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in 1970, Midterm Georgia Governor

 

1970년, 대학 4학년 시절, 한마디로 희비가 엇갈리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등산과 미팅에 더 관심이 많았던 때, 하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울 중심가를 헤매기도 했던 낭만적, 황금기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젊음의 대가를 후에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2학기가 되면서 졸업 이수학점 부족이 때늦게 발견이 되어서 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떨어져서 부족 학점을 채워야 했던 괴로운 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젊음의 힘이었던가, 별로 실망, 우울하지 않았다.  그 해 가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 중에 바로 Simon & Garfunkel의 hit album 중의 한 곡인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때문이었다.  당시 수많은 pop song들에 열광을 하던 때였지만 몇 곡은 아직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뇌리에 남아있고, 이 곡도 그 중에 하나다. 1970년 가을에 심취했던 이것,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가사 내용보다는 후반부의 chorus,  폭발적인 drum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곡이 실려있는  당시의 LP album [Bridge Over Troubled Water]을 이곳에서 다시 샀던 것과 또 다른 album을 꺼내서 보니, 완전히 1970년으로 돌아간 착각에 빠진다. ‘유행가’가 가진 시대성은 생각보다 큰 위력이 있는 듯하다. 이 노래에 심취할 당시의 추억들 중에는 이성들과 얽힌 것들도 있어서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막연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니…  

Georgia Governor,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US Senator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간단한 것인데, governor는 조금 달랐다. 두 후보의 장단점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후보의 정당 정책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역시 Donald 개XX에 ‘굴복하지 않은’ 현 주지사’가 유임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만족도를 주기에 그에게 2 표 (우리 둘)를 던지기로 했다. 현 주지사 Brian Kemp의 ‘폭군에 맞선 용기’도 가상하지만 Pandemic동안 아주 상식적인 판단으로 일관했던 것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첫 여성 흑인 주지사가 될 수도 있었던 상대 Stacey Abrams 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나의 point는 역시 ‘Donald 개XX’에 있기에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앞으로도 기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요즈음 supermarket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데 예외는 coffee 그것도 KEURIG coffee maker 에 맞고, 가을 색깔이 있는 것을 고르는 일이다. 금주선언 이전에는 주로 wine쪽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coffee쪽으로 바뀐 것이다. 오늘은 STARBUCKS 쪽에서 FALL BLEND, CARAMEL MOCHA를 골랐는데 기대가 크다.

오늘 점심은 특별한 것, 시간이 되었다. 청국장, 난생 처음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원래 식성이 약한 탓에 조금 냄새가 나거나 보기에 안 좋으면 식욕을 조절할 수가 없이 피해버리고, 청국장도 그 중에 하나였다. 냄새 때문이었는데, 얼마 전 성당에서 C 베로니카 자매가 냄새가 거의 없는 청국장을 찾았다고 조금 갖다 주어서 오늘 드디어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는 pass였다. 이 정도면 겁을 낼 필요가 없고 오히려 밥맛도 나는 듯했다.

 

Jacket Day, Church Regulars, Honest Barron

올 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정든 베이지색 골덴’ corduroy jacket을 입고 성당엘 갔다. 아~ 이제 서늘한 날들이 예외가 아닌 보통인 그런 season이 된 것인가? 가히 요새 같은 날씨는 너무나 보내기가 아까운 정말 ‘완전한 날씨’에 속한다.   아~ 이런 날씨가 다음에 오는 세상에도 있을까? 없다면 나는 죽는 것이 조금 싫어질 듯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이런 날씨보다 훨씬 멋질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승의 사람들과 일단 작별하는 것, 그것이 섭섭할 뿐이다.

오늘 아침미사 싸늘했던 탓인지 참례 신자들의 조금 적은 듯했다. 하기야 거의가 우리와 비슷한 나이, 그래 senior라고 하자. 이런 날씨에도 빠짐없이  미사에 오는 regular들, 신부님도 언급했지만 인상적이고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크리스천의 본보기가 아닐지…  오늘은 모처럼 ‘동포’ R자매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 반가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쩌면 한 세대의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인사성도 없고 정다운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재미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본격적’으로 보게 된 video는 이미 download를 해 두었던 1983년 추억의 TV miniseries  The Winds of War (7부작), 추억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나에게 이것은 예외 없이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3년 2월 초에 방영된 것이어서 이때의 추억과 함께 보고 싶다. 새로니가 태어난 바로 직후가 아닌가? 나는 학교 Ohio State 에서 일생일대의 고전 苦戰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괴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지금은 조금 다시 ‘좋은 쪽’으로 바꾸어 ‘수정된 역사’를 남기면 어떨까?
이제는 조금 넓어지고 높아진 세계관,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미국이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이 나라를 super power로 만든 2차대전의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고 싶은 것, 멋진 것 아닐까?

오늘 Word On Fire email, Bishop Barron의 ‘성녀 소화 데레사 책 소개’는 나에게 신선하고 반가운 것이었다.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것, 그것도 책을 나는 별로나 실망, 심지어 싫다고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좋은 예, 그리고 또 있다면 Thomas Merton의 자서전 ‘칠층산 Seven Storey Mountain‘이 아닐까? 나는 남들, 아니 아예 일반적으로 극찬을 얻은 명작들이 나는 정말 실망인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첫 번의 시도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시 읽는다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I will confess that when I first read Story of a Soul, I was not particularly impressed. Like many others, I found it overly sentimental, and as a post-Freudian, I was only too willing to see in its girlish spiritual enthusiasms evidence of neuroses and repressions. But then I noticed that a number of great intellectuals loved Thérèse. Among her cultivated admirers were Dorothy Day, Edith Stein, Thomas Merton, John Paul II, and Hans Urs von Balthasar.

When I was a doctoral student in Paris, I attended a seminar conducted by my thesis director, Fr. Michel Corbin, a brilliant Jesuit specialist in medieval thought. Corbin commented that the French do not refer to Thérèse of Lisieux as “the Little Flower,” as Anglophones do, but rather as la petite Thérèse (the little Thérèse), in order to distinguish her from la grande Thérèse (the great Thérèse—that is, Teresa of Avila). But then he added, “After many years of reading both saints, I realize that Thérèse of Lisieux is really la grande Thérèse.” I knew then that I had to take a second look. 

– Bishop Robert Barron  10/14/2022

 

 

Old McDonald’s, Moving Marshall

오늘은 모처럼 아침미사 이후에 McDonald’s 엘 가서 ‘2 No. 2’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모처럼 맛본 이것, 한마디로 맛이 있었다는데 동감을 했다. 그렇다, 자주 대하는 것, 먹는 것 등등은 쉽게 싫증이 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가급적 매식, 그것도 fast food는 피하고 살자는데 큰 이견이 없다.  이곳 Canton Road의 McDonald’s, 추억이 얽힌 곳이지만, Pandemic 동안 완전히 remodeling 을 해서 그때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진 곳이 되었다. 아이들 생일 party도 하던 playground가 완전히 없어진 것.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추억이 어린 곳이다. 이곳의 모습, 다행히도 Google Map에서 찾은 것, 혹시 옛날의 모습이 아닐까 했지만 최근 renovate된  [May 2022]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다행인지, 옛날의 모습이 조금 그리워진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 있는 Marshalls에 들렸는데, 오늘도 나는 살 것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연숙이는 무언가 return을 하고 산 것도 있었다. 오늘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이 Home Depot가 있는 Merchant Walk으로 이사를 곧 간다는 조금은 섭섭한 소식이었다. 하기야 가까운 이곳이 그 동안 편리한 곳이었는데…  이곳의 매력은: brand name, 그러니까 명품급에 속하는 것들을 ‘조금 흠이 있기에’ 정말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들조차, 이렇게 하나 둘씩 우리를 떠난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오늘 Marshalls에서 나의 눈과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PUMPKIN COLOR가 아닐까? 왜 올해는 이렇게 가을의 상징, pumpkin 색깔에 관심이 가는 것일까?

Falling Leaves on high: 지난 밤에는 아마도 여름의 잔재인 듯 요란한 천둥소리와 빗소리를 잠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가느다란 꿈 속에서도 ‘여름의 추억, 섭섭함’등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날씨는 비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기는 했지만 대신 바람이 하루 종일 세차게 불었다. 오늘 창 밖으로 보이는 ‘낙엽’의 모습은 며칠 전과 완전히 다른 것, 나르는 나뭇잎이 하늘을 가득 채운 장관이었다.  바깥의 모습도 처음에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는데, 결국 오후부터는 태양이 가득한 전형적 가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마디로 요사이 날씨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그림 같은 날씨의 연속… 감사합니다~~

The Winds of War: 며칠 전에 low quality[VHS resolution] video나마 전부 download했던, 1980년대 초의 TV Drama miniseries ‘The Winds of War‘를 조금씩 보기 시작한다. 이것도 The Exorcist와 비슷한 nostalgic value가 있는 것이고, 40년 전의 세계관과 현재의 것의 차이점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흥미, 재미’의 요소가 현재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있을 것이다. Robert Mitchum, Ali McGraw, Jan Michael Vincent 같은 당시의 top stars 들이 대거 출연, 아득한 추억에 잠기게 한다. 2차 대전을 역사적인 눈에서 조금 벗어나 보는 것도 나에게는 유익한 인류사 공부가 되고 있다.

 

On Quiet Rainy Autumn Day

예보대로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포근한 것, 비가 예보되었지만 chance가 높지 않아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잔잔한 가을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쁘지도 않고 졸음을 참는 때, 이 고요한 빗소리와 문 밖 cul-de-sac의 모습은 가슴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가급적 짧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 본 비는 사실 정말 모처럼 보는 광경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신경질적으로 피하고 싶은 새벽의 싸늘함 대신에 편안하게 포근한 새벽이 좋다. 덕분에 포근했던 이불을 박차고 6시 반이 지나자마자 일어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근래에 나는 분명히 이 칠흑 같은 새벽을 못보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도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게으름의 행진’ 의 일부거나 결과일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정상 외출’하는 날, 아침미사와 YMCA의 일정이 잡혀있고 따라서 ‘제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기에 가급적 이런 routine은 고수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는 거다, 노력, 마지막 그날까지…

아침미사, SONATA-CAFE, YMCA, KROGER의 daily routine을 끝내고 집에 와서 모처럼 Kroger fried chicken으로 점심을 채운다. 예전처럼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도 모처럼 먹는 것이니까 OK.

 

오늘은 비를 핑계로 완전히 ‘일없는 날’로 미리 계획을 했는지, 나도 완전히 손을 놓았다. 그래~ 오늘까지만 쉬자~ 라는 달콤한 유혹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그래, 편하고 싶다…

대신 어제부터 시작한 영화 The Exorcist 50주년 이라는 이름과 추억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오늘은 영화 전에 documentary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디오의 화질이 엉망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백과사전’격 정도의 자세한 정보와 역사가 그곳에 거의 전부 모여있었다. 과연 올해는 Halloween 전에 이것의 전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지만, 누가 알랴?

이 추억의 영화가 나 개인에게 미친 효과, 영향은 사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아니 우리가 Roman Catholic 천주교인을 살아가는 인생도 이 영화가 조금은 도움을 준 것을 알면 조금 나조차 놀라는 것이다. 당시 처음으로 본 천주교, 신부 사제, 수녀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나중에 세례, 입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50년 전의 이 blockbuster movie는 이렇게 해서 나에게는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다.

또한 이 영화를 개봉 1년 후에야 실제로 극장에서 본 그 당시의 추억은 또 다른 개인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 추웠던 1974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시카고 downtown 의 극장으로 비롯된 나의 숨기고 싶은 escapade, 이 죄스러운 짧은 실수의 역사를 나는 어떻게 묻어두고 갈 것인가?

 

Ukrainian Liberal Nationalism, Roswell Road

이제는 하늘의 구름이 조금 그리워진다. 정말 진짜 한 점의 하아얀 물기가 없는 ‘시퍼런’ 하늘이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착각, 더구나 그런 상태로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지나가는 나날들이 이제는 지겹게 느껴지는 것, 나의 응석인가? 그렇다, 삶은 변화, 그것이 없는 것은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고통일 수도 있고.. A day in the Life 일 수도 있고…

어제 오랜만에 읽게 된 David Brooks 의 NYT column piece: Liberal Nationalism, Ukrainian War에 관한 글을 계속 생각한다. 수박 겉 핥기 단계이지만 아마도 조금 나의 제한된 정치적 세계관으로 더 자세히 분석을 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과연 얼마나 Liberalism, Nationalism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고 75년의 ‘장구한’ 세월의 세계사는 일단 보았기에 그것이 출발점이니까, 사실 큰 문제는 없다.

Liberalism과 Nationalism은 언뜻 보기에 정 반대의 개념으로 보인다. 한쪽은 progressive하고 다른 쪽은 conservative 개념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국수주의가 과연 타협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두 생각의 중간 단계를 절묘하게 밟고 있는 예가 바로 현재 Ukraine의 경우인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대조적인 사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 전쟁 중인 Ukraine의 case가 바로 그런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나라는 결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하는 한편 또한 같은 노력을 자국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전통적 민주주의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column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

Liberal nationalism believes in what liberals believe, but it also believes that nations are moral communities and the borders that define them need to be secure. It believes that it’s sometimes OK to put Americans first – to adopt policies that give American workers an edge over workers elsewhere. It believes it’s important to celebrate diversity, but a country that doesn’t construct a shared moral culture will probably rip itself to shreds.

 

오늘은 아침미사, YMCA gym routine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무리.. 라는 사실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어제 맞은 5차 COVID 백신의 영향은 생각보다 경미한 것인지 어제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 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오후에 gym routine은 도전해 볼 가능성을 남겨 두었는데  결국 오후에 홀로 gym으로 가게 되었다. 나의 ‘노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자극성 운동’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요즈음 항상 가지고 다니는 spycam으로 drive를 하며 Roswell Road의 정든 거리를 video에 담았다.  드물게 홀로 drive를 하게 되어서 모처럼 느끼는  기분은… 자유, 자유 바로 그것이었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왜 그렇게 나를 듯한 쾌감이 느껴졌을까? 간단히 말해서 좋고 나쁘고를 떠난,  ‘변화된 삶의 단면’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이 거리를 이렇게 달린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1992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40년이 넘어가는 엄청난 세월, 이 거리를 잊지 마세요~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곳, East Cobb이 40년 동안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던 것도 요새 세상에는 조금 예외적이고…  그래도 정치적으로 보면 이곳도 옛날보다 많이 젊어졌고, colorful해 것도 사실이다. 보수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던 곳이 지금은 이상적으로 많이 진보 쪽으로 변한 곳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곳은 family에게는 안전한 곳이다.

 

Medicare 2023, Good Movies Help

내년도 Medicare handbook이 어제 배달이 되었다. 무심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가 오늘 거의 무심코 열어본다. 현재의 plan, Humana PPO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려는 생각이 전혀 없지 않기에 그랬을 것이다. 이런 쪽으로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들이 자기의 plan에는 이것, 저것이 ‘무료’라고 거의 자랑을 하는 듯한 모습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무엇을 손해보고 사는 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못지 않게 싫다. 조금 더 자세히 무엇이 우리 plan에 있으며, 다른 곳으로 바꾸면 무슨 득이 있는지 호기심도 나기에 올해는 조금 더 공부해 보자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역시 이상한 날인가? 거의 무의식 적으로 손과 눈이 가던 YouTube KBS Docu 대신에 Roku Channel에서 잊고 살았던 오래 전의 영화를 보았다. All the President’s Men.. Robert Redford, Dustin Hoffman.. 아~ 추억이여. 50년 전의 big news, Watergate.. 그 당시의 각종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영화 속의 전설적인 두 신문기자들의 hair style과 멋지게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습, 육중한 고철 typewrite를 두드리는 모습, 역시 70년대의 그것들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보다 뒤에 나온 영화고, 내가 본 것은 또 그 이후지만 역시 기억은 Nixon의 모습이 어른거리던 1970년대 초, 중반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작된 Roku free movies에서 그 동안 한참 볼 수 없었던 영화 The Groundhog Day를 찾았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또 볼 수 없는 영화라고까지 하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은데… 아~ 저녁기도 시간이 다가오니… 어쩔 것인가? 또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의 함정으로 빠진다. 결국은 오늘 저녁기도를 skip하기로 하니.. 오늘은 조금 이상한 날이 되었구나. 하지만 아주 후회는 안 한다. 이런 ‘깜짝 변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Where is the beef, Wendy?

오늘 모처럼 집 근처 Wendy’s 에 들러서 Dave’s Single을 drive-in order해서 집에 와 침을 흘리며 삼키려고 살펴보니 무엇인가 얇고, 가볍고 맛이 아주 예전과 다른데… 와~ 이럴 수가 있는가? Patty, 그러니까 beef가 빠진 것이다.  그야말로 몇 십 년 전, 정확하게 1984년경,  Wendy’s TV 광고에 보이던 조그마한 할머니의 외침, ‘Where is the beef?’ 바로 그 할머니가 오늘은 우리, 정확하게 연숙이, 가 된 것이다. 집에 왔으니 다시 그곳엘 가는 것 귀찮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 연숙이는 즉각 튀듯이 되돌아가서 새로 hamburger를 받아 돌아왔다. 하지만 광고의 할머니처럼 Where is the beef?라고 외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기가 빠진 hamburger를 보고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당황을 하더니, 실상을 알아차린 그들도 놀랐다고… 물론 이것은 local manager의 실수겠지만, 덕분에 그들도 한참 웃었을 것을 그려본다.

사실 이 comic하기도 한 episode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그 유명한 광고에 대해서 Wikipedia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은 그야말로 megahit한 ‘역사적 광고’의 하나로 남아 있었다. 1984년경에 시작해서 아직도 보이는 것이고 그야말로 이 Where is the beef?  역사를 모르면 간첩으로 오인 될 수도 있을 정도… 

1984년 이 광고는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들 사이에서도 인용이 되었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Gary HartsWalter Mondale의 debate에서 Mondale 이 이 표현으로 상대방 Gary Harts의 선거공약의 quality를 비난했을 정도였으니까… 또한 이 광고에 등장하는 할머니들, 특히 소리를 지르던 작은 할머니는 이후로 유명인 되었고… 아~ 1984년의 기억들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그 당시 미국의 느낌, 정취가 되살아나는 듯…

 

1985, Thirty Seven Years Ago…

나라니 생일, 과연 몇 살인가? 새로니는 내년 1월이 40세, 그러니까 나라니는 37살인가? 그래도 아직 40살이 안 되었구나. 요새의 40세와 우리 때의 그것은 분명히 또 다를 것이니까, 아직도 긴 행복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구나~

 모든 regular routine이 완전히 중지된 날, 나라니 37세 생일을 맞아서 우리는 대신 로난과 Senate와 잠을 자게 되었다. 이것도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피곤하고 무표정의 나라니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것과 더불어 나와 나라니의 사이를 다시 생각한다. 새로니와 다른 점이 있다. 무언가 서먹서먹한 것이다. 왜 그럴까? 나도 그렇게 나라니도 마찬가지..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는 것, 왜 그럴까? 어떻게 이것을 허물 수 있을까?

오늘 나라니 부부가 떠난 후 로난과 개 Senate, 세넷만 남았다. 당장은 물론 엄마, 아빠가 보고 싶겠지만 곧 잊고,  1년 전에 녀석이 자주 보던 Dave & Ava children’s video를 눈이 빠지게 본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흐르며 아이는 무섭게도 자란다…

Saint and Dogs & Dr Pepper

Sam’s Club… 이곳에 오면 예전에는 wine, beer, margarita 같은 것을 고르는 것으로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제한적 단주 선언’ 이후에는 할 일이 없어졌다. 대신 책이나 잡지 등을 보는데 모든 시간을 쓰게 되었지만 예전의 Costco와 달리 이곳은 정말 볼 것이 없다. 그래도 LIFE같은 magazine special 은 표지로만 살피곤 했는데 오늘은 유별나게 두 issues 가 나란히 보였다. 하나는 St. Mother Teresa, 또 하나는 Dogs 에 관한 것.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주제[인간과 동물]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 아닐까?

Mother Teresa는 이제는 성녀가 되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계실 당시부터 이미 성녀이셨다. 자선을 하며 산 성인성녀’급’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 마는  마더 데레사는 무엇이 특별하기에 이렇게 아직도 ‘인기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즈음 들어서 부쩍 이 성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이 성녀에 대한 책도 많이 있긴 했지만 이제야 조금씩 나의 눈과 귀를 열고 다가가는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수려하게’ 생긴 개, 성녀 못지 않게 그들을 사랑한다. 특히 고양이와 더불어 그렇다. 왜 나는 젊었을 때부터 더 가까이 하며 살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된다. 왜 내가 이렇게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솔직히 나는 그것이 신비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전에는… 분명히 나는 영성적이 차원에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생각, 그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까지 생각하게 되니… 예전에는 예쁘게 생긴 그 모습을 귀여워하고 좋아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절대 아니다.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들을, 따라서, 학대하거나 관심이 없는 부류의 인간은 정말 싫어하게 되었고 불쌍하기 조차 한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했는지, 나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결론은 분명하다, 죽는 그날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아~ Dr Pepper! 아~ 이 독특한 맛, 얼마만인가? Sam’s Club에 간 김에 점심을 pizza와 Dr Pepper로  이곳에서 해결하며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를 이곳에 살면서 크게 변한 것이 바로 이 pizza와 soft drink 습관의 변화가 아닐까?  반세기, 반세기… 일년에 한두 번 정도 갖는 이런 맛의 기억들, 역시 이것도 추억의 자취들이다. 특히 Dr Pepper는 더욱 그러하다. 50년 전 이 땅에 떨어졌을 당시 처음 경험했던 이 uncola soft drink는 그때의 ‘맛과 때’를 사진처럼 기억을 해서, 나의 기억박물관에 소장이 되었다. 그 당시 처음 우리에게는 ‘빈대약 맛’으로 불렸던 Dr Pepper는 아직도 건재한 모양, 덕분에 오늘 50년 전을 회고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주었다. Thanks, Dr Pepper!

YMCA gym indoor track, 30분 정도 걷고 나와  swimming pool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서 ‘부러운 사람들,  그러니까…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옆으로 내려다 보며 밖을 보니 건물입구 쪽으로 커다란 나무 하나가 보인다. 이것이 가을이 오는 색깔을 보여주는 편리한 신호 역할을 한다. 며칠 전부터 미묘하게 천천히 노랗고 빨갛게 변하기 시작하는 듯, 아~ 역시 자연의 신비다.

 

Cobalt Blue Cobalt Blue…

초가을 습기가 완전히 걷힌 후, 아~ 바로 이것이로구나.. 푸른 색보다 더 푸르다는 cobalt blue. 찬란한 태양이 떠 있는 공간은 정말 보기 드문 deepest blue 바다였다.

너무나 너무나 짙푸른 하늘에 취한 기분~ 어쩌면 하루 아침에 날씨가 완전한 가을로 돌변을 했을까? 아무리 더위를 찾으려 해도 무리 무리~  덕분에 시원하게 운동 삼아 front-side lawn trimming을 즐겼으니.. 이 작업에 최근에 나의 몸을 유지시켜주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걷는 것은 아니더라도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적당하게 근육도 쓰고 걷고 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일기예보까지 세속뉴스와 더불어 안 보기 시작한 이후,  조금 불편한 것이 다음날 날씨의 동향인데, 특히 이즈음은 새벽의 기온이 궁금하긴 했다. 그래도 굳세게 안 보는 이유는 내면의 평정을 위한 웃기는 전략인가? 오늘이 그런 아침이 되었다. 바깥 기온을 보니 60도가 안 되는 것! 아하~ 이제야 말로 가을 새벽을 대비한 옷들을 조금씩 바꿀 때가~~~

Fall blends, Pumpkin Spice ground coffee의 package그림들이 그렇게 멋진데, 이제야 말로 그 그림에 걸맞은 맛과 멋들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1 cup coffee brewer로 Fall Blend를 작고 귀여운 tea cup으로 마시는 즐거움을 맛본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부터 가끔 눈에 뜨이는 YouTube video 중에 KOREAN DIASPORA 란 것이 있어서 몇 편을 보게 되었는데, 주로 ‘고려인’들 이야기였다. 처음엔 고려인의 뜻도 확실치 않았지만 이제는 물론 아주 친근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 개개인들의 사연을 보며, 기독교 성경, 특히 구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유민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전쟁, 패전 등을 겪은 후 강제로 이주된 그들이 Diaspora의 전형, 원형이라고 짐작을 하니까..  현대판 Diaspora는 그 옛날처럼 잔인한 것은 아니더라도 집단적으로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비슷할 것 같다. 고향을 그리는 인간본성은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처럼 자진해서, 원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도 사실은 예외가 아니다. 고향을 떠난 도미渡美50주년이 맞는 내년, 지나간 추석 등을 떠올리며 나도 사실 고려인의 한 사람이 된 환상에 빠진다. 어쩌다 내가 고향을 떠났고, 내가 사는 이곳은 과연 어디인가…  과연 고향, 고국, 조국, 민족, 동포란 나에게 무엇인가… 눈물을 참거나 닦는 괴로움도 있지만 사실 그것이 자연스런, 정상적 반응이 아닐지…

 

C 베로니카 자매의 100권 책 선물더미 중의 하나, Eckhart Tolle의 2000년대 초 best seller, The Power of Now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게 되었다. 통상적, 전통적인 SELF-HELP 류의 심리학적인 책이라기 보다는 전통 종교의 공통분모를 절묘하게 경험에 의한 분석을 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에 든다.  최소한 영성, 전통 종교에 바탕을 둔 것이 제일 호감이 가고, 더욱 특정한 교리, 종파, 종교에 국한되지 않은 그야말로 가톨릭이  Universal Church라고 하듯이 범 영성을 추구하는 듯하다. 게다가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이어서 추상적, 초월적 느낌을 떠나 내가 지금이라도 실험해 볼 수 있는 실용성까지 제공하니 얼마나 신선한 방법인가? 기대를 하며 10월 내의 빠른 완독을 향해서 나아가고 싶다.

 오늘은 조금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려서 밀리고 밀린 일들 중에서 kitchen sink 밑으로 관심을 쏟았다. 이곳의 일, 제일 싫은 작업 중의 하나다. 몸의 위치가 아주 고약해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첫 번째 할 것이 power outlet의 위치를 바꾸는 것, circuit breaker를 열어야 하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늘의 성과는 그 첫 관문을 통과한 것, 결국은 power outlet의 위치를 아주 적당한 곳으로 옮기는데 성공을 했으니, 나머지 남은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연숙이 새로니, 유나 집에 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아하! 그것이구나~ KEURIG coffee machine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은근히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이긴 했다. 그 집에 갈 때마다 손쉽게 맛있는 커피를 눈 깜빡 사이에 만들어 마시는 것이 은근히 부러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어서 나도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애가 더 비싼 model이나 카푸치노 machine을 새로 산다고 우리보고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새 것을 산 모양이어서 우리에게 오늘 온 것이었다.  이 machine이 상당히 오래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리 쉽게 고장이 날지는 의문이지만, 커피가 제 맛을 낼 좋은 계절 가을을 시작하면서 아주 좋은 ‘고물’ 선물을 받은 셈이다.

 

Surreal 9/11, Patriot & Grand~ what?

오늘이 그 악몽의 nine-eleven [Patriot Day] 이란 것을 오늘 아침에야 새삼 깨달았다. 21세기가 진짜로 시작되었던 2001년… 나이 50을 얼마 전에 넘었던 그때, 어찌도 세월의 위력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시간의 마력, 매력, 허구성… 그때의 그 일들을 어떻게 잊고 살았단 말인가? 어제처럼, 아득한 태고처럼 동시에 느껴지는 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망각과 기억의 계곡을 살고 있구나…  Enya 의 hit tune, Only Time이 하루 종일 장송곡처럼 흘러나오던 이 순간순간 들은 역사적 교훈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모두 망각의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싶은 것들이다.

 

이쪽 온 지역이 온통 구름으로 덮인 9월 11일…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던 2001년의 9월 11일과 대조적… 어쩌면 그날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아마도 전 지역이] 어쩌면 그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을까? 영화나 만화보다 더 잔인한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던 그 아침 무렵, 솔직히 다시  생각은 물론이고 추측, 회상하기도 진저리가 난다. 그런 세월은 나 개인 차원으로도 슬프고 고통스런 나날의 시작이 되었고… 뒤의 이야기는 한 권 소설의 한 장을 이루는 역사가 되었다.  다행히 20+ 년이란 세월의 도움으로 고통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 어두움의 보상일지도 모르는 드높은 차원의 세계를 알게 되고 만날 수 있는 행운의 끝머리를 잡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그렇게 Patriot Day는 기억을 하는데, 오늘이 Grandparents Day란 것은 조금 comic하게도 보인다. 이런 날이 있었던가?  그렇구나, 우리는 분명히 grandparents니까, 조금은 자축을 할까? 모든 grandparents 들… 누가 있나? 주위에… 많을 것이고, 참 힘든 humanity로써의 의무를 다하시느라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주일 미사는 Patriot Day와는 전혀 역사가 다른 추석 미사를 맞았다. 전통적인 ‘추석상 차림’ 의례가 미사 전에 치러진 것이다. 비록 엎드리는 절은 아니어도 성묘의 느낌은 충분하다. 중국의 중추절을 언급하는 중국사목 이력의 ‘중국 통’ 신부님, 미국의 오랜 전의 국가적 고통인  9/11을 뉴스로 듣긴 했겠지만, 피부로 실감할 것은 무리인가? 전혀 2001년 오늘 일어난 일은 완전히 잊는 듯하니..  지역사목을 위해서 그래도 조금은 추억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었을까? 한번 떨어진 ‘인기점수’가 만회되는 기회를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오늘로서 Living in the Mindful Universe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2018년 년 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것, 그러니까.. 3년이 훨씬 넘은 뒤에야 다 읽은 셈이다. 저자의 생각이 비교적 잘 전달된 듯하고 대강 그의 주장을 일단은 알 수는 있다. 제일 나에게 다가오는 공감은,  ‘이성적 과학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성적 실재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서술이다.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할만한 지식이 나에게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아니 상식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의 주장이 ‘제발 제발 100%’ 맞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완독 후 나의 바램이라고 할까…

며칠 째인가YouTube video의 계절배경음악, Vintage Autumn Music을 아예 전부를 계속 듣는다. 비디오 그림은 1950년대 각종 잡지들에서 온 것이고 음악은 그 당시의 crooning style의 정겹게 느린 ‘가을 곡’들… 우연히 주제들이 모두 9월, 비, 낙엽 에 상관된 것들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심취했던 것들이 이제 고스란히 우리세대, 나에게까지 온 것인데, 놀란 것은 완전히 우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실… 결국 세대는 시대를 뛰어넘으며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늙음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아니 쉽게 경험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초가을의 모습이 보이고 느껴지는 오늘 가만히 밖을 보니 그렇게 정돈된 잔디가 예전처럼 깨끗하게 보이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니.. 아하~~ 마른 나뭇잎들이 적지 않게 깔려 있구나~ 그 위를 보니 역시 dogwood 의 가지의 푸른 잎새들의 색깔이 주황색 쪽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낙엽 계절의 아주 시발점을 포착한 것이다. 조금 더 진행되면 이제 잔디 일을 하는 노고는 줄어들 것인데… 솔직히 섭섭하고 시원하다고 할 것인지..  이제 차가운 비바람만 한 번 불면 걷잡을 수 없는 낙엽의 장관이 펼쳐지며 9월은 시월로… 친구 양건주의 ‘잊혀진 계절’의 순간이 다가오는가~ 아~ 세월의 신비로구나.

Young Queen Elizabeth, Rest in Peace

Elizabeth, Queen, Elizabeth! 편안히 잠드소서.. 연옥을 안 거치는 천국 여정,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여왕이 타계한 때가 9월 8일, 그날은 성모님의 생일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모든 것이 다 우연이 아님을 이 나이에야 깨닫는다. 이 여왕은 나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나의 세계사에서는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여왕은 언제나, 항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2/3년, 나의 기억력 한계점, 이후로 항상 나의 ‘막내 이모’같은 여왕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그의 첫아들, 찰스는 나와 생년이 같은 1948년의 인연으로 항상 나와 함께 자라던 세대, 이후로 그의 결혼과 그의 가족사는 나의 그것과 함께 비교가 되곤 했다. 그가 이제 공식적으로 King Charles III로 불리는 명실공히 영연방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으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나와 동갑, 그의 건강상태는 잘 모르지만  보이는 자태로 분명히 우리 세대에 비해서 장수할 것 같고, 그렇기를 바란다.

 

오늘은 뜻밖에 로난과 나라니가 갑자기 놀러 왔다. 갑자기 심심해진 모양이라고 추측을 했지만 나중에 돌아간 다음에 알고 보니 로난과 우리가 조금 더 친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가끔 보고 살긴 했지만 아이의 기억에서 우리가 많이 멀어진 것을 우리도 알고 있기 했다. 역시 오늘 녀석을 보니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랑비가 올 듯한 날씨에 녀석을 데리고 playground 에 갔다 왔는데, 1년 전의 그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 그 때는 걷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문제가 없고, 대신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등, 사실 짧은 거리를 걸으며 나도 불안하고 힘이 들었다.  자기 마음대로 걷는 녀석과 지나가는 차를 같이 보니 정말 고역중의 고역.  이렇게 두어 시간 같이 보냈지만 그것이 다시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의문…

 

 

Favorite Web Links, An Evolution…

얼마만인가? 나의 personal web landing page: personal www links, 이곳을 나는 거의 잊고 살았다. 이곳에 있는 각종 website links들은 이제 10여 년의 무게를 가지고 진화를 하고 있는데, 근래에 들어서 조금씩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몇 개, 특히 bill paying sites같은 곳은 가끔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나머지 것들은 이제 서서히 잊혀져 가는 듯 싶다. 십여 년의 세월이 어디 짧은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favorite website의 진화, 변화가 있었는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links들이 꽤 많이 보인다.  그 중에는 이제 거의 관심 밖으로 나간 것들도 있고, 아직도 자주 찾는 곳들도 있다. 요즈음에는 technical site엘 거의 가지 않았기 그쪽은 정말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그 동안,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관심사가 변했다는 말인데… 나 자신도 놀랄 뿐이다.

오늘 쪽에 나열된 것, Technical/Social Links들이 이제는 거의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들이다. Technical 은 물론 나의 관심사가 그곳을 거의 떠났기에 당연한 것이고, Social한 것은 아예 모든 것들이 Google/YouTube로 진화가 되었으니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제는 이곳은 거의’추억의 가치’만 생각하게 되었다. NerdVittle’s VOIP이란 곳, 2000년대 말기까지 내가 심취했던 곳, 이제는 완전히 관심을 끊었다. PC에서 mobile쪽으로 옮겨간 여파가 이곳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대신 나의 favorite links쪽은 지난 decade에 나의 관심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탯줄’역할 을 했던 곳이다. 제일 바빴던 곳이 WIKIPEDIA, COURSERA, YOUTUBE, WORDONFIRE, CATHOLICTV 등등으로 집중이 되었으니, 사실 이런 LINK LANDING PAGE가 이제는 거의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근에 더해진 곳이 ‘조중동’ sites인데 너무나 고국정세를 무시하고 살았던 긴 세월이어서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외계인 site를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아직도, 아직도 선뜻 손이 가지를 않는다.

YMCA gym 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흔히 이런 모습을 본다. 분명히 벽에는 NO CELLPHONE PLEASE!라고 적혀 있기에 우선 신경이 쓰이지만, 이 젊은이는 그런대로 얌전한 편이다. 사적인 대화를 earphone으로 조용히 하고 있고, 무언가 급한 것을 check해야 하는 전형적인 요새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가끔 정말 지독한 얌체들,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부류들이 있고, 그런 모습을 보면 운동을 하는 혜택을 완전히 상쇄하는 나쁜 효과를 느낀다. 이럴 때마다 불과 20여 년 전 정도로 돌아간 ‘덜 바쁜’ 세상을 잠깐만 회상해도 조용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마디로 mobile phone etiquette의 문제를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운동하는 그 시간만이라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없는 탓이다.

 

 

J. Peterson’s God and Christianity…

‘Jordan Peterson, God, and Christianity’,  이 책을 산지도 일년이 지나갔는데 이제야 겨우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관심이나, 흥미가 적어서 그런 것보다는 다른 책들 쪽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역시 현재 인기가 많은 ‘인기인’ 개인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관에 관한 것이라서 우선은 Jordan Peterson 이란 사람을 더 알아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하지만 현재 YouTube를 통해서 지성인 중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완전히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고 공언을 하였기에 더 이상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가장 커다란 무기는 역시 그의 ‘첨예한 지성’이고 이 책은 그의 기본적인 성경 해석을 분석한 것이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제 읽기를 시작했지만 현재의 느낌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완독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오늘은 짬이 나는 대로 Coursera course를 청강하는 기회를 얻었다. 바로 시작한 것, Atlanta Emory University 신학대학에서 제공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성서적 기원’이 주제다.  이것에 관심이 간 제일 큰 이유는 구약,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prehistory 선사시기의 학문적 역사적 사실과 구약의 차이, 관계가 궁금했던 것인데, 이것도 역시 과학과 신앙의 대비, 차이, 대결이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 침실, 해가 중천에라도 뜬 듯한 대낮 같은 밝음, 어찌된 일인가? 시계를 보니 8시가 훨씬 넘었다. 몸이 개운한 듯 느껴진다. 아~ 그렇구나, 평상시보다 거의 한 시간 이상 늦게 일어난 것이다. 평상처럼 깜깜한 속을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나의 모습이 없어서 편하기도 하고..

너무나 초현실 같이 꾸었던 꿈들도 너무나 선명한데, 이번에는 거의 확실하게 뇌세포에 남아 있다. 우연인가, 이것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100% 분명한 것은 ‘박종섭’이란 동창의 얼굴과 이름 뿐이지만,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아마도 하루 종일 생각거리가 되지 않을까?

몸이 개운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어제 운동한 것과 그 후에 Tylenol 2알의 결과일 것 같다. 과도로 쌓여가는 피로가 어제 절정에 달했고, 오늘 아침의 oversleep으로 풀어졌다고 결론을 내린다.

오늘은 아침 미사를 못하게 되었다. 연숙이 새로니 집에 갈 약속이 되어 있기에 그렇지만,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심리적 도움’을 받아 오늘 나도 편하게 피로를 풀게 되었고, 선명한 꿈까지 꿀 수도 있었으니까, 큰 불만은 없다.

그런데… 왜 박종섭인가? 허~ 이것이 문제다. 재동국민학교, 중앙 중고등학교, 그리고 연세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동창은 사실 드문 케이스일 것이지만 그와 친해본 적은 한번도 없으니.. 키가 큰 그룹에 속했던 그와 말도 해본 적도 없다. 나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도 역시 내성적이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기억할만한 것이 거의 없는데, 언젠가 그가 미국에 있는 한국의 Hynix란 반도체회사의 사장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인데, 그의 변신이 아마도 나에게는 커다란 놀라움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물론 샘이 날 정도로 부럽고, 다른 쪽으로는 자랑스러운 그런 묘한 심정이었다. 그는 중앙고등학교 3학년 때 나와 같은 반, 그러니까 ‘이공계’반이었는데 어떻게 연세대에서는 인문계 (아마도 상경계) 쪽으로 공부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정도면 크게 성공한 동문인데 동창회 쪽으로 그의 이름은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도 조금 의아한 사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모습은 뇌리의 어느 곳에 있었을 터이지만, 왜 그가 오늘 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일까? 정말 우연 중의 우연일까?

 

오늘은 연숙의 스케줄 때문에 부득이 미사를 쉬게 되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도 유연성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유리하니까 할 수가 없다. 대신 몇 년 동안 하지 못했던 pressure washer로 집 정문 쪽을 deep cleaning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Hedge trimming 까지 할 수 있었던 것, 오늘의 건조하고 시원한 날씨 덕분이었다.

연숙이 Ozzie를 새로니 집에서 데리고 왔다. 새로니 식구가 내일 여행을 간다고 오늘부터 Ozzie를 봐달라고 한 것, 오늘부터 내주 수요일까지,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녀석과 매일 산책하는 것도 몸에도 좋으니까…

 

 

Remembering Young Ones, Friends…

1973년 6월 초 김포공항… 오른쪽 끝에 건장하고 훤칠한 모습의 김원규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우진규, 김호룡, 정교성, 이종원, 박창희, 신창근, 이진섭, 이경증… 원규는 하늘로 며칠 전에 갔고, 나머지는… 모두 어디에..

며칠 전 사망, 타계한 김원규..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조금씩 되살아 나오고 결국은 공항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까지 발견하였다. 그것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호룡이, 교성이, 우진규 등과 같이 어울린 기억, 또한 그의 친구였던 박승호의 결혼식도 갔던 것, 그의 소개로 미국에서 박승호의 도움을 받았던 것 등등..  하지만 원규와는 중앙중고 6년을 통해 한번도 같은 반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활달했던 그의 성격으로 잘 알려졌지만 나와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안 적은 없었다. 당시 서울시 교육감의 이름과 같아서 아이들이 그를 교육감이라고 불렀던 것도 기억을 한다. 그러니까 졸업 이후에 호룡이, 교성이 그룹을 알게 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정교성도 마찬가지지만…  근래에 양건주와 만난다는 소식을 접해서 연락처까지 알아서 카톡으로 재상봉을 했는데, 녀석은 용케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 어머님을 만났던 것까지 회고를 해서 내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다. 하지만 폐암말기로 투병하고 있음을 알았고 비록 그는 신자가 아니었지만 매일 저녁기도에 그의 완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정성이 모자랐던 듯하다.  내가 신세를 졌던 박승호가 환갑도 되기 전에 타계했다는 것도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그마저 가버리다니…  이번에는 정말 조금 외로워진다. 하나, 둘, 셋… 모두 떠나는 것을 보니… 예전과 다르게 유별나게 외로워진다.

원규에 대한 기억이 더 살아난 것 중에… 결혼식에서의 기억이다. 호룡이, 교성이 그룹과 어울리며 원규도 같이 만나게 되었는데 한번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중앙동차 박승호의 결혼식엘 가게 되었다. 그 결혼식의 사회를 김원규가 보았는데, 그 사회 솜씨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나는 것, 결혼식이 끝나며 신부신랑 퇴장 시에 사회를 보던 원규, 무슨 군대식 호령인지… 앞으로 갓! 하며 고함을 친 것이 아직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는다. 후에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그와 친한 박승호를 소개받아서 LA에 도착해서 큰 도움까지 받았다. 며칠 동안 여행도 하며 신세를 진 것이다. 얼마 전 원규에게 박승호가 환갑 전에 타계했다고 알려주어서 상당히 놀랐었다. 또 다른 기억은 1975년경 잠시 귀국을 했을 때 이번에는 원규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의 결혼식엘 갔었던 것이 기억에 또 남는구나…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원규를 본 때가 되었으니… 이후로는 교성이, 호룡이, 그리고 최근에는 양건주를 통해서 원규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고 있었고, 얼마 전에는 원규와 카톡으로 개인적인 연락이 되어서 매일 그를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하느님이 그를 더 빨리 원하셨는지.. 우리를 떠났구나… 원규야~ 비록 하느님을 우리와는 다른 식으로 믿지만 저 세상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니 부디 우리들을 기다려 다오.

 

Through Classic Old Summer

Holy Family 동네 미국성당 9시 아침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여름을 가는 대성전 후면 거대한 유리창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진하디 진한 초록색의 현란한 색상을 담고 싶었는데, 결과는 역시 ‘십자고상’이외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은 질책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시각적 유혹은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중복을 넘기며 본격적으로 휴가들을 떠났는지 미사에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아마도 이런 조용한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을까?

여름다운 여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올 여름, classic summer.. 그래 이런 여름이 30+ 년 전 이사올 당시에 느꼈던 그런 것 아닐지.. 여름은 사실 여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사실 조금 여름답지 않게 너무나 시원했던 몇 년을 보낸 듯하다. 일어나서 밖의 기온을 느껴보니 역쉬~ 76~77도, 와~ 정말 중복 복더위 여름이로구나… 지난 밤에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래… 여름다운 여름을 가급적 납량하는 기분으로 즐기자…

내가 세상 [정치] 뉴스를 피하며 사는 것이 벌써 12일째라고?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다. 아침의 NYT newsletter email에서 한 줄의 소식만 재빨리 보는 것이 전부니까… 그것도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보고 있다. 최소한 그곳에는 사실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없으니까… 어제 저녁 순교자 성당의 한 친목단체에서 받은 카톡 메시지, 웃기지도 않는 아이들 장난이 분명한fake message를 바보처럼 그대로 마구잡이로 보낸 것을 보니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영국 엘리자벳 여왕이 한국에서 은퇴여생을 보낸다..”고?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결국은 근래 각국의 정치판도에도 이런 바보천치들이 많이 투표자로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정말 한숨이 나온다.

오늘의 YMCA workout, summer camp가 끝나는 듯, 아이들의 talent show가 indoor track에서 한창이었다. 때문에 걷는 것은 복도에서 조금 흉내만 낸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muscle workout의 시간이 더 생겼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각종 근육에 생기가 느껴지지만 아직도 보기에는 별로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며칠 째 계속되는 ‘폭염’ 더위, 하지만 우리의 몸은 거의 완전히 적응이 된 상태가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가급적 몸을 쓰는 바깥일은 중단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대신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들을 즐기는 편안함이 있으니 이것도 이런 때에 살맛이 나게 하는 것 아닐까?  납량물 역할을 하는 것 중에 ‘역사물’이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고 지금은 자연과학 쪽을 기웃거린다. 오늘은 그것의 하나로 Brian Greene의 WSU lecture: Special Relativity 에 관한 것인데, 몇 년 전에는 완전히 수학에 의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것은 수학이 완전히 빠진 것이어서 조금 더 ‘느낌’에 의지한다고 할까…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수학이 빠진 것이 더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다. 거의 현상론, 철학의 경지라고나 할까… 이것도 멋진 납량물 역할을 하니… ‘전설의 고향’에서 ‘상대성 원리’의 급격한 진화는 너무나 재미가 있다.

우리부부의 저녁기도, 환자명단 1번에 있는 중앙동창 김원규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 [교성이, 중앙57회 카톡방] 날아들었다. 그렇게 활발하고 친절하게 나의 카톡에 답신을 하던 원규, 김원규…  항암치료를 잘 받으며 아주 밝게 투병을 하는 그의 자세가 참으로 나도 배우고 싶었다. 그의 자세한 성격은 거의 다 잊고 살았지만 예전의 그와의 짧았던 인연도 아련히 떠오른다. 하지만 기도 중에 그렇게 완치를 기원했는데..  너무나 암담하고 슬프기만 하다. 특히 우리 동년배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타계, 선종하는 것이 상상외로 나를 외롭게 만든다. 원규는 크리스천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마도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서 영생의 세상으로 갈 것을 그려본다. 어차피 우리들 그곳에서 다 재회할 것 아닌가? 가족들,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편히 쉬게, 친구야~~

 

Heat-Index Advisory, Shakeup Day …

오랜 만에 Windows Weather App에 warning sign이 뜬 것이 보인다. 혹시, severe thunderstorm이면 나는 오히려 기대했을 것인데, 반대였다. 올해는 웬 놈의 heat-advisory가 계속해서 놀라게 하는가? 하지만 오늘 것은 전번의 100도까지 위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heat-Index warning이었다. 온도보다는 습도에 관한 것이었다. 따가운 태양열보다는 물기가 가득한 공기가 더 문제인 것, 이것은 a/c의 힘이 필요한 것, 그것이 물기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tool이 아닌가? 그래 실내에 있으면 그런대로 잠은 잘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래 전 1971년 7월 서울에서 밤잠을 못 잤던 것, 또한 Chicago 1975년 초여름 때의 기억도 생생하구나… 에어컨 없이 밤잠을 못 잤던 추억… 아~ ‘진짜 정말’ 오랜 전이구나…

Heat advisory를 보고 겁을 잔뜩 먹었지만, 사실상 얼마 전 것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었다. 습도가 예상보다 높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가급적 바깥에 안 나가려고 했기에 오랜만에 나의 desk에 앉아 있게 되었는데, 나쁜 생각들을 계속 멀리하고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긴 했지만 나를 그런대로 안정시킨 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역사물’ video를 보는 것이었다. 요즈음 식사 때마다 둘이서 같이 보던 ‘납량물, 전설의 고향’류 YouTube vidoe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이 역사물에 납량물 보다 훨씬 가슴과 머릿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분명치를 않다. 왜 역사물 을 보면 더위를 잊게 되는 것일까? 여기서 역사물은 물론 나의 조국의 것이다. 그것도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왜 고국의 산천과 옛날을 생각하면 시원함을 느끼는 것일까…

‘역사스페셜’ 1990년 말부터 방영된 유인촌 진행의 이 ‘대하 시리즈’는 한마디로 내가 태어난 조국 역사공부의 classic이 되었고,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그 2000년대 이후로 계속된 프로그램들도 보았지만 첫 번 것과는 다른 느낌, 질적으로도 못 미치는 듯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이어진 HD 역사스페셜, 물론 video quality [DVD class]는 현저하게 선명해졌고 내용도 새로운 것이었지만 한가지 흠은 역시 진행자[고두심이란 여성]가 아닐지. 워낙 타고난 목소리가 그런가, 어찌나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크고 날카로울까.. 나는 이때마다 sound volume을 내려야만 하는 고역을 치른다. 그런데 그 후  2010년경에 나온 것들을 요새 보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남녀 진행자들의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다는 사실.. 남자는 ‘한XX’이란 사람이고 여자는 ‘엄XX [이외 두 명]’ 인데 솔직히 이들이 전달하려는 ‘역사의 의미와 무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언행들, 특히 의상들이 그랬다. 무슨 상품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차림들, 한 사람은 옷감 선전, 또 다른 사람은 cheerleader나 fashion선전을 하는 듯한 것이 솔직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또한 내용물을 자세히 해설하는 사람은 흡사 20세기 초의 무성영화시절의 변사와 거의 같은 느낌[이 사람의 이름을 나중에 찾았다. 이정구란 사람], 우습기도하고 당혹스러울 정도였으니… 물론 세대차이, 문화적 차이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론은 역쉬~~ 유인촌 version이 왜 classic 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듯하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력… ‘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줄줄이 등장하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미니 스커트의 애 띤 미성숙한 모습들[솔직히 말해서 제작/연출자가 술을 너무 마셨나..하는 의구심까지], 이래서 아예 screen은 안 보거나  꺼버린 채 소리만 틀어 놓고 싶은 충동까지 들 때도 있었으니…

Charlie’s Angels

 

오늘은 사실 미사엘 갈지 말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연숙이 먼저 가자고 한다. 아~ 이것은 솔직히 반가운 것이다. 요즈음에는 많은 경우 내가 먼저 유도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갈 수 있을 때, ‘무조건’ 가자… 라는 생각이 서로 통한 것이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이제는 성당의 아침 묵주기도 team들과도 익숙해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매일미사책과 기도문까지 준 것들이 고맙기도 했다. 묵주기도까지 같은 시간에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오랜 습관 탓에 그것까지는 시도를 못하고 있다.
아침 식사는 연숙이 McDonald’s에 가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인데, 참 고맙게 느껴졌다. 나의 조금은 ‘쳐진 듯한’ 모습을 어찌 모르겠으랴… 며칠 째 이어진 나의 우울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평상처럼 나를 대해 준 연숙에게 나는 정말로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갑작스럽게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부터 며칠 간을 SHAKE-UP DAYS로 ‘선포, 선언’을 하자는 것. 2017년에 나의 main office가 현재의 장소, family room으로 내려 온 것, 그러니까 5년 전이다. 그러면 한번 한바탕 뒤집어 엎어도 될 세월이 흐른 것이다. 많이 적응이 된 것이지만 그래도 한번 새로 대 청소를 비롯해서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특히 현재 주체를 못하고 있는 책, 서류들 그리고 어중간한 모습의 나의 작은 electronics breadboard들… 솔직히 2층의 lab보다는 이곳에서 electronics를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인데… 무슨 좋은idea가 없는지… 이번에 함께 해결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이 SHAKE-UP DAY NO. 1 첫째 날이 되는데, 무엇부터 시작을… 그래, 모두 흐트러진 책들 만이라도 정리를 시작해볼까..

 

Dean & Hutchinson, NATO Responds to Putin…

John Dean, Nixon’s Whitehouse counsel at Watergate Hearing – 1973

아~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 역사적 깡패 Donald 개XX, 쓰레기 같은 욕설,  “I DON’T FUCKING CARE THAT THEY HAVE WEAPONS”… 이 전무후무 역사적 깡패, 쓰레기, 새빨간 거짓, 자기도취, 안하무인.. Son of Bitch.. 대통령 선거 패배 직후에 최후의 발광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증언이 된 것,  그야말로 1973년 여름 거의 매일 TV로 방영되었던 [미국에서 직접 보았던] Watergate Hearing 때의 John Dean의 잔잔하지만 충격적인 그의 Nixon의 모습에 대한 증언과 대비가 될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Nixon은 최소한 공적으로는 대통령 품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도 역시 사적으로는 ‘험한 쌍시옷’의 욕지거리를 했던 것이 나중에 secret audio tape에 남아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그의 전속 counsel John Dean이 신빙성 있게 밝힌 것이다. 그로부터 닉슨은 퇴임의 길로 서서히 들어서게 된 것. 과연 이번에 이 ‘Donald 개XX’의 case는 어떤 과정을 취하게 될까… 물론 그때와 지금은 ‘많은 여건’들이 다르지만, 과연 ‘법’이란 것이 ‘법의 보편적 정신’을 살릴 수 있을지…  나는 이 천하의 ‘개XX’가 감옥에 가는 것보다 다시는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을 더 기대하는데… [이 ‘개XX’가 엉뚱하게 ‘순교자’ 로 역사에 남는 것은 끔찍하다. 아직도 꿈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졸개들이여,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특히 80% 개신교[mostly evangelicals] 신자, 병신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근처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가…]

 

또 다른 세기적 ‘개XX’ Putin 자신이 100% 자초한 unexpected consequence 정도라고나 할까…  섣불리 불장난을 한 것이 긁어 부스럼이 되고 있는가? Buffer Zone 역할의 중립 Finland, Sweden이 ‘적국’으로 만들었으니… 한마디로 ‘병신Putin 개XX’, 쌤통이다~~ 라는 생각뿐이다. 이로서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cold war 시대로 들어가는 듯하다. 완전히 Soviet시절 cold war 판도가 도래한 것이다. 변수는 물론 빨갱이 짱깨중국, strategic challenge라고 지목이 된 이 짱깨들도 피할 수 없는 uncharted territory를 헤매게 되었으니…  이제까지 잠자듯이 세월을 보내던 NATO, 그의 무게는 어떻게 변화를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한데, 유럽 이외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 같은데 대한민국이나 미국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처음으로 Asia-Pacific partners들도 초청을 한 것이 이채롭다. 대한민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국가의 안보상 비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비교적 새로운 지도급의 얼굴들이 국제 무대에서 선을 보이는 기회가 되었는데… 아마도 지금쯤 빨갱이들 북한, 그리고 짱깨 중공, 무척 고심하고 있을 듯하다. 이건 완전한 1950년대의 세계구조가 재현되는 것 아닌지.. 참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더니… 우리에게 그때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른 것이 있다면… 굶어서 허덕이는 김씨왕조 손주XX가 제2의 불장난은 절대로 못할 것, 하지만 미친놈들 돌대가리 논리를 누가 믿겄냐?

‘할 수 있을 때 하자’ 라는 간단한 motto를 따라서 오늘도 아침미사엘 갔다. 아침 묵주기도 팀 멤버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묵주기도와 함께 아침미사를 기다리는 그 분위기가 나는 너무너무 좋고, 은혜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미사 자체에 어떻게 보면 형식적, 의식적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그것은 미사의 진가를 모를 때의 느낌이고 지금은 전혀 다르다. 무슨 마력이나 은총에 이끌리는 듯 몰입하는 나 자신을 보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기적’이 아니겠는가?  현재 나와 우리 부부를 영적으로 지탱해주는 것 중에 제일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매일미사 임을 감사해야 한다. 오늘 Miguel 주임신부님의 강론, Peter & Paul Solemnity, 대축일과 연관을 해서 Roe Overturn 충격을 언급한다. 한마디로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 이런 날이 이렇게 ‘갑자기’ 온 것을 전혀 예측을 못했다는 것, 하느님의 뜻은 이렇게 오묘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뻐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씁쓸하고, 허탈한 것인지… (정치적 배경 때문인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를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벽에 걸린 커다란 ‘성당’ 달력이 wall painting을 한 이후 사라진 탓인가, 요새 어떠한 시기와 날짜를 살고 지나가는지 감각이 둔해진 것인가, 지금은 분명히 6월 말, 마지막 주라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 다음이 잘 안 보이는데… 오늘 새벽 밖을 보니 앞집  Josh집의 trash cart가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 저녁 무렵에 그것이  보이곤 했는데…  이유는 분명히 그 집 식구가 집을 Independence Day 연휴를 맞아 며칠 동안 떠난 것, 그렇다면 연휴~~ 어찌 내가 모르고 있었나? 월요일이 바로 7월 4일이 아닌가? 그것을 완전히 잊고 살았으니…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미래 달력’을 무시하고 살았는지… 완전히 ‘과거와 오늘’에 묻혀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미래는 고사하고 내일조차도 신경을 전혀 이렇게 안 쓰며 산 것은 조금 문제다… 문제야…  그래, 오늘과 다가올 시간들을 조금 더 사랑하고 생각하자.

 

 

분꽃의 추억, Dead Watch Batteries,, Stock/Inflation Woes…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backyard엘 나가니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진초록의 한여름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피어나는 듯한 선인장 하루살이 꽃들, 그리고 근래에 여름에 만발하는 분꽃의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데…

옛날 옛적, 재동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원서동, 가회동 집 앞마당에 피던 각종 꽃들 중에 분꽃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한번도 볼 수가 없었는데, 몇 년 전 연숙이 그 씨앗을 구해와서 뿌린 것이 지금은 뒷마당에서 여름한철 만발을 하고 있다. 꽃 자체보다 추억이 더 감미로웠지만 오늘 알고 보니 ‘한방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Wikipedia에는 그 쓰임새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다. 꽃에서는 명반을 매염제로 하여 남색에 가까운 색깔의 염료를 뽑을 수 있다. 씨는 가루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뿌리에는 이수·해열·활혈·소종의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는 자말리근이라고 부르며 소변불리·수종·관절염·대하 등의 치료제로 사용한다.

 

아침에 손목시계를 차려고 설합에서 꺼내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보니… 1시 34분 24초에 멈추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고른 것, STÜHRLING ORIGINAL 저렴한 가격에 비해 꽤 고급처럼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왠지 재수가 좋아서 오래오래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벌써 문제가? 구입할 당시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물의 크기가 너무 큰 것에 조금 놀라긴 했는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점점 정도 들기 시작했는데, 아하~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battery문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 근래에는 electric car, mobile devices 등으로  더욱더 battery가 필수적 제품 요소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멈춘 것은 조금 실망이다. 역시 DIY의 정신으로 내가 battery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전에 쓰던 VICTORINOX의 battery replacement에서 실패를 한 경험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서, 이번에는 조금 research를 한 다음 시도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것이 성공하면 VICTORINOX도 재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 그것이 성공하면 쾌재를 부를 것인데…

 

지난 주일미사에 가지 못한 것 때문인지 오늘의 주일미사가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졌으니… 장기간 냉담 신자들이 다시 돌아올 때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옛날에 나도 그랬으니까.. 정든 우리자리도 정겹게 보이고 특히 우리 주변의 고정멤버들의 동향도 관심이 간다.

특히 우리 바로 뒷자리의 고정멤버 자매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름도 세례명도 모르지만 이제는 눈인사를 넘어서 정식으로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 자매님은 어떤 교우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는데 물론 시간이 더 지나가면 자연히 의문은 풀어질 것이다.

아가다 자매님 그룹과 두 명의 베로니카 자매님들, 같이 어울리며 아침 coffee를 마셨지만, 역시 나는 조금 외롭기도… 남자라서 그런 것보다 얘기 상대가 없는 듯 느껴지는 것.  이것도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현재의 상황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예외적으로 오늘은 돌아오는 길에 Sam’s Club엘 들렸다. 명목상 ‘우유’를 사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다른 ‘필수품’들도 몇 개를 사긴 했다. 이제는 ‘술과 단 것들’을 안 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살 것이 없었지만 AAA battery는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라 $20 넘는 것, shelf life가 10년을 보증한다는 문구를 보고 사버렸다. 이것은 두고두고 쓰게 될 것이라서 과용한 것은 아니다. 미친듯한 소비품 inflation이 이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라서 cash를 쓰는 것도 따라 신경이 쓰인다.

오늘 coffee 모임에서 안나자매가 ‘주식시장이 엉망,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얼굴에서 비로소 현재의 경제동향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장기투자에만 전념하는 그들 ‘주식부부’ 가 그런 걱정한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긴축 긴축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을 사고 무엇은 절약해야 하는지 조금 심각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War 72 Years Ago, Roe v. Wade 50 Years Ago

전쟁 발발 직후 수원근교로 남하하며 지나가는 피난민 대열

달력을 보니… 25일, 허~ 그것도 6월! 아하~ 육이오, 융요, Yu-Gi-Oh!  1950~2022=72!  정확히 72년 전이구나… 맞다 맞아.. 2살 때 일어난 민족의 비극, 내란, civil war.. 1949년에 시작된 미-소 냉전의 첫 hot war가 왜 하필이면 한반도였던가? 덕분에 원수 같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숙적은 빨갱이 못지 않게 일본이었다] 일본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정말 한민족에게는 살맛이 제로에 가깝던 시대였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우리가 살던 나라였나? 왜 하필이면 우리 아버지를 끌고 가서 ‘애비없는 후레자식’으로 만들었나? 왜 1급 전범이 버젓이 ‘악마의 종자’를 퍼트리며 아직까지 손주XX까지 날뛰는가? 왜 금수강산을 떠나 제2의 조국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나?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한 역사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그 원수들을 ‘흠숭’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동물들인가?

 

오늘 아침의 ‘화두’는 역시 Roe Overturn이 아닐까? 1973년 초의 이 Supreme Court의 ‘낙태 자유화’ 판결이 완전히 무효화가 된 것이다. 이것으로 앞으로 낙태법은 각 주에서 관장하게 된, 이 놀라운 결정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1973년 미국에 올 당시의 ‘낙태 자유화’ 판결, 당시에는 남자였던 이유일지는 몰라도 큰 관심은 없었다. 가끔 나의 ‘잘못으로’ 이러한 낙태결정의 단계까지 간다면… 등등의 상상은 있었을 것이고 한때 그런 아찔한 순간이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을 어떻게 성모님께 숨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호르몬이 왕성했던 20대의 남자였고, 당시 문화, 유행의 산물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생명체의 기적’에 대한 깊은 철학적, 신앙적이 안목이 제로를 넘어서 마이너스 쪽에서 철없이 살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거의 2달 만에 처음으로 ebook posting 작업에 손가락과 머리를 쓰고 있고, 그 첫 결과가 page posting인 토마스 머튼 저 소책자, ‘명상이란 무엇인가‘ 였다. C베로니카가 선물로 준 책들 중에서 제일 쉽게 손이 갔던 책, 2주도 채 안 걸려서 필사가 끝났고 이것을 books & papers menu 에 posting을 한 것이다. 필사본 posting은 사실 ‘대한민국의 출판사 바오로의 딸 소속, 바보 수녀들‘ 의 근시안적인 태도 이후,  잊고 살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바보수녀들의 바오로 딸‘과는 일단 사업적 관계가 없기에 안심하고 posting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