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레지오 화요일, 우리부부가 속한 레지오 쁘레시디움 (Presidium1 ‘자비의 모후’가 모이는 날이었다. 지난 몇 주간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고레따 자매님이 돌아 오셔서 조그만 성물 기념품까지 나누어 주셔서 반가웠지만, 거의 ‘영웅적으로’ 암 투병을 하시고 있는 쁘레시디움 회계 J 자매님은 회합이 거의 끝날 무렵에 얼굴을 비치셨다. 회합이 끝나면 곧 12시 정오 미사가 있는데, 오늘은 본당 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께서 강론 대신에 4월 1일 채준호 신부님의 급작스런 선종에 대해서 개인적인 일화를 하나 하시고 사회자로 하여금 마티아 신부의 글 ‘나 왔수‘ 를 낭독하게 하셨다. 미사 후에 곧 이어서 채 신부님의 연도가 이어졌다.
나는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을 본 적도 없고, 강론을 들은 적도 없다. 다만 본당의 website에서 신부님의 강론 비디오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티아 신부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았다. 우선 우리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2000년대 말에, 몇 년간 거주신부로 계신 것을 알고 있고2, 본당 신심단체 중의 하나인 CLC을 적극적으로 활성화 시키신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얼마 전에 레지오 꾸리아에서 빌려온 다른 예수회 소속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읽으면서 채 신부님의 글이 많이 인용된 것도 보았기에 그가 심리학적 상담의 대가인 것도 알게 되었다.
‘채준호 Googling‘ 도 이번에는 큰 수확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미국 Loyola University 심리학 박사라는 것도 알았고, 한국의 ‘초대’ 예수회 관구 장을 역임했다는 ‘빛나는’ 이력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4월 1일 선종했다는 조금은 ‘의아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의아스럽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다. 50대 중반이긴 하지만, 요새의 50대가 어디 옛날과 같을까.. 거의 ‘청년’일 수도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확실하게 어떤 ‘병’으로 선종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사고’는 아닌 듯 싶다. 한마디로 정말 ‘아까운’ 일이다. 천주교회, 수 많은 기대를 어깨에 짊어졌을 만한 ‘인물’이었을 텐데..
본당 신부님은 예수회 입회 당시 만난 채 신부님을 조금은 ‘덜 심각한’ tone으로 들려 주셨는데, 경상도 출신으로 겪는 ‘쌀’과 ‘살’ 발음에 얽힌 유머러스한 일화였다.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일화나 추억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그 신부님의 기억이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신부님들은 전부가 ‘서강대 사단‘의 일원이라서 이곳의 ‘서강대 친지’들에게서 다른, 더 들을만한 일화를 기대하지만.. 글쎄.. 과연 있을는지. 연옥을 지나쳐서 천국으로 직행 하셨을 신부님의 명복과 그의 가족, 친지들의 마음의 평화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