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가 흘러갔을 때…

Welcome, It’s a Boy balloon, at Tucker mailbox post

 

우리의 첫 손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작은 드라마의 순간들이 며칠 만에 지나가고,  10 파운드짜리  ‘건강한 남자아기’를 안고 아기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쪽인 우리 부부는 미리 집에 가서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It’s a Boy!‘ 를 외치는 풍선을 그들의 mailbox post에 달아 놓고서야, 큰 일이 끝났다~ 는 편안한 안도의 심정을 느꼈다. 갓난 아기가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리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숙은 비교적 침착하게 첫 애를 다루었지만 나는 ‘어벙벙’ 그 자체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산모의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까?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댁은 전형적인 Caucasian 이어서 돕는 방식도 그들의 전통을 따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듣는 소문에 의한 ‘한국식 도움 방식’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숫제 시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아예 full-time으로 professional helper 흉내를 내는 case도 보았다. 다행히 산모와 애기 아빠가 충분한 출산휴가를 받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지만, 연숙은 언제라도 20 mile (car) drive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산모의 부부가 병원에 머물 때 그 집의 강아지 Senate 는 우리와 함께 큰 딸의 개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가 크게 보살 필 부담은 적었고 거꾸로 나는 그 둘과 동네를 걷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아니었을까 희망해본다.

 

good friends, Senate & Ozzie at Saybrook Home

 

아득한 세월 전 우리들의 첫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엇갈리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1983년 1월초, 새로니, 그 갓난 ‘어설픈’ 생명체를 꼭 가슴에 품어 안고  제왕절개 수술, 1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추억이 안 떠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딸애의 출산 드라마를 겪으며 우리 둘이 100% 공감한 것이 있다. ‘모조리 잊어 버렸다!’ 라는 탄성.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둘이서’ 그 생명의 드라마 느낌과 경험을 모조리 잊어 버린 것일까? 진화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로 그  ‘세월의 횡포’일지도 모른다. 사실적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조차 그렇게 희미해졌단 말인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며 물리적 기억인 ‘사진들’ 밖에 없다.  당시의 사진들 몇 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조금은 그 신비로운 느낌들과 ‘어벙벙’ 하고 초라했던 나의 자화상들이 조금씩 떠 오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인생중대사였다. 그러니까 별로 큰 고통과 고민과 고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젊음이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의 용기’를 마음껏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들이었다.

 

첫 애 새로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1일 째,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 도움 없이 키우기 시작했던 때, 1983년 2월 초

 

세대는 이렇게 흐르며 현 세대가 때를 마치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등장,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순리적인 진리인 것을 잊고 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 다시금 모든 생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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