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al Weeken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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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번 주말이 Memorial weekend, 별로 큰 느낌 없이 ‘당한’, 기분이다. 이런 ‘휴일 주말’이 예전과 같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기야 full-retirement에서 특별한 휴일이 따로 있을까? 매일 매일이 휴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남들이 놀 때 일을 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 중의 자유.. 하지만 ‘절제 moderation와 자기수련 self-discipline’이 빠지기 시작하면 이 자유는 완전한 ‘지옥’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만간 早晩間 변한다는 사실, 뼈저린 체험으로 안다. 나는 값 비싼 대가를 이미 지불했기에, 이제는 문제가 없다.

갑자기 ‘여름 같은 밤’이 들이닥친 지난 밤, 오랜만에 아.. 드디어 여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습기가 잔뜩 섞인 바람 한 점 없는 안 보이는 air, 피부에서 땀을 날려보낼 기운이 떨어진 듯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공기가 움직여야 땀을 말리고, 이런 바람이 없으면 강제로 바람을 내게 해야 한다. fan 그것도 electric fan, 바로 ‘선풍기’가 필요한 바로 그때가 온 것이다. 밖으로부터 들리는 가라앉은 잔잔한 소음의 a/c compressor소리보다는 ‘앵앵’거리며 귀를 건드리는 귀여운 fan의 소리를 더 원한다. 창문을 열고 바닥에 누울 수 있다는 건 이맘때부터는 ‘특권’에 속한다. 더불어 벼락을 동반한 시원한 오후의 소나기나 소리 없이 내리는 굵은 물방울의 비.. 이것들이 모두 여름의 dreaming of white.. 인 셈이다.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매일 미사에도 조금 줄어든 사람들을 보며.. 아하.. 휴일에 여행들을 갔구나.. 그래서 더욱 holiday 기분이 든다. 우리는 집을 떠난 지 참 오래된 느낌.. 여행 예찬론을 귀따갑게 듣지만, 우리와는 그렇게 인연이 없나 보다. 여행을 간 듯이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 둘의 지론 持論 이다. 인생 자체가 ‘서사시’ 적인 여행이 아닐까? 새로니는 이제 학교가 방학이 되어서 완전히 몇 달 동안 자유인이 되고, 일 주일 후면 계획을 했던 ‘유럽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고, 덕분에 pet dog Ozzie 는우리 집에서 당분간 살게 된다. 몇 주일 동안 같이 살면 이 녀석 어떻게 변할까 주목이 된다. 항상 바쁜 나라니는 이번 짧은 주말, 친구와 Panama City Beach로 떠났다. 그곳은 우리 가족 오래 전 regular summer place였는데.. 그곳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backyard에  ‘연숙이-오솔길’이 새로 생긴, 우리의 ‘피곤하고 낡은 집, depression-era shack’이 최고의 summer place 다.

 

입추 立秋.. really?

‘주후 主後’, 2015년 8월 8일.. 슬그머니 8월로 접어들었던 것 느끼며 곧바로 8월 8월이 된 느낌.. 요사이의 일주일이 그렇게 하루처럼 느껴질 때가 점점 잦아지고 있음은 ‘시간의 상대성’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곤 한다. 소립자 sub-atomic particles 들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절대시간 측정은 아무래도 의식과 영혼을 지닌 인간에게는 100% 신뢰성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의식과 영혼은 결코 물질만이 아닌 것이기에 이런 느낌과 기계적인 측정치 사이에 괴리 乖離 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의식과 영혼이 다르기에 그들만의 시계에 의지하면 인간이 모인 사회적인 조직상에 커다란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모든 인간을 같은 시간에 묶어 놓는 인위적인 장치인 공통 시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만약에 인간이 혼자 살면 이런 ‘절대적 시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태양이 작열하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억압적인 습도 oppressive humidity’가 괴롭히는 때에 오늘이 갑자기 ‘입추’라는 말이 너무도 우습게도 느껴진다. ‘가을이 섰다고..’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오랜 세월을 산 후에야 조금씩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 ‘가을이 서서히 일어서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올해 내가 유난히도 고추와 피부를 바짝 말리는 가을바람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까워오는 70이란 숫자 때문일까..

first summer harvest.. tomatoes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은근히 기다리던 올 여름 첫 vegetable harvest 가 우리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먹음직한 도마도 첫 수확.. 언제부터 이것을 따 먹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작년의 수확 tomatoes ‘도마도’는 색깔도 그렇지만 그 맛이 정말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연숙이 그렇게 고생하며 가꾸던 것.. 옆에서 보기만 한 정도였고 가끔 물을 주는 정도로 나의 관심사의 저편에 있었지만 그 때 그것을 보고, 먹고 한 이후에 조금 나의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년의 ‘알짜 수확’은 당시 친지들이 모일 때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아주 멋진 Italian 요리에 쓰이기도 했는데 모두들 그 맛에 감탄을 하였다. 그 정도로 supermarket에서 ‘강제로 만든’ 것과 차이가 나니까.. 태고 적, supermarket이 생기기 전,  그 원색으로 울긋불긋했던 ‘벌레 먹기도 한’ 과일, 야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쩌다가 요새의 과일 야채들이 그렇게 커지고 맛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욕심..’ 자연을 거역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강제로 익히고, 강제로 사육하고, 강제로 주사를 놓고’ 벼라 별 짓을 다하는 인간들 탓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야채,과일’을 더 많이 수확하는 생각에 관심이 조금 가기도 한다.

 

먼 곳에 보이는 Yonsook's 'victory' edible garden

먼 곳에 보이는 연숙의  ‘victory’ edible garden

 

소까나.. 12월인가..

소까나~ 소까 소까 そうかそうか.. 참 이렇게 일본말이 다정하게 느껴지니.. 이럴 때, 그래, 그래 보다 소까 소까도 잘 어울린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일본을 조금이라도 알고 죽자’ 라는 이상한 느낌에 끌려서 이제까지 거의 7년이 지나고 있다. 비록 몇 년 전부터 조금씩 slow-down이 되고 있고 새로 나오는 드라마 video가 없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동안 쌓였던 그 수많은 어떤 것은 classic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의 좋은 이야기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짧은 단어 정도는 알아 듣지만 그 이상은 아마도 무리 무리.. 조직적으로 배울 의욕과 생각도 사실은 없다. 이 정도면 나의 욕구를 채웠다고 생각하니까.. 최소한 이질감과 거부감 없이 그들의 ‘언동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래.. 12월이 벌써 6일로 접어든다.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다음에 눈을 깜빡 뜨고 달력을 보면 분명히 중순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정말 정말 어떨 때는 한 달이 오래 전의 하루와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60대에서 60마일로 달린다는 ‘병신 같은 표현’이 그렇게 적절한 듯 느껴진다니까.. 조금은 슬프다. 내가 70대를 산다면 10마일이 더 빨리.. 그러니까 한 달이 아마도 8시간 정도의 느낌으로? 와.. 싫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순리와 진리를..

조그만 폭풍이 지난 듯한 느낌으로 며칠째 시간을 보낸다. 그 폭풍이란 물론 우리 부부가 ‘거세게 개입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였다. 성탄의 기분을 내기에는 너무나 빠른 12월 1일에 우리가 제일 먼저 성탄기분의 선두주자인 듯 tape을 끊은 것이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정말 이를 악물고 악물고 ‘즐겁게 준비하고 즐겁게 치르자’ 라는 결심을 하고 지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비교적 stress를 잘 조종하며 보냈다. 덕분에 얼굴로만 알던 단원들과 지척에서 어울릴 수도 있었고 특히 남자 단원들이 더 값지게 다가왔다. 전 요셉, 김 빠찌피코, 한 그레고리오 형제 같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다 작년부터 알게 된 박 대건 안드레아 형제까지 5명이 친목회 lower stage에 서게 된 ‘큰 일’을 한 것이다. 나도 노력했지만 연숙의 pushy함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sing-along을 잘 주도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선례를 남겼고, 새롭게 서로들이 만났으니 말이다. 난타 program도 마찬가지.. 우리부부 정말 열심히 참가하고 즐겼다. 거의 2달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으니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해도..

오월이여, 안녕!

¶  오월이여 안녕!   한 달이 온통 ‘가정, 가족, 졸업식, 어린이, 어머니, 성모님‘ 같은 정말 듣기만 해도 포근한 것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어머님께서 9년 전에 선종하셨던 달이기도 해서 가족과 삶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던 그런 한 달이기도 했다.

비록 거의 기정사실화 된 기후변동(a.k.a global warming)으로 예전의 6월 같은 날씨들이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요새는 ‘날씨’에 둔감해 지려고 거의 ‘일부러’ 날씨에 관한 작은 뉴스는 피하고 있고, 그것이 ‘확실히’ 심리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함을 느낀다. 더우면 어떻게 추우면 어떠랴.. 참거나, 잊고 살면 되는 것을.. 또한 작년에 비하면 날씨에 관한 big news는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긴 했다. 작년의 그 ‘monster‘ tornado등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더욱 그렇다.

 

¶   Robin Gibb  5월 20일에, 오래 전 60/70시절 우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Bee Gees [BGs: Brothers of Gibbs] 형제의 중간인, Robin Gibb이 암 투병 중 합병증으로 결국은 62세란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한 것이다. 그 그룹의 세 형제 말고도 아주 오래 전에 네 번째, ‘막내 동생’ Andy는 이미 (여자문제로)사망을 했고, 2000년대 초에는 세 번째 Maurice도 병으로 사망.. 이제 맏형 Barry만 남은 것이다.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과 같은 ‘예술인’들은 영원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것들이 있어서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 그들이 남긴 것 중에는 60년대의 것이 ‘진짜’의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70년대의 ‘disco 외도’는 잊고 싶은 것들 뿐이다. 최근 몇 주간 지저분한 소식들 투성이였던 모든 news (Internet, TV etc)를 피하며 지내는 바람이 그가 운명한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또한 우리 세대의 인물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가고 있음을 어찌 모르랴.

 

 
Run To MeBee Gees – 1972

 

1984 model Kenmore washer¶  공돌이의 오기惡氣  얼마 전에 우리 집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세탁기(electric washer)가 말썽을 부렸다. 빨래를 할 때마다 ‘지독히도’ 요동을 치면서 그동안 아주 조금씩 새던 물이 이제는 ‘콸콸’ 샌 것이다. 공구들을 손에서 놓고 산 것이 꽤 오래 되어서 (거의 1년) 사실 이런 ‘사고’는 너무나 귀찮게 느껴졌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뿐이다. (1) 나보다 ‘더 바보 같은’ handyman을 불러서 고치게 하던가, (2)고칠 수 없으면 새것을 사던가, 아니면 (3) 내가 팔을 걷어 붙이던가. 1번 선택은 나에게는 거의 절대로 no no인 것이다. 대부분이 ‘엉터리, 사기꾼’ 같은 놈들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잘 모르는 바보들 뿐이기 때문이다. 2번의 선택도 가급적 끝까지 피하고 싶은 것이다. 돈을 쓰는 것 이외에, 멀쩡할 수도 있는 세탁기를 분명히 내다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choice는 역시 내가 팔을 걷고 muscle과 brain을 써야 하는 수 밖에 없다.

Washer power-train still in good orders우리의 washer는 1984년에 Columbus, Ohio에서 학생시절에 Sears에서 산 Kenmore classic model인데, 한마디로 완전한 ‘탱크’와 같이 우직하게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고장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모양이고, 사실 거의 30년 가깝게 딱 한번 timer/controller 만 교체를 한 것으로 나머지 기계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이제 정까지 들게 된 우리 집의 ‘값싼 가보’가 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비장한 각오로 이것을 살려 보기로 하고 ‘공돌이의 오기’로 분해를 해서 살펴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추측이 맞았다. 크게 ‘망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나사 같은 것이 모조리 풀어져서 물이 샌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Washing cycle중에서 가끔 balance가 맞지 않으면 격하게 요동을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그 fastener들이 모조리 풀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30년에 가까운 이 세탁기는 안락사 직전에 다시 한번 생명을 연장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딱 한가지다. 이것이 심하게 vibration을 못하게 ‘꼭 잡아주는’ 장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되면 앞으로 최소한 몇 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참, Sears Kenmore people들, 어쩌면 그 당시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이것이야말로 Made in U.S.A의 표본이다.

 

¶   Vice Presidency  미국의 부통령 직, 어떤 자리일까? 이것의 정의와 의미를 따지자면 책 몇 권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다. 그만큼 독특한 위치이기 때문일까? 역사적으로도 그것이 증명이 된다.

Robert Caro
Robert Caro

얼마 전에 Time 잡지에 Robert Caro라는 LBJ(Lyndon B Johnson) biographer(전기작가)의 말이 등장했다. 그는 일생을 1960년대 미국 정계를 주름잡았던 부통령, 대통령 Lyndon B. Johnson의 연구로 보낸 인물이다.  ‘사고’1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고, 다시 한번 선거로 한번 대통령을 하고 스스로 물러나 난 전설적인 Johnson 대통령, 비록 월남전에서 고전했지만, 국내 정치는 빛나는 업적이 수도 없이 많은 인물이다.

1965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그를 기억한다. 수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묵묵하게 하나하나 성과에 성과를 쌓고 조용히 물러난 것, 참 멋지다. 그 인간상을 연구했던 Robert Caro의 한마디가 참 인상적이다. 지난번 선거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John McCain이 그의 running mate로 완전한 ‘들러리 간판’격이었던 Sarah Palin이란 ‘바보 같은 여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무책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나도 절대로 동감이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것은 McCain자신은 ‘아직도’ 그 선택이 자기 일생에서 가장 ‘멋지고, 신중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radar에서 McCain이란 인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1. 1962년 달라스에서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3월의 마지막 날에

¶  어느덧 삼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시간과 세월은 흐르는 것, 어찌 이날이 오지 않으리.. 시적인 감상에 젖는다. 3월이란 통상적인 기억과 조금 다른 ‘너무나 빨리 온 봄’ 같은 날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듦으로써 분명히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 매섭게 추운 것 보다는 은근하게 포근한 날씨가 점점 좋아진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적당히 포근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창문을 열어 놓을 정도면 된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꽃나무들이 놀라서 지독하게 꽃가루를 내 뿜는 바람에 한때 비상이었지만, 그런대로 알맞게 촉촉한 봄비로 그것들을 진정해 주곤 했던 3월이었다.

별로 크게, 보이게 한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예년과 분명히 달랐던 것은 사순절 동안 거의 매일같이 ‘매일 미사’에 연숙과 둘이서 갔었다는 사실.. 나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아침 9시의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우리의 미국본당 매일 미사를 꼬박 (레지오 화요일을 빼고) 갔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록, 흥미롭기까지 하다.

우리 본당이 비록 가까운 위치에 있다지만, 그래도 매일 8시 반에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사실 조그만 기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것도 ‘never say never‘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시간의 regular들은 거의 미국 (분명히 Irish처럼 보이는) 파란 눈의 아줌마,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같은 부부들도 있고, 가끔 ‘젊은 축’도 보인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그들 중의 한 그룹은 열심히 소리 높이 묵주기도를 하는데, 물론 영어이기 때문이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다 이해를 하며 듣는다.

그들이 레지오 단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부분 ‘열성 신자’들임에는 틀림이 없고, 아마도 우리 본당의 요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일 듯 싶다. 그곳에서 의외로 우리의 다른 본당인 아틀란타순교자성당 우리구역(마리에타 2구역)의 구역장 wife가 빠지지 않고 나와서 보곤 하는데, 글쎄.. 조금은 의외로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1.

이렇게 아침마다 매일 미사를 가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우선 매일 영성체(성체를 모심) 하는 것, ‘살아있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만난다는 것.. 우리 부부가 ‘매일 아침’ 같이 외출을 한다는 것.. 사실은 모두 좋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조금 ‘노력’을 하면 매일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순절 뿐이 아니고) 참 세상은 의외로움의 연속이고 놀라운 것, 찾으려면 이렇게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2012년 3월을 보내며 새삼스레 느낀다.

 

¶  오늘 New York Times2의 한 기사, 어떤 ‘잘 알려진’ 사람의 자살에 관한 것이 있었다. 제목이 Love Story여서, 자살과 love와의 관계가 궁금해서 읽었다. 얼마 전에 New York Times의 columnist David Brooks3 가 그의 column에서 ‘치매(망각증)의 사회적 파장’ 에 대해서 독자들의 의견을 구했고, 많은 응답이 왔는데, 그 중에 오늘 ‘자살한 유명인사’의 ‘꽤 긴 글’ 도 있었다.

그는 그의 글에서 ‘꽤 길게 그의 자랑스런 집안 내력’ 을 언급하고, 현재 그의 사랑하는 wife의 오랜 치매 간병에 대해서 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조금 길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오랜 기간의 간병에 대해 자신이 있음을 나타냈다고 했다. 그가 갑자기 총으로 자살을 한 것이고 그의 ‘불쌍한 치매환자’인 wife도 죽었다고 했는데, 동반 자살인지는 100%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그런 case가 아닐까.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의견은 모두 달랐다. 자살한 것이 ‘너무 쉬운’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혼동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것은 나의 신앙 가톨릭 교리를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 하는 문제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교리는 분명히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렇게 안 느껴도 할 수가 없다. 나의 생명도 ‘거저 받았기에’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자살을 했고, 사랑하는 wife까지 죽였어야 했는지 그 고통과 번민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자살이 정답은 아닌 듯 싶다. 아니 정답이 아니다. 그런 처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답을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니까.

 

¶  집 부근을 산책하며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본다. 이것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전혀 모르던 꽃나무들을 열심히 구박을 받아가며 연숙에게 물어 외우곤 하지만 금새 잊는다. 그러기를 몇 해, 이제는 조금은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당시 한때 ‘화훼학‘에 몰두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본격적인 삶의 굴레 속에서 꽃과 나무들은 완전히 잊고 살았다.

내가 사는 이곳의 꽃 나무들이 고국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고, 지형도 서울부근의 구릉지대 (piedmont)를 연상케 하는 점도 많이 있다. 땅과 흙의 색깔도 역시 비슷하다고 할까.. 봄을 알리는 첫 신호는 역시 이곳에 많은 ‘값싼’ Bradford Pear 꽃나무일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꽃나무가 바로 이것이고 제일 먼저, 아마도 3월 초에서 중순까지, 만발을 한다. 이것이 지면 곧바로 전설적인 Dogwood tree가 피기 시작한다. 이 Dogwood의 꽃 중에 많은 것이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부활절을 연상케 하는 전설이 많이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이곳 Southeastern 지역의 특산물일 정도로 많이 있고, 이곳 아틀란타에는 4월에 숫제 Dogwood Festival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Washington DC지역의 Cherry Blossom(벗 꽃) 에 맞먹는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3월이 지나가는 이즈음에 이런 꽃나무와 더불어 진달래, 개나리, 수선화, 목련.. 정말 찬란한 색들이 온통 이곳을 덮는데, 한가지 문제는.. 역시 하늘에 가득한 꽃가루 ‘공해’ 인데, 이것도 알맞은 비가 내림으로서 적당히 조절이 되는 것을 보면 참 자연의 ‘순리’를 느낄 수 있다.

 

Saybrook Spring 2012

아틀란타의 봄 2012, white dogwood, pink azalea

 

  1. 우리 미국 본당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2. 오늘까지는 한 달에 20개의 기사가 무료였고, 내일 부터는 5개의 기사만 무료.. 흠.. 이것도 이제부터는 돈을 주고 보아야 하나?
  3. 그는 비교적 신사적인 moderate conservative에 속한다.

Summer Time

¶  Daylight Saving Time  이곳에 살면 일년이 두 번씩 조금 귀찮은 날을 거쳐야 한다. 봄과 가을에 한번씩, 시계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날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시절에 한국에도 그것이 있었고, 그때의 이름은 Summer Time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봄,여름,가을에 아침보다 저녁시간을 조금이라도 햇빛으로 밝게 쓰자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기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설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선 오래 전 그것이 없어졌지만 미국과 유럽은 줄기차게 이것을 계속하고 있는데, 사실 귀찮기 말할 수가 없다.

집안에 시계가 이제는 10개1가 넘고 어떤 것들은 digital이라 바꾸는 방법도 다양하다. 다행히 Internet과 연결된 computer나 phone network에 연결된 cellular phone같은 것은 시간이 자동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이것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한번 시계 바꾸는 것을 잊고 (이것을 잊기가 참 힘들지만) 아침 강의를 갔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한 시간 늦게 강의실에 간 것이었다.

시간이 바뀐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강의실을 들어가려니, 낯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것도 잠깐이었지만 이유를 알고 나서 더 당황을 했다. 비록 예정된 시험은 없었지만, 누가 알겠는가.. 가끔 pop quiz라고 해서 예정에 없던 시험도 보곤 했으니까, 그것을 놓쳤으면 낭패가 아닌가? 그 당시 나는 미친 듯 ‘공부에 몰두2를 하던 시절이어서 뉴스 매체 (radio, TV etc)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던 때여서 summer time이 시작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기억에 ‘판각’이 되어서 그 이후에는 봄에 한 시간을 앞으로 바꾸냐, 뒤로 바꾸냐 하는 아리송한 의문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때가 봄이었고, 9시 강의시간이 10시가 되었으니까 한 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9시가 10시가 된 것이 빨라졌다고 하는 이것부터 황당한 것이 아닐까?)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책¶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3  몇 주전에 연숙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소속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저자는 예수회 신부이며 서강대 신학 대 교수(신약)인 송봉모 신부님이고 그 책의 제목이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이다.

이 송신부님은 신부로서는 아주 많은 책을 저술한 것과, 활발한 강론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 나도 이분의 강론을 audio tape으로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박학다식한 것은 전적으로 인정을 했지만, 무언가 나하고는 ‘주파수나 파장(chemistry4)’이 맞지 않는 것을 느끼고 그 이후로 더 이상 듣거나 읽지 않았다. 그 때 나의 피상적인 느낌이 ‘너무도 잘난 체‘ (김용옥5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죄송합니다) 한다는 조금은 나의 과격한 반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신앙적으로 유치하고, 가슴을 넓게 열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지난 성탄 season에 송 신부님이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오셔서 며칠간 강론을 하셨는데, 남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가서 들었지만, 나는 예전에 느낀, 그 ‘별로 였던 첫 인상’ 때문이었을까, 기회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분의 비교적 신간 (2010년 판) 저서가 가까이 온 것이었다. 송신부님의 저서라고 해서 우선은 읽지 않다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 것이 시작이었다. 읽기 쉬운 글자체와 문단 배치 같은 책의 외관상 구성 같은 것이 도움이 되었고, 내용도 나에게 비교적 거부감 느끼지 않는 것들이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송신부님의 책한 권을 전부(cover-to-cover) 읽게 되는 첫 case가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정독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manual typing임을 안 이상, 이것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니까, Reading-by-Typing인 것이다. 이것을 읽는 며칠 동안에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미움과 용서가 주제인 만큼, 나의 잠재의식 밑바닥에 있던 어떤 ‘원수’를 꿈에서 만난 것이다. 이곳의 한 직장 (Scientific-Atlanta6, a Cisco company)의 나의 악질 boss, Blake Causey7란 놈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 두고두고 용서 못할 놈 제일인자가 되었는데, 그 놈이 꿈속에서 ‘너무나 친절하고, 인정 있는 따뜻한 인간으로’ 나를 반긴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잊고 싶은 놈이었는데, 어쩌자고 다시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역시 이 인간도 송 신부님의 책이 말하듯이 ‘나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할 인간임을 느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1. 벽시계, 손목시계, 전화시계, cooking ware etc
  2.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다.
  3. 2010년 서울 바오로딸 발행 송봉모 지음, 1판 6쇄
  4. 영어권에서는 무언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화학적’으로 생각한다.
  5. 도올,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
  6. 아틀란타에 있는, cable TV set-top box 만드는 큰 회사
  7. 악명 높은 South Carolina의 사립 사관학교 출신 엔지니어, 덜 성숙한 외골수 공명심의 화신

송년, 찢어지는듯한 외로움..

송년, 2011년.. 결국은 왔다. 결국은.. 이제부터는 내일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려고 하지만, 조금 더 확대를 해서 내년을 못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2011년이 나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은근히 2012년을 의식도 하며 살았다.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은근히 의식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이것은 찢어지는듯한 외로움이다. 그렇게 외롭게 느껴진다. 곁에 연숙과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소용이 없다. 나에게 엄마와 누나가 옆에 없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정말 광활한 이 우주공간에 외톨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나는 더 성숙하지 못할까? 엄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러니 내가 죽기 전에는 다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보고 싶다.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줄 만한 사람은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나는.. 있어도 볼 수가 없다. 어찌해야 할까? 억지로라도, 모든 것 다 잊고, 다 포기하고 고향에 간다 해도 나의 꿈의 고향이 이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나는 정말 슬프기만 하다. 내가 상상하는 고향과 친구들은 사실 내가 쓴 소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아마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외롭다. 나는 혼자다. 나를 아는 사람은 이제 세월의 횡포로, 거리의 횡포로 다 피안의 세계로, 나의 상상의 세계로 다 사라진 것이다. 이런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이런 고통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아무도 이런 것에는 나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을 나는 안다. 내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로움, 과연 언제부터 내가 씨를 뿌렸을 까. 내가 무엇을 크게 잘 못하며 살았을까? 그렇게 내가 잘못 했을까..

모든 것이 다 나로부터 사라졌다. 나는 친구가 이제 단 한 명도 없다. 친척도 다 사라졌다. 가까운 누나도 나를 모른다. 아니 그곳에 갈 수도 없다. 아니 간다 해도 그곳이 이미 내가 그리는 고향이 아닐 수도 있다. 아~~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동짓달 이레

동짓달..이란 말, 참 오랜만에 써본다. 동짓달 하면 팥죽생각이 나야겠지만 나는 그것 보다 먼저, 국민학교시절 아마도 국어 교과서의 이순신장군 이야기가 생각나곤 한다. 참, 나도 못 말리는 인간인가, 어찌 그것까지 옛 생각과 연관을 시키고 ‘지랄’일까? 그 교과서, 이순신 장군이 동짓달에 거북선을 몰고..가는 그런 글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음력의 동짓달이었을 것이니까 사실은 양력으로 정월일 것이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 거북선을 몰았단 말인가.. 참으로 놀랍다. 좌우지간 지금은 동짓달 이레, 7일이다. 요새의 날씨는 거의 규칙적으로 삼한사온을 지키고 있다. 며칠 따뜻하던 흐리고 비가 오던 날씨가 차가운 비로 서서히 변하고, 급기야 싸늘한 바람이 부는 그야말로 동짓달 기분을 내게 한다. 분명히 나는 이런 날씨를 ‘사랑’하는 것이다.

요새는 조심스럽게 ‘평화로운 집’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다. 이것이 평화라면 아주 오랜만에 우리 부부가 서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고민’을 안고, 시한 폭탄 같은 짐을 지고 늙음과 죽음을 향하는 우리 부부라고 할 수도 있으련만, 그런 것이 아주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듯 살 수 있는 지혜의 은사가 우리 부부에게 선물이 된 진도.. 물론 연숙이 변하거나 변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분명히 내가 변하고 있어서 이런 평화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조금 아까워 진다. 특히 지난 10년이 정말 정말 아쉽고, 아깝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라도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이런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느냐에 하는 것인데, 느낌에, 조금 자신이 있다고 느껴진다.

지난 7월 초 온수기를 새로 갈면서 완전히 손을 놓았던 ‘집안 일’들.. 산더미 같이 쌓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 내일 하며 미루었던 것이 순식간에 5개월이 지나간다. 이제의 목표는 해가 가기 전까지 조금은 ‘움직여’ 놓아야 한다는 것이 되었다. 이거이야 말로 시작이 반인 그런 일들이다. 한번 손을 잡으면 많은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자신을 한다. 그것 말고도 계속 미루는 것, 나의 사랑하는 ‘tech note’에 넣을 수 있는 나만의 tech projects들.. webbot, Arduino, php, WordPress PlugIns.. Sebald’s novels, 일본어, Medjugorje, Social Network Bible..참 많이도 나를 기다린다. 차분히 앉아서 다 읽고, 만들고 싶다. 그것은 항상 나를 흥분하고 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니까..

벌써, 하지?

내일이 하지냐? 하지.. 하지.. 해방 후 미군 군정 사령관의 이름이 하지 Hodge 였지.. 물론 영어 발음은 ‘핫지’에 가까웠지만. 하지면 공식적인 여름의 시작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편리한 생각에 불과하고 사실은 이날부터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조금씩 짧아진다는 뜻이 더 맞다. 그렇게 새벽이 빨리 밝고, 저녁 때까지 밝던 것.. 이것도 조금씩 후퇴를 하게 되나? 6월, 하면 재작년에 준수녀석이 왔을 때, 신경질이 나던 그때가 생생하고, 작년의 Washington DC trip이 연상된다. 덥긴 더워도 그래도 7월, 8월을 생각해서 ‘무덥다’고 말하긴 이르다. 올해는 그것이 조금 더 일찍 5월 중순에 찾아왔지만.

6월에는 굵직한 ‘신심행사’가 두 개나 있다. 레지오 봉쇄피정은 이미 ‘성공리’에 끝을 냈고 이번 주말 6월25일에는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듣기만’ 했던 이곳 대교구의 연례 성체대회가 열린다. 이것도 올해는 ‘하느님의 은총’ 으로 가게 되었다. 이것에 우리가 간다는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무언가 우리를 ‘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고, 그럴 것이다. 이런 ‘가까이’ 온 것을 놓치면 다시 못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it’s now or never.. 라고 나 할까.. 그럴지 모른다. 우리, 나의 근처에 오는 절대자의 손길은 이제 멀리하지 말고 그저 무조건 잡아보자.

그제 일요일은 아버지 날이었다. 잊고 사는 날이지만 그 날이 되면 잊을 수가 없다. 성당에서도 강복을 받고, 그래도 아버지의 의미를 한번은 일깨워 준다. 하지만 우리 집은, 조금 실망을 했다. 선물을 바래서가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 나는 그래도 전화 한 통이면 정말 족하고 그것도 더 좋다. 이제까지는 아이들의 ‘극성’에 놀아났고, 그것은 물론 고맙지만 그것이 내가 바란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들이 원한 것인 것을 그들은 모르는 듯 하다. 그날 하루는 ‘나의 식’ 으로 축하를 해 주면 안 될까

 

adieu 2010.. see you in history

Year 2010, 이천십 년, 이공일공 년… 밀레니엄, Y2K, 21세기 어쩌구 저쩌구..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것도 10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십진법의 ‘공’자에 집착하는 것일까? 하기야 다른 진법을 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기도 ‘공’자는 꼭 쓸 테니까.. 내년은 무슨 해인가? 족보의 부록에 이것들이 자세히 나와있다. 2011년은 분명히 신묘(辛卯)년으로 나와있다. <묘>는 토끼다. 그러니까 토끼의 해가 되는 것인가? 이것도 잊고 산지가 꽤 된다. 특별하게 알고 살 필요가 없는 이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 “고리타분”한 것들을 다시 알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마도 올해 내가 나의 평창이씨 족보를 찾으려고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올해는 호랑이 해였고, 내년(내일)은 토끼 해.. 이 두 짐승이 주는 극적으로 다른 느낌으로 보아서 내년에는 세상이 조금 부드러운 쪽으로 변화되는 것도 기대를 해 본다.

 

Foggy holiday mood..

다시 12월이 되었고, 성탄과 연말을 향해 시간과 나의 머리가 줄달음을 치고 있다. 휴일느낌의 포근함과 무엇인가 ‘정리’가 되지 않고 무엇인가 또 했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나의 머리를 사로잡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필요한 ‘선물’에 대한 압력(?), 연말과 새해로 인한 나의 나이에 대한 착잡한 생각……참, 이런 느낌을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다 같이 겪는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 느낌을 나눌 수 있고 들어주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나는 그립다. 아마도 그게 친구란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런 면에서 나는 친지 최형이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그 포근한 감정을 만끽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의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질 못하다. 그런 면에선 나는 참 불행한 남자다.

얼마 전부터 다시 오래 전의 기타를 손에 잡았다. 구역모임, 엄 형제 댁이 귀국할 때, 남 형제 집에서 모였을 때 거의 즉흥적으로 모두 노래를 불렀다. 그때 거의 또 우연히 그 집에 기타가 있었다. 그래서 연숙과 둘이서 우리들의 ‘영원한 듀엣’ 곡 드림드림을 부르게 되었다. 물론 나의 목청이 수십 년(?)동안 침으로 막혀있어서 결과는 뻔 했지만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하고 즐거웠다. 그 후로 다시 나의 먼지가 소복이 쌓였던 ‘사랑하는 기타’를 꺼내게 되었다. 기타 줄이 낡아서 소리는 뻔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의 기타에 대한 모든 것을 진땀 나게 기억을 해야만 했다. 코드도 다 잊고, 손끝의 통증이 고통스러웠지만 역시 기분만은 즐거웠다. 

Cobb Central Library의 concourse 의 널찍한 desk에 앉아서 뽀얗게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묘지가 창문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그곳에는 내가 알기로 미국 남북전쟁의 dead veteran들이 묻혀 있을 듯하다. 경사가 심하게 진 언덕전체가 하얀 비석으로 조밀하게 채워져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그곳에 묻히게 되었을까? 무슨 사연들을 다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가족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고국과는 너무나 다른 묘지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세상에 나와서 다시 갈 곳으로 간 것은 틀림없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아마도 훨씬 평균수명의 몇 분의 일도 못 채우고 이 세상을 떠났으리라. 아마도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 아닐까?

이제는 이곳 도서관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 벌써 2달이 되어 가나보다. 10월19일 날 처음 ‘용감’하게 나의 closet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물론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나온 것은 아니다. 거의 ‘불현듯’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 전부터 식구들의 ‘충고’가 조금이라도 도움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역시 나는 그렇게 남의 말을 듣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쉬운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연숙이 나의 도서관행을 전적으로 찬성을 하고 동의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라도 찾은 것 같이 느껴진다. 어찌 아니랴? 내가 그렇게 집에 뿌리를 내리고 칩거한지가 거의 10년이 되어가지 않는가? 참,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나라니 에게 차를 뺏기고(?) 더 변명할 구실도 생기고, $$에 대한 거의 ‘공포감’도 한 몫을 하고..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내 차(?)도 생기고, 나의 used laptop도 나라니 의 도움으로 생기고, 조건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의 마지막 해,마지막 달…

2000년대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이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별로 생각 없이 그저 또 ‘부담스러운’ 성탄의 달이 왔구나 생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2009년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음을 알고 조금 더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2000년대가 그러니까 decade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고.. 2000년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또 생각을 한다.

올해 Thanksgiving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사랑하는 작은 가족이 같이 turkey를 먹을 수 있었다. 새로니가 큰 언니답게 부지런히 움직여 주어서 10시간 넘게 drive를 해서 모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구해 주었던 Izzie[kitten, cat] 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게 ‘인연’, ‘운명’, 아니면 ‘숙명’이 아닐까. Tobey & Izzie는 아마도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부디 행복한 삶을 우리와 살기를 기원한다. 나에게는 나의 오래 전의 끔찍한 ‘죄’를 보속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수중에는 Cash $450의 ‘거금’이 있다. 아마도 연숙도 짐작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액수는 확실히 모를지도. 그것은 상관이 없다. 유혹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VT-enabled CPU/PC를 살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인가..도 생각했지만 거의 포기를 한 상태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훨씬 더 많음을 실감한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떠난다면 제일 아쉬워할 것이 무엇일까? 가족이겠지. 그 다음은 … 아마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 중 에서도 우리 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렇다. 그 돈은 이번에 오는 성탄을 생각하면 써야 한다. 가족들의 선물과, 자선단체, 조금이라도 우리와 연관된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쓰리라.. 다짐을 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러니까 역시 devils in the detail이 아닐까..

 

지금 이 entry는 사실 조금 ‘과장’된 system environment에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나에게 자만심을 줄 만큼 사실 convoluted 된 remote access 인 것이다.  지금 나는 Cobb Central Library에서 우리 집에 있는 VM-WINXP-EN-2라는 virtual machine 을 remote desktop으로 access하면서 거기에 있는 OneNote로 이 entry를 edit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technique 이 아닐까? 최소한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그런 쾌거이다. 정말 it’s a wonderful life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Hamachi VPN의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만 역시remote desktop mode는 정말 필요할 때만 쓸 것이, speed penalty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다. 이 speed bottleneck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Hamachi VPN 자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Cobb Central wireless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곳에서 test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Panera에 laptop을 가지고 가서 test를 해 보면 조금 더 idea를 얻을 수 있겠지.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 예보처럼 ‘폭우’는 아니고 그냥 잔잔하게 꾸준히 내린다. 경우야, 너는 언젠가부터 rain person이었지 않니? 그냥 비가 좋았지. 환경 탓으로 눈은 포기한지 오래지만 비만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 하지만 올해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아늑한 실내가 있어야만 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인데, 그게 gutter가 주룩주룩 새는 바람에 꿈이 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나의 차 Voyager가 비가 새고 있으니..조금 ‘아늑한’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해결책은 모두 손을 쓰면 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도 크게 필요하지 않으리라 희망을 한다. 다만 그 놈의 사다리를 타는 게 겁도 나고, 따라서 일을 하는데 신이 나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