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April 2013

재벌구조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

2013.04.30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가 1969년 공군중위 제대 후 첫 직장인 KIST에서 연구를 막 시작할 때 지녔던 사고(思考)의 하나는 사회현상에도 자연 질서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인식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물은 언제 어디서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은 보편질서(universal law)와‘물살은 협곡에서는 빨라지고 강폭이 넓어지면 느려진다.’는 식의 상황적응질서(contingency laws)가 사회현상에서도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1970년대 초반 KIST 경제분석실에서 필자가 실무책임을 맡아 행한 첫 연구 프로젝트가 POSCO 건설타당성 검토연구였다.

당시 국내 철강 시장규모는 왜소하고 철광자원도 희소할 뿐만 아니라 공장을 건설할 돈도 기술도 물론 없고 철강회사 경영경 험은 전무였으며 다만 있는 거라고는 당시 KIST로 영입되어 온 몇 분의 유학파 과학자들과 거의 무경험의 미숙한 국내 금속공학과 출신의 엔지니어들뿐이었는데 과연 이런 상태에서 POSCO 프로젝트가 국책사업으로서 타당성을 지니겠는가를 검토하는 연구였다.

 POSCO 건설 프로젝트는 이미 KISA (포스코 건설을 위한 국제 consortium)에서 2여 년 간 그 타당성을 검토한 바 있는 프로젝트였는데 그들이 포항제철 건설프로젝트는 그 사업타당성이 크게 뚜렷하질 않아서 차관을 못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1969년 초반에 정부가 KIST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검토하라는 배경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런 연구 배경에서 필자는 우선 철강공장의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가 얼마인가를 기술연구팀으로부터 확인한 후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로 수출되어야 할 것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5~60년대에 걸친 세계철강재의 수출입자료를 가지고 소위 철강수출모형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당시 사업타당성검토와 관련한 기본정보와 아이디어가 전무했던 터라 이리저리 밤낮없이 고민하던 끝에 떠오른 생각이 자연법칙을 원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수 출은 수입하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출하는 나라에서 수입하는 나라로 얼마만큼이 수출될 것이냐에 대한 예측은 마치 물리학에서의 중력법칙(gravity law) 곧 두 물체간의 중력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근거로 하여 철강수출모델을 도출하고자 했다.

 자연법칙을 논거로 한 연구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의적인 예측치가 얻어졌는데 이는 필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POSCO 사업타당성 검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어찌 알았는지 POSCO 건설 사업타당성에 대해 미국 USX 철강엔지니어링 회사가 찾아와 득의 찬 자세로 도움을 주겠다며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제안을 다 듣고 난 후 그들에게 우리의 작업결과와 그 방법론을 보여주었더니 ‘too academic’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는 얼굴이 벌게 가지고 도망가듯 가벼렸던 게 아직 기억난다.

 아무튼 KIST의 검토 결과대로 포항철강공장건설이 확정되고 자금 확보와 관련한 일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순항을 거듭하여 POSCO는 드디어 1973년 첫 출선의 기쁨을 온 국민에게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POSCO 프로젝트를 끝내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서울지하철 2호선 노선을 마련하는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같은 아이디어로 서울시내 교통량을 예측하여 노선확정(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런데 이번에도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영국의 한 컨설팅회사가 집요하게 제안 설명기회를 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우리의 연구가 거의 끝난 상황이라 기회를 주었더니 1시간 이상 득의에 찬 설명을 하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결과를 보여주자 그들도 역시 얼굴이 벌게져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그토록 득의에 차서 설명한 방법론이 바로 우리가 이미 사용한 중력모델이었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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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형의 컬럼,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 13>이 새로 발표 되었다. 나의 경영,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덤으로 거저 받게 된 ‘나이의 선물’ 덕택으로 ‘저절로 알게 된’ 나 나름대로의 얄팍한 의견은 많이 있다. 오늘의 주제는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와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한 것으로, 기업 윤리를 염두에 두고 근대에 개발된 주요한 기업경영모델을 고찰한 것으로 저자의 독특한 ‘원리적’인 각도로 본 듯하지만 다른 글과 다르게 종교, 신앙적인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가 알게 된 것 중에는 여기에도 잘 알려진 80/20 Pareto rule이 적용이 되어서, ROI(return on investment)는 대강 환경, 전략, 조직 변수의 80%와 나머지 20%의 관리, 운에 따른 변수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80%에 속하는 것을 ‘사업다운 사업’으로 정의하고 이런 룰은 단기적인 아닌 중, 장기적으로 적용이 됨을 밝힌다.

그래서 과연 어떤 것이 ‘사업다운 사업’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비록 전문적인 용어로 풀이는 되었으나 역시 이것도 ‘직감’적으로 공감들이 가는 것들이다. 사업, 그러니까 business의 모델을 세가지로 구분을 하였는데, 사회에 유익을 주는 positive-sum, 유익도 무익도 주지 않는 zero-sum, 그리고 사회에 해를 주는 negative-sum이 그것 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업들이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들이지만 도박, 마약 퇴페산업 등은 노골적으로 사회에 해를 주는 것들이다. 문제는 가운데 있는 zero-sum 사업들이고 저자는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근래의 세계경제문제를 설명한다.

역시 덩치가 큰 미국경제에서 ‘고안’이 된 이 ‘신경제 상품’들, 그 중에서 ‘파생금융 상품’이 끼친 ‘악영향’은 뉴스를 본 사람들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파생금융 상품의 규모가 커지면 커 질수록 진짜 경제인 ‘실물 경제’는 그만큼 위축하게 된다고 한다. 기억에도 생생한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마도 이 zero-sum 사업들의 과도한 팽창에 의해서 유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업들은 철저한 정부규제 하에 있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 규제에 ‘구멍’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가 간다. 나도 이것은 공감을 한다. 쉽게 말해서 ‘각종 수법, 기교로 돈 자체로 돈을 버는’ 그들이 이 위기의 주범이 아닐까.

 

 

기업번영, 사업다운 사업과 니즈맞춤혁신에서만…

2013.04.19

 

김인호 명예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1980년대 후반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어느 재벌사가 보내준 신년호 사보 첫 장을 여는 순간 거창한 고사(告祀)장면을 담은 몇 컷의 칼라사진이 실려 있었다. 약 40여개 고사용 돼지대가리를 쫙 차려 놓은 거대한 상 맨 앞줄엔 회장이라는 분이 혼자 자리하고 그 바로 뒤에 약 40여분을 헤아리는 그룹사 사장단이 정렬하여 넙죽 절하는 장면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영화‘대부(代父)’와 마피아를 다룬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는데 왜 그랬는지 그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뒤이어 ‘아, 저분들이 불확실한 기업경영환경에서도 운(運)이 따라주어 별 탈 없이 우수한 기업성과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저러는구나.’하는 생각이 일견 들었지만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도저히 수긍되어 오질 않았다.

 다음 해 1학기 필자의 전공영역의 하나인 기업윤리 시간에 학생들에게 고사얘기를 들려주며 이에 대해 약간의 토론을 유도하였다. 그런 후 글로벌 레벨에서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21세기의 격변 환경에서 우수한 사업성 과를 내려면 머리를 짜고 짜내어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어려운데 운(運)이나 요행(僥倖)을 바라는 맘으로 과연 우수한 성과가 얻어질까 하는 의구심을 강조하며, 그 재벌은 분명‘올바르게 일하려 하기보다는 운이 따라 주워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업임에 틀림없다.’며, 그 재벌사가 고사 같은 미신행위를 계속한다면 결국 망하고야 말 것이다, 라고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게 우리나라에선 관행과 관습 아니냐며 크게 필자에게 반발하던 게 생각난다.

 그로부터 10여 년 지나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때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30대기업(재벌)의 거의 반(半)에 해당하는 13개가 결국 파산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 고사를 지냈던 그룹도 물론 파산했다.

 주변에서 인간사 매사에 운이 따라 주어야 일이 제대로 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럴까? 같은 맥락에서 사업경영에서도 과연 운이 중(重)하게 작용하는 걸까?

1981년부터 교직에 동참한 필자는 사업경영에 있어서도 준거해야 할 법칙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그 법칙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결국 경영학자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일환으로 경영전략분야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개발 사용되고 있는 PIMS(profit impact of management strategies)모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예 나 지금이나 경영학과 관련한 대부분의 모델/이론/유형/기법들이 여전히 직관(直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PIMS모델도 마찬가지지만 정성(定性)모델(qualitative model)이 아닌 정량(定量)모델(empirical quantitative model)이란 점에서 필자는 특별히 PIMS모델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왔다.

 PIMS모델은 미국 전략계획연구소(Strategic Planning Institute: SPI)가 1970년대 초반부터 사업투자수익률(ROI)이 무엇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가를 밝히고자 포춘 글로벌 500대기업의 사업경험을 통해 계량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계량모델이다. 지금도 경영전략분야에서 계량모델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1970년대 당시엔 PIMS모델은 거의 유일한 계량모델이었다.

 PIMS모델은 원래 GE가 자사의 다각화(diversification)된 사업들을 종합 관리할 목적으로 내부 프로젝트로서 개발한 모델이었다. 그 개발배경을 잠시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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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소싯적’ 뜻도 잘 모르고 열광하던 CCR의 pop oldie, Bad Moon Rising이 생각이 난다. 가급적 ‘세속적’ 뉴스를 피하고 살려고 하지만 요새 며칠 동안 쌓이는 괴로운 소식들을 피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런대로 안 보는데 큰 문제가 없는 ‘세속적’ 뉴스 중에는 정박아 김씨 왕조 북괴에 관한 것도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oversize stupid한 모자들을 쓴 ‘한심한 괴뢰군 장성’들에게 둘려 쌓여 앉아 있는 ‘어둠의 자식 3대, 정박아, 김정X‘ 의 꼴을 보는 것은 한마디로 surreal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의 image에 Korean이라는 말이 붙어서 뉴스에 나오는 것은 참기도 힘들고, 어느 외딴 섬으로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Boston boming, 2013하지만 Boston bombing으로 시작된 일련의 큰 뉴스들은 2001년 9월 이후를 연상시키는데 힘들지 않았고, 이것들마저 피하는 것은 ‘세상을 등지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1초도 안 걸린 보스턴 마라톤 폭발 후에 생긴 그 후유증을 누가 알겠는가? 비록 사망자가 3명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뛰기 힘든 불구자’가 되었고, 그들로써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게 되었다. 그놈은 과연 어떤 놈일까? 왜 마라톤, 보스턴 을 택했을까? 시기적으로 4월 초, 8일은 무슨 상징적 의미가 있었나? 암만 생각해도 내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gut feeling은 있다.. 밖에서 온 놈(들)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미국 내(domestic)에 있는 ‘정신이상, 불평불만, 반정부, 총기류를 숭배하는 한심한 racist..’ 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누가 알랴? 뉴스매체를 즐겁게라도 하듯 곧바로 ricin 이라는 독극물(병균?)을 편지로 보낸 놈이 등장해서 911사태 이후의 암울했던 anthrax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이놈은 조금은 지능이 떨어지는지 곧 바로 체포가 되었다. 배경을 들으니 역시 ‘말단 종자’ 에 가까운 놈이어서 크게 놀라진 않는다. 역시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큰 나라’ 텍사스에서 ‘엄청 큰 비료공장 폭발’ 사건이 터졌다. 역시 텍사스답게 이런 것도 엄청나다. 제발 계획적이 아닌 사고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bad moon rising에 해당할 것이다.

모두 모두.. 무언가 잘못된, 인간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Bad Moon의 제일 뒤에 등장하는 것이 ‘빠가’들의 집단(GOP)과 그에 동조한 ‘준 빠가‘들이 만들어낸 작품.. 정신병자들이 총을 못 사게 하려는 법을 죽여버린 것.. 이것은 아마도 미국의 치부를 들어낸 단적인 예로 길이길이 남을 듯 하다. 이제야 비로소 CCR의 oldie, Bad Moon Rising의 가사가 더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I see the bad moon rising

 

 

Bad Moon Rising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69

Entering Doraville

Entering Doraville

도라빌, 조지아… Doraville, GA USA.. 도라빌은 조지아 주 아틀란타 수도권에서 아틀란타 시에 바로 인접한, 행정구역상 DeKalb county내의 아주 작은city,시에 해당하는 곳이다. 아틀란타 시의 바로 동북 쪽에 접한 이곳은 아틀란타 수도권 지역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거의 ‘고향’같은 곳이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전까지 이곳은 명실공히 Korea Town구실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때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하며 아직도 Korea Town의 ‘가느다란’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1996년 올림픽 훨씬 이전에 아틀란타로 왔기에 그 당시의 역사와 모습들, 느낌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현재는 거의 주일마다1 ‘느끼고, 다니고, 듣고, 먹고’ 하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도라빌은 1871년에 ‘생긴’ 역사가 오래된 곳이지만 1940년대까지는 아틀란타지역의 농산물 공급처 구실을 하던 농촌에 불과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면서 GM(General Motors)이 이곳에 assembly plant (자동차 조립공장)2을 계획하고, 그에 따른 철도가 가설되면서 급성장을 시작한다. 1950년도에 인구가 472, 1964년의 인구가 6,000여명으로 불어나고, 1980년대가 되면서 아틀란타 지역으로 유입하는 이민자들이 이곳을 ‘관통’하는 Buford Highway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미국 전역을 통해서 아시아 이민에 가장 밀집한 지역으로 꼽히게 되었고, 중남미 계통의 이민 인구들도 급성장 하게 되었다.

그것에 걸맞게 1992년에는 수도권을 연결하는 MARTA system (고가전철과 시내버스) service가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업계의 불경기로 GM의 Doraville Assembly Plant가 2009년에 문을 닫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처음에는 Atlanta Falcon football stadium이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지금은 town center 가 계획되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공터로 남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도 그 주변에 대형 소매업체들이 들어오고 한인계열의 H-Mart 도 개업을 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도라빌과 ‘인연이 있는’ 사람 중에는 우주비행사(astronaut) John Casper가 이곳에 살고 있고, 1970년대부터 활약하던 Southern Folk/Rock group인 The Atlanta Rhythm Section(ARS)가 이곳을 거점으로 활약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 이후, 타 주의 부자들이3 쌓여가는 cash를 앞으로의 호황 경기를 기대하며 이곳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성급한 사람들은 아예 이사 짐을 들고 이사를 오기 시작했다. 그 때가 바로 subprime bubble이 무서운 속도로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 (우리는 제외)이 어디선가 무섭게 흘러나오는 ‘돈, 돈, 돈’에 치고, 취하며, 쓰고, 투자하던 그런 몇 년이었다. 돈으로 돈을 ‘만들겠다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형태의 ‘돈벌이’를 못하면 완전히 바보취급을 받던 그런 시절, 의젓하고 학자적인 engineer가 하루아침에 private loan(사채) 업자로 변신을 하고, 20+ 애 띤 ‘여대생’이 건물 한 층을 완전히 세를 내어 ‘융자 회사’를 차리던 그 시절이었다.

그런 ‘미친’ 탁류 속에서 예전의 도라빌은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투자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융자 업자’들이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부동산의 핵은 서서히 도라빌의 ‘훨씬’ 북쪽으로4 올라가며 새로운 한인타운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하고, 즐비하던 한인 업체들도 하루가 급하게 올라가 버렸다. 새로 개발된 곳에는 기업의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업체들, 주로 supermarket5 들이 그곳의 명소로 자리를 잡게 되기도 했다.

 우리가 1989년 여름에 위스컨신 주 매디슨에서 이사를 왔을 당시에 이미 이곳 도라빌 은 Buford Highway6 주변으로 한인 경제활동의 중심, 주거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이후 서서히 한인타운은 축소가 되어갔고 그 자리에 한인 이민 역사보다 짧은 역사의 월남과 나머지 중국, 히스패닉(주로 멕시코) 이민들이 그 자리를 서서히 채워가게 되었다. 그들은 한인 같은 조직적인 자본력이 거의 없이 가족단위로 사업을 하기에 아무래도 값싼 부동산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세 좋게 도라빌을 떠나서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갔던 사업체들은 위에 언급한 subprime bubble으로 인한 지독한 불경기로 완전히 성장을 멈추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이곳 도라빌은 거꾸로 예전보다 안정되고 심지어는 조금씩 ‘보기 좋은’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정말 예상치 못한 현상을 목격하게도 되었다.

우리는 이런 도라빌의 Korea Town ‘경기 변동’에서 조금 중립적인 입장에 있다. 도라빌에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곳(도라빌)도 아니고 저곳(북쪽 지역)도 아닌 마리에타 지역(서쪽)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도라빌이 다른 곳보다 훨씬 가까운 만큼 이곳이 더 이상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 입장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많은 시간이 현재 도라빌에 건재한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성당‘ 주변에서 보내진다는 사실이다. 비록 제2의 한인 성당이 분가를 해서 둘루스에 생겼지만, 그곳은 역사가 워낙 짧아서 앞으로 어떻게 지역적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인들의 자랑인 H-Mart가 도라빌 다운타운 근처에 새로 생겨서 사실 우리는 그 먼 둘루스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기에 현재의 상황은 별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한인 사회, 경제가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고 그것에 따라 이런 지역적인 변화도 예측을 할 수 있을 듯하다.

Atlanta Rhythm Section, 1977 CREDIT: WikiMedia

Atlanta Rhythm Section, 1977 CREDIT: WikiMedia

위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도라빌은 원래 ‘농촌’에 속한 한가한 곳이었는데 철도가 들어오면서 교통, 운송의 거점이 되었고, 아틀란타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던 정말 ‘한가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시골’이었던 셈이고 이곳의 토박이들도 ‘진짜 백인들’ 조지아 무지랭이, redneck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비싼 아틀란타에서 살기 힘들어지면서 이곳으로 나오게 되면서 현재와 같이 ‘유엔 총회’를 방불하게 하는 인종의 분포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골’티가 나는 곳에도 유명한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1960~70년대에 미국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알려졌었던 Southern folk, rock group ‘The Atlanta Rhythm Section‘ 이 바로 이곳에서 출발을 하고7 이곳에서 활동을 했었다. 나 또한 그들의 hit song, ‘Do it or Die‘를 1970년대 말에 많이 좋아 했었다. 지금 그들은 이곳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이름에는 항상 도라빌이 따라 다니고 있는데, 그들의 노래 중에는 ‘Doraville‘이란 1974년에 발표된 것도 있어서 그들은 도라빌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DoravilleAtlanta Rhythm Section, 1974

 

Do It or DieAtlanta Rhythm Section, 1979

 

  1. 이곳에 있는 첫 한인천주교회, 순교자 성당 때문이다.
  2. 이곳에서는 Chevrolet Uplander, Pontiac Montana SV6, Buick Terraza, Saturn Relay같은 minivan이 조립되었다.
  3. 주로 뉴욕이나 LA 출신의 자본가들.. 통설에는 전두환의 비자금도 큰 몫을 차지한다고 했다.
  4. 주로 Alpharetta, Duluth, Suwannee지역, 특히 Suwannee지역은 돈 많은 타 주의 retiree(은퇴자)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이 되었다.
  5. H-Mart, MegaMart, Assi 같은 덩치가 큰 것 업체들
  6. 이름만 ‘하이웨이’고 사실은 시속 35마일의 거북이 도로인데, 시 정부에서 돈이 궁하면 가차없이 과속 티켓을 뿌려댄다.
  7. 이곳에 그들의 레코드 취입 스튜디오가 있었다.

Nasty, bone-chilling, dreary, surreal..우아~ 올 봄은 참 유난스럽다. global warming이 무색하게 global chilling이 더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가 아닐까.. 작년 3월 말을 자꾸 기억함은 그 당시의 ‘찬란했던 꽃나무들의 향연’ 과 지금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이제는 설마..’ 하며 space heater를 부지런히 closet 속으로 퇴각을 시켰고, 침대의 무겁던 이불도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놓고, 조금씩 겨울 옷들도 눈 여겨 보고 있다가 결국은 오늘 bone-chiller를 다시 만난 것이다.

싸늘한 비바람에 채 피지도 못한 배나무 꽃망울들이 처참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올 2~3월의 평균을 밑도는 기온은 아마도 ‘무지하게 더운’ 봄과 여름을 예상케 한다. Mother Nature의 연 평균기온은 거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조금 우울한 뉴스가 아닐까?

 

채 못핀 꽃나무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2013년 봄

채 못핀 꽃나무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2013년 봄

 

4월은 조금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tax return chore, home-association due, ‘big’ insurance dues.. 모두 $$을 ‘빼앗아’ 가는 것들 뿐이라 정말 즐겁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내야 할 것은 내야 하는 것이. 4월 7일 일요일은 작년부터 생각하며 지나게 된 ‘자비의 주일’이다. Divine Mercy Sunday.. 폴란드 출신 성녀 Faustina가 예수님께 ‘직접’ 지시를 받았다던 그 자비의 기도를 줄줄이 생각하게 하는 그 날이다. 이 날을 향한 9일 자비기도를 우리는 묵주기도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하게 되었는데, 거의 일년 만에 하는 것이라 처음에 생소했지만 곧 익숙하게 되었다.

그 다음 주일 4월 14일에는 월례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어서 몇 달 전부터 시도한 ‘한 달에 한 번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미사참례’ 를 할 예정이다. 아주 조심스레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시작을 했지만 아직도 ‘100% 한국식 미사의식’이 ‘신기하고 생소’하게 느껴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물론 처음보다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날은 multitasking의 기분으로 ‘오래된 형제’ 설재규씨를 만나기로 해서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주일 4월 21일, 우리가 속한 레지오 전체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 park로 ‘야외행사’를 가는 날이다. 말이 야외행사지만 사실은 picnic에 가까운 것이 비록 ‘레지오 의식’으로 시작은 하지만 결국은 친교를 위한 ‘여흥’인 것이다. 작년에 나는 처음으로 참가를 했는데, 청년 단원들이 아주 조직적이고 재미있는 program을 준비해 와서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다. 날씨도 참 화려했었는데, 올해는 어떨까.. Shelter가 있으니까 최악의 사태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4월부터 6월 초까지는 사실 부활의 연장에 있는 사실 ‘즐거운’ season이고 특히 5월 한달.. ‘성모성월‘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제는 예전처럼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보다 더 나를 포근하게 만든다. 참.. 나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또 되 뇌 인다.. Never Say Never라고..

4월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매년 듣는 것으로 상고사적 때, 중앙고 음악선생님 김대붕 담임 선생님의 애창곡 ‘이대교수 김순애‘ 작곡, 박목월 시인 작사 ‘4월의 노래‘..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기억에 남아있던 Pat BooneApril Love.. 우리 가곡 4월의 노래는 정말로 우리가 느끼는 그 옛날 고국산천의 4월을 연상케 하고, Pat Boone 것은 이곳에 오래 살면서 배어온 이곳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나는 과연 어느 곳에 있는가..

 

 

April LovePat Boone, 1957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Eben Alexander, a neurosurgeon(신경외과전문의)의 2012년 #1 New York Times Bestseller, Proof of Heaven.. 이 책은 바쁘게도 느껴지고 피곤하기까지 한 성삼일(Paschal Triduum), 부활주일(Easter Sunday)에 걸쳐서 ‘번갯불에 콩 볶듯’ 대강 눈으로 읽은 다음, 이제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의 보금자리 서재에 앉아 다시 자세히 읽는다.

우선, 이 책을 성삼일 전날 ‘우연히’ 사게 된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님을 이제 믿는다고 말하고 싶고, 나의 머리를 지배하는 심정은, 빠른 속도로 겉 핥기 식으로 읽는 동안 느낀 것은 복잡한 것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흥분, 기쁨, 그리고 안도감.. 그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이성적인 자세로 샅샅이 분석하며 천천히 다시 읽는다.

표지, 차례를 거치고, 기나긴 prologue도 빼놓지 않고 정성을 들여 자세히 계속 읽는다. 200쪽 미만의 책이지만, 35 chapters..라면 지루할 듯 보이지만 한 chapter가 불과 몇 쪽이 안 되기에 정말 소화하기 즐겁기까지 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Prologue를 읽기 시작하며 다시 ‘왜 skydiving에 대한 설명이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혹시 이것이 filler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다. 그저 page만 늘리려고 한 ‘잡소리’가 아닌가 한 것이다. skydiving에 대한 경험을 2쪽이나 계속하면서, 책의 주제인 ‘천국의 증명’에 대한 hint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설명 뒤에 간단한 몇 마디가 두 번째 읽는 나에게 납득할 만한 hint를 주긴 했다. 그러면서 조금 용기와 참을성을 더 하며 읽어 나가면, 서두의 뒷부분에는 책 전체의 결론과 맞먹을만한 ‘거창하고, 심각한’ 이 책의 결론을 조금 보여준다. 하지만 본문이 170쪽 밖에 안 되는 책에서 prologue가 10쪽이라면 서두가 길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미리 보여주는 결론은 이것이다.

My experience showed me that the death of the body and the brain are not the end of consciousness, that human experience continues beyond the grave. .. it continues under the gaze of a God who loves and cares about each one of us and about where the universe itself and all the beings within it are ultimately going…

This life isn’t meaningless. But we can’t see that face from here – at least most of the time… But now that I have been privileged to understand that our life does not end with the death of the body or the brain, I see it as my duty, my calling, to tell people about what I saw beyond the body and beyond this earth.

나의 경험에 의하면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끝이 아니고 인간적인 경험은 무덤에 묻힘의 이후로 계속되며, 우리 개개인과 우주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가호아래 영원히 계속된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얼굴을 최소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대부분 못 느낀다. 하지만 지금 육체와 뇌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나의 육체와 지구를 떠난 저쪽에서 본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이 서두의 결론이 일반인, 비전문가, 비자연과학자, 신앙인, 신부, 수녀, 수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크게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 하바드 대학, 최첨단 ‘자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뇌신경외과 전문가 의 체험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면 아마도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현재 ‘양쪽(과학과 신앙)’ 에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로써는 한마디로, ‘당혹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Dr. Eben Alexander

Dr. Eben Alexander

이런 류의 NDE(Near Death Experience) 이야기에서 제일 흔히 언급되는 것이 ‘신앙적 체험’이지만 이 저자는 철저히 그것을 뒤로 미루어 놓는 ‘참을성’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체험에서 깨어난 이후 그는 ‘지혜롭게도’ 그의 기억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 그가 겪었던 모든 체험이 글로 기록, 고정화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체험에 대한 정보를 100% 차단을 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저자 ‘Eben Alexander, 에븐 알렉산더‘ 는 비록 철저히 불가사의, ‘비과학적’인 며칠의 경험을 했지만 결국은 곧 바로 다시 철저히 이성적인 과학자로 돌아 왔고, 다시 과학과 이성에 염두를 두고 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중에 하나가 이 작은 책자이고 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 과학자들과 이 ‘포복절도’할 경험을 보존하고 알리려는 노력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저자는 최대한 기존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리를 언급 안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가끔 ‘하느님’을 언급하지만 그 하느님은 종교관점의 하느님이 아닌 그저 ‘절대자’를 의미할 듯 하다. 지금 신앙에 눈을 조금 씩 떠가며,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 책의 ‘과학적 접근, 경험’을 나의 체험과 연관을 시키며 공부하고 싶다.

이번의 ‘두 번째 읽기’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철저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나와 비슷한 배경이나 신앙적, 과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알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 multi-part blog을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인호형의 글이 발표되었고, 나도 볼 수 있었다. 제목은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부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으로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 컬럼 11번째가 된다. 사순절 훨씬 전에 잠깐 연락이 되었지만 다시 ‘잠잠’ 했는데, ‘불현듯’ 소식이 온 것이다. 얼마나 바쁘게 사시는지 간혹 email 교환의 호흡, 박자가 어긋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50년이 가까워오는 ‘몇 달간의 만남’ (아르바이트 대학생과 까까머리 고3 수험생으로)의 인연에 별로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비록 경영학 쪽의 전문가로 성공하셨지만, 이공계의 배경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오늘의 글은 그런 형의 단면을 보여주는 느낌인 것이다. 경제,경영에서 벗어나, 보편적 논리와 열역학적 법칙으로 본 우주의 창조론 같은 것은 기성 전문가들에게 거론하는 것 조차 거의 taboo시 될 수도 있지만, ‘좁은 과학의 눈’ 을 정면으로 도전하듯 바라보는 용기를 느끼게 한다. 1965년 형에게 몇 개월간 받았던 수험과목 이외의 ‘첨단,공상과학 강의’는 나의 머리에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기에 나는 형의 열역학으로 설명이 되는 창조,진화론을 더 흥미 있게 보게 된다.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04.02.2013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세상에는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라는 입장에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으면 그 행동은 좋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결과중시론(consequentialism)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행위 자체의 성격과 동기에서 이미 비롯된다는 비결과중시론(non-consequentialism)의 주장도 있다. 또 목적이 좋으면 그 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be justified)된다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같은 것도 있다.

 이들 각 의견이나 주장은 다 그 나름대로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모두 옳을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더라도 어쩌면 그 많은 주장들 중에는 아예 옳은 것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 중에 옳은(right) 것이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다 그른(wrong)것이라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 진다. 이는 선다형문제에서 정답은 항상 정답이고 나머지들은 항상 오답인 것과 같다.

 예컨대 (3)번이 정답인 선다형의 경우 다수가 (1)번을 정답으로 답했다 해서 정답이 (3)번에서 (1)번으로 바뀌겠는가? 정답과 오답은 다수냐 소수냐에 관계없이, 정답은 항상 정답이요, 오답은 항상 오답인 것이다. 정답이므로 정답이라고 받아들이고 오답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오답으로 받아들이는 판단은 옳은 판단이다. 그런데 정답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오답인데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이는 모두 오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범할 수 있는 오류에는 알파(α)오류와 베타(β)오류의 두 가지가 있다. 만약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 한다든가 또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모두 그릇된 판단이며 오류이다. 전자의 오류를 우리는 알파(α)오류, 후자를 베타(β)오류라 하는데, 오류는 반드시 오류로 판명되기 마련이다.

 오류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류는 그 자체가 이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오류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흑백논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관해서도 흑백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며,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과 주의 주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한다.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의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입장의 상대주의(相對主義; relativism)에 익숙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현대는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옳은 것뿐만 아니라 알파오류나 베타오류도 수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오류의 견지에서 볼 때, 무신(無信; atheism)은 알파오류이며, 미신(迷信; superstition)은 베타오류이다.

 잠시 다음의 실험결과를 음미해 보자.

 들려주는 음악의 형태를 바로크 음악과 헤비메탈 음악으로 달리하고, 나머지 조건들은 모두 동일하게 한 상황에서 여러 씨앗들의 발아실험을 실시하였다. 일정시간이 경과한 후 조사해보니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의 성장이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보다 3배나 더 자랐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에서는 모든 싹들이 음악이 들려오는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반하여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에는 모두 소리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모든 씨 안에는 절대자의 절대의지가 투영되어 있고, 그 씨들은 철저하게 절대자의 의지만을 따르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모두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있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메이커(maker)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 어떤 물건이든 그 만든 메이커(maker)의 의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 그것은 좋은 존재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존재이다.

 이 명제를 연장시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메이커(maker)가 있듯이, 우주도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한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조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알파(α)오류를 범하는 것이요, 한편 이상한 돌이나 나무 산 태양 별 등 심지어는 영물이라고 섬기는 우상에겐 아무런 영적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무엇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베타(β)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 창조 여부와 관련하여 세상에는 여러 주의·주장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창조론(creationism)과 진화설(evolutionism)과 윤회설(transmigrationism)을 들 수 있다.

 이제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폐쇄시스템(closed system)에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엔트로피(entropy: capacity to change 의 역수(逆數)로 표현되는 무질서의 정도를 말함)는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여 그 진위를 분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열역학 법칙은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과학법칙이기 때문이다. 일명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 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질서(higher order)에서 낮은 질서(lower order)로 비대칭(非對稱)의 일방적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진화한다는 진화설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질서가 계속 생기려면 우주에서 에너지가 계속 증가해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에도 상치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질서에서 낮은 질서로 때로는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지그재그(zigzag)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윤회설도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자연 질서에 엄청 어긋나는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글/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ihkim5611@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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