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 6.25 육이오~~

¶  이제야, 늦게야.. 오늘이 6월 25일이었음을 실감을 한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되었는가? 다른 날도 아니고… 나는 그래도 잊지 말고 어제부터 이날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껴야 했었을 것인데, 장구한 세월이 이런 식으로 흐른 것인가? 육이오(박정희 대통령의 발음 ‘융요’를 즐겁게 추억하며) 를 완전히 잊고 하루를 보냈다니… 아~ 빨갱이, 빨갱이들이여~ 역사이래 인류가 고안한 가장 교묘하게 악질적이고 잔인한 ‘사상, 그것을 믿는 집단’들…
푸틴 개XX와 ‘젖먹이 돼지XX’ 김정은이란 X이 만나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YouTube video에서 흘깃 보며 어휴 저 놈들~ 하며  저주를 하기도 했는데, 참 세상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는가? 한때 지구상에서 퇴화, 멸종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이 ‘저주의 사상’이 어떻게 다시 이렇게 고개를 들게 되었는지.. 빨갱이, 빨갱이,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씨 세습 왕조, 나중에는 ‘친애하는 우리들의 운동권 출신’ 빨갱이들까지.. 이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을, 그것도 대부분 동족들을 대량으로 죽이면서까지 ‘공산주의 사회’를 꿈꾸었을까? 다른 한편 이들의 유물론이 얼마나 무서운 ‘또 다른’ 사교집단신앙인지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  VIGANO, VIGANO….  이 사진, 언뜻 보기에 양순하고 착하게 보이는 ‘양의 탈을 쓴~~’, 이 인간, 멀쩡한 이력을 지녔는데, 최근에 갑자기 양의 탈을 벗고  또 다른 Trump 개XX 흉내 내는 亞流, 인간, 명색이 대주교, 한 때 바티칸의 미국 교황대사라는 인간 Vigano인가 뭔가 하는 놈, 그렇게 바티칸 교황, 교황을 온갖 중상모략하며 설치던 이 인간, 결국은 파문소송에 걸렸다는 소식.. 어떻게 그런 놈이 대주교였는지.. 교황과 교회를 완전히 매도하고 교회를 분열하려는 그런 놈, 거의 몇 년 동안 할말 못할 말 다 했던 놈, 그 얼굴이 거의 ‘웃는 악’처럼 나에게 보이는데… 2020년 이전까지는 비교적 양순한 모습으로 교회내의 부패, 사제 성추행 사건들을 파헤치던 것은 그런대로 이해를 하지만 이후 그는 완전히 악마의 하수인으로 돌변했으니..
교회를 분열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트럼프 집단의 conspiracy 집단을 아예 부축이고, 그것도 모자라 COVID vaccine 을 ‘검은 집단’의 음모라고 거짓말까지 하고, 나중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한 것’이라고까지.. 하니 이것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왜 세상이 이렇게까지 돌아가고 있는가? 가톨릭 교회가 싫고 교황이 싫다면 네 자신이 떠나면 될 것 아닌가? 왜 분열을 시키며 거짓말이나 유포시키고, 그것도 교회 밖에서 떠들어 대는가? 정말 근래에 이렇게 보기 싫은 인간들이 [이 인간, 트럼프 집단, 한국에서는 이재명인가 뭔가 하는 인간] 왜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휘젓는 것들이 용납이 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인가?

¶  WORD POWER: Bishop Barron, CAVE or SPELUNKER?
WORD POWER라는 말이 자꾸만 추억과 함께 머리 속에 떠오른다. 소싯적 영어 공부할 때 열심히 끼고 다니던 책이 WORD POWER MADE EASY란 것이 있었는데, 오늘 Bishop Barron의 주일강론 중에 나오는 단어 spelunker 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cave와 동의어였다. 이 신부님의 말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처음 나오는 잘 모르는 어휘, 단어들이 한두 가지가 있는데, 오늘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나의 영어 어휘력도 긴 세월의 덕분으로 만만치 않은데, 이 신부님은 그것을 거의 항상 초월하는 듯하다.
이것으로 나는 이 분의 기본적 학문적 지성을 짐작할 수 있고, 비약적으로 유추를 해서 신학적인 신비성까지 엿볼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 신부님의 탁월한 WORD POWER의 힘이 아닌가?
Cave 대신에 spelunker라고 쓰면 조금 더 유식하게 들리는 것, 이것이 인간 속성인가? 이 주교님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 더 큰 뜻이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까.. 이것이 WORD POWER의 위력…

¶  DARKER SIDE OF…  요새 거의 매일 보게 되는 나의 favorite ‘personalized’ YouTube, 3군데, 모두 나의 개성과 흥미를 반영하는 video들이 집결된 곳들이어서 ‘안심하고’ 나의 구미에 맞는 것들을 보는 것은 좋았는데, 가끔 난데 없이 ‘해괴한’ 놀라운 쓰레기들이 끼어드는 경험도 없지 않고, 어제가 그런 예가 되었다. 이것은 100%  YouTube의 실수일 것으로, 내가 film noir fan이라는 것 때문인 듯 하다. 1950년 대 초의 영화로 B movie에도 못 미치는 한마디로 쓰레기 급이었는데, 아~ 내용이.. burlesque 어쩌구~  [당시에는 rating이니 X 같은 것이 없었으니] 약간 조심은 했지만 설마 정도로 조금 보았다가 함정에 빠진 듯한 후회로 곧 성모님의 얼굴이 뒤에 보이는 착란~. 너무나 실망한 것은 나의 약점 중의 최악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영상의 위력에 나는 아직도 아직도 속수무책임을 실감한 사실… 이런 것 나이와 절대로 상관이 없다는 것, 재삼 확인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저 한 가지, 어깨 너머로 성모님의 꾸짖는 듯한 자상한 얼굴을 보면 된다. 그것이 유일한 위로요 해결책인 것이다. 요새 YouTube는 피하고 싶은 정치광고(Trump 개XX의 징그러운 얼굴)로 흡사 지뢰밭을 지나는 긴장 속에서 보는데, 이런 ‘야한 것’들까지 합세해서 놀라게 하니..

¶  경운혼성합창단 연습 모임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오늘, 처음으로 내가 담당한 tenor part를 조심스럽게 악보로 자세히 보게 되었다. 지난 번 연습 모임에서 반주자가 피아노로 내 part를 친절하게 치며 녹음을 했던 것을 다시 들으니 생각보다 쉬운 것이었다. 이 정도면 며칠만 연습하면 다음 모임에는 자신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 악보를 찬찬히 보면서 나의 궁금했던 것들, 높은, 낮은 음자리표의 관계를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에 비교하여 알게 되었다.  내가 부를 tenor part가 거의 모두 “낮은 음자리”로 되어 있었기에 오늘은 이런 것들에 상당히 자신을 갖게 되었다.

¶  나의 여생,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나만의 공간, 서재 오늘 유심히 본다. 이 방으로 이사온 것이 작년 여름 직전이었으니 이제 일년이 되어가고 그 동안 많이 적응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언가 불편한 것이 적지 않다는 편치 못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는 나의 마음이 정리가 안 된 탓은 아닐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드디어 유난히도 나의 머리 속을 맴돌던 6.25 바로 그날, 그것도 일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 생각하며 보내면 어떨지… ‘오늘의 성인’ 말씀은 우연히도 ‘기억보다는 망각, 용서’의 주제가 나오고… 그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침착하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여름철 같은 날씨로 돌아온 연중 12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1950년 그때와 같은 일요일이 되었다. 73주년이고, 7월 27일의 정전 기념일은 70주년…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한국 예수회의 관할 하에 있어서 그런지 (공식적으로 이곳은 아틀란타 대교구의 한 본당이지만) 전례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기에 오늘은 6.25 동란과 직접 연관이 된 ‘민족화해’가 주제다. 6.25에 대한 느낌이 우리세대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제들’, 가끔 색다른 각도의 조국, 이념, 역사관을 만난다. 이런 부분이 사상 이념 차이 하나로 동족을 잔인하게 죽였던 6.25 , 그것의 끝 자락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지뢰밭’ 같은 위험한 실망과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 6.25 동란과 나의 Landing 50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좀 더 이성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으로 느끼려고 했지만 역부족인가, 큰 깨달음은 나에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다. 각종 이산가족들, 특히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시 보며 그런대로 나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 울분, 안타까움, 절망감 등과 싸우던 내 생애의 늦은 한때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앙금이 아닐까 추측도 한다.

비록 Landing 50년의 짧지 않은 diaspora의 삶, 만약 6.25라는 세 숫자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의 나의 이런 ‘방랑’ 인생이 과연 있었을까?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이 안 일어났다면 개인 역사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대한민국, 남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학자들은 이런 what if scenario에 대해서 연구해 보았을까?

오늘 아침 성당 가는 길은 예외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어 독서가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미사에 안 갔던 날은 있었지만 늦게 도착한 적은 근래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나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때는 괴로운 순간들이다. 차 사고, 차 사고, 어찌 I-258 N는 그렇게 사고가 많은 것인지… 그것도 traffic이 한산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분명히 ‘병신XX’들의 speeding 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 옛적 고국에서 시내 버스를 타면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글씨카드에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여있었던 기억, 그 모습이 요즈음 이런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이런 차 사고는 우리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우울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운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푸틴과 프리고진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모양인가… 역시 러시아는 알 수 없는 나라인가, 현재 그들은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 그들에게 종교 자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만 제외하고 다른 권리들은 다 보장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법치,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으니… 결국 그런 파국이 다시 세계를 못살게 굴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좋으나 싫으나 현대인의 삶의 기준은 dollar나 마찬가지로 Pax Americana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드디어 이재욱 전 주임신부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예보’가 주보 공지가 되었다. 나는 물론 전에 신부님의 카톡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인지… 7월 초에 오셔서 7월 중에 성당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신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듯하다. 우리와 이재욱 신부는 우리 성당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case여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이 간다. 앞으로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

오늘 아가다 자매님이 팔 골절 수술을 받으시고 따님 댁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매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충, 그것은 거의 고문과 같은 것일진대.. 장래 우리가 주위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들의 부모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 처지는 어떻게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떨 때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결국 Sam’s Club의 pizza로 해결이 되었다. 내가 돌아본 곳은 역시 cat wet can food를 파는 곳, 그곳에서 big can, big box 그것도 6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격도 현재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앞으로는 이것도 섞어서 주면 어떨까…

밭에서 따온 고추, 오이가 곁들인 미역국 ‘동네방네’ 점심을 감사히 받는다. 유난히 많이 재잘거리는 연숙이, 무엇이 그렇게도 신나는가,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표현을 하는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섭게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치솟던 90도 이상의 더위가 한 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곳의 ‘여름 비’가 아닌가? 깜짝하고 내리 쏟아지는 이곳 특유의 여름 비, ‘천문학적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계절의 선을 보이니.. 하지만 앞으로 ‘무서운 더위’가 올 것 같은 예보와 느낌은 체질적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stress와 맞서서 싸우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듣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네가 무엇이길래…

Sacred Heart of Jesus, Fish Friday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Solemnity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금요일, 이날은 요일이 정해져 있던가, 궁금하구나. 맞다, 유월의 금요일이지만 몇째 주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의 불타는 심장과 그 상징,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역사적 이유도 있었는데… 이제는 희미해지는구나, 아 불쌍한 나의 ‘노화되는 신심’이여~~  예수회 발행 DVD 제목도 있었고, 한번 다시 Wikipedia로 찾아서 기억력에 활력을 줘야 할 때가 되었나~~ 오늘 아침 미사엘 가서 조금 도움을 받으려나~~

성심, 聖心, sacred heart.. 특히 catholic devotion으로써의 성심은 확실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시발점은 무엇일까? 요사이 예수 ‘수난의 시간들’을 매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수수난 사건을 통해서 보인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 의한 것보다 인간에 대한 ‘초월적, 절대적,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심장, 가슴에 가해지는 고통의 상징이었던 것, 이제야 조금 알 듯하다. 인간역사적으로도 프랑스의 알라콕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교회에서도 인정하는 ‘신심 행위’가 되었다.

대축일 아침미사, 교우들의 평소보다 꽤 많이 모였다. 이들은 확실히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평범한, 착한 교우’ 들일 것이다. 모든 전례를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집전하는 (오래) 전 주임신부님 (Father Thein?)도 큰 도움이 되었고 Irish 거꾸리 자매의 주도로 미사 직후에 ‘예수성심 성인 호칭기도’를 함께 전 교우들이 참여한 것도 그렇게 인상적이고 감명을 주기도 했으니… 아~ 오늘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Pate 파테 빠떼.. paste..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Izzie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wet food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녀석의 입맛 때문인가, 아니면 소화기능에 관계가 된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만… stop 거기까지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는 minced된 것들을 조금씩 섞어서 주고 그것을 먹으면 dry food grind와 pate를 계속 알맞게 섞어서 주면 된다.  현재 녀석의 나이가 18살에 가까워오기에 신경이 쓰인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주기를 빌고 빈다, 양양아~~~

오늘 오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들렀던 Kroger에서 최근 관심사였던 cat wet food section을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Amazon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더 확실한 각종 제품들의 종류와 그것들에 대한 느낌들, 이런 brick & mortar shopping의 혜택이 우리에게 항상,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언제까지 ‘걸어서, 차를 타고’ 와서 ‘둘이서’ shopping할 수 있을까? 현재는 조금 먼 장래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그럴까? 아~ 하느님, 성모님,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며칠 전 특별한 신경을 써서 Mega Mart까지 drive를 해서 사왔던 조기, 오늘 금육재 fish Friday 금요일에 그것이 ‘동네방네1 스타일’ 점심 식사에 등장했다. 잡곡 밥, 시금치 콩나물 국, 계란 찜, 마늘 절임, 열무 김치 그리고 특별히 맛있는 조기구이… 이것이 거의 완벽한 금요일 균형식 점심 식탁의 모습, 감사합니다, 고마워…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근처에 있는 ‘주로 점심 한식점’, 이곳의 점심 메뉴 중에 각종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아~ 이승만 대통령 할아버지~

1951년 9월 24일자 시사화보 잡지 LIFE Magazine에 실린 이 사진, 이승만 대통령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때의 육이오 전쟁의 상황에 상관이 없이 이렇게 트럼펫을 부는 미군 장성에 맞추어 드럼을 치는 모습…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대통령이 타고 가던 비행기가 미군 해병기지에 ‘불시착’, 그를 위로하려는 미군측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서 이렇게 드럼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고…  1951년 가을이면 한국전쟁은 어떤 때였는가…  UN 연합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 부근까지 북진, 그리고 그곳에서 교착상태,  각종 고지에서 혈투.. 또한 개성에서 휴전을 위한 예비협상이 시작 되던 때.. 라고 같은 LIFE 誌는 보도한다.

그 당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미 수복이 되고 피난민들이 부산 등지에서 모두 돌아온 이후였던 그때, 아마도 원서동 ‘무당집, 병세네 집’ 골방에서 이미 납치되어 사라진 아버지 없이 누나와 함께 세 식구가 숨어 살았을 것이지만 3살이 조금 지난 나이에 그때의 기억은 거의 꿈같은 환상적인 것들이다. 이후부터의 각종 추억들, 북진통일 북진통일.. 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은 한마디로 구세주 미국에 못지않은 우리들의 모든 것, 할아버지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것이었는지, 제일 추웠던 느낌을 San Francisco의 한 여름에 경험을 했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이후 오랜 세월을 살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을 꽤 많이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4월 27일, 5월을 코 앞에 둔 오늘,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온 탓이었는지 집안은 거의 냉장고 처럼 느껴지고, 급기야 space heater까지 가동, 그래도 추워서 담요까지, 나중에는 겨울 옷을 찾기까지 했으니… 이것 분명히 나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런 날을 보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의 한여름’ 같이 을씨년스러운 날 점심 메뉴가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homemade ‘수제비’와 ‘너무나 감칠맛이 나는’ 겉절이 [사전으로 겉저리가 아니고 겉절이임을 확인] ,  원래는 fast food 정도로 해결하려 했던 오늘은 이렇게 날씨의 ‘역혜택’으로 나답지 않게 거의 ‘식도락, 먹보, gluttony’ 의 ‘소죄’를 범하게 되었다. 요즈음 너무나 입맛, 밥맛이 좋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매해 봄마다 겪는 ‘식욕부진’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2월 초의 ‘과달루페 은총’의 여운 중의 하나인가… 그저 감사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사일구 사일구 63년…

4.19 사일구, Life Magazine이 사설화 社說化 했던 Student Phenomenon의 주역들…  장장 63년 전인 1960년, 무참하게도 엄청 흐른 세월의 잔해처럼, 머리 속에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오늘 4.19의 느낌…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형님, 누님들 이제는 80대를 상회하는 세대로 진화, 그들의 사상적, 군사정권 치하의 운명과 함께 ‘죽어도 지기 싫은’ 숙적 일본아해들을 따라 잡으려 모든 체면을 깎아 내리고 싸워서 만든 번영조국 위로, 이제는 세대적 갈등으로 ‘해괴하게’ 돌아가는 조국의 장래를 아직도 걱정을 하고… 하기야 그 뒤를 바짝 뒤로 이은 우리 세대 역사 오십보백보 격이니..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카빈 총소리가 효자동 전차 종점으로부터 생생하게 들려오던 가회동 골목 입구에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사태를 예감해서 조회가 끝나자마자 조퇴를 당했던 우리들에게는 어리고 어린 순진한 즐거움과,  만화의 즐거움, 철인 28호, 라이파이 ‘과학적 영웅들’의 도움으로  형, 어른들의 고통을 모르며 살았던 그날의 느낌들… 나에게는 영원한 역사적 추억의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았고… 기억이 되는 한 나는 절대로 희미해질 수가 없는 그 4월의 시절들.. 사일구, 사일구… 쓰러진 형님, 누님들을 언젠가는 다시 ‘어데선가’ 볼 것도 이제는 초월적인 확신으로 다가온다.

벌써 code orange? 왜 벌써 이런 일기 예보가?  싱그러운 5월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씩 계절, 날씨가 ‘더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싸늘한 밤, 뜨거운 낮이 교차되는 전형적인 4월의 모습인가.. 아니다, 벌써 4월도 하순으로 접근… 아~ 시간이여, 세월이여 봐주라, 조금만 천천히 가거라, 여유를 좀 주라~~

거의 한달 이상 나의 future website theme을 찾으려는 결과인지, 현재 나의 정든 Artisteer  WordPress Theme의 모습이 조금 ‘왜소하게, 고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 더 시간과 정력을 쓰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까지 하니…  조금 더 신선하고 넓게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나의 모습으로… 역시 바꾸기는 바꾸어야겠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오늘은 유난히도 우리 둘의 분위기가 밝기만 했다. 이런 상호간 느낌은 왜 이다지도 매일 매일 그렇게 바뀌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근본적인 장애나 문제가 없는 우리 부부, 왜 그렇게 가끔이지만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일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이것이 제일 확실한 처방약이라는 경험적 진리를 왜 나는 일초도 되지 않아서 잊게 되는 것일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이런 밝은 가능성을 앞으로 나의 희망으로 알고 조금이라도 기쁘게, 즐겁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무조건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 그것이 삶의 처방책이요, 지혜임을 잊지 말자.

정확하게 2주 만에 Holy Family 동네성당 아침 미사엘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금요일 전 수요일에 갔던 것이 마지막… 하지만 나는 참으로 오래 전으로 느껴진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왜 그렇게 어색하기만 하고… 연숙이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거의 피하고 싶은 그런 것, 그것이 나의 성격이니 어찌하겠는가?

썰렁한 성당 내의 모습, 이곳도 세월이 우리에게는 많이도 흘렀구나~ 2012년부터 아침미사엘 가기 시작했으니까… 그 동안 교우들의 모습도 사제들과 함께 나이와 Pandemic를 거치며  변하고…  요새는 아침 rosary group leader격인  ‘거꾸리와 장다리’ 부부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데 오늘은 숫제 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장다리 형제님이 아프다고 했기에 아마도 그것이 이유일 것이다. 세월엔 약이 없구나, 언젠가도 우리들도 같은 운명이 되겠지만…

바짝 마른 식빵으로 만든 우리의 classic Sonata Cafe, 이것도 모처럼 다시 오늘부터 시작이 되었다. McDonald’s에 가는 것도 이제는 조금 자제를 해야지..  이어진 YMCA gym, 이곳도 2주 만에 간 것이고 보니 조금 새롭게 보인다. 특히 걷는 것도 2주 만이니… 그렇게 운동을 못하고 살았는가… 연숙이는 오늘 수영은 빼고 걷기만 했고 나도 살살 얌전하게 모든 machine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얌전하게, 적당히, 부드럽게, 무리하지 말고~~

이어서 Sam’s Club엘 들러서 점심용 sushi를 사가지고 와서 아주 맛있게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하루의 거의 절반이 소요되는 이 regular, fixed routine,  크게 신나는 듯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70대 삶을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이 아닐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오후의 혈압이 나를 놀라게 한다.  120~30란 숫자가 눈에 익은 것인데 오늘은 115/65? 이것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낮은 것인데, 조금 어지럽기도 하다. 이 정도면 조금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큰 문제가 없으니 상관은 없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근육 운동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낮아졌을까? 혹시 이것이 정신적, 심리적, 심지어 영성적인 긍정적인 factor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이렇게 혈압을 올리고 내리게 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NYT에 Dominion Voting scandal에 관련된 Fox News 상대의 ‘명예훼손’ 소송 결과가 보인다. 예상은 조금 했지만 거짓말로 일관하고, 그것을 뉴스라고 우겼던 또 다른 SOB들, Fox News의 소위 말하는celebrity journalists들, 그들은 한 마디로 쓰레기 중의 쓰레기… 사상초유의 엄청난 손해배상으로 소송은 취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행태는 완전히 천하에 증명이 된 셈이니… 아~ 정말 시원하구나~~  하지만 이 엄청난 손해배상으로 그들의 ‘거짓말 자백’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아쉽기만 하다. 말도 안 되는 ‘부정선거’ 거짓말로 돈을 벌고 살아가는 이 바퀴벌레급 언론인[제일 악질은 역시 Tucker Carlson이란 준 정신병자]들을 퇴출시킨 무기는 역시 미국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legal system인 것, 왜 그것을 그들은 간과했을까?  하지만 모든 문제 원인의 핵심은 역시 이들의 미친 괴수두목인 ‘진짜 SOB’ DONALD이기에 또 다른 더욱 강력한 legal system의 위력을 학수고대하고 싶다…

맥랑 麥浪,  ‘보리, 밀’ 麥, ‘물결, 파도’ 浪  허~ 이런 단어, 말도 있었나?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한번 찾아보니…  ‘보리나 밀이 바람을 받아서 물결치듯 흔들리는 모양’ 아~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YouTube에서 우연히 본 1990년대 초 KBS ‘청소년 드라마’ 연속극이의 제목이 이것이었는데… 왜 맥랑이라고 했는지? 그러니까 이것이 ‘사춘기’를 뜻하는 것인 모양이다. 이제야 궁금증도 풀리고, 이 드라마를 시대, 세대 배경을 의식하며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청소년 드라마, ‘KBS 청소년 문학관’ 을 나의 시절을 함께 회상하며 보았기에 이 ‘맥랑시대’도 조금 기대가 된다.

오늘은 ‘용하게도’ [이 말은 100% 구어체인가] WP dream theme quest를 오후 8시가 되도록 손도 대지를 않았다. 이 theme quest work, 묘하게도 이것과 씨름하며 싸우는 시간 그 자체는 재미있고 신나는 것이지만, 일단 일이 끝나면 솔직히 끝 맛이 ‘더럽다.’ 항상 결과가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인지… 그래서 요새는 시작하는 것 조차 무섭게 되었으니… 왜 이렇게 나는 만사에 민감하기만 한 것일까? 도대체 이 ‘쪼잔한 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조금 덜 행복하게 느끼게 하느냐 말이다!!!!!!

Shamrock at Kroger, The Untouchables in Chicago

오늘의 정규 활동, 외출 등이 2시 경에 모두 끝나고 Kroger에서 pickup한 스시, 회덮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하고 나니 3시가 넘고… 하~ 이렇게 되면 또 하루가 반 이상이 떠나고 있는 것인가?  매일 매일 비슷한 routine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 싫은 것이 골고루 섞인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과 성취감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아~ 재미없다~’ 라는 한숨도 주는 것… 노후의 세상은 이런 것인가?
오늘 Kroger에서 우연히 flower, plant section엘 가보니 유난히 눈에 뜨이는 것이 보였다. 혹시~ 하며 보니  아~~ 역시 그것은 St. Patrick’s Day (flowering) Shamrock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까지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이었는데 오늘 어떻게 이렇게 우연히 나의 눈에 뜨이고 자세히 보게 되며, 사진까지 찍게 되었을까? 3월 17일이 바로 그 날인데… 이날은 나에게 무엇이며, St. Patrick 은 또한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Shamrock은 Ireland의 상징이고 3쪽의 잎사귀를 수호성인인 St. Patrick가 그리스도교 삼위일체 Holy Trinity의 상징으로 삼았던 전설이 있다. 봄의 상징으로도 느껴지는 초록색은 역시 Ireland를 연상하게 하는데… 세월의 횡포인지, 그들 Irish들의 대다수가 이제는 무섭게 교회를 등지고, 세속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벌써 3월 15일… 3월 15일하면 즉시 떠오르는 구절은~~ 역시 우리 세대에는 ‘3.15 부정선거’일 것 같다. 그러니까 1960년 3월 15일의 ‘억지로 앞당겨진’ 대통령선거, 그것이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였고 한 달 뒤 4.19로 이어지던 역사적 현장의 삼삼하게 눈에 떠오른다.
오늘도 어제와 거의 비슷한 3월의 추위, 날씨를 맞는다. 어제보다는 10도 가량 높다고 하지만 느낌은 아마도 바로 ‘그 3월의 추위’일 것 같다. 이렇게 3월의 중순을 넘으면~ 아, ‘목련꽃 그늘아래서~~’의 찬란한 4월, 촉촉한 봄비의 4월이 정녕 나에게도 오는 것일까…

오늘로써 ‘수난의 시간들‘ 24시간째를 맞는다. 예수 수난 마지막 24시간은 성금요일 오후 4시에 해당하며,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묻히시는 것과 더불어,  ‘마리아의 비탄’ 주로 ‘성모의 고통’이 주제인 것을 보면 이 수난의 기도의 저자인  ‘The Servant of God1,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 도 역시 신실한 성모성심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오늘까지 내가 몇 번의 24시간째 기도 묵상을 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제는 이 분이 겪었고 묵상했던 이 놀라운 영적체험의 dynamic에 조금 익숙해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유혹은 매번, 항상 옆에 있다. 이상한 나의 ‘반발심’이라고 할까? 쉽게 말하면 ‘당신이 무엇이길래… 어떻게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며 거의 의심하기까지 하는 나의 작은 시기심, 심지어 적대심까지… 왜 그럴까? 이런 깊디 깊은 체험을 함께 나누어 받는다는 사실에 우선은 감사하고 믿고 따라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웃기게 춥고 싸늘한 나날들, 며칠 만에 매일 아침미사엘 갔다. 그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거꾸리와 장다리 부부’가 이제는 아침 묵주기도 팀을 인도하지 않고 자리도 뒤쪽으로 옮겨 앉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몸이 쇠약해진 것은 아닐지… 이 부부는 모르긴 몰라도 이곳 매일 아침미사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분들인데…  역시 세월, 나이의 진행은 이런 것인지, 은근히 매일아침미사의 앞날이 걱정이 된다.

어제 우연히 발견한 YouTube Film Noir move video, 역시 오래된 추억의 영상, black & white TV crime drama, The Untouchables이 바로 그것이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ABC-TV로 4년 동안 방영된 1930년대의 Chicago gang, 특히 Al Capone 을 중심으로 그들을 일망타진 했던 전설적인 인물 Eliot Ness team의 이야기들이다. 이것도 추억의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가능하면 ‘사라지기 전에’ download해 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이 TV drama은 한국에 있을 때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이 TV drama들의 시대가 주로 1960년대 초.. 그러니까, 미안하게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TV 를 볼 수 있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우리들이 TV로 미국 TV program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던 때는 1960년대 중반 전후였으니까..

내가 이 ‘무시무시하고 음침한 흑백drama’를 처음 본 기억은 1974년 경 시카고에서 TV를 통해 ‘재방영 rerun’된 것이었는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이 drama 속에 등장하는 길거리의 이름들이 귀에 익숙했던 것이고, 알고 보니 그것들은 바로 시카고의 길 이름들이었다. 193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시카고를 주름잡던 Al Capone (우리들은 당시 카포네 라고 불렀다) gang들이 중절모와 신사복을 입고 독특하게 생긴 기관단총을 옆구리에 차고 거리를 누볐던 시절의 광경들이 이 drama에 ‘소설화’ 되어서 재현된다.

하지만 이 drama를 TV에서 보았던 그때 나는 시카고 갱들과 이를 추적하며 잡아들이는 전설적인 수사관 Eliot Ness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몰랐다. 이 수사관들은 gang들로 부터의 각종 뇌물 같은 유혹을 뿌리친 덕에 ‘건드릴 수 없다’ 고 해서 the untouchables라고 불린 모양이다.비록  Al Capone는 탈세혐의로 10여 년의 감옥살이를 했지만 워낙 그는 유명한 인물이어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그를 잡아들인 수사팀의 leader격인 노르웨이 출신  Eliot Ness는 나중에 소설화된 이후 이런 TV drama로 간신히 재조명, 영웅시 되었다.

Eliot Ness

이 TV drama는 미국 사회, 특히 1930년 전후 사회상 (특히 지하 범죄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기에 미국 역사 공부까지 된다.  ‘알코올 중독’의 사회적 폐해에 대응해서 등장한 ‘전무후무’한 Prohibition (일명 금주령) 가 헌법화된 것, 비록 알코올 피해는 줄었지만 반대로 지하조직 범죄가 극성을 부리게 된 결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더 컸던 뼈아픈 사실은  급하게, 충분한 여론수렴이 부족한 종교적, 극단적 해법이 얼마나 위험한 것도 실감시켜 준다.

 

  1. 성인 품으로 가는 교회 수속의 첫 단계

Second Anniversary, Trump’s Capitol Attack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지 못할 악몽의 그날, 한편으로 까마득한 옛날처럼 다가오고 [잊고 싶기에], 반대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잊어서는 안 될] ‘혼동과 격정, 분노, 실망, 자괴감, 살의’ 등등이 온통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도는 21세기 version,  Day of Infamy, 그것이 January 6 의 얼굴이 아닐까… 오늘도 아쉬운 것은 이 infamy의 ‘유일한 주범’이 자유의 몸으로 아직도 거품을 품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희극적인 사실이다.  도대체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명언은 어떤 순진한 인간이 만든 것인가?

다시 겨울날씨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은 따뜻한 겨울의 모습, 그러니까… 영하의 기온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central heating과 space heater가 필요한 날씨, 대신 바람이 거의 없고 햇볕이 쏟아지는 것으로 ‘조용한 겨울’의 포근함조차 느낀다. 이제 우리들은 2023년의 ‘정월’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일월, 일월, 정월… 새로니와 나 그리고 ‘잊지 못할 친구’ 건주의 생일, 우리부부 (가족의 시작)의 43회 결혼기념일…  1월 말의 ‘눈이 내릴 가능성’, 아하~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은 역시 ‘과달루페 순례길’… 아~ 조금은 아찔하게 인상적인  정월을 보내게 될 것인가?  주님, 성모님~ , 저희를 안전하게 그곳으로 인도해 주소서…

“A man of prayer is capable of everything.” – St. Vincent de Paul

오늘 성인의 말 …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그래, 현재 거의 중단된 가족 저녁기도… 어떻게 재개를 할 것인가?
어제 매일미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받아온 책, 역시 Matthew Kelly의 ‘선물 책’이다. 제목이 The WISDOM of the SAINTS… 매일 하루 365일 동안 성인들의 짧은 어록이다. 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읽게 되었다.

오늘은 연숙이가 Tony K 치과에 가서 아픈 이를 뽑게 되었다. 아프다 안 아프다 하는 세월이 지속되었지만 이제는 별 수가 없는 모양.. 나보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아픈 이를 참고 살았느냐고 몇 번이고 묻는다. 사람마다 고통을 상대하는 방법이 천양지차 天壤之差 이지만 나와 그녀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닌지?  나는 물론 치과에 가는 것이 참는 것보다 더 싫기에 그런 것이었다. 후회가 조금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별 수가 없었음도 사실이다.  새해부터 Humana PPO dental coverage가 훨씬 나아졌기에 이제는 연숙에게 치과방문도 부담이 적어질 듯하다.  이를 뽑으면 오늘 점심 식사도 문제가 되겠기에 아침은 일부러 deluxe double mushroom/ham sandwich로 가득 채웠다.

 

Finding Your Roots, My Roots…

일요일 아침 TV, 오래 전 NBC, CBS, ABC, PBS 시절에는 각종 News ShowsTV를 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아련한 역사, 추억이 되었다. 그 중에 제일 덜 자극적이고 안전한 곳이 역시 PBS kind가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은, 아~ 잘 걸렸다. 족보 탐정, 역사 탐정, history detectives program, Henry Louis Gates, Jr. PBS 의  ‘Finding Your Roots‘이다. 전에 꽤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 참 잘도 만들었다. 오늘은 나의 족보와 연관을 시켜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제 ‘대한민국’도 족보를 이런 식으로 찾으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것을 한국판 version으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만약에 실현이 된다면, 나의 족보도 고려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을 수 있을까? 기록은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지 않을까? 아버지 대 까지 ‘간신히’ 남아있는 우리 평창이씨 익평공파 족보를 누가 누가 조금 파 헤쳐줄 수는 없을까?  이 중에는 분명히 한국천주교 첫 영세신자 이승훈 베드로 할아버지도 있을 텐데, 과연 이런 기록들이 얼마나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해보면 어떨까, 아니 관심과 능력을 가진 젊은 종친과 힘을 합칠 수 있으면… 아~ 꿈같은 상상의 날개, 나래… 느낌은 정말 하늘을 나르는 기분~  그것도 우리 어머니 쪽, 원산 楊씨와 함께~

 

Our Diaspora Koryo-in

대한민국 광주지역에 정착한 고려인들

고려인, 고려인은 누구인가?  천여 년 전 고려왕조 사람도 고려인이겠지만 이것은 최근에 알게 된 새로운 종류였다. 자세하게 말하면 이들은 조선조 말기 (19세기 말) 부패하고 가난에 찌들은 조선땅을 떠나 두만강 이북 연해주 지방에 정착했던 우리 민족 동포들인데, 당시 복잡한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련의 스탈린의 정책으로 그 정착지에서 강제로 쫓겨나 시베리아, 소련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이후에 고려인으로 불려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각종 민족유배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올해 여름에 그들에 관한 것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그들이 대한민국의 배려로 다시 고국에 정착한 이야기들은 한마디로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그러한 대서사시, 그것을 읽는 기분이다.

이들은 말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게다가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억척같이 살았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  완전히 변했지만 발전한 조국 대한민국으로 ‘역이민’을 하며 정착하고 있는 모습들이 감동적으로 보인다.  이제 이들의 150여 년 간의 고통은 조금 보상을 받을 것일까? 이런 것들로 ‘부강한 민주주의’로 발전한 조국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고맙습니다, 대~한 민국!

오늘도 시간이 나면 며칠 째보는 것, ‘고려인’과 관계되는 video들, 어쩌면 그렇게 나를 심취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의 신세와 나를 종종 비교하는 것도 피할 수가 없고,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그렇게 쏟아지는 것, 어찌할 수가 없으니~ 내가 무엇을 그렇게 참고 살았던 것일까? 나의 뿌리, 그것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울고, 웃고, 기쁘고 , 슬프고… 모든 각종 상상할 수 있는 깊은 속에 있는 감정들이 완전히 뒤엉키는 듯 느껴지고… 하지만 열심히 보고 본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을 보니 분명히 나는 몰두해서 보는 것, 분명하다.  돌아온 고려인들, 피곤했던 과거를 모두 잊고 포근한 조국에서 그들이 세세대대로 다시 건강한 뿌리를 내리기를 기도한다.

Young Queen Elizabeth, Rest in Peace

Elizabeth, Queen, Elizabeth! 편안히 잠드소서.. 연옥을 안 거치는 천국 여정,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여왕이 타계한 때가 9월 8일, 그날은 성모님의 생일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모든 것이 다 우연이 아님을 이 나이에야 깨닫는다. 이 여왕은 나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의 세계사에서는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여왕은 언제나, 항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2/3년, 나의 기억력 한계점, 이후로 항상 나의 ‘막내 이모’같은 여왕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그의 첫아들, 찰스는 나와 생년이 같은 1948년의 인연으로 항상 나와 함께 자라던 세대, 이후로 그의 결혼과 그의 가족사는 나의 그것과 함께 비교가 되곤 했다. 그가 이제 공식적으로 King Charles III로 불리는 명실공히 영연방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으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나와 동갑, 그의 건강상태는 잘 모르지만  보이는 자태로 분명히 우리 세대에 비해서 장수할 것 같고, 그렇기를 바란다.

 

오늘은 뜻밖에 로난과 나라니가 갑자기 놀러 왔다. 갑자기 심심해진 모양이라고 추측을 했지만 나중에 돌아간 다음에 알고 보니 로난과 우리가 조금 더 친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가끔 보고 살긴 했지만 아이의 기억에서 우리가 많이 멀어진 것을 우리도 알고 있기 했다. 역시 오늘 녀석을 보니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랑비가 올 듯한 날씨에 녀석을 데리고 playground 에 갔다 왔는데, 1년 전의 그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 그 때는 걷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문제가 없고, 대신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등, 사실 짧은 거리를 걸으며 나도 불안하고 힘이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걷는 녀석과 지나가는 차를 같이 보니 정말 고역중의 고역.  이렇게 두어 시간 같이 보냈지만 그것이 다시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

 

 

Lesson from History, Looking for Mr. Goodbars

명성황후, 명성황후… 오늘도 짬이 나는 대로 그 동안 꽤 많이 download했던  History Special, ‘역사스페셜 류’ video 중에서 몇 개를 보았다. 올 여름 나를 그런대로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들 바로 이 역사물인데, 오늘 본 것 중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것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때 시해 弑害에 가담했던 ‘일본 낭인 浪人’들의 후손들이 개인적인 사죄를 하러,  이미 일본에서 한류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던,  2005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은 비록 ‘살인범들의 후손’들이지만 민간인으로써 진심으로 사죄를 하는 것으로 드물게 잔잔한 감명을 주었다. 이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진심을 읽는다. 대부분의 민간인들, 아니 그 외의 일본인들이 사실은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다 비슷할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몇몇 사람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거대한 세계사적 운명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사주, 아니 지시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프로그램은 추적하지만 100%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거의 이토 히로부미가 배후에 있을 것 아닐까 하는 확신을 보여 주고,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일부, 아니면 전체가… 하지만 기구한 운명의 명성황후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을 참을 수는 없다. 새삼 재확인 하는 교훈적 진리는 우리가 사는, 속한 국가, 나라가 어떻게, 왜, 언제 흥망성쇠 興亡盛衰 과정을 거치는가 하는 것이다.

Pandemic이 야기한 외로움의 여파가 썰물처럼 사라진 이즈음, 나의 ‘3명 남자의 만남’ 제안에 대한 R형의 답신, 조금 이해하기 힘든, 씁쓸한 맛, 아니 심지어 기분이 안 좋은 느낌인 것이다. 조금은 우려하고 배려를 했지만 결과는 결국 부정적인 것으로 끝났다. 2017년 가을 이즈음을 추억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P 형제와 함께 세 명의 남자들만 모여 볼까 했던 나의 소박한 희망은 무리였나 보다. 그들 둘 사이의 관계가 원인으로 보긴 하지만 이것으로 나는 R 형 자체에게 걸었던 ‘새로운 친구’의 기대가 현실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느낀다. 심지어, 나의 마지막 ‘친구 만들기’ 노력도 무산되는 듯한 생각까지 든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의 말 tone에서 느껴지는 인상들이 나를 실망시킨다. 조금은 ‘유아독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아닐까. 이제 3년에 가까운 honeymoon적인 시기는 완전히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life style 외적, 취미, 활동 등도 우리와 너무나 상이한 것,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치르는 싸지 않은 대가일지도 모른다.

 

Golbin Lunatic Party, Republicans…

Online NYT, streaming channel France24에서 지구상의 소식을 조심스럽게 느껴본다. 다행인가, 새로운 big news는 없는 것, 조금은 심심하기도 하지만…  일본 뉴스는 이미 알고 있었고 아베의 장례식이 오늘이라는 것 정도인데… 뉴스의 초점이 이제는 일본과 미국의 총기 문화의 커다란 차이로 맞추어지고 있는 것도 본다. 지난 해 1명이 gun 으로 사망한 일본과 수 만의 미국과의 차이는 정말로 너무 심한 것은 분명하니까…  이것은 법 보다는 역사, 문화의 차이인 것도 모두 알지만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는 정치적 의지와 방법인데… 참 이래서 더욱 정치인들, 특히 극우 쪽 인간들을 조심하게 되니… 모든 문제는 이 ‘골빈당 극렬, 맹종 분파, 분자‘들인 것인데… 경제적 중산층에 맞먹는 건강하고 온건한 정치적 온건, 중립층의 뚜렷한 존재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인데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나도 포함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극단 골빈당들만 보이니.. 이래서 요즈음 세상이 비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Republican이란 정당, 한때 나에게는 친근한 친구들처럼 보이기도 했고 지난 10여 년의 나의 신앙적 귀향 때에는 적극적으로 지지를 하기까지 했던 링컨의 정당,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는가? 어떻게 그런 DONALD 개XX에게 아직도 이끌려가는가?  정책이고 나발이고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 하나로 그들은 한마디로 위선자중의 위선 집단이라고 생각된다.  남북으로 분단되는 것을 전쟁으로 저지했던 링컨,  그런 후예들이 이제 또 ‘남북’으로 갈라놓겠다고? 오늘 뉴스가 글쎄… 처음으로 그XX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그러면 그 동안은 절대지지? 허~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미국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가? 사상 유례없는 devil’s masterpiece, scam-artist, liar, racist, narcissist, egoist, sex offender, dirty old man, Al Capone, misogynist, … 이것 말고 수천 가지가 더 있을듯한데…  제일 나를 웃기고 울리게 하는 사실은 다른 것이 아니고 이름뿐인 Christian을 자처하는 개신교, 그 중에서도 evangelicals들의 90%이상이 이 개XX에게 미쳐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믿는 ‘예수교’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 종교인가?

요새도, 오늘도 끊임없이 줄기차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고 또 본다. 역사스페셜 류의 비디오들… 다행히 새로 찾은 YouTube downloader덕분이다. 이것은 하나도 download failure가 없는 것이어서 많은 역사물을 개인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보는 것으로 가정하고 모조리 720p format이어서 비교적 download속도도 빠르고 나의 hard disk storage도 큰 부담이 없으니 얼마나 잘 되었나? 이로서 나의 한여름 더위를 조금이라도 잊게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고임을 알았으니… 다음 해 여름에도 반드시 잊지 않을 것인데.. 역사물을 다 보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떤 것을 찾아야 할 것인가? 물론 희망은 ‘영성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궁극적인 납량물이 되어야 한다.

오랜만의 여름독서, 올해는 Robert Barron의 essay, Redeeming The Time… 근래 우리에게 최악의 도전이 되고 있는 각종 사건에 대한 성경, 영성적 해답을 시도한 정말 시기적으로 적절한 책이 아닌가?  읽기도 큰 부담이 없을 정도로 명쾌하고 비교적 짧은 글들이 나에게는 제일 큰 이 책의 장점이다. 끝까지 ‘단숨에’ 읽을 자신을 주니까… 올 여름 독서목록의 첫 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시원한 며칠 밤을 자는 것, 편하고 꿈까지 활발하고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몸이 쑤시는 것도 별로 느껴지지 않고 일어나서 어둠 속을 걷는 것도 비록 조금은 균형을 잡기 쉽지 않지만 이 정도면 또 하루를 살 수 있다는 안심. 다만 손, 손가락을 쥐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손가락을 크게 쓰지도 않았는데… 아하~ 이제 TV의 광고가 떠오른다. 이것이 ‘늙음의 신경통’인가?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되는 것? 그렇다면 적응하며 살면 될 것 아닌가?

오늘도 유나와 노는 시간이 있었고, 점점 익숙해지니 나를 보면 방실방실 웃기도 한다. 아~ 이제야 손주의 맛과 재미를 맛보는 것인가? 나는 유난히도 손주의 재미를 기대하지 않고 살았기에 새롭기도 하다. 유나네는 이사를 갈지도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더 정을 들려두는 것도 좋다.  이번 주일은 새로니 집의 실내공사로 우리에게도 조금은 시간을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이것을 빼앗긴다고 표현하면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게다가 내일의 스케줄은 더욱 바뀌어서 Ozzie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 이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주면 되는 거야~~

 

Abe Shinzo, Steamy Days, YouTube Downloader

아베 신조 (영어로 쓰면 아마 링컨을 떠올렸을 듯한데) 나이에 비해서 건강하고 젊게 보이는 일본 ‘프로 정치인’이 어처구니없게 저격을 당해 사망했다는 것, 슬프기 이전에 너무나 세상이 한심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의 한일관계의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신사적이고 애국적인’ 일본인을 억지로 싫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다, 나는 그의 집안 내력과 행적들에 호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거의 그에 대한 것을 나는 모르지만 최소한 대화가 가능할 것만 같은 인상인 것이다. 상고사를 들추면 그도 역시 백제의 후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역사를 보는 교육이 현대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Another Heat Advisory? 허~ 3일 연속으로~ 그런데 몸이 적응을 했는지, 예보가 조금은 극단적인지.. 오후의 heat index 문제는 그렇게 괴로운 것이 아닌 듯 느껴진다. 매일 오후에 고맙게도 잔뜩 흐리며 비가 올 듯 말 듯하게 되기에 그런 모양… 그래, 제발 이 정도로 여름을 나게 해주라…
요새의 평균 최고기온은 92도 정도, 습도는 비교적 완만하게 유지하는 so so, same ole, same ole days를 지나가고 있다. 이럴 때 바닷가에 가는 것은 거의 꿈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시원하고 쾌적할 것인가… 생각한다, 못 갈 것도 없니 않느냐… 하는 생각, 하지만 못 간다, 안 간다, 아니다 가고 싶지 않다.. 그러니 불평 불만도 없는 것이다. 돈 때문인가, 아니다, 귀찮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것이 제일 편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늘 YMCA pool schedule이 완전히 바뀐 것을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처음으로, 기껏 좋은 자리를 찾았는데 저녁 때 갑자기 cancel email이 온 것이다. 처음에는 website에 문제가 있구나 했지만 오늘 아침에 App으로 들어가보니.. pool의 filtration work이 끝이 나지를 않았다고… 그래서 cancel email이 온 것이구나… 아쉬운 것은 그러면 이유까지 reservation system으로 알려주면 누가 때리냐? 오늘의 YMCA routine은 이래서 조금 짧게 되었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이렇게라도 미사와 Sonata Cafe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지…

더위를 편하고 즐겁게 이기는 비결 중에 ‘역사스페셜’류의 video들의 위력을 실감하는 며칠을 맞는다.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여름 납량물 시리즈 ‘전설의 고향’류를 자연스레 보기 시작했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역사물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하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역사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더위를 덜 느끼게 한다는 말인가? 결국 억지로 찾은 이유 중에는, 옛날은 날씨가 언제나 시원했을 것, 사람도 많지 않고 자연 속에 묻혀서 시원한 경치를 보며 살았을 듯한 역사 속의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 등등 모두 사실 시원한 것뿐 아닌가? 역사물을 보며 ‘덥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은 아마도 거의 없었지 않을까? 참 재미있는 발상이고, 덕분에 올해의 지독한 ‘매일 더위’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Battery Power! 오늘 처음으로 어제 Home Depot에서 도착한 B&D Battery powered Detail Hand Sander를 써보았다. 물론 나는  power cord가 없다는 사실을 날듯이 기뻐하고 감사한다. 이것이 이것을 산 이유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며칠 동안 애를 쓰며 만드는 simple carpentry job, hand vacuum holder에 처음으로 써보았고,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순식간에 sanding job이 끝나서 paint까지 칠했으니까… 게다가 20V battery들은 이제까지 5개로 늘어나서, 이제는 쓰다가 언제라도 backup battery 4개가 대기하고 있으니… 이런 기막히게 소비자를 편리하게 하는  product idea가 어디에 있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brand들도 거의 비슷한 idea를 이미 쓰고 있었구먼…]

4K YouTube Downloader: 역사스페셜 시리즈를 YouTube에서 보며 어떤 것들은 나의 hard drive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유는 물론 (1) 그것이 YouTube에서 사라질 수 있고, (2) 요새는 YouTube가 보편화 되어서 아예 나를 겨냥한 각종 광고들이 만발하고, (3) 만약 Internet이 down되거나 slow하면 보는 것이 힘들고, (4) Home network의 speed가 Internet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전에 쓰던 YouTube downloader는 WinX YouTube downloader였는데 update 뒤에는 이곳에서도 각종 광고들 투성이… 게다가 많은 video들이 download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는데 오늘 새로 찾은 4K Video Downloader란 것을 써보니 현재까지는 전번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깨끗하게 download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일지 누가 알리오?

 

오늘 아침 Holy Family 동네성당 미사, Fr. Vincent Sullivan, Parochial Vicar 보좌 신부님 오랜만에 나오셨다.  Pandemic중에 부임을 해서 우리는 그의 background같은 것을 거의 모른다. 그의 조금 독특한 미사집전 스타일 [표준 전례문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처음에는 조금 짜증스럽기까지 했지만 적응이 될 수록 큰 문제가 없다. 게다가 가끔 강론에서 나와 파장이 딱 맞는 수도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오늘 성경말씀도 역시 ‘성령’이 주제다. 왜 요새는 거의 매일 성령을 주제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보좌신부님은 오늘 성령에 대한 강론으로 Scott Hahn의 wife Kimberly 를 예로 든 것이 새롭다. 나도 그 story를 개종 자서전 Rome Sweet Home에서 읽어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최후로 개종의 장벽을 넘은 것도 역시 기도에 매달려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오늘의 반영억 신부님의 매일 묵상글이 유난히도 가슴에 와 닿고, 결과적으로 위안을 참 많이 받았다. 특히 다음의 글들이 더욱 나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인간이기에 한계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참다 보면 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쌓아두지 말고 풀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가족 간에도 마음이 갈라질 텐데 그 때에 참고 견디라고 하십니다. 서로의 뜻이 다르고 오해가 있을 때 참고 기다려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인내가 필요한 때이고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처신할 때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구애됨이 없이 예수님 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묻고 행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지금 당장은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이깁니다. 감정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신앙 안에서 굳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사에 ‘예수님이시라면?’이라는 자문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벽이 참으로 많습니다. 인간적인 한계상황의 벽이 산 넘어 산입니다. 생로병사는 물론이고 고독, 미움과 분노, 죄가 한계상황으로 다가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공격을 공격으로, 모욕을 모욕으로, 미움을 미움으로 되갚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혹 참을 수 없다면 잠시 하느님께서는 ‘나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참아주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참고 견뎌서 모두가 구원을 얻기를 바랍니다. 모함이나 수군거리는 소리에 속상해하지 말고, 뒤에서 딴소리하는 사람 때문에 억울해하며 상처받지도 말고 오직 주님의 이름 때문에 견디시길 바랍니다. 잠잠하게 참고 견디면 의심 없이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순간 다가오는 한계를 주님으로 말미암아 극복하시길 기도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Heat-Index Advisory, Shakeup Day …

오랜 만에 Windows Weather App에 warning sign이 뜬 것이 보인다. 혹시, severe thunderstorm이면 나는 오히려 기대했을 것인데, 반대였다. 올해는 웬 놈의 heat-advisory가 계속해서 놀라게 하는가? 하지만 오늘 것은 전번의 100도까지 위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heat-Index warning이었다. 온도보다는 습도에 관한 것이었다. 따가운 태양열보다는 물기가 가득한 공기가 더 문제인 것, 이것은 a/c의 힘이 필요한 것, 그것이 물기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tool이 아닌가? 그래 실내에 있으면 그런대로 잠은 잘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래 전 1971년 7월 서울에서 밤잠을 못 잤던 것, 또한 Chicago 1975년 초여름 때의 기억도 생생하구나… 에어컨 없이 밤잠을 못 잤던 추억… 아~ ‘진짜 정말’ 오랜 전이구나…

Heat advisory를 보고 겁을 잔뜩 먹었지만, 사실상 얼마 전 것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었다. 습도가 예상보다 높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가급적 바깥에 안 나가려고 했기에 오랜만에 나의 desk에 앉아 있게 되었는데, 나쁜 생각들을 계속 멀리하고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긴 했지만 나를 그런대로 안정시킨 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역사물’ video를 보는 것이었다. 요즈음 식사 때마다 둘이서 같이 보던 ‘납량물, 전설의 고향’류 YouTube vidoe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이 역사물에 납량물 보다 훨씬 가슴과 머릿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분명치를 않다. 왜 역사물 을 보면 더위를 잊게 되는 것일까? 여기서 역사물은 물론 나의 조국의 것이다. 그것도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왜 고국의 산천과 옛날을 생각하면 시원함을 느끼는 것일까…

‘역사스페셜’ 1990년 말부터 방영된 유인촌 진행의 이 ‘대하 시리즈’는 한마디로 내가 태어난 조국 역사공부의 classic이 되었고,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그 2000년대 이후로 계속된 프로그램들도 보았지만 첫 번 것과는 다른 느낌, 질적으로도 못 미치는 듯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이어진 HD 역사스페셜, 물론 video quality [DVD class]는 현저하게 선명해졌고 내용도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가지 흠은 역시 진행자[고두심이란 여성]가 아닐지. 워낙 타고난 목소리가 그런가, 어찌나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크고 날카로울까.. 나는 이때마다 sound volume을 내려야만 하는 고역을 치른다. 그런데 그 후  2010년경에 나온 것들을 요새 보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남녀 진행자들의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다는 사실.. 남자는 ‘한XX’이란 사람이고 여자는 ‘엄XX [이외 두 명]’ 인데 솔직히 이들이 전달하려는 ‘역사의 의미와 무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언행들, 특히 의상들이 그랬다. 무슨 상품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차림들, 한 사람은 옷감 선전, 또 다른 사람은 cheerleader나 fashion선전을 하는 듯한 것이 솔직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또한 내용물을 자세히 해설하는 사람은 흡사 20세기 초의 무성영화시절의 변사와 거의 같은 느낌[이 사람의 이름을 나중에 찾았다. 이정구란 사람], 우습기도하고 당혹스러울 정도였으니… 물론 세대차이, 문화적 차이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론은 역쉬~~ 유인촌 version이 왜 classic 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듯하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력… ‘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줄줄이 등장하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미니 스커트의 애 띤 미성숙한 모습들[솔직히 말해서 제작/연출자가 술을 너무 마셨나..하는 의구심까지], 이래서 아예 screen은 안 보거나  꺼버린 채 소리만 틀어 놓고 싶은 충동까지 들 때도 있었으니…

Charlie’s Angels

 

오늘은 사실 미사엘 갈지 말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연숙이 먼저 가자고 한다. 아~ 이것은 솔직히 반가운 것이다. 요즈음에는 많은 경우 내가 먼저 유도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갈 수 있을 때, ‘무조건’ 가자… 라는 생각이 서로 통한 것이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이제는 성당의 아침 묵주기도 team들과도 익숙해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매일미사책과 기도문까지 준 것들이 고맙기도 했다. 묵주기도까지 같은 시간에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오랜 습관 탓에 그것까지는 시도를 못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연숙이 McDonald’s에 가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인데, 참 고맙게 느껴졌다. 나의 조금은 ‘쳐진 듯한’ 모습을 어찌 모르겠으랴… 며칠 째 이어진 나의 우울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상처럼 나를 대해 준 연숙에게 나는 정말로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갑작스럽게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부터 며칠 간을 SHAKE-UP DAYS로 ‘선포, 선언’을 하자는 것. 2017년에 나의 main office가 현재의 장소, family room으로 내려 온 것, 그러니까 5년 전이다. 그러면 한번 한바탕 뒤집어 엎어도 될 세월이 흐른 것이다. 많이 적응이 된 것이지만 그래도 한번 새로 대 청소를 비롯해서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특히 현재 주체를 못하고 있는 책, 서류들 그리고 어중간한 모습의 나의 작은 electronics breadboard들… 솔직히 2층의 lab보다는 이곳에서 electronics를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인데… 무슨 좋은idea가 없는지… 이번에 함께 해결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이 SHAKE-UP DAY NO. 1 첫째 날이 되는데, 무엇부터 시작을… 그래, 모두 흐트러진 책들 만이라도 정리를 시작해볼까..

 

Dean & Hutchinson, NATO Responds to Putin…

John Dean, Nixon’s Whitehouse counsel at Watergate Hearing – 1973

아~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 역사적 깡패 Donald 개XX, 쓰레기 같은 욕설,  “I DON’T FUCKING CARE THAT THEY HAVE WEAPONS”… 이 전무후무 역사적 깡패, 쓰레기, 새빨간 거짓, 자기도취, 안하무인.. Son of Bitch.. 대통령 선거 패배 직후에 최후의 발광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증언이 된 것,  그야말로 1973년 여름 거의 매일 TV로 방영되었던 [미국에서 직접 보았던] Watergate Hearing 때의 John Dean의 잔잔하지만 충격적인 그의 Nixon의 모습에 대한 증언과 대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Nixon은 최소한 공적으로는 대통령 품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도 역시 사적으로는 ‘험한 쌍시옷’의 욕지거리를 했던 것이 나중에 secret audio tape에 남아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그의 전속 counsel John Dean이 신빙성 있게 밝힌 것이다. 그로부터 닉슨은 퇴임의 길로 서서히 들어서게 된 것. 과연 이번에 이 ‘Donald 개XX’의 case는 어떤 과정을 취하게 될까…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여건’들이 다르지만, 과연 ‘법’이란 것이 ‘법의 보편적 정신’을 살릴 수 있을지…  나는 이 천하의 ‘개XX’가 감옥에 가는 것보다 다시는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을 더 기대하는데… [이 ‘개XX’가 엉뚱하게 ‘순교자’ 로 역사에 남는 것은 끔찍하다. 아직도 꿈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졸개들이여,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특히 80% 개신교[mostly evangelicals] 신자, 병신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근처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가…]

 

또 다른 세기적 ‘개XX’ Putin 자신이 100% 자초한 unexpected consequence 정도라고나 할까…  섣불리 불장난을 한 것이 긁어 부스럼이 되고 있는가? Buffer Zone 역할의 중립 Finland, Sweden이 ‘적국’으로 만들었으니… 한마디로 ‘병신Putin 개XX’, 쌤통이다~~ 라는 생각뿐이다. 이로서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cold war 시대로 들어가는 듯하다. 완전히 Soviet시절 cold war 판도가 도래한 것이다. 변수는 물론 빨갱이 짱깨중국, strategic challenge라고 지목이 된 이 짱깨들도 피할 수 없는 uncharted territory를 헤매게 되었으니…  이제까지 잠자듯이 세월을 보내던 NATO, 그의 무게는 어떻게 변화를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데, 유럽 이외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 같은데 대한민국이나 미국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처음으로 Asia-Pacific partners들도 초청을 한 것이 이채롭다. 대한민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국가의 안보상 비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비교적 새로운 지도급의 얼굴들이 국제 무대에서 선을 보이는 기회가 되었는데… 아마도 지금쯤 빨갱이들 북한, 그리고 짱깨 중공, 무척 고심하고 있을 듯하다. 이건 완전한 1950년대의 세계구조가 재현되는 것 아닌지.. 참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더니… 우리에게 그때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른 것이 있다면… 굶어서 허덕이는 김씨왕조 손주XX가 제2의 불장난은 절대로 못할 것, 하지만 미친놈들 돌대가리 논리를 누가 믿겄냐?

‘할 수 있을 때 하자’ 라는 간단한 motto를 따라서 오늘도 아침미사엘 갔다. 아침 묵주기도 팀 멤버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묵주기도와 함께 아침미사를 기다리는 그 분위기가 나는 너무너무 좋고, 은혜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미사 자체에 어떻게 보면 형식적, 의식적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그것은 미사의 진가를 모를 때의 느낌이고 지금은 전혀 다르다. 무슨 마력이나 은총에 이끌리는 듯 몰입하는 나 자신을 보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기적’이 아니겠는가?  현재 나와 우리 부부를 영적으로 지탱해주는 것 중에 제일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매일미사 임을 감사해야 한다. 오늘 Miguel 주임신부님의 강론, Peter & Paul Solemnity, 대축일과 연관을 해서 Roe Overturn 충격을 언급한다. 한마디로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 이런 날이 이렇게 ‘갑자기’ 온 것을 전혀 예측을 못했다는 것, 하느님의 뜻은 이렇게 오묘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뻐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씁쓸하고, 허탈한 것인지… (정치적 배경 때문인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를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벽에 걸린 커다란 ‘성당’ 달력이 wall painting을 한 이후 사라진 탓인가, 요새 어떠한 시기와 날짜를 살고 지나가는지 감각이 둔해진 것인가, 지금은 분명히 6월 말, 마지막 주라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 다음이 잘 안 보이는데… 오늘 새벽 밖을 보니 앞집  Josh집의 trash cart가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 저녁 무렵에 그것이  보이곤 했는데…  이유는 분명히 그 집 식구가 집을 Independence Day 연휴를 맞아 며칠 동안 떠난 것, 그렇다면 연휴~~ 어찌 내가 모르고 있었나? 월요일이 바로 7월 4일이 아닌가? 그것을 완전히 잊고 살았으니…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미래 달력’을 무시하고 살았는지… 완전히 ‘과거와 오늘’에 묻혀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미래는 고사하고 내일조차도 신경을 전혀 이렇게 안 쓰며 산 것은 조금 문제다… 문제야…  그래, 오늘과 다가올 시간들을 조금 더 사랑하고 생각하자.

 

 

War 72 Years Ago, Roe v. Wade 50 Years Ago

전쟁 발발 직후 수원근교로 남하하며 지나가는 피난민 대열

달력을 보니… 25일, 허~ 그것도 6월! 아하~ 육이오, 융요, Yu-Gi-Oh!  1950~2022=72!  정확히 72년 전이구나… 맞다 맞아.. 2살 때 일어난 민족의 비극, 내란, civil war.. 1949년에 시작된 미-소 냉전의 첫 hot war가 왜 하필이면 한반도였던가? 덕분에 원수 같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숙적은 빨갱이 못지 않게 일본이었다] 일본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정말 한민족에게는 살맛이 제로에 가깝던 시대였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우리가 살던 나라였나? 왜 하필이면 우리 아버지를 끌고 가서 ‘애비없는 후레자식’으로 만들었나? 왜 1급 전범이 버젓이 ‘악마의 종자’를 퍼트리며 아직까지 손주XX까지 날뛰는가? 왜 금수강산을 떠나 제2의 조국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나?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한 역사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그 원수들을 ‘흠숭’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동물들인가?

 

오늘 아침의 ‘화두’는 역시 Roe Overturn이 아닐까? 1973년 초의 이 Supreme Court의 ‘낙태 자유화’ 판결이 완전히 무효화가 된 것이다. 이것으로 앞으로 낙태법은 각 주에서 관장하게 된, 이 놀라운 결정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1973년 미국에 올 당시의 ‘낙태 자유화’ 판결, 당시에는 남자였던 이유일지는 몰라도 큰 관심은 없었다. 가끔 나의 ‘잘못으로’ 이러한 낙태결정의 단계까지 간다면… 등등의 상상은 있었을 것이고 한때 그런 아찔한 순간이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을 어떻게 성모님께 숨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호르몬이 왕성했던 20대의 남자였고, 당시 문화, 유행의 산물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생명체의 기적’에 대한 깊은 철학적, 신앙적이 안목이 제로를 넘어서 마이너스 쪽에서 철없이 살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거의 2달 만에 처음으로 ebook posting 작업에 손가락과 머리를 쓰고 있고, 그 첫 결과가 page posting인 토마스 머튼 저 소책자, ‘명상이란 무엇인가‘ 였다. C베로니카가 선물로 준 책들 중에서 제일 쉽게 손이 갔던 책, 2주도 채 안 걸려서 필사가 끝났고 이것을 books & papers menu 에 posting을 한 것이다. 필사본 posting은 사실 ‘대한민국의 출판사 바오로의 딸 소속, 바보 수녀들‘ 의 근시안적인 태도 이후,  잊고 살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바보수녀들의 바오로 딸‘과는 일단 사업적 관계가 없기에 안심하고 posting을 하였다.  

 

Sah-Il-Gooh! Student Phenomenon, RIDGID compressor

사일구, 사일구.. 아~ 그런데…  춥다, 아니 싸늘하다, 싸늘해~~ 4월 19일, 아하 ‘우리 들’의 사일구였지.. 1960년 4월 19일 아침도 이렇게 싸늘했을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분명히 해가 뜨는 전형적 4월 말 서울의 날씨였었다. 중앙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는 4월 초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퇴교를 당했다. 물론 그보다 더 ‘신나는 달밤’을 없었고 곧바로 재동국민학교 앞 만화가게로 돌진을 해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나 ‘철인 28호’에 심취했을 즈음에 근처의 종로경찰서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경무대 근처에서 총소리 [그것은 카빈소총]가 나기 시작하고… 생후 처음으로 방송극에서나 들었던 진짜 총소리를 들었던 신비하기도 했던 그 시간에 데모 형님들이 쓰러지며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때…  종로경찰서 쪽 신작로[비원 앞에서 안국동 쪽 길, 당시에는 길 이름이 없었음]에 나가보니 트럭에 가득 탄 대학생 형님들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운집했던 어른들, 발을 동동 구르며 자녀들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날은 결국, 사일구라고 즉시 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LIFE magazine은 Student Phenomenon이란 논설로 그날을 보도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순간적으로 아침 식사를 McDonalds에서 결정하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특별히 아침 식사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순간적인 생각이… 이런 것들, 선택, 결정, 자유의지 등등 과학적인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유가 결여된 갖가지 선택과 결정들… 하지만, 오늘 억지로 만든 이유는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McCafe coffee의 향기도 있고, 다른 분위기에서 둘이 있고 싶었던 것, 그것이었다.

 

며칠 전에 fence screen을 고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Harbor Freight 의 cheap Chinese-made 4 gallon air compressor가 죽어 있었다는 것, 나에게는 첫 air compressor였기에 정이 들대로 들었던 pro tool이 아닌가? 2000년대에 산 것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쓴 것인가? 자주 쓴 것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자부심을 주었던 tool이었다. 한번 pressure switch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하기도 한 것인데..  다시 이것을 서야 하는데, 이번에는 Harbor Freight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잠재적으로 Chinese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처음으로 유명 name brand를, 그것도 Home Depot에서 사고 싶었다. 며칠 전, garage door sealer를 online으로, 그것도 free deliver service을 경험하고 보니 Amazon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고, 별도로 shipping charge가 없는 것이 아닌가? 값도 값이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 $140 정도로 RIDGID 6 gallon 150 PSI compressor를 order해 버렸다. 무언가 큰일을 한 기분까지 든 것, 처음으로 non Harbor Freight product를 산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오늘로서 며칠 동안 골머리를 쓰며 준비했던 PC system emergency recover & migration plan을 일단 끝내게 되었다. 계기는 우연히 ‘당했던’ ransomware-malware 의 추악한 모습에 질려서 시작된 것이다. 매일 쓰던 나의 필수품 desktop pc가 순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면, 제일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Microsoft Office 2008 OneNote [with Korean Language Pack]과 open-source email client Thunderbird 두 가지였다. 비상사태 발생시 이것만 즉시 다시 쓰게 된다면 과도한 stress는 피할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critical personal data는? 일단 거의 매일 usb flash stick으로 manual backup이 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Stop right here! 더 이상 이것에 신경을 쓰지 말자! 이것도 과분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모두 잃는다고 해도 어쩔 것이냐? 그것이 나의 생명과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Ok, Ok, Forget it!

 

지난 성주간 동안 나는 ‘소죄 小罪’를 짓고 살았다. 제일 가까이 해야 했을 ‘영성적 서적’들은 물론이고 나를 흥분시키는 다른 책[주로 과학과 신앙]들을 더 멀리하며 산 듯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용하게 명상을 할 침묵의 시간을 못 만들고, 심지어 신앙심이 해이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고 강변을 하고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책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책상 오른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책더미’ 사진을 찍은 후에 가만히 보니 모두 읽고 싶었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자세히 보기조차도 미안해서 흑백으로 바꾸어서 보니 조금은 덜 미안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도.

 

Wintry Mix, Sope Creek Crossing Ghosts…

Wintry Mix, 드디어 winter weather advisory 가 이곳 저곳에 보인다. 2개 중, 하나는 freezing rain이고 나머지는 strong wind… 이 정도면 거의 준準 비상 급이 아닌가? 첫 눈이 오는 것은 내심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것이지만 피해가 생기게 되면 문제다. 하지만 느낌에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고 내일 아침에는 북서풍 강풍을 동반한 비, 서서히 눈으로… 얼기 시작하면… 와~ 운전하는 것 문제다. 결국 우리 둘은 내일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미사 차 20+ 마일 freeway 외출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그래 안전한 것이 우선이다. Online mass에 이제는 익숙해졌으니까…

밤새 유나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그래도 긴 울음이 아니라서 우리가 자는 것은 거의 문제가 없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최악의 경우 밤을 꼬박 샐 것도 상상을 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다.  이렇게 해서 유나도 자기 집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는 경험을 만든 것, 우리는 물론이지만 새로니에게도 조금은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오늘 1월 15일은 친구 양건주의 74세 생일… 언제부터 이날을 기억하며 사는 것인지… 이제는 완전히 기억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며칠 위 형 뻘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생사여부조차 알 수가 없으니… 왜 인희씨는 한마디 소식이라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큰 문제만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건주야~ 네가 오래오래 도사처럼 우리에게 삶과 건강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니?

 

Sope Creek Crossing

Ozzie와 둘이서 거의 2시간가까이 걸었다. 오늘은 Sope Creek Apt trail East 쪽을 정말 오랜만에 들러보았다. 하지만 오늘의 산책 뉴스는 뜻밖으로  historical landmark를 발견한 사실이다. Sope Creek 상류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 위치와 연관되는 것, 바로 옆 Roswll Road에 세워져 있었던 다른 landmark 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것을 읽어본 기억에 Civil War 당시Lincoln의  Union Army [북군]가 바로 이 근처, 이곳을 거쳐서 Atlanta로 진격을 했다는 것.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서있었던 Sope Creek 개울가에 돌다리가 있었고 그곳을 거쳐서 Union Army가 Atlanta 최후의 Chattahoochee River 방어선을 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곳, Sope Creek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Sope Creek Crossing의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을 안 이상 앞으로 이곳에 산책을 올 때마다 Kennesaw Mountain 격전 후 1864년 7월 초 이곳을 넘나들던 Union Army의 ghosts 말발굽, 군화 소리를 상상하는 것도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오늘 보게 된 Sope Creek Crossing historical landmark plaque는 이렇게 증언을 하고 있다.

On July 8, 1864 General Sherman sent a contingent of troops to cross the Chattahoochee only a few miles from this site. That crossing was successful in penetrating the Confederate defenses, the final stronghold in front of the fortifications around Atlanta. From the 9th to the 13th of July an estimated 30,000 Union soldiers under the command of McPherson, Howard, and Logan passed over Sope Creek on their way to the eastern flank of Sherman’s advance. Many of these soldiers traveled down Old Roswell Road and crossed Sope Creek at a classic plank and stone-covered bridge located where this overlook now stands. As Sherman’s troops moved through Sope Creek Crossing, Atlanta waited restlessly under the shadow of an impending attack. War’s dark clouds were gathering for the storm that would destroy the South’s grandest city.

1864년 Atlanta Campaign 직전 외곽지대에 도착한 Gen. Sherman

지금은 예전의 가교는 없어졌지만 이런 landmark와 전망대가 그 당시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 동네를 휘휘 감으며 졸졸거리는 Sope Creek을 따라 내려가면 커다란 강줄기 Chattahoochee River가 나온다. 그러니까 아틀란타 최후의 격전지였던 Kennesaw Mountain과 ‘패전 도시’ Atlanta사이에 있는 이곳 ‘우리동네’  Marietta는 향후 미국역사를 판가름하는 그 길에 있었던 것이다. 가끔 상상을 빼놓지 않는다. 만약 이 전투에서 Lincoln이 졌다면… 아니 최소한 휴전으로 끝났다면 미국이란 나라는, 아니 전 세계의 역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쉽게 말하면 소위 말하는 ‘미국식 자유자본민주주의’의 모습은 기대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상상에 따라서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밤이 깊어오면서 예보대로 차가운 빗발이 뿌리기 시작, 비와 눈이 강풍과 함께 내일 올 것을 머리로 그린다. 비가 눈으로 바뀌면 우리는 Ozzie를 데리고 산책을 시도하고 Sope Creek쪽으로 가서 그곳의 겨울풍경을 만끽하고 싶다. 그것이 과연 실현이 될 것인가? 나의 흐릿했던 상상력, 올해는 눈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가급적 내 생일 전에 ‘대한 추위와 함박눈’의 선물을 기대하는 것, 너무나 유치한 바램일까?

 

April 19th, Seamless Gutters Up…

아차! 미안, 자괴自愧, 실망… 오늘이 사일구 4.19  61주년 기념일이었구나! 미안합니다, 선배님들, 형님, 누님들! 어떻게 이런 일이? 사일구를 어제 잠깐 생각은 했지만 바로 오늘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것 뿐이었다. 죄스러움, 나이와 세월의 횡포, 등등만 핑계거리만 생각하고 있으니… 1960년의 이날을 어찌 이렇게 잊었단 말인가?  요새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인가? 그 당시에 잘 모르고 경험했던 어린아이의 추억이 지금은 조금 역사적 조망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한마디로 ‘순수함의 결정체’ 였던 민중, 아니 학생들의 염원이었다. 다른 생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빨갱이가 싫긴 했지만 그렇다고 빨갱이로 모함을 받는 것도 마다한 정말 깨끗한 분노의 발로였다. 부정, 부정 그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형님, 누님들, 그들의 순수한 희생, 그날은 바로 바로 그런 날이었다.

 

지난 밤 3시가 지나서 깼지만 다시 자려고 노력을 하며 6시 반까지 굳세게 자리를 지켰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 중에서도 성모님의 추억을 떠올렸다. 특히 2014년 경의 성모님, 나를 진흙탕 도랑에서 손을 잡고 이끌어 올려주시던 모습, 북망산을 닮은 먼~ 곳의 서너 개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나를 계속 잡고 이끌어 주셨다. 마지막 봉우리는 아마도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런 것이라고 짐작한다. 성모님, 저는 당신이 절대적으로 이제는 더 필요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2010년대 초 성모님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한다. ‘용서’를 선언했던 올해 성금요일,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아직도 앙금이 깊이 남아 있는 자신을 보며 다시 생각하니 나는 ‘용서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였다. ‘용서를 했다’ 가 아닌 것이다. 그 전까지는 ‘용서를 절대로 안 하겠다’였고 지금은 ‘용서를 하도록 노력하겠다’ 인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작은 기적’인 것이다. 그래, 서서히 잊으며 다시 예전에 없었던 때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다. 너무 너무 쪼잔한 신경에 목을 매지 말자.

 

Ozzie와 지내는 첫 아침이다. 계획에는 이 녀석을 데리고 이른 아침에 산택을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잘 하면 하루에 두 번 산책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일주일 편하게 사고 없이 서로 사랑하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니 부부는 어제 Pensacola [Florida] beach hotel에서 Gulf [of Mexico] 의 저녁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내왔다. 갑자기, 숙연해 진다. 어~~ 우리가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거의 참을 수 없는 향수, 그것을 느낀다. 가보고 싶기도 하고… 오랜 만에 둘이서 편하게 푹 쉬다 오면 좋겠다.

7시 반에 Ozzie와 기다리던 이른 아침 산책을 하였다. 이 녀석 요사이 새로니가 늦게 일어나기에 아마도 처음 이런 산책을 할 듯하다. 너무나 기운이 넘치고 유유작작 온 동네를 섭렵하는 모습 나도 맑은 공기를 실컷 들어 마시며 즐긴 셈이다. 푸푸를 무려 세 번씩이나 하는 것, 이제는 나도 기대를 하기에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토요일까지 걷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의 허리운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날씨까지 협조적이니 얼마나 좋은가?

 

HISTORIC FIRST FLIGHT ON MARS!  화성의 표면에서 처음으로 뜬 헬리콥터 drone Ingenuity… 정말 재미있는 소식이 아닌가? 대기권이 거의 공허한 그곳에서 어떻게 ‘뜬’단 말인가? 무엇을 밀어 제칠 것이 있단 말인가? 무언가 있으니까 떴겠지만. 공기가 너무 희박한 것을 해결하려면 결국 이 drone의 무게를 가급적 가볍게 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가지고 ‘노는’ engineer들이 정말 부러워 진다. 분명히 여자, minority들이 섞어 있거나 그들이 주역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했다.

 

오늘로 일단 우리 집의 ‘대 공사’는 끝나게 되었다. 마지막이 gutter인데 오늘 예정된 시간에 Duckworth Gutters guys 들이seamless gutter extractor 차를 몰고 와서 2시간도 안 걸려서 말끔히 6″ seamless aluminum gutter를 설치해 좋고 갔다. 2 black guys까지 포함된 날렵한 teamwork도 그랬고 black/white가 어울린 team이 오늘의 George Floyd 공판의 뉴스와 함께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 생각보다 큼직하고 탄탄하게 보이는 gutter는 우리 집 전체를 돋보이게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소낙비가 오더라도 안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이로써 total  $30,000 의 결산으로 tree, roofing, siding, gutter가 모두 끝나게 되었다. 분명히 집값도 영향을 받게 되리라….

Binge Watching 역사스페셜

 

KBS 역사 스페셜… History Special… 이름도 독특하다. 무엇이 스페셜 하다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 보여주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뜻은 아닐까? 물론 여기서 역사 스페셜 이란 거의 20여 년 전에 대한민국 국영방송 KBS 에서 제작, 방영한 인기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을 나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사태 중에 다시 많이 보게 되었다. 물론 여유 시간이 거의 무제한으로 나에게 다가온 시기였기에 이것도 그것을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나를 가끔 찾아오던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별한 역할을 하기도 했기에 지금은 아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50대가 되기까지 세계적인  ‘정치적, 사회적’ 역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때까지 나이를 살아가는데 필요성이 없어서 그랬을까? 한마디로 나에게 역사란 물리적인 시간이 모두 지나간 때의 ‘실재 實在 사실 事實’, 그림, 글, 사진들에 남은 퇴색된 옛날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50대가 넘어가면서 늦게나마 나에게는 역사의식이란 것이 움트기 시작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나만이 경험한 우연적인 일인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30대 이전에 보편적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은 드문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나는 아마도 조금 늦게 이런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닐까.

 KBS 역사 스페셜, Wikipedia에서 자세한 내용을 거의 우연히 찾게 되었다. 알고 보면 내가 가지고 본 것들은 제1차 스페셜 [1998~2003]의 완전한 전부였다. 그 이후 나도 기억하는 ‘고두심’ 진행의 2차 HD 역사 스페셜[2005~2006]이 2006년부터 일년 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3차 스페셜[2009~2012] program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것도 거의 1차의 반 정도가 되는 100회가 넘는 긴 series였던 것을 오늘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진행자는 ‘한상권’이라는 아나운서라고 하는데 물론 나는 전혀 안식이 없는 사람이다. 제1차 시리즈에 매료된 나는 역시 ‘전원일기’ 유인촌의 진행에 모든 가치 기준을 두고 있다. 그가 ‘사실상 표준’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1차 시리즈 전체 150회가 넘는 갓, 이미 오래 전 우연히 download를 해서 언제라도 볼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그 후 시리즈의 것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Wikipedia link를 따라가 보니 그곳은 원래 제작자인 KBS site였고 물론 그곳에서 공식적으로 그것을 ‘공짜’로 보여 줄 리는 만무… 작은 희망인 ‘open’ YouTube를 가보니 그곳에서는 몇 편인지는 모르지만 볼 수 있는 희망이 조금 보인다. 일단 ‘낚시 줄에 걸리는 것’ 부터 download를 시작했는데…. 과연 몇 편이나 건질 수 있을지…

새로 찾고 download한 ‘續’ KBS 역사스페셜 후편들…  2006년에 방영된 2차 시리즈, ‘전원일기’ 고두심 진행의 것 중에 ‘수도 한성의 건설이야기’를 본다. 2006년 즈음의 강북 江北 서울이 고스란히 나온다. 어찌 가슴이 저며오지 않으랴…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이제 거의 question mark가 되었고, 이제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 전에는, 100% 고향에 가서 죽으리라 했던 것이 이제는 이렇게 나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떨까? 나의 원래의 소원이 비현실적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