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Daily Archives: October 19, 2011

포근한 가을에서 주룩 거리는 비와 함께 싸늘한 가을날씨가 되돌아온다. 밤새 뒤척거리며 불편한 잠으로부터 싸늘하고 꾸준한 빗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비는 싸늘하게, 꾸준하게, 가끔 세차게, 열어놓고 잔 창문 속으로 소리를 밀어 넣는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에 깨서 일어나 보았다. 아무리 내가 ‘아침 사람’ 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런 이른 새벽에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준비 때가 아니었으면..

 

 어제는 생각해 보니 완전히 하루가 망자의 날이었다. 망자, 망인.. 이럴 때, 한자의 도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죽은 이’ 보다 훨씬 느낌이 고상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니까.. 두 사람의 고인(故人), ‘아들’ 들, 그 중 한 사람은 남편, 아버지.. 나이 61세와 48세의 남자들..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두분 모두 나보다 늦게 태어나고 일찍 돌아가시는 형제님들이다. 한 분은 지난 주에 장례식이 있었고 어제는 연도만 드렸지만 다른 분은 연도와 장례미사가 어제 함께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말기 암’ 선고 받은 지 한 달도 못 돼서 돌아가셨다. 요새는 ‘암’ 이란 것이 너무나 친숙해 진 느낌이고 감정에도 조금은 무디어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레 암의 공격에 항복을 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을까? 그래서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조금은 더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 분들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친지도 아니지만, 느낌은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루하루가 시한부 인생을 산 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을 하는 것이다.

 

 특히 48세에 운명을 하신 윤(尹) 형제님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한창 일을 할 나이.. 여느 48세였으면, 한 가족의 가장이요, 대학에 다닐만한 듬직한 아들 딸이 있었을지도 모를 나이, 은퇴하셔서 아들과 같이 살지도 모를 부모님.. 등등이 상상이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은 ‘통계’에서 나온 흔한 상상에 불과하다. 모든 인생은 다 다른 것이다. 이분의 경우가 그렇다. 우선 미혼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지도.. 또한 경제적으로 왕성하게 일을 해서 얻은 ‘부의 결과’도 거의 없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보였다. 유일한 보람은 서로 뭉쳐서 사는 단출한 가족이 전부였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듣고, 본 것이라 이런 ‘느낌’들이 다 맞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럴 때의 느낌은 대부분 맞는 것을 안다.

 61세에 운명하신 안(安) 형제님은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와 조금은 관계가 있지만, 갑자기 운명하신 것과 집안 식구와의 종교적인 차이로 장례절차에 조금 잡음이 있었다.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고인에게 종교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다. 그것을 고인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이분은 주위에 대가족의 ‘정신적 후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이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주위의 연고가 별로, 아니 거의 없던 윤 형제님을 보내는 것은 우리 ‘레지오가 해야 할 역할을 한마디로 보여준 케이스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 레지오의 정신적 후원과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도와 장례미사, 장지(葬地)동행까지 거의 ‘완벽하게’ 레지오는 사명을 완수했다. 나도 ‘남자’라는 이유로 생애 처음 운구(運軀)의 역할도 했기에 더욱 고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쓸쓸히 보낼 뻔했던 고인도 조금은 편안하셨으리라 굳게 믿는다.

 

인생은 미완성 – 이진관, 80년대

 생각한다. 우리 집은 어떤가.. 가족적으로 외롭기는 아마도 위의 윤 형제님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지인(知人)이나 올까? 범인凡人)으로써는 지나치게 화려한 장례의식도 보았고, 다른 쪽으로는, 고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지나치게 쓸쓸한 의식 얘기도 들어서 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정도껏’ 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나 쓸쓸치도.. 않은.. 그런 것은 없을까? 이래저래, 어제는 삶을 통한 죽음,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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