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단상

¶  4월은 미국태생 영국 거장 시인 T.S. Eliot 에 따르면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 그리고 대한민국의 작곡가 박순애 교수의 가곡 classic ‘사월의 노래‘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달이다. 사월의 노래를 생각하면 특별히 1963년 4월이 생각난다. 그때에 나는 서울 중앙고교 1년 재학 중이었고, 사월의 노래는 담임 선생님 김대붕 음악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노래였다. 작곡자가 이화여대 음대 김순애 교수라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 당시 그 이유는 몰랐지만, 혹시 김선생님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후에 들곤 했다.

1963년이면 그 전 해에 일어난 5.16 군사혁명으로 모든 것들이 ‘재건’의 구호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때였고, 사실 ‘느끼기에’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은 했어도 앞날이 희망적인 시절이어서 그 해 4월의 유난히 더 청명하던 계절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때였다. 이곳 아틀란타 지역은 3월에 거의 ‘여름’같은 맛을 일주일 이상 보여 주더니 4월로 접어 들면서 완전히 2월 달 같이 거의 겨울 같은 날씨로 돌아섰다. 며칠 전에는 거의 섭씨 5도까지 떨어질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도 new normal의 하나라고 푸념을 하던데.. 확실히 무언가 변한 것 같다.

 

 

4월의 노래
김소월 시, 김순애 곡

 

¶  올해의 부활절에 이르는 기간은 정말 우리 부부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각가지 기록을 깨면서 보낸 정말 ‘은총’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보냈다. 비록 나는 판공성사를 거르는 심각한 잘못을 하긴 했어도 다른 것들로 많이 보완을 했다고 믿는다. 그 중에서 지금은 거의 습관이 된, 매일미사 참례가 그 중에 가장 큰 보람이 되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매일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서 아침 9시의 미사를 본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연숙이 이번에 시도한 ‘33일 봉헌‘이라는 사순절 행사에 ‘도전’을 하면서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33일 봉헌이라는 것에는 매일 미사 참례를 ‘적극적’으로 권하기 때문이었다. 연숙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라서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갔는데.. 이것도 Never say Never 의 한 예가 아닐까 할 정도로 내가 미리 생각했던 것과 결과적 느낌이 아주 달랐다. 하루를 이 미사로 시작한 것이 너무나 하루를 보내는데 도움이 되는 듯 싶었다.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되었고, 하루 한번 꼭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절대로’ 며칠 못 견딜 것이라 ‘단정’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내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소평가였다. 이래서 매일 미사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있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이것이 올해 사순절, 부활주일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고, 성3일도 빠지지 않아서 판공성사만 빼고는 거의 완벽한 성주간을 보낸 셈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부부나 가정에 어떠한 영향이나 도움을 줄지는 ‘수학적’으로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신앙이란 것,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야말로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  아틀란타 혼또니 입빠이 제 2탄   믿을 수 없다. 정말 정말.. 혼또니 혼또니.. 이것이 바로 요새 유행어로 New Normal인가, New Frontier인가? 이곳 아틀란타의 ‘악명’을 하나 더 높일 사건에 우리들은 놀라기만 했다. 또 다른 한인 일가족 ‘총기 살인,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이고,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아는 사람이 관련이 되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이 사건들의 공통분모는 역시 ‘총’이란 것에 있다. 만약에 이것이 없었으면, 누가 알까.. 일본 같았으면 ‘칼’을 썼을 것이고, 오랜 전 같았으면 아마도 대판 주먹질을 하며 싸울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것도 New Normal 중의 하나로, 완전히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시킬 정도가 되었다. 불륜에서 비롯된 이런 사건은 사실 흔한 것이지만 이렇게 분에 못 이겨 그것도 여자가 총으로 분을 풀고 자살하는 case는 사실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한인들이었고, 불륜의 주인공이 한때 우리가 잠시 알았던 50대 초반의 ‘아줌마’였으니.. 놀라지 않겠는가?

일명 ‘나래 엄마’.. 그 나래라는 여자 아이는 1990년대 초에 연숙의 한국학교 유치반에 있었고, 그 ‘나래 엄마’는 나도 그 당시 그곳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알고 있던 한 젊은 엄마였다. 그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한 가정의 가장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런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을까? 역시, 올바른 인생은 못 살았을 것이다. 나래 엄마와 ‘공공연히 자기 앞에서’ 바람을 피운 남편이 얼마나 증오스러웠으면 그 가해자인 아내는 남편과 나래엄마를 총으로 쏘고 자기도 쏘았을까?

결과적으로 그 부부는 사망을 했지만, 나래 엄마라는 여자는 죽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어떻게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지..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참 무서운 세상이여..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쓰는 사람이 죽이는 것이라는 기가 막힌 궤변이 잘 통하는 이곳 ..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 연도

오늘은 레지오 화요일, 우리부부가 속한 레지오 쁘레시디움 (Presidium1 ‘자비의 모후’가 모이는 날이었다. 지난 몇 주간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고레따 자매님이 돌아 오셔서 조그만 성물 기념품까지 나누어 주셔서 반가웠지만, 거의 ‘영웅적으로’ 암 투병을 하시고 있는 쁘레시디움 회계 J 자매님은 회합이 거의 끝날 무렵에 얼굴을 비치셨다. 회합이 끝나면 곧 12시 정오 미사가 있는데, 오늘은 본당 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께서 강론 대신에 4월 1일 채준호 신부님의 급작스런 선종에 대해서 개인적인 일화를 하나 하시고 사회자로 하여금 마티아 신부의 글 ‘나 왔수‘ 를 낭독하게 하셨다. 미사 후에 곧 이어서 채 신부님의 연도가 이어졌다.

나는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을 본 적도 없고, 강론을 들은 적도 없다. 다만 본당의 website에서 신부님의 강론 비디오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티아 신부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았다. 우선 우리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2000년대 말에, 몇 년간 거주신부로 계신 것을 알고 있고2, 본당 신심단체 중의 하나인 CLC을 적극적으로 활성화 시키신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얼마 전에 레지오 꾸리아에서 빌려온 다른 예수회 소속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읽으면서 채 신부님의 글이 많이 인용된 것도 보았기에 그가 심리학적 상담의 대가인 것도 알게 되었다.

‘채준호 Googling‘ 도 이번에는 큰 수확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미국 Loyola University 심리학 박사라는 것도 알았고, 한국의 ‘초대’ 예수회 관구 장을 역임했다는 ‘빛나는’ 이력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4월 1일 선종했다는 조금은 ‘의아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의아스럽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다. 50대 중반이긴 하지만, 요새의 50대가 어디 옛날과 같을까.. 거의 ‘청년’일 수도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확실하게 어떤 ‘병’으로 선종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사고’는 아닌 듯 싶다. 한마디로 정말 ‘아까운’ 일이다. 천주교회, 수 많은 기대를 어깨에 짊어졌을 만한 ‘인물’이었을 텐데..

본당 신부님은 예수회 입회 당시 만난 채 신부님을 조금은 ‘덜 심각한’ tone으로 들려 주셨는데, 경상도 출신으로 겪는 ‘쌀’과 ‘살’ 발음에 얽힌 유머러스한 일화였다.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일화나 추억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그 신부님의 기억이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신부님들은 전부가 ‘서강대 사단‘의 일원이라서 이곳의 ‘서강대 친지’들에게서 다른, 더 들을만한 일화를 기대하지만.. 글쎄.. 과연 있을는지. 연옥을 지나쳐서 천국으로 직행 하셨을 신부님의 명복과 그의 가족, 친지들의 마음의 평화를 빌면서..

  1. 레지오 마리애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 군대 조직의 소대에 해당함.
  2.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은 1990년 중반부터 전적으로 한국 예수회에서 파견 신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Palm Sunday, 2012

Palm Sunday of the Passion of the Lord, 2012. 오늘은 천주교 전례력으로 이런 기다란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다. 고국에서는 아마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라고 하던가? 간단히 말하면 부활절 바로 전 일요일인 셈이다. 신약 성경에서 비롯된 이날의 모습은, 열두 제자와 함께 ‘조랑말’을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군중들이 palm tree (종려나무?)가지를 흔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수난(passion)의 ‘성 금요일’을 향한 일주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 자체가 이 한 주일에 집약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올해의 사순절(Lent) 기간 매일 미사를 빠짐 없이 찾았기에, 우리 미국본당에 오는 것이 그렇게 편하게 느껴질 수가 없어서 올해의 부활절은 그런대로 잘 맞을 준비가 된 듯한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빼먹고 있다. 바로 ‘고백성사’ 다. 어떨 때는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고, 이번처럼 거의 전신이 마비된 듯 느끼며 피할 때도 있다. 나는 왜 이 고백성사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누구는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시로 거의 습관된 듯 자주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대부분 무슨 큰 죄를 지었겠는가?

하지만 그런 죄가 아니고 마음 속의 ‘안 보이는’ 죄를 모조리 기억하고 고백을 해야 함은 생각보다 어렵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그런대로 ‘만족’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고민은 그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다. 내가 고백해야 할 것의 주제가 바로 나의 고백을 들어주시는 신부님이라는 사실.. 쉽게 말하면 내가 신부님께 ‘불만’이 있다는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그에게 고백을 해야 하는가? 이것의 해답은 사실 다른 신부님께 하면 되는데 불행히 그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어찌할 것인가? 그대로 부활절을 맞아야 하는가.. 그러기에는 찜찜하기만 하다.

 

Palm Sunday, 2012

Palm Sunday, 2012 Holy Family CC

 

3월의 마지막 날에

¶  어느덧 삼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시간과 세월은 흐르는 것, 어찌 이날이 오지 않으리.. 시적인 감상에 젖는다. 3월이란 통상적인 기억과 조금 다른 ‘너무나 빨리 온 봄’ 같은 날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듦으로써 분명히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 매섭게 추운 것 보다는 은근하게 포근한 날씨가 점점 좋아진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적당히 포근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창문을 열어 놓을 정도면 된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꽃나무들이 놀라서 지독하게 꽃가루를 내 뿜는 바람에 한때 비상이었지만, 그런대로 알맞게 촉촉한 봄비로 그것들을 진정해 주곤 했던 3월이었다.

별로 크게, 보이게 한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예년과 분명히 달랐던 것은 사순절 동안 거의 매일같이 ‘매일 미사’에 연숙과 둘이서 갔었다는 사실.. 나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아침 9시의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우리의 미국본당 매일 미사를 꼬박 (레지오 화요일을 빼고) 갔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록, 흥미롭기까지 하다.

우리 본당이 비록 가까운 위치에 있다지만, 그래도 매일 8시 반에 차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사실 조그만 기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것도 ‘never say never‘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시간의 regular들은 거의 미국 (분명히 Irish처럼 보이는) 파란 눈의 아줌마,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 같은 부부들도 있고, 가끔 ‘젊은 축’도 보인다. 조금 일찍 도착하면 그들 중의 한 그룹은 열심히 소리 높이 묵주기도를 하는데, 물론 영어이기 때문이 우리가 따라 하지는 않지만 다 이해를 하며 듣는다.

그들이 레지오 단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부분 ‘열성 신자’들임에는 틀림이 없고, 아마도 우리 본당의 요소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일 듯 싶다. 그곳에서 의외로 우리의 다른 본당인 아틀란타순교자성당 우리구역(마리에타 2구역)의 구역장 wife가 빠지지 않고 나와서 보곤 하는데, 글쎄.. 조금은 의외로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1.

이렇게 아침마다 매일 미사를 가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우선 매일 영성체(성체를 모심) 하는 것, ‘살아있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만난다는 것.. 우리 부부가 ‘매일 아침’ 같이 외출을 한다는 것.. 사실은 모두 좋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조금 ‘노력’을 하면 매일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순절 뿐이 아니고) 참 세상은 의외로움의 연속이고 놀라운 것, 찾으려면 이렇게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2012년 3월을 보내며 새삼스레 느낀다.

 

¶  오늘 New York Times2의 한 기사, 어떤 ‘잘 알려진’ 사람의 자살에 관한 것이 있었다. 제목이 Love Story여서, 자살과 love와의 관계가 궁금해서 읽었다. 얼마 전에 New York Times의 columnist David Brooks3 가 그의 column에서 ‘치매(망각증)의 사회적 파장’ 에 대해서 독자들의 의견을 구했고, 많은 응답이 왔는데, 그 중에 오늘 ‘자살한 유명인사’의 ‘꽤 긴 글’ 도 있었다.

그는 그의 글에서 ‘꽤 길게 그의 자랑스런 집안 내력’ 을 언급하고, 현재 그의 사랑하는 wife의 오랜 치매 간병에 대해서 쓴 것이었다. 그의 글이 조금 길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오랜 기간의 간병에 대해 자신이 있음을 나타냈다고 했다. 그가 갑자기 총으로 자살을 한 것이고 그의 ‘불쌍한 치매환자’인 wife도 죽었다고 했는데, 동반 자살인지는 100%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그런 case가 아닐까.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의견은 모두 달랐다. 자살한 것이 ‘너무 쉬운’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혼동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 것은 나의 신앙 가톨릭 교리를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 하는 문제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교리는 분명히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렇게 안 느껴도 할 수가 없다. 나의 생명도 ‘거저 받았기에’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자살을 했고, 사랑하는 wife까지 죽였어야 했는지 그 고통과 번민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자살이 정답은 아닌 듯 싶다. 아니 정답이 아니다. 그런 처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답을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 또한 사실이니까.

 

¶  집 부근을 산책하며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유심히 본다. 이것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전혀 모르던 꽃나무들을 열심히 구박을 받아가며 연숙에게 물어 외우곤 하지만 금새 잊는다. 그러기를 몇 해, 이제는 조금은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당시 한때 ‘화훼학‘에 몰두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본격적인 삶의 굴레 속에서 꽃과 나무들은 완전히 잊고 살았다.

내가 사는 이곳의 꽃 나무들이 고국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고, 지형도 서울부근의 구릉지대 (piedmont)를 연상케 하는 점도 많이 있다. 땅과 흙의 색깔도 역시 비슷하다고 할까.. 봄을 알리는 첫 신호는 역시 이곳에 많은 ‘값싼’ Bradford Pear 꽃나무일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제일 많이 본 꽃나무가 바로 이것이고 제일 먼저, 아마도 3월 초에서 중순까지, 만발을 한다. 이것이 지면 곧바로 전설적인 Dogwood tree가 피기 시작한다. 이 Dogwood의 꽃 중에 많은 것이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부활절을 연상케 하는 전설이 많이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이곳 Southeastern 지역의 특산물일 정도로 많이 있고, 이곳 아틀란타에는 4월에 숫제 Dogwood Festival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Washington DC지역의 Cherry Blossom(벗 꽃) 에 맞먹는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3월이 지나가는 이즈음에 이런 꽃나무와 더불어 진달래, 개나리, 수선화, 목련.. 정말 찬란한 색들이 온통 이곳을 덮는데, 한가지 문제는.. 역시 하늘에 가득한 꽃가루 ‘공해’ 인데, 이것도 알맞은 비가 내림으로서 적당히 조절이 되는 것을 보면 참 자연의 ‘순리’를 느낄 수 있다.

 

Saybrook Spring 2012

아틀란타의 봄 2012, white dogwood, pink azalea

 

  1. 우리 미국 본당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2. 오늘까지는 한 달에 20개의 기사가 무료였고, 내일 부터는 5개의 기사만 무료.. 흠.. 이것도 이제부터는 돈을 주고 보아야 하나?
  3. 그는 비교적 신사적인 moderate conservative에 속한다.

어떤 죽음

¶  지난 레지오 화요일 1에는 그 전주에 이어서 계속 연도가 있었다. 이번 연도 대상은 역시 어떤 50대 중반의 자매님이었는데, 조금 슬픈 사연이 있어서 모두들 더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그것에 비례해서 더욱 더 열심히 연도를 바치게 되었다.

이 자매님은 원래 개신교 신자로써 개신교회에 나갔던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리 순교자 성당에서 다시 ‘줄리아’란 영세명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연도 때 가족들이 나왔는데, 모두가 ‘미국인’들이었다. 한마디로 ‘국제부인‘ 이었던 것이고, 결혼생활에 풍파가 심했던 경우였다. 미국인 남편과 자식이 둘이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 자식을 둔 채로 집에서 ‘쫓겨 났다고’ 한다. 누가 그 사연을 알 수 있겠는가? 혼자가 된 이후 거의 집 없는 ‘걸인’처럼 살았다고 하고 말년에는 암으로 고생을 하다가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암 투병 말기에 우리 레지오 단원에게 발견이 되어서 천주교 대세를 받고 가셨다니 조금은 다행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몹쓸 놈’의 식구들이 뻐젓이 연도미사에 ‘당당히’ 나타나고, 후에 식사까지 하던가.. 도저히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죽음만은 공평하다고 하지만, 이것을 보니 그런 말도 맞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차별이 많은 것이 또한 ‘죽음’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  겨울이 끝나며 곧바로 한 여름의 맛을 일주일 동안 보았다. 이것도 참 근래에 자주 보는 기이한 기후현상일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global warming 운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도 이것도 정치화, 아니 더 나아가서 ‘사상화’까지 되어서 말 잘못하다가는 완전히 ‘왕따’를 당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현실이다. 그저 조용히 ‘중간’만 하면 안전하다. 그저 100년 만에 보는 ‘기록적인 현상’이라고 하면 조용히 끝난다.

나의 기억에도 3월 달에 거의 여름 같은 날씨가 일주일 계속된 것은 없었지 않았나? 그러니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암만 보아도 분명히 지구는 조금씩 더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전문가가 아니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과학이 정치화가 되면 위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웃기는 것이 왜.. 공화당 같은 보수진영은 ‘지구 온난화’란 말만 나오면 그렇게 두드러기 앓듯이 신경질을 내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한심한 군상들이다.

  1. 내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회합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고, 곧 바로 정오 미사로 이어진다.

Lenten fast & feast

어제 배달된 우리의 정든 미국본당(parish)  Holy Family CC (Catholic Church)의 newsletter에 작자 미상의 ‘사순절에 실천할만한 14가지 황금률‘ 이 실려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순절 목표’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하게 Fast(단식,금기)와 Feast(축일)에 절묘하게도 비교를 시켜놓아서 사실 별 큰 관상(contemplation)이나 깊은 생각 없이 음미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을 읽으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된다. 암만 각오하고 실천을 하려 해도 하루는 고사하고 몇 시간도 못 넘기고 실패함을 느끼니까..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원문을 table-format 으로 요약을 하면:

 

Fast from

Feast on

1

Judging other

Christ living in them

2

Harsh words

Words that build up others

3

Discontent

Gratitude

4

Anger

Patience

5

Pessimism

Optimism

6

Worry

God’s care

7

Complaining

Appreciation

8

Bitterness

Forgiveness

9

Self-concern

Compassion for others

10

Discouragement

Hope

11

Facts that depress

Facts that uplift

12

Suspicion

Truth

13

Thoughts that weaken

Promises that inspire

14

Idle gossip

Silence with a purpose

 

‘억지로’ 번역을 하자치면,

1

남을 심판하기 보다는 그의 마음에도 그리스도가 있음을 느끼자.

2

심한 말 보다는 그를 도와주는 말을 찾자.

3

짜증내기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찾자.

4

화를 삼가고 대신 참을 성을 기르자.

5

비관보다는 낙관을…

6

걱정보다는 주님의 보살핌을 느끼자.

7

불평보다는 고마움을 느끼자.

8

원한을 갖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자.

9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 더 신경을 쓰자.

10

낙망하기 보다는 희망을 갖자.

11

우울하게 만드는 생각을 떨치고 기분을 좋게 하는 생각을 하자.

12

의심이나 의혹보다는 높은 곳의 진실과 진리를 찾자.

13

마음 약하게 하는 생각을 떨치고, 감동을 주는 약속을 생각하자.

14

한가한 소문에 들뜨지 말고, 사명감 넘치는 침묵을 갈망하자.

 

나이가 들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바로 #1, 섣불리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경험과 주장’이 있다는 얘기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공평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머리가 다 커버린 ‘자식’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별 생각 없이 ‘충고’를 해도 그것이 ‘심판’의 소리로 들린다. 우리 젊었을 때도 그 정도였는지.. 요새 세상이 더욱 그렇게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그래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얘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지론이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덕’을 본 분야는 #3, #7, #9, #14 일 것이다. 이것은 역시 레지오의 특성에서 나온 것으로 역시 ‘동료 인간’들과 수없이 접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자연적으로’ 이 분야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8.. ‘원한과 용서‘..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해도 큰 성과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나아간다는데 더 뜻이 있지 않을까? 오랜 된 기억을 동원하고 생각해서 아직도 용서 못할 ‘놈 들‘ 을 추려 내긴 했지만, 그들을 어떻게 ‘용서’ 해야 할지는 확실히 모른다. 그저 가능하리라는 희망만 가지고 있다. 나의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다.

#12.. 이것도 최근 5년 동안 많은 ‘발전’을 보았다. 그렇게 강철같은 힘으로 모든 믿음을 거부하던 시기는 지나고 있음을 느끼니까.. 이제는 모든 benefit of doubt높은 곳에 주기로 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든 문제의 ‘열쇠’였다.

내가 아는 3월 15일은..

내가 사는 아틀란타의 35년에 가까운 역사, 전통을 자랑하는 한인천주교회1, 그곳에서 매년 신자들에게 발부하는 달력이 바로 나의 코앞에 걸려있다. 이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 전에는 다른 달력을 쓰거나 아예 걸지도 않았다. 그래서 근래에는 조금 신경을 쓰고 자세히 보게 되었다.

과연 이 달력이 어떤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을까2..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천주교의 전례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게 되어있다. 그 다음은 아무래도 세속적인 것을 떠난 신앙생활은 힘드니까, 다수의 명절이 표기가 되어있다. 문제는 ‘어느 나라의 명절’ 이냐는 것이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고국인 ‘대한민국’의 명절이 제일 큰 빨간 글자로 표기가 되어있는 반면, 현지인 미국의 명절은 보통글자로 빨갛게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천주교의 전례력도 숫제 대한민국 전례력 중심이고, 그렇게 유명하고 중요한 Irish ‘천주교’ 명절인 St. Patrick’s Day(3월 17일)는 ‘완전히’ 빠져있다3.

그리고 오늘인 3월 15일에는 ‘3.15의거 기념일’이란 글씨가 올라가 있다. 내가 아는 3월 15일은 사일구(4.19) 학생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1960년의 부정 (정,부통령)선거 밖에 없는데, 언제 또 ‘데모와 혁명’이 그날에 있었을까? 더 웃기는 것은 4월 22일에, ‘정보통신의 날, 자전거의 날, 새마을의 날‘ 이 함께 쓰여있다. 여보세요, 도대체 이런 것들 이곳, 미합중국 아틀란타, 조지아에서 왜 필요하단 말씀입니까?

그것 이외에도 이렇게 ‘지역감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것은 본당신부의 지역,정체성 착각일까, 사무실의 무식이나 향수병에 의한 억지일까. 본당 지역역사가 거의 35년에 가까운 이곳의 의식이 이 정도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앞으로 수십 년이 흘러야 이 달력도 조금은 ‘현지화, 미국화’ 가 되려나.. 과연 언제나 이곳에 Irish St. Patrick’s Day가 ‘조그만 글자’로라도 올라올까?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신부님들이 오셔서 쉽지 않은 사목하시느라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현지가 어떤 곳이라는 정체성’은 조금 배려하며 사목을 하시는 것이 장기적 교포사목이 가야 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오네가이시마스(おねかいします)!

  1.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천주교회, Korean Martyrs Catholic Church of Atlanta
  2. 대한민국의 달력업체에 주문을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함.
  3.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이날 Irish Association 주최퍼레이드까지 있다는 사실

Summer Time

¶  Daylight Saving Time  이곳에 살면 일년이 두 번씩 조금 귀찮은 날을 거쳐야 한다. 봄과 가을에 한번씩, 시계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날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시절에 한국에도 그것이 있었고, 그때의 이름은 Summer Time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봄,여름,가을에 아침보다 저녁시간을 조금이라도 햇빛으로 밝게 쓰자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기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설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선 오래 전 그것이 없어졌지만 미국과 유럽은 줄기차게 이것을 계속하고 있는데, 사실 귀찮기 말할 수가 없다.

집안에 시계가 이제는 10개1가 넘고 어떤 것들은 digital이라 바꾸는 방법도 다양하다. 다행히 Internet과 연결된 computer나 phone network에 연결된 cellular phone같은 것은 시간이 자동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이것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한번 시계 바꾸는 것을 잊고 (이것을 잊기가 참 힘들지만) 아침 강의를 갔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한 시간 늦게 강의실에 간 것이었다.

시간이 바뀐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강의실을 들어가려니, 낯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것도 잠깐이었지만 이유를 알고 나서 더 당황을 했다. 비록 예정된 시험은 없었지만, 누가 알겠는가.. 가끔 pop quiz라고 해서 예정에 없던 시험도 보곤 했으니까, 그것을 놓쳤으면 낭패가 아닌가? 그 당시 나는 미친 듯 ‘공부에 몰두2를 하던 시절이어서 뉴스 매체 (radio, TV etc)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던 때여서 summer time이 시작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기억에 ‘판각’이 되어서 그 이후에는 봄에 한 시간을 앞으로 바꾸냐, 뒤로 바꾸냐 하는 아리송한 의문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때가 봄이었고, 9시 강의시간이 10시가 되었으니까 한 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9시가 10시가 된 것이 빨라졌다고 하는 이것부터 황당한 것이 아닐까?)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책¶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3  몇 주전에 연숙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소속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저자는 예수회 신부이며 서강대 신학 대 교수(신약)인 송봉모 신부님이고 그 책의 제목이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이다.

이 송신부님은 신부로서는 아주 많은 책을 저술한 것과, 활발한 강론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 나도 이분의 강론을 audio tape으로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박학다식한 것은 전적으로 인정을 했지만, 무언가 나하고는 ‘주파수나 파장(chemistry4)’이 맞지 않는 것을 느끼고 그 이후로 더 이상 듣거나 읽지 않았다. 그 때 나의 피상적인 느낌이 ‘너무도 잘난 체‘ (김용옥5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죄송합니다) 한다는 조금은 나의 과격한 반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신앙적으로 유치하고, 가슴을 넓게 열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지난 성탄 season에 송 신부님이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오셔서 며칠간 강론을 하셨는데, 남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가서 들었지만, 나는 예전에 느낀, 그 ‘별로 였던 첫 인상’ 때문이었을까, 기회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분의 비교적 신간 (2010년 판) 저서가 가까이 온 것이었다. 송신부님의 저서라고 해서 우선은 읽지 않다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 것이 시작이었다. 읽기 쉬운 글자체와 문단 배치 같은 책의 외관상 구성 같은 것이 도움이 되었고, 내용도 나에게 비교적 거부감 느끼지 않는 것들이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송신부님의 책한 권을 전부(cover-to-cover) 읽게 되는 첫 case가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정독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manual typing임을 안 이상, 이것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니까, Reading-by-Typing인 것이다. 이것을 읽는 며칠 동안에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미움과 용서가 주제인 만큼, 나의 잠재의식 밑바닥에 있던 어떤 ‘원수’를 꿈에서 만난 것이다. 이곳의 한 직장 (Scientific-Atlanta6, a Cisco company)의 나의 악질 boss, Blake Causey7란 놈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 두고두고 용서 못할 놈 제일인자가 되었는데, 그 놈이 꿈속에서 ‘너무나 친절하고, 인정 있는 따뜻한 인간으로’ 나를 반긴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잊고 싶은 놈이었는데, 어쩌자고 다시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역시 이 인간도 송 신부님의 책이 말하듯이 ‘나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할 인간임을 느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1. 벽시계, 손목시계, 전화시계, cooking ware etc
  2.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다.
  3. 2010년 서울 바오로딸 발행 송봉모 지음, 1판 6쇄
  4. 영어권에서는 무언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화학적’으로 생각한다.
  5. 도올,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
  6. 아틀란타에 있는, cable TV set-top box 만드는 큰 회사
  7. 악명 높은 South Carolina의 사립 사관학교 출신 엔지니어, 덜 성숙한 외골수 공명심의 화신

사순 제1주일, 장례미사

¶  2월 26일, 재의 수요일 이후의 첫 일요일이다. 그러니까 2012년 사순절(Lent) 첫 주일인 것이다. 비록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미사에서 이마에 ‘재의 십자가’를 받고, ‘고난의 40일 여정’ 은 시작 되었건만, 별로 크게 한 것도 없이 순식간에 사순 첫 주일을 맞았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사순(40일)의 시기를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내게 된다. 즉, (1) 기도, (2) 자선,선행, (3) 절제, 단식과 금육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절제, 단식, 금육’ 란 것 중에 절제는, 각자의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서 흔히들 하는 것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평소 ‘즐겨서 탐닉’하던 것(도박, 술, 담배 같은)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아주 끊어 버리는 것이다.

단식(fast), 금육(abstinence)은 글자 그대로 끼니를 거르고, 먹더라도 고기 (생선은 제외) 류를 안 먹는 것이다.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부활 전 금요일) 에 적용이 되고 그것도 하루 한끼만 거르면 된다. 금육은 재의 수요일과 사순절 매 금요일에 적용이 된다.

하지만, 이것도 꽤가 많은 이곳 사람들, 여러 가지의 예외를 만들어 두었다. 그 중에 있는 것이 14세 미만의 아이들과, 60+세 이상의 ‘노약자’에 대한 배려인데, 이것이 조금은 웃긴다. 여기서 60+세의 기준은 분명히 수십 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디를 보아도 요새 나이 60+세는 대부분 건강하지, ‘노약자’로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금 덜 먹거나, 한두 끼 굶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예외조항은 나이보다 각자가 처한 건강상태에 두어야 할 듯하다. 우리 부부는 원래 ‘소식(小食)’ 이라서 사실 완전히 몇 끼 굶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고, 금육도 그리 자주 고기를 먹지를 않아서 큰 문제가 없다. 절제에 대해서,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gourmet coffee 인데, 이것을 완전히 끊는 것을 예전에 내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이것은 실행하기 전, 처음 느끼는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아침에 커피의 카페인에 의한 자극이 없어지면서 무언가 불안하고, 정신의 집중이 잘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적응이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은 ‘맑아지는’ 머릿속을 느끼곤 했다. 그것이 바로 ‘절제’의 매력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커피는 절제대상에서 제외를 했는데, 조금 꽤가 났던 것일까.. 그것 보다는 사순절을 그렇게만 보내는 것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고, 레지오에 입단하면서 생각도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봉사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레지오는 ‘절제’같은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아가 사람 속에서 활동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은 사실 ‘무언가를 안 하거나 끊는 것’ 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나 같이 원래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고, 그래서 더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과연 그런 지향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  지나가는 주에는 정말 오랜만에 장례에 관한 뉴스가 두 건이나 있었다. 사실 그 동안은 연도나 장례행사가 뜸했었다. 그것(뜸한 것)은 정말 좋은 것이지만, 레지오 행동단원에게는 그만큼 한가한 시간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들이 병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두 가지의 장례에서 하나는 이번에 이곳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일가족 5명이 살해된 끔찍한 사건에 관한 것이고, 다른 것은 조금은 평범할 수도 있는 어떤 60대 남자교우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사실은 이 60대의 평범한 분에 관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이 ‘평범한’ 교우님은 해방둥이 남자로, 김태균 요한 교우이신데, 심근경색증으로 며칠 전 갑자기 돌아가셔서 23일에 연도가 있었고, 24일에는 장례미사가 있었다. 우리부부는 장례미사엘 갔었고, 예와 같이 고인의 명복을 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인의 가족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 고인의 형님이 바로 내가 한때 알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거의 40년 전에 알았던 분이었다.

물론 모습으로 알 수는 없을 정도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장례미사 안내서에서 그 분 따님의 이름을 내가 알아본 것이다. 지금도 나는 어떻게 아직까지 그분 따님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나의 전 ‘서울식당’ blog에서 그 당시를 회상하며 쓴 것이 있었는데 그때 기억을 해 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 분의 이름을 모르고 지냈으니, 사실 그분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비록 70대의 나이였지만, 자세히 보니 역시 그분이었다. 훤칠한 키에 멋쟁이 스타일 (옷), 그대로였다. 그 부인, 그러니까 세란이 엄마는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나이보다 젊어 보여서 그랬는지도. 가서 인사를 드릴 까 생각을 했지만, 역시 주저하고 말았다. 옛 사람을 찾는 것과 서로 다시 알고 지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난 40년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아틀란타, ‘혼또니 입빠이’ 변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아틀란타 metro지역의 한인사회도 그 동안 참 많이 변했다. 물론 이런 말 자체가 참 진부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정상이니까), 문제는 별로 좋지 않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도 조금은 과장된 것일까? 어떤 사회가 좋지 않게 변한다는 것,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평균화’ 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여기서의 사람들이란 이곳 아틀란타 메트로 지역에 사는 한국인들(얼굴과 언어에 의한)을 말한다. 어느덧 이곳에 산 것이 내 나이의 거의 삼분의 일에 가까워 오니 주제넘은 소리지만 조금은 잡다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생활의 잡음을 초월한 높이에서 이곳을 생각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지난 세월의 꿈이 담겨있는 이 blog에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부정적인 현재에 대해서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제 알게 된 충격적인 뉴스로 조금 생각을 바꾸었다. 그 뉴스는 이곳에서 sauna spa(한국식 찜질 방?)를 경영하고 있는어떤 다섯 명 한인가족의 집단 총기 살인과 범인의 자살에 관한 것이었다. 너무나 끔찍한 것이라서 national news (msnbc)로까지 알려지고 이곳에선 떠들썩하다. 이곳도 위성채널에 이 지역전용 한국방송이 매일 나올 정도가 되어서, (우리만 빼고)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보고 알았을 듯하다.

요즈음에는 미국에선 이런 종류의 뉴스(집단 총격사건)에 많이 익숙해져 있지만, 문제는 별로 ‘총기 문화(gun culture)에 생소한’ 한인사회에 까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데 있다. 게다가 사망한 가족 중에는 우리 (정확하게는 연숙)에게 잘 알려진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고 심지어는 겁까지 나기도 했다. 어제는 사실 2012년 사순절(Lent)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어서 조금 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다가오는 40일(사순)을 준비하는 날인데 이런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시한폭탄(time bomb)’ 터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올 것이 결국은 온 것이었다. 전혀 희망이 없는, 이미 전에 총기 집단 살인, 자살기도 경력을 소유한 인생패배자, 인간이기를 이미 오래 전에 거부한 패륜아인 그런 시한폭탄과 같이 살아야만 했던 가족들의 고통은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살 방도는 없었을까?

살인,자살극(murder-suicide)’의 주범인 남자동생은, 이번에 우발, 충동적인 요소도 다분히 있었지만, 유서까지 남길 정도로 계획을 한 ‘전과자’로 이것은 누가 보아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비겁한’ 살인범죄행위였다. 우리가 믿는 천주교의 교리에 의하면 그의 영혼은 연옥의 근처도 못 가고 지옥으로 직행하는 케이스인 것이다. 영혼조차 회개의 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역시 먼 곳과 높은 곳에서 삶과 죽음, 그것들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루하면서도 바쁘고 피곤하고 정신 없이, 로보트처럼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활인’들, 예전에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가끔 느끼는 작은 기쁨은 있었을지 몰라도, 인생이란 것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며 살았다. 한 마디로 인생의 보편적, 절대적인 나침반(羅針盤)에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산 것이다. 그런 ‘생활인’들이 대거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이곳도 많이 달라졌다. 좋게 말하면 한인사회의 평준화가 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면 ‘하향 평준화’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사실 ‘상상도 못할 life style‘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안다. 이번에 일어난 위의 끔찍한 사건도 그런 논리의 연장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기회와 부(富)를 찾아서 온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숫자가 많다 보니 극히 예외적인 인간군상도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1996년 전의 시대가 지금은 그립다. 그때, 아틀란타 올림픽 전의 ‘촌스럽지만’ 평화로웠던 시대 말이다. 최근의 지독한 불경기로 한인사회도 팽창의 추세가 주춤하고 있고, 심지어는 떠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옛날의 소박한 평화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Fast Moving January 2012

¶  와~~ 언제 18일이 되었나? 근래 나의 세월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가끔 뜻밖의 즐거움도 가볍게 섞일 적도 있어서 빨라지는 시간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월의 시간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두 번의 가족 생일과, 우리부부의 결혼기념일까지 있고 이제는 감각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구정’이란 것도 있어서 잔잔하지만 약간은 상기되는 느낌의 정월이다.

이런 가족적인 것 이외에 내가 조금 관심을 가지는 행사로 매년 일월 하순경 스위스다보스(Davos)에서 열리는 World Economic Forum (WEF)이 있다. 이 Forum의 역사가 생각보다 길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다. 올해도 1월 25일부터 열리는데, 올해는 과연 어떤 ‘세계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처방‘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아래의 streaming video는 World Economic Brainstorming: Business, Governance and Leadership – New Pressures and Realities 라는 brainstorming session인데 참가자들의 모습이 아주 다양하고 태도가 진지하다.

 

 

sopa-google
Google – Free Internet Dead!

¶  SOPA/PIPA: 읽기도 요상한 이런 이름의 ‘법안’이 지금 한창 떠들썩하다. SOPAStop Online Piracy Act의 약자로 미국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에서 심의 중이고, PIPAProtect IP(Internet Protocol) Act의 약자로 미국 상원(Senate)에서 심의 중인 법안이다. 그러니까.. ‘소파, 피파’ 로 불리는 이 법안은 조금은 다르지만 골자는 거의 같아서, 인터넷 상에서 저작권자를 ‘강력하게’ 법적으로 보호, 대응하겠다는 것들이다.

물론 이 법안의 의도는 이해가 가고, 필요한 것처럼 들린다. 문제는 역시 이것이다. Devil’s in the detail..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실행하는 단계에 이르면 문제 투성이고, 심지어는 아주 위험한 ‘지나 친’ 법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법은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에서는 아주 쉬울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생각처럼 쉽지 않을 듯하다.

원칙적으로도 이것이 fair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비유를 생각하면 쉽다. 도둑이 와서 물건을 훔쳐갔을 때, 도둑을 잡기도 전에 그것을 ‘방조한 듯이 보이는’ 주변을 먼저 처벌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처벌로, 그 주변을 ‘일방적으로 폐쇄’ 하려는 으름장을 ‘합법적’으로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너무나 ‘쉽게’ 풀려는 의도가 보이고, ‘물건을 쌓고 사는’ 가진 자, 부자만을 너무나 보호하려는 의심까지도 보인다. 결국은 엉뚱하게 불똥일 튄 사람들, 그것도 세력이 만만치 않은 Google같은 곳도 반기를 들고, 이제는 ‘대부분 일반인’들까지 반대를 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요새, 가진 ‘부자들'(1%)과 못 가지 대부분 사람들(99%)이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으로 부각이 되고, 미국 대선에서도 쟁점이 될 듯한 것을 보면서 이 법안도 그런 각도에서 보면 조금 더 깊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raw power를 보여주기 위해서 GoogleWikipedia는 이 법안에 대한 인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Google은 ‘검은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인터넷의 죽음을 상징하는 ‘관’이 아닐까, 그리고 Wikipedia는 숫제 site의 service를 폐쇄해 버렸다.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현재까지 날씨가 아주 한마디로 ‘양반’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Weather Channel이 별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씨에 관한 커다란 뉴스가 많아야 그들이 돈을 벌 터인데, 매일매일의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일기예보 말고는 별로 그것을 볼 필요조차 없는 그런 겨울인 것이다.

겨울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작년에 비하면 정말 조용하고, 특히 작년 이곳 아틀란타 지역의 폭설을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흥분이 될 지경인 것이다. 작년의 아틀란타 폭설은 아마도 100년에나 오는 그런 것이었고, 완전히 일주일 동안 이곳의 경제활동을 stop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이름도 snowpocalypse (snow + Apocalypse) 나 snowmageddon (snow + Armageddon)등으로 불릴 정도다.

사실은 작년은 근래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눈이 내렸고, 전세계적으로도 일본재해, 미국의 killer tornados등으로 일기에 관한 뉴스매체는 쉴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최악의 경제상태로 정부레벨에서 이런 재난을 대처할 재력이 없다는 것인데, 천만 다행으로 Mother Nature가 아직까지는 잘 협조를 하고 있고, 장기적 예보에도 큰 변화가 없는 듯해서 다행이다.

 

Atlanta Snowpocalypse 2011

작년의 아틀란타 폭설은 뒤따른 강추위로 일주일간 전혀 녹지 않았다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와 연도

레지오 마리애 연차 총 친목회
2011년 아틀란타 꾸리아 연차 총 친목회

어제 12월의 첫 일요일은 거의 하루 종일을 진정한 ‘일을 떠난 안식일’로 지냈다. 글자 그대로 안식일이면 일을 쉬는 날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하루 종일 일을 한 셈이 되었다.물론 여기서의 일은 성당과 관련이 된 것들이다. 물론 집 근처의 미국본당에서의 주일 미사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한국 본당까지도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11년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의 ‘천상 은총의 모후’ 꾸리아 주최 연차 총 친목회에 갔는데, 이번에는 평 단원으로 그냥 즐기러만 간 것 이외에도 연숙이 꾸리아 부회장을 맡은 관계로 봉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연숙은 총 친목회의 EmCee(사회)까지 맡게 되어 있었고, 나는 우리 쁘레시디움에서 발표하게 되어있는 ‘(거지)타령’ 에 끼어 있어서 둘 다 심리적으로 은근히 stress까지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연숙의 사회 진행은 큰 ‘사고’없이 잘 진행이 되어서 결과가 좋았는데, 우리 쁘레시디움의 타령 공연은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어서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에서 참가를 한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로 했다.

오랜 만에 스트레스 성 일들이 이렇게 겹쳐서 그런지 모든 행사가 무사히 끝나고 나서 아주 안도감과 피곤함이 함께 몰려 들어서 그저 TobeyIzzie가 목매도록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우리 둘은 갑자기 예정이 된 어느 자매님(베로니카)의 장의사 연도에 참석을 하러 가게 되었다. 우리 성당과 직접 연관이 없는 듯 보이는 자매님이라고 들어서 가는 것이 잠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연고자들이 별로 없다는 말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런 것이야 말로 우리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던가? 역시 갔다 와서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아주 단출한 가족이 전부인 곳, 예쁜 할머님 자매님이 그곳에 잠자듯 누워계셨다. 문득 꿈에 본 어머님 얼굴이 잠깐 어른거렸다.

어느 funeral home (장의사)의 조그만 chapel에서 조금밖에 모이지 않은 우리 레지오 단원들, 열심히 연도를 바치고,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viewing을 하고, 유족을 위로했는데, 따님이 너무나도 서럽게 울며 서투른 한국말로 “레지오 마리애, 너무 감사합니다” 를 연발해서 우리들 모두 눈물을 감추기에 바빴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님과 따님은 무척 사이가 좋았던 듯 싶었다. 이런 광경들은 거기 모인 모두들, 자기 나름대로의 처지에 비추어서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눈물을 감추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 돌아가신 베로니카 자매님은 어떤 인생여정을 보내시고 여기까지 오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며 한정된 인간 수명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일년을 감사하며..

Thanksgiving, 2011 Huffington Post version

Thanksgiving, 2011 Huffington Post version

 

¶  감사하며 “지나가는” 일년,  숨차게 지나가는 일년을 생각하며 모든 것들, 지극히 한정된 나와 나의 주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무한한 존재 하느님께 감사한다. 흔히 년 말에 이런 생각을 더 하겠지만, 오늘이 마침 ‘[추수]감사절’이니까 조금 더 일찍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을 듯하다.

우리의 작기만 한 가족들 건강한 것과 생전 처음 경험하는 불경기에서도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항상 무언가 불안한 여건하에서 무언가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들.. 이것 이외는 사실 큰 상관이 없고, 문제도 없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항상 찾고, 바르게 고치며, 그것에서 큰 무리 없이 최선을 다한 지난 일년이었을까?

겸손, 순명, 사랑, 절제.. 다 어렵기만 한 먼 곳에 있는 이상 같지만, 의외로 가까이서 우리를 이끌었던 지나가는 일년이었다. 그것만으로 사실 우리는 ‘가난한 부자‘라고 생각한다.

 

¶  어제 저녁에는 갑작스러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연도에 연숙과 같이 다녀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 성당의 청소 봉사를 하시던 교우형제님께서 조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신 어르신이었지만 알고 보니 우리 구역에 있는 안금환 형제와 거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안 형제 남동생의 장인이셨던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요새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급서로 인한 놀라움은 크지만, 오랜 고통 속에서 타계하는 사람에 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나에게 선택을 하라면 짧은 과정을 택할 것 같다. 이곳의 biggest holiday를 앞둔 날이었지만 연도와 viewing (시신을 보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열기 찬 연도가 되어서 고인도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하느님 품에 가게 되지 않았을까?

장례 미사가 오늘 바로 추수감사절에 있어서, 오늘 그곳에 가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는 판단인데, 어떨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까.. 고인에 연관된 가족은 평균보다 훨씬 많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한다. 어제도 “내가 오늘 죽으면 몇 명이나 나를 보러 올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지난 몇 주일 동안 오래된 VHS video cassette 들을 ‘무섭게’ computer로 옮기는 작업을 해 왔는데, 이제 조금 끝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을 ‘자동’으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므로 꼬박 과정을 지키고 앉아서 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지루하긴 하지만 덕분에 오랜 만에 20년까지 된 오래된 ‘가족이 보던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어서 생각만큼 고역은 아니었다.

지금 보니 그것들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거의 100+여 개가 되는 비디오 테이프들.. 90년대에 그렇게 안방 사랑을 받던 그 당시의 최첨단 기술, VHS video.. 그것이 지금은 DVD/BlueRay의 얇기만 한 optical disc들.. 참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고국의 극장에서 보았던 추억의 할리우드 명화들이라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옛 것’들이라서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큰 후에, 옛날 영화가 더 좋았다고 말할 때도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  지난 며칠 동안 오랜만에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며 예년에 비해서 별로 볼품이 없이 힘겹게 달려있던 불쌍한 단풍잎들이 거의 모조리 떨어져서 완전한 겨울의 풍경을 나타냈다. 이런 상태로 내년 3월까지 버티게 되고 가끔 완전히 하얀 눈까지 덮일 아주 높은 가능성도 있어서 귀추가 주목이 되지만 제발 큰 피해 없이 멋진 풍경만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full Autumn leaves 2011

full Autumn leaves 2011

our backyard under fallen leaves

집 뒤뜰이 완전히 낙엽으로 덥혔다

 

깊어가는 가을에..

30년이 넘는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고, 집안 가족들에게 진정한 안방극장의 역할을 다 했던 비디오 테이프(‘테입’ 이 더 맞을 듯 한데, 아마도 표준용어는 역시 ‘테이프’ 인 모양), VHS video tape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몇 주 전에 우연히 VHS cassette에 있는 오래 전의 영화를 보려고 하다가 VCR(video cassette recorder, 일본에선 VTR: video tape recorder라고 함) 이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망연자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옛날’ 비디오 영화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5년 전쯤에 우리가 찍었던 가족 비디오들은 일단 모조리 computer로 복사를 해 두었지만 돈을 주고 산 영화 비디오들은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두었고, 최악의 경우에 그런 것들은 나중에 DVD로 다시 나올 것이니까, 가족 비디오처럼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잊고 살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VCR이 ‘건재’ 하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손쉽게 테이프에 있는 영화 비디오 조차 못 보게 된 것이다. 결론은 분명히: 이번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VCR+DVD player combo
VCR+DVD player combo

최우선의 과제는, 오랜 동안 모았던 주옥 같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이 모일 때, TV로 쉽게 볼 수 있어야 하므로, VCR을 사야 하는 일이고, 다음은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상태가 나빠져 못 볼’ 이 많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 비디오처럼’ computer로 옮겨야 하는 일이었다. 컴퓨터로 일단 digitize가 되면, 수명은 거의 반 영구적이 될 것이고, 여기저기서 computer로 볼 수가 있게 되니까, 조금 지루한 일이지만 효과는 몇 배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VCR 을 사려고 보니까, 요새는 VCRDVD player가 함께 붙어서 나오고, 값도 $70 정도여서, 참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 옛날 VCR이 처음 나올 당시.. 처음에는 천불이 넘었었던 것을 기억하니까.. 이렇게 해서 VHS tape을 computer(digital) movie file (WMV, Vidx/Xvid/AVI format)로 하나 둘씩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장난이 아니게 많아서, 언제 끝나게 될지 한심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는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지루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벌써 Carroll BakerRoger Moore의 명화 The Miracle(기적), Tom HanksApollo 13, Jennifer JonesThe Song of Bernadette (루르드 성모님 이야기) 등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1990년대에 우리 집 식구들이 즐겨 본 것들이라 그 당시의 추억도 함께 떠오른다. 근래에 HD(high definition) TV에 익숙해지고 있는 마당에 VHS의 ‘조잡한’ SD (standard, low) definition을 보니까 어떻게 옛날에 저런 것을 보며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그런 ‘조잡’한 맛이 은근한 맛도 있고, 감정적으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니, 나도 참 오래 살았나 보다.

 

10 years with YMCA.. 허.. 언제 이렇게 되었나? YMCA의 gym에서 운동을 한 것이 10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은 1990년대에 다같이 이곳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운동, 수영을 했지만, 나는 2011년 9월 이전까지는 아주 가끔 갔었다. family plan으로 멤버가 되면 조금 싼 이유도 있었지만, 정기적 육체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누가 모를까,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연숙이 거의 강제로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 이제 10년이 훨씬 넘게 된 것이다. 요새는 우리 부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를 목표로 하고 다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안 가게 되면 더 신경이 쓰일 정도가 되었다.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것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애를 통해 지난 10년은 사실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십 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아마도 이 YMCA는 내가 ‘살아’ 남는데 큰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ast Cobb YMCA
East Cobb YMCA

처음에는 주로 아침에 갔고, 그때면 주변에 사는 한인들과도 어울리며 커피나 얘기도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 알던 부부가 거의 연달아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해서 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을 하고, 겉으로 건장하게 보여도 그것과 ‘수명적인 건강’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옛날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종로에 있던 종로서적센터 뒤에 있던 그 당시에는 최신식인 health center에 몇 개월 다니면서 ‘빈약한’ 근육을 바꾸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었고, 친구 이경증과 같이 서울 운동장에 있었던 체육관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 weight training 은 그다지 생소한 것이 아니었고, bench press에서 나의 체중(145파운드) 무게로 10 reps까지 하게 되었지만, 요새는 근육의 모양새보다는 근육의 목적에 더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무거운 것을 옮긴다던가 할 때 큰 문제없이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음은 역시 근육의 빠른 노화를 완화시키는 것인데 사실인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요새는 근육운동보다 걷는 것, bike등으로 하체에 더 신경을 쓰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더 나이가 들어서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YMCA gym에 갈 때마다 그 옛날 나에게 ‘역기운동’의 기초를 가르쳐주던 친구 이경증을 생각하곤 한다.

 

며칠 후의 일기예보는 드디어 올해 처음 아틀란타 메트로 지역에 빙점(화씨 32도, 섭씨 0도)의 가능성을 예고해서, 본격적인 가을의 중반을 향하는 느낌이다. 2주 뒤에는 크리스마스에 다음의 미국 최대 명절인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이고, 사실상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season이 시작이 된다. 올해는 조금 ‘극단적인’ 기후였는지는 몰라도 단풍을 보니 역시 피곤한 빛이 역력하였다. 빛깔이 그렇게 곱지를 않은 것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이 근처에서 제일 빛이 찬란한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는 그것으로 올해의 단풍의 질을 판단하게 되었다. 역시 작년에 비해서 조금은 초라한데, 색깔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잎사귀들이 건강하게 변하지를 않았고 심지어는 한쪽이 대머리처럼 듬성듬성 빠져 보여서 조금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도 기후의 스트레스를 왜 받지 않았겠는가? 우리 집 앞쪽에 있는 나무들도 역시 색깔들이 바랜 것하고 떨어지는 모양새가 예년에 비해서 아주 비정상적으로 불규칙한 모습들이다. 확실히 ‘심한’ 기후에 의한 피곤한 자연의 표현이다. 이러다가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런 날이라도 오게 되면 아마도 하루 아침에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지나 않을까? 작년의 폭설을 기억하면서 올해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Fall Colors, 2011

기후 탓으로 예년만 못한 Fall colors, 2011

 

시월 말의 잡상(雜想)들

2011년 제2차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2011년 제2차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제2회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회원 전시회) 1차 전시가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에서 있었다. 2차 전시는 일주일 뒤인 10월 29일부터 다른 아틀란타 성당인 김대건 천주교회에서 있었다. 아틀란타 묵향회 주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이곳의 한국 성당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묵향회 회원들이 그 동안 쌓은 노력의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보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사실 묵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대강은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연숙이 이것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곁다리, 등 넘어’로 보고 느끼게 되었다. 일반적인 동양화의 산수화를 연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한 듯 했다.

회원들의 대부분이 여자들이었지만 예외적으로 ‘젊은’ 남자회원도 있어서, 사실은 그 분의 작품의 양과 질이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듯, 시간이 남아서 한다는 상투적인 인상이 전혀 없이 정말 좋아서 하는 듯 했다. 그날은 오랜만에 우리 식구가 다 모일 기회가 되어서 우리에게는 정말 드문 가족행사까지 되었다. 전시회는 작품자체를 떠나서, 조금 더 ‘멋지게’ 했었을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작품들이 단상(성당의 제단)위에 함께 몰려있는 듯한 배치는 조금 자세히 보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불편한 것이었다. 일반 전시화랑같이는 할 수 없다지만, 성당에서 정성껏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2011년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개막
2011년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개막

연숙의 작품은 아무리 겸손해도, 아주 잘 그렸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난생 처음’ 하는 것을 그렇게 잘 했을까?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은 알지만, 이런 것은 ‘열심’ 만 가지고는 힘들기 때문에, 무언가 오래 숨어 있었던 ‘소질’이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닐까? 내도 한번..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사실 어림도 없다. 어렸을 때 그렇게 즐기고 잘 그리던 나의 만화 솜씨를 기억하고 나보고 만화를 그려보라고 식구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힘들 것 같다. 글씨를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무언가 그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초’가 제로다. 만화는 내 나름대로 ‘기가 막히게’ 잘 그렸는지는 몰라도 미술의 기초인 ‘뎃상’ 같은 것은 거의 낙제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단언을 하랴.. 어떻게 나에게도 ‘숨어있던’ 실력이 있을지..

 

2011년 연례 이화여대 총동창회
2011년 연례 이화여대 총동창회

이화여대 총동창회 북미주지회연합회.. 휴~~ 이름이 길기도 해라.. 주최의 annual conventionBoston (Harvard, MIT..)에서 지난 며칠간 열려서, 연숙도 그곳에 가 있는데, 날씨가 갑자기 돌변을 해서 Nor’easter라는 악명 높은 눈보라 치는 날씨가 예상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Boston은 큰 문제가 없었던 듯하다. 어떻게 가을이 한창이 지금 그런 한겨울 것이 왔을까.. 역시 이것도 그것 때문인가? 꽤 오래 전에는 동창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도 하더니 언젠가 한번 고약한 동창에게 혼이 나서 완전히 관심을 잃었었는데, 이번에는 오래 전 친구였던 총장 김선욱씨가 온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우리 결혼식에서 잠깐 본 후에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라, 감회가 참 깊으리라 생각을 한다. 김총장은 독일에서 공부를 해서 미국에는 별로 연고가 없었던 듯해서 더욱 못보고 살게 되었나 보다. 요새 가끔 받아보는 이화여대의 소식지를 보면,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연세대 다닐 때 버스에서 꼭 보게 되던 이대 생들.. 그런 소박하고 순진한 대학이 아니고 ‘완전히’ 국제화된 무슨 레바논의 국제형 대학같은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세계 유일의 여자공과대학.. 허.. 분명히 세계 유일일 것이다. 그런 것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늙은’ 생각에는 그렇게 확장만 할 것이 아니고 몇 개의 정말 ‘여성에게 중요한’ 분야를 개발, 정착해서 그 분야의 세계최고를 지향했으면 어떨까 하지만, 역시 늙은 생각일 뿐이다.

 

Waste King hot water dispenser
Waste King hot water dispenser

hot water dispenser.. 거의 펄펄 끓는 마시는 물을 ‘항상’ 제공하는 이것이 얼마 전에 조금씩 새기 시작해서, 결국은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초에는 집 전체의 더운물을 공급하는 온수기가 새서 갈았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또 문제였다. 이것은 3년 반전에 내가 직접 설치한 것이고, 조금 실망이었던 것은 아주 유명한 회사의 제품(ISE: InSinkErator, Inc.)이라는 사실에 비해 수명이 짧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의 같은 것은 거의 10년 이상을 썼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명한 InSinkErator, Made In USA의 품질이 이렇게 떨어졌을까? 미제의 신뢰도도 요새의 경제하락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이번에 새로 산 것은 일부러 ‘잘 모르는’ 것으로 샀다. 모험인줄 알지만 그만큼 전번 상표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제 새로 설치를 했는데, 예상이 되는 ‘설치할 때의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주로 plumbing에 관련된). 이런 것은 전기나 수도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없을 때는 별로 고마움을 못 느끼지만, 고장 나거나 해서 없을 때 그 귀중함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며칠, instant coffee를 마실 때, 불편을 겪어서 다시 한번 필요성을 절감한다.

 

Triple Lows: 축~ 쳐지는 그런 날

오늘은 가을 날씨로는 조금 싸늘한 편이었지만 밝은 햇살 덕분에 ‘느낌’은 그리 춥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완전히 tail spinning 하는 듯 새카만 심연 속으로 빠지는 듯한 하루였다. 이것이 오래 전 유행하던 biorhythmtriple lows에 해당하는 그런 때가 아닐까? 며칠 전 돌아가신 분들의 연도와 장례식 등으로 인한 심적인 stress로 사실 몸과 마음이 축 쳐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나를 완전히 knockout을 시킨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항복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유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영어로 말하면 unreasonable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런 ‘막무가내’한 사람이 만약 ‘중요한 일’을 하는데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예를 들어 직장 같은 곳에서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면 정말 곤란할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력을 해도 안 되면 결국은 그 관계는 완전히 실패를 하고 일도 실패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런 사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그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지만..

 나도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해 보았다. 대부분 피할 수 없는 case여서 정면으로 맞상대로 ‘싸우거나’, 그대로 ‘당하면서’ 고민하고 속을 끓는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래도 그런 사람을 피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전혀 가망이 없어서 노력자체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약 직장이 아닌 예를 들어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만나서 같이 ‘봉사적인’ 일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내가 당한 case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내 연숙은 오랫동안 이런 것으로 속을 끓고, 고민하곤 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당하게’ 된 것이다.

 

 

Gunatanamera – Sandpipers

내가 조금 관계된 아틀란타 한국성당의 전산 팀에 그런 unreasonable한 사람이 도사리고 있는데, 모처럼 마음먹고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쫓아내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정면으로 대결을 해서 문제를 풀 것인가, 피할 것인가? 하지만 대결을 하려면 평균적 reasoning 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이라서, 결국은 ‘피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것이 과연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 방법을 택하기로 오늘 마음 먹으면서, 나의 기분이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이것도 오래 살면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 중의 하나다. 참, 세상 살기 힘들다. 이럴 때 특효약 중의 하나는 역시 추억의 oldies가 아닐까? 그 아득한 시절 즐겨 듣던 SandpipersGuantanamera…는 메마르고 갈라진 가슴에 촉촉이 쿠바의 야자유 향기를 뿌려 줄 듯하다.

 

 

망자(亡者)의 날

포근한 가을에서 주룩 거리는 비와 함께 싸늘한 가을날씨가 되돌아온다. 밤새 뒤척거리며 불편한 잠으로부터 싸늘하고 꾸준한 빗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비는 싸늘하게, 꾸준하게, 가끔 세차게, 열어놓고 잔 창문 속으로 소리를 밀어 넣는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에 깨서 일어나 보았다. 아무리 내가 ‘아침 사람’ 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런 이른 새벽에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준비 때가 아니었으면..

어제는 생각해 보니 완전히 하루가 망자의 날이었다. 망자, 망인.. 이럴 때, 한자의 도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죽은 이’ 보다 훨씬 느낌이 고상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니까.. 두 사람의 고인(故人), ‘아들’ 들, 그 중 한 사람은 남편, 아버지.. 나이 61세와 48세의 남자들..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두분 모두 나보다 늦게 태어나고 일찍 돌아가시는 형제님들이다. 한 분은 지난 주에 장례식이 있었고 어제는 연도만 드렸지만 다른 분은 연도와 장례미사가 어제 함께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말기 암’ 선고 받은 지 한 달도 못 돼서 돌아가셨다. 요새는 ‘암’ 이란 것이 너무나 친숙해 진 느낌이고 감정에도 조금은 무디어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레 암의 공격에 항복을 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을까? 그래서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조금은 더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 분들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친지도 아니지만, 느낌은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루하루가 시한부 인생을 산 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을 하는 것이다.

 

특히 48세에 운명을 하신 윤(尹) 형제님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한창 일을 할 나이.. 여느 48세였으면, 한 가족의 가장이요, 대학에 다닐만한 듬직한 아들 딸이 있었을지도 모를 나이, 은퇴하셔서 아들과 같이 살지도 모를 부모님.. 등등이 상상이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은 ‘통계’에서 나온 흔한 상상에 불과하다. 모든 인생은 다 다른 것이다. 이분의 경우가 그렇다. 우선 미혼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지도.. 또한 경제적으로 왕성하게 일을 해서 얻은 ‘부의 결과’도 거의 없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보였다. 유일한 보람은 서로 뭉쳐서 사는 단출한 가족이 전부였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듣고, 본 것이라 이런 ‘느낌’들이 다 맞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럴 때의 느낌은 대부분 맞는 것을 안다.

 61세에 운명하신 안(安) 형제님은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와 조금은 관계가 있지만, 갑자기 운명하신 것과 집안 식구와의 종교적인 차이로 장례절차에 조금 잡음이 있었다.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고인에게 종교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다. 그것을 고인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이분은 주위에 대가족의 ‘정신적 후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이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주위의 연고가 별로, 아니 거의 없던 윤 형제님을 보내는 것은 우리 ‘레지오가 해야 할 역할을 한마디로 보여준 케이스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 레지오의 정신적 후원과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도와 장례미사, 장지(葬地)동행까지 거의 ‘완벽하게’ 레지오는 사명을 완수했다. 나도 ‘남자’라는 이유로 생애 처음 운구(運軀)의 역할도 했기에 더욱 고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쓸쓸히 보낼 뻔했던 고인도 조금은 편안하셨으리라 굳게 믿는다.

생각한다. 우리 집은 어떤가.. 가족적으로 외롭기는 아마도 위의 윤 형제님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지인(知人)이나 올까? 범인凡人)으로써는 지나치게 화려한 장례의식도 보았고, 다른 쪽으로는, 고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지나치게 쓸쓸한 의식 얘기도 들어서 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정도껏’ 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나 쓸쓸치도.. 않은.. 그런 것은 없을까? 이래저래, 어제는 삶을 통한 죽음,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인생은 미완성 – 김진관

 

시월의 반

시월의 반이 되어간다. 어릴 적 국민학생일 적, 10월은 십 월이 아니고 시월이라고 귀따갑게 배운 기억의 시월.. 이제는 추운 가을의 맛도 이미 느꼈고, 조금은 월동준비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최근 아주 정상기온을 유지하며 며칠 동안은 땅속으로 포근히 스며드는 비까지 뿌려준 올 가을, 자연의 하느님께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시월에 있는 눈에 띄는 날은 역시 시월 마지막 날, 할로윈 (Halloween)일 것이다. 일년의 수확을 상징하는 호박의 황금색이 온통 동네를 장식하는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초자연적 존재인 ‘귀신’을 즐기는 날.. 비록 종교적으로는 ‘악마,귀신 숭배’를 우려해, 권장하는 날은 아니지만, 분명히 종교적 의미의 ‘초자연적인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날을 재미없어 하는 축은 아마도 ‘무신론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귀신 조차’ 믿지 않을 테니까..

에스페란토 회보
미국 에스페란토 회보

에스페란토, 2개월마다 간행되는 회지, American Esperantist가 어제 배달되었다. 지난 번 아버지가 관련된 에스페란토 역사를 추적하며, 미국 에스페란토 협회에 문의를 한 적이 있어서 이렇게 ‘무료’로 보내주었나 보다. 이 회보를 받아보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각종 회원들의 연회비 (정회원은 $40/year!)로 운영이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빈약한 느낌일까? 물론 인터넷의 영향으로 인쇄 간행물이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조금은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없었을까? 역사 깊은 대한민국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1950년대의 느낌을 줄 정도로 보는 느낌이 ‘차분’하다. 그에 비해서 내용은 훨씬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것’ 같은데.. 에스페란토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며, 과연 에스페란토가 얼마나 더 ‘지탱’을 할까 하는 모양인데, 나는 오래 오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내가 이것을 배워서 쓰고 안 쓰고 하는 문제보다는 이런 ‘인류 평등,평화‘의 정신이 계속 발전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틀란타 천상의 모후 꾸리아 간부교육피정,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이것에 조금 의미가 있다면, 연숙이 꾸리아 부단장에 피선된 후 처음의 행사가 되었고, 나는 곁다리로 단원의 자격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단장이 식구에 있으니 나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실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명분이 뚜렷하지도 않았다. 레지오의 철칙인 ‘순명’을 어기는 것도 되니 할말도 별로 없었다. 단장이란 사람은 나머지 임원을 완전히 믿는지 한달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고 행사 하루 전에 나타나셨다. 결국은 자리를 지키는 ‘일벌’들이 실질적인 일은 다한 셈이고.. 이 동네의 거의 모든 일들이 이렇게 카프카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맡은 일은 일일 사진기자의 역할인데,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꼬박 전체 행사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라 조금 신경이 안 쓰일 수 없고, 나의 camera가 아주 ‘시로도’ 급이라, 과연 사진이 잘 나올지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것도 레지오의 중요한 봉사이기 때문에 기꺼이 하면 될 것이고, 나머지는 다 ‘위에서’ 보살펴 주실 것이다.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 어제는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시점의 이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물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는 예외에 속하니까,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하도 변해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을 했다고’ 우기고, 할 것 다하며 같이 살면서 죽어도 결혼 안 했다고 우기고, 자식 팽개치고 이혼한 것이 무슨 ‘벼슬’을 한 듯, “괜찮다 괜찮아” 하며 행세하는 묘한 세상에,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아 보는 것은 사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만큼 결혼과 죽음은 인간이기 때문에 확실히 거쳐야 하는 중대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You Don’t Bring Me Flowers
Neil Diamond, Barbara Streisand
데레사에게 주는 선물, 오랫동안 변치 않을 사랑을.. 

 

어제는 우리 집과 안면이 있는, 김찬웅(베드로)씨 딸 데레사의 결혼 피로연, 초대를 받고 갔었다. 이미 나의 오래 전 blog에서 언급이 되었던 베드로씨네, 부인인 안젤라씨는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의 단장님이기도 하다. 거의 20+년 전, 우리의 두 딸들과 어울려 놀았던 데레사가 결혼을 해서 친지들이 모여서 멋진 파티를 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우리부부가 선생님을 하던 아틀란타 한국학교에도 다니던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을 보며, 또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이런 자리에 가게 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것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집을 안 역사는 오랜 되었지만 그것에 비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짐작으로, 우리의 문화적 배경인 동창회, 종교 단체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곳은 이민 1세의 특성상, 거의가 자영업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조직에 의한 연고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경기, 서울대를 거치는 동창회는 그런대로 아틀란타 지역에 ‘막강’한 세력이 있는 것 같고, 베드로씨는 아마도 활동적인 멤버인 것 같아서 그곳을 통한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은 짐작한 대로였다. 거기다 베드로씨는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삼성 아틀란타 지사에서 근무를 했으니까 그곳에도 ‘동창’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짐작보다 사람들이 많이 참가를 한 ‘성공적’인 피로연이 되었다.

그곳에서 ‘의외’로 만나거나 본 사람 중에는: 오래 전 아틀란타 한국학교 교장 김경숙씨, 그의 남편(경기고 출신)이 있었다. 뜻밖의 마음과,보기 싫은 마음이 싸우며 결과적으로 인사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살면서 끝맺음이 잘 못되면 이런 꼴이 된다는 것, 참 불쾌한 기억이요 잊고 싶은 추억이다. 연세대 2년 선배, 장학근 선배(건축과)를 거의 5년도 넘게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글쎄.. 나를 기억을 하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그의 부인이 나와 연세대 66학번(가정대) 동문이기도 했는데 어제는 인사를 못했다. 한때 잘 나가던 부동산인 김경자씨..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만났는데..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관계를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사는 집은 1992년에 이분이 소개를 해 주어서 사게 된 것이라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가운 집 연세대 후배 Mr. 고, 그의 부인..이 집은 2005년 초에 우리 집 ‘깡패,귀염둥이 강아지’ Tobey를 준 집이다. 반가운 인사 전에 Tobey의 안부를 먼저 물을 정도였다. 이 집 부부도 사실 안지가 꽤 오랜 되었지만, 특별한 관계가 별로 없었다. 이 Mr.고, 김찬웅, 베드로씨와 삼성지사에서 같이 근무를 해서 아는 사이라 온 것이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은 가끔 ‘동창회’처럼 모인다고 했는데, 이런 것도 미국인들이 이해를 잘 못하는 한국문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연숙은 금새 잘 알아 보았는데,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할 듯.. 그만큼 내가 변했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그것도 세월의 진리일 것이다. 예전보다 많이 이런 반응에 익숙해 졌고, 익숙해 지려고 기를 쓴다.

 

Perhaps Love
John Denver & Placido Domingo

 

조금은 예상했던 집들, 설재규씨 가족도 보았다. 아직도 어떻게 설재규씨 집안이 베드로씨 네 집과 연관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모른다. 이런 ‘인연’을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연숙의 이대 선배 박교수님 댁도 보았지만 인사를 못 했다. 이분들이 올 것은 쉽게 예상이 된 것이, 남편끼리는 경기고,서울대 동창이며, 부인들은 숙명여고 동창인 것이다. 이것 보다 더 연관이 된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 이외의 ‘개인적’인 친분의 정도는 정말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베드로씨와 ‘불알’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선포를 했던 EmCee 김용주씨, 역시 오래 전에 알게 되었지만 나이와 학벌 같은 이유로 공감대가 별로 없었다. 한때 아틀란타 본당의 ‘사목회장’까지 역임을 했었지만 요새는 조용한 듯 하다. 우리의 마리에타 2구역, 구역회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조덕성, 바오로’ 씨를 이곳에서 볼 것이라는 것은 100% 확실했다. 며칠 전 구역미사에서 이미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토요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모여서 술과 노래를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도 Three Tenors를 모방한 연기도 있었는데, 조금은 어려운 노래, “Perhaps Love“를 고른 것이 조금은 무리였나.. 가사를 잊고 중단도 되었지만 신부 데레사가 재치 있게 이어받아 불러 주었다. 이때 데레사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가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론 우리 막강한 레지오 단원들이 전원 참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딸의 경사라서 사실 ‘피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놀란 것이, 그런 자리는 사실 조금은 ‘젊은’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단원 자매님들의 ‘형제님(aka 남편)’들을 뵙게 되었다. ‘생각보다’ 첫 인상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입단한 나의 거의 동년배인 우동춘 형제 부부가 ‘용감하게’ 참석을 하였다. 나이가 너무나 나와 비슷해서 시간만 나면 조금 가까이서 얘기를 해 보려던 참에, 이 자리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고,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인사치레를 넘어선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세대가 바뀌는 과정을,그것도 결혼을 통해서 한 가정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마감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이날 아침에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한달 만에 불과 61세로 세상을 떠난 형제님이 있었다. 그는 다름이 아닌 우리 레지오 쁘레시디움의 부단장 자매님의 작은 시동생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들이 병자기도를 하다가 며칠 전부터는 선종기도로 바뀐, 너무나 빨리 진행된 죽음의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비록 짧은 고통을 겪게 되고, 주위 가족에게 오랜 고통을 주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게 짧았던 이별의 시간은 어떠한가? 예전 같으면 60세가 넘었으니 우선은 살만큼 살았다고나 하겠지만 요새는 사실 빠른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얼마큼 보람 있는 생을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예전에는 깊이 하지 못하며 살았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떠할까? 보람이 있었을까? 알 수가 없지만 살아있는 만큼 동안은 ‘결사적’으로 ‘보람’을 만들며 살고 싶다.

 

A Glorious Autumn day

2011년 10월 8일, 아침에 바깥을 보니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이었다. 어렸을 적 많이 보았던 북악산 쪽의 드높은 ‘시퍼런’ 하늘이었다. 오늘은 그것에 덧붙여서 산들바람이 조금은 더 세게 분다. 아마도 이것이 ‘완전한 가을’ 날씨가 아닐까? 하지만 기후에 비해서 풍경은 아직도 푸른 색이 가을 색보다 훨씬 더 많은 ‘초가을’ 이다.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색깔들이 변하게 될 단풍의 나날들로 변하게 될 것이다.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얼마 전부터 연숙이 ‘묵향’ 이라는 동양화의 일종을 배우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틀란타 본당에서 배우는 모양인데, 내가 동양화란 것이 거의 문외한인 탓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화구(묵, 붓, 한지 같은)를 챙길 때도 성의 없이 대하곤 했다. 그 수려하고 잔잔한 그림을 보는 것은 몰라도 내가 그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래 전부터 붓글씨 같은 것을 해 보고 싶다고 하더니 선생님을 못 찾아서 애를 태우더니 이번에는 ‘아다리’ 가 맞아서 묵향 선생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아주 심각해 졌는데, 이유는 얼마 후에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준비하느라고 심각해 진 것이다. 본인이 아직도 초보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더니 드디어 얼마 전에 그림을 완성을 해서 표구까지 해서 집에 들고 왔는데.. 솔직히 나도 놀랐다. 한마디로 ‘괜찮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의 말씀에 연숙은 옛날에 서양화를 그렸기 때문에 이것도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나는 그것이 일리가 있는지도 사실 확실치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에 그린 것과 비슷하게 다시 그리려 했는데, 그것이 정말 어려워서 포기 했다고.. 그러니까 이런 그림은 그릴 때의 마음가짐, 자세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포인트는 이런 ‘보이는 그림’이라는 ‘결과’가 아니고, 그것을 그리는 그 자체가 그렇게 ‘즐겁다’ 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