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집, 가정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던 첫딸, 새로니의 생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나이가…. 아~~ 사십세! 그야말로 big four zero~~~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새로니가 마흔 살이 되었다고?이제는 40살의 느낌이 거의 희미해진 탓인지 어떤 말로 생일 축하를 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건강하게 살아 준 것을 감사하는 것 이외에는 그저 덤덤한 느낌이다. 기껏해야 나의 마흔 살 때를 떠올리는 것으로 가늠은 하지만 세상이 그 동안 가만히 정지해 있던 것도 아니니까… 나의 40세는 아~ 서울 울림픽이 열렸던 해~~ 아이들은 이미 둘이나 있었고, 대강 감이 잡힌다… 세상 그 동안 많이 변했구나…
‘지난 해’ 12월 16일 금요일에 참례했던 Holy Family CC 아침미사가 우리에게 2022년 마지막 ‘매일 미사’였다. 이후 오늘 아침까지 ‘매일미사’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짧지 않은 겨울잠을 잔 셈이다. 감기로 시작된 피치 못할 ‘결석’이었지만 이렇게 미사를 못 했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만 하다. 감기 따위로 2주 이상 all stop이 되는 것,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따라서 저녁기도도 같은 운명을 맞은 것… 이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분명히 이런 것들 우리 생활에서 많은 영적 에너지를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긴 휴식을 취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다시 둘이서 YMCA를 감기 이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또한 Sonata Cafe도 같이 재개가 되었고.. 하지만 연숙이는 오늘 pool 예약을 하지 않고 걷기만 했고 나는 다른 때와 같은 routine을 마쳤다. 이곳엘 가면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그것은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bench press, 그러니까 free weight routine으로 분명히 확실히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YMCA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그림자가 조금은 ‘꾸부정’해 보인다. 조금 허리를 펴고 걸으며 누가 때리냐? 이유는 spycam을 보며 걸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얼마 전 새로니 집에 갔을 때 사위, Richard가 한 보따리 hardware 뭉치를 주어서 가지고 왔다. 얘기로 들었던 것, PC dual monitor/arm package다. 예전에 dual monitor를 쓴 적이 있었다. 나의 desk에는 조금 heavy하게 보이고, 한쪽으로는 ‘하루 종일’ video을 보게 되는 것도 염려가 되어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바꾼 상태. 하지만 오늘 test를 하며 자세히 보니… Samsung 24″ 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VIZIO보다 조금 큰 것이었고, 제일 마음이 든 것은: 이것은 100% PC VGA monitor로서 monitor screen power saver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 또한 built-in speaker가 없어서 오히려 잘 된 case가 되었다. 비록 external desktop speaker가 필요한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의외로 lab pc에서 쓰던 USB speaker가 이곳에서 잘 어울렸고 소리, volume등 모두 만점이 아닌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진짜 analog volume wheel control’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하나만은 나의 손으로 조절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Screen test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화면도 전번 것보다 훨씬 robust한 것이고, 125% screen-up도 전혀 문제없이 작동을 하고…
오랜만에 겪는 이런 system test, change, upgrade의 일들, 결과가 좋으면 나는 정말 천국을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직장생활이 다 이런 과정, 경험의 연속이었으니까…
오늘 아침부터 Benedict XVI 장례미사 뉴스가 계속 보였다. 이번의 교황서거뉴스, 의외로 나는 전처럼 열렬하게 관심을 보이지를 못했다. 다른 것들에 더 신경을 쓰며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이 교황님에 대한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2013년의 놀라운 은퇴 소식에 실망을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는 교황 이전에 진정으로 명석한 신학자, 아니 학자였기에 나는 항상 존경을 했던 기억이다. 나라니의 선물로 샀던 그에 관한 책, Dictatorship of Relativism을 다시 꺼내어 표지에 나온 교황의 모습을 다시 본다. 역시 (신)학자의 모습이다. 그 당시 그가 ‘보수적 교황’이라는 사실에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교황과 비교가 되면서 아주 대조적인 ‘철학, 사상’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재의 조류인 ‘양극화 polarization’ 현상으로 이 두 교황님을 보는 것이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뉴스가 되었다. 하지만 교황은 교황인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 신자들은 교황을 우선은 ‘이유 없이’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