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4년 부활 영세, 세례식
2014년도 부활절 영세식이 4월 12일에 뜻 깊게 막을 내렸다. 천주교에서 영세, 세례의 의미는 아마도 개신교회와 ‘차원’이 다를 것이다. 쉽게, 편하게 하느님을 만나려는 그들과 상징, 과정, 연수, 고행이 따르는 우리 천주교의 하느님 만나는 과정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나와 연숙에게 올해의 영세식은 분명히 다른 해와 다르게 가슴으로 찡~ 함을 느끼게 다가왔다. 영세식이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 멀리서 몰래 찍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 설명이 필요가 없다. 한결같이 행복하게만 보이는 이 모습들.. 나이나 성별에 상관이 없다. 세례를 주관하신 주임신부님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 아마 그런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30여 년 전을 부지런히 떠올리며 이들의 심정을 헤아렸지만 아무래도 30년의 세월은 조금 긴 것 같이, 자세한 그때의 정경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거의 100% 기억하는 것은 그 때의 우리의 ‘행복한 느낌’이었다. 그 희미한 감정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세례자들도 아마 마찬가지의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이번 영세식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상당했다. 나와 연숙이 지난 해 8월부터 모두 봉사자란 이름으로 예비자 교리반에 참가하여 무사히 이들을 ‘요르단 강’ 가로 배를 함께 저었다는 느낌이고, 예비자 거의 전부가 끝까지 항해를 했다는 안도감과 자부감등으로 우리가 다시 세례를 받는 것처럼 가슴이 뿌듯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번 교리반 봉사자로 참가해서 우리가 얻은 것은 이 예비자 들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많이 얻고 배웠던 것이다.
대부분의 교리는 수녀님과 신부님이 담당했지만, 우리 부부도 두 번 정도 담당할 기회가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수녀님과 자유분방한 신부님의 스타일은 정말 대조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균형이 잘 이루어졌다고 할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신부님 스타일이 훨씬 마음에 들고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맡았던 ‘교리 강의’에서 나는 신부님 스타일 흉내를 잠깐 냈는데, 역시 예상대로 수녀님의 재빠른 질책을 받았다. 아직도 나는 그런 수녀님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저 그저 benefit of doubt 만 되 뇌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대상한 예비자들은 거의 ‘고학력, 젊은 층’이 대부분이어서 우리와 호흡이 잘 맞았다. 우리에 비슷한 또래들도 마찬가지로 personal chemistry가 좋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과 용기를 주었던 것은 대부분 예비자들이 봉사자들을 격의 없이 믿어주고 사의를 표하는 자세들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신선한 것이.. 요새 ‘젊은 층’을 많이 보았기에 너무나 비교가 될 정도로, 건전한 말투, 모습들.. 보기만 해도 했다. 중장년 층의 예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머있고, 협조적이고, 한마디로 멋진 신사 숙녀들이었다. 이들이 하느님을 찾으려 8개월 동안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주 목요일 밤에 모였다는 것은 속된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비슷한 비율의 남녀 형제, 자매들.. 우리에게는 모두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영혼들이다. 한창 ‘외우는 공부’가 더 쉬울 듯한 15세의 등치가 큰 소녀, ‘마누라’에게 등을 떠밀려 나왔지만 이제는 ‘교리반 재수’을 끝낼 각오로 참여 각가지 유머로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주던 Clint Eastwood를 연상시키는 60세 형제님, 무게가 실려있는 comment로 일관 한 귀공자 스타일, 옛날 알랑 드롱을 닮은 ‘백수’ 형제님, Tom Cruise를 연상시키는 30대 유학생 화학공학도, 항상 질문이 많고 심각하지만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50대 자매님.. 영화배우처럼 멋지게 생기고, 아버님과 같이 교리공부를 한, 멋진 약혼자의 후원을 받았던 (내가 제일 부러운 case) 형제, 20대의 젊음의 향기로 교리반의 공기를 채웠던 몇몇 유학생 자매, 형제들..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30년 전을 회상하기도 했고, 그들 신앙여정의 앞날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제 세례, 영세식은 끝났지만 사실 학교 졸업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가 진짜가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부터가 이들의 교회생활의 시작인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보아서..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속사회를 이들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20~30대의 젊은 층은 참 길 수도 있는 ‘파도’길을 가야 한다. 중장년 형제자매들.. 이들은 그렇게 시간이 길지 않다. 사실 내가 제일 큰 관심을 갖는 것이 세례를 받을 때까지가 아니고 이들이 ‘무사히’ 세파를 헤쳐나가는 하느님의 지혜를 어떻게 받고 쓸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내가 30년의 세월을 ‘실패’로 보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분 들이 ‘하느님’이 생각보다 가까운데 계시며 그들을 지켜 본다는 깨우침을 하루빨리 가질 수 있도록 성모님의 전구를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