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prayers, 2013

best ever.. roasted, 2013
best ever.. roasted, 2013

Thanksgiving prayer.. 추수감사절 기도..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이날을 맞곤 했지만 만찬 식사 table에서 가족 ‘기도’에 관한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명색이 가톨릭 크리스천이었지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앉아 turkey를 앞에 놓고 한 마디도 못하곤 했다. 언젠가 ‘가장’으로 기도를 하라는 연숙의 말에 깜짝 놀라 한마디 했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어불성설’ 같은 넋두리였고, 아이들도 속으로 웃는 것처럼 들렸다.

가톨릭 신앙인으로 내가 가톨릭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자유 기도를 잘 못해도 괜찮은’ 묘한 전통에 있었다. 최소한 개신교인 들에 비해서 그렇다. 그들, 개신교인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도’ 잘하고 길게도 한다. 몇 년 전 동창회 모임에서 어떤 개신교 자매님의 식사 전 기도가 거의 30분을 끈 것을 보고 나는 그런 확신이 생겼다. 개신교인들은 자유 기도의 귀재 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 주님’ 하며 남들이 보이게 지나치게 긴 통성기도를 하는 그들을 보면 성경에서 그런 모습의 바리사이 Pharisees 를 질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개신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지만 비과학적인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의 기도 ‘실력’의 1%도 미치지 못할 듯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도를 말로 하건 속으로 마음으로 하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에게 들리는 기도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또다시 강조하지만, 개신교 형제, 자매들은 ‘기도와 성경’의 실력에서 99% ‘본 고향’인 천주교를 완전히 앞지른다. 의식과 전통을 경시하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사실 성경과 기도일 것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들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한다.

올해, 오늘 추수감사절 식사는 단촐 하기만 한 우리 식구만 모여서 지난 일년의 ‘은총과 은혜’를 감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모이기 전에 연숙이 나보고 꼭 식사 전 ‘가장’ 기도를 하라고 귀 띰을 한다. 또 우물거리며 넘기려던 나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올해는 조금 예년과 다르게.. 이것 이것.. 한번 도전해 보자 라는 오기가 조금 생겼다. 이것도 근래 3년간 겪고 있는 나의 faith renaissance 중에 하나인지는 모르지만 작년과 다르게 나의 머리가 굴러가고 있었다. 시간은 2시간.. 어떻게 ‘작문’을 할 것인가.. 차츰 머리가 굳어짐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가 머리가 번쩍! 하였다. 아하! 우리 천주교에는 주옥과도 같은 ‘염경念經’ 기도문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예전 같으면 이런 ‘알려진 기도문’은 책에서 찾아야겠지만 요새는 internet이 있어서 쉽게 ‘감사기도문’을 찾을 수 있었다. 항상 감사하며 살라는 성경의 말씀은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 18) 로 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자유기도에서 성경을 인용하기는 조금 무리였다. Thanksgiving Day 에 하기 알맞은 것을 찾아내었다.

 

Thank you Father, for having created us and given us in all our joys and sorrows, for your comfort in our sadness, your companionship in our loneliness.

Thank you for yesterday, today, tomorrow and for the whole of our lives.

Thank you for friends, for health and for grace.

May we live this and every day conscious of all that has been given to us.

We pray through Christ our Lord, Amen. +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절대로 bilingual은 아니기에 우리들이 태어났을 때 얻었던 우리 말로 하는 기도도 필요하였다. 짧고 단순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내가 ‘만든’ 것이다.

 

주님, 올해도 저희 가족들에게 건강과 평화를 주심에 저희 모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우리 옆에 없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주신 것, 감사 드립니다.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Deep November

¶  11월 26일, 이천 십 삼 년.. 이천, 이천, 2000 을 연상하며 문득 아~~ 지금은 2000년 대였지.. 하는 자괴감이 젖어 든다. 왜 천 구백.. 1900 이 아니고 2000인가.. 그러니까 나는 역시 어쩔 수 없이 천 구백이 고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 충분히 오래 산 ‘늙은’ 인간이다.

그것도 11월이 주는 을씨년스런 느낌 또한 나를 움츠려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아주 깊은 11월, 깊도록 깊은 가을의 느낌, 나는 이런 진한 색깔의 나날을 어떻게 감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작년과 비교하고 5년 전과도 비교하고 심지어 20년 전도 돌아본다. 작년과는 거의 비슷할 듯하지만, 5년 전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일 듯 하다. 그 때는 전혀 앞도 방향도 잃고 살았고, 지금은 최소한 앞도 보이고 방향도 제대로 잡은 것이다. 물질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이제는 믿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한 달.. 계속 그런 희망의 심정으로 살고 싶기만 하다.

 

¶  겨울 같은 느낌의 올해 가을, 이곳 지방 deep south의 첫 눈발이 예보가 되었다. ‘아주’ 추울 것이라는 북 미주 동부지방 장기예보에 눈에 대한 것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snow flurries란 말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역시 하늘에 지천으로 깔린 습기 때문이 아닐까? 기온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가능성이 있는 그 ‘물’이 하늘에 항상 떠 있는 상태가 올해 이곳 기상의 특징이었으니까.. Thanksgiving Day가 이틀이 남은 지금, 차갑게 내리는 비가 오늘 밤, 내일 아침 사이에 ‘분명히’ 눈발이 날리는 날씨로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내려도 곧 녹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늘에서 하얀 ‘떡 가루’ 들이 내려 온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교통상 지장은 제로 일 것이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심리적은 효과는 대단할 듯 하고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요란하게 선을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공동체적 심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듯 하다.

올해 우리 집의 Thanksgiving Day는 어떨까 했지만.. 역시 조금 게으르기로 작정하고 우리 식구, 작기만 한 네 명만 모이기로 했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무언중에 ‘피곤할 듯’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손님들과 어울린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 꼽을 정도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노력을 해면.. 식구가 너무나 적은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최소한 ‘비행기가 필요 없는’ 곳들에 살고 있어서 궂은 날씨도 큰 상관이 없어서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작년부터는 엄마가 주 요리인 turkey와 stuffing같은 것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나머지 side dish들을 모조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는 크게 할 일이 없다. 유일한 것이 mashed potatoes 정도일까. 그저 먹어주기만 하면 되니, 조금은 편한 하루가 될 것이다. 물론 조금 힘이 들어가는 dish wash는 주로 나의 담당이지만 그것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으니 별 다를 것은 없다. 그저 그저, 평화스럽게 올해의 100% 일어난 일들에 감사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만 빌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 아닌가 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  First white stuffs & ‘Kenny G‘ time again.. 하루 종일 세차게 뿌리던 비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하얀 물체로 변해서 풀밭이나 deck, 차의 유리창에 얹혔다. 아주 이른 아침 세찬 바람소리에 깨어서 어두운 밖을 살펴보니 무언가 하얀 것들이 보였고 곧바로 아하~ 올해 첫 white stuff임을 알았다. 바뀌어가는 계절의 상징들.. 어찌 이 나이에 조금은 철학적, 더 조금은 신앙적으로 안 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무섭게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소리는 6.25 직후의 서울의 ‘덜 난방 된’ 온돌 방에서 화로 불에 이불을 쓰고 모여 앉았던 어린 가족들의 걱정 없었던 천진난만한 모습들을 연상 시키기에 너무나 충분한 것이었다. 작년 보다 더 빨라진 holiday in the air.. 일 주일 안으로 다가온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 연습의 바쁜 움직임에서 느끼는 이른 12월의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결국은 또 Kenny G season이 온 것이다. 올해 들어 처음 듣는 Kenny G의 saxo.. 너무나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Winter classic, Kenny G

My Winter classic, Kenny G

What A Wonderful WorldKenny G

 

 

눈 나리는 buckeye stadium

우연히 TV(on pc)를 보니 Ohio Stadium이 보이고 football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turf에는 눈이 조금 쌓인 것이 보였다. 아.. 그랬지.. midwest 의 그 추운 밤이었다. 그것이 30년도 훨씬 넘었을 적이었지. 다른 channel을 보니 이곳은 또 다른 midwest인 Norte Dame football의 광경이고 여기도 눈발이 세차게 날린다. 같은 지방이니까 같은 눈이 나리는 것이다. 또 역시 깊은 추억에 잠기고 고뇌를 느낀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고뇌 속에, 그래도 그때 나는 ‘젊었었지’ 하는 환상적인 기쁨이 교차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빠지고 젊은 외모가 그렇게 그리워짐은 나이가 먹는 과정에 따르는 고문일까, 쓸데없는 걱정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이것도 ‘독특한’ 나이기 그렇게 고문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가장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무섭게 피하고 싶은’ still picture, 나의 사진.. 옛날 이동준씨가 그렇게 사진 찍히는 것을 피할 때 의아했던 심정, 내가 그 꼴이 되었다. still picture의 요술.. 지난 20년 동안 마음에 드는 모습의 사진은 거의 없지만 있었다면 그것은 나를 며칠이고 황홀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몰골’이 나를 도망가게만 했다.

가을 시 3선

불과 한 주일 만에 완전한 ‘진짜’ 가을의 풍경으로 변했다. 그 전에는 사실 가을로 부르기에는 주위가 너무나 ‘파~란’ 모습들이었지만, 며칠 전 ‘썸머 타임, Daylight Saving Time‘의 해제로 하루아침에 너무나 어두워진 저녁 6시의 냄새와 더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가을 임을 나 자신의 ‘생애의 가을, Autumn of my life‘과 연루시키며 묘한 감상에 젖어 들고, 낙엽 탄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것 같은 ‘fireplace의 따뜻한 연말 휴일’ 의 공기마저 느껴진다.

유별나게 시원하고 축축했던 올해의 여름은 정말 행복할 정도였고, 하늘의 은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년에 한두 번씩 나타나는 hurricane이 하나도 없는 대신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이 또한 유난히도 지루하고 길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교대하는 기간이 길었던 것인데 그것이 이제 작별을 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예년에 흔히 느끼던 전형적인 ‘가을의 감상’ 을 많이 놓치는 듯 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대부분의 ‘감상적’ 시간은 남이 보기에, 내가 보아도 조금은 유치할 것처럼 보이니까..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인가 할 정도로.. 이맘때면 꼭 생각나고 기억나는 가을의 시는 역시 도종환 시인의 ‘가을 시 3선’ 이다. 시인은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듯해서 나도 10대의 감상에 흠뻑 젖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시를 감상한다.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늦가을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날 살아야 할 이 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깊은 가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부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 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