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udete Monday

어제로부터 넘어온 잔광 殘光…  어제, 대림3주일의 시작에 새삼 느꼈던 여러 가지 밝고 새롭고 새삼스럽고 들뜨고 반갑고 기쁘기까지 했던 일들이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사람이란 생물은 이렇게 쉽게 건강의 느낌이 쉽게 변하는 것인가? 비록 느낌이라도 좋다. 그것이 현재 나의 상태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Have You Found Joy? — Bishop Barron’s Sunday Sermon 

어제 깜빡 하고 지나친 Bishop BarronGaudete Sunday Sermon Youtube video를 본다. 벌써 100,000 views 를 향하고[결국 137,000 views] 있는 대림3주일강론, 변화무쌍하게 재빠르게 변하는 연약한 인간들에게 안 변하는 것, 그것을 거의 하루 종일 잊고 어쩌면 나의 현재 일상 경험을 그대로 분석, 묵상을 하는 착각에 빠진다. 하루 하루의 심리적 감정적 up & down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그런 순간적, 시간적 변화무쌍한 지나가는 생각들에 집착, 고민, 절망을 피하며 살 것인가? 역시 기도, 기도 란 쉽지 않은 주문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없는 일상의 쪼잔한 고민들은 절대로 없어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 이 강론은 내가 계속 듣고 실천해야 할 것 같다. 기도, 기도, 기도, 진심의 간절한 기도…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두고, 두고… 이것은 현재 내가 지나가고 있는 생활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치료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일 듯하다. 중심, 중심에서 멀어진 나의 모습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나의 병이다.

어제의 ‘대림3주일 기쁨의 주일 Gaudete Sunday’의 힘으로 이번 주를 기쁘게 살고 싶다. 기쁘게, 고민이 있거나 괴로워도 기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순간 순간을 기쁨이 넘치는 느낌을 갖고 싶은 것이다. 슬픔 보다는 기쁨을 친구로 삼고 싶다. 들뜨고 싶다. 사람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나를 친절하게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약간 취하고 싶다. 멋진 추억거리를 잊기 전에 기억하고 싶다. 멋진 대림, 성탄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안팎에서 마시고 싶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

오늘도 지나가는 해를 정리하며 더 남기고 싶은 나의 저무는 생의 기록을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이런 작업에 익숙해져서 전보다 훨씬 쉬워졌기에 12월을 보내는 적당한 소일거리가 되어간다. 감사할 일이다. 거의 아무도 안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공적’인 기록의 고마움을 어느 누가 알겠는가?

 

뜻밖의 5일간 자가격리에서 벗어난 이후, 정확히 2주 만에 둘이서 다시 하게 된 동네 산책, ‘오늘도~ 걷는다마는~’. 제일 짧은 코스를 택했다. 바람이 없고 싸늘한 느낌이 좋았다. 2주 전보다 훨씬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많아지고 요란해졌다. 열흘 남짓한 성탄, 올해도 급속하게 저물어간다. 어떻게 성탄, 새해를 맞을 것인가? 다음 주에는 우리의 ‘날개’를 향한 거의 마지막 목표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한다. 이렇게, 올해는 참 상징적인 일을 많이 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불현듯 이영석 신부님에게 안부 소식을 전했다가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응급실에서 답을 주신다. 얼마나 자상한 목자인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나에게까지 시간을 할애한 자상함, 나는 그것이 그저 감사한 것이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듯, 꿰매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한창 목회, 연구, 강의를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어머님에게 거의 모든 시간을 쏟는 모습에 감동을 안 받을 수가 있는가?

Three Candles, Gaudete Sunday…

대림3주일의 주일을 맞고 시작한다. 성탄까지 벌써 보름도 안 남았다.  부담 반, 기대 반으로 맞은 대림3주 주일, 일단 모든 행사가 끝났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지만 뒤끝 맛이 조금 미완성인 듯한 것은? 아마도 오늘 주일날 행사의 마지막인 등대회 송년점심 후의 coffee time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그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며 이야기하고 coffee를 마시고 싶었던 것은,  사실 조금 나 답지 않다. 오늘의 등대회 모임, 점심은 나의 기대를 초월한 것이기에 그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오늘 본 회원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이심전심, 피장파장으로 그들도 마찬가지였음을 느낀다. 역시 인간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진리중의 진리를 확인한다.  Pandemic 고립된 생활을 하던 나에게 오늘의 모임은 거의 생명수를 마시는 기회가 되었다. 아~ 그래,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 모임에서 구동욱 미카엘 신부님의 옆에 앉게 된 기회를 얻었다. 가까이서 대화까지 하며 느낀 신부님은 이제까지 내가 그렇게 인색하게 평가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 개인적으로도 사귈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충분히 나에게도 더 사귈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오늘 등대회 모임의 다른 수확이었다.

오늘 구 신부님에게 직접 들었던 새로운 사실은: 역시 전임 이영석 요한 신부님은 개인사정으로 일찍 이임하신 것이었다. Pandemic하의 본당 사목의 특별했던 어려움과, 가중되는 어머님 병세에 대한 걱정, 그것들이 주원인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추측했던 것, 서강대학의 교수직이 주원인은 아니었던 듯 싶다. 또한 이재욱 요한 신부님이 1년 전에 담배를 끊으셨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었다. 다시 한번 이 신부님의 ‘실로 어려운’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 그렇지…  못지않은 애연가인 이영석 신부님도 마찬가지로 금연의 결단을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주일미사, 일주일 만에 재회를 한 아가다 모녀, 너무나 반가웠다. 이분들과도 이제는 정이 들었음을 느낀다. 특별한 정이 아닌 자연스런 정이다. 오늘 또 알게 된 사실은… 아가다 자매, 여건에 따라서 말씀을 잘 하실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희망이 생긴다, 앞으로 더 ‘유도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과 더불어 안나 자매를 한일관 등대회 모임에서 또 만나는 재미있는 날이 되었다. 임시로 그곳에서 serve를 한 것이다. 참 재미있는 날이 아닌가?

Fear of Silence, Old Friends Reunited…

오랜만에 아무런 ‘소리, 잡음’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무의식 중에 생각도 없이 무슨 소리를 듣거나[대부분 음악] screen 영상을 보거나[대부분 영화 video] 하는 나쁜 버릇이 사실 거슬리던 차에 용감하게 몇 시간 소리의 침묵 시간을 만든 것이다. 이런 때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는 것,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절감한다. 평소에 왜 이렇게 못하고 사는 것일까? 불안하기 때문인 것인가? 외로워서 그런 것일까? 차분히 눈, 귀, 머리에 간섭을 안 받는 사실이 불안하고 외로운 것, 바로 그것이다. 요새 돌아가는 사회생활이 그런 식이다. 간섭을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그것이 일순간에 사라지면 불안한 것이다. 나도 그것의 피해자의 한 사람인 것, 왜 몰랐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어떻게 이것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읽는 James Martin 책들: 그 중에서 JESUS, PRAY, JESUIT GUIDE 모두 모두 좋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이 신부님의 engaging하는 친근한 서술방식은 가히 일품중의 일품이다. 해박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point가 아니다. 그것을 완전히 소화한 후 친구와 말하듯 유머러스 하고 겸손한 자세로 쓴 글, 어떻게 나도?

 

오늘은 backyard쪽이 보이는 부엌창문 위쪽에 소박하지만 밝디밝은 포도송이 light 3개를 달았다. 물론 연숙의 작업이었다. 우리 ‘골목, cul-de-sac’이 올해는 왜 이렇게 조용할까? 한 사람도 ‘번쩍이는 장식’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제일 빠르게, 비록 밖에서 보이는 실내 장식이지만… 오늘 중에 밖의 장식도 할 생각인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일 빠르게 하는 것인가? 앞집 Josh집은 숫제 껌껌한 모습, 아마도 vacation을 간 듯하고, 옆집 Dave도 너무나 인기척이 없고, Mrs. Day 아줌마 집도 밖으로 비치는 불빛이 안 보이고… 왜 이렇게 올해는 작년과 다른가…

요란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아~ 비가 왔구나, 어제의 일기예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꿈꾸듯 들었기에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어나 밖을 보니 모두 젖어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빠르게 지나간 폭우였다. 조금 더 지연되었으면 남아있는 나무 잎들이 모조리 떨어질 듯… 아니~ 이미 다 떨어졌는지도… 밖의 모습이 황량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날이 될까? 깜깜한 저녁 8시에 혼자 차를 타고30분간  freeway를 달려 Buford Hwy 한식당에서, 식사까지.. Pandemic은 물론이고 지난 주 자가격리에서 나온 직후라 이런 외출이 익숙지를 않아서 심적으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밤에 운전을 하는 것,  이제는 익숙지 않다. 언제부터 그렇게 이상하고 겁을 내는 나를 보는가?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는 없다. 같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나이’, 가끔 생각한다. 언제까지 나는 혼자서 밤에 마음대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

하지만 2년 이상이나 못 보고 살았던, 모르게 정이 들었던  ‘목요회 친구’들과 모이는 것은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처음 재상봉 再相逢을 했던 2017년 9월의 추억이 이제는 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들과의 인연은 잊지 않는다. 다만 Pandemic으로 생각만큼 그들과 더 가까워지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문제는 앞으로 앞으로 어떻게 사귀거나, 친교를 할 것이고 이들은 남은 인생에서 나에게 어떤 사람들로 남게 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오늘의 모임은 정말 놀랍게도, 기대 이상으로 반갑고 즐거운 느낌으로 끝이 났다…  우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 모든 의미를 둔다. S형제의 놀라운 변신은 나를 놀라게 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2년 동안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제일 큰 것들을 가까이 앉아서 나누는 그 자체가 오늘 모임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의 재회를 기념하며 다음 달부터는 정기적으로 모일 것을 기약하며…  비교적 조용해진 I-285의 깜깜한 밤을 가로지르는 느낌,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Mea Culpa, Second Candle of Advent

 

Mea Culpa~~오늘 대림2주일 주일미사를 빠지는 것, 결국은 미안함을 넘어서 죄의식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사 중이나, 자매님들과 coffee를 마시는 자리에서 기침하거나 콧물 흐르는 것을 보이는 것 보기가 좋을까?  하지만 나의 깊은 속의 목소리는 “웃기지 마라, 그래도 기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 너도 잘 알지?” 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 모두 맞는 말이다.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책임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아직도 기침, 콧물이 나오지만 목이 아픈 것은 많이 가라앉은 듯하다. 가래가 고이는 듯하고.. 이것은 거의 나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 감기에서는 열이 전혀 나지를 않았고 딴 때보다 심하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flu shot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유일한 위로는: daycare에 다니는 손자녀석을 자주 보는 것, 그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 피할 수가 없다.

 

Sea of Fallen Leaves… 어둠이 걷히는 backyard는 완전히 낙엽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90% 이상의 낙엽이 떨어진 듯하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제일 건강했던 것들이 마지막 폭풍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면 올 가을은…

 

Curse of  Insomnia~~ 연숙 혼자서 미사에 갈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했지만 역시 또 다른 그녀의 고민, 불면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나는 은근히 혼자라도 미사에 가기를 원했는데… 모처럼 일요일 아침 시간을 혼자서 ‘중단됨 없이’ 보내려는 나의 희망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못 보고 지나간 ‘성당 대림절 묵상집’을 보려고 하니 ‘왕마귀’의 냄새가 나는 ‘글 장난’을 보고 소책자를 덮어 버리고, 서고 깊숙이 넣어 놓았다. 아예 Bishop Barron의 대림 묵상글을 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성모님을 슬프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 주일, 그것도 대림2주 주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미사까지 완전히 빠지면서, 조금 심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중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미루고 있었던 숙제 같은 것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을지도.. 이런 때,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미적거리는 나의 병신 같은 모습이 싫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의 회의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와 순교자 성당 공동체의 관계로 초점이 맞춰진다. 나에게 이 공동체는 무엇인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인가?

오늘 나를 찾아온 악마의 제자는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현재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연연하고 있는가. 다 때려치우고 나와 버려라…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는 것이 제일 상책이 아니냐… 너의 나이가 도대체 몇인데  밀리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 집에서 좋은 책을 보는 것이 훨씬 영성적 차원을 높이는 것 아니냐? 인터넷으로 미사를 보면 얼마나 편하냐? 왜 사람들에게 연연하느냐?”

복잡하고 스산한 느낌을 떨쳐버리려고 다시 올해 지나간 daily journal을 훑어본다. 올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 다시 회상하는 것, 이것의 효과는 대단하다. 거의 치료제역할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잔잔하게 해주고 심지어 행복한 상상으로 편하게 된다. 그러면 됐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Canadian Mist, 요즈음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시고 있다는 것. 다시 나가서 사올 용기는 없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을 Johnny Walker Black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지… 그래 그때까지는 Thanksgiving 때의 Box wine이 backup으로 있으니… 의지력을 시험해 볼 양으로 위스키 술병을 아예 dining room cabinet속에 넣어버렸다. 이제 가까이 손에 닿는 곳에 없으니 조금은 유혹을 덜 받으려나~~ 

 

NOT DETECTED, Out of Self-Quarantine!

NOT DETECTED! 어제 저녁에는 아예 일찍 nighttime Theraflu를 먹고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별 도리가 없이 9시가 지나서 잠자리로 후퇴를 했다. 그런대로 잠은 잘 잤고, 조금 덜 괴롭히는 목의 통증에 감사하며 제시간에 일어났다. 기침은 고만고만한 정도인가~ 하지만 일어나서 보니 text message가 ‘벌써’ Viral Solution에서 와 있었다. 오늘 중에 올 것은 알았지만 빠르게 온 것이다. 약간 긴장을 안 할 수는 없었지만 ‘설마’로 위로하며 보니 ‘NEGATIVE’라는 말 대신 ‘NOT DETECTED’ 만 덩그러니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공식’ 용어인지도… 좌우지간 문제가 없는 것…   이렇게 간단히 모든 것이 끝이 났는가? 조금 싱겁기까지 한데… 혹시 애초부터 Luke의 COVID test가 FALSE POSITIVE는 아니었을까? 절대로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모든 것, 끝이 났고 유익한 경험을 한 셈치면 된다. 이로써 5일간의 ‘자택 연금’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비록 COVID scare는 우리로부터 사라졌지만 계속되는 기침감기를 이유로 결국 내일 대림2주일 미사를 쉬기로 마음을 먹었고 연숙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혼자라도 갈지 모른다는 여운을 띄운다. 무리 무리 무리.. 나에게는…

 

올해 Christmas tree는 기록적으로 일찍 제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전에 첫 모습 뒤에 계속 ornament와 light들이 더해진 모습이, 밤에 보니 휘황찬란하기까지 하다. 축 늘어진 기분을 조금이라도 들뜨게 하는데 큰 몫을 하리라 기대한다. 남모르게 수고한 연숙에게도 감사를 하며…

 

Self-Quarantine Day 4, COVID-TEST

자가격리 4일째를 맞는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모두 감기증상을 가지고 있고 나는 점점 심해지는 듯하니…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 오늘 Test가 모든 것을 해결하긴 하겠고, 물론 우리는 negative로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오늘 일어나면서 기침, 콧물과 싸운다. 다행히 열은 안 나는 듯한 것이 다행이다. 언제까지 갈 것인지… 조금 괴롭다.

예정대로 오늘 오전에 집에서 가까운 곳, United Methodist Church parking lot(on Roswell Road) 에서 차에 앉은 채 편하게 COVID test 를 받았다. 결과는 24시간 내에 text message로 보내준다고.. Insurance information을 요구하는 것은 의외였다. 없는 사람은 어쩌란 소린가? 아마도 Insurance 가 없으면 government로부터 비용을 받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24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나이와 비례해서 더 알기에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을 가며 서서히 올해를 정리할 때가 오는 듯싶다. 물론 나는 daily journal 덕분에 그런대로 하루하루를 반성하고 기록하며 살았지만 일년 전체를 먼 곳에서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을 오늘부터 서서히 시작하는 것, 정말 멋진 idea다. 두뇌운동도 되고…  지난 2월과 3월의 blog post가 하나도 없는 것, 놀랍기만 하다. 왜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살았던가? 그래도 daily journal과 smart phone에 사진들이 남아있으니 소설을 쓰는 기분으로 멋진 작품을 남기는 것도 이즈음에 가장 알맞은 일이 되지 않을까?

Self-Quarantine, Day 3

자가 격리 3일 째, 갑자기 집에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사실에 조금 들뜨고 심지어 신선하게도 느껴졌지만 그것이 그렇게 오래 갈까…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심란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10년 간 가까이 놓고 읽고, 품고 살았던 각종 책들 대부분을 desk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아 제목이 눈에 보이게 하고 추억과 명상에 잠기는 사치까지 맛보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자연적으로 저절로 풀려나갈 것이다.

 

초가을 같이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오늘, 내일 어떻게 자제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사람과 거리를 두며 둘이서 산책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안다. 아마도 오늘 우리 둘은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Sope Creek에서 힘찬 냇물을 소리와 모습을 가까이 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일단 내일 COVID test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모레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면 하루 연기하는 것도…

오늘의 기쁜 소식들 중에는 나라니와 로난이 COVID test에서 negative가 나왔다는 것과 COVID positive 인 Luke가 훨씬 나아지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의 test만 신경을 쓰면 될 듯하다. 문제는 내가 점점 감기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침이 심해지고 콧물까지… 이것은 분명히 연숙으로부터 온 것 같다. 이제 나도 감기, 독감 등에 자신이 없어진다. 예전에는 정말 이런 것들 모르고 살았는데… 왜 그럴까?

Self-Quarantine Day 2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예 night time Theraflu를 먹고 잤다. 목이 뜨끔거리는 것을 조금 피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어도 목이 불편한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소금물 양치를 안 하고 잔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지만, 그래도 일어날 즈음에는 조금 나아지고 있다. 역시 연숙이 먼저 겪던 이것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는 그렇게 생소하던 ‘잔 감기, 독감’ 에서 피할 수 없는 나이 든 인간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현재의 ‘자가 격리’ 중에 COVID 걱정에 비하면 이런 것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따뜻한 날씨가 느껴지는 self-quarantine 2일째, 무의식적으로 산책 생각을 하는 우리들, 내가 십자가를 지고 자제하자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칩거 蟄居 5일’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사람만 피할 각오를 하고 외출, 산책을 하려는 유혹을 느끼지만… 그래 이런 기회에 아주 푹~ 쉬자는 더 현명한 유혹에 승복을 하기로 한다. 세상이 조용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이… 아~ Internet 이란 놈은 어쩔 수가 없으니… 그것도 사실 자제하면 된다. 오히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책’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2010년대부터 나의 관심대상 제1위를 자랑하는 ‘Science & Faith, Spirituality,  Religion’ 분야, 그쪽으로 하나 둘 씩 읽었던 책들을 년도 별로 분류해서 desk 옆, 나의 눈앞에 보이게 놓아 보았다. 와~ 이것도 이제는 추억이 아롱진 유물로 변하고 있구나… 책 하나 하나에 그것을 사고, 읽었던 각종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아롱아롱 남게 된 것이다. 특히 2012~16년 즈음 것들은 죽을 때까지 잊는 것이 불가능, 아니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올해 holiday decoration, tree 등은 파격적으로 일찍 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자연스럽게, ‘일찍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엄숙한 대림절도 중요하지만 올해는 그것보다 ‘들뜬 기다림’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New York의 tree lighting도 이미 시작되었고 바티칸 광장의 것은 12월 10일임을 알게 되어서… 지금 하는 것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예년 같으면 벌써 했을 듯한 앞집 Josh나 옆집 Dave 집은 의외로 아직도 조용하다. 며칠 전 산책 중에서 몇 집은 이미 시작을 한 것도 보았다. 오늘은 연숙이 혼자서 작고 귀여운 tree를 세워놓았다. 작년보다 led light의 수를 배로 늘렸기에 정말 멋지게 보인다. 이제는 집 앞의 bush를 따라서 icicle만 설치하면 또 다른 대림, 성탄의 시즌을 눈으로…

Self-Quarantine, Our Own

Downtown Federal Court에 가느라 Google Map과 씨름을 하던 것이 벌써 열흘이 넘어가니… 그 당시에는 온 신경을 그곳에 가는 것에 쏟았는데 이제는 그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으니… 세상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나도 변하고 있을 것인데 도대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변화는 진화인가, 퇴화인가… 진화라고 보면 어디까지 변하는 진화인가? 결국은 궁극적인 때와 곳에는 역시 절대자, 우리는 그것이 오메가라는 초월적인 그 무엇, 예수가 바로 그 오메가? 샤르댕의 얼굴이 떠오르는 새벽 한때…

모처럼 오늘은 새로니, 유나, Ozzie가 ‘놀러’오는 날이다. 이런 ‘놀러’오는 날은 유나 baby-sitting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지금은 거의 놀러 오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전처럼 큰 지장이나 변화를 안 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긴 하지만 식사하는 것, 산책하는 것 등을 생각하면 그렇게 편한 날만은 아니다. 그래도, 그래도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움직이며 살고 싶은 것이다.

Ozzie와 오늘은 Sope Creek trail을 포함해서 walking과  hiking으로 거의 2시간을 보냈다. 급경사의 creek gorge 를 단숨에 뛰어오르는 녀석을 보며, 아직도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힘이 있을까? 전에 Tobey도 큰 문제 없이 잘 걸었지만 거의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라서 수명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렇게 pet dog & cat들의 ‘그날’을 생각하면 괴로울 정도로 슬픈 것, 나만 그런 것일까? 내가 유난한 것일까? 솔직히 사람보다 말 못하는 이 녀석들과의 이별이 더 슬픈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대림절, 어떻게 보낼 것인가? 4주 정도의 이 짧은 기간, 이제까지 거의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낸 것,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경건하거나 너무 축제분위기도 그렇고, 아주 묘한 기간이다. 너무 경건하지도 않고 너무 들뜬 분위기도 아닌 딱 중간은 어떤 것인가? 적당히 성탄 트리 장식도 하고, holiday movie를 보며, 매일미사와 대림 묵상글 등의 영적 묵상, 독서를 하는 것, 그것이 전부일 듯하다. 올해는 몇 년간 뜸했던 크리스마스 영화를 더 보고 싶기도 하다.

 

날벼락, 날벼락, 이것이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닌가? Luke가 COVID positive라고? 며칠 동안 피곤하고 아픈 것이 그것이라는 이유라니~ 그렇게 강 건너 불처럼 느껴지던 것이 손끝까지 다가온 느낌이다. 우선 떠오르는 것, 나부터, booster shot까지 맞았다는 사실, 연숙도 마찬가지.. 일단 우리는 걱정대상에서 제외하고 싶다. 다음은, 새로니네 가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새로니는 극도로 조심을 하니까… 오늘도 소식을 듣자마자 걱정스런 얼굴로 돌아갔다. 다음은 나라니와 로난이다. 일단 negative라고 나왔으니 조금 안심이고, 로난은 미지수다. 허~ 결국 강 건너 불이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지는 대림절의 하루를 맞는다. 성모님, 아기 예수님 자비를 …

점심은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작은 술잔을 계속 기울인다. Canadian Mist 거의 반이 날라갔다. 그렇다고 기분 좋게 취한 것도 아니고..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로 끝나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사실 COVID test같은 것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것임을 깨닫기에 조금 마음의 안정을 취한다. 우선 이번 금요일 이후에 test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음 단계의 대응책이다.  TEST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심하며 집에 있으면 된다. 이것이 self-quarantine,  조시몬 형제가 서울에 갈 때마다 자주 불평 아닌 불평을 하던 그 ‘자가격리’라는 것인가? 이제야 이 코로나의 무게를 느끼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First Sunday of Advent 2021

드디어 2021년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의 첫날이 밝아왔다. 대림절은 성탄의 기적을 기다리는 4주간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완전히 축제의 시간들이 그려지고 요즈음은 교회도 조금 ‘기를 피려는지’ 세속의 축제분위기를 예전보다 일찍 받아들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도 조금 발을 맞추어 축제분위기를 조금씩 지나치지 않게 느끼며 살고 싶다. 트리 장식부터 시작해서 carol, holiday movie같은 것에도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살면 어떨까… 그것이 사실은 어릴 적을 추억이기도 하니까…

성당 제대 아래는 대림환에 4개의 촛불이 세워지고 첫 번째 촛불에 불이 켜졌다. 기대 보다 훨씬 격조, 수준 높은 구동욱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대림절 주일 강론, 대림절 시작을 멋지게 장식을 한 셈이다. 거의 생각 없이 지낸 지난 며칠이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대림절의 진정한 의미를 신부님이 멋지게 정리해 주신 셈이어서 대림절 첫 주일날 아침이 훨씬 밝게 느껴진다.

2000여 년 전에 오신 구세주, 앞으로 ‘꼭’ 오실 구세주..  매일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피부로 느끼며 살고 싶은 때가 바로 대림절이라면… 조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앞으로 4주를 보내야 할 지 그림이 그려진다. 순간 순간, 매일 매일, 매주 매주… 어떻게 그 구세주 초월적인 우주적 절대 존재와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다.

본격적으로 모든 소공동체와 활동들을 open하려는 신부님의 결정이 며칠 전부터 퍼지는COVID Omicron variant로 조금 찬물을 맞는 듯하다. 누가 결정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나이 든 신자들에게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이런 때에 ‘운’, ‘은총’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만의 ‘성당 소그룹’이 ‘하얀풍차’에서 coffee, bakery & talk으로 값진 시간을 보냈다. 비록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social 이 일주일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 다행이고 행운이다. 이런 때에 이렇게라도 작은 그룹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것도 ‘脫 레지오’ 이후 성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은 길’ 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작은 사위 Luke의 40세 생일이다. 전부터 나의 40세 생일을 기억하며, big four oh~ 를 그에게 말하곤 했는데 오늘 집으로 찾아가서 보니 나와 40세의 느낌이 다른 듯 보였다. 별 감정이 없이 보인 것, 이것도 30년 세월의 세대차이가 아닐까? 나의 40세와 그의 40세는 정말 다른 모양이다. 나의 40세와 44세의 생일들은 사실 ‘죽을 사 자 死字’ 에 관심을 쏟은 운명적인 나이였지만 지금은 아마도 60세가 되어야 ‘조금 나이를 먹었다’ 정도가 아닐지. 

그들 부부는 오늘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하려고 계획을 했던 모양인데 나라니가 각종 감기 바이러스 탓으로 오늘 완전히 계획했던 것을 취소하고, Ronan을 우리가 오늘 하루 집으로 데려와서 봐 주기로 했다. 개구쟁이지만, 오늘은 조금 점잖은 모습의 그 녀석, 2살을 향한 시점이 이런 것인지… 녀석이 순순히 우리 차에 오르며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따라 온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 나는 점점 잔 정 情이 느껴지는 듯하니, 나도 지독한 목석의 심장 소유자인 모양이다.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나라니 부부는 편하게 Buford Hwy에 있는 한국식당[이름을 잊었다~, 나의 망각증.. 만천홍 옆에 있는 비싼 한국식당이름이… 알았다! ‘운암정’이다!  ] 에서 생일축하 외식을 했다고..  우리는 로난을 집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다. 이것으로 Luke에게 작은 생일선물은 한 셈이라, 우리도 무척 기뻤다.

Dave & Ava를 좋아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다리던 소식, 건주의 wife 황인희씨로부터의 카톡 text 다. 내용은 조금 아쉽게 간단한 것,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나에게 소식을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크게 값지게 생각을 하고 싶다. 1968년 한창 대학시절 친목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여대생, 친구인 건주와 짝이 될 줄은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은 부부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백년해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stroke,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중풍’, 결과는 신체의 마비 상태인 것을 누가 모르랴. 어떤 곳에 어는 정도인가가 문제다. 건주의 case, 아직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wheelchair,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태가 아주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다. 갑자기 이 stroke 의 위험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만 생각했지 두뇌의 혈관은 잊고 산 것이다. 혈관, 어떻게 피가 부드럽게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혈관의 건강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아~ 참 나이의 횡포는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대림절의 시작을 Catholic Sunday 전통을 지키려 나의 작은 등대 Bishop Robert Barron [Los Angeles Diocese] 주교의 주일강론을 보며 듣는다. 이 ‘머리 좋은’ 신부님은 현재 미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인터넷 신부님’이고 특히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인도하는 선구자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 같은 ‘꼰대’층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특히 no dumbed-down religion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으로 가톨릭의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본다.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도 2021년 대림절 묵상집 소책자를 발간 배포를 해서 가지고 왔다. 이것으로 성탄을 향한 묵상의 한 걸음을 내디디는 오늘은 은총의First Sunday of Advent 가 되었다.

 

Bishop Barron on YouTube on Sunday

Stroke Scare, Omicron, Biocentrism

Stroke, 뇌출혈, 중풍… 허~~우려한 것이 현실로 밝혀졌다. Wikipedia에는 stroke 설명을 이렇게 시작한다.

“A stroke is a medical condition in which poor blood flow to the brain causes cell death.” 

건주가 뇌출혈로 현재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교성이 알려준 것이다. 건주가 김원규와 가까운 사이인 것을 알고 교성이에게 도움을 청한 것인데, 솔직히 이렇게 빨리 소식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교성이의 현재 건강상태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준 것은 고마운데, 건주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무척 답답하고 놀라울 뿐이다. 그저 건주는 산속의 도사, 건강생활의 모범적인 case로만 생각을 한 나로서는 황당한 것이다. 녀석이 분명히 건강에 유의하며 살았을 것인 것을 보면 이 stroke는 아무에게나 불현듯 오는 그런 무시무시한 것인가? 하기야 그렇게 건강하게 보였던 우리 성당의 서 토마스 형제도 갑자기 그것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던가? 무엇이 stroke를 그렇게 무섭게 만드는 것일까? 궁금한 것이 후유증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 그것을 알고 싶은데…

건주는 지난  8월 중순경에 뇌출혈로 입원했고, 현재 집에서 재활치료, 휠체어를 타고 있고, 언어기능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알게 된 소식의 전부였다. 대강 그림은 그려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후유증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뇌출혈, stroke,이것은 너무도 귀에 익은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가까이 왔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심장마비와는 또 다른 것 아닌가? 혈관, 특히 뇌혈관, 그것인데… 그것은 어떻게 방지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혈관, 혈관, 고혈압… 건주는 누가 보아도 건강한 삶을 살았을 듯 한데, 그런 것도 도움이 안 된다면… 허~ 중풍이란 것이었다. 반신불수, 실어증.. 각종 모습이 조금씩 머리에 그려진다. 건주가 언어장애, 휠체어의 상태라면 재활치료의 효과는 어는 정도일까?  말은 못해도 keyboard나 phone정도는 쓸 수 있을 터인데… 알 수가 없구나…

OMICRON variant? 코로나 변종 Delta Variant 같은 것인가. 어제부터 모든 media outlet에서 요란하게 보도를 한다. 이것의 심각성 때문인가? 이제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이 이미 변했다는 한숨과 함께 누가 말했듯이 감기, 독감, 매년에 겪는 것 정도로 생각하자고… 건강보다는 경제, 나아가서 정치적인 영향이 솔직히 더 걱정이 된다.

목감기 초기증상이 거의 끝나가는 연숙, 오늘까지 쉬기로 해서 나 혼자서 산책 course No. 1을 빨리 걸었다. 하지만 주 관심은 역시 Sope Creek쪽이었다. 무슨 탐험을 하는 사람 같은 호기심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 살 때, 남쪽으로 보이는 관악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그 뒤의 아득한 산들 뒤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하던 그런 막연한 호기심이 아직도 나에게 있는가. 새로 발견된 이 개울, 이제는 내가 제일 가고 싶은 산책로로 변하고 있다.

내일이 가톨릭교회의 새해, 대림절 시작임을 얼마 전부터 달력에서 보고 있었다. 또한 성탄시기를 기다리는 첫 날이기에 조금 기분이 들뜨는 것도 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때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것도 기억을 한다. 올해는 어떻게 보낼까… 차분한 것보다는 들뜨게 기쁜 시간들이 되면 좋지 않을까? 경건하고 엄숙한 것도 좋지만 James Martin 신부님 말대로 기쁘고 즐겁고 유쾌한 것도 병행을 하는 방법은 없을까? 

 

Robert Lanza의 Biocentrism series 제2권 BEYOND BIOCENTRISM을 ‘두 번째’로 읽고 있다. 벌써 5일째가 되었고 Chapter 6를 읽는다. Biocentrism의 주제와 본론이 무엇인지는 Vol 1으로 이미 어렴풋이 짐작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꼭 내가 동의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설마, 설마’ 정도인 것이다.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는 하지만, 이것은 조금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consciousness가 reality에 영향을 주는, 아니 더 나아가서 reality를 만들어내는 physical experiment, mechanism은 여전히 나를 ‘열광’케 한다. 열광… 이것이 바로 science 와 religion를 연결해 주는 신비의 열쇠인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바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나의 원대한 꿈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오늘 BEYOND BIOCENTRISM을 읽으며 한가지 특별한 일을 시작하였다. 남들이 알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오늘 정말 정말 오랜 전통을 깨고 책 속에다 나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흔한 underline으로 시작해서 모르는 단어 뜻을 사전에서 찾아 남기는 것. 앞으로는 아예 comment도 자유롭게 남길 것이다. 왜 이것을 가지고 유난을 떠는 것인가?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산 책에 흔적을 안 남기고 살았는데 이유가 모호하다. 기억이 난다면.. 혹시 이 책을 다시 Amazon에 팔기 위해서? 아마 아닐 것이다. 그저 깨끗한 책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가끔 나의 comment 를 남기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나는 경직된 사람이었는지도… 이제는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처럼 마음껏 마음껏 글자와 흔적을 남길 것이다. 누가 보던 말던…

 

사온 지 3일만에 나의 winter classic Canadian Mist가 1/4  이상이나 consume 되었다. 예년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없어지는데.. 그때와 다른 것이 ‘홀짝홀짝’ 조금씩 마시는 것이 아니라 western cowboy movie에서 보듯이 조그만 컵을 한숨에 마셔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없어질 수밖에… 이것으로  온 겨울을 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었다. 그래 비싼 것이 아니니까..  필요하면 또 사면 되지 않겠는가? 최근에 들어서 왜 그렇게 ‘취하고 싶은’ 지… 문제는 ‘심각하게’ 적당히 취하는 것이다. 적당히, 알맞게, 온건하게, 즐기며, 추억하며, 상상하며, 백일몽을 꾸며… 그것이 남은 인생에서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Two-some Thanksgiving 2021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오늘은 7시경에 일어났지만 평소의 routine을 모두 미루고 곧바로 holiday feeling에 젖어보고 싶었다. TV에서는 Macy’s Parade의 모습을 기다리고, 어제 사온 Canadian Mist의 맛을 보며 못한 인사들 카톡으로 몇 군데 보냈다. 이영석 신부님에게도… [그분은 이곳 감사절을 두 번 경험했을 것, 거의 기억이 없었을 듯] 올해 내가 이 ‘오랜 명절’을 즐기는 모습은 내가 보아도 ‘변했다’ 라고 할 것이다. 50년에 가까운 이날의 추억 중에서 제일 추억다운 추억을 ‘일부러’ 만들려고 기를 쓰는 나의 모습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감사하는 것이 감사한 인생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올해는 정말 감사할 것들을 itemize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감사목록을 만들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올해는 감사목록에 들어갈 것들이 적지 않으니, 결사적으로 기억하고, 추억하고, 남기자.

오늘은 오전 중에는 Macy’s Parade에 눈길을 돌리고 내가 공언을 했던 대로 늦은 점심 holiday meal을 준비, 요리를 시작할 것이다. 이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주도할 수는 없고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만 명색이 내가 주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도 삶을 사는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비록 turkey는 없지만 그리도 ‘비싼’ ham은 있으니까 그렇게 부족한 것도 없다. 결과는 과연 어떨 것인지… 궁금하다.

Macy’s Parade,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듯 사람의 열기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이다. 진정 지난 2년의 ‘해괴한 광경들’은 뒤로 서서히 물러날 것인가? 2020년의 악몽과 희망의 극한적 대비는 정말 기억,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항상 세상을 주시하며 살 것이다. 특히 ‘지옥의 사자’들을 조심할 것이다.

 

Holiday Food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한다. 생각보다 쉬운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이런 것이었으면 매년 나도 동참을 할 걸.. 아니다~ 작년에 mashed potatoes 는 내가 조금 돕기도 했지… 하지만 올해는 내가 meal in charge하기로 했으니 더욱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오늘은 진짜로, 정말로 혼자 걸었다. Tobey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산책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고 허전함이 괴로웠지만 다행히 가끔은 Ozzie가 대신 그 자리를 채워주었다. 문제는 아무도 없는 날, 혼자 걷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조금씩 습관이 되어가던 차에 연숙이 심각하게 동참을 하게 되어서 혼자 걷는 것은 이제 완전히 예외적이 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예외적인 날,  이유는 ‘감기기운’인데 나도 동감이다. 예전과 다르게 감기는 이제 지독히 아픈 병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주사 덕분에 죽을 염려는 적지만 고생하는 것, 정말 싫은 것이다.

오늘 걸으며 Google Voice, 2곳에 ‘오늘도 걷는다마는~~’ 으로 시작하고 싶은 voice message를 남기며 깊은 11월의 깊은 단상을 읊조린다. 낙엽들이 예년에 비해서 빨리 떨어졌다. 그래도 숲 속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Sope Creek Apt 양쪽을 모두 섭렵을 한 후, 어제 잠깐 숲 속으로 모습을 드러낸 진짜 Sope Creek을 오늘은 가까이 가서 냇물을 따라 걸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널찍한 진짜 고향에서 흔히 본 개천이었다. 원서동의 개천 정도… 아니다,  설악산에서도 본 그런 종류. 여름에 이곳을 알았으면 놀러 오고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 오늘의 수확이다.

 

내가 우연히 구상한 올해의 감사절 식사계획, 멋지게 성공을 한 셈이다. 연숙도 만족한 듯한 표정이었고 우리는 오랜만에 즐거운 휴일기분으로 우리 둘만의, stress가 거의 없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새로니네가 조금 외로울 것으로 상상이 되어서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둘만의 감사절 기회가 언제 있었던가? 요리도 비록 지시에 의해서 나는 돕는 셈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처음으로 손수 요리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사는 연호 친구들이 그 동안 나의 카톡에 전혀 답이 없다가 오늘 인송이가 소식을 주었다. 곧바로 윤기까지… 우리의 ‘만년 회장님, 도사’  중앙고, 연세대 친구, 양건주가 연락이 되지를 않는다고… 허~ 이것이 무슨 변고인가? 도사인 건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소식이  아닌가? 동창들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고, 심지어 병원에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니… 혹시 많이 아픈 것은, 무슨 사고를,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  우리 나이가 되고 보니 예전 같지 않다. 우선 걱정이 되는 것이다…. 허~ 태평양 건너에 있는 나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조지아 남쪽의 racist thug criminal들이 모조리 guilty 선언을 들었다. 이 미친 사건의 내막은 자세히 모르지만 이것은 1900년대 초의 lynching사건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듯 보인다. 어떻게 이런 ‘개XX, 무지랭이’들이 아직도 살아있단 말인가? 이들 분명히 진짜 ‘Donald 개XX’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조지아,특히 시골에는 아직도 이런 놈들이 수두룩할 것이지만 앞으로는 전보다 조금 조심하며, 다시 생각하지 않을까….

 

Last Leaf, Leaf Blower, Examen

새벽 4시반 맑은 머리로 시계를 본다. 너무 일찍 깨어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깨끗하고 맑은 머리 속, 주위는 깜깜하지만 한 쪽 창 밖으로 가로등의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화장실 가야 하는 신호도 전혀 없다. 일어나 어둠 속을 서서히 몰래 걸어나오며, 오늘은 몸이 흔들리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너무나 산뜻하다. 조금 예외적인 것 아닌가, 물론 좋은 쪽으로… 오늘 하루는 어떤 날이 될까, 미리 좋은 날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한다. 오늘 새벽 덤으로 두어 시간을 벌었다. 감사, 감사…

아~ 드디어 왔다!  기다리던 또 다른 소식[차가 어제 11월 19일에 팔렸다는], car donation의 모든 과정이 끝이 난 결과의 tax deduction information인데, 나에게는 이것이 특별히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개월 여 걸친 나의 mild stress의 끝을 맺는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기쁘게 한다. 보람과 기쁨,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을까? 그래, 조그만 돈이었다고 해도 그것들이 ‘방황하는 많은 버려진 dog, cat들의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는[North Shore Animal Rescue League America] 생각은 정말 기쁘고 기쁘다. 올해 감사절 감사목록에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더 소중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과거에 묶여 삽니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에 잘못 집착해서 오늘을 인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약속된 미래가 오늘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반영억 신부, 오늘 복음말씀에 대한 글[하느님은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다..]이다. 오늘따라 이 글에 관심이 더 간다. ‘문 밖에서’ 라는 임동진, 황정아 출연의 드라마와 어울려 나를 생각게 한다. 내가 3개월 시한부 진단이 나왔다면… 흔한 듯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연상케도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만약, 만약… 그래도, 하지만, 설마, 할 수 없지…  올바르게 죽은 방법은 무엇일까? 과거는 자비로, 현재는 최선으로, 미래는 예수님께 맡기고…  나는 이런 적절한 분배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미래, 나중이 현재…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미래에 나는 과연 굳건한 믿음을 두고 있는가, 이것은 현재 내가 더욱 더 공부하며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일부인 것이다. 미래에 대해 공부하면 할 수록 현재를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MEN, The Examen pronounced ‘examine’ 발음하는 것 가지고 씨름을 한 후, 생각을 한다. 14년 전통의 rosary, 묵주기도와 병행할 기도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느낀다. 쉽게 말하면 묵주기도는 ‘기본 중의 기본’, 이제는 조금 색깔을 넣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James Martin 신부의 Learning to Pray를 읽으며 아~ 이것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것에 대한 나의 편견, 오해를 넘어서 진짜 의미를 공부하고 실천을 하면 어떨까? 새롭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제일 좋은 방법이 이것이라는 확신도 생긴다. Martin신부의 경험적 설명은 정말 일품인 모양, 정말 감이 잡히는 듯하다.

Examen에는 examination of CONSCIENCE 와 examination of CONSCIOUSNESS 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나는 전자만 알고 있었는데 후자는 뜻밖인 것이고 나에게 더 유용한 것이 아닐까? 나는 하느님의 존재, 현존을 거의 하루 종일 잊고 살 때가 대부분이 아닌가… 알 수가 없다.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Examen of conscience has narrow moralistic overtones. Its prime concern was with the good or bad actions we had done each day. Whereas in discernment the prime concern …  is with the way God is affecting and moving us … deep in our own affective consciousness.

Presence, Gratitude, Review, Sorrow, Grace…

Presence, 하느님이 나를 현재 바로 보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를 돌아본다

 

IS ATHEISM DEAD? 아직도 시작조차도 못하고 있다. 아직도 DONALD 개XX냄새가 나기 때문인가? 조금 감정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다. 그 정도로 나는 DONALD 개XX 냄새의 가능성조차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와 내용 속에는 그 냄새가 안 날지도 모른다. 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늘어지게 편한 마음으로 푹~ 쉬고 싶은 날이지만 불행하게도 외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이것은 내가 고쳐야 할 것이다. 오늘 나가는 것은 ‘봉성체 재교육’이란 것 때문이지 않은가? 전 같았으면 ‘다시 생각 안 하는’ 그런 일이 아닌가? 지난  Pandemic의 여파도 있었고 레지오 탈퇴도 가세해서 이것의 중요성을 거의 잊고 산다. 이런 태도가 바람직할 리가 없다. 성당 성사 중에서 이것처럼 ‘잊혀진 중요한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레지오와의 연관성을 이제는 잊으며 생각하고 싶다.

오늘 외출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 왜 연숙이 혼자 가면 안 되는가…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문인화로 아침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를 태우고 다시 성당으로 간다는 것, 얼마나 낭비적인가? 어차피 봉성체를 연숙이 혼자 해 왔던 것인데 나에게 재교육은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나도 편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  연숙도 편하고, 환경 지구에게도 덜 미안하고… 우리 모두 win win win!

 

Leaf Blower에 대한 NYT 기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왜 leaf blower로 search를 하는데 내가 찾는 것만 안 나왔던 것인지. 그 기사는 내가 전적으로 동의, 동감을 하는 주장[Margaret Renkl from Nashville, TN]을 담은 것이었다. 소음과 공해를 떠나서 지구 생태과학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이유를 비교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그것을 나도 알아서 지식적 무장을 하고 싶었다.

 

We constantly pray to God to make order of our chaotic lives, but what if God is the very source of our chaos? What if chaos and disorder are not to be shunned and avoided but attended to and embraced? Nature shows us that life is not meant to be nice, neat, and controlled but lived on the edge between order and disorder. – [The Hours of the Universe, p9]

 

숨어있던 책들, 근래, 최근에 샀던 것들을 가급적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서 하나 둘씩 꺼내어 desk위에 쌓았다. 이것도 읽고 싶은 책들을 가까이 두고 보는 한 방법이다. 가까이, 가까이…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 걸었다. 혼자 걸었던 적이 많지 않았기에… 하지만 오늘은 혼자라는 사실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날씨도 예상보다 쌀쌀해서 제일 짧고 빠르게 걸었다. 걸으면 Google Voice 2, 3로 연속으로 voice mail을 남기며 병신 같은 넋두리를 남겨놓았다. 이것도 나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연극처럼 느껴졌다. 오래 오래 전 서울 거리를 수많은 사람 속으로 걸으며 부자연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무척 노력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에, 그 당시 mobile phone같은 것이 있었으면 그것은 마의 구세주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동네를 걸으며 차가 오거나 사람이 올 때 어색함을 잊으려 말하지도 않는 cell phone을 들고, 무언가 얘기하는 척 연극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이것은 완전한 희극중의 하나다. 그것이 나는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

계속 동네 산책 중에 집 근처에 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나의 last leaf tree를 본다. 이제는 윗부분은 다 떨어지고 아랫부분만 엉성하게 남았다. 이 나무가 나에게는 마지막 잎새 역을 맡은 늙은 나무다. 이 나무가 병들고 쓰러지기 전에 나도 같이…

 

어제 교성이를 카톡 friend로 다시 넣어 놓았다. 다행히 녀석의 전화 번호로 카톡이 연결이 된 것, 나는 왜 그랬을까? 녀석이 나를 싫다고 연락을 끊자는 일방적 선고의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일까? 너무나 의외적인 일이 생기면 나도 이성적인 사고를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지나가고 있으니, 서서히 냉철하게 세상을 보아야 할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기분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녀석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정도의 충격이지만 이제는 다시 연락이 되어서 더욱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다. 녀석이 빠진 나의 과거의 일부를 원상복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몸의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 음성통화라도 하면… 하지만 용기가 없다. 용기가…용기가…

와~  결국은 교성이와 연락이 닿았다. 이것은 기적 같은 놀람이다. 솔직히 솔직히 교성이와 끝났다고 비관적인 결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비록 기도 중에 그 녀석을 만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렇게 우리가 끊어졌을까 생각하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어제 우연히 전화번호로 연결을 시켜놓고 초조히 기다리다가 오늘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인사말을 보냈는데… 기적처럼 금새 답이 왔다. ‘용서해 달라고…’ 나는 울고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 그 녀석의 ‘단절 선언’은 일시적인 행동임을 알게 되어서 날라갈 듯 기뻤다. 이것이 기쁜 것이다. 그래, 우리는 오래 전 순수할 때 만나고 헤어진 친구가 아니냐… 떨어질 수가 있냐?

 

Reminiscing Happy Days with Tobey…

오늘도 2시간 산책을 했다. 이 제일 긴 코스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45분 정도 걸리고 천천히, Ozzie에게 끌려가면 2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2시간 짜리는 나도 천천히 걷는 것이라서 운동량은 떨어지지만 대신 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멋진 가을 날씨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운동 일 듯하다.

오늘 산책에서는 모처럼, 3년 전까지 Tobey과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던 그 playground 의 놀이터에 올라가 Ozzie와 둘이서 누워보았다. 어찌 Tobey생각이 안 날 수가 있는가. 그 녀석 생각을 하면 필요이상으로 울적해져서 가급적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곤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음껏 추억하자는 뜻이다. Tobey도 정말 나와 같이 행복한 삶을 살고 천수했다고 나를 위로하기 바쁘다.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위쪽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아래 쪽에 조금 남아서 아마도 며칠 안에 다 떨어질 모양…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일찍 떨어진 것은 아닐지…

 

오늘도 다행히 제시간 6시 30분에 일어났다. 휴~ 이런 것도 이제는 조그만 은총으로 생각된다. 어제 이제는 귀국한 조시몬 형제의 카톡에 ‘건강 검진 잘 받고 건강 하라’는 충고가 이제는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진정한 도움말로 들린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것도 그렇게만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과학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을 믿고 따르자.

어제 송 아오스딩 형제가 카톡 초대를 보내왔다. 지난번 젊은이 장례미사에서 만났을 때 구역모임을 언급한 것 때문이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도 무언가 ‘앙금’이 남은 듯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몇 사람과의 일시적 ‘사건’이었지 않은가? 그것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마음을 열고 사는 것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 싶지 않은 사람[그곳에는 우리가 레지오 탈단 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한 사람도 있으니…]이 그곳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맡기자, 맡기자…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자.

책, The Hours of the Universe 지금 필사, 독서하는 책이다. 이 책도 나의 주관심사인 과학과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 심도와 명상, 묵상이 멋지게 어울린 보기에 가벼운 책이다. 저자는 나에게 익숙한 과학자, 교수 수녀 Illa Delio.. 얼마나 멋진가? 그녀는 나의 다른 선생님 Teilhard Chardin 석학이기에 간접적으로 나는 Teilhard에 관한 공부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왜, 나는… 이런 주제에 매료가…

COVID Booster Shot Fatigue

우려한대로 연숙에게 shot side effect가 왔다. [큰 사위] Richard가 경험했다는, 비정상적인 피로감, 바로 그것인 모양이다. 열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저 피로하다고.. 허~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 같은 심리인가?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니, 이것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대신 ‘죽을 병’에서 조금 더 멀어진 것이니까… 이것으로 아침의 정상 routine이 바뀐다. 매일미사, 그리고 오늘 가려던 Sam’s Club shopping도 내일로 미룬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시간은 나에게 거의 bonus와 같은 것이니까, 절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 감사한다고 나 할까… 이것도 아동심리인가?

결과적으로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sick day가 된 것인가? 연숙은 완전히 반나절을 완전히 잠을 자고, 나는 별 증상이 없어서 허리가 조금 아픈 것을 낫게 한답시고 동네를 혼자서 걸었다[짧게]. 그러다가 오후에 들어서 나도 조금 그야말로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연숙이 빠져 나온 침대로 들어가 2시간 이상을 자게 되었다. 이것으로 booster shot 후유증 행사가 끝나는 것인지…

 

어제로 끝난 daily typing, 그것이 없어지니까 조금 허전하다. 어제 끝난 것은 James MartinBetween Heaven and Mirth, ‘성자처럼 즐겨라‘ 인데, 다음 것은 무엇을 할까…. 이번에 새로 산 ‘따끈따끈’한 Ilia Delio의 신간 The Hours of the Universe로 정했다. 책의 두께는 비록 얄팍하게 보이지만 내용은 그 반대다… 아주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Ilia Delio ‘수재 과학자, Teilhard expert’ 수녀의 글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21세기 과학, 신앙’ 접목을 위한 걸작임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soft copy를 남겨두고 싶다.

Booster Shots at Publix, Finally…

오늘 저녁 늦게 Corona booster shot 예약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있었다. Pandemic이후 오랜 동안 근처에도 못 가보았던 YMCA,  그 바로 앞에 있는 이곳 Publix Supermarket에서 이것을 맞게 되었다. 3주를 기다릴 줄 알았다가 새로니의 예약 덕분에 일찍 맞게 되었지만 사실은 주변의 아는 사람들 거의 다 맞은 것을 알면 이것은 너무나 늦은 것이 아닌가?  최근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다시 감염률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을 살고 있다.

결국은 우리도 이렇게 해서 COVID booster shot 접종을 받았다. 이것으로 ‘당분간’ COVID 로 죽는 chance는 아주 낮아진다고 한다. 이것을 맞는 것,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데 왜들 그렇게 앙앙거리는 것인가? 이번 Pandemic을 겪으며 새삼 깨달은 것, 이 세상에 정말 바보, 병신, 아니 거의 criminal급 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불쾌한 사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고 남을 배려 못하는 병신, 무지랭이들이 득실거리는 걸까… 솔직히 미안한 소리지만 그런 부류 인간들, 이 병에 감염되어서 죽지는 말고, 죽기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1+1=3 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인간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늘 접종은 의외로 밤시간에 차를 drive해서 가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접종의 느낌 대신에 밤시간에 drive해서 나갔다 온 느낌을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인 것이다. 밤시간의 밖은 우리에게 조금은 불편한 모습들, 확실히 이것으로 우리는 활동적인 세대에서 이미 멀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착잡한 심정이다. 옛날 옛적, 오밤중에 장시간 drive하며 돌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딴 나라 세상 같기도 하고… 조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요즈음 나를 매료시키는 Thomas Berry의 거시우주적 자연관이나 어제 읽었던 Avery Dulles [추기경]의 ‘자연’ 체험담 등이 나의 보는 눈을 더욱 활짝 열어주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Dulles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다. Dulles 집안은 미국에서 유명한 명문가문이다. 나도 어렸을 적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인 John Foster Dulles를 기억할 정도니까.. 그의 아들이 바로 Avery Dulles라는 것인데 집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이 추기경님은 미국 제일가는 가톨릭 신학의 거두인 것이다. 이분이 대학시절까지 무신론자에 가까운 agnostic였는데 한 순간에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내가 요사이 유달리 깊은 가을의 모습에 감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이 추기경도 어느 날 나무의 모습을 보다가 깊은 영감을 느끼고 곧바로 가톨릭에 입교를 했다고 한다. 비슷한  case로는 유명한 당대의 석학 Narnia Trilogy로 알려진 C.S. Lewis 의 천주교 개종 일화도 있다.

 

I walk therefore I am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 도 Ozzie와 둘이서 정처 없이 2시간을 걸었다. 그야말로 spectacular, gorgeous day, 깊어가는 가을의 모습, 이곳에 산 이후 제일 멋진 가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면 내가 자연을 보는 눈의 차원이 올라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눈으로 들어오는 물리적(광학적) 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뇌 능력이 발달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이상의 형이상학, 초월적인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오늘 드디어James Martin신부의 걸작,  ‘성자처럼 즐겨라!’ 의 ‘필독서’ [필사, 독서의 약어]가 일단 완료되었다. 재독을 하며 교정을 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의 요점은 대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겁고 명랑한 신자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는  마틴 신부의 경험적 논문 급의 정말 탁월한 솜씨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와 어떻게 연관을 지을까 하는 과제는 남는다.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우선 나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요구라는 것, 나는 어쩌면 너무 심각한 자세로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나와 함께하는 나의 주변 가족, 지인들… 미안하기도 하다.

Catholic Sunday, Redux 2021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Freeze Warning, Mid November

Freeze Watch가 Freeze Warning으로 바뀌었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 사이…아마도 이곳은 upper 20s정도가 되지 않을까? 확실히 빙점을 밑도는 것, 하지만 바람의 상태는 어떤가? 그것이 더 큰 문제.. 화초들은 올해 신경을 미리 써서 모두 실내로 대피를 했지만 의외로 water supply 쪽 hose, pipe를 거의 잊었다. 연숙은 그대로 두자고 하지만, 최소한 물은 빼고 수도꼭지를 잠그기는 해야 할 듯… 이렇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게 첫 얼음을 보게 되는구나…

 

스트레스, 그것도 쪼잔한 것들, 왜 그런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일까? 알고 보면 대부분, 너무 잘 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도 일리가 있다. 조금 못해도 된다면, 조금 자유스러워진다면 스트레스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James Martin신부는 말한다.

영적 가난은 기쁨을 앗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반대로 기쁨으로 가는 문입니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은 자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전부 다 나한테 달려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려는 유혹은 매우 강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자칭 메시아주의Messianism’라고 부르겠습니다.

James Martin <冊: 성자처럼 즐겨라> p383

 

연숙의 산책 의지는 아직도 굳건한 모양이다. 오늘도 걸었다. 거의 full course로. 속도도 예전에 비하면 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언덕을 오르는 것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특히 60개 정도의 급경사 계단 산책로도 열심히 오르고…  걷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으니 이제는 이것을 지속을 시켜 습관으로 만드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좋다는 습관을 들이는 ‘성공한 경험’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기에 내가 도울 수 있다.

오늘 날씨는 걷는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청명하고 싸늘한 가을, 게다가 색깔이 거의 완전히 들어가는 가을나무의 모습은 왜 올해에 이렇게 나를 자극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적인 감동까지 느낀다. 감사합니다….

 

가을 산책을 시작하면서 낙엽 이외에 가끔 발에 채이고 것 중에 도토리 acorn이란 놈이 보인다. 이제야 이것, 흔하다면 흔한 것이 나의 눈에 들어오고 드디어 몇 개를 주웠고 급기야는 그것을 소중하게 가지고 왔다. 처음으로 자세히 본 것, 감상적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야 이것이 나의 눈에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는 급기야 연숙이 아주 깨끗한 놈 두 개를 주워서 나에게 주었다. 이것에 관심을 갖는 나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 대견스럽다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도토리 묵의 재료? 그렇구나, 이것으로 그 맛있는 도토리 묵… Wikipedia에서 자세한 것을 읽기도 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각지 원주민들의 음식재료로 소개되고 있지만 특별히 한국의 ‘도토리묵 DOTORI JELLY‘까지 따로 소개가 된 것을 보니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것도 요사이 Thomas Berry 공부의 효과인가… 자연, 그것도 진화하는 자연세계가 너무나 새롭고 신기한 것이다. 아~ 역시 나이다, 나이.. 공짜 선물, 나이의 선물이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한 것이 현실로 바뀌었다. 이번 감사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idea, 우리 가족은 일년 내내 자주 본 셈이니까 우리 둘이 조용히 보내자는 것은 사실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둘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를 같이 볼 만한 공통 관심사도 없는데… 여기서 또 번쩍이는 생각지도 않았던 생각, 내가 요리를 해 보자는 것…. 한번도 감사절 미국식 요리를 내가 직접 해 본적이 없었기에 이것도 아주 멋진 idea가 되었다. 우선 연숙이 ‘감동적’으로 보였고, 나도 갑자기 신이 나는 것이다. 그래 몇 가지만 맛있게 만들어서 둘이서 ‘감사기도’하는 것이다. 와~ 성모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에 잠시 기온이 빙점을 맴돌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연숙이 부리나케 텃밭으로 가서 고추를 모조리 따가지고 들어왔다. 이런 첫추위 후에 고추농사는 완전히 끝이 난다고… 와~ 놀라고 놀라는 것, 올해 고추 농사, 어떻게 이런 풍년이 있을까? 원 없이 수시로 이것을 마음껏 즐겼다. 맵지 않은 것, 이름도 재미있는 ‘아삭이’ 종자라고… 도마도 농사는 재미를 못 보았지만 이것으로 만회를 한 셈이다. 100 % 연숙의 땀이 담긴 produce였다. 연숙, 성모님, 감사, 감사…

 

Walking Gorgeous Foliage

오후에 예보된 비를 생각해서 오전 중에 Ozzie와  full course walk을 하였다. 거의 2시간의 산책, 정말 올해 낙엽풍경은 장관이었다. 특히 Spring Creek subdivision쪽의 집들은 낙엽을 거의 치우지 않아서 흡사 깊은 산속을 연상케 했는데 요란한 소음을 내며 CO2 gas까지 내뿜는 그 흉측한 [leaf] blower가 이곳에는 별로 보이지 않은 듯했다.  계절에 걸맞지도 않은 파란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낙엽을 치우는 것, 예전부터 나는 아주 싫어 했는데 얼마 전  NYT의 opinion에도 나와 같은 생각의 논평이 보였다. 아예 그 leaf blower 를 법으로 금지하자고… 와~ 멋진 idea가 아닌가? 자연 그대로, 자연 그대로… 삽시다.

요새 계속 지켜보고 있는 우리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낙엽, 단풍 상태가 오늘 갑자기 변했다. 색깔은 문제가 없는데 낙엽이 너무나 갑자기 많이 떨어진 것, 텅 빈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오늘 비가 오면 더 많이 떨어질 텐데…

새로니 일행이 떠날 무렵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한 것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 5시에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내리는 비가 더욱 음산하게 느껴진다. 거의 2주 만에 내리는 이 어두운 비, 화창하던 날씨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가을비의 진수를 보인다. 이제는 지켜보던 각종 색깔의 나뭇잎들이 대거 다투어가며 떨어질 것이다. 비록 나무들은 옷을 벗게 되겠지만 대신 대지는 온통 낙엽들의 보호를 받아 다가올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날 것이다.  Thomas Berry의 ‘영적인 지구’를 이런 자연의 섭리와 함께 저녁 비를 바라보며 명상하는 것도 참으로 멋진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Too Young to Leave…

마지막으로 장례미사 전에 연도를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분명히 COVID-19 Pandemic이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연도를 하지 못하고 장례미사 가족들만이 모여서 한 것이 이제는 연도와 미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 세상이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연도, 장례미사 공지를 몇 군데서 받아보고 어리둥절했다. 32세의 청년? 지병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프카’ 자매님이 보낸 소식에 자매님 아들과 축구를 했던 적이 있는 아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몸이 안 좋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가보니 숨진 상태였다고… 가족들, 얼마나 놀랐을까? 심장마비인 것 같지만,  왜?

연도 전에 viewing에서 고인이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고통스런 표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다.  32세의 새파란 Georgia Tech 대학원생 청년, 총각의 갑작스런 죽음,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지병도 없이 갑자기 밤새 시신으로 변한다는 것, 소설,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 아닌가?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연도,장례미사, 화장까지 하게 된 것, 우선 관심은 그 청년의 가족들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놀람과 슬픈 심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죽은 본인보다 가족들의 고통…  32세면 내가 결혼할 당시의 나이가 아닌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으로 결혼은 물론이고 애인도 없었던 듯 보이니, 얼마나 많은 인생을 놓친 것인가? 지병도 없이 그러니까 심장마비 가능성이 많은데, 정확한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영결 현장은 오랜만에 슬픔을 나누는 장례식 같은 오열의 몸부림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 모두들 혼이 나간 표정들, 이들은 어떻게 이 비극을 이겨낼 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일찍 한 젊은 생명을 거두어가신 것일까…

오늘 장례미사에서는 이제까지 듣던 강론과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personalized되지 않은 장례식은 아무래도 아쉽기만 한 것이었다. 유족들과 면담을 거치는 과정이 짧았거나 없었던 느낌이 든다. 지나간 3명의 주임신부님들의 장례미사 강론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교훈들이었지만 오늘은 거의 김이 빠진 듯한, 완전히 boiler plate격이라고나 할까…

오늘 미사에서 보여준 유족들의 모습들은 이즈음 보기 드문 ‘모범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혼이 나간 듯 오열하는 모습은 조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항상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조사 弔詞’, 여동생이 나와서 짧지만 심도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었는데… 특히 오빠는 겁쟁이였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대부분 장황하게 길고 긴 넋두리를 하는 것, 정말 나는 피하고 싶은 경험이었기 이번에는 휴~ 하고 가슴을 쓸기도 했다. 비록 우는 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클 수밖에 없었지만, 울음소리가 없는 장례미사는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또한 가장 家長의 엄숙하지만 슬픔을 참는 듯한 괴로운 모습,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