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ny's Friends

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올해,  2010년대 마지막 해의 칠월 달을 맞는다. 이즈음이면 충분히 무더위에 대한 적응이 잘 되었기에 날씨를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올해의 7월을 맞으며 유난히 머리에 떠오른 것들이 있는가… 역사적으로는 50년 전, 서울 상도동 집의 ‘조잡한 금성  19인치 흑백 TV’ 앞에서 새벽녘에 눈을 비비며 맞았던 Apollo 11Neil Armstrong의 역사적인 moon landing… 바로 그것이 떠오른다.  반세기 전의 역사라 지금 이곳도 서서히 Apollo 11 Special 비슷한 것들이 이곳 저곳 자주 눈에 띈다. 50년 전… 그것이 50년 전이라니.. 얼떨떨한 것, 50이란 숫자가. 거의 무감각한 50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정상인지..

그런 배경으로 올해의 7월은 날씨 보다는, 50년 전인 1969년이 주는 느낌이 더욱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철모르고 잘나가던’ 대학 3학년 시절이었지.. 2학년까지의 회상은 분명히 적어 놓았는데 그 이후의 것, 특히 1969년 직후는 별로 쓰여진 것이 없다. 별일이 없으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추억을 정리해 놓을까 하던 것이 몇 년째인지..

정확히 50년 전 즈음,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연세대 캠퍼스는 박정희 3선 개헌 반대 데모로 온통 수라장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순조롭게 끝날 무렵에 도저히 이런 꼴로 나라를 놔두고 물러날 수 없다는 심정으로 개헌을 강행한 것.  6월이 되면서 거의 매일 데모를 한 기억인데,  데모 자체는 물론 ‘주동 그룹(대부분 정법대생들)’이 주도를 하기  마련이고, 우리 같은 ‘(이)공돌이’들은 그들의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그런 어느 날의 데모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노천극장에서 한참 ‘선동 연설’을 들으며 기운을 모은 후에 우리들은 연세대 굴다리를 지나서 신촌 로터리 쪽으로 신나게 나가고 있었다.  로터리 쪽으로는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도열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뒤를 따라가던 우리들은 앞장선 ‘용감한 정법대생’들만 믿고 나간 상태였는데 어느새 앞으로 보니 그들이 모조리 없어진 듯 느껴졌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우리들이 선두에 선 것이다.  순진하기만 했던 우리 ‘공돌이’들, 모두들 겁에 질려서 뒤로 물러나며 캠퍼스 쪽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의 데모는 그 후의 유신반대 데모와 비교하면 아주 ‘얌전한’ 것이었다. 서로 싸운 기억도 없고 다친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데모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일한 ‘반대하는 수단’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물론 당시에는 없었다)

이런 어수선한 6월이 지나면서 결국은 ‘강제 조기 방학’이 되어서 모든 학교는 3개월간의 잠을 자게 되었다. 우리들의 관심은 어이없게 3선 개헌 같은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곧 있을 Apollo 11 의 달 착륙 같은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나는 (박)창희와 소백산 등산을 계획 중이었고, 결국은 소개받은 2명의 아가씨들과 같이 4명이 소백산 등반을 하게 되었다.  그때 연화봉 바로 아래의 고원지대에서 본 밤하늘의 놀라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천문대가 생겼다고 들었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50년 전 소백산 고원의 초원지대에서 같이 ‘무섭게 많은’ 별들을 보았던 그 두 명의 아가씨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1960년대 마지막 7월과 2010년대 마지막 7월의 모습들이 교차되며, 아~~ 오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2019년 6월 30일 이른 아침,  갑자기 맑아진 머리와 ‘뱃속사정’을 기뻐하며 지난 한 달을 서서히 회고하기 시작한다. 우선 머리 속에는 작년 이즈음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당시에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구역장’ 직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후퇴로 끝났던 그 경험, 그것이 시작될 무렵이 바로 작년 이때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나의 ‘작은 친구’ Tobey를 나의 손에 앉고 보냈던 그 때였다. 그래서 6월의 느낌을 나는 자꾸 피하려고만 했던가…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대담하게 ‘세월의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싶다.

어제는 ‘늦은 father’s day’를 받으러 나라니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과음과 과식’의 잘못을 저질렀지만… 후회는 안 한다. 기분이 그런대로 좋았으니까…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토하고 싶은’ 그런 것, 새롭기까지 했다. 이런 거북한 느낌을 경험한 것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우선은 괴로운 느낌이었지만 새로운 느낌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조금 조용히 ‘토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100%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기야 맥주를 ‘끝 없이’ 받아 마시며 나의 몸이 이렇게 ‘건강해졌나’ 할 정도로 문제가 없었지만 아마도 음식물의 양이 꽤 많았던 모양이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생활은 현저히 변하고 있다. 우선 ‘모든 일에 전력 투구할 수밖에 없는’ 연숙에게 여가시간이 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다. 오랜 세월 우리에게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여유시간, 그것이 주는 평화로움은 정말 편함..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부터 며칠간은 6월 한달 동안에 내가 쌓은 ‘업적’을 남기려 발버둥 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남은 세월의 한 부분이다. 그것을 나는 남기고 갈 것이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상관이 없다. 성모님, 나의 어머니는 항상 보실 테니까..

2019년 6월 18일 ‘밤’ 9시 23분…  점점 저무는 나의 인생의 하루지만 평화로움을 ‘계속’ 느끼는 것은 분명한 은총일 것이다. 평화는 과연 누구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들려고 노력은 분명히 하지만 그것 이상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저 높은 곳’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 그저 이런 평화의 느낌을 계속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6월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안 뒤로 결국은 나는 몇 주가 지나는 것을 잡지 못하고 말았다. 하루 하루 충실히,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살긴 했지만 무언가 놓친 듯 싶은 것은 왜 그럴까? 그렇다. 나의 ‘공식, 공개’ 적 일지, 일기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또’ 지나간 2~3주를 또 다시 회고하는 ‘작은 고역’을 치러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어렵지만 즐거운 아주 묘한 것이다.

작년 6월을 계속 의식하게 되는 것, 괴로운 것,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나와 Tobey와의 세월들이 보람 있는 것들이었다고 해도 그 녀석이 나의 옆에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아직도 가슴이 저려옴은… 과연 내가 지나친 것인가? 엄마를 보낸 것과 계속 비교를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하지만 엄마와 그 녀석을 1:1로 비교함은 무리다. 그래도 그래도 Tobey, 참으로 보람된 우리의 추억을 만들었지… Tobey야.. 잘 있지?

모처럼 보람 찬 ‘정식 레지오 활동’이 찾아온 느낌으로 레지오 화요일의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기분 좋게’ 낮잠을 잔 후의 기분… 어찌 다른 것들과 비교를 하랴? 비록 꿈은 안 꾸었어도… 날라가는 기분.. 이것은 진정한 평화로운 화요일 늦은 오후가 된 것이다. 기분 좋게 나의 손끝의 놀림을 받아주는 새로 산 ultra-compact keyboard로 이 글을 쓰는 기분도 그렇고, 신선한 느낌의 instantpot의 menu를 보게 됨도 그렇고.. potcast로 보는 Windows Weekly는 더욱이나 나를 즐겁게 한다. 이제 이런 techshow는 거의 향수를 자아내는 ‘오랜 추억’의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전’ 직업을 사랑한다. 직장에서 신나게 일하던 시절… 아침의 아늑한 직장에서의 coffee 향기.. 어찌 잊으랴?

올해도 조금 있으면 반이 지나가게 된다. 2019년… 나는 아직도 남은 인생의 ‘거대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속으로 겉으로 계속 기도를 하며 ‘성령과 성모님’의 hint를 기대하고 있지만 결과를 미리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기대는 한다. 분명히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Timeline을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아마도’ 2020년 이후에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공부하며 생각한다. 

Ozzie와 같이 있는 것도 2주가 되었다. 벌써… 이번에는 더욱 유난히 그 녀석이 다르게 느껴진다. 흡사 Tobey가 다시 살아나온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무척 따른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은 그 녀석도 ‘보답’을 하는 듯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동네를 걸었다. Playground에 가면 조금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즐겁게 ‘운동’을 하며 2주를 보낸다.

5월의 반 동안의 ‘우울한 이상 기후’을 이제는 뒤로하고 ‘절대로 멋진’ 날씨가 계속되는 6월.. 이제는 우울한 추억을 멋진 추억으로 승화시키며 추억을 만들고 싶다. 내년에 올해의 6월을 기억하면 절대로 ‘멋진 6월’로 남게 되기를 원한다.

 

 

슬그머니 6월을 맞는다. 어제로 가버린 2019년 5월은 사실 온통 ‘어머니’의 모습으로 가득한 ‘제일 좋은 시절’ 이었지만 5월의 마지막 2주간의 ‘한여름 더위’는 기억에 남을 듯하다. 6월의 싱그러움은 뒷마당의 초록색의 향연으로 익히 즐기고 있지만 사실 나에게 이달은 우울한 추억이 있기에 조금은 슬퍼지기도 한다. 작년 6월에 영원히 우리 곁에서 떠나간 ‘나의 아들’ Tobey, 일년의 세월이 조금은 슬픈 기억을 무디게 한 듯 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나는 ‘작은 고통’을 느낀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6월은 역시 그의 특유의 ‘푸른 여름,  자연의 찬가’를 들려준다. 그는 자연주의자인가, 어떻게 그렇게 주변의 소소한 것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진화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임을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실감한다. 특히 birch tree, 버치, 어릴 때 따먹던 ‘뻐찌’열매로 알고 있던 것들과 함께 역시 6월, 초록색의 싱그러움을 예민하게 관찰한 이 6월의 찬가를 안톤 슈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들 중에 하나로 꼽았다.

이미 여름 같은 더위에 익숙해졌기에 더위는 그리 두렵지 않지만, 6월의 하루, 6월 25일을 다시 맞으며 나는 6.25 동란을 피해갈 수가 없다. 어떻게 나는 이런 ‘전쟁’의 피해자가 되었는가… 왜 김일성이란 괴물이 나의 시절에 존재했던가… 역사는 역사지만 인과응보적인 종말론으로 나는 조금 위안을 삼는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안톤 슈낙의 6월은..

풋풋한 사랑 체험으로 특허를 내어보라

 

스스로 잊어 버리도록 하라

 

시냇가에 앉아 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에 앉아 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어보도록 해 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조금 있다가 프랑크푸르트 시의 포도농장에서 만든 1953년도 내지는 1954년도 호흐아이머 돔데샤나이 포도주를 차가운 물에서 끄집어내 마셔 보자.

첫 한 모금을 마시기 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둘러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

가까운 시야에 원을 기르며 날아다니는 나비떼, 둥글게 줄지어 피어 있는 꽃들과 골짜기의 풀밭에서 부지런히 건초더미를 뒤집고 있는 자그만 여인네들도 바라보면서…

 

 

버찌씨로 유리창을 깨뜨려 보라

 

텃밭에 있는 따리 모판을 들여다 보자.

거기엔 탐스러운 딸기가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처럼 잘 익어가고 있다.

그 자리에서 즉각 딸기로 볼주를 만들어 보라.

우리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모판에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포도주를 약간 뿌려보자.

근처에 있는 곤충들이 애타게 볼주를 마시고 싶어 갑자기 몰려오면 가느다란 콩넝쿨대로 쫓아버리면 된다.

 

버찌나무 회초리로는 개구쟁이 사내 아이들이나 개똥지빠귀, 찌르레기들을 쫓아내면 된다.

만일 개구쟁이 사내 아이들이 버찌나무 가까이 접근해 오면 번갯불에 콩 볶듯이 뛰쳐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틀림없이 달아날 거다. 그래도 정말 소용이 없을 수가 있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개똥지빠귀 암수가 적이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계속 이쪽을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마우지새를 미끼로 고기를 낚는 중국 어부를 흉내내어 몰래 버찌를 따먹는 찌르레기를 괴롭히는 시도를 해 보자.

버찌 나무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전신기둥으로 가 보면, 숱하게 버찌씨가 떨어져 있다.

찌르레기가 주로 모여 있는 버찌나무 아래는 버찌씨로 꽉 덮여 있다. 그 수를 헤아려 본다면 수백 개도 더 될 거다. 그러나 실제로 그 씨의 오분의 일 정도만 다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니 화를 내지 말고 비를 들고 떨어진 씨들을 쓸어 모아서 자루에 넣어 겨울까지 보관해 두었다가, 버찌씨를 먹는 겁많고 부리가 딱딱한 새들의 겨울 먹이용으로 정원길에 뿌려 두면 어떨까.

 

찌르레기들이 과일 서리 수업을 받고 있는 버찌나무에 계속해서 돌을 던져 보자.

정확히 잘 맞는다고 잘난 체 으스대지 말고 차라리 나무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집의 알록달록한 유리창을 돌을 던져 깨뜨려 보자.

중요한 건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들 때문에 끊임없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난다는 건데, 찌르레기들은 이런 소음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싫어한다.

다만 자기 자신들이 내는 소음만은 별반 시끄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새들이 읽을 수 있는 글자로 푯말을 세워라

 

만일 정원에 뽕나무가 있으면 인간의 탐욕에 버금갈 정도로 버찌를 먹고 싶어 안달하는 새들을 그런대로 괜찮은 과일 매장으로 유혹해 보자.

그러니까 새들의 나라 말로 작은 푯말에 ‘하늘에 계신 존경하는 새님들에게 전혀 방해 받지 않는 먹이터를 보장해 드립니다!’라고 써서 갖자 붙여 보라.

지빠귀, 녹색 방울새, 도요새들은 종종 이런 꼬임에 쉽사리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찌르레기들은 이런 걸 재빨리 눈치채고 마구 삐삐거린다.

정말로 무언가 항의할 듯이 부리와 꼬리를 흔들면서 요란스레 삐삐거린다.

 

 

개똥벌레로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라

 

밤에 갑자기 몸이 후텁지근해지면 개똥벌레를 잡아서 여자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어 보라.

그리고는 개똥벌레가 요즘 유행하는 장신구 중에서도 ‘최신의 유행’이라고 설득을 해 보라.

다이아몬드보다 더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만일 당신의 여자 친구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걸 믿는다면, 당신은 남은 여름을 함께 지내게 될 기가 막히게 멋진 벗을 찾은 셈이다.

 

그녀와 같이 옛 성터나 유적지를 찾아 다니거나 진한 자줏빛 나무딸기를 따서 손으로 콕 찔러 터뜨려보기도 하고, 고색창연한 물레방아 바퀴가 돌 때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금잔화로 뒤덮인 언덕에 함께 앉아 있어 보면 어떨까.

물이 맑고 차가운 강의 상류 움푹 들어간 웅덩이에서 송어를 살짝 잡아보기도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발이 예쁜 소녀에게 자전거 타는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릴 거라며 은근히 칭찬을 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풀벌레 오페라에 귀를 기울여라

 

꽃피는 보리수 나무 아래로 가서 풀벌레 오페라단인 ‘찌르르단’과 ‘쓰르람단’의 공연을 들어보자.

먼저 관객이 쇄도해서 놀랄 거고 그 소리의 다양성과 위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거다.

높은 음에서 가장 묵직한 저음에 이르기까지…

연한 자줏빛의 사프란 색 먼지가 머리와 피부에 살그머니 내려 앉는다고 해서 불쾌하게 여기지는 마라.

그건 유황가루도 아니고 원자탄의 먼지도 아니며 다만 꽃가루일 뿐이다.

황홀한 기분으로 보리수향을 맡아 보라. 그리고는 왜 이런 대단한 향이 아직도 향수의 재료로 사용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런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특허를 내어 보자.

 

전문 음악지에 이 두 풀벌레 오페라단들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쓰려는 헛된 생각은 하지 마라.

이런 오페라의 형식과 내용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며, 그야말로 현대의 음악 발전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풀벌레들은 날아다니기만 할 뿐 하나같이 글을 읽을 줄도 모르며, 기사가 나오기 전에 이미 생명이 다했거나 새들의 부리에 찍혀서 일용한 양식이 돼 버렸을지도 모른다.

 

 

풋풋한 사랑 체험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여성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해보라.

그녀들은 짤막한 인상이나 달콤한 향기를 모으는 게 아니라, 손에 닿을 수 있는 꽃들을 모두 따버리거나, 11월에 내릴 비와 안개, 겨울에 대해 생각하거나 기관지에 담이 차지나 않을지 독감에 걸리지나 않을지 염려한다.

깜짝 놀랄 일이 있었으면 곧바로 휴가를 내어라. 가능하다면 연장을 해서 초가을까지 휴식을 취해 보는 게 어떨까.

휴가일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고 해서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다만 은은한 차의 향, 찻물 끓일 때 나는 증기, 소금 결정체, 알프스의 들장미, 춤 출 때의 즐거운 기분, 풋풋한 사랑 체험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가 내면 깊숙이 추억을 간직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 우리는 피정을 드디어 갔다. 그것도 집을 완전히 떠난 ‘봉쇄, 침묵’ 피정, 우리 둘은 같이 간 것이다. 일단 축하해야 할 성취감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오래 잊고 살았던,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도 말하고 싶다. 특히 이재욱 요한 신부님의 영성적 깊이의 진면목을 다시 보고 느꼈던 시간들이었고,  얼마 후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될 이 좋은 목자가,  나의 신앙에는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 것인가 생각을 한다. 올해의 ‘마지막’ 피정은 나의 개인 역사, 특히 2010년대 초에 시작된 나의 레지오 활동단원의 전체 역사에 비추어서 회고하며 색다른 의미를 찾고 싶다.

 

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Soggy backyard, Mother’s Day

 

2019년 5월 12일 오월의 둘째 일요일, 어머니 날의 ‘원조’격인 미국의 Mother’s Day를 맞는다. 2010년대 마지막 5월의 이날은 정확한 일기예보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 봄은 자연의 어머니 손길인가.. 그렇게 때에 맞게 비가 내리곤 했다. 그 덕분에 주변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온통 초록색으로 덥혔다. 사방이 온통 초록색..  정녕 은혜롭게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어버이날’이란 것이 생기기 전에 그곳을 떠났기에 나의 기억은 어린 시절의 5월 5일 ‘어린이 날’과 5월 8일의 ‘어머니 날’ 밖에 남지 않았다.  어머니 날은 우선 나에게 이 인생을 갖게 해 준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님과의 영원한 이별을, 이제는 슬프고 아련한 감정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인생을 ‘기리는’ 쪽으로 살려고 한다.

어머니가 어찌 나를 낳아준 어머님 뿐이랴… 우리 아이들의 어머니를 비롯, ‘법적으로 이어진’ 어머니, 신앙적인 어머님인 성모 마리아.. 모두들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편안하고, 가슴 속 깊이 기쁨이 스며든다.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주보편집 15년, 예비신자 교리반 director 직 5년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완전은퇴를 선언, 그것을 감행한 연숙, 올 봄은 완전한 자유인으로써 ‘뒤뜰 농원’을 편하게 가꾸는 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직도 레지오 서기, 매일복음묵상글 e-newsletter를 하긴 하지만 전에 비하면 그것은 시간적으로 자유인을 뜻하기에 지긋지긋한 기억밖에 남지 않는 나의 6여 개월 ‘구역장직’ 경험을 완전히 뒤로한 나도 100% 공감을 하며 조금은 편해진 둘만의 세월을 기다린다.

 

계속되는 비로 grill은 back porch로 옮겨야 했다

 

오늘은 원래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야외미사를 할 예정이어서 가까운 모처럼 동네본당 Holy Family 성당엘 가려고 했는데, 우천관계로 야외미사가 취소된 것을 핑계로 오랜만에 아예 주일 미사를 쉬기로 했다. 덕분에 진짜 안식일을 맞이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께름칙한 기분은 떨칠 수가 없었다. 올해의 Mother’s Day는 예년과 완전히 반대로 ‘기운과 신이 난’ 엄마가 손수 가족들을 대접한다고 해서 4명의  ‘식구와 친구들’ 을 집으로 불러서 grill dinner를 나누었다. 모두들 조금은 이상한 느낌은 들었지만 사연을 알고 나서는 고맙게 저녁식사를 즐겼다.

 

나라니가 가지고 온 Mother’s Day bouquet

얼마 전에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의 도서실에서 대출한 책, ‘종교철학’1을  읽다 말다 하며 처음으로 ‘번역서가 주는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한 마디로 읽는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 손 쉽게 떠오르는 이유는:

 

  1. 책이 다루는 주제, 내용 그 자체가 원래부터 고통스럽게 난해한 것이다.
  2. 그 난해한 주제를 원 저자가 횡설수설, 일부러 난해한 표현으로 독자를 혼동 시켰다.
  3. 역자는 충실히 번역을 했지만 난해한 내용을 거의 ‘직역’수준으로 다루었다.
  4. 역자가 제대로 원 주제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의 ‘1:1″의 직역의 결과를 낳았다.

 

과연 어떤 것인가? 물론 1~4 가 모두 상호관계가 적은 별개의 것이 아니어서 서로 혼합된 이유가 ‘읽는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집어 내라면 어떤 것을 고를까 하는 과제에 접했다. 정말 ‘머리에 쥐가 나게 하는’ 난해 함의 고통은 아마도 이유 No. 1 이나 2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은, 책의 후미에 있는 ‘역자 후기’를 읽으며 내린 결론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읽는 즐거움’을 준 부분은 바로 이 ‘역자 후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저자는 내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거의 미지의 인물이지만 역자는 손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이가 나와 거의 같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등에서 철학전공, 후에 가톨릭 대학교 총장 역임.. 여기서 생각난 것이 ‘아마도’ 나의 국민학교 동창생 ‘김정훈’ 부제와 같은 시기에 유학을 했을 가능성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훈이가 그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기대를 받았던 ‘장래의 거목’으로 촉망을 받았고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것, 이 ‘오창선 신부’의 미래와 비교하니 다시 한번 김정훈 부제의 부재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어려운 책’ 중에서 ‘머리에 쥐를 나게 하는 글 중의 압권 壓卷’을 고르라면 다음 글을 뽑을 수 있다.

 

 

‘침묵의 부정적 특성’

침묵의 기도는 일상적 활동과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선 부정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획책하지 않음이며 어떤 것에 의해서도 책동되지 않음이다. 그것은 어떤 것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음이며 더 이상 말함의 운동에로 몰아넣어지지 않음이다. 그것은 정신의 고요함이요, 전체 인간의 침묵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침묵하면서 일체의 “어떤 것”, 즉 세계의 모든 사물들과 이름들과 관심사를 파악함 내지 파악하고자 함의 개념으로부터, 말로 나타냄 또는 말하고자 함으로부터 풀어놓을 것이다. 그는 세계를 소유함과 세계에 의해 점령당해 있음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는 욕구들과 그 호기심들이 진정되도록 할 것이다. 그는 아주 평온하고 태연자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인간이 무 無와 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위의 글은 내가 추측하기에 거의 100% 직역일 듯하다. 어떨까.. 역자가 조금이라도 풀어서 설명을 할 수 없었을까? 조금 쉬운 말, 부드러운 말로… 더 많은 독자들이 ‘쉽고 빠르게’ 이해를 돕게 노력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역자후기’ 중에서

다른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 따른 어려움이란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되는 작품과 관련하여 옮긴이는 이러한 사실을 개인적으로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깊은 생각이 독자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기를 옮긴이는 기대해 본다.

소개되는 작품의 주제는 종교철학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종교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점차 과학화되고 합리화되어 가는 현대세계 안에서 종교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성의 광장” 앞에서 종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역자후기의 서문은 역시 ‘번역의 어려움’으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럴까? 원저가 워낙 어려운 것이라? 아니면 적당한 우리 말 용어가 없어서?  쉬운 말로 설명을 하기가 힘들어서?  구체적인 이유는 생략되었지만 나는 솔직히 무엇인지 짐작은 한다. 하기야 쉽지 않은 분야, 신학과 철학이 함께 엮인 것이니.. 쉽지 않은 것은 100%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특히 ‘공돌이’로 굳어진 머리로 이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 함은 거의 허무한 명제일 듯 하다. 하지만 노력은 한다. 조금씩 조금씩… 그날까지..

  1. 종교철학, 베른하르트 벨터 적, 오창선 옮김, 1998년 분도출판사

오랜 만에 ‘초록색 책’을 나의 눈과 손에 가까운 곳에 두었다. 빌려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책, 이거 혹시 너무나 오래된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대출기간 초과 과태료’가 붙지는 않을까.. 하지만 ‘나이든 어르신’을 상식적으로 ‘봐 주는’ 우리 고마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도서실 관리자 자매 형제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래 더 가지고 보자’, 걱정을 접는다.

‘山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초록색의 표지는 고 김정훈 부제의 그림에서 온 것이라 더 친근감이 간다.  1978년 유학 중 오스트리아의 어떤 산에서 실족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기’반’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몇 년 전에 빌려와서 ‘독후감’ [첫 편]을 남긴 적도 있었고 이후 계속 읽으며 후편을 쓰려고 했지만 ‘세월의 마술’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 대신 이런 식으로 눈에 띌 때마다 가끔 읽기를 계속한 지 몇 년이나 되었나?

오늘 우연히 펼친 1975년 마지막 부분의 일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정훈이의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까… 이 일기를 통해서 얼마나 정훈이가 한국천주교회의 기대와 희망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 되었다. 본인이 그것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이렇게 부담으로 느껴졌던 것.. 나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항상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에 칭찬도 그렇게 기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훈이가 사고로 그렇게 일찍 타계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거목’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의 ‘추도사’를 보아도 그가 얼마나 한국교회의 촉망과 기대를 받았었는지 이해가 간다. 애석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느님은 그를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 분명히 무슨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12월 2일 (1975년)

 

나는 별제(別製)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그냥 가만히 놔둔 그런 완전히 보통 사람이고 싶다. 모든 이들의 감시 속에서 – 자신은 엉망으로 감당 못 하면서 – 별나게 고고해야 하고, 상냥한 행동거지, 우아한 품위를 지닌…

모든 이들이 저 아래에서 쳐다보면서 저희들끼리 냉소하며 비웃음과 욕설로 나를 샅샅이 훑어내어 분해하려 한다.

아! 나는 그런 별제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무조건,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엄청난 철학의 이론 – 신학의 체계 – 학문의 상아탑, 한국 교회의 기둥, 서울 교구의 인재,

“장래를 걸고 우리 모두에게 줄 복음을 연구하러 유학갔대. 훌륭히 되어 돌아와서 우리에게 굉장한 걸 줄 거야.”

아! 당장 앞에 다가온 세미나, 그게 도대체 뭐냐?

나는 미사 드리는 사람보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하느님을 모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한 톨 밀알을 조심스레 뿌리고, 조그만 의미를 그냥 혼자서 체득하고 싶은 거다. 가만히 혼자서 하느님을 기리고 싶다는 거다. 아! 나는 조용히 모르면 모른다고, 좋은 건 좋다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하고 싶은데… 왜 모르는 것도 아는 것같이 해야 하고, 좋은 것도 내색을 해서는 안 되고, 재미있을 때도 웃으면 안 된다는 건가?

은하수 길가에 졸고 있는 칠현금 별자리를 보라

 

 

ANTON SCHNACK

ANWEISUNGEN ZUM GLUCKLICHSEIN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딸기에 술을 부어 5월을 마시게 하라

 

조금씩 커져가며 서서히 붉어지고 있는 어린 딸기에 이제 물을 충분히 부어 주어라.

하지만 물뿌리개나 분무 호스로 물을 주는 게 아니라, 술통이나 술병에서 빼낸 우아한 ‘라인 포도주’를 부어라.

이런 식으로 하면 딸기가 점점 5월에 마시는 볼주와 비슷하게 되고, 동시에 딸기로 포도송이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저녁 이슬의 언덕’이라 말해보라

 

화단이나 집 가까이 있는 들판에 가 보라. 지난 밤에 누군가 파 뒤집어놓은 흙무더기를 보게 된다. 그러나 화단이나 들판을 파 뒤집어 놓은 두더지를 때려 잡겠다고 끝이 뾰족한 갈퀴나 괭이를 들고 가거나 끔찍한 흉기를 들고 가지는 마라.

차라리 두더지가 파 뒤집어 놓은 흙무더기마다 각기 독특한 명칭과 높이, 그 모양새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어 놓은 카드를 가져다 놓아 보자.

제일 예쁜 언덕에는 ‘꽃요정의 쿠션’이라고 이름 짓고, 두 번째로 예쁜 언덕에는 ‘저녁 이슬의 언덕’이나 ‘우울한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로 해 두고, 제 번째나 네 번째 언덕에는 ‘마거리트의 무도장 舞蹈場’이라는 카드를 놓아 보라.

 

두더지가 파놓은 그 자그만 언덕과 협곡 사이에는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살고 있다.

땅 속의 보배를 지키는 정령, 달빛 요정, 꽃의 요정, 비의 여신, 물의 요정 등이 살고 있는데 그것들이 조용히 열중하고 있는 신비에 가득 찬 일들을 살펴보라.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떨지 말고 발 앞에 놓여 있는 동화집을 집어 보라.

그 속에 아주 자그만 황금잔이 들어 있거나 콩알 만한 진주나 이슬방울 크기에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는가.

그러나 먼 훗날 우리들 주머니 속에 숨겨 두었던 보석이나 보물들은 어쨌든 이 우주의 먼지나 무 無 로 완전히 분해돼 흩어져 버릴 것이다.

 

 

밤꽃을 촛불 대신 밝혀 보아라

 

밤나무에 꽃 촛불마냥 피어 있는 꽃 가지를 꺾어 집으로 가져와서 조명기구로 써 보아라. 하얀꽃은 거실에 두고, 불고 노란색이 섞여서 핀 꽃은 어린 소녀의 방에다, 빨간꽃은 침실에 두어 보자.

이런 꽃들을 조명으로 쓰면 황혼이 질 무렵이나 고독과 사색의 시간, 정겨운 대화를 나눌 때나 더듬거리며 사랑을 고백할 때, 연인들이 황홀하게 밀어를 속삭일 때에 온화하고 사랑스런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밤꽃을 촛불로 쓰면 환하게 비치지도 않고, 불을 켤 필요도 없으며 그렇다고 불이 꺼질 일도 없다. 그리고 촛농이 떨어질 일도 없고 불이 금방 꺼지거나 뜨겁게 달아 올라 위험할 일도 없으며, 고장이 나서 수선할 필요도 없고, 으스러지지도 않으며, 탄 자국이나 깨진 유리조각을 남기지도 않는다.

다만 약간 퀴퀴한 향이나 생기 없이 쭈글쭈글해진 꽃과 시들어버린 줄기, 가끔씩은 뻣뻣하게 말라버린 뒝벌 한 마리가 꽃 속이나 꽃 받침 속에 아무도 모르게 죽어서 잠들어 있을 때가 있을 뿐이다.

 

이제 새들이 많이 돌아왔으니 새를 잡으러 가보는 게 어떨까. 그러나 진짜 새를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사실은 새 모양으로 된 연한 송아지 고기 요리 (Kalbsv gerl)나 참새처럼 짤막하게 생긴 국수(Sp tzle)를 먹으로 가자는 뜻이다.

이 송아지 고기 요리는 고기를 자그맣게 잘라서 얇게 말은 것을 말하는데 대체로 남부 독일 식당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손가락 크기만한 송아지 고기 토막에 베이컨과 계란, 다진 고기를 얹은 다음 말아서 구운 뒤에 식탁에 내놓게 된다.

이 송아지 요리는 실로 묶어서 만들기 때문에 식사 중에 이상한 실이 있더라도 불쾌하게 여기지는 말라. 다만 이 실을 먹지 않도록 주의하라.

 

‘참새 모양의 국수’와 송아지 고기로 만든 이 독특한 ‘참새’는 남부 독일 지역 중에서도 특히 바덴 지역이나 뷰어텐베르크 지역에서 잡을 수 있다.

특히 점심 시간에 새 모양의 송아지 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이 식당 저 식당을 다녀 보라.

이 ‘참새 모양의 국수요리’를 밀가루, 계란, 소금을 물로 반죽해 만든다는 걸 듣고 놀라지는 마라. 제일 맛있는 ‘새떼’와 참새 모양의 ‘국수떼’를 골라라.

만일 ‘새떼’의 빛깔이 회색이고 끈적끈적하게 보이거든 퇴짜를 놓아 무시를 해 보리고, 자갈처럼 딱딱한 국수는 접시 위에 내동댕이쳐 버려라.

이따위 저질의 새 사냥터는 얼른 떠나는 게 좋다.

 

 

5월의 무당벌레를 회의에 초대하라

 

먼저 무당벌레 회의를 개최해 보자.

숫자를 정확하게 헤아리는 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두 번 세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만년필이나 사인펜으로 무당벌레의 등에 각각 점을 찍어 보자.

점을 다 찍은 후에, 찌르레기와 참새용 고급 식품 시장에 공급 부족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당벌레를 다시 놓아주어 보자.

 

곧 이어서 무당벌레 앙케이트를 실시해 보라.

왜 무당벌레가 아직도 보기 싫은 갈색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그리고 이 갈색이 무당벌레 나라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아보자.

혹시 무당벌레의 아랫부분 색깔이 지하 저항 운동 단체의 표시를 뜻하는 건 아닌지도 말아보고, 또 무당벌레가 어떤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지, 혹은 그들이 세습적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등판이 붉은 무당벌레는 모조리 왕실 가족이 아닌지, 아니면 좌익 국회의원이 아닌지 알아보는 건 어떨까.

 

지성적인 무당벌레는 위로 곱게 뻗은 촉수로 모든 걸 인식한다.

무당벌레 극장, 무당벌레 서정시 모임, 무당벌레 출생제한 등에 관한 회의에 이들을 초대해 보자.

이 백인종으로부터 추방당한 갈색 피부를 지닌 민족의 노래와 시문학을 테이프나 CD에 녹음을 해 보자.

가을 저녁이나 겨울 저녁, 노을이 질 때, 이 묵직하고도 한량없이 깊은 저음을 들으면서 그렇게도 멋졌던 지난 시절 혹은 청소년기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피리새의 지저귐을 조심하라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판이나 언덕에 가까이 가지 마라.

구두창이나 옷에 불이 붙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절대로 풀밭에 눕지를 마라. 민들레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물론 피리새가 지저귈 때도 조심을 해야 한다! 만일 너도밤나무나 밤나무, 사과나무 가지들이 늘어져 있다가 부러져 아래로 떨어지면 귀를 다쳐 청각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나무 아래 있으려면 탈지면으로 귀를 틀어 막는 것이 좋다.

 

아름다운 오월과 더불어 은밀하게 멋진 사랑을 시작하도록 갈망해 보라.

포도밭 가의 언덕에 모닥불을 지피거나, 사랑을 고백하거나, 담배를 피워 연기를 내뿜거나 땔나무를 지펴 연기를 피워서 그 동안 몹시 얼어 붙은 가슴과 차디찬 피부에 있었던 냉기를 몰아내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 보자.

젊은 아가씨와 춤을 추러 바에 가거나 디스코 장에 가든가 혹은 독한 그로크주를 마시러 가거나 갖가지 뜨거운 펀치주를 마시러 가보라.

 

그러면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든지, 아탈리아의 리도에서 혹은 청보라빛 리비에라 해안에서 해수욕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 칸느나 모나코로 여행을 가서 영화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을 거고 노르웨이의 작곡가 신딩의 ‘봄의 도취’를 들으면서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을 녹일 수도 있을 거다.

담비나 밍크 재킷을 꽁꽁 얼어붙은 어깨에 걸치고, 뻣뻣해진 손가락에는 스웨덴 제 양모 장갑을 끼고, 굳어 버린 발에는 양털이 들어있는 부츠를 신어 보자.

그러데 이런 행위들은 아직 나이 어린 소녀가 꽃이 만발하고 나뭇잎이 온통 초록으로 물든 자연으로 오월의 산책을 가고 싶어 안달을 부릴 때, 그 싱숭생숭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나 혹은 갑자기 끔찍한 추위가 몰아 닥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여겨질 때에 필요한 생각들이다.

 

 

은하수를 향해 떠나가라

 

북동쪽 하늘에 펼쳐진, 음악 연주회를 개최할 ‘칠현금 별자리’에 참가 지원서를 바람에 실려 띄워 보내 보라.

손풍금을 연주해보는 건 어떨까.

천상의 악기를 켜기 위해 은하수 길가에 있는 칠현금 별자리를 바라보며 떠나보자.

어떤 비평가도 비난하지 못하는, 이 우주 공간에 있는 하늘의 음악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해 보는 건 어떨까.

천상 오페라단의 전주곡, 별들의 교향곡, 달빛 소나타, 태양 찬가, 나그네 행진곡, 밀려가는 뭉게 구름의 축세 노래, 추방당한 천사와 가련한 영혼의 슬픈 멜로디, 구름배와 우박이 내리는 민요조의 멜로디, 비너스 소녀의 사랑이 담긴 대중가요 등을 연주해 보자.

 

연주회를 마친 후, 모자를 손에 들고 별마을 주민과 은하수 마을 주민이 살고 있는 뒤뜰에 모여보자.

사례금으로 한 줄기 햇빛이나, 무지개  빛 대리석, 달빛 금화나 혜성의 반짝임, 운석 조각, 유성을 받을지도 모른다.

딱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가 이런 공상가나 선의의 거짓말쟁이에게 제대로 대가를 치러 줄 수 있다면…

 

창희야, 용현아 또 일 년이 흘렀구나..

 

‘말대가리’ 용현아, ‘박하사탕’ 창희야.. 또 일년이 흘렀구나. 먼지가 뽀얗게 거리를 덮었던 그 시절 무언가 건설의 굉음 속에서 하루가 모르게 변하던 우리의 거리, 서울거리를 누비던 시절.. 그것도 5월의 서울 퇴계로 거리와 칠흑같이 어둡던 지하다방에서 듣던 불후의 명곡들, classic pop 그 중에서도 어떻게 Bee Geesfirst of may를 잊을 수 가 있으랴… 이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뇌 세포가 아직도 그 당시로 꿈속에서나마 보고 느끼게 해 준다.

지난 일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창희야 LA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상상은 간다만 용현아,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구나. 재동학교, 휘문중고교, 건국대 를 통해서 찾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늦어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래 늦었어… 상상과 추억 속의 너희들 모습이 나는 사실 더 매력적이니까..

나의 지난 일년이 이곳에 ‘적나라’하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진화’하고 있다는 자부감으로 산다. 나의 북극성은 분명히 같은 곳에 있고 나는 그것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으며 산다. 그것이 나의 나머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희망’이란 것.. 그것만 놓치지 않으면 내가 태어난 생의 의미는 확실히 구현된다고 믿는다.

그래.. 우리의 50년 전의 아름다운 추억이 머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희망은 항상 있는 거야.. 나는 믿는다. 모두들 건강하게 살기를…

Fort Yargo State Park picnic area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Hope… 희망 希望..  인생의 황혼기, 후반기 중의 한 시점을 살아가면서 이 희망이란 말은 사실 크게 .  생각보다 더 많은 뜻을 함축한 이 희망이란 말, 요즈음 들어서 조금 더 깊고 다르게 생각 하게 되었다. 희망이란 말, 그렇게 단순한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이번에 ‘우연히’ 읽게 된 Pope Francis (교황 프란치스코) 의 short essay: Never Lose Hope 에서였다.

우리는 ‘희망이 필요하다!’. 허.. 누가 모르나. 희망이 적거나 없으니까 문제가 아닌가? “하느님, 예수님이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니까 우리는 희망이 있다”.. 는 말, 솔직히 그렇게 실감을 할 수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은 우리의 삶이 아닌가?  그런 먼 미래의 희망들이 절망이나 실망 속에 빠진 우리들에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될까?

문제의 관건은 역시 ‘믿음’이다. 그것도 무조건 적인 믿음, 바로 그것이 아닐까? 영원한 생명, 절대로 다시는 죽지 않으리라는 엄청난 약속의 희망으로부터 우리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절망의 순간들 속에 우리는 희망이 있는 영원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믿음의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간단히 보이는 진리가 그렇게도 ‘다루기 handle’ 가 힘든 것일까?

 


 

NEVER LOSE HOPE

POPE FRANCIS

 

Hope never disappoints. Optimism disappoints, but hope does not! We have such need, in these times which appear dark. We need hope! We feel disoriented and even rather discouraged, because we are powerless, and it seems this darkness will never end.

We must not let hope abandon us, because God, with his love, walks with us. “I hope, because God is beside me”; we can all say this. Each one of us can say: “I hope, I have hope, because God walks with me.” He walks and he holds my hand. God does not leave us to ourselves. The Lord Jesus has conquered evil and has opened the path of life for us…

Let us listen to the words of Sacred Scripture, beginning with the prophet Isaiah… the great messenger of hope.

In the second part of his book, Isaiah addresses the people with his message of comfort: “Comfort, comfort my people, says your God. Speak tenderly to Jerusalem, and cry to her that her warfare is ended, that her iniquity is pardoned… A voice cries: ‘In the wilderness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 Every valley shall be lifted up, and every mountain and hill be made low;  the uneven ground shall become level, and the rough places a plain.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for the mouth of the Lord has spoken'” (Isaiah 40:1-2, 3-5)…

The Exile was a fraught moment in the history of Israel, when the people had lost everything. The people had lost their homeland, freedom, dignity, and even trust in God. They felt abandoned and hopeless. Instead, however, there is the prophet’s appeal which reopens the heart to faith. The desert is a place in which it is difficult to live, but precisely there, one can now walk in order to return not only to the homeland, but return to God, and return to hoping and smiling. When we are in darkness, in difficulty, we do not smile, and it is precisely hope which teaches us to smile in order to find the path that leads to God. One of the first things that happens to people who distance themselves from God is that they are people who do not smile. Perhaps they can break into a loud laugh, on after another, a joke, a chuckle… but their smile is missing! Only hope brings a smile; it is the hopeful smile in the expectation of finding God.

Life is often a desert, it is difficult to walk in life, but if we trust in God, it can become beautiful and wide as a highway. Just never lose hope, just continue to believe, always, in spite of everything…. Each one knows what desert he or she is walking in – it will become a garden in bloom. Hope doe snot disappoint!

The prophet Isaiah once again helps us to open ourselves to the hope of welcoming the Good News of the coming of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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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chapter 52 begins with the invitation addressed to Jerusalem to awake, shake off the dust and chains, and put on the most beautiful clothes, because the Lord has come to free his people (verses 1-3). And he adds: “[M]y people shall know my name; therefore in that day they shall know that it is I who speak; here am I” (verse 6). It is to this “here am I” said by the Lord, which sums up his firm will for salvation and closeness to us, that Jerusalem responds with a song of joy, according to the prophet’s invitation…

These are the words of faith in a Lord whose power bends down to humanity, stoops down, to offer mercy and to free man and woman from all that disfigures in them the beautiful image of God, for when we are in sin, God’s image is disfigured. The fulfillment of so much love will be the very Kingdom instituted by Jesus, that Kingdom of forgiveness and peace which we celebrate at Christmas, and which is definitively achieved at Easter…

These are, brothers and sisters, the reasons for our hope. When everything seems finished, when, faced with many negative realities, and faith becomes demanding, and there comes the temptation which says that nothing makes sense anymore, behold instead the beautiful news… God is coming to fulfill something new, to establish a kingdom of peace… Evil will not triumph forever; there is an end to suffering. Despair is defeated because God is among us.

And we too are urged to awake a little, like Jerusalem, according to the invitation of the prophet; we are called to become men and women of hope, cooperating in the coming of this Kingdom made of light and destined for all, men and women of hope…. God destroys such walls with forgiveness! And for this reason we must pray, that each day God may give us hope and give it to everyone; that hope which arises when we see God in the crib in Bethlehem. The message of the Good News entrusted to us is ur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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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also Isaiah who foretold the birth of the Messiah in several passages: “Behold, a young woma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 (Isaiah 7:14); and also: “there shall come forth a shoot from the stump of Jesse, and a branch shall grow out of his roots” (Isaiah 11:1). In these passages, and meaning of Christmas shines through: God fulfills the promise by becoming man; not abandoning his people, he draws near to the point of stripping himself of his divinity. In this way God shows his fidelity and inaugurates a new Kingdom which gives a new hope to mankind. And what is this hope? Eternal life.

When we speak of hope, often it refers to what is not in man’s power to realize, which is invisible. In fact, what we hope for goes beyond our strength and our perception. But the Birth of Christ, inaugurating redemption, speaks to us of a different hope, a dependable, visible, and understandable hope, because it is founded in God. He comes into the world and gives us the strength to walk with him: God walks with us in Jesus, and walking with him toward the fullness of life gives us the strength to dwell in the present in a new way, albeit arduous. Thus for a Christian, to hope means the certainty of being on a journey with Christ toward the Father who awaits us. Hope is never still; hope is always journeying, and it makes us journey. This hope, which the Child of Bethlehem gives us, offers a destination, a sure, ongoing goal, salvation of mankind, blessedness to those who trust in a merciful God. Saint Paul summarizes all this with the expression: “in this hope we were saved” (Romans 8:24). In other words, walking in this world, with hope, we are saved. Here we can ask ourselves the question, each one of us: Am I walking with hope, or is my interior life static, closed? Is my heart a locked drawer or a drawer o open to the hope which enables me to walk – not alone – with Jesus?….

Those who trust in their own certainties, especially material, do not await God’s salvation. Let us keep this in mind: our own assurance will not save us; the only certainty that will saves us is that of hope in God. It will save us because it is strong and enables us to journey in life with joy with the will to do good, with the will to attain eternal happiness.

Christian hope is expressed in praise and gratitude to God, who has initiated his Kingdom of love, justice, and peace… It will truly be a celebration if we welcome Jesus, the seed of hope that God sets down in the furrows of our individual and community history. Every “yes” to Jesus who comes, is a bud of hope. Let us trust in this bud of hope, in this “yes”: “Yes, Jesus, you can save me, you can save me.”

 

2019년 4월 21일… 결국은 이날을 맞는다. 4.19 이틀 뒤가 바로 올해의 부활절이 되는 날.. 어제부터 겨울로 돌변한 날씨가 아직도 요란한 heating noise로 가득하고 완전 군장 겨울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의 모습..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는 ‘슬프기’까지 한 것은 왜…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인가? 왜 내가 이런 좋은 날에 쳐진 기분으로 고생을 한단 말이냐? 요사이 조금씩 자주 겪고 있는 이런 ‘큰 이유가 없는’ 때에 겪는 우울감, 불편한 느낌들… 오늘 아침에 일어나며.. 새삼 느낀다. 이것은 분명히 나, 우리를 시기질투하는 ‘악마’의 농간일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었다. 사실이기를 바라지만 물론 확실한 것이 있는가?

왜 가장 기뻐야 할 부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 학수고대한단 말이냐? 혹시 나의 과거에 겪었던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생활태도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제일 나를 두렵고 무섭게 하는 ‘사태’일 것이다. 하지만 설마.. 나는 거의 10년 전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나는 다시 성모님의 무릎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성모님… 저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나를 두렵고 불편하게 하는 모든 생각들과, 그의 원인들을 치료해 주세요… 저는 그것을 현재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며 휘둘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한 기쁨으로 느끼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어머니, 성모님!

The day after..라고.. 나 할까?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던 ‘지구 중력의 피해‘ 는 아직도 나를 멍~ 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100% 사고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왜 이렇게 서론이 기냐.. 병신아.. 조금은 주의를 하며 살라고!

아차~ 하며 순식간에 돌 같은 차고 garage computer server closet의 바닥에 모서리를 부딪친 것은 바로 2Tera-2 라는 우리 집 file server의 hard-disk였다. 그런 것이 2개가 있는데 모두 떨어뜨린 것이다. 아차! 잘못하면 내가 ‘마구 집어넣은’ 모든 ‘쓰레기’들이? 불행 중 다행인가? 2개 중에 하나가 깨끗하게 ‘비명을 지르며’ 갔다. 그곳에 있는 것… 다행히도 personal 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folder ‘software’에는 각종 ‘공짜’ software들이 많았고… folder ‘video-2’에는 ’10년도 넘은’ 한국 드라마 (대장금, 겨울연가 같은) … 아차… 어찌하나… 몇 년 전 비슷한 ‘사고 (내가 사고로 지운 것)’ 수 많은 일본 video들이 사라진 것을 기억한다…

어제의 이런 사고를 겪으며 필요이상으로 생각에, 나이와 연관되어 깊은 생각에 잠긴다. 생각해 보고 넘어가는 기회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세월의 짐, 그것이 이제는 너무나 커진 것은 아닐까? 이제는 서서히 하나 둘 씩 잊으며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재는 아직도 나에게 필요하기에 너무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제발 이제 그 지겨운 backup data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Anton Schnack 안톤 슈낙 (슈나크)1 , 독일의 서정시인, 짧은 산문의 대가. 이름은 희미해졌어도 그의 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반세기기 훨씬 지난 지금도 비교적 분명하게 기억한다.  국어 ‘국정’교과서의 위력인가, 감수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던 고등학교 2학년생의 특권, 혜택이었나.

비록 ‘입시 준비의 각도’로 국어교과서를 대했지만 그래도 그 ‘슬프게..’ 하는 짧은 글은 남녀, 인문,자연, 이공계를 불문하고 모두의 가슴 깊은 속을 자극했었다.  아마도 ‘첫 허무감’을 맛보게 하는 계기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 글이 어떻게 국어교과서에 실렸는지, 누구의 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독일을 신처럼 숭배하던 일본아해들이 ‘원조’가 아니었을까? 혹시 일본교과서를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에 이 독일 ‘슬픈 서정 시인’의 글을 책으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슬픈 것이 아닌 기쁜, 행복한 것들에 대한 감성적 산문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에서다.  50여 년 전의 기억을 배경으로 이 저자를 찾아보고, 역시… 우리가 너무나 ‘신화적’으로 이 글을 배웠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 ‘감성적 시인’도 역시 시대를 피할 수 없는 한 인간이었고, 나아가서 꿈에서 벗어나게 할 만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전범은 아니더라도, ‘부역자’ 급이라고 할까?  암만 잘 봐준다고 해도.. 역시 ‘양심상 허점이 가득했던’ 인물일 수 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히틀러에게 ‘가장 높은 충성의 맹세, Vow of Most Faithful Allegiance‘ 에 서명을 했던 것일까? 1, 2차 대전에 골고루 참전을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비정치적, 평범한 독일남자인 것으로 봐줄 수도 있지만 ‘서정적’인 그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과거가 아닐까? 그래서 그의 명망이 후년에 서서히 빛을 잃어갔던 것을 나는 그렇게 애석하게 생각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는 ‘미친 독일인’들의 생생했던 죄악상을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도 나는 4월에 관한 모든 것, 놓칠 수가 없다. 4월의 느낌은 너무나 좋은 것이고 안톤 슈낙도 멋있게 그가 경험했던, 상상했던 4월을 예찬했고 글로 남겼다. 싸늘한 4월의 가랑비와 싸늘하고 찬란한 햇볕의 어루만짐..  하루 모르게 새로 얼굴을 내미는 각종 꽃들의 율동… 그러한 4월이 ‘부활의 기쁨’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다.

 

 

ANTON SCHNACK

ANWEISUNGEN ZUM GLUCKLICHSEIN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4월에는 …

수선화에 수줍은 채 인사를 해보라….

 

 

튤립에 기침용 시럽을 똑똑 떨어뜨려 보라

 

온상에 채소잎이 이미 돋아 나왔으면 조심스럽게 잡초를 제거해 주어라.

참빗을 써 보는 것도 괜찮다. 참빗은 진딧물이 잎사귀에 무더기로 나타날 때에 써도 되는제, 그렇다고 잎이 빗질에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다.

양파 냄새를 줄이려면 어린 양파의 새순이 약간 솟아 올라올 때, 세발용 향수를 거기에 부어 보라.

 

앵초꽃, 제비꽃, 튤립 같은 꽃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고 콧물을 흘리지 않게 하려면 나일론 속옷을 준비해 두는 게 좋다. 만일을 생각해서 기침 시럽을 꽃받침 안에 똑똑 떨어뜨려 보라.

그러면 정말 개미떼가 몰려오기 전에 미리 보호 조치를 취하게 되는 거다. 만일 개미들이 관청의 허가도 없이 밤을 틈타 길을 만들고, 담을 세우고, 터널의 구멍을 뚫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어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이 사전에 비용 측정도 하지 않고, 지방의회의 토의와 위원회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트랙터와 굴착기도 사용하지 않고, 관련 담당자에게 뇌물도 바치지 않고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개미들은 모든 소지품을 휴대하고 이동을 한다. 그것도 유독 남의 나라 땅이나 남의 지역으로만 이동을 한다.

개미가 가는 곳의 평화를 깨뜨리고 물건을 손상시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 지역 경찰청에 고발을 해야 한다. 고발을 할 경우 관계 공무원이 이맛살을 찌푸리더라도 개의치 않으면 그만이다.

집에서 취미 삼아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공무원을 한 사람 고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개미를 싫어한다면서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테니까 말이다.

 

개미들은 머리 부분이 아스파라거스처럼 툭 튀어나와 있고, 이제 막 쏘아 올리려는 로켓 모양이므로 급할 때에는 재빨리 덤불이나 헛간 속으로 숨어서 자신을 엄호한다.

개미는 자신의 신변이 계속 위태로울 경우에는 참호나 땅굴을 파고 그 곳에 몸을 구부리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변의 위험이 그리 크지 않으면 세게 3차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마냥 그 속에 틀어박혀 있지는 않는다.

 

땅속에서 갖가지 씨앗들이 자라면서 내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밤은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고, 오이씨는 트림하듯이 소리를 내고, 콩꼬투리는 천천히 묵직하게, 완두콩은 돌돌돌 물이 흘러가듯이 꾸르륵 소리를 내는 것 같다.

해바라기씨는 그리움을 담은 하프음과 같다. 사과씨는 즐겁게 ‘아하’ 하는 듯하고, 개암나무 열매의 요들송 소리, 호두나무의 빠르게 연타되는 북소리, 호박씨는 불꽃놀이 할 때의 폭죽 터지는 소리를 낸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려면 귀를 지표면에 아주 가까이 갖다 대어 보라.

애벌레의 소근거림, 딱정벌레 유충의 속삭임, 두더지의 고통스런 사랑의 하소연, 들쥐들이 먹이를 먹으면서 내는 발라드, 땅벌들의 사프란 꿀과 히아신스 포도주를 만들려고 윙윙거리며 즐거워하는 소리, 초록빛 나무들이 있는 낙원과 기가 막히게 맛있는 나뭇잎의 즙을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청정한 공기와 따뜻한 일광욕을 생각하는 딱정벌레 유충들의 그리움에 가득 찬 소리……

 

 

무욕을 배워라

 

한 쌍의 박새가 둥지를 짖는 걸 보라. 그저 초록으로 칠해진 채 위쪽을 향해 서있는 철로 된 관이나, 빨래 너는 표백장의 기둥 같은 곳에 보금자리를 지으려고 하는, 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점이 부럽다.

집세도 내지 않고, 주택국의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빨래 너는 표백장의 주인과 상의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새들의 무욕을 삶의 본보기로 삼으면 어떨까. 그 소박한 방의 배치나, 아주 초라하다 할 수 있는 신방을….

몇 개의 바싹 마른 이파리들과 마른 풀 줄기와 깨끗이 털어낸 카펫에서 나온 솜털 부스러기나 농가의 우리에 있는 양들의 털 부스러기,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가슴에서 뽑은 깃털 몇 개나 지붕 위에서 그르르 거리는 비둘기의 가슴에서 뽑은 깃털 몇 개나 지붕 위에서 그르르 거리는 비둘기의 가슴에서 뽑은 깃털로 만든 방이 아닌가…. 게다가 새들의 넘쳐나는 행복과 기쁨을 함께 넣어서 말이다.

 

수줍게 무릎을 꿇으며 공손한 자세로 수선화에게 인사를 해 보라.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면 수선화는 어느 소년의 때이른 죽음에 대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 꽃의 뒤에서는 병적으로 자기애에 빠져 있는 소년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요정 에코는 그 소년에 대한 사랑에 응답이 없자 병이 들어버렸고 그로 인해 오직 그 목소리, 에코(산울림)만 남아 있게 되었다.

히아신스 꽃은 히아킨투스 혹은 히아신스라고 하는 용모가 잘 생긴 신의 아들이었는데 아폴로 신과 바람의 신 보레아, 두 신으로부터 동시에 사랑을 받게 되어서 모습이 바뀌어진 향기가 짙은 꽃이다. 이 꽃에도 한 번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 보아라.

 

그리고 히아신스 주변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차가운 북풍의 화신인 보레아 신의 질투로 인해, 아폴로 신이 던진 투척용 원반이 바람에 날려가 이걸 바라보고 있던 소년 히아신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폴로의 총애를 받던 소년 히아신스는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아폴로가 그 수려한 용모를 지닌 소년의 피로 한 송이 꽃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히아신스다. 오늘날 우리는 그 히아신스 꽃을 세상에 보내준 아폴로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다.

 

 

비를 성장 촉진제로 이용해 보라

 

하늘에 떠 있는 황소별자라 자매들인 히아든을 면밀히 관찰해 보라.

히아든은 붉게 빛나는 알파성인 알데바란 주위에 있는 황소의 뿔과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사냥 중에 죽은 동생 히아스에 대한 슬픔과 괴로움을 잊게 하려고 제우스신이 그쪽 별이 되게 했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황소궁에서 꽃피는 지구 위로 보슬보슬 내리는 미지근한 빗방울을 이 사랑스런 자매들이 흘리는 눈물이라 상상해보면 어떨까.

키가 작은 사람들은 이 미지근한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쓰지 말고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마음껏 돌아다녀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따뜻한 빗방울에는 사람의 몸을 성장시키는 힘이 내재해 있다고 하니까.

 

 

백설공주를 산지기 딸로 생각해 보라

 

숲 속에서 야생 비둘기의 매혹적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듯한 낯선 ‘르루쿠…. 쿠쿠르…. 르르쿠…. 쿠쿠르… ‘ 소리는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실은 그 가장자리가 뾰족하고 끝이 금빛으로 어른어른 반짝이는 수비둘기와 빨간 부리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비둘기 소리에는 신비스런 마력이 들어 있다고 믿어 보라.

비둘기가 그런 소리를 낼 때 귀엽게 생긴 불쌍한 소녀가 햇빛 바른 숲길을 따라 총총 사라진다거나, 파스텔 조의 초록빛 금팔찌로 장식한 멜루지네 소녀가 사라진다든지,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백설공주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라….

혹은 피부가 밤색인 18세 산지기 딸이 날쌔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바람을 타고 아프리카로 여행하라

 

극지방의 기압과 열대지방의 기압이 부딪치거나, 냉기와 열기가 충돌하거나, 그린랜드 저기압권과 아조랜 고기압권이 부딪치는 곳을 방안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관찰해 보라.

산을 넘어서 불어 내리는 건조한 열풍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자극을 받더라도 오히려 애착심이 깃든 큰 소리로 ‘브라보’라고 외쳐 보아라.

아예 열대 지방 기압이 머무는 곳으로 아주 기꺼이 즐기면서 여행을 한다고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바로 아프리카 깊숙한 곳으로 가게 된다.

카포 베르데 군도의 봉우리나 서부 아프리카 엘 추프 사막의 지옥처럼 작열하는 더위 한가운데로 들어가기도 하고 리비아 쿠프라의 야자수가 자라는 오아시스에 가보게도 된다.

또는 서북부 아프리카의 커다란 나일 강가에 있는 팀부크투에 까지 가보게 된다. 그곳에서라면 남쪽의 미풍을 타고 미모사숲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고, 원숭이와 하이애나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큰 불꽃이 타오르듯 쏴쏴 소리를 내는 사막의 모래 회오리 소리와 코끼리가 내는 트럼펫 소리도 더불어 듣게 된다.

 

편안한 욕조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누워서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꿈을 꾸어 보라.

머리가 흑단처럼 까만 어린 새를 꿈꾸어 보면 어떨까. 그 새는 ‘마하바박 아쉬라’라고 지저귀는데, 그건 오아시스 샘 옆에서 꿈을 꾸는 사람에게 ‘어서 오세요’ 라고 열 번씩 환영의 인사를 한다고 말이다.

 

북유럽 전선이 짙게 깔릴 때라든지, 사월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질 때, 혹은 오월의 돌개바람이 몰아칠 때는 방안에 틀어박혀 뜨거운 그로크 주나 몸에 좋은 따끈한 적포도주를 마시고 있으면 좋을 거다.

한파가 내습한다고 어떻게 미리 보도할 수 있겠는가? 그린랜드는 여전히 아주 두꺼운 얼음 층으로 덮여 있으며, 빙하가 여전히 둔탁하게 쿵쾅거리며 부서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북쪽의 끝과 북구의 항구 도시 함메르페스트에는 아직도 눈보라가 마치 사자의 포효 같은 소리를 내며 보트니아 만으로 밀어닥치고 있지 않은가.

습기 찬 한파가 몰려간 후, 편도선염이나 독감, 콧물감기에 걸린 사람들, 통풍, 류머티스, 좌골신경통에 걸려 뜨끔뜨끔한 통증을 느낀 사람들을 한 번 찾아보라.

하지만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 희생자들의 수를 꼭 헤아리려고 하지 말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나쁜 바람이 끝내 골골거리며 사라질 때가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한 그루 나무를 심어라

 

사람은 인생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 보라.  이제 그 시기가 되었다고 자신을 설득하라. 그리고 어떤 나무를 심을 수 있을지 신중하게 숙고해 보자.

사과나무를 한 그루 심을까? 사람들이 이미 죽고 이 땅에 묻혀버렸다 하더라도 사과나무는 초봄마다 되풀이해서 빨갛고 하얗게 화사한 빛깔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또는 사과나무를 뿌리째 뽑아 대양을 건너 멀리에까지 옮기더라도 계속 자살 수 있을까?

아니면 보리수나무를 한 그루 심을까? 여름밤에 보리수나무에서는 얼마나 매혹적인 향기가 날까. 연인들의 나지막한 속삭임은 그전보다 얼마나 달콤할까!

참나무 한 그루를 심을까? 참나무는 청딱따구리의 휴식처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보자.

호두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그러나 나중에 소년들이 돌팔매질을 해서 나무를 아프게 해서는 안될 텐데!

너도밤나무새나 피리새가 둥지를 짓도록 나무를 심어볼까? 혹은 아치형 나무 그늘 아래서 눈을 반쯤 감고는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저 행복에 젖은 채,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땅을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는 한 남자를 위해 나무를 심을까?

그렇지 않으면 수년 전 제때에 맞추어, 어린 나뭇가지를 땅에 심었던,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을 칭찬해 마지않는 의미에서 한 그루 나무를 심을까?

 

  1.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년 7월 21일 ~ 1973년 9월 26일)는 독일의 시인으로 프레드리히 슈나크의 동생이다. 시대의 조류에 초연하여 고아한 정적의 경지를 지켰다. 1919년 〈욕망의 노래〉로 문단에 데뷔했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1936년 〈조우자로부터의 소식〉에서 새로운 낭만풍의 시경을 개척하였다. 그 밖에 소설로는 장편 《사랑의 후조》가 있다. – 한글 위키피디아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 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1.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지난 몇 주일, blog을 안 쓰며 사는 것, 그렇게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변화’를 체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요새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화가 아닌 퇴화가 되고 있는 나의 ‘잇몸’들, 며칠 전에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놈’이 없어지고 나는 오랜 만에 엎드려서 잘 수 있는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입 속의 ‘마지막’을 향해서 계속 퇴화할 것이다.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이것은 나에게 작은 공포에 속한다. 구역모임에 의한 쓰라린 기억들도 역시 시간의 도움으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현재의 홀가분함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다. 그들에게 미안한 심정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현재 우리인 것이다.

몇 주일에 걸쳐서 나의 머리 속, 나의 시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 ‘아마도 우리의, 나의 마지막 total computer upgrade’.. 나의 tech era의 석양을 장식할 수도 있는 우리의 computing, computer들,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의 머리가 도는 한 이것은 나의 몫이다. 앞으로 몇 년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computer system, 물론 제일 ‘저렴하고, 알 맞는’ 그런 magic을 나는 찾고 있고 거의 마무리 되고 있다.

R. 스콧 허드 지음, 신현숙 옮김: ‘용서가 어려울 때’, 가볍고 쉽게 보이는 작은 책, 이미 예고 된 대로 아틀란타(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방문하신 ‘바오로딸 수녀회’의 발랄한 수녀님들로부터 직접 ‘현찰’을 주고 산 책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수녀님들로 부터 산 책은 아마도 ‘사상 처음’일 듯해서 그것에서 나는 작은 보람을 느낀다.

원서의 제목은 ‘Forgiveness: A Catholic Approach’ 로 되어있고 원저자의 이름은 R. Scott Hurd 로 나와있다.  Copyright는 2011년의 원저자의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Copyright는 2015년, 최근 1판 10쇄 는 2018년, 그러니까 비교적 근래에 읽혀지는 ‘따끈따끈한’ 책인 듯 하다.

머리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워싱턴대교구의 대주교, 추기경 (Cardinal) Donald Wuerl 이 썼기에, 책은 비록 가볍게 보였어도, 내용은 비교적 신학적으로도  serious, heavyweight의 느낌을 준다.

내가 이 책에 ‘불현듯’ 손이 간 것은 몇 년 전에 겪었던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비롯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두 ‘여자’들로부터 충격적으로 폭력성까지 느낀 일들, 그것도 ‘사랑의 집단, 성당’내에서 겪고 보니 그야말로 ‘망연자실 茫然自失’ 의 참담한 심정이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우리도 ‘보통 사람’이 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수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가 ‘온실’속에서 산 기분까지 들었다.

사건 초기의 충격이 사그라지면서 이제는 다른 문제가 우리를 괴롭혔다. 일단 깊이 남은  (psychological) trauma는 세월이 해결할 듯하지만, 그 ‘두 인간들’을 앞으로 성당 공동체내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제대로 처리를 못하면 필요이상으로 후유증이 오래 갈 듯 보였다.  이 ‘작은 책’을 사서 읽기 전까지 나는 “(1) 이성적인 정의 正義와 심판 (2) 이후 완전히 잊자! “라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나 심판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두 ‘가해자’가 모두 ‘레지오 간부, 단원’들이기에 그들은 분명히 레지오의 선서규율 하에 놓인 상태였고 그것에 따라 심판을 하는 것, 이론적으로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잘잘못을 가린’후에야 의미 있는 화해나 용서가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이런 ‘심판’과정은 레지오 평의회의 ‘겁쟁이 심리’로 무산되었는데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들은 그런 용기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귀찮아서, 무서워서, 소용이 없어서’ 라는 반응, 이것이 현재 레지오의 수준임을 누가 몰랐으랴?

다음 단계, ‘화해와 용서’는 글자를 보기도 무서울 정도로 몇 광년 떨어진 별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건 이후 그 두 ‘가해자’들의 ‘전혀 부끄럼 없는 활보’를 가끔 보면서 가장 실용적인 대안은 ‘그저 잊자’ 라는 것 뿐이었다.

성경에 너무나도 자주 나오는 ‘용서’란 말이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하게’ 느껴질까? 그들이 용서를 청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나름대로 일방적으로? 하!!!  그런데 이 ‘작은 책’에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용서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역시 어렵고도 어려운 주문을 받고 있기에 즐거운 독서는 절대로 아니다.

C. S. Lewis 는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일 뿐이다” 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인 모양이다.  아직도 아주 가끔 불현듯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을 보면 2년이 지나간 지금도 나는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상처받으며 산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고통을 준 상대를 용서하라고 한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얼마나 여러 번 같은 짓을 반복했든, 사과를 하기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다시 만날 사람은 물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고통을 준 당사자를 위해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이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읽으면, 결국 이런 문제는 ‘하느님’ 까지 올라간다. 하느님을 위해서 용서를 하라고..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참, 괴로운 권고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표현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라는 뜻이 아닐까?

 

“용서가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용서하는 사람이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나에게도 이롭다’…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작은 용서’를 한 후 느끼는 ‘치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큰 용서’에는 더 큰 편안함과 치유의 혜택이 있음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분명히 ‘용서는 공평하지 않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더 힘이 드는 것이다. 이 불공평함과 일방적인 자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은 ‘기도’ 밖에, 그것도 ‘끝까지 기도’, 로 귀착이 됨을 어찌 잊으랴? 문제는 어떻게 어떠한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용서하게 해 달라고, 잊어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들이’ 먼저 용서를 청하며 다가온단 말인가?

 

이 책은 성서적, 신앙적, 영성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비교적 깊숙이 분석하고 해결책을 나누고 있지만 결국은 내가 ‘행동’으로 나서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첫 걸음’을 띄는 것, 그것은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날짜가 빠르게도 지나가는 것일까?  놀라운 일도 아닌 것, 새삼 절감한다. 시간이 점점 빨리, 세월이 점점 빨리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하기야 지나간 주가 더 빠르게 간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지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사실 다른 때보다 괴로울 정도로 ‘미리’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다. Ozzie와 함께 Senate가 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너무나 그 녀석과 정이 들었던 사실은 즐겁기도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때가 다가오면 그렇게도 stress를 받는 것일까? 왜? 왜? 결과는 언제나 ‘좋은 것, 즐거운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왜 나는 미리 예측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요새 나는 거의 모든 stress를 주는 것으로부터 벗어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미리 생각했던 것처럼 즐겁지 않은 듯 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심정, 느낌들… 조금은 나도 혼란스럽다. 이런 것들 걱정하면 살던 내가 아니었는데.. 최소한 지나간 5년 정도는?

그제는 연숙의 big event가 끝나서 서로 축하를 해며,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나는 ‘일’들의 ‘부담, 고통’을 기억하며 가벼워지는 어깨를 느끼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지는 않다.

나와 하느님은 어떤 사이인가? 하느님 모르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늦었다. 나는 이제 꽤 깊숙이 이 절대자의 영역에 들어온 듯 한 것이다. 지난 거의 10년 동안 나는 ‘신의 영역’ 으로 한걸음 두 걸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늦었다. 나는 나는… 이제.. ‘신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영역은 물론 그곳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조금 멀고 높은 느낌도 있다.  감각적으로 나와 가깝게 있는 것들로부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현재 아마도 나는 이 ‘새로운 것’을 못 찾고 있어서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신의 영역에 맞갖은 삶을 사느냐 말이다. 어떤 것…어떤 것… 어떤 것…

Tubi 라는 새롭고 괴상한 streaming TV에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foreign language’ 영화를 본다. 제목이 바로 illegal..  이 영화는 Belgium 에 사는 어떤 Russian ‘불법체류자’ 여자의 슬픈 이야기다.어쩌면 나는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도 복잡한 심정이 되는가? 우선 생각나는 것, 역시 역시 나의 우리의 성모님 성모님 밖에 없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가족도 이집트에서 illegal 의 신세가 아니었던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하에서 떨며 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잔발잔의 시대를 연상시키는가? 나는 그들을 위한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법의 정신이 무엇인가? 자비는 어디로 갔는가? 어떻게 ‘서류의 잘못’으로 감옥엘 가는가?

이 영화 거의 기록영화 같이 보이지만.. 하지만 fiction drama 일지도..  밤 새 ‘일어나면 다시 보아야 한다’ 라고 되뇌며, 일어나 다시 본다. 왜 그럴까? 그렇다. 이 illegal은 common criminal이 아닌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사람이야… 기본적 인간의 존중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느낌은 도망가고 싶은 그런 것이지만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극과 극, 천국과 지옥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내가 즐기는 것인가? 좋은 쪽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자비, 사랑과 법, 정의 의 중간 단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잔발잔과 자비에르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그 ‘신부님’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Roswell Nursing center, 비록 review는 별로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service를 주는 곳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Center), 우리는 줄여서 Roswell nursing home, 아니면 그저 Roswell 양로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제 레지오 주회합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곳에 들렸다. 이것은 이번 주에 우리 ‘조’ 에게 배당된 최소한 2 시간의 레지오 활동이기도 했다. 몇 년째 되는 이곳에서의  우리의 레지오 ‘봉사’ 활동은, 보통 몇 분의 ‘장기 체류, 중증 치매 환자’인  형제 자매님들을 뵙고, 의사 소통이 가능한 분과는 얘기를 나누고,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그저 무언의 대화를 하다가 돌아오는 정도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 ‘아래층’ 에 있는 ‘치매환자 병동’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적은 숫자의 치매증 환자를 이제까지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환경적으로 이곳은 큰 병원 같은 ‘시설’의 느낌으로 긴 복도에 무질서하게 방황하거나 심지어 엎드려서 기어 다니는 광경은 비록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갔지만 충격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들의 비교적 어두운 ‘아래 층, 거의 지하’에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것은 분명히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방문회수가 늘어나면서 물론 이런 광경들은 차츰 익숙해지긴 했고, 어떤 때의 광경은 비교적 안정되고 깨끗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떠나서 일단 치매환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각종 혼란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친다. 가벼운 망각증부터 심한 중증 치매환자들,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어떤  ‘봉사’한단 말인가?

 

 

완전히 자기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보아도 ‘실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실감이 되면 무슨 가능한 시늉과 통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매의 ‘진행 정도’에 따라서 어떤 분은 우선 대화가 가능하고, 심한 분들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분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것들이 보일까, 각종 추측을 해 보지만 사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고통중의 환자만 아는 것이다. 가족들도 전혀 모른다고 하니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끔 가족들이 온다고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저 분들이 나의 어머니, 삼촌 같은 분들이었다면… 솔직히 이런 ‘시설’에 놓아두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사치스런’ 생각까지 든다. 그들도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런 곳에 맡기셨을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치매 환자들과 다른 분들 즉,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그래도 대화가 되기에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동의 불편함도 정도가 있어서 ‘말기성 치료 terminal care’ 환자처럼,  나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분들은 정말 이곳이 지옥같이 느껴질 듯하다.  정신은 말짱한데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다시 퇴원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이곳에 머무는 것, 그것은 다른 종류의 고통이요 형벌이 아닌가? 게다가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오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가족들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한 ‘개신교 자매님’도 그런 분이다. 처음 이곳에서 알게 된지 1년도 훨씬 넘는 이 자매님, Parkinson’s 병 환자라 거동이 아주 불편하다. 문제는 이 병이 ‘퇴행성 degenerative’이라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치료방법이 현재로는 없다고 한다. 그 동안은 그런대로 움직이며 단체활동 (bingo나 auction game같은) 도 언어소통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셨는데 이날 보니 아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세 (근육마비)가 점점 중요 장기들에 영향을 미치는 듯 싶었다.  불길한 느낌에 오래 가실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설을 나왔다.

이곳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하는 ‘당연하지만 방정맞은’ 그런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나이를 의식하고, 세월의 빠름을 감안하면 거의 실감이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재빨리 ‘내일 일은 내일이 알아서 한다’라는 말씀을 상기하며 부지런히 차를 Roswell 에서 Marietta쪽으로, 집으로 집으로..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예수회 창시자 성 이냐시오

예수회, S.J.  성 로욜라의 이냐시오,  S.J…. Society of Jesus. 우리에게 비교적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 ‘가톨릭’ 단체는 과연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것이야 말로 우문현답 愚問賢答 을 연상하게 하는 질문이지만 실제로 어떤 때는 나도 확실하지 않다. ‘예수회’니까 물론 절대적, 궁극적인 목표는 ‘역사적, 현존’ 예수님일 것이지만 과연 그것을 지향하는 신학적인 철학, 방법은 무엇인가? Wikipedia같은 곳을 보면 ‘공식적인 사실’들이 수 없이 많이 열거되어 있고, 모두 사실적, 객관적, 역사적인 것들이라 왈가왈부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머리로, 가슴으로, 피부로’ 받는 그 느낌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객체’들에 의해서 좌우 될 것이다. 그 객체는 어떤 것이며 누구인가?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예수회 사제, 신부, 수도자, 학교’ 같은 것이 아닌가?  내가 학교 같은 단체는 접할 기회는 없지만 사제들은 바로 앞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나에게는 예수회의 전부인 것이다.

나의 두 본당 중 영어권 본당의 사제는 오래 전에 결혼을 한 ‘동방교회’ 출신으로 로마교회로 온 신부로 그야말로 ‘교구신부’다. 예수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모국어 ‘도라빌’ 본당의 사제는 언제부터인가 교구사제에서 예수회 사제로 바뀌어서 이제는 예수회란 말이 빠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예수회’를 느끼며 사는 것이다.

우리들, 평신도들에게 이런 것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멀리서 보면 큰 차이는 없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차이를 느낀다. 예수회 사제, 특히 본당신부는 전통적으로 ‘교구 사목’이 그들의 특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차이가 없이 느껴지니까 별 문제는 없다. 오히려 영성적인 측면으로 보면 더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냐시오의 영성을 사목에 주안점으로 삼으면 평신도들은 독특한 혜택을 받지 않을까.  그래서 교구 사목상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나는 절대적으로 신학전문가가 아니기에 섣불리 단언은 못하지만 내가 접하는 ‘미디어’ (fake가 아닌 전통적 미디어)를 통한 예수회, 그것도 특히 미국(북미주) 예수회는 더욱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야당과 여당’을 이루는 정치구도와 흡사한가. 한마디로 예수회는 미국의 liberal, democratic, progressive한 것이라면 거의 틀림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닐 듯하다. 모국도 아마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국의 가톨릭 매체들을 살펴보면 이 ‘양극화’가 뚜렷하다. 특히 ‘또라이’ 트럼프가 들어오며 이 현상은 숨길 수가 없는 듯하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예수회 프란치스코교황’의 ‘자비’ 선포로 인한 ‘전통 교리의 후퇴’를 우려하는 ‘극단적인 비난’인데,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가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교리, 교의 해도 세상과 세속의 ‘진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예수회의 주장일 듯하다.

쉽게 말해서 ‘자비와 정의, 원칙’의 대결인 셈인데, 이들 신앙인들에게는 ‘중도’라는 ‘타협’은 없는 것인가?  제일 심각한 것이 Homosexual 들을 ‘자비’로 받아들이자는 문제다.  또한 Abortion(낙태)에 대한 자세도 그 중에 하나다. 이것도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닌 대한민국만이 가질 수 있는 ‘사상논쟁’을 빼놓을 수 없다. 예수회 신부들은 여론적으로 보아도 ‘진보적’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빨갱이’라는 평을 쉽게 받는다. ‘정구사’라는 독특한 약어의 느낌도 다를 것 없이 ‘빨갱이’라고 매도된다. 이것도 타협점이 없는 것일까? 한마디로 주위를 살펴보면 ‘또라이 트럼프’처럼 서로 잇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만 했지 절대로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나의 생각은 어떤가? 아무래도 나이 탓, 나의 가족적 역사로 보아서 예수회 같이 무조건 자비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유 있고, 정의가 밑받침이 되는 자비와 사랑..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은 없는 것 아닐까?

올들어 처음 피어나는 수선화 꽃망울

 

¶  돌아온 수선화여, 주일 전부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 올해 처음으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미사 15분 drive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은 어떤 모습의 봄 소식을 찾을 수 있나 차창밖에 온통 신경을 쓴다. 이것은 우리 같은 ‘젊은 노인’ 부부에게는 논쟁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대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꽃 망울이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수선화가 작년에 하늘로 간 Tobey1의 무덤 주위에서 그 녀석의 영혼을 감싸듯이 정렬을 하고 있음을 매일 본다.  추위를 견디는 수선화의 안쓰러운 모습과 나의 손에 머리를 안겨 마지막 숨을 쉬던 그 녀석의 얼굴이 겹치며 나를 순간적으로 우울하게 한다. 역시 봄과는 거리가 있는 싸늘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의 겨울과 봄의 사이는 유난스럽게 이상한 것이, 겨울이 정말 춥지를 않았다. 영하로 내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덕분에 에너지는 많이 절약했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올 겨울 ‘눈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다.  대신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싸늘한 비’의 연속을 겪고 있다.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초목들은 땅 속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을 듯 하다.

 

기다리던 눈 대신 싸늘하게 내리는 줄기찬 비

 

거의 ‘악몽’ 처럼 느껴졌던 작년 후반기 6개월의, ‘구역’에 대한 기억,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2019년의 봄은 우리에게 조금 더 다른 의미를 주는 기회를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청순한 수선화여, 피어있는 동안 우리에게 모든 괴로웠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 가게 해주길..

 

¶  수선화의 성모님:  모처럼, 나와 우리의 ‘등대’, ‘자비의 모후’  주회합 성모님 제대의 주위가 ‘꽉 찬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몇 개월간 생존의 위기를 거듭했던 ‘자비의 모후’,  몇 주 전에는 결국  ‘파산선고’ 까지 우려했지만 역시 성모님의 도움이신가.. 최소한의 간부구성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수선화의 성모님,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소서,,

 

게다가 신단원 모집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비신자 자매님이 부활 세례직후에 입단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듯하니, 어찌 수선화의 축복을 받는 성모님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독물 毒物 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 우리 ‘자비의 모후’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올 봄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1. 작년 6월에 14살 천수를 다하고 떠난 나의 ‘영혼의 벗’ 개 Dachshund 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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