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Santa’s, 고백성사, 올해의 마지막 일..

이것이 웬 떡이냐? 이것이야 말로 Santa’s Surprise가 아닐까? 얼마 전에 아래층 마루(IKEA Tundra)를 하면서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hallway의 조그만 closet의 바닥도 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몇 년(아마도 십여 년?)동안 쌓여 있던 각종 잡동사니가 있었다.

Secret Santa's Surprise
Secret Santa’s Surprise

주로 Halloween decoration stuff같은 것과 겨울용의 heavy jacket같은 것들이어서 평소에는 별로 열어 보지를 않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완전히 그곳의 모든 것들을 다 들어낸 셈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던 뚜껑도 뜯지 않은 CHIVAS REGAL Scotch Whiskey 한 병이 나온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이런 술을 사본 적이 없었고, 유일하게 집에서 마시던 맥주도 이제는 거의 사지를 않는다. $$도 그렇지만 이런 것들의 ‘단점’하나가 조금씩 이런 것에 의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그냥 싫었다. 담배와 마찬 가지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아주 쉽게 습관성이 되어가는 것이 싫은 것이다. 담배를 끊을 때의 trick을 다시 써서, 술은 남의 집에 놀러 가서 ‘얻어’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대부분 얻어먹는 다는 사실이 ‘치사’하게 느껴져서 피하게 되곤 하고, 설사 피할 수 없게 되더라도 절대로 과도하게 마시게 되지를 않는다. 그런 배경이지만 가끔 정말 외롭게 느껴지거나 할 때, 술 생각이 나곤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해서 ‘절대로’ 술을 사지를 않았는데.. 그런 나를 가상히 여기셨는지.. 이렇게 뜻하지 않게 술병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Santa할아버지가 주신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아마도 작년에 ‘선물’로 받은 것을 그냥 그곳에 넣어두고 완전히 잊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pleasant surprise가 아닐까? 덕분에 올해 겨울 저녁은 조금 훈훈한 느낌을 받으리라 희망을 해 본다.

어제 오후에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거의 20년 만에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에서 ‘한국어 고백성사’ 를 하였다. 결론부터 말을 하면, 이것이다. 이것을 잘하고 못하고는 거의 ‘언어’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로 하게 되어도 조금은 ‘미묘한 표현의 제한’을 느낄지는 몰라도 시간을 두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준비를 잘하는 것이 그저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는 한국어 고백성사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쉽다는 것이다. 어제의 경우가 그랬다. 모처럼 ‘자유스러운 모국어’로 하는 것이니까 그저 큰 문제가 없을 줄 잘못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과같이 준비를 철저히 하지를 못했다. 신부님께서 그것을 모르실까.. 아닐 것이다. 조금 신부님께도 미안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사제경험이 적은 ‘막내’신부님,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에게 성사를 보게 되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것을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거의 무조건 나는 고백성사를 해야만 하는 심정이었다. 그저 시작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나는 ‘정상적, 정기적’으로 고백성사를 잘 준비하고 잘 할 것이다. 이것도 레지오에 들어가면서 다시 생각한 ‘부산물’중의 하나라고 할까.. 참 성모님의 묵주기도는 오묘하다고 할까.. 정말 모른다.

The last 10% of work takes 90% of time. 이 경험적인 명언이 정확히 도 잘 들어맞는다. 물론 이것은 경험적으로 어떠한 과제를 과소평가 했을 때 꼭 들어맞는다. 년 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래층 나무 마루 놓기, laminate flooring이 그것 중의 하나다. 비교적 작은 면적의 화장실의 마루가 그것이다. toilet 아래로 마루를 놓는 것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것이다. Toilet을 분해, 그것도 완전히 들어내고, drain hole주변으로 동그랗게 cutting하는 것이 당연히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을 왜 예측을 못 했을까? 전에 toilet를 바꾸는 것을 해 본적이 있었지만 거의 10년이 되어가서 자세한 것을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drain hole에 wax ring도 필요하고, water line plumbing도 다시 해야 했다. 한마디로 조금은 ‘뼈빠지는’ 일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것을 하고 나니 정말 보람을 느낀다. $$$도 엄청 save했겠지만 이 나이에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나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win-win이 아닐까?

 

雜想: 눈발이 흩날리는 일요일 오후에..

눈발이 흩날리는 일요일 오후에..  어느덧 2010년 대림 3주로 접어들었다. 그러니까 대림 초 3개가 켜지는 일요일이 된 것이다. 지난주에는 주일 미사를 빠지고 말았다. 그 전날 아틀란타 한인성당에서 있었던 레지오 마리애 연차 총 친목회에 거의 하루 종일 참석을 한 것이 조금 피곤했다는 것이 핑계가 되었다.

대림 2010 3주일
대림 2010 3주일

물론 핑계에 불과하고, 아침에 조금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명심을 하고 미국본당의 미사엘 갔고 Panera Bread (Cafe)에 들려서 평상적으로 small breakfast (bagels & coffee)를 즐겼다. 그런데 회색 빛 하늘에서 하얀 것들이 조금씩 내려옴이 보였다. 분명히 눈발이었다. 싸늘한 바람과 함께.. 아.. 기억에 남을 12월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경험적으로 십중팔구는 싸늘한 비가 올 시기에 어렸을 때 보던12월의 눈은 참 아름다운 느낌으로 과거와 함께 내려오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온다.

여기까지가 즐거운 것이고.. 다음은 다르다. 12월 자체가 완전히 무엇에 밀려가는 무거운 느낌인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일 극치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그날로 그렇게 떠들고 북적대던 것들이 거짓말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거의 고통이다. 물론 이것은 ‘세속적’인 풍경이지만, 믿는다는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오죽하면 유타주(State of Utah)의 한 주교는 ‘공문’으로 “12월 24일 이전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즐기지 말라” 고 말까지 했을까? 나도 사실 이 말에 동감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일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완독(完讀)  어제로 레지오 교본을 한번 다 읽은 셈이 되었다. 비교적 얇은 종이로 된 책이라서 보기보다 분량이 많았다. 거의 500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올해 10월 19일에 아틀란타 본당 꾸리아 소속의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예비 행동단원(공식 선서까지 3개월간의 대기단원)이 되면서 받은 책이 바로 이 공식 레지오 교본이었다. 이 책을 받으면서 단원들이나 단장으로부터 아무런 말을 들은 것은 없었다.

레지오 교본
레지오 교본

그저 공식교본이니까 읽어야 한다는 ‘묵언’ 정도만 나 나름대로 느꼈을 뿐이었다. 하기야 정기회합 중에 항상 조금씩 읽고, 돌아가면서 공부를 해 와서 발표하는 것은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하다가는 시간이 너무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입단 1주일 뒤부터 미친 듯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냥 읽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지루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변화를 준 것이 keyboarding 으로 하는 ‘필사’였다. 한글타자를 치면서 읽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이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에 비해서 keyboarding을 하면 오타에 대한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까 더 정성을 드리게 되는데, 여기에 글이 의미를 파악하려면 더 ‘머리’를 써야 한다. 조금은 “고행”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 다 읽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완전한 나만의 text copy가 남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copyright가 된 것이라 공개는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쓸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은 것은 ‘정독’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저 ‘속독’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읽음으로써 정말 내가 그 동안 가톨릭 신자로써 무심하거나 무식한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이 교본의 ‘역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레지오의 90년에 가까운 역사를 고려한다면 이 책이 오랜 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심오한 신학적 고찰과 거의 cookbook에 가까운 실제적 방법론이 기가 막히고 교묘하게 접목을 이루고 있는 이 책은 나에게 거의 제2의 성경에 가깝게 느껴진다. 1월 중순에 있을 정식단원 선서 전까지는 ‘완전 정독’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른 책들도 이것과 같이 잘 쓰여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Amazingly Stupid Chinese (Government)…  솔직히 말해서, 나는 ‘듕귁’ 이라는 말조차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듕귁정부라는 말은 더 좋아할 수가 없다. 더구나 빨갱이 듕귁과 듕귁정부는 지독히도 싫어했다. 각종 이유로 자기네 인민들을 수백만 명이나 굶겨 죽이고 문화혁명이라고 해서 모택동을 신격화하고.. 정말로 그들의 해괴한 행적은 끝도 없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드디어는 “인민의 적인 자본주의” 를 교묘하게 이용을 해서 흡혈귀와 같이 $$$를 거지같이 모으더니 아주 선진국같이 행세를 하려 든다. 머릿속은 19세기에 머물고 있으면서 21세기의 국제사회를 대하려 드니 문제가 없을 수가 없겠다. 그 “해괴한 행적 올림픽” 중에서 금메달은 “바티칸과 상관없이 가톨릭 신부,주교를 임명하는 것”이고 은메달은 노벨 평화상에 대해서 “몇몇 광대들에 의해서 듕귁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듕귁 외무성의 성명이다. 이들은 $$$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진 모양이다. 빨갱이 시절에는 무시무시하게 많은 인구 덕분에 핵전쟁도 무섭지 않다고 떠들더니 이제는 무시무시하게 많은 $$$ 덕분에 국제적인 관행을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다는, 역시 “빨간 짱꼴라” 적 발상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Elizabeth Edwards…  요새는 참 용감한 여성들이 많다. 과거에 비해서 더 많아진 듯 하다. 어떨 때는 남자들 보다 더 용감한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여성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공적인 인물이 그것도 암과 싸우다 죽으면 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다 미리 알 수 없는 수명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모두들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산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내일 이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실감나게 든다. 물론 평균수명이라는 것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통계이고, 나는 그 통계와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나는 제일 가까운 사람, 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느끼기 시작을 했고, 지금은 그런대로 유한하고, 비교적 짧은 인간수명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사는 셈이다.물론 이 ‘용감한’ 여성은 암이라는 병에 의해서 더 오래 살 수도 있었을 삶이 끝이 났지만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용감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arly Siberian Blast

드디어 온다. 하지만 한 달이나 일찍 온다. 진짜 추위가 Siberian Express.. 라고나 할까. 한반도에서는 Siberian Express라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Canadian Express가 더 맞는 말이다. 기온이 하루 사이에 무려 화씨 20도 이상 떨어지고 있다. 모래 새벽의 기온은 화씨로 15도까지 내려갈 예정.. 화씨로 15도면 섭씨로 얼마나 될까? 아마 영하 10도 정도가 될까? 좌우지간 이곳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추위인데, 여기 바람까지 합세하면 wind chill(체감온도?)은 훨씬 더 심할 것이다. 12월의 이곳은 주로 싸늘한 비가 많이 오곤 하는데 12월 초에 이런 것은 나의 기억에도 거의 없는 것이다. 작년에 이런 강추위는 평년대로 1월에 시작이 되었다. 여름이 지독히 더워서 이것은 역시 예상이 되긴 했다. 연평균은 아직도 거의 일정하니까. 이곳이 이 정도면 북쪽지방인 mid west지방은 훨씬 더 추우니까.. 상상이 간다. 이런 것들 때문에 조금은 더 12월에 있는 ‘휴일’의 기분이 나긴 하지만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조금 괴로울 것이다.

어제는 나에게 조금 이색적이 날이었다. 모처럼 한국사람이 제법 많이 모이는 모임에 참석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참가한 곳은 아틀란타 “한국순교자천주교회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제13차 연차 총 친목회”란 길고 긴 이름의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의 이름들은 사실 그렇게 생소한 것이 아닌 것이 연숙이 가끔 전에 언급을 했던 이름들이었기 때문인데 내가 그곳에 가게 될 줄은 정말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이것은 조금 신비스럽다고나 해야 할지 나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지난 10월 말 부터 나가기 시작한 레지오 회합도 이제 거의 2달이 되어오고 조금 성모님 군단 일원으로 조금씩 나의 모든 것들이 조정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그런 배경에서 참가한 이 연례행사는 나에게 너무나 은총과 기쁨의 시간을 주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많은 ‘전우’들을 보게 된 것도 그렇고 막강한 인원으로 같이 바치는 묵주기도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는 사실 처음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다. 비록 동료단원들의 친목이 주 목적이겠지만 공식적인 기도, 신부님 참여 등등이 오묘하게 섞이어서 균형을 잘 맞추었다. 이런 모임이 다른 곳에 어디에 또 있을까? 물론 모두가 ‘행사의 프로’가 아니라서 모임의 진행이 100% 매끄럽지는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특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중에 Audio system의 중요성을 이번에 느꼈는데.. 이것에 문제가 있으면 모임의 진행이 얼마나 힘든가를 절감했다. 이런 모임을 준비할 때는 이것부터 미리 점검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단원들이 열심히 참가를 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마리에타 2구역

Thanksgiving Day 전날 저녁에는 몇 달 만에 연숙이와 같이 우리가 속해있는 아틀란타 한인천주교회 마리에타 2구역 미사에 다녀왔다. 지난 6월부터 이 구역모임에 참가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도 못 나가면 올해를 넘기겠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음식 하나를 해서 간 것이다. 이번의 host family 고창민 클레멘스 형제 댁, 나는 이번에 처음 가는 집이었다. 미사를 드리기에 쾌적한 장소를 제공하는 훌륭한 집, 실내 디자인도 멋있는 그런 집이었다. 이 댁의 따님, 고근정양은 10여 년 전쯤 내가 이곳의 한 한글학교에서 잠깐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커서 대학에서 ROTC까지 하는 용감한 아가씨가 되었단다. 참 흐뭇한 기분이었다. 고 형제는 집에서 ‘밀주’를 취미로 담근다고 하는데 그날도 예외 없이 달콤한 포도주와 인삼주가 나왔다. 물론 집에서 담근 것들이다.

마리에타 2구역은 우리부부가 속해있는 아틀란타 순교자 한인천주교회 (이하 한인성당, 본당)의 아틀란타 서북부 suburb (마리에타 포함)를 포함하는 구역system중의 하나다. 이 지역의 특징은 1996년 Atlanta Olympic을 계기로 급 팽창한 아틀란타의 다른 수도권지역에 비해서 이곳만은 아직도 거의 인구변동이 없는 ‘안정된’ 곳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사는 한인들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고 안정적이며, 그들은 경제적으로 대부분 안정이 됐거나 되고 있는 그런 연령층이 대부분이다.

우리부부는 현재 한인성당 주일 미사는 안 나가고 있지만 이 구역모임에 나간 지는 거의 5년이 되어온다. 사실 이것마저 안 나가면 우리는 완전히 한인성당과의 연결고리가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대부분 성당 구역단체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active한 멤버는 한정이 되어있고 나머지는 가끔 참석하는 정도이다. 이 구역 시스템의 중요한 목적은 역시 교우들간의 친목도모일 것이지만 그 이외의 기능도 아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역 신자들이 손수 만든 음식을 성당 점심으로 판매해서 본당을 돕는 것 같은 것도 있다.

 

Irish Folk/ Pop/Gospel Singer Daniel O’Donnell의 “St. Francisco의 기도”

 

나에게 이 첫구역모임 참가는 조그만 culture shock이었다. 비록 열 몇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오랫동안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거의 의도적으로 피해와서 그럴 것이다. 그 모임에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조바오로씨 부부가 고작이었다. 나이도 우리가 제일 많은 축에 속했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한인성당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한 달 전 레지오 가입 후에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구역형제자매님들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은 더 친하게 보인다고 나 할까.. 아니면 착각인가.. 하지만 분명히 내가 조금씩은 변하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이번의 미사집전은 올해 이곳에 새로 부임한 김영훈 스테파노 “막내” 신부님이시다. 이분은 30대의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이시고 다른 두 신부님보다 젊어서, 막내신부로 통한다. 말씀을 어떻게나 또박또박 하시는지 흡사 오래 전 국어시간에서 듣던 그런 발음을 연상시킨다. 역시 예수회 신부님이신데 다른 분과는 달리 미국의  Berkeley에서 공부를 하시고 이곳에 처음으로 부임하셔서, 이곳 미국의 사정을 잘 아시고, 특히 언어문제가 없어서 청소년 사목에서 맹활약이 기대되기도 한다. 조금 이색적인 것은 대부분 신부님들이 술과 담배를 하시는데 이 김신부님은 둘 다 전혀 못하신단다. 그런 것들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래저래 이곳 본당은 참 하느님의 은총을 최근 들어서 많이 받는 것 같다. 특히 주임신부(Pastor)이신 안정호 이시도르 신부님의 지치지 않는 헌신적 사목활동은 떠나신 뒤에도 두고두고 이곳에 깊은 영향을 남기리라 기대가 된다.

우리구역 교우의 연령층은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지만 40~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우리는 조금 은퇴세대에 속한다.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가 위이신 분은 전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님이 계신데, 사실상 이 구역을 오랫동안 지키시고 요새는 건강을 이유로 가끔 나오시곤 한다. 이 전 형제님(교우들은 대부분 형제, 자매님으로 불린다)은 조금 독특하신 분이다. 덕수상고, 고려대학을 졸업하시고 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다가 미국엘 오신 듯한데, 정치적인 성향이 상당히 진보적이고, 따라서 보수세력을 아주 혐오한다. 쉽게 말하면 상당히 좌익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지독히 혐오하는데, 이것이 지나쳐서 거의 ‘주사파’로 오해를 살 정도의 발언을 하는데 나는 그것이 상당히 듣기가 거북하였다. 참 세상이 많이 좋아지긴 했다. 이런 발언이면 옛날에는 세계 어느 곳에 있던 간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님이 육이오직후 공산당에게 납북을 당하셔서 김일성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가는 형편인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소화가 안 될 지경이다. 같은 신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조금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을 해 주는 것이 어떨까. 사실 거북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실 교우들과 어울리게 되면 자기와 입장이 아주 다른, 심지어는 아주 거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다름’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해하고, 포용을 하는가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거북한 것 중에는, 천주교 교리 중에서 분쟁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파 헤치며 신자들을 괴롭히는  ‘지식인’ 교우들.. 왜 그럴까?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이란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가 정말로 필요한 교우들.. 다른 쪽으로는 “초자연적인” 신앙과 popular science를 완전히 혼동을 하는 교우도 본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그럴 때 조금 common sense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조금 거북한 것들이 사람이 모이면 꼭 있는 것이므로 이것으로 신앙공동체의 구역모임을 피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끔 피하고 싶은 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구역모임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는 유동적이지만 아마도 거의 고정적인 숫자는 유지하는 것으로 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조그만 기적일 것이다. 둘 셋만 모여도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올해는 아주 기억에 남을만한 추수감사절 이브의 구역미사가 있었고, 성탄절 즈음의 구역모임은 어떨지 조금 기대가 된다. 작년에는 전근섭 형제 댁에서 “100% 세속적”인 모임을 즐겼던 기억이다. 흡사 노래방에 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모임..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분위기가 사실은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것이 아마도 세대차이가 아닐까?

 

Thanksgiving Day eve

비가 오락가락하고 포근한 깊은 가을.. Thanksgiving Day가 내일로 다가왔다. 작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아주 포근한 날이었다. 우리의 조촐한 가족만이 모였던 휴일이었고 모두 조금씩 요리를 하는 것을 거들었던 기억이다. 그때는 새로니가 Washington DC에서 일을 할 때여서 급하게 왔다가 급하게 떠났는데 올해는 다시 학생이 되어서 거리와 시간 모두 여유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대신 작은 딸 나라니가 처음으로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첫 해가 되었다. 올해 4월에 따로 나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집에 오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본인도 즐기는 듯 하다.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오랜만에 guest와 같이 보내게 되었다. 새로니의 Emory friend인 Galina가 뉴욕에서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우리 집에 놀러 온 것이다. 식사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머물게 되어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지만 예년과 조금 다른 휴일이 되어서 흥미롭다. 애들이 어렸을 적에는 이런 때면 한방에 모여서 재미있는 movie같은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절이 거의 먼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이곳의 전통인 turkey요리를 해 왔다. 아마도 그때가 1980년대 초, 그러니까 우리가 Columbus, Ohio에서 살 때였을 것이다. 연숙이 그곳 성당의 원로로 계시던 이봉모 선생님(지금은 고인이 되셨음)의 부인으로부터 recipe를 받아서 첫 turkey 요리를 했던 때가 그때쯤이었고 그 이후로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turkey 요리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추석이나 설날의 한식 전통요리보다 이 turkey 요리에 대한 추억과 애착 같은 것도 생기게 되었다. 가끔 한국 손님들이 참석을 하면 별로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본다. 특히 김치를 꼭 같이 찾는 사람들도 있어서 조금 당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치와 먹어도 사실 맛이 있었다)내가 개인적으로 turkey 요리를 제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사실 결혼 훨씬 전의 일이었다. 1974년 가을의 Thanksgiving Day였나..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서울사범대 지학과 출신 성성모씨가 Indiana주 Purdue University에 다닐 당시, 그곳에 놀러 갔는데 , 같은 대학의 한국인 유학생 부부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turkey 요리를 푸짐하게 대접을 받았다. 특히 여러 가지 side dish들이 굉장했는데 그 유학생 부인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국요리를 배웠는지 모두들 혀를 찰 정도였다. 처음 먹어본 것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요리가 잘 되었는지..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ANY CHARACTER HERE

요새 며칠 사이 내린 비로 그나마 남아서 안간힘을 쓰며 가을을 지키던 아름답던 황금색 나뭇잎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글자 그대로 “낙엽의 장관”을 이루었다. 특히 우리 집 차고로 들어오는 길은 길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낙엽으로 덥혔다. 이들은 해가 다시 나오면 완전히 마르면서 바람에 휘날려 다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겨울로 향하는 12월의 입구..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시작이다. 천주교 달력에서는 이날이 새해의 시작이 된다. 11월 28일이다.

낙엽, 낙엽, 낙엽...

낙엽, 낙엽, 낙엽…

12월로 들어설 즈음이면 가끔 그리운 곡이 생각난다. 1960년대 말, 대학시절.. 멋진 가사에 매료되어 guitar로 따라 부르곤 하던 Duo Simon & Garfunkel의 rock version “I am a rock”이 그것이다. 그 대학시절, 가끔 지독한 고독 같은 것을 느끼곤 하면 이 노래를 자장가 삼아 들었다. 이 가사의 주인공이 내가 된 듯한 기분으로..특히 친구 유지호와 같이 부르던 것도 즐거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별명 “우중충” 유지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까..

 

I am a rock – Simon & Garfunkel

 

천안함 도발사건 이후 다시 이번에는 연평도 포격.. 정말 끝이 없다. 김정일이 “개XX”는 그 괴상하게 생긴 머리”통”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중에 해부를 해서 히틀러와 비교해 볼 만하다. 촌스러운 북쪽 사투리로 “영쩜 영 미리메타라도 조국을 침범하는 원쑤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북괴왕조의 방송을 들으면 이런 Shakespeare 희극이 역사상 더 있었으랴..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들과 버금가게 웃기고 한심한 친구들이 바로 대한민국에도 “수두룩 닥상” 으로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금메달 깜은 소위 말하는 “친북 기독교 단체” 들이다. 이 사람들 과연 머리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의 이간을 배격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동족 형제”인 김정일을 사랑하라“고.. 허..여보세요.. 정신 좀 차리십시오.

11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IKEA Tundra on living room
IKEA Tundra on living room

한달 넘어 질질 끌어오던 living room의 laminate flooring 일이 오늘 드디어 일단 끝이 났다. 7월 달에 처음 dining room으로 시작된 올해 home renovation project중의 하나다. 그 무덥던 7월 달에 처음 시작된 일이 오늘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목표가 달성되었다. 이 clink-and-snap floor는 글자 그대로 아무런 fastener가 필요 없는 정말로 쉬운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일단 말썽을 부리면 잘 들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그런 문제점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 다시 알게 된 것은 그것은 나에게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IKEA Tundra 제품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 다시 정성을 들여서 잘 맞추어 보니 신기하게도 다 잘 들어 맞았다. 힘든 일은 역시 boundary condition, transition같은 것이다. 정확히 치수를 재고 정확히 corner strip을 자르고..하는 것들.. 역시 나는 pro가 아니라 정말 힘든 작업이다.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퇴색해가던 carpet이 이렇게 반짝이는 hardwood floor로 바뀌니 우선 너무나 신선하고 깨끗한 느낌인데, 우리 집의 강아지 Tobey가 앞으로는 바닥이 미끄러워서 고양이 Izzie를 갑자기 ‘공격’하기가 조금 힘들어질 듯 하다.

Glorious neighborhood Fall color
Glorious neighborhood Fall color

빙점까지 내려갔던 날씨가 다시 평균기온으로 돌아왔고, 매일같이 아주 거의 정확하게 가을 평균기온을 유지하고, 나무들도 순조롭게 ‘가을 색’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곳에서 fall color라는 것을 한국에서는 그냥 단풍이 진다고 할 듯하다. 사실 단풍이란 것은 특별한 나무의 이름이 아닌가? 그러니까 fall color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늘은 너무나 오랜만에 연숙과 같이 subdivision neighbor(동네)를 Tobey와 같이 산책을 하였다. 우리 subdivision은 언덕이 알맞게 있는 산책도로가 있는데 천천히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차의 왕래도 아주 적어서 개를 산책시키기에는 정말 알맞은 코스인 것이다. 1992년 부터 이곳에 살았지만 사실 정기적인 산책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친구 명성이가 이곳에 잠깐 들렸을 때, 나에게 걷기를 거의 완강하게 권했다. 자기는 거의 매일 걷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걷기는 했지만 습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는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YMCA에 따로 가서 하는 운동과 이 걷기는 나에게는 유일한 건강보험인 것이다. 연숙은 언덕이 있는 것 때문에 걷기를 꺼려하는 편인데 앞으로는 자주 걷겠다고 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게 믿지는 못한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오늘 본 나무의 색깔은 너무나 찬란했다. 얼마 안 있으면 바람과 비로 인해서 다 떨어질 것이다. 아.. 찬란한 가을이여.. 조금만 더 머물다 가거라.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IT support team

어제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만난 것이다. 그 자리는 한인본당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성당) 월례 ‘전산팀‘ 회합이 있었던 곳이다. 전산팀이란 간단히 말하면 IT support team일 것이다. 성당내의 여러 가지 technology: computer, network system, website등등을 개발 관리하는 본당 신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어제 이곳에 나가게 된 것은 역시 최근에 가입한 레지오의 영향이 지대적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레지오를 통한 “오묘한 일련의 사건의 고리”를 느끼게 되고, 이것이 현재 나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이런 기회를 전 같았으면 무시하거나, 미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전산팀에 나가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레지오의 ‘본당협조’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도 자원봉사의 일원으로 본당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루는 다리역할을 못 찾은 것 뿐이었다. 이번에 레지오가 그 다리를 이어준 셈이다. 거의 모든 교회나 성당들이 시대의 흐름으로 IT (Information Technology)의 역할이 필수적이 되었다. 처음 주보 정도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신자, 회계관리 같은 것 등도 다 전산화가 되었다. Internet의 일반화로 이제는 website도 필수가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맡아서 전산팀 멤버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성당의 양적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IT support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며 전산팀 회합에 처음으로 참석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다. 2시간 남짓의 회합은 참으로 유익한 것이었다. 나의 의문점을 거의 다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단체에서 나는 ‘은퇴세대’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곳은 조금은 그런 rule에서 예외가 아닐까 희망을 해 본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IT skill set은 지금 성당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과 많이 중복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당장 도울 수 있는 분야는” physical” computer system, (WAN,LAN) networks, phone system intergration정도가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해질 것이다.

 

첫 빙점, 슬픈 하루, 501 Must-Read Books

아틀란타 지역에 올 들어 첫 영하의 날씨가 들이 닥쳤다. 평년보다 일주일이 빠르다고 한다. 하도 ‘요상’한 기후가 올해를 기록으로 올려 놓더니 이것 조차 그 중의 하나가 되려나. 오늘 낮에는 잠깐 눈 싸라기까지 내려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단풍도 깊이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겨울의 맛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밖에서 한여름을 지낸 화분의 화초들을 부리나케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 분명히 날씨는 다시 따듯해 질 것이지만 언제 다시 추워질지 모르는 계절이 아닌가? 작년의 겨울은 정말 추웠는데 올 겨울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어제는 연숙이와 같이 하루 종일 우울한 날을 지냈다. 연숙과 가까이 지내던 성당 교우 최희상씨의 대학생 작은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청천벽력이라고 하던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니고, 급성 뇌막염이었다. 이병은 가끔 대학교 기숙사의 학생들에게 걸리는 고약한 것이고, 치사율이 정말 믿지 못할 정도로 높다. 거의 아주 급성으로 손을 쓰기도 전에 이런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우리에게 가까운 곳까지 온 것이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는 그저 기도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성모님과 함께 슬픔에 잠겨있는 부모님을 위로해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할 수 밖에..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501 Must
501 Must

우연히 Costco에서 501 MUST-READ BOOKSdiscount book을 하나 샀다. 나에겐 거의 보물같이 느껴지는 횡재였다. 이런 류의 책이 한국에서 나온 것은 그런대로 많이 기억이 나고, 아직도 몇 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거의 “고서”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로 오래 된 것이지만.. 예를 들면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 “오늘의 사상: 100인의 100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영어권에서 500권이 넘게 각 분야별로 뽑은 것인데, 영국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러니까 조금은 “미국의 입장과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의 희망은 이 책의 목록에서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살았나 하는 것을 빨리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더 유식하게 살다 갔으면 하는 것이다.

9월의 첫날에..

휴~~~ 지난 밤에 예기치 않게 전기가 나가버렸다. 맑고 써늘한 밤에 전기가 나간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거의 2시간이 지난 다음에 돌아왔다. 날씨에 의해서 벼락같은 것이 치면 사실 몇 초 동안 깜빡 거리는 것이 보통이니까, 이것은 분명히 그런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99% 짐작에 바로 옆의 Roswell Road 확장 공사에 의한 것일 것이다. 4차선을 거의 8차선으로 확장하는 소위 말하는 Obama’s Economic Stimulus Project의 하나다. 그러니까 ‘공짜’로 연방정부에서 받아서 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local tax 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 정도의 큰 공사라서 분명히 지하로 뻗어있는 고압선을 옮겨야 하고.. 그러다가 앗차! 했을 것이다. 우리 집의 computer network system은 매우 ‘약한’ battery backup (UPS)으로 단전으로부터 보호되어 있다. 주로 잠깐 동안만(최대 10분 정도) 정전을 막아주는 것인데 2시간은 무리, 무리다. 아침에 보니까 network system이 엉망이 되어 있었고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몇 달처럼 무더위였으면 아마도 초저녁 잠을 설쳤을 것이지만 다행히 시원한 밤이었다.

9월 1일은 나의 아내 연숙의 생일이다. 나이를 세기는 이제 조금 재미가 없고 그저 우리 집 식구 4명 중 2명은 모두 1월 달에, 나머지 2명은 9월 달에 생일이 있다는 정도지만, 조금 재미있는 사실은 그 같은 달의 두 사람 생일의 날자 사이가 정확히 16일 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말 우연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었을 때는 조금 시끄럽게 보내야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일이란 것을 즐기는 줄 몰랐다. 너희도 나이가 조금 들어 봐라.. 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전에 비해서 조금 조용해진 편이고, 사실 조금 편한 기분이다. 그래도 서울에 계시는 처형께서는 꼭 전화를 주신다. 처형 댁도 모두 건강한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도해 본다.

얼마 전에 IKEA 에 가서 Tundra Laminate floor package 15개를 사왔다. 일층의 나머지를 모두 나무 마루로 끝내려는 계획이다. 물론 dining room으로 경험이 생겨서 조금 자신은 있지만 반대로 어떤 surprise가 나를 기다리는지 그것도 조금 걱정이 된다. 이런 일들은 언제나 꼭 예상치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방과 방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transition handling인데, 내가 pro가 아닌 이상 언제고 나를 괴롭힐 듯 하다.

 

9월은 식구 두 명의 생일도 있지만, 그 악몽의 9/11 terrorist attack 기념일이 버티고 있다. 정말 괴로운 기념일이다. 그렇다고 피하거나 생각을 안 할 수도 없고,사실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세월이 아직도 그것을 잊을 만큼 흐르지 않았다. 그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의 영혼들을 기억한다. 그 surreal한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또한 회교도들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 것인가.. 참, 정말 괴롭고 어려운 문제다.

9월 하면 생각나는 노래는 역시 Come September란 노래가 있다. 하지만 가슴에 더 와서 닿는 듯한 9월의 기분은 역시 패티 김의 “구월의 노래” 가 아닐까. 같은 노래를 혜은이도 불렀는데 역시 참 듣기 좋다. 아내 연숙이 대학시절 대학교 정문의 수위아저씨가 당신은 꼭 혜은이를 닮았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와 직접적으로 노래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간접적인 인연으로 들어 보았다.

Summer Office with Home Cloud

old office before moving
old office before moving

작은 딸, 나라니가 이사를 나가면서 방이 비게 되었다. 그 방은 동북쪽으로 창이 있는,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한 방이고 나의 전 office 보다 조금 더 넓다. 단점은 조금 어둡고 겨울에는 조금 더 춥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은 두 딸들이 얼마 동안(mostly during elementary school years) bunk bed를 놓고 같이 자던 bedroom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 6월초부터 방을 옮기기 시작해서 거의 한 달을 걸려서 끝이 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방을 옮겨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나이에 의해서 느려진 동작, 짐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 (이럴 때 많이 버려야 한다),6월 달의 ‘살인적’인 더위.. 등등으로 나름대로 핑계가 있다.

짐을 정리한 것은 단순히 책이나 서류 같은 것들을 내다 버린 것 이외에도 등치가 아주 큰 computer work desk 두 대를 해체하는 작업도 있었다. 이것은 particle board로 만든 정말 신경질 나게 무거운 monster급인데 disassemble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나 그것들을 garage로 옮기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 weightlifting이라도 가끔 해둔 것이 이럴 때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그것 두 대가 빠져나가니까 방들이 비교적 크게 보였다.

new 'lawyer' office
new ‘lawyer’ office

이래서 나의 new office는 정말 무슨 lawyer office같이 단정한 desk하나만 중앙에 놓인 그런 아담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monster tube(glass) monitor가 flat screen monitor로 바뀌어서 더 그런 것이 가능했다고나 할까. 3 unit book shelves, drawer chest, file drawer 그것이 전부가 되었다. desk를 벽에 붙이지 않으니까 computer wiring이 조금 문제가 되었다. 절대로 pc box를 desk 옆에 놓기 싫었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그렇고, fan의 소음도 그렇고, desk를 조금씩 옮길 때도 지장이 있다.

Desk 가 과히 넓지를 않아서 가급적 pc peripherals의 크기가 작으면 좋다. pc monitor는 이미 17″로 고정적이고 mouse도 마찬가지다. PS/2 connection도 거의 모두 usb로 대체가 되어서 과제는 조금 간단해 졌다. usb hub을 monitor뒤나 옆까지 끌어오면 된다. 그래서 이제까지 쓰던 ps/2 keyboard를 정말 small footprint usb keyboard로 바꾸었다. 이것은 정말 작아서 보통의 laptop keyboard보다 작다. 나머지 할 일은 video(VGA) 와 usb cabling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pc box에서 desk/monitor까지는 비교적 가깝지만 만일을 위해서 12′ 정도는 필요하다. usb의 경우는 이미 16′ active extension cable이 있어서 해결이 되었고, 문제는 long VGA cable인데.. 이번에 googling을 해보니 classic한 thick vga cable 외에도 impedance matching vga-to-CAT5 converter가 보였다. idea가 좋았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vga cable 대신에 Ethernet cable을 쓰는 것이다. pricing이 눈을 끌었다. $20~$30 range였다. high quality vga cable과 큰 차이가 없었고 cabling range도 보통 20’가 넘는다. Too good to be true.. 임에 분명 하지만 모험을 하는 셈 치고 order를 하고.. 써 보았는데, 역시 too good to be true ..였다. 문제는 connector가 너무나 motion sensitive한 것이다. 조금만 건드려도 video가 흔들렸다. 웬만하면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안되겠다 싶었다. 결국은 12′ classic thick vga cable을 쓰게 되었다. 이것은 예상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은 혹시 그 converter가 1280×1080이하의 resolution에서는 ok일까..하는 것이다. return하기 전에 한번 test를 해 보아야겠다.

kitchen Summer office
kitchen Summer office

이런 작업이 끝나고 새office에 앉아 보니 경치가 훨씬 좋았고, 조금은 덜 더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더워진 날씨에는 새 office도 마찬가지.. 2층 이라 더위를 피할 도리는 없다. 6월 달 거의 3주간 계속 최고온도가 95도(~35C?)였다. 이것은 조금 예상을 했던 것이다.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다. 평균온도를 유지하려면 이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피난을 간 곳이 역시 아래층의 kitchen이다. 그곳에는 먹을 것이 옆이 있고,밝고, pc/tv monitor가있다. 그러니까 TV도 볼 수 있고, home server에 있는 video를 볼 수도 있다.

현재 나의 laptop pc는 사실 prime time이 훨씬 지난, 그러니까 ‘고물’에 속한다. 나라니가 쓰던 것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겨우 1.5GHz/768MB 정도.. 겨우 mid-size video를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desktop replacement로는 사실 horsepower 가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good news는 이 정도면 소위 말하는network thin client로는 적격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client-server/remote desktop mode를 쓰는 것이다. 물론 network speed가 관건이지만 이미 우리 집은 이미 gigabit Ethernet network이 깔려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현재 우리 집에는 physical pc (laptop포함) 7대가 gigabit network에 연결되어서 돌고 있다. 그 중에 3대는 server closet에 있고 하나가 연숙의 office, 또 하나가 나의 office, 그리고 kitchen에 하나, 그리고 나의 mobile laptop이다. Server closet(at garage)에 있는 3대 pc server는 모두 VMware server 가 각종 virtual machine을 가지고 있다.

home server closet
home server closet

여기서 핵심은 이곳 virtual machine에 있다. 나는 99.9% 이 virtual pc를 main desktop pc로 쓰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도합 8대의 virtual machine이 항상 running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Asterisk pbx도 포함되어있다. 이 Asterisk pbx는 우리 집의 phone (including VOIP phones) 전체를 control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Microsoft Windows XP, English & Korean 이고, Ubuntu Linux도 있다. 그리고 각각 virtual pc는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email 전용이고, 어떤 것은 web browsing, 어떤 것은 download전용, media server, Photoshop editing 이런 식이다. 이런 approach의 특징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like malware, spam, worm, virus infection etc) 그 특정한 virtual pc를 지우고 다시 만들면 된다. 이것은 사실 요새 많이들 말하는 cloud computing과 다름이 없다. 다만 public이 아니고 private, home cloud인 것이다. 이 home cloud 덕분에 out-of-office에서도 별 문제없이 ‘같은’ computer를 쓸 수가 있게 되었다.

 

Snowing Atlanta

Cul-de-sac under wet snow

 

물기가 한껏 담긴 무거운 눈이 펄펄 내린다. 일 년에 한두 번 구경할 정도의 big event에 속하는 ‘눈’은 이곳에서 커다란 뉴스 깜이다. 이번의 눈은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다시금 느끼게 할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거의 정확한 양으로 내리고 있다. 

이른 오후 도서관에서 나올 무렵부터 앞이 안보일 정도로 내리기 시작해서 저녁 무렵에는 완전히 온 세상이 winter wonderland로 변했다. 이렇게 예쁘게 내린 것은 그리 흔치를 않았다. 기온이 아주 적당해서 차도는 차가 가는데 거의 지장이 없어서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이렇게만 내리면 눈을 운전 때문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밤 모두 얼어 버리면 내일 오전중은 차들이 아주 고생할 듯하다.

지난 주말부터 Midwest, Mid Atlantic에 최고기록의 엄청난 눈이 내려서 그야말로 난리더니 이번에는 이곳도 피할 수가 없는 모양. 그래서 현재 눈이 땅에 없는 state는 하와이 주밖에 없다고 할 정도이다. 이것도 global warming의 한 결과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눈이 오는 게 비가 오는 것 보다 구경하기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그런 감상에 젖는다.

 

Freezing Atlanta…

 

거의 2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면서 자주 ‘추운’겨울을 그리곤 했다. 그리곤 고국 부산의 겨울날씨를 이곳과 비교하기도 했다. 내가 부산에 살아 보지는 않았지만 듣기에 부산의 겨울은 눈이 일 년에 한번정도 내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겨울이 그랬다. ‘재수 좋으면’ 한번 정도 시원하게 내리곤 했으니까.

이번 주에 겪고 있는 이곳의 겨울은 부산이 아니라 서울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공식적인 기록은 아직 모르지만 아마도 계속해서 거의 일주일동안 계속되는 한파는 처음인 듯하다. 처음에는 밖에 주차가 된 차의 시동을 거는 게 귀찮은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니고 거의 괴로울 지경이다. 이곳의 따뜻한 날씨에 20년간 적응이 잘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그동안 잊고 살았던 두꺼운 스웨터를 다시 찾게도 되었다. 그리고 아~~ 겨울이 이랬지.. 하는 아득한 오래전의 ‘진짜’겨울을 생각케도 되었다. 어제는 급기야 눈까지 합세를 하였다. 많이 내린 것은 아니지만 길을 하얗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녹지도 않는다. 학교가 쉬게 되어서 밖에 나와서 우리 어렸을 적에 많이 보던 진짜 아이들의 모습으로 변했다. 썰매를 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크리스마스 전에 일어났다면 아주 멋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사실은 기분이 포근해지고.. 아주 감상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same ole, same ole..

똑같은 routine을 아침 마다 계속을 하고 있어서.. 나의 지론에 따르면 이것도 그렇게 바람 직 하지 않다.  시간을 더 빨리 가게 느끼기 할 테니까..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아침마다 창문을 다 열고 whole house fan을 돌리고, 부엌에 내려가서 dish washer를 비우고, 연숙의 영지버섯 준비하고, 나의 커피를 끓이고, 밖에 나가서 ‘중앙일보’를 pickup하고, garage의 문을 다 열고 (밤중에 절대로 식지를 않는다)… 아.. 내가 ‘칸트 Kant의 시계’처럼 되어가나..

지금 미국 South region을 덮고 있는 heat wave.. 아틀란타도 그 중에 한곳이지만 다른 곳은 더 심한 곳도 있단다.  거의 2주간 100도를 넘나드는데.. 아마도 기억에 이곳에 온후로 최악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래도 a/c로 견딘다고 하지만 정말 ‘눈물겹게’ 더위와 싸우는 이 monster machine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말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기계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도 이렇게 덥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모든 게 extreme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요새는 주로 일본드라마 속의 전원풍경을 보게 되는데  그곳이 그립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의 사랑하는 모국도 그런곳이 있었고, 있을 테니까.  그런 것을 다시 못보고 가는 것이 아닌가 가끔 생각도 한다.  아무런 ‘변화’나  ‘용단’이 없다면 그렇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지 않은가.

연숙에게 다음주에 열리는 성령세미나에 가라고 했다.  한참 고민을 하더니 아마도 결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우선 드는 비용에 신경이 더 쓰였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 믿는다.. 그곳에 쓰는 비용은 아마도 어떻게든 하느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을까.. (이것은 나의 생각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  덕분에 나도 짧으나마 ‘휴가’를 가지게 되리라.. 맞다.  이것도 나에게는 휴가이다.  필시 크게 쉬는 것은 없겠지만 이것도 routine 으로부터의 휴가이다.  나라니까지 토요일 날 캠퍼스로 들어간다.  완전히 ‘혼자’가 되는 ‘어른의 휴가’이다.

 

100+ Scorcher..

요새는 일본드라마 “어른들의 여름휴가”를 보며 조금 시원함을 느낀다.  아무래도 바닷가를 보니까 그렇겠지만 스토리도 아주 신선하다.  물론 주역들이 3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지만 나이든 중년들도 큰 몫을 꼭 한다.  그리고 더 보게 됨은 우습지만 거기에는 beach structures들의 frame들이 자세히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자꾸 보면서 우리 집 뒤에다 지을 backyard structure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생각을 한다.  보기에는 그렇게 간단히 보이는 게 왜 이다지도 나는 ‘실행’에 옮기지를 못하는 것일까?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무서운 맹 더위는 예상보다 더 무섭게 달아 오르고 있다.  이제는 뉴스거리가 되어버렸다.  에어컨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어찌하겠는가?  비록 $$을 써서라도 이렇게 그런대로 집안에서 버틸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면..  하지만 한심하다.  우선은 날씨에 무섭게 화가 나고 그렇게 어쩔 수 없는 것에 화가 나는 바보 같은 나에게 화가 나고..  새로니가 사는 워싱턴 DC도 여기 못지 않게 덥다고 한다.  정말 단 하나 밖에 없는 우리 지구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것일까.. 우울하다..  우리의 자식 세대들에게도.

이제 gutter는 front garage쪽만 빼고 다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로 안심을 하지는 않겠다.  이것이 몇 번 째 이던가…  유일한 위안은 절대로 녹슬지 않는다는 사실과 내가 절대적으로 혼자서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다 문제 투성이..  하지만 잘 손을 보면 큰 문제는 없을 듯.. 진짜 시험은 폭우가 올 때에 그런대로 견디는 것이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이시여..

무서운 열로 가득 찬 대기에 독 안의 든 쥐.. 무섭게 $$$를 빨아 드리며 거추장스러운 compressor/condenser로 열기를 빨아 내어도 역부족.. 우리의 a/c가 efficiency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사실 대기온도 100+에, 실내기온을 80로 유지하는 것은 열역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듯 하다.  예전에는 이럴 때 선조들은 어떻게 대처를 하였을까?   모기가 없는 건조한 숲 속에 가까이 흐르는 깨끗한 하천이나 개울.. 무릉도원은 어디에 있을까.  아.. 이제는 그런 것들이 다 가버린 것일까? 오늘은 자발적으로 일에서 손을 놓았다.  사실 그게 이런 날씨에는 크게 좋은 것은 아니다.  실내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더위를 바깥에 있을 때 보다 더 느낌을 나는 안다.  수시로 수돗물을 compressor와 deck으로 뿌리며 위안을 삼는다.  

아.. dotnetnuke..어떻게 하면 다시 jump start를 할 수 있을까?  결과가 어떻든 결말이나 결론은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