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두려움, 절망감의 정체와 해답은…

예전, 아니 오래~ 전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육신의 건강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어도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점점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원하며 살았는데… 결과는 거의 참패에 가깝다.

얼마 전,  ‘강산이 99%  변해버린 고향’ 방문 시, 처조카 딸 수경가 선물이라며 수원근교 미리내 성지 내 성물방에서 건네 준 책에서 이 급한 명제에 대한 분석적인 essay를 읽게 되었다. ‘잊혀진 질문’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 이 질문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과 더불어 ‘희망의 부재’까지 함께 다루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신부님이 제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에게는 50% 정도의 답은 주신 셈이니까, 이번 고국 방문의 성과 중에 하나라고 기억을 할 것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이런 감정들을 ‘특권’이요 ‘에너지’로 승화하려는 신부님의 ‘성경해법’이 과연 나머지 50%의 해답을 줄 것인가?  모든 것, 아니 이 우주의 모든 것 (없는 것도 포함한)은 궁극적으로 내가 보는 세계관 안에서 내가 가진 생각의 눈으로 보는 나만의 실재,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분명히 해답은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코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위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머리 속 consciousness 의식체계, 아니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일 뿐이 아닐까? 성경 속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착각의 영역’인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이 위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와, 집채만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거 뭐야? 돌이 굴러 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뻔했네.”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결국 두려움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인 셈입니다.

 

수천 년 철학사에서 근세기에 등장한 실존주의 사조는 철학적 고민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주, 자연, 사회 등의 거창한 주제보다 더 시급한 주제가 인간의 실존이며 나아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 안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젯거리가 있으니 바로 ‘불안’입니다. 약간씩 의미상 편차가 있습니다만 두려움, 공포, 염려, 걱정 등을 아우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표층과 심층을 장악하고 있는 생존 인자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독심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줄을 잇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면 중 4명꼴인 82.1 퍼센트가 졸업을 앞두고 불안함,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4학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24일 구직포털 HR KOREA 는 지사 회원 직장인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생활 스트레스’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3퍼센트가 미래에 대한 (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편의상 젊은층의 ‘불안증후군’에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경험상 무리일 것입니다. 도리어 나름 탄탄하던 사람들조차 은퇴를 기점으로 불안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합니다. 불안이야말로 예측불허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수시로 변색하며 살아남는 카멜레온입니다.

 

그러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불안’이라는 것은 ‘공포’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상태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공포’라고 합니다. ‘공포’는 동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본능’이거든요. 쥐는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은 반드시 생각의 결과로써 생깁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불안’입니다. 동물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동물이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불면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동물이 느끼는 것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응, 즉 공포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인간 고유의 정서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필레이 박사는 수년간의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포, 불안, 두려움에 반응하는 독특한 방식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주 작은 위험도 재빠르게 감지하며 ‘원하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이를 처리하느라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한다면 뇌는 이 상충된 메시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가능해’라는 두려움을 먼저 처리하느라 진정 원하는 ‘이직’을 하려는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필레이 박사는 그의 저서 <두려운,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에서 이것이 바로 뇌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방식이라 설명합니다.

이 통찰은 우리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르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안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이 불안현상을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것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 뇌는 0.01초 만에 두려움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고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초에서 0.03초. 이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본래 인간이 진화하는 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두려움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뇌는 다른 감정들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기능도 따랐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대한 자각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위축된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은 단지 이전에 기억된 정보일 뿐’이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 더러는 어른이 된 뒤에도 웅덩이의 물만 보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어린 시절 편도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반응일 뿐 실제가 아니지요. 다 큰 어른이 웅덩이의 물을 무서워할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생각의 힘만으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의 작동방식을 잠깐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은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제 불안의 순기능을 클로즈업해보겠습니다. 심리분석가 프리츠 리만은 ‘불안의 심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불안은 우리의 발전에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즉 친숙한 옛 궤도를 떠나는 곳에.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지점에 불안이 온다. 발전, 성장, 성숙은 그러니까 명백히 불안 극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느 연령에서든 그 나이에 상응하는 성숙을 위한 걸음이 있으며, 그 걸음은 있게 마련인 불안을 수반한다. 걸음을 내딛자면 그 불안을 다스려 이겨내야만 한다.”

프리츠 리만보다 앞서 불안의 긍정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섬세하게 규명한 사람이 철학자 키르케고르입니다. ‘불안’을 일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던 그는 불안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심미적 삶, 윤리적 삶, 종교적 삶의 3단계로 질적 성숙을 이루는데, 불안이 앞 단계에서 다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거나 환상에 빠져서 삽니다. 삶을 기분풀이로 여기며 쾌락을 탐닉하면서 기분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권태와 싫증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무기력한 자신의 눈에 비친 인생은 무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합니다. 이 절망은 새로운 삶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절망의 늪을 넘어 윤리적 삶으로 도약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안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쾌락만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제 내면의 양심에 호응하고 의무에 성실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높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력함을 절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또 윤리적으로 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데다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서 고뇌하는 인간은 마침내 죄의식과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불안과 절망이 다시 도약을 만들어 사람을 신에게로 내몬다고 합니다. 이 현실의 모순을 심판해 줄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불안은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가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참된 삶은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를 때에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학생 자신이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불안의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로, 불안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여 결국 도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공학기술자 헨리 포드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활동을 제한 받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라고 했거든요.

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서 “퇴함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적음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 다음 7미터, 그 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 대 끝에서 서서 오른손은 코를 쥐고 왼손은 낭심을 잡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000 사후생 퇴함준비 끝!”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퇴함!”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퇴함!” 이라고 복창하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높이에서 그냥 뛰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위에는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에게는 10미터 높이도 무섭지만 그 지휘봉도 만만찮게 무섭지요. 그런데 세 명이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구대장들이 격려를 하고, 협박을 하고, 떼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힘은 여러 장정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초인적으로 강했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석식 열외에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날이 저물도록 연병장을 ‘평화롭게’ 돌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마음을 먹으면 발이 땅에 딱 달라붙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요지부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불안은 사람의 심신을 해칩니다. 제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지지 않으려면 정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리처드 바크는 그의 저서 <날개의 선물>에서 인간이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을 수영장의 다이빙대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다이빙대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우선, 며칠 동안 다이빙대를 올려다 만 봅니다. 이는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드디어 젖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단을 내리는 단계에 해당하며,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채 불안 중에 조금씩 전진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로, 그는 높은 다이빙 대 위에 섭니다. 결단 직전, 가장 불안한 단계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로 이는 “패배를 향한 계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하게 물속에 뛰어드는 길로 이는 “승리를 향한 다이빙”입니다. 다이빙대 끝에 선 그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도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면, 후퇴는 이미 늦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이라고 불리는 다이빙대가 정복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다이빙대를 한 번 정복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높은 데서 다이빙을 즐길 정도가 됩니다. 바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천 번 올라가고 천 번 뛰어내리고, 그 다이빙 속으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감을 덜 수 있을까요? 나는 인생의 위대한 멘토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 자체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방법은 강력한 희망과 꿈으로 불안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은 꿈의 한 모습인 ‘긍정적인 착각’의 효과를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두 얼굴: 착각> 편을 제작한 정성욱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국내외 책과 논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인간의 착각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도화지에 손가락 하나를 없는 손을 그리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10년 후 이 손가락은 어떻게 될까요.”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자라나요!” 라고요. 실험 결과 손가락이 자란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았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 착각입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정 PD는 말합니다.

“긍정적 착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착각을 동반하는 희망과 꿈이야말로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방법은 불안을 신께 맡기는 것입니다.

토론토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인즐릭트 교수 팀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즐릭트 교수는 “신앙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테스트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팀은 그 내용을 2009년 <심리과학> 온라인 판에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가 불안감을 해소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나 자신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를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럴듯한 수치적 일치입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신은 불안에 떠는 우리를 최소한 매일 한 번씩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해줍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안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겠지요. 불안하니까 더 준비하고, 불안하니까 더 정진하고, 불안하니까 더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말을 기억해둘 것을 권합니다.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

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 가 없습니다. 불안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Is South Korea Disappering?

 

 NYT Opinion 난에 갑자기 South Korea란 글자가 보인다. 이것 또 무슨 안보나 정치에 관한 심각한 것은 아닐까 하고 보니… 맙소사, 어떻게 이런 것이 논설란에?

Ross Douthat의 ‘조금은 수박 겉핥는 정도의 생각’, 알고 보니 대한민국의 출산율, 그것의 심각성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미국의 입장에서 다가오는 위기로까지 비쳐졌을까?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위치가 그만큼 세계적으로 중요해졌다는 단적인 표현일 듯하니, mixed feeling 일지…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는 과학적(통계적) data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인구 감소 정도가 아니라 인구 소멸, 국가 소멸로 향할 수도 있다는 ‘미래성’ 경고다.

이런 추세의 결과는 일본에서 이미 겪고 있지만 그 정도가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 나도 이제 조금 염려가 되기 시작한다. 전에는 그저 지나가는 ‘해외토픽’ 정도로 넘기곤 했던 것인데 지금은 아닌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 논평은 현재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현재의 추세라면 2060년이 되면 3천5백만으로 인구 감소, 거의 국가 위기 수준이라는 것. 경제 성장에 심각한 타격은 불 보듯 뻔한 것, 빈집 속출, 대량 이민자 유입, 국방 문제 등등.. 이런 인구감소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유명한’ 치열한 경쟁에 따른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된 가정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인데, 과연 그것이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급속도로 비정상적으로 급부상한 feminism, 여성들의 지위, power가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바꾸어 놓고 있다는 것.  결혼기피부터 시작해서 출산도 사실 여성들의 몫이었으니 결과는 뻔한 것 아닐까?  긴 세월 ‘억압받던’ 여성들은 이제 더욱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지난 10월 한달 동안의 고국 방문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도 ’10~20대 젊은이들’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을 보며, 급변화를 거듭하는 초고성장 시기에 정신을 잃은 듯한 진화, 변화, 아니 심지어 퇴화로 까지 보이는 정말 이상한 모습들을 가까이 피부로 느꼈다는 사실이다. 나의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보면 생각 없이 질주했던 ‘우리세대’들의 ‘애국’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물질적인 초고성장과 쉽게 안 보이는 다른 여러 문제를 제대로 슬기롭게 풀어 갈 수 있는 능력이, 건강한 출산율과 함께,  대한민국에 있을까…  물론이다, 나는 물론 있다고 믿는다. 절대적으로 극복하며, 장래 아시아의 희망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Those Who Saw Her – Guadalupe

Those Who Saw Her, Catherine M. Odell… 2012년 한창 불타오르기 시작하던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을 당시에 샀던 책…  그 중에서 현재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공인을 받은 유명한 발현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관심사는 물론 Guadalupe 성모님 발현에 대한 것이다. 내년 달력에서 그것도 1월 말을 유심히 보며 예정된 Guadalupe 성지순례의 모습을 예상하며 상상을 한다. 과연 우리가 그곳, 인디언 모습으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원주민 성 Juan Diego 앞에 나타나신 현장 Tepeyac 언덕엘 가볼 것인가? 예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각종 성모발현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읽고 보았지만 지금부터는 사실 Guadalupe에 관한 것만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 이번 성지 순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지금부터 서서히 흥분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이 신비중의 신비, 과달루페 성모님 발현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을 하며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The Apparitions at Guadalupe, Mexico, 1531

 

Excerpt from Chapter 4,  ‘Those Who Saw Her

 

For fifty-seven years, Juan Diego had lived near the shore of Lake Texcoco in a village hugging Tlateloco, the Aztec capital. As he walked toward that city on a chilly morning in 1531, his thoughts returned to the years of Aztec pagan rites and despicable human sacrifice. Later, the Spanish conquistadors had overwhelmed the Aztec chieftains, who had ruthlessly ruled the Indian tribes. For Juan and fifteen million Indians, a new time and spirit then began in his homeland.

In Juan’s own mind, only the last six of his years had been truly joyful. In 1525, he and his wife, Maria Lucia, had been baptized as Christians Juan, a farm worker and mat maker, had given up his Aztec name – Cuauhtlatoatzin, a word that meant “eagle that talks.” On most days, well before dawn, Juan was somewhere on this road, headed to or from Mass. His village was called Tolpetlac, near Cuauhtitlan. This day, December 9, 1531, was a Saturday, a day on which a special Mass was said in honor of the Virgin Mary.

For some time, his early morning walks had been solitary as he crossed the hill of Tepeyac and the Tepeyac causeway to Tlatelolco, the future Mexico City. Juan’s wife had died. There was only his uncle, Juan Bernardino. Juan Diego thought of his dead Maria Lucia many times as he made his way. There had been no children, and she had been precious to him.

As Juan approached the crest of Tepeyac Hill, he saw a cloud encircled with a rainbow of colors. Then he heard strange music coming from the hill as well. Could it be from some sort of rare bird? He wondered and stared up at the hill with the sun now rising behind it. A woman’s voice was calling above the music. He was fascinated but confused.

“Juanito Juan Dieguito…” the voice came, urging him. Since it seemed to be coming from behind the top of the hill, he ascended to the crest to look. A young woman, strikingly beautiful, stood there, beckoning him. She radiated such light and joy that Juan Diego could think of nothing more to do than drop to his knees and smile at her.

Everything around her seemed to catch the sweet fire she glowed with. The leaves of the plants surrounding her on the hill were aglow; the branches of the trees and bushes shone like polished gold. Around the whole hill, a rainbow of multicolored light seemed to have descended.

“Juanito [Little John], my sweet child, where are you going?” the woman asked him in Nahuatl, his own tongue.

“My Lady and my child,” he replied, in an Indian idiom of endearment, “I am on my way to the church at Tlatelolco to hear Mass.”

Then, with no further introduction, the shining young woman spoke very seriously and yet lovingly to Juan Diego. He listened with intensity born of instant devotion. The woman was so beautiful, so gracious. He could not ignore any request from her:

You must know and be very certain in your heart, my son, that I am truly the perpetual and perfect Virgin Mary, holy Mother of the True God through whom everything lives, the Creator and Master of Heaven and Earth.

I wish and intensely desire that in this place my sanctuary be erected so that in it I may show and make known and give all my love, my compassion, my help, and my protection to the people. I am your merciful Mother, the Mother of all of you who live united in this land, and of all mankind, of all those who love me, of those who cry to me, of those who seek me, of those who have confidence in me. Here I will hear their weeping, and sorrow, and will remedy and alleviate their suffering, necessities, and misfortunes.

And so that my intentions may be made known, you must go to the house of the bishop of Mexico and tell him that I sent you and that it is my desire to have a sanctuary built here.

Finding Your Roots, My Roots…

일요일 아침 TV, 오래 전 NBC, CBS, ABC, PBS 시절에는 각종 News ShowsTV를 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아련한 역사, 추억이 되었다. 그 중에 제일 덜 자극적이고 안전한 곳이 역시 PBS kind가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은, 아~ 잘 걸렸다. 족보 탐정, 역사 탐정, history detectives program, Henry Louis Gates, Jr. PBS 의  ‘Finding Your Roots‘이다. 전에 꽤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 참 잘도 만들었다. 오늘은 나의 족보와 연관을 시켜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이제 ‘대한민국’도 족보를 이런 식으로 찾으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것을 한국판 version으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만약에 실현이 된다면, 나의 족보도 고려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을 수 있을까? 기록은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있지 않을까? 아버지 대 까지 ‘간신히’ 남아있는 우리 평창이씨 익평공파 족보를 누가 누가 조금 파 헤쳐줄 수는 없을까?  이 중에는 분명히 한국천주교 첫 영세신자 이승훈 베드로 할아버지도 있을 텐데, 과연 이런 기록들이 얼마나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해보면 어떨까, 아니 관심과 능력을 가진 젊은 종친과 힘을 합칠 수 있으면… 아~ 꿈같은 상상의 날개, 나래… 느낌은 정말 하늘을 나르는 기분~  그것도 우리 어머니 쪽, 원산 楊씨와 함께~

 

COVID Shedenfreude

도덕적, 윤리적 진퇴양난 딜레마 moral dilemma… 지난 2년 간 Pandemic의 세상을 살면서 겪는 것 중에 정말 협상하기가 힘든 것 중에는 이런 case가 있다. 각종 상식적, 보편적, 과학적, 이성적,  의학적, 법적 권고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심지어는 자랑스럽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가 COVID로 인해 감염, 주위에 퍼뜨리며, 최악의 경우 아예 자신이 사망하는 것.  더욱 웃기는 것은 의외로 이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의 경우에는 일단 이렇게 말하고 생각한다. ‘쌤 통이다, 이 병신아!‘ 하지만 분명히 다른 머리 속에는  ‘그러면 안 되지, 안 돼..’  하며 제동을 거는 그 무엇이 있다. 아마도 대다수가 그렇지 않을까? 쌤 통까지는 너무 하더라도, ‘죽으면 너나 죽지 왜 다른 사람들까지..’ 하는 것이 다음의 단계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너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것, 그것은 틀린 것 아닌가? 자신 고유의 자유라고? 그래, 그러면 너만 죽으라고~~~ 동굴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되지!  성인 군자, 교황 정도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도 그런 바보들을 동정하지는 않을 듯하다. 죽음 자체는 애도할 지는 몰라도…  교황님도 백신을 맞는 것이 사랑의 정신이라고 할 정도니…[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비 정치적으로 의학적, 신앙적 등]

최근에 내가 본 한 case는, 브라질 대통령이라는  ‘극우, 빠가, Bolsonaro‘ 란 인간에 관한 것이 있다.  만고의 개XX DONALD를 흉내 내는 것이 특기인 그 인간은 국민들에게 아예 ‘자기처럼’ 백신을 맞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의 뒤에서 그런 정책을 ‘이론적’으로 영향을 준 [아니면 조종을 한] 인물이 백신을 맞지 않은 채 COVID로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때 나는 솔직히 ‘만세, 만세, 만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이것은 속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인 것을 어찌하랴? 그의 가족들이나 인간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불쌍한 인간이 아닌가? 하지만 나도 피가 아직도 끓는 살아있는 인간일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런 딜레마는 이미 사회정신분석으로 연구가 되었던 것이고, 일종의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심리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되어 NYT [New York Times] 최근 issue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국 예수회 저명한 spiritual author,  James Martin 신부의 guest essay를 보게 되었다. 예수회 신부니까 당연히 가톨릭의 시각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사회심리학의 눈으로 평을 해 놓았다. 한마디로 오늘 새로 알게 된 전문용어 Schedenfreude, 쉐덴프로이데, 물론 독일어, 그 민족들은 원래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이제는 보통명사 schedenfreude 로 쓰일 정도로 인기 시사용어가 된 모양이다.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남의 불행을 즐기는 현상, 사람 정도가 아닐지.

Martin 신부의 이 essay는 근래에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정치 이념의 관계를 지적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이것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정치적 욕망으로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자비와 사랑 능력을 모조리 포기한 ‘개XX DONALD’의 반인류적 범죄는 두고 두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이 가증스러운 범죄자는 단지 정치적 이유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회를 빼앗았으며 자기는 ‘몰래, 숨어서’ 맞는 가증스럽고 한심한 작태를 보여 주었으니…  이런 부류의 인간이 만약 감염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했다고 하면 인간 본성적 자비, 사랑의 감정보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 반사적, 본성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래, 그래 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하지만 이 원수는 그렇게 오랜 동안 관용, 자세, 권고 를 모조리 무시하고 남까지 피해를 주며 자랑스럽게 사는 데… 어떻게 더 사랑을 하란 말인가?   하지만 Martin신부의 결론은 역시, ‘용서하라’ 쪽이고 그길 밖에 정당하고 이성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역시 이것도 ‘용서의 어려움’ 문제로 귀결이 된다. 이래서 현재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교회의 분열과 내전, 역쉬~

교회의 분열과 내전, 역쉬~ 이것도 ‘개XX’ 트럼프의 특기…

David Brooks speaks with David Rubenstein on the National Book Festival Main Stage, August 31, 2019. Photo by Shawn Miller/Library of Congress…Note: Privacy and publicity rights for individuals depicted may apply.

1월 15일자 New York Times, David Brooks opinion column은 이런 제목으로 시작한다. ‘Trump Ignites a War Within the church‘… David Brooks,  그는 원래 moderate conservative, Republican, 이미 5년 전 트럼프가 Republican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부터 거의 정확하기 이런 사태를 예견했었고 그는 그는 공화당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column의 copy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현재의 국가적 난동사태는 한마디로 그렇게 놀랄만한 사실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 결과의 정도가 생각보다 더 파괴적이었을 뿐이다.

당시 그 column을 읽고 솔직히 나는 놀랄 뿐이었다. 트럼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각종 ‘믿을 수 없는’ 일화들, 설마 설마 하기만 했었다. 심하게 말하면, 돈 많은 high class crime family boss에 가까운 과거의 소유자였던 그의 행적을 액면 그대로 믿기기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5년 후, 지난 1월 6일의 의사당 난입, 최악의 사태를 끝으로 그의 진짜 모습이 완전히 들어났기에 그의 예측은 99% 맞은 셈이다.

나는 이 평론가와 같은 정치, 사회적 분석능력이 없었기에 한마디로 상식적인 느낌에 의존하며 그를 보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의 속된 표현으로 ‘양아치 중의 양아치‘란 것, 바로 그것이었다. ‘양아치들의 오야붕’ 정도가 맞을까? 그때부터 나는 속으로 그를 ‘개XX’ SOB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세계관이나 정치, 종교관은 자세히 모를 때였다. 그저 질이 안 좋은 부동산업자… TV에서 활개를 치던 양아치 정도다…

경로야 어떻든 일단 대통령 권좌에 앉으면 칼자루를 쥔 셈인데,  그가 한 정책은 200여 년 이상 축적된 미국의 전통을 1초도 걸리지 않고 모조리 바꾸어 버린 것인데…  웬만한 나라 같았으면 며칠 만에 쿠데타라도 초래했을 것이지만, 200여 년의 전통은 이럴 때 걸림돌 역할을 했을까…  이 인간이 한 일은 딱 한 가지… 불만의 여론을 극대화시켜 자기 정권욕에 이용, 국론을 완전 분열시키고 의도적인 양극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한 것. 되돌아보면 이것이 바로 2차대전 전의 독일 나치, 히틀러가 써먹었던 수법과 100%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는 유태인들이 불만의 목표였지만 지금은 소수 백인 (그것도 대부분 서민, 무식층)을 제외한 모든 것이 목표가 되었다. 한마디로 ‘반 미국적’ idea가 아닌가.

하지만 더욱 악랄한 것은 이 개XX는 교회, 종교계를 이용해 먹었다는 치사한 사실이다. 관건은 낙태, 동성애 등 hot button issue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대부분 백인 중심의 개신교회를 회유해서 이번 선거에서 그들의 대다수가 맹목적으로 그 XX를 지지한 것. 다행히도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중립노선을 지켰다.  내가 한탄하는 것은 그 이용당한 한심한 개신교회, 교인들이다. 어떻게 세상사를 ‘낙태, 동성애’ 하나에 목을 매었는가 말이다. 그것은 물론 중요한 issue이지만 그것 외에도 산더미 같이 많은 문제들이 더 있는데…

David Brooks는 이런 사실을 이번 논설에서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결과적으로 개신교회는 지금 현재 완전히 분열이 된 상태다. 트럼프와 반 트럼프 진영으로.. 한심한 것은 거의 쫓겨난 그XX를 아직도 cult leader격으로 숭배를 하는 집단이 있다는 사실… 그는 ‘사교의 교주’ 격이지 전통적 기독교의 ABC도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적 저능아임을 그들은 모르는가? 개신 교회가 분열된 것도 한심하지만 더 한심한 것은 정치집단인 공화당조차 제 목소리를 못 내며 방황하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post-truth 시대의 도래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근의 미국적 경험은 두고 두고 세월을 두고 분석되고 재조명 될 듯하다.

인간 말종 人間 末種

 

인간 말종 人間 末種1, 트럼프 개XX’  나의 가슴, 심장, 두뇌, 입술 모두 이 극단적인 말을 외치고 싶다.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지?’ 하는 바이든2의 말에 공감이 간다. 칠십 평생, 상상을 초월한, 전후 무후前後 無後 한  post modern의 시대 미국에서 이런 정신병자, 인간 말종이 4년간이나 막힘 없이 군림했었다는 사실, 이제 왜 세계사가 그렇게 많은 고통의 역사로 점철되었는지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이 말종 인간은 사실 문자로 언급할 가치가 하나도 없지만 문제는 바로 그를 추종, 맹종하는  준 準 정신병자들,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배워서 남 주나? 이말 밖에 나오진 않는다. 못 배우고, 무식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준 정신병자 부족들..  ‘하얀 것’ 하나를 마지막 자산, 무기로 삼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는 불쌍한 영혼들, 이들이 미국의 마지막 암의 존재로 군림 하는 초현대사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

이 말종집단들은 재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없지만, 급하면 수술하는 수 밖에 없다. Chemo (therapy) 같은 신사적인 방법이 현재는 통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래도 ‘높은 길’을 걸어야 한다. 거의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그래도 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의 나의 삶에서 이런 사상초유의 사태를 보며,  20세기에 두 번씩이나 인류에게 고통을 주었던 ‘독일 국민성의 오류, 독일인 근성’이란 것이 그들만의 고유한 것이 아님을 알고 앞날의 희망이 훨씬 줄어드는 나의 짧은 여생이 그려진다. 유일한 처방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너무나 높은 곳에 있기에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1. 맨 마지막 종 種이라는 뜻으로, 행실이 아주 못된 인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프로 정치인이지만 자기의 확고한 신념은 있다. 탸협이 기본인 정치에서 그는 진짜 정치인이다. 게다가 가톨릭사회정의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유일한 걸림돌은 그의 초인본주의 사상, 이것이 극좌 쪽에서 잘못 사용되면 그것도 비극의 시작이다.

On top, Stone Mountain

지울 수 없는 잊혀진 대의명분, Stone Mountain, Georgia

 

미국 조지아 주,  수도 아틀란타, ‘바람과 함께 사라진’  lost cause의 역사, 공립고등교육수준  미국에서 ‘거의’ 최하위,  racist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득실득실, 남북전쟁 전후 노예제도 천국, 깊은 산속에 숨어사는 해괴한 백인들…  알아들을 수 없는 지독한 사투리 southern accent, 이런 모든 조지아 주의 ‘사실이건 아니건’ 불명예는 정확히 30여 년 전에 ‘북쪽’에서 이곳으로 직장을 찾아 온 가족이 내려오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숨길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들이었다.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조지아와 모든 것이 정 반대의 극에 있는 ‘추운 동네’ Madison, Wisconsin을 떠나 새로 찾은 직장이 바로 Atlanta, Georgia에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대단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지만,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 남쪽 특히 조지아 주로 가는 것에 대해 불쌍한 듯, 이맛살 찌푸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 사회적, 문화적으로 뒤 쳐진 곳’으로 가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이사를 올 당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것 중에는 ‘무식 無識이 자랑인, 무지랭이 중의 극치 極致’, 감추고 싶은 미국 역사의 수치 羞恥’인  KKK (Ku Klux Klan) 가 ‘패전 敗戰, 조지아 주’와 직접 관련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남북전쟁 패전 직후 테네시 Pulaski, TN 주의 ‘한 동네에서’  갑자기 할 일들이 없어진 ‘패전 남부 confederate 퇴역군인, 동네깡패’들로 로 출발했던 이 hate group은,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급변하는 세상의 불안한 심리[흑인해방, 동유럽 이민, 가톨릭]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급성장 수백만 명의 member를 확보하기도 했는데 이 무렵에는 이미 ‘장난적인 hate group’에서 벗어나 당당한 정치적 그룹이 되었고 수 많은 정치인들도 가입을 한 상태가 되었다. 이 재건된 KKK의 시발점이 바로 아틀란타 교외의 Stone Mountain[현재는 州 공원]이란 곳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Stone Mountain [Park]은 사실 이곳으로 이사오자 마자 중앙고 후배 윤주네 집의 안내로 주말에 가끔 놀러 가던 곳이었다.  가족들 picnic장소로 적당하고 거리가 우리 살던 곳에서 20분도 안 걸리는 곳의 위치, ‘세계에서 제일 큰 돌 바위 산’으로 비교적 쉽게 정상으로 hiking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제일 큰 ‘행사’는 Laser Show였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남부의 영웅 3명[R. Lee, Jackson, J. Davis]’ 조각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laser image는 어둠이 깔리는 잔디에 누워서 보는 것은 정말 대단한 show였다.

 

3 heroes alive with Laser

 

비록 ‘적진 敵陣’으로 이사온 기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보이는 피해를 본 기억은 전혀 없다. 1990년대 이후의 아틀란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도시 문화를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온 지 몇 년 후에는 올림픽까지 치렀다. 내가 일하던 직장은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게 타 주에서 직장을 찾아 내려온 사람들이고, 최소한 수도권 안에서는 어렵지 않게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해 있었다. 그 옛날 유색인 전용 화장실은 전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이사온 지 30년이 지난 현재, 서울-아틀란타 비행기가 매일 뜨고 내리게 되어서 이제는 서울의 공기가 지척에서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아직도 조지아는 평균적으로 뒤 떨어진 곳이지만 부분적, 지역적으로는 진보, 발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비록 평균적인 중고등 교육수준은 최하위에서 맴돌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Georgia Tech이나 Emory University같은 곳은  대표적 예외에 속하는  case다.  온화한 날씨, 경제적인 부동산, 활발한 경제 등으로 이제는 너무나 많은 외부, 타 주 인들의 유입이 문제가 될 정도가 되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KKK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세계사를 통해서 이런 ‘반동, 증오’ 그룹은 언제나 있었고 그것에는 분명히 원인과 결과가 교훈으로 남는다. 미개한 것이나 덜 개화된 것이 전부가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그 중에서 제일 큰 원인을 제공한다. 미국의 KKK의 교훈을 보아도 분명하다.  노예들 덕분에 편안했던 시절이 끝나게 됨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듯하고, 설상가상 ‘종교가 불확실한, 못사는’ 유럽으로부터의 대량이민, 종교적으로 증오대상이었던 ‘가톨릭’의 출현, ‘보기 싫은’ 유대인들 등등,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증오했던 ‘백인우월주의’,  어느 정도 민중의 호응이 없었을 리가 만무하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면 모든 것은 끝이다.

이런 모든 것들의 실험장이 바로 미국의 19~20세기 역사가 아닐까?  이것은 전형적인 challenge-and-response의 반복 실험이다. 미국은 결론적으로 이제까지 이런 치명적인 도전을  거듭해서 물리치고 있는 형편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코앞에 있는 challenge 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위의 교훈들에 비추어 보아서 현재 우리의 ‘우려, 공포, 관심’은 무엇인가? 그것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거나 잘못 판단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이끄는 ‘주체 세력, 정치인’들은 과연 누구인가? 희망과 긍정보다는 불안과 공포를 들추어내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세력, 인간들은 누구인가? 우리와 같은 소수민족을 더욱 불편함과 불안함을 더해 주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그와 반대로 ‘지나친 방종적 자유, 비도덕적에 대한 무감증’을 부추기는, 한 마디로 ‘내가 법이고 도덕’이라고 떠벌리는 한심한 부류들은 누구인가? 이런 것들, 결코 쉬운 도전이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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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 내가 살아왔던 20세기 중엽을 전후로의 ‘세계, 미국사’를 사회적 관점에서 공부하는 데 안성맞춤인 당시의 미국 주간지 LIFE magazine에서 바로 KKK on the Stone Mountain, 기사를 읽게 되었다. 화보중심의 주간지라서 이곳에 실린 사진들은 과히 역사적 가치가 있었다.  사진기자가 어떻게 ‘변장’을 하고 이들의 ‘행사’에 잠입하여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는지, 과연 LIFE journalism의 우수성이 대단했다.

여기에 보이는 ‘신 단원 선서식’에서 많은 ‘인간’들이 관공서, 경찰 들의 member라는 것으로 당시의 ‘개화된 아틀란타’ 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채로운 것은,  이 사진의 설명들에서, 객관성을 자랑하는  LIFE 편집자들의 ‘이 그룹에 대한 혐오감’ 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 anti-Negro, anti-Catholic, anti-Semitic, anti-foreign, anti-union, anti-democratic”, “The ghastly spectacle of hooded human beings”, “Childish ritual”, “march in lock step, like old Georgia chain gang prisoners”, “the mumbo jumbo of initiating”…  이 중에서도 Georgia chain gang prisoners라는 말로 보아서 이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진] 조지아 주를 경멸, 조롱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On the evening of May 9 [1946] at 8 p.m. a mob of fully grown men solemnly paraded up to a wide plateau on Stone Mountain, outside Atlanta, G., and got down on their knees on the ground before 100 white-sheeted and hooded Atlantans. In the eerie light of a half-moon and a fiery 200-by-300 foot cross they stumbled in lock step up to a great stone altar and knelt there in the dirt while the “Grand Dragon” went through the mumbo jumbo of initiating them into the Ku Klux Klan. Then one new member was selected from the mob and ceremoniously “knighted” into the organization in behalf of all the rest of his fellow bigots. During the two-hour pageant the more privileged members of the Klan padded about with an electrically lighted cross. Said a local Baptist minister of the exhibition, “The ghastly spectacle of hooded human beings trekking…to Stone Mountain to burn a cross…is a sad commentary on the words of the Son of God: ‘And I, if I be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unto Me.'”.

This was the first big public initiation into the Klan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It was put on at a carefully calculated time. The anti-Negro, anti-Catholic, anti-Semitic, anti-foreign, anti-union, anti-democratic Ku Klux Klan was coming out of wartime hiding just at the time when the C.I.O. and the A.F. of L. were starting simultaneous campaigns to organize the South and just at the time when Southern politicians were starting their campaign for state and national offices. Georgia’s former “white supremacy” Governor Gene Talmadge is trying a comeback this year and has said that he will “welcome” the support of the Klan. But it is doubtful that the Klan can become as frighteningly strong as it was in 1919. One indication of the Klan’s impotence was its lack of effect on Negroes, who were once frightened and cowed by the white-robed members. More than 24,000 Negroes have already registered for next July’s primaries in the Atlanta vicinity alone, where the Stone Mountain ritual was held.

 

THE KLANS “GRAND DRAGON,” SAMUEL GREEN, AN ATLANTA DOCTOR, IS SURROUNDED BY HIS ASSISTANTS

THE “NEW MEMBERS” march in lock step, like old Georgia chain gang prisoners, up to the Klan’s big altar. The Klan exultingly announced they had initiated 600 new members in one night. But observers’ best guesses were from 150 to 200.

A BURNING CROSS DURING MAY 9 INITIATION, STONE MOUNTAIN CEREMONY WAS PUT OFF MANY TIMES, KLANSMEN SAID, BECAUSE OF WARTIME SHEET SHORTAGE.

BEFORE THE GRAND DRAGON initiates kneel, repeating the ritual. The crowd included some Atlanta policemen. The five Atlanta “klaverns”(branches) are strong because many members of the police force are also members of the Klan.

 

 

 

YAN: Yet Another Nostalgia

Nostalgia, 향수’병’ 鄕愁病… 허~ 이것도 이제 보니 병 病 그러니까 주로 ‘정신 질병’이다. 몸과 마음, 특히 마음이 아픈,  분명한 병은 병인 모양이다. 나에게는 특히 친숙한 이 ‘병’, 약 7 년 전에 우연히 신문기사 New York Times 에서 이것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에 이런 것도 연구 대상이 되는구나 의아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유별나게 아련한 감정에 자주 휩쓸리는 나의 모습을 숨기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나의 중년 이후의 모습이기도 했다. 고향도 그렇지만 지난 시절을 유별나게 그리는 것, 간혹 이것 병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긴 했다. 그러다가 그 ‘과학적 연구’의 기사를 읽고 많이 위안을 받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과 향수병에 쉽게 걸리는 type은 흔히 우려하는  mental disorder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더욱 재미있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나간 Atlantic Magazine 이 그 출처가 되었다. 기사의 제목이 유별나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름하여: Study: Nostalgia Makes Us Warm, and Cold Makes Us Nostalgic… 그러니까.. “향수’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추위는 우리에게 향수병은 가져다 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부제 副題다.  ‘쉬지 않고 지나간 12월의 추억에 빠지면 집의 난방비가 줄어든다’. 와~ 과연 무슨 뜻일까…

대강 짐작은 간다. 포근한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에 빠지면, 그러니까 ‘향수병에 빠지면 몸도 따라서 따뜻해 지고,  또한 추위는 우리에게 향수병을 가져다 주고, 따라서 난방비가 줄어든다’ 는 논리다. 조금은 웃기는 듯 하지만 나는 150% 동감이 간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 Atlantic의 기사는 과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하고자 시도한 것이고 그들의 가설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춥거나, 슬프거나 외로울 때, 특히 holiday season에는 지나간 행복했던 시절의 생각에 빠져라’ 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을 즐기며 따뜻하게 살고 싶고 난방비 절약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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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Nostalgia Makes Us Warm, and Cold Makes Us Nostalgic

Lindsay Abrams  December 4, 2012

 

Non-stop reminiscing about December past may cut down your gas bill.

PROBLEM:  Why do we get so nostalgic in December? Smell, touch, and music have all be proven to evoke it, and the holidays have all three (though, apologies if you’re not being touched enough this seasons.) While they can spur us to give love to our fellow men, or remind of us what’s important in life, they may also serve a more utilitarian function.

METHOLOGOGY: Researchers at the University of Southampton recruited college students to participate in five relatively basic studies centering around nostalgia to warmth. Some of them would probably make great holiday party games.

  1. Participants were asked to keep a journal of nostalgic feelings over 30 days, which were then compared to each day’s weather.
  2. Participants were placed in rooms ranging from cold to comfortable to over-heated, and then asked how nostalgic they felt.
  3. In an online study, participants listened to music and were asked about how nostalgic it made them feel, along with how warm they currently felt.
  4. Participants were placed in a cold room and instructed to reflect on nostalgic or ordinary memories, and to then guess the room’s temperature.
  5. After being asked to recall a nostalgic or ordinary memory, participants placed their hands in iced water and were instructed to keep them there for as long as they possibly could.

Different participants were used for each study.

 

RESULTS:

Success on all fronts. The journalers recorded more nostalgic thoughts on colder days. The people in cold rooms rated highest on nostalgia scales. The people for whom the music evoked the most sentimentality reported feeling warmer. The people told to think nostalgic thoughts while in the cold room had the warmest estimates for what the temperate actually was. And the unlucky participants in the ice water experiment lasted longest when they focused on nostalgic memories.

CONCLUSION:  Nostalgia appears to both to be evoked in chilly atmosphere and to have a protective effect against the cold – either by making us feel warmer or at least increasing our tolerance.

IMPLICATIONS: If you’re cold, sad, and lonely this holiday season, lose yourself in memories of happier times. That will take care of at least one of your problems.

 

The full study, “Heartwarming Memories: Nostalgia Maintains Physiological Comfort,” was published in the journal Emotion.

LINDSAY ABRAMS is a former editorial fellow at The Atlantic.

冊, Rome Sweet Home

 

Scott & Kimberly Hahn 의 잘 알려진 이야기,  ‘개신교 골수분자’였던 이들 부부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던 과정을 자세히 쓴 책의 제목이 바로 Rome Sweet Home이다. 이름부터 이채롭다. 그들에게는 ‘이단 종교의 아성’으로 증오의 상징이었던 로마 교황(청) Vatican 이 결국은 그들에게는 ‘오랜 방황 후에 돌아온 나의 고향’이 된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지난 20년간 아주 조금씩 ‘귀동냥’ 정도로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주류 크리스천들이 개종하는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큰 이야깃거리는 아니지만 이 부부의 개종은 아주 의미심장, 지각변동적, 특별한 것이기에 ‘사회적, 세속적 뉴스’까지 된 것이 아닐까?

내가 그 동안 이 사실에 대해서 듣고 안 것들은 아주 피상적이고 ‘소문의 수준’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일주일 만에 두 번을  cover-to-cover 로 읽고 나서, 나는 놀랍기도 하고, ‘그러면 그렇지..’하는 안도감, 이제라도 이런 ‘천재 신학자’를 가톨릭으로 보내준 사실이 아주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일 인상적인 표현은 이것이다. 이 사람의 ‘역할, 위치’는  한마디로 Luther in reverse,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reformation의 반대 과정을 거친, ‘개신교에서 기독교의 원형인 가톨릭’으로 거슬러 올라간  장본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의 본향을 찾았다!’ 하고 외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니, 모든 독자들이) 제일 관심을 갖고 찾았던 부분은 물론…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본향’을 찾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부부의 깊은 학자적, 성경신학적인 배경을 알면 절대로 ‘간단한 결정’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이 책으로 느낀 점 중에 제일 나를 부끄럽게 했던 것이 있다면, 역시 Holy Bible, Scripture에 관한 것이다. 역시 가톨릭은 ‘소문’ 그대로 성경에 대한 열정만은 개신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가톨릭 신자들도 인정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부러움’이 결국은 개신교의 근본적인, 기본적인, 역사적인 문제중의 문제가 됨을 알면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개신교의 근본 공리적 명제는 Sola Scriptura (성경 유일)와 Sola Fide (믿음으로만).. 이 아닌가? 이것에 ‘근본적, 신학적’ 문제가 있으면 어찌 되는 것인가?

Scott Hahn 은 젊은 시절부터 ‘광신적 성경, 믿음 유일주의자’였고 ‘광신적 가톨릭 혐오자’라고 자부를 하던 ‘유망한 젊은 신학도’였다. 그가 성경으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생애의 고민’은 시작된 것. 처음 그가 경험했던 고민은 ‘어디에 성경만이 모든 것’이라는 근거가 있는가를 ‘탐정적 열정’으로 찾은 것으로 비롯된다. 신학교 젊은 교수시절 한 ‘명석한 학생’의 순진하지만 심각한 질문, ‘성경의 어느 곳에 성경만이 전부’라는 구절이 있습니까?’ Martin Luther이후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이 사실은 그를 너무나 놀라게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거기서 끝 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성경에는 Sola Fide, Faith Only라는 것 이외에 교회초기의 교부들과 전통들도 같이 강조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타협을 하느냐?  허~~  문제는 성경만이 절대로 옳은 것이라면 이 두 문제는 ‘모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이런 ‘사태’에 직면한 Scott Hahn, 그의 모든 지적 능력을 통해서 그는 결국 전통적인 가톨릭 문헌, 교리를 철저히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가톨릭의 교리, 전통, 성경 모두 그들이 공부한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는 놀라움이었다.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것은 ‘역시’ 성모신심, 교리였지만 이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한 묵주기도를 통해서 비교적 쉽게 극복이 되었다.

그의 영적 동반자 부인인 Kimberly는 5년 뒤에 그를 따라 개종을 했는데 그 과정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이혼’까지 각오를 한 Scott의 용기는 실로 극적인 것이었고 결국은 그들은 평화 속에서 다시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교황청에서도 인정하는 ‘세계 정상급 신학자’의 대열에 서게 되었고 유명한 가톨릭 대학 Franciscan University의 유명한 교수로서 열정적인 교육, 전교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수 많은 강론 여행을 하며 ‘그릇된’ 개신교 기본교리를 알리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 명석한 부부 가톨릭 신자를 어떠한 눈을 볼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그래도 ‘신학은 신학으로’ 대하고, 풀어야 하지 않을까?

 

轉換點 The Turning Point – 카프라

¶  얼마 전, 거의 40년 만에 ‘먼지 속에서’ 다시 찾게 된 책, 다시  읽게 된 , Fritjof Capra의 international bestseller, ‘名著’ The Tao of Physics (物理學의 道, 번역서: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로 인해서 그 이후의 Capra의 ‘변모과정’을 다시 읽고 알게 되었다. 대강적인 그 과정은 물론 ‘무료’ Wikipedia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면서 ‘궁극적 진리를 향한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4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겠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너무도 ‘쪼잔 하고, 미세한’ 영역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했다는 자책감을 금할 수가 없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도 보라’는 진부한 표현에 숨어있는 진정한 지혜를 왜 나는 그렇게 무시했던 것일까?

여기에 언급된 Capra의 두 번째 저서 The Turning Point를 다시 읽게 된 과정도 전에 발견했던 떼이야르 샤르댕 Teilhard Chardin의 때와 아주 흡사했다.  근래에 나를 ‘지혜중의 높은 지혜’의 방향으로 이끄는 나침반: ‘오늘의 思想 100인 100권1,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2‘ 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인류의 엄청나게 축적된 다양한 지혜에 다시 감사하며 나의 눈길을 끄는 것부터 읽는다. 세상에는 참 지혜롭고 명석하고 선지자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소화한 대한민국의 지성들을, 최소한 그들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알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여기 소개된 The Turning Point를 짧은 글로 소개하신 분 ‘이성범 李成範’은 놀랍게도 시인 詩人으로 나와있다. 이 ‘시인’은 Capra의 첫 bestseller 인 The Tao of Physics의 번역본 공동저자이기에 낯이 설지 않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너무나 동떨어진 분야가 아닌가… 놀랍지만 이것도 즐거운 놀람의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최근 최소한 지난 50년간 진행되고 있는 trend가 아닐까.. 모든 분야를 총괄적으로 보려는 노력, 이 시인도 그런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현대과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시인’, 그 계기는 잘 모르지만 참신하고 희망적인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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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論考

전환점 轉換點(1982)

The Turning Point

카프라 (Fritjof Capra 1939~ ) 著

 

(琴谷 금곡)  이성범 李成範 (詩人)

 

카프라 박사는 1966년에 비엔나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의 박사학위를 받은 후 빠리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런던 대학 등에서 물리학 연구와 강의를 했으며, 1975년 이후 현재까지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렌스 버클리 실험실 Lawrence Berkeley Laboratory에서 소립자 연구를 계속하며 강의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론물리학 교수이다. 그는 또한 The Elmwood Institute를 창설하여 여러 학문분야에서 새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을 종합하고 상호 통신하며 조직화하는 야심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첫 저서인 <물리학의 道 The Tao of Physics, 拙譯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 는 1975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후 각국어로 번역 출판돼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다. 이 책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 등 현대물리학에서 밝혀진 새로운 물질관 또는 세계관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 세계관이 고대로부터의 동양의 사상들 (불교사상 음양사상 도교사상 힌두사상 등)에 담겨 있는 전일적 全一的이며 역동적인 신비사상과 어떻게 유사하며 부합하는가를 종합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세계적인 과학자 철학자들에 의해 그 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토의되고 있다.

<전환점, The Turning Point, 拙譯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은 그의 두 번째 저서로서, 1982년에 뉴욕에서 출판된 것이다. 이 책은 발간 즉시 독일과 프랑스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독일에서는 출판 직후 35주 동안 계속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2

<전환점>은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위기와 변형>에서는 현대의 우리 사상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물질적 과학적 세계관의 유래를 밝히고, 인류 역사에 있어서의 여러 문명의 흥망에 따른 세계관의 변천을 서술한다. 이와 동시에 현대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위기 현상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실제의 일면만 보는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과거 3백 년 간 너무나 오래 집착해 온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에서 깨달은 새로운 세계관과 학문방법이 이제는 기타의 여러 학문 분야 (생물학 의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 급속히 퍼져가고 있으며, 이것은 르네상스시대에 새로운 세계관과 문명의 전환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에 획기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2장 <두 개의 모형>에서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와 새로운 물리학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세의 유기체적 영적 세계관이 1500년과 1700년 사이에 어떻게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전환했는가를 ‘코페르니쿠스’를 위시하여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 등의 사상을 예시하면서 상세히 설명하고, 그 기계론적 세계관이 ‘뉴턴’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그 기계론적 세계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뉴턴’의 위대한 성공은 기타 과학의 발전을 급속히 촉진시켰고 모든 과학은 ‘뉴턴’의 수학적, 분석적, 환원주의적 방법을 답습했으며, 그 기계론적 세계관이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기타의 모든 학문분야의 기저에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물리학이 전자장의 현상을 다루어야 되고 생물학에서 진화의 현상을 다루어야 됨에 이르러, 우주는 기계론적으로 단순하게 다룰 수 없는 더 복잡하고 오묘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 물리학은 ‘플랑크’가 1900년에 양자를 발견한 데 뒤따른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Photoelectric effect 론 과 상대성원리 Principle of Relativity에서 시작된다. 상대성이론은 ‘뉴턴’ 역학의 기본 가정이 되는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틀린 개념임을 증명했다. 시간이란 ‘뉴턴’ 또는 고전물리학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과거로부터 미래로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그 동시성과 흐름이 다른 것임을 ‘아인슈타인’은 보여주었다. 또 공간도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물체를 담고 잇는 빈 그릇과 같은 ‘유클리트’ 기하학적 균질 均質의 것이 아니라 그 담고 있는 물질의 질량에 따라 다른 곡률 曲率로 휘어져 있는 것이다.  또 우주는 질량을 가진 고체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뉴턴’은 생각했지만, 물질이란 에너지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서 물질의 질량은 E=mc2(E: 에너지, m: 질량, c: 광속)의 등식에 의해서 정의되는 에너지의 양인 것이다. 또한 우주는 시공 연속체의 4차원 속에서 부단히 변화하고 있으며, 이 우주 속에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도 ‘아인슈타인’은 보여주었다.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체로 여겨진 원자를 찾아낸 물리학자들은 20세기 초반에 와서 원자의 많은 속성들을 발견하였으나, 그것은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절망에 가까운 혼란상태에 빠졌다. 드디어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에 불확정성원리 Uncertainty Principle를 완성시켜 원자현상을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게는 했으나 그것은 ‘뉴턴’이나 고전물리학의 철칙이었던 인과율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학의 기반을 송두리째 소멸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확정성원리가 핵심이 되는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하여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간에 유명한 논전이 벌어졌다.

‘아인슈타인’은 ‘국소원인 원리’ 局所原因 原理 Principle of local causes를 주장하면서 양자물리학이 더 발전하는 어느 날엔 인과율이 원자의 세계에도 다시 적용될 것이라고 했고, ‘보어’는 불확정성원리는 자연의 기술에 있어서 부동의 원칙이며 불확정성은 관찰의 미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본연의 속성이라고 했고, 우리의 시스템은 ‘비非국소적 연결’ Non-local connection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1964년에 ‘벨, G. S. Bell‘은 이른바 ‘벨의 정리 Bell’s Theorem‘를 발표하여 ‘보어’의 ‘비국소적 연결’을 뒷받침했다. 우리의 시스템이 ‘비국소적 연결’로 연결된 것이라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되며, 이것은 우리의 세계가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유기체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우주는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유기체로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물리학에서는 물질의 개념이 바뀌어졌고 실재 實在 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인간 사고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으며, ‘인간의식’을 떠난 과학의 완전한 객관성이 성립할 수 없게 되었고, 우주는 인과율에 의해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고전과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받아질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새로운 시스템적 유기체적 우주관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제3장 <데카르트-뉴턴 사상의 영향>에서는 그 기계론적 세계관과 그 분석적 환원주의적 방법이 얼마나 뿌리 깊이 생의학 심리학 경제학 등 과학 전반에 박혀 있으며, 그 고정관념에의 수세기에 걸친 집착이 이제는 이들 학문의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게 되었으며 또 그것이 현대문명 전반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제4장 <새로운 실재관 實在觀> 에서는 새로 대두하는 시스템적 세계관을 상세히 상술한다.

우주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것은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계는 활성이 없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의 구조가 기계 전체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들을 가능한 한 최소의 구성단위까지 분석하고 분할하여 그 작동의 인과관계를 관찰하여야 한다. 반면 유기체는 생동하는 전체의 시스템으로서 전체와 부분이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스스로의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창조적인 것이다. 기계에서는 부분의 합계가 기계 전체의 기능을 결정하지만, 유기체는 전체의 필요가 부분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라고 본다면, 그 안에는 무수한 수준의 유기체적 기관들이 있으며, 각 수준의 유기체들은 상호작용하고 부단한 창조활동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고전과학이 분석과 분할을 학문의 방법으로 한 데 반하여, 유기체적 세계관의 신 과학은 전일적 全一的 인 종합의 방법을 중요시 한다.

현대의 학문은 너무나 다기화되고 전문화되어서 학문 또는 문화 전체의 기반을 보지 못하기 쉽다. 이제 현대의 문화는 중요한 전환기에 와 있으며, 이와 같은 문화의 전환은 인류 역사상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다.

 

3

‘카프라’ 박사는 현대문명을 종합 진단하여 그것이 중병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고, 새로운 문화의 대두에 의한 새로운 문명의 출현을 상세히 기술하여 문명의 획기적 전환을 예언한다. 그는 무수한 과학논문을 썼고, 많은 철학적 일반강연을 했으며, 이 책 다음에는 ‘녹색 정치, Green Politics‘라는 책을 ‘샬렌 스프레트나크 Charlene Spretnak와 공저로 1984년에 출판 한 바 있다.

인류의 장래는 결정론적으로 예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카프라’ 박사의 문명전환론은 세계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1. 1986년 신동아 1월호 별책부록, 동아일보사
  2. 1984년 신동아 1월호 별책부록, 동아일보사

35th ‘Tao of Physics’, Teilhard de Chardin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The Tao of Physics‘, ‘떼이야르 샤르댕의 신학사상‘, ‘PIERRE TEILHARD DE CHARDIN‘..   이 무거운 느낌을 주는 이름을 가진 4권의 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읽고, 쓰고, 추측하고 생각하며, 심지어 상상의 나래를 펴는 등,  머리 씨름을 하고 있는가.

 

  1. ‘現代物理學과 東洋 思想’: F. 카푸라 교수 저, 이성범 김용정 공역, 1979년
  2. ‘THE TAO OF PHYSICS’, 35TH ANNIVERY EDITION with a new preface by the author, 2010
  3. ‘PIERRE TEILHARD DE CHARDIN by Ursula King, 1999
  4.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신학사상’ 로버트 패리시 Robert Faricy 저, 이홍근 역, 1972년

 

이 네 권의 책이 나에게 주는 느낌, 내가 받는 느낌 모두 공통점이 있다. 본문을 읽고 있지 않아도 그 책 표지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너무나 심오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아주 가볍게 날라가는 나비처럼 상쾌하기도 한 ‘진실로 진실로’ (예수님의 표현에 빌리면) 묘하기만 한 것이다.

이 네 권의 책이 내 책상 위에 함께 놓이게 된 과정을 생각해보니 조금 흥미롭기까지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요사이 내 머리 속의 ‘사상, 생각’은 이 네 권의 책이 암시하는 깊은 내용으로 꽉 차있다는 사실이다. 내 일생의 주 관심 화제였던 sparkly electron 1들은 나의 머리에서 거의 종적을 감추어 숨어버렸고, 이렇게 ‘의식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형의 사물’들이 나의 favorite things들이 되어있는 나 자신을 보고 ‘never say never’라는 흔한 명언이 나를 비웃는 듯 하다.

우선 떼이야르 라고 불리는 (표준 한글로 쓰는)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 진화론적 철학 사상가, 고생물학자 가 나의 눈길은 끈 경위는 우연히 보게 된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에서 ‘오메가 점 이론 Omega Point Theory’이란 말을 보았을 때였다. 그 소고 小考 논설은 떼이야르의 대표작 ‘인간이란 현상 The Phenomenon of Man’ 이었고, 그곳에서 떼이야르는  ‘아득한 먼 앞으로 내다보는’ 그의 vision으로 Omega Point theory란 것을 언급하였다.  오메가 ‘점’이란 말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라고 말한 예수 그리스도로 비롯된 것이고 그는 우주의 진화 는 결국 예수님의 영역인 오메가 점으로 ‘수렴 convergence’ 한다는 지극히 그리스도교적 이론이다.

왜 이 Omega Point가 나의 ‘신비스런 흥미’를 자극했고 이 ‘이론’의 창시자 ‘떼이야르’와 그의 사상, 이론을 알고 싶어 했던가?  1992년 경, 내가 살고 있는 곳 East Cobb 지역에는 BookStar라는 Mega book store가 있었다. 인터넷 전, 그러니까 물론 결국,  ‘머리칼 숫자와 $$$ 의 반비례성을 증명하는, J.Bezos‘의 아마존 Amazon.com bookstore 이전에는 이렇게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보고 살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심심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서 토요일을 한나절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 나의 눈을 번쩍하게 하는 책의 제목이 보였다.  Frank J. Tipler 저, Physics of Immortality 란 ‘두꺼운’ hardcover, 몇 페이지를 둘러 보는 것조차 숨이 찰 지경이었다.

수학 공식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이론 물리학’ 책이었지만 더 자세히 보면 그곳에 나오는 용어들이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책을 사가지고 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기도 했다. 당시 나의 결론은: ‘이 저자는 아마도 정신병자거나 몇 세기에나 나오는 천재’ 라는 것이었고 그 책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쫓아버렸고 완전히 잊고 살았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그의 생각은: ‘이론적으로 수학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특히 인간들은 때가 오면 완벽하게 되 살아난다’는 것이고 기독교의 부활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그것을 ‘미적분과 비슷한 각종 수학, 방정식 등을 총 동원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말하는 ‘부활의 순간’을 그는 바로 Omega Point라고 했고 그것을 Omega Point Theory라고 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이 Omega란 말만 보거나 들어도 이 mad scientist의 헝클어진 머리 모습을 떠올리곤 하곤 했는데 이제야 왜 그 mad scientist가 오메가란 말을 쓴 사연을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그는 ‘떼이야르’의 진화적 신학사상에서 이런 기가 막힌 idea을 얻었고 그의 특기인 ‘이론물리, 수학’을 총 동원해서 그 책 Physics of Immortality 을 썼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떼이야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떼이야르의 저서를 접하면서 그 1992년 당시의  잊혀진 책을 회상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책, the Tao of Physics은 그보다 과거로 돌아가서 1980년경의 추억이다.  연숙과 결혼을 하고 모국을 먼저 떠나기 며칠 전날 둘이서 광화문의 어떤 서점에 들렸었고 책을 하나 샀는데, 그 책이 바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現代物理學과 東洋 思想’이란 번역서였다. 당시만 해도 ‘서로 상극적인 느낌’을 주는 이 책의 제목에 호기심을 느꼈을 것인데, 문제는 책의 내용보다는 ‘번역 수준’ 에 있었다. 옮긴이들이 모두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동양학자 들이어서 그 난해한 물리학 용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힘들었음은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그 책은 그렇게 해서 잊혀지고 말았다.

 그 ‘역서 譯書’를 이번에 책을 정리하며 재발견을 했는데 감회는 새롭지만 읽기의 어려움은 예전보다 더 심했다. 모국어를 읽는 것이 어찌 이렇게 힘들어졌는가? 반세기 동안 ‘문화의 차이’가 준 영향인가? 이제는 거의 일반화된 ‘동서양 사상의 접근’의 덕분으로, 이 책이 주장하는 것들에 많은 공감이 가기에 이번에는 ‘원서 原書’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거의 40여 년이 지난 후에 ’35년 기념판’을 원서로 읽게 된 것이다. 너무나 놀란 것은 이것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였다. 예전과 무엇인 차이인가?  이제 나의 머리는 완전히 영어권 속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이런 세월이 준 혜택인가 아니면 불편인가? 

  1. 전기 물리과학, 공학, 컴퓨터 등등

마리아論의 기본원리

Blessed Virgin Mary

 

성모승천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매년 8월 15일, 우리의 광복절) 을 즈음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거의 9년 전쯤에 처음 읽다가 만  독일의 신학자 Wolfgang Beinert 볼프강 바이너르트의 <마리아 –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이란 책,  당시 생전 처음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서 고조된 성모신심에 힘입어 – 일단 묵주기도를 통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지만 – 그 이후로도 가끔  생각하며, 개인 신심적으로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지극히 가톨릭적’인  ‘5대 마리아 교의‘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포근한 인류의 어머니’, 무엇이나 다 들어주실 듯한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려고 무척 애를 썼고 이제는 아주 편하게 나를 ‘개인적으로 대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항상 비껴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들 그러한 포근한 어머니를 배척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심지어 그런 ‘증오심’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간들을 보면 심한 혼동에 빠진다. 어떻게 그러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것인지…

역시 이것도 요사이 미국 가톨릭교회의 떠오르는 희망인 LA 교구의 Bishop Robert Barron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랑에 의한 이성’을 통한 신심, 바로 그것이다. 학문적인 체계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뜨거운 신심이라도 수명과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학문적인 체계, 논리적인 뒷받침,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6장에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 가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학문적인 approach인 것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서로 논쟁을 해도 할 것이다.

 

 

마리아論의 기본원리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머물렀다.

2.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3.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

4. 마리아는 죄 없는 삶을 영위하였다.

5. 마리아는 사망 후 ‘승천하였다.’

 

신학자들은 특수한 원천기반과 이에 상응하는 인식기준에 입각하여 계발된 모든 마리아 교리에서, 배아 胚芽에 담겨 있는 것 같은 기본원리를 발견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원리가 있다면 이로부터 마리아론 전체의 단일성과 응집력은 가시적이 될 것이며, 마리아 신심은 번잡스러움과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되고 통제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한 명제는 어느 것이든 그 기본원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정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의 정당성 여부는 이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실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명제는 하나의 일반적인 교의적 기능을 지니며, 신앙교리 전체구조의 범위 내에서 마리아론 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가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이 기본원리는 순전히 조직적인 근거에서만 중요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도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에 의하면 ‘신앙진리의 위계질서 位階秩序’가 있다. 이 점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단정되고 있다. 1 신앙의 진리는 모두 진리이지만 이것이 모두 동격은 아니다. 어떤 진리가 – 진리의 함축성은 손상되지 않은 채 –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진리이며 인생의 진리인지, 아니면 보다 주변적인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기본원리는 마리아 신심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신심인지, 아니면 이 신심이 특별히 정당하고 모범적이긴 하지만 열심한 교회 구성원의 특수영성일 뿐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 신심인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해답을 줄 것이다.

성 알로이시오 Aloysius (1568-1591), 사도 유다 타데오 Judas Taddaus,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 Antoius (1195-1231)와 같은 성인에 대한 공경이 극히 칭송할만하고 장려할 만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을 공경하는 것만으로 어느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척도를 삼을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성인공경이 신앙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어머니 마리아 공경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문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본원리는 얼핏 보아서는 발견하기 쉬운 것 같다. 마리아에 관해서 언명하고 탐색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구세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이 사실을 도외시한다면 남는 것은 마리아가 아무리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 알로이시오와 사도 유다나,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찬양 받을 만 하듯이, 마리아와 유대를 맺는 것 또한 찬양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마리아론 이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로이시오론 이나 안토니오론 을 정립하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론을 정립하려는 이 작업은 언어상의 난점을 도외시하더라도 착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인물은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과는 달리 독자적인 양식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제만을 마리아론 전체의 기본원리로 선언하는 것이 불충분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보다는 바로 이 모성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이 모성이 다른 모성과 어느 점에서 구별되는가? 이 모성이 어느 점에서 마리아의 다른 기본특성의 근거가 되는가? 여기서 의견들이 분분해진다. 하느님의 모성에 대해 상이한 일련의 형식규정들이 있다. 이것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는 다만 몇 가지 분석적인 고찰만을 시도하고자 한다.2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기본진술은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이룩하신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바로 하느님이 인간의 절대적 완성을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절대완성이란 삼위일체인 하느님과의 복된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이 목표는 우리가 구세사 救世史라고 일컫는 과정 속에서 구현된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일이란 구세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이 구원을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그 사건은 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은 구세사가 동일한 밀도로써 계속 진행하지 않음을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구세사 안에는 절정이 있는가 하면, 심연이 있다.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조용하게 사건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점은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세계의 역사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이 테두리 안에 하나의 중심사건이 있는가?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 시간의 충만, 즉 모든 구세사건의 정점이요 핵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가운데 시간은 절대 중심에 이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은 이 구세사의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사의 사건에 대한 이치에 맞는 척도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스도 사건의 본질적 면모를 찾아내어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형식적 면모를 단정할 수 있다.

 

1.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의 ‘간선’이다. 육화,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것은 창조에 내재하는 강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은총결의 恩寵決意에 서 나온 것이다. 육화, 강생이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했는지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아니면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발생했을는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오늘날 믿고 있듯이)는 여기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가설이든 그리스도의 육화는 하느님의 절대의지에 의한 것이며, 인류의 입장에서 볼 때 어던 이유도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사건은 연대사건이다. 육화의 개념은 육화의 사건 전체에서 가려 뽑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의 형제가 되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2, 11-17 참조). 그러나 여기에 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도착 倒錯되어 비정상적이 된 인간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존재란 항상 공동체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귀결을 낳는다.

(1)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에게 주어져 있는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나 특정한 가정에 태어나고, 특정한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누구나 정치-문화적인 총체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마련이다. 이 상황에 속한 구체적 집단은 각 개인의 활동보다 앞서 있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정치 문화적 총체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가 이미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구현을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게 주어져 있는 특정한 구세사적 상황에 태어나기 마련이다. 이 구세사적 상황은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 그리스도교적 이해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인간역사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2)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그가 그 공동체에 해독을 끼치는 사람일 경우라면 그가 없어지고 난 그 공동체는 아마 개선될 것이다. 또 유능한 한 사람의 활동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그 공동체는 가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공동체를 지연시키고 공동체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런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가장 보잘것없는 지체일망정 인간은 누구나 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이 구원공동체에도 해당된다.

강생이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으로서 존재하는 구원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가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계약에 포함된 인간이 그리스도를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 자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써 새 계약[신약]이 묵은 계약[구약]에서 탄생하였다. 이 새 계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새로운 구원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첫 의인이었던 아벨로부터 유래하는 교회’3로서 애당초부터 그를 향하여 정착되어 있었으며 머리인 그에 의하여 생활하는 교회인 ‘신약의 교회’에 들어섬으로써 성취된다.4

 

3. 그리스도 사건은 ‘구세사적인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 은총의 충만이 우리 구원을 위해 세계에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골로 1, 19이하). 그러므로 이 은총은 강생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분배된다. 또한 이 은총은 인간적 활동에 입각하여 세계에 선사된다. 우선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입각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지향하거나 또는 그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을 봉사에 내맡기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이 은총은 세계에 선사된다.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 (에페 1,23)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건의 형식적 규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 사건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와의 연대성과 구세사적 효력은 교회 실존의 근거이며,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전제이다. 여기서 이러한 구조 자체가 하느님이 역사하신 사실적 길[道程]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식을 신학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식화하여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론은 교회론 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론은 구세사적으로 볼 때 교회론의 전제이며 교회론은 그리스도론의 계속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구세사의 정점이요 중심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통찰에 이르게 되면서 우리는 구세사적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 모색했던 척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척도는 한 인물이나 사건이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 속에 존속한다.

 

그러면 이 고찰이 우리의 마리아론적 기본원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그리스도론이나 교회론에서 분리된 진정한 마리아론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로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에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지금까지 전개해 온 토론은 긍정적이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로지 종합명제가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구원을 이룩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만 구원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독자적인 마리아론이 있다면, 이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사이에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각각 위치해야만 한다.

이제 주의 어머니의 인물 자체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는 결국 자유로운 하느님의 은총행위를 통해서 주의 어머니가 되는 품위에로 불림받은 것이다. 그녀의 모성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조물계에서 통용되는 인과율의 결과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동정녀 출산의 신비에 대해 신학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말씀이 육화하는데 ‘예’를 발함으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실적 구원계획을 수락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적으로 온전히 수락되고 수용된다. 하느님의 인류와의 연대성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마리아를 통하여 작용한다. 마리아는 사람의 아들 [인자 = 그리스도]에게 그를 인류와 연결시키는 육신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람의 아들을 인격적으로 연결 지어주는 지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와 관련된 개념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통하여 교회 안에 탄생하였으나 동시에 교회의 머리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하는 가운데 마리아  안에서 신약의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모성을 통하여 구세사적 작용능력도 아울러 받게 된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하느님과의 연대감으로 인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서 성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인물의 구세사적 가치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 속에서 측정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교회 안의 그리스도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밀접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교회를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마리아에게 해당된다면 후자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가 마리아에게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5

이렇게 정식화함으로써 우리는 마리아의 모성의 규정을 넘어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립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다.”

이 원리로부터 다른 모든 마리아론적 신앙진술이 유도되어 나와야 할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다른 모든 신앙진술은 이 원리와 부합되어야 한다.

 

<마리아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중에서

볼프강 바이터르트

심상태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11항: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기초와의 관계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여러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그 진리들 사이에 질서와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전체적으로 A. Mueller, Marias Stellung und Mitwirkungim Christusereignis 참조.
  3. 교부시대 이래 활발하였던 ‘아벨로부터의 교회 표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재차 포착하였다.
  4. 이 표상은 성바오로의 ‘그리스도의 몸 신학’과 ‘그리스도의 몸 신비학’에 그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에페 4,15 참조.
  5.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교서 Marialis cultus 16-22, 32, 57항

예수회, 이냐시오의 고민

예수회 창시자 성 이냐시오

예수회, S.J.  성 로욜라의 이냐시오,  S.J…. Society of Jesus. 우리에게 비교적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 ‘가톨릭’ 단체는 과연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것이야 말로 우문현답 愚問賢答 을 연상하게 하는 질문이지만 실제로 어떤 때는 나도 확실하지 않다. ‘예수회’니까 물론 절대적, 궁극적인 목표는 ‘역사적, 현존’ 예수님일 것이지만 과연 그것을 지향하는 신학적인 철학, 방법은 무엇인가? Wikipedia같은 곳을 보면 ‘공식적인 사실’들이 수 없이 많이 열거되어 있고, 모두 사실적, 객관적, 역사적인 것들이라 왈가왈부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머리로, 가슴으로, 피부로’ 받는 그 느낌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객체’들에 의해서 좌우 될 것이다. 그 객체는 어떤 것이며 누구인가?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예수회 사제, 신부, 수도자, 학교’ 같은 것이 아닌가?  내가 학교 같은 단체는 접할 기회는 없지만 사제들은 바로 앞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나에게는 예수회의 전부인 것이다.

나의 두 본당 중 영어권 본당의 사제는 오래 전에 결혼을 한 ‘동방교회’ 출신으로 로마교회로 온 신부로 그야말로 ‘교구신부’다. 예수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모국어 ‘도라빌’ 본당의 사제는 언제부터인가 교구사제에서 예수회 사제로 바뀌어서 이제는 예수회란 말이 빠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예수회’를 느끼며 사는 것이다.

우리들, 평신도들에게 이런 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멀리서 보면 큰 차이는 없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차이를 느낀다. 예수회 사제, 특히 본당신부는 전통적으로 ‘교구 사목’이 그들의 특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차이가 없이 느껴지니까 별 문제는 없다. 오히려 영성적인 측면으로 보면 더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냐시오의 영성을 사목에 주안점으로 삼으면 평신도들은 독특한 혜택을 받지 않을까.  그래서 교구 사목상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나는 절대적으로 신학전문가가 아니기에 섣불리 단언은 못하지만 내가 접하는 ‘미디어’ (fake가 아닌 전통적 미디어)를 통한 예수회, 그것도 특히 미국(북미주) 예수회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야당과 여당’을 이루는 정치구도와 흡사한가. 한마디로 예수회는 미국의 liberal, democratic, progressive한 것이라면 거의 틀림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닐 듯하다. 모국도 아마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국의 가톨릭 매체들을 살펴보면 이 ‘양극화’가 뚜렷하다. 특히 ‘또라이’ 트럼프가 들어오며 이 현상은 숨길 수가 없는 듯하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예수회 프란치스코교황’의 ‘자비’ 선포로 인한 ‘전통 교리의 후퇴’를 우려하는 ‘극단적인 비난’인데,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가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교리, 교의 해도 세상과 세속의 ‘진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예수회의 주장일 듯하다.

쉽게 말해서 ‘자비와 정의, 원칙’의 대결인 셈인데, 이들 신앙인들에게는 ‘중도’라는 ‘타협’은 없는 것인가?  제일 심각한 것이 Homosexual 들을 ‘자비’로 받아들이자는 문제다.  또한 Abortion(낙태)에 대한 자세도 그 중에 하나다. 이것도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닌 대한민국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상논쟁’을 빼놓을 수 없다. 예수회 신부들은 여론적으로 보아도 ‘진보적’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빨갱이’라는 평을 쉽게 받는다. ‘정구사’라는 독특한 약어의 느낌도 다를 것 없이 ‘빨갱이’라고 매도된다. 이것도 타협점이 없는 것일까? 한마디로 주위를 살펴보면 ‘또라이 트럼프’처럼 서로 잇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만 했지 절대로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나의 생각은 어떤가? 아무래도 나이 탓, 나의 가족적 역사로 보아서 예수회 같이 무조건 자비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유 있고, 정의가 밑받침이 되는 자비와 사랑..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은 없는 것 아닐까?

‘Making All Things New’ – introduction

 

 

Introduction

 

This is a book about catholicity. I hope you will not put it down too quickly if you are not Catholic, because it is not exactly about the Catholic Church but about catholicity or awareness of how sun, moon, stars, Kepler, Saturn, maple trees, muddy rivers, amoeba, bacteria, and all peoples of the earth form a whole. Catholicity is from a Greek word, katholikos, which means “of the whole” or “a sense of wholeness.” It is the orientation of all life toward making wholes and thus toward universality or turning together as one. So, by way of introduction, this book is about wholeness and wholemaking that emerges from the nexus of catholicity, cosmology, and consciousness. The early Greeks coined the word catholic to describe attunement to the physical order, so that catholicity meant living in harmony with the stars. To live in catholicity was to have a sense of the cosmos or the whole order of things, including physical and spiritual things.

The word whole today is alluring – whole foods, holistic health, whole body workouts. It is a word that has become embedded in our cultural consciousness, despite our radically divided world. The longing for wholeness today speaks to something deep within the human person and nature itself. Are we whole by nature? Does wholeness emerge with the development of life, or is life an unfolding of an already existing wholeness? Today, physics speaks of a quantum whole and systems biology tells us that living organisms emerge as complex wholes. Modern science, therefore, suggests that we do not invent a whole; rather, the whole exists prior to anything else. We are to awaken to the whole we already are and deepen it by becoming more whole and unified through creativity, convergence, and consciousness.

Interestingly, the priestly author of Genesis had an implicit sense of catholicity even before the word was coined.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heaven and earth,” he writes, “and the earth was a formless void” (Gn 1:1). This same sense would eventually be taken up by Christians for whom God and humanity, Alpha and Omega, are united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The early Christians adopted the word catholic to describe the Church as disciples gather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o have a sense of the whole was to have a consciousness of Christ and to gather into community as one in Christ. Over time, the significance of catholicity shifted from wholeness to orthodoxy, especially as the Church grew into a major intellectual and cultural force in the Western world. Christians came to believe that catholicity meant expansion of the institutional Church throughout the world. Jean Maalouf wirtes:

 

Indeed, for a long period of time, Christians were through to believe that Catholicity meant the extension of the institutional Church to entire Christianity, and perhaps beyond. The hierarchy of the Church was not only a model but also a solid foundation for political power in the world. Universalism meant the extension of political, cultural and religious particularism. This was believed to be the more or less perfect image of the Kingdom of God on earth, whose center was out of this world.

 

Although catholicity began as a consciousness of the whole order of things (cosmos), over time it became detached from cosmology and conflated with the pope, Rome, and the institutional Church. Catholic universalism became equivalent to power, authority, and moral order. But as Maalouf writes: “The truth is that Catholicity is not an abstract concept, and it does not mean the universalization of one culture, but the universalization of the human being.” Catholicity does not mean that everyone is to become Catholic; rather, to be catholic is to be aware of belonging to a whole and to act according to the whole, including the galaxies and stars, earth, animals, plants, and human life. To paraphrase Saint Augustine: “You have made us for wholeness, O Lord, and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find their wholeness in You.”

While there are a number of outstanding theologians of the modern period who have written on catholicity, only a few have reconciled the dynamic of catholicity with the physical world, as science describes it today. In this respect Pierre Teilhard de Chardin, S.J., stands out as a voice of catholicity in the wilderness. In The Divine Milieu, Teilhard disclosed a new catholicity, a new awareness, which was both shocking and exuberant with life. By bringing together Christianity and evolution, he renewed catholicity in its deep cosmic roots. Sister Catherine R. O’Connor, CSJ, writes:

 

The sense of the sacredness of the earth and of man’s rootedness in it could be, in conjunction with ritual and sacrament, a rich source of nourishment for the human spirit. Teilhard’s particular thrust in the area of the importance of human action and passion in making ‘contact’ with God through the earth would add a new dimension to an approach to Christianity that still tends to be merely legal and moral.

 

Catholicity, as a consciousness of the sacred earth, of the universal spirit, and our longing for completion, is at the core of evolution. Teilhard had a sense of “deep catholicity,” an intrinsic wholeness at the heart of life yearning to become more whole in and through the human person. He described this wholeness as “Omega,” a oneness already within and yet ahead of us, drawing us onward toward greater unity in love. For Teilhard, modern science awakens us to a new sense of catholicity and empowers us to participate in evolution as co-creators of the emerging whole. Can we connect catholicity and cosmology in a way that revitalizes Christianity in an evolutionary universe?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essentially the basis of this book, which spearheads a new book series called Catholicity in an Evolving Universe by Orbis Books. This series will explore the dimensions of catholicity in an evolving universe with particular emphasis on theology, spirituality, science, the arts, the economy, and the environment. Catholicity reflects divine incarnational energy at the heart of cosmic evolution. The series seeks to illuminate the meaning and purpose of an unfinished universe, the role of human life in evolution, and the significance of Christogenesis (literally, “Christ birthing”) or the emerging, personalizing union of God, human, and cosmos.

My explorations in this book begin with certain premises: First, Catholicity is first and foremost linked with cosmology. It arises with the introduction of space into the physical order creating a “cosmos,” an orderly connectedness of reality. Catholicity, therefore, is based on the Greek understanding of cosmos as a three-dimensional sphere rather than an two-dimensional flat earth. Second, Catholicity is a function of consciousness. The rise of catholicity and cosmology takes place in the axial period in which the human person emerges as individual subject. Catholicity is awareness of the one amid the many through the human person whose consciousness “catholicizes” or unifies the many parts. Third, Catholicity is consciousness of the whole, an orientation toward universality or turning together as one. In this  respect catholicity and universality are not equivalent although they are deeply connected. Although the Church identifies catholicity with universality, a more fruitful relationship between catholicity and universality begins with reorienting these within a wider cosmological and evolutionary framework.

I became aware of revisiting catholicity in light of an evolving universe through my friendship and collaboration with John Haughey, SJ, whose book, Where Is Knowing Going, awakened me to catholicity in a wider narrative. However, the work of French philosopher Remi Brague enabled me to understand catholicity in its relation to cosmology, as the Greeks first conceived this idea. To this end I examine catholicity on four different levels: (1) catholicity in nature, including Big Bang cosmology and quantum consciousness; (2) catholicity and the human person; (3) catholicity and Jesus; and (4) the institutionalization of catholicity or the Catholic Church.

 

Chapter 1 examines Brague’s principla thesis, namely, that we have lost the wisdom of the world because we have forgotten how to read the stars. I look at the emergence of the word cosmos in the work of Plato and the significance of cosmology for anthropology, as ancient cultures conceived it. Since the word catholic was adopted by the early Christians to define their understanding of church, I briefly explore its early usage by Ignatius of Antioch and Irenaeus of Lyons. I then look at the mutation of catholicity, as Christianity became a politicized religion under Constantine the Great, and catholicity was defined as orthodoxy, especially in light of the Arian crisis. Chapter 2 looks at catholicity in the medieval synthesis of microcosm and macrocosm and the loss of this synthesis with the rise of modern science. The powerful influence of Newtonian science on culture shifted the emphasis of catholicity from a cosmological whole to mechanistic lawfulness. I discuss the shift in catholicity from wholemaking to lawfulness, especially with the development of manual theology and the effects of mechanistic Catholicism on the alienation of the Church from the world.

The discoveries of twentieth-century science ushered in a new vision of the cosmos and the relationship of the human person to the cosmos. Insights from modern science, therefore, provide new ground to explore catholicity for twenty-first-century life. Chapter 3 develops catholicity as an intrinsic aspect of nature itself. Beginning with Big Bang cosmology, the primacy of energy, and quantum consciousness, catholicity in nature is viewed as the impulse in evolution toward greater wholeness. The term emergence best describes the unfolding of life from simple to complex life marked by a rise of consciousness. Hence, I speak of “Big Bang catholicity” insofar as the physical cosmos bears witness to an unyielding wholeness within it.

Chapter 4 focuses, more specifically, on quantum consciousness with a view toward understanding consciousness based on quantum physics. In the midst of the twentieth century Jesuit scientist Pierre Teilhard de Chardin described evolution as the rise of consciousness, indicating that mind is in matter from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Today, scientists and philosophers are supporting this insight, realizing that mind is more than the human brain and consciousness is more than the human mind. These ideas are explored in such a way that we begin to understand the connection between nature’s inner propensity for wholeness and the rise of consciousness. In other words, there is an intrinsic relationship between catholicity and consciousness. The rise of consciousness and complex wholeness simultaneously in nature undergirds the profound role consciousness plays in realizing wholeness on the human level. If nature bears within it what we might call an intrinsic catholicity, why is wholeness so difficult on the human level? I explore this question in terms of the complex human brain with its divided right and left hemispheres, conscious self-reflection, and language, which distinguishes the human species. The mark of the human person is verbal language and communication, and thus the freedom to express oneself. The human person is one of desire and decision. How we think, what we think, what enters or leaves our minds, where we focus our minds – all shape our actions and, in turn, our world. On the human level where there is free will and intellect, the whole is not a given; it is a choice in relation to God, neighbor, and earth community. For the Christian the choice for wholeness is embedded in the gospel life, following the words of Jesus: “I have come so that you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Jn 10:10). We are to focus our minds on the whole and choose  the whole for the sake of abundant life.

Understanding catholicity in its organic and cosmological context sheds new light on the person of Jesus Christ and the significance of his life for the emergence of the Catholic Church. Chapter 5 examines the spirit of creative wholeness that marks the life of Jesus in his public ministry. To better understand this creative wholeness, I use Teilhard de Chardin’s paradigm of Christogenesis, or the evolutionary emergence of Christ. Teilhard identified Omega with Christ and posited a third or organic nature of Christ, meaning that God is incarnate from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If Christ Omega is the goal of evolution (following the Pauline notion of “all things in Christ”) then the goal is already present in the unfolding process of life. Christ the evolver (or Christ in evolution) and Christ Omega (Christ as goal of evolution) are one and same and come to explicit consciousness in the person of Jesus of Nazareth. I look at the ministry of Jesus in terms of catholicity and discuss the sacraments of baptism and Eucharist as new forms of relatedness with Christ in an expanding field of compassionate love.

The diminishment of catholicity by institutionalization and alienation from worldly affairs relates to the development of Catholicism’s teaching on the four last things: heaven, hell, death, and final judgment. Chapter 6 revisits these four quadrants of Catholic belief in the wider framework of evolution and Christogenesis. In particular, Teilhard’s emphasis on Christianity as an evolutionary, world-affirming religion is highlighted, and his “mysticism of action” is discussed. I look at the constraints of institutional catholicity against the backdrop of a wider cultural catholicity, exploring jazz fests, social media and baseball as cultural ritual events where catholicity is vibrant. My particular interest in computer technology and its impact on the shape of humankind is then examined in light of the four last things. The rapid development of computer technology today is seeking to fill a religious void, extending the religious self into the cyber world so that the last four things no longer seem to constrain human destiny.

The advantage of exploring catholicity within a wider cosmological and cultural framework is that it provides new language and new paradigms to explore the catholicity of the institutional church. Chapter 7 examines the Church as an open system, since the Church is an organizational system, and the dynamics of its organization affects its function and outreach to the world. The term open system comes from the biological sciences and refers to openness of the system to the environment and, as such, its capacity to self-organize. Using Teilhard’s notion of the Church as a new phylum of christified persons in evolution, I creatively imagine what an open-systems Church might look like from the point of administrative organization to the development of theology as open-systems theology. I explore briefly the significance of open-systems theology for the discovery of truth in an evolutionary world.

Since my aim is to kindle a new consciousness of catholicity for an evolutionary age, I seek to discover a deeper meaning of this consciousness for the Church and the world today. Chapter 8 takes up Saint Paul’s injunction to “put on the mind of Christ” and considers what this means in terms of quantum  consciousness and spirituality. Here I focus more specifically on training the mind for unified consciousness. Insights from the Buddhist nun Tenzin Palmo are helpful, as well as the writings of Etty Hillesum, who died at a young age in a Nazi concentration camp. Etty’s bridge between inner world and outer world through a unified consciousness in God illuminates the inner capacity of the human person to think widely and deeply even in the midst of suffering and violence. She also shows us how expansion of the mind-soul can influence the world around us. Centuries before Etty, Francis of Assisi came to similar insights through a deep, christic mindfulness, and I briefly explore his path to a “uni-verse” through the centrality of love and the poverty of letting go into a wider embrace of life.

Finally, after searching the lines of catholicity from the Big Bang to quantum consciousness and evolution, to the life of Jesus and the emergence of church from the patristic era to the postmodern age, Chapter 9 revisits the meaning of catholicity in light of scientific insights and cosmology and asks, What are we called to today, as citizens of the universe, as followers of Jesus Christ and as members of the institutional Church? The final chapter seeks to clarify the meaning of catholicity in its various levels (nature, person, Jesus, and Church) and to examine briefly models of catholicity in our current age. Of the four models discussed in this chapter (Pope Francis, Barbara Marx Hubbard, the Dalai Lama, and the Leadership Conference of Women Religious), I want to highlight the spirit of Pope Francis. Elected to the papacy following the resignation of Pope Benedict XVI, Pope Francis (Jose Maria Bergoglio), in his late seventies, brings a new spirit to the Church that reflects a consciousness of catholicity that we explore here. His is an inner spirit of freedom grounded in the love of God, guided by the gospel message of the new kingdom at hand, and open to a world of change. He desires a Church on the margins, where the poor and the forgotten can be brought into a new unity; a Church that advocates life at all costs and promotes peaceful life in a war-torn and violent world; a Church that models justice in an age of greed, consumerism, and power; a Church centered on the risen Christ, empowering a consciousness of the whole. This is a church leader who desperately wants to breathe a new spirit of catholicity into a world dying for wholeness and unity.

But the numbers speak otherwise. Mark Gray of the Center for Research in the Apostolate (CARA-Georgetown) states that at the end of 2014, “about 28.9 million people in the U.S. who were baptized and raised Catholic… no longer self-identify as Catholic.” This is equivalent to more than 900,000 people each year and is slightly larger than the number the Church added in baptisms and receptions into full communion in 2012. Gray’s statistics on all levels of Catholic life show downward trends and no signs of improvement. So while Pope Francis is seeking to expand the Church’s presence in the world, catholicity seems to be diminishing due, in part, to a growing irrelevance of institutional religion.

There is an urgency today to reconnect cosmology and catholicity, no as abstract concepts, but as the reconciliation of modern science and religion. The Catholic Church, with its core incarnational foundation can play a major role in this renewal. “Science develops best,” Saint John Paul II wrote, “when its concepts and conclusions can be integrated into the wider human culture and its concerns for ultimate meaning and value.” Religion, too, develops best when its doctrines are not abstract and fixed in an ancient past but integrated into the wider stream of life. Albert Einstein once said that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and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So too, John Paul II wrote: “Science can purify religion from error and superstition; religion can purify science from idolatry and false absolutes. Each can draw the other into a wider world, a world in which both can flourish.” Teilhard de Chardin saw that dialogue alone between the disciplines is insufficient; what we need is a new synthesis of science and religion, drawing insights from each discipline into a new unity. In a remarkable letter to the direction of the Vatican Observatory, John Paul II wrote:

 

The church does not propose that science should become religion or religion science. On the contrary, unity always presupposes the diversity and integrity of its elements. Each of these members should become not less itself but more itself in a dynamic interchange, for a unity in which one of the elements is reduced to the other is destructive, false in its promises of harmony, and ruinous of the integrity of its components. We are asked to become one. We are not asked to become each other…. Unity involves the drive of the human mind towards understanding and the desire of the human spirit for love. When human beings seek to understand the multiplicities that surround them, when they seek to make sense of experience, they do so by bringing many factors into a common vision. Understanding is achieved when many data are unified by a common structure. The one illuminates the many: it makes sense of the whole… We move towards unity as we move towards meaning in our lives. Unity is also the consequence of love. If love is genuine, it moves not towards the assimilation of the other but towards union with the other. Human community begins in desire when that union has not been achieved, and it is completed in joy when those who have been apart are now united.

 

The words of the late pope highlight the core of catholicity: consciousness of belonging to a whole and unity as a consequence of love. Yet, our world is divided, and the divisions are not abstract; they are real and deepening. They are the heart-wrenching divisions of religious wars, economic gaps, racial hatred, fears of terrorism – division upon division – to the extent that our only hope is another world, whether it is the otherworldliness of heaven or the cyber world of virtual reality. Nature reminds us, however, that in our cosmic roots we are already one. Can we learn from nature how to create a unified world? Can religion inspire an evolution toward unity? Can we reimagine Christian life in an evolving universe? The world is not a given but a gift to create. Catholicity invites us to wake up, open our eyes, and reach for the stars to create a new world together by becoming a new community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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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이야르 – ‘人間 이란 現像’

Pierre Teihard de Chardin

 

人間이란 現像 (1955), The Phenomenon of Man

떼이야르 드 샤르댕 (Pierre Teihard de Chardin, 1881~1955) 著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 (신동아 1984년 1월 별책) 중에서

김태관 金泰寬  (예수회 신부, 서강대 문과대교수, 서양철학, 1919~1990) , 小論考

 

 

1.

북경원인의 발견자의 한 사람이며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의 주창자인 ‘떼이야르’ 신부의 생애는 고생물, 지질학자로서 문자 그대로 지구의 표면을 종횡무진 왕래하며 지층을 파헤치면서 우주와 신의 통합적 비전을 찾기에 바쳐졌다.

‘삐에르 떼이야르’는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지방 끌레르몽페랑 근교 사르스나 에서 한 귀족가문의 11형제 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농장경영의 여가에 박물학과 고문서 연구를 하는 부친으로부터 어린 시절 자연관찰과 곤충 식물 암석 등 채집의 기쁨을 배웠다. ‘물질, 더 정확히 물질의 핵심에 반짝이는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린 것이 6, 7세 적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16세에 리용 근처 몽그레 예수회계 고등중학교를 졸업, 18세에 예수회에 입회, 그 후 사제가 되는 모든 교육코스를 밟으며, 지질학과 고생물학에도 전문적 연구를 했다. 특히 카이로 예수회 고등학교에서 자연과학 교사로서 체류할 때 수억 년의 지층이 노출된 이집트의 광막한 대지에서 그의 미래는 더욱 뚜렷하게 되었다.

1911년 빠리박물관에서 고생물학자인 ‘마르슬렝 불’ (Marcellin Boule, 네안데르탈 인 연구로 유명)의 지도 아래 인류 고생물학의 전문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공동연구, 그리고 깊은 우정으로 발전한 이 만남은 ‘떼이야르’의 일생을 결정하였다.

1914년 세계대전의 발발로 위생병으로 격전지에서 참전했다. 포성과 죽음과의 부단한 대결 틈틈에 비참한 참호 속에서의 그의 명상은 인간세계를 새로운 운명에 이끄는 우주적 규모의 독창적 세계관을 싹트게 하고 윤곽을 잡아 주었다.

1922년 소르본느 에서 자연학의 박사학위를 받고 그 논문으로 프랑스의 제1급 고생물학자로서 인정을 받았다. 1923년 황하유역 조사단원으로 중국으로 파견된다. 이래 20수년 동안 중국은 그의 제2의 고향이 된다. 쉴새 없는 지질조사와 연구와 보고서 작성 학회 탐험여행 틈틈이 ‘신 神 의 영역'(Le Milieu divin)이란 저서를 집필, 그리스도인의 태도와 과학자의 태도를 양립시킬 수 있는 종합적 세계관과 특히 진화론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연결을 시도했다.

1927~1928년 프랑스 체류 후 이디오피아 소말리랜드 지질조사, 주구점의 북경원인 발굴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 부문을 지휘, 연구보고 발표 등의 일로 빠리와 천진 사시를 정기적으로 왕복, 1930년 뉴욕박물관의 중앙아시아 탐험, 31~32년 시트로엥 아시아대륙 자동차 횡단탐험에 참가, 1935년 예일-케임브리지 中北 인도탐험,  1937~38년 하버드 – 카네기 버마탐험참가, 39년까지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인류기원에 관한 심포지움에서 북경원인연구발표, 미국과 프랑스에 체류, 중국으로 귀환, 중일전쟁으로 북경에 6년 동안 유폐됨, 1940년 북경지질생물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그의 필생의 테마인 지구상의 진화와 인간미래에 관한 사색과 탐구의 총결산인 주저 ‘인간이란 現像’을 집필하며 추고 推稿추고 에 전념한다. 1946년 프랑스에 귀국,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주임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로 초빙받았으나 여생을 뉴욕 웬너그렌 재단 인류학 종신연구원으로 보낸다.

1951년과 1953년 2차에 걸쳐 동 재단후원으로 남아프리카 조사연구여행, 선사시대의 고고학과 고생물학의 연구를 자극하고 공동연구계획을 조정했다. 1955년 4월 10일 뉴욕서 부활축일에 심장마비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끝난다.

그 당시 소수의 전문가 서클과 친구들 외에서 그 이름도 사상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진화와 인류미래에 관한 그의 과학적 사상으로 해서 교회당국과 그의 소속인 예수회의 반대로 그는 교단과 조국에서 멀리 되었고, 순수전공 외의 저술은 출판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유고는 사후 즉시 각계의 세계적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간행위원회가 조직되어 그 해 10월 제1권 ‘인간이란 현상’ 이 출간되자, 자연과학 철학 신학 등 광범한 분야에 격렬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

‘인간이란 현상’에는 우주의 생성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진화의 주요한 과정이 일관된 명쾌한 전망 속에 묘사되어 있다. ‘떼이야르’는 과학적 성과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교인든 아니든 공정한 관찰자이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관과 인간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과거의 진화의 발걸음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 발전을 투시하며 이러한 시야 속에서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위치를 확인한다.

이 책은 ‘현상으로서’ 만의 인간을 취급하며 세계의 탐구해명이 아니고 그것을 위한 서론으로서 보아주기를 요구한다. 또 동시에 현상의 모든 것에까지 펼쳐진다.

“동물의 완성, 사고력을 가진 존재의 우위는 그 시선의 통찰력과 종합력으로 측정된다”. ‘본다’는 것은 생의 본질이다. 이것이 이 저서의 개요이고 결론이며 또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떼이야르’는 철두철미 과학자의 자격으로 과학의 성과로써 그 사상을 전개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우주관의 특징은 지구의 과거의 걸음걸이를 배경으로 하고 그 진화의 속도를 미래에고 연장 추정함으로써 인류의 미래상을 추론하는 데에 있다. 우주는 크나큰 극히 완만한 소용돌이와 같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정향적 운동 중에 있다. 우주 와동 渦動 은 구심적 흐름이며 이 움직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므로 우리는 포착하기가 힘든다. 그래서 ‘본다’는 것이 요구된다.

‘떼이야르’는 우주의 소재인 물질의 진화 속에 이미 정신적 에너지를 본다. 본질에서부터 정신에 이르기까지의 우주진화의 유일한 완전한 기준은 인간이다. 이 진화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화 – 의식의 무한대에의 증가로 일정방향으로 전진한다.

‘떼이야르’ 신부는 인간의 우주적 배경으로서 소위 무한대의 세계(상대성이론이 적용되는 현상세계)와 무한소의 세계(하이젠베르그의 부적확성 이론이 지배하는 현상세계)에 다시 복잡화 – 의식이란 제3의 무한을 추가한다. 복잡성- 의식화는 우주의 근본운동이다.

저자는 이 세계를 입자로 보고 우주에는 이 입자를 복잡화에로 좇는 보편적 힘이 일종의 ‘부하 負荷’로서 에너지원을 이룬다고 한다. 부하된 입자가 한 단계에 복잡성에 도달하면 종래의 차원과는 다른 출력을 가진 복잡성에 진화한다. 물질에서 생명의 발생 생명 속의 사고의 발생이 이에 해당한다.

생명의 출현에서 미생물과 분자, 세포 등이 서로 독립해서 출현하지만 사고력의 발생에로 진화의 흐름은 향하고 있다. 정신권의 전개에서 인류는 선사인류의 여러 서로 무관한 화석인류들의 분지 分枝  가 어떤 축을 중심으로 꽃봉오리모양 사회화를 이루며 진화한다. 원시사회에서는 방산 放散 팽창하던 것이 현대에 이르러 그것은 수축, 압축되어가는 단계에 있다. 미래의 세계종말에서는 인격사회의 인류의 일체화가 오메가 점, 수렴(convergence)의 극점인 그리스도 안에 만물이 일치하는 데에 이루어진다.

진화에 있는 우주는 마치 그물같이 위로 갈수록 그물의 눈은 압축되고 밀접 되어 주름이 더 잡히며, 끝으로 일 점에 집중되어 세계는 수렴되고 인류는 혼합이 아닌 합치를 이룩한다. 이 일치는 현대정보수단의 진보로 말미암아 인류전체가 하나의 의식으로 서서히 형성되어 가는 데서 예견된다.

‘떼이야르’는 이미 현대 컴퓨터 정보시대를 예견하고 사이버네틱스를 인간의 집단적 사고능력으로서 신 뇌수의 형성으로 보았다. 사회화의 상한적 종합작용으로 일대 다수의 인간의 합류점에 중복 일치 한다는 대 완결을 상정한다.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생성 -> 생명권의 전개 -> 유인류의 불리 -> 인간의 출현, 즉 사고력의 제일보 -> 정신권의 성립, 즉 팽창의 단계에서 문명과 개체화 -> 정신권의 서욱, 즉 압축의 단계에서 인격화 적 일체화. 세계종말에서 인류는 인격공동체의 건설을 신인 神人 인 그리스도의 포괄적 신비체 안에서 성취를 보게 된다.

이것이 ‘떼이야르’ 신부가 자연과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의 전 영역과 인간학의 전 범위를 종합함으로써 과학과 신앙, 우주와 신의 화해를 계기로 웅대한 우주관을 소묘한 것이다.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교의 축원이기도 한 “때가 이르면 신은 그 계획을 시행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재결합(reunion)하리라” (바오로 에페소서 1,10)는 것을 인간을 현상으로서 과학적으로 다루면서 지시하려고 했다.

 

3.

 ‘떼이야르’의 명성과 평가는 사후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데도 더욱 고조되어 간다. 그 저작은 각국어로 번역되고 그 연구는 개신교나 공산권 내에서도 활발하다. ‘다윈’이나 ‘아이슈타인’이 일으킨 돌풍보다 더 큰 충격과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그 연구와 촉매작용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1981년은 그의 탄생 1백 주년이어서 세계 각지의 떼이야르 협회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특히 유네스코는 빠리에서 그 해 9월 16~18일 3일 동안 기념 심포지엄을 성대하게 치렀다. 1983년 뉴욕에서는 UN 38차 전체회의 벽두에 학술적 의견교환의 테마로 ‘떼이야르 드 샤르댕 의 저작과 인물’이 채택되었으며, 이 심포지엄은 평화촉진을 위한 ‘교육적 과정’을 진작하는 것이 의도였다.

찬반의 평가가 어떻든 ‘떼이야르’ 신부가 그 자신 안에서 인류의 기원을 캐내고 진화의 비밀에 육박하는 탐험, 우주 속에서 인류의 운명을 묻고 세계진화에서 신의 존재를 찾고 하나의 통합적 비전을 전달하려는 성자다운 기백과 준엄한 학자의 탐구의 생애는 그를 세기적 예언자적 사상가로 부각시키는데 별 이론이 없을 것이다.

 

 

주요저서

La place de l’homme dans la nature ‘자연 속의 인간의 위치’, 1965.

Science et Christ ‘과학과 그리스도’, 1965.

Comment je crois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1969.

Les directions de l’avenir ‘미래의 지향’, 1973.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일요일에 제출, 발표할 레지오 연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는지 googling을 하던 중에 ‘보물’을 찾았다. 얼마 전 자비의 모후 Pr. 단장이 되면서 훈화를 준비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레지오 훈화집’의 저자 ‘레지오 박사’ 최경용 신부님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2003년도에 발표된 것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모두 유효한 기사, 글이었다.

이 최신부가 쓴 ‘레지오 영성’이란 책도 언젠가 잠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이분이 로마에서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박사 신부님인 것이다.

2003년이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50주년을 즈음하여 당시의 대한민국 레지오의 현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지나친 신학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을 읽으며 거의 모든 분석이 현재 내가 있는 ‘아틀란타 레지오’에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이 거의 비어있다.”

올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점을 보면 동감이 간다. 별로 ‘특기할 만한’ 활동이 없는 것이다.

 

 **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간부는 고사하고 평단원들조차 입단 시키기 어려운 실정, 이것은 레지오 전체의 이미지나 단원들이 보여주는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특정 지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너무나 바쁜 사제들에게 레지오에 우선권을 두라고 강요할 사람이 없다. 다만 꾸리아 차원에서 지도사제의 관심을 유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  “소 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대표적인 소 공동체는 ‘구역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활동이 중복되는 것이 있을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특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 하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우리들의 실정으로는 간부, 단원을 고사하고 신단원이 레지오의 정신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리아 차원에서 ‘시간과 돈’을 지속적, 제도적으로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무시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일년 전부터 내 눈으로 보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법에는 항상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어겨지면 그 처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영적지도자, 꾸리아 밖에 없다.

 

**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신 단원 교육에서 제일 강조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무너지고, 침체될’ 그런 것이었다. 현재도 나는 ‘주 회합 후 외식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매주 본다.

 

** “레지오 행동단원이 받는 혜택과 은총”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5.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6. 따라서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7.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8.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9.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위의 거의 모든 것들은 내가 받았던 것들이고 또한 창설자(프랭크 더프)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최경용 (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1. 시작하는 글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아일랜드로부터 도입되어 올해(2003년) 50주년을 맞았다. 레지오 마리애는 외국에서 도입한 한국의 첫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가 쌓은 공로와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알맹이인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의 정신은 쇠퇴하고, 껍데기인 친목과 친교에 치중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정신 회복에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5억 단 봉헌운동을 펼쳤겠는가? 간부들과 단원들이 얼마나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회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겠는가?

지금은 레지오 마리애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곧 창설자의 정신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창설자의 정신에 비추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오늘날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애가 당면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교육 문제, 규칙과 규율 문제, 지나친 친목,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단원 모집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각각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선교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다하지 않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본질이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의 핵심은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이다. 주회합에서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 시간보다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활동, 공부를 감안하여 주회합의 소요시간 기준을 한 시간 반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쫓기듯이 주회합을 한 시간 이내에 해치우고, 곧바로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쁘레시디움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활동보고 내용과 활동배당이 빈약하다 보니 주회합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연중 사업 보고서의 특기사항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기사항란이 아예 공백인 쁘레시디움도 있다. 1년 동안 특기할 만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교본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단원들이 모든 시간을 복무시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정신으로 복음화에 앞장서는 선교단체이므로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본당마다 쉬는 교우와 거주 미상자가 수두룩하여 큰 문제가 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는 이를 위한 사업을 점차적으로 연중 사업 계획에 넣어 본당과 교구 사목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2)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저 평단원으로서 부담 없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가 되기는 싫고 사병으로만 머물겠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걸핏하면 레지오 마리애를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간부직을 떠맡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모름지기 간부직은 성모님께서 직접 맡겼다고 여겨야 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이를 순명 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운명은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이 주회합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아 활동배당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지, 단장 자신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든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사랑과 열성 없이 타성에 젖어있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얼마 안 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단원들이 하나 둘씩 퇴단하기 때문이다. 단장의 결정적인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그럴 경우 단장을 교체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땅에 묻지 말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3)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초창기부터 주회합에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목의 협력기구이므로 대체로 영적 지도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사목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제도와 규율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도 쁘레시디움과 평의회의 당연직 간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은 자신이 간부임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 마리애의 간부라면 당연히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사목자가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주면 좋지만 그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의 지단과 평의회를 설립하고 해체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상급 평의회의 지시보다는, 주임신부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따라서 주임신부가 레지오의 간부가 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적 지도자는 주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여 묵주기도, 영적 독서, 까떼나, 선서 후 강복, 훈화, 회합의 마침 강복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는 보좌신부, 수녀 등 대리자에게 영적 지도를 일임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한다. 쁘레시디움이 많은 레지오 마리애를 원활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사목자가 꾸리아 간부 연석 월례회, 쁘레시디움 단장 연석 월례회를 개최하여 레지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4)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레지오 마리애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잃고 침체되기 시작한 와중에 소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전부터 교회의 기반 조직인 구역, 반모임이 있었지만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조직이 더욱 강화되었다. 소공동체 교재를 통해 성서에 맛들이게 되고 구성원 간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은 모든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공동체가 없는 본당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전국 어느 본당이든 레지오 마리애가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를 선호하는 본당 사목자들이 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를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교회의 사명은 신자들의 성화와 선교활동이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도 개인 성화와 선교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수행을 막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사목자는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거나 창설자의 정신에서 빗나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바로잡아주고 본래의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5) 교육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상적 교육에 해당된다. 교본공부를 위한 「교본 해설집」도 필요하고, 특히 「훈화집」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아무쪼록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의 노력으로 하루빨리 새 훈화집이 발간되어 영적 지도자와 단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주회합에서 하는 훈화와 짧은 교본공부만으로는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레지오의 양적 팽창에 질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실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단원들이 단장이나 간부직을 맡게 되는 실정에서 간부 양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에 접어들어 세나뚜스나 레지아 주관으로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교육기간은 대개 매주 2시간씩 8-13주간이다(교구에 따라 명칭이나 기간이 다양함).

앞으로 세나뚜스 협의회에서 전국적인 레지오 마리애 교육 협의회를 결성하여 강사진을 폭넓게 활용한다면 레지오 교육에 획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6) 규칙과 규율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의 힘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라고 서약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과 규칙은 교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달라서도 안 되고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교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창설자의 의도와 관례를 감안하여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에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규칙과 규율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의 정신을 새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규율과 규칙에 집착하거나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탄력성, 융통성, 신축성을 갖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시대의 요청과 징표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지오의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중요시하셨지만 결코 율법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7) 지나친 친목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친목을 통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창설자도 주회합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단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끼리끼리’ 사귀지 않고 ‘고루고루’ 사귀기를 바란다. 그것이 창설자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날 끼리끼리의 사귐이 지나친 것 같다. 단원들에게 바라는 레지오의 이상은 신심과 활동,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회합은 짧게, 친교는 길게’라는 구호가 생길 정도로 단원들이 회합과 활동을 소홀히 하고 친교를 더 중요시한다. 저녁에 주회(週會)를 마치고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형제들 간에 2차 주회(酒會)라는 말이 성행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자매들 간에도 비밀헌금 외에 친목을 위한 헌금을 별도로 갹출한다. 그리하여 레지오가 계모임처럼 끼리끼리 즐겁게 노는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단원들 간의 지나치게 끈끈한 정이 오히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좀먹고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게 한다. 지나친 친목은 단원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순명정신을 약화시킨다. 레지오 마리애는 결코 친교 위주의 오합지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8)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레지오 마리애의 물질적 구제 금지 규정은 1921년 레지오 마리애 창설 주회합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자선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였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신적 자선활동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물질적인 자선보다도 영신적인 자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적 구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으로 비밀헌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활동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단원들이 당장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율법이므로 고쳐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에게 영신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물질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며, 단원들이 레지오 안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없다. 단원들끼리 계모임을 하거나 금전관계를 맺거나 다단계 판매 등의 상행위를 하는 것은 레지오의 순수성을 저해하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레지오 마리애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자금은 오로지 단원들의 의무적인 비밀헌금에만 의존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기금은 성모님의 군자금이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관리 운영, 사업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인 사목자는 레지오 마리애의 재정 문제만큼은 원래의 규정과 정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9)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행동단원이란 사도직 활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원을 말한다. 노인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은 사도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 부대가 아니고 기도 부대, 보급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노인 행동단원은 협조단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목자와 협의하여 레지오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장례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에서 통일된 규정과 기준을 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에게도 매력이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 교회의 기둥이다. 그들의 단원생활은 공동체 의식 함양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귀중한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성인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청소년 쁘레시디움 운영과 육성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년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못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본에서 창설자가 강조하듯이, 신학교에도 쁘레시디움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세나뚜스 협의회나 신학교가 있는 교구 평의회는 신학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도록 교섭하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는 쁘레시디움이 있는 신학교도 있었다. 소년 쁘레시디움 출신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안에 레지오 마리애 지단이 있다면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양성소가 될 것이며, 교본공부 등의 학습활동을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성덕을 쌓고 영육의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다. 

 

10) 단원 모집 문제

해가 갈수록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과 협조단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도 입단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 단원들이 기쁨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단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롭다면 레지오 마리애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단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과 은총을 받는지 알아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구원받고, 주간활동을 통하여 타인도 구원받게 함으로써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선교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진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성모 신심이 깊어지고 성모님의 덕성을 본받게 된다. 또한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생활을 통하여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와 수없이 많은 위령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며 은총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창설자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3. 맺는 글

지금까지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을 짚어보며 해결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 대한 창설자의 소망은 첫째로, 단원들 자신이 먼저 성화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로,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과 덕성을 본받아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이끎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목적과 소망을 달성하려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하여 기도와 공부로써 정신을 무장하고 활동을 배당받아 적극적으로 주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창설자는 행동과 실천이 수반된 개인 성화와 성모 신심을 강조하였다. 그는 레지오 회합의 핵심인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공부하며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따라서 행동단원(Active Member)이란 명칭을 활동단원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데 활동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단원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먹고 즐기는 친교에 치중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창설자의 정신은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는 데 충성을 바치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며,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정신이다. 창설자의 정신은 참된 성모 신심의 정신이고 봉헌의 정신이다. 참된 성모 신심은 봉헌과 사도직 활동을 요구한다. 남미의 레지오 마리애 선교사 알피 램은 ‘레지오에 산다.’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도 지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창설자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단원들이 창설자의 정신대로 산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시 활성화되어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과 단원들 모두가 자성하고 심기일전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75주년, 100주년도 기쁘게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자료 –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2003년 10월호 (제 297호)

글 글, 글의 精粹

 

“이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읍니다. 즉 하나의 글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과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글의 내용을 글의 생명으로 보았고,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을 글의 몸에 비교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문장화하는 표현을 한 인간의 옷에 비유했었고, 또 그 표현의 테크닉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멋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봤읍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또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과 좋은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과 명랑하되 고상한 삶의 멋을 적절하게 가져야만 하듯이, 글이란 것도 그래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2쪽

 

어젯밤 거의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존경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장편 서사시적 실화소설 ‘영원의 방랑객’ 을 ‘난독’하며 나의 눈에 들어온 ‘글에 대한’ 글이다.

 

“트렁블레 신부가 술잔을 들자 나도 술잔을 들어 축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감격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라고는 왜정 시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그것이 곧 책으로 출판된다니 도무지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3쪽

 

국민학교 출신, 문학적 수업은 물론 국어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이 ‘전설적’인 고 (종옥)마태오 신부님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책을 쓰시고 출판1하기 전에 밝힌 ‘글이란 무엇인가?’, 한 문단으로 집약된 신부님의 ‘글의 정수 精粹’ 론 論이다.

‘진짜 글’은 ‘한 인간의 인격’이다. 내용은 생명이고, 내용 중의 사건들은 몸, 문장화 된 표현은 옷, 표현의 기교는 삶의 멋..  이것이 신부님이 생각한 글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이 글다운 멋을 지니려면 그 저자도 함께 멋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 ‘못된 인간’이 쓴 글은 어쩔 수 없이 ‘못된 글’이라는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세는 그가 쓴 글에도 100%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을 읽고 생각하며, ‘나의 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나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적, 공적인 나의 글 (개인 일기 diary 와 블로그 public blog)을 가끔 읽게 되는데,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부끄러운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더 솔직히, 자세히..’ 라는 아쉬움도 많다. 특히 ‘자기 도취, 자기 연민’이 대부분인데, 한마디로 ‘삶의 사연들, 그것도 감동적인..’ 이 절대로 결여되어 있다. 이래서 글의 본질에 내용을 이루는 ‘사건’들을 잘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삶이 절대로 중요함을 느끼고, 위의 고 마태오 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감동적 삶의 연속’을 경험하셨기에 ‘글의 정수’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열대성 기후가 아직도 섞여있는 2018년 초가을, 날씨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탁한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손에 ‘걸린’ 이 책 속의 ‘인간애의 표본’ 고 마태오 신부님.. 아직도 살아 계셨으면 당장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뵙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을 그대로 일생을 통해 실천하신 고 마태오 신부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글로 표현이 되지 못한 생각은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라는 명언을 생각하며, 나도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용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습기가 사라진 진정한 가을하늘을 기다려본다.

  1. 프랑스어 제목: ‘모든 길을 신에게로’, 후에 출판된 한국어판 제목: ‘예수 없는 십자가

민족과 문화 – 길현모

40년 만에 다시 읽는 명 논설, ‘민족과 문화’. 내가 이 논설을 읽었던 때가 1978-9 년 경이었을 듯하다. 당시 ‘월간중앙’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별책부록으로 ’10년간 게재 월간중앙 명논설집’이란 것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1978년 4월호의 부록이었다. 그 중에 인상 깊게 읽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 논설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시 나이 30세에 읽었고 40년 후에 다시 읽은 것인데, 아직도 나는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변했나’ 하는 것에 주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하는 것이다.

고유한 문화와 그릇된 애국심의 허구성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글, 그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논설이 원래 발표된 것이 1974년이고 당시의 국내정세는 추측하기 힘들지 않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럴 때, 이 저자는 왜 고유문화, 국수주의적 애국심을 비판했을까? 그것이 유신체제를 간접적으로 공격한 것이라면 어떻게 이 글이 무사히 게재가 되었을까?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런 ‘제약’을 멋지게 우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의 개방, 인류의 공통적 재산임을 주장하는 이 글은 결국 40년 뒤의 현 대한민국의 일반적 실상을 예언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00년 동안이나 서구문명을 수용했던 일본의 성장을 부러워하던 저자의 글대로 대한민국도 이제는 그에 못지 않은 개방적 문화를 자랑하지 않는가? 이런 문화적 발전이 정치적 발전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나는 아직도 단언은 못하지만, 아마도 방해는 안 되었을 것이다.

 

民族과 文化

길현모 吉玄謨 서강대교수 서양사

 

약력

1923년 평북 희천 熙川 生

1949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

1963년 서강대 교수

 

文化方向의 倒錯

근래 강화되고 있는 문화의 국수주의적 경향을 경계해야 하며 민족정신론에 대한 비판을 서둘러야 한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이 문화정책이란 문화라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해서만 올바르게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란 결코 용이하게 이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여기서 오늘날의 우리의 문화방향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해 나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물론 표제가 이미 말해주고 있듯이 필자의 문제에 대한 견해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필자는 자신의 비판적인 견해가 감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까닭에 다만 결론뿐만이 아니라 지면이 허용하는 한 자신의 논거를 윤곽이나마 제시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문화란 원래 인류의 공동의 재산이다. 거기에는 국적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적을 붙일 수도 없다. 설사 국적을 붙여 본다 한들, 기득권이 행사될 수도 없고 특허나 독점 등의 권리가 설정될 수도 없는 문화에 대해서는 그것은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다. 다시 말해 문화는 군사력이나 정치권력에 의하여 一國民의 독점물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이나 출처 여하를 막론하고 오직 그 힘을 필요로 하고 그 가치를 이해할 줄 아는 자들만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개방된 寶庫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은 문화국민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국적이나 계보나 고유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국민복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문화적 총역량만이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명백한 사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전시대의 신화처럼 퇴색해 버린 문화의 고유성과 문화의 순수성에 대한 숭상이 새로운 활기를 얻어 팽배하고 있으며 외래문화를 국적 없는 문화로서 배척하는 국수주의적 경향이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배타성과 폐쇄성은 언제나 문화의 불모, 문화의 자살을 향한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근래에 와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국수주의적 경향을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도착된 문화방향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민족정신론과 고유문화론의 핵심에 대하여 검토와 비판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또한 그것은 때늦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터부’로 化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民族 文化論의 系譜

요즈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표현을 빌린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도의는 땅에 떨어졌고 국적 없는 문화가 잡초처럼 무성한 가운데서 소비성 문화가 범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문화 현황에 대한 이와 같은 진단은 우선 그 비관적인 색채에 있어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해온 정치나 경제계의 진단과는 극히 대조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이와 유사한 암담한 문화 진단은 수십 년을 두고 되풀이 되어왔을 뿐 그간에 아무런 進境을 보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핵심도 없고 두서도 없는 피상적인 문화 진단이 문화적 소양을 기본자질로 삼지 않는 일반 정치인이나 지적으로 미숙한 대학초년생 정도가 내려본 것이라면 구태여 문제 삼을 일은 못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수준의 문화 진단이 우리나라의 문화계의 제일선에서 지도적 지위를 독점해온 사람들의 입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문화위기에 대한 감상적인 개탄만을 토로해 왔을 뿐, 최소한도의 진지한 문화 분석의 결과를 제시한 일이 없으며 더구나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원인 규명의 노력을 제시해 본 일도 없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는 이직도 초보적인 문화론조차도 없이 문화위기의 단정만이 되풀이 되어온 셈이다. 물론 이러한 가운데서도 그들이 일치하여 내세운 한가지 논점은 있다. 즉 그것은 문화적 위기의 유일한 원인은 민족정신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지극히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민족정신을 진흥 고양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오늘날의 우리의 문화 상황이 민족정신의 저하 내지는 추락을 반영하는 것인지, 그 서서한 혹은 급격한 상승을 나타내는 것인지에 대해서 판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앞서서 필자에게 있어 우선 문제되는 것은 그들이 항상 자명한 것처럼 내세우는 민족정신이란 그 명확한 내용과 속성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명한다는 일은 필자에게는 오랜 숙제의 하나이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날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민족정신이란 말은 이미 오랜 세월을 두고 낯익어온 말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보급되는 민족정신론의 발상과 표현 상태와 선전 방식의 어느 것에 대해서나 거의 생소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일제치하의 10대, 20대의 어린 시절부터 민족정신에 대한 무수한 강론을 들어왔고 이를 고취하기 위한 허다한 운동을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먼저 일제는 일본민족의 민족정신이 세계에 유례없는 가장 우수한 정신이라고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따라서 우리들은 그들의 지배하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지도자들은 한 민족에게는 오히려 일본의 민족정신보다도 더욱 우수한 고유의 민족정신이 있으니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서 독립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응수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한국의 민족정신과 일본의 민족정신과의 싸움 속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민족정신론의 모방성

이상과 같은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들은 얼마 안 가서 자기 나름대로 이 문제를 졸업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많은 노력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대화혼 大和魂 즉 일본의 민족정신이라는 것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따라서 무엇이 고유하고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정신인지를 전연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일에 이르러서 필자는 다시 자신이 이 문제의 이해에 심히 미흡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유는 민족정신론의 기수로서 자처한 일본인들의 배후에는 이 분야의 대선배가 있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민족정신론의 계보에서의 시조로서 독일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줄리앙 방다’의 말에 의하면 국가간의 정치적인 싸움을 민족문화의 싸움으로 확대하고 민족정신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창안해 쓰기 시작한 것은 독일인들이며 그 정확한 시점은 1813년이라는 것이다. 또한 문화인들이 자기들의 문화활동의 소산을 민족정신의 발현이라고 의식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독일의 ‘레싱’과 ‘쉴레겔’ 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의 사상적 배경이 개성숭배를 모태로 한 독일 낭만주의였다는 사실은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이리하여 민족정신론의 조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는 이를 숭상, 고취한 수많은 문화인들을 배출하였는데 마침내 그 최고의 완성은 ‘프러시아’ 군국주의의 어용사가로서 유명한 ‘트라이츠케’에 이르러서 이루어졌다. 필자는 근래에 독일인들의 민족문화론 내지는 민족정신론과 일본인들의 그것과는 대비해 보기 위해서 일제 후기의 일본 문화계의 대표적 저작들을 읽어 보고 그들의 민족정신론이 독일의 선배들을 모방, 표절한 아류임을 다시 확인하면서 일종의 감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오늘의 우리나라의 민족문화론자들의 선의 善意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박한 심정의 소유자일 것이며 애국의 충정에 차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기필코 다짐해 두어야 할 일은, 만일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건설의 핵심적 토대를 민족정신론에 두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논의 의 발상과 표현 방식을, 선전과 운동의 전개 형식을, 표어와 선언문과 내용 및 어조를 이상과 같은 민족정신론의 역사적 계보에 비추어서 대비 검토해 달라는 일이다.

만일 그들이 의식 못하는 가운데서 현대사상 전율할 만한 문화적 파괴와 민족적 죄악을 남긴 불길한 사상적 계보와 너무나도 놀라운 친연성 親緣性 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하루 속히 이를 청산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復古

문화 내용의 분석-검토를 위해서나 문화 건설의 효과 있는 계획을 위해서나 이에 앞서 이룩되어야 할 여건은 문화 형성의 기본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고등한 문화는 반드시 고등한 종교를 토대로 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보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등한 문화는 하나의 고등종교 내지는 신앙의 경지로까지 숭앙될 수 있는 하나의 이념 체계를 핵심으로 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문화란 이상과 같은 핵심 이념을 향해 바쳐진 사회 구성원들의 헌신의 소산인 것이며, 그들의 순교적 신앙과 희열에 따라 찬란한 광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과거 역사 속에 나타난 불교문화나 유교문화의 문화 소산을 통해서 이상과 같은 이치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문화이념은 구체적으로는 해당 사회의 원대한 목표 즉 이상으로서 구현되며 이로부터 반드시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지향성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의 문화가 이상사회를 실현할 황금시대를 미래 속에 설정하게 될 때에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지니게 되고, 과거역사의 특정시대 속에서 그 모형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復古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복고란 그것이 정당한 것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가피한 이유가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일정한 질서 즉 특정의 대상과 시기가 설정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현재에 지향할 이상적인 문화이념이 불교적인 것이어야만 한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교문화의 최고의 황금시대가 복고 대상이 될 것이며 이 때에는 천여 년 전의 불교문화의 모든 유산들이 성스러운 후광을 지니고 우리들의 새로운 숭앙의 대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추구할 문화이념이 유교이념이어야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숭앙은 유교문화의 황금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며 이때에는 유교문화가 남긴 단편적 유산조차도 우리들의 무한한 감동의 대상이 될 것이다. 복고시대의 문화창조의 정신적 ‘에너지’는 바로 이러한 성질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크로체’의 이른바 ‘노스탤지어’의 역사서술도 그것에 수반되는 커다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에 한해서는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의 경우와 같은 무질서, 무한정한 ‘노스탤지어’는 도대체 어떠한 정당한 근거를 가진, 무엇을 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우리들은 지난 시대의 모든 유물, 풍습의 보잘 것 없는 흔적에 까지도 그다지도 깊은 감동을 느껴야만 하는 것인가.

구석기시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조상들의 모든 행적과 유물에 무조건의 숭상과 애착을 강요하는 이와 같은 복고란 정신분열적인 지력과 감정의 낭비 이외의 것이 아니며 필경은 그릇된 복고, 맹목적인 복고의 통탄스러운 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사이비 似而非 문화인들은 정책적인 노선에 부화뇌동하면서 복고의 환상을 끈임 없이 확산하여 국민들의 맹목적인 好古 性向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보다 중요한 변화와 발전

아마도 그들은 복고의 이념을 우리의 민족정신 그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부 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우리의 민족정신의 고유성은 예의와 정결성의 존중, 그리고 평화애호의 미덕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상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인 이상과 미덕들이 어찌하여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예의의 근본은 인가니 개개인의 인격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정결의 근본은 비단 심미적 성향 뿐만 아니라 위생과 사회기풍의 정결성을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 만일 오늘날 이러한 점에서 우리를 앞지른 국민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신을 앞질러 모방했다는 논리가 성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학문적 근거 자체가 모호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천 수백 년 전의 중국의 사적史籍 중의 몇 구절, 논거가 극히 의심스러운 가설 수준의 몇 편의 신화해석 등이 모두 의심할 수 없는 확증적인 자료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자료의 타당성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없이 역사적 방법도 아니요 언어학적 방법도 아닌 애매모호한 방법을 통하여 계시적 啓示的 인 결론만이 도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근거 위에 민족의 제단 祭壇 을 설치할 수는 없다. 만일 그들이 내세우는 정신적 대상에 대한 민족의 귀의 歸依를 요구하려 한다면 이를 위한 하나의 신학 神學 내지는 철학 체계를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리하여 민족정신이 딸에 떨어졌다, 이를 진흥하기 위해서는 자각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사고방식부터가 청산되어야 한다. 도대체 민족정신이 영원히 우리 역사를 관철하는 지고 至高의 정신이라면, 왜 그렇게도 쉽사리 땅에 떨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자기모순 내지는 자기모독적인 표현이 아니겠는가. 만일 우리의 민족정신이 땅에 떨어졌다면 그것은 어떤 원인으로 어떤 시기부터 그리 되었다는 것인가.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일제의 침략의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의 민족정신은 그들에게도 대항할 수 없으리만큼 그렇게도 무력한 정신일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것이 우리들의 무자각의 결과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왜 자각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게르만’의 자연신이 전투에 효험이 없다고 해서 ‘그리스도’교에 개종했다고 하는 ‘클로비스’의 지력에도 못 미칠 이런 수준의 논리가 왜 우리들에게는 오늘날까지 방치되어만 왔단 말인가

민족정신론자들이 상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해당 민족이 이룩한 역사상의 두드러진 업적과 인물들을 모두 민족정신의 구현이라고 주장하는 방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민족정신의 내용은 더욱 모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마침내는 각 국민 간의 민족정신의 경쟁적인 전시가 현출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인들은 1930년대에 이런 경쟁에 비상한 열의를 발휘하여 근대과학의 주요 발명과 창안들은 물론, 심지어는 ‘스포츠’의 주요 종목도 모두 자 국민의 창안이라고 발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결과가 세계의 냉소를 초래했을 뿐이었음은 우리들의 기억에도 생생한바 있다.

가령 ‘플라톤’ 과 ‘아리스토텔레스’ 가 ‘그리스’인이었다고 해서 오늘날의 ‘그리스’인들의 철학적 자질이 특출하다고 보아주는 사람은 없는 것이며, ‘코페르니쿠스’가 ‘폴란드’ 인이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서 ‘폴란드’인의 탁월한 천문학적 자질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인류문명의 토대 자체를 타민족들에 앞서서 형성했던 ‘이집트’ 인조차도 오늘날에 와서는 문화민족의 대열에서 탈락된 지 이미 오래다. 역사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가 ‘마르크 불록’은 기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역사가들의 병폐의 하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고유문화의 환상

위에서 우리들은 그릇된 민족정신론의 모순의 일단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민족문화론이 낳아 놓은 쌍생아 雙生兒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다시 그들의 또 하나의 거점인 고유문화론에 대하여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원래 고유의 숭배는 개성적인 것에 대한 예술적인 영탄 映嘆 에서 비롯된다. 그런 까닭에 “개성적인 것은 형용을 초월한다”라는 유서 깊은 어구가 되풀이 인용되고 있다. 만일 그것이 개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예술적인 감흥으로만 시종되는 것이라면 거기에 하등의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개성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을 고유의 것이라고 단정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가장 우수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고유성의 기원을 판별하는 역사의 기능과 가치의 판별이라는 철학의 기능과 를 불가피하게 개입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의 문화가 가장 우수하다, 따라서 가장 가치가 있다는 단정은 타 문화와의 비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고유문화론자들이란 이성과 논리에 대한 기피성향을 본색으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귀착점은 논리를 포기한 무조건-절대절대라는 영역이다. 이로부터 그들이 신봉하는 표어로서 “내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절대 우수하다”라는 말이 탄생된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다음으로 고유성의 단정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길은 학문으로부터의 도피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적인 추적이 불가능한 환상의 세계나 신화의 세계, 혹은 이론적인 분석이 지난 至難 한 예술의 세계로의 도피습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서 ‘나치’ 독일의 민족이론의 귀착점이 ‘고대 게르만 영웅족’이라는 환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의 고유문화론자들의 중심 거점이 신화의 세계이었다는 사실만을 상기함으로써 족할 것이다.

원래 역사상 이름 붙일 수 있는 고급한 문화란 예외 없이 왕성한 문화교류의 소산인 것이며 반드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만일 그 기원에 있어서 고유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사회생활의 완전한 폐쇄성을 상정할 수 있는 원시시대로까지 소급할 수 밖에는 없다. 문화의 고유성내지는 순수성이란 설사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해당 문화의 저급성을 말하는 것일 뿐 결코 명예로운 표지가 될 수는 없다.

 

‘애국’이라는 이름의 문화적 폭력

물론 문화의 영역 내에는 지역적인 혹은 지리, 풍토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요인들은 고급한 문화에 있어서는 그 핵심 부분이 아닌, 다만 거기에 첨가되고 가미된 부분일 따름이며 전형적으로는 문화의 외곽산물일 따름이다. 즉 축제의 형식, 복장, 음식 등의 민속적 부분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제 형식의 특수성이나 복장, 음식 등을 가지고 문화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들의 보다 신중한 검토를 요구할 만한 대상은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언어가 민족문화론에서 항상 큰 비중을 차지해 온 첫째의 이유는 그것이 민족을 구분하는 가장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흔히 사용되어 온 혈통이라든가 국토경계선 등의 기준에 비하여 민족의 구분기준으로서 언어가 지니는 개연적 蓋然的인 효용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고유한 언어이기 때문에 우수하다든가 언어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와 혼동될 수는 없다. 언어도 그 밖의 문화분야와 마찬가지로 교류와 상호 영향하에서만 풍부해질 수도 있고 발달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 언어의 고유한 순수상태를 되찾는다고 말하면 과연 어느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경 그것은 언어의 원시화를 제창함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언어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의 한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자랑하면서 그 이유를 그것이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일이 있다. 이에 비하여 불어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저급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날의 어리석은 웃음거리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의 웃음거리만은 아닌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도 같이 고유문화론 이란 문화와 역사의 본성을 무시한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고 고유성의 숭상 崇尙 이란 하나의  역리 逆理 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정확성을 숭상함에 있어서 그렇게도 지극한 이 나라의 일류학자들이 어찌하여 고유문화론 앞에서는 한결 같이 학문을 포기하고 공순 恭順 의 뜻만을 표시해 왔던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필자는 하나의 중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이들 고유문화론자들이 ‘애국’이라는 고지 고지를 이미 점령하고 그들에게 추종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비애국자’ 내지는 ‘반역자’ 의 낙인을 찍을 위협적인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안출 案出 한 성공적인 음모의 하나이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하여 사실상 이 나라의 문화계를 위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문화적 폭력을 이 이상 좌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권력층에 독점될 수 없는 애국심

이들은 진정한 애국심은 고유문화와 고유정신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신념을 토대로 해서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래 애국심이란 고유문화 의식과는 무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심정인 것이다. 그것은 향토와 동포에 대한 사랑의 자기 희생적인 발로 이외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립은 원시시대로부터 기본집단의 존립에 좌우되었기 때문에 집단의 존립과 방어를 위한 희생적인 헌신은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속성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들은 부모형제가 문학적으로 우수해야만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동포가 아무리 무식해도 우리의 국토가 아무리 빈약해도 그 수호를 위하여 우리의 애국심은 발동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애국심이란 소박한 부족애의 국민적 발현 이외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 발현은 자연적인 것이며 문화적 가치나 고유의식 등이 그 필수적 전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리를  허다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문화에 대한 지극한 존숭감 尊崇感 을 지니면서도 그들의 침략에 대해서는 항상 열렬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국토를 방어해 왔다. 우리들의 오늘날 있음은 민족정신이 무엇인지 고유문화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이름없는 조상들의 거룩한 애국심의 결과인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문화를 높이 숭상하는 가운데서도 ‘그리스’인들을 능가하는 애국심을 발휘하여 그들을 정복하였다. 또한 영국인들의 문화를 이어받은 미국인들은 열렬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그들과 싸워 독립하였다. 아니 그보다도 ‘아메리카 인디언’ 의 부족애가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비해 참되지 못하다거나 강하지 못하다고 누가 감히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애국심을 고유문화론과 결부시킴으로써 이를 권력층들과 더불어 독점하려고 하는 일부 문화인들의 독선적, 배타적인 기도 企圖 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의 문화관을 보편적인 이성의 토대 위에 수립할 것인가 혹은 이기적인 감정의 토대 위에 수립할 것인가를 결정할 시점에 위치해 있다. 역사가 ‘크레블리언’은 ‘영국사’의 첫 대목에서 영국인들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여러 민족들의 피를 섞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자질을 지니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한 개성숭배의 사상적 계보를 계승한 ‘마이네케’ 조차도 ‘민족정신의 우수성을 나타내려는 공허한 의도’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의도는 ‘타민족들의 냉소’를 초래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은 문화의 고유성이라는 근원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다 확고한 기반, 즉 인류가 분유 分有 하는 존엄한 평등성 위에 확고히 수립하여야만 할 것이다.

 

‘호이징하’의 말 – 선택에 대한 책무

해방 후 수십 년간에 걸쳐서 우리들은 이 나라의 문화인임을 자처해 왔고 또한 학자임을 자처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회고해 보건대 그 동안 우리들은 하나의 뚜렷한 문화적 경륜조차도 제시해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우리의 족적은 지식의 빈곤, 철학의 빈곤, 역사적 안목의 빈곤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이 땅의 일부 기성 문화인들은 지칠 줄도 모르고 단체를 결성하고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당파싸움과 자리다툼에 몰두하고, 정치권력과 금력에 아부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의 근래의 기치는 민족적인 것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것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그리하여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문화’ ‘한국적 사고방식’ 등이 그들의 열렬한 숭상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국민학교로부터 대학과정에까지 이르는 교과서의 내용을 채워야만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이들은 국민문화와 국민교육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운동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현하의 모든 부조리의 근원을 한국적 특수성을 가지고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끝내 개별적인 가치가 보편적인 가치에 우선하고 개별적인 판단이 보편적인 판단에 우선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1935년에 ‘네델란드’의 사가 史家 ‘호이징하’는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암담한 역사적인 파국을 내다보면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들이 체험하고 있는 무거운 정신적 압박의 시대는 젊은이들보다도 노인들에게 있어 견디어내기가 보다 쉽다. 노인들은 시대의 중압을 조금만 더 끌고 나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공포와 근심은 죽음의 접근으로 해서 경감된다. 그들의 희망과 신뢰, 그들의 행동에의 의욕과 용기는 앞으로 더 살아나가야 할 젊은이들의 손에 넘겨진다. 판다, 선택, 노력, 활동에 대한 중대한 책무를 맡게 되는 것은 이들 젊은이들이다.”

‘불크할트’를 이은 20세기 최대의 문화사가라고 불리어지는 ‘호이징하’의 이상과 같은 겸허한 자세에서 오늘날의 한국의 기성 문화세대들은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들의 희망을 최소한도로 정리하여 앞날의 문화건설의 고귀한 책무를 다음 세대에 맡겨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지적인 빈곤과 무기력을 넘겨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앞길을 더 이상 흐려 놓아서는 안 될 것이며 오직 그들을 위한 한 주먹의 거름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민족이 계속해서 지향해야 할 이상은 보다 많은 자유, 보다 많은 평등, 보다 많은 부 富의 실현이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를 보다 앞서 실현한 선진 국민들의 문화이념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고 당부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일부 인사들은 필자의 이러한 심경을 국적 없는 사이비 문화인의 비애국적인 감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에게 오늘날 이미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경우를 허심탄회하게 관찰할 것을 권고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역량은 일본민족의 고유문화의 힘이 아니라 그들이 백 년간을 숭상하며 섭취한 서구문명의 힘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백 년이 꼭 우리의 백 년이 되라는 법은 없다. 또한 백 년이라 한들 필경은 역사의 일순간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오늘날의 선진국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화적 제諸문제를 우리의 문제로서 앞질러 근심할 필요도 없다.

역사는 각시기에 따라 그에 해당한 과제들을 인류에 부과해 왔으며, 인류는 그들 나름대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왔기 때문이다.

 

 

– 월간중앙 1974년 1월호 게재

Kierkegaard to the rescue..

예기치 않은 작은 일 하나로 어제 오후의 기분은 평상적인 평화로운 화요일의 그것과 다른 것이었다. 오랜 만에 마음의 평정이 공략을 받는 듯한 위기감까지 느낀 고요한 화요일 오후, 오랜 만에 openculture website를 들렸다. 이곳이 언제부터 나의 favorite site list에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한 3년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주로 ‘인류 문화적 유산’에 큰 가치를 두고 그 가치를 유지 발전 보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 일환으로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online course를 제공하는 information을 싣곤 한다. 이곳의 소개로 내가 ‘들었던’ course도 이제는 몇 개가 된다.

오늘 쳐지는 기분 속에 나의 눈에 들어온 글자가 바로 Kierkegaard란 이름이었다. 한글로는 ‘키에르케고르’ 로 번역되는 이 19세기 덴마크의 국보급 철학자에 관한 course가 그곳에 소개되고 있었다. 게다가 course가 어제인 6월 4일에 시작이 되니, 알맞은 timing이 아닌가?

8주간 계속되는 이 course는 19세기 덴마크 실존주의 신학,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의 성장 배경과 그의 주 관심인 그리스도교적 실존철학, 주관론, 소크라테스의 Irony개념, 그리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느끼는 ‘절망감’ 같은 것들을 공부한다.

 

문제는 왜 내가 이 course에 관심이 가는가 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보아온 이름 ‘키에르케고르’, 그는 과연 누구인가, 왜 많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 사람에 관심을 두는가.. 알고 싶다. 피상적으로 이 철학자의 profile을 보면, 우선 그의 철학은 완전히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죽음에 이르는 병, The Sickness Unto Death‘이라는 후기작의 제목은 바로 ‘요한복음 11장 4절1‘ 에서 나온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이번 여름 8주를 coursera 제공, ‘open & free2‘ course를 통해서 이 덴마크 신학철학자에 대해 알아 보기로 결심했다.  

이런 과정에서 기억 속을 헤치고 나온 것이 하나 있다. 1984년 신동아 잡지의 별책 부록,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이란 것, 분명히 ‘키에르케고르’는 그 곳에 소개 되고 있었다. 특히 위에 소개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관한 저자의 소개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을 이곳에 전재를 하여 기억력을 살린다.

이러다 보니.. 온종일 쳐지고 우울한 머리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며,  한결 살맛이 난다. 이래서, 우울할 때 그대로 쳐지고 있으면 하나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나의 경험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키에르케고르(덴마크 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죽음에 이르는 病 (1849)

 

표재명 表在明 (고려대 문과대학교수 서양철학)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3

 

 

<1>

‘쇠얀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5월 5일 북 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하고 경건한 모직상의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서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증력을 훈련 받았고 깊은 시름을 물려 받았다.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 부친의 뜻에 따라 신학 국가시험에 합격, 왕립전도학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한편, ‘소크라테스’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쓴 ‘아이러니의 개념’으로 철학 학위를 받았다. 한때 베를린대학에 가서 ‘헤겔’의 뒤를 이은 만년의 ‘셸링’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1838~39년에 그는 부친의 소년시절에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어 ‘큰 지진’을 체험하고 죄의식에 눈을 떴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레기네 올센’과의 결혼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1846년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악덕 풍자신문 ‘코르사르'(해적)와 충돌하면서 그는 사회와 대중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종교적 저작가로서의 사명에 살 것을 결심했다. 1854년부터는 팜플렛으로 된 ‘순간’으로 덴마크국교회와의 싸움에 나서 순교자의 길을 택했는데, 1855년 가을에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11월 11일 42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현대실존사상의 선구적 사상가 철학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종교적 저작가’ 또는 ‘그리스도교적 저작가’로 자처했다. 그의 저작활동의 목적은 ‘사람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며, 낱낱의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있는 곳에서 그 자신의 책임으로 이 문제와 씨름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단독자 單獨者’의 범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단독자의 범주는 그의 모든 저작활동이 그것을 축으로 전개된 그의 모든 저작활동이 그것을 축으로 전개된 근본 이념이며, 그리스도교의 결정적 범주였다. 그에게 있어 단독자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지는 믿음으로 홀로 서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인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이토록 힘을 써야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물음의 뜻은 ‘그리스도교 세계는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리스도교 세계는 저도 모르게 그리스도교를 말살시켜 버렸다’는 그의 놀라운 단언에서 밝혀진다.

그가 볼 때 당시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데카르트’ 이래의 근대적 합리주의사상이라든가 낭만주의 사상, 특히 그리스도교와 국가를 합리화하고 종교와 국가를 융합시킨 헤겔철학의 영향 아래 그리스도교 본래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미 신앙이 아니라 한갓된 교리와 사상으로 변질된 겉치레만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약성서’의 그리스도교, 사도 使徒 들의 그리스도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행복을 좇아 ‘미적인 것’의 범주에서 사는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요 기만이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 세계에 그리스도교를 이끌어 들이는 일’을 위한 그의 저작활동의 의의와 저작가로서의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의 정치-사회적 인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자기의 사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1848년에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냈고 파리혁명을 기폭제로 유럽 전역에서는 혁명의 폭풍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덴마크에도 혁명의 여파가 밀려와 절대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군주제로 바뀌면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널리 보장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시대의 유행이 된 사회주의의 이념이나 국민 사회운동이 시대의 구원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 같은 것은 낱낱의 단독자를 대중이라든가 그 밖의 유개념의 추상물 속에 묻어버리는 대중화, 평균화의 위험을 촉구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민중을 집단의 힘 에로 결속시키는 일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붕괴의 시대의 유일한 고정점으로서 하느님 앞의 단독자로 해체시키는 일이었다. 곧 이 시대의 구원은 각 사람이 ‘자기의 원시성 原始性’에 눈뜨고 ‘1800년을 그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뛰어 넘어’ 예수와 함께 하는 삶, 곧 신약성서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각 사람에게 ‘감히 자기 자신이 될 것’ 곧 ‘감히 하느님 앞에서 오직 홀로서는 단독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거대한 노력과 이 엄청난 책임을 지고 오직 홀로 서는 특정한 단독자’가 스스로 되려고 했으며 또 다른 사람도 그러기를 원했다.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적인 영웅주의’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영웅주의를 위해 ‘교화와 각성을 위한 그리스도교적이고 심리학적 論述’로서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을 썼던 것이다.

 

<2>

<죽음에 이르는 병>의 본문은 ‘인간은 정신이다. 그러나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은 자기다’ 라고 하는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인간은 ‘정신’으로, 그리고 이 정신을 ‘자기’로 파악한 데 ‘키에르케고르’의 독특한 인간이해가 있다.

‘헤겔’은 정신의 본질을 주관과 객관, 사고와 존재, 이성과 감성, 논리와 자연을 의식적으로 종합하는 ‘절대정신’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는 이 같은 절대정신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한한 인간의 실존재하는 정신은 영원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실로는 그렇지 못한 자기이며, 영원자가 되는 일을 과제로 안고 있는 자였다. 본래 그렇게 되어야 할 자기가 되려는 자기생성의 무한한 노력 중에 있는 것이 인간 실존의 진실이요, 인간으로서 실존재하는 정신이란 이러한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자각하는 자기, 이 과제를 지금을 사는 이 단독의 자기의 삶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자기였다. 자기가 이러한 의미에서의 실존이 되어 있지 못한 상태,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실의 상태에 있는 것, 이것이 곧 절망인 것이다.

이러한 절망이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곧 구제를 위한 첫째 계기가 된다는 변증법적인 성질의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죽음은 일체의 것의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죽음조차도 일체의 것의 마지막이 아니다. 죽음이 최대의 위험일 때, 인간은 삶을 희망한다. 그러나 죽기를 바랄 만큼 위험이 클 때, 그리고 죽음조차도 희망이 될 수 없을 때 이것이 절망이다.

절망의 진행과정은 절망의 현상학이 된다. 절망의 강도는 인간의 자기의식의 도 度 에 따라서 높아진다. 곧 ‘자기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절망’ (영원한 자기를 가지는 일에 대한 무지)에서 ‘자기가 절망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절망'(어떤 영원한 것을 가진 자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에로 높아진다. 이것은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 정신성의 미적 실존의 단계에 해당되는 ‘재미’를 찾아 헤매는 직접적인 대상의식의 절망에서 윤리적-종교적 실존의 단계까지 이르는 자기의식의 절망이 된다.

윤리적 실존에 눈을 뜬 인간의 절망은 ‘절망하여 자기자신 이려고 하지 않는’ 약한 여성적 절망이 되든지 ‘절망하여 자기자신 이려고 하는’ 반항적인 남성적 절망이 된다. 이 반항적 절망은 자기의식의 강도에 따라 악마적인 반항, 절망적 광포에까지 이른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 현대의 윤리적 상황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적인 윤리적 교정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 윤리는 시대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알면서 선을 행하지 않고 부정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 반항하는 인간의지가 죄를 자각하고 그 마음을 돌이킬 때 구제의 길이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계시와 원죄의 가르침의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제2부에서 절망은 ‘하느님 앞에서의 절망’ 곧 죄로 규정되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서는 일, 곧 믿음에 의한 절망의 근절을 말하고 있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 다음해에 나온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훈련>과 함께 ‘파스칼’의 <팡세>에 비겨지는 그리스도교 변증론의 명저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구명된 그의 인간이해는 그 후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현대의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변증법적 신학은 물론 교육학 심리학 문학예술사상의 형성과 전개에 크게 이바지했다.             

 

주요저서

  • Either-Or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 Fear and Trembling <공포와 전율>, 1843.
  • Repetition <반복>, 1843.
  • Philosophical Fragments <철학적 단편>, 1844.
  • The Concept of Dread <불안의 개념>, 1844.
  • Stages on Life’s Way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1845.
  •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철학적 단편에 대한 後書>, 1846.
  • The Present Age <현대비판>, 1846.
  • Work of Love <사랑의 역사 役事>, 1847.
  • Christian Discourse <그리스도교 講話>, 1848.
  • Training in Christianity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훈련>, 1850.
  • Attack upon Christendom <순간>, 1855.
  • The Point of View for my Work as an Author <관점>, 1848.
  1.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2. 이 course는 100% 무료로 audit 청강이 가능하다.
  3. 신동아 1984년 1월호 별책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