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Year 2022, I Love You All…

하루가 거의 지난 이때에 처음 ‘붓을 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침부터 Ozzie와 유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Ozzie는 나의 침대 바로 옆에서 너무나 조용히 잤고, 유나도 못지 않게 지난 밤 깊은 잠에 들었다. 우리도 덕택에 제때에 일어나게 된 것이지만 연숙이는 아마도 긴장을 했고 제대로 깊은 잠을 못 잔 듯하고… 아침의 모든 routine들도 유나 때문에 완전히 바뀐 것이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나지를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귀여운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유나는 즐거움 자체였다. 이런 것으로 손주들을 모두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보아주는 모양이다.

2022년 마지막 날Ozzie와 ‘연장 延長된 산책 즉, Sope Creek까지’ 을 할 수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다행히 쏟아지는 비가 아니어서 오히려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을 쓰며 곳곳에서 냄새란 냄새는 모두 맡으며 걷는 Ozzie의 모습이 그렇게 대단할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 Emeritus Pope Benedict XVI 16 이 선종한 것을 알았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 교황님은 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려고 애를 쓰던 시기의 교황님이었고 한창 회심에 불이 붙었던 시기에 갑자기 은퇴를 한 것이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은퇴를 한 사실이 실망적이긴 했지만 나중에 천천히 이 교황님은 내가 좋아하는 type 그러니까 심각한 신학자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교황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깊은 신학을 얻으려 노력을 한 기억이 남는다. 교황님의 신학사상 중 하나로부터 연유된 책, The Dictatorship of Relativism 도 ‘나라니가 성탄선물로 주었던  Barnes & Noble gift card  덕분에 사서 읽기도 했다. 나중에 알면  알 수록 이분은 역시 ‘명석한 신학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교황직을 완수하기에는 역시 ‘필수적 에너지’가 부족한 분이었고 그렇게 오늘 조금은 ‘사라지는 교황’의 모습으로 선종을 하게 된 것이 아닐지…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오늘이 2022년의 마지막 날이지만 예년과는 다른 날이 될 것이다. 3-2-1 Happy New Year! 를 올해는 안 하기로 내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연숙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이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 피곤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은 New York Time Square 광경 앞에서, 계속 눈을 비비며 그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올해는 역시 ‘아니다’ 였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샴페인을 미리 맛을 보며 오랜만에 취기를 즐기긴 했다. 아~ 취기가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인가? 갑자기 기쁘고 세상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친 김에 갑자기 카톡에 보이는 모든 이름을 향해서 새해 인사를 모조리 쏘았다. 어쩌면 그런 들뜬 기분이 들던지… 그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가끔은 이렇게 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Love Ozzie, Piccarreta, Milder Yearend…

Ozzie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는 날, 이것이 바로 나에게는 ‘건강한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으로 나는 ‘나는 감기에서 나았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침의 routine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이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알고 있다. 비록 연숙이 아직도 깨끗하게 완치는 안 되었어도 이제는 시간문제가 아닐까… 최소한 오늘, 내일은 분명히 ‘산책’도 할 수 있고 심지어 YMCA solo도 시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 하는 것 OK, OK!

Luisa Piccarreta, Servant of God… 오늘로서 이 수난의 기도들 ‘고리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소개의 말’인데 12월 4일 이것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기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26시간 (26일)의 ‘기도’가 끝난 지금은 훨씬 알게 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첫 고리기도 때, 거부감과 싸우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다. 하지만 미리 예상했듯이 이것 한번 하고 끝낼 것이 아니기에 시간을 두고 꾸준히 탈락,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이 분명히 나에게 신비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늘 모처럼 Ozzie 동네를 걸으며 새해를 맞는 동네의 모습을 천천히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 바깥(밖)에서 (Ozzie와 함께) 산책을 했던 것, YMCA 에서 운동을 했던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게 오래 전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2주 정도밖에 되지를 않았으니, 이것은 분명히 지난 2주일이 평범했던 시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나의 판단은 정확하다. 그 2주일 동안 우리는 감기로 모든 정상적인 생활이 멈추었던 것이기에… 100% ‘집콕, 방콕 (이제는 나도 이제 이런 최신 속어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은 아니었어도 머릿속은 그렇게 기억이 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역시 내가 걸린 ‘보통 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며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감기virus가 나한테 온 것일까?  지난 20일 오후부터 목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으니까 잠복기를 고려하면 그 며칠 전인데… 그때는 이틀 전인 일요일 미사참례와 그 전날 혼자서 YMCA에 갔던 것인데… 그때 걸린 것은 아닐까? YMCA 에서는 가까이 접촉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weight machine등은 소독을 철저히 하기에 감염의 기회가 낮았을 듯한데, 그렇다면 주일미사 때란 말인가?  Flu vaccine shot를 맞았기에 이 정도라고 자위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보통 감기조차 조금 무서워진다. 무엇보다 최소한 1주일 정도를 완전히 정상 생활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 정말 밥맛이 없는 것 아닌가…

 

기록적으로 추운 날씨가 서서히 물러간 뒤 처음으로 동네를 걷는다. 이 느낌과 모습이 이곳의 전형적인 겨울이 아닐지… 게다가 바람도 거의 없는 날씨여서 황량한 경치와는 대조적인 날이었다. 성탄 장식, 심지어 성탄구유도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 동네는 분명히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모두 풀지 못한 성탄 선물들이 늦게나마 오늘로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연숙이 나에게 주는 ‘내가 좋아하는’ 얇은 자주색 스웨터 와 새로니 부부가 준 실내 winter slipper, 이것은 Richard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신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뒤쪽이 아예 접혀서 신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새로니 딸, 우리의 손주 딸, 유나 바다… 성격이 조금 급하고 의사표시가 너무나 분명하다. 오늘 와서 하루 밤을 우리와 지내고 내일 가는데, 오랜만에 하는 애보기, 아~ 쉽지 않구나… 작년, 애를 보던 시절이 조금 잊혀져서 그런가, 무엇인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다른 집에서는 애를 보는 것인지, 그래서 그렇게 daycare center가 비싼 것인지… 그래도 귀여운 순간순간이 있기에 위안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우리의 나이다, 나이… 20년 아니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분명히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듯하니… 이제는 늦었다, 늦었어…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제와 어제 내가 들었던 짧은 말들이 어쩌면 오징어처럼 축 쳐진 나에게 생기 돋는 힘을 주는 것인지… 이런 것,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쁜 것이다. 그제는 이형 가게의 종업원 아저씨의 ’75세 모습의 놀라움’ comment, 그리고 어제 새로니 집에서 Richard의,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comment,  이런 두 가지의 지나가는 짧은 언급들이 앞으로 최소한 몇 개월을 사는데 큰 힘을 줄 것이라 생각, 아니 희망을 한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CANCEL & CANCELED, Family Gathering Together

결국 올 성탄, 연말 가족모임은 100% cancel되었다. 나라니가 아무래도 아직도 몸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재료만 준비하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서 두 집에 배달하고 선물도 교환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올해도 이렇게… 올해는 사실 나의 작은 감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니네 먼 곳으로 이사 안 가는 것과 나라니의 둘째 아기 가진 것 등으로 축배를 들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러 그곳으로 가니까… 아~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탄모임요리’를 만들어서 선물상자들을 들고 ‘거의 작년처럼’ 두 딸의 집에 가서 전해주고 들어왔다. 나는 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I-285 drive를 하는 것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런 것들은 진짜 가족모임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신명 나는, 즐거운, 보람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올해는 이상한 해로 끝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전혀 happy하지 않은 모습의 나라니 인상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조적으로 기운이 넘치게 보이는 새로니의 모습이 이런 기분을 조금 보상해 주긴 했다. 내일 새로니가 유나를 맡기러 올 것이어서 아예 오늘 간 김에 Ozzie를 미리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있어야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정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는 않았다.

 

몸도 근질거리고, 어제 이형 네 그룹과 만나서 느낀 것도 있기에 오늘은 혼자서라도 YMCA gym엘 갈까 했지만,  별로 good idea가 아니라고 ‘강제성 권고’를 하는 연숙, 속으로 ‘네~ 네~’를 되뇌는 나,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싸우지 말고 살자.

어제 이형네 retail store에서 나와 다른 삶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기에 나도 조금 자극을 받은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렇게들 사느냐 하는 놀람과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안전한 철부지 삶’을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한 곳에 앉아서 각종 영성, 철학, 과학 책들을 읽고 사는 나의 현재의 삶,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안 됨을 사람들을 만나서 깨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현재 삶의 성격에 이렇게 자랑하지도 못하는 듯한,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삶, 나와 너무나 다르고 듣고 보기에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사는 듯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가급적 세상적,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듯 보인다. 즐거움 이외의 다른 세계를 모르고 사는 듯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조금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더 ‘삶이 있는 현장 드라마’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제 이형 가게에 간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어떤 ‘찬물’을 뒤집어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고, 우울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외출이었기에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갖고 싶기도 하다.

 

과달루페, 과달루페~~ 이제 새해가 이틀 앞으로 … 머리 속은 역시 1월 말 예정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가득 차 있다. 성지에 대한 것 보다는 ‘여행 그 자체’, 집을 떠나는, 그것도 ‘멕시코’로 가는 것에 더 나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리라 기대, 희망을 한다. 그러면 이번 성지순례는 100%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로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가 24시간 (24일 동안)이 지난 뒤에 있는 ‘부록’으로 넘어갔다.  ‘수난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이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넓혀 보고 있다. 우선 그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조사, Amazon에서 보는 ‘서평’ 등으로 조금씩 ‘느낌’을 조절한다. 제일 관심사가  ‘이단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기도서 책의 감수자 격인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였기 때문이다. 99% 의 Amazon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듯 싶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작은 거부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100% fiction으로 치부하기도.. 하기야 영적, 믿음에 관한 것이니 그것도 이해는 간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이 불후의 명곡, 1969년 truly classic oldie가 오늘 아침부터 내 가슴에 와 닿는  하루의 주제곡이 되었다. 대학 3~4학년에 걸쳐서 조잡한 big box stereo LP player 를 통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듣고 들었던 것, 당시 나에게 troubled water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고통은 별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의 세계관이 기껏해야 발전적 공해 속, 최루탄 냄새의 서울거리에 불과했지만 머리 속은 항상 Life, Time magazine으로 보이는 세계, 특히 미국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그곳으로부터 신기루 같은 희망으로,  20대에 갓 들어선 젊은 머리 속은 최소한 겉으로는 ‘언제나 행복하고 신나는’ 때였다. 그러니까…  보일 듯 말 듯한 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인데, 문제가 있다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 졸업 후의  막막하고 깜깜한 허공이라고 할까… 그것이 당시의 troubled water라면 요새는 어떤가. 졸업은 몇 번이나 반복하며 했고, 심지어 지금은 인생의 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troubled water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과정, 고통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Bridge와 Friend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인가?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 마지막 시간 24시,  십자가에서 숨진 후 묻히신 아들 예수를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비탄…  이것과  현재 진행중인  나의 고통스런 생각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는 지난 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착각 속에 이즈음을 살아가는 것일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C형 그룹과 만난 이후 나는 다시 예의 상상적, 비관적 상념에 빠진 것인가?  이들과의 만남은 왜 가끔 나에게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추억하게끔 하는 것일까?

Cancel & Cancel… 오늘도 또 다른 cancel day가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오늘로 연기된 가족 성탄모임이 또 무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라니가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것이다.  음식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손을 놓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이런 ‘행사 취소’에 익숙해져서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다른 쪽으로는 ‘편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나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들은 가족 성탄 선물을 교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이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내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Three’s Company… 오늘 정오에 5년 역사의 ‘목요 그룹’ 3명이 간신히 해가 가기 전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이즈음에 한일관에서 모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그 전처럼 저녁의 쓸쓸한 시간의 한일관이 아니고 L형의 store에서 모인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낮에 이곳에서 모이면 전처럼 밤에 drive할 필요도 없고, 비싼 식당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역시 우리의 막내,  S형제가 수고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우리들 점심을 Chinese food 로 takeout 하고 게다가 선물이라고 Irish cream liqueur까지 우리에게 주었으니… 오늘 보니 점점 다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낀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이 친구와의 관계가 의외로 멋지게 끝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또한 현재 그의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니… 참 사람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McCORMICK IRISH CREAM LIQUEUR 의 맛이 의외로 포근하고 달콤하게 좋다.  작년에는 Canadian Mist 위스키를 준 것으로 즐거운 성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늘 의외로 또 이런 달콤한 ‘약한 술’을 우리에게 준 S형제, 솔직히,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속이 따뜻한 사람인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를 인정을 못하고 살았던 것 때문이다.

 

Cancel Days Aftermath, Can’t Die in a Cornfield!

어제 저녁부터 점점 심해진 ‘잔잔한 우울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침은 고육책으로 잠자리에서 정오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로써는 가끔 있는 희한하게 보이는 괴벽이지만 하느님이 보시면 측은하게 보실 것이다. 다행히 연숙이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한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와중에서 외출, 특히 오늘 예정된 S 베드로 형제집에 놀러가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또 하나의 cancel 희생물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혹시 우리가 무리를 하면 못 갈 것도 없을 듯한데~ 하는 각종 후회의 느낌을 쫓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다. 아~~ 미안해~~~ 잘못했어~~~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편으로 그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될 것인가? 특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지만 이제 물 건너 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어두운 밤’ 속에 나는 각종 추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어둠 속의 추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름답고 감미롭게 남아있던 그 추억들 조차도 모두 어둡고 잊고 싶은 추억으로 변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슬펐다. 지나간 과거지사, 추억들은 나의 보물, 자랑거리이기도 했지 않은가? 그곳으로 도망, 피난을 가면 나는 편하고 행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조차 이렇게 변하고 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슬픈 것이다.

특히 1973년부터 1977년 간의 추억은 극과 극,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오가는 시절로 다시 재조명이 되는 것이 제일 끔찍하게 놀랍다. 그렇게 ‘멋지고 행복했던’ 추억의 뒤쪽에는 이제까지 잊고 살던 악마의 모습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개인역사가 세월의 뒤안길에서 퇴색하고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사후에 ‘꼭 거쳐야 한다는’  life review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악몽의 24시간 뒤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밝은 하늘, 웃는 성모님의 위로의 미소, 든든한 하느님의 보호, 은총, 자비 등등이겠지만 현재로써는 전혀 실감이 가지를 않으니~~ 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 현존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나의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이제 조금씩 우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일 저녁의 진희네 그룹의 식사모임부터 약속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성사생활, 특히 매일미사, YMCA등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요일의 가족모임과 S형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새로니 식구 돕는 것으로 2022년을 안전하게 마감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뉴스들을 보니 이번의Northeast  snow storm은 거의 50/100년만이라고 나온다. 일기예보가 조금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일기가 돌변한 것인가… 지역을 보니 대부분 이런 엄청난 일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그것보다 훨씬 심한 모양~~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2014년 우리가 이곳에서 겪었던 ‘일기, 교통 대란’ 일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좌우지간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의 얌전한 날씨에 계속 감사한다.

지난 밤 (거의 정오까지 계속된) ‘어두운 밤’을 지내며 특별히 집중적으로 추억을 한 것이 1973년 이즈음 때였다. 당시의 유학생, 간호사들, 이제 자세한 것들이 퇴색된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생생하던 것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탓이기도 하고 나의 뇌세포의 노화가 이유일 것이다. 나의 고백 자전적 수기 ‘Peru, Nebraska’를 제때에 완성을 시켰으면 지금 편안하게 이용을 할 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사람의 이름, 얼굴들은 생각이 나는데 timing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수기를 보충하는 노력을 해 볼까… 야심 찬 생각인가?

You Can’t Die in a Cornfield!  Handel’s Messiah가 거의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1980년 Holiday film, A Christmas without Snow를  또 다시 보며 다시 듣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의 가슴을 울리는가? 그렇다, 그렇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갖가지 어려움과 사연을 안고 크리스마스 메시아 공연 직전 지휘자이자 그룹리더 (John Houseman 분) 가 중풍으로 쓰러지며 공연이 무산되는 순간 나온 이 외침,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Nebraska 주의 독특한 지역성 표현 덕분에 순간적으로 해결책이 발견되었던 것, 그렇다 여기서 중지할 수는 없다, 나아가야 한다.

 

Totally Grounded Christmas Day

모처럼 성탄 일요일 아침에 ‘진짜 TV’  CBS의 전통을 자랑하는 ‘SUNDAY MORNING’의 시작을 잠깐 보게 되었다. 아~ 이것 오래된 것 아닌가? 그것도 12월 25일 아침에 방영되는 것이고, 사회자로 나온 사람을 보니… 아~ 금세 알아보는 얼굴, Jane Pauley다! 비록 멋진 화장과 차림을 하고 있지만 나이는 만만치 않을 이 여성… 1974년 여름 Chicago로 기억은 돌아간다. 그 당시 처음 Chicago 의 local TV anchor로 선을 보인 것, 아직도 기억을 하니~~ 정말 청순하고 애띤 모습이었었다. 이후 그녀는 우리의 예상대로 승승장구하며 CBS national news anchor가 되어 은퇴를 했고 현재는 이렇게 special programming에서 모습을 보인다. 이 여성과 함께 기억되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얼마 전에 암으로 타계를 한 singer Olivia Newton-John이다. 둘의 얼굴 느낌이 참으로 비슷하고 비슷한 시기에 debut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얼굴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낸 듯하다. 나의 감기는 이제 많이 나아가고 있지만 연숙은 지금 시작 단계라고 생각하니 모든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잠깐 쉰다고 생각하며 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화가 나며 점점 우울해지고 심지어 슬퍼지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렇게 성스러운 날이 가장 잊고 싶은 날로 바뀌었을까? 누구의 잘못인가?

성탄절 하루의 후반부는 완전한 어둠과 사투를 하는 심정이 되었으니..  제일 괴롭히는 것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 무산된 것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사라진 집이 어쩌면 그렇게 무덤과도 같았을까? 하느님, 어떻게 이렇게 된 것입니까?

5일 전, 지난 화요일 나로부터 시작된 목 감기로, 고해성사부터 시작해서 성탄 가족모임, 성탄미사까지 모두 사라진 모습이 처절하게만 보인다. 어떻게 이것을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럴 때 나의 모습은 비겁자의 극치로 보인다. 용기나 깡이라곤 하나도 없는 식물인간같이 축 쳐진 나의 모습이여~ 제발 사라져다오~~

뒷집 동포 방선생 댁에서 성탄선물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어젯밤에 보낸 것을 보시고 ‘못 참고’ 답례를 하신 것,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예우를 하는 정성이 고맙다. 이런 것으로 같은 이웃으로 사는 보람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이런 holiday가 한 역할을 한 것 아닐까?

거의 하루의 반 정도는 (PC) monitor screen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냈다.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괴로운 생각들을 떨치는 데 이것처럼 손쉬운 방법이 어디 있는가? 이런 것들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했을까? 특히 이런 때  YouTube의 위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듯한 것들을 AI라도 동원된 듯 알아 맞추어가며 나를 이끌고 있는 것,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끌려가는 듯한 나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차! 하면 fake, disinformation에 빠질 위험도 있으니…

TV programming은 물론이고 NYT 의 작은 기사까지 하루 종일 샅샅이 읽고 있는 나, 나의 영성, 과학 서적들은 어디로 갔는가? 성탄절 날 미사는 고사하고 교우들의 모습도 하나도 못보고 이렇게 외롭게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과 장시간 싸우고 있는가?

2019년 이후 다시 보게 된 이 Czech Republic의 Handel의 Messiah 공연모습, 3년 만인가? 비록 2011년에 실제공연 장면이지만 내가 처음 본 것은 2019년 성탄 무렵이었고 이번 성탄에 다시 보게 된 것, 우연인지…

올해는 사실 어제 영국 King’s College 의 메시아 공연 video를 먼저 보다가 문득 이 것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아직도 ‘그곳’에 video는 건재하고 있었다. Hit count도 그때 이후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King’s College와 이 Czech Republic의 공연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이것이 더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conductor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성탄절의 ‘만기석방’ 선물이라고 할까, 거의 한달 동안 ground되었던 Izzie를 오늘로써 용서하는 gesture를 보여주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나에게 가까이 오려고 탐색을 하는 모습이 이제는 불쌍하게 보였기에 오늘 직감적으로 풀어준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조심을 하여야겠지만 더 이상 이런 ‘심리적’인 압박을 주지 않고 싶다.  언젠가 이별을 하는 것을 예상하면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싶다.

 

COLDEST Theraflu CHRISTMAS EVE

며칠 째 이 ‘달콤한 쥬스’ 약, THERAFLU를 계속 ‘마시고 마신다.’ 이것의 성능은 얼마나 감기 증상 초기부터 끊지 않고 복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이번에는 증상이 느껴지자마자 시작을 했고 며칠 째 계속 하고 있어서 이 정도로 견딘다고 믿는다. 물론 예전에 맞은 flu shot도 크게 증상을 완화할 것이다. 비록 시간을 질질 끌어도 증상은 역시 견딜 만 하니…  이 THERAFLU를 복용할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은 역시 어렸을 때 우리들의 쓰디쓴 맛의 각종 약들을 먹을 때다.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 당시 약들, 정말 거의 독약수준의 쓴맛이었으니… 아플 때마다 아픈 것보다 약 먹는 고통이 더 컸었을 것이다. 지금 먹는 각종 ‘물약’들은 거의 달콤한 주스 수준이어서 아예 약 먹을 시간이 기다려지는 착각에 빠지곤 하니…
드디어 연숙의 감기가 현실화 되었다.  물론 나로부터 전염이 되었음을 자명한 사실이다. 목부터 아파오기 시작, 나와 100% 같은 증상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직감적으로 최소한 2~3일 정도가 지나야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이니…  이제부터 제일 문제가 오늘의 가족모임인데… 하지만 이것은 어렵지 않게 결정이 되었다. 일단 모든 모임을 취소, 접기로 했는데,  내가 일부러 감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니.. 게다가 성탄절 미사도 거의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조금 외로워진다. 다음 문제는 월요일에 서베드로 형제집에 초대를 받아 가는 것인데 그것은 50/5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지난 밤을 지나면서 드디어 single digit의 기온으로 떨어진 아침, 온도계를 보니 8도 [섭씨 영하 14도 ], central heating은 아직도 계속 나오고 모든 space heater까지 모조리 동원되었다. 혹시 물이 안 나오나 check를 해보니 이것은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한파 첫날은 넘기는 셈인가?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기침으로 잠을 설칠 듯했지만 거의 기적처럼 한번도 그런 문제가 없었던 것,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일어나면서 다시 나오는 기침, 그래 이렇게 서서히 없어지는 것이겠지…

아무것도 안하고, 못하고 멍하니 screen만 망연자실 처다 보며 성탄이브를 지내는 것, 나중에 어떤 추억으로 남을 것인지…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그래도 추위와 어두움을 뚫고 이웃 3집에 성탄 선물 봉지를 놓고 왔고, 덕분에 동네의 찬란한 불빛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Ohio State 시절 성탄전야에 Buckeye Village의 몇 친지 집을 돌며 선물을 돌리던 추억이 아름답게 아롱진다.

또 다른 Ohio State 시절의 추억, 성탄 밤 미사 이후에 집에서 Vatican Midnight Mass를 TV로 보던 것, 이번에는 집에서 거의 현지 중계로 미사광경을 지켜보았다. 로마 바티칸 현지 성당의 느낌은 100% 느낄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것으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다.

물 건너간 가족들과의 성탄전야 모임이 cancel 이후 갑자기 생긴 많은 시간들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아니~ 지루하기까지 한 것이다. 성탄의 기분에 걸맞은 것 중에 HandelMessiah 보다 나은 것은 없지 않을까? 매년 새로 나온 것을 보곤 했는데 올해는 ‘우연히’ 영국의 King’s College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이 ‘대작’을 조금은 이해도 하게 되었고 어떤 부분은 익숙하게도 되었다. 물론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이기에 아주 timing이 완벽하다.

 

Theraflu Days, Record Low, Common Sense Triumphs…

아~ 나의 Cold Flu, 감기여, 어제는 목이 안 아프길래 다 난 것처럼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는다. 다만 심하게 아프지만 않을 뿐인데 이것이 정상인가? 만약을 위해서 어제 새로 사온 Theraflu 를 일어나자마자 먹는다. 내일, 모레, 글피 모두 social gathering이 있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어쩔 것인가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일어나 바깥 온도계를 보니 17도, 아마도 이것 조차 서서히 하강하는지도 모른다. 바람소리는 예상했던 대로 거의 없는데~ 앞으로 커질 것인가 모르겠다. 연숙이는 지난 밤 꼬박 새웠다고 하니 아마도 오늘 우리 집 아침은 ‘슬플 정도로’ 조용할 듯~~ 제일 따뜻한 옷으로 완전히 bundle-up한 나의 ‘늙은’ 모습이 조금 웃기게 보일 것 같지만, 다행히 나를 연숙이와  Izzie외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심이다.
결국은 오늘도 sick day로 보낸 하루가 되었다. 눕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앉아 있기에는 조금 불편한 것, 기침도 계속 나는 것이 손쉽게 이 감기가 끝날 것 같지 않다. 한마디로 나는 현재 아주 정상이 아닌 것이다. 무슨 zombie처럼 된 느낌으로 한가지에 집중도 못하며 이것 저것 Youtube를 방황하는 하루가 되었다.

날씨는 예보된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물론 바깥으로 나가지를 않아서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기온은 역시 20도를 못 넘기는데 오늘 밤부터는 아예 single digit로 계속 이어진다니 사실 이것은 10년 만의 추위가 될 듯하다.

하도 감기약을 계속 먹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것은 엄두도 못 냈지만 대신 screen reading은 문제가 없어서 거의 하루 종일 날씨 뉴스와 DONALD ‘개XX’ 에게는 bad news가 되는 것들을 보며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았다. 남의 불행을 이렇게 나의 행복으로 여긴 것,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닌데… 이것은 예외다.  오늘의 ‘청문회 보고’에서 그 놈이 모든 사태의 유일한 주범임을 선언을 한 것,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이것이 과연 그 놈의 마지막 과정의 시작이 될 것인가,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제 잠깐 보았던 NYT ‘흑인’ Charles M. Blow의 DONALD ‘개XX’에 대한 column을 읽으며 역시 나의 생각이 보편적 상식적인 것이었구나 하며 안심을 넘어 쾌재를 불렀다. 자세한 사실들 을 떠나서 이 논평의 중심논리는 나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다시 한번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말을 재확인하는 2022년 송년을 맞는다.

GODS DON’T BLEED. TRUMP IS BLEEDING

December 21, 2022

Charles M. Blow

New York Times Opinion Columnist

 

I wrote in 2019 that Donald Trump ascended to folk hero status among the people who liked him, which meant that his lying, corruption, sexism and grift not only did not damage him, they added to his legend.

The folk hero is transcendent. He defies convention and defies gravity — in Trump’s case, political and cultural gravity. He overcomes the impossible, wins the improbable, evades authority.

He was a classic trickster figure, common in folklore.

For instance, for a Black child growing up in the American South, Stack-O-Lee (or, among other variations, Stagger Lee, as we pronounced it) was a folk hero. “Stack” Lee Shelton was a Black man, a pimp, who in 1895 shot another man dead for snatching his hat. The story became the subject of so-called murder ballads. Shelton bolstered his legend when, after being released from prison, he killed another man during a robbery.

This man, this figure, who negotiated the space between slavery and freedom, between criminal and hero, “came to personify the collective feeling of blacks at the bottom of society, and it was in this sense that Stagolee became a symbol of the Black community,” as Cecil Brown wrote in his book “Stagolee Shot Billy.”

Writing in Mother Jones in 2011, Joe Kloc described how Stack-O-Lee became a hero in Southern Black society by unapologetically breaking its rules. The murders he committed “only serve to illustrate the injustices of southern society,” Kloc wrote. “For all the myth surrounding him, there is something very rational about Stack-O-Lee’s character: Why follow some of society’s rules when so many others work against you?”

This is why I so instinctively understood Trump’s appeal and heroizing.

Years, decades, of twisted propaganda had turned working-class white people into a victimized class. These white people saw themselves as the new Negro, in a turned-tables alternate reality. Society’s rules threatened to — or, had already begun to — work against them.

Trump, the trickster and rule-breaker, emerges as an amalgamation of their anxieties and rebellion. He was a politician, but to them, above politics. The Donald was approaching deity. His followers embraced a cultish zealotry.

But things have changed.

Dark & Long Winter Begins, Time’s Zelensky

어제 저녁 어둠이 잔잔히 깔릴 무렵 우연히 밖을 보니 수 많은  하얀 그 무엇들이 도로변으로 줄을 서 놓여있다.  그것들은 모두 촛불들이었다. 아~ 촛불이 다시 켜지는 때가 되었구나. 어둠이 깔린 후에 다시 보니 역시 모두 아련히 촛불들이 켜져 있었다. 이것이 성탄과 상관이 있었나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 아니고 분명히 오늘이 동지라서 그랬을 거라는 결론~~  Pandemic이 시작되면서 시작된 우리 subdivision의 겨울시작, 동지의 전통이 되고 있다. 제일 기나긴 밤 동안 이 불들이 우리의 가슴을 훈훈히 녹여줄 것을 생각하니 이것을 준비해 준 우리 동네 억척[아지매] volunteer들의 ‘동네사랑’ 봉사정신에 머리가 숙여진다.

어떻게 이번, 아니 올해는 ‘동지’를 완전히 잊고 살았을까? 오늘은 몸이 성치 않았으니까 그렇다 치고 지난 며칠 동안도 거의 이런 큰 절기의 변화를 잊고 살았으니 말이다. 이곳의 동지는 사실 제일 긴 밤이라는 것 뿐, 기온이나 날씨와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연말 때의 경험은 더 따뜻한 적도 많았다. 한가지, 이제부터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나는 왜 그런지 아쉽기만 하다. 왜 그럴까? 긴 밤이 나는 왜 좋은 것일까? 나는 이래저래 ‘긴 밤, 어두운 비’ 등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오늘 ‘순병원’ regular checkup day, 항상 이곳에 가면 기대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를 않음을 안다. 요새는 거의 모든 일을 NP들이 하고 MD를 만나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이것으로 나날이 오르는 의료비를 control한다고 하지만, 가끔 짜증도 난다. 이들 NP들, 어떨 때는 기대이상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고 반대일 때도 그만큼 있다. 오늘은 그런대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은 옥의 티라고 할까… 하지만 이 정도면 OK. 오늘은 blood test만 했는데, 지난 번의 검사결과의 진행상황을 보려는 듯하다. 제일 희망적인 것은 연숙의 kidney 에 관한 문제의 가능성이 거론되지 않은 것, 콩팥 수치가 borderline이라서 그런지… 한때 이것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추후로 큰 문제가 없는 듯해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쉰다. 식생활 습관에 신경을 쓰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이런 정도의 건강상태면 노력을 해서 그대로 유지하면 되는 것이니까… 조심 조심…

집으로 들어오면서 Kroger에 들려서 ‘푸짐한 먹거리’를 사서 들어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Sushi, fried chicken, pecan pie, croissant etc.. 구세군에 $5 도 헌금을 했고, Holy Family 성당에도 $100 헌금을 하자고 연숙이 제안을 해서 모처럼 훈훈한 느낌이 우리 둘 사이를 오간다.

들어오면서 온통 관심은 날씨와 Ukraine 대통령 Zelensky의  ‘깜짝’ 미국방문에 관한 소식들이다. 대신 DONALD ‘개XX’의 소식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으니 나에게는 정말 살맛이 나는, 신나는 시간을 살고 있다.

미국인의 영웅으로 부상한 젤렌스키, 어찌 그가 올해의 TIME magazine의 인물로 선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웅이 아니라 세기의 악당들이 미국이 득실거리며 온 세상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이때에 이런 귀한 영웅은 조금 더 많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진정한 NATIONALISM이 무엇인지를 성서급으로 격상해서 보여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 Wind Chill-Day라고 불리는 날이 내일로 다가온다.  다행히 내일은 외출 해야 할 일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쉬운 것은 이런 때 흐리거나 눈발이 날렸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도 day off를 할 것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집안만 포근한 느낌이 들면 이런 날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젊었을 적의 생각이었는데.. 아~ 그때가 좋았지, 멋졌지, 편했지, 사랑스러웠지… 그립다 그런 느낌의 시절들이…

내일 날씨에 대한 큰 문제는 바람과 추위에 과연 우리 집이 어떻게 견디는가 하는 것이다. 바라는 만큼 insulation을 못하고 사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리는데 결국은 once-in-generation-arctic-cold-blast  의 상태까지 온 것이 나도 부끄럽기만 하다.

목감기~ 목의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이제는 콧물과 재채기 같은 것만 남아있다. 젊었을 때를 기억한다면, 확실히 flu shot의 효능은 대단한 것 같다. 그 옛날, 이런 것은 거의 일주일을 넘어가며 기침을 계속했지 않았던가? 만약 오늘로 거의 다 낫게 된다면 나의 flu shot에 대한 생각은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난의 시간들’, 벌써 19일째가 된 것, 또 ‘벌써?’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벌써, 벌써? 싱겁게 짧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고통이 격해지면서’ 점점 길어지는 것들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이 처음이라는 것을 핑계로 깊은 묵상을 할 엄두는 내지를 못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OK, OK…

 

 

Collage 1968~1970, Penance, Harmony Beckoning…

1968/70 년경의 사진들의 collage, 오늘도 추억의 영상을 담고 싶어서 photo collage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목표는 YouTube video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utility를 찾는 것이었다.  전에 손쉽게 쓰던 Microsoft Photo Story 3 이외에 오늘은 2012년 마지막으로 나온 그 전통적 classic video editor였던 Microsoft Movie Maker 2012를 찾아서 install을 해 놓았다. 나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곳으로 모여 남을 수 있으면… 이것은 핵전쟁이 나지 않는 한, 어느 곳에건 남아 있을 것이다.
연호회 혼성그룹친구들이 함께 모였던 관악산, 연세대 과 친구들이 모인 덕수궁, 원서동 삼총사가 함께 등산을 했던 지리산, 남녀 4명이 함께 갔던 소백산 연화봉…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도 이런 ‘흑백 추억의 극치’는 지금은 맛보기 힘들 것 같구나…

온통 나의 머리 속은 모레로 다가온 수요일 오후의 판공성사로 불편하다. 마지막 판공성사를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이 갈수록 이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은 것, 나 자신도 느낌이 좋지 않다. 항상 뒤끝이 묵직~ 한 것이다. 2014년 전후로 내가 이것에 엄청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은 아직도 교훈적인 기억으로 남기에 나는 이번에 다시 그러한 시도를 하고 싶은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사탄이 나를 방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 시간이 났을 때 성사 준비작업에 들어갔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성사를 보았는지조차 확실치 않으니… 하지만 각종 기록을 거의 다 찾아서, 작년 3월 부활판공을 이영석 요한 신부님께 했던 것이 확인 되었다. 기록을 보니 거의 매년 나는 판공성사를 보았지만 2020년은 Pandemic으로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일은, 작년 고해 이후 내가 어떤 잘못,  소죄를 지었는지 찾아내서 정리를 해야만 한다. 이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기와 일지에서 유추할 수 있고,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서 고해실에서 고해 신부님과 마주하면~~  2022년은 무사히, 개운하게 넘어가는가? 왜 고해성사를 하는가? 이재욱 신부님 말씀대로 ‘묵은 때를 벗기는’ 것, 그 동안 몸에 때가 많이 낀 것을 목욕하는 기분으로 벗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다행히 대죄에 해당하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지독한 때’는 없으니까…

남성 화음의 유혹:  얼마 전인가, 주일 아침미사에 다시 ‘생음악’ 남성 중창단이 등장을 해서 이제야 Pandemic이 지나간 느낌을 보여주며, 덕분에 아주 살아있는 신선한 미사가 되었다. C 베로니카 자매에게 들어보니 그 지난 주에는 4명 남성 이었다는데 2명이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두 명의 형제님을 보니, 둘 다 낯설지 않았는데 한 명은 독서 전례도 하고 하얀풍차 bakery에서도 자주 보았던 부부의 남편이고 다른 분은 조금은 나이가 있는 분이었다. 둘 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화음도 적당해서 듣기가 좋았다.그런데 주보에 성가대원을 모집한다고 난 것을 보았는데, 갑자기 연숙이 나보고 해보라고 뜬금없이 운을 뗀다. 이런 것 잊고 산지가 까마득한 세월[40+년]이었는데, 솔직히 놀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라는 나의 생각이었는데… 급기야는 연숙이 그들에게 나의 얘기를 한 모양으로 나보고 아침 7시 45분 성가대실로 오라는 것이니…  우선 거절을 해야 하는데.. 미사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그렇고, 다시 교우들과 마주보며 노래를 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얘기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를 않았으니.. 오묘한 것 아닌가?

오늘 YouTube에서 한국 수원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연말 프로그램으로 그 지역(대교구) 신부들로 구성된 ’30년 전통 갓등 OB’ 중창/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우연일지, 아니면 무엇인가? 갑자기 우리 성당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연숙이 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성당 봉사에 이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으니… 그렇다,  급속도로 공동체 내에서 노년으로 밀려나는 느낌도 줄이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여기에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오늘도 책, Those Who Saw HerGuadalupe story를 (쓰며) 읽는다. 이 story는 물론 거의 전체를 이미 읽어서 아는 것이지만 이렇게 다시 읽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다가올 1월 말 Mexico 성지 순례에 서서히 준비를 시키려는 것이다. 천천히 가급적 가벼운 묵상을 곁들이며 계속 계속 이런 과정을 밟고 싶다. 우연히 나의 등 뒤에 ‘숨어 계셨던’ 이 Guadalupe Juan Diego tilma상본, 그것을 아예 나의 desk 앞으로 옮겨 놓았다. 십자고상과 함께 나를 그곳으로 무사히 인도해 주소서~~

<‘시편으로 바치는 기도’  가장 완전한 기도> 토마스 머튼/오수무 옮김, 100 쪽도 되지 않는 성바오로 수도회 수도자들이 홍보수단으로 제작한 소책자, 발 밑에 있는 책 더미 속에서 발견했다. 저자는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 그런데 이것을 토마스 머턴으로 음역을 했는데, 사실 이것은 머튼이 더 널리 통용되는 것이 아닌지.. 머턴도 보았고, 머톤도 보았는데 머튼이 제일 익숙한 표현일 듯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책의 제목의 주장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온다. 시편이 가장 완전한 기도… 그것도 그 유명한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의견이고 주장인 것이다. 2006년 성탄 무렵 순교자 성당에서 최성영 보좌신부님 지도로 시편 전체를 공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나의 수준으로 ‘시편’이란 말 조차 고귀하고 별처럼 멀게 느껴지는 때였는데, 이제는 수많은 연도 등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솔직히 이것이 완전한 기도라는 것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번 성탄 무렵에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 읽기 시작하니 거의 모든 머튼의 ‘주장’이 손쉽게 머리에 들어온다. 올 성탄의 선물이라면 어떨까?

지난 2주 이상 나는[할머니 고양이]  Izzie와 ‘냉전’ 중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라고 계속 나를 세뇌시키며 견디고 있다. 2주 이전에 이 녀석에게 피가 조금 나올 정도로 손을 물린 이후에 크게 결심을 한 것, 일단 이 녀석과 거리를 두며 살아야겠다, 나를 조금은 무서워하게 해야겠다, 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곧바로 [숙적 개] Ozzie가 집에 와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며 살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문제는 Ozzie가 떠나면서부터다. 이제는 우리 둘만의 시간 뿐인데… 하지만 현재까지 나는 굳을 결심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의 근처에 못 오게 하는’  강 훈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가슴 속으로 ‘미안해, 미안해’ 일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이런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참, 동물친구들과 살기 쉽지 않구나…

기타, 통기타~  guitar, my guitar~~  몇 년, 특히 Pandemic을 포함한 거의 4~5년의 세월 동안 거의 이것을 잊고 살았다. 2016년 성당에서 6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 모임을 하며 몇 개월 본격적으로 가까이 했던 것과 2018년경 구역모임에서 몇 번 가까이 했던 것이 그야말로  마지막이 된 것이다. 당시 손끝에는 굳은 살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진 터 [흔적만 겨우].. 다행히 흔한 chord 를 잡는 것은 그대로인데 각종 노래들의 chord progression은 많이도 잊어버렸다. 나이 탓, 세월 탓일 거다.  그래도 아직 손가락의 힘은 크게 빠지지 않은 것에 진실로 감사를 한다.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Fourth Candle, Early Seventies, Deep Freeze

첫 대림 초가 켜지던 때가 3주 전, 오늘 마지막 초가 ‘귀여운 어린이 복사’에 의해서 점화되는 것을 본다. 아~ 이제 기다리던 때가 일주일 남았구나.  특별히 대림 시기 동안 준비하며 산 듯하지도 않고 특별한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로 영적으로 게으르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조금은 이르지만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시작했지 않았던가? 마지막 큰 일은 역시 판공성사, 고백성사인데 이번 수요일에 특별 판공성사가 준비되어서 그때 가서 하면 될 터인데, 근래에 이 ‘어려운 성사’에 거의 신경과 시간을 쓰지 못해서 솔직히 미리부터 겁이 난다.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C베로니카, 프카 자매까지 4명이 함께 판공성사엘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은 한마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싸움’을 목격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갑자기 얼음장 같은 냉기가 이 지역으로 몰려온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인지, 오늘 아침 주일미사 차 외출하는 것,  갈까 말까, 끝까지 미루며 갖가지 유혹과 치열한 전쟁을 버린 것이다.  99% 포기를 해서 ‘오늘은 가기 싫다’ 로 정하는 순간, 1%의 기적의 은총이 나를 평소보다 30분 늦게나마 일어나게 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왜 이런 유혹이 나에게 온 것일까? 영성적, 교리적으로는 분명히 ‘사탄’의 영향, 아니 아예 그가 나를 정복한 듯한 기세가 아니었을까? 어떤 종류의 유혹인가?  성당 미사엘 가서 보게 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싫어진’ 듯한 느낌,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고, 아마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축인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1% 기적의 은총으로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일미사의 모든 일정을 가볍고 즐겁게 마친 것인데, 나중에 그 ‘잠재의식’이란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줄줄이’ 생각들이 난다. 특히 최소한 지난 5년 동안 내가 성당공동체에서 겪었던 적지 않은 ‘인간에 의한 고통’들이 깊숙이 숨어있다가 일시에 살아나온 것인데, 그런 것들을 영원히 잠재울 수가 없기에 잊으려 애를 썼지만 오늘처럼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유혹이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로 영적상담을 사제들과 하면 분명히 ‘잊거나 용서하라’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나에게는 ‘잊는 것’이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진다.

오늘 미사에 뒷자리 고정석 교우 마리안나 자매가 처음에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자리를 뺏긴 것으로 그 옆자리에 모습이 보였다. 먼저 반갑게 와서 손까지 잡고 인사를 한다. 성탄 때는 알라바마 주에 간다고, 미리 인사까지… 그녀의 손은 연숙이처럼 따뜻했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그 자매의 조금 어두운 모습은 여전했다.

오늘 유혹을 완전히 누르고  미사참례에 성공한 것에 대한 은총인가, 오늘따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이 미사 후에 눈에 뜨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한마디로 한 사람 한 사람들로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에너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online이나 virtual한 것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눈과 손이 닿는 이런 관계는 현재 우리와 같은 senior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오늘도 미사 후에 관심은 역시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여전히 아주 활달하고 건강했고, 하얀풍차의 모임도 C베로니카 자매의 참석으로 비교적 유쾌한 자리가 되었다.

오늘 오후는 이러한 ‘유혹에 대한 승리’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편히 쉬는 시간들이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녹음된 나의 추억의 옛 노래, 오솔길을 다시 들으며 그 곡이 유행하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그때는 아마도 1970대 초였을 것이어서 그 당시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옛 사진을 거의 안보고 살 정도로 바쁘게 지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된 것이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미국에 오기 전까지의 ‘주옥 같은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들을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들, 현재 병중에 있는 친구들도 보인다. 가족들, 그리고 한때 깊이 사귀었던 여성들도 있는데, 솔직히 그 모습들을 보니 당황하고 거의 감추고 싶은 유혹까지 드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나의 심정일까… 그런 모든 감정, 느낌들이 당시의 hit folk song인 ‘오솔길’에 스며들어 있다. 이 recording과 나란히 어울리는 추억의 사진 collage 를 급하게 만들어서 ‘블로그’에 남기고 싶다.

이번 주의 특별 관심DEEP FREEZE란 것이 되고 있다. 특히 성탄 전후의 기온이 장난이 아니게 10~20도… 아마도 10여 년 만의 강추위가 아닐까? 기억에 2014년 11월 중에  polar vortex란 이름으로 정말 추웠던 때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12월은 대충 견딜만한 따뜻한 때였는데…  조금 덜 춥고 대신 눈이라도 오면 얼마나 재미 있을까?  이번 주에는 내일, 모레 로난 네가 오고, 수요일은 판공성사, 목요일은 순병원 등등이 있어서 더욱 날씨에 관심이 간다. 아차 하면 했던 성탄 직전의 눈발 예보는 이제 사라진 것이라, 그저 춥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Miraculous Tilma, Guadalupe

오늘도 Guadalupe 를 향한 여정의 첫걸음을 천천히 계속 걷고 있다. Youtube에서 보았던 ‘성모님의 눈 속에 보이는 영상물’들이 포함된 것, Wikipedia의 길고 긴 백과사전적인 사실적 고찰 등등, 그리고 이곳에서 tilma에 새겨진 영상도 download해 두었다. 1988년 경,  Madison [Wisconsin] 에 살 때 김희선 방문사제신부님이 Mexico 성지순례에서 사오셔서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신 커다란 두루마리 발현 사진이 있었는데 하도 오래되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우리가 순례를 가게 되면 조금 비싸더라도 질이 좋은 상본을 사와서 우리 집과, 가까운 주위에 나누어 주면 어떤가… 이런 것은 생각만 해도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Luisa Piccarreta의 ‘수난의 시간들’,  묵상 기도 벌써 13시, 13일째를 맞는다. 온통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고통, 고문의 연속인 이 수난의 여정을 매일 아침 꼬박꼬박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물론 괴롭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 묵상기도문의 십자가 고통에 대한 너무나 자세한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히 고문에 속한다. Mel Gibson의 Passion 이 혹시 이것에서 idea를 얻은 것이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나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희망의 결여’된 삶과 이 십자가 고통의 여정을 비교하며 예수님의 도움을 강하게, 열렬하게 간구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 저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입니다…

샤브샤브… 이름도 해괴하게 들리는 이것, 일본아해들이 즐겨먹는 전골 비슷한 것, 우리도 가끔  점심으로 먹게 되었는데, 그것을 끓이는 electric cooker가 문제가 있어서 쓸 때마다 신경을 돋군다. 그것 외에는 먹는 것 자체는 문제도 없고, 육식을 거의 안하고 [고기 값, 장난이 아니다] 살기에 이런 요리는 거의 특별식에 속한다. 이번에는 electric이 아니고 open flame이 보이는 portable gas cooker를 쓰기에 전처럼 ‘끓나 안 끓나’ 하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 음식을 자세히 보니 한마디로 건강식에 속한다.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거의 균형식인 것이다. 고기 값만 너무 오르지 않으면 조금 더 자주 즐겨도 될 듯한데… 

 

Pancake Friday, Doraville H-mart, Catholic Calendars

벌써 금요일? 허~ 참 시간, 세월 죽인다~ 어쩌면 이렇게 지난 주가 이번 주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가? 금육의 금요일, fish Friday~  아침은 역쉬~ 나의 mini-pancake이 그 효력을 발휘할 날이고,  egg, slice of apple, grape 그리고 KEURIG coffee… 오늘 그렇게 간단하게 아침이 해결되었다. 점심은 아마도 fish 쪽으로 갈 것이고…

12월은 역시 전통적으로 우울함과 슬픔이 교대로 나와 함께 사는 시기인가? 왜 이다지도 우울한 마음이 지속되는 것인가? 분명히 이런 감정이 시작된 표면상의 원인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내가 잘 처리, 관리하고 있다고 자신을 하는데… 또 내가 너무나 한가지만 생각하고 있는가… 그래,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아마도 이런 이유를 생각할 수는 있다. 거의 몇 개월째 미루고 있는 kitchen undersink work, 그리고 나의 study room의 어지러운 모습들, 특히 책과 서류들.. 모조리 방치되어 있는데 나는 거의 무시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원인인가 결과인가 구분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런 ‘게으름’은 나에게도 조금 드문 것인데, 문제는 너무나 잊고, 둔감해진 것, 한마디로 desk에서 나의 몸을 멀어지게 하지 않고 사는 것, 이것이 진정한 현재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금 희망은 보인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할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건은 과연 언제 내가 tool time의 시간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뿐이다. 절대로 어렵지 않다… 절대로…

나를 행복하게, 보람차게, 즐겁게 하는 것, 시간들은 현재 무엇인가? 나의 관심과 질문은 ‘사람들과 연락, 교제, 친교’를 해야만 그런 시간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고립되어, 홀로, 나만이 지내며 이런 내면, 외적인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수도자 은수자 들이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제는 완전히 정이 든 Doraville H-mart,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 반 세기 전의 한인 mom & pop grocery  ‘꾀죄죄한’ 모습이 겹친다. 참 많이도 변했다. 김치를 양배추로 담 구어 먹었던 시절들… 미국 이민 사회는 역시 덩치가 커져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다행히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비례해서 이곳의 우리들 삶도 향상이 된 것 아닐까?

조금은 귀찮을 정도로 매섭게 부는 찬바람이 밝디 밝은 날씨에 걸맞지 않게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런 거의 겨울 날, Ozzie를 태우고 Dunwoody 자기 집으로 갔다. 녀석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관하더니 동네에 들어서면서 돌변, 각종 howling, barking을 한다. 갑자기 자기 집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서 걷지 못한 것을 이곳에서 천천히 걸었다. 알고 보니 이 동네 전체를 걸으면 정확히 1 mile이 됨을 iPhone pedometer로 알았다. 그러니까, dog walk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그런 동네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동네에 비하면 다양한 모습이 없는 조금은 너무 ‘고급’으로 보이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 나무의 종류도 거의 다르고 적으니까…

녀석을 뒤로하고 H-mart엘 가서 약간의 grocery를 샀는데, 오늘은 무의식적으로 ‘주류’ 쪽으로 눈이 갔다. Holiday season이기에 충분히justify는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참자, 참는 것이 좋다… 술도 계속 안 마시면 그 맛과 멋을 잊을 것 아닌가? 몸에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데~ 왜 몸을 상하게 할 기회를 주는가? 가급적 깨끗한 몸을 가지고 저 세상에 가는 것, 문제가 있는가?

원래 계획은 점심으로 H-mart 옆에 있다는 JBistro라는  중식점에 가서 그 집의 특기라는 자장면 을 먹기로 했는데, 내가 별로 구미가 당기지를 않았고, 결코 음식값도 만만치 않을 듯해서 그곳에 가지를 않는 대신 집 근처 ‘마음의 고향’ McDonald’s 에서 오랜만에 금요일 Fillet-o-Fish를 사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곳에 가기 전에는 전부터 벼르던 것,  ‘Chang, 원 (차)박사 Car Connex‘, 그곳에  들러서 작은 감사의 표시로 ‘유자차’ 한 병을 주고 왔다. 큰 것이 아니어도 우리의 고마움을 전해주는 것, 오랜만에 느끼는 작은 기쁨이 되었다.

집에 들어오는데 은근히 놀랐던 것, 집이 너무나 조용한 것, 아~ Ozzie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없구나, 없어~~  2 주일을 같이 있었으니 이런 작은 놀람도 이상할 것이 없다. 갑자기 그리움과 편안함이 교차하는 순간, 그래 그것이 정상적인 감정일 것이다. 새로니 식구들이 이제 먼 곳 San Diego로 이사를 안 가기로  결정을 했기에 Ozzie와 강제로 이별하는 일은 없겠지만 대신 잘못하면 녀석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할지도 모르니, 미리 생각을 하기도 싫은데, 어찌하랴~~ 우선은 내일 새벽부터 추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일이 없다는 ‘편한’ 것만 생각하자…

 오늘 아침미사엘 가보니 신년 ‘성당 달력’이 놓여있었다. 왜 이것에 그렇게 내가 관심을 두는가 하는 것은 작년에 성당이 거의 문을 닫아서 이것 없이 일년을 보낸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일년간 매일 짧은 daily memo를 남긴 것이 꽤 세월이 흘렀는데 작년 처음으로 이것이 없어서 다른 것을 대용을 썼는데… 정말 일년간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다행히 전통이 깨지지 않고 이렇게 계속됨을 감사한다. 이제 생각하니 지난 2년간의 Pandemic은 성당생활, 신앙생활에 이런 불편함을 주었던 것이다. 내년 달력을 보니, 내년 우리, 나의 하루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왜 희망적인 기대는 못하는 것일까? 요새 내가 제일 모자란 것이 바로 ‘희망의 기대’ 가 아닌지? 왜 이렇게 앞날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떻게 희망, 기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Universal Consciousness, Mind & Matter

희미한 꿈에서 깨어나서 생각을 하니, 그것은 어제 밤에 읽었던 parapsychology researcher, Dean Radin의 책 Real Magic 의 내용에 있었던 Universal Consciousness [C],  Personal Consciousness [c] 가 아니었던가? 한마디로 나는 최근에 ‘철학적, 과학적’ Consciousness 에 관해서 깊이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Mind & Matter 중에서 어떤 것이 더 fundamental 한 실존인가?    현세의 사상은 물론 matter가 mind 이전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이것은 모든 인간적 입장에서 본 우주, 실재관에 깊숙이 관련이 된 것이라서, 이것과 나의 신앙과는 갈등이 없는 것이라 안심하고 묵상,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도 이틀째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아침의 첫 일과로 시작하는데 성공을 하였다. 우연히 시도한 것이 이렇게 큰 문제가 없어서 나는 기쁘고 놀랍기까지 하다. 이것으로 나의 ‘신앙의 허점’ 중 하나였던 ‘멀게만 느껴지는 예수님’ complex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성모님, 도와주십시오, 계속 계속…

드디어 비와 구름으로 덥혔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햇빛이 서서히 돌아오는 날, 오늘은 어제 같은 늦잠, 불면증의 문제가 없어서 아침미사엘 갈 수가 있었다. 요새는 이곳을 가야 조금 안심이 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무엇을 안심한단 말인가? 아니,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인가? 기도와 복음말씀에 의한 희망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탓인가? 기도를 해도 큰 변화나 응답이 없는 것에 익숙해진 것인가? 왜 이렇게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느낌이 드는 것일까?  멀어지지 않으려 시간을 그렇게 쓰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것일까?

오랜만에 밥반찬 도시락으로 Sonata Cafe를 준비했고, YMCA 에서 운동도 큰 문제없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Kroger에서 gas를 넣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shopping center의 모습에 오래 전 Chinese 식당 Formosa의 자리가 그렇게 나의 눈에 들어온다.  1992년 이사올 당시부터 한참 이곳에서 takeout 배달하거나 pickup해서 온 식구들이 모여 family video를 보던 추억, 그것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그때에도 각종 큰 문제를 가지고 살았을 것이지만, 어떻게 좋은 추억만 떠오르는 것일까?

내일 집으로 돌아가게 될 Ozzie녀석과 1시간 코스 동네 두 군데를 걸었다. 이제 걷는 것은 전혀 나에게는 운동의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게 되었다. 나의 하체는 나이에 비해서 아주 건강하리라고 믿는다. 문제는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래, 노력을 하며 살자, 크게 무리가 되지 않으며… 적당하게, 알맞게, 현명하게…

 

 

Twelve Twelve, Her Wife & His Husband…

12/12… 십이십이… 1979… 이제는 이 단어들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는지, 오늘은 간신히 달력을 보며 12/12의 추억을 되살렸다.  그러니까.. 정확히 43년 전인가? 우리 부부에게는 ‘추웠던 추억의 날’로 머리에 깊이 각인이 된 날이지만 이후에는 ‘성모님’과 연관이 된 날로 조금 색깔이 변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서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결혼을 한달 남짓 앞둔 우리에게는 반대로 따뜻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이날이 추억의 날이 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던 것 때문이었다. 십이십이.. 전두환의 쿠데타가 그날 밤에 일어났는데 우리는 그들이 한강을 넘어오기 직전에 김포공항을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귀가를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아차 했으면 우리는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밤거리를 방황하지 않았을까? 그날은 연숙의 지도교수 ‘김숙희’ 교수가 미국방문차 김포공항엘 갔고 우리는 ‘결혼 전 인사차’ 갔던 것이었다. 그날이 춥게 느꼈던 것은 공항버스 정류장을 잘못 알아서 꽤 긴 거리를 걸어 들어가는데 장갑이 없어서 추운 손을 녹이느라 처음으로 손을 잡은 것… 그것이 그렇게 추운 기억으로 남게 된 것… 웃기게 유치한 추억이 아닐까, 하지만 추운 만큼 따뜻한 손의 느낌이라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 추억을 떠올리면 얼음이 녹듯이 녹아 사라지니까…

이즈음 news TV를 꽤 많이 보게 되면서 계속 놀라는 것이 있다. 아~ 정말 세상이 많이 ‘좋건 싫건, 추하건’ 변하고 변했구나 하는 것이다. 여자가 갑자기 나의 wife를 언급하고 남자가 갑자기 my husband를 말한다1.  나는 깊은 가슴속으로부터 신음하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한참 웃는다. ‘이X, X’ 들이 갑자기 정신 이상이 되었나?’ ‘  이들이 모두 어린애들 소꿉장난을 하나, 도대체 세상이 그야말로 몇 십 년 만에  ‘소돔과 고모라’로 변한 것, 어떻게 남자인 너에게 ‘남편’이 있냐? 어떻게 여자인 너에게 마누라가 있냐?’ ‘솔직히 너 자신도 속으로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니?”… 참, 웃기는 세상을 살고 있다. 정치, 세계관의 차이로 세계대전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남자의 남편, 여자의 마누라’의 ‘자연법 거부’ 세상은 절대로 아무리 많이 배우고 사랑이 그득해도,  ‘자연적, 정상적’인 인간으로 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동물’인 것이다.

어제 일년 만에 어렵사리 모이게 된 도라빌 순교자 성당 senior그룹 등대회 연말 회식, 반가운 모임은 분명했지만 뒤 맛은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었다. 나이와 더불어 Pandemic 등으로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과 씨름을 하는 이 모임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성당 공동체 모임이 Pandemic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있는 추세와 거의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솔직히 부끄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small off-shoot group idea를 굴리게까지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모임에서 모처럼 만난A 자매와 등대회의 방향에 대한 의견이 거의 일치함을 보면서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에 그런대로 감사를 한다. 앞으로 이렇게 의견이 맞는 회원들과 작은 의견그룹을 만들어가면 이 전체 그룹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제 등대회 회식에 잠깐 얼굴만 보이신 주임사제 구 신부님의 언행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신부님의  첫 인상 탓으로 나는 아직도 거리감을 느끼고 있고, 갑자기 바뀐듯한 성당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끼고, 우리 세대들이 밀려나가는 듯한 착각으로 우울하기도 했는데, 오늘 앞에서 보며 느낀 것은 그런 나의 우려와는 거리가 멀었고, 특히 등대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 깊은 권고의 말씀도 곁들였는데, 나의 의견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2을 알고 무척이나 반갑고 기뻤다. 이런 것과 거의 동떨어진 듯한  중진 회원들의 모습은 놀랍도록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반응이었으니… 아~ 또 다른 나의 고민의 시작인가?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집안에서 머물러야만 했던 Ozzie녀석이 그렇게 가엽게 보여 오늘은 작심을 하고 아침 일찍 걸었다. Spring Creek 과 Hanover Woods의 combo는 거의 정확하게 1시간짜리 거리였다. 녀석도 너무 날뛰면서 기뻐하니 오늘 비록 미사는 쉬었지만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모레가 되면 또 이별을 하니~~ 내년 어떤 때가 오면 ‘거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오려나~ Ozzie, I Love You~~

결국 하늘에는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 얼마만인가? 이제 내일까지는 이렇게 맑고 그 다음날은 또다시 비~ 허~ 그때쯤이면 Ozzie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니 비 걱정은 줄어들고… 하지만 오늘 밖에서 우연히 shed의 지붕이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비까지 floor로 샜으니.. 귀찮은 일이 되었다. 요새 거의 tool근처에도 가지 않는 나날을 보내서 그런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니, 다시 분발을 하고 정도껏 공구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다시 싸늘해진 탓인지 또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고, 결국 아예 침대로 들어가 거의 2시간 가까이 잤는데~ 와 Ozzie까지 나의 손 아래로 자고 있고, 이것이 천국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새로운 일이 생겼다면~  우리 교리반 학생출신, SWT 형제 집에서 12월 26일 날 ‘식사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년에는 그 집 부부와 식당에서 만나곤 했는데 올해는 사실 그대로 넘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S 형제에게 올해도 만나자는 ‘카톡’ 메시지를 꽤 전에 보낸 것 덕분이었는지, 먼저 이렇게 멋진 제안이 온 듯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색다른 형식으로, 자기 집에서 아는 몇몇 가정이 pot luck 작은 요리를 가지고 온다는 것.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 했더니 어제 등대회 연말식사모임에서 만났던 YJH 형제부부와 또 다른 부부, 오래 전 ME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는데… 우리 동네 근처에 산다는 부부다. 그 집 형제님은 태권도 관련 사업을 했다는데… 우리에게 ride를 준다는 것, 얼마나 신선한 소식인지~~ 게다가 아예 그날 ‘옛날’ 노래를 기타와 함께 부르며 놀자는 제안~ 허~ 이 그룹들 참 젊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 동안 이런 건강한 재미를 다 잊고 산 것인지, 이런 사실들로 모처럼 12월의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1. 최근의 shock 중에는 PBS 의 black male commentator가 자기의 husband를 언급, 며칠 전 Russia에서 석방이 된 여자 농구선수가 그녀의 wife를 언급
  2. 새해부터 거의 정상적 활동이 시작되니, 등대회도 자신을 가지고 성당봉사 차원에서 더 노력을 하라는 것, 얼마나 유익한 권고인가?

Those Who Saw Her – Guadalupe

Those Who Saw Her, Catherine M. Odell… 2012년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하던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을 당시에 샀던 책…  그 중에서 현재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받은 유명한 발현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관심사는 물론 Guadalupe 성모님 발현에 대한 것이다. 내년 달력에서 그것도 1월 말을 유심히 보며 예정된 Guadalupe 성지순례의 모습을 예상하며 상상을 한다. 과연 우리가 그곳, 인디언 모습으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원주민 성 Juan Diego 앞에 나타나신 현장 Tepeyac 언덕엘 가볼 것인가? 예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종 성모발현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읽고 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사실 Guadalupe에 관한 것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이번 성지 순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지금부터 서서히 흥분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이 신비중의 신비,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을 하며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The Apparitions at Guadalupe, Mexico, 1531

 

Excerpt from Chapter 4,  ‘Those Who Saw Her

 

For fifty-seven years, Juan Diego had lived near the shore of Lake Texcoco in a village hugging Tlateloco, the Aztec capital. As he walked toward that city on a chilly morning in 1531, his thoughts returned to the years of Aztec pagan rites and despicable human sacrifice. Later, the Spanish conquistadors had overwhelmed the Aztec chieftains, who had ruthlessly ruled the Indian tribes. For Juan and fifteen million Indians, a new time and spirit then began in his homeland.

In Juan’s own mind, only the last six of his years had been truly joyful. In 1525, he and his wife, Maria Lucia, had been baptized as Christians Juan, a farm worker and mat maker, had given up his Aztec name – Cuauhtlatoatzin, a word that meant “eagle that talks.” On most days, well before dawn, Juan was somewhere on this road, headed to or from Mass. His village was called Tolpetlac, near Cuauhtitlan. This day, December 9, 1531, was a Saturday, a day on which a special Mass was said in honor of the Virgin Mary.

For some time, his early morning walks had been solitary as he crossed the hill of Tepeyac and the Tepeyac causeway to Tlatelolco, the future Mexico City. Juan’s wife had died. There was only his uncle, Juan Bernardino. Juan Diego thought of his dead Maria Lucia many times as he made his way. There had been no children, and she had been precious to him.

As Juan approached the crest of Tepeyac Hill, he saw a cloud encircled with a rainbow of colors. Then he heard strange music coming from the hill as well. Could it be from some sort of rare bird? He wondered and stared up at the hill with the sun now rising behind it. A woman’s voice was calling above the music. He was fascinated but confused.

“Juanito Juan Dieguito…” the voice came, urging him. Since it seemed to be coming from behind the top of the hill, he ascended to the crest to look. A young woman, strikingly beautiful, stood there, beckoning him. She radiated such light and joy that Juan Diego could think of nothing more to do than drop to his knees and smile at her.

Everything around her seemed to catch the sweet fire she glowed with. The leaves of the plants surrounding her on the hill were aglow; the branches of the trees and bushes shone like polished gold. Around the whole hill, a rainbow of multicolored light seemed to have descended.

“Juanito [Little John], my sweet child, where are you going?” the woman asked him in Nahuatl, his own tongue.

“My Lady and my child,” he replied, in an Indian idiom of endearment, “I am on my way to the church at Tlatelolco to hear Mass.”

Then, with no further introduction, the shining young woman spoke very seriously and yet lovingly to Juan Diego. He listened with intensity born of instant devotion. The woman was so beautiful, so gracious. He could not ignore any request from her:

You must know and be very certain in your heart, my son, that I am truly the perpetual and perfect Virgin Mary, holy Mother of the True God through whom everything lives, the Creator and Master of Heaven and Earth.

I wish and intensely desire that in this place my sanctuary be erected so that in it I may show and make known and give all my love, my compassion, my help, and my protection to the people. I am your merciful Mother, the Mother of all of you who live united in this land, and of all mankind, of all those who love me, of those who cry to me, of those who seek me, of those who have confidence in me. Here I will hear their weeping, and sorrow, and will remedy and alleviate their suffering, necessities, and misfortunes.

And so that my intentions may be made known, you must go to the house of the bishop of Mexico and tell him that I sent you and that it is my desire to have a sanctuary built here.

Pat Boone’s WHITE CHRISTMAS 1964

올해는 유별나게 holiday music, 특히 carol류를 일찍부터 자주 듣게 되었는데 우연히 머리 속의 깊은 곳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도움으로, 오늘은 1964년 성탄절 [이브]를 회상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이 모습, 그 당시 ‘잘나가던’  Pat Boone 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그의 Christmas album ‘White Christmas’ LP jacket… 그 시절 집에서 보고 듣던 바로 ‘판’이었다. 그 당시에 가지고 듣던 각종 LP record들은 물론 ‘해적판’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해적판이라도 없었으면  가끔 radio에나 매달려야 하는, 아마도 정말 심심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 LP는 성탄시즌이 되어야 꺼내어 듣곤 했지만, 이후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오늘 그 모습과 음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당시의 독특했던 유행인가,  고등학생의 감성적 나이인가, 아직도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현듯 떠오른 Pat Boone의 감미로운 White Christmas 와 그의 젊디 젊고 깨끗한 모습의 도움으로 이 특별한 LP를 찾아보니… 역시,  특별히 할일 없는 우리 세대들이 이미 이 album의 전체를 YouTube에 album jacket과 함께 upload를 해두어서 오늘 거의 60년 만에 다시 보고 듣는 감격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분명히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대부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나온다. 특히 track의 첫 곡이었던  White Christmas와 comic한  Jingle Bells, 교회 합창을 연상케 하는 O Holy Night 등등, 거의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 나온다.

1964년 성탄이브 때 크리스천도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1으로 통금이 해제가 된 덕분에 친구 몇 명 (아마도 안명성, 김동만이 포함된)과 이 carol을 마음껏 즐기며 남영동 금성극장 앞에 있던 집 근처를 배회했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날 밤은 뉴스에 나올 정도로 명동거리가 사람들로 혼잡했었다2. 그런 현상은 아마도 그 당시에 아주 드문 것이었다. 통행금지가 없다는 그 사실이 ‘성탄절’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것은 그 당시 일본 도쿄도 같은 혼잡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통행금지가 없었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국의 종교와는 다른 서구의 유행, 그저 유행가 처럼 그날 성탄이브를 지냈을 것이다.

대림 2주가 벌써 금요일로? BiocentrismIdealism [심지어 Emmanuel Kant까지] 은 분명히 ‘시간[과 공간] 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난 달부터 이번 달로의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는데, 상상, 허구라고 할 수가 있는가? 12월도 1/3이 지나가려고 한다. 조금 조바심도 나고 초조함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의 상상에 불과하니, 경우야 조금은 얼굴을 펴고 살자, 건주의 말대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Guadalupe St. Juan Diego,  아침미사엘 가서야 오늘이 과달루페 성모님 visionary  성 Juan Diego의 축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점점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관심이 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년 1월 말이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단체 과달루페 순례가 있을 것이고 우리의 눈으로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모습들을 볼 것을 생각하니 미리부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한다.

Distancing from Swedenborg! 결정을 했다.  역사적인 과학자, 저자, 신비가 로써의 Emanuel Swedenborg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떨치고 싶지 않지만, 역시 이것도 나의 가톨릭 신앙적인 면에서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진전이 되면 그만큼 포기하기도 힘들기에 오늘로서 이것에 대한 관심을 접기로 했다. 모든 online link들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이 단절 과정을 시작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마지막 관건은 역시 ‘성모님’에 관한 것임은 크게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성모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나의 ‘선지자’ 가 될 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그를 제외한 다른 ‘철학/과학’적인 석학들의 책들에 전념을 할 것이다.

 

오늘 점심은 모처럼 ‘동네방네’ style의 ‘밥과 반찬’의 한식으로 먹게 되었다. 갑자기 몸이 산뜻한지 점심 메뉴에 신경을 쓴 연숙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식류’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우리가 근래에 얼마나 전통한식에서 멀어진 식생활을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없다는 두부찌개와 총각김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다.

거의 가을 장마의 모습으로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나의 신경은 온통 Ozzie의 산책 가능성으로 쏠렸지만 다행히 비가 수그러든  시간들이 있어서 backyard로 나가는 것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동네 전체를 산책 할  정도로 비는 멈추지를 않았다.

 

  1. 그 당시 왜 성탄절에 통행금지가 일시적으로 해제되었는지 궁금하다.
  2. 당시 명동은 지금의 이태원이었나, 하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Immaculate Conception, Warnock Day After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올해 미국 가톨릭 교회는 이날을 ‘의무 대축일’로 지내기에 아침 9시 미사에는 평소보다 많은 ‘양심적인 신자’들이 보였다. 한국 본당 신자들은 사실 ‘의무~’ 라는 표현에 두드러기가 돋는지 별로 반응이 없지만 미국에서 자라난 신자들은 ‘의무’라는 것을 알면 기어코 미사 참례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것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

파란 옷을 입고 프랑스 루르드에서 벨라뎃다 (나중에 성녀) 소녀에게 1858년에 발현하신 이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이란 설명, 호칭이 꼭 붙는다.  그 해 2월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총 18번 발현을 하셨는데, 그 중에서 8월 25일 16번째 발현 당시, 성모님은 자신이 ‘원죄 없는 잉태’라고 말씀을 하신 것인데, 이것으로 이 발현은 교회의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은 1854년에 이미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 천주교 교의의 하나로 선포된 바가 있었다.

성모 발현 중에서 역사적으로도 제일 큰 중요성을 지닌 이곳 Lourdes 루르드는 지금도 ‘교회의 승인 하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난치병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곳 Lourdes에 못 가보았지만 아마도 내년 1월 말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이곳도 가까운 시일 내에 가보게 될 것이라는 ‘느껴지는 은총의 예감’을 가진다. 이런 것들은 솔직히 의도나 희망 뿐만 아니라 extra calling이 필요하다고 들었기에, 간절한 기도 없이는 힘들 것 같지 않을까?

 

Thank You Very Much, Mr. Warnock! 나답지 않게 오늘 거의 하루 종일 관심과 초점은 Georgia runoff election 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결과가 아주 좋은 뉴스이기에 그런 것이고,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도 하루 종일 완전히 news로부터 눈과 귀를 막고 지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Warnock의 승리보다는 그 결과로 DONALD ‘개XX’ 가 ‘처참히’ 완패를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개XX’가 ‘개인적으로 뽑고, 후원했던’ 각종 idiots들이 완전히 떨어졌다는 그 사실을 나는 하루 종일 만끽하고 싶었던 셈이다.  이로써 올해 mid-term election은 내가 원하고 바랐던 대로 끝을 맺게 되었다.  다음의 도전은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인간들, 아직도 우글우글~ 한 사실, 그것이 최대의 도전인 것이다.

 

Friends & Neighbors, Warnock Crushed Idiots!

오늘 mailbox를 열어보니 뜻밖의 것이 놓여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만들었을 듯한 앙증스러운 cookies 봉다리였다. 사연이 적힌 종이를 보니.. 뜻밖에도 앞집의 Josh 가족의 이름이었다. 그저 감사한다고~~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의 잔디, 낙엽을 자기의 blower를 쓸 때, 우리 집도 함께 해 주었는데… 우리가 도운 것이 있다면 가끔 사다리를 빌려준 정도였는데…  옆집 Dave는 가끔 소음 요란한 lawn mower로 우리 집 것도 깎아 주기도 하니..  우리의 양쪽 이웃들, Dave & Josh  이런 식으로 가끔 이웃 정을 보여주니, 이것도 자그마한 운이나 복이 아닐지…

어제 연호친구들의 카톡 대화로 건주의 건강상태를 조금은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생각했던 것 보다 stroke 후유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나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거의 말도, 움직이지도 못했던 것을 상상해보니 조금 무서워지기도 한다. 어떻게 평소에 그렇게 건강하던 건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문제는 앞으로의 물리치료 과정인데, 이것을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으랴마는… 나의 주장대로 최선의 의학과 진정한 참된 기도,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건주야~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들 너를 믿고, 응원한다는 사실만 굳게 기억해주기 바란다…

어제 있었던 Georgia runoff, 결국은 Warnock의 승리로,  휴~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  시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2022 midterm election 마지막 DONALD SOB MF ‘개XX’ 의 ‘쫄개’가 떨어지고 사라지고 kicked-out되는 이 시점을 만끽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미친 ‘개XX’는 자기 방의 사방 벽을 마구 발길로 차대고,  동물의 괴성을 지르며 각종 ‘쌍’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직접 고르고, 길들이고 ‘어둠의 자식들 훈련’ 을 시켰던  ‘백인 흉내 내는 흑인’,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잘 모르지만 줄을 잘못 선 것을 후회하기를 빌어본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먼저 배워라!  결국 이번 midterm election에서 ‘개XX’가 endorse했던 놈들 ‘전부’가 낙선을 하게 되었으니~ 참, 정의는 승리한다 는 것이 명언인 모양이다.

 

Second Interview for Global Entry

오늘은 연숙이 TTP  Global Entry intervew로 공항엘 갔었다. 이미 가 보았던 것이라 너무나 안심을 했던가, 깜빡 길을 잘못 들어서 한때 또 혈압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씨치고 운전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깜깜한 밤이었으면 문제가 달랐을지도..  오늘 공항의 모습은 비교적 한산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데, 항상 머릿속에 있는 공항의 모습은 북새통을 이루는 그런 것이라 의아할 정도였다. 그럼 그렇지, 이런 때도 있구나~ 이곳은 1월 말에 멕시코 순례여행 차 다시 올 것이라서 이곳의 지리에 미리 친숙해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을 한다.

근래에 공항엘 벌써 두 번째 가는데 주위의 느낌이 조금 익숙한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 내가 불과 3주 전 이곳에 왔을 당시와 너무나 비슷하게 흐리고 빗방울이 뿌리던 것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보다 훨씬 ‘진짜 비’가 하루 종일 내렸고 점점 싸늘한 비는 세차게~ 내린다.
오늘 밤까지 계속 내리는 비는 정말 요사이 보기 드물게 줄기차게 내리는 그런 것이었다. 일초도 쉬지 않고 계속 쏟아지는데 기온까지 싸늘해서 집안이 싸늘하기만 한 느낌, 점심 이후에 잠깐 누웠다가 든 낮잠, 별로 기분이 좋지 않고… 왜 이럴까?

저녁 National news TV를 보니 역시 조지아 runoff 선거가 top으로 보도가 되고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이미 투표를 마친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할 사람들은 이미 다 한 것이다. 내일 날씨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누구에게 유리한지, 그것이 영향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Warnock이 낙승을 거두지 않을까… 만약 아니면 정말 정말 실망의 극치가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할 것, 시민적 의무는 다 했으니까…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