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of May, 2025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5월 1일 뚜루루 뚜루루 의 성모성월 첫날, 과연 어머님들과 함께 울고 웃는 5월이 될 것인가? 그것보다 ‘뚜루루 원서동 죽마고우 3총사’, 이제는 거의 잊혀지는 슬픔이 잔잔히 밀려오는 하루겠지만 그래도 꿈속의 그들은 생생하기만 하니까~ 큰 문제 없다, 그들과는 어차피 꿈속의 기쁨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창희는 ‘아마도’ LA에 아직도 살고 있을 것 같지만 안개처럼 사라진 용현이의 생사는 아직도 궁금하기만 한데, 이것도 remote viewing에 해당하는 분야일지… 이제는 현실적으로 다시 대학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듯한데.. 무슨 기적을 기대할 수는 없을지… 성모성월 은총의 가능성은 없을까?

이른 새벽, 아침 ‘깜짝’ 비~~ 아~ 고마운 손님, 지루함에서 깨어나게 하는 멋진 자연의 선물~~ 잊고 살았구나, 이 시원한 하늘의 선물이여~~ 그것도 5월 1일 새벽부터~ 성모성월, 제일 좋은 시절.. 어머님들 감사합니다!

Tylenol의 놀라운 효능, 효과의 덕분인가, 예상했던 온몸의 통증에서 벗어나 꿈도 거의 없었던 경이로운 밤잠을 경험하는데… 이 Tylenol에는 ‘중독성’은 없는 것이겠지~ 앞으로 알아서 이것과 함께 하는 삶, 큰 문제가 없기만~~ 어제는 오랜만에 YMCA의 weight exercise 후유증을 자연히 기대를 했지만 이 2알의 효과는 다시 증명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가을저녁, 추석, 한가위… 2024

¶  오늘이 바로  ‘추석날’이구나.. 이미 이틀 전 도라빌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에서 추석상차림 예절을 했기에, 그러니까 성묘를 한 셈이어서, 이미 추석이 지난 듯한 느낌이지만 사실은 오늘이구나… 추석의 본향인 고국은 이제부터 기나긴 연휴라고… 작년 10월 그곳에 갔을 때 그곳의 삶의 현장, 모습을 직접 피부로 접했기에 이제는 예전에 비해서 더 실감나게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은 아무리 virtual 인터넷으로 접해도 직접 같은 곳에서 냄새를 맡고, 눈을 마주치며, ‘유난히 큰 목소리’를 듣고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한가위 카드’를 보낸다. 예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보낼 대상자가 이곳보다 저쪽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나의 이곳의 사회적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은 아닐지.  별로 생각을 안 하다가 어제부터 조금씩 보이는 이 카카오 카드들을 받아본다. 알고 보면 이것처럼 손쉬운 인사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 멀게 느껴지고 있었던 여러 사람들과 다시 이렇게 인사를 나누니 나의 마음도 편해지고 행복해지고…

¶  오늘의 YMCA workout, 본격적으로 모든 학교가 시작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열기와 함성, 그 뒤로 indoor track, gym도 이렇게 텅텅 비어가는가, 그들이 빠져나간 이후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pickle ball senior group들 조차 오늘은 하나도 안 보이고, 우리 둘만 걷는다. 조용하고 평화스런 분위기는 좋지만 그만큼 우리의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외로움도 만만치 않게 느끼게 되는데 순간들…

이후 ‘약속대로’ 점점 정이 들어가는 Wendy’s 에 들렀다. 익히 보던 서비스 만점 ‘흑인 아줌마’가 안 보인다. 그렇게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과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각종 ‘서비스 비밀’을 듣는 연숙의 모습이, 솔직히 부럽기도 한데…  이곳엘 가면 우선 Dr. Pepper의 ‘요상하게 묘한’ 맛이 그려지고.. 아직도 먹음직한 Dave’s Single의 푸짐한 beef로 포식감을 되살린다.

오늘은 오후 늦게 이 ‘포식’의 영향으로 거의 2시간을 family room에서 ‘추위를 느끼며’ 쪼그리고 낮잠을 잤으니.. 시간은 비록 너무나 아까운 것이었지만 대신 달콤한 낮잠의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절대로 후회는 없구나.

¶  이제는 나도 ‘발을 뺄 수 없는’ 10월 6일의 이화여대 동창 합창발표회, 오늘 리허설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사진의 마술인지, 아니면 합창의 마술인지.. 정말 요새 드물게 느끼는 ‘멋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 비록 저물어가는 한해, 그리고 인생이지만 이런 색다른 활동, 그리고 사진의 유산이라도 남기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연숙의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 전형적이긴 하지만 조금 색다른 웃음일지도…

¶  드디어 건주의 소식이 ‘추석 카톡’으로 왔다! 그 동안 조용하던 친구, 한 동안 은근히 건강 걱정까지 하며 지냈는데 추석 덕분인가, 간단하지만 반가운 이런 text를 받았으니… 관심은 역시.. 이 text를 건주가 직접 typing을 해서  보냈을까… 하는 것. 그렇다면 그 동안 건강이 이렇게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작년 10월 거의 반세기만에 다시 본 이 친구와의 극적인 만남이 꿈처럼 다가온다. 친구야, 다시 건강하게 되어 예전의 멋진 글 솜씨를 보여주라… 그리고 가까운 시일에 다시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Patriot Day, NINE ELEVEN w/o Twin Towers..

9/11, 2001…  출근 아침,  TV에 나오는 그 만화보다 더 만화 같던 그림들을 술에 취한 듯 말 없이 바라보던 Rockwell Automation직장 동료 얼굴들의 추억이 인간적이던 나의 Polish boss Joe 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듯 하다.  유난히도 파아란 하늘, 빠삭하게 마른 촉감의 아침, 출근하자마자 TV를 함께 보며 망연자실 茫然自失하던 직장 동료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들도 나만큼 변했을 인생을 살았을 거다. 도대체 그 반인간적 미친 회교도의 사도, 후예들은 지금 어느 차원을 헤매고 있을까?

Luke’s version of Beatitude…진복 팔단의 영성.. 세상은 이래서 공평한 것?
오늘은 아침 ‘매일’ 미사엘 갈 예정이고, 복음말씀을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본다. 이즈음 나를 그런대로 ‘교의적 영성’ 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의외로 바로 이 Bishop Barron의 복음말씀인 것, 조금 나에게는 의외인가, 아니면 작은 은총인가? 왜 자꾸 나의 신심이 사라진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오늘 ‘화답송, responsorial Psalm을 미리 보니.. 조금 흥미롭구나.
모처럼 간 동네 아침미사, 반갑긴 했는데 조금 썰렁한 분위기… 주보를 보니 역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간은 ‘교구 신부들의 모임’ 때문에 공소예절만 한다고 나온다. 부제님의 영성체로 오늘은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부제님, 이름도 익숙지 않은데… 오늘 강론은 공식미사의 그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것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역시 오늘이 9/11인지, patriotic한 분위기, ‘거꾸리’ 아줌마가 God Bless America를 선창하고 우리들도 무엇에 홀린 듯하게 열심히 불렀다. 이제는 이런 미국의 또 다른 ‘애국가’들이 우리의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길게도 느껴지는 미국의 생활, 인생…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것이었는가?

YALE’S COURSE, on DEATH?.. SHELLY KAGAN, Open Culture site에 소개된 Yale Coursera ‘철학입문’ course가 YouTube로 소개된 것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다. 왜 이렇게 나는 ‘죽음’이라는 화두에 이끌리는 것일까?
죽음을 철학적으로만 다루던 것이면 익숙한 화제지만 이 코스를 보니 역시 ‘죽음의 과학’의 영향을 확실히 볼 수 있으니.. 참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일까? 이곳에서도 육체의 죽음과 의식의 관계를 먼저 논하는 것을 본다. 나는 이제 이런 화제는 거의 ‘준 박사급’이라고 자신을 하기에 아주 편한 자세로 죽음의 철학을 대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성모님~~

McDonald’s, discounted burgers & coffee, thanks to…, 연숙이, 억척… sales price로 아주 싼 값으로 2#2를 즐겼으니… 나는 이제 이런 곳에서 order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피하고 싶어지는데.. .어떻게 연숙이는 반대로 가는가? 이제 안심하고 떠나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시장조사를 한다는 구실로 Home Depot엘 가서 season이 변하는 모습을 한꺼번에 보고, 각종 ‘작은 화분 식물’들을 구경하며 값까지 유념하기도 했다. 과연 연숙이 이런 것으로 $$을 벌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환영하는 입장인데.. 실내에서 머리를 잘 굴리고 애정으로 작은 꽃들을 가꾸며 작은 경제활동을 하는 것 너무나 멋진 idea가 아닌가 말이다… 그것도 사시사철…
Season의 변화는 이곳에서도 역쉬~ 제일 시각적인 것은 물론 Halloween이 아닐까? Pumpkin 느낌이 보이기도 전에 벌써 해골바가지들이 난무~~ 이제는 이런 것들이 그렇게 고향처럼 느껴지는 나, 역시 사람은 환경과 세월의 산물이 아닐까… 오래 살았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긴 세월 동안…


Portable lighting system, 비록 값이 싼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사고 싶었던 충동을 받았고,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며 산 것이 under-cabinet light, 놀랍게도 이것도 rechargeable (usb0!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이것은 아무 곳에서나 ‘설치’할 수 있는 것이어서 오래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20가까이 하지만…

@KROGER…., $6 DISCOUNTED 3 STARBUCKS GROUND PUMPKIN SPICE COFFEES… 오늘 Kroger엘 간 이유 중에는 바로 이것을 사려는 것도 있었다. 올해는 왜 이렇게 이 생각이 났을까? 하나를 집으려는데… 자세히 보니 3개을 사면 $2씩 discount한다고… 역시 ‘경제적’인 연숙이 push를 해서 3개나 사버렸다. 오늘부터 이 향기를 맡으며 coffee를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산뜻해지는데…
FLU-SHOTS 2024 FALL, 아하~ 이것도 있었다. 매년 가을 9월 중에 맞던 flu shot~~ 오늘 문제없이 맞긴 했지만 혹시 후유증은? 작년에도 조금 있었던 기억, 올해는~~ 결국 나는 작지만 확실한 후유증을 겪게 되긴 하는데… Tylenol 2알로 해결되는 것이니 상관 없구나…

BIORHYTHM PSEUDOSCIENCE & early 80s MEMORIES…오늘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기쁨’을 만끽하며 생각나는 것이 바로 ‘biorhythm의 추억’ 이었다.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 ‘장난감 game’, 당시에도 이런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것은 거의 ‘토정비결’에도 못 미치는 수준, 그러니까 재미 수준인 것 몰랐을 리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오늘 것을 보니… 역시 엉터리 중의 엉터리… 오늘 나의 emotional 이 최저라고? 사실은 최고가 아니었던가?

요새 매일 mailbox를 열어보며 갖는 쾌감, ‘개XX’의 징그러운 얼굴이 보이는 광고지를 신나게 찢어버리는 순간… 대신 오늘 것은 Kamala의 것도 함께 보이고.. 그것은 곱게 접어서 가지고 들어와 처음으로 그녀에 대한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번 선거의 point는 ‘DONALD 개XX SOB’를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이어서 그XX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이어서 비교적 간단한 결정의 순간들이다. 이렇게 결정이 간단한 미국대선도 아주 드문 case가 아닐까…

건주야, 건주야~~ 꿈에 생생한 모습을 보았지만 역시 그것이 전부인가? 이즈음 건주 생각을 완전히 잊고 산 적이 없었지만 전혀 소식을 주고받지 못해서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고.. 카톡에서 멀어진 탓인가, 왜 들 이렇게 조용하단 말인가? 꿈이 더 오래 머리 속에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의 심오한 의미를 재발견하신 Carl Jung, 융隆 선생이시여, 그리고 존경하는 젊은 태양,  Bernardo Kastrup, double (computer engineering, metaphysics philosophy)  Ph.Ds  박사님이시여, 저를 꿈의 ‘과학철학’으르 인도해 주소서… 그대들이 느끼고 보고 분석하고 깨달은 그 매일 매일의 ‘안 보이는’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더 찾고 공부하고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꿈의 세계를 더 알고 싶습니다!!

호룡이의 추억이…

비교적 잠을 잘 잤던 지난 밤, 지나간 이틀 동안의 불면증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제 밤, 99% 꼬박 밤을 새웠던 때를 생각하니..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니..
서서히 나의 본연의 자세와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하다. 오늘은 어제 보다 훨씬 우리 둘의 기분이 상승되는 것 같구나. 얘기도 신경질을 피하며 할 수 있고, 실질적인 이야기들 나눌 수도 있으니 살맛이 나는 것 아닌가? 진행중인 일들, 자세히 보거나 상상을 하면 골치가 즉시 아파오지만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고 있는 듯하다. ‘최선을 다하지만, 순리대로’ 라는 목표를 잊지 않기로 하자는데 동의를 하고…

2층의 모든 방들을 새로 배치, 정리 청소를 하다가 추억의 유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차고 위에 있는 ‘bonus’ room의 벽 위쪽에  오랜 세월 걸려있었던 작은 벽시계… 기억도 아득해진 1992년 초여름 중앙고 동창 호룡이와 그의 온 가족이 Michigan에서 Florida쪽으로 차로 여행을 하며 우리 집에 ‘들이 닥쳤었다. 그때 다시 만난 기념 선물로 받았던 것. 조개류를 가공한 독특한 것, 벽시계치고는 조금 작은 것이어서 장식용으로 쓰이 던 것이었다. 그리고 battery가 죽고, 벽에 걸린 채 30년이 흐른 것이니 잠시 추억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구나.

오랜 세월의 친구 호룡이, 당시 놀러 왔을 때 무척 반가웠던 것은 사실인데 떠나며 조금은 앙금이 남는 섭섭함도 기억에 남는다. 역시 처음 보는 부부, 그것도 가족들이 함께 만나는 것이 어찌 ‘아무것도 모르던’ 총각시절 친구와 같을 수 있겠는가?
특히 wife들의 chemistry가 영 맞지 않았던 것이 제일 큰 원인.. 참 괴로운 추억이 되어버렸으니… 그렇게 헤어진 후 10여 년 뒤 50대 초의 한창 나이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날 줄이야… 그 소식을 들으며 느낀 외로움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  그는 나의 진정한 자랑스런 친구였는데, 모두 모두 가버리고… 작년 말에는 함께 어울렸던 교성이까지 떠날 줄이야…

6일 동안 비었던 garage에 새로 산 차가 들어왔다. 약속한 날짜에 다시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 물론 편하고 기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된 연유, 이유를 생각하면 조금 김이 빠지는 느낌도 없지 않은 것, 그래 이런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없으면 그것은 software program에 지나지 않는 인생일 거다.

재미 없는 날씨란..

비록 대기온도는 별 차이가 없어도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지역의 독특한 기후pattern의 덕분일까?  갖가지 기후 재난, 뉴스에 너무 안심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이곳이 유난히도 기후, 날씨에 대한 뉴스가 없는 것이 조금 미안할 정도다. 이제 이 지역에서 살아온 지도 35년 째~  아무리 더워 보았자, 추워 보았자 도토리 키 재는 듯하니… 그래서 이제는 아랫동네 Florida보다 이곳으로 snow bird들, 돈 많이 벌어놓고 golf로 여생을 낭비하려는 한인 ‘박사와 전직 의사’들이 몰려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날씨에는 충격적인 스릴과 재미는 없지만 사시사철 놀기에, 살기에는 최고의 기후가 아닐지, 나는 그것을 가끔 잊고 사는 것 뿐인가.

그렇게 한창 달아오르던 산천초목이 완전히 구름, 비의 덕분으로 시원하게 식은 것이다. 우리의 몸도 식었나, 아예 어떨 때는 싸늘하고 춥다는 느낌, 착각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 입추, 말복~ 이 코 앞으로~ 다시 한번 또 ‘그 멋진 계절’이 저 멀리 보이는 듯… 아~ 자연의 기적이여~~ 사랑합니다, 어머니 대자연이여~~

오늘 성경말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는 라자로의 부활기적으로부터 나온 것이구나. 아예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의 기념일로 되어 있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이제는 기적이라는 진부한 표현 보다는 신, 하느님의 힘이라는 쪽을 택하고 싶다.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바로 그것의 한가지 예… 불가능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주위의 많은 고통 받고 신음하는 환자들은 어쩔 것인가? 그들에게도 불가능이 없는 기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빈약한 것 아닌가?
당장 현재 가까운 곳, 주위에서 날벼락같이 찾아온 불운, 불행, 불치병 판정,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지인 들.. 그들에게도 라자로의 희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닌, 어떤 ‘하느님만의 방식’으로 구원과 희망을 준비하고 계신 것일까,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지난 주 S family medicine clinic에서 regular checkup을 하면서  딸 또래의 ‘귀여운’ NP로부터 ‘쌀밥을 조심하라는’ 권고를 받은 터에 반대로 나는 갑자기 평소에 잘 안 먹던 아침 ‘밥’을 오늘은 그것도 ‘물에 말아’ 먹었으니.. 당뇨의 경계수치를 조심하며 며칠 전의 lab test의 결과를 기다리는 이때, ‘물 말아 먹는 쌀밥’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으니… 그래, 피할 것을 다 피해가면 과연 수명이 얼마나 더 연장이 된단 다냐.. 오히려 holistic 관점에서 보면  별로 큰 이득이 없음도 안다. ‘이성적이지만 상식적인 삶’을 살며 가고 싶다.

대강 7월 말까지 그동안 크게 벌려놓은 upstairs room renovation project를 끝내자고 했는데 이제 이틀을 남겨 놓고 있구나.. 거의 한달 반을 우리는 가장 더운 때에 땀을 흘리고 있는 셈이다. 70/30, 80/20, 90/10의 경험론에 따르면 지금 것은 아마도 70/30 정도가 아닐지. 나머지 30%의 일에 70%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그래도 이번에는 유난히 큰 문제나 이견이 없이 그런대로 일이 잘 마무리되는 확신이 든다. 나머지 70% 시간 중에는 계획에 없던 일, partial laminate flooring 이 있기에 아마도 8월 초순 경에는 다 끝나지 않을까.
올해 제일 큰 house project는 결과적으로 위층의 거의 모든 방들이 활기를 찾고 먼지가 쌓일 시간이 없게 될 것이다. 모든 방들이 새로운 임자를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 임자들은 우리 둘이겠지만…

요사이 부쩍 나의 신경질이 나를 괴롭힌다. 그것도 베로니카에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왜 나의 hot button이 자극을 받는 것인지.. 이것은 내가 생각을 바꾸어야만 해결이 된다는 것도 아는데… YouTube에서 노인들의 우울증에 대한 것을 보니, 첫 증상이 ‘과도의 신경질’이 있구나. 나의 것은 무엇인가? 우울하기 때문에 신경질이 나는가, 아니면 거꾸로 신경질이 나기에 우울한 것인가? 결과는 마찬가지, 내가 우울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꽤 오래 전부터 bidet를 쓰기 시작하면서 toilet 에 앉아있는 경험이 훨씬 편하고 시원한 것인데 근래 언제부터였는지, 그곳에 책들을 water tank위에 갖다 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 짧은 독서의 경험이 주는 느낌들이 지금은 bidet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되었다.
이곳의 독서 특징은 ‘시간이 얼마 걸리더라도’ 결국 ‘완독 完讀’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cover-to-cover reading을 원하면 이곳에 앉아서 읽으면 되는 것이다. 빨리 읽고 싶은 책은 물론이고, 완독하기 힘들거나 싫은 책들도 이곳에 갖다 놓으면 100% 완독을 할 수 있는 아주 묘한 독서 방법인 것이다. 한때 Thomas MertonThe Seven Storey Mountain도 그 중의 하나였다. 주위에서 어찌나 극찬을 하던 책인지, 큰 생각 없이 접한 것이 실수였다. 정말  지루하고 읽기 싫은 그런 종류의 자서전이었다. 다시 읽게 되면 물론 다른 생각이 들 것이라는 예감은 없지 않았지만.
현재 toilet water tank위에는 두 권이 놓여있는데.. 하나는 근래 타계한 Supreme Court justice였던 Antonin Scalia의 biography, 그리고 2018년 고국에서 동창 양건주가 보내준  포근하고 따뜻한 선물, 이해인 수녀님의 수필집 ‘기다리는 행복’ 이다. 전자는 이제 2/3정도 진행이 된 조금은 읽기 지루한 case이고 후자는 빨리 읽고 싶은 것이다.

꽤 오랜 세월 아이들이 집을 떠나면서 하나 둘 씩 빈방들이 생기고 거의 주인이 없는 빈방이 되고… 그것을 다시 새로운 목적으로 쓰려는 room renovation 작업의 결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 plant room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한가운데 제일 작은 방, 햇빛이 제일 잘 들어와서 화초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모든 실내 화초들이 모여서 정리가 되면  old audio system으로 old pop 을 들으며 화초들에 둘러 쌓일 상상을 해 보는데… 과연… 어떨지…

가랑비 내리는 4월의 마지막 날

어제 오후부터는 완전한 감기증세로 모든 일들을 거의 포기하고 Theraflu PM (night time)을 먹고 9시가 조금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찌나 이번에는 약효가 제대로 나타났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모든 감기 증상과 괴로움이 싹~ 사라진듯한 느낌으로 잠을 너무나 편하게 잤던 것이다. 감기몸살은 물론 거의 완벽한 수면제 역할을 했던 이것, Theraflu의 진가를 이번에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비록 가끔 기침은 조금 하지만 완전히 낫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제 저녁의 몸 상태를 보아서 오늘 Tucker 로 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숙면의 도움으로 최소한 나는 별 문제가 없이 갈 수 있었는데.. 아~ 역시… 세상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야 되는 것인가? 한때 잘나가던 연숙이 또 ‘그 놈의 역류성’인가 뭔가로 겁을 잔뜩 먹은 모습이 되었으니.. 나와 함께 감기성 기침인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란다. 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겁을 먹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가랑비가 오는 바람에 제대로 세넷과 산책도 못하고, 간신히 stroller 산책은 둘이서 같이 하긴 했지만 애보기 주역인 사람이 기침걱정으로 기가 죽은 모습으로 일관 하더니 2시가 넘자마자 집으로 가자고 하니… 몸이 아프시다고~~  ‘집 주인’은 무슨 일인지 점심 먹을 (줄) 생각을 전혀 하지도 않고.. 아주 이상한 날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은근히 화가 나는 나의 모습에 또 화가 나기도 하는 악순환… 아픈 사람을 탓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 자체에  화가 나는 것까지 탓할 수는 없지 않을까?
다행히도 Knox는 완전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모습으로 전처럼 그렇게 보태지도 않고 귀여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에 몸소 늦게나마 체험을 하게 된 것, 값진 경험이라고 보람과 위로로 삼고 싶다.

4월의 마지막 날… 달력을 넘기며 보니 5월 달력이 나타난다. 아~ 잊고 살았구나.. First of May annual blog post~~ 이것은 이제 나의 오랜 전통으로 남는다. 덕분에 창희, 용현이와 그 시절을 또 회상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생일과 결혼 기념일 사이에서…

2024년 정월 24일은 21일과 25일 사이…  생일 76년,  결혼 44년 두 기념일 사이를 가고 있구나. 이제서야 또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실감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조금 제정신을 차리고 세월을 가늠하고 있단 말인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의미 충만한 날들, 기억과 추억들, 모든 것을 잊었단 말인가?

연숙의 진심 어린 말, ‘기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믿지 않는 것 아니냐’ 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서 잔잔히 남아 울린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건성으로 믿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바치는 각종 화살기도들, 무슨 기대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공포에 질린 자세로 앵무새처럼… 나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며 무언가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배우는 지식,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체험을 했다고 자신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다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까지 계속되는 ‘겨울 비의 향연’, 현재 나의 열린 마음에 이것은 선물이고 축복이다. 비록 눈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의 76세 시점에서 나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교성아? 교성아~~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면 어떤 얼굴로 보아야 하니? 과연 Swedenborg의 희망이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까? 이것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과연 어떤 사람, 인간인가?

나의 생일과 내일의 결혼기념일을 어젯밤 조카 은지에게 알려 주었다. 오늘 아침에 답신에 자신의 store에 있는 동백꽃 Camellia 의 모습을 담아 축하를 해 주었다. 한 동안 재잘거리던 texting이 요즈음 조용했는데 이렇게 다시 겨울 꽃으로 다시 피게 되었으니 안심이 된다. 나보다 우리 어머님과 더 가깝게 살아온 우리 누님 조카들, 어떻게 이렇게 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희미해지는 기분까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 살았을까…  이런 인생을 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은지가 나의 생일선물로 보내준 것, 예쁜 동백꽃을 보다가 나의 책상 옆을 보니 다른 꽃, African Violet이 작고 겸손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나를 보는 듯하다. 어제 연숙이 desk옆 side table에 조용히 갖다 놓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아직도 꽃 이름을 추측조차 못하는 나로써는 요새 이렇게 꽃들이 다가오는 사실이 흐뭇하기만 하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 아닐까?

예정대로 연숙이는 full-time으로 Tucker엘 가서 사랑으로 손자를 돌보아주고 왔다. 나와 같이 다시 찾은 평화, 평정의 덕분으로 이전보다 조금 덜 힘들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drive를 거의 2시간씩 한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혼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의 꿈꾸듯 평화 속의 게으름을 마음껏 마음껏 발산하고 즐기고, 만끽을 했다. 언제까지 이런 ‘평화의 기쁨’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것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니까…
은근히 기대했던 ‘시원하게 깨끗하게 세차게’ 내리는 겨울 비는 결국 ‘과대선전’ 격인 것이었다. 거의 이슬비 정도로 그것도 가끔… 참, 이런 날씨는 사실 정확한 예보가 힘든 그런 format인 듯하다. 그래도 실망스럽다.

또 하나의 중앙고 57회 동창회 단톡방이 생겼다. 왜 또 하나의 것이? 조금 이해는 안 가지만 이유가 없지 않겠지.  그런데 이것으로 목창수가 동창회 총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총무는 조한창.. 역시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 그 사람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목창수가 간부가 되었기에 조금 동창회와 가까워진 듯한 기분.. 물론 나쁘지 않다. 이렇게라도 나는 이곳에 연결이 되어 있음이 좋다. 

오늘 이곳에서 알게 된  소식… 박택규 선생님의 ‘소천’, 아마도 목창수가 개인적인 관계로 이 소식을 들을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나머지 선생님들의 소식도 궁금하지만 아마도 개인적 관계가 별로 없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박택규 선생님은 나에게 유난히 적지 않은 추억을 남겨주신 소년 처럼 해맑은 모습의 화학 선생님이었다. 또 하나의 화학 선생님, 김후택 선생님은 그야말로 완전 반대형의 인물, 어깨, 깡패를 연상케 하는.. 얼굴. 하지만 이 두 선생님, 진정한 화학의 귀재들이었다. 아무런 note없이 줄줄 화학방정식으로 칠판을 가득 채우시던 모습이 상상의 모습으로나마 남아있으니…

세월

12월도 ‘벌써’ 나흘 째로 슬그머니 넘어온 즈음, 중앙고, 연세대 친구, ‘도사’ 양건주가 1999년 8월에 보내주었던 [외로움의 도사] 김재진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를 다시 꺼내었다.  이 시집의 표지의 글,  건주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 당시 이미 상당한 세월을 훌쩍 넘기고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과 함께 힘든 시절, 고민과 고독을 호소하던 나를 위로하며 이 소책자를 보내 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후 이 시집은 나의 영적 상담자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40대 말을 바로 뒤로했던 시절로 깊이 각인된 그때, 이 소책자는 나에게 시의 안 보이는 위로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는데.  올해 한달 전  서울 근교 일산시의 그의 보금자리에서의 기적적, 극적인 해후 이후 더욱 이 시집에 진하고 진한 남자의 우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때 그와의 ‘역사적 만남’은 나에게 ‘세월’이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두고 묵상하는 계기를 주었고, 밤 잠을 설칠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악동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월, 세월… 세월…

그런데 역시 이 김재진의 시집 속에도 이 ‘세월’은 유감없이 그의 생각을 타고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나의 깊은 속을 유감없이 속삭이고 있었으니..  사 반세기만에 나를 찾아온 선물이라고 할까. 건주야, 고맙고 그립다. 잠을 설치는 밤에 다시 보고 싶구나. 조금 더 나은 건강을 빌며.. 우리의 긴 세월은…

 

세월

김재진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나 살자.

먼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대림초 가 처음으로 켜지는 날…

일요일 아침시간을 편하고 아늑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비록 성당제대에 켜진 대림초 는 코앞에서 못보고 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대학시절 수업을 빼먹고 연대 입구 [사실은 신촌 로터리] 대지다방으로 클럽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그 가벼움과 비슷한가…  지금 50년 후의 그 연대입구, 신촌 로터리에는 꾀죄죄했던 2층 다방의 모습은 간데 없고 우람하고 번쩍이는 ‘명동, 강남 스타일’의 고층건물 아래의 ultra-modern cafe들.. 아~ 싫다, 싫어… 우리 마음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보너스로 생긴 일요일 아침, 성당 망치회의 김밥 대신에 left-over fried chicken, SPAM, 따끈한 밥이 곁들인 한 접시 요리는 나의 혀끝에는 천하일미였다.

중앙고 콜럼버스 인연의 채인돈 후배의 ‘서울역 선물’ 제주산 차茶.. 지난 한달 간 우리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 차의 향기에 취해 서울역 모임을 음미하며 살았다. 문제는… 이제 거의 이것이 떨어져간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는 과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사는 ‘장애자’인가?  그것도 특히 우려, 걱정, 부정적인, 나쁜, 해가 되는 그런 것들을 주로 하며…  왜 좋은 생각, 희망적인 것, 사랑스런 것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사는 재주가 없는가? 정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지경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자가진단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연숙이의 sinus infection과 심지어 기침까지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오늘 ‘쉬기로’ 정했기에 마음은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미사엘 못 갔다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편한 새벽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 것, 아~ 그렇구나… 다가오는 시간, 날, 세월들에서 나를 즐겁게, 편하게 하는 ‘희망’이란 놈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사실이다… 왜 요새는 그렇게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일까?

어제 읽었던 NYT 논설, Is South Korea Disappearing? 생각보다 ‘비 과학적’ 분석인 것이 사실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의 ‘느낌’이 ‘과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가 과연 조국의 출산율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가? 절대로 절대로 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것[낮은 출산율]은 사실 ‘선진적’ 인 좋은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곳일 수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출산율은 반비례해서 낮았으니까…  이 두 가지를 현재 모두 가지게 된, ‘자랑스런 조국’ 인데…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출산율 걱정인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더불어 모국, 대한민국은 이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임을 물론 나는 신앙적으로 믿는다.

오늘 CBS Sunday Morning show에 이 ‘미국판 애국열사’의 침통한 얼굴이 나온다.  Elizabeth ‘Liz’ Cheney,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 전 ‘추억의 부통령’ Dick Cheney의 딸, 정치집안의 산물, 모두 강경 보수파 매파 공화당 계열.. 한때 나는 이들을 싫어했고 때에 따라서 ‘증오’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선제공격 형 전쟁 광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준이 180도 바뀐 후.. 무엇이 변했나?

이 극우 대부격인 아버지와 그의 딸, 모두 지금은 거의 ‘성인 聖人 반열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양심을 몸으로 지키는 사람 중에 나는 이 ‘용기 충만한 여성’이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썩을 대로 썩은 Republican 중에서 거의 홀로 DONALD ‘개XX’를 탄핵했던 용기와 양심의 소유자, 그녀가 이번에 ‘미국을 살리는 책’ “OATH and HONOR  A Memoir and a Warning” 펴냈다. Memoir는 그렇다 치고 Warning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Warning이란 것, 쉽게 말해서 Trump의 ‘다가올 제2 쿠데타 음모’ [사실은 음모가 아니고 공공연한 호언장담] 에 관한 것, 진정 미국의 ‘전통자유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철학, 도덕률의 절대잣대가 사라진 이때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지하며 살 것인가? 

일요일 이른 아침을 (old fashioned) TV 와 함께 한다는 것, 전혀 추억조차 까마득한 것, 그야말로 surreal한 경험이다. 실감이 안 가는 것이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최적의 위치를 찾은 HDTV antenna 덕분이다. 이 작은 gadget으로 제일 보기 편한 local channel 들의 signal들, 특히 비록 HD format은 아니어도 KBS AMERICA가  ‘간신히 나마’, 30마일의 Atlanta Metro 를 횡단하며 Marietta에 비추이는 것, ‘공짜 programming’ 이라는 사실과 함께, 요새 나에게는 드문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다. 세 군데 major channel은 역시 아직도 ‘목사님’들이 설교로 침을 튀긴다. 예전에는 ‘성경유일주의’로 조금은 배울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Donald ‘개XX’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며 오늘은 100% 완전 외면을 한다.  100% analog에서 99% digital로 변하던 그 동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AI preacher의 등장까지 꿈속에 등장하니, 유일한 등대는 이곳이 아니고 저쪽이 아닐까?

아~ 골치 아프다~ 왜 올해는 이것까지 말썽을 부리는가? 근래 우리의 holiday lighting 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가? Strand중의 한 부분이 이빨 빠진 듯 감감소식..  이것을 내가 고쳐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가끔 bulb하나가 ‘죽으면’, 교체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모두 led여서 거의 불가능하니.. 문제는 어떤 led가 죽었는가 찾는 것인데, 아직까지 고전 중… 이것은 가만히 보니 고치는 것보다는 아예 새것을 사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듯, 역쉬~ 짱개의 얄팍한 발상인가?

오늘은 예전의 ‘보편적’ 주일, 일요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비록 대림1주 첫째 날 미사는 못 보았어도 큰 후회는 없다. 감기기운이 있는 연숙이 모처럼 아침잠을 깊이 잘 수 있었고, 나도 솔직히 오늘은 ‘순교자 성당’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갑자기[이상한 예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onster로 돌변한 추한 모습의 어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 얼굴을 다시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한때는 대신 Holy Family 동네 성당에 가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뜻밖의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 스트레스도 잠재울 수 있는 ‘하루’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연숙이의 homemade 해물잡탕까지 해 먹을 수 있었으니~

저녁때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놀랄 뜻밖의 카톡 메시지~ 분명히 캐나다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이 보낸 것인데~~ 보니 딸이 쓴 것인 듯, 교성이가 11월 24일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그곳에서 또 COVID까지 걸렸다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그것이 전부~~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기도하겠다는 답을 보내긴 했지만… 아~ 요새, 아니 요즈음, 아니 가을부터 이것이 웬일들인가? 줄줄이 세상을 떠나고, 급기야는 교성이의 입원소식까지~~ 내가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도라도 열심히 할 것이지만 조금 어두운 예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우리는 인생의 황혼을 더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을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연로한 양양이의 식성 맞추기 준비…

제시간 (6시 반)에 일어나며 오늘은 유난히 ‘양양이 녀석’의 식성에 신경이 갔다. 마지막으로 ‘토했던’ 때가 언제였는가~ 기억이 확실치 않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또한 wet & dry food를 함께 놓고 문제없이 먹는다는 사실은 더욱 반갑던 것이다… 오늘도 주자마자 먹어 치웠는데… 하지만~ 역시… 조금 있더니 그 많은 것을 모두~~~ 실망, 실망…  그러니까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을까.. 조금씩 먹이면서 구토의 횟수가 줄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후에 생각해 보니, 기쁜 마음에 녀석을 porch에서 갑자기 안아 준 직후에 토한 것, 혹시 그것이 원인의 하나였는지도…  오늘은 토하자 마자 dry food를 더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 최소한 식욕만큼은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 하나는 기뻐하고 싶다. 과연 10월  한 달 긴 나날들, 이 녀석이 홀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는지 아무리 상상을 해도 알 수가 없으니… 아~ 어머님들, 이 ‘늙은’ 아이 좀 보살펴 주세요~~

올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광경 중의 하나, 두 송이의 선인장 꽃이 하얗게 이른 새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것을 다시 보려면 내년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아득~ 하게 만든다. 이유는 자명하지 않을까? 자명? 무엇인데? 그때의 우리 모습을 미리 상상하는 것, 재미도 있고 걱정도 되고…  그때에는 우리는 ‘大長程’을 끝낸 오랜 후일 것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전혀 안 가는 것이기에…

무엇을 먼저 해야 오늘 하루 나의 다른 일들이 잘 풀릴까~ 이것 조금 해괴한 생각이 아닐까?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첫 매듭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것들도 쉽게 풀린다.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오늘은 ‘작은 외출’이 이른 오후에 있으니까 우선 한가지 일은 확실히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웬 놈의 after-check이 그렇게나 많은지… 하기야 눈에 수술을 한 것이니 이해는 가지만…

서류-책 정리는 ‘아직도’ 미루고 있지만 자신은 있다. 한번 손에 걸리면 아마도 하루도 되지 않아서 끝날 수도 … Shed/Tool 정리도 일단 시작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사실은 다음 것을 위한 나의 계략이라는 것도 잘 안다. 진짜 진짜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10월 대장정 준비, 물질적, 정신적’ 라는 것이 머리 속에 가득한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지내는 나의 ‘가식적’인 모습이 가소롭다. 순진한 연숙이는 분명 내가 정말 ‘흥분이나 긴장’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 나의 가식 중의 가식이여~~ 봐 주라~~

10월의 ‘어느 멋진 날’ 이라지만, 나에게는 누구를 만나며,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안개 자욱한 나날들로 느껴진다. 그저 풀리는 대로 끌리는 대로 갈 뿐이다. 이것 조금 너무한 것 아닐까? 누나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인가? 과연 나는 누나와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엄마의 잔영은 어떻게 찾고 대할 것인가? 이것들이 다른 모든 것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데… 왜 이다지도 마주, 맞대면, 정면돌파를 피하며 사는 것인가? 이것이 정말 나의 진짜 모습인가?

나의 화장실에서 며칠 만인가~ 일을 보다가 느낀 것, 아하~ 이곳이 바로 바퀴벌레의 소굴이었구나! Bug spray를 이곳 저곳에 뿌려보니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를 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할 것인가? 일단 나의 화장실부터 대청소를 하고 싶구나… 이것이 제대로 끝나면 우리 집의 모든 under sink/cabinet들의 ‘쓰레기급’을 모조리 꺼내어 정리, 처리를 하면 어떨까? 떠나기 전에 이런 것이라도 하고 나면 조금 머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오늘 예정된 연숙의 백내장 눈시술 준비 검안, 오늘은 예상 밖을 시간이 좀 걸렸다.  전에는 몇 분만에 끝난 듯 했는데 오늘은 한 시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이것으로 한쪽 눈에 대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이다. 이런 3차례 방문이 다른 눈 수술에서 그대로 반복이 되니… 허~ 도대체 이런 지루한 절차, 아무에게서도 듣지를 못했으니..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연숙이의 시력이 월등 나아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문제랴?

갑자기 어지럽고 기운이 떨어진 연숙이의 모습에 나는 가차없이 실망, 불만, 화까지 참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인가? 조금 더 넓은 배려를 하며 위로를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현재 나름대로 열심히 가정과 그녀를 돕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 이것 혹시 지나친 자기도취는 아닌가? 사실상 나는 그렇게 믿고 사는데 이것은 사실일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현재 내가 불만을 갖는 것은 절대로 나도 싫은 것이다.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 것일까?

올 때 McDonald’s에서 늦은 점심으로 QuarterPounder 을 정말 오랜만에 즐겼고, 특히 그 자리에서 나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큰 여행’의 스트레스를 잠깐 언급을 했다. 아~ 나는 요사이 아니 근래에 연숙이에게 나의 깊은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 나는 안다. 하지만 다시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는 현재 나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것일까, 나도 어떻게 이것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지 전혀 idea가 없다. 다만, 다만, 이것은 나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 두 어머님들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안다. 성모님, 성모님, 저의 어머님을 다시 찾으러 갑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그 강변으로…

Last of May, Billy Graham 1973

오늘, 아니 요새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요한 ‘성인의 오늘 말씀’, 바로  Padre Pio 성인의 말씀이 아닐지…

“Pray, hope, and don’t worry. Worry is useless. God is merciful and will hear your prayers.”  – St. Padre Pio

내가 제일 갈망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바로 hope일 것이다. 이것의 결여, 사라진 듯한 우려, 그것이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내일, 모레 이후에 대한 희망… 왜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 아니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우려’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대를 살 무렵 나는 바로 이 희망에 의지하며 의미 있게, 힘차게, 기쁘게 살지 않았던가? 왜 바로 그것이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절망을 하는 것일까?

아~ 어찌 이렇게 자주 잊는단 말인가? 1973년 6월 1일, 아니면 6월초..  정든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을 난생 처음으로 떠나던 날… 1973년 6월 초, 어떻게 이 날짜를 잊고 살았을까? 괴로운 추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Landing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부터 나를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이끌 던 날, 그날이 ‘중앙학교 개교기념일’과 맞물려서 나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는데.. 결국 이날을 맞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무리 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너무나 감상적, 관념적,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말 이제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 시기, 즈음을 기억하고 넘어갈 것인가? 1973년, 1973년 6월 김포공항… 분에 넘치게 많이 환송을 해 주었던 가족, 친지들 어떻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며 추억을 해야 마땅할 것인지 정말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어머니, 어머니, 엄마, 누나, 누나~~ 만 외칠 것인지…

1973년 6월 1일 금요일 전후의 고국 신문을 훑어본다. 나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시작한 머나먼 추억여행인가… 우선 Billy Graham 여의도 집회에 대한 것, 그것은 5월 31일 목요일에 시작이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떠난 후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을 한 것이니.. 얼마나 많은 기억의 착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요일에 의한 추적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난감하기만 하구나… 출국하던 날 아침에 연세대를 찾았는데 혹시 그날이 6월 2일 토요일일 가능성은 없을까? 토요일에 학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의 확실히 가능성도…

출국하던 날 연세대 campus에서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은 6월 2일 토요일 오후에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00%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대회가 한창이던 때에 고국을 떠난 셈인데… 왜 그렇게 그 대집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나는 그 당시에 무신론을 넘어서 아주 종교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나의 종교세계관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역시 1973년 6월 초 전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유심히 읽기도 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의 삶과 주변 모습들을 그려보고 상상도 하며 time machine을 탄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사진들도 보며,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거의 한숨을 쉬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론은: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고향? 이곳의 제2의 고향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삶인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지금이 아닌 옛날의 것들이고, 지금의 집과 삶은 아무리 해도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는 곳이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느냐 말이다~~ 성모님, 모두들 어디에 갔습니까?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어제 중앙고 졸업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이상한 사실을 보았다. ‘윤석원’의 사진이 다른 반에 실려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우리 반 3학년 8반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살펴보니 역시 윤석원은 8반의 그룹사진에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라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 이 친구,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6학년 1반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동창과 나는 개인적으로 얽힌 추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굴만 익숙한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 궁금한 동창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는데, 역시 궁금하다, 이 친구는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을지~~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 한 일도 많았지만 아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이 왜 없으랴? 아~ 성모님의 달, 5월 성모성월~~ 이것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거의 소홀하게, 아니 거의 실패작으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지내려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간 것이다. 특히 성모의 밤에 못 간 것, 아니 안 간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어쩌면 날씨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나를 행복하게, 기쁘게까지 하는 그런 자연환경조건의 나날이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여름’은 아직도 3주 이상 남았지만 여름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다시 봄이나 가을이 된 착각에 빠지는 지난 나날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방을 옮기는 작업을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우리 집이 손을 잘 못보고 방치하며 살아서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고 빗물이 들어오고… 이런 종류의 꿈의 역사는 꽤 깊고도 긴 것이다. 어젯밤의 광경들은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아예 그 ‘공포’에 잠에서 깨어나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세!’를 부르는 혜택을 만끽하기도 했으니.. 왜 집이 처참하게 주저앉는 광경, 그 공포가 나에게 왔을까? 우리 집에 그런 일들이 생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영화에서나 본 광경들이 왜 나에게…  집을 제대로 관리, 청소, 유지, 재투자를 잊고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이런 꿈과 무슨 연관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나의 office/study는 완전하게 ‘이사’를 했지만 그 이사 짐들, 특히 책과 서류의 진정한 처리는 아직도 나의 등 뒤에서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럴까? 하기야 제일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되었고 garage로 물러나거나 쫓겨나가는 일을 단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분류’는 아직도 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한 책과 서류를 나의 옆에 항상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남은 인생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완전한 digitizing, clouding은 실용적이 아닌 것일까? 조금 더 아니 많이 많이 간소화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억이 얽힌 많은 stuff들, 얼마큼이나 나의 주변에 놓아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80대, 90대를 사시는 ‘선배님들’의 경험론적 고견은 없는 것일까?

방을 바꾸는 작업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tool time을 되찾아야겠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dining room의 dish cabinet의 배치를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 의외로 그것들은 laminate floor에서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거의 반년 이상 중지된 작업, kitchen under sink repair 작업인데 이것이 은근히 ‘목공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자신이 별로 없어서 방치된 상태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The First of May, 우리들의 약속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우리들의 First of May 어떻게 이렇게 한 해가 빠르게 흘러갔단 말인가? 해마다 이날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구나.  50년대의 오월은 원서동 개천가에서, 70년대의 오월은 담배연기 자욱한 퇴계로의 어떤 지하다방과 높고 맑은 도봉산, 치악산, 지리산 능선과 골짜기에서..

이 원서동 삼총사들과 헤어진 것도 거의 60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구나… 1977년 미국에서 서로 만나자고 했던 전설적 약속, 1988년, 1999년, 2000, 2011, 2022, 2033… 등으로 햇수의 숫자를 굴리며 만나자고 하며 살았던 것이 60 여 년… 아마도 이 두 명 ‘총사’들, 현재 모두 미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텐데… 무정하기 그지없는 ‘창희’,  연기처럼 사라진 ‘용현’이..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 친구들을 무심, 무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은데.. 이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고, 이승에서의 의미 있는 재회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니, 제일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다음 세상, 저승? 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는가?

싸늘한 아침으로 5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아래층은 아직도 central heating이 나올 정도니, 이런 이유로 겨울 옷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핑계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시간문제겠지.. 하루 아침에 ‘깊은 봄’ 날씨가 자리를 잡을 테니까..  아마도 1~2주 안에 겨울 내내 잠자고 있는 a/c 를 test-run을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부디 a/c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습관적’으로 빌어본다.
Ozzie도 신나게 뛰어내려와서 볼일을 끝난 후 ‘자진해서’ 들어오고, Izzie는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맛있는 pate wet food를  기다리는 모습들, 아~ 정말 사랑스럽구나. 얘들과의 시간들, 나에게는 은총이고 기쁨이 아닐까? 같이 있는 동안 사랑으로 이들을 돌보아 주고 싶은데… 특히 Izzie가 현재까지 wet food에 잘 적응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반갑다. 아마도 그것의 높은 영양분들이 그 동안 잘 못 먹었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희망을 한다.

5월 1일, First of May, Mother’s Month, 성모 성월… 싱그러운 5월의 꽃들의 향연… 이제야 그런 멋진 모습들이 마음과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나간 수 개월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어떻게 이 ‘지나간 수 개월’의 정리가 끝날 것인가? 또한 나의 office 를 옆 방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나의 녹슬어가는 듯한 몸에 활력을 주어야 하지 않을지…

어제 K 세례자 요한 형제님 병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번 화요일로 예정된 ‘정기 봉성체’ 가 취소가 된 것. 일단 이런 소식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병세가 복잡, 악화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가족간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caregiver들이 겪는 극심한 어려움으로 보아서 그 집 베로니카 자매님이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그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고 그저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 아무런 큰 문제 없이 지내는 우리의 현재 시간들이 미안해질 뿐이다.

겨울을 지내고 처음으로 driveway hedge trimming 을 했는데, 이제까지 했던 것 중에서 오늘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왜 그랬을까.. driveway 외에도 집 앞에 있는 bush도 손을 보았는데 그곳의 job은 driveway에 비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

Ozzie가 온지도 일주일이 지나며 이제 Izzie와 Ozzie사이는 큰 문제가 없이 보인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으니까… 전에는 먼 곳에서 노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응시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오후에는 새로니와 유나가 잠깐 놀러 왔다. Richard가 친구 결혼식 참석차 out of town (Las Vegas)를 해서 유나와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려고 온 것이다. 전처럼 유나를 우리 집에 놓고 가는 것에서 함께 왔다가 가는 것을 유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녀석이 처음 오면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까맣게 먼 옛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녀석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엄마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렇게 요즈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찾아보는 노력을 할 기회가 생긴다.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던 것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The Epiphany of the Lord, 2023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 The Epiphany of the Lord.. 동방박사~ 아~ 이제는 성탄의 기분, 느낌도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동방박사라고… 오늘을 기해서 성탄장식을 내려 놓자고 했지만 사실 나의 머리 속에 이것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듯하니.. 어떻게 이런 ‘해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타락’을 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의 기우, 지나친 걱정이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싫은 느낌 뿐인 주일을 맞는 심정이다…

오늘 보는 성당 제대 밑의 성탄구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고 찬란하다. 특히 옆에 앉아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오늘의 ‘주님공현 대축일’ 미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런 성탄의 모습들도 오늘까지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11월 말 대림절 시작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톨릭 전례 절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년이 흐르고, 인생도 나이도 같이 흐르고…

오늘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 동방박사가 ‘동쪽’에서 온 사실에 주목하며 묵상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동쪽’, ‘동방’을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오늘부터 도라빌 순교자 본당에서는 거의 3년 간 사라졌던 ‘구역 점심 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격주로 시작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든 친교실 table에 편하게 앉아서 ‘콩나물 국밥,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니.. 역시 신부님이라서 그런가, 세대 차이가 크게 있어도 역시 신부는 역시 신부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Doraville] H-mart에 잠깐 드렸다. 예의 grocery shopping을 한 후 오늘은 특별히 그곳에 있는 ‘빵집’ [이름이 무엇이더라… French인데… 아하! Tous Les Jours! 이것이 무슨 뜻인가?] 에 들러서 크림빵을 사왔다. 그 동안 ‘bakery 하얀풍차’에 갈 기회가 없어져서 [유럽, 한국식] 빵이 조금 그리운 것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food court, 예전 특히 Pandemic이전에는 이곳에서 자주 음식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특히 교우 자매가 운영하는 대장금, 그리고 중식점, 그 옆의 ‘한국식 hotdog, 명랑핫도그’ 등이 일요일 손님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나긴 Pandemic 3년간의 공백을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오늘 이곳에서 ‘가끔 또순이’ 연숙이 stick coffee를 부지런히 찾는다. 알고 보니 물론 ‘세일’ 품목, 그것도 원래 가격이 거의 $25이나 되는 것을 $10 sale로 사게 된 Maxim White Gold란 것, 집에 와서 같이 산 크림빵과 함께 마셔보니 비싼 만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 stick coffee는 맛보다는 편리함에 그 point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이 편리함에 ‘중독’이 될 수가 있는 것,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예정대로 오늘 오후에 집에 있던 각종 성탄 장식들을 retire했다. 올해의 성탄은 예외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게’ 보낸 듯해서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올해의 성탄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성탄장식을 예전처럼 아주 가능하면 늦게 하고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번 성탄은 솔직히 원래 의도와는 거의 반대로 아주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보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에 나라니 식구의 이름으로 ‘연하장’이 배달되었다. 전에 언급을 했던가.. Pro service로 가족 card를 만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 것이다.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둘째 아기를 임신을 하고 직장의 각종 산더미 같은 일들로 피곤해 보이는 나라니와 사랑하는 가족, Luke, Ronan 그리고 멋진 개 犬公 Senator 의 모습을 보니, 사진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흑백 사진들, 당시 추억의 노래와 함께 동영상화 하고 나니..  아~ 그립다, 그립다, 그때가 그립다… 연세대 시절 1969년의 얼굴들… 아마도 1969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이 ‘괴상한 그룹’이 어떻게 비원 안쪽으로 놀러 갔을까, 아물거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의 얼굴들은 어제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선명하다. 중앙고 선배 형들: 안낙영, 오성준, 최종인 형들로부터, 중앙고 동창과 친구들: 양건주, 박창희, 김진환(일찍이 고인)… 살아 생전에 볼 수 있거나 소식을 알 수 있을는지…

 

CANCEL & CANCELED, Family Gathering Together

결국 올 성탄, 연말 가족모임은 100% cancel되었다. 나라니가 아무래도 아직도 몸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재료만 준비하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서 두 집에 배달하고 선물도 교환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올해도 이렇게… 올해는 사실 나의 작은 감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니네 먼 곳으로 이사 안 가는 것과 나라니의 둘째 아기 가진 것 등으로 축배를 들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러 그곳으로 가니까… 아~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탄모임요리’를 만들어서 선물상자들을 들고 ‘거의 작년처럼’ 두 딸의 집에 가서 전해주고 들어왔다. 나는 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I-285 drive를 하는 것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런 것들은 진짜 가족모임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신명 나는, 즐거운, 보람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올해는 이상한 해로 끝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전혀 happy하지 않은 모습의 나라니 인상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조적으로 기운이 넘치게 보이는 새로니의 모습이 이런 기분을 조금 보상해 주긴 했다. 내일 새로니가 유나를 맡기러 올 것이어서 아예 오늘 간 김에 Ozzie를 미리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있어야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정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는 않았다.

 

몸도 근질거리고, 어제 이형 네 그룹과 만나서 느낀 것도 있기에 오늘은 혼자서라도 YMCA gym엘 갈까 했지만,  별로 good idea가 아니라고 ‘강제성 권고’를 하는 연숙, 속으로 ‘네~ 네~’를 되뇌는 나,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싸우지 말고 살자.

어제 이형네 retail store에서 나와 다른 삶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기에 나도 조금 자극을 받은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렇게들 사느냐 하는 놀람과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안전한 철부지 삶’을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한 곳에 앉아서 각종 영성, 철학, 과학 책들을 읽고 사는 나의 현재의 삶,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안 됨을 사람들을 만나서 깨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현재 삶의 성격에 이렇게 자랑하지도 못하는 듯한,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삶, 나와 너무나 다르고 듣고 보기에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사는 듯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가급적 세상적,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듯 보인다. 즐거움 이외의 다른 세계를 모르고 사는 듯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조금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더 ‘삶이 있는 현장 드라마’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제 이형 가게에 간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어떤 ‘찬물’을 뒤집어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고, 우울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외출이었기에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갖고 싶기도 하다.

 

과달루페, 과달루페~~ 이제 새해가 이틀 앞으로 … 머리 속은 역시 1월 말 예정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가득 차 있다. 성지에 대한 것 보다는 ‘여행 그 자체’, 집을 떠나는, 그것도 ‘멕시코’로 가는 것에 더 나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리라 기대, 희망을 한다. 그러면 이번 성지순례는 100%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로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가 24시간 (24일 동안)이 지난 뒤에 있는 ‘부록’으로 넘어갔다.  ‘수난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이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넓혀 보고 있다. 우선 그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조사, Amazon에서 보는 ‘서평’ 등으로 조금씩 ‘느낌’을 조절한다. 제일 관심사가  ‘이단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기도서 책의 감수자 격인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였기 때문이다. 99% 의 Amazon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듯 싶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작은 거부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100% fiction으로 치부하기도.. 하기야 영적, 믿음에 관한 것이니 그것도 이해는 간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이 불후의 명곡, 1969년 truly classic oldie가 오늘 아침부터 내 가슴에 와 닿는  하루의 주제곡이 되었다. 대학 3~4학년에 걸쳐서 조잡한 big box stereo LP player 를 통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듣고 들었던 것, 당시 나에게 troubled water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고통은 별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의 세계관이 기껏해야 발전적 공해 속, 최루탄 냄새의 서울거리에 불과했지만 머리 속은 항상 Life, Time magazine으로 보이는 세계, 특히 미국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그곳으로부터 신기루 같은 희망으로,  20대에 갓 들어선 젊은 머리 속은 최소한 겉으로는 ‘언제나 행복하고 신나는’ 때였다. 그러니까…  보일 듯 말 듯한 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인데, 문제가 있다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 졸업 후의  막막하고 깜깜한 허공이라고 할까… 그것이 당시의 troubled water라면 요새는 어떤가. 졸업은 몇 번이나 반복하며 했고, 심지어 지금은 인생의 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troubled water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과정, 고통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Bridge와 Friend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인가?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 마지막 시간 24시,  십자가에서 숨진 후 묻히신 아들 예수를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비탄…  이것과  현재 진행중인  나의 고통스런 생각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는 지난 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착각 속에 이즈음을 살아가는 것일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C형 그룹과 만난 이후 나는 다시 예의 상상적, 비관적 상념에 빠진 것인가?  이들과의 만남은 왜 가끔 나에게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추억하게끔 하는 것일까?

Cancel & Cancel… 오늘도 또 다른 cancel day가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오늘로 연기된 가족 성탄모임이 또 무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라니가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것이다.  음식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손을 놓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이런 ‘행사 취소’에 익숙해져서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다른 쪽으로는 ‘편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나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들은 가족 성탄 선물을 교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이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내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Three’s Company… 오늘 정오에 5년 역사의 ‘목요 그룹’ 3명이 간신히 해가 가기 전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이즈음에 한일관에서 모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그 전처럼 저녁의 쓸쓸한 시간의 한일관이 아니고 L형의 store에서 모인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낮에 이곳에서 모이면 전처럼 밤에 drive할 필요도 없고, 비싼 식당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역시 우리의 막내,  S형제가 수고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우리들 점심을 Chinese food 로 takeout 하고 게다가 선물이라고 Irish cream liqueur까지 우리에게 주었으니… 오늘 보니 점점 다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낀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이 친구와의 관계가 의외로 멋지게 끝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또한 현재 그의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니… 참 사람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McCORMICK IRISH CREAM LIQUEUR 의 맛이 의외로 포근하고 달콤하게 좋다.  작년에는 Canadian Mist 위스키를 준 것으로 즐거운 성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늘 의외로 또 이런 달콤한 ‘약한 술’을 우리에게 준 S형제, 솔직히,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속이 따뜻한 사람인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를 인정을 못하고 살았던 것 때문이다.

 

Cancel Days Aftermath, Can’t Die in a Cornfield!

어제 저녁부터 점점 심해진 ‘잔잔한 우울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침은 고육책으로 잠자리에서 정오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로써는 가끔 있는 희한하게 보이는 괴벽이지만 하느님이 보시면 측은하게 보실 것이다. 다행히 연숙이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한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와중에서 외출, 특히 오늘 예정된 S 베드로 형제집에 놀러가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또 하나의 cancel 희생물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혹시 우리가 무리를 하면 못 갈 것도 없을 듯한데~ 하는 각종 후회의 느낌을 쫓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다. 아~~ 미안해~~~ 잘못했어~~~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편으로 그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될 것인가? 특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지만 이제 물 건너 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어두운 밤’ 속에 나는 각종 추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어둠 속의 추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름답고 감미롭게 남아있던 그 추억들 조차도 모두 어둡고 잊고 싶은 추억으로 변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슬펐다. 지나간 과거지사, 추억들은 나의 보물, 자랑거리이기도 했지 않은가? 그곳으로 도망, 피난을 가면 나는 편하고 행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조차 이렇게 변하고 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슬픈 것이다.

특히 1973년부터 1977년 간의 추억은 극과 극,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오가는 시절로 다시 재조명이 되는 것이 제일 끔찍하게 놀랍다. 그렇게 ‘멋지고 행복했던’ 추억의 뒤쪽에는 이제까지 잊고 살던 악마의 모습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개인역사가 세월의 뒤안길에서 퇴색하고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사후에 ‘꼭 거쳐야 한다는’  life review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악몽의 24시간 뒤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밝은 하늘, 웃는 성모님의 위로의 미소, 든든한 하느님의 보호, 은총, 자비 등등이겠지만 현재로써는 전혀 실감이 가지를 않으니~~ 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 현존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나의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이제 조금씩 우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일 저녁의 진희네 그룹의 식사모임부터 약속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성사생활, 특히 매일미사, YMCA등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요일의 가족모임과 S형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새로니 식구 돕는 것으로 2022년을 안전하게 마감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뉴스들을 보니 이번의Northeast  snow storm은 거의 50/100년만이라고 나온다. 일기예보가 조금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일기가 돌변한 것인가… 지역을 보니 대부분 이런 엄청난 일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그것보다 훨씬 심한 모양~~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2014년 우리가 이곳에서 겪었던 ‘일기, 교통 대란’ 일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좌우지간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의 얌전한 날씨에 계속 감사한다.

지난 밤 (거의 정오까지 계속된) ‘어두운 밤’을 지내며 특별히 집중적으로 추억을 한 것이 1973년 이즈음 때였다. 당시의 유학생, 간호사들, 이제 자세한 것들이 퇴색된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생생하던 것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탓이기도 하고 나의 뇌세포의 노화가 이유일 것이다. 나의 고백 자전적 수기 ‘Peru, Nebraska’를 제때에 완성을 시켰으면 지금 편안하게 이용을 할 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사람의 이름, 얼굴들은 생각이 나는데 timing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수기를 보충하는 노력을 해 볼까… 야심 찬 생각인가?

You Can’t Die in a Cornfield!  Handel’s Messiah가 거의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1980년 Holiday film, A Christmas without Snow를  또 다시 보며 다시 듣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의 가슴을 울리는가? 그렇다, 그렇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갖가지 어려움과 사연을 안고 크리스마스 메시아 공연 직전 지휘자이자 그룹리더 (John Houseman 분) 가 중풍으로 쓰러지며 공연이 무산되는 순간 나온 이 외침,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Nebraska 주의 독특한 지역성 표현 덕분에 순간적으로 해결책이 발견되었던 것, 그렇다 여기서 중지할 수는 없다, 나아가야 한다.

 

Collage 1968~1970, Penance, Harmony Beckoning…

1968/70 년경의 사진들의 collage, 오늘도 추억의 영상을 담고 싶어서 photo collage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목표는 YouTube video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utility를 찾는 것이었다.  전에 손쉽게 쓰던 Microsoft Photo Story 3 이외에 오늘은 2012년 마지막으로 나온 그 전통적 classic video editor였던 Microsoft Movie Maker 2012를 찾아서 install을 해 놓았다. 나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곳으로 모여 남을 수 있으면… 이것은 핵전쟁이 나지 않는 한, 어느 곳에건 남아 있을 것이다.
연호회 혼성그룹친구들이 함께 모였던 관악산, 연세대 과 친구들이 모인 덕수궁, 원서동 삼총사가 함께 등산을 했던 지리산, 남녀 4명이 함께 갔던 소백산 연화봉…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도 이런 ‘흑백 추억의 극치’는 지금은 맛보기 힘들 것 같구나…

온통 나의 머리 속은 모레로 다가온 수요일 오후의 판공성사로 불편하다. 마지막 판공성사를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이 갈수록 이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은 것, 나 자신도 느낌이 좋지 않다. 항상 뒤끝이 묵직~ 한 것이다. 2014년 전후로 내가 이것에 엄청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아직도 교훈적인 기억으로 남기에 나는 이번에 다시 그러한 시도를 하고 싶은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사탄이 나를 방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 시간이 났을 때 성사 준비작업에 들어갔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성사를 보았는지조차 확실치 않으니… 하지만 각종 기록을 거의 다 찾아서, 작년 3월 부활판공을 이영석 요한 신부님께 했던 것이 확인 되었다. 기록을 보니 거의 매년 나는 판공성사를 보았지만 2020년은 Pandemic으로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일은, 작년 고해 이후 내가 어떤 잘못,  소죄를 지었는지 찾아내서 정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기와 일지에서 유추할 수 있고,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서 고해실에서 고해 신부님과 마주하면~~  2022년은 무사히, 개운하게 넘어가는가? 왜 고해성사를 하는가? 이재욱 신부님 말씀대로 ‘묵은 때를 벗기는’ 것, 그 동안 몸에 때가 많이 낀 것을 목욕하는 기분으로 벗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다행히 대죄에 해당하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지독한 때’는 없으니까…

남성 화음의 유혹:  얼마 전인가, 주일 아침미사에 다시 ‘생음악’ 남성 중창단이 등장을 해서 이제야 Pandemic이 지나간 느낌을 보여주며, 덕분에 아주 살아있는 신선한 미사가 되었다. C 베로니카 자매에게 들어보니 그 지난 주에는 4명 남성 이었다는데 2명이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두 명의 형제님을 보니, 둘 다 낯설지 않았는데 한 명은 독서 전례도 하고 하얀풍차 bakery에서도 자주 보았던 부부의 남편이고 다른 분은 조금은 나이가 있는 분이었다. 둘 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화음도 적당해서 듣기가 좋았다.그런데 주보에 성가대원을 모집한다고 난 것을 보았는데, 갑자기 연숙이 나보고 해보라고 뜬금없이 운을 뗀다. 이런 것 잊고 산지가 까마득한 세월[40+년]이었는데, 솔직히 놀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라는 나의 생각이었는데… 급기야는 연숙이 그들에게 나의 얘기를 한 모양으로 나보고 아침 7시 45분 성가대실로 오라는 것이니…  우선 거절을 해야 하는데.. 미사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다시 교우들과 마주보며 노래를 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얘기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를 않았으니.. 오묘한 것 아닌가?

오늘 YouTube에서 한국 수원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연말 프로그램으로 그 지역(대교구) 신부들로 구성된 ’30년 전통 갓등 OB’ 중창/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우연일지, 아니면 무엇인가? 갑자기 우리 성당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연숙이 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성당 봉사에 이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으니… 그렇다,  급속도로 공동체 내에서 노년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줄이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여기에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오늘도 책, Those Who Saw HerGuadalupe story를 (쓰며) 읽는다. 이 story는 물론 거의 전체를 이미 읽어서 아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읽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다가올 1월 말 Mexico 성지 순례에 서서히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다. 천천히 가급적 가벼운 묵상을 곁들이며 계속 계속 이런 과정을 밟고 싶다. 우연히 나의 등 뒤에 ‘숨어 계셨던’ 이 Guadalupe Juan Diego tilma상본, 그것을 아예 나의 desk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십자고상과 함께 나를 그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소서~~

<‘시편으로 바치는 기도’  가장 완전한 기도> 토마스 머튼/오수무 옮김, 100 쪽도 되지 않는 성바오로 수도회 수도자들이 홍보수단으로 제작한 소책자, 발 밑에 있는 책 더미 속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그런데 이것을 토마스 머턴으로 음역을 했는데, 사실 이것은 머튼이 더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닌지.. 머턴도 보았고, 머톤도 보았는데 머튼이 제일 익숙한 표현일 듯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제목의 주장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시편이 가장 완전한 기도… 그것도 그 유명한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의견이고 주장인 것이다. 2006년 성탄 무렵 순교자 성당에서 최성영 보좌신부님 지도로 시편 전체를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나의 수준으로 ‘시편’이란 말 조차 고귀하고 별처럼 멀게 느껴지는 때였는데, 이제는 수많은 연도 등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완전한 기도라는 것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성탄 무렵에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 읽기 시작하니 거의 모든 머튼의 ‘주장’이 손쉽게 머리에 들어온다. 올 성탄의 선물이라면 어떨까?

지난 2주 이상 나는[할머니 고양이]  Izzie와 ‘냉전’ 중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라고 계속 나를 세뇌시키며 견디고 있다. 2주 이전에 이 녀석에게 피가 조금 나올 정도로 손을 물린 이후에 크게 결심을 한 것, 일단 이 녀석과 거리를 두며 살아야겠다, 나를 조금은 무서워하게 해야겠다, 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곧바로 [숙적 개] Ozzie가 집에 와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며 살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Ozzie가 떠나면서부터다. 이제는 우리 둘만의 시간 뿐인데… 하지만 현재까지 나는 굳을 결심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의 근처에 못 오게 하는’  강 훈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가슴 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일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이런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참, 동물친구들과 살기 쉽지 않구나…

기타, 통기타~  guitar, my guitar~~  몇 년, 특히 Pandemic을 포함한 거의 4~5년의 세월 동안 거의 이것을 잊고 살았다. 2016년 성당에서 6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 모임을 하며 몇 개월 본격적으로 가까이 했던 것과 2018년경 구역모임에서 몇 번 가까이 했던 것이 그야말로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손끝에는 굳은 살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진 터 [흔적만 겨우].. 다행히 흔한 chord 를 잡는 것은 그대로인데 각종 노래들의 chord progression은 많이도 잊어버렸다. 나이 탓, 세월 탓일 거다.  그래도 아직 손가락의 힘은 크게 빠지지 않은 것에 진실로 감사를 한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Fourth Candle, Early Seventies, Deep Freeze

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Pat Boone’s WHITE CHRISTMAS 1964

올해는 유별나게 holiday music, 특히 carol류를 일찍부터 자주 듣게 되었는데 우연히 머리 속의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도움으로, 오늘은 1964년 성탄절 [이브]를 회상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이 모습, 그 당시 ‘잘나가던’  Pat Boone 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그의 Christmas album ‘White Christmas’ LP jacket… 그 시절 집에서 보고 듣던 바로 ‘판’이었다. 그 당시에 가지고 듣던 각종 LP record들은 물론 ‘해적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해적판이라도 없었으면  가끔 radio에나 매달려야 하는, 아마도 정말 심심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LP는 성탄시즌이 되어야 꺼내어 듣곤 했지만, 이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모습과 음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유행인가,  고등학생의 감성적 나이인가, 아직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현듯 떠오른 Pat Boone의 감미로운 White Christmas 와 그의 젊디 젊고 깨끗한 모습의 도움으로 이 특별한 LP를 찾아보니… 역시,  특별히 할일 없는 우리 세대들이 이미 이 album의 전체를 YouTube에 album jacket과 함께 upload를 해두어서 오늘 거의 60년 만에 다시 보고 듣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분명히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온다. 특히 track의 첫 곡이었던  White Christmas와 comic한  Jingle Bells, 교회 합창을 연상케 하는 O Holy Night 등등, 거의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다.

1964년 성탄이브 때 크리스천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1으로 통금이 해제가 된 덕분에 친구 몇 명 (아마도 안명성, 김동만이 포함된)과 이 carol을 마음껏 즐기며 남영동 금성극장 앞에 있던 집 근처를 배회했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날 밤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명동거리가 사람들로 혼잡했었다2. 그런 현상은 아마도 그 당시에 아주 드문 것이었다. 통행금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은 그 당시 일본 도쿄도 같은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통행금지가 없었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국의 종교와는 다른 서구의 유행, 그저 유행가 처럼 그날 성탄이브를 지냈을 것이다.

대림 2주가 벌써 금요일로? BiocentrismIdealism [심지어 Emmanuel Kant까지] 은 분명히 ‘시간[과 공간]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난 달부터 이번 달로의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상상, 허구라고 할 수가 있는가? 12월도 1/3이 지나가려고 한다. 조금 조바심도 나고 초조함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의 상상에 불과하니, 경우야 조금은 얼굴을 펴고 살자, 건주의 말대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Guadalupe St. Juan Diego,  아침미사엘 가서야 오늘이 과달루페 성모님 visionary  성 Juan Diego의 축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관심이 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년 1월 말이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단체 과달루페 순례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으로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한다.

Distancing from Swedenborg! 결정을 했다.  역사적인 과학자, 저자, 신비가 로써의 Emanuel Swedenborg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떨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이것도 나의 가톨릭 신앙적인 면에서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진전이 되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힘들기에 오늘로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모든 online link들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이 단절 과정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마지막 관건은 역시 ‘성모님’에 관한 것임은 크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나의 ‘선지자’ 가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그를 제외한 다른 ‘철학/과학’적인 석학들의 책들에 전념을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은 모처럼 ‘동네방네’ style의 ‘밥과 반찬’의 한식으로 먹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산뜻한지 점심 메뉴에 신경을 쓴 연숙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식류’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리가 근래에 얼마나 전통한식에서 멀어진 식생활을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두부찌개와 총각김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가을 장마의 모습으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나의 신경은 온통 Ozzie의 산책 가능성으로 쏠렸지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든  시간들이 있어서 backyard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네 전체를 산책 할  정도로 비는 멈추지를 않았다.

 

  1. 그 당시 왜 성탄절에 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는지 궁금하다.
  2. 당시 명동은 지금의 이태원이었나, 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Friends & Neighbors, Warnock Crushed Idiots!

오늘 mailbox를 열어보니 뜻밖의 것이 놓여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었을 듯한 앙증스러운 cookies 봉다리였다. 사연이 적힌 종이를 보니.. 뜻밖에도 앞집의 Josh 가족의 이름이었다. 그저 감사한다고~~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의 잔디, 낙엽을 자기의 blower를 쓸 때, 우리 집도 함께 해 주었는데… 우리가 도운 것이 있다면 가끔 사다리를 빌려준 정도였는데…  옆집 Dave는 가끔 소음 요란한 lawn mower로 우리 집 것도 깎아 주기도 하니..  우리의 양쪽 이웃들, Dave & Josh  이런 식으로 가끔 이웃 정을 보여주니, 이것도 자그마한 운이나 복이 아닐지…

어제 연호친구들의 카톡 대화로 건주의 건강상태를 조금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생각했던 것 보다 stroke 후유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거의 말도, 움직이지도 못했던 것을 상상해보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어떻게 평소에 그렇게 건강하던 건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문제는 앞으로의 물리치료 과정인데, 이것을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으랴마는… 나의 주장대로 최선의 의학과 진정한 참된 기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건주야~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들 너를 믿고, 응원한다는 사실만 굳게 기억해주기 바란다…

어제 있었던 Georgia runoff, 결국은 Warnock의 승리로,  휴~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  시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2022 midterm election 마지막 DONALD SOB MF ‘개XX’ 의 ‘쫄개’가 떨어지고 사라지고 kicked-out되는 이 시점을 만끽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미친 ‘개XX’는 자기 방의 사방 벽을 마구 발길로 차대고,  동물의 괴성을 지르며 각종 ‘쌍’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직접 고르고, 길들이고 ‘어둠의 자식들 훈련’ 을 시켰던  ‘백인 흉내 내는 흑인’,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잘 모르지만 줄을 잘못 선 것을 후회하기를 빌어본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먼저 배워라!  결국 이번 midterm election에서 ‘개XX’가 endorse했던 놈들 ‘전부’가 낙선을 하게 되었으니~ 참, 정의는 승리한다 는 것이 명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