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November 2012

우리(나와 연숙)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성모님 군단의 최전방 소대,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지난 몇 개월 동안 많이 변했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많이 변했다고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sea-change라고 부를 수 있고, 그것은 바로 perfect storm을 뚫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중에 제일 큰 변화, 그것도 충격적인 것은 역시 우리의 사랑하는 단원, 친구, 영적 선배.. 은효순 요안나 자매님.. 영웅적인 암 투병을 하시던 용감하고 멋진 여성, 결과적으로 성모님은 그녀를 더 심한 고통에서 구해 주셨을까, 한창 더울 때였던, 7월 26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

솔직히 우리들은 ‘흔치 않은’ 기적을 바라고 있어서 그랬을까.. 끝까지 더 오랜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 조금은 충격적인 떠남이었다. 그 자매님은 우리, 특히 우리에게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작별을 하는 가 하는 특별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야지’ 하는 말을 하였다. 그 짧은 말이 이 자매님이 마지막 순간들을 살아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아닐까?

나로써는, 2년 전 레지오에 입단을 안하고 살았으면 이런 ‘귀중한 체험’들은 사실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서, 생각하면 할 수록 나를 이, ‘진리와 행동’의 집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으로 이끌어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특히 연숙) 머리가 숙여지는 감사가 이어진다.

요안나 자매님의 선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단원 자매님의 (미국인) 남편께서 선종을 하셨다. 비록 지난 몇 달간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timing이 참 놀라웠다.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던 것이다. 미국인 남편이어서 장례미사, 연도의 절차가 우리들과 달라서 조금 더 신경이 쓰였겠지만, 모든 것들이 비교적 잘 마무리를 지었고, 특히 그 무더운 날씨에도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정성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완전한 폭풍’ 같은 일들이 끝나자 마자 우리 단원들은 다시 단장, 부단장이 떠나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것도 사실은 몇 개월 전부터 알고, 예상하던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사실 생각만큼 부드럽지 못했다. 간부진들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조금 더 매끄럽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간부들, 그것도 제일 핵심인 단장 부단장이 떠난다면 그 뒤에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인가? 당연히 새 간부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 그런 변화의 준비가 비록 위에 말한 폭풍과도 같은 시련들이 있었다고 해도 별로 되고 있지 않았다. 만사가 바쁘기만 한 단장님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들었던 곳에 조금 더 세세한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남는다.

그런 과정에서 연숙이 단장, 내가 서기로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승진’ 했던 것은 충분히 예견이 되었고 큰 무리는 없다고 하지만 나머지 부단장, 회계 직을 채우는 과정이 참.. 기가 막히게 어렵고, 심지어 놀라움과 실망의 연속이었다. 우리 부부는 최소한 ‘순명과 사명’의 의식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놀라웠던 사실은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던 단원이었던 분들의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예상도 못했던 언행과 반응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한마디로 small Kafka moment로 이름을 지었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놀랐던 것이다. 레지오 선서, 순명의 정신 같은 것들을 벌써 잊어버렸나 할 정도의 언행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음은 ‘차가운 현실’을 느끼게 하는 실망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damage control 로 이어졌다.

12명까지 불어나 ‘승승장구’하던 우리 레지오가 거의 몇 주일 만에 6명 이하로 떨어지는 쓸쓸한 공기로 휩싸이고, 심지어 적막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bible, 레지오 교본들에 언급된 ‘경고’ 들을 실감하게 되었다. 조그만 시련기인 것이다. 군대와 같은 조직인 레지오에서 leadership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 절감하게 되는 첫 시련기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조직과 다르게 우리는 ‘사령관’인 성모님이 계시고 보호한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우선 매주간 동안 살아 남아야 하는, survive하는 급박한 문제는 우리들이 풀어야 하는 것들이 아닌가? 군대에서 군인의 숫자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거의 치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그것도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상대적으로) 여성 단원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 단원이 씨앗이 되어서 다른 예비단원들의 입단도 어렵지 않게 꿈꾸게도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레지오 입단, 역사적인 2주년을 맞게 되었고, 지난 2년간 나의 ‘변화’를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참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세속적인 자질구레한 습관들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식구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심지어 놀라워한다. 특히 연숙은 크게 나타내지는 않지만 (거의 의도적으로) 간접적으로 나의 변화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서 out of closet같은 느낌.. 이제와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는 2년 간이었다. 그전에는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할 정도였다. 급기야 그런 나의 변화를 연숙은 공개적으로 평신도 주일 강론에서 밝히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2년은 어떻게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나의 레지오와 연관된 세월들은 참으로 귀중하고 길었던 경험의 연속이었다. 단적인 예로 새로 알게 된 성모님과 성모신심(Marian Devotion)은 나에게 새롭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궁극적인 진리인 성삼위로 향하는 지름길, 안전한 길을 제공하는 우리의 어머님, 보호자를 찾게 된 것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비교적 안전한 것, 묵주기도.. 그것의 진실과 참 뜻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레지오 2년 생의 초보자이지만 남은 여생의 한계를 생각하면 남보다 10배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며 ‘월반’을 꿈꾸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지난 8월 15일에 끝이 난 “33일 봉헌” 과정 이후에 나의 우주,세계관은 아주 폭풍과도 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제야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 짐작하게 되었고, 아.. 이것이 바로 진리, 진실이었구나 하는 생각, 왜 이런 사실들을 1982년 영세 후 30년이 지난 지금에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제는 최소한 뒤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는 사실이다.

For the last few months, I have been wondering what’s wrong with this Google Chrome browser. It began with the flash video (embedded), stuttering audio and video, sometimes got locked up. A few googling revealed a few tricks like “chrome://plugins” which seemed helped for a while. Now, switching between tabs is getting harder and harder, mostly the whole tab page locked up, the tab renders a ‘white’ page. So, what’s going on here? The mighty Google engineers, what the hell are you doing? The browser was a such a joy to use for long time, after Firefox. In desperation, I switched back to Firefox.. .well… it is flawless! I know I have to forgo the very convenient Chrome’s syncing tool, but I don’t care anymore.. Bye Chrome.

결국은 끝이 났다. 지난 일요일은 ‘아마도’ 대한민국 전례력에 의하면 평신도 주일이었던 모양이다. 분명히 이곳 나의 교민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은 아틀란타 대교구 소속이라서 머나먼 대한민국의 전례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그런 것들은 흑백을 가리듯 분명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한마디로 grey area인 것이다. 따라서 이곳 순교자 성당도 그때 그때 ‘편리한 전례’의 관습을 따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은 대한민국 식으로 ‘완전한’ 평신도 주일의 전례를 따랐고, 신부님의 강론도 평신도가 대신 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나의 추측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작년부터 실시가 된 듯한데, 작년 6월에 부임하신 서강대 예수회 소속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서 지시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작년의 평신도 주일에도 평신도였던 서재욱 사목회장이 강론을 했던 것을 video를 보고 알았다.

1960년대에 있었던 바티칸 2차 공의회 (Vatican II) 이후 평신도의 역할은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상으로 눈부시고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지독하게 보수적인 천주교회가 민주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정도일 것이다. 이것은 고도의 ‘정치적’ 기술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갈릴레오를 처단했던 커다란 오류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완전한 방종적 자유’를 갈구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요구에 쉽게 부응하는 그것일 것이다. ‘완전한 평등’의 환상아래 너무도 많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을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자행하고 있는 사실은 어떤가?

하지만 바티칸 2차 공의회의 덕분에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눈부시게 향상한 것은 사실이고 이제는 여성들이 없으면 몇 시간도 교회가 움직일 수 없게 된 듯하게 되었다. 그런 시대의 흐름 때문일까.. 올해 평신도 주일의 신부님 대신하는 강론이 연숙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런 것들은 ‘나서기 좋아하는 남자’들 몫일 텐데 겨우 레지오 꾸리아의 부단장 정도의 명함으로 선택이 된 것을 보니 역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 앞에 서본 경험이 ‘소싯적’에 그렇게 많았던 연숙도 이번에 이런 ‘요청’을 받고는 완전히 긴장을 했던 것 같았다. 강론 대에 서서 신부님 강론 대신 한다는 것은 조금 stressful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을 했지만 하태수 신부님도 만만치 않았던지, 굴복하고 말았고 그것을 지난 일요일에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옆에서 보는 입장이었지만 수수방관할 입장만은 아니었던 것이, 그 강론의 주제가 바로 나였던 까닭이었다. 그저 ‘돌아온 탕자’ 에 비유하면 딱 맞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 였다. 나의 ‘과거’가 적나라 하게 들어나게 되는 것에 거부감을 처음에 느끼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 줄 수도 있는 잠재력을 생각하고 가만히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평신도 강론은 반응도 좋았고, 본인도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들뜬 기분으로 다음날을 보내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하태수 신부님이 밀어부친 평신도 주일의 성과를 느끼게도 된 것이다.

 

 

 

2012년 11월이 한창이었던 11월 14일경, 오랜만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Olympus digital camera  를 손에 들었다. 그 동안 이것을 잊고 살았던가.. 어떤 ‘모습’이라도 이곳에 담아야겠다는 초조함을 느낀다. 밖을 보니 찬란하게 절정을 향한 아틀란타의 가을하늘.. 반세기전, 어린 시절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서 삼청 공원을 향한 북악 줄기의 짓 푸른 가을 하늘을 반 상상,반 회상을 한다. 반 세기전의 그때는 서울의 도심(강남, 한강 아래가 완전히 논과 밭이었을 때)에도 그렇게 공해가 심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아직도 숲에 쌓여있는 이곳 아틀란타의 푸른 하늘이 그때 당시의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비교적 큰 사건 같은 것이 없었던 밋밋한 시간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사로 잡았던 것들은 어떤 시시한 것들이었을까? 아마도 5년+ 역사를 자랑하는 ‘걷기’, 아니 ‘개와 같이 걷기’를 빼어 놀 수 없을 것이다. 2006년 사랑하는 처 조카 수경이네(대현이 엄마)가 고국에서 놀러 왔을 때 그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간신히 걷기 시작한 대현이를 우리 subdivision의 가파른 언덕에서 불호령을 하며 걷게 하던 그 이후부터 나는 ‘혼자서’ 매일 걷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르렀다. 15년 전 우리 집을 다녀갔던 원서동, 재동학교 죽마고우였던 안명성이 나보고 걸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지만, 그때서야 걷게 된 것이고, 지금은 완전한 습관이 되어서 우리 집 깡패 강아지 Tobey를 걷게 하면서 같이 나도 걷는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 걸으며 4계절을 보고 느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중에서 제일 차분하게 아름다운 때는 역시 늦가을이 아닐까? 영롱한 빛깔들과, 장엄하게도 느껴지는 낙엽들.. 인생의 가을을 느끼게도 하는 그 낙엽들을 보며 또한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을 생각한다. 집 주위를 걷다 보면 꼭 playground를 지나게 되고 그곳에는 간단한 그네, 미끄럼틀 같은 것이 있고, 근래에는 물기만 없으면 그곳에 올라가 Tobey 와 함께 누워버린다. 짓 푸른 하늘이 우람한 단풍나무들 속으로 보이고 나는 이곳에서 꼭 묵주기도를 계속한다. 이것이 요새 나의 일과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묵주기도가 즐거움이라면 좀 비약적인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고 할까?

요새 나의 머리 속은 어떤 것들이 생각되고 있을까? 일주일도 더 지나간 미국의 대통령선거.. (이것을 대선이라고 하던가) 막상막하, 손에 땀을 쥐게 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바락 오바마(참 그 이름 한번 요상하다) 쉽게 재선이 되었다. 압승은 아닐지라도 그 정도면 뒤에 군말들이 없을 정도로 깨끗이 이긴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이번 선거야 말로 제3의 인물이 갈망되던 때였을까.. 생각한다. 또 다르게 이름이 요상했던 ‘밋 롬니’ (아니면 밑 롬니인가?).. 무언가 참 답답한 인물이었다.

지지 않으려면 견해와 입장을 1초도 되지 않아서 바꾸는 사람, 도대체 그의 속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 하는 것 보다 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와 반대쪽에서 지나치게 약자의 쪽에 서서 ‘정 많고, 따뜻하게’ 보이려 안간힘을 쓰다 못해서 나중에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살림 차리고 아이를 낳는 것 ‘완전히 OK’ 라고 선언을 했던 불쌍한 현직 대통령.. 그렇게 까지 해서 연임을 하고 싶었을까?

차별 당하는 그들 (동성애)..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과 그것도 ‘문제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임을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권력의 유혹은 사실 뿌리칠 수 없을 정도였나 보다. 이제는 성숙해진 나의 신앙 체계에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였다. 이것은 종교계를 ‘보호’ 한다는 공화당 극우론자들이 다 망쳐놓은 결과다. 정치와 종교가 섞이게 되면 이런 비극이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새로니가 집을 사려고 realtor와 집 구경을 시작했다. 그 애의 월급으로 단독주택은 어림도 없지만 condo는 ‘사정거리’에 있고,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죽었던 여파로 여건이 좋았나 보다. 우리와 같이 임시나마 살고 있는 것이 어찌 불편하지 않을까? 그것은 완전히 상호적인 것이다. 우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 큰 자식과 사는 것.. 이제야 힘든 것을 절감한다. 세대 차이는 그렇게도 골이 깊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놀러 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로 사는 것이라고 누누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200% 동감을 한다.

11월은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위령의 달’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생각을 하는 한 달인 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월 3일에 우리가 사는 마리에타에 있는 한인 공원묘지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집전으로 위령미사가 있었다. 올해에는 우리부부도 11월 한 달 동안 매일 우리의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영혼을 위한 ‘연도’를 하기로 하고 이미 시작해서 위령미사는 비록 처음이었지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한인 공원묘지.. 그 동안 참 많은 한인들이 이곳에 묻혔음을 보게 되었고, 2002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떠나신 평창이씨 이주황 선생님(이만수 군의 아버님)의 묘소도 그 이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7월 말에 선종하셨던 레지오 친구, 은요안나 자매님의 묘소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연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도 ‘지루하고 이상하였던’ 연도..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좋았겠지만 이것을 하는 당사자인 우리가 더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통상 기도를 진심으로 믿게 되었고, 반드시 이런 것들이 의도하고 있는 대로 영혼들에게 전해 질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이것이 올해 11월 위령의 달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고, 우리들의 부모님들.. 이정모, 양점순, 전현찬, 김유순..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 연옥의 고통이 그치고 영원한 평화의 나라에 들게 됨을 계속 기도하며 깊어가는 가을을 맞는다.

 

Rosary under deep Marietta Autumn sky

묵주기도, 빛의 신비를 누워서 하기에 알맞는 깊은 가을 집 근처의 playground에 있는 그네에서

Autumn leaves near swimming pool

왁자지껄 시끄럽던 수영장, 테니스 코트는 적막 속에 잠기고 사람들 대신 가을의 선물, 황금 색의 낙엽들만 딩구르는 깊은 가을..

YouTube video를 download하는 software (요새는 이런 것들은 모조리 Apps라고 부른다.. 이것도 Steve Jobs때문인가. 이것은 물론 applications software를 줄인 말이다.), ‘Free YouTube Download‘를 test 하다가 우연히 까마득히 먼 옛날 1950년대의 유행가 ‘목장의 노래’를 찾고 보게 되었다. 이 clip은 사실 나에게는 거의 충격적인 것이었다. 2분 30초의 짧은 이 video에는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고, 그 추억도 사실 거의 60년도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 자체는 아직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생생한 것이지만, 여기의 주인공들은 사실 책, 잡지 같은 것으로만 보았을 뿐이다. 이들은 거의 radio를 통해서 알려진 유명인 들이다. 그러니까 TV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 이들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 video clip은 정말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물론 가운데 서있는 송민도 씨, 들러리를 서있는 아가씨들은 그 유명한 김 시스터즈, 악단 지휘자이며 멋진 baritone을 구사한 미남은 송민도 씨의 남 동생인 송민영 씨.. 와~~ 이들은 모두 그 당시 유일한 AM Radio HLKA를 통해서 육이오 전쟁 후 피로에 지친 국민들에게 그나마 위로와 기쁨을 주던 최정상의 연예인들이었다.

이 video가 어떤 show를 보여 주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1955년에서 1957년 사이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에서 4학년 사이가 될까. 왜냐하면 김 시스터즈는 그 즈음에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아마 송민도 씨도 그 즈음에서 연예계를 떠났을 것이다. 녹음 상태가 그 당시의 녹음 기술 과 오랜 세월 탓으로 별로지만 송민도 씨의 육성은 정말 그 당시에 듣기에 우렁차고 낭랑했었다. 김 시스터즈는 완전히 미국으로 갔고, 송민도 씨와 송민영씨는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듣기에 송민도 씨도 미국으로 왔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른다. 송민도 씨의 이 ‘목장의 노래’를 들어보면, 아침을 ‘아츰’.. 하루를 ‘하로’라고 발음을 하는데 이것은 어떤 사투리인지 모르겠다.

 


목장의 노래, 송민도, 1950년 대

10월 31일은 이곳 미국에서 Halloween (할로윈), 이어서 다음날, 11월 1일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날?), 11월 2일은 역시 가톨릭의 달력으로 ‘위령의 날‘ 이다. 그 다음날, 11월 3일은 아직도 귀에 익은 광주학생 사건을 기념하는 ‘학생의 날’.. 줄줄이 이어진다. 종교성이 거의 없는 할로윈은 나쁘게 말하면 ‘귀신’에 대한 날이고, 모든 성인의 날은 정 반대로 귀신을 쫓는 ‘성인’들의 날이다. 이런 이유로 할로윈 다음 날을 모든 성인의 날로 정한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연숙과 얘기를 하다가, 올해부터는 11월 달이 ‘위령의 달’ 임을 생각하며 돌아가신 우리 두 부모님들에게 ‘매일’ 위령기도를 바치자고 합의로 하였다. 연숙은 오래 전부터 이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역시 내가 요지부동으로 가슴을 닫고 있어서 못하다가 올해는 무언가 아무 문제없이 이렇게 ‘멋있게’ 합의를 본 것이다. 나의 마음이 그 정도로 열려있음은 알고 나 자신도 사실 놀랐다.

이제는 우리의 자랑, 오랜 전통의 천주교의 일년 흐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고 그런 오랜 전통적 달력을 음미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5월의 ‘성모성월’과 11월의 ‘위령의 달’은 더 나에게 가까이 느껴짐은 왜 그럴까? 성모성월은 어머니가 주제요, 위령의 달은 돌아가신 부모, 조상, 친척들에 관한 것이라서 그럴 것이다. 가슴 깊이 고여있는 어머님, 보지도 못한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서러움, 그리움, 불효막심 등등이 한꺼번에 솟아 오르는 듯한 감정.. 그것이 무서워 항상 나는 도망만 하며 살았음을 인정하기에 더욱 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히 어머님께 따로 특별히 연도는커녕 기도 한번 변변히 못한 나는 사실 이런 날이나 달들을 생각하기도 무서웠다. 그러다가 레지오에 입단하게 되면서 ‘남 들’에 대한 연도와 기도를 자연적으로 시작했고, 이제는 조금씩 마음도 열리고, 더 이상 도망하고 싶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온 듯이 살고 싶었다. 내 자신이 나의 부모님께 연도와 기도를 바치게 될 진정한 용기가 생김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영혼의 존재’를 나는 믿게 되었고, 영혼에 대한 기도나 연도가 정말 의미 있다는 것도 믿는다. 그 중에서도 나의 부모의 영혼께 기도를 하고, 혹시라도 아직도 고통을 받는 곳에 머물지 않게 기도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비록 하느님을 모르고 떠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11월 3일, 고국의 학생의 날.. 에 이곳에서는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아틀란타 지역 두 천주교회(순교자, 성 김대건) ‘합동’으로 마리에타 한인 공원묘지에서 위령미사가 거행 되었다. 매년 얘기만 듣던 것.. 올해는 ‘무조건’ 참례를 하였다. 집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는 이곳에는 한인들만의 공원묘지가 따로 조성되어있고, 지난 7월에 떠나신 우리 레지오 단원 요안나 자매도 이것에 안치되어 있고, 2002년 4월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하신 ‘평창이씨’ 종친 이주황 선생님도 이곳에 계셔서 우리와 익숙해진 곳이다. 가톨릭의 예식을 따랐지만 그 의식은 많이 우리나라의 전례 예절이 가미된 것이라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 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는가.. 아니면 많이 이런 것들에 익숙해 졌는가.. 만감이 교차됨을 느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천주교 영세 후에 ‘멋도 모르고’ 장례미사에 갔다가 ‘시체’를 처음 보고 놀라서 그 다음부터 절대로 그런 곳에 안 가겠다고 ‘결심’을 했었던 나의 유치한 믿음을 회상하며 웃어보기도 했다. 아.. 영혼들이여.. 편히 편히 잠 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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