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Night.. Holy Night, 2012
¶ 새벽 잠결에 무언가 세차게 똑똑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새벽, 밖을 보며 그 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제넘게’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가득한 성탄 전날 보다는 아마도 이렇게 잿빛하늘이 사실은 더 포근한 감을 주어서 좋다.
올해의 성탄은 예년과 조금 다르게 기다린 셈이다. 제일 눈에 뜨이는 것은 이제까지면 12월 초부터 ‘노상’ 즐겨 듣던 주옥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올해는 ‘거의’ 듣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그것과 비슷하게 holiday decoration도 며칠 전까지 피하고 살았다. 물론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사실 올해는 정말로 성탄의 뜻에 더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이 전부다.
¶ 12월 24일..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내일 성탄을 하루 남긴 오늘, 우리의 한국본당 주임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한 전 레지오 단원들의 묵주고리기도가 그 대장정의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3월 26일 사순 제5주일 시작되던 월요일, 주님탄생예고 대축일 날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전 레지오 단원이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단수의 묵주기도를 하는 것인데, 밤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대에 골고루 나누어져서 끊임 없이 돌아가며 바치는 기도.. 그래서 고리기도였다. 주임 신부님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우리 레지오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하루에 한번 ‘빠지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5단내지 10단을 바치는 것.. 정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었다. 잊지 않으려고 숫제 cellphone에 alarm을 해 놓아서 사실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에 하던 것을 접어두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실제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몇 번은 한두 시간 지연되기도 했지만, 기적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늘 마지막을 장식했다.
조금 더 의미 있는 기억도 있었는데, 7월 26일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 은요안나 자매가 기나긴 암투병 끝에 선종을 하셨고, 나는 곧 이어서 그분이 시작했던 고리기도를 이어 받아서 오늘 끝낸 것이다. 내가 원래 하던 것은 연숙이 덤으로 맡아서 했는데, 이것을 물려받아 할 때마다 저 세상에 가신 요안나 자매를 생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곤 했다. 올해는 참, 이런 뜻 깊은 기억들이 제법 있었다.
¶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면 조심스럽게 각오를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지난 일년 동안 ‘못 보았던’ 친지들에게 성탄 카드를 ‘우체국의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다. 전통적인 종이로 만든 카드와 인터넷으로 보내는 ‘가짜 카드’는 정말 의미와 느낌이 다르다. 편하다는 한가지 이유로 모두들 그것을 보내지만, 받아보는 입장은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문제는 그 진짜 카드를 진짜로 써서 진짜로 우체국 편지로 보내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든단 말인가? 올해는 결국, 보기 좋게 실패를 해서 딱 2통의 진짜 카드를 신부님께 보낸 것이 전부가 되었다. 성탄 전야에 이제는 조금 마음이 편한 것이 이제는 모든 것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비록 가짜 카드지만, 조금 더 정성을 들이면 안 될까? 그렇다.. 진짜 카드를 인터넷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부지런히 진짜 카드를 scan을 하고 사연을 이렇게 써 본다.
죽마고우 원서동 크리스마스의 환상
내가 알았던 모든 친구들.. 그 중에서도 원서동 죽마고우들: 최승철, 김동만, 안명성, 박창희, 손용현, 유지호.. 비록 서로의 늙어가는 모습은 못 보고 살지만 마음 속에 간직된 어린 우정은 하나도 변함이 없다. 성탄과 새해에 어디에 살건, 어떻게 살건 간에 건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