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 다습한 늦여름에..

¶  고온 다습 高溫多濕.. 요사이 이 지역의 날씨를 보면 가관이다. 한 여름 중에는 가을 같이 이상하게 싸늘하더니 9월도 넘어선 늦여름은 그야말로 ‘hot and muggy, 고온 다습한’ 한 여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날씨에 둔감해지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 많이 침착해 졌지만 요새의 기후만은 언급을 피하기가 힘이 들었다. 올해는 조금 a/c(air conditioning) 에서 $$을 절약하는가 은근히 쾌재를 불렀지만 mother nature는 역시 그런 ‘공짜’가 없나 보다.

‘고온 다습’이란 귀에 익은 말이 딱 들어 맞았지만 이 말을 쓰고 보니 그 옛날 고국의 한창 여름에 많이도 듣던 기상용어가 아닌가? 고온 다습한 태평양 고기압.. 바람이 남쪽, 그러니까 멀리 있는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 그것이 서울에서 겪었던 한증막 같은 더위의 원인이었다. 장마도 마찬가지로 그 ‘고온 다습’ 한 것.. 그것이 지금은 Gulf of Mexico 멕시코 만灣의 고온 다습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요새의 공기는 그야말로 에어컨이 없으면 괴로운 그런 것.. 그 옛날 서울에서 어떻게 에어컨이 없이 살았던가?

 

  Crumbling infrastructure.. 이런 표현 근래에 national 뉴스에서 많이 접하곤 했다. 그런 뉴스에서는 주로 bridge같은 것이 너무나 낡아서 위험하다는 것들이었는데.. 요새 나는 우리가 사는 집이 그런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겉모습은 물론 페인트가 벗겨지고 siding같은 것은 숫제 새들과 ‘기후’의 공격으로 구멍이 생기는 것도 목격이 되었다. 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집의 얼굴인 front door 쪽의 brick, concrete들, 그리고 front door threshold(문지방)등의 모습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사실..

집의 구조상 garage(차고)로 출입을 하니.. 앞문 쪽은 거의 사용을 안 하니 자주 볼 수도 없다. 손님들이 가끔 그곳을 쓰지만 대부분 어두울 때에 사용을 하니 자세히 볼 기회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앞 문 쪽으로 gutter물이 떨어져서 water damage를 예상은 했었다. 이번에 자세히 보게 되니.. 정말 ‘뚱뚱한 사람’이라도 그곳을 쓰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썩어버린 문지방은 wood filler를 쓰면 고칠 수 있을 듯하고 떨어져나가는 벽돌도 큰 비용은 들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concrete slab도 조금 노력을 하면 내가 모두 고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고 대대적 수리의 준비에 돌입을 하였다. 오랜 만에 집 앞쪽이 대대적 face-lifting service를 기다리고 있다.

 

 

¶  앓던 이(이빨)가 빠질 때.. 지난 4월부터  앓았던 독감 중에 지독한 치통이 나를 괴롭혔고 독감이 나은 이후에도 통증의 차이는 있었어도  계속되고 있었다. 치과를 가면 분명히 ‘고쳐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곳이 바로 그 치과이기에 ‘가급적’ 나는 참는 것이 오히려 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번에 느끼는 치통,구강 통증은 보통을 훨씬 넘게 나를 ‘매일’ 괴롭혔다. 분명히 이것은 ‘민간 요법’도 없을 듯 하고 ‘자가 요법’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고작 하는 것은 ‘소금물 양치’가 전부였다. 보통 때는 그런대로 잊고 지낼 수가 있었지만 식사시간이 문제였다.

무언가 닿은 듯 하면 통증이 온다. 나의 나이에 내 치아의 상태는 보통 정도.. 일 듯한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대학 2학년 때 ‘병신 같은 사고’로 앞니에 ‘큰 문제’가 생긴 이후 나는 사실 항상 ‘치과’에 가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았던가..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던 것이 거의 8년 전.. 이후 나는 그곳을 피하며 산다. 이번의 통증은 물론 윗니 중의 하나 (사랑니 근처)가 빠지려고 발버둥치는 결과였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날로 치과에 가서 그것을 뽑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저절로’ 그것이 얌전하게 빠졌다. 거의 순식간에 그 지독한 통증이 100% 사라졌다. 비록 이빨 하나를 잃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날라 갈듯한 기분.. 이래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절감, 실감, 만끽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는 치과의사를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우선’ 지금엔 문제가 전혀 되지를 않는다.

 

¶  Show Stopper.. 며칠 전에 처음으로 성령대회란 것을 가 보았다. 오랜 전, 1988년과 1989년에 우리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노틀담 대학, University of Notre Dame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렸던 미국 성령쇄신대회 (Charismatic Renewal Convention)에 참석을 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번 것은 순전히 한인들이 주관하는 미국 동남부지역의 것, ‘제5차 미 동남부 성령대회‘였다.

성령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그 옛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알게 된 최 데레사 양이 음악 지도자로 와서 정말 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되어서 한번 가 보자.. 하는 다분히 즉흥적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년 Labor Day에 맞추어서 열리는 비교적 큰 대회라 많이 알려지고 듣곤 해서 사실은 기대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최 데레사의 12 string guitar 연주도 멋졌고 음악, 율동 팀들, 조직적으로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던 red shirts의 봉사자들.. 모두 좋았다. 심지어 부산 교구에서 초빙된 주관 신부님의 ‘통성기도, 심령기도’ 소개,실습까지도 나는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해서.. 이제 나도 많이 ‘마음과 가슴’이 열렸구나 하고 만족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복병이 나의 다리를 잡았는데.. 결과적으로 한마디로 최소한 나에게는 show stopper, disaster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2일 간의 행사였지만 우리 부부는 이틀 째날 행사는 모조리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의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작은 Satan이었을까? 이유는 우습게도 첫날 두 번째로 ‘등단’했던 신부의 ‘지겨운 performance’ 에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신부’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혼란한 시간과 싸우게 된 것이다. How did he ever become a priest? 저 사람이 신부인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음담패설’과 해외교민만이 겪는 아픈 곳들만을 철저하게, ‘밥맛 없고 저질적으로’ 찌르던 그의 강론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뒤늦게 나온 지독히도 짧은, 본론이라고 나온 것은 전혀 무게가 없고 깊이가 없던.. I’m Joseph..you’re.. 어쩌구 하는 전혀 새로울 것 하나도 없던 넋두리들..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매님들만 없었으면 자리를 박차고 자리를 떠날 생각도 있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과 같은 맑은 영혼의 느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의 성령대회는, 결과적으로 거의 완전히 실패한 나의 ‘첫 성령대회 체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