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Traumatic March, 목요회
Spring at Saybrook Court
¶ Spring finally comes: 유난히도 추웠고 (아직도 싸늘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3월 20일1이었다.
봄의 시작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때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다. 나의 blog site의 header art picture를 ‘봄’의 그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site는 이런 식으로 일년에 네 번을 바꾸는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ugly 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거저 받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이런 때 다시 한번 행복한 마음으로 새기는 것,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받고 싶은 것이다.
이 header art에 담긴 ‘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집, cul-du-sac 에 있는 neighbor house들 초봄의 모습과, 비가 내린 후 blacktop에 물빛이 반사되어 흡사 커다란 ‘연못’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잘 어울려서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봄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 Kafkaesque March day: 지나간 화요일 주회합에는 일년 만에 꾸리아 순방이 있었다. 이날 꾸리아 간부들의 방문을 맞으며 일년 전 같은 때를 기억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blog post를 기억하면서 Kafka를 연상시키는 ‘해괴한 사건’2을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3월의 악몽’ 으로 뇌세포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 해괴한 사건, 그 사건의 장본인은 작년 8월의 ‘레지오 미친년 사건’과 더불어 ‘2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로 내 개인 역사에 당당히 남게 되었다.
꾸리아의 위상을 완전히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린 그 사건의 여파로 나는 심각하게 레지오를 포기할 생각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레지오 아치에스 acies 행사까지 포기하는 실수도 범했다. 지금은 조금 감정적이었던 그 당시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장본인 왕마귀’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구건 간에 레지오를 분열시키거나 떠나게 만드는 것은 ‘성모님 정신을 거역하는 심각한 죄’ 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레지오는 모두를 저질단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맞은 꾸리아 간부들, 특별한 문제없이 방문은 끝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작년 같은 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즉시 video로 기록을 남겨 Youtube로 공개할 것을 밝힌 후, ‘폭력으로 쫓아낼 각오‘까지 다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감정이 격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일들, 나에게 조그마한 피해망상증 paranoia 이 생겼는지,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성모님의 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도 느낀다.
¶ 목요회 친구들: 6개월이나 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목요회 모임이 이번 달에는 마지막 목요일이 아니고 세 번째 목요일에 모였다. 마지막 목요일인 ‘성 목요일’에 떨어졌기 때문에 한 주를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도밍고 형제가 난색을 표명해서 예전 대로 밖 (식당)에서 모였다. 몇 개월 전에 밤에 차 사고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깜깜한 늦은 저녁시간에 마리에타로 drive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의 20년 전에 온 적이 있겠지만 아무리 요새의 technology, GPS와 Google Map이 있어도 밤에 이곳의 불규칙적인 residential area를 drive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칠십의 나이는 확실히 ‘밤중의 운전’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서서히 실감한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주위의 동년배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점점 mobility는 떨어지게 되지만 대신 virtual mobility (Internet)는 점점 발달할 것이므로 예전의 ‘노인’들이 겪던 ‘소외감’의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spaghetti 와 wine으로 배와 기분을 채우려고 했고, 아오스딩 형제에게는 (60/70 style) guitar 101 정도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아마도 6월 달 정도에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밤 늦은 저녁식사 모임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