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Leaves – Edith Piaf
Autumn Leaves: 의외로 갑자기 가을의 맛이 눈앞에 다가왔다. 준비도 못한 채 맞게 된 것이지만, 절대로 가을은 반갑다. 황금색으로 바뀌는 나뭇잎을 보는 것도 즐겁고, 차가운 비를 바라보며 움츠려 드는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진한 커피향도 그렇고, 이것이 앞으로 몇 개월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은근히 기대했던 비는 끈질기게도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확률적인 수치로 나오는 일기예보는 해석을 잘 해야 한다. 그 확률이 맞는 확률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역시 개개인 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일기예보는 거의 일부러 안 보는 편이다. 기대도 하기 싫고, 미리 알아 보았자 그렇게 이득이 될 것도 없고, 만의 일이라도 비상 적인 일기가 오게 되면 그것은 주위를 통해서 자연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까 사실 마음이 편하다. 시간적으로 변하는 날씨에 연연하던 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내가 한가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내가 사는 이곳의 9월은 사과의 계절이다.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적인 연례행사로 과수원을 찾고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나면서 그런 행사도 시들해지고 작년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 이사올 당시,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만 해도 그렇게 과수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인구가 늘면서, 특히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은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다. 특히 단체로 버스까지 타고 오는 것을 보면서 완전히 그곳의 맛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이 아닐까.. 모든 것은 모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까.
일본 TV 드라마: 2007년부터 보기 시작했던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특히 그 중에서도 연속극 드라마들 이제는 이미 방영된 것은 다 보아서 새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게까지 되었다. 사실상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프로그램들을 하나도 안보게 되었다. 연숙은 이것을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조금은 실망까지 하는 눈치다. 어찌 그것을 이해를 못할까? 같은 드라마를 보아야 그런대로 얘기할 것도 생기고 하니까.. 이곳에서 가끔 모이는 친지들과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어떤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가지도 신나게 얘기를 나누는데, 나는 완전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일본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도 사실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것을 아주 가끔 보는 편이어서, 그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들은 내가 보아도 조금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일본의 드라마를 보는 나는 분명히 목적이 있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공부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터넷의 덕분으로 가능해 졌고, 최소한 듣는 일본어는 많이 익숙해 졌다. 비록 드라마지만 그들의 문화, 생각, 풍습, 역사 등등을 간접적으로 많이 배우게 되었다. 너무나 그들을 모르고, 무시하며 산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올해 초의 지진, 해일, 원전사고 등 재해 때, 그들을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눈으로 그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증오’의 역사로 점철이 되었고, 철저한 반일교육으로 자란 나로써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새로 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정치적인 완숙함, 한류의 파급 등으로 그들도 이제는 거의 친구와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어서, 참 세상을 오래 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내가 골라놓은 ‘최고의 일본 드라마’ 목록은 계속 불어난다
평창이씨 시조: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이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고 들어서, 평창이란 이름이 앞으로 귀에 아주 익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평창 이씨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평창이 본관인 성씨가 다른 것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평창 이씨만은 분명하게 그곳이 고향이다. 하지만 평창이씨를 공부해 보면서 평창에 근거를 한 평창이씨는 한가지 파, ‘정숙공파’ 밖에 없고 나머지는 거의 전국에 흩어져 있다. 내가 속한 ‘익평공파’만 해도 그렇다. 나의 바로 위 조상님들의 세거지는 평창이 아니고 평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평창에 살고 계신 정숙공파 종씨들은 평창이 더욱 알려지게 되면서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현재 평창이씨는 시조 할아버지 문제로 두 개의 파벌로 갈린 상태가 되었다. 서울 흥인동에 위치한 평창이씨 대종회는 시조 휘 ‘광’ 자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데 반해서, 정숙공파는 독자적으로 그 보다 훨씬 위의 조상인 ‘윤장’ 할아버지를 시조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2개의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대종회에서는 광 할아버지 이전의 역사는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까, 최소한 대종회 족보는 전체가 맞는 것이고, 정숙공파 족보는 대종회 족보에 없는 것이 더 들어가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숙공파의 족보는 시조인 윤장이 경주이씨에서 갈려 나온 것까지 밝히고 있어서, 이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리고 그렇게 오래 전의 사실을 어떻게 몇 가지 남은 사료로써 단정을 지을 수 있을까? 대종회는 ‘정사’를 고수하는 입장이어서 원래 족보가 출발된 시점에서 어떠한 다른 것도 넣을 수 없다는 보수적인 입장이고 보면 그것도 이해가 간다. 어떤 분들 말대로 사실 그것이 대종회가 갈라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