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와 연도

레지오 마리애 연차 총 친목회
2011년 아틀란타 꾸리아 연차 총 친목회

어제 12월의 첫 일요일은 거의 하루 종일을 진정한 ‘일을 떠난 안식일’로 지냈다. 글자 그대로 안식일이면 일을 쉬는 날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하루 종일 일을 한 셈이 되었다.물론 여기서의 일은 성당과 관련이 된 것들이다. 물론 집 근처의 미국본당에서의 주일 미사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한국 본당까지도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11년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의 ‘천상 은총의 모후’ 꾸리아 주최 연차 총 친목회에 갔는데, 이번에는 평 단원으로 그냥 즐기러만 간 것 이외에도 연숙이 꾸리아 부회장을 맡은 관계로 봉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연숙은 총 친목회의 EmCee(사회)까지 맡게 되어 있었고, 나는 우리 쁘레시디움에서 발표하게 되어있는 ‘(거지)타령’ 에 끼어 있어서 둘 다 심리적으로 은근히 stress까지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연숙의 사회 진행은 큰 ‘사고’없이 잘 진행이 되어서 결과가 좋았는데, 우리 쁘레시디움의 타령 공연은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어서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에서 참가를 한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로 했다.

오랜 만에 스트레스 성 일들이 이렇게 겹쳐서 그런지 모든 행사가 무사히 끝나고 나서 아주 안도감과 피곤함이 함께 몰려 들어서 그저 TobeyIzzie가 목매도록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우리 둘은 갑자기 예정이 된 어느 자매님(베로니카)의 장의사 연도에 참석을 하러 가게 되었다. 우리 성당과 직접 연관이 없는 듯 보이는 자매님이라고 들어서 가는 것이 잠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연고자들이 별로 없다는 말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런 것이야 말로 우리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던가? 역시 갔다 와서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아주 단출한 가족이 전부인 곳, 예쁜 할머님 자매님이 그곳에 잠자듯 누워계셨다. 문득 꿈에 본 어머님 얼굴이 잠깐 어른거렸다.

어느 funeral home (장의사)의 조그만 chapel에서 조금밖에 모이지 않은 우리 레지오 단원들, 열심히 연도를 바치고, 고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viewing을 하고, 유족을 위로했는데, 따님이 너무나도 서럽게 울며 서투른 한국말로 “레지오 마리애, 너무 감사합니다” 를 연발해서 우리들 모두 눈물을 감추기에 바빴다. 아마도 돌아가신 어머님과 따님은 무척 사이가 좋았던 듯 싶었다. 이런 광경들은 거기 모인 모두들, 자기 나름대로의 처지에 비추어서 생각하며 속으로 울었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눈물을 감추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 돌아가신 베로니카 자매님은 어떤 인생여정을 보내시고 여기까지 오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며 한정된 인간 수명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일년을 감사하며..

Thanksgiving, 2011 Huffington Post version

Thanksgiving, 2011 Huffington Post version

 

¶  감사하며 “지나가는” 일년,  숨차게 지나가는 일년을 생각하며 모든 것들, 지극히 한정된 나와 나의 주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무한한 존재 하느님께 감사한다. 흔히 년 말에 이런 생각을 더 하겠지만, 오늘이 마침 ‘[추수]감사절’이니까 조금 더 일찍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을 듯하다.

우리의 작기만 한 가족들 건강한 것과 생전 처음 경험하는 불경기에서도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항상 무언가 불안한 여건하에서 무언가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들.. 이것 이외는 사실 큰 상관이 없고, 문제도 없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 항상 찾고, 바르게 고치며, 그것에서 큰 무리 없이 최선을 다한 지난 일년이었을까?

겸손, 순명, 사랑, 절제.. 다 어렵기만 한 먼 곳에 있는 이상 같지만, 의외로 가까이서 우리를 이끌었던 지나가는 일년이었다. 그것만으로 사실 우리는 ‘가난한 부자‘라고 생각한다.

 

¶  어제 저녁에는 갑작스러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연도에 연숙과 같이 다녀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 성당의 청소 봉사를 하시던 교우형제님께서 조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신 어르신이었지만 알고 보니 우리 구역에 있는 안금환 형제와 거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 안 형제 남동생의 장인이셨던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요새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급서로 인한 놀라움은 크지만, 오랜 고통 속에서 타계하는 사람에 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나에게 선택을 하라면 짧은 과정을 택할 것 같다. 이곳의 biggest holiday를 앞둔 날이었지만 연도와 viewing (시신을 보는 것)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열기 찬 연도가 되어서 고인도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하느님 품에 가게 되지 않았을까?

장례 미사가 오늘 바로 추수감사절에 있어서, 오늘 그곳에 가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는 판단인데, 어떨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을까.. 고인에 연관된 가족은 평균보다 훨씬 많으니까, 큰 걱정은 안 한다. 어제도 “내가 오늘 죽으면 몇 명이나 나를 보러 올까”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지난 몇 주일 동안 오래된 VHS video cassette 들을 ‘무섭게’ computer로 옮기는 작업을 해 왔는데, 이제 조금 끝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을 ‘자동’으로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므로 꼬박 과정을 지키고 앉아서 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지루하긴 하지만 덕분에 오랜 만에 20년까지 된 오래된 ‘가족이 보던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어서 생각만큼 고역은 아니었다.

지금 보니 그것들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다. 거의 100+여 개가 되는 비디오 테이프들.. 90년대에 그렇게 안방 사랑을 받던 그 당시의 최첨단 기술, VHS video.. 그것이 지금은 DVD/BlueRay의 얇기만 한 optical disc들.. 참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고국의 극장에서 보았던 추억의 할리우드 명화들이라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옛 것’들이라서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큰 후에, 옛날 영화가 더 좋았다고 말할 때도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  지난 며칠 동안 오랜만에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며 예년에 비해서 별로 볼품이 없이 힘겹게 달려있던 불쌍한 단풍잎들이 거의 모조리 떨어져서 완전한 겨울의 풍경을 나타냈다. 이런 상태로 내년 3월까지 버티게 되고 가끔 완전히 하얀 눈까지 덮일 아주 높은 가능성도 있어서 귀추가 주목이 되지만 제발 큰 피해 없이 멋진 풍경만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full Autumn leaves 2011

full Autumn leaves 2011

our backyard under fallen leaves

집 뒤뜰이 완전히 낙엽으로 덥혔다

 

깊어가는 가을에..

30년이 넘는 빛나는 역사를 자랑하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고, 집안 가족들에게 진정한 안방극장의 역할을 다 했던 비디오 테이프(‘테입’ 이 더 맞을 듯 한데, 아마도 표준용어는 역시 ‘테이프’ 인 모양), VHS video tape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몇 주 전에 우연히 VHS cassette에 있는 오래 전의 영화를 보려고 하다가 VCR(video cassette recorder, 일본에선 VTR: video tape recorder라고 함) 이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망연자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렇게 많이 쌓여있는 ‘옛날’ 비디오 영화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5년 전쯤에 우리가 찍었던 가족 비디오들은 일단 모조리 computer로 복사를 해 두었지만 돈을 주고 산 영화 비디오들은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두었고, 최악의 경우에 그런 것들은 나중에 DVD로 다시 나올 것이니까, 가족 비디오처럼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잊고 살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VCR이 ‘건재’ 하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손쉽게 테이프에 있는 영화 비디오 조차 못 보게 된 것이다. 결론은 분명히: 이번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VCR+DVD player combo
VCR+DVD player combo

최우선의 과제는, 오랜 동안 모았던 주옥 같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이 모일 때, TV로 쉽게 볼 수 있어야 하므로, VCR을 사야 하는 일이고, 다음은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상태가 나빠져 못 볼’ 이 많은 영화 비디오를 ‘가족 비디오처럼’ computer로 옮겨야 하는 일이었다. 컴퓨터로 일단 digitize가 되면, 수명은 거의 반 영구적이 될 것이고, 여기저기서 computer로 볼 수가 있게 되니까, 조금 지루한 일이지만 효과는 몇 배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VCR 을 사려고 보니까, 요새는 VCRDVD player가 함께 붙어서 나오고, 값도 $70 정도여서, 참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 옛날 VCR이 처음 나올 당시.. 처음에는 천불이 넘었었던 것을 기억하니까.. 이렇게 해서 VHS tape을 computer(digital) movie file (WMV, Vidx/Xvid/AVI format)로 하나 둘씩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장난이 아니게 많아서, 언제 끝나게 될지 한심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는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지루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벌써 Carroll BakerRoger Moore의 명화 The Miracle(기적), Tom HanksApollo 13, Jennifer JonesThe Song of Bernadette (루르드 성모님 이야기) 등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1990년대에 우리 집 식구들이 즐겨 본 것들이라 그 당시의 추억도 함께 떠오른다. 근래에 HD(high definition) TV에 익숙해지고 있는 마당에 VHS의 ‘조잡한’ SD (standard, low) definition을 보니까 어떻게 옛날에 저런 것을 보며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그런 ‘조잡’한 맛이 은근한 맛도 있고, 감정적으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니, 나도 참 오래 살았나 보다.

 

10 years with YMCA.. 허.. 언제 이렇게 되었나? YMCA의 gym에서 운동을 한 것이 10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은 1990년대에 다같이 이곳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운동, 수영을 했지만, 나는 2011년 9월 이전까지는 아주 가끔 갔었다. family plan으로 멤버가 되면 조금 싼 이유도 있었지만, 정기적 육체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누가 모를까,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연숙이 거의 강제로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 이제 10년이 훨씬 넘게 된 것이다. 요새는 우리 부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를 목표로 하고 다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안 가게 되면 더 신경이 쓰일 정도가 되었다.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것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애를 통해 지난 10년은 사실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십 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아마도 이 YMCA는 내가 ‘살아’ 남는데 큰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East Cobb YMCA
East Cobb YMCA

처음에는 주로 아침에 갔고, 그때면 주변에 사는 한인들과도 어울리며 커피나 얘기도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 알던 부부가 거의 연달아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해서 참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을 하고, 겉으로 건장하게 보여도 그것과 ‘수명적인 건강’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옛날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 종로에 있던 종로서적센터 뒤에 있던 그 당시에는 최신식인 health center에 몇 개월 다니면서 ‘빈약한’ 근육을 바꾸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었고, 친구 이경증과 같이 서울 운동장에 있었던 체육관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 weight training 은 그다지 생소한 것이 아니었고, bench press에서 나의 체중(145파운드) 무게로 10 reps까지 하게 되었지만, 요새는 근육의 모양새보다는 근육의 목적에 더 신경을 쓴다. 예를 들면 무거운 것을 옮긴다던가 할 때 큰 문제없이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음은 역시 근육의 빠른 노화를 완화시키는 것인데 사실인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요새는 근육운동보다 걷는 것, bike등으로 하체에 더 신경을 쓰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더 나이가 들어서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YMCA gym에 갈 때마다 그 옛날 나에게 ‘역기운동’의 기초를 가르쳐주던 친구 이경증을 생각하곤 한다.

 

며칠 후의 일기예보는 드디어 올해 처음 아틀란타 메트로 지역에 빙점(화씨 32도, 섭씨 0도)의 가능성을 예고해서, 본격적인 가을의 중반을 향하는 느낌이다. 2주 뒤에는 크리스마스에 다음의 미국 최대 명절인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이고, 사실상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season이 시작이 된다. 올해는 조금 ‘극단적인’ 기후였는지는 몰라도 단풍을 보니 역시 피곤한 빛이 역력하였다. 빛깔이 그렇게 곱지를 않은 것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이 근처에서 제일 빛이 찬란한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는 그것으로 올해의 단풍의 질을 판단하게 되었다. 역시 작년에 비해서 조금은 초라한데, 색깔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잎사귀들이 건강하게 변하지를 않았고 심지어는 한쪽이 대머리처럼 듬성듬성 빠져 보여서 조금은 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연도 기후의 스트레스를 왜 받지 않았겠는가? 우리 집 앞쪽에 있는 나무들도 역시 색깔들이 바랜 것하고 떨어지는 모양새가 예년에 비해서 아주 비정상적으로 불규칙한 모습들이다. 확실히 ‘심한’ 기후에 의한 피곤한 자연의 표현이다. 이러다가 바람이 부는 을씨년스런 날이라도 오게 되면 아마도 하루 아침에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지나 않을까? 작년의 폭설을 기억하면서 올해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Fall Colors, 2011

기후 탓으로 예년만 못한 Fall colors, 2011

 

시월 말의 잡상(雜想)들

2011년 제2차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2011년 제2차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제2회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회원 전시회) 1차 전시가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에서 있었다. 2차 전시는 일주일 뒤인 10월 29일부터 다른 아틀란타 성당인 김대건 천주교회에서 있었다. 아틀란타 묵향회 주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이곳의 한국 성당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묵향회 회원들이 그 동안 쌓은 노력의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보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사실 묵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대강은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연숙이 이것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곁다리, 등 넘어’로 보고 느끼게 되었다. 일반적인 동양화의 산수화를 연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한 듯 했다.

회원들의 대부분이 여자들이었지만 예외적으로 ‘젊은’ 남자회원도 있어서, 사실은 그 분의 작품의 양과 질이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흔히 생각하듯, 시간이 남아서 한다는 상투적인 인상이 전혀 없이 정말 좋아서 하는 듯 했다. 그날은 오랜만에 우리 식구가 다 모일 기회가 되어서 우리에게는 정말 드문 가족행사까지 되었다. 전시회는 작품자체를 떠나서, 조금 더 ‘멋지게’ 했었을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작품들이 단상(성당의 제단)위에 함께 몰려있는 듯한 배치는 조금 자세히 보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불편한 것이었다. 일반 전시화랑같이는 할 수 없다지만, 성당에서 정성껏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2011년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개막
2011년 아틀란타 묵향회 회원전 개막

연숙의 작품은 아무리 겸손해도, 아주 잘 그렸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난생 처음’ 하는 것을 그렇게 잘 했을까?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은 알지만, 이런 것은 ‘열심’ 만 가지고는 힘들기 때문에, 무언가 오래 숨어 있었던 ‘소질’이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닐까? 내도 한번..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사실 어림도 없다. 어렸을 때 그렇게 즐기고 잘 그리던 나의 만화 솜씨를 기억하고 나보고 만화를 그려보라고 식구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힘들 것 같다. 글씨를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무언가 그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초’가 제로다. 만화는 내 나름대로 ‘기가 막히게’ 잘 그렸는지는 몰라도 미술의 기초인 ‘뎃상’ 같은 것은 거의 낙제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단언을 하랴.. 어떻게 나에게도 ‘숨어있던’ 실력이 있을지..

 

2011년 연례 이화여대 총동창회
2011년 연례 이화여대 총동창회

이화여대 총동창회 북미주지회연합회.. 휴~~ 이름이 길기도 해라.. 주최의 annual conventionBoston (Harvard, MIT..)에서 지난 며칠간 열려서, 연숙도 그곳에 가 있는데, 날씨가 갑자기 돌변을 해서 Nor’easter라는 악명 높은 눈보라 치는 날씨가 예상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Boston은 큰 문제가 없었던 듯하다. 어떻게 가을이 한창이 지금 그런 한겨울 것이 왔을까.. 역시 이것도 그것 때문인가? 꽤 오래 전에는 동창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도 하더니 언젠가 한번 고약한 동창에게 혼이 나서 완전히 관심을 잃었었는데, 이번에는 오래 전 친구였던 총장 김선욱씨가 온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우리 결혼식에서 잠깐 본 후에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라, 감회가 참 깊으리라 생각을 한다. 김총장은 독일에서 공부를 해서 미국에는 별로 연고가 없었던 듯해서 더욱 못보고 살게 되었나 보다. 요새 가끔 받아보는 이화여대의 소식지를 보면,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연세대 다닐 때 버스에서 꼭 보게 되던 이대 생들.. 그런 소박하고 순진한 대학이 아니고 ‘완전히’ 국제화된 무슨 레바논의 국제형 대학같은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세계 유일의 여자공과대학.. 허.. 분명히 세계 유일일 것이다. 그런 것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늙은’ 생각에는 그렇게 확장만 할 것이 아니고 몇 개의 정말 ‘여성에게 중요한’ 분야를 개발, 정착해서 그 분야의 세계최고를 지향했으면 어떨까 하지만, 역시 늙은 생각일 뿐이다.

 

Waste King hot water dispenser
Waste King hot water dispenser

hot water dispenser.. 거의 펄펄 끓는 마시는 물을 ‘항상’ 제공하는 이것이 얼마 전에 조금씩 새기 시작해서, 결국은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초에는 집 전체의 더운물을 공급하는 온수기가 새서 갈았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또 문제였다. 이것은 3년 반전에 내가 직접 설치한 것이고, 조금 실망이었던 것은 아주 유명한 회사의 제품(ISE: InSinkErator, Inc.)이라는 사실에 비해 수명이 짧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의 같은 것은 거의 10년 이상을 썼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명한 InSinkErator, Made In USA의 품질이 이렇게 떨어졌을까? 미제의 신뢰도도 요새의 경제하락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이번에 새로 산 것은 일부러 ‘잘 모르는’ 것으로 샀다. 모험인줄 알지만 그만큼 전번 상표의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제 새로 설치를 했는데, 예상이 되는 ‘설치할 때의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주로 plumbing에 관련된). 이런 것은 전기나 수도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없을 때는 별로 고마움을 못 느끼지만, 고장 나거나 해서 없을 때 그 귀중함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며칠, instant coffee를 마실 때, 불편을 겪어서 다시 한번 필요성을 절감한다.

 

Triple Lows: 축~ 쳐지는 그런 날

오늘은 가을 날씨로는 조금 싸늘한 편이었지만 밝은 햇살 덕분에 ‘느낌’은 그리 춥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완전히 tail spinning 하는 듯 새카만 심연 속으로 빠지는 듯한 하루였다. 이것이 오래 전 유행하던 biorhythmtriple lows에 해당하는 그런 때가 아닐까? 며칠 전 돌아가신 분들의 연도와 장례식 등으로 인한 심적인 stress로 사실 몸과 마음이 축 쳐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나를 완전히 knockout을 시킨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항복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유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영어로 말하면 unreasonable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런 ‘막무가내’한 사람이 만약 ‘중요한 일’을 하는데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예를 들어 직장 같은 곳에서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면 정말 곤란할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력을 해도 안 되면 결국은 그 관계는 완전히 실패를 하고 일도 실패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런 사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그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지만..

 나도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해 보았다. 대부분 피할 수 없는 case여서 정면으로 맞상대로 ‘싸우거나’, 그대로 ‘당하면서’ 고민하고 속을 끓는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래도 그런 사람을 피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전혀 가망이 없어서 노력자체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약 직장이 아닌 예를 들어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만나서 같이 ‘봉사적인’ 일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내가 당한 case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내 연숙은 오랫동안 이런 것으로 속을 끓고, 고민하곤 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당하게’ 된 것이다.

 

 

Gunatanamera – Sandpipers

내가 조금 관계된 아틀란타 한국성당의 전산 팀에 그런 unreasonable한 사람이 도사리고 있는데, 모처럼 마음먹고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쫓아내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정면으로 대결을 해서 문제를 풀 것인가, 피할 것인가? 하지만 대결을 하려면 평균적 reasoning 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이라서, 결국은 ‘피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것이 과연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 방법을 택하기로 오늘 마음 먹으면서, 나의 기분이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이것도 오래 살면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 중의 하나다. 참, 세상 살기 힘들다. 이럴 때 특효약 중의 하나는 역시 추억의 oldies가 아닐까? 그 아득한 시절 즐겨 듣던 SandpipersGuantanamera…는 메마르고 갈라진 가슴에 촉촉이 쿠바의 야자유 향기를 뿌려 줄 듯하다.

 

 

망자(亡者)의 날

포근한 가을에서 주룩 거리는 비와 함께 싸늘한 가을날씨가 되돌아온다. 밤새 뒤척거리며 불편한 잠으로부터 싸늘하고 꾸준한 빗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비는 싸늘하게, 꾸준하게, 가끔 세차게, 열어놓고 잔 창문 속으로 소리를 밀어 넣는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에 깨서 일어나 보았다. 아무리 내가 ‘아침 사람’ 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런 이른 새벽에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준비 때가 아니었으면..

어제는 생각해 보니 완전히 하루가 망자의 날이었다. 망자, 망인.. 이럴 때, 한자의 도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죽은 이’ 보다 훨씬 느낌이 고상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니까.. 두 사람의 고인(故人), ‘아들’ 들, 그 중 한 사람은 남편, 아버지.. 나이 61세와 48세의 남자들..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두분 모두 나보다 늦게 태어나고 일찍 돌아가시는 형제님들이다. 한 분은 지난 주에 장례식이 있었고 어제는 연도만 드렸지만 다른 분은 연도와 장례미사가 어제 함께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말기 암’ 선고 받은 지 한 달도 못 돼서 돌아가셨다. 요새는 ‘암’ 이란 것이 너무나 친숙해 진 느낌이고 감정에도 조금은 무디어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레 암의 공격에 항복을 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을까? 그래서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조금은 더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 분들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친지도 아니지만, 느낌은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루하루가 시한부 인생을 산 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을 하는 것이다.

 

특히 48세에 운명을 하신 윤(尹) 형제님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한창 일을 할 나이.. 여느 48세였으면, 한 가족의 가장이요, 대학에 다닐만한 듬직한 아들 딸이 있었을지도 모를 나이, 은퇴하셔서 아들과 같이 살지도 모를 부모님.. 등등이 상상이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은 ‘통계’에서 나온 흔한 상상에 불과하다. 모든 인생은 다 다른 것이다. 이분의 경우가 그렇다. 우선 미혼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지도.. 또한 경제적으로 왕성하게 일을 해서 얻은 ‘부의 결과’도 거의 없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보였다. 유일한 보람은 서로 뭉쳐서 사는 단출한 가족이 전부였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듣고, 본 것이라 이런 ‘느낌’들이 다 맞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럴 때의 느낌은 대부분 맞는 것을 안다.

 61세에 운명하신 안(安) 형제님은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와 조금은 관계가 있지만, 갑자기 운명하신 것과 집안 식구와의 종교적인 차이로 장례절차에 조금 잡음이 있었다.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고인에게 종교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다. 그것을 고인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이분은 주위에 대가족의 ‘정신적 후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이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주위의 연고가 별로, 아니 거의 없던 윤 형제님을 보내는 것은 우리 ‘레지오가 해야 할 역할을 한마디로 보여준 케이스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 레지오의 정신적 후원과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도와 장례미사, 장지(葬地)동행까지 거의 ‘완벽하게’ 레지오는 사명을 완수했다. 나도 ‘남자’라는 이유로 생애 처음 운구(運軀)의 역할도 했기에 더욱 고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쓸쓸히 보낼 뻔했던 고인도 조금은 편안하셨으리라 굳게 믿는다.

생각한다. 우리 집은 어떤가.. 가족적으로 외롭기는 아마도 위의 윤 형제님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지인(知人)이나 올까? 범인凡人)으로써는 지나치게 화려한 장례의식도 보았고, 다른 쪽으로는, 고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지나치게 쓸쓸한 의식 얘기도 들어서 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정도껏’ 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나 쓸쓸치도.. 않은.. 그런 것은 없을까? 이래저래, 어제는 삶을 통한 죽음,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인생은 미완성 – 김진관

 

시월의 반

시월의 반이 되어간다. 어릴 적 국민학생일 적, 10월은 십 월이 아니고 시월이라고 귀따갑게 배운 기억의 시월.. 이제는 추운 가을의 맛도 이미 느꼈고, 조금은 월동준비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최근 아주 정상기온을 유지하며 며칠 동안은 땅속으로 포근히 스며드는 비까지 뿌려준 올 가을, 자연의 하느님께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시월에 있는 눈에 띄는 날은 역시 시월 마지막 날, 할로윈 (Halloween)일 것이다. 일년의 수확을 상징하는 호박의 황금색이 온통 동네를 장식하는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초자연적 존재인 ‘귀신’을 즐기는 날.. 비록 종교적으로는 ‘악마,귀신 숭배’를 우려해, 권장하는 날은 아니지만, 분명히 종교적 의미의 ‘초자연적인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날을 재미없어 하는 축은 아마도 ‘무신론자’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귀신 조차’ 믿지 않을 테니까..

에스페란토 회보
미국 에스페란토 회보

에스페란토, 2개월마다 간행되는 회지, American Esperantist가 어제 배달되었다. 지난 번 아버지가 관련된 에스페란토 역사를 추적하며, 미국 에스페란토 협회에 문의를 한 적이 있어서 이렇게 ‘무료’로 보내주었나 보다. 이 회보를 받아보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각종 회원들의 연회비 (정회원은 $40/year!)로 운영이 되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빈약한 느낌일까? 물론 인터넷의 영향으로 인쇄 간행물이 대폭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조금은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없었을까? 역사 깊은 대한민국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1950년대의 느낌을 줄 정도로 보는 느낌이 ‘차분’하다. 그에 비해서 내용은 훨씬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것’ 같은데.. 에스페란토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느끼며, 과연 에스페란토가 얼마나 더 ‘지탱’을 할까 하는 모양인데, 나는 오래 오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내가 이것을 배워서 쓰고 안 쓰고 하는 문제보다는 이런 ‘인류 평등,평화‘의 정신이 계속 발전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틀란타 천상의 모후 꾸리아 간부교육피정,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이것에 조금 의미가 있다면, 연숙이 꾸리아 부단장에 피선된 후 처음의 행사가 되었고, 나는 곁다리로 단원의 자격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단장이 식구에 있으니 나에게도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실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명분이 뚜렷하지도 않았다. 레지오의 철칙인 ‘순명’을 어기는 것도 되니 할말도 별로 없었다. 단장이란 사람은 나머지 임원을 완전히 믿는지 한달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고 행사 하루 전에 나타나셨다. 결국은 자리를 지키는 ‘일벌’들이 실질적인 일은 다한 셈이고.. 이 동네의 거의 모든 일들이 이렇게 카프카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맡은 일은 일일 사진기자의 역할인데,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꼬박 전체 행사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라 조금 신경이 안 쓰일 수 없고, 나의 camera가 아주 ‘시로도’ 급이라, 과연 사진이 잘 나올지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것도 레지오의 중요한 봉사이기 때문에 기꺼이 하면 될 것이고, 나머지는 다 ‘위에서’ 보살펴 주실 것이다.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 어제는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시점의 이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물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는 예외에 속하니까,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하도 변해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을 했다고’ 우기고, 할 것 다하며 같이 살면서 죽어도 결혼 안 했다고 우기고, 자식 팽개치고 이혼한 것이 무슨 ‘벼슬’을 한 듯, “괜찮다 괜찮아” 하며 행세하는 묘한 세상에,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아 보는 것은 사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만큼 결혼과 죽음은 인간이기 때문에 확실히 거쳐야 하는 중대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You Don’t Bring Me Flowers
Neil Diamond, Barbara Streisand
데레사에게 주는 선물, 오랫동안 변치 않을 사랑을.. 

 

어제는 우리 집과 안면이 있는, 김찬웅(베드로)씨 딸 데레사의 결혼 피로연, 초대를 받고 갔었다. 이미 나의 오래 전 blog에서 언급이 되었던 베드로씨네, 부인인 안젤라씨는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의 단장님이기도 하다. 거의 20+년 전, 우리의 두 딸들과 어울려 놀았던 데레사가 결혼을 해서 친지들이 모여서 멋진 파티를 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우리부부가 선생님을 하던 아틀란타 한국학교에도 다니던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을 보며, 또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이런 자리에 가게 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것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집을 안 역사는 오랜 되었지만 그것에 비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짐작으로, 우리의 문화적 배경인 동창회, 종교 단체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곳은 이민 1세의 특성상, 거의가 자영업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조직에 의한 연고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경기, 서울대를 거치는 동창회는 그런대로 아틀란타 지역에 ‘막강’한 세력이 있는 것 같고, 베드로씨는 아마도 활동적인 멤버인 것 같아서 그곳을 통한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은 짐작한 대로였다. 거기다 베드로씨는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삼성 아틀란타 지사에서 근무를 했으니까 그곳에도 ‘동창’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짐작보다 사람들이 많이 참가를 한 ‘성공적’인 피로연이 되었다.

그곳에서 ‘의외’로 만나거나 본 사람 중에는: 오래 전 아틀란타 한국학교 교장 김경숙씨, 그의 남편(경기고 출신)이 있었다. 뜻밖의 마음과,보기 싫은 마음이 싸우며 결과적으로 인사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살면서 끝맺음이 잘 못되면 이런 꼴이 된다는 것, 참 불쾌한 기억이요 잊고 싶은 추억이다. 연세대 2년 선배, 장학근 선배(건축과)를 거의 5년도 넘게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글쎄.. 나를 기억을 하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그의 부인이 나와 연세대 66학번(가정대) 동문이기도 했는데 어제는 인사를 못했다. 한때 잘 나가던 부동산인 김경자씨..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만났는데..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관계를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사는 집은 1992년에 이분이 소개를 해 주어서 사게 된 것이라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가운 집 연세대 후배 Mr. 고, 그의 부인..이 집은 2005년 초에 우리 집 ‘깡패,귀염둥이 강아지’ Tobey를 준 집이다. 반가운 인사 전에 Tobey의 안부를 먼저 물을 정도였다. 이 집 부부도 사실 안지가 꽤 오랜 되었지만, 특별한 관계가 별로 없었다. 이 Mr.고, 김찬웅, 베드로씨와 삼성지사에서 같이 근무를 해서 아는 사이라 온 것이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은 가끔 ‘동창회’처럼 모인다고 했는데, 이런 것도 미국인들이 이해를 잘 못하는 한국문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연숙은 금새 잘 알아 보았는데,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할 듯.. 그만큼 내가 변했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그것도 세월의 진리일 것이다. 예전보다 많이 이런 반응에 익숙해 졌고, 익숙해 지려고 기를 쓴다.

 

Perhaps Love
John Denver & Placido Domingo

 

조금은 예상했던 집들, 설재규씨 가족도 보았다. 아직도 어떻게 설재규씨 집안이 베드로씨 네 집과 연관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모른다. 이런 ‘인연’을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연숙의 이대 선배 박교수님 댁도 보았지만 인사를 못 했다. 이분들이 올 것은 쉽게 예상이 된 것이, 남편끼리는 경기고,서울대 동창이며, 부인들은 숙명여고 동창인 것이다. 이것 보다 더 연관이 된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 이외의 ‘개인적’인 친분의 정도는 정말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베드로씨와 ‘불알’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선포를 했던 EmCee 김용주씨, 역시 오래 전에 알게 되었지만 나이와 학벌 같은 이유로 공감대가 별로 없었다. 한때 아틀란타 본당의 ‘사목회장’까지 역임을 했었지만 요새는 조용한 듯 하다. 우리의 마리에타 2구역, 구역회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조덕성, 바오로’ 씨를 이곳에서 볼 것이라는 것은 100% 확실했다. 며칠 전 구역미사에서 이미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토요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모여서 술과 노래를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도 Three Tenors를 모방한 연기도 있었는데, 조금은 어려운 노래, “Perhaps Love“를 고른 것이 조금은 무리였나.. 가사를 잊고 중단도 되었지만 신부 데레사가 재치 있게 이어받아 불러 주었다. 이때 데레사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가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론 우리 막강한 레지오 단원들이 전원 참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딸의 경사라서 사실 ‘피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놀란 것이, 그런 자리는 사실 조금은 ‘젊은’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단원 자매님들의 ‘형제님(aka 남편)’들을 뵙게 되었다. ‘생각보다’ 첫 인상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입단한 나의 거의 동년배인 우동춘 형제 부부가 ‘용감하게’ 참석을 하였다. 나이가 너무나 나와 비슷해서 시간만 나면 조금 가까이서 얘기를 해 보려던 참에, 이 자리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고,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인사치레를 넘어선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세대가 바뀌는 과정을,그것도 결혼을 통해서 한 가정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마감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이날 아침에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한달 만에 불과 61세로 세상을 떠난 형제님이 있었다. 그는 다름이 아닌 우리 레지오 쁘레시디움의 부단장 자매님의 작은 시동생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들이 병자기도를 하다가 며칠 전부터는 선종기도로 바뀐, 너무나 빨리 진행된 죽음의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비록 짧은 고통을 겪게 되고, 주위 가족에게 오랜 고통을 주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게 짧았던 이별의 시간은 어떠한가? 예전 같으면 60세가 넘었으니 우선은 살만큼 살았다고나 하겠지만 요새는 사실 빠른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얼마큼 보람 있는 생을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예전에는 깊이 하지 못하며 살았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떠할까? 보람이 있었을까? 알 수가 없지만 살아있는 만큼 동안은 ‘결사적’으로 ‘보람’을 만들며 살고 싶다.

 

A Glorious Autumn day

2011년 10월 8일, 아침에 바깥을 보니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이었다. 어렸을 적 많이 보았던 북악산 쪽의 드높은 ‘시퍼런’ 하늘이었다. 오늘은 그것에 덧붙여서 산들바람이 조금은 더 세게 분다. 아마도 이것이 ‘완전한 가을’ 날씨가 아닐까? 하지만 기후에 비해서 풍경은 아직도 푸른 색이 가을 색보다 훨씬 더 많은 ‘초가을’ 이다.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색깔들이 변하게 될 단풍의 나날들로 변하게 될 것이다.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연숙의 묵향화 작품 1호, 2011

얼마 전부터 연숙이 ‘묵향’ 이라는 동양화의 일종을 배우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아틀란타 본당에서 배우는 모양인데, 내가 동양화란 것이 거의 문외한인 탓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화구(묵, 붓, 한지 같은)를 챙길 때도 성의 없이 대하곤 했다. 그 수려하고 잔잔한 그림을 보는 것은 몰라도 내가 그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래 전부터 붓글씨 같은 것을 해 보고 싶다고 하더니 선생님을 못 찾아서 애를 태우더니 이번에는 ‘아다리’ 가 맞아서 묵향 선생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아주 심각해 졌는데, 이유는 얼마 후에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준비하느라고 심각해 진 것이다. 본인이 아직도 초보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더니 드디어 얼마 전에 그림을 완성을 해서 표구까지 해서 집에 들고 왔는데.. 솔직히 나도 놀랐다. 한마디로 ‘괜찮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분의 말씀에 연숙은 옛날에 서양화를 그렸기 때문에 이것도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나는 그것이 일리가 있는지도 사실 확실치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에 그린 것과 비슷하게 다시 그리려 했는데, 그것이 정말 어려워서 포기 했다고.. 그러니까 이런 그림은 그릴 때의 마음가짐, 자세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포인트는 이런 ‘보이는 그림’이라는 ‘결과’가 아니고, 그것을 그리는 그 자체가 그렇게 ‘즐겁다’ 고 한다. 아마도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Catholic Sunday

오늘 아침은 3주 만에 미국본당 Holy Family CC(Catholic Church) 에서 8시반 주일미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2주 계속 주일미사를 거른 셈이다. 레지오 화요일 주중 미사는 절대로 거르지 않아서 조금은 변명 감 있긴 해도 역시 주중의 ‘약식’ 미사와 주일의 ‘정식’ 미사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이라서 역시 ‘손해’를 본 것은 우리들이다. 10월 초에 걸맞은 계절의 맛을 마음껏 내듯 아침 바깥 기온이 45도(섭씨 7도) 로 떨어져서 이건 완전히 춘추복의 날씨로 오랜만에 “넥타이만 없는 정장”으로 갈아 입었다.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2주 동안 못 본 낯익은 얼굴들, 비록 이름도 모르고, 본당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어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안 보이면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하니까. 오늘의 주보를 보니, 역시 10월의 상징인 (Halloween) pumpkin의 색깔로 가득하고 돌아오는 토요일 예정인 본당주최 Fall Festival 내용으로 그득하다 . 오늘은 주임신부님, Fr. Darragh (대라, common Irish name), 오늘 복음 말씀(마태오: 21:33-43)에서, “stewardship”을 주제로 삼아, 미사 이외의 본당활동에 더 적극 참여하라고 강조하시고, 숫제 volunteer form까지 모든 좌석이 비치해 놓으셨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talent를 썩히지 말라고.. 그런 각자의 ‘재능’을 좋은데 쓰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도로 가져간다고 거듭 강조하신다. 이런 말씀 많이 들었고, 나는 안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면 이 정든 ‘동네’ 본당에 내가 봉사를 할 것은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 하나도 하는 것이 없고, 이것은 항상 갈등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오랜 동안의 영어문화권 직장을 떠난 후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다. 역시 우리 같은 사람은 잔뼈가 굵은 곳의 언어문화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본능일까? 이곳에 살면서 계속 겪던 문화적 혼동과 갈등이 결국 나중에는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일까.. 참 어려운 것이다.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본당소속, 레지오에 입단한 이후, 조금씩 모국 문화권에 더 익숙해 지면서 이런 문화적, 언어적 갈등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나의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 할까.. 너무나 멀어진 고국문화를 다시 배우며 살까, 아니면 더 영어권으로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울릴까.. 정답은 없다. 절대로 선택문제인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나에게 보람을 느끼게 할까 에 달려있다. 

 

올 들어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을 시험하는 날이 왔다. 아래층의 kitchen area에 앉아 있으려니 추울 정도라서 thermostat를 보니 67도.. heater로 스위치를 켰는데.. 잠잠.. 분명히 68도로 맞추었으니까 더운 바람이 잔잔하게 나와야 하는데, 아주 조용한 것이다. 직감적으로 아하! 아래층 furnace의 thermocouple을 새것으로 갈 때가 되었구나. 그러니까 thermocouple이 수명이 다 되면 pilot lamp가 꺼지고, fire(점화)가 안 되는 것이다. 요새의 furnace는 물론 거의 다 automatic firing mechanism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것은 거의 20년 전의 것이라 이런 불편이 있다. 문제는 이 thermocouple이 생각보다 자주 교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면… 조금은 ‘기계적’인 머리도 필요하고, 그 우중충한 ‘지하’ 공간으로 기어 들어가다시피 해야 하는 그런 ‘남자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만 사는 집이라면 99% handyman을 $$을 주고 불러야 할 듯 한데 나의 우려는, 내가 먼저 죽으면 연숙이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고치며’ 살까.. 조금은 우습지만, 사실은 실제적인 문제다. 이런 것은 기계적인 것에 한하지 않고 우리 집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computer network같은 것들.. 거의 자동적으로 돌아가지만, 문제가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며칠 전, 빛의 속도보다 빠른 물체를 실험으로 관측1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추억과 함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억이란 물론 내가 처음 이 ‘기가 막히게 멋진 과학 이야기’ 들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 또래들은 이런 것들을 거의 대부분 책을 통해서, 그것도 ‘만화’를 통해서 접하고 배우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과서가 거의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었다. 백과사전은 나오지도 않았고, 나왔을 때는 너무 비싸서 ‘월부’로 사기도 힘든 때였다. 라디오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 줄 리는 만무하고, TV는 없었을 때였다. 나도 역시 만화에서, 그것도 ‘공상과학’ 만화에서 처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라고 해서 듣고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과장되게 표현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만화에서 상대성원리의 결과로 보여 준 것이 이런 것이었다.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빛의 속도로 나르는 로켓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몇 년 뒤에 그는 지구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이미 지구시간은 수만 년이 지난 후여서 그의 가족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완전히 바뀐 뒤였다. 이것은 광속도에 접근하는 로켓(과 그 안의 사람)에서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에 근거를 한 것으로,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공상이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가회동에 살 당시,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던 경기고교 생 양병환 형으로부터 이런 류의 이야기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역시 조금은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는 안 갔지만 이론적으로는 역시 큰 문제가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함정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본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의 과거를 본다는데 있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지구에서 10광년 떨어진 별에서 거대한 망원경으로 지구를 보면 10년 전의 지구가 보일 것이고, 10년 전의 우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대학 1학년 때, 드디어 흥분의 순간이 왔다. 대학 물리시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그대로 다룬 것인데,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이론은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론에서 쓴 수학들이 정말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너무나 ‘간단’ 했던 것이다. 그곳에 상대성원리의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은 절대로 ‘복잡’하면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지론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법칙’ 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의 공식을 보라. E=mc2 이렇게 간단한 공식이 어디 있는가? 이런 이론들을 과학적 증명이 거의 없이 ‘발명’한 그는 한마디로 천재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100년 동안 그의 이론은 거의 실험으로 하나하나 ‘직접,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Gutenberg.org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의 원래 저서 ‘상대성 원리’를 download해서 보았다. 역시 비교적 내용이 길지 않은 책이었다. 위대한 저서는 이런 식으로 의외로 간단해 보이는가? 비록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을 한 것이지만 아인슈타인의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는 위대한 책이다. 시간이 나면 한번 녹슨 머리를 굴려가며 다시 한번 읽어 보리라. 어렸을 때와 다른 것은 이제는 ‘하느님의 작품인 거대한 우주’ 라는 framework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 때와 같이 방황하지는 않으리라.

 

  1. 아마도 이것은 quantum entanglement 실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구월 하순, GXP-285, GPS, 연고전

9월 21일, 구월의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지난 2 주 동안 가을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첫’ 싸늘함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다만 매일 기대했던 비가 내릴 듯 말듯 하며 내리지를 않아서 그것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지독히도 가물고 더웠던 여름 동안 앞 쪽의 잔디는 색이 바래고, 숨을 죽이고 죽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파랗게 살아날 것이다. 올해 이곳의 날씨는 다행히 ‘뉴스’가 없이 지나갔다. 다른 곳에 비하면 그런대로 준수하다고나 할까. 과연 이번 겨울 날씨는 어떨지 자못 기대가 된다. 작년에는 정말 춥고, 많은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Grandstream GXP-285 SIP Phone
Grandstream GXP-285 SIP Phone

오늘 며칠 전에 Amazon.com에 order했던 Grandstream GXP-285 (SIP) VOIP phone이 도착했다. 미리 review도 보았고, USERS MANUAL도 이미 download해서 보았기 때문에 생소할 리가 없다.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GRANDSTREAM의 VOIP phone adapter를 써본 적이 있어서 눈에 익은 제품이긴 하다. 하지만 진짜 phone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 달 전에 ebay에서 LINKSYS (Cisco)의 SPA-841 2-line VOIP phone, 쓰던 것을 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SIP VOIP phone은 그것이 처음이었던 셈이다. 그 동안 이 전화기를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에 Google Voice로 한국에 전화를 했을 때, 너무나 음질이 좋았다. 그러니까 Internet phone의 수준이 완전히 PSTN (analog) phone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VOIP 의 대부분이 softphone (on PC)을 쓰는 사람들이 많고, SKYPE 같은 조금 non-standard technology를 쓰기 때문에 전통적인 Bell phone같은 ‘쓰기 쉬운’ 맛이 덜 하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제 VOIP (특히 SIP compatible) phone도보기와 느낌이 거의 똑 같이 analog phone과 비슷해서, ‘전통적인 전화기’의 남은 수명도 그렇게 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나의 home-office에는 이미 Asterisk-based IP-PBX (PBX-IN-A-FLASH: PIAF)가 있어서 (running on Proxmox Virtual Server), 미국과 캐나다는 Google Voice로 무료로 통화를 할 수 있고, 국제전화도 정말 싸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산 전화기는 비록 값이 저렴한 것이지만 (under $50) Home-Office에는 적당해서, 연숙의 office에서 쓰게 할 예정인데, 가끔 ‘음질이 형편없는’ cell-phone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안정되고 깨끗한’ 음성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을 듯 하다.

GPS' dead battery
GPS’ dead battery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 때 연숙에게 선물로 준 GPS가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charge가 되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power cord (usb or adapter)를 써야만 이것을 쓸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GPS를 별로 쓸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가끔 쓰려고 하면 이런 것이 짜증이 나는 것이다. 고급 차를 타는 사람들은 요새 아예 GPS가 dashboard console에 있어서 쓰기가 참 편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살 필요까지는 못 느끼고.. 이럴 때는 역시 ‘공돌이 정신 (hacker mentality)’이 발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열어보게’ 되었다. charge가 안 되니까 이것은 rechargeable battery가 ‘죽은’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죽었는지, 역시 이 battery도 Made in China였다. ‘조잡한’ 것을 썼을 것이다. 이것은 portable device에서 많이 쓰는 3..7V의 Polymer type인데, 암만 Internet을 뒤져 보아도 이것과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것을 찾아도, 값이 ‘장난’이 아니게 비쌌다. 그렇게까지 해서 고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GPS를 버리기도 그렇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거의 못쓰게 된 Canon digital camera의 Battery가 생각이 나서 보니 거의 power spec이 비슷했다. 3.7V 1200mAh! 모르긴 몰라도 이것을 쓸 수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battery terminal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Soldering 을 해야 하는데, 워낙 terminal이 작아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계속 궁리를 하면 무슨 idea가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 요새 거의 자취를 감춘 ‘엽서’ 한 장이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은 Law Office of Se Ho Moon, PC (Suwanee, GA)라고 인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스와니 (아틀란타 동북단의 suburb)에 있는 ‘문세호 변호사‘ 가 보낸 것이다. 요새 변호사 개업을 했나.. 하며 읽어보니 “친애하는 연세대학교 동문 여러분,”으로 시작이 된다. 아하! 연세대 동문회에서 보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아, 이맘때면 연례 연고전이 있던 때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9월 25일에는 골프대회, 10월 2일에는 구기대회. 나는 골프를 치지 않으니까 그날은 관심이 없지만, 구기대회에는 조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연고전 참가를 한 것이 1997년 쯤이었다. 그러니까, 15년 전이 되었다. 그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연말 연대 송년회까지 참석을 했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 이사온 후 나는 사실 동창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가까이 알고 지내던 연대 이원선 동문이 그 해 동문회 회장이 된 바람에 조금은 손 쉽게 참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처음 나갈 때 모르는 동문을 만나는 것이 물론 반갑기는 하지만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것도 사실이라서 그렇게 참가를 안 한 것도 이유가 된다. 이원선 동문은 68학번 연대 기계공학과 출신인데, 내 친구였던 (타계) 같은 연대 기계과 김호룡을 알고 있었고, 우리와 같이 아틀란타 천주교회에도 같이 나갔던 동문이었다. 아쉽게 그 이후 서로 소식이 거의 끊어지게 되고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요새는 내가 레지오에 입단하면서 성당에 갈 수가 있어서, 가끔 이원선씨의 부인을 뵙곤 하였지만 끝내 이원선씨는 볼 수가 없었다. 올해 이 연고전 엽서를 받고 조금은 생각을 하게 된다. 거의 숨어서 살다가 조금씩 밖으로 나간 김에 올해는 한번 연고전 ‘소프트 볼’ 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이다. 그곳에서 운동과 놀기를 좋아하는 이원선 동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낙엽을 기다리며..

 

Autumn Leaves – Edith Piaf

Autumn Leaves:  의외로 갑자기 가을의 맛이 눈앞에 다가왔다. 준비도 못한 채 맞게 된 것이지만, 절대로 가을은 반갑다. 황금색으로 바뀌는 나뭇잎을 보는 것도 즐겁고, 차가운 비를 바라보며 움츠려 드는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진한 커피향도 그렇고, 이것이 앞으로 몇 개월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은근히 기대했던 비는 끈질기게도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확률적인 수치로 나오는 일기예보는 해석을 잘 해야 한다. 그 확률이 맞는 확률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역시 개개인 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새 일기예보는 거의 일부러 안 보는 편이다. 기대도 하기 싫고, 미리 알아 보았자 그렇게 이득이 될 것도 없고, 만의 일이라도 비상 적인 일기가 오게 되면 그것은 주위를 통해서 자연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까 사실 마음이 편하다. 시간적으로 변하는 날씨에 연연하던 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내가 한가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내가 사는 이곳의 9월은 사과의 계절이다.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는 가족적인 연례행사로 과수원을 찾고 했다. 아이들이 다 떠나면서 그런 행사도 시들해지고 작년부터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 이사올 당시, 그러니까 거의 20년 전만 해도 그렇게 과수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인구가 늘면서, 특히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은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다. 특히 단체로 버스까지 타고 오는 것을 보면서 완전히 그곳의 맛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이 아닐까.. 모든 것은 모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까.

 일본 TV 드라마:  2007년부터 보기 시작했던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특히 그 중에서도 연속극 드라마들 이제는 이미 방영된 것은 다 보아서 새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게까지 되었다. 사실상 그것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프로그램들을 하나도 안보게 되었다. 연숙은 이것을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조금은 실망까지 하는 눈치다. 어찌 그것을 이해를 못할까? 같은 드라마를 보아야 그런대로 얘기할 것도 생기고 하니까.. 이곳에서 가끔 모이는 친지들과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어떤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가지도 신나게 얘기를 나누는데, 나는 완전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일본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도 사실 나는 한국에서 나오는 것을 아주 가끔 보는 편이어서, 그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들은 내가 보아도 조금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일본의 드라마를 보는 나는 분명히 목적이 있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값싸게’ 공부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터넷의 덕분으로 가능해 졌고, 최소한 듣는 일본어는 많이 익숙해 졌다. 비록 드라마지만 그들의 문화, 생각, 풍습, 역사 등등을 간접적으로 많이 배우게 되었다. 너무나 그들을 모르고, 무시하며 산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올해 초의 지진, 해일, 원전사고 등 재해 때, 그들을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눈으로 그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증오’의 역사로 점철이 되었고, 철저한 반일교육으로 자란 나로써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새로 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정치적인 완숙함, 한류의 파급 등으로 그들도 이제는 거의 친구와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어서, 참 세상을 오래 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내가 골라놓은 ‘최고의 일본 드라마’ 목록은 계속 불어난다

 평창이씨 시조: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이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고 들어서, 평창이란 이름이 앞으로 귀에 아주 익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평창 이씨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평창이 본관인 성씨가 다른 것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평창 이씨만은 분명하게 그곳이 고향이다. 하지만 평창이씨를 공부해 보면서 평창에 근거를 한 평창이씨는 한가지 파, ‘정숙공파’ 밖에 없고 나머지는 거의 전국에 흩어져 있다. 내가 속한 ‘익평공파’만 해도 그렇다. 나의 바로 위 조상님들의 세거지는 평창이 아니고 평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평창에 살고 계신 정숙공파 종씨들은 평창이 더욱 알려지게 되면서 조금 더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지 않을까..

현재 평창이씨는 시조 할아버지 문제로 두 개의 파벌로 갈린 상태가 되었다. 서울 흥인동에 위치한 평창이씨 대종회는 시조 휘 ‘광’ 자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데 반해서, 정숙공파는 독자적으로 그 보다 훨씬 위의 조상인 ‘윤장’ 할아버지를 시조로 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2개의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대종회에서는 광 할아버지 이전의 역사는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니까, 최소한 대종회 족보는 전체가 맞는 것이고, 정숙공파 족보는 대종회 족보에 없는 것이 더 들어가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숙공파의 족보는 시조인 윤장이 경주이씨에서 갈려 나온 것까지 밝히고 있어서, 이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리고 그렇게 오래 전의 사실을 어떻게 몇 가지 남은 사료로써 단정을 지을 수 있을까? 대종회는 ‘정사’를 고수하는 입장이어서 원래 족보가 출발된 시점에서 어떠한 다른 것도 넣을 수 없다는 보수적인 입장이고 보면 그것도 이해가 간다. 어떤 분들 말대로 사실 그것이 대종회가 갈라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천천히 바뀌는 천주교 영어미사

Holy Family's Fr. Stewart's guide to 'changing Mass'
Holy Family CC Fr. Stewart’s guide to ‘changing Mass’

8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맞는다. 다른 쪽에서는 허리케인 아이린 으로 떠들썩 하지만 이곳은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에 가을기분의 따가운 햇볕이 작열을 하는 한가한 느낌의 일요일.. 우리 집의 ‘숙명의 적’ pet duo 토우비(Tobey, dog)와 이지(Izzie, 고양이) 를 보아도 한가한 느낌을 받는 것이, 둘 다 완전히, 절대적으로 ‘평화롭게’ 낮잠에 떨어진 모습이 정말로 한가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한가한 순간들도 ‘좋아하는 시간’에 속한다.

오늘 일요일의 미국본당 미사에서는 올해의 대림절 (교회력 신년의 시작, 올해는 11월 27일)부터 부분적으로 바뀌게 되는 영어 미사의식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사의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미사의식에서 하는 문구(text) 들이 바뀌는 것이다. 현재 영어 미사는 1975년부터 사용된 것이라고 하니까, 상당한 기간 신자들이 쓰던 것이라 이것이 조금이라도 바뀌게 되면 아무래도 처음에는 불편할 것이다. 문제는 “왜” 바꾸어야 하는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바티칸 교황청에서 지시를 한 것이 아니고, 그 동안 쓰던 영어미사의 ‘결점’을 보완하려고 문구를 원래 ‘라틴어 미사의 정신’에 더 가깝게 번역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원래의 ‘영어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고, 그것을 늦었지만 바꾼 것이다. 나의 의문은 그러면 다른 언어, 예를 들면 한국어 미사는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이 영어로부터 번역을 한 것이었다면 그쪽도 바꾸어야 할 것인데, 들은 바에 의하면 아마도 한국말 미사는 이미 바뀌었다고 들은 것 같다. 현재 이곳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는 이미 바뀐 것을 쓰고 있을 듯한데, 현재 우리가 주일미사를 그곳으로 가지를 않아서 100% 확실치는 않다.

라틴어 미사는 1970년에(그 훨씬 전에 있었던 바티칸 2차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3)의 정신에 의해서) 바뀐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놀라운 사실은, 1970년 이전에는 세계적으로 모두가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어떻게 그 어려운 라틴어로 미사를 보았는지 상상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그때는 라틴어를 쓴 것이다. 영어와 라틴어는 그 근원이나 비슷하지만 한국과 같이 ‘전혀 다른 계통의 언어권’ 에서는 어떠했을까? 하지만 역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현지 언어’가 원래 라틴어의 ‘정신’을 충실하게 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천천히, 재미있게’ 하려는 미국 천주교인들, 이것도 ‘응석을 부리면서’ 9월부터 조금씩 ‘연습’을 하면서 목표인 대림절까지 갈 모양이다. 9월 초부터 일주일에 ‘한가지 씩’ 을 ‘연습’해 보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크게 바뀐 것도 아니던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면 참 본 받을 만하다.

 

 

Changes in the People’s Parts    
PART OF MASS OLD TEXT NEW TEXT
Greeting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also with you.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with your spirit.
Penitential Act,Form A (Confiteor)   I confess to almighty God,and to you, my brothers and sisters, that I have sinned through my own fault in my thoughts and in my words, in what I have done, and in what I have failed to do;        
and I ask blessed Mary, ever virgin, all the angels and saints, and you, my brothers and sisters, to pray for me to the Lord our God.
I confess to almighty Godand to you, my brothers and sisters, that I have greatly sinned  
in my thoughts and in my words, in what I have done and in what I have failed to do,
through my fault,
through my fault,
through my most grievous fault; therefore I ask blessed Mary ever-Virgin,
all the Angels and Saints, and you, my brothers and sisters, to pray for me to the Lord our God.
Penitential Act,Form B Priest: Lord, we have sinned against you: Lord, have mercy.
People: Lord, have mercy.
Priest: Lord, show us your mercy and love. People: And grant us your salvation.
Priest: Have mercy on us, O Lord.
People: For we have sinned against you.
Priest: Show us, O Lord, your mercy.
People: And grant us your salvation.
Gloria  Glory to God in the highest,and peace to his people on earth.  
Lord God, heavenly King, almighty God and Father, we worship you, we give you thanks, we praise you for your glory.    
Lord Jesus Christ, only Son of the Father, Lord God,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you are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receive our prayer.  
For you alone are the Holy One, you alone are the Lord, you alone are the Most High, Jesus Christ, with the Holy Spirit, in the glory of God the Father. Amen.
Glory to God in the highest,and on earth peace to people of good will.  
We praise you, we bless you, we adore you, we glorify you, we give you thanks for your great glory, Lord God, heavenly King, O God, almighty Father.  
Lord Jesus Christ, Only Begotten Son, Lord God, Lamb of God, Son of the Father,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receive our prayer;  
you are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ave mercy on us.    
For you alone are the Holy One, you alone are the Lord, you alone are the Most High, Jesus Christ, with the Holy Spirit, in the glory of God the Father. Amen.
At the Gospel Deacon (or Priest): A reading from the holy Gospel according to N.People: Glory to you, Lord. Deacon (or Priest): A reading from the holy Gospel according to N.People: Glory to you, O Lord.
Nicene Creed  We believe in one God,the Father, the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at is seen and unseen.    
We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Son of God,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one in Being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he was born of the Virgin Mary, and becam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ied, and was burie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in fulfillment of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We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With the Father and the Son he is worshiped and glorified.
He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We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We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I believe in one God,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I believe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born of the Father before all ages.  
God from God, Light from Light, true God from true God, begotten, not made,
consubstantial with the Father;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he came down from heaven, and by the Holy Spirit was incarnate of the Virgin Mary,
and became man. For our sake he was crucified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death and was buried, and rose again on the third day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in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his kingdom will have no en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the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who with the Father and the Son is adored and glorified,
who has spoken through the prophets.  
I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I confess one baptism for the forgiveness of sins
and I look forward to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Apostles’ Creed I believe in God,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 believe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He was conceived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born of the Virgin Mary.
He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to the dea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will come again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r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life everlasting. Amen.
Invitation to Prayer  May the Lord accept the sacrifice at your hands
for the praise and glory of his name, for our good,
and the good of all his Church.
May the Lord accept the sacrificeat your hands
for the praise and glory of his name,
for our good and the good of all his holy Church.
Preface Dialogue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also with you.
Priest: Lift up your hearts.
People: We lift them up to the Lord.
Priest: Let us give thanks to the Lord our God.
People: It is right to give him thanks and praise.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with your spirit.
Priest: Lift up your hearts.
People: We lift them up to the Lord.
Priest: Let us give thanks to the Lord our God.
People: It is right and just.
Sanctus  Holy, holy, holy Lord, God of power and might.
Heaven and earth are full of your glory.
Hosanna in the highest.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Holy, Holy, Holy Lord God of hosts.
Heaven and earth are full of your glory.
Hosanna in the highest.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Mystery of Faith(formerly the Memorial Acclamation)  Priest: Let us proclaimthe mystery of faith:  
People: A – Christ has died, Christ is risen, Christ will come again.    
or B – Dying you destroyed our death, rising you restored our life. Lord Jesus, come in glory.    
or C – When we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we proclaim your death, Lord Jesus, until you come in glory.    
or D – Lord, by your cross and resurrection, you have set us free. You are the Savior of the World.
Priest: The mystery of faith.   
People: A – We proclaim your death, O Lord, and profess your Resurrection until you come again.  
or B – When we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we proclaim your death, O Lord, until you come again.  
or C – Save us, Savior of the world, for by your Cross and Resurrection, you have set us free.
Sign of Peace Priest: The peace of the Lordbe with you always.
People: And also with you.
Priest: The peace of the Lordbe with you always.
People: And with your spirit.
Invitation to Communion  Priest: This is the Lamb of Godwho takes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ppy are those who are called to his supper.
All: Lord, I am not worthy to receive you,   but only say the word and shall be healed.
Priest: Behold the Lamb of God,behold him who takes away the sins of the world. Blessed are those called to the supper of the Lamb.
All: Lord, I am not worthy that you should enter under my roof, but only say the word and my soul shall be healed.
Concluding Rites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also with you.
Priest: The Lord be with you.
People: And with your spirit.

 

Hurricane Irene

major hurricane Irene near Florida coast
monster hurricane Irene near Florida coast

허리케인 아이린, 일주일도 넘게 비 구경을 못하던 차에 monster hurricane Irene이 미 동부 해안을 따라 올라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이쪽으로 와서 많은 비를 뿌리려나 희망적인 기대를 해 보았지만 예년과 비슷하게 이곳의 근처는 완전히 비켜 지나갈 것으로 예보가 되었다. 하기야 이것이 정말로 지나가게 되면 비만 뿌리겠는가.. 강풍으로 피해도 엄청날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그저 ‘더운 쪽’이 더 나을 것이다.

문제는 이 허리케인이 Interstate Highway I-95를 따라서 워싱턴, 뉴욕 쪽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 I-95 고속도로는 완전히 미국 동부의 대도시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니까, 막대한 피해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만약,만약, 2005년의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가 루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New Orleans, Louisiana) 를 덮치듯이 뉴욕 시를 덮치게 되면 정말 예측불허의 피해가 날 수도 있다. 일요일 쯤이면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인데.. 과연 어찌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사실은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비약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지독한 불경기에 이런 자연재해로 피해까지 보게 되면, 미국경제 (따라서 세계경제)는 당분간 같은 상태의 불경기로 이어질 듯하고, 이것은 내년의 대선으로 이어져서 ‘희망의 등대’였던 오바마 도 재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전대미문의 ‘깡패집단’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는 공화당은 승리의 쾌재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드디어 “짱 꼴라” 집단이 ‘We’re Number One!” 이라고 선언을 할 날이 곧 오게 되지 않을까? 정말 살 맛이 없는 날들이 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최악이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WYD 2011, 레지오의 전산화

World Youth Day 2011 Madrid, Spain
World Youth Day 2011 Madrid, Spain

2011년 마드리드,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가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전야 미사 중의 날씨가 나빠져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없었던 모양이다. 오늘 CatholicTV.com을 보니 드디어 어제 일요일의 “폐막 미사”의 비디오가 올라와 있었다. 이 행사를 며칠 유심히 보면서 나는 거의 내가 ‘가톨릭 청년’ 이 된 기분이 되어서 참 기분이 좋았다. 폐막미사의 광경은 참 ‘장엄’하면서도 100만의 젊음의 활기가 완전히 ‘공항’을 휩싸는 그런 것이었는데..이것은 실제로 그 현장에 있지 않으면 ‘절대로’ 전부를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지난 6월 이곳 아틀란타에서 열린 연례 대교구 주최의 ‘성체대회’에 참가하면서 이런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수만 명의 형제,자매 신자들과 같이 함께 모여서 미사를 본다는 사실은 글로 그 느낌을 다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한 비행장 전체가 ‘완전히’ humanity로 채워진 모습은 비록 작은 화면으로 보더라도 실감이 되었다. 그 광활한 평지를 완전히 메웠던 백만 명의 ‘멋진’ 젊은이들.. 잘못 보면 무슨 rock concert에 온 젊은이들 같이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그들은 다르다. 1960년대 말, 미국 Woodstock Rock Concert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광경이 겹치는 것을 느낀다. 완전히 drug, sex & rock music이 주제가 되었던 그 시절, 그 세대.. 사실은 나도 그것들을 보면서, ‘인간의 완전한 자유에 열광’을 하던 오래 전의 추억이 있다. 하지만 ‘다른 모습의 완전한 자유를 보여주는’ 이런 전혀 다른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이래서 항상 ‘희망’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멋진’ 젊은이들이 얻었던 며칠간의 체험은 그들, 그들 주변, 그가 속한 사회, 나라에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 의심하지 않는다. 작은 호기심 하나는, 어떻게 100만 여명에게 성체를 분배할까..하는 별로 의미 없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전산화: 이것도 잘못 들으면 oxymoronic한 구절이 아닐까. 절대적인 성모마리아께 대한 순명의 정신으로 무장한 이 거룩한 평신도 단체는 언제까지 ‘낭비적인 시간’을 허용할 것인가? 로마군단의 효율적인 체제를 본 받으려면 현재에 가능한 온갖 ‘도구’를 다 써야 할 것이 아닐까? 여기서 ‘도구’란 물론 digital tool을 말한다. 물론 computer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computer하면 막연히 desktop system을 뜻했지만 지금은 아주 다양해졌다. 여기에는 물론 Internet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모든 것들이 ‘연결’이 되었고, 무서운 기세로 연결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제 이 ‘도구’는 누가 어떻게 먼저 자기 목적에 맞게 쓰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얼마 전에 나의 예상을 뒤엎고, 연숙이 본당소속 꾸리아의 부회장에 피선이 되고 말았다. 전부터 나는 레지오 평의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극구 말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해야 하는 ‘봉사적’인 직책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덜 바쁜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기에 나는 반대를 한 것이다. 또한 직책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함을 나날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직책의 ‘일’이란 것이 사실은 ‘타협, 양보, 조절’의 기술이 나머지 것들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헌신적으로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극구 말렸지만, 본인의 의사는 별로 반영이 되지 않게 피선이 되었으니.. 이제는 현실로 받아야 할 듯하다. 한마디로 나에게도 영향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비록 평 단원이지만 부부로써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첫 번째로 연숙이 가지고 온 ‘일’ 중의 하나가, “레지오 멤버들의 관리” 에 제일 중요한 레지오 <행동단원 복무기록부> 를 정리하는 일이 되었다. 아주 두터운 3-ring binder에 꾸리아소속의 거의 모든 단원의 신상기록이 있는데, 물론 이것을 ‘전산화’ 하려는 것이고, 그것을 첫 과정이 data entry가 아닌가? 가장 쉬운 Excel-format으로 시작을 하는데, 역시 문제는 한글, 영어가 섞어야 하는 조금은 복잡한 데이터 들에 있고, 불완전한 record, 고유한 개개인의 아이디(id)등인데 이것은 아마도 본당의 교적부의 database를 참고로 하면 좋을 듯하다.

이것이 시작이지만, 그 이외에 예상할 수 있는 ‘과제’는 적지 않다. 제일 내가 눈독을 들이는 것은 모든 서류양식을 writable-pdf 화 하여 computer screen에서 직접 입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역사 깊은 레지오에서 이미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온통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심지어 Ireland(아일랜드)의 레지오 세계 총본부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format file을 download-print해서 손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이’는 아직도 계속 써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digital gadget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고국의 레지오도 마찬가지로 이곳은 거의 아래아 한글(hwp format)로 된 것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이 현재의 레지오 단원 평균 연령층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활발한 레지오 연령대는 어느 곳에서나 시간이 조금은 여유가 있는 세대일 것이다. 그들은 거의 장년층일 것이고 아무래도 그들은 젊은 세대보다는 technology에는 덜 익숙하지 않을까? 꾸리아 레벨에서 산하 쁘레시디움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정보적인 도움’이 아주 중요할 것이다. 기계적인 일들은 모두 computer에 맡기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cloud-model로 가는 마당에, 이것을 database application으로 바꾸고, 그것을 webify(web application으로 바꿈) 해서 모든 ‘단원, 임원’ 들이 “위치에 상관없이” 볼 수 있고, 쓸 수있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을 듯하다.

 

 

Catholic Sunday, etc..

WYD: Word Youth Day 2011, Madrid, Spain, 일요일 아침, 근처에 있는 ‘미국 본당(Holy Family CC)’ 주일미사를 가기 전에 잠깐 뉴스를 봤더니, WYD(World Youth Day: 세계청년대회, 스페인 마드리드)의 토요일 밤 vigil mass중에 찌는 듯이 더운 날씨가 돌변을 해서 천둥과 벼락, 폭우가 쏟아 졌다고.. 며칠 전에 미국 Indianapolis, Indiana에서 열린 커다란 야외 집회 중에 갑자기 몰아친 돌풍으로, 높이 세운 구조물(scaffoldings)이 쓰러져서 다수의 사망자 까지 나왔던 일이 생각이 났다. 미사 후에 집에 돌아와 자세히 읽어보니 다행히 큰 사고는 나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이야 말로 Thank God..이라고 해야 할까.

이 뉴스는 사실 ‘세속적’인 뉴스 채널을 통해서 보았다. 이런 곳에서는 어떻게 이번 행사를 보며, 느낄까 궁금하기도 해서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교황이 가는 곳은 이들 세속적인 뉴스 매체가 꼭 관심을 갖고 따라다닌다’ 라는 사실이다. 역시 바티칸은 ‘정치적’인 위치도 잃지 않고 있다. 그만큼 교황의 ‘말씀’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영향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알게 된 것은 ‘보수적인 추측’ 으로 예상했던 참가한 젊은이들의 숫자가 50만 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거의 100만 명이라는 사실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것은 대단한 숫자가 아닐까? 정말 정말 대단하다. 이들은 역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향을 듬뿍 받은 젊은 세대인 것이고, 다시 한번 그분의 ‘선견지명’에 놀랄 뿐이다. 이 백만 여명의 젊은 ‘세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그 주변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 세상에는 ‘희망’이 있어 보인다. 다음의 이 대회는 2년 후인 2013년 Rio de Janeiro, Brazil에서 열린다고 발표가 되었다. 3년 후인 2014년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그 해에 그 곳에서는 4년 마다 열리는 세계인의 대 축제, World Cup Soccer가 열려서 부득이 일년을 앞 당긴 모양이다. 다시 ‘흑자, 호경기 재정’으로 돌아선 브라질은 이래 저래 좋은 소식만 가득하게 되었다… 부럽다.. 그들이..

 

 

맥시밀리안 콜베 성인
맥시밀리안 콜베 성인

성인: 맥시밀리안 콜베 (Maximilian Kolbe),  오늘 주일 미사는 대학의 catholic center(보통은 Newman Center:대학 내 가톨릭 공소, 라고 함)의 신부님께서 방문자의 자격으로 집전을 하셨다. 갑자기 ‘젊은’ 공기가 성전을 가득 찬 기분이었다. 우선 말씀의 ‘속도’가 엄청나게 젊었다. 그만큼 빨랐던 것이다. 다음 젊은 목소리, 그것도 에너지가 충만하고, 한 단어 단어가 뚜렷이 구별되는 확실한 영어.. 이것도 새로웠다. 아마도 모두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우리 본당 주임신부님은 이맘때면 ‘휴가 차’ 그의 고향인 Dublin, Ireland에 가신다. 가셔서 ‘공개적’인 안부 엽서까지 주보에 실렸다.

오늘 방문 신부님은 맥시밀리안 콜베 성인의 축일이 지난 8월 14일이었음을 상기하고, 그 성인의 ‘유적지’를 찾아 본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유적지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2차 대전 당시 그’죽음 공장’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나치 집단수용소. 어찌 이 이름을 잊으랴.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멋도 모르고’ 그 당시 나왔던 기록 영화 ‘(히틀러의) 나의 투쟁‘ 을 보고 처음 그곳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영화가 ‘학생입장 대환영’ 이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역사, 교훈적일지는 몰라도 준비가 덜 된 ‘아이들’에게 그런 ‘시각적으로 끔찍한’ 것은 너무나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 나이에서 그것을 다시 보라고 해도 망설여질 정도인데.. 어떻게 어린 중학생들에게 그것을 보게 했을까? 공상영화였다고 해도 충격적인데 그것이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얼마 전에 벌어진 전쟁 범죄’였다는 사실.. 그 당시에도 믿어지질 않았다. 그 희생자 중에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 맥시밀리안 콜베 성인도 있었다.

아우슈비츠에 기차로 도착을 하면서, 그 옆 철길에는 아직도 집단 학살될 유대인 가족들이 도착하는 ‘짐짝 기차’가 그대로 ‘전시’ 되어 있음을 보고 생각하셨단다.. 화장실, 좌석, 아무것도 없는 화물열차로 도착하던 그 불쌍한 가족집단들.. 어린이들의 울음소리..그것도 역시 another Kafka moment 였을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비틀어지면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들이 일어났을까? 천 년 전의 ‘우매, 잔인한’ 몽골전쟁이 아닌 바로 70년 전의 ‘생생한,역사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전쟁 중에..

맥시밀리안 성인의 이야기는 얼마 전 우연히 역시 연숙의 책 중에서 잠깐 본 것이었다. Boniface Hanley 저, Ten Christians이라는 책이었다. 이 10명의 그리스도 인들은 예수의 삶을 살려고 발버둥쳤고, 결국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현재를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그런 분들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도 있고, 그 반대로 전혀 알려지지 못한 분들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우리 인생의 선생님’으로 사신 분들인 것이다. 그 중에 맥시밀리안 콜베 ‘성인’은 ‘현대적 순교’를 하심으로써 기독교 사랑의 극치를 가르치신 case다.

프란치스코회의 신부였던 그는 수용소에서 짐승 같이 날뛰던 SS들 (비밀경찰)에 의해서 약물로 죽임을 당했다. 그의 죄는 탈출한 동료들 대신 보복적으로 뽑혀서 죽게 될 사람 중의 한 사람을 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맡아서 ‘굶어 죽는 형벌’을 자청한 것이다. 대부분 일 주일 후에 굶어 죽었지만 그는 3주를 더 버티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나치SS는 약물로 그를 죽인 것이다. 그 때문에 살아나게 된 운 좋은 ‘죄수’는 그의 남은 여생을 끝까지 살게 되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끝까지 비판하며 천국으로 가신 이 성인은 정말 지금에도 거룩한 인생의 선생님이시다.

 

아틀란타 한국성당, 완전히 분가, 그 동안 아틀란타 한인 천주교 공동체의 숙원이었던 ‘또 하나의 다른 성전’의 꿈이 이제 완전히 이루어졌다. 이것은 그 동안 여러 차례의 노력 끝에 이번에 임기를 마치고 떠나신 안정호 이시도리 신부님의 ‘단행’으로 결말을 본 것이다. 시기적으로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늘어나는 천주교 신자, 예비자들을 적절히 수용할 기회를 놓쳤다는 평도 있었다. 기존의 한인타운의 한 중심에서 그 역할을 100% 수행했던 구 성전이 이제는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졌던 차에 조금은 활짝 넓은 공간에 새로운 성전이 마련 된 것이다.

새 성전은 사실 제2의 한인타운이 되어가는 동북부 교외지역(Duluth, Suwanee)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쪽으로 새로 유입하는 ‘은퇴세대’ (주로 뉴욕지역으로부터) 를 중심으로 ‘졸부 급’의 신흥 ‘벼락부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경제적, 연령적으로 보아도 아주 안정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그런 여건이 ‘신심적’으로 활발할 지는 확실치 않지만..

덕분에 기존 성전은 조금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짐작이 된다. 신자수가 그 만큼 (약 200~300명?) 정도 여유가 생기니까, service나 사목 활동에도 조금 기를 펴고 여유가 생길 것이다. 한가지 문제점은 여러 가지 신심단체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분할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혜를 가지고 해결을 할 문제이다. 내가 속한 레지오 도 2명 정도가 (그것도, 단장, 부단장) 그쪽 지역에 속해 있어서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한다.물론 주일 미사는 새 성전으로 가고 신심단체는 바꾸지 않아도 되긴 하겠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세계청년대회, WYD 2011 Madrid, Spain

World Youth Day 2011 Madrid, Spain
World Youth Day 2011 Madrid, Spain

WYD: World Youth Day .. 이것이 한국어로 “세계 청년 대회” 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1984년에 시작된 이 세계적인 가톨릭 행사를 이제야 이제야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게’ 된 것이 나로써는 조금 늦은 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관심이 가고 알게 된 것도 다행이라고 위안을 한다.

올해 이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린’ 것은 사실 여러 가지의 원인이 함께 도움이 되었다. 이 행사가 시작된 것은 다름이 아닌 내가 제일 신앙적으로,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전 교황,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이시다. 그는 어떻게 이런 행사를 생각을 하고 실행을 했을까? 희망은 역시 젊은이들에게 있다는 ‘절박한 진리’ 때문이었을까? 믿음 하나로 공산주의를 꺾고, 인류의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대였던 그.. 진정한 범 세계적인 세계인, 지도자.. 그가 남긴 유산 중에 가장 오래 갈 것은 바로 젊은이의 등대인 이 행사가 아니었을까? 희망은 역시, 역시, 젊은이들에게 있다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지독한 피상적인 물질주의와 인기, 인본주의에 찌들은 요새의 유행문화를 어찌 그들, 젊은이들이 피해갈 것인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nano-second, 찰나의 기쁨을 추구하려는 그들에게 어떻게 누가 무엇이 장차 그들 앞에 다가올 현실일까를 가르쳐 줄 것인가? 허무.. 허무 뿐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행사의 전개되는 것을 보니 조금은 요새 보기 드문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오십만 명 이상이 온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정말 그들이 어떤 것을 느끼고 보고 갈 것은 크게 추측을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인생을 바꾸기도 할 것이다.그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이바지’ 할 지는 크게 의심할 필요도 없다. 잠깐 잠깐, 상상과 꿈의 나래를 피어본다. 내가 20대 초반의 옛날로 돌아가서, ‘반종교적’ 이던 나의 그때와는 달리, 가톨릭 신자로써 이곳에 참가를 한 그런 꿈이다. 수십만  명의 ‘동료’, ‘친구’, 젊은이들을 보며 그들과 그곳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존경하는 교황을 직접 듣고 본다는 꿈.. 그때 느낀 것들을 두고 두고 생각하며 나의 젊은 인생을 시작한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물론 어려운 위기도 많이 겪었겠지만.. 분명히 내가 가는 길에 대해서는 필요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조금은 덜 외로웠을 것이고, 최소한 ‘인생의 (최후의) 목적’ 만은 알고 살았을 것이다. 나아가서 내가 추구했던 이상, 전문적인 일들, 가족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덜 후회를 남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꿈에서 깨면 을씨년스러운 현실로 돌아온다. 나를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십 년이 넘도록 기도하며 도와 주었던 우리 식구들, 연숙과 두 딸들.. 그런 10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두 딸들이 떠났다. 이번에는 나와 연숙이 그들을 기다리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왜 우리 두 딸들은 그렇게 ‘야멸차게’ 성당을 떠나야만 했을까. 그런 나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이렇게 WYD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것이다. 왜 우리 두 딸들이 그 속에 있지 못한 것일까? 왜 그렇게 쉽게 세속문화,찰나 문화에 빠져야만 할까? 기다려 본다. 나 같이 남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case도 있지 않은가?

 이번 미국에서 가는 청년의 수는 무려 2만 여명으로 사상 최대이고 한국에서도 천 여명 이상이 참가한다. 내가 사는 이곳 아틀란타 대교구에서도 백여 명 이상이 참가를 한다고 이곳 가톨릭 신문에서 보았고 그 중에는 우리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여대생도 있었는데, 예쁜 얼굴의 Georgia State University 학생이라고 했다. 성당을 떠난 우리 두 딸만 보다가 이런 ‘다른’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 요새는 나의 ‘낙’이 되었다. 거의 흡사 무슨 ‘젊은 성인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인 것이다. 지난 6월 달, 이곳 아틀란타 한국본당의 레지오 피정에서 그런 젊은 성인’들을 나는 room-mate로 직접 가까이 보기도 했다. 그들의 부모들은 우리와 다르게, 어떻게 ‘신앙교육’을 시켰던 것일까? 그들 부모들이 그 들에게 어떤 role-model로 비쳤기에 그렇게 ‘모범적’이었을까?

한국 주교회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세계청년대회, WYD: World Youth Day‘는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된다.

세계 각지에 있는 가톨릭 젊은이들이 2년 또는 3년에 한번 개최 교구(도시)에 모여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확인하면서 함께 축제를 지내는 모임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 속에 살게 하고자 개최한 젊은이들의 축제이다. 1984년과 1985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초대하였다. 그 뒤 1985년 12월 20일, WYD 협회를 구성, 1986년에 처음으로 공식 WYD가 열리게 되었고 1987년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 번째 WYD가 개최되었는데 이로써 2년 또는 3년 만에 개최하는 정기적인 국제 대회가 되었다.
세계 곳곳의 많은 나라에서 모여 온 젊은이들은 가톨릭교회의 가치인 보편성과 다양성을 확인하며 함께 어우러진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신앙과 경험을 나누고, 자기들의 고국에 그리스도의 가치인 사랑과 평화를 전파할 수 있는 활기를 얻는다.
또한 서로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게 되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갖는다. WYD는 세계 도처에 평화와 상호 이해의 정신을 표현하는 대회이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지역의 깃발을 흔들 때, 깊은 공감을 맛보며 이 체험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알피 램’ 생애를 읽으며..

알피 램 생애, 전설적인 레지오 선교사
알피 램 생애, 전설적인 레지오 선교사

지난 6월 28일부터 읽기 시작한 <알피 램 생애> 란 소책자 (136쪽)를 이제 거의 다 읽어 간다. 마지막 20쪽이 남았다. 이것도 RbT: Reading by Typing 의 방법으로 읽고 있어서 사실 눈으로만 읽는 것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셈이지만 대신 아주 자세히 읽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 책은 연숙이 2009년 12월 6일, 아틀란타 본당소속 꾸리아 연말 모임에서 꾸리아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는 나의 관심 밖이어서 이런 책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알았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지난해 말에 내가 레지오에 입단을 하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렇게 꼼꼼히 읽을 정도로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알피 램이란 사람이고, 알피 램(Alfie Lambe) 의 알피(alfie)는 알퐁소(Alfonsus) 의 애칭(nickname) 이다. 알피 램은 간단히 말해서 레지오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라고 한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라틴 아메리카에 레지오의 ‘돌풍’을 일으킨 사람인 것이다. 다른 말로 그는 더블린에 있는 세계 레지오 본부에서 파견된 레지오 선교사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갈 듯하다. 특히 6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영웅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역시 젊은 26세의 나이에 선종을 해서 레지오에서는 거의 ‘어린 성인’ 같은 존재로 남은 것이고, 이로 인해서 성인으로 가는 ‘복자 추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피 램이 활동한 시기가 1953년부터 선종한 때인 1958년까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해 부터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가 된다. 그렇게 오랜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이 나온 배경은 아직 자세히 ‘연구’를 못해서 잘 모르지만 원래 ‘힐데 퍼텔’이란 저자가 영어로 쓴 것을 북미주 레지오 교육협의회장 ‘조, 율리오’ 란 사람이 한글로 번역을 해서 대한민국 광주에 있는 ‘새날출판사’란 곳에서 간행을 한 136쪽의 소책자인데, 내용은 그런대로 ‘이해’를 했지만 거의 다 읽고 난 감상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의 내용은 나중에 간추려서 blog으로 소개하겠지만, 여기서 감상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의 기본적인 ‘자격’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번역자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독자를 거의 우롱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조잡한 번역‘으로 일관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출판사의 실수, 잘못인지 번역자의 잘못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예 이 상태로서 출판이 되어서는 안 될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조금 생각한 것이, 머리말에 ‘번역 봉사’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번역자가 번역을 한 것이 아니고 이 봉사자들 여러 명이 함께 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수준 이하의 ‘직역 체’ 번역에다가 각 단원의 문체, 용어, 문단의 구성도 다른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발행 년도가 2003년이면 초고, 원고를 분명히 computer의 word processor로 편집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거의 자동적으로 spelling checker가 틀린 것을 지적했을 터인데 아예 그런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인쇄소로 넘긴 듯하다.

읽는데 하도 신경이 쓰이고 해서, 아예 모두 ‘내가 고친’ 것으로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떻게 이런 글이 ‘출판사’의 ‘검열’을 통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레지오에 ‘누’를 끼치는 것 밖에 되지 않을까? 위에 언급한 조잡한 번역, 일관성 없는 구성, 오자 등등 것들의 예를 나는 나중에 모두 열거를 해서 ‘발표’를 할 예정이다.

 

2011년 7월 초순을 간다..

2011년 7월 초순이 서서히 흐른다. 비에 젖어 조금은 덜 시끄럽게 느껴진 Fourth of July의 fireworks도 다시 잠잠해지고, 찌는듯한 여름더위가 조금은 주춤해졌다. 이제부터 약 2개월의 더위를 ‘즐기면’ 다시 찬란한 단풍을 보게 되는가.. 이것이 세월의 흐름이고 계절의 순리인 것이다. 올 봄의 ‘극악한’ 날씨들도 조금씩 ‘착해지는’ 듯 별로 날씨에 대한 빅뉴스가 없어지고 있고 hurricane도 long-term forecast 는 못 보았지만 평년보다 조용하다.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Rheem Gas Water Heater,  지난 휴일을 낀 주말은 완전히 water heater(온수기?) 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다. 거의 15년을 무사고로 우리 집의 더운물을 공급해 주던 온수기(이런 말이 있던가?)에서 거의 한 달 가량 조금씩 물이 새고 있어서 이것을 새것으로 갈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지난 번, 그러니까 거의 15년 전에는 조금씩 샌 것이 아니고 거의 폭포수처럼 새어서 고치는 사람을 불러서 새것으로 갈았던 기억인데 이번은 품질이 좋았는지 아주 조금씩 새면서 ‘경고’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한번 모험을 하기로 하고 내가 직접 갈아보기로 해서 이번에 작업을 한 것이다. Amazon.com으로 Rheem brand중에서 아주 high efficiency model로 order를 해서 지난 주 금요일, 집에 배달이 되었는데, 전에 쓰던 것 보다 ‘덩치’가 컸다. 거의 100파운드가 넘어서 평소에 운동을 안 한 사람은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고, 이것을 교체하려면 이런 큰 덩치의 ‘고철’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을 시키면 거의 $400이 드는 모양이다. 이것을 내가 절약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직접 시도를 한 것이다.
YouTube video를 보면 사실 아주 ‘쉽게’ 묘사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수도관에 관련된 plumbing job이 ‘재수’가 나쁘면 정말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것이니까..결과부터 말하면 ‘예상 외로 운이 나빠서’, 지독히도 고생을 했다. 7월 4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Home Depot를 4번이나 왕복해야 했고, 결국 밤 늦게 더운물을 쓸 수 있었다. 속으로 $400 절약이 사실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제일 골치가 ‘묘한 위치’에서 soldering(납땜질)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역시 pro가 아니면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납땜을 안 하는 new technology (Sharkbite)를 쓰게 되었는데.. 사실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밤 늦게 ‘더운 물’이 나온 것은 정말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복자 때 그려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1971년 당시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지난 7월 5일은 고국의 가톨릭 성인중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날이었다. 그날이 주중에 있어서 당겨서 7월 3일 주일에 대개 ‘이동 경축’ 미사를 드린다. 내가 ‘소속’된 이곳의 한국 본당의 이름이 ‘아틀란타 김대건 순교자 성당‘이다. 그러니까 더 의미를 느끼게 된다. 고국의 103위 성인은 익히 들어서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그렇게 관심을 일부러 가진 적은 별로 없었다. 우선 과거에 순교자 성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은 끔찍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순교하는 장면을 ‘생생히’도 묘사를 했는지.. 인간적으로 얼마나 고통과 비참함을 안 느낄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우연히 고국의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의 1970년대 간행본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한국주교회의 website에는 1900년 초부터 현재의 것 까지 모두 이곳에서 볼 수가 있어서 정말 ‘보물 창고’와 같다. 나는 특히 내가 고국에 있었던 1970년대 초의 것들이 제일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 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회상을 할 수 있을지 모를 기사들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1971년 크리스마스 때의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1972년 여름의 남북 7.4 공동성명, 그 해의 10월 유신 같은 것들이다.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이 곳에서 나는 ‘복자 김대건’ 성인 탄생 150주년 특집기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1821년 생이어서 1971년이면 150주년이 되는데 1971년 8월호에는 나에게는 거의 보물과도 같은 특집기사가 있었다. 조금은 움츠려 드는 것은 성인의 두개골을 ‘분석’하는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복자로 부터 성인이 되게 하는 여러 노력의 일환으로 ‘철저한’ 조사를 한 셈이고 그 중에 대형 동상 제작도 있었는데 그러려면 성인의 ‘진짜 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요새 우리가 보는 성인의 ‘상본’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 당시 유해 측정의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서울) 가톨릭 대학 신학부 에서는 지난 3월 16일(1971년) 학장 신부님을 비롯하여 조각가, 안과의, 피부과의, 치과의 등 약 10여 명이 모여 125년 전의 김 신부님의 두개골을 3시간에 걸쳐서 정밀히 조사했다. 이날의 측정으로서 25세의 젊음으로 순교한 김 신부님은 신장이 약 177cm이며 미남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제2 한강교 주변에 있는 복자 성당에 세워질 김 신부님의 석상은 높이 3m로 수단에 각모를 쓰고 오른팔에 십자가를 들고 왼손은 가슴 높이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번 조사에 의해서 생전의 모습을 닮게 동양화가 정재석(비오)씨에 의해 3월 초부터 조각이 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성인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게 되니 정말 기분이 달라짐을 느낀다. 실제로 살았던 우리들의 ‘할아버지’라는 역사의식이 강하게 들게 되고 너무나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틀란타 성체대회(Eucharistic Congress)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Luke 10:2)

 

2011년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1년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1년 아틀란타 성체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고국의 육이오 동란 기념일인 6월 25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Georgi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GICC)에서 유엔총회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3만 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운집을 하여, 하루 종일을 ‘성체’에 대한 대 주제를 놓고 유명한 연사들의 강연, 음악, 간증과 ‘엄청나게’ 많은 사제들의 보조를 받는 그레고리 대주교님 (Archbishop Gregory ) 집전의 특전 미사로 성체대회의 마무리를 지었다.

비록 성체, 그러니까 body of Christ가 이 대회의 변함없는 주제이지만 매년 조금씩 주제의 각도는 변한다. 올해는 루까복음 10장 2절의 말씀에서 나왔다. 쉽게 말해서 추수를 한 후 일꾼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성소, vocation을 뜻한다. 언젠가부터 이 성소를 위한 기도문도 아틀란타 대교구에서 각 본당으로 전달이 되어서 우리와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것을 거의 정기적으로 한다. 사실 그만큼 성소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할까.

수많은 종파를 가진 개신교는 몰라도 단 하나밖에 없는 천주교는 독특한 자격을 가진 사제들이 이끌고 있는 교회이다. 특별한 자격과 각오를 가진 이 ‘심각한 목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역적인 차이는 있지만 이곳 북미주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 극소수의 ‘배반자, 범죄자’들의 소행인 ‘성추행’ 같은 것은 정말 교회자체를 흔드는 치명적인 사건들이었고, 그것이 직접 간접으로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성소를 가진 젊은 사제,수녀 후보들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동료,친구’ 신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마도 1989년 6월 초 South bend, Indiana에 있는 Notre Dame University(노틀담 대학)에서 열린 미국 성령대회였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비록 인종, 나이, 언어는 달라도, 한데 어울려 나오는 그 열기는 그곳에 가있어 보기 전에는 간단한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이번, 성체대회의 경우, 월남(Vietnam) 출신의 신자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숫자가 막강한데다가 어린이들을 첫 영성체를 하게 예쁜 옷들로 정장을 시키고 입장을 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이 월남 민족 그룹은 앞으로 단단한 신앙의 뿌리를 내릴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히스패닉 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열기와 숫자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전통적인 ‘백인’ 신자그룹이 열세로 보일 지경이었다. 한국 community는 이 행사에 전통적으로 아주 소극적이었다고 말을 들어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른 그룹에 비하면 숫자로 완전히 열세였다. 하지만 숫자에 비해서 본당 level의 협조와 조직은 상당히 열심히 준비하고 실행 된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홍보를 더 잘해서 숫자를 늘리는 가 하는 것이다.

Sister Olga from Iraq with Boston U. students

이번 성체대회에서 인상적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Iraqi Nun, Olga라는 이라크 출신 ‘올가’ 수녀가 있었고, Ireland(아일랜드) 출신의 Dana, ‘대나’ 라는 여성이 그들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 다 가톨릭, 맹렬 여성이라고나 할까.. 참 대단한 여성들이었다. 올가 수녀님은 46세의 정말 조그만 체구를 가졌는데 비해 말과 노래는 정말 우렁찬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심금을 울리는 말을 잘도 하던지.. 영어를 배운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녀는 완전한 영어로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이분을 이락의 마더 데레사라고도 불렀다. 어렸을 때 성소를 느끼고 완고한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수녀가 되었고 바그다드에서 집 없는 사람들을 돌보다가 ‘하느님의 인도’로 미국 보스톤 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되고 그 대학의 Newman Center(대학내의 공소)를 통해서 학생들을 인도하였다. 그 작은 몸 (4피트 9인치 정도?)으로 어떻게 그 덩치가 커다란 학생들과 어울렸는지.. 인터넷으로 그녀를 찾아보니 역시 대단한 수녀였다. 장래에 무언가 남길 만한 능력이 있는 ‘작은 거인’이라고나 할까.

아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이번 대회를 ‘레지오의 정신‘으로 참가는 했지만 놀랍게도 나에게 수확이 컸다고 할까.. 물론 가능하면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고, 더 가능하면 이곳에서 volunteer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한번 그것도 생각해 보고 싶다. 또한, 은근히, 그것도 즐겁게 놀랐던 사실 중에는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육분과의 청년 임원님들의 잘 들어내 보이지 않았던 노고였다. 청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 바쁜 한참의 나이에 ‘진지하고 짜증 없는 모습으로’ 점심준비와 교통편을 헌신적으로 제공한 그들의 얼굴은 ‘진정한 젊은 목자‘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자꾸만 연로해가는 본당의 미래가 조금은 밝게 보일 정도였다. 다시 한번 그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