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읽어야 할 것을 필사한 덕분에 Thomas Berry Writings 책의 대부분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들을 읽으며 예전, 특히 2014년 전후에 열을 올리며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 나에게는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때가 나의 신앙의 차원이 급상승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게 된’ 것, 아니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그것이 현재까지 큰 무리 없이 지속된 것은 ‘지식적인 믿음’의 결과가 아닐까? 무조건 믿는 것, 나는 믿지 않는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도 이성적, 과학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들 이어야 한다.
Secular Media Blackout, 거의 즉흥적인 나의 반발적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나는 즐기고 있다. 아침에 무려 3시간 정도의 아주 평화스럽고 편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 이때 평소에 못하거나 미루어 놓았던 것을 하면 더욱 보람이 있지 않을까? 첫 번째 나의 손이 간 곳은 요즘 들어서 거의 지나치고 있는 아틀란타 대교구 신문인 Georgia Bulletin. 내가 오랜 전 다시 성당 community로 돌아올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것, 어떻게 된 일인지 Pandemic이후 거의 관심이 떨어지고 front page만 흘깃 볼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 왜 다른가,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연보다는 무엇인가 원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 tabloid, 무엇에 홀린 듯 중요한 기사는 다 읽게 되었다. 현재 우리 대교구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어둠 속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아침, 오늘도 나는 가급적 media blackout 속을 지나갈 것이다. 대신 그 시간에 더 많은 글들을 읽을 것이다. 읽었어야 했을 여름목록 책들이 많이 밀려있다. 이제는 겨울목록으로 바뀌어야 할 판… 그렇지만 계속 조금씩이라도 읽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커다란 처방전인 것이다.
어제 순교자 성당, 신임 구 미카엘 신부님과 개인적 대화의 통로 channel을 만들려고 카톡 연결을 시도했다. 놀란 사실: 우선 주보에 연락처 전화번호 대신에 그의 email 연락처가 덩그러니 그곳에 적혀 있었다. 흠~~ 아직 전화가 없으신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할 수 없이 email을 쓰는 수고까지 한 결과는 조금 의외였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이전 두 신부님의 활발한 texting 하던 모습과 대비가 되면서, 아~ 내가 완전히 다른 시대감각의 신부님을 대하고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설마 지금 mobile phone에 texting (가급적 kakao) 을 안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의 느낌도 ‘차갑게 간단한’ 것, 허~ 내가 그 동안 spoil 된 것인가, 신부님을 잘못 보고 있었나… 이래저래 전임 이재욱, 이영석 신부님들의 자상한 text message들이 이 싸늘한 가을비 속에서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