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  First of May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루 루루루루.. 아련히 Bee Gee’s의 애수 어린듯한 멜로디가 귀를 울린다. 5월 1일이라는 제목의 이 First of May oldie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oldie중의 하나다. 왜 이 ‘명곡’의 제목이 5월 1일인지는 가사를 아무리 읽어도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 소싯적의 꿈과 우정이 세월의 여파에도 빛난다는 것으로 나는 ‘아전인수 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며 산다는 사실이다.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The apple tree that grew for you and me,
I watched the apples falling one by one.
And I recall the moment of them all,
the day I kissed your cheek and you were mine.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do do do do do do do do do…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20대 비교적 짧은 시기의 청춘 때 만들었던 작은 우정의 친구들, 청운의 꿈을 안고 헤어졌지만 언제고 다시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도 있었다. 특히 이맘때면 창희와 용현이를 곁들여 생각한다. 식구보다 더 가까웠던 죽마고우 친구들.. 순진했던 꿈은 삶의 세파에 시달리고 거의 잊고 살기도 했지만 사실은 뇌리의 깊은 곳에 그 녀석들은 언제나 생생하게 남아서 나를 반기었다.
특히 그 녀석들과 Bee Gee’s 의 이 명곡을 듣던 때 1970년과 불도저의 소음으로 요란했던 서울 거리를 회상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속에서도 우리는 우정에 대한 희망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우리의 조국, 우리는 운명을 믿지 않을 정도로 젊었었지만 떠날 수 밖에 없었지..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을까? 친구여.. 잘들 살게.. 1977, 1988, 1999년을 모두 놓치고, 21세기부터는 해가 가는 것을 포기했지 않은가? 잘들 살게.. 어데서고 언제나 언제나..

 

 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 오발탄, 전후 문학, 소설가 이범선 작가의 1950년대 소설작품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 당시면 나는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코흘리개로 만화 라이파이에 더 어울릴 나이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그래도 그 당시 나의 귀에 익은 것은 역시 같은 제목의 영화 때문이었다. 극장 포스터에도 보이고 신문광고에도 보여서 더 그랬을 것이고.. 무언가 ‘문제 영화’임도 짐작을 하였다. 간단한 역사극이나 순정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 하게 ‘고발’ 했던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그것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 70mm 대형 극장 스크린이 아닌 23″ computer monitor로 보고 있는데 1960대 초 기억에도 생생한 서울의 풍경들이 ‘여과’없이 찍혔던 이 영화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작은 기적에 속한다. 분실되었던 original film이었지만 미국 San Francisco영화제에 출품을 했던 덕분에 그곳에서 다시 찾았다고 처음 화면에 나온다. 그때 출품을 안 했었으면 이것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5월이 코앞에 다가옴과 곁들여서 5.16 혁명 주체 ‘박정희 소장‘이 생각난다. 한마디로 그가 제시하는 5.16 혁명의 명분이 이 영화 오발탄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1960년대 초의 분위기를 충실히 화면에 담은 이 영화는 몇 번을 보아도 ‘수준작’이다. 김진규, 최무룡의 연기도 아주 실감이 간다. 비록 중산층이 거의 없던 그 시절이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중산층같이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고지식하고 도덕적인 자세로 세파를 헤치려는 김진규와 그런 형이 답답하기만 한 동생 최무룡.. 이들은 기본적으로 착하고 도덕적이지만 그들이 몸담은 ‘서울거리’는 그들을 지옥같이 느끼게 한다. 최무룡이 못 참고 최후 수단을 쓴 것은 결국 ‘오발탄’이 되어 형을 더욱 곤경으로 빠져들게 하고.. ‘가자 가자..’ 를 외치는 정신이상의 어머니, 영양실조 상태로 난산하는 아내 문정숙은 허무하게 죽어가고.. 이것이 그 당시 1960년대 초 서울 장안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이런 모든 비극의 기본 뿌리는 역시 6.25를 겪은 후 썩은 ‘민간’ 정권 하에서 계속되는 ‘절대로’ 희망 없는 경제사정에 있었다. 한마디로.. 돈과 희망이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굶주린 배를 해결하기 전에 의미 있는 민주주의는 무의미하다. 우선 배고픈 것을 해결하자.. 아마도 이것이 박정희 소장의 간단한 혁명 논리였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다. 최소한 나는..

 

이범선 작, 유현목 감독 ‘오발탄‘,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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