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16

서기 2016년 8월이 역사의 한 chapter로 사라지는 날이 되었다. 올해 8월을 어떻게 보냈고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가? 날씨로 말하면.. oppressive month라고 할까.. 정말 잔인하게 땅을 말리는 더위도 그렇지만.. 나를 괴롭힌 것은 그것보다는 ‘매일 매일이 거의 carbon copy 같은’ 그런 정말 세월이 정지된 듯한 모습의 날씨가 거의 30일간 계속된 것.. 이것도 아마 기록에 남을 듯 하다.

날씨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수확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확은커녕 기대를 한 것이 유산이 되는 실망도 있었다. ‘거창하게’ 출범을 했던 ‘봉헌을 위한 33일’이 골인 3일을 남겨두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비록 앞으로 기회가 또 있다고 하지만 나의 ‘자존감’에는 분명히 피해를 주었을 듯 하다. 교훈은 무엇인가.. control your temper..가 될 듯하다.

지난 수년간 바쁘기만 했던 한 여름의 ‘레지오 활동’들.. 올해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것.. 솔직히 불안하다. 활동거리가 없다는 사실 자체는 축하할 일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활동거리를 찾는 활동이 약해졌음을 어찌 모르랴.. 활동거리를 proactive하게 찾는 활동.. 바로 그것이 최근 들어서 slow down된 것은 분명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해서 나, 아니 우리의 ‘세속적’인 활동이 시간적으로 늘어난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오랜 동안 잊고 살았던 social activities에 서서히 조금씩 관련이 되는 것,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가 봐야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 시간적으로 제일 ‘부담’이 된 것이 guitar coaching 인데, 이 새로운 활동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면 조만간 scale down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금은 바깥일을 할 수 있는 ‘멋진 가을 하늘’, 그것이 9월인데.. 집안에 갇혀 지내니 ugly backyard stuffs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 집은 손을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모조리 모조리 나의 muscle과 money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럴 때 근육이 적당한 ‘동갑내기 죽마고우  竹馬故友’가 나의 옆집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평화스러운 낮잠에서 꾸는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바로 그것이었다.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올 여름들어 두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 여름 들어 두 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해는 유별나게 절기의 이름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것도 나이 탓인지.. 지난 번에는 말복이란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처서.. 란 것. 거의 칠십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살면서 올해처럼 이런 절기의 이름이 눈과 머리에 들어오는 적은 처음일 것이다.

처서.. 유난히 지겹게도 덥게 느껴지던 올해의 여름 내내 꿈 속에도 보였던 말이 ‘써늘한 아침바람’ 이었다. 거의 3개월 동안 내내 내가 느꼈던 새벽 6시 경의 느낌은 끈끈함 그 자체였었다. 간혹 바람이란 것이 있었어도 그것은 물기가 잔뜩 섞여있는 거의 ‘열대성’ 그 것이었다.

지난 3년 간 여름철에 그렇게도 자주 내려주던 오후의 소낙비, 올해는 거의 없었고 그 느낌조차 잊을 정도였다. 7월 초에 딱 한번 내렸던 것은 반가운 기록으로 나의 blog에 남을 정도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반가운 오후의 소나기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올 여름의 2번째 귀중한 소나기가 된 것이다.

 

처서.. 왜 이름이 처서 處暑일까? ‘곳’ 處, ‘더울’ 暑.. 이것이 무슨 뜻인가? 물론 전체의 뜻 자체는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 한다고’ 하는 뜻이다. 그렇다. 이제는 더워도 그 더위가 별볼일 없다는 뜻일 것이다. 수그러드는 더위, 그러니까.. 아마 waning Summer 정도가 될 듯하다.

 

아침부터 해가 안 보이는 구름들, 그렇게 해가 안 보이는 것이 반가울 수가 없다. 올해처럼 아침에 뜨는 시뻘건 태양의 느낌이 싫었던 때도 없었던 만큼 잔뜩 흐린 아침이 그렇게 반가웠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 되었다. 기분이 갑자기 홀가분해지고 날라갈 듯하다. 아~~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지나간 몇 해의 여름에 비해서 올해는 참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지나간 해, 유난히도 병고로 고생하던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도 있었다. 그 영혼들과 보낸 세월도 짧지 않았고, 덕분에 날씨의 느낌에도 둔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올해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따라서 우리들이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여가 시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이 ‘귀중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멋지고 뜻 깊게’ 쓸 것인가.. 그것이 이 시원한 늦여름의 작은 즐거운 과제가 되었다.

2016년 8월 16일, 레지오 수첩을 보니 ‘말복’이라고 쓰여있다. 결국은 그날이 지나가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왜 그럴까.. 지독히도 끈적거리게 덥던 올해의 여름이 그렇게 고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복은 복날 중 마지막으로 삼복 더위가 일단 끝나는 때인데, 이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은 절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글 Wikipedia에 나와있다.  이것은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복 날의 복 자가 나는 이제까지 개 와 연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실제로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복 더위하고 개 하고는 원래 상관이 없었던 것. 미국에서 제일 더운 때 여름철을 Dog Days 라고 부르는 것에서 생긴 나의 오해였는지도..

 

말복이 지나감에도 더위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날을 나는 기쁘게 맞이하는 것은, 이제 여름의 무더위는 ‘시간문제’임을 오래 산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말복이 지나고 열흘 뒤쯤에 비로소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첫 시원한 공기를 느낀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시간 문제’인 것인가..

 

그러면 이 복, 삼복이란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절기에 속하지도 않는 그저 일년 중 제일 더운 때의 3일, 삼복날.. 이것도 Wikipedia에서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알게 되었다. 역시 짱 깨 들의 유산인가.. 중국 사기에 의하면 진 나라의 ‘덕공(德公) 2년’ (연호인가?) 에 시작되었다고 나와있다. 무척 역사가 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더위를 이기느라 ‘고기류’를 먹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랑인 ‘개고기’ 먹는 해괴한 전통도 생겼나.. 

 

집을 완전히 떠나는 휴가가 없었던 올해의 무척 더운 여름, 비교적 건강하고 차분하고 규칙적인 나날을 만들려 안간 힘을 썼다. 하지만 2년 전의 경험했던 것 처럼 나는 올해도 mild burnout 이후 3일간의 big reset의 풍랑을 겪어야 했다. 그것으로 인해 야심 차게 시작하고 열심히 해 왔던 ‘성모님께 대한 33일 봉헌’ 과정의 끝을 맺지 못하는 불상사를 남기게 되었다. 모두들 아깝다고 comment를 했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였던 disaster였다.  지금도 big reset의 과정이 다 지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훨씬 맑은 정신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불찰이었다. 내가 나를 너무나 push했던 탓도 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physical-mental-spiritual  balance가 완전히 깨진 것을, 나는 거의 무시하며 강행군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겹게 덥기만 하던 올 여름에 얻은 귀중한 교훈.. 이것도 남은 생을 통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귀중한 것이 되었다.

 

1960년 대 Hermes typewriter

1960년 대 Hermes typewriter

 

Georgia 10, 굴림 10:  얼마나 멋진 type shape인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멋진 것은.. 아~~ 그립다, 태곳적 太古的 둔탁하지만 경쾌한 typewriter의 잔잔한 소음들.. 지금은 원시적인 얼굴의 mono type Pica, 그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갔는가? 아~~ 그 예전에 ‘학문적, 지적 정보’의 총아 寵兒 였던 mechanical typewriter 의 멋진 추억들이여!

 

나와 typewriter의 첫 만남은 1960년대 초쯤이었다. 서울 중앙중학교 1, 2학년 쯤이었나.. 나의 경기고교생 가정교사였던 김용기 형, 나이에 비해서 조숙했던 그 형이 나의 typewriter에 대한 꿈을 며칠 동안 이루어 주었다. 나의 꿈은 그 것을 직접 만져보고 쳐보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괴물처럼 무겁게 보였던 Underwood typewriter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내가 하도 그것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기에 그 형이 어디선가  며칠간 ‘빌려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것, Underwood typewriter는  ‘고철’이었다. 크고, 무거운 쇠 덩어리로 보였던 것이다. 어린 애는 들기도 힘들 정도였다. 당시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였고 학생전용 영어 신문도 학교에서 가끔 볼 수도 있었는데 typewriter는 집에서 활자체로 인쇄물을 찍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완전히 그것의 위력에 매료되기도 했다. 영자신문 비슷한 것을 찍어보기도 하며 즐거워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의 typewriter는 물론 거의 모두 ‘중고’, 아마도 미8군 부대를 통해서 흘러나왔을 것이고 그 값은 만만치 않은 것이고.. 보통 사람들은 그것은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며 그것을 집에 가진 사람은 거의 못 보았다. 당시에 이미 한글타자기(공병우 3벌식)도 나와 있었지만 아마도 대부분 기업체에서나 쓸 정도고 학생들은 그것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제 그랬나 할 정도로 당시는 거의 모든 학교 공부, 강의 시간에 손으로 받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Typewriter가 나에게 가까이 온 것은 대학교 4학년 당시의 겨울방학 때였다. ‘무위도식의 극치’를 실행하던 당시 나는 한강 남쪽 ‘변두리’에 속했던 숭실대학이 있었던 상도동 종점 부근에 살았는데 무슨 구실로든가 시내 그러니까 종로, 명동 등지로 나와야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타자학원이었다. 왜 타자학원을 골랐는지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다. 좌우지간, 졸업 후에 공부를 더 하거나 유학 같은 것을 가려면 타자기를 칠 수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한번 씩 종로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주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배우려고 한 것이라 열심히 배우긴 했다.

 

타자학원에 가서 놀란 것은 이것이다. 학생들이 ‘모조리’ 여자, 그것도 아주 젊은 여자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들은 그 ‘기술’로 취직을 하려 했기에 나와는 목적이 전혀 달랐다. 그들은 심각한 자세였고 청일점인 나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학원 강사는 남자였는데, 나의 출현에 꽤 놀란 눈치였고 아주 반가운 모습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그는 나와 사무실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들이 그곳에서 유일한 남자들이었다.

집에 타자기가 없었던 관계로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비교적 값싼 방법이었고, 종로2가에 학원이 있어서 나는 매일 종로거리로 나올 수 있었기에 그것은 지루한 겨울방학을 보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나의 타자 실력이 얼마였는지 생각이 안 나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최소한 touch typing만 알면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까..

 

그 이후 미국유학을 준비할 때 나는 ‘중고’ 아주 portable 한 typewriter, swiss 제 Hermes란 것을 살 수 있었다. 싼 것은 아니었어도 미국에 가면 필요할 것 같아 미리 투자를 한 것이다. 유학을 떠날 때까지 나는 이것으로 심심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왜 그렇게 그 타자 소리가 나에게는 멋지게 들렸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 당시 그것을 치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 그것도 회사의 비서급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간혹 남편이 논문 같은 것을 쓰게 되면 그의 아내들이 그것을 돕느라 타자를 치곤 했다. 남자가 손수 타자를 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남자들은 나중에 쓰지 못할지도 모를 기술 touch typing을 미리 배운 셈이 된 것이다.

미국에 와서 사실 내가 직접 typewriter를 쳐야 할 기회는 별로 찾아오지 않았는데,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꼭 typewriter로 쳐서 내는 숙제는 별로 없었다. 쓰려면 도서관에 가면 되기에 꼭 나의 것을 사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눈을 끈 것이 있었다. 바로 electric typewriter, 바로 그것이었다. electric! 보통 typewriter는 완전히 수동, manual, 온 손끝의 힘으로 치는 것이지만 electric은 조금만 touch를 하면 electric striker가 이어받은 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결국은 나는 그것을 사고 말았다. 비록 큰 돈이었어도 당시만 해도 100% 자유스러운 ‘총각’시절.. 마음만 먹으면 아무 것이나 가능하던 그 자유스러운 시절..

 

비록 멋으로 샀지만 실제로는 방 구석에서 놀고 있었는데, 결국은 시간은 찾아왔다. 70년대 중반 쯤 나는 West Virginia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course들 중에 typewriter를 써야 하는 것들이 꽤 있었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이제 그 옛날 ‘타자학원’에서 배웠던 기술, 철저히 쓸 기회가 온 것이다. 그 때 보니까 나의 typing 속도는 꽤 빨랐고 제출해야 할 것들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그 소문을 듣고 나에게 typing을 부탁하는 classmate들도 등장했다. 여자들 같으면 돈을 받고 쳐 주곤 했지만 나는 ‘취미’로 생각했기에 모두 무료로 service해 주곤 했다.

Electric typewriter의 위력은 나중에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논문을 쓸 때 절정을 이루었다. 남들은 모두 professional typist를 찾는 고역을 치렀지만 나는 조금 더 시간을 내서 내가 모두 치곤 했다. 그 때 나는 상당한 분량의 논문을 typing했는데, 나중에 ‘책’으로 나온 그 논문집을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역시.. professional이 typing한 것과 비교하니.. 완전히 아마츄어 냄새가 났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손수 만든 것이라고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 이후 typing의 필요는 사라지는 듯 했다. 가끔 영어로 쓰는 서류, 편지들 이외에는 그것이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가 예상을 했으랴.. digital computer의 출현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집채만한’ mainframe ‘monster’ (e.g., IBM S/360), 다음에는 minicomputer (e.g., PDP11) 이것들은 거의 모두 keypunch input으로 결국은 typing기술이 필요한 것, 나중에 나온 personal (micro)computer들 (e.g., Apple II, IBM PC) 모조리 앞 모양은 거의 typewriter의 모습을 갖춘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touch typing 의 위력이 돋보이는 세월이 도래한 것이다. Touch typing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나는 그때 비로소 느꼈다.. 무언가 배워서 절대로 손해를 볼 수가 없다는 사실..

typesetsEngineer들의 필수 portable ‘analog calculator’ 였던 slide rule (계산척)은 1970년대 초에 ‘갑자기’ 등장한 ‘digital’ calculator로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향수에 젖은 ‘mechanical’ typewriter는 personal computer/printer의 등장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리운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것들,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갑자기 무언가 쓰고 간단히 ‘하~얀’ 종이 한 장에 까~만 typeset의 짧은 문장을 쓰고 싶을 때… 그것이 그립다. computer로 쓰면 고치는 것 떡 먹기지만 한 장 정도 print 할 때 얼마나 overhead가 많은가.. 귀찮고.. 그립다.. 그립다.

 

그 지겹게 공해로 찌들었던 서울의 겨울 하늘아래서 꽤죄죄한 타자학원을 다녔던, 비록 동기는 뚜렷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꽤 쓸만한 겨울방학을 보냈던 것이다. 그 touch typing 기술은 현재까지도 두고 두고 나를 도왔다. 특히 빠른 typing이 필요했던 때, 나는 1960년대 말 서울 종로에 있었던 ‘xx 타자학원’을 떠올리곤 하며 빙그레 웃곤 한다.

 

초복, 대서 가 멀찌감치 지나가고 드디어 중복을 갓 넘어간다.  이렇게 고국적인 냄새가 흠뻑 묻은 절기의 이름들: 소서, 초복, 중복, 대서, 입추 같은 것들.. 언제나 들어도 부드럽던 고국의 계절, 절기의 느낌이 그렇게 살아날까?  정작 옛날에는 ‘비과학적’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던 그 이름들을 지금은 아련한 기억의 선물로 즐긴다.

 

이런 이름들이 그런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달력들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안 나오기에 완전히 잊을 수 있지만 다행히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필수적인 지참 ‘활동수첩’에 그것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이다. 하기야 레지오 마리애의 초 강대국인 대한민국의 단원수첩을 거의 그대로 베꼈으니.. 빠질 수도 없긴 하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그런 절기 이름들이 이제는 나의 눈이 들어오니.. 무언가 나의 ‘가슴’이 많이 열린 모양이다.

 

중복이 지나가면 한국형 dog days들이 한창 지나가는 때이다. 그래서 보신탕을 이때 먹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야만적’인 전통이 남았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인 땅에서 아직도 이것을 먹는 것은 그것을 100% 증명하는 셈이다. 문화적이 차이라고 위선을 떨지만 그것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을까?

 

중복이 지나고 마지막 말복이 2주 쯤 남은 이 시점, 무척 덥다. 처음보다는 덜 덥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이 적당히 적응이 된 덕분이고 ‘과학적인 더위’는 거의 같은 정도로 매일 덥다. 이때를 어떻게 더위를 잊으며 빨리 보내나..  올해 피서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기에 죽어도 집에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아련~한 단어: 납량.. 이란 말.. 한자로 쓰면 納凉 이다.

 

받을 納, 서늘한 凉. 입시지옥 속에서 달달 외웠던 한자 1000자 덕분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글자 그대로 시원함을 주는(or 받는) 것들을 뜻 한다. 하지만 납량이란 말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당시의 여름철 Radio, TV program에서 배운 것이다. 여름 이 맘 때쯤 되면 예외 없이 納凉物 이란 것을 내 보낸다. 그 시절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하필이면 지독한 여름에 쓰는 말이 ‘별로 시원한 느낌이 없는’  납량일까.. 한 정도다. 납 이면 금속의 납 lead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고 보면 이 걸맞지 않은 단어도 분명히 일제의 유물일 것이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에 이런 말이 자주 나온 것을 보았으니까…

 

방송계에서 납량물 이라는 것은 물론 ‘보고 들으면 몸이 서늘해 지는’, 그런 것들.. 거의 귀신에 관한 drama가 아닐까? 무서운 것을 듣거나 보면 상식적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그 일본,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납량물은 찾을 도리가 없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을 보아도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 크게 시원함을 느낄 수도 없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솔직이 이제는 귀신이나 ‘보이는’ 영혼들, 하나도 안 무섭다. 그들의 ‘정체’를 이제는 대강 알게 되었고 한 방에 그들을 물리칠 계책도 가지고 있으니까.

 

몇 년 전부터 나의 납량물은 역시 ‘시원한’ 책이나 귀신이 안 나오는 무섭지 않은 비 전통적인 납량물이다. 책들은 물론 읽어서 시원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정감과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시끄러운 피서지가 아니고 사람들을 피해서 찾아간 심심산중의 느낌을 주어야 한다. 올해 나의 여름 납량물은 2권의 책과 home server archive에 거의 십 년 이상 건재 해온, 두 가지 video 다. video는 오랜 전에 보았고, 불현듯 가끔 보기도 하는 대한민국 KBS의 걸작 documentary ‘역사 歷史 스페셜‘ series, 그리고 고전중의 고전, 중국의 대하 역사 drama ‘삼국지 三國志’. 그러니까 video는 모두 역사에 관한 것이다. 2권의 책은 몇 주전에 산, 과학자출신 신부 Fr. Robert Spitzer의 저서로 제목은: (1)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2) God so Loved the world.  이 것들은, 조금씩 더위의 한 풀이 꺾이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서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나에게 ‘시원함을 보내주는’ 즐거움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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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두 권의 책, 참 마음에 드는 cover design과 종이의 촉감 등도 그렇지만, 사실은 내용들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근래에 나의 모든 관심을 끄는 분야가 바로 science & religion 인데 이 저자 신부님, 완전히 이 분야의 ‘뜨는 별’이라고 할까.. 물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박학다식’하고 영성적인 사제(예수회)라 benefit of the doubt는 충분히 줄만 하다.

 

The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제목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 분야 apologetics의 전통적인 것에다가 최근 25년 사이에 밝혀진 (우주) 물리학, 철학 적 ‘발견’을 덧붙인 것이다. 특히 물리학 쪽인 Cosmology분야에는 원래의 Big Bang theory의 최 현대판인 contemporary Big Bang Cosmology를 비교적 기술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면 bouncing universe, space-time geometry, quantum cosmology, The Borde-Vilenkin-Guth Theorem’s boundary to Past Time, Inflationary Cosmology, String Multiverse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책, The God so Loved the World 이 책은 물론 이 신부님의 전공인 Science와는 큰 상관이 없는 영성적인 책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셨나..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특히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다룬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다. 왜 하느님이 사랑이신가 하는 것을 참으로 조직적으로 파 헤친 것이다. 무조건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심각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믿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조건 믿는 것보다 생각해 보고 믿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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