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012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 지침서

33일 봉헌… 오래 전, 아마도 10년 전쯤일까, 이런 말도 들었고, 책도 본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두 연숙을 통해서였다. 한쪽 귀로 듣고 1초도 채 안되어 다른 쪽 귀로 내보냈을 것이다. ‘전혀’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고, 귀찮기만 한 이야기들로 들렸으니까.

그로부터 10년 뒤로 fast forward한 지금 나는 어떤가? 그것을 지금 ‘체험’적인 적극성을 가지고 대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나로서도 놀라운 자신의 변화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는 더 높은 곳의 뜻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예전 같으면 상상이나 꿈도 못 꾸었을 그런 ‘추상적, 형이상학적, 신비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3일 봉헌, 더 구체적인 말로는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가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저 ’33일 봉헌’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33일 연속으로 ‘관상,묵상,기도’를 하고 그의 결과로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그런 것이다. 비록 매일 혼자서(사적으로) 하는 신심행위이지만, 이 행위자체는 완전히 공개적으로 알리고,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듯 하다.

그런 것이 올해 나에게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자연스레 다가왔다. 예전 같은 콧방귀나 거부감, 무관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고, 나는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보고 싶은 장난기도 발동했다. 종교를 완전히 떠난 ‘세속적인’ 것으로 말하면 Tony Robbins같은 세계적 inspirational coach가 지도하는 $$이 엄청 소요되는 seminar에 ‘개인적’으로 참석한 그런 상황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 기본적인 것은 ‘개인적인 변화’ 그러니까 change인 것이다. 변하지 않고서는 진전이 없다는 대명제가 아닐까? 나도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주 세속적인 ‘낮은 곳’이 아니고 천상의, 높은 곳에서 나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St. Louis of Montfort best Marian classic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 best classic

이 33일의 ‘기나긴 묵상,기도’는 100% 17세기 프랑스 신부님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성인의 ‘작품’이다. 이 분의 성모신심(Marian Devotion)은 정말 역사적인 것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 레지오 마리애 운동으로 현실화 되었고, 근세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일반적인 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 성인의 대표적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은 저술 후 100년이 지난 후에 ‘기적적’으로 발견이 되어서 지금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신심, 방법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신심의 기초가 된 이 신심은, 내가 레지오에 가입하면서 이렇게 자연스레 다가온 것이다. 이것을 접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리아 신심을 비방하는 무식한 사람’들을 내가 전적으로 무시하게 되었다. 비방을 하려면 ‘좀 알고’ 하라는 소리밖에 나오질 않는 것이다.

 33일이 끝나고 봉헌하는 날이 일년에 6번으로 ‘고정’이 되어있어서 이것을 시작하는 날도 그만큼 고정이 되어있다. 내가 시도하는 때는 7월 13일에 시작이 되어서 8월 15일, 봉헌에 맞추어져 있다. 하루 최소, 약 1시간내지 1시간 반이 걸리는 이 신심 행위는 매일 미사를 강력히 권하는 조건도 있어서 아마도 ‘꽤 가치가 있는’ 무더운 여름을 예상케 한다. 나의 하루 일과를 어떻게 이것에 맞추어야 할지는 ‘무조건 해보고’ 조정해 나가기로 했고, 사실 그것이 제일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이런 것은 ‘자세한 계획’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 자신의 ‘천상적’ 변화를 기대하며.. “Totus Tuus

 

 

 

총 33일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1일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일

제 2일

양 진영

3일

제 3일

결단

4일

제 4일

권력과 명예

5일

제 5일

우상화된 육욕

6일

제 6일

지성주의

7일

제 7일

집단적 인간성

8일

제 8일

쾌락

9일

제 9일

거짓과 위선

10일

제 10일

자유에 대한 무절제한 갈망

11일

제 11일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12일

제 12일

생의 마지막 것들

 

둘째 시기 제 1주

자기 자신을 알기

13일

제 1일

자신에 대한 인식

14일

제 2일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

15일

제 3일

내적 죽음

16일

제 4일

이기심

17일

제 5일

교만

18일

제 6일

나태

19일

제 7일

애덕이 없음

 

둘째 시기 제 2주

성모님을 알고 사랑하기

20일

제 1일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와 마리아

21일

제 2일

성령의 정배이신 마리아

22일

 제 3일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그 신비체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23일

제 4일

은총의 중개자이신 마리아

24일

제 5일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

25일

제 6일

묵시록의 여인

26일

제 7일

마리아 공경의 필요성

 

둘째 시기 제 3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기

27일

제 1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

28일

제 2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29일

제 3일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

30일

제 4일

모든 신심의 궁극 목적이신 그리스도

31일

제 5일

세례성사의 갱신인 그리스도께 의 봉헌

32일

제 6일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

33일

제 7일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인호 형, 김인호 형을 다시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찾게 되었다. 실마리는 나의 blog 을 정말 ‘하느님의 뜻’으로 인호 형이 보게 된데 있었다. 시간적으로도 사실 아주 빨랐다. 요새는 가끔 이렇게 surreal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이것도 점점 빨라지고 거대해지는 global information network를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가속화 될 듯 싶다. 비록 전화를 통한 음성은 못 들어도, 가깝게 느껴지는 문자 소식으로 50년이 가까워오는 거대한 세월의 징검다리를 넘는 듯 느꼈고, 가벼운 흥분 감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더욱이 인호 형이 나를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에 더욱 반가웠다.

유명인이었던 박계형 여류 작가의 조그만 신문광고가 이렇게 나를 50년 전 나를 잠깐 가르쳤던 ‘가정교사 김인호’ 형을 찾게 되어서 형의 부인이신 박계형 여사에게도 특별한 감사의 심정을 전하고 싶지만.. 조금 시기상조가 아닐지 모르겠다. 그 옛날, 나는 여사의 ‘청춘 물’ 책을 ‘하나도’ 읽었던 적이 없지만 근래에 들어서 쓰신 책들은 무척 많은 관심이 간다. 특히 이번에 알게 된 여사의 심혈작인 ‘환희’는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대학생과 고교생으로 만났던 때를 50년 훌쩍 뛰어넘어서면 ‘호칭’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비교적 쉽게 그때와 같이 ‘인호 형’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인호 형은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난데 없이 나타난 환갑을 훌쩍 넘긴 ‘동생, 제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곤혹스러웠을까.. 이해가 간다. 활달한 성격이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저 나보고 ‘경우 야..’ 하고 불러주면 너무나 반가울 터인데..

친절하게도 두 번째 편지에서 형의 ‘과거와 종교관’ 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을 보내주셨는데, 아마도 형의 출신고교인 서울고교 동창회지에 투고된 글인 듯 싶었다. “인생은 Given Way“라는 제목의 일종의 ‘고백록’은 형의 고통과 영광스러움이 조화된 아주 멋진 신앙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대강 나의 ‘형이 긴 인생여정에 대한 호기심’ 은 충족이 되었다. 대강 추측을 해 보면 우선 박계형 여사는 천주교 집안 출신이었고, 형은 관면혼배로 결혼을 했던 것 같아서, 그때까지만 해도 교인은 아니었던 듯.. 이 글로 나의 궁금증이 풀린 것은 다음과 같다.

 

  •  나를 가르칠 때 상대생(인문계)으로 왜 그렇게 과학이론을 여담으로 가르쳐주었나 하는 것은, 형이 원래는 서울고교 재학 당시 이과에 속했고, 이공대를 지망했었다는 글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갑자기’ 공대 지망에서 상대로 바꾸어서 진학을 한 것이다. (이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  박계형 여사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원래 형이 6.25 피난시절 대전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 박여사를 알고 지냈던 사이라고 했고, 대학졸업 후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같이 공부를 하던 1965년 형이 서울상대에 다닌 그때에는 사실 박계형 여사와 다시 만나기 이전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히 ‘나중에’ 형의 친구였던 건우형을 통해서 우리 집에 전해졌을 것이다.
  •  인호 형이 직접적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것은 역시 공군 장교 근무 중에 당한 ‘대형사고’ 의 후유증과, 이미 하느님을 알고 있던 문학소녀 박계형 씨와의 ‘운명적인 만남’ 때문이 아니었을까?
  •  그러한 ‘부부결합’ 된 신앙가족이 꾸준히 신앙을 지키게 되었던 것은 다음에 일어난 첫 아기(아들)의 ‘생명을 건 수술’ 이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거의 ‘공짜’로 받게 된 형의 영세도 ‘생각하며 서서히 진행된’ 긴 신앙여정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을 듯하다.
  •  제일 궁금한 것은 역시 형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경영학 이론, dynamic management theory인데.. 단순히 요새의 networked economy를 의식하고 가볍게 만든 것이 아니고, 형의 인생관, 종교관, 세계관 나아가 우주관이 총 집결된 그런 조금은 ‘높은 곳’의 이론이 아닐까.. 특히 엉망진창인 세계경제, 특히 미국의 문제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새로운 ‘절대적 기준’의 이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다신 ‘만난’ 형은 나에게 부인인 박여사의 심혈작 ‘환희 1.2부‘를 보내 주시겠다고 했고, 나는 정말 그 책을 읽어보고 싶다. 이것도 형의 인생 반려자였던 여사의 인생,종교관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인호 형을 처음 우리 집에 소개시켜 주었던 건우 형, 내가 ‘이건우‘ 가 아닌 ‘박건우’로 성을 잘못 알고 있어서 정말 당황하기도 했다. 그저 ‘건우 형’으로만 알고 있어서 성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정말 ‘창피’한 노릇이었다. 나의 어머님이 아직도 살아계셔서 이 사실(인호 형을 찾은)을 알았으면 얼마나 반가워 하셨을까..

 


book, dynamic-management

 인터넷 경제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영학 이론, 김인호 교수와  북경대 교수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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