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astery, 사랑반, Cumberland, 자비의 모후, 장례미사, 싸리골

¶  Saturday at Monastery: 지난 토요일 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 학생, 교사들과 함께 Conyers, Georgia (east Atlanta suburb) 에 있는 Monastery of the Holy Spirit (간단히 Conyers수도원이라고 부르는) 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째 (아마도 4+  년?)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짧은 전통’이 되었다. 전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교리반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 전에 꼭 수도원을 방문하도록 권고를 하셨음에 이 짧은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2차대전 무렵으로 올라가는 비교적 긴 것이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과 그 유명한 영성가 Thomas Merton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이 수도원을 창립한 member들이 Thomas Merton 신부가 있었던 Kentucky 주의 Gethsemane Trappist  수도원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근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The Benedict Option 을 염두에 두며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절과 비슷한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함과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곳, 원하면 세속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2013년 겨울, 나도 교리반의 교사, staff의 일원으로 예비신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 외에도 레지오 피정 당시 며칠 머물렀고,  몇 년 전에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자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현재 주임신부님은 예비신자들의 수도원 방문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는 듯 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부님들마다 수도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왜 그럴까? 하지만, 편한 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보편적이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천주교의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도자들과 피정 온 평신도가 함께 바치는 ‘낮 기도’ 에 우리 모두 경건하게 앉아서 오랜 만에 ‘평화의 신비’를 경험했고, 나중에 Abbey Store (bookstore, gift shop, small dining)에 모여서 맛있는 Publix sandwich, gourmet coffee (정말 향기 좋은 coffee였다) 를 먹으며 교사들의 ‘수도원 역사’ small talk과 각자 느낀 것을 share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천주교가 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이들 예비신자들, 내년 부활 때 모두 세례를 받게 되기를 간구했다. 이번에 나는 100% volunteer로 ‘따라’ 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진정으로 ‘평화스러운’ 대림 2주, 토요일 이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사랑반의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동안 나는 이곳 참석을 못하며 살았는데 이번은 조금 예외가 되었다. 평상시 처럼 개인 집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바로 성당 내, 조그만 방에서 모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 거대한 monster처럼 커져버린 ‘전 마리에타 2구역’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breakup이 되어서 ‘자비반, 사랑반’ 등등 같은 이름의 smaller group으로 나뉜 것도 이제는 몇 년째가 되었나? 우리에게는 조금 한 집에서 모이기에 편한 새로운 group으로 되었지만 그래도 무슨 높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 이곳엘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리, 무리… 우리의 ‘나이’를 잊고 살았는지.. old boy의 수준에서 이제는 ‘명퇴 한 나이’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나이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두 곳의 본당[마리에타 Holy Family, 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가진 우리에게 100% 순교자 성당의 구역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현재의 사는 방식, 그러니까 status quo의 지혜를 버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가 남들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어느 정도 이 모임에 참여를 하며, 어떻게 ‘명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은 나에게 결정하기가 참 힘든 문제다.

이날 성당 내에 구역모임은 우리와 자주 만나며 사는  ‘크리스’ 자매가 host를 한 것으로 총무님과 같이 맵시 있게 차려놓은 champaign 이 포함된 snack table 주위에서 담소를 즐겼다. 아마도 자택에서의 모임이 힘든 것을 이렇게 지혜롭게 해결한 것, 아주   지혜로운 idea였고,  현 총무 자매님의 의욕과 사랑으로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  Cumberland Mall: Holiday mall shopping.. 이런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벌써 복잡해지고 피곤해짐은 근래에 들어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니 꽤 오래된 기억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 shopping한다는 것, 즐겁지 않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더 들어가며 이제는 거의 이런 것들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일년 동안 두 번씩이나 겪었던 ‘레지오 2명의 미친년 사건들’ 로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kafkaesque 들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것도 월요일 날, 새로니와 셋이서 비교적 가깝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 Cumberland Mall에서 아주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shopping routine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이런 곳에 온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런 전통적인 shopping, 이제는 시간문제일까… 그러니까, brick & mortar shopping experience은 Amazon(online) shopping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날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Cumberland Mall에서 먼 쪽의 중앙에 Sears라는 글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반 세기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 그것 중에는 Sears라는 글자도 있었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당시 시골사람들처럼 순수하게만 보였던 ‘主流 백인’들만 보이던 미국’,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날 ‘해야만 했던’ holiday shopping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찌 내가 즐겁기만 하겠는가? Good Ole Day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세대구분 없이 ‘영원히’ 계속되어 갈 것이고 progressive, conservative의 duality도 영원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이래서, 영원히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로 안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중의 지혜가 아닐까?

 

¶  Full House, 자비의 모후:  한 때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우리의 성모님의 ‘분대’, 자비의 모후가 너무나 오랜만에 full house를 맞았다. 나는 이것을 ‘재를 털고 일어난 불사조’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dirty vermin 들을 St. Michael의 용맹한 도움으로 ‘요사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형제님을 불시에 천국으로 보낸 아가다 자매님이 자식들이 주선한 극진한 효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합류를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대로 안정권으로 돌입한 우리 레지오, 절대로 절대로 신 단원을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실책은 피할 것이다. 단원의 숫자 그 자체가 이렇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연도, 장례미사, 장지동행:  아침에 예상외로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천수 90세를 넘기신 젬마 자매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였다. 장례미사에서 작은 딸의 생생한 조사가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깊은 것이었고, 우리는 궂은 날씨지만 마리에타 공원묘지까지 장지 동행을 했다.

며칠 전에 노령과 폐렴으로 선종을 하신 이 할머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었다. 항상 변함없이 성당 제일 앞줄에 walker에 의지해서 힘겹게 들어오셔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시던 분, 전에 거동이 덜 불편하셨을 때는 화요일 정오미사에도 오셔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고 인사도 나누었던 자매님이셨다. 그러다가 낮 미사에서는 더 이상 안 보이셨고 주일 미사에서는 꼭 뵈었고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나오셨었는데… 역시 90세라는 나이에 폐렴은 초현대의 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었는지.. 그래도.. 그래도.. 90세를 넘기셨으면 ‘천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님, 80중반 까지 사셨지만 짧은 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자매님은 연숙과 더 깊은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할머님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African American 자매님이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의 신자여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번 장례식에도 어김없이 와 주었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자식들을 다 키우신 부지런한 젬마 할머님, 각종 ‘사고’를 당하시며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굳건한 천주교 믿음을 지키시며 말년을 인근 꽃동네에서 천수를 하셨기에 자식들도 우리들도 이 영혼의 천국에서의 복락을 믿는다.

 

¶  싸리골 점심 모임:  12월 21일, 바로 동짓날이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되었는가? 이제부터는 밤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2개월 동안은 ‘각종 일기 뉴스’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동짓날 아는 부부와 같이 따뜻한 김이 나는 듯한 기분의 장소, 바로 마리에타 지역에서는 희귀한 한국식당 ‘싸리골’ (Tofu Village Korean BBQ) 이란 곳이다. 왜 이 집이 싸리골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아마도 옛날 고국의 시골에서 보던 싸리나무, 싸리문, 싸리로 만든 담장.. 등등이 그리워서 그렇게 이름을 진 것은 아닐까.. 이 작지 않은 식당의 주변도 아예 싸리나무로 담장을 꾸며 놓았다.

크고 작은 Korea Town들이 거의 모두 아틀란타 동북쪽 (Gwinnett, Forsyth  counties) 으로 몰리게 되면서 정 반대쪽에 있는 마리에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거의 사라지고 이곳 ‘싸리골’과 ‘일미’라는 두 곳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business model이 Korea Town의 그것과 다르게, 거의 모든 customer들이 ‘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두 곳은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계속 ‘성업’을 할 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 둘은 2주일 전에 우리를 집을 초대해서 맛있는 salmon steak요리를 즐기게 해준 ‘마리에타 토박이’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는 마음이 바쁜 이 시점에서 무리일 듯 했기에 이렇게 외식을 한 것이다. 이곳은 몇 개월 전에 심장수술을 했던 구역 가밀로 형제를 문병(봉성체)한 후 이곳에서 구역장님과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구역의 ‘오 안젤라’ 자매님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관계로 그 자매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이 교우형제, 자매님 근래에 자주 보게 되고 알게도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하도 해괴하고 요상한 ‘교우 인간’들이 주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감과 경험,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는 지혜를 총 동원하면 앞으로 더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1. 이 당시 단원 중에는 그 유명한 레지오 난동사건의 주범을 포함한 3명의 빠가 온나, three Stooges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때를 영원히 잊고 싶다.

after snow day, film noir days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Morning After, 6+ inch snow!

 

깜깜한 이른 새벽, 저 멀리 있는 digital clock radio의 clock이 잠결에서도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현재 시각이… 오밤중의 그것이었다. 속으로.. 내가 불면증인가.. 나이 탓인가.. 이 오밤중에 정신이 말짱하니,  다시 자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며 창 밖을 훔쳐 보니 아무래도 나의 body clock은 아침 7시 정도는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digital clock을 보니.. 아하, it’s blinking! 언뜻, 밤에 ‘전기가 나갔었구나’, 그러니까 그 radio clock 의 시간이 틀린 것이다.

부리나케 아래 층으로 내려오니, 나의 body clock이 거의 정확했다, 7시 10분이었다.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가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이를 들고 부지런히 나가려고 하니 porch door가 쌓인 눈에 걸릴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Deck guardrail 에 가지런히 쌓인 눈의 깊이가 족히 5~6 inch가 될 정도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대설 大雪’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내린 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우리는 어제를 snow day 로서 푹 쉬었지만 장례미사를 못 갔던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2014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이 마당에 이러한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Sugarloaf mansion의 최형이 전화로 우리가 혹시 어제 ‘외출’을 했었나 부터 물었다. 3년 전 19시간 동안 I-258 freeway에서 밤을 지샜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3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집으로 drive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듯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우리 작은 딸 나라니는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rush hour가 끝나면서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리고… ‘자, ruler’로 재어보니 정확히 6 inch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두 번째 snow day가 된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설마 내일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성당과 저녁 5시에 있는 성당 60 plus 대 모임, 등대회 연말 파티 모임도.. 설마..

 

 

Atlanta wintry mix, sleeting…

sleeting ,dusting Marietta

 

¶  깜깜한 이른 새벽 침실의 curtain사이로 들어오는 가물거리는 빛들, 먼 곳에 있는 집의 security light는 거의 항상 켜 있으니 익숙한 것이고 땅 쪽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빛들은 무엇인가? 우리 집의 security light는 분명히 아니고.. 잠결에 생각이 났다. 아하… 오늘 이곳에 wintry mix advisory가 있었던 것. 그러면 혹시 눈, 하지만 절대로 하얀 색갈이 아니다. 거의 검은 색으로 반짝거린다. 그러면 비.. 그것도 아닌 느낌이다. 그러면… 아하.. sleeting or freezing rain?  다롱이(backyard cat)  아침밥 주러 밖엘 나가니.. 이건 sleet 도 아니고 freezing rain도 아니고 바로 그 중간이었다. 아니.. snow도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바로 올 season 첫 번째 winter storm warning…  2014년의 ‘snowmageddon‘ nightmare가 곧바로 기억이 난다.

The Mother of humanity

오늘은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의 대 축일이고 미국에서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현재의 상태 같으면 Holy Family Church로 가는 drive는 큰 문제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현재의 날씨 상태로는 100% guarantee는 없다. 어쩔 것인가.. 하지만 곧 결정이 났다. 최악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이 지난 밤도 예외가 아닌 듯해서 내가 결정을 내 버렸다. 성모님… 용서하소서..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늘 낮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로 알게 된 데레사 자매님의 시어머니의 장례미사와 연도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것도 어쩔 것인가 생각을 하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TAKE ZERO CHANCE..였다. 2014년 20시간 I-285에 묶여 밤을 새웠던 기억은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갈 듯한데 이제 고작 3년도 안 된 fresh한 것이니.. 다시는 이런 날씨에 I-285 drive는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연도를 하는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장례미사를 참석 못하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Ave Maria – Composed by Michal Lorenc Performed by Olga Szyrowa, Moscow Symphony Orchestra (1995)  

 

¶  어제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스테파노 형제님 댁, 점심초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격조 있고 맛있는 점심 회식을 즐겼다. 이 댁의 자매님은 알고 지낸 지 그런대로 되었지만 스테파노 형제님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인생철학’도 크게 유별난 것 아닌 듯해서 ‘안심하고’ 사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도 ‘해괴한 인간’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 사귀는 것, 이제는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운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가 보니 3명의 자매님들도 오셨는데.. 모두 낯이 익은 분들이었고 한 분은 3년 전 세례를 받으신 아녜스 자매님, 우리 둘이 교리반 봉사를 할 때 예비신자 학생이었다. 그 당시 교리반 학생들, 세례 후에 많이 못 보게 되었지만 이 자매님은 그런대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멋진 table setup에다가 주로 holiday style meal, gourmet coffee 등등.. 인상적인 모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좋은 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이 posting 은 아침에 시작된 wintry mix, sleet 를 보면서 한 것인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을 뒤엎고 major snow로 돌변을 하였다. 지상의 온도는 빙점 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영하였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rain, 그리고 저녁부터 눈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조금 빗나간 것이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교통대란 때도 비슷한 예보를 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도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기후는 정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현명하게도’  아침에 아예 snow day를 선언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멋진 함박눈’을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Last Leaves, leaf & O Henry

 

어제 우리 집 Saybrook court driveway로 들어오는 cul-de-sac  에서 집 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듯한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아~ 올해 우리 집, ‘마지막 잎새 들’이 로구나..  하며 ‘마지막 잎새’란 생각이 들고,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다~ 떠나는구나.. 보통 12월 초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마지막 추수’ 가 수북이 쌓임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앞집의 Josh는 아마도 올 가을에 걸쳐서 수십 번은 power blower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는데.. 도대체 그 wasted time & energy aching muscle등등은 둘째치고 그는 ‘낙엽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비웃음’이 나온다.

세월은 흐르고 올해도 한 달도 채 남지 않고, 깊은 겨울로 들어가며 새해 2018년을 맞는다. 칠십 70이란 숫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처지는 감정을 달랜다… 그래도,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70년의 세월은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여한이 없다’ 라고 위로를 받는다.

 

pen name O Henry

마지막 잎새,  명작 단편의 제목이었다. 필명 O Henry라는 미국 단편 작가가 20세기 초에 발표한 그야말로 ‘짧은’ 단편 그것이 바로 The Last leaf 였다. 낙엽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떨어지는 ‘놈’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마지막 잎.. 그러면 세상은 갈색에서 하얀 색으로 변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때, 이 소설의 주인공 여성, 폐렴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하나 하나 떨어지는 낙엽을 자기의 운명과 연관이 있음을 느낀다. 결국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기도 ‘따라 떨어진다’ 믿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안 떨어졌다. 대신 그 마지막 잎새를 ‘살려준’ 아름다운 마음씨의 친구 화가 할아버지가 대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아름답고 운명적인 단편이었던가..

 

 

왜 이 단편이 나의 기억에 그렇게도 남았는가. 1960년 57년 전 서울 중앙중학교 1학년 때 국어 담당 ‘소재영‘ 선생님 때문이었다. 소재영 소재영 선생님… 그 어린 나이의 눈에도 이 선생님의 ‘학자적 겸손, 능력, 품위’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멋진 선생님이셨다. 교실에 들어오실 때는 책을 한 꾸러미를 들고 오셨는데, 그 두꺼운 국어사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국어시간에 가르치신 것이다. 그 때가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 그 선생님은 완전히 우리에게 국어라는 학문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 중에 바로 이 ‘마지막 잎새‘에 관한 공부도 들어있었고 그것이 반세기 뒤에도 뚜렷이 남아 있게 되었다.

 

The Gift of the Magi

크리스마스 ‘사랑의 마음’을 적절히 묘사한 O Henry의 다른 단편 The Gift of the Magi, (한글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 도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젊은 ‘신혼’부부 Jim과 Della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이야기.. 서로를 위해서 Della는 머리를 팔아서 Jim의 watch chain을 샀고, Jim은 watch를 팔아서 머리 빗을 샀다는 슬프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이야기였다. 이것이 바로 the Magi(동방박사)의 아기예수에게 드리는 선물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O Henry라는 이름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지만 인생의 항해를 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우리 집 앞에 쌓인 마지막 잎새들을 보며 회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었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조금 실망을 했다. 많은 유명한 단편은 남겼지만, 그의 비교적 짧았던 생(47세)은 각종 색깔의 행적을 남겼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살았던 Columbus, Ohio의 감옥에 죄수로 수감되었던 것도 있다. 물론 폭력적인 범죄는 아니었고 비교적 가벼운 ‘사기 횡령죄’로 복역을 한 것이다.  말년에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고 쓰기 시작한 단편들, 바로 그것이 그에게 커다란 이름을 남겨주게 되었다. 한마디로 ‘역량, 잠재성’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콜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타계한 것을 보면 말년이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O Henry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고, 그것은 중학교 1학년 국어, 소재영 선생님의 고귀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The Last LeafThe Cascades – 1963

 

Monday Monday..

Monday Monday..   7 일마다 찾아오는 월요일은.. 예전에 그렇게 싫기만 했던 요일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나 만의 전유물은 절대로 아닐 듯 하다. 특히 Monday morning 이란 것, disease라고까지 표현을 했으니 상당히 stressful한 날인 것임은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나도 상당히 이 날 아침에 sick call을 남용했던 기억이 남고,  남은 여생 두고 두고 후회를 하고 있다. 그런 dreadful Monday가 인생후반기인 현재에 와서는 golden day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내가 변한 것인지 환경이 변한 것인지, 나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것들 모두가 나의 느낌을 바꾸어 놓고 있을 것 같다.  Monday Monday.. 하면 같은 제목의 1966년 Oldie 가 생각나고, 그 곡을 처음 들었던 연세대 앞 신촌 로타리에 있었던 ‘왕자다방‘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가 1967년 봄이었으니.. 정확히 50년, 반세기 전이었다. 정말 50년의 세월이란… 그 느낌을 글로는 묘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The Mamas & the PapasMonday Monday – 1966  

 

Strange but refreshing Monday feeling… ahhha..  it’s over finally!  왜 이렇게 이번 월요일 ‘우리’의 어깨가 가볍게 느껴진 것인가? 2주 만에 처음으로 YMCA gym에 가서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느낌도 도움이 되었고, 어제 일요일에 일어난 (아니, 안 일어난?) 일들도 무척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일요일은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대공연’은 cancel이 되었고 아예 그곳에 가지도 않았다.

6년 동안 빠짐없이 참가했던 이 행사가 우리로부터 떠난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우리의 앞날을 예측해주는 omen 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시원한’ 느낌을 받아서..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정리되지를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이제 레지오가 지겹다…’하는 것은 아닐까? 연총 불참의 직접적인 이유는 한 두 단원이 갑자기 아팠던 것이었지만 행사 자체를 불참한 것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음을 우리는 다 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속한 ‘꾸리아 조직’의 암적인 문제인 것이다.

 

On Second of December

 

¶  2017년 12월 2일:  2017년 달력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며 12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 흠.. 그렇다면 또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 이 지나가고 있단 말인가? 1년이란 시간은 아련했던 기억 속에는 ‘장구한, 영원한’ 느낌의 긴 세월이었다. 그것이 언젠가는 거의 한 달 같은 기억으로 남았고.. 지금은 모르겠다. 아마도 한 달보다는 조금 더 짧아진 듯한데 그것을 그저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신비로운 시간, 조금이라도 시계가 늦게 가는 그런 곳, 때, 감정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찌 나 같은 ‘죄인’에게 그런 은총이 쉽게 올까 보냐.. 그저 열심히 시간의 흐름에 순명 할 뿐이다.

작년에 시작된 Youtube의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보며 아늑하고 편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올해도 몇 개를 download해서 보았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아~ 12월이여… 라는 아늑하고 편안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Peter Hollens – December Song  

 

¶  연총 연습, 마지막 No 5: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stage performance 를 위한 마지막 연습 session이 주 회합 후에 있었다. 올해로 나는 일곱 번 째 연총연습을 맞지만 올해의 이 행사는 예년들에 비해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맞게 되었다.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후, 군살과 독성물질 (toxin) (왕마귀와 레지오 미친년)이 완전히 빠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대신 전체적인 레지오 내에  ‘사랑이 완전히 빠진 느낌’ 은 역시 떨칠 수가 없어서, 노래와 율동을 하는데 신명이 나지를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예전 같았으면 ‘포기하자’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성모님 사랑의 눈길을 느끼며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를 되뇌며 무려 5번의 연습 session을 다 마치게 된 것, 절대로 이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거나 hiccup을 해도 이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 곳까지 다 갔기 때문이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율동을 물론이고 vocal singing도 우리들에게는 small challenge였다. 반주를 Youtube video에서 무단copy해서 karaoke로 쓸까 했지만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아예 karaoke audio를 녹음을 했고 still video로 아예 YouTube video를 만들었다. 이것을 들으며 2017년 너무나 어렵던 시련의 시기에 우리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  목요회, 이 목사님 부부:  목요회… 허… 참 내가 멋진 이름을 붙였나? 첫 번째 만남이 우연히도 마지막 목요일이었기에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것이 벌써 세 번째 모임이 되었다. 소박하게도 1990년 5월에 서로 만났던 것을 기념하는 모임이었지만 달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멋진 진화’를 시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임 자체의 성격이 어떻게 진화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깊숙이 진행된 나이에 걸 맞는, 뒤를 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자가 없는 모임’의 신선, 솔직함의 진가를 나는 마음껏 즐긴다. 남자들만의 대화, 화제는 사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무엇이던지 즐겁기만 한 것이다. 비록 늦은 밤에 모이는 것이라 만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것도 색다른, 아이 같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늦은 나이에, 늦은 저녁에 30마일 떨어진 곳으로 외출을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

이 (동수) 목사 부부를 해가 가기 전에 결국은 만나서 도라빌 성당 근처에 있는 ‘upscale’ 한식당 운암정에서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였다.  일년에 평균 2번 정도 만나는 이 오래된 “아틀란타 한국학교” 인연의 인생후배 부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이런 오래된 세월의 연륜 하나로 친척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몇 해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이 목사, 그 동안 몸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이제는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었고 식사하는 것도 불편한 제한이 없는 듯 보였다. 목회 사업이 사실 아직까지 희망하는 것 같이 열매를 맺은 듯 느껴지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지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 만나서는 오래 전에 흔히 하던 이목사 특유의 농담하던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을 알고 반갑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더 심각한 신앙간증’을 기대해 보며,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  이 세상의 異邦人: 요새 나의 머릿속은 온~통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이 하느님의 종, 진정한 애국자, 사랑의 사제, 성인에 버금가는 행적을 남기신 이 사제가 걸었던 길을 천천히 같이 걷고 있다. 소설형식의 자서전 trilogy: 1편 사랑의 지도,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그리고 지금 ‘쓰면서’ 읽고 있는 것이 3편인 ‘이 세상의 이방인’이다. 첫 두 편은 reading by typing덕에 온전한 2권의 soft copy가 나의 blog site에 남아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제의 삶은 한마디로 너무나 dramatic한 epic drama 라고 볼 수 있기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시간, 공간적으로도 이 사제는 나에게 큰 관심을 준다. 해방 전후의 삼팔선 부근의 묘사, 원산에서의 첫 사랑, 6.25 사변을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하느님의 인도하심..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 이 사제와 같이 울기도 했다. 솔직이.. 나의 ‘빨갱이, 흑백 논리’에 조금은 ‘회색’이 가미되고 있음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솔직한 분의 고백을 어찌 내가 ‘흑백’의 잣대로 가늠을 할 수 있는가..  책 하나로 난공불락의 ‘이념의 성’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나는 현재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Challenge of life time..

Advent 대림절 시작.. 동창회, 파티, 친지들의 각종 모임들.. 구세주 탄생, another turkey meal, 망년회.. 송년 countdown.. 등등 ‘즐거운 것들만’이 연상되는 12월, 2017년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고 나는 내 자신이 깊은 시름의 늪으로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일생일대의 biggest  challenge가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Forgive or Forget?

올해 들어서 최소한 나로서는 처음 인생공부를 한 계기들이 2건 있었고 모두 ‘나쁜 것’들이어서 정말 해가 가기 전이라도 잊고 싶은 것들이 되었다. 잊는 것, 나는 그런대로 자신 있다고 했지만 이번의 것은 종류가 아주 다른 모양이다. 잊는 것은 고사하고 꿈속에서도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말이 사실은 고상한 것이다. 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는, ‘치가 떨리는’ 그런 것이다.

올해 일어난 왕마귀 사건과  미친년 사건,   모두 레지오와 직접 관계가 되어있고 또한 ‘상상을 초월한 해괴한’ 사건들이며 모두 주범(a.k.a 조폭)들이 ‘여자’ 였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7년 전에 사실상 냉담을 풀고 교회로 귀향한 직접적인 동기가 레지오 입단에 있었고 나는 성모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육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자탄이 아틀란타에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이곳 ‘자비의 모후’ 에 머물 각오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들이 일어난 후유증은 무엇인가?  이 두 인간들이 바로 내가 속한 레지오 조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단원들이 떠나게 만들고, 밖에서는 요란하게 방해공작을 하는 등.. 정말 신부님(영적지도자)에게 조차 말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의 유치한 짓들을 나는 모두 듣고, 목격을 하였다. 과연 이것들의 나이가 몇 살이며,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인간들인가?

예전의 나였으면 거의 100%, ‘더러운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교회를 즉시 떠났을 것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 그 인간들에게 lesson을 주기 위해서도 나는 절대로 떠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또한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을 각오(teeth to teeth)가 되어있다. 이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글거리는 분노’가 절대로 잠잠해 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 생각만 하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과연 성모님이 이것을 참아 내실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죄’일 것이다. 우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비롯한 많은 ‘영적 독서’에서 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용서하거나 잊거나’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시간,세월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용서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현재로는 HELL NO!에 가깝다. 불가능이다. 잊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인간들을 전혀 안 볼 수 있으면 그런대로 잊을 수도 있는데 성당만 가면 이 ‘회벽칠 얼굴’들이 왜 그리 자주도 보이는가?  이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은 길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뇌세포의 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수동적’인 idea다.  좀 더 proactive한 방법은 없을까? 기도? 그들에게는 솔직히 이 시간조차 아깝다.  다가오는 판공성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현재 나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Deep November, ‘예수 없는 십자가’

¶  그야말로 11월 말, deeper & deeper November를 달리고 있다. 주위의 올 가을의 낙엽들이 무섭게 떨어진 후 이제는 O Henry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시키듯 처량하게 남은 잎새들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게 되었다. 11월의 처량함이라고 할까.. 성탄을 기다리는 가톨릭 대림절 Advent, 11월은 또한 바로 그날을 기다리는 나날들이기도 하기에 나는 근래에 11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Sandy Denny – Late November – 1971

 

¶  단출한 가족인데 그것도 한 사람이 빠진 올해의 Thanksgiving Day, 하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작은 딸의 초대로 올해 그들의 1st Home 이 있는 Tucker로 가서 몇 시간을 즐겼다. 오랜 세월 엄마의 전통을 배운 듯 아주 맵시 있게 traditional turkey meal을 준비한 나라니, 정성을 다 한 것이 보여서 고마운 마음으로 배불리 먹고 마셨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사실은 holiday 기분이 좀 덜 나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좋았으리라. 새로니는 친구들과 Nevada로 rock climbing trip을 갔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climbing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전 ‘바위를 타던’, 서울에 있는 도봉산 선인봉의 바위와는 아주 느낌과 종류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  지난 주 부터 약간씩 느껴지던 ‘감기 기운’이 일주일째 가고 있는데, 이제는 기분이 쳐지는 느낌이다. 올해 처음 맞았던 flu shot 덕분인지 모든 감기, 독감의 증상이 아주 mild한 듯한데 문제는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끌며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사실이다. 미열도, 살살 흐르는 콧물 등은 큰 문제가 아닌데 목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잔기침, 이것이 사람을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다. 제발 빨리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  예수 없는 십자가: 밤에 밖을 보니 멀리서 휘황찬란한 빛이 퍼진다. 자세히 보니 ‘크리스마스 light’ 가 아닌가? 아~ 그렇구나… 올해 ‘첫 Holiday’ 기분이 잔잔히 주변에 가라앉는 이즈음 나는 의미 있는 ‘시간,공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도 ‘책’으로…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ilogy중에서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바로 그것이다. 1편인 ‘사랑의 지도‘를 얼마 전에 ‘필사’로 읽은 후 곧바로 2편의 ‘필사 독서’가 시작되었다. 하도 typing을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진 듯하다.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typing하면서 reading하는 것 전혀 문제가 없다.

고 마태오 신부님을 ‘재발견’하게 된 이번의 ‘책 여행’은 놀랍게도 나에게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를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속도로 typing & reading을 하면 2편 ‘예수 없는 십자가’는 2~3일 내로 끝이 날 듯하고 곧바로 3편 ‘이세상의 이방인‘을 읽기 시작할 예정이다. 12월 중에 이것을 완독하면 나는 2+ 개월 사이에 고 마태오 신부님의 true classic trilogy를 모두 읽게 되는 것이고 부수입으로 soft copy가 남게 된다.

이 책으로 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가 살아온 민족의 비극을 같이 걷게 된다. 3.8선부터 시작하여 원산, 함흥, 제주도, 최전방 고지 전투를 하느님을 믿는 젊은 눈으로 본 기록영화, 참회록, 사랑의 드라마.. 이 세 권의 기록소설은 한 마디로 대 서사시 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6.25를 전후로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싸웠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니 아직까지도..  한반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가..

 

Thanksgiving, 2017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  Aromatic, cozy, toasty, teary, crispy, loving, reminiscing… 올해 ‘최고의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얼마나 멋진 전통인가.. 태고 적 느꼈던 고국의 추석도 비슷하겠지만 이것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이곳에서 공기를 마신 세월이 저곳의 그것보다 몇 갑절이 되어나는 이 세월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 ‘안 보이는 그 무엇’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나는 역시 이곳, 이때.. ‘공간과 시간’의 피조물인 것이다. 무엇(들)이 올해 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들인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는 표현,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 라는 것, 과연 피곤한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만끽했던 최대의 은총이었다. 크게 아픈 가족이 없었다. 비록 무섭게 나이가 들고는 있지만 그것과 맞갖은 불편함과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건강했다는 것의 corollary는… 덕분에 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7 seven dayer 의 전통.. 을 계속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멋모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매일미사의 기적’은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은 충분히 안다. 이것은 우리가 5년 동안 매년 받았던 감사의 은총과 기적 중에 으뜸에 속한다.

Year of Cat, 올해 우리는 ‘고양이 해’를 맞았고 감사하고 뜻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냈다. 우연히 우리 집 뒤 마당을 골라서 태어난 8마리의 갓난 고양이 kitten들, 이것도 인연인가? 분명히 하늘이 주신 생명체이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듯한 사명감으로 4여 개월을 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던 세월도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결국은 사람의 아기나 고양이의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태어난 생명들과 정을 들였던 그 시간들, 때에 따라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모두 건강하게 adopt를 시켰다. 이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

우리들이 ‘복무’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자비의 모후’ Pr(Praesidium) ,  한때 ‘female’ vermin들의 어이없고 치사한 ‘진주만 폭격’을 당했을 때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우리의 전초소대, 역시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났다. 우리가 한 역할도 자랑스럽지만 역시 보이지 않은 손길의 이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쓰라렸던 경험은 아직도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역시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년 말까지 관상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  Full Retirement, 우리들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올해로 우리 모두가 full retirement 로 들어갔다. 연숙의 Medicare가 시작되고 SS benefit이 kicked-in, 이제는 완전한 fixed-income age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 둘, ‘오래 살았다’ 라는 생각이고 그저 이제는 남에게 (가족, 사회,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안 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절제 있게, 겸손하게,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자세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어떻게 지내는가? 마지막으로 네 식구 모두 모여 turkey meal을 즐겼던 것이 언제였던가? Halloween처럼 이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변한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이런 것은 자연히 변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 ‘작았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 왜 그럴까? 올해는 더 흩어진 모습일 뻔 했지만, 큰애는 travel [Rock climbing in Nevada, business trip 등]로 시간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도 작은 애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기쁘고 신나지 않으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나이 때문인가… 그래도 작은 애야 불러주어서 고맙다.

 

Uncle Julio’s, urge to, 사랑의..

¶  Uncle Julio’s: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김 바오로, 데레사 예랑씨 부부의 초대를 받아서 외식을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는 우리가 그 부부를 초대해서 Duluth 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에 대한 응답인 듯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저녁 때의 rush hour를 헤치고 Sandy Spring에 있는 Uncle Julio’s라는 Mexican restaurant로 갔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감이 있는 Mexican food였지만 비교적 Americanized된 것이라 큰 surprise는 없이 맛있게 즐겼다.

 

 

이 부부와 처음 인사한 것은 사실 몇 년이 되었을 것이지만 인연이 없는지 다시 어울릴 기회가 좀처럼 오질 않다가, ‘악질 여자’들을 몇 번 겪고 나서 ‘보통 형제님’들이 갑자기 그리워짐을 느끼고 부부친교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우리와 살아온 background가 많이 다르기에 공통 화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부부가 같은 교우에다가 자매님은 레지오, 문인화 등으로 엮인 것이 있어서 큰 걸림돌은 없다. 다만 형제님이 나보다 더 말이 적은 편이고, 대화하는 방식도 아주 달라서 적응하려면 아마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 기본적인 예의와 ‘정상적인 사고방식’만 있으면 그 이외에 무엇이 문제인가?

 

¶  Urge to KILL: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죽이고 싶다’라는 Urge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 한 해에 연속으로 일어난 ‘왕마귀 사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지난 수개월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 정도로 분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 정도까지 간 것에 나는 사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한 인간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 참 슬픈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임을 숨길 수가 없다.

Hollywood 영화배우 (Loving You 에서 Elvis Presley와 열연)에서 수녀가 된 Dolores Harts  의 자서전 The Ear of the Heart 에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한 것이 보인다. 그녀도 영화배우 시절에 주변의 ‘어떤 나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솔직한 감정을 느꼈다고 쓴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고 더 솔직하게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녀가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영화 Lisa의 한 장면, 꿈 속이라면 몇 번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사실 큰 죄라고 할 수 있기에,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제일 심각한 고해성사 주제가 되었다.

 

영화 Lisa,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World War II suspense drama의 한 장면

 

¶  ‘사랑의 지도’ 필사 완료: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자서전 epic love story 제1편인 ‘사랑의 지도’, ‘필사’가 며칠 전 완전히 끝났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6.25당시 해군으로 원산에 상륙한 이후 중공군 개입 이전까지 머물던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숙’과의 사귐, 결혼약속, 그리고 급작스러운 이별로 끝나는 1편 ‘사랑의 지도’ 다음 2편인 ‘예수 없는 십자가‘의 필사가 곧바로 시작이 되었다. 주로 해병대로 싸운 전투경험일 터이지만 나는 숙과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이 더 관심이 간다.

근래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우선 화장실에 둔 책이 있다. 대강 2~3 권 정도가 toilet 옆에 항상 있는데, 이것들은 ‘장기간, 급하지 않은’ 그런 책이지만 결국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을 이곳에 둔다. 그러니까.. 그 중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책을 하나 골라 toilet에 앉아 있는 동안만 번갈아 가며 보는 것이다. 이때에 책을 읽는 기분은 상상하기에 따라 우습기도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이것은 책 전체를 확실히 읽게 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나의 ‘비법’은, ‘필사 독해‘하는 것인데 ‘쓰면서 읽는 것’이다. 여기서 필사, 쓴다는 것은 사실은 typing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이중의 효과가 있다. 난독을 피하게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되고 끝이 나면 멋진 나만의 soft copy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수십 권의 softcopy를 만들어 blog site에 올려 놓기도 했다. copyright문제에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fair use 임을 밝혀둔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인이 되셨지만 나는 이 ‘서사시’적인 걸작 사랑의 지도를 읽고 이 신부님을 너무나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니.. 존경하고 싶은 분이 되었다. 불과 20여세까지의 이야기지만 어쩌만 그렇게 성숙, 성실, 용기, 부드러움.. 골고루 갖춘 젊은 남자였을까? 솔직하고 섬세한 필체로 그렸던 ‘숙과의 사귐 과정’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내가 그 주인공, 고 마태오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이 독후감은 꼭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이 70에서도 나이 20세 당시의 ‘고백록’을 쓰려면 이와 같은 ‘모범적’인 글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as ugly as it gets..

 

Ugly, sad: 갈 때까지 갔구나..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으려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Trump-era의 한 추악한 단면을 가까이에서 자주 보며 이세상의 어두운 세력이 분명히 있음을 실감, 절감을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내가 조금은 alarmist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 냉철한 reasoning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내가 현재 reasonable한 인간인가… 어려운 문제다.

며칠 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의 꾸리아 단장 선거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이런 alarmist 중의 하나가 되었다. As ugly as it gets.. 내가 느끼는 이 경고성 진단이 아마도 거의 현재 우리가 소속된 레지오의 현황, 바로 그것이다. Trump-era와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겉으로 돌아가고 있는 ‘꼴’은 정확히 Washington politic 과 비슷한 것.. ugliest, hateful, crude politics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겸손, 순명, 부드러움’의 성모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단 말인가? 순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듯한 인간이 순명을 외치고 있는가 하면 ‘사랑과 겸손이 결여된’ 정말 ‘야비한 인간’이 leadership으로 설쳐대는 (이날 이 flawed leadership이 보여준 행동은 아마도 absolutely positively most cruel한 case로 기억될 듯..) 그 ‘극장’은 한마디로 worst Saturday Night Live였다. 잊고 싶고 다시는 안 겪고 싶은 경험이 되었다.

 

Falling, at Big Canoe..

 

¶  Fall’s falling:  갑자기 ‘다시’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back yard를 응시하니.. 와~~~ 파란 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조리 노랗고 빨간.. 색으로 변했고 땅은 온통 낙엽으로 뒤 덮인 모습들, driveway도  길과 잔디의 경계가 완전히 가려진 ‘낙엽이 뒹구는’ 길로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바로 지금이 fall peak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또 떨어질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것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왜 나,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갑자기’ 온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난 2개월 동안 주변을 잘 못보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럴만한 이유는 자명한 것이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잊고 산 날들이 그저 쓸데없이 허송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부터 년 말까지의 ‘멋진 나날들’을 조금 더 멋지게 보내면 된다.

 

 

 

Big Canoe:  며칠 전에 Y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으로 아하.. 오랜만에 그 집에서 모이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Big Canoe (North Georgia) 의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전원 全員’이 모인다는 짧은 대화를 했다. 전원 이란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친지’들 그룹을 말한다. 예전보다 조금 뜸하게 모이기는 하지만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4쌍의 부부들, 스스럼이 없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중년에 가까운 나이들에 형성이 되었기에 지나친 기대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관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나이 또래들의 이상적인 우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Big Canoe는 North Georgia mountain에 있는 ‘Mountain Community’의 이름이다. Golf Course를 비롯해서 vacation home들이 높고 깊은 산 속에 ‘즐비’한 이곳,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는 잘 몰라도 경치가 기가 막힌 곳이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단풍의 풍경’은 일품인데 지금은 단풍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peak season이 지난 것이다. 거의 10년 전에 이 그룹이 한번 같이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Y형 부부가 이곳에 주위 경관이 기가 막힌 property를 지난 올해 초에 아예 사버린 것이다.

거의 3000 feet가 넘는 Georgia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집, 차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급경사, 급커브 등등이 편안하게 drive할 곳은 아니었다. Y형의 건강상 문제로 공기가 좋은 이곳을 ‘준비’했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차갑고 해맑은’  주변 공기는 아마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100% 해결이 된 지금은 vacation home으로 쓰일 듯한 이곳,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서 group이 모여 party같은 것을 하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난 주에는 West Bank park엘 갔고 한 주 뒤에는 Big Canoe, 올해는 비록 peak season이 다 지나갔지만 야외로 나갈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것을 보니… 그 이유가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民族 의 悲劇, 1961

만화, 민족의 비극 표지, 1961

‘민족의 비극’, 1962년 1월..  내가 55년 전에 ‘탈고 脫稿’한 50여 페이지의 ‘먹물로 그린’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자작 自作 만화’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가보 家寶’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지금 이 만화 책의 ‘외형적, 물리적’ 상태는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고 조금 험하게 다루면 망가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만지지도 않고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모셔둘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려서 fully digitized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당시에 그렇게 ‘희귀’했던 stapler, 현재 몇 불 弗이면  살 수 있는 그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역시 전통적인 공구였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동네가게에서 가는 철사를 사다가 이 책을 엮었다. 그것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는데.. 문제는 이 homemade staple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1961년 경 서울 가회동 잡화상(철물도 취급하는)에서 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true antique value가 있는 것, 돈을 주고 어디에서도 살 수 가 없는 것이니.. 쉽게 바꾸거나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진다.

우선 몇 page를 scanner에 책갈피를 강제로 펴서 scan을 해 보았다. 역시 보기가 안 좋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이렇게 55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시 이 만화를 ‘애독’ 해 주었던 몇몇 원서동 苑西洞 죽마고우 竹馬故友 (안명성, 유지호, 김동만 등등) 이 자신들이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할 것이라 믿는다.

이 만화의 그림 technique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것들은 거의 99%가 당시 만화계의 영웅 ‘산호‘ (선생님)의 bestseller 우리의 영웅 ‘만화 라이파이‘를 비롯한 다른 ‘전쟁, 역사 물’에서 온 것이다. 24시간을 그런 그림을 보며 살았던 당시에 그것을 흉내 내어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을 거의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렸으니.. ‘공부, 공부, 입시’ 지옥이었던 당시, 우리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고 결국은 이 만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만화가 이 만화 바로 전에 완성이 되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없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이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항변을 할  수 없었다. ‘굶어 죽는 만화가’가 될 것으로 염려가 되셨다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그 만화, 나에게는 아련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없어진 만화작품의 그림 기법, story 같은 것이 나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저 어린 나이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날랐던  그 만화시절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만화책을 완전히 ‘해체’해서 full scanning을 한 후에 pdf book format 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이 완성 되면 나의 serony.com blog에 ‘영구히’ 남길 것이다.

 

 

all saints & souls, west bank

¶  10월의 마지막 날,  온통 ghost, evil spirit으로 가득한 Halloween 을 지내자 마자 11월은 그와 정 반대로 온통 good, holy spirit이 가득한 며칠을 보내는 날들이 되었다. 가톨릭 전례력으로 11월 1일은 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대축일), 2일은 All Souls’ Day(위령의 날)이었다. 올해 미국에서 1일은 의무 대축일 (Holy Day of Obligation)이라서 ‘양심 있는 교인’은 의무적으로 미사참례를 해야 한다. 그 다음날 2일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날, 그러니까 위령미사가 있는 날로서 이렇게 11월은 이렇게 우리에게 바쁜 날들로 시작 되었다.

Parish(본당)가 한국과 미국 성당 두 곳인 관계로 양쪽의 미사 schedule을 절충하며 따라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한국 쪽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성인의 날 대축일 미사는 아예 없고 위령미사는 원래의 11월 2일이 아니고 4일 토요일에 Marietta Memorial Park에서 위령미사가 있어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조금은 피로하기도 했지만 3일 모두 참례할 수 있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

 

 

성인들.. 영혼들.. 모두가 언뜻 듣기에 정말 어렵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말들이다. 성인들, 그들은 나로써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위대한 ‘하느님의 일’들을 한 ‘사람’들이다. 어디선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라는 ‘웃기게’ 멋진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성인이?’ 하는 물음에는 잠잠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인들의 배경과 과정을 보면 사실 모두들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그야말로 ‘누구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그러면 나는? 허… 과연 이 나이에.. 어떻게 살다 죽으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해괴한 질문이 아닌 듯 싶다.

 

 

11월은 ‘죽은 이들의 달’이다. 죽은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최근의 본격적인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음의 의미’를 전혀 믿지 않았다. 허구적 신앙 속에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나의 과학적 의미’만 고집하며 살았다. 그런 나의 허구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그리스도교적인 내세관이 자리를 잡게 되고 이제는 이것을 믿는다. 죽음의 세계도 ‘볼 수 있는 과학적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 없는 다른 세계임을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예전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단계가 죽음임을 내 생애의 끝 무렵에 겨우 알게 된 것이다. 나아가 ‘죽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그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연도, 위령기도 등에 우리 mere mortal 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있음을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참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이 아닌가?

 

¶  Old Clock Time’s Back! 올 초 정확히 3월 12일에 잃어버렸던 1시간을 되찾는 날이 오늘 드디어 왔다. 10개 (거의 13)도 넘는 시계(벽시계 이외도 많다) 들을 온통 1시간 되돌려 놓는 것은 비록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 시간을 되 찾은 것으로 위로를 삼고 다시 계절은 저녁이 훨씬 깜깜해짐을 상상한다. 그것이 바로 겨울의 느낌을 미리 주는 듯해서 어깨가 벌써부터 움츠려진다. 벽시계를 비롯해 gas range, microwave oven등의 시계들 모두 dumb clock이라 손수 바꾸어야 하지만 smartphone, desktop PC 등은 (Internet이 있건 없건) 물론 알아서 시간이 바뀐다.

하지만, 그 중에서 오늘 내가 제일 ‘감탄’했던 것은 우리 집의 오랜 역사 (20+ 년)를 자랑하는 ActiveHome, X10  (house light) controller가 제대로 시간 바뀐 것을 알고 저녁 때 제시간에 불을 켜 주었던 것인데, 몇 년 전만해도 computer로 일일이 manual mode로 시간을 바꾸어 주어야만 했던 것이 작년에 update한 firmware에서 이것을 해결했던 모양이다. 비록 cutting-edge technology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old technology 가 건재한 것을 보면 기분이 너무나 좋다. 새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역사와 track record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  West Bank Park: 오래~ 전 아틀란타로 이사 온 후 말로만 듣던 Buford Dam이란 곳을 이번 일요일 늦은 아침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Lake Lanier 의 서쪽에 위치한 그곳에서도 West Bank park란 곳엘 갔는데, 알고 보니 Lake Lanier는 1991년 경 직장(AmeriCom)에서 여름에 놀러 갔었던 바로 그 Lake였다. 거의 25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밖으로 놀러 가는 것이 흔치 않은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날이 되었다. 가을이라 모두들 단풍구경 drive를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집을 떠나는 것을 귀찮게 여기기에 올해도 그렇게 넘어가나 보다 했는데 이런 예외가 생겼다. 지난 달에 ‘가입’한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60+ 대 친목단체 ‘어둠을 밝히는’ 등대회에서 가을 picnic을 가는데 합류를 한 것이다.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거의 2개월을 허비하고 보니 진정한 단풍 낙엽의 멋진 가을의 진수를 놓친 것이 아깝기도 하고 해서 이번에는 ‘무조건’ 참가를 하였다.

결과는 resounding success였다. 가길 너무나 잘 했던 것이다. 적당히 색깔이 저며 든 가을의 정취로 기분전환도 적절히 되었고 새로운 교우들을 사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즐거웠던 것은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 자매들이 대거 그곳에 모여있었다는 사실. 돼지띠, 쥐띠 교우들이 그곳에 생각보다 많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동년배를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연숙까지도 이런 나를 조금 이상한 눈을 볼 정도다. 하지만 나는 ‘같은 시기에 세상에 나온 사람들’ 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하나 만으로 큰 의미를 느끼는 것 뿐이다. 처음 참가한 관계로 ‘입만 가지고’ 가서 먹고 마셨지만 다음 부터는 우리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을 때는 돕기로 하였다.

 

Three ‘onna’ Stooges

 

Three Stooges.. 오래 전의 흑백영상이나 영화의 제목이 연상되는 ‘세 명의 바보 멍청이들’.. 지난 2+ 개월 동안 문득문득 3명 바보들이 보여 주었던 ‘해괴’한 행동을 생각하며 세상에는 참 ‘미친 바보’들이 적지 않게 많구나.. 하는 슬픈 생각을 했다. 이 blog의 제목이 three stooges가 아니고 three onna stooges라면 onna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일본어)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3명의 ‘바보 여자’들이다. 아예 일본말로 ‘혼또니, 바카 온나’라고 했어도 되겠지만 구체적으로 ‘광대 clown에 가까운 바보’들을 뜻하고 싶어서 Stooges로 정했다.

이 세 명은 두 달 이상 전에 벌어졌던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의 주연(주범 主犯)  배우를 포함한 들러리 조연 助演들까지 3명을 말한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는 참 많은 인생공부를 했고 나아가 신앙적 측면으로 보는 훈련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전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나를 제일 슬프게 한 것은 나의 생애 처음으로 바로 가까이에서 ‘악’의 존재를 느끼게 된 사실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깊숙한 곳에는 ‘선’이라는 ‘핵 核의 중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아닌 case를 70평생 처음으로 코 앞에서 목격을 한 것이다.

그것도 충분히 나를 경악하게 했지만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런 사건에서 보여준 다른 2명 여자들의 예상치 못한 해괴한 행동이다. 한때 ‘모범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살 만큼 산 ‘세월의 지혜가 넘쳐야 할’ 사람, 솔직히 아직도 그들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다. Bizarre, weird, unreasonable..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을 못하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런 것인가? 이렇게 unreasonable한 세상인가? 교회 안이 이렇다면 세속적인 세상은 과연 어는 정도일까? 선과 악의 존재는 분명히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정말 슬픈 노릇이다.

 

10월이여 안녕..

 

¶ 10월이여 안녕:  거의 70마일로 ‘질주’한다는 내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다 지나간 10월 달에는 지나간 달들에 비해서 훨씬 느리게 40~50마일 정도로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이번 달에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대로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나가는 10월이 나에게 지루한 나날들이었다는 말인가? 그런 건 아닌 듯하다. 그런대로 ‘성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나마 어떤 ‘악’의 불 기습으로 near-death-experience, coma의 위기에 몰렸던 우리의 20년 역사의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서서히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던 한 달이었는데 그것이 나의 세월감각을 100%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St. Augustine, KantTime is subjective, 역시 이 ‘느껴지는 시간’은 알쏭달쏭 한 문제다.

 

 Darkest Halloween: 10월과 작별을 하려면 마지막 날인 Halloween, 그것도 어두운 저녁을 지내야 한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마도 거의 10년 전 쯤 부터가 아닐까?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떠난 후 였으니까.. 그 때부터 Halloween은 ‘아련한’ 추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Trick-or-treat 꼬마 손님들을 기다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집은 적막이 휩싸이고, 무언가 세월이 엄청 흘러가고 있다는 불안감까지 감돌았다. 우리 집도 이제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새까만 옛날, 1973년 가을 미국에서 맞은 첫 Halloween,  나누어 줄 candy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날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던 그날,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였다.  근래 우리 집의 10월 31일 저녁도 서서히 그렇게 변한 것이다. 올해도 그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작년부터 옆집 David  도 흉가처럼 깜깜해진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예전까지만 해도 우리 neighbor중에서 제일 ‘요란하게’ 이날 저녁을 ‘아이들처럼’ 즐겼던 집인데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역시 깜깜한 집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네를 돌며 trick-or-treating을 하던 시절, 이제 생각하니 아름답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으로 남는다. 비록 고국의 추석명절과 느낌은 다르겠지만 이것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 당시의 아이들 이제 모두 성인이 되어가고, 우리들은 빠르게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인생 윤회의 감상에 젖는다.

올해 Halloween 저녁때는, 물론 집의 불을 완전히 끄고, 무섭기는 하지만 추억의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 바로 1973년 영화 The Exorcist다.  이 영화 이후 비슷한 것들이 무척 많이 나왔지만 ‘충격적인 느낌’에는 이것을 따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느꼈던 ‘공포의 추억’은 사실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말하는 것도 무서운’ 그 정도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고 1주일 정도는 밤에 불을 켜고 잔 기억도 난다. 그 이후 두세 번 정도 더 극장에서 보기는 했지만 집에서 혼자 보는 것은 아직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얼마 전 YouTube에서 full-version을 download했지만, 아직도 처음 30분 정도만 보고 더 진전이 없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영화가 무서운 것이다. 단, 이 영화가 결국은 나에게 ‘가톨릭 신앙’을 주게 했던 사실은 지금 생각하니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해서 불원간 조금 덜 무서운 자세로 끝까지 다 볼 각오를 다지고 있다.

Devils Exist! – The Exorcist, 1973

 

¶ 올 가을 첫 추위: 지난 며칠은 가을이 아니라 초겨울 같은 냉기서린 강풍과 첫 빙점 아래로 떨어지는 그런 날이 되었다. 아래 위층 할 것 없이 요란한 central heating fan소음이 낮에도 은은히 들리는 그런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날들을 좋아하기에 불평은커녕 all are welcome이다. 결과적으로 엉뚱하게 나는 주일미사를 빼먹게 되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그저 편하게 쉰다는 편안함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날도 있는 것, 기나긴 신앙, 인생 여정에서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rare exception 인 것만 명심하면 되는 것이다.

 

올 가을들어 제일 춥고 을씨년스럽던 날, Tobey와 desk는 나의 피난처가 되었다

 

¶ 연총연습 시작: 올해 순교자 성당 레지오 행사를 결산하는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줄여서 ‘연총’이 12월 3일로 다가오고 있다. 한 달이 넘게 남아있지만 우리에게는 급한 준비로 다가왔다.  우선 단원의 숫자가 줄었고 시간이 예년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이제부터 매주 연습을 한다 해도 5번 정도다. 매주 연습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나는 올해 ‘사정상’ 모두 취소를 하자고 제안도 했지만 결국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건재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인원이 너무 많은 호조건으로 ‘여유 있게’ 선택을 해서 guitar반주까지 곁들인 춤, 합창을 했지만 그런 호조건은 이제 물 건너 갔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것은, ‘의도적으로 짧은’ 것. YouTube로 알려진 ‘어떤 수녀님의 귀여운 노래와 율동’ ‘앗싸 좋아요!‘ 란 것이다. 나에게 ‘율동’은 안 맞는 것이지만 오늘 첫 연습을 하고 보니 사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어떤 format으로 할 것인가.. ‘반주, 편곡’ 들의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

 

Next stop 1969

1969 1969 1969 1969 ….

 

나는 지금 한창 ’20세기’, 1969년 경으로 돌아가 그때의 개인역사, 내 주변의 세계를 머리를 쥐어 짜며 기억하려고 각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본격적 시대별 회고록 series blog: memoir 가 3년 전쯤 1968년경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이 20세가 되던 1968년경까지는 글로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 이후에서 현재까지 것들, 세월로 보면 엄청 길었던 시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다.

얼마 전부터 더 이상 1968년에서 멈추어 있을 수 없다는 우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그 당시가 명료하게 기억이 나던 것들이 이제는 급속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을 갑자기 느낀다… 내일 아침을 내가 못 본다면.. ‘나, 平昌李氏,  이경우 李炅宇‘라는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만 아실 수 있는 영역에만 속하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1969년은 내가 연세대 3학년 시절인데, 오랫동안 머리 속에 그 당시의 기억을 조금씩 정리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정리가 되고 정확한가 한 것이다. 당시의 개인 일기는 물론 남아 있을 리가 없고(사실 일기가 있었지만), 사진 몇 장 정도로 상상력을 동원하면 대부분 ‘희미한’ 회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당시의 신문들, 특히 국제적인 역사는 미국의 대표적 화보잡지 LIFE magazine 에 의지하면 된다. 하지만 이 작업은 거의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이것도 기적과 같은 높은 곳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떨까?

Neil Armstrong 의 잡음이 섞인 달착륙 당시의 육성, 소백산 연화봉 정상의 운해, 3선 개헌 반대 데모 때 최루탄이 나르던 연세대 굴다리, 기타귀재 鬼才 보성고 심재흥과 YMCA sing-along-Y 전석환, 미국 Woodstock  (rock) festival,  Pop, Folk & Rock music에 심취하던 시절 등등 거의 생생하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비록 이 작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 그 자체는 즐거움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기쁜 우리 젊은 날’ 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니까.. 이것도 ‘세월의 선물: 늙음만이 주는 특혜’ 중에 하나일 것이다.

 

Galveston – Glen Campbell – 1969

 

Sweet Caroline – Neil Diamond – 1969

 

unending morning coffee 외..

¶  ‘Unending Coffee’ Morning: Instant ‘stick’ coffee  에 이어서 supersize Don Pablo gourmet ground coffee.. 나의 머리 속은 벌써 바삐 흘러가는 ‘혈관 속의 움직임’는 느낀다. 이것의 바로 joy of morning caffeine 일 것이다. ‘오래~ 전’ 직장생활 할 시절, 출근해서 그곳의 아침모습을 그리며 회상을 하기도 한다. 참.. 무언가.. ‘세상은 움직임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절들이었다.

Early Morning Coffee의 마력과 매력인 이런 추억과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고 그것이 ‘중, 노년’ 에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이것은 그 이전 시절에서는 ‘절대로 100%’ 느낄 수 없는 세월 흐름의 마력 魔力 이다. 오늘 이른 아침은 absolutely, positively perfect coffee experience를 주기에 ‘알맞은 추위’까지 선물로 주어졌다. 무언가 3박자가 맞는다고 나 할까?

이렇게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갖게 한 다른 이유는.. 예상치 않게 여유를 갖게 한 시간적 bonus, 아침 ‘평일, 매일미사’를 거르게 되었기 때문[she doesn’t feel well] 이다. 5년이 훨씬 넘어가는, 이제는 완전히 습관이 된 이 9시  매일미사는 이제 우리 둘 psyche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렇게 가끔 경험하는 exception의 즐거움이 이렇게 오래 ‘매일미사’를 지탱시켜주는 비밀 임도 우리는 잘 안다. 물론 exception은 가끔 있는 rule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exception 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  ‘Senior’ Fall  day trip: How could it be on..?: why, how come, 도대체, 도~시데.. 란 말을 되풀이한다. Mother Nature란 것, 대부분 겸허한 심정으로 받아드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할까? 아마도 나에게 100% 직접 상관이 되는 것이라 그랬을 것이고 사람은 이렇게 ‘약한 이기적 동물’이다. 몇 주전부터 계획되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사회복지분과’ 주최의 ‘가을 경로 야유회’가 바로 그것이다. 가을이라는 말은 분명히 ‘단풍 관광’과 연관이 되었을 것이고 ‘경로’는 말 그대로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뜻인데.. 야유회라 하지만 이것은 bus를 rent해서 Atlanta Metro를 완전히 떠나서 State Park로 가는 당일코스 여행이었다. 그것이 ‘갑자기’ cancel이 되었다. 범인은 역시 Mother Nature였다. 그렇게 날씨가 좋다가 왜 하필이면 그날 하룻동안만 ‘차가운 비가 옴’으로 예보가 나온 것일까? Timing이 너무나 절묘해서.. 이것도 혹시 무슨 숨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경로 敬老’ 란 말이 우리에게 연관이 되는 것을 조금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도 ‘경로’를 받으러 참가신청을 했는데…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악마’의 그림자를 깨끗이 잊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과장 자매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모처럼 하루를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것을 상상했는데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것도 무슨 높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를 하며, 100여명 어르신들을 ‘babysitting’ 하려 불철주야 준비를 했을 그 ‘억척 volunteer’ 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목요회 월례모임:  어제 밤에는 제2차 목요회 모임이 ‘한일관’에서 있었다. 지난 달 마지막 목요일에 모인 것을 ‘기념’해서 내가 목요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생각하니 그런대로 멋진 이름이 아닌가? 1990년 5월에 연세대 동문 이WS 형제가 ‘처음 집’으로 이사 갈 때 모였었던 3명의 남자가 거의 30년 뒤에 다시 이렇게 모였고 계속 모인다는 사실은 정말 재미있기만 하다.

목요일날 밤에 모이는 것이 조금 색다르지만 그런대로 이점이 있다. 모두들 목요일날 밤은 그런대로 바쁘지 않다는 사실, 가족이나 가정에 큰 부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low-key 로 만나는 것, 나는 이 그룹이 아주 오래 가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2시간 정도 먹고 얘기하는 것, 이번에는 1990년대를 중심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열심히들 살았겠지만 얼마나 그 세월들이 행복했는지는 서로가 추측할 할 수 밖에 없었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삶에 대한 고백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다음 달 마지막 목요일을 나는 Thanksgiving Day인 줄 알고 부득이 옮겨야 하는가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그 휴일의 다음 주였다. 이것도 우리 모임 장래의 청신호 같은 느낌을 주어서 흐뭇하기만 했다.

 

그래, 사는 거다!

돼지띠 동갑내기 ‘프카’ (Francesca) 자매님이 ‘약속을 잊지 않고’ 책 한 권을 내게 슬며시 건네주었다. 비교적 근간 近刊 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쾌한 장정과 비교적 ‘젊은’ 묵상, 명상이 간결한 수필로 엮어진 책, 책의 제목이 바로 ‘그래, 사는 거다!‘ 라는 조금은 low-key지만 대담히 선언적인 제목이다.

저자는 ‘전원’ 이라는 천주교사제 인데 가톨릭 세례명이 조금은 흔치 않은 예수님의 12사도 12 disciples  중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 Bartholomaeus‘ 다.  1995년에 서울 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 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40대 정도의 ‘비교적 젊은 사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렇게 추측에 그치는 것, 사실은 내심 생각한다… 분명히 googling 한 번 정도면 ‘얼굴, 근황,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소리’ 등이 꽤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는 NO, HELL NO! 인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마찬 가지로 minimum, safe distance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니까…

이 책이 나의 손까지 ‘굴러들어온’ 사연은, 지난 여름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새로 생긴 ‘영적독서클럽’의 첫 번째 ‘선정 選定 도서’ 였는데 내가 늦게 그곳엘 갔던 join 관계로 이미 모두들 읽고 와서 의견을 나누고 있어서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어떤 신부의 고백록 같은 정도로 추측은 했었고 당시에 자매님들이 꽤 있었기에 아마도 여성취향의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 그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게 된 것이다. 아주 경량급 light-weight 하고 짧은 chapter들, 이것이야 말로 ‘필사’하며 읽기에 거의 완전한 책이 아닌가?

지금까지 ‘필사’로 읽어 본 것들로 보아, 사실 은근히 호감이 가는 책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 나에게 생각, 묵상거리를 준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C.S.Lewis character in Shadlowlands, BBC TV drama

첫 부분에 나오는 1993년 영국 영화 Shadowlands 를 통해서 본 ‘이론, 영성적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은 나에게 조금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작년에 1985년 Television film으로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고 지난 몇 년간 C. S. Lewis에 심취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론적, 영성적 ‘추상적’인 사랑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사랑을 너무 늦게 발견한 Lewis, 그는 진정한 사랑을 배운 셈이다. 그것도 고통스러운(연인,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쪽으로… 결국 Lewis는 고통 속에서 이론적, 영성적으로 체득한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위대한 영성, 문필가’로 남게 된 것은 아닐까?

성당 사목을 하면서 사람관계에 대한 저자의 괴로운 경험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의견이 다른 것으로 원수 관계로 치닫는 요새 세상에서 더욱 이해가 가는 것이다. 최근 2개월간의 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나는 안다. 저자의 결론이 나에게는 아직도 실천이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무리,무리!’ 라는 결론이고 상책은 ‘100% 잊는 것’ 이다.

‘욕망에 대하여’, 불륜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어떤 주부에 대한 이야기, 탕자의 비유로 ‘우리는 결국 모두 죄인’이고 죄인이 될 가능성이 항상 있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그렇다, 항상 ‘죄인이 될 악마의 유혹’은 실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조금 나은 자세를 가진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면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첩경일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필사로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돼지띠 ‘프카’ 자매님, 나는 언제나 먼저 좋은 책을 사거나 구해서 빌려 드릴 것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필사본 post’는  이곳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