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속, 머리 속의, 아니 바라던 가을의 느낌은 무엇이었지? 지나가는 2주 정도의 뜨거운,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나는 기억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 아니 바라는 것 등이 쉽게 구별이 안 간다. 기억의 종류가 ‘생각’과 합쳐질 때 이런 현상이 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질적, 기계적’인 기억은 사실 ‘정신적, 영적인 바람’과 섞이며 나타나는 것일까? 하여튼 ‘은근히 화가 나던’ 그런 시간을 견디어 냈다. 집착, 고집, 심지어 공포감.. 누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작년 이때를 계속 달력을 뒤지며 생각한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그것도 ‘지옥’ 처럼 느껴지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그것도 기억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도 불과 몇 달 후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견디자.
지금은 2마리의 ‘충실한 개’가 우리와 함께 있다. 나라니가 여행을 가면서 Senate가 오고 내가 Ozzie도 오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막상 오게 되니까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일단 와서 몇 시간을 지내고 보니 역시 문제가 없다. 이렇게 우리의 무미건조한 하루 일정에 다른 것이 가미되는 것, 나쁘지 않은가?
지난 한달 간 나의 머리는 한가지 ‘사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작은 딸, 나라니의 ‘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역시 이렇게 인생을 보내는 인간인가? 나의 생각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다. 아니 하기가 싫은 것이다. 그저 우리 나라니의 삶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인정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신앙의 도움도 별로 효과가 없는가? 그렇게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도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두 아이가 모두 ‘우리의 족보’에서 완전히 떠나려고 하는가? 우리 집의, 평창이씨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의 정체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왜 내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고, 나의 후손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인가? 나는 남들이 다 별 문제없이 인정하며 사는데 반하여 이렇게 지지리 늦게, 못나게 보이는 것인가? 모든 ‘도전’을 높은 곳의 뜻을 따르고 이성적으로 받겠다고 그렇게 하늘에 약속을 하며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벼랑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가?
혼자 술을 기울이다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주위 분들 모두 별탈없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선생님의 정신과 육체도, 늘 그랬듯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Kurt님, 평안한지요?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떻습니까? 이곳은 insane climatic drama를 겪은 후에 완전한 가을로 변했습니다. 이제야 말로 ‘혼자서 술 한잔’의 기회 되었습니다. 어디에 계신지 몰라도.. ‘혼자 술’은 언제나 상상을 유발시키는 매력 있는 말입니다…
한국은 10월 중순이지만 낮에는 다소 덥습니다. 본문의 걱정스러움은 어떻게 잘 해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삶의 fluctuations 속에서도 근본적인 자리는 언제나 평안한 곳이길 빕니다.
Kurt님,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소‘ 하는 1966년 영화 ‘하숙생‘에서 신성일이 형사에게 중얼거리던 말.. 지나고 보니 그 정도의 감정기복이었던 듯 싶군요. 순간순간의 거센 파도들도 지나고 보면 우습게도 잔잔한 호수같이 변하기도 하니까요. 소싯적에는 이런 것들 어떻게 처리하며 살았는지… 하여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