉사하는 이 ‘생활 전선에서도’ 바쁘기만 한 자매님, 형제님들은 가히 배울 것의 표본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신심봉사 단체를 만들어 주신 Irish gentleman, Frank Duff 형제께 감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여름을 보내는 문턱에서..

¶  2015년 Summer season을 서서히 마감하는 여름의 마지막 휴일, Labor day weekend를 맞이한다. 오랜 전에는 어딘가 불쑥 계획 없이 집을 떠나기도 한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사실 너무도 옛날의 이야기일 듯 하다. 그 중에 쉽게 기억이 나는 것이 1983년 Labor Day 때의 것, 당시 9개월이 된 첫 딸 새로니를 차 뒤에 ‘묶어 두고’,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 없이 Chicago 쪽으로 에어컨도 없는 ‘고물’ 차를 몰았던 추억이다. 당시에는 Columbus (Ohio)에서 학생시절이었고, 지긋지긋한 기나긴 학교생활에서 간신히 벗어나 나의 첫 career job이 정해진 직후였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Chicago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저 ‘진짜 한국음식’, 그 중에서도 ‘진짜 한국식 중국음식’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에어컨도 없는 차를 겁도 없이 몰았다. 총각 때의 경험 만으로 그렇게 겁이 없었던 것일까.. 가다가 차에 문제가 생겨서 repair shop에서 지체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렇게 먹고 싶던 한식, 한국식 중국음식 등으로 배를 채웠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아찔한 여건이었지만 젊음 때문이었을까.. 우리 부부 둘, 참 겁도 없이 그렇게 다녔다. 점점 지옥같이 느껴졌던 학교 생활을 떠났다는 기쁨에 들떠서 모든 것들이 뽀얀 희망으로 보였던 시절이었다. 새로 태어난 우리의 제2의 생명과 새로운 나의 첫 직장, 새로 얻은 가톨릭 신앙.. 등등으로 시작된 우리의 기나긴 ‘가족인생’ 여정의 출발, 그 뒤로 또 하나의 생명을 얻었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4식구가 건강하게 나이를 먹으며 작은 식구가 같은 곳에서 모여 살게 되었음을 감사하는,  그 당시가 새삼스럽게 기억나는 오늘이 되었다.

 

¶  어제 저녁때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교우이자 레지오 단원이셨던 황 어거스티나 자매님 연도에 다녀왔다. 레지오 단원의 급작스러운 선종이기에 긴 휴일 주말에도 불구하고 많은 레지오 단원들이 참석해서 정성스럽게 레지오 전 묵주기도문과 연도를 바쳤다.  참 올해는 유난히도 연도, 장례식이 많은 느낌이었지만 이 자매님의 경우 너무나 예상치 않았던 죽음에 모두들 놀라기만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이었던 모습으로 기억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가셨을까. 

각종 레지오 모임에서 보게 되는 익숙한 모습이고, 근래에는 우리와 같이 봉성체 봉사를 같이 하였고, 작년에는 점심식사도 같이 했던 친근하고 시원스러운 자매님, 정말 급작스럽게 가셨다. 병명은 ‘희귀 병’이라고 하는데.. 의사들도 마지막 순간에서야 확실한 병명을 발견했다고 했다. 미리 원인과 병명을 알았어도 치료 방법이 확실치 않은 희귀 병이라고 하니.. 참, 누구를 탓할 것인가? 선종하기 전에 유언으로 ‘레지오 장 塟’을 원하셨다고 해서 장례미사는 아마도 많은 레지오 휘장 banners 을 보게 될 듯하다.

가을 비, 마르쎌리나, 이시도르

rainy-leaves

I’m dreaming of rainy Autumn foliage..

 

¶ 지난 주부터 갑자기 건조한 가을날씨 선을 며칠 보이더니 그것도 며칠을 못 가서 다시 올 여름의 골칫거리인 습기로 가득 찬 하늘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열대성 하늘’도 수명이 길지는 않으리라.. 이제부터 기대해 볼 것은 무엇일까? 건조하고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무르익은 사과 밭의 풍경들, Holy Family성당 제단 옆의 전면유리에서 영화 장면처럼 변화하는 낙엽 떨어지는 고목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옥의 악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9/11의 슬픈 기억들.. 하지만 최소한 한번 정도는 보여주는 ‘싸늘한 가을비‘의 포근한 느낌을 미리 그려보게 되는 2015년 9월의 시작이다.

 

¶ Marcellina, St. Marcellina  4세기 경 이태리의 성녀이름이다. 성녀 마르쎌리나.. 같은 이름을 ‘세례 명’으로 가진 자매님과 우리 부부가 같이 Fujihana 에서 점심을 했다. 마리에타 2구역에서 10 여년을 넘게 알듯 모르듯 낯을 익히며 지내던 같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교우 자매님이 아틀란타를 ‘완전히’ 떠나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뜻 깊은 오찬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런 타향살이에서 무언가 조금 통하는 영혼을 만나는 것 쉽지 않기에 더욱 섭섭하였다.

긴 세월 혼자서 자녀들을 다 키우며 근래에는 신앙적으로도 많이 활발해진 듯 보였기에 한때는 레지오 입단을 은근히 희망했지만 성당 성물방 봉사 등 다른 쪽으로 활동했는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공부하는 아드님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완전히 이사를 가시는 모양이었다. 이별하는 자리에서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가입을 하시는 선물과 함께 허심탄회한 인생살이를 솔직히 나누어준 자매님.. 기도 중에 서로를 기억하며 건강한 미래가 되기를 빕니다.

 

¶ Isidore, St. Isidore.. 이시도르, 이시도로, 이시돌.. 남자 성인의 이름을 가진 다른 교우 형제님의 이름, 조 이시도르 형제님. 지난 2개월 동안 시름시름 아프시다가 급기야 신부님으로부터 ‘병자 성사’를 받게 되었다. 옛날에는 ‘종부 성사’라고 불리던 이 의식은 사실은 ‘죽음이 임박한’ 가톨릭 신자에게 주는 ‘마지막 성사’다. 한때는 신부님은 물론이고 봉성체를 거부하던 이 형제님이 얼마 전부터 적극적으로 신부님과 영성체를 원하셨다. 우리가 볼 때 하나의 작은 기적이라고 할까.

사연이 간단치 않은 인생을 보내신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하느님을 조금 더 알고 궁극적인 임종을 맞이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고통스럽게 투병을 하는 하루하루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는 곳을 조금 더 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가. 어제 너무나 급작스럽게 선종하신 황 어거스티나 자매님의 소식과 오늘의 병자성사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진실, 죽음을 더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Car Connex, Inc.

Scan1몇 달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60,000 mile이 70,000 mile 이 되었다. 우리의 ‘대중교통수단’ workhorse,  2009 Hyundai Sonata.. 세월을 어찌 따라가랴 이것을 산 것이 벌써 6년이 되어간다. Mileage로 보면 이제는 ‘고물’, ‘중고차’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들에게는 항상 새 차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조용하게, 기운차게’ 달려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차와의 인연’이란 것일까? 차도 “인연이 있고 없고” 에 따라서 고생을 하고 안 하고 하니까. 정말 이 차는 우리에게 best service를 주었고 주고 있다. 이차가 그 옛날 이승만 대통령 시절, 미군 군용차를 뚜드려서 만든 ‘시발’ 택시를 만들었던 조국 대한민국에서 만든 차라는 사실, 그것도 주먹구구식으로 ‘불가능’을 밀어 제치며 ‘박정희 수출정책’을 주도했던 현대 ‘건설’의 차라는 사실.. 간간히 내가 살아온 짧지 않은 국가적인 역사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비록 이곳 Georgia에서 ‘조립’된 것이라지만 design은 역시 ‘국산’이 아닌가.. 너무 문제가 없어서 mileage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렇게 60,000 mile을 놓치게 된다. 한 번 ‘손을 볼’ 때가 10,000 mile이나 지났지만 우리의 ‘등대, 정직한 자동차박사’ Car Connex에 맡겼는데, 검사 결과는 아주 좋은 것이었다. ‘아무런 문제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Car Connex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지 않은 Atlanta suburb , Smyrna에 있는 한인 pro mechanic,  Mr. Won이 운영하는 car repair shop인데 이곳과 다른 인연을 맺은 것도 이제 수 년째가 되어간다.

처음 이 ‘정비소 car repair shop’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작은 딸 나라니가 Smyrna에 살 당시, 자기가 가는 car repair shop이  ‘한국사람’ mechanic 이 하는 것이고 ‘너무 정직하고 잘 고친다’ 는 말을 듣고서였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과장된 칭찬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나라니가 살고 있던 Smyrna Condo의 이웃 ‘미국사람’들이 그곳의 loyal customer란 사실과 그들이 한결같이 그곳을 recommend했다는 사실이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이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Mr. Won (애들은 그저 first name, Chang이라고 불렀다), 우리 차를 맡기고 얘기를 해 보니 역시 소문 그대로였다. 완전한 ‘차 박사’였다. 아니 차를 사랑하는 남자였다. 거기다가 차의 문제와 그 해결책을 ‘기계적, 과학적’으로 잘도 설명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리비는 큰 issue가 되지를 않는다. 정확하게 진단을 하고 알맞게 수리를 하니까..

내가 진짜로 혀를 찾던 case는 우리 Sonata의 ‘이상한 버릇’에 대해서 설명하고 부탁을 했던 것이었다. 거의 새 차였을 당시 transmission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차가 2단 기어에서 1단 기어로 감속을 할 때 99% ‘쿵!’ 하는 충격이 느껴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잠깐 그러려니 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었는데 Mr. Won을 만났고, 그가 ‘멋지게’ 고친 것이다. 고친 과정을 설명하는데.. 실로 대단한 추리로 Sonata를 control하는 computer가 우리의 운전습관을 잘 못 판단한 case로, mechanical problem이 아니었던 것이다. computer를 완전히 reset을 하고 나서 그런 문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dealer한테 갔으면 ‘아마도’ 시간을 계속 끌며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은 고칠 테지만..) 엄청난 charge를 했을 듯 하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은 완전히 그를 믿게 되었고 문제가 있건 없건 간에 차에 관한 것이면 그에게 상담을 받게 되었다. Tire를 바꿀 때에도 그의 advice를 꼭 받았다. 그의 의견은 거의 틀림없이 정확하고 현명한 것이었다. 차에 문제가 생기면 99% 꼼짝달싹을 못하는 Atlanta Metro에 사는 한 우리는 ‘차의 노예’가 된 기분이지만 우리는 Mr. WonCar Connex 가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다리를 쭉 뻗고 살 것 같다.

Mr. Won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번 60,000 mile service를 받으러 갔을 때, 그가 우리 부부를 유심히 보더니.. 한다는 이야기가.. 우리를 오래 전에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를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듣고 보니.. 1998~9년 경에 서울에서 연숙의 조카 딸 수경이가 어학연수차 Georgia Tech에 왔을 때, 그들 group과 어울려서 우리 집엘 왔었다는 사연이었다. 우리 집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낸 그의 기억력도 놀라웠지만.. 이런 인연이 세상에 또 있을까? 너무나 즐겁고 유쾌한 해후가 되었고 그가 제발 이곳에 오래 오래 성공적인 car (repair) business를 계속하게 되기를 기원했다.

Corpus Christi 2015

Scan10143-1¶  Corpus Christi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그러니까 Corpus Christi 주일이었다. 성체성사, 그러니까 예수의 몸과 피가 성찬례에서 빵과 피로 형상화 되는 Eucharist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교, 특히 천주교에서 이 ‘교리’는 진정한 핵심 중의 핵심일 듯 하다. 매일미사를 몇 년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아직도’ 이 교리는 가슴으로 느껴질 듯 말듯 한 그야말로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100% 확신하며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제 날짜에 지켜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성체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의 마감미사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러니까 특전미사여서 일요일을 편히 쉬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성체대회를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유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keynote speaker로 예정되어 있던 Father Robert Barron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서 조금 화가 난 상태로 일종의 protest로 불참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그 모양을 했을까? 성체대회도 이제 조금은 ‘늙었나’ 하는 실망감도 들고.. 그래도 참가했어야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예정에 없었던 일들로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가게 되었다. 물론 매주 화요일에는 레지오 주회합, 정오 미사, 그리고 봉성체 등으로 그곳엘 가지만 이번 주에는 무려 사흘 이나 그곳엘 가게 된 것이다. 목요일은 ‘물론’ 예정에 없었던 장례미사 때문이었고 금요일은 신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가 하는 봉성체 환자 방문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요일의 연도, 장례미사.. 노 데레사 89세 천수를 하신 교우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를 우리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조금은 주저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그 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조문객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느낌’에 아마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에게 ‘평상’ 목요일은 YMCA에 가서 workout을 하는 날이고 집안의 밀린 일도 하는 reserved day라서 망 서린 것이다.

하지만 레지오를 하면서 성모님께 약속을 한 것이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교우 장례식에 가는 것을 rule로 약속을 한 것이다. 가끔 exception이 있다면, 아플 때나 우리가 못 가더라도 조문객이 많다고 생각 될 때다. 그래서 이제는 연도와 장례미사에 아주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곳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곳으로 생각하며 참석을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은 배우고 배워도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금요일에는 새로 부임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들의 봉성체 교우들 (환자) 3명을 찾는 ‘레지오 활동’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미국본당의 평일미사를 거르고 대신 순교자 성당 정오 미사를 참례하고 곧 바로 신부님을 3군데 교우님들이 계신 곳을 모두 찾아갔다. 이것도 전형적인 레지오 활동에 속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일을 하였지만, 우리들이 조금 놀란 것은 신부님의 일반적인 태도, 행동이었다. 사실 이번 활동은 신부님이 먼저 요청을 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감명’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여독도 별로 풀지 못하고 이렇게 사목에 나선 신부님이 조금 존경스럽게 보인 것이다. 교우 환자를 일일이 찾으며 성체를 영해 주시고, 참으로 자상스럽게 대화도 나누시는 모습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해 보였기에 비록 예정에 없었던 하루를 밖에서 보냈지만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13 toothpaste

supherb

 

몇 주전에 Duluth Korea Town 어떤 supermarket에 갔을 때 그곳에서 ‘요란하게 진열된’ 한국계 신문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이 신문들을 볼 기회가 없이 살았기에 아직도 이런 것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새까만 옛날에 미국에서 ‘고향 신문’을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모두 여행자들이 직접 들고 온 것들을 두고두고 본 기억도 있다. 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된 신문이기에 신기해서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것도 급팽창한 아틀란타 지역에서는 고국의 굵직한 대 신문들이 모두 ‘지사’형태로 생겨서 고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지역성을 살려 현지 광고들과 지역뉴스들이 가미되는 차이는 있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가끔 보게 되는 이 신문들.. 솔직히 고국사정에 어두운 탓인지.. 과장된 표현으로.. ‘하나도 읽을 것이 없다’는 한숨만 나온다. 모조리 광고에다가.. 고국 뉴스는 나에게 relevant한 것은 거의 없고, 현지 지역 뉴스는 original한 것은 거의 없고 그저 출처도 불분명한 곳에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 것들이고, opinion, editorial이란  것도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보인다. 그저 제일 practical한 것은 ‘광고’ 들 뿐인가.

그 광고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SupHerb 란 상표의 ‘치약 toothpaste’ 였다. 언뜻 보기에 ‘사기성 과대광고’의 모습을 띄어서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치약의 용도가 ‘약용’이란 것이고, 증상들이 내가 가끔 겪는 것들이었다. 나는 traumatic 한 ‘치과’ 경험들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여기기에 이 광고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통상적인 chemical toothpaste가 아니고 natural한 toothgel이란 것인데, 바로 약초 herb와 aloe란 진통제가 가미된 것이라 만약 이런 성분이 진짜 광고대로 라면 속는 셈치고 try해 볼만 한 것이었다. $13의 가격이 일생일대 썼던 치약 중에 제일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일반 치약과 어찌 비교를 하랴.

자꾸 약해져 가는 잇몸에는 외과적인 방법보다 자연적인,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이 간다. 광고를 보면 사용한 사람들의 testimonial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잇몸이 건강해 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찌 다 믿으랴. 하지만 10%만 믿어도 한번 써 볼만 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답지 않게 $13 거금을 주고 이것을 사서 현재 쓰고 있는데, 아직은 큰 변화는 없지만 잇몸 신경이 조금은 둔화되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이것을 전부 다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모르지만 다 쓰게 되면 무언가를 알게 될 듯 하다.

Rainy Night in Georgia

 
Rainy Night in GeorgiaBrook Benton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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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front over Georgia

¶ Rainy Night in Georgia: California의 기록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이곳 지역 특히 Georgia는 정말 lucky하다고 할까.. ‘진짜’ 여름이 한 달이나 남은 5월 말에 이곳은 거의 매일 ‘장마’ 같은 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린다. 중년이 넘으며 비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게 된 나는 물론 대환영이다. 기온까지 시원해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때 들리는 빗소리는 흡사 Brook Benton의 1970 hit oldie, Rainy Night in Georgia를 연상케 하는 짜릿하고, 아련한 감정까지 일게 한다. 이 oldie는 옛날부터 들을 때마다 ‘밤에 내리는 비에 젖은 한과 서글픔’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성모님의 5월, 촉촉한 비에 젖어 다음날의 싱그러움을 예고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식수제한 까지는 아니어도 잔디나 garden등에 물을 주는 것을 격일제로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로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뭄을 사라지게 하는 충분한 비가 내려 주었다.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내렸고 특히 봄비는 꽃가루 pollen를 적당히 control해 주어서 앨러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었다. 지금 이곳의 weather system은 사실 Texas 지역 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은 완전히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곳은 이런 ‘기분 좋고, 혜택이 많은’ 늦봄 비를 누가 마다하랴..

 

Our 'master', Tobey cookie

Our ‘master’, Tobey cookie

 

¶ 어제는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 으로 5 mile 떨어진 animal medical clinic 에 일년 만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씩 맞는 vaccine shot (rabbi 같은) 은 의무적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른 문제가 있는지 general checkup을 받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Tobey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그러니까 2005년부터 다녔던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인데 그러니까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Dr. Heard는 구수한 인상의 중년이 넘은 ‘전통적인 수의사’ 모습으로 참 pet 들을 잘 다룬다. 특히 Tobey는 이 수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웃는다. 그러니까 Tobey는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한번 visit에서 대강 $250 정도 charge를 예상하지만 가끔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가 그런 예외로.. 무려 2배 이상을 예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Tobey는 건강하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피부의 이상과 귀의 이상.. 모두 bacterial skin & ear  infect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 속에 염증과 피부의 가려움, 염증.. 어쩐지 근래에 지독히도 scratch를 하더라니.. 나는 그저 flea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현미경으로 귀의 액체 fluid sample을 보니.. bacteria가 우글우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귀를 청소, 소독하고 항생제를 맞고.. 그러니까 vaccine shot은 하나도 못하고 급한 이것부터 치료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 recheck을 할 때 annual vaccine shot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주위 pet을 가진 사람들에서 정들었던 식구 같은 pet들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의 모습들이다. Pet들을 거의 사람 식구들처럼 간호를 하고 슬퍼한다. 옛날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던 것 기억을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말 못하는 이런 pet들의 고통을 누가 알랴? 같이 오래 살았던 pet.. 사실 식구나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아니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고 자상하다. 10살을 넘은 우리 Tobey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코가 찡~ 해진다.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우연히 미국 예수회 America magazine website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30초간 볼 기회가 있다면..’ 이라는 주제의 Youtube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street interview를 한 것인가 의아 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올해 9월 미국을 방문하는 교황에 대한 것이었다.

 

America Media asks:
“If you had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what would you say?”

May 13 2015 – 10:19am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의 위치와 의미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교황도 ‘겸손한’ 인간이기에 각 재위 교황마다 한결같이 다른 굴곡1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교황들은 주로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 로 부터 시작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오랜 냉담 시절에는 교황의 위치를 하찮게 보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 이후 그런 나의 ‘바보 같은’ 경솔함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

2년 전인가.. 당시 교황 Pope Benedict XI (베네딕트 16세) 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퇴임하고 급작스레 선출 된 분이 현 교황 Francis (프란치스코)인데 최초로 남미출신(Argentina)인데다가 교황청과는 outsider 에 속해서 어떻게 재위를 할지 미지수였다. 전임 교황들,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분의 뒤를 이으며 그분들이 닦아 놓은 업적을 유지, 계승, 향상 시키려면 그분의 어깨는 정말 무거웠으리라. 그 후의 경과, 결과는 어떤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능가하는 인기와 명성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전임 같은 ‘두뇌’ 보다는 ‘인정, 솔직’함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의심 많은 초현대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 신자들을 매료한다. 그러한 인기를 잘 활용해서 드디어 세계 정치에도 서서히 관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누가 뭐래도 변화 무쌍한 인류 가치관에 그는 변함없는 진리, 그리스도 가치관을 너무나 부드럽게 포용시킨다.

용감하게 유럽을 no longer fertile and vibrant, weary and becoming irrelevant 라고 가차없이 질타하고, 의혹 많기로 유명한 바티칸의 ‘재정비밀’을 투명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가톨릭 교리를 ‘요지부동’의 인상 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는 묘기도 보인다. 예수님의 기본 철학, ‘부자보다는 가난함을 사랑하는’ 실천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 소위 말하는 populism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부자 사제’는 척결하고 본인은 ‘소형차, 시민 아파트’를 택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교황, 어떨까.. 퇴임 시에는 아마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기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런 배경으로, 작년에 아틀란타 대주교에도 불똥이 튀겨, ‘공짜로 받은’ 주교관 mansion을 반납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반 신도들이 대담하게 교황의 모범을 무기로 항의를 했던 것이다. 어떨까.. 이런 와중에 한국출신 교포사목 동남부 사제단인가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김대건 성당도 포함) 하는 곳에서는 작년에 멕시코의 칸쿤 Cancun 에서 사제단 회의를 하였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말씀하던 신부님.. 속으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하필 세속사회의 상징인 멕시코 관광도시 칸쿤에서 비싸게 모여야 했을까? 누군가 설명을 해 주면 어떨까? 그들의 최고 통수권자 교황님의 행적을 그들은 전혀 몰랐던가, 무시했던가?

이 교황을 보려면 제일 직접적인 방법인 바티칸을 가야하고 그곳에서도 사실 가까이 보는 것은 운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중에 이번 9월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혹시.. 우리도 그곳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실험’을 하게 되었다. 크게 무리는 아닐 듯..  World Meeting of Families convention을 계기로 Philadelphia 대회에 참석하고, Washington DC, White House, Congress, New York을 방문 하다고 하니 교황을 비교적 가까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교황과 30초간 함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질문이 이제 100% 공상이 아닌 것이다.

  1.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말을 아직도 쓰는지..

Mother’s Day at the Garden

어제는 모처럼 우리 4식구가 함께 일주일 늦은 Mother’s Day를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보냈다. 이제는 머리들이 다 커 질대로 커진 두 딸, 생각보다 바쁜 생활 일정에 정신 없이 ‘삶’을 사는 그 애들.. 어릴 때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그 애들을 침대 위에서 번쩍 들어서 ‘flying!’을 외치며 내 던지던 때가 조금 과장해서 엊그제 같은데.. 어릴 때부터 holiday나 Mother, Father day를 귀찮을 정도로 챙기던 애들.. 이제는 그런 good ole days 순진하고 포근했던 시절은 다 간 모양이다. 그런 애들.. 너무나 바빠서 올해는 제대로 제 날짜에 Mother’s Day 를 못 챙기고 지냈지만 그래도 일주일 연기해서 모인 것이다.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몇 년 전부터는 집에 모여서 특별한 음식을 자기들끼리 준비, 요리해서 먹곤 feast 했는데, 올해는 먹는 것만은 재미가 없다고 해서 나라니의 idea로 Atlanta Botanical Garden: the Garden 을 구경하고 Garden근처에 있는 새로니 midtown condo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서 먹게 되었다. 2009년 경에 우리는 그곳 the Garden 에 갈 기회가 있어서 사실 그곳은 생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저녁때 잠깐 본 정도라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낮에 제대로 보게 되었고 시간이 충분해서 아주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볼 것은 많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중에는: Canopy Walk, Earth Goddess statue, Fuqua Conservatory & Orchid Center, 그리고 특별 전시 중인 Bruce Munro의 cool light show 가 있다. Canopy Walk, 이것은 Garden forest의 skywalk 라고나 할까.. 숲 위의 고가 보행로인데 이곳을 걸으며 Garden 숲 전체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Canopy Walk는 몇 년 전 공사 중에 대형사고(structure collapsing)가 나서 수 명이 사망했던 뉴스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만큼 이것은 Garden전체에서 중요한 attraction이 되었는데, 사실 느낌은 전체 거리가 짧다는 것이고 ‘고가 도로’라고 하지만 그렇게 ‘고가’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비해서 structure 자체는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 늦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이렇게 저희들끼리 경제적으로 기억에 남는 날을 만들어 준 것 우리는 감사하게 느꼈고, 이런 날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들에게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한시 한시가 귀중하고 기억과 추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임을 절감하게 되기도 한 멋진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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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unro light art

아틀란타 성모의 밤 2015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Scan10139-15월의 절반이 지나가며,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조’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하는 오일육 군사혁명 기념일, 5.16 도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예수님의 어머니 Jesus’ Mother, ‘하느님의 어머니 Mother of God‘,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Immaculate Mary를 생각하는 날들을 맞는다. 5월 달 전체가 사실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달이고 그 중에서도 성모의 밤은 그 절정에 해당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의 ‘한국어’ 본당 도라빌 소재 순교자 성당에서 2015년 성모의 밤이 ‘신선하고, 뜻 깊게’ 열렸고, 우리도 참가를 하여 ‘humanity’s 어머니 마리아’를 기렸다.

이 행사에 내가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레지오 입단 다음 해인 2012년 부터 였으니까.. 4년 째 가 되어가나..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나는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가톨릭에서의 위치를 알려면 가톨릭 ‘마리아 4대 교의’를 상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무거운’ 것이 이날에 그렇게 중요할까.. ‘어머니의 자애’.. 하나만 생각하며 모든 생각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올해 ‘성모의 밤’ 행사 자체도 예년과 ‘아주’ 다르게 ‘정중함’이 풍기는 완전한 절차 임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제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은 모두 레지오 마리애 주최의 ‘약식’ 행사였었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 부임한 ‘신입 보좌신부’ (정말 ‘어리게 보이는’) 와 전례부가 합작을 해서 ‘정식’으로 승격을 시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도 되었다. 왜 갑자기 ‘약식 전통’을 바꾸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주임신부의 이임과 상관이 있었을지 않았을까..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임 신부님의 ‘마리아 신심’은 우리들의 기대에 ‘항상’ 못 미치기에 새로 부임한 ‘이 요한’ 주임신부의 그것은 어떨까 궁금하기만 하다.

 

 

언제나 웃으시는 마리아

 

제 사랑이 풍요로워 지도록

당신의 웃음을 곁들여 주십시오.

 

당신의 웃음을 닮아

저도 맑은 웃음을 웃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저를 도와주시어

당신처럼 웃음 띤 얼굴로

기쁘게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걱정과 고뇌를 잊고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해주십시오.

 

밝게 웃는 얼굴로 이웃에게 다가가

친절과 위로를 나눠주게 해주십시오.

 

제 웃음에 비웃음이 섞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고도 참된 호의로

가득 채워 주시고

괴로울 때에도

웃음 짓은 것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을

마음 깊이 보존하게 해주시고

이 기쁨이 언제나 웃음으로 피어나게 해주십시오.

 

생각과 감정이 다를 지라도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호의를 가득 담은 얼굴로

이웃을 하느님께 이끄는데

저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해주십시오.

 

< J. 갈로 >

아틀란타 성체대회: a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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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Matthew 28:20)

 

“(보라, 세상이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20) 위와 같은 올해의 thematic verse를 배경으로,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2015년 미국 동남부 성체대회 Eucharistic Congress 가 6월 초(6월 5일, 6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일년이란 세월이 67마일의 속도로 느껴짐은 작년 성체대회의 기억을 더듬으면 알 수 있다. ‘엊그제’ 같은 느낌이니까..

올해 성체대회의 theme은 ‘I will be with you always‘.. 마태오 Matthew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until the end of age.. ‘세상이 끝날 때가지’ 가 생략된 비교적 귀에 익은 표현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예수님이 항상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의지’.. 이 말씀이야 말로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어느덧 20주년을 맞게 되어서 누가 보아도 이제 이 연례 대회는 완전히 자리를 굳건히 잡은 듯 하다. 아틀란타가 1996년 올림픽을 주최하며 호경기와 급성장을 예상하던 때, 당시의 선견지명을 가진 Francis Donohue 대주교님의 용단으로 조촐하게 시작 되었지만, 급팽창하는 대교구를 함께 모이게 하고 ‘성소 난’에 봉착한 교회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뚜렷한 목적을 유지하며 건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때 재정난 (eg. subprime mortgage crisis, housing bubble)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교구 여론의 도움이었던가, 난관을 극복하고 예전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건강한 장래를 내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금자탑’에 속한다. 예상 밖으로 우리에게 이 행사는 큰 은총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의 3만 명이 ‘운집’하는 이곳엘 가면 ‘천주교’가 절대로 ‘소수 종교, 방어적 종교’라는 의심을 말끔히 씻어 버릴 수 있다. 성체 신심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나에게 이런 대회는 ‘모조리 배울 것 투성이’ 인 기회라서 ‘절대로 참가하자’라는 결심을 하였기에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한 이 날을 달력에서 비워 두고 산다.

작년까지는 ‘두말 없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에 ‘묻어서’ 참가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예외’로 바꾸어서.. 단체 행동에서 벗어나 우리들 만의 ‘개인 참가’ 하기로 하였다. 교통편 때문에 가급적 성당 car-pooling이나 bus를 타면 좋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문제가 없지 않았다. 아침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올 때가 문제임을 작년에 bus가 ‘예고도 없이’ 끊어진 바람에 당황한 기억으로 Never Again! 을 되 뇌이며 ‘우리 차’로 자유롭게 가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교우들이 성체대회의 절정인 closing vigil mass를 기다리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부터는 우리에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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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congress program을 언뜻 들여다 보니.. 작년과 같은 Hollywood celebrity 급 keynote speaker는 보이질 않는다. 생각하면 이것이 ‘정상’일 듯 하다. 성체대회가 무슨 show나 entertainment는 아니니까.. 하지만.. Not so fast! 다른 의미의 celebrity급 speaker의 모습과 이름이 보였다. 바로.. Father Robert ‘Bob’ Barron!  우아~~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Hollywood star급 보다 brainy하고, 현재 미국 가톨릭 계의  ‘급상승’하는 56세 신부님, 바로 Father Barron이 오는 것이다.

월남 신자들은 규모가 커서 자기들 만의 모임이 있지만 우리들은 어차피 English Track에 속한다. 그러니까.. 언어에 상관없이 ‘영어권’의 인물들에 익숙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어 신자들이 이 keynote speaker들을 알고 있을까? 결국은 부지런히 ‘예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speaker 중에는 Teresa Tomeo, Kerri Caviesel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Father Barron처럼 익숙한 이름은 아닐 듯 하다. 그래서 올해는 집중적으로 Father Robert Barron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Robert ‘Bob’ Barron, 1959 년 시카고 출생 (56세), 시카고 대교구 신부님, Mundelein 신학교 총장, author, scholar and Catholic evangelist.. 나이에 비해서 화려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톨릭 신학대가 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 에 매료되었고 결국 1986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 DC)에서 Master 학위를 받았고, 1992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Institut Catholique de Paris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암으로 서거한 시카고 프란시스 조지 추기경은 그를 one of the Church’s best messengers라고 했듯이 그는  초현대 디지탈 미디어를 이용한 많은 저서, video, website, blog, newsletter, podcasts등을 발행하고 있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인기 있는 강연, 강의를 하고 세속적인 media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가톨릭 교리,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그 중에서 2011년에 출시된 10 편 documentary series:  The Catholicism Project 는 미국을 위시한 16 개국 대중적 TV를 통해서 방영이 되었다. 그의 TV program은 1950년대의 Fulton Sheen 대주교 이후에 처음으로 ‘상업적 TV’에서 방영이 된 case가 된다고 한다.

이런 그의 resume를 떠나서, 나는 이 ‘젊고 handsome’하고 머리 좋은 신부님을 언제쯤 알았던가? 아마도 위에 언급된 TV program, Catholicism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program을 본 적이 없다.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DVD를 사기에는 비싼 것들이기도 했고, 그 것이 나올 당시만 해도 나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그러다가 그의 website: Word On Fire 를 정기적으로 subscribe하면서 그를 거의 정기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나 사순절 쯤이면 그의 newsletter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의 style은 조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Postscript: May 30, 2015

Never Mind!  오늘 성체대회 website를 우연히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Keynote Speakers 명단에서 Father Robert Barron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한 disaster.. 하도 실망을 해서 이곳엘 갈까 말까 생각을 할 정도다. 하기는.. 올해의 여러 가지 느낌이.. 20년 주년 기념적인 이 성체대회에 김이 빠진 듯 한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실망.. 실망..

Mother’s Day 2015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  뜨겁고, 피곤한 big cleanup:  이틀 간 집안 대 청소를 하며 먼지를 꽤나 많이 먹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쌓였던 먼지일 것이다. 또한 무겁기만 한 stuff들을 옮기며 생긴 심한 근육통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닷없이 갑자기 찾아온 early heat-wave와 겹쳐서 나를 더 쳐지게 만든다. Mother’s Day 아침, 며칠 째,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열’로 모든 것들이 따끈하게 달구어 진 느낌이고 이번의 더위는 5월 특유의 dry heat가 아니고 조금은 습한 더위라서 밤에도 더웠다. 처음에는 창문을 그냥 열어놓고 견딜까 했지만 그것이 아니다. 낮에 너무나 근육을 쓰는 일을 했던지 나의 몸이 빨리 식지를 않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일찍 a/c(air conditioner)를 가동했는지.. 우리의 ‘고물, clunker’ 수명을 넘긴 듯한 a/c, 올해도 수고를 많이 해 주어야 하는데.. 과연 올해를 넘길지 궁금하다. 이것은 capital spending에 가까운 ‘거액’을 요구할 터인데.. 이래 저래 ‘피곤하다…’

 

¶  어버이날과 어머니날:  어머니 날.. 나는 어떤 어머니를 생각해야 하나… 나의 어머니, 우리 집 아이들의 어머니, 주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계신 어머니.. 오늘 어머니 날 주일 미사에서 ‘이태리 유학’ 하 신부님, 몇 년째 미국사목에도 불구하고 heavy accent로 ‘머더스 데이’를 말하신다. 한국식 ‘어버이’날에 익숙하신지 아버지까지 함께 언급을 하시지만 이곳에는 따로 아버지 날이 있는지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비록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어버이 날’의 의도는 좋았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한 것 같은 ‘어버이 날’ 은 아직까지 생각해도 별로 좋은 idea가 아닌 듯 싶다. 항상 머리 속에 있는 것 같은 우리 어머님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다. 비록 하늘나라엘 가면 볼 수는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옆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어머님을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한 후회와 슬픔은 분명히 나의 남은 여생에서 십자가일진대 어떻게 그런 사치스런 바램을 논할 수 있을까. 그저 그저 사랑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라는 넋두리만 내 입가에서 맴돈다.

 

우리시절의 ‘어머님 은혜‘, 1950년대 동요

 

¶ P 베로니카 아드님들:  오늘 여름 같은 Mother’s Day에 지난 주에 돌아가시고 장례미사를 치른 P 베로니카 자매.. 그 자매님의 두 ‘미혼’ 아들이 ‘감사와 인사’를 하러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에서 미사에 우리와 같이 ‘참여’를 하였다. 분명히 우리 옆에서 미사에 동참을 했지만, 어리둥절하고 확실히 무슨 뜻의 미사인지는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주위를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심지어는 무릎을 꿇는 등 최선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아무도 그들이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들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작년 이즈음에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칠 전에는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처음 어머니 날을 맞는 그들 두 형제를 보니 가슴이 메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마침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2구역이 마련한 ‘맛 있는’ 미역국 점심을 하며 생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대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는 등 coming out같은 느낌의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의 바램은 큰 형이 언젠가 우리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서 신앙의 눈을 뜨는 것인데,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레지오의 정신, 성모님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