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

썰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의 조용한 아침.. 아이들은 다 늦잠을 즐기고 나는 평상시와 같이 일어나서 아침 ‘일과’ 를 ‘즐기고’ 있다. 언젠가부터 아침 routine 이 자리를 꽉 잡았다.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일어나 부엌의 dishwasher에서 거의 마른 접시들을 제자리에 넣고, 1인분 커피를 끓이고, 어떨 때는 맨손체조도 하고, window blinds를 다 열고, Tobey 밥그릇을 채워주고.. 나의 보금자리 서재로 와서 아침’공상’을 즐긴다. 사순절 때는 거의 ‘성경’에 관련된 일과가 아침 시간을 채웠는데 요새는 그것은 뜸– 해졌다. 그래도 ‘송봉모’ 테이프를 듣기도 하는데.. 이게 정말…

 

성가신 아침 햇살

오랜만에 ‘성가신 아침 햇살’ 이 없는 아침을 맞는다. 왜 그렇게 나는 많은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햇살을 성가셔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의 후반부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아마도 40대 이후가 아닐까) 리고 비가 오는 그런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였다. 이유를 따지면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의 ‘세계관’이 그랬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어둡고 우울한 그런 인생후반을 보내고 있다.  밝음에 노출된 나의 못생긴 모습도 그렇고 아틀란타에 와서 느끼는 한마디로 지겨운 밝음에 의한 피곤도 한몫을 한 걸까. 그래 지겨운 그런 것이다. 반면, 어두움에 깔린 을씨년스러움에서 나는 안락 함을 느낀다. 어릴 때 그 추운 날 따뜻한 이불 속을 연상케 하는 걸까.

어제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몇 주 동안 눈독을 들이던 그런대로 최신판 Mobo/cpu를 mwave.com에 order를 한 ‘사건’이다. 이게 사건이나 될까.. 이 의미는 ‘돈’을 이만큼 지출했다는 뜻에서 사건이다. 변명은 있다. 이것은 ‘오락’적인 것이 결코 아니고 ‘투자’라는 변명 아닌 변명일까…

 

First of May, 1970

며칠 동안 Bee Gee의 oldie, First of May 머릿속을 맴 돌았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을 ‘기록’해둔 덕에 아주 이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왜 아닐까?  거의 신화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그 아름다운 시절을 왜 아니 잊으랴. 용현아, 너는 어디에서 이 시절을 보내고 있냐. 창희야,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친구야, 지금이 어쨌건 상관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더냐.. 부디 어디에서 살건 잘 행복한 나날이 되어랴, 하느님의 도움이 조금 있다면 언젠가 살아서 다시 만나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조그만 소망중의 하나로 만들자.  그래 1977, 1988, 1999, 2000, 2011, 2022… 그 다음의 수열은?

우리 집의 main home server ‘FS’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은 없다  아주 MoBo(Mother Board)를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down-graded쪽으로.  Athlon 2400+ 에서 Intel 600로 강등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게 더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 그 만큼 경험으로 이 Intel 600가 더 문제가 없었다. 현재의 느낌으로는 비록 느려지긴 해도 훨씬 덜 말썽을 부릴 듯 하다. 문제가 있던 Mobo 는 우선 Ubuntu-server 를 올려 놓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대로 Linux는 쓰게 해 주실지.  문제는 Intel600가 실제적으로 512MB max라는 사실. 그러니 무제한의 VM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대로 2 VMs가 간신히 돌게 해 놓았다. 그래서 또 잠시 ‘몽상’에 빠졌다. 최신의 Mobo/CPU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eye-shopping을 즐긴 셈이다. 물론 priority game에서 지긴 했지만. 계산에 $250정도면 아주 그런대로 ‘최신’의 것으로 장만할 수는 있는데.. 이게 또 걸린다. 제일 슬픈 현실중의 하나다.

올해는 ‘축복의 봄’을 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준 것이다. 예상 밖이다. 현재까진 그랬다. 이건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끈끈한 밤은 지독히도 싫지만 그래도 이런 축복의 날도 곁들이니 이게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너무나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어서 나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기 싫다. 나의 능력의 문제인데, 하느님이 나에게 그만큼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 60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내가 잘못 생각을 했는지도.

요새는 자주 송봉모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듣는다. 시작은 모든 home analog media의 digitize의 일환이었지만 아직도 digitize는 시작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듣게 되었다. 오래 전에 YS (이게, 영삼이도 YS구나)가 그렇게 좋다고 권했던 게 생각은 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들린다.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게… 꿈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아주 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꿈은 아주 random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 성서에도 근거가 있지 않은가. 나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하고 더 심각하게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라니 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면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정말 나라니의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몇 달 정도처럼 느껴진다. 정말 빨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부부 모든 자식에게 의무를 우선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도우심일 거다. 나라니도 그런대로 수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