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12월도 ‘벌써’ 나흘 째로 슬그머니 넘어온 즈음, 중앙고, 연세대 친구, ‘도사’ 양건주가 1999년 8월에 보내주었던 [외로움의 도사] 김재진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를 다시 꺼내었다.  이 시집의 표지의 글,  건주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 당시 이미 상당한 세월을 훌쩍 넘기고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과 함께 힘든 시절, 고민과 고독을 호소하던 나를 위로하며 이 소책자를 보내 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후 이 시집은 나의 영적 상담자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40대 말을 바로 뒤로했던 시절로 깊이 각인된 그때, 이 소책자는 나에게 시의 안 보이는 위로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는데.  올해 한달 전  서울 근교 일산시의 그의 보금자리에서의 기적적, 극적인 해후 이후 더욱 이 시집에 진하고 진한 남자의 우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때 그와의 ‘역사적 만남’은 나에게 ‘세월’이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두고 묵상하는 계기를 주었고, 밤 잠을 설칠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악동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월, 세월… 세월…

그런데 역시 이 김재진의 시집 속에도 이 ‘세월’은 유감없이 그의 생각을 타고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나의 깊은 속을 유감없이 속삭이고 있었으니..  사 반세기만에 나를 찾아온 선물이라고 할까. 건주야, 고맙고 그립다. 잠을 설치는 밤에 다시 보고 싶구나. 조금 더 나은 건강을 빌며.. 우리의 긴 세월은…

 

세월

김재진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나 살자.

먼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대림초 가 처음으로 켜지는 날…

일요일 아침시간을 편하고 아늑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비록 성당제대에 켜진 대림초 는 코앞에서 못보고 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대학시절 수업을 빼먹고 연대 입구 [사실은 신촌 로터리] 대지다방으로 클럽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그 가벼움과 비슷한가…  지금 50년 후의 그 연대입구, 신촌 로터리에는 꾀죄죄했던 2층 다방의 모습은 간데 없고 우람하고 번쩍이는 ‘명동, 강남 스타일’의 고층건물 아래의 ultra-modern cafe들.. 아~ 싫다, 싫어… 우리 마음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보너스로 생긴 일요일 아침, 성당 망치회의 김밥 대신에 left-over fried chicken, SPAM, 따끈한 밥이 곁들인 한 접시 요리는 나의 혀끝에는 천하일미였다.

중앙고 콜럼버스 인연의 채인돈 후배의 ‘서울역 선물’ 제주산 차茶.. 지난 한달 간 우리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 차의 향기에 취해 서울역 모임을 음미하며 살았다. 문제는… 이제 거의 이것이 떨어져간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는 과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사는 ‘장애자’인가?  그것도 특히 우려, 걱정, 부정적인, 나쁜, 해가 되는 그런 것들을 주로 하며…  왜 좋은 생각, 희망적인 것, 사랑스런 것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사는 재주가 없는가? 정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지경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자가진단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연숙이의 sinus infection과 심지어 기침까지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오늘 ‘쉬기로’ 정했기에 마음은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미사엘 못 갔다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편한 새벽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 것, 아~ 그렇구나… 다가오는 시간, 날, 세월들에서 나를 즐겁게, 편하게 하는 ‘희망’이란 놈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사실이다… 왜 요새는 그렇게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일까?

어제 읽었던 NYT 논설, Is South Korea Disappearing? 생각보다 ‘비 과학적’ 분석인 것이 사실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의 ‘느낌’이 ‘과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가 과연 조국의 출산율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가? 절대로 절대로 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것[낮은 출산율]은 사실 ‘선진적’ 인 좋은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곳일 수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출산율은 반비례해서 낮았으니까…  이 두 가지를 현재 모두 가지게 된, ‘자랑스런 조국’ 인데…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출산율 걱정인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더불어 모국, 대한민국은 이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임을 물론 나는 신앙적으로 믿는다.

오늘 CBS Sunday Morning show에 이 ‘미국판 애국열사’의 침통한 얼굴이 나온다.  Elizabeth ‘Liz’ Cheney,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 전 ‘추억의 부통령’ Dick Cheney의 딸, 정치집안의 산물, 모두 강경 보수파 매파 공화당 계열.. 한때 나는 이들을 싫어했고 때에 따라서 ‘증오’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선제공격 형 전쟁 광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준이 180도 바뀐 후.. 무엇이 변했나?

이 극우 대부격인 아버지와 그의 딸, 모두 지금은 거의 ‘성인 聖人 반열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양심을 몸으로 지키는 사람 중에 나는 이 ‘용기 충만한 여성’이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썩을 대로 썩은 Republican 중에서 거의 홀로 DONALD ‘개XX’를 탄핵했던 용기와 양심의 소유자, 그녀가 이번에 ‘미국을 살리는 책’ “OATH and HONOR  A Memoir and a Warning” 펴냈다. Memoir는 그렇다 치고 Warning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Warning이란 것, 쉽게 말해서 Trump의 ‘다가올 제2 쿠데타 음모’ [사실은 음모가 아니고 공공연한 호언장담] 에 관한 것, 진정 미국의 ‘전통자유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철학, 도덕률의 절대잣대가 사라진 이때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지하며 살 것인가? 

일요일 이른 아침을 (old fashioned) TV 와 함께 한다는 것, 전혀 추억조차 까마득한 것, 그야말로 surreal한 경험이다. 실감이 안 가는 것이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최적의 위치를 찾은 HDTV antenna 덕분이다. 이 작은 gadget으로 제일 보기 편한 local channel 들의 signal들, 특히 비록 HD format은 아니어도 KBS AMERICA가  ‘간신히 나마’, 30마일의 Atlanta Metro 를 횡단하며 Marietta에 비추이는 것, ‘공짜 programming’ 이라는 사실과 함께, 요새 나에게는 드문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다. 세 군데 major channel은 역시 아직도 ‘목사님’들이 설교로 침을 튀긴다. 예전에는 ‘성경유일주의’로 조금은 배울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Donald ‘개XX’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며 오늘은 100% 완전 외면을 한다.  100% analog에서 99% digital로 변하던 그 동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AI preacher의 등장까지 꿈속에 등장하니, 유일한 등대는 이곳이 아니고 저쪽이 아닐까?

아~ 골치 아프다~ 왜 올해는 이것까지 말썽을 부리는가? 근래 우리의 holiday lighting 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가? Strand중의 한 부분이 이빨 빠진 듯 감감소식..  이것을 내가 고쳐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가끔 bulb하나가 ‘죽으면’, 교체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모두 led여서 거의 불가능하니.. 문제는 어떤 led가 죽었는가 찾는 것인데, 아직까지 고전 중… 이것은 가만히 보니 고치는 것보다는 아예 새것을 사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듯, 역쉬~ 짱개의 얄팍한 발상인가?

오늘은 예전의 ‘보편적’ 주일, 일요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비록 대림1주 첫째 날 미사는 못 보았어도 큰 후회는 없다. 감기기운이 있는 연숙이 모처럼 아침잠을 깊이 잘 수 있었고, 나도 솔직히 오늘은 ‘순교자 성당’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갑자기[이상한 예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onster로 돌변한 추한 모습의 어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 얼굴을 다시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한때는 대신 Holy Family 동네 성당에 가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뜻밖의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 스트레스도 잠재울 수 있는 ‘하루’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연숙이의 homemade 해물잡탕까지 해 먹을 수 있었으니~

저녁때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놀랄 뜻밖의 카톡 메시지~ 분명히 캐나다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이 보낸 것인데~~ 보니 딸이 쓴 것인 듯, 교성이가 11월 24일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그곳에서 또 COVID까지 걸렸다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그것이 전부~~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기도하겠다는 답을 보내긴 했지만… 아~ 요새, 아니 요즈음, 아니 가을부터 이것이 웬일들인가? 줄줄이 세상을 떠나고, 급기야는 교성이의 입원소식까지~~ 내가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도라도 열심히 할 것이지만 조금 어두운 예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우리는 인생의 황혼을 더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을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Last of May, Billy Graham 1973

오늘, 아니 요새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요한 ‘성인의 오늘 말씀’, 바로  Padre Pio 성인의 말씀이 아닐지…

“Pray, hope, and don’t worry. Worry is useless. God is merciful and will hear your prayers.”  – St. Padre Pio

내가 제일 갈망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바로 hope일 것이다. 이것의 결여, 사라진 듯한 우려, 그것이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내일, 모레 이후에 대한 희망… 왜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 아니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우려’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대를 살 무렵 나는 바로 이 희망에 의지하며 의미 있게, 힘차게, 기쁘게 살지 않았던가? 왜 바로 그것이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절망을 하는 것일까?

아~ 어찌 이렇게 자주 잊는단 말인가? 1973년 6월 1일, 아니면 6월초..  정든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을 난생 처음으로 떠나던 날… 1973년 6월 초, 어떻게 이 날짜를 잊고 살았을까? 괴로운 추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Landing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부터 나를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이끌 던 날, 그날이 ‘중앙학교 개교기념일’과 맞물려서 나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는데.. 결국 이날을 맞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무리 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너무나 감상적, 관념적,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말 이제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 시기, 즈음을 기억하고 넘어갈 것인가? 1973년, 1973년 6월 김포공항… 분에 넘치게 많이 환송을 해 주었던 가족, 친지들 어떻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며 추억을 해야 마땅할 것인지 정말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어머니, 어머니, 엄마, 누나, 누나~~ 만 외칠 것인지…

1973년 6월 1일 금요일 전후의 고국 신문을 훑어본다. 나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시작한 머나먼 추억여행인가… 우선 Billy Graham 여의도 집회에 대한 것, 그것은 5월 31일 목요일에 시작이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떠난 후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을 한 것이니.. 얼마나 많은 기억의 착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요일에 의한 추적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난감하기만 하구나… 출국하던 날 아침에 연세대를 찾았는데 혹시 그날이 6월 2일 토요일일 가능성은 없을까? 토요일에 학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의 확실히 가능성도…

출국하던 날 연세대 campus에서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은 6월 2일 토요일 오후에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00%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대회가 한창이던 때에 고국을 떠난 셈인데… 왜 그렇게 그 대집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나는 그 당시에 무신론을 넘어서 아주 종교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나의 종교세계관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역시 1973년 6월 초 전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유심히 읽기도 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의 삶과 주변 모습들을 그려보고 상상도 하며 time machine을 탄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사진들도 보며,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거의 한숨을 쉬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론은: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고향? 이곳의 제2의 고향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삶인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지금이 아닌 옛날의 것들이고, 지금의 집과 삶은 아무리 해도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는 곳이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느냐 말이다~~ 성모님, 모두들 어디에 갔습니까?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어제 중앙고 졸업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이상한 사실을 보았다. ‘윤석원’의 사진이 다른 반에 실려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우리 반 3학년 8반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살펴보니 역시 윤석원은 8반의 그룹사진에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라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 이 친구,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6학년 1반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동창과 나는 개인적으로 얽힌 추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굴만 익숙한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 궁금한 동창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는데, 역시 궁금하다, 이 친구는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을지~~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 한 일도 많았지만 아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이 왜 없으랴? 아~ 성모님의 달, 5월 성모성월~~ 이것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거의 소홀하게, 아니 거의 실패작으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지내려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간 것이다. 특히 성모의 밤에 못 간 것, 아니 안 간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어쩌면 날씨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나를 행복하게, 기쁘게까지 하는 그런 자연환경조건의 나날이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여름’은 아직도 3주 이상 남았지만 여름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다시 봄이나 가을이 된 착각에 빠지는 지난 나날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방을 옮기는 작업을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우리 집이 손을 잘 못보고 방치하며 살아서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고 빗물이 들어오고… 이런 종류의 꿈의 역사는 꽤 깊고도 긴 것이다. 어젯밤의 광경들은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아예 그 ‘공포’에 잠에서 깨어나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세!’를 부르는 혜택을 만끽하기도 했으니.. 왜 집이 처참하게 주저앉는 광경, 그 공포가 나에게 왔을까? 우리 집에 그런 일들이 생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영화에서나 본 광경들이 왜 나에게…  집을 제대로 관리, 청소, 유지, 재투자를 잊고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이런 꿈과 무슨 연관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나의 office/study는 완전하게 ‘이사’를 했지만 그 이사 짐들, 특히 책과 서류의 진정한 처리는 아직도 나의 등 뒤에서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럴까? 하기야 제일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되었고 garage로 물러나거나 쫓겨나가는 일을 단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분류’는 아직도 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한 책과 서류를 나의 옆에 항상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남은 인생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완전한 digitizing, clouding은 실용적이 아닌 것일까? 조금 더 아니 많이 많이 간소화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억이 얽힌 많은 stuff들, 얼마큼이나 나의 주변에 놓아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80대, 90대를 사시는 ‘선배님들’의 경험론적 고견은 없는 것일까?

방을 바꾸는 작업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tool time을 되찾아야겠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dining room의 dish cabinet의 배치를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 의외로 그것들은 laminate floor에서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거의 반년 이상 중지된 작업, kitchen under sink repair 작업인데 이것이 은근히 ‘목공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자신이 별로 없어서 방치된 상태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The First of May, 우리들의 약속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우리들의 First of May 어떻게 이렇게 한 해가 빠르게 흘러갔단 말인가? 해마다 이날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구나.  50년대의 오월은 원서동 개천가에서, 70년대의 오월은 담배연기 자욱한 퇴계로의 어떤 지하다방과 높고 맑은 도봉산, 치악산, 지리산 능선과 골짜기에서..

이 원서동 삼총사들과 헤어진 것도 거의 60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구나… 1977년 미국에서 서로 만나자고 했던 전설적 약속, 1988년, 1999년, 2000, 2011, 2022, 2033… 등으로 햇수의 숫자를 굴리며 만나자고 하며 살았던 것이 60 여 년… 아마도 이 두 명 ‘총사’들, 현재 모두 미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텐데… 무정하기 그지없는 ‘창희’,  연기처럼 사라진 ‘용현’이..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 친구들을 무심, 무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은데.. 이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고, 이승에서의 의미 있는 재회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니, 제일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다음 세상, 저승? 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는가?

싸늘한 아침으로 5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아래층은 아직도 central heating이 나올 정도니, 이런 이유로 겨울 옷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핑계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시간문제겠지.. 하루 아침에 ‘깊은 봄’ 날씨가 자리를 잡을 테니까..  아마도 1~2주 안에 겨울 내내 잠자고 있는 a/c 를 test-run을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부디 a/c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습관적’으로 빌어본다.
Ozzie도 신나게 뛰어내려와서 볼일을 끝난 후 ‘자진해서’ 들어오고, Izzie는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맛있는 pate wet food를  기다리는 모습들, 아~ 정말 사랑스럽구나. 얘들과의 시간들, 나에게는 은총이고 기쁨이 아닐까? 같이 있는 동안 사랑으로 이들을 돌보아 주고 싶은데… 특히 Izzie가 현재까지 wet food에 잘 적응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반갑다. 아마도 그것의 높은 영양분들이 그 동안 잘 못 먹었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희망을 한다.

5월 1일, First of May, Mother’s Month, 성모 성월… 싱그러운 5월의 꽃들의 향연… 이제야 그런 멋진 모습들이 마음과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나간 수 개월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어떻게 이 ‘지나간 수 개월’의 정리가 끝날 것인가? 또한 나의 office 를 옆 방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나의 녹슬어가는 듯한 몸에 활력을 주어야 하지 않을지…

어제 K 세례자 요한 형제님 병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번 화요일로 예정된 ‘정기 봉성체’ 가 취소가 된 것. 일단 이런 소식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병세가 복잡, 악화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가족간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caregiver들이 겪는 극심한 어려움으로 보아서 그 집 베로니카 자매님이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그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고 그저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 아무런 큰 문제 없이 지내는 우리의 현재 시간들이 미안해질 뿐이다.

겨울을 지내고 처음으로 driveway hedge trimming 을 했는데, 이제까지 했던 것 중에서 오늘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왜 그랬을까.. driveway 외에도 집 앞에 있는 bush도 손을 보았는데 그곳의 job은 driveway에 비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

Ozzie가 온지도 일주일이 지나며 이제 Izzie와 Ozzie사이는 큰 문제가 없이 보인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으니까… 전에는 먼 곳에서 노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응시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오후에는 새로니와 유나가 잠깐 놀러 왔다. Richard가 친구 결혼식 참석차 out of town (Las Vegas)를 해서 유나와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려고 온 것이다. 전처럼 유나를 우리 집에 놓고 가는 것에서 함께 왔다가 가는 것을 유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녀석이 처음 오면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까맣게 먼 옛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녀석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엄마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렇게 요즈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찾아보는 노력을 할 기회가 생긴다.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던 것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The Epiphany of the Lord, 2023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 The Epiphany of the Lord.. 동방박사~ 아~ 이제는 성탄의 기분, 느낌도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동방박사라고… 오늘을 기해서 성탄장식을 내려 놓자고 했지만 사실 나의 머리 속에 이것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듯하니.. 어떻게 이런 ‘해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타락’을 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의 기우, 지나친 걱정이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싫은 느낌 뿐인 주일을 맞는 심정이다…

오늘 보는 성당 제대 밑의 성탄구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고 찬란하다. 특히 옆에 앉아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오늘의 ‘주님공현 대축일’ 미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런 성탄의 모습들도 오늘까지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11월 말 대림절 시작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톨릭 전례 절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년이 흐르고, 인생도 나이도 같이 흐르고…

오늘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 동방박사가 ‘동쪽’에서 온 사실에 주목하며 묵상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동쪽’, ‘동방’을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오늘부터 도라빌 순교자 본당에서는 거의 3년 간 사라졌던 ‘구역 점심 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격주로 시작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든 친교실 table에 편하게 앉아서 ‘콩나물 국밥,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니.. 역시 신부님이라서 그런가, 세대 차이가 크게 있어도 역시 신부는 역시 신부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Doraville] H-mart에 잠깐 드렸다. 예의 grocery shopping을 한 후 오늘은 특별히 그곳에 있는 ‘빵집’ [이름이 무엇이더라… French인데… 아하! Tous Les Jours! 이것이 무슨 뜻인가?] 에 들러서 크림빵을 사왔다. 그 동안 ‘bakery 하얀풍차’에 갈 기회가 없어져서 [유럽, 한국식] 빵이 조금 그리운 것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food court, 예전 특히 Pandemic이전에는 이곳에서 자주 음식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특히 교우 자매가 운영하는 대장금, 그리고 중식점, 그 옆의 ‘한국식 hotdog, 명랑핫도그’ 등이 일요일 손님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나긴 Pandemic 3년간의 공백을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오늘 이곳에서 ‘가끔 또순이’ 연숙이 stick coffee를 부지런히 찾는다. 알고 보니 물론 ‘세일’ 품목, 그것도 원래 가격이 거의 $25이나 되는 것을 $10 sale로 사게 된 Maxim White Gold란 것, 집에 와서 같이 산 크림빵과 함께 마셔보니 비싼 만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 stick coffee는 맛보다는 편리함에 그 point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이 편리함에 ‘중독’이 될 수가 있는 것,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예정대로 오늘 오후에 집에 있던 각종 성탄 장식들을 retire했다. 올해의 성탄은 예외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게’ 보낸 듯해서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올해의 성탄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성탄장식을 예전처럼 아주 가능하면 늦게 하고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번 성탄은 솔직히 원래 의도와는 거의 반대로 아주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보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에 나라니 식구의 이름으로 ‘연하장’이 배달되었다. 전에 언급을 했던가.. Pro service로 가족 card를 만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 것이다.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둘째 아기를 임신을 하고 직장의 각종 산더미 같은 일들로 피곤해 보이는 나라니와 사랑하는 가족, Luke, Ronan 그리고 멋진 개 犬公 Senator 의 모습을 보니, 사진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흑백 사진들, 당시 추억의 노래와 함께 동영상화 하고 나니..  아~ 그립다, 그립다, 그때가 그립다… 연세대 시절 1969년의 얼굴들… 아마도 1969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이 ‘괴상한 그룹’이 어떻게 비원 안쪽으로 놀러 갔을까, 아물거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의 얼굴들은 어제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선명하다. 중앙고 선배 형들: 안낙영, 오성준, 최종인 형들로부터, 중앙고 동창과 친구들: 양건주, 박창희, 김진환(일찍이 고인)… 살아 생전에 볼 수 있거나 소식을 알 수 있을는지…

 

CANCEL & CANCELED, Family Gathering Together

결국 올 성탄, 연말 가족모임은 100% cancel되었다. 나라니가 아무래도 아직도 몸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재료만 준비하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서 두 집에 배달하고 선물도 교환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올해도 이렇게… 올해는 사실 나의 작은 감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니네 먼 곳으로 이사 안 가는 것과 나라니의 둘째 아기 가진 것 등으로 축배를 들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러 그곳으로 가니까… 아~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탄모임요리’를 만들어서 선물상자들을 들고 ‘거의 작년처럼’ 두 딸의 집에 가서 전해주고 들어왔다. 나는 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I-285 drive를 하는 것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런 것들은 진짜 가족모임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신명 나는, 즐거운, 보람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올해는 이상한 해로 끝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전혀 happy하지 않은 모습의 나라니 인상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조적으로 기운이 넘치게 보이는 새로니의 모습이 이런 기분을 조금 보상해 주긴 했다. 내일 새로니가 유나를 맡기러 올 것이어서 아예 오늘 간 김에 Ozzie를 미리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있어야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정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는 않았다.

 

몸도 근질거리고, 어제 이형 네 그룹과 만나서 느낀 것도 있기에 오늘은 혼자서라도 YMCA gym엘 갈까 했지만,  별로 good idea가 아니라고 ‘강제성 권고’를 하는 연숙, 속으로 ‘네~ 네~’를 되뇌는 나,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싸우지 말고 살자.

어제 이형네 retail store에서 나와 다른 삶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기에 나도 조금 자극을 받은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렇게들 사느냐 하는 놀람과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안전한 철부지 삶’을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한 곳에 앉아서 각종 영성, 철학, 과학 책들을 읽고 사는 나의 현재의 삶,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안 됨을 사람들을 만나서 깨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현재 삶의 성격에 이렇게 자랑하지도 못하는 듯한,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삶, 나와 너무나 다르고 듣고 보기에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사는 듯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가급적 세상적,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듯 보인다. 즐거움 이외의 다른 세계를 모르고 사는 듯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조금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더 ‘삶이 있는 현장 드라마’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제 이형 가게에 간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어떤 ‘찬물’을 뒤집어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고, 우울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외출이었기에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갖고 싶기도 하다.

 

과달루페, 과달루페~~ 이제 새해가 이틀 앞으로 … 머리 속은 역시 1월 말 예정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가득 차 있다. 성지에 대한 것 보다는 ‘여행 그 자체’, 집을 떠나는, 그것도 ‘멕시코’로 가는 것에 더 나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리라 기대, 희망을 한다. 그러면 이번 성지순례는 100%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로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가 24시간 (24일 동안)이 지난 뒤에 있는 ‘부록’으로 넘어갔다.  ‘수난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이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넓혀 보고 있다. 우선 그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조사, Amazon에서 보는 ‘서평’ 등으로 조금씩 ‘느낌’을 조절한다. 제일 관심사가  ‘이단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기도서 책의 감수자 격인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였기 때문이다. 99% 의 Amazon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듯 싶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작은 거부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100% fiction으로 치부하기도.. 하기야 영적, 믿음에 관한 것이니 그것도 이해는 간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이 불후의 명곡, 1969년 truly classic oldie가 오늘 아침부터 내 가슴에 와 닿는  하루의 주제곡이 되었다. 대학 3~4학년에 걸쳐서 조잡한 big box stereo LP player 를 통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듣고 들었던 것, 당시 나에게 troubled water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고통은 별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의 세계관이 기껏해야 발전적 공해 속, 최루탄 냄새의 서울거리에 불과했지만 머리 속은 항상 Life, Time magazine으로 보이는 세계, 특히 미국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그곳으로부터 신기루 같은 희망으로,  20대에 갓 들어선 젊은 머리 속은 최소한 겉으로는 ‘언제나 행복하고 신나는’ 때였다. 그러니까…  보일 듯 말 듯한 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인데, 문제가 있다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 졸업 후의  막막하고 깜깜한 허공이라고 할까… 그것이 당시의 troubled water라면 요새는 어떤가. 졸업은 몇 번이나 반복하며 했고, 심지어 지금은 인생의 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troubled water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과정, 고통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Bridge와 Friend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인가?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 마지막 시간 24시,  십자가에서 숨진 후 묻히신 아들 예수를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비탄…  이것과  현재 진행중인  나의 고통스런 생각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는 지난 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착각 속에 이즈음을 살아가는 것일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C형 그룹과 만난 이후 나는 다시 예의 상상적, 비관적 상념에 빠진 것인가?  이들과의 만남은 왜 가끔 나에게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추억하게끔 하는 것일까?

Cancel & Cancel… 오늘도 또 다른 cancel day가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오늘로 연기된 가족 성탄모임이 또 무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라니가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것이다.  음식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손을 놓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이런 ‘행사 취소’에 익숙해져서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다른 쪽으로는 ‘편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나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들은 가족 성탄 선물을 교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이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내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Three’s Company… 오늘 정오에 5년 역사의 ‘목요 그룹’ 3명이 간신히 해가 가기 전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이즈음에 한일관에서 모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그 전처럼 저녁의 쓸쓸한 시간의 한일관이 아니고 L형의 store에서 모인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낮에 이곳에서 모이면 전처럼 밤에 drive할 필요도 없고, 비싼 식당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역시 우리의 막내,  S형제가 수고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우리들 점심을 Chinese food 로 takeout 하고 게다가 선물이라고 Irish cream liqueur까지 우리에게 주었으니… 오늘 보니 점점 다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낀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이 친구와의 관계가 의외로 멋지게 끝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또한 현재 그의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니… 참 사람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McCORMICK IRISH CREAM LIQUEUR 의 맛이 의외로 포근하고 달콤하게 좋다.  작년에는 Canadian Mist 위스키를 준 것으로 즐거운 성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늘 의외로 또 이런 달콤한 ‘약한 술’을 우리에게 준 S형제, 솔직히,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속이 따뜻한 사람인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를 인정을 못하고 살았던 것 때문이다.

 

Cancel Days Aftermath, Can’t Die in a Cornfield!

어제 저녁부터 점점 심해진 ‘잔잔한 우울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침은 고육책으로 잠자리에서 정오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로써는 가끔 있는 희한하게 보이는 괴벽이지만 하느님이 보시면 측은하게 보실 것이다. 다행히 연숙이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한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와중에서 외출, 특히 오늘 예정된 S 베드로 형제집에 놀러가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또 하나의 cancel 희생물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혹시 우리가 무리를 하면 못 갈 것도 없을 듯한데~ 하는 각종 후회의 느낌을 쫓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다. 아~~ 미안해~~~ 잘못했어~~~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편으로 그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될 것인가? 특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지만 이제 물 건너 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어두운 밤’ 속에 나는 각종 추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어둠 속의 추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름답고 감미롭게 남아있던 그 추억들 조차도 모두 어둡고 잊고 싶은 추억으로 변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슬펐다. 지나간 과거지사, 추억들은 나의 보물, 자랑거리이기도 했지 않은가? 그곳으로 도망, 피난을 가면 나는 편하고 행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조차 이렇게 변하고 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슬픈 것이다.

특히 1973년부터 1977년 간의 추억은 극과 극,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오가는 시절로 다시 재조명이 되는 것이 제일 끔찍하게 놀랍다. 그렇게 ‘멋지고 행복했던’ 추억의 뒤쪽에는 이제까지 잊고 살던 악마의 모습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개인역사가 세월의 뒤안길에서 퇴색하고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사후에 ‘꼭 거쳐야 한다는’  life review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악몽의 24시간 뒤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밝은 하늘, 웃는 성모님의 위로의 미소, 든든한 하느님의 보호, 은총, 자비 등등이겠지만 현재로써는 전혀 실감이 가지를 않으니~~ 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 현존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나의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이제 조금씩 우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일 저녁의 진희네 그룹의 식사모임부터 약속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성사생활, 특히 매일미사, YMCA등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요일의 가족모임과 S형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새로니 식구 돕는 것으로 2022년을 안전하게 마감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뉴스들을 보니 이번의Northeast  snow storm은 거의 50/100년만이라고 나온다. 일기예보가 조금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일기가 돌변한 것인가… 지역을 보니 대부분 이런 엄청난 일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그것보다 훨씬 심한 모양~~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2014년 우리가 이곳에서 겪었던 ‘일기, 교통 대란’ 일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좌우지간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의 얌전한 날씨에 계속 감사한다.

지난 밤 (거의 정오까지 계속된) ‘어두운 밤’을 지내며 특별히 집중적으로 추억을 한 것이 1973년 이즈음 때였다. 당시의 유학생, 간호사들, 이제 자세한 것들이 퇴색된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생생하던 것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탓이기도 하고 나의 뇌세포의 노화가 이유일 것이다. 나의 고백 자전적 수기 ‘Peru, Nebraska’를 제때에 완성을 시켰으면 지금 편안하게 이용을 할 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사람의 이름, 얼굴들은 생각이 나는데 timing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수기를 보충하는 노력을 해 볼까… 야심 찬 생각인가?

You Can’t Die in a Cornfield!  Handel’s Messiah가 거의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1980년 Holiday film, A Christmas without Snow를  또 다시 보며 다시 듣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의 가슴을 울리는가? 그렇다, 그렇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갖가지 어려움과 사연을 안고 크리스마스 메시아 공연 직전 지휘자이자 그룹리더 (John Houseman 분) 가 중풍으로 쓰러지며 공연이 무산되는 순간 나온 이 외침,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Nebraska 주의 독특한 지역성 표현 덕분에 순간적으로 해결책이 발견되었던 것, 그렇다 여기서 중지할 수는 없다, 나아가야 한다.

 

Collage 1968~1970, Penance, Harmony Beckoning…

1968/70 년경의 사진들의 collage, 오늘도 추억의 영상을 담고 싶어서 photo collage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목표는 YouTube video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utility를 찾는 것이었다.  전에 손쉽게 쓰던 Microsoft Photo Story 3 이외에 오늘은 2012년 마지막으로 나온 그 전통적 classic video editor였던 Microsoft Movie Maker 2012를 찾아서 install을 해 놓았다. 나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곳으로 모여 남을 수 있으면… 이것은 핵전쟁이 나지 않는 한, 어느 곳에건 남아 있을 것이다.
연호회 혼성그룹친구들이 함께 모였던 관악산, 연세대 과 친구들이 모인 덕수궁, 원서동 삼총사가 함께 등산을 했던 지리산, 남녀 4명이 함께 갔던 소백산 연화봉…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도 이런 ‘흑백 추억의 극치’는 지금은 맛보기 힘들 것 같구나…

온통 나의 머리 속은 모레로 다가온 수요일 오후의 판공성사로 불편하다. 마지막 판공성사를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이 갈수록 이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은 것, 나 자신도 느낌이 좋지 않다. 항상 뒤끝이 묵직~ 한 것이다. 2014년 전후로 내가 이것에 엄청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아직도 교훈적인 기억으로 남기에 나는 이번에 다시 그러한 시도를 하고 싶은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사탄이 나를 방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 시간이 났을 때 성사 준비작업에 들어갔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성사를 보았는지조차 확실치 않으니… 하지만 각종 기록을 거의 다 찾아서, 작년 3월 부활판공을 이영석 요한 신부님께 했던 것이 확인 되었다. 기록을 보니 거의 매년 나는 판공성사를 보았지만 2020년은 Pandemic으로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일은, 작년 고해 이후 내가 어떤 잘못,  소죄를 지었는지 찾아내서 정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기와 일지에서 유추할 수 있고,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서 고해실에서 고해 신부님과 마주하면~~  2022년은 무사히, 개운하게 넘어가는가? 왜 고해성사를 하는가? 이재욱 신부님 말씀대로 ‘묵은 때를 벗기는’ 것, 그 동안 몸에 때가 많이 낀 것을 목욕하는 기분으로 벗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다행히 대죄에 해당하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지독한 때’는 없으니까…

남성 화음의 유혹:  얼마 전인가, 주일 아침미사에 다시 ‘생음악’ 남성 중창단이 등장을 해서 이제야 Pandemic이 지나간 느낌을 보여주며, 덕분에 아주 살아있는 신선한 미사가 되었다. C 베로니카 자매에게 들어보니 그 지난 주에는 4명 남성 이었다는데 2명이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두 명의 형제님을 보니, 둘 다 낯설지 않았는데 한 명은 독서 전례도 하고 하얀풍차 bakery에서도 자주 보았던 부부의 남편이고 다른 분은 조금은 나이가 있는 분이었다. 둘 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화음도 적당해서 듣기가 좋았다.그런데 주보에 성가대원을 모집한다고 난 것을 보았는데, 갑자기 연숙이 나보고 해보라고 뜬금없이 운을 뗀다. 이런 것 잊고 산지가 까마득한 세월[40+년]이었는데, 솔직히 놀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라는 나의 생각이었는데… 급기야는 연숙이 그들에게 나의 얘기를 한 모양으로 나보고 아침 7시 45분 성가대실로 오라는 것이니…  우선 거절을 해야 하는데.. 미사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다시 교우들과 마주보며 노래를 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얘기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를 않았으니.. 오묘한 것 아닌가?

오늘 YouTube에서 한국 수원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연말 프로그램으로 그 지역(대교구) 신부들로 구성된 ’30년 전통 갓등 OB’ 중창/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우연일지, 아니면 무엇인가? 갑자기 우리 성당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연숙이 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성당 봉사에 이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으니… 그렇다,  급속도로 공동체 내에서 노년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줄이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여기에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오늘도 책, Those Who Saw HerGuadalupe story를 (쓰며) 읽는다. 이 story는 물론 거의 전체를 이미 읽어서 아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읽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다가올 1월 말 Mexico 성지 순례에 서서히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다. 천천히 가급적 가벼운 묵상을 곁들이며 계속 계속 이런 과정을 밟고 싶다. 우연히 나의 등 뒤에 ‘숨어 계셨던’ 이 Guadalupe Juan Diego tilma상본, 그것을 아예 나의 desk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십자고상과 함께 나를 그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소서~~

<‘시편으로 바치는 기도’  가장 완전한 기도> 토마스 머튼/오수무 옮김, 100 쪽도 되지 않는 성바오로 수도회 수도자들이 홍보수단으로 제작한 소책자, 발 밑에 있는 책 더미 속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그런데 이것을 토마스 머턴으로 음역을 했는데, 사실 이것은 머튼이 더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닌지.. 머턴도 보았고, 머톤도 보았는데 머튼이 제일 익숙한 표현일 듯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제목의 주장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시편이 가장 완전한 기도… 그것도 그 유명한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의견이고 주장인 것이다. 2006년 성탄 무렵 순교자 성당에서 최성영 보좌신부님 지도로 시편 전체를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나의 수준으로 ‘시편’이란 말 조차 고귀하고 별처럼 멀게 느껴지는 때였는데, 이제는 수많은 연도 등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완전한 기도라는 것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성탄 무렵에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 읽기 시작하니 거의 모든 머튼의 ‘주장’이 손쉽게 머리에 들어온다. 올 성탄의 선물이라면 어떨까?

지난 2주 이상 나는[할머니 고양이]  Izzie와 ‘냉전’ 중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라고 계속 나를 세뇌시키며 견디고 있다. 2주 이전에 이 녀석에게 피가 조금 나올 정도로 손을 물린 이후에 크게 결심을 한 것, 일단 이 녀석과 거리를 두며 살아야겠다, 나를 조금은 무서워하게 해야겠다, 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곧바로 [숙적 개] Ozzie가 집에 와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며 살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Ozzie가 떠나면서부터다. 이제는 우리 둘만의 시간 뿐인데… 하지만 현재까지 나는 굳을 결심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의 근처에 못 오게 하는’  강 훈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가슴 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일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이런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참, 동물친구들과 살기 쉽지 않구나…

기타, 통기타~  guitar, my guitar~~  몇 년, 특히 Pandemic을 포함한 거의 4~5년의 세월 동안 거의 이것을 잊고 살았다. 2016년 성당에서 6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 모임을 하며 몇 개월 본격적으로 가까이 했던 것과 2018년경 구역모임에서 몇 번 가까이 했던 것이 그야말로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손끝에는 굳은 살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진 터 [흔적만 겨우].. 다행히 흔한 chord 를 잡는 것은 그대로인데 각종 노래들의 chord progression은 많이도 잊어버렸다. 나이 탓, 세월 탓일 거다.  그래도 아직 손가락의 힘은 크게 빠지지 않은 것에 진실로 감사를 한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Fourth Candle, Early Seventies, Deep Freeze

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Pat Boone’s WHITE CHRISTMAS 1964

올해는 유별나게 holiday music, 특히 carol류를 일찍부터 자주 듣게 되었는데 우연히 머리 속의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도움으로, 오늘은 1964년 성탄절 [이브]를 회상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이 모습, 그 당시 ‘잘나가던’  Pat Boone 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그의 Christmas album ‘White Christmas’ LP jacket… 그 시절 집에서 보고 듣던 바로 ‘판’이었다. 그 당시에 가지고 듣던 각종 LP record들은 물론 ‘해적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해적판이라도 없었으면  가끔 radio에나 매달려야 하는, 아마도 정말 심심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LP는 성탄시즌이 되어야 꺼내어 듣곤 했지만, 이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모습과 음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유행인가,  고등학생의 감성적 나이인가, 아직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현듯 떠오른 Pat Boone의 감미로운 White Christmas 와 그의 젊디 젊고 깨끗한 모습의 도움으로 이 특별한 LP를 찾아보니… 역시,  특별히 할일 없는 우리 세대들이 이미 이 album의 전체를 YouTube에 album jacket과 함께 upload를 해두어서 오늘 거의 60년 만에 다시 보고 듣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분명히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온다. 특히 track의 첫 곡이었던  White Christmas와 comic한  Jingle Bells, 교회 합창을 연상케 하는 O Holy Night 등등, 거의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다.

1964년 성탄이브 때 크리스천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1으로 통금이 해제가 된 덕분에 친구 몇 명 (아마도 안명성, 김동만이 포함된)과 이 carol을 마음껏 즐기며 남영동 금성극장 앞에 있던 집 근처를 배회했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날 밤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명동거리가 사람들로 혼잡했었다2. 그런 현상은 아마도 그 당시에 아주 드문 것이었다. 통행금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은 그 당시 일본 도쿄도 같은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통행금지가 없었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국의 종교와는 다른 서구의 유행, 그저 유행가 처럼 그날 성탄이브를 지냈을 것이다.

대림 2주가 벌써 금요일로? BiocentrismIdealism [심지어 Emmanuel Kant까지] 은 분명히 ‘시간[과 공간]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난 달부터 이번 달로의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상상, 허구라고 할 수가 있는가? 12월도 1/3이 지나가려고 한다. 조금 조바심도 나고 초조함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의 상상에 불과하니, 경우야 조금은 얼굴을 펴고 살자, 건주의 말대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Guadalupe St. Juan Diego,  아침미사엘 가서야 오늘이 과달루페 성모님 visionary  성 Juan Diego의 축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관심이 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년 1월 말이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단체 과달루페 순례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으로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한다.

Distancing from Swedenborg! 결정을 했다.  역사적인 과학자, 저자, 신비가 로써의 Emanuel Swedenborg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떨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이것도 나의 가톨릭 신앙적인 면에서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진전이 되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힘들기에 오늘로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모든 online link들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이 단절 과정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마지막 관건은 역시 ‘성모님’에 관한 것임은 크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나의 ‘선지자’ 가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그를 제외한 다른 ‘철학/과학’적인 석학들의 책들에 전념을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은 모처럼 ‘동네방네’ style의 ‘밥과 반찬’의 한식으로 먹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산뜻한지 점심 메뉴에 신경을 쓴 연숙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식류’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리가 근래에 얼마나 전통한식에서 멀어진 식생활을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두부찌개와 총각김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가을 장마의 모습으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나의 신경은 온통 Ozzie의 산책 가능성으로 쏠렸지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든  시간들이 있어서 backyard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네 전체를 산책 할  정도로 비는 멈추지를 않았다.

 

  1. 그 당시 왜 성탄절에 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는지 궁금하다.
  2. 당시 명동은 지금의 이태원이었나, 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Friends & Neighbors, Warnock Crushed Idiots!

오늘 mailbox를 열어보니 뜻밖의 것이 놓여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었을 듯한 앙증스러운 cookies 봉다리였다. 사연이 적힌 종이를 보니.. 뜻밖에도 앞집의 Josh 가족의 이름이었다. 그저 감사한다고~~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의 잔디, 낙엽을 자기의 blower를 쓸 때, 우리 집도 함께 해 주었는데… 우리가 도운 것이 있다면 가끔 사다리를 빌려준 정도였는데…  옆집 Dave는 가끔 소음 요란한 lawn mower로 우리 집 것도 깎아 주기도 하니..  우리의 양쪽 이웃들, Dave & Josh  이런 식으로 가끔 이웃 정을 보여주니, 이것도 자그마한 운이나 복이 아닐지…

어제 연호친구들의 카톡 대화로 건주의 건강상태를 조금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생각했던 것 보다 stroke 후유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거의 말도, 움직이지도 못했던 것을 상상해보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어떻게 평소에 그렇게 건강하던 건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문제는 앞으로의 물리치료 과정인데, 이것을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으랴마는… 나의 주장대로 최선의 의학과 진정한 참된 기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건주야~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들 너를 믿고, 응원한다는 사실만 굳게 기억해주기 바란다…

어제 있었던 Georgia runoff, 결국은 Warnock의 승리로,  휴~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  시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2022 midterm election 마지막 DONALD SOB MF ‘개XX’ 의 ‘쫄개’가 떨어지고 사라지고 kicked-out되는 이 시점을 만끽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미친 ‘개XX’는 자기 방의 사방 벽을 마구 발길로 차대고,  동물의 괴성을 지르며 각종 ‘쌍’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직접 고르고, 길들이고 ‘어둠의 자식들 훈련’ 을 시켰던  ‘백인 흉내 내는 흑인’,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잘 모르지만 줄을 잘못 선 것을 후회하기를 빌어본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먼저 배워라!  결국 이번 midterm election에서 ‘개XX’가 endorse했던 놈들 ‘전부’가 낙선을 하게 되었으니~ 참, 정의는 승리한다 는 것이 명언인 모양이다.

 

Nearer Advent, Christ the King of the Universe

Our Lord Jesus Christ King of the Universe..  오늘 축일을 맞으며 다음 주부터 Advent, 대림절이 시작된다는 말에 솔직히 부끄럽게 놀랐다. 대림절… 아직도 몇 주는 남았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으니… 그래, 다음 주 일요일이 대림절 Advent시작, 그 전날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성탄 구유에 점등식이 저녁에 있지 않았던가?  Pandemic 중이었던 2020년 때 마지막으로 갔었던 기억, 그것이 참 인상적이고 좋았다.  당시 혼신의 힘으로 성당을 지키시던 이영석 요한 신부님의 idea였던가, 성당 주차장에 멋진 성탄 구유를 만들고 점등식을 시작했던 것이… 아마도 지칠 대로 지친 신자들의 사기를 힘 실어 주려던 노력이었을 것이다. 2년 밖에 되지 않은 이것도 기억에서 가물거린다.

오늘 그리스도 왕에 대한 강론을 들으며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 우리 성당의 자랑인 ‘초대형 십자고상’을 뚫어지게 정면 가까이서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현재의 ‘실재관’과 관련되어서, 새로운 각도로 본다. 한마디로 실재의 전부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관점… 과연 그럴까? 그것이 Swedenborg 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내린 결론임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은 또한 Teilhard  de Chardin의 사상, 신학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의 진화론적 그리스도 Omega Point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오늘은 예상대로 ‘프카’ 자매가 합석을 하지 않았던 하얀풍차 모임이 되었다.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일요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야 성당에 올 수 있다고 했던 프카 자매의 말이 생각이 나니… 이해는 간다. 그 자매의 ‘수다’가 빠져서 조금 심심할 거라고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C 베로니카도 화제가 적지 않은 사람이고, 대화를 하는 태도도 만족스러운 것이라서, 현재까지는, 그럴지도. 나도 마음 놓고 참여를 할 수 있으니 솔직히 일요일 이 모임이 우리의 고정된 스타일의 생활에 활력소를 주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지난 주 그 자매의 Swedenborg에 대한 추억담에서 비롯된 나의 새로운 탐구 여정을 중심으로 ‘더 가까워진 영계의 실상’에 대해서 열띤 대화를 나누게 된 것, 이것이 성당 주일강론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특히 그 자매의 ‘짧은 탈혼’ 경험담은 정말 흥미로운 것이었다. 나는 물론 많은 책이나 video를 통해서 NDE[Near Death Experience]-like episode를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참, 내가 나를 생각 보아도 신기하고 가상하기까지 하다. 간단히 말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이 나에게 이렇게 늦은 나이에 다가오고 깨닫게 된 것, 속된 말로 우연인가, 아니면…
오늘의 날씨 덕분인지 나의 보금자리에서 편하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비디오도 보고 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포근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게다가 ‘다음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지는 것이 아직도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까지 ‘발전’을 했을까?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다음 세상으로 가는 것, 그것을 이제 전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믿게 된 것,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 그래, C 베로니카 에게도 감사를… 

오늘로서 Robert Lanza의 Biocentrism trilogy의 1편 Biocentrism 을 다 읽게 되었다. 다음 편 Beyond Biocentrism으로 계속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과 더불어 새로 읽기 시작한 Why Materialism is Baloney 또한 얼마나 현대의 사상이 위험할 정도로 흔히 언급하는 science, 사실은 scientism 이라는 ‘신흥종교’에 현혹되었는지 실감이 간다. 내가 그렇게 신봉하고 있던 science/engineering/technology는 분명 우리들의 몸을  편하게 해 주었지만 그것의 위력은 자기 밖의 영역까지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이니.. 

뜻밖에 윤기로부터 반가운 카톡이 왔다. 윤기와 인송이 둘이서 건주네 집을 방문했다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 어찌 안 그렇겠는가? 이제 그 친구들이 가서 눈을 목격한 것이니까, 조금은 더 자세한 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5일씩이나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온다는 것으로, 건주의 stroke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위험한 정도까지? 하지만 현재는 많이 나아지고, 자발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반응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이것은 윤기나 인송이로부터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두 친구, 갑자기 고맙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래, 그래도 우리들의 우정은 식지 않았구나~~ 고맙다, 친구들아~~

 

All Souls’ Day, Chest CT-scan

오늘 아침 Holy Family 성당 위령미사엘 갔더니 예전에 보았던 광경이 보였다. 지나간 2년 동안, 그러니까 거의 Pandemic 중에 선종한 망자들의 사진이 뒤편에 촛불과 함께 진열되어 있고, 정면의 projector screen에 그 같은 모습들이 영상과 음악으로 나오고 있던 것, 이런 위령미사 아마도 2019년 이 때에 마지막으로 보았을 것이다. 명단과 사진을 보니 꽤 많은 망자의 모습들이었다. 환자기도 명단에 있었던 이름들도 보이고, 특히 Al Gallagher 부제님의 모습까지… 거의 20명 정도였을까? 그 중에는 분명히 coronavirus 에 의한 것도 있었으리라.

Pandemic 중에 장례행사들이 제한을 많이 받았고, 이런 위령의 날 미사도 없었기에 올해의 위령의 달은 의미가 더 돋보이는가? 그러니까 2020년부터 올해까지 우리를 떠난 영혼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저녁 가족 기도 때에는 부모님들을 위한 연도를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인 어른의 11월의 기일만 생각했지만 결국은 위령의 달을 맞아 우리 4명의 부모님들께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은 우리도 위안을 받는다. 이제는 영혼의 분명한 존재, 그 필연성을 알기에 더욱 연도에 힘이 실린다. 어머님, 아버님, 장인어른, 장모님~ 저희들 열심히 살다가 그곳에서는 못다한 효도를 할 것입니다, 기다려 주세요…

 

예정대로 Tucker의 Dr. S Heart Specialists 로 chest CT-scan을 하러 갔는데, 예상외로 거의 제시간에 모두 마치게 되었다. Scan 자체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사실은 nodule 크기의 변화(증가) 결과가 주 관심사라는 것, 우리 둘 모두 무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속으로 기도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영화, 드라마에서나, 주위에서나 듣던 심리적 경험을 시작하는 것인가?  솔직히, 은근히,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만약 나쁜 쪽이라면, 솔직히 어떻게 감당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제 나의, 우리의 신앙이 시험대에 오른 기분 뿐이다.

이런 우울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을 미리 막으려 우리는 미리 얘기한 대로 강남일식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비록 비싼 점심이었지만 심리적으로 이런 것들이 우리를 조금은 위안했으리라~~

 

1999년 8월 고국에서 양건주가 보내줌…  작지만 단단한 느낌의 소책자, ‘김재진 시집’, 몇 권 안 되는 시집모음에서 꺼내 들었다. 요즈음 나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문장의 제목,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된 동창 친구, 양건주가 수고를 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시의 세계를 모르고 거친 삶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때여서, 이 짧은 시 조차 읽으며 전혀 느낌이 덤덤할 뿐이었다. 내가 혼자인지, 아닌지 조차 생각 못하며 살던 시절… 그때 이후 완전히 바뀌던 세상과 삶 속에서 결국 ‘시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은 나의 사랑하는 시집이 된 것. 최근부터 서서히 잠식해오는 ‘ 초 고령성’ 고독의 의미를 이 시로 재조명하고자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구나… 시처럼 아름답던 친구, 건주야~ 현재는 몸이 불편하지만 희망의 햇볕은 항상 우리를 쬐고 있음을 잊지 말자.

 

Farewell my deskmate! Family pre-Halloween Cheer up

원병태,  몇 년 전에 타계? 중앙고 3학년 때 나의 짝꿍, 단짝이었던 원병태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동훈으로부터 오늘에야 들었다. 소식이 없이 조용한 듯한 동창들, 사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오늘 원병태 소식을 들으며 깨닫는다.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조용한 거지. 살아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어디선가 표적, 표식이 난다는 것을 왜 일부러 부정을 하며 살았는지. 특히 우리의 나이에서는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원병태, 원병태, 중앙고 졸업 이후 1970년 대 초에  다시 만나서 그가 다녔던 고려대에서 테니스를 같이 치던 추억이 서로의 마지막이었지.. 곧 미국엘 가서 친척 집의 주유소 일을 돕게 될 것이라 했지.. 그러고 나서 소식이 끊겼다. 영어 회화 실력이 별로 없어서 일을 하는데 힘들 거라 걱정스런 말을 하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 한데… 네가 나보다 먼저 갔구나. 중앙고 3학년 큰 키에  맞지 않게 나와 짝꿍이었는데, 키 큰 애들을 조금 무서워하던 나도 그 녀석은 그렇게 편하고 친했는데…  대학 입학시험 이후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던 자상한 녀석… 고대 화학과에 ‘꽁지’로 합격했다고 자랑을 했던가~ 병태야, 고맙고,  편하게 쉬거라, 우리들도 곧 따라갈 터이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얼마 전부터 나라니가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새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둘이 벌어야 그런대로 사람처럼 사는 세상이 된 것인가? 2살을 지난 개구장이 남자아이와 씨름을 하는 것에 지친 것인지도. 그래서 새로니, 나라니 식구들 전부를 오늘 불러서 온 가족 pre Halloween Dinner 모임을 가졌다. 전에 이렇게 Halloween 을 계기로 가족이 모인 기억이 없어서 조금 새롭고 신선한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Halloween costume 입혀서 오라고 했는데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 모두 그냥 왔기에 식사 후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거창하게 장식을 한 집을 모두 방문하기도 했다.

거창한 비바람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올해의 가을낙엽들은 순전히 자기들의 의지로 하나 둘 씩 내려오고 있고 이제는 풀잎들을 거의 모두 덮을 정도가 되었다. 더 있으면 발이 빠질 정도의 두께로 덮일 것이 분명하다. 거의 정확한 때에 이렇게 반복되는 ‘하강식’,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생애의 마지막 장을 보는 듯하다. 내년에도 반복될 것은 분명한데 세월이 갈 수록 내년의 모습이 점점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인간 원죄의 결과’일지…

거의 초음속으로 나르는 비행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조용히 심지어 부끄럽게 경악 한다.  최근에 새로 알게 된 깨달음 중에 시간의 흐름에 관한 것도 있다. 흔히 시간은 지루할 때 보통 때보다 느리게 흐른다는데 공감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때 그 순간들은 지루한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런 현상이 나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묵상, 명상, 기도, 실내 track에서 걷기 등을 할 때다. 전에는 이런 시간이 정말 지루하기만 했다. 시계를 보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일까 할 정도인 것은 그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최근에 180도로 변한 것이다. 나도 놀랄 정도로. 한마디로 말하면 묵상, 명상, 걷기 등의 시간이 지루한 것으로부터 즐겁고 깊이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그것이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Spitzer’s Satan, Canadian Thanksgiving

드디어 나의 서재에서 쓰던 fan heater를 아래층 bathroom의 문 뒤쪽에서 찾아내었다. 이것이 내가 줄곧 쓰던 것, 오늘 아침에 첫 시동을 하게 되었다. 이제 heating season이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아직도 whole house central heating은 1~2도의 차이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며칠 뒤에는 본격적으로 새벽에 소음을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벼운 스웨터를 하나 둘 씩 찾아내어서 입기 시작, 다음 차례는 jacket이 필요한 순서.. 오랜 세월의 연륜으로 이제는 그림처럼 다음 차례의 모습이 그려지니.. 이래서 하루 하루 생활이 흥미가 없어지는가, 아니면 기다리게 되는가, 모르겠다.

올 가을에는 나뭇잎, 특히 그 색깔의 변화를 매년 내가 좋아하는 우리 subdivision의 Guilford Circle 상에 있는 연로한  그 ‘가을 나무’ 대신에 기대치도 않게 옆집 Dave 네 앞뜰 나무에서 감상하게 되었다. 동네를 최근에 별로 산책을 하지를 못했던 것이 제일 큰 이유가 아닐지… 그 ‘가을 나무’는 노오란 색깔로 변하는 것이 멋졌는데 오늘 보게 된 것은 빨간 색깔 쪽에 가깝다. 이것도 멋지게 보이는구나…

어제 나의 desk 옆에 방치되어있는 책 더미 속에서 이 Satan에 관한 책을 끄집어 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왜 갑자기 ‘악마론’인가? 아주 timing이 절묘하다고나 할까.. 지난 주의 Black Days 경험도 그렇고 현재 Halloween을 향하는 시월 달도 그렇고 모두 이 ‘악마, 귀신’이 주제가 아니던가?  이 책 CHRIST versus SATAN (IN OUR DAILY LIVES)은 내가 좋아하는  예수회 사제저자,  Dr. Robert Spitzer의 최근 저서로 ‘현존하는 Satan’을 교회, 영성, 이론,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거의 미신적으로 즐기다시피 하는 초현대적 문화에서 이런 이론, 주장은 자칫하면 무시당할 수도 있지만 이 저자의 자질과 배경을 알면 훨씬 이성적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오해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영성적으로 열린 자세가 아니면 본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The Exorcist (William Peter Blatty),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매년 10월마다 경험하는 추억의 여행이기도 하다. 매년 나에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추억, 이것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는, 찾으려는 것인지 이런 나의 모습에 나 자신도 웃는다. 하지만 이것이 이것의 마력, 매력이 아닐까? 올해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자세로 이 영화와 나의 인생여정의 관계를 찾아 보고 싶다.

오늘 달력을 보니 Canada의 Thanksgiving Day라고 보인다. 불현듯 중앙동창 6년 반장, 정교성이 얼굴이 떠올라 간단히 카톡을 보냈다. 그곳에서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만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올해는 식구가 모일 수가 없다는 소식이었다. 작은 딸애가 퇴원을 했다는 것은 안 좋은 소식이었고 사위는 군인인데 NATO일원으로 훈련 중이라고 하며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간단하고 쓸쓸한 사연… 아~ 나도 외로운 때를 보내고 있는데 이 녀석을 생각하니 비교를 할 수가 없구나. 이제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그래, 누구나 다 이 나이에서는 별 수 없이 외로운 것이니까…

 

Lesson from History, Looking for Mr. Goodbars

명성황후, 명성황후… 오늘도 짬이 나는 대로 그 동안 꽤 많이 download했던  History Special, ‘역사스페셜 류’ video 중에서 몇 개를 보았다. 올 여름 나를 그런대로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들 바로 이 역사물인데, 오늘 본 것 중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것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때 시해 弑害에 가담했던 ‘일본 낭인 浪人’들의 후손들이 개인적인 사죄를 하러,  이미 일본에서 한류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던,  2005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은 비록 ‘살인범들의 후손’들이지만 민간인으로써 진심으로 사죄를 하는 것으로 드물게 잔잔한 감명을 주었다. 이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진심을 읽는다. 대부분의 민간인들, 아니 그 외의 일본인들이 사실은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다 비슷할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몇몇 사람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거대한 세계사적 운명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사주, 아니 지시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프로그램은 추적하지만 100%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거의 이토 히로부미가 배후에 있을 것 아닐까 하는 확신을 보여 주고,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일부, 아니면 전체가… 하지만 기구한 운명의 명성황후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을 참을 수는 없다. 새삼 재확인 하는 교훈적 진리는 우리가 사는, 속한 국가, 나라가 어떻게, 왜, 언제 흥망성쇠 興亡盛衰 과정을 거치는가 하는 것이다.

Pandemic이 야기한 외로움의 여파가 썰물처럼 사라진 이즈음, 나의 ‘3명 남자의 만남’ 제안에 대한 R형의 답신, 조금 이해하기 힘든, 씁쓸한 맛, 아니 심지어 기분이 안 좋은 느낌인 것이다. 조금은 우려하고 배려를 했지만 결과는 결국 부정적인 것으로 끝났다. 2017년 가을 이즈음을 추억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P 형제와 함께 세 명의 남자들만 모여 볼까 했던 나의 소박한 희망은 무리였나 보다. 그들 둘 사이의 관계가 원인으로 보긴 하지만 이것으로 나는 R 형 자체에게 걸었던 ‘새로운 친구’의 기대가 현실적이 아니었던 것으로 느낀다. 심지어, 나의 마지막 ‘친구 만들기’ 노력도 무산되는 듯한 생각까지 든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의 말 tone에서 느껴지는 인상들이 나를 실망시킨다. 조금은 ‘유아독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아닐까. 이제 3년에 가까운 honeymoon적인 시기는 완전히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의 life style 외적, 취미, 활동 등도 우리와 너무나 상이한 것,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치르는 싸지 않은 대가일지도 모른다.

 

Funeral Mass, A Full Life

최형 어머님 96세 선종, 장례미사, 과연 어떤 모습의 장례식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일부러 부르지 않는 복잡한 대가족의 내부 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짐작은 하되 확실한 것은 없다. 결과적으로 조문객의 숫자는 상당했어도 가까운 친지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은 듯했다. 가족의 덩치가 크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특히 진희 엄마를 통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로 오늘 장례식의 주인공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상상할 수도 있다. 선종직전에 이왕이면 못다 풀지 못한 매듭들 풀 수 있는 아량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록 성당에서 천주교 의식으로 연도를 포함한 정식 절차로 치러졌지만 막상 장본인은 거의 알려진 바도 없는 듯하고 우리 성당과 특별히 깊은 연관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 등이 고인을 추모하는 연도 등을 하면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 초의 최형 아버님 장례, 몇 년 전의 동생 James 의 때 이른 선종, 장례와 함께 오늘의 행사로 우리는 묘한 인연으로 이 ‘최씨 대가족’의 장례식과 무슨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고인들의 연옥에서의 빠른 벗어남을 위한 기도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Echinopsis Summer Receding…

Echinopsis Summer!  또 3 송이가 피었다. 올 들어서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이제는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인가? 아니다, 불과 하루 몇 시간 동안  피는 이것, 해가 뜨기 전에 나가서 이미 피어난 모습과, 주변의 초록색 절정을 무섭게 지나가는 올 여름 찰나의 역사로 남긴다.

 

입추도 어제로 지났고, 다음 주 월요일은 결국 말복이다. 이제 여름은 그렇게 무섭지 않게 보인다. 아무리 더워 봤자… 라는 배짱인가? 분명히 mercury 숫자로 보면 더운 것이지만 전처럼 더운 느낌이 다르다는 것, 우리의 몸, 특히 피부가 신기하게 적응을 한 것이리라…  앞으로 몇 주는 쏜살같이 지날 것이니까… 그러면 9월이… amber after amber… 허~~ 그렇게 되는가?

Google Voice에서 경고[권고]성 email이 날아들었다. GV No 2가 일주일 후에 expire가 된다고… 그때까지 쓰지 않으면… 곧바로 번호에 전화를 걸어서 voice mail을 남겼다. 이렇게 된 것은… 요사이 산책을 하면서 이곳에 ‘도장’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 초, Spring Creeks 산책 중, 개XX 사건으로 완전히 이것을 잊었던 것인가… 하~ 그런지도.. 앞으로는 이것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산책을 하며 자주 voice mail을 남기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인데..

조용하고 평범한 월요일을 예상했지만 약간의 추가로 신경을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당 가는 길, 도착하는 길에 어떤 차가 쫓아오더니 주차장까지 따라 들어와서 우리 차 brake light 두 개[왼쪽과 가운데] 가 안 들어온다고… 물론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을 것인데 나는 불현듯  조금 지나친 간섭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결국은 그의 ‘좋은 이웃’의 모습에 충분히 나의 답례가 부족하게 보였을 것이 염려가 되었다. 누가 그런 수고를 해 주겠는가? 하지만 후에 작은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닌 것이 나중에 brake light bulb를 O’Reilly에서 사다가 교체를 하려고 보니… 글쎄 원래의 것이 멀쩡한 것이 아니던가? 도대체 어찌된 노릇인지.. 분명히 연숙이도 확인을 했다고 하니.. 누가 틀린 것인가? 순간적으로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결국 brake light가 수명이 다 되어가는 것으로 ‘공식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또 다른 사실은, 소위 말하는 3rd brake light교체하는 작업.. 특히 SONATA의 경우 거의 mechanic이 필요한 작업으로까지 보인다. 이것 3rd brake light를 design한 HYUNDAI engineer 인간들의 비상식적인 머리가 의심스럽다. 아니 light bulb 교체하는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어렵게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R 형 부부와 모레 목요일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이 간신히 잡혔다. 덕분에 며칠 전 안나 자매가 언급했던 예전의 초원뷔페 자리의 ‘새벽집’이란 묘한 이름의 식당을 가보게 되었다. ‘꼰대’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분위기가 대강 짐작은 간다.  그 자매부부가 그곳에 갔을 때, 그곳에서 경로잔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왜 그곳에 그렇게 ‘꼰대’들이 많이 오는 것일까?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메뉴 때문일까? R형 부부와 만난 것이, 5월 초에 만나고… 그러니까.. 거의 3개월이 흐른 것이다. 지난번 만난 후에는 자주 만나자고 기염을 통했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친분이나 우정이란 것, 인위적으로 희망대로만 되는 것이 이 나이에서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사람’들과의 사귐에는 노력을 하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듯 한데… 동갑, 동향이란 것만으로는 극복할 것이 적지 않다. 특히 개인적이 아닌 부부가 관계가 되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분명하고.. 둘이서만 만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이 이제는 전처럼 쉽지가 않으니..

뉴스를 의도적으로 안 본지가 20여 일이 되었는데, 사실 그 동안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too big news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연숙이 언급하는 서울의 집중호우 소식은 조금 관심이 갔다. 시가지의 차들이 물에 잠기는 정도가 된 것은 예외적인 것 아닌가? 인명피해는 경미하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포감은 상당할 것 같다. 1964년 중앙고 2학년 여름, 용산구 남영동에 살 때 나는 직접 피부로 눈으로 느끼고 목격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밤새 쏟아지는 폭우, 그것이 집중호우일 것인데, 다행히 우리는 2층 집의 2층에 살고 있어서 길이 물에 잠기는 것을 내려다 보는 입장이었지만, 한마디로 자연의 무서움은 50 여 년이 지난 아직도 남아있다.  도로에 물이 넘치며 침수가 되고, 지하실을 완전히 물에 잠길 정도, 그 당시에는 한강이 범람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그것의 최악의 사태는 서울시가[특히 용산 쪽]  물에 잠기는 형국이었다. 다행히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었다. 나는 특히 수영을 못하고 물에 대한 trauma가 많아서 그런지 물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라서 서정적인 느낌의 아름다운 비는 정말 사랑하지만 집중호우 같은 것은 정 반대로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곳에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확실하게 더 많은 비가 오후에 내렸다. 이 정도의 비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빗님이고, 갑자기 서울을 비롯한 세계도처에서 혹서, 폭우, 산불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각하니 정말 미안해진다.

중앙57회 동기 카톡방, 처음에는 옛날 옛적의 중앙중고 캠퍼스의 추억에 젖어, 당시 졸업앨범의 애 띤 얼굴들을 연상하며 그들의 글을 보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이곳의 regular들이 한정된 숫자의 몇몇 동문들이었고 화제도 주로 정치 쪽이 압도적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상할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솔직히 내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는 듯,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가는 서운함이 없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곳을 통해서 알게 된 이재영 동문이 그곳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일까. 나와 거의 비슷한 것, ‘Donald 개XX MAGA’ 빠가 집단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일까. 아직도 그 개XX의 narcissistic 거짓말을 믿는 한심한 동문들이 이곳에 있음이 나는 더욱 놀랍기만 하고, 가끔 나도 한마디 이재영을 지원사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창들이 나의 의견은 고사하고 나의 존재조차 감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Remembering Young Ones, Friends…

1973년 6월 초 김포공항… 오른쪽 끝에 건장하고 훤칠한 모습의 김원규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우진규, 김호룡, 정교성, 이종원, 박창희, 신창근, 이진섭, 이경증… 원규는 하늘로 며칠 전에 갔고, 나머지는… 모두 어디에..

며칠 전 사망, 타계한 김원규..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조금씩 되살아 나오고 결국은 공항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까지 발견하였다. 그것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호룡이, 교성이, 우진규 등과 같이 어울린 기억, 또한 그의 친구였던 박승호의 결혼식도 갔던 것, 그의 소개로 미국에서 박승호의 도움을 받았던 것 등등..  하지만 원규와는 중앙중고 6년을 통해 한번도 같은 반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활달했던 그의 성격으로 잘 알려졌지만 나와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안 적은 없었다. 당시 서울시 교육감의 이름과 같아서 아이들이 그를 교육감이라고 불렀던 것도 기억을 한다. 그러니까 졸업 이후에 호룡이, 교성이 그룹을 알게 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정교성도 마찬가지지만…  근래에 양건주와 만난다는 소식을 접해서 연락처까지 알아서 카톡으로 재상봉을 했는데, 녀석은 용케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 어머님을 만났던 것까지 회고를 해서 내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다. 하지만 폐암말기로 투병하고 있음을 알았고 비록 그는 신자가 아니었지만 매일 저녁기도에 그의 완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정성이 모자랐던 듯하다.  내가 신세를 졌던 박승호가 환갑도 되기 전에 타계했다는 것도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그마저 가버리다니…  이번에는 정말 조금 외로워진다. 하나, 둘, 셋… 모두 떠나는 것을 보니… 예전과 다르게 유별나게 외로워진다.

원규에 대한 기억이 더 살아난 것 중에… 결혼식에서의 기억이다. 호룡이, 교성이 그룹과 어울리며 원규도 같이 만나게 되었는데 한번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중앙동차 박승호의 결혼식엘 가게 되었다. 그 결혼식의 사회를 김원규가 보았는데, 그 사회 솜씨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나는 것, 결혼식이 끝나며 신부신랑 퇴장 시에 사회를 보던 원규, 무슨 군대식 호령인지… 앞으로 갓! 하며 고함을 친 것이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는다. 후에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그와 친한 박승호를 소개받아서 LA에 도착해서 큰 도움까지 받았다. 며칠 동안 여행도 하며 신세를 진 것이다. 얼마 전 원규에게 박승호가 환갑 전에 타계했다고 알려주어서 상당히 놀랐었다. 또 다른 기억은 1975년경 잠시 귀국을 했을 때 이번에는 원규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의 결혼식엘 갔었던 것이 기억에 또 남는구나…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원규를 본 때가 되었으니… 이후로는 교성이, 호룡이, 그리고 최근에는 양건주를 통해서 원규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원규와 카톡으로 개인적인 연락이 되어서 매일 그를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하느님이 그를 더 빨리 원하셨는지.. 우리를 떠났구나… 원규야~ 비록 하느님을 우리와는 다른 식으로 믿지만 저 세상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니 부디 우리들을 기다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