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요상한 기후’에 대해서 연숙과 얘기를 하다가 문득 storm of the century란 것을 기억했다. 일명 super storm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 언제였나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치매 예방’ 기억력 test였다. 나에게 제일 알쏭달쏭한 것이 지나간 10년에서 20년 전 일들의 기억이다. 각가지 연상technique를 동원해서 아마도 1992년에서 1994년 사이일 것이라고 일단 결말을 지었다. 그 super storm이 온 것이 3월 이때 쯤인 것도 기억했다.
문제는 100% 자세한 것이 어떤 것일까.. 1992년은 우리가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해였고, 장모님과 나의 절친한 친구, 지금은 타계해서 없는 김호룡 식구가 거의 같은 때에 우리 집에 온 해이기도 했다. 1992년 3월 1일에 이사를 왔는데, 곧 이어서 이 super storm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1994년을 생각해보니 여름에 누님의 아들, 준형이가 다녀갔던 것 이외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결국은 1993년임을 알았다.
나의 제일 큰 문제는 이 1990년대의 기억이 제일 희미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억해내기 싫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아닐까도 생각을 했다. 그만큼 큰 기쁨이나 즐거움, 그렇다고 특별한 괴로움도 없는 그런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세파’속에 휩쓸려 간 듯한 그런 10년간인 듯한 느낌인 것이다.
고국이나 이곳이나 그 나이쯤이면 ‘샐라리맨’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런 생활을 많이 보내니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기후에 관한 사건들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때에는 VCR, video (cassette) recorder가 한창 유행할 때여서 그런 것들의 기록도 남아있어서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알아보니 그것은 1993년 3월 13일, 토요일의 일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일기예보는 그렇게 ‘자신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 미리 커다란 ‘경고, 경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생각도 없이 아침 10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얼어붙는 눈보라’ 에 그냥 당한 것이다. 다행히 토요일 아침이라 교통에 관한 문제는 별로 없었다. 그냥 퍼 붙는 눈보라를 집에 틀어 박혀서 ‘즐긴’ 것이다. 그 전날만 해도 봄 같은 포근한 날이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까? 예보, 경보도 그렇게 없이..
하루 종일 강풍과 함께 쏟아진 얼어붙는 눈에 나무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전기도 나가기 시작하고.. 길은 완전히 얼어붙고.. 이곳 지역은 완전한 시베리아를 연상하는 광경으로 변했다. 다행히 우리 집의 전기는 나가지 않아서 하루 종일 TV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덩치가 큰 소나무가 쓰러지면서 우리 집 drive-way를 가로막았다. 그러니까 나중에 차가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무슨 요란한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남자 몇 명이 power chainsaw로 우리 집의 쓰러진 소나무를 잘라서 치워주고 있었다. 동네에 사는 ‘마음 좋은 아저씨’들이었다. 동네를 돌면서 우선 급한 것들을 치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TV 뉴스에서는 이번의 snow storm은 ‘아마도’ super storm, storm of the century정도로 monster 급이라고 했다. 멕시코 만에서 시작된 사상 최저기록의 저기압과 북쪽에서 하강한 cold front가 ‘완전히’ 결합이 된 그야말로 perfect storm이었다. 결국은 이 system은 우리가 사는 Georgia를 거쳐서 northeast의 덩치 큰 도시들로 갔고 그곳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것은 엄청난 것으로 느껴졌지만, 2000년대가 지나가면서 그때의 것은 별로 큰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큰 monster storm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때 찍어둔 video tape을 본다. 그러니까 정확히 20년 전 우리 집 주변이 남아있고, 그 눈 속에서 ‘신나게’ 놀던 우리 집 두 아이들.. Wisconsin에서 이사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 그 추운 곳에서 타던 ‘썰매’와 겨울 옷들을 다시 꺼내어서 아주 요긴하게 쓰기도 했다.
큰 애 새로니는 Ohio와 Wisconsin에 살 때 경험했던 눈과 얼음으로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겠지만 작은 애 나라니는 거의 기억이 나지를 않는지 신기하게 눈과 얼음을 바라보며 썰매를 탔다.
그 당시 나는 비교적 젊었던 45세.. 와.. 정말 젊었다.. 피곤을 모르며 직장생활(‘embedded software’ engineer at Automated Logic Co)을 했고, 연숙은 home-based business, housewife, mom, PTA등으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신앙적으로는, 유일했던 한국본당에 ‘대 파란’이 나던 때여서 아마도 그 근처에 가지도 않던 ‘신앙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는 Internet이란 것이 아주 미미하게 보급이 되고는 있었지만 지금 보는 것 같은 graphical web browser가 없어서 일반인에게는 그런 것은 ‘학교에서만 쓰는’ 그림의 떡이었다. Email은 직장이나 학교 내에서만 쓸 정도고, PC 는 Microsoft Windows 95 전의, 조금은 원시적이었던 Windows 3.x이 전부였고, 지금 쓰는 cellular mobile phone도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틀란타 올림픽이 열리기 3년 전이었던 그 당시 이곳에 한인의 인구는 현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편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참 변한 것이 많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이 내가 40대에서 60대가 되었다는 ‘자명한’ 사실.. 어떻게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가 충격으로 느껴지는가.. 그것은 생생하게 뇌리에 남은 20년 전 1993년 3월 13일을 회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