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 수련

 

상실과 슬픔의 치유

 

문종원 지음

 

 

문종원

1992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사목학을 공부했다. 평화방송 라디오 주간을 거쳐 현재 성령쇄신운동을 지도하고 있으며, 우울증 죄책감 걱정 두려움 분노 상실감 스트레스 등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 수련’과 ‘나 자신을 찾아서’ 를 기획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에 “길을 묻는 그대에게”,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가 있으며, 옮긴 책에 “행복 찾기”, “기도 산책”, “우울증”, “걱정”, “스트레스”, “두려움”, “낙담”, “학대 받는 아이에서 학대하는 어른으로”, “느낌을 마주하라”, “스트레스, 말씀으로 사귀자”, “화, 제대로 내기”, “감정, 예수님께 가는 징검다리”,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신앙, 집착으로 열정으로”, “꿈, 하느님의 잊혀진 언어”, “영혼과 육체의 치유”, “내 일생의 치유”, “마음의 그림자”, “외로움과 영정 성정”, “사랑이 두려움을 만날 때”, “영적 지도 기법”, “정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1세기 은사의 회복”, “자연, 그리고 인간 혼 1, 2” 등이 있다.

 

 

상실과 슬픔의 치유

2011년 1월 23일 교회인가

2011년 7월 20일 1판 1쇄 인쇄

2011년 7월 25일 1판 1쇄 발행

 

 

 

머리글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상실을 경험한다. 태어나면서 시작된 상실은 살아가면서 죽음과 질병, 가정과 재산, 직업을 잃거나 결혼이나 우정의 깨짐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날마다 크고 작은 상실을 겪으며 살아간다. 삶 속에서 늘 새로운 변화를 맞지만 그 변화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온다. 분명한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상실과 죽음이 필연적일 뿐 아니라 상실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다. 부모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 기대가 무너지며, 완벽한 부모가 되리라 생각했던 자신감과 희망을 잃어버린다. 또한 우리는 가진 것과 가치 있는 어떤 것을 빼앗기거나 그것 없이 살아야 할 때가 온다. 그 어떤 것이란 우리가 필요로 하고 바라며 기대하는 것이다.

상실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주위에는 아름답고 좋은 것이 많지만 삶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겪으면 한 순간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변화와 분열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친구나 가족을 잃는 쓰라린 경험을 한다. 때로는 부모가 갈라놓기도 하고 친구들 스스로 떠나기도 한다. 특히 죽음은 모든 상실 가운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내 부모와 배우자, 자녀와 친구들 모두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똑같은 운명을 맞는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점점 더 크고 확실하고 절실하게 느낀다.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음과 어떤 것을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함도 깨닫는다. 그러한 상실을 겪으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더 나아가 상실은 우리 존재와 인간 세상보다 더 큰 실체, 곧 우주의 존재 방식(상실과 성장, 죽음과 삶)에 대해 깨닫게 한다.

우리는 자연 안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름날 그토록 짙푸르던 미루나무 잎도 가을이 되면 눈부신 황금빛으로 변한다. 또한 어둠과 침묵뿐인 고치 속에서 유충은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 스스로 껍질을 벗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재창조를 거듭한다. 끊임없이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된다. 우리 몸 안에서 죽음과 삶, 상실과 성장이 계속되는 것이다.

물론 상실의 무게와 종류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뼈저리게 경험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떠한 상실이든 새로운 생명과 성장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사소한 배신감, 버림받은 느낌, 상실감의 충격은 매우 일반적이고 미묘해서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은 점점 쌓여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되며 슬픈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실의 실재와 마주하면서 우리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실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상실하고 회복하는 우리 삶의 과정에는 이른바 슬픔이라는 독특한 여정이 있다. 슬픔이 곧 회복은 아니지만, 슬픔은 우리가 겪는 많은 상실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필수 요소이다.

슬픔은 상실의 고통스러운 실재를 직면하도록 도와주고, 상실이 삶을 이해하는 전환점이 되게 하며,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슬픔의 목적은 상실을 잊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껴안아 이해심과 자비와 용기를 기르도록 하는 데 있다.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치유의 길이 사람의 지문처럼 모두 다르며 저마다 독특하게 슬픔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가는 여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각자 나름대로 사랑하는 사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상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실감과 정서 변화를 느끼고 삶에 대한 믿음을 재정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곡 필요하다. 비탄에 젖어 사별의 아픔을 겪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실의 상처에서 벗어난다. 빼앗김 비탄 아픔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4)라는 말씀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삶의 활력을 상실한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주님은 사별의 슬픔을 겪는 사람들한테 용기를 주신다. 예수님은 “그래, 슬퍼해라!” 하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슬픔이 지닌 유익한 잠재력을 아시며, 마침내 축복과 위로를 받으리라는 사실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슬퍼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비정하고 난폭해지면 무감각하거나 자제력을 상실함으로써 지신이 지닌 것들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신다. 또한 사별로 인한 슬픔은 정상적이고 필요한 과정이며 이를 받아들일 때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도 아신다.

하느님은 사별이나 소중한 것을 상실하는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강복하신다. 물론 이 여정에는 고통과 모험이 따르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1 상실의 여러 모습

 

다양한 상실

 

상실이란 가치를 두는 어떤 것을 유지하거나 얻는 데 실패하는 것, 능력을 잃어버리거나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경험하는 것 등 여러 의미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한 개인이 가진 어떤 것을 박탈당함을 뜻한다.  모든 심리적 변화는 실제적이거나 상징적인 상실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에서 변화를 겪으면 우리는 상실감을 느끼며 슬퍼한다. 상실은 정서적 경험이다.

존 제임스 John James와 레셀 프리드먼 Russell Friedman은 ‘슬픔이 말을 거네’ 에서 신뢰를 상실하는 사건은 평생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부모나 신에 대한 믿음을 잃거나 인간관계에서 믿음을 잃는 것도 상실이라고 설명한다.

하워드 Howard는 상실을 비난이나 배척을 받았을 때 느끼는 자존심의 상실, 지갑이나 핸드백과 같은 물건의 상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으로 설명한다.

르윈슨 Lewinson과 아치볼드 Archibald 는 사고나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으로 인한 건강과 인간관계의 상실, 실직,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상실 등 다양한 상실이 있다고 한다. 또한 가정에서 구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신체 상해뿐 아니라 상실로 인한 우울증,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보인다며 결정적 상실을 설명한다.

아치볼드는 ‘숨겨진 감정회복’에서 이처럼 다양한 상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물건의 분실, 자동차 사고, 카메라가 부서지거나 개가 죽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이 있는 구체적 상실이다. 둘째는 사랑 야망 자존감 통제력처럼 가치 있게 여기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추상적 상실이다. 그리고 셋째는 상상으로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상실을 모두 경험하는 가상석 상실로, 이는 실제로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우울증이 발생할 환경을 조성하며 구체적 상실만큼 사실적으로 상실을 느끼게 한다. 이는 실제 일어난 상실이 아니기에 어떤 상실보다 다루기가 어렵다. 넷째는 실제 상실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곧 상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때, 그 과정이 끝나기 전에는 슬픔이 가시지 않거나 우울을 경험하게 되는 위협적 상실이다.

따라서 상실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변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에서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대상을 잃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별과 거주지 이동으로 인한 생활방식의 변화도 상실이며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애완동물의 죽음, 이사와 입학, 부인이나 남편의 죽음, 결혼과 졸업, 금단, 건강상의 큰 변화, 퇴직,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재정상의 변화, 기념일, 법적 문제, 자녀들의 출가와 같은 상실과, 신뢰와 안전감의 상실, 자신의 몸을 지킬 능력 상실(육체적 능력 상실 또는 성폭행)같은 것이 있다. 여기서는 중요한 상실을 여섯 가지 형태로 구분해 다루고자 한다.

 

소중한 물건의 상실

 

연지는 지금도 엄마 반지를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엄마는 연지가 세상에 태어날 때 돌아가셨다. 엄마 얼굴도 모르는 연지에게 아빠는 엄마 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 주었다. 연지에게 목걸이는 엄마였다. 재혼한 아빠와 새엄마 사이에 동생이 태어났다.

그런데 동생이 유난히 그 목걸이를 탐내 툭하면 싸우곤 했다. 새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아이들을 참다못해 연지가 잠든 사이 목걸이를 내버렸다. 목걸이가 없어진 사실을 안 연지는 소리 내어 울다 새엄마에게 야단을 맞았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아빠는 다른 좋은 걸 사줄 테니 잊어버리라고 했다. 연지는 자신이 잠들지 않았으면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라며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이 마치 또 한 번 엄마를 잃은 것 같아 몹시 슬펐다.

 

허버트 앤더슨 Herbert Anderson과 케네스 미첼 Kenneth R. Mitchell은 ‘우리의 모든 상실과 슬픔 All Out Losses, All Our Grieves’ 에서 물질적 상실을 애착을 가진 물리적 대상이나 친숙한 환경에 대한 상실이라고 정의한다. 손때가 묻고, 추억이 서리고, 애정이 깃든 물건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이 모두 소중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 어떤 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특별히 소중한 것이 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한다. 그 물건이 소중한 이유는 어떤 사람이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것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건을 잃어 버리고도 그다지 마음 쓰지 않지만, 그 물건이 의미가 있거나 개인적으로 깊은 사연이 담겨 있으면 어떻게든 찾으려 한다. 이러한 물건을 잃어버리면 물질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와 연결된 상실을 경험한다. 그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에 고통이 뒤따른다. 잃어버린 물건을 대체한 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가치를 온전히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물건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면 그 물건의 가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우리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서 별것 아닌 것처럼 축소해 말한다면, 상실로 인한 우울증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슬픔을 느낀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이 깊고 손대가 묻은 것일수록 물질 상실에 따른 슬픔은 커진다.

잃어버린 물건이 고인이나 헤어진 사람에 대해 아직 남아 있는 슬픔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물건이 대변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다른 종류의 상실과 연관된 경우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 있는 감정을 자극한다. 이 감정들은 고인과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해결하게 하는 촉진제가 된다. 만일 우리가 물건에 담긴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슬픔은 치유되고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중요한 사람의 상실

 

엄마 아빠의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아빠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회사에 갔다. 그런데 아빠가 집을 나선 지 30분쯤 뒤 전화를 받던 엄마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엄마와 언니와 나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 외갓집 가까이로 이사를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언니가 내 앞에서 픽 쓰러지더니 일어나질 않았다.

잠시 후 할머니가 오셔서 119구급차를 불렀고 집에 도착한 소방대원은 왜 이렇게 늦게 연락했느냐며 언니가 이미 죽었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빨리 연락만 했더라고 언니는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몇 개월을 멍하지 지냈다. 마치 내가 언니를 죽인 것 같아 엄마와 할머니한테, 아니 누구한테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학교도 갈 수 없었고 언니가 쓰던 물건만 보아도 눈물이 났지만 엄마 때문에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었지만, 우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며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좁게는 우리 내면세계에서도 영과 정신과 육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와 혈육 관계를, 사회에서는 공통된 가치관과 신념을 나누는 이웃들과 생존관계를 맺고, 나아가 인간의 근본적 존재 이유로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관계 상실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삶을 함께하고 고통을 나누며, 아픔을 위로하고 대화하며, 경험을 나누는 존재를 잃는 것이다. 잃음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물리적 대면이나 감정적 정신석 관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상실은 죽음 병 은퇴 실직 이사 이민 이혼 단교 거부 버림받음 실연 등과 관련이 있다. 여러 관계 상실 가운데 죽음에 의한 관계 상실에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이 따른다.

유한한 인간이기에 한 번은 죽은 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인데도 인간은 누구나 다른 상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는다. 죽음은 먼저 간 사람에 대한 기억, 떠나버린 사람의 연락처,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등 짧은 기간 안에 자신과 가버린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그 동안 맺어 온 긴밀한 관계를 사별의 아픔과 함께 정리해야 하는 남은 사람은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

 

K씨 부부는 64년을 함께 살았다. 결혼 64주년이 가까웠을 무렵, 아내가 이름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은 줄곧 아내의 침대를 지켰다. 어느 날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를 간호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방에서 나가줄 것을 청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보니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갑자기 죽은 것이다. K씨의 삶은 아내와 함께 쌓아온 것이기에 가까웠던 만큼 더욱 더 상처를 받았다. 그는 충격과 죄책감에 빠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오는 상실은 우리의 온 존재를 혼돈에 빠뜨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연쇄반응을 일으켜 더욱 고통스럽다. 곧 사랑하는 사람이 떠남으로써 그와 연관되어 따라오는 온갖 상실로 고통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일상생활과 사랑하기, 잠자기, 식생활, 심지어 일하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받는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상실의 슬픔뿐 아니라 아직 이루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실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으로써 생긴 슬픔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사는 것이 힘들고 건강도 급격히 나빠진다. 걸핏하면 눈물이 흐르고, 목과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차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잠자는 습관이나 먹는 습관도 변한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잠을 자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는 삶의 방향이 분명했지만 어제는 달라졌다. 이전에는 자신의 신원이 분명했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것이 쉬웠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은 자신의 일부였다. 자신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서 있던 자리는 비어 있다. 그 빈자리만큼 일부분이 빠져나간 것이다. 언젠가는 과거의 나한테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 삶에는 빈자리가 생긴다. 식탁에서, 교회 옆자리에서, 식당에서, 집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다.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차를 타고 갈 때도 그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이 여전히 곁에 있는 것 같아 말을 건네거나 찾는 일을 멈추기까지 몇 주 또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예전처럼 일상생활이나 휴가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대와 꿈의 상실

 

야무지고 꿈 많은 숙자는 삼 남매 가운데 맏이였다. 그런대로 행복했던 가정은 숙자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대학을 가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숙자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숙자는 연약한 엄마와 동생들을 돌보아야 하는 가장 아닌 가장이 된 것이다.

아버지 병원비로 빚까지 녀 숙자는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벌어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엄마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이제 한숨 돌릴 만하게 되자 숙자는 갑자기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휴직을 하고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다거나 어떤 존재가 되리라는 가능성을 상실하기도 한다. 특히 미래를 위해 설계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거나 꿈을 미루거나 접어야 할 때 상실을 경험한다. 비록 미래에 이루어질 설계이고 내면적인 꿈이라 해도 그것을 포기해야 할 때는 현재의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상실이 되어 고통이 따른다.

아끼는 물건이나 소중한 사람의 상실은 어린 시절에 많이 일어나고, 기대와 꿈의 상실은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많이 일어난다. 상실은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기에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기대와 꿈을 잃게 되면서 찾아오는 정신적 아픔과 고통의 흔적이다.

우리는 꿈을 먹고 자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희망하고 계획하고 꿈을 꾼다.  우리 기대는 삶의 방향과 색깔을 정하며 그 실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때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계획에 인생을 바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꿈과 기대를 이루지 못한 실망을 중년이 된 이후에 체험하게 된다.

꿈을 잃는다는 것은 그 꿈의 실현으로 얻게 될 많은 것, 곧 기쁨 자신감 사랑 만족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각각의 꿈은 그와 관련된 많은 기쁨을 동반한다. 우리가 꿈의 태동과 죽음에 대해 심사숙고 하지 않으면 내면의 무의식적 실망감과 비애로 인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현실적 계획을 세우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그 꿈과 연계된 감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자신의 꿈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그 꿈에 부여한 힘이 어떤 것인지 바로 불 수 있다.

마땅히 실현되리라고 믿던 희망을 상실하면 슬픔과 함께 분노와 자책감도 뒤따른다. 하지만 자책은 이로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감정은 받아들이고 표출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존중하게 되고 새로운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재확인함으로써 선택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고 다시 한 번 실현 가능한 꿈을 꿀 수 있다. 이루지 못할 것이 분명하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루지 못할 것이 있음도 인정하게 된다.

 

 

 

기능적 상실

 

재문이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어느 날 약혼녀와 함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깨어나 보니 의식은 말짱한데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약혼녀는 떠나버렸고 어머니가 간호해 주었지만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

이렇게 몇 년이 흘러 세례를 받게 되었고, 생각을 정리하여 불러주면 어머니가 맞춤법도 틀린 글씨로 받아 적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손발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그 동안 믿고 의지했던 하느님이 자신이 그토록 미안해하고 사랑하던 어머니를 시집 한 권 바치기도 전에 데려가신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워 신앙도 접었다. 세월은 흘러 컴퓨터가 등장했고, 입에 젓가락을 물고 컴퓨터 치는 것을 가르쳐 주던 성당 아가씨와 결혼도 했다. 물론 어머니 대신 천사 같은 아내를 보내주신 하느님과도 화해했다.

 

이 사례는 교통사고로 신체를 잃음으로써 생긴 고통을 극복하고 성장한 이야기다. 외부 충격으로 근육이나 신경 기능, 신체의 일부분을 상실하는 것이 기능적 상실이다. 기능적 상실은 종종 자율성 상실로 이어져 보고 듣는 것, 그리고 근육운동의 조절기능을 잃게 하여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

기능적 상실의 고통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배려하기보다 자신들의 궁금증이나 해결하려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당사자의 마음을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따라서 이 사례와 같이 고통을 딛고 기능적 상실을 창조적 기회로 바꾸려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돕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

 

 

 

직업과 역할 상실

 

은행 지점장이던 소연이 아빠는 평탄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을금고 감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삶을 온통 뒤집어 놓고 말았다. 마을금고 직원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횡령하고 잠적한 것이다.

집을 정리해서 서울 근교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소연이 엄마가 백화점 판매직으로 나가면서 소연이 아빠가 살림을 했다. 결혼을 앞둔 풀 죽은 아이들과 힘들어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루 종일 좁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했지만,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아 특정한 직분과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의건 타의건 언젠가는 그 직분과 역할을 놓을 때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분과 역할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한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과 직분 상실로 자아실현의 꿈이 상실되고 아픔과 고통을 겪는다. 역할과 직분을 중요시하는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갑작스러운 명퇴나 실직은 엄청난 충격을 준다. 모든 꿈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존재보다 행위에 중점을 둔 현대사회에서 더 그렇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행위의 중요성을 배운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행위와 연계시켜 무슨 일을 하느냐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이렇게 행위가 삶을 이끌기에 이 세상을 헤쳐 나가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갖고 일정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과 역할은 우리 존재에 기여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가능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일에서만 찾다가 갑자기 그 역할이나 직업을 잃게 되면 우울함 저조한 기분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 무력감이 생길 수 있다. 직업을 잃은 원인이 다른 사람한테 있을 경우엔 그 사람에 대한 분노로 힘들어진다.

은퇴 후 자신의 정체성이 없어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 사는 법을 모른다. 직업이 자기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고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직업이나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이 될 만큼 큰 영향을 주었기에 그것을 잃었을 땐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사실 우리는 직업이나 역할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신과 직업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나중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를 위한 마음 준비가 될 수 있다. 존재와 관련해 자신이 하는 일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느냐가 주된 관심이어야 한다. 다른 상실과 마찬가지로 직업이나 역할의 상실도 우리 인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가 된다. 상실의 현실과 그로 인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는가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상실의 고통과 자신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자아의식에 손상을 주는 영향력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

 

 

 

우울증을 일으키는 상실감

 

아치볼드 하트는 상실에 대한 민감성은 인생 초기의 경험과 관련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상실을 많이 경험하면 그 후에 경험하게 되는 상실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 더 많은 우울을 겪는다고 말한다. 극도의 좌절에서 오는 상실은 우울의 원인이 되며, 이러한 우울은 사랑하는 대상과 겪는 내적 시간 때문이다. 애착행동 이별 상실 등이 인간의 정서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과거 경험에서 오는 우울은 과거 경험과 관련된 상실을 느낄 때마다 나타날 수 있다. 중대한 상실 이후에는 몸과 마음이 상실에 대해 반응하고 대처하여 상실을 극복하게 하는 반응기제로 반드시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우울은 상실한 대상을 놓아 보내는 방식에 적응하게 하고 상실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아치볼드 하트는 ‘숨겨진 감정회복’에서 반응성 우울증을 촉발할 수 있는 상실에는 실제적 상실, 추상적 상실, 상상 속 상실, 위협감에 의한 상실이 있다고 한다.

 

 

실제적 상실

 

이는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상실이다. 실제 대상이나 사람, 특권을 상실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실직과 착오로 인한 수상기회 박탈,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또는 별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상실한 사람이나 사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모든 유형의 실제적 상실로 경미하거나 극단적 비참함을 느끼는 정도까지 다양한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삶은 물질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여러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물질세계와 많이 이어져 있을수록 실제적 상실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추상적 상실

 

어떤 상실은 실제적이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눈으로 보거나, 무게를 재거나, 측정할 수도 없다. 사랑의 상실, 자존감 상실, 희망이나 야망의 상실, 중요 직책의 상실, 권력이나 특권의 상실 등을 추상적 상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실은 매우 추상적이지만 우울증을 촉발하는 힘은 다른 어떤 실제적 상실에 뒤지지 않는다. 추상적 상실은 실제적 상실보다 다루기가 더 어려우며 때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울증은 해결되지 않는다.

 

 

상상 속 상실

 

우울증이 생기는 원인이 상상 때문인 경우도 있다. 상상 속 상실은 실제로 일어난 것도, 추상적 상실도 아니다. 실제로 상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마치 상실을 경험한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편집증적 생각은 상상 속 상실과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다. 이런 상실은 가장적인 것이라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상상 속 상실을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 검증이다. 상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도록 밀어붙여야 하며, 필요하다면 올바른 물음을 던지거나 앞뒤가 맞고 제대로인지 주의 깊게 가늠해 보면서 자주 점검해야 한다.

 

 

위협감에 의한 상실

 

위협감만으로도 충분히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적으로 상실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상실에 대한 위협감은 우울증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삶은 위협으로 가득하다. 경기악화 노화 실직 배우자 명성 돈 벌 기회의 상실 같은 위협을 받는다. 위협감에 의한 상실은 종종 상상을 이용하기에 대처하기가 가장 어렵다.

 

 

 

 

여러 요인으로 인한 상실

 

허버트 앤더슨과 케네스 미첼은 상실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피할 수 있는 상실과 피할 수 없는 상실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많은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상실은 특별한 생활양식의 선택으로 생기는 것이기에 피할 수 있다.

 

 

일시적 상실과 영구적 상실

 

영구적 상실은 무엇인가가 정말 끝났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피하려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사람이나 대상 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반면에 어떤 상실이 일시적임을 알거나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면, 상실감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재결합을 상상하거나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환상을 가짐으로써 그리움의 강도는 증가된다.

 

 

실제적 상실과 상상 속 상실

 

실제로 상실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상실을 상상하는 경우도 있다. 내적,  심리적 상실은 그것을 슬퍼하는 사람만 알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단순한 상상일 뿐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으나 다른 상실과 마찬가지로 실제적 상실이다. 그러나 상상 속 상실은 ‘자기기만 self-deception’을 내포한다.

 

 

예견한 상실과 예견하지 못한 상실

 

예견한 상실은, 상실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또 하나의 중요한 슬픔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오랜 투병생활을 해온 사람의 죽음과 매우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로 받기도 한다.

 

 

 

2. 인생의 굴곡에 따른 상실

 

 

유아, 유년기의 상실

아이가 사랑에 빠질 때

아이가 직면하는 죽음의 유형과 슬픔에 빠지는 상황

아이가 슬픔을 경험하는 시기와 반응

아이가 슬픔을 겪는 과정

아이의 슬픔 작업 돕기

상담자의 도움

 

청소년기의 상실

슬픔에 빠진 청소년의 특징

그룹 치료와 상담

슬픔의 회복

청장년기의 상실

중년기의 상실

노년기의 상실

노인 문제

노년기의 죽음 문제

노년의 과업

 

 

3. 상실을 대하는 모습

 

슬픔 단계의 다양한 이론

상실을 대하는 일반적 과정

부정

죄책감

우울증

신체적 고통

수용

임종 환자가 거치는 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희망

 

 

4 역기능 가정과 내면 아이의 상실

 

내면 아이의 슬픔을 방해하는 것들

철저한 거부

별일이 아닌 척하는 것

고통을 환상으로 보는 것

계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함

거부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알려지지 않은 두려움이나 표현하는 느낌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들의 비판

내면 아이의 상실 치유 작업

 

 

5. 가족의 죽음 앞에서

 

부모를 잃은 슬픔

어머니를 잃은 슬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배우자를 잃은 슬픔

배우자를 잃었을 때의 어려움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의 ‘왜?’ 라는 물음에 대해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눈물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전환된 삶

자녀를 잃은 슬픔

자녀 잃은 부모의 고통

자녀를 잃은 후의 부부관계

 

 

 

6. 잃음을 슬퍼하는 법

 

슬픔을 거부할 때

체면을 뛰어넘어 슬퍼하기

자신의 죄를 슬퍼하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기

슬픔이라는 감정

슬픔의 표현

슬픔의 작업을 하고 나서

 

 

 

7. 임종 환자와 사별자 돌보는 법

 

임종 환자 돌보기

사별 가족 돌보기

사별 가족 상담

 

 

8. 늘 함께하시는 하느님

 

슬퍼하시는 하느님

상실감을 이해하시는 하느님

우울증에 귀 기울이시는 하느님

두려워하는 우리를 감싸주시는 하느님

외로울 때 함께하시는 하느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전능하신 하느님

치유하시는 하느님

 

 

 

9. 슬픔을 치유하는 법

 

고통에 목소리 내기

자연을 통한 치유

기도를 통한 치유

기억을 통한 치유

기도와 산책을 통한 치유

슬퍼하기 7단계를 통한 치유

의지를 가져라

긍정하라

몸으로 느껴라

맥락화하라

무위의 길

유위의 단계

내맡김의 길

 

 

참고 문헌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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